손도끼 사계절 1318 문고 18
게리 폴슨 지음, 김민석 옮김 / 사계절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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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8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손도끼
 게리 폴슨
 김민석 옮김
 사계절 펴냄, 2001.3.28.

 


  게리 폴슨 님이 쓴 《손도끼》(사계절,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줄거리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 아닌, 한국 아이가 한국에서 겪는 일이라면 어떨까 하고. 한국 아이 가운데 설악산이나 오대산, 지리산이나 한라산, 아니면 북녘 묘향산이나 백두산 같은 데에서 길을 잃으면 어떨까 하고.


.. 법원은 브라이언이 어머니와 지내도록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법률이 정하는 ‘방문권’에 따라 여름방학 동안에는 브라이언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게 형식적이었다. 브라이언은 변호사들 못지않게 판사들도 미웠다 ..  (10쪽)


  한국에서는 작은 비행기를 함께 타고 어디론가 날아갈 아이들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배를 타고 가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 어디인지 모를 외딴섬에 갈 아이들도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깊은 숲속은 아니더라도 외딴섬에 아이 하나 똑 떨어졌다고 한다면, 외딴섬 둘레로 지나가는 배가 없고, 뭍하고도 제법 떨어졌다면, 이 외딴섬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요.


  외딴섬에는 전화기가 터지지 않고, 물꼭지라든지 작은 집이라든지 아무것 없습니다. 편의점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 아이는 무엇을 할까요. 한국에서는 손도끼를 갖기는 힘들 테고, 주머니칼 하나 있다고 치면, 열세 살 한국 아이는, 아니 열세 살 아닌 열아홉 살이나 스무 살 한국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요.


  한 끼니라도 무언가 먹을 수 있을까요. 하룻밤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을까요. 목마름을 채울 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신이 해지고 양말이 구멍나며 온몸에서 땟국물 흐를 적에 잘 견딜 수 있을까요.


..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서지고, 찢어지고, 울부짖는 소리뿐이었는데. 어떻게 새들은 저렇게 한가로이 지저귈 수 있을까?’ … 믿을 수가 없었다. 야외 생활에 관한 책이나 텔레비전 영화에서는 모기나 파리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연에 관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건 아름다운 경치나 즐겁게 뛰노는 동물들뿐이었다 … 브라이언은 한동안 멍하니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경치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한 볼거리가 많았지만 모든 게 초록색과 파란색을 띤 얼룩으로만 보였다. 브라이언에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색과 검정색이 눈에 익었다. 그리고 차들이 내는 소음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찬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  (35, 39, 42쪽)


  어린이책을 살피면 ‘○○에서 살아남기’ 같은 책이 꽤 나오고 제법 읽힙니다. 아이들은 책이나 만화나 영화나 다큐방송으로 깊은 숲속이나 외딴섬 이야기를 구경합니다. 학교에서는 그나마 ‘○○에서 살아남기’를 들려주지도 않아요.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가르치지 못하며, 물을 어떻게 얻고, 밥을 어떻게 짓는지 알려주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기껏 가르치는 한 가지라면 대학입학시험뿐입니다.


  아이들도 학교와 똑같습니다. 으레 어머니가 밥을 차려 주겠거니, 또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으면 되겠거니, 정 안 되면 돈으로 사다 먹거나, 전화로 시켜서 카드로 긁으면 되겠거니, 하고 여깁니다. 밥을 짓는다 하더라도 전기밥솥 단추 누를 생각만 하지, 쌀을 헹구어 불려서 물을 맞추어 안칠 줄 몰라요. 아무도 안 가르치고, 아무도 안 보여줘요. 이런 아주 작은 한 가지마저 학교에서는 가르칠 줄 모르는데, 어쩌면 학교 교사부터 밥짓기를 할 줄 모르거나 안 하기에 못 가르친다 할 만합니다. 학교 교사부터 두 다리로 걸어다니지 않으니, 아이들더러 걷는 즐거움을 느끼라 하지 못해요. 학교 교사부터 골목동네 작은 사람들 삶하고 동떨어지니, 이웃을 사랑하거나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삶을 가르치지 못해요.


  교과서 진도는 잘 나가는 학교입니다. 대학교에 붙이는 일은 잘 하는 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답게 사람을 키운다거나, 사람다운 빛을 누리도록 돕는 일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진 학교예요.


.. 친구가 된 모닥불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전 내내 숲에서 일했다. 부러뜨린 나뭇가지들을 쪼개거나 잘라 은신처 돌출부 아래에 차곡차곡 쌓았다 … 놀랍게도 배가 불렀다. 다시는 배가 부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허기만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배가 불렀다. 거북알 한 개와 나무딸기 몇 움큼밖에 먹지 않았지만 배가 불렀다 … 자신이 직접 만든 활과 화살로 음식을 장만했다는 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브라이언은 활, 화살, 물고기, 손도끼, 하늘을 생각하며 기뻐 날뛰었다 ..  (102, 109, 121쪽)


  학교는 아이들을 시험기계와 입시바보로 만든다고 느껴요. 학교는 아이들마다 다 다른 빛을 살리지 않는다고 느껴요. 아니, 학교는 아이들한테 서린 다 다른 빛을 짓밟거나 깔아뭉개는 일에 앞장선다고 느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남녀가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걷는다고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민주와 통일과 평등과 평화로 나아간다고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얼마나 이 땅을 올바로 읽거나 살피는가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글 한 줄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쓰는가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동무를 어떻게 아끼고 이웃과 어떻게 품앗이를 하는가요.


  오늘날 한국에서 《손도끼》에 나오는 줄거리처럼 깊은 숲속에 혼자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틀림없이 굶고 추위에 떨다가 죽으리라 느껴요. 아무도 모르게 죽어 숲을 살찌우는 거름이 되리라 느껴요.


  풀을 뜯어서 먹을 줄 모르니까요. 나뭇잎을 뜯어서 먹는 줄 모르니까요. 가랑잎을 그러모으고 땅을 파서 몸을 따뜻하게 할 줄 모르니까요. 아이들이 시냇물이나 골짝물을 마실 줄 알까요. 아이들이 늘 숨을 쉬며 살아가는 줄 느끼기나 할까요. 바람이 싱그럽지 못하면 죽는 줄, 공장과 발전소가 늘고 자동차가 넘치는 삶이란, 사람을 살리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삶인 줄, 얼마나 깨닫거나 느낄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삶을 어떻게 보여주고, 아이들이 삶을 어떻게 사랑하도록 이끌까요.


.. 호수로 마음을 돌리니, 자신이 있는 곳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쪽으로 지는 해가 폭죽처럼 터지며 호수와 나무들을 붉게 물들였다. 브라이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놀라운 경치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 라이터로 불을 피우면서 불 피우는 게 너무 쉬워 놀랐다. 하지만 라이터는 브라이언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터만 있으면 어떻게 불을 지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161, 177쪽)


  청소년문학 《손도끼》는 주인공 아이가 숲속에서 씩씩하게 살아남는 줄거리를 그립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글쎄, 모를 노릇이에요. 웬만한 아이라면 그냥 죽지 않았을까요. 숲에서 악을 쓰고 용을 쓰다가 죽는 모습을 그려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스스로 해 보지 않고 어른들 손에 이끌려 입시지옥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숲에서 마흔이레만에 ‘숲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된 아이이기 때문에, 그동안 도시 물질문명 때가 많이 탔다 하더라도, 몸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지식 아닌 몸으로 숲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빛을 되살려 아름답게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청소년문학 《손도끼》에서는 이 열세 살 아이가 ‘너무 자연스럽게 훌륭히’ 숲에서 살아남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이 아이가 부딪히거나 겪는 고단함과 괴로움과 어려움이 제대로 안 나타납니다. 기껏 모기에 물리는 이야기쯤? 숲에서 처음으로 하룻밤 새며 얼마나 춥고 얼마나 몸이 얼어붙는지 제대로 그리지 않아요. 나무딸기가 맺힌다면 구월이 저물 무렵일 텐데, 구월 캐나다 깊은 숲에서 아이가 얼어죽지 않는다거나 이가 덜덜 떨리지 않는다니, 이래저래 알쏭달쏭해요.


  아무튼, 아이는 살아남으면서 《손도끼》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아이는 살아남아서 숲에서 지낸 달포쯤 되는 나날을 오래도록 가슴에 새긴다고 합니다. 이 일이 밑거름 되어 이 아이는 아름다운 빛과 사랑스러운 꿈을 오래오래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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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8
김남일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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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7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김남일 글
 사계절 펴냄, 2002.10.29.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이 쓴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사계절,2002)을 읽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쓴 위인전입니다. 어린이한테 읽히는 위인전이라면 지난날에는 이순신이라든지 강감찬, 또는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같은 사람들 이야기였지만, 우리 사회가 차츰 발돋움하면서 문익화 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동화를 쓰던 권정생 님은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살가이 써낸 적 있어요. 언제나 마음속에서 싱그러이 살아서 이야기꽃 베푸는 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고 할까요.


  김남일 님이 쓴 문익환 님 이야기는 ‘통일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남녘에서도 푸대접과 따돌림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진 이야기입니다. 참말, 학교나 회사나 군대에서 따돌림이 그치지 않아요. 돈있는 이가 돈없는 이를 괴롭혀요. 힘있거나 이름있는 이가 힘없거나 이름없는 이를 들볶아요.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님은 언제나 힘도 돈도 이름도 없는 이 자리에 서서 다 함께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나라를 바랐어요. 힘으로도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서로를 누르지 않기를 바랐어요.


.. 익환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 문재린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집 안팎의 온갖 일이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모시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혼자서 고된 밭일도 했습니다. 밤이면 식구들이 입을 옷을 짓기 위해서 다시 베틀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러느라 지금도 어머니의 무릎에는 삼을 쪼갤 때 베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  (32쪽)


  남녘이 북녘을 손가락질한다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북녘이 남녘을 해코지하면 서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합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남녘을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해요. 이래서야 둘이 하나될 수 있을까요?


  동무 사이를 생각해요. 동무와 동무가 서로를 손가락질한다면 어깨동무를 못해요. 서로 아끼지 않는데 어찌 어깨동무하겠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에 어깨동무를 해요. 서로 돕고 보살펴야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웃 사이를 헤아려요.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면 어찌 되나요. 이웃이라면서 이를 갈거나 눈을 부라리면 어찌 되나요. 이래서야 이웃사촌 될 수 있겠습니까.


  남북녘 하나되는 길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해야지요. 서로서로 돌보고 보듬어야지요. 정치 우두머리가 만난대서 통일을 이루지 못해요. 정치 우두머리는 없어도 돼요. 재벌 우두머리 또한 없어도 돼요. 남북녘 이루는 여느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만나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남녘과 북녘은 사랑스레 한 나라 한 겨레가 될 수 있어요.


.. 문익환 얼굴은 그만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무조건 남의 생각이 틀리다고 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에야 발전이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늘 옳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공부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얼음이 녹아야 봄이 오는 게 아닙니다. 봄이 와야 얼음이 녹는 것입니다. 통일도 바로 이런 자연의 이치와 다를 게 없습니다.” ..  (79, 185쪽)


  남북녘이 하나되지 못하는 까닭은 아주 쉬워요. 서로서로 아끼지 않기 때문이에요. 서로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잘못 저런 허물 따사로이 감싸야지요. 아이들을 떠올려 봐요. 아이들이 무엇 하나 잘못했대서 아이들을 두들겨패겠습니까. 아이들이 접시를 깨뜨렸대서 윽박지르겠습니까. 잘못은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앞으로 잘 하도록 북돋으면 돼요. 깨진 접시는 치우고 새 접시 마련하면 돼요. 싸운다 하더라도 싸운 뒤에 사이좋게 앙금을 풀어야지요.


  언제까지 남녘은 북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북녘은 남녘을 손가락질하면서 해코지해야 하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이 자꾸 쑤석이면서 서로 손가락질하거나 해코지하도록 부추기는지 몰라요. 여느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인데, 정치 우두머리와 끄나풀과 몇몇 기자와 지식인 들만 남북이 하나되기를 안 바라면서 일을 틀어 버리려 하는지 몰라요.


  참말, 서로 하나되려 한다면 서로를 높여야 합니다. 잘 한다고 북돋우고, 사랑스럽다며 웃음으로 맞이해야지요. 저쪽더러 고개를 숙이고 이쪽으로 오라 하면 누가 오겠어요. 예부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여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남녘이나 북녘이나 서로 ‘익은 벼’라 한다면, 먼저 맞은편으로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려 해야 옳아요.


.. “내 말은, 내용이 아니라 성서가 옛날 말 그대로 적혀 있다는 말입니다. 너무 어려워요. 우리한테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떻겠어요?” 사실이었습니다. 성서는 기독교가 처음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 선교사들이 번역한 것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나 쓰던 말들이 버젓이 씌어 있었지요. 그런 말들은 대개 한자말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문익환은, 말과 글에는 반드시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쓰지 않고 일본어와 영어만 즐겨 쓴다면 나중에는 민족 정신도 흐릿해질 게 분명하다고 믿었습니다 ..  (105, 108쪽)


  문익환 님이 걸어온 발걸음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삶빛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높은 자리도 낮은 자리도 아닌 아름다운 자리를 찾으려 하셨지 싶어요. 거룩하거나 훌륭한 자리가 아닌 사랑스러운 자리를 찾으려 했다고 느껴요.


  그래서, 문익환 님은 ‘통일 할아버지’ 이기에 앞서 ‘예쁜 할배’요 ‘사랑 할배’로구나 싶어요. 예쁘게 노래하고 사랑스레 춤추면서 우리 삶을 아름답게 빛내고픈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분이라고 느껴요.


.. 문익환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산꼭대기까지 찾아갔습니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수은 중독에 걸린 어린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자기 손자가 그런 사고를 당하기라도 한 듯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값이 폭락하여 성난 농민들이 소를 몰고 시위를 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리 높여 싸웠습니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  (164쪽)


  소설을 쓰는 김남일 님은 문익환 님 삶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어릴 적 태어난 마을, 어릴 적 이녁을 돌본 어버이, 어릴 적부터 함께 얼크러지며 자란 동생,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만나거나 사귄 동무와 이웃, 기나긴 삶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이 책 하나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좀 힘알이가 없습니다. 어딘가 고갱이가 안 드러나는구나 싶어요. 아름다운 삶을 아름답게 적바림하려고 애썼구나 싶지만, 문익환 님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아오며 어떤 꿈을 펼치려 했는지, 차근차근 낱낱이 알뜰살뜰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한 사람 발자국을 좇으며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이어져 한 갈래 아름다운 빛이 되었는가까지 밝히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1970년에 몸을 불사른 전태일 님 이야기를 듣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며 삶길을 크게 바꾼 문익환 님 삶을, 노래하는 빛이 서린 성경을 읽고 밤하늘 별로 살아간 벗 윤동주를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쓰던 문익환 님 삶을, 발바닥을 아낄 줄 알 때에 이웃을 아낄 줄 아는구나 하고 감옥에서 깨달은 문익환 님 삶을, 너무 많은 이야기조각 엮으려 하다가, 외려 두루뭉술하게 얼거리가 흐트러졌다고도 느껴요.


  ‘간추려서 살을 조금 붙인 해적이’는 위인전이 되지 못합니다. 위인전도 동화책 한 권과 똑같이 오롯이 엮고 짠 문학책이 되어야 합니다. 4346.12.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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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익환 목사님의 <목 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를
절실하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숲노래 2013-12-10 23:52   좋아요 0 | URL
네, 문익환 목사님 위인전이나 전기인데,
김남일 님쯤 된다면
제대로 깊고 넓게 다룰 만한데,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아쉬울까 하는 생각
지울 길 없었어요.

틀림없이 뜻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마티아스와 다람쥐 - 온누리 동화 28
한스 페터슨 지음, 김정회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온누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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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0

 


아이들아, 우리 즐겁게 놀자
― 마티아스와 다람쥐
 한스 페터슨 글
 일론 비클란트 그림
 김정희 옮김
 온누리 펴냄, 2007.2.7.

 


  아이들은 무엇을 갖고 놀까요.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면 손바닥에 아무것 없어도 저희끼리 놀이를 지어냅니다. 내 어릴 적 돌아보면 손바닥에 햇볕 한 줌 드리우면 햇볕을 갖고 놀이를 지어요. 바람이 불면 바람을 갖고 놀이를 즐깁니다. 풀잎 하나로 놀이가 태어나고, 꽃송이 하나로 놀이가 샘솟아요. 장난감이 있을 적에는 장난감을 갖고 놀지만, 장난감 없이도 온갖 놀이를 새롭게 지어서 하루를 길고 재미나게 누립니다.


  아이들이 만화책 한 권을 천 번 이천 번 되읽습니다. 아마 만 번 다시 읽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나 어릴 적에도 같은 만화책 하나로 새록새록 이야기를 누립니다.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그림을 느끼고, 다시 넘길 적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빛을 만나요.


  어느 날은 밥을 먹다가 밥알을 낱낱이 센 적 있어요. 젓가락으로 밥알을 하나씩 집으면서 숫자를 세요. 밥알을 하나씩 집으며 숫자를 세다가 노란 씨눈이 있는 쌀알과 씨눈이 없는 쌀알을 헤아립니다. 씨눈이 있는 쌀알을 씨눈맛을 가만히 생각하며 천천히 씹고, 씨눈이 없는 쌀알은 온통 하얀 쌀알갱이는 어떤 맛인가 하고 찬찬히 생각하며 씹습니다.


.. 마티아스는 잔디가 나 있는 건너편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 풀밭은 코딱지만 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그 풀밭에다 ‘마티아스의 정원’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원이라고 해 봤자 돌틈 사이로 막 솟아나기 시작한 풀 세 포기가 전부였습니다 … 마티아스는 엄마에게 주려고 꽃을 꺾는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관리인 아저씨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아저씨가 마티아스의 정원에 난 풀을 잡초라며 마구 뽑아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14, 15쪽)


  고무줄을 넘거나 줄넘기를 넘어도 놀이예요. 잔돌로 공기놀이를 해도 놀이이지만, 주머니에 조약돌 몇 넣고 조물딱거려도 놀이입니다. 조약돌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손바닥으로 퇘 뱉고, 내 침을 내 옷으로 슥슥 문지른 뒤 침내음 맡아도 놀이예요. 볕 좋은 구석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놀이가 돼요. 내 손에 있는 이 작은 돌이지만, 이 작은 돌을 지구별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작은 돌인 지구별 어디쯤 내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발을 디딘 이 지구별을 이 작은 돌멩이처럼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이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미끄럼을 위에서 주룩 미끄러져 타고 내려와도 놀이이지만, 거꾸로 밟고 올라가도 놀이예요. 어른들은 미끄럼틀 무너지랴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뒤에서 달려 미끄럼틀 미끄러운 발판을 쿵쾅거리면서 거꾸로 달려 올라가는 놀이를 합니다. 거의 다 올라갔다가 미처 마지막 한 발 못 올려 주루룩 미끄러지기도 하고,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엉금엉금 올라가며 놀기도 해요.


  그네에 앉아 설렁설렁 놀기도 하지만, 그네를 굴러 휙 날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네 발판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빙글빙글 돌아요. 등을 대고 드러누워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그네줄을 잡고 줄타기를 하듯 올라가기도 해요.


  그네줄 잡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평균대 밟듯 밟으며 건너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어느 집 어머님이 보셨다면 아마 깜짝 놀랄는지 몰라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서 놀이터 모래밭에 쿵 하고 떨어지거나 말거나, 참말 이렇게 터무니없다면 터무니없는 놀이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 마티아스는 새가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동물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티아스는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 이제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까지 떠올랐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 잠깐이지만 풀포기도 햇볕을 쪼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티아스도 햇볕을 쪼이며 정원을 살폈습니다 … 하루는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왔습니다. 마치 마술을 보는 듯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날아왔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  (17, 25, 26쪽)


  한참 놀다가 까마중을 따먹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에는 까마중이 언제 열리는 지 잘 몰랐어요. 그리고, 어느 풀이 까마중풀인 줄 몰랐고, 까마중꽃은 아예 생각조차 않습니다. 누군가 “야, 여기 까마중 있다!”고 하면 비로소 거기에 그게 까마중이네 하고 생각하며 질세라 이길세라 까만 알 훑어 입에 털어넣기에 바쁩니다.


  바알간 꿀꽃을 톡톡 따서 먹을 적에도 그래요. 나 한 송이 너 한 송이 먹을 때도 더러 있지만, 으레 서로서로 달라붙어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아옹다옹 합니다.


  봄에 단풍꽃 지고 단풍씨 맺을 적에는 단풍나무 밑에 바글바글 모여요. 저마다 키가 닿는 데까지 껑충껑충 뛰어 단풍나무 가지를 붙잡습니다. 단풍씨앗 모으려고 용을 써요. 단풍씨앗은 하늘로 휘 던지면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내려옵니다. 10분 쉬는 말미 끝나는 종 치는 줄 모르는 채 단풍씨앗 던지며 놀아요. 나중에는 단풍씨앗 모양을 흉내낸 종이 장난감을 만들어 던지기도 합니다. 높은 데에서 단풍씨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교실 4층 창문에서 살며시 내려놓기도 해요.


  내가 어릴 적 놀던 모습이든, 우리 집 아이들 요즈막에 시골집에서 노는 모습이든, 참말 스스로 놀이를 짓습니다. 동무들이 서로 새로운 놀이를 지어 함께 즐기기도 하고, 혼자서 해바라기하면서, 또는 혼자서 집을 보면서, 또는 심부름을 하느라 가게나 이웃집 다녀오는 길에 갖가지 생각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놀이나라에 흠뻑 젖어듭니다.


.. 마티아스는 동전을 바라보았습니다. 마티아스는 여느 때 같으면 그 동전을 집으로 가져가 저금통에 넣었을 것입니다. 자전거를 사려고 저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시장을 헤매며, 어쩌면 한 주일 내내 헤매야 한다면 마티아스는 곧 굶어죽을 것이고, 그러면 자전거 따위는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돈으로 먹을 것을, 그러니까 작은 빵이라도 사 먹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 마티아스는 아주 천천히 찻길을 건넜습니ㅏㄷ. 마티아스는 한참 동안 전차의 선로 사이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경찰처럼 차에 치이지 않고 길 한복판에서 서 있을 때는 손바닥에 땀이 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마티아스는 전후좌우를 여러 번 살폈을 것입니다. 마티아스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그리고 다른 끔찍한 것에 치이지 않으려고 쏜살같이 차도를 건넜습니다 ..  (63, 108∼109쪽)


  한스 페터슨 님이 쓰고 일론 비클란트 님이 그림을 붙인 《마티아스와 다람쥐》(온누리,2007)를 읽습니다. 스웨덴 도시 한복판에서 동무나 형제 없이 조용하면서 쓸쓸히 지내는 아이 ‘마티아스’는 날마다 심심합니다. 그러나, 심심한 하루를 그저 심심하게만 보내지 않습니다. 스스로 놀이를 지어요. 풀 세 포기 난 연립주택 손바닥만 한 마당을 ‘뜰’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풀놀이를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이를 생각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마음 착한 이웃 형을 만나 다람쥐하고 사이좋게 하루를 누리기도 합니다.


.. “그래, 잠깐 동안이야. 어쨌든 슐로스파르크 공원에 가서 짐짐이가 풀과 공원에 있는 모든 것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시켜 주자. 이제부터 너는 네 자신보다는 짐짐이를 더 생각해야 해.” … “내가 50까지 두 번 셀 동안이면 짐짐이는 몇 킬로미터나 가 버릴걸.” 마티아스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달아난다면 짐짐이는 틀림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거야.” 마르틴이 말했습니다 ..  (91, 153쪽)


  집 둘레에 함께 놀 동무가 없거나 집에 같이 어울릴 형제가 없이 지내야 한다면, 게다가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무시무시한 물결에 시달려야 한다면, 무얼 하며 놀 만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도시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놀 만한가요.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지어낼 수 있을까요. 느긋하게 해바라기를 하다가 손가락 꼼지락거리며 놀 겨를이 있을까요. 하루 10분이나 1분조차 빈둥거릴 틈이 있나요. 빈둥거리면서 달력에 그림을 그릴 새가, 빈둥거리다가 바둑알 만지작거릴 새가, 참말 얼마나 있으려나요.


  놀이방에 가야 놀이가 되지 않아요. 놀이공원에 가야 놀이가 즐겁지 않아요. 놀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고, 놀이도감을 펼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스스로 놀아야지요. 스스로 놀 때에 놀이요, 스스로 노는 아이가 아이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은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을 하는 어른이 아닙니다.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하루를 밝히면서, 스스로 가장 신나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에 참다운 어른이 되어요.


.. 소녀는 천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곳에는 장 속에 갇힌 원숭이 두 마리가 불쌍한 모습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원숭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천을 다시 내려뜨리고 다른 커다란 장의 뚜껑을 젖혔습니다. 그 안에는 작은 곰이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원숭이와 곰을 보니 마티아스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갇혀 있는 게 끔찍해 보였습니다. 마티아스는 결코 짐짐이를 이곳에 남겨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  (144쪽)


  함께 놀아요. 어른과 아이가 손을 맞잡고 놀아요. 어른과 어른 모두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아요. 서로한테 굴레를 씌우지 말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지 말고, 이런 규칙이나 저런 조건은 걸지 말고, 스스럼없이 놀아요.


  놀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놀면서 지구를 헤아리며, 놀면서 사랑을 보살펴요. 놀면서 꿈을 꾸고, 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는, 놀면서 삶을 지어요.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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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의 325번째 말썽 -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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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9

 


놀고 뛰니 좋아라
― 에밀의 325번째 말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3.1.25.

 


  아침에 꽁치를 굽습니다. 얼마만에 집에서 물고기를 굽나 헤아려 봅니다. 여러 달 된 듯합니다. 먼저 스텐팬을 여린 불로 한참 달굽니다. 국 끓이는 냄비에 함께 불을 넣습니다. 국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을 무렵 비로소 꽁치를 물로 헹구고 행주로 물기를 훔친 뒤에 반 토막으로 잘라서 얹습니다. 스탠팬 뚜껑을 덮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물고기는 어디에서 살아?” 하고 묻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살지.” “물고기에도 뼈가 있어?” “산 목숨은 모두 뼈가 있어.” “물고기도 눈 있어?” “물고기도 눈이 있지.” 함께 밥상맡에 앉은 세 살 아이가 누나 말을 하나하나 따라합니다. “물고기는 어디에서 살아?”부터 “물고기도 눈이 있어?”까지 똑같이 묻습니다. 나는 작은아이한테 똑같은 말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내어 이것저것 놀이를 즐기곤 합니다. 나무막대기 하나가 놀잇감 되고, 호미가 좋은 장난감 됩니다. 이 아이들은 나무막대기와 호미로 노는 삶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어른들 일하는 모습을 보고서 따라할까요. 오랜 옛날부터 몸에 배어 이어온 놀이일까요.


  아이들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노라면, 나도 어릴 적에 저렇게 놀았지 하고 떠오릅니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아주 어린 나날 이렇게 놀았을까 하고 돌이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어머니 아버지 어릴 적 놀던 모습이 우리 아이들 어린 나날 노는 모습이 될 테지요. 이 아이들 어릴 적 노는 모습은 앞으로 한 해 두 해 흘러 새 아이들 태어날 적에 고스란히 이어갈 테고요.

 


.. 엄마는 에밀이 말썽꾸러기라느니 사고뭉치라느니 하는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물론 엄마도 말썽꾸러기 에밀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리나 누나까지 이러쿵저러쿵 흉을 볼 건 없잖아요 ..  (8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비에른 베리 님이 그림을 넣은 《에밀의 325번째 말썽》(논장,2003)이라는 책을 읽으며 빙그레 웃습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또는 말썽꾸러기 에밀은, 바로 에밀네 어머니 모습이요 아버지 모습입니다. 에밀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어릴 적에 에밀 못지않게, 또는 에밀보다 더 짓궂게, 또는 에밀보다 살짝 덜 짓궂게 놀았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에밀네 누나가 에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적에 썩 듣고 싶지 않을 만해요. 에밀네 누나도 에밀만 한 아이였을 적에 똑같이 말썽꾸러기에 장난꾸러기였을 테고요.


.. 에밀과 이다는 땔나무를 넣어 두는 궤짝 위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파리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무지무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답니다 ..  (13쪽)

 

 


  즐겁게 뛰놀던 이야기는 오래도록 몸에 남습니다. 신나게 뛰놀던 하루는 두고두고 마음에 깃듭니다. 즐겁게 뛰놀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놀 줄 몰라요. 신나게 뛰놀지 않은 아이는 어른이 된 뒤에 다른 어른들과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좀처럼 누리지 못해요.


  모르는 일을 모르지요. 혼자서 놀든 형제랑 놀든 동무랑 놀든, 즐겁게 놀던 어린 삶이 있을 때에 즐겁게 일하는 어른으로 씩씩하게 살아요. 신나게 놀던 어린 나날있을 적에 신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으로 야무지게 삽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차곡차곡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넋을 하나둘 이어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고이 내려받습니다. 어른들이 맑고 착하게 말할 적에 아이들도 맑고 착하게 말해요. 어른들이 참답고 아름답게 일할 적에 아이들도 참답고 아름답게 놀아요. 어른들이 슬기롭고 올바르게 삶을 일굴 적에 아이들도 슬기로운 눈빛 밝히며 올바른 마음 다스려요.


.. 에밀은 조각칼 다루는 솜씨가 무척 뛰어났어요. 에밀은 나무 깎기가 특기였답니다. 말썽을 부려서 목공실에 갇힐 때마다 나무 인형을 깎았으니까요. 목공실 선반 위에는 지금까지 에밀이 깎은 나무 인형 324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답니다 ..  (24쪽)


  에밀은 앞으로 조각꾼이 될까요? 어쩌면 그럴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자면 누구나 조각꾼이에요. 누구나 목수요 누구나 대장장이입니다. 스스로 집을 짓고 스스로 흙을 일구어요. 스스로 씨앗을 갈무리하고 스스로 열매를 땁니다.


  에밀은 개구진 장난꾸러기입니다만 재미나게 놀 줄 알아요. 에밀은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입니다만 아름답게 꿈꿀 줄 알아요.


  아이한테 무엇을 바라나요. 아이가 고작 대여섯 살밖에 안 되었는데, 영어노래 줄줄 외기를 바라나요. 아이가 기껏 초등학교 다니는데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을 몽땅 100점 받기를 바라나요. 아이가 한껏 푸르게 빛나는 열대여섯 열예닐곱 고운 나이인데 시멘트교실에 새벽부터 밤까지 갇힌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이기를 바라나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사랑과 꿈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우리는 어른과 아이로서 이 땅에서 어떤 삶 가꾸고 돌볼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될까요.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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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2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차곡차곡 물려받습니다. "
- 이 말이 사실 제일 겁나지요.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겠지요.^^

뛰노는 아이들이 성격도 좋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적다고 합니다.
놀지 못하게 하고 공부만 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이런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3-11-26 04:21   좋아요 0 | URL
누구나 이런 대목 잘 헤아리면
이 나라에는 오로지 평화와 사랑만 있을 텐데,
막상... 이런 대목을 헤아리지 못하도록 스스로 옭아매는 분들이
너무 많은 듯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 창비청소년문고 6
이운진 지음 / 창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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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7

 


아름다운 빛은 어디에 있는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
 이운진 글
 창비 펴냄, 2012.7.13.

 


  해가 뜨니 해가 집니다. 달이 뜨니 달이 집니다. 여름이 지나가며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가며 겨울이 찾아옵니다. 겨울 문턱에서 가을밤 빛깔을 누립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가을빛은 올해로 끝이고 겨울빛 흐드러지겠군요. 같은 전라남도라도 지리산 둘레에는 몹시 춥고 눈발 날릴 테지요. 우리 어버이 살아가는 충청북도 음성에는 얼음이 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는 물이 얼까 근심하며 새해 새봄까지 물을 졸졸 틀어야겠지요. 우리 고흥집에서는 지난해 겨울도 그러께 겨울도 물을 틀지 않고 보냈습니다. 올겨울도 물을 안 틀고 보낼 수 있으리라 여겨요. 그만큼 따숩고, 그만큼 눈 구경이 어렵습니다.


  겨울이 포근하기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겨울빛이 있습니다. 늦가을에도 새로 싹이 틀 뿐 아니라, 꽃이 피며 씨앗을 맺습니다. 봄에 피는 꽃이 가을에도 피고, 때로는 겨울까지 씩씩하게 나곤 합니다. 한겨울에 나는 유채풀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잎을 톡톡 끊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알싸하면서 상큼합니다. 시원하면서 싱그러워요. 겨울이 채 물러나지 않은 일월이나 이월 무렵에 유채풀이 돋곤 해요. 이때에도 논둑이나 밭둑을 잘 살피며 유채풀을 뜯습니다. 포근한 남녘땅에서 누리는 겨울맛이자 겨울빛이요 겨울숨입니다.


..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공부인데도 참고서도 없고 스승도 없는 과목이라면 어떻게 배워야 할까? 누가 가르치고 누구에게 질문하고 어떤 방법으로 익혀야 할까 … 좋은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은 내게 이야기를 해 ..  (34, 45쪽)


  아기는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자라서 주름살이 늡니다. 아이가 자라듯 어른도 자라고, 어른이 자라듯 아이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몸이 자라는 동안 마음이 함께 자랍니다. 마음이 자라면서 몸이 새롭게 자랍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몸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몸이 무거워지더라도 몸 또한 차근차근 자라요. 왜냐하면 모든 목숨은 살아서 움직이는 동안 피가 돌거든요. 피가 돌면서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요. 따스한 기운이 있어 살아갈 수 있고, 이 기운을 바탕으로 따스한 생각을 길어올립니다.


  다섯 살 어린이가 호미질을 합니다. 쉰 살 아지매가 호미질을 합니다. 여덟 살 아이가 낫을 손에 쥡니다. 여든 살 할배가 석석 낫을 갈아 벼를 베고 풀을 벱니다. 어릴 적부터 손에 익은 대로 차츰차츰 손놀림 야무집니다. 어린 날부터 둘레에서 지켜본 대로 차근차근 몸놀림 다부집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자란 아이는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바다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바다노래를 부릅니다. 들에서 뛰놀며 자란 아이는 들빛으로 환합니다. 멧골에서 숲과 함께 자란 아이는 숲내음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아름다운 빛은 어디에 있는가요. 아름다운 빛을 찾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요. 아름다운 빛은 어디에서 비롯해 어디로 드리우는가요. 아름다운 빛을 쬐는 사람들 마음밭에서는 무엇이 자라는가요. 햇볕은 국경선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빛 또한 국경선을 가리지 않습니다. 별빛은 계급이나 학력을 묻지 않고, 아름다운 빛 또한 계급이나 학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 ‘자존심’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자.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드는 방법이 중요한 것 같아 … 나무와 식물을 잘 알고 싶으면 사람을 사귀듯이 자주 만나야 하나 봐. 만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나무를 안아 보라고 하는 식물학자도 있더구나 ..  (80, 96쪽)


  이운진 님이 푸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창비,2012)를 읽습니다. 오늘날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가녀린 푸름이한테 푸른 사랑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읽습니다. 대학입시를 이기더라도 몹시 고단한 톱니바퀴가 기다릴 뿐인 도시 아이들한테 푸른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넋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이운진 님은 “여자애들은 원래 예쁜 문구나 화장품이 있는 가게를 무척 좋아하잖아. 그곳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고. 그땐 아주 행복하고 즐겁잖아. 학교에서 어떤 힘든 일이 있었어도 그 순간엔 모두 잊힐 정도로 말이야(21쪽).” 같은 이야기를 곳곳에 씁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 말은 틀리지 않다 할 테지만, 가시내만 예쁜 장난감이나 노리개나 문방구를 좋아하지 않아요. 머스마도 예쁜 장난감이나 노리개나 문방구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예쁜 것에 눈이 사로잡히지 않아요. 겉이 아닌 속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숨결 찾으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운진 님으로서는 ‘푸름이라면 으레 이렇겠지!’ 하고 못을 박는 듯한 이야기는 할 까닭이 없어요. 이운진 님이 보낸 푸른 나날 돌아보면서 이운진 님은 지난날에 어떻게 살았다 하는 이야기만 들려주면 됩니다. 마치 모든 푸름이들 삶을 다 안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눈길과 목소리가 된다면, 푸름이와 어깨동무하기는 어려워요.


..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감각의 풍요로움을 잃어버렸다고 나는 생각해. 자연의 시간을 좇아서 밝음과 어둠의 순환을 따라가며 살아야 하는데, 대낮처럼 밝혀 놓은 도시의 불빛과 한밤중에도 눈길을 붙잡는 텔레비전의 온갖 채널은 오직 시각적인 감각에만 우리를 집중시키잖아 … 내가 서울에 와서 보고 놀란 것 중의 하나가 고층 빌딩이나 지하철, 늘 북적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무라면 이상하게 들리니? 고향의 나무들은 아무렇게나 구부러지고 휘어도 나무의 역할을 다하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도시의 가로수들은 곧고 우뚝하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어 .. (108∼109, 117쪽)


  텔레비전은 틀림없이 아이와 어른 삶을 망가뜨립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없애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방송사에서 일하며 온갖 자질구레하거나 얄궂은 이야기를 흘려보냅니다. 어른들은 방송 풀그림을 다시 신문글이나 잡지글로 다루고, 인터넷에서도 이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푸름이한테 텔레비전이 왜 나쁜가를 이야기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텔레비전을 만들어 돈을 버는 엄청난 어른들 쳇바퀴와 톱니바퀴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른들부터 집안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누리는 삶을 찾을 노릇이요,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에서도 텔레비전 없이 이운진 님이 즐기고 누리는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면 됩니다.


  나무 이야기에서 덧붙인다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나무는 곧게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시골 흙지기들이 나무를 휘어 놓습니다. 열매 따기 수월하도록 나무를 휘어 놓고, 가지만 뻗지 않고 열매만 주렁주렁 매달도록 나뭇가지를 붙들어 놓아요.


  도시에서 자동차 배기가스에 시달리는 나무도 가엾고, 시골에서 더 많은 열매를 내놓으려고 들볶이는 나무도 불쌍합니다. 나무를 괴롭히는 도시사람도 딱하며, 나무를 닦달하는 시골사람도 안쓰럽습니다.


.. 그런 간절한 마음에서 영화를 찍은 감독이 있어서 시를 읽기 전에 잠깐 소개할게.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영화야.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찍은 독립영화지. 감독은 길 위에서 죽어 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실상을 조사해 사람들에게 로드킬의 비윤리적 죽음과 심각성을 말하고 싶었대 ..  (227쪽)


  황윤 감독님은 독립영화를 찍다가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는 새 영화를 찍으려고 부산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찍었어요. 이 영화는 이운진 님 소개글처럼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짐승’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길죽음’만 말하지 않아요. 길에서 사람도 얼마나 자동차 때문에 고달픈지 함께 보여줍니다. 이 나라는 들짐승뿐 아니라 여느 사람도 자동차에 치여 엄청나게 죽거나 다쳐요. 게다가 새 고속도로를 놓는다며 시골마을 짓밟고 푸른 숲과 들과 멧골을 무너뜨립니다.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돈바라기로 치닫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며 스스로 삶을 어지럽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길죽음’ 하나로 그치는 영화는 아니에요.


  푸름이들 살아갈 나날은 어느 한 가지 빛만 생각할 수 없어요. 즐거운 일자리 찾는 길이 하나 있을 테고, 아름다운 사랑을 찾는 길이 하나 있을 테며, 착하며 참다운 넋 북돋우는 길이 하나 있어요. 고운 꿈 품에 안는 길이 하나 있어요. 맑은 눈빛 밝히는 길이 하나 있어요.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고, 벗님과 두레를 하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수많은 길에 서면서 수많은 빛을 만납니다. 수많은 빛을 마주하면서 마음속에서 무지개빛으로 눈부신 새 이야기 빚습니다.


  이운진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푸름이한테 숱한 삶빛 가운데 하나 되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을 아끼는 손길 가운데 하나요, 아이들을 믿고 보살피는 손빛 가운데 하나이리라 믿습니다.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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