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87



내 숨을 살려 주는 바람

―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글

 사계절 펴냄, 2010.12.24.



  새봄에 매화나무 앞에 섭니다. 우리 집 매화나무는 새봄에 새꽃을 터뜨립니다. 어제까지는 꽃이 제법 많이 피었고, 오늘 아침에는 한두 송이를 빼고 모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래서 아침과 낮에 매화나무 앞에 서서 오래도록 꽃내음을 맡고 꽃빛을 바라보았습니다.


  매화나무 모든 꽃이 활짝 벌어진 오늘은 바람이 그리 안 붑니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살짝 불기는 했지만, 새 봄바람은 새 꽃잎을 떨구거나 날리지 않습니다. 새 봄바람은 골골샅샅 쑥내음과 꽃내음과 풀내음과 봄내음을 물씬 실어서 나릅니다. 우리 집에서도 다른 마을에서도 봄빛을 한껏 누릴 만합니다.



.. 고향 집은 이제 내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하다. 모든 게 여기랑 달랐다는 어렴풋한 기억뿐. 거기서는 추운 줄 몰랐고 배고프지도 않았다. 마을 어디에나 감나무가 흔했고 아침마다 달려가 세수하던 개울에는 가재도 많았다 … 엄마가 몰래 운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도 애들처럼 울 수 있다는 걸 안 뒤부터 나는 걱정이 늘었다 ..  (15, 28쪽)



  숨통이 트이는 곳에 있을 적에 시원합니다. 숨이 막히는 곳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물과 바람이 맑은 시골에 있기에 숨통이 트이지 않습니다. 가슴을 활짝 열면서 마음에 따스한 사랑을 심는 곳에 있어야 시원합니다. 돈 많은 어버이를 두어야 숨이 트이지 않습니다. 착하면서 참다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림을 가꿀 줄 아는 어버이와 오순도순 지낼 때에 숨이 트입니다.


  장난감이 많아야 숨통을 트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신나게 뛰놀고 노래하면서 웃을 수 있을 때에 숨통을 트는 아이들입니다. 손꼽히는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숨을 틀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기쁘게 어깨동무하면서 이웃과 서로 아끼는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숨을 트는 아이들입니다.



.. 오늘 숙제를 내지 못해서 미정이는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고 울었다. 새마을운동 포스터를 그려 오지 않아서였다. 포스터 그리기는 솔직히 좀 어려웠다. 선생님은 ‘마을 길 넓히기, 화투 없애기, 지게 없애기, 초가지붕 없애기’ 중에서 자유롭게 아무거나 골라 그려 오라고 했다 … 아버지만 돌아오시면 모든 게 옛날처럼 좋아질 줄 알았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향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되레 전보다 더 우울하고 ..  (41, 91쪽)



  황선미 님이 쓴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2010)을 읽습니다. 이 책은 황선미 님이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따스한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아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늘 모자라고 힘든 나날이지만 글쓴이 나름대로 씩씩하게 바람과 맞서려고 하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넓거나 크지 않더라도 한식구가 한자리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얼마나 포근한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이웃을 그리는 마음이 드러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무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는 이야기책입니다.



.. 나는 그들 속에 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걔들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따라온 식구들과 함께였고, 학교에서 출발할 때부터 정해진 짝이 있는 애들이었다 … 크레파스 뚜껑을 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가져 보는 새것 냄새가 빈속으로 확 스며들었다 …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대체 그림을 그리게 하나. 머리일까, 가슴일까, 아니면 손끝의 기억일까 ..  (120, 124, 132쪽)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왜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못할까요. 배고프고 고단한 사람들이 왜 서로 돕거나 보살피지 못할까요. 가만히 보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뿐 아니라 배부르고 느긋한 사람들도 서로 아끼지 못하거나 어깨동무를 못 하기 일쑤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아끼지 못한다기보다,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잔뜩 짊어지기에 서로 아끼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배고프거나 배불러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안 한다기보다, 마음에 사랑을 심지 않았기에 이웃하고 등돌리거나 동무를 괴롭히지 싶어요.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보면, ‘나’와 ‘우리 식구’는 ‘숙이네 집 방 한 칸’을 얻어서 겨울에 찬바람을 그으면서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꺽다리 집’에 남는 ‘내 동무’는 겨울에도 그대로 찬바람을 맞으면서 그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나’는 새 크레파스를 얻고 새 가방을 얻지만, ‘꺽다리 집’에 남는 ‘내 동무’한테는 새 크레파스도 없고 새 가방도 없습니다.


  ‘꺽다리 집 동무’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춥고 썰렁하면서 슬픈 기운이 감도는 그 집에 그대로 남아야 하는 ‘이제 나보다 더 가난하고 힘겨운 동무’는 앞으로 어떤 마음이 될까요? 그리고 ‘꺽다리 집’보다 훨씬 더 가난하면서 힘겹게 하루를 보낼 다른 동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낼까요?



.. 아줌마가 불을 껐다. 나는 소리 죽여 한숨을 쉬고 어두운 천장을 보았다. 지나가는 차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잠이 올지 걱정이 됐다. 눈을 감으니 추운 집에서 외투까지 겹쳐서 덮고 잘 식구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등이 따뜻한 방에서 다 같이 자면 참 좋을 텐데 … 전에 없이 나긋해진 엄마 말투에 내 마음이 다 편해졌다. 그런데 나를 보고는 또 눈살을 찌푸린다. 숙이네를 나쁘게만 여긴 게 사실이라, 지레 자라목이 된 나를 엄마는 기어이 짚고 넘어갔다 ..  (153, 180쪽)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에 나오는 ‘나’는 여러모로 힘듭니다. 그러나, ‘나’도 다른 동무한테 잘 하지 않습니다. 외롭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고개를 홱 돌립니다. 새 크레파스가 생긴 뒤에 혼자서 새 크레파스를 쓸 뿐, 동생이나 다른 동무하고 나누어 쓰지 않아요. 새 사인펜이 생긴 뒤 종이인형을 그려 주기는 하지만, 다른 동무가 ‘나’한테 살가이 다가오거나 선물 하나를 주기 때문에 그려 줄 뿐입니다. 먼저 스스로 나서서 돕거나 아끼는 몸짓은 없습니다. 선물을 받고 종이인형을 그려 주면서도 ‘내 사인펜이 닳아서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습니다. 눈을 감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다들 팍팍하고 메마른 나날을 보내야 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으면 될까 궁금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뚜렷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려고 했으니, 여러모로 나한테 기쁜 선물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맞아들이면 될까 궁금합니다.


  바람은 겨울에 찬바람을 몰고 오지만, 봄에는 따순 바람을 몰고 옵니다. 우리는 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찬바람도 마시고, 따뜻한 바람도 마십니다. 추운 판잣집이라 하더라도 한식구가 어깨를 맞대면서 기운을 내듯이, 어떤 바람이 불든 우리는 서로 아끼고 돕는 사랑을 키울 때에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그렇지요. 4348.3.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race 2016-02-2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어린이의 마음으로만 이해했습니다.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의 득의양양함은 보상인 듯 기뻤고
더 으스대어도 당연했을겁니다.
그런데 아~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싶어 머리가 텅 비어 지는
듯해요. 그러네요! 나누면 더 좋았을거라는 걸 떠올리지 못하는 전
부끄러워집니다. 숲노래님, 훌륭하세요!^^

숲노래 2016-02-21 09:51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 적에
이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어릴 적에 꼭 한 번이었는데,
나도 동무도 모두 가난할 적에
나한테서 빌린 것을
동무가 쓸 적에 `아깝다`고 한 번 느낀 적 있어요.

그런데 그 동무가 다른 동무한테 뭘 빌려줄 적에
그냥 스스럼없이 빌려주더군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다음부터는 동무한테 뭘 빌려줄 적에는
`그냥 준다`는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늘 새롭게 배우면서
즐겁게 거듭나는 살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Grace 님,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누리셔요 ^^
 
나보다 작은 형 푸른숲 작은 나무 5
임정진 지음, 이웅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86



동화에 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 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글

 이웅기 그림

 푸른숲 펴냄, 2001.11.10.



  사랑을 받는 아이는 사랑을 받는 줄 압니다. 사랑을 받는 아이는 이웃이나 동무를 따사로이 아낄 줄 압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따사로이 아낄 줄 모른다면, 이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에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랑을 아직 몰라,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스하게 손길을 내밀 줄 모르니까요.


  사랑을 알면서 따스하게 손길을 안 내미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랑을 누리면서 따스하게 손길을 안 내미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요. 누군가 이웃이나 동무한테 차갑거나 매몰차거나 딱딱하거나 모질게 군다면, 이 사람은 아직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사랑을 모르면서 하루하루 지낸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 “우리 형 앞에서 떠들면 혼나.” “왜?” “우리 형 되게 무섭거든.” 동식이는 겁먹은 표정이 된다. “근데 왜 그렇게 키가 작은 거니?” “임마, 키만 크면 다냐? 나폴레옹도 키 작았어.” 형 얘기를 하다가 결국 동식이랑 싸우고 말았다 ..  (12쪽)



  아이는 누구나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재미나게 놀기를 좋아하며, 신나게 뛰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다른 동무하고 툭탁거릴 수 있지만, 이내 툭탁거리기를 그칩니다. 왜냐하면, 툭탁거려 보았자 재미없거든요. 함께 놀 동무하고 툭탁거린들 저 스스로 재미없는데다가 마음이 무겁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꾸 싸웁니다. 아이들이 서로 말다툼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어른들이 아이들 둘레에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어른이 싸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고 싸우는 어른을 바라봅니다. 내 밥그릇을 챙기려고 이웃을 들볶거나 괴롭히거나 등치는 어른을 마주합니다.


  이런 흐름은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좋거나 나쁜 모습을 모두 물려받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어른한테서 무엇을 배우거나 물려받을 적에 ‘좋다’나 ‘나쁘다’고 따지지 않아요. 그냥 다 받아들여요. 어른이 거친 말을 쓰면 아이도 거친 말을 쓰고, 어른이 맑게 웃으면 아이도 맑게 웃어요.



.. “죽어야 별이 되는 거랬어요. 우리 아빠가.” “그건 그래. 하지만 잘 때는 별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잖니. 네가 자면 엄마가 하늘에서 우리 민철이 오늘 잘 나나, 오늘 많이 컸나, 오늘 착한 일 많이 했나, 내려다보시지.”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했어요.” ..  (49쪽)



  임정진 님이 쓴 어린이문학 《나보다 작은 형》(푸른숲,2001)을 읽습니다. 짧은 동화를 여러 꼭지 묶은 《나보다 작은 형》을 보면,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나보다 작은 형〉이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형’은 몸이 아픈 듯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나쁘다고 하는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아픈 형은 몸이 자라지 않는 듯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동생은 형이 부끄러울까요? 왜 형 모습을 동무한테 안 보여주려 할까요? 왜 형이 ‘아프다’고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하지 못할까요?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두 아이네 어버이가 아이들이나 이웃 앞에서 쉬쉬하기 때문일 테지요. ‘아픔 = 나쁜 것’이라고 여겨, 이를 숨기거나 감추려 하기 때문이요, ‘아픈 큰아이’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지니, 이야기에 나오는 동생은 ‘형 이야기’만 나오면 다른 동무하고 툭탁거리고 말아요.


  ‘나보다 작은 형’을 놓고 아이들이 풀고 맺는 수수한 이야기를 엮을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데, 《나보다 작은 형》은 아이들이 삶을 서로 풀고 맺는 얼거리로 엮지는 못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젖히고 오직 두 아이(형과 동생)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얼개로 나아갑니다.


  이런 얼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풀리지 않습니다. 어떤 실마리도 풀지 못해요. 두 아이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지내야 하는지 모릅니다. 두 아이는 그저 둘 사이가 더 가깝다고 느낄 뿐, 어떤 실타래도 풀어내지 못합니다.



.. 새로 이사 온 아이가 이렇게 별명을 지어 주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우리는 왜 여태까지 별명 지을 생각을 안 하고 살았을까? 난 내가 친구들 별명을 지어 주지 못한 게 조금 심통이 났어요 ..  (59쪽)



  《나보다 작은 형》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 〈빙빙 돌아라, 별 풍차〉는 상황이나 시대를 좀 엉뚱하게 맞춘 듯합니다. 요즈음 ‘풍차 수레’를 끌고 다니는 아저씨가 어디에 있을까요? 옛날 상황도 오늘날 상황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을 맞춘 다음 어머니 잃은 아이가 나오는 얼거리는 아무래도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백동전’이라는 낱말도 어느 시대를 바탕으로 삼았는지 아리송하게 할 뿐입니다.


  〈새 친구 왕만두〉는 ‘화교’인 아이와 ‘화교 아닌 아이’ 또는 ‘어버이 가운데 한쪽이 외국사람인 아이’를 보여주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별명을 붙여서 살갑게 어울린다고 하는 얼거리로 흐릅니다. 이 땅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한국사람’일 테고,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아이’입니다. 아이와 어른도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러한 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화교 아이를 보기로 삼았구나 싶은데, 이야기에 조금 더 살이 붙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가 좀 싱겁게 끝났구나 싶습니다.



.. “뭐 고민 있어요?” 램보가 걱정스레 물었어요. “응, 그게 저기, 모델을 데려오기 어려워서 패션쇼를 포기해야겠다.” “패션모델? 그건 바로 저의 꿈이었다고요! 무대에 서서 조명을 받는 거.” “너의 꿈이라고?” “그래요. 모델이 꼭 사람이어야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좋았어!” 미스터 울은 자기가 사랑하는 양들에게 멋진 양모 제품을 입혀 패션쇼를 하기로 했어요 ..  (119쪽)



  〈땡땡이, 줄줄이, 쌕쌕이〉 이야기에 나오는 ‘땡땡이’ 같은 일본말을 털지 못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국말은 ‘물방울’이나 ‘물방울무늬’입니다. 동화에 쓰는 낱말을 어떻게 살피느냐는 동화에 담는 이야기를 어떻게 헤아리느냐 하고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나보다 작은 형》을 마무리짓는 〈양들의 패션쇼〉는 한국과 아주 먼 곳에 있는 따뜻한 나라에서 사는 양들을 데려와서 벌이는 ‘패션쇼’를 보여줍니다. 사람과 양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양은 제 털(양털)로 뜨개질도 합니다. 재미난 생각힘(상상력)으로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사람과 양이 기껏 말을 섞는’데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패션쇼’밖에 없을까 싶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패션쇼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양들이 저희 꿈을 ‘패션모델’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이 어이없다는 소리입니다. 이는 ‘양이라는 짐승을 빌어 요즘 어른들 생각’을 드러내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아이들을 길들이는 사회와 경제가 아이들을 똑같은 판박이로 만드는 얼거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동화에 담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양들이 벌이는 패션쇼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양들이 패션모델을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패션쇼와 패션모델을 동화로 엮어서,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어떤 넋으로 들려줄 만할까요? 이 동화를 읽는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면 즐거울까요?


  동화에는 언제나 사랑을 담는다고 느낍니다. 사랑은 기쁠 수 있고 슬플 수 있습니다. 기쁘든 슬프든 모두 사랑이 됩니다. 사랑이라는 자리로 가면, 기쁨도 슬픔도 모두 녹아서 차분하면서 고요하게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동화에 담는 사랑이란, 온누리를 넉넉하고 따사롭게 품에 안는 숨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보다 작은 형》이라는 동화책은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그린 작품이라고 할 만할까요. 요모조모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꾸미기는 했는데, 맛깔스러운 이야기는 따사롭거나 넉넉한 사랑으로 다가섰을까요. 4348.3.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일공일삼 15
크리스티안 뒤셴 지음,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85



어떤 말을 하고 싶니

―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

 크리스티안 뒤셴 글

 윤미숙 그림

 심지원 옮김

 비룡소 펴냄, 2001.11.30.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내 둘레로 퍼집니다. 내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담고 살붙이와 이웃한테 천천히 퍼지고,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두루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나한테 돌아옵니다.


  네가 하는 말은 모두 네 마음입니다. 네 마음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네 둘레로 퍼져요. 네가 하는 말은 이야기를 싣고 네 살붙이와 이웃한테 가만히 퍼지며, 이렇게 퍼진 말은 지구별을 샅샅이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너한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네 말은 네가 너한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면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은 모두 우리 스스로 읊는 말인 셈입니다.



.. 베베르의 아빠는 언제나 쾌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또 그토록 반짝이는 눈을 가진다는 건 흔치 않아요. 아빠는 세상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비웃곤 하죠. 또 아빠는 말 태워 주기, 칠면조처럼 달리기, 거꾸로 사다리 태워 주기 등 온갖 엉뚱한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 엄마를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베베르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매우 슬프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베베르에게는 엄마를 대신해 주기에 충분한 누나들이 많이 있습니다 ..  (8, 11쪽)



  가는 말이 고울 적에 오는 말이 곱습니다. 내가 스스로 고운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곱습니다. 가는 말이 거칠 적에 오는 말이 거칩니다. 내가 스스로 거친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거칠어요.


  다만, 고운 말을 하기에 마음이 꼭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거친 말을 하니까 마음이 꼭 안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채 말만 곱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채 말만 거칠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치레로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겉치레 말을 돌려받습니다. 속마음을 따스히 가꾸며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속마음이 따스한 말을 돌려받아요.


  이것을 해 주기에 이것을 받는 얼거리가 아닙니다. 내가 나한테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내가 스스로 사랑을 거둡니다. 내가 나한테 기쁨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내가 스스로 기쁨을 거두어요.



.. 플라비 아줌마는 베베르의 집에 있는 나이프, 냅킨, 냄비, 화분, 국자, 소금 그릇 등 물건들의 엄청난 수를 알게 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플라비 아줌마는 이 집을 베베르와 함께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또, 수백 개의 불필요한 물건들, 단추 모음이나 가지각색 병들의 수를 베베르와 같이 세면서 놀 수 있다면 좋아했을 거예요 … “플라비 아줌마는 또 이렇게 말했어. ‘골목길의 꽃들은 꼭 정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고 벽의 칠은 다 떨어져 나갔지. 한 번은 참새 백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도 보았단다.” ..  (32, 41쪽)



   크리스티안 뒤셴 님이 쓴 어린이문학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비룡소,2001)를 읽습니다. 마흔한째 아이입니다. 베베르를 낳은 아버지는 막내 베베르를 낳기 앞서 마흔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나이로는 할아버지이지만, 베베르한테는 언제나 아버지라고 합니다.


  베베르는 아버지가 다섯째로 혼인을 해서 새로운 어머니를 맞아들이는 모습이 반갑지 않다고 합니다. 새로운 어머니하고 말을 안 섞기로 합니다. 제 밑으로 새로운 동생이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커다란 집안에 아이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은 달갑지 않다고 합니다.


  베베르네 누나한테 동생은 어떤 숨결이었을까요. 베베르네 누나들은 동생이 생길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떤 누나는 베베르한테 거의 할머니뻘이 될 텐데,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지낼까요.



.. 플라비 아줌마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플라비 아줌마와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베베르는 자기가 아줌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누군가가 자기 집에 들어와서, 바로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바로 옆을 지나다니고, 함께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수가 있을까? 플라비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더라면 좀더 많은 걸 알고 있을 텐데’ ..  (61, 64쪽)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집에 살기에 따순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테지만, 한집에 살면서 얼굴조차 마주보지 않는 사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에 살기에 넉넉한 마음이 되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할 테지만, 이웃집에 살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지내기도 합니다.


  말을 섞지 않고도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며, 서로 마음을 기울여서 만나지 않으면,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짓지 못합니다. 우리는 남남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요, 똑같은 하늘숨을 마시는 사이인걸요.



.. 며칠 전부터 베베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베르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사람들이 옛날이야기를 찾으려고 할 때, 꼭 보고 싶어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베베르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베르는 리본으로 묶인 책 몇 권을 만들었고, 그것을 엄마에게 선물할 것입니다 ..  (93쪽)



  《베베르에게 마흔두 번째 누이가 생긴다고요?》에 나오는 베베르한테 동생이 생길까요? 베베르는 동생을 맞이하고 싶지 않을까요, 아니면 마음속으로는 저한테 ‘많디많은 누나’ 말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어서 동생한테 이것저것 알려주고 보여주면서 기쁘게 웃고 싶을까요. 베베르는 ‘죽은 어머니’만 그리면서 살고 싶을까요, 아니면 오늘 이곳에서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을까요.


  내가 손을 내밀어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따스한 말 한 마디를 심으면서 사랑이 자랍니다. 내가 기쁜 꿈을 심으면서 사랑이 퍼집니다.


  사랑은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말은 사랑처럼 주거니 받거니 할 때에 참으로 말입니다. 주면 줄수록 커지면서 환하게 빛나는 사랑입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재미나고 기쁘며 신나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예부터 이야기는 ‘이야기꽃’이라고 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84



역사를 다루는 ‘동화’와 ‘이야기’

― 서찰을 전하는 아이

 한윤섭 글

 백대승 그림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1.10.31.



  한윤섭 님이 쓴 《서찰을 전하는 아이》(푸른숲주니어,2011)를 읽습니다. 이 책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조선 사회 가운데 봇짐장수가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양반이나 임금이나 지식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니고, 농민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여러 신분과 계급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쪽 물건을 저쪽으로 잇고, 저쪽 물건을 이쪽으로 잇는 사람 이야기가 천천히 흐릅니다.


  봇짐장수는 조선 사회에서 무엇을 바라보았을까요. 봇짐장수가 봇짐에 넣어 이쪽과 저쪽을 이은 글월에는 어떤 생각이 깃들었을까요. 글월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뜻을 펼치려 할까요.



.. “피노리에서 잡히지 않았어도 아마 다른 곳에서 잡혔겠지. 내 운이 다한 것뿐이다.”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하셨잖아요! 양반 천민 없는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을 만드셔야지요.” “그 말이 듣기 좋구나. 아이야, 고맙다. 이제 가거라.” “장군님을 만나러 오는 동안 처음으로 행복했어요.” “그래, 나도 널 만나서 행복하구나.” ..  (155쪽)



  글월을 나르던 봇짐장수는 그만 길에서 죽습니다. 봇짐장수가 건사하는 아이가 제 아버지가 못 다한 일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아이는 거칠고 고단한 길을 걷고 걸어서 비로소 뜻을 이룹니다. 그런데, 봇짐장수 아이가 건넨 글월을 받은 ‘전봉준’은 글월에 적힌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무(동지)를 믿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고 적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을까요? 그러나, 함께 일하는 사람 가운데 거짓쟁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길이 닿지 않도록 조용히 글월을 띄우고 받’지요. 함께 일하는 동무를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제대로 다스리라는 뜻으로 글월을 주고받아요.



.. “아버지, 산에는 왜 다녀온 건가요?” “스님이 눈이 침침해져 책을 못 보신다는 소식을 듣고, 안경을 드리러 온 것이다.” “정말 안경을 드리러 온 것뿐이에요?”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자,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그래, 네 짐작이 맞다. 또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다. 스님의 서찰을 어떤 분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다.” ..  (16쪽)



  한윤섭 님이 쓴 책은 《서찰을 전하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글월(서찰)’은 아주 커다란 고빗사위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가 목숨과 똑같이 여기면서 건사한 글월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아이 아버지가 이 글월을 건넸을 적에도 늘 목숨을 걸고 건넸을 테지요. 다시 말하자면, 글월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목숨을 겁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만 대수로이 여길 대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윤섭 님은 바로 이 대목, 아이가 전봉준한테 글월을 건네서 전봉준이 글월에 따라 움직이는 얼거리를 더 깊게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한 줄로 “내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155쪽)” 하고 적으며 끝낼 만한 이야기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글월을 띄운 스님도, 글월을 건네는 봇짐장수도 ‘함께하는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은 믿고 다른 한 사람은 못 믿은 셈인데, 이렇게 어영부영 끝을 맺는다면,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아리송합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라고 해서 ‘역사에 기록된 대로 끝을 맺어’야 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다룬 동화이든 생활을 다룬 동화이든, ‘생각’을 넓혀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전봉준이 거짓쟁이(배신자)를 시골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뜻을 품으며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키는 얼거리’로 이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습니다. 거짓쟁이 한 사람은 찾아내어 시골로 돌려보냈으나, 다른 거짓쟁이가 또 있다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열셋이면 나와 동갑이다. 동갑이면 다른 사람들은 친구라고 한다. 다음에 만나거든 그때는 친구로 지내자.” 그 말에 놀라 내가 말했다. “도련님은 양반입니다.” “아니다, 나도 친구가 생겨서 좋다. 이제 차츰 세상도 그렇게 바뀔 거라고 하더라.” … “이 세상이 어찌 되려고 관군이 일본군과 합세해 조선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는 말이냐?” 주막 아주머니의 말에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막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막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  (100, 124쪽)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더 살펴보면, 이 책을 이루는 뼈대는 ‘걸어서 삼천리강산을 돌아다니는 봇짐장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봇짐장수가 이 땅을 두루 밟고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대목은 거의 안 드러납니다. 어느 철에 돌아다니고, 철마다 어떤 날씨요 들빛이며 마을살이인가 하는 모습을 하나도 안 그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직 ‘주막’ 언저리입니다. 주막에서 하룻밤 묵는 이야기만 잇달아 나옵니다.


  봇짐장수가 주막에서 잠을 자기도 했을 테지만, 주막 아닌 데에서 한뎃잠도 으레 잤을 테고, 여느 시골집에서도 잠을 잤을 테지요. 봇짐장수 삶이 이 책에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했고, 옛날에는 모두 시골 흙길이었을 테고, 숲도 우거졌을 텐데, 숲길과 시골길을 걸어서 다니면서 ‘아이가 삶을 새롭게 읽고 생각하는 이야기’도 한 줄조차 담지 못합니다.



.. “알고 싶은 것이 글자 두 자라고 했으니, 한 자에 한 냥을 쳐서, 나에게 두 냥을 주면 알려주겠다. 결정은 네 몫이다.” 두 냥을 달라니 노인은 도둑이 분명했다. 두 냥이면 이틀 동안 편히 자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 “네가 여기 이렇게 온 것도 그분이 이끄신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 스스로 온 것이다. 춘천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가 전하지 못한 서찰을 전달하러 내 발로 온 것이었다 ..  (43, 73쪽)



  아무래도 ‘동학혁명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얽매인 탓이지 싶습니다. 역사동화이니 역사를 다루면 되지만, 역사는 ‘한문 지식을 익힌 지식인이 적은 책에 적힌 이야기’만 역사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입과 입으로 오르내리면서 흐르는 이야기도 역사입니다. ‘기록된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기록된 역사’를 잘 갈무리한 다른 책을 읽으면 돼요. 굳이 ‘역사동화’라는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삶’을 새롭게 살피고 살려서, 이를 아름다운 꿈과 사랑으로 들려주면서 아이들한테 마음밥으로 삼도록 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 짜임새’로 본다면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훌륭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봇짐장수 삶이 거의 드러나지 못했고, 1800년대 끝자락 시골사람 삶이 하나도 나타나지 못했으며, 그무렵 삼천리강산 숲과 들이 어떠한가를 그리지 못했으며, 열세 살 아이가 누리면서 느낀 넋을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800년대 끝자락을 살던 ‘양반 아닌 사람이 쓰던 말씨’를 거의 못 살렸습니다. 이 책을 보면 ‘행복’이라는 한자말이 끝에서 자꾸 나오는데, 이런 한자말은 요새나 쓰는 한자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기쁨’이라는 한국말을 썼을 테지요. 역사를 다루는 동화라면, ‘오늘날 쓰는 말투’가 아니라 ‘예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말투’도 잘 헤아려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배움책 32



네 이야기를 써 봐

―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

 문현식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2.5.15.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만 ‘일기장’을 썼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일기장을 조금 만지작거리기는 했으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시험공부와 숙제가 워낙 많아서 일기장은 어느새 잊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지 않았고, 일기를 안 쓴들 때리는 어른도 없습니다.


  내가 일기쓰기를 하던 국민학교 적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교사(어른)는 우리더러 ‘일기를 쓰라’고만 했습니다. ‘똑같은 일기를 쓰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겪은 일’을 쓰라고도 했고, ‘충효 사상’을 쓰라고도 했으며, ‘새마을운동’과 ‘반공 사상’을 쓰라고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일기를 안 쓰면 ‘안 쓴 만큼 두들겨팼’고, 밀린 일기는 ‘잔뜩 얻어맞고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우’든지, 집에 가져가서 채워 와야 합니다. 날짜마다 꼬박꼬박 무언가 칸을 채워서 넣도록 시켰습니다.


  어른으로 사는 나는 여러 가지 일기를 씁니다. 나더러 일기를 쓰라고 하는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일기를 안 쓴다고 해서 나를 때리는 다른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나한테 일기쓰기는 숙제도 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일기쓰기는 ‘내 이야기 쓰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기쓰기 = 글쓰기’입니다. ‘글쓰기 = 삶쓰기’입니다. ‘삶쓰기 = 이야기쓰기’이고, 내가 쓰는 이야기는 내가 오늘 하루 누리는 삶에서 스스로 짓는 꿈과 사랑입니다.



.. 하물며 물건과도 친구가 되는데 생명이 있는 식물과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숙제를 내고서 난 초조하다. 아이들이 식물과 대화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 오늘도 급식을 혼자 묵묵히, 35명의 아이들 쪽을 향한 채 우물거리며 먹었다.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오늘의 뉴스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며, 어제 읽었던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조용한 음악을 듣는 대신 아이들의 큰 웃음소리를, 식사 후에 따뜻한 차를 마시는 대신 아이들의 식판을 정렬해야 한다 ..  (25, 38쪽)



  내 어릴 적에는 왜 이런 말을 못 들었을까요? 내 어릴 적에 내 둘레에서 이런 말을 들려줄 만한 어른은 왜 없었을까요?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했을까요?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학교를 다녔을까요? 기나긴 군사독재와 반민주로 짓눌리던 학교 사회에서는 아이들한테 억지스러운 숙제와 체벌과 뺨따귀와 몽둥이질과 얼차려만 있었을까요?


  지난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생각을 깨거나 연 교사가 많이 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일기쓰기를 숙제로만 시키는 교사가 있을 텐데, 지난날과 달리 ‘일기에 내 이야기를 즐겁게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꾸는 아름다운 웃음과 눈물과 노래’를 들려주는 교사가 꾸준히 는다고 느낍니다.


  다만, 일기쓰기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새롭게 가르치는 교사는 틀림없이 늘 텐데, 입시지옥은 그대로 있습니다. 아니, 눈을 뜨거나 마음을 여는 교사는 꾸준히 늘 텐데, 입시지옥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거나 거세어지지 싶습니다.



.. 교실에서 자기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말하지 않는 아이의 말과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 일기에서 글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짧은 두현이의 일기에서 두현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진다 … 어쩌다 시간이 남으면 사고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책도 읽어야 한다 … 학생과 교사의 대화 창구는 별로 없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내가 항상 마주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  (43, 117, 121, 162쪽)



  문현식 님이 쓴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철수와영희,2012)라는 책을 읽습니다.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만나면서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쓴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 일기와 교사 일기가 나란히 나옵니다. 아이들한테만 쓰라고 시키는 일기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느낀 문현식 님 생각과 마음을 차근차근 함께 쓴 일기입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쓴 일기를 살피는 교사는 많은데, 어른이 쓴 일기를 아이한테 읽어 주거나 읽히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요? 서로 일기를 바꾸어 볼 만큰 눈을 뜨고 마음을 여는 교사는 얼마나 있을까요?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에 나오는 문현식 님 일기는 ‘교사일기’나 ‘교단일기’가 아닙니다. 문현식 님 일기는 고스란히 ‘하루일기’이고 ‘삶일기’입니다. 책 한 권으로 묶이면서 문현식 님 일기가 바깥에도 드러난다고 할 테지만,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일기를 쓰면서, 언제나 아이들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삶을 들려주려고 하는 몸짓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 인형 목욕을 했다. 어떻게 하는 거냐면 인형하고 같이 목욕을 하는 거다. 나는 토끼를 갖고 목욕을 하고 형아는 강아지를 갖고 목욕을 했다 (황지석) … 난 게임이 가장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운동고 건강에 좋고 재미있고 개운하고 튼튼해지는 것 같았다. 내 동생은 메리야스만 입고 축구를 했는데 좀 우스꽝스러웠다 (이지숙) … 오늘 엄마가 일을 하러 식당에 가셨다. 저녁 8시에 가서 밤 12시에 오신다. 나는 지금 동생, 아빠와 같이 있다. 지금 현재 시각은 10시 5분이다 (김시온)  ..  (33, 69쪽)



  일기를 잘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성적이 잘 나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꼭 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나 이름을 드날려야 하거나 권력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우리는 무엇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하루를 누려야 할까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삶을 가꾸는 기쁨이 온누리에 골고루 퍼지도록 사랑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일기쓰기는 내 삶을 써서 스스로 돌아보는 글쓰기입니다. 일기를 즐겁게 쓰면서 내 삶을 즐겁게 돌아봅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누렸으니, 일기도 즐겁게 씁니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사랑스레 가꾸니, 내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글로 갈무리해서 기쁘게 돌아봅니다.



.. 하루를 몽땅 기록하는 일기를 보면 매일매일 특별한 일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비슷한 일들이고,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 특별한 일은 가끔 일어난다 … 우리 교육의 현실은 지금 바뀌고 있는 걸까? 성적 지상주의, 학부모들의 교육 이기주의, 지나친 교육열, 밤새 불을 밝힌 학원 …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다혜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장래 희망이 뭐예요?” “???…….” 대답을 하려다 멈칫거렸다. 교사가 된 나에게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  (196, 199, 213쪽)



  우리 함께 일기를 써요. 우리 이야기를 우리가 기쁘게 써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 기쁜 삶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즐겁게 써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흐르는 이야기는 내려놓고, 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아름답게 웃은 하루를 내 손으로 정갈하게 일기에 남겨요.


  ‘일기’가 아니어도 돼요. 시도 쓰고 수필도 써요. 짤막하게 글을 써요. 이 글을 아이와 어른이 도란도란 읽으면서 기쁜 생각을 나누어요. 내가 손수 쓴 글을 편지로 띄우고, 네가 몸소 쓴 글을 편지로 받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빌어요. 글 한 줄에 내 꿈을 담고, 글 두 줄에 우리 사랑을 담아요.


  밥을 짓는 이야기를 일기로 쓰고, 빨래를 하는 이야기를 일기로 써요. 걸어서 돌아다닌 이야기를 쓰고,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 이야기를 써요. 꿈에서 겪은 이야기를 쓰고, 새봄에 피어나는 꽃을 한참 들여다보고서 써요. 내 손을 가슴에 대고 콩콩 뛰는 숨소리를 찬찬히 새기고서 글을 써요. 어버이와 교사는 아이들 손발톱을 곱게 깎아 주고서 글을 써요. 아이들 머리를 빗기고 나서 글을 쓰고, 긴머리를 고무줄로 묶거나 땋고 나서 글을 써요. 연날리기를 한 뒤에 글을 쓰고, 제기차기를 한 뒤에 글을 써요. 씨앗 한 톨을 심은 뒤 꾸준히 지켜보는 이야기를 글로 써요. 삶을 쓰면서 사랑이 자라나는 숨결을 온몸으로 느껴서, 이 멋진 하루를 일기라는 글로 써요.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