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비는 나무 이숲 청소년 3
윌리엄 포크너 지음, 돈 볼로네즈 그림, 김욱동 옮김 / 이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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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95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 소원을 비는 나무

 윌리엄 포크너 글

 김욱동 옮김

 이숲 펴냄, 2013.1.20.



  나무를 바라보면서 말을 겁니다. 어젯밤 잘 잤는지 묻고, 오늘 아침은 기쁘게 깨어났느냐고 묻습니다. 아이와 함께 나무 곁에 서서 나뭇줄기를 쓰다듬습니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번쩍 들어올려서, 아이도 손으로 나뭇잎을 어루만지도록 합니다.


  나뭇줄기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면, 나무가 두근두근 기뻐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뭇줄기에 귀를 대거나 볼을 대면, 나무가 콩닥콩닥 노래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람한 나무를 두 팔로 크게 감싸안으면, 나무가 활짝활짝 웃음짓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말 어느 나무이든 우리가 따스하게 내미는 손길을 기다립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나무는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살그마니 쓰다듬는 손길을 바랍니다.



.. “가방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물건이 들어 있는 거니?” 덜시가 물었다. “내가 모리스니까 그렇지.” 붉은 머리 소년이 대답했다. “게다가 생일에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거든.” …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나무들은 한여름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풀밭도 초록빛이었으며, 푸르고 노란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새들은 노래하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녔다 ..  (23, 26쪽)



  나무를 베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무는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줍니다. 나뭇가지를 치거나 꺾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무는 기꺼이 제 팔을 내어줍니다. 책도 나무로 짓고, 종이도 나무로 빚습니다. 연필과 젓가락도 나무로 깎으며, 책걸상도 나무에서 옵니다. 집을 이루는 기둥도 나무요, 우리 둘레에 있는 숱한 살림살이는 나무에서 비롯합니다.


  눈을 들어 찬찬히 살필 수 있다면, 숲에도 나무가 있고 집집마다 나무가 있는 줄 알아차릴 만합니다.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다면, 숲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푸른 바람노래를 들을 만해요.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집어요. 나무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요. 나무와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이웃한테 즐겁게 선물해요. 내가 장만하는 책은 언제나 나무이고, 내가 선물하는 책도 언제나 나무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푸르게 우거진 나무가 베푸는 기운’을 나누려고 책을 쓰고 엮고 읽고 짓습니다.



.. “캔디는 그냥 없어진 거예요.” 붉은 머리 소년이 설명했다. “그걸 원한 사람은 디키였는데, 앨리스 아줌마가 가져가니까, 저절로 사라진 거라고요. 아줌마는 캔디를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 “조지, 그 케이크랑 딸기를 모두 먹으면 배가 몹시 아프게 될걸.” 덜시가 말했다. “상관없어.” 조지가 중얼거렸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  (41, 44쪽)



  윌리엄 포크너 님이 쓴 어린이문학인 《소원을 비는 나무》(이숲,2013)를 읽습니다. 150쪽을 살짝 넘는 양장본 동화책인데, ‘소원을 비는 나무’라는 작품이 이만 한 길이는 아닙니다. 이 책은 옮긴이가 붙인 말이 퍽 깁니다. 3/5는 윌리엄 포크너 님이 쓴 문학이요, 2/5는 옮긴이가 붙인 풀이말입니다. ‘옮긴이 말’을 좀 지나치게 길게 붙이지 않았나 하고 느끼는데, ‘소원을 비는 나무’라는 작품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밝히고, 이 작품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흐름과 줄거리마다 어떤 숨은 뜻이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 “지금껏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이겼다는 군인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어유. 하지만 흰둥이들은 늘 우습게 전쟁을 해유.” ..  (54쪽)



  ‘소원을 비는 나무’란 “꿈을 비는 나무”입니다.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면 ‘꿈나무(소원나무)’한테 찾아가서 잎사귀를 하나 똑 따서 가만히 마음속으로 빌고 입으로 읊는다고 해요. 그러면, 내 마음속으로 지은 꿈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이룬다지요.


  참말 꿈 같은 이야기라 할 텐데, 네, 맞지요.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꿈을 비는 나무’이고 ‘꿈나무’일 테지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꿈을 꾼다고 할 적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이루는 일은 없다고 여길 만하니까, ‘꿈나무’는 그예 꿈에서만 볼 수 있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러면, 어떤 꿈을 빌기에 그 자리에서 이룰까요? 어떤 꿈을 빌기에 오래도록 못 이룰까요? 우리가 언제나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꿈을 이루려고 저마다 일을 하거나 돈을 벌까요?



.. 소녀는 잠이라는 둥근 어항에 들어 있는 금붕어와 같다고 할까. 잠이라는 따뜻한 물속에서 점점 꼭대기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잠에서 깨어날 참이었다 … 프란체스코 성인은 힘없는 것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면 ‘소원을 비는 나무’가 없어도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  (83, 84∼85쪽)



  꿈을 이루려 할 적에는 꿈을 이루려 해야 합니다. 꿈을 생각하는 자리에서 ‘이 꿈이 이루어지려면 돈이 얼마가 들고,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며,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하는 대목을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이런 자질구레한 생각은 ‘꿈’이 아니라 ‘보고서’입니다. 마음속으로 ‘보고서’를 쓰면, 꿈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참말 꿈은 꿈답게 꾸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아이들 꿈이라 한다면, 아이들은 “장난감 갖고 싶어!” 하고 외칠 뿐, “100만 원짜리 장난감 갖고 싶어!”라든지 “그 장난감은 10만 원짜리이니까, 아버지가 며칠 동안 일해서 돈을 벌어야 가질 수 있겠지?” 하고 외치지 않습니다.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사랑을 이루고 싶어!” 하고 외치면 됩니다. “돈 많고 잘생긴 사람하고 짝을 짓는 사랑이 될래!” 하고 자질구레하게 붙일 까닭은 없습니다. 이렇게 자질구레하게 붙이는 ‘보고서’를 쓰려고 하니까, 우리는 자꾸 꿈을 못 이루지 싶어요. 그러니까, 꿈을 꾸려 하더라도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구나 싶어요. 꿈을 꾸는 삶을 어떻게 가꾸어야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미처 못 배웠구나 싶어요. 꿈으로 나아가는 즐거운 하루가 되는 길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구나 싶습니다.


  《소원을 비는 나무》를 덮습니다. 우리 집 나무 곁에 섭니다. 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너 참 곱구나, 너 참 튼튼하구나,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 씩씩하게 자라서 멋진 그늘을 드리우고,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를 낳고 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날 먼 뒷날에도 이곳에서 아름드리로 우거지는 숲이 되어 주렴, 하고 말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내 꿈은 ‘숲’입니다. 내 마음이 숲과 같이 푸르게 우거지려는 꿈입니다. 내가 읊는 말이 숲처럼 푸르게 빛나기를 바라는 꿈입니다. 우리 집이 ‘숲집’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꿈입니다. 가슴속에 꿈씨를 한 톨 심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아 봅니다. 4348.4.2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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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권총왕 이원수 문학 시리즈 3
이원수 지음 / 웅진주니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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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97



봄꽃 같은 아이, 봄나무 같은 어른

― 도깨비와 권총왕

 이원수 글

 권사우·설은영·이준섭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1999.7.30.



  봄에 피는 꽃은 모두 봄꽃입니다. 이월에 피건 삼월에 피건 사월에 피건 모두 봄꽃입니다. 아직 봄이라 할 수 없는 이월에 피더라도, 이 봄꽃은 삼월과 사월에도 나란히 피어요. 볕바른 자리에서 아주 일찍 피는 봄꽃이 있고, 응달진 곳에서 느즈막하게 피는 봄꽃이 있어요. 그리고, 볕바른 곳에서도 느즈막하게 올라오는 봄꽃이 있습니다.


  냉이꽃은 이월에도 보지만 사월에도 봅니다. 민들레꽃은 삼월에도 보지만 오월에도 봐요. 어느 씨앗은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가 아주 빠르게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서 꽃대까지 올려요. 어느 씨앗은 다른 들풀과 봄꽃이 한껏 터져서 들과 밭과 숲을 가득 메우고 나서야 비로소 기지개를 켭니다.


  가장 먼저 돋는 봄풀을 반기거나 가장 먼저 피는 봄꽃을 반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느즈막하게 돋는 봄풀이나 느즈막하게 피는 봄꽃을 반기는 사람은 드물 수 있어요. 그렇지만 풀과 꽃은 투정을 부리지 않습니다. 풀과 꽃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찬찬히 온힘을 다해서 이 땅에서 깨어납니다.



.. 경칠이는 재미만 났어요. 누가 야단을 쳐도 히히히 웃으며 도망을 치고는 또 짓궂은 장난만 쳤답니다 … 어머니는 경칠이에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토끼가 얼마나 착한 짐승인데 그걸 때리고 찌르고 그러니? 아기 토끼의 눈까지 멀게 해 놓았으니 가엾어서 볼 수가 없구나.” 경칠이는 시무룩하니 앉아 있다가 말했습니다. “때려 줘도 아프단 말도 안 하고 날 놀려 주지 않아?” “꼭 아프다고 소릴 쳐야만 하니? 토끼의 말소리는 네 귀에 안 들리니까 그렇지. 너도 토끼 노래를 불렀었지?” ..  (7, 9쪽)



  일월에 태어나는 아이가 있고 십이월에 태어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먼저 태어난다 싶은 아이가 있을 테지만, 먼저라고 해 본들 더 앞서 태어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이와 같습니다. 먼저 태어난 어른은 없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맞게 즐겁게 태어난 숨결입니다.


  나이가 더 어리기에 철이 안 들지 않습니다. 나이가 더 많기에 철이 일찍 들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때에 철이 듭니다. 누군가는 열 살에 철이 들 테고, 누군가는 쉰 살에 철이 들 테지요. 누군가는 일흔 살이 되어도 철이 안 들었다 할 만하고, 누군가는 열 살이 채 안 되어 애늙은이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을 마주할 적에는 나이가 아닌 숨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마주하든 어른을 마주하든 겉모습이나 겉차림이 아니라 속모습과 속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휘둘리지 말고, 속에서 환하게 터져오르는 숨결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엄마가 날마다 고된 일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구나. 집을 뛰쳐나가서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소의 신세는 가엾은 거다.’ … “그래도 난 수근이가 좋았어요. 밤에도 나와서 날 쓸어 주고 그랬어.” “그래, 수근이는 참 착한 아이였어. 그런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니까 얼마나 좋더냐?” ..  (33, 34∼35쪽)



  이원수 님이 빚은 동화를 엮은 《도깨비와 권총왕》(웅진주니어,1999)을 읽습니다. 이 책에는 〈도깨비와 권총왕〉을 비롯해서 모두 열 가지 짧은동화를 싣습니다. 〈토끼와 경칠이〉는 힘여린 짐승을 괴롭히던 경칠이가 꿈에서 토끼를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떠나는 송아지〉는 가난한 시골집에서 송아지를 팔아야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수탉〉은 암탉을 늘 괴롭히는 수탉을 지켜보는 아이 이야기를 다루고, 〈바둑이의 사랑〉은 고양이와 한집에서 지내다가 새끼를 남기고 일찍 숨을 거둔 고양이를 마주하는 개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이름에 붙은 〈도깨비와 권총왕〉은 아이들이 보는 책에 나오는 ‘도깨비’와 ‘권총왕’이 맞서는 이야기를 다뤄요.


  짧은동화 열 꼭지는 모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입니다. 어린이가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름다운 마음밥을 받아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사랑할 뿐 아니라, 풀과 나무도 사랑하기를 바라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작은 벌레와 짐승도 내 몸과 같이 보살피거나 아낄 수 있기를 바라는 숨결이 깃든 이야기예요.



.. 언젠가 나비의 얄미운 꼴을 보다못해 “저놈의 짐승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 일이 있고, ‘쥐약 먹은 쥐라도 먹고 거꾸러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걸 바둑이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죽은 건 아니겠지.’ … “불쌍한 것들아, 내가 네 엄마가 돼 줄게.” 바둑이는 새끼들 옆에 누워서 몸을 핥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새끼들이 모두 바둑이의 품안으로 기어들었습니다. “이것들아, 나는 지금 젖이 안 나니까 먹일 수 없다만, 따뜻이 품어 주니까 울지 마라.” ..  (56, 60쪽)



  언니이거나 오빠이거나 형이거나 누나라는 자리에 있는 아이라면, 제 동생을 아끼고 보살피면서 흐뭇합니다. 언제나 동생을 챙기거나 돌봐야 해서 고단하거나 힘들 일이란 없어요. 나보다 여리거나 어린 동생을 아끼면서 찬찬히 사랑이 샘솟습니다. 나보다 여리거나 어린 동생을 보듬으면서 찬찬히 어버이 사랑을 깨닫습니다. 내가 어린 동생을 돌보듯이 어버이도 나를 돌보았을 테니까요. 아니, 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골을 부리더라도 어버이는 나를 가없는 사랑으로 따스하게 품었을 테니까요.


  나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동생한테 물려줍니다. 동생은 어버이와 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동무와 이웃한테 물려줍니다. 동무와 이웃은 저마다 받은 사랑은 둘레에 고이 물려주겠지요.


  사랑이 흐르고 흘러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다 함께 아름답게 깨어납니다. 작은 사랑도 큰 사랑도 따로 없이 모든 사랑은 똑같이 따사로운 바람이 됩니다.



.. “야,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대낮에 도깨비가 다 나와? 총알 맛을 보고 얘길 해.”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대낮에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는 놈을 그냥 둘 줄 아나?” 하고 도깨비는 요술 방망이로 벤치를 탕탕 치며 말했습니다. “총알아, 없어져라!” … 용이는 제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알았습니다. 가지도 않는 고장난 시계를 가지고 그나마 어머니 아버지 몰래 훔쳐 가지고 산타 할아버지하네서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  (98, 133쪽)



  요즈음에는 ‘팔려 가는 송아지’를 보며 눈물에 젖을 만한 어린이는 한국에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요즈음에는 ‘도깨비’를 생각하면서 살가운 놀이동무로 여길 어린이도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요즈음에는 ‘권총왕’이 아니라 ‘핵잠수함’이나 ‘우주선’을 떠올리면서, 어마어마한 전쟁무기를 아주 손쉽게 떠올릴 만합니다. 1911년에 태어나 1981년에 돌아가신 이원수 님이 예전에 쓰신 동화는 오늘날 문화나 문명으로 돌아보자면 아무래도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동화책 《도깨비와 권총왕》에는 어제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다른 숨결’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어린이가 가슴에 품을 사랑을 다루는 동화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짓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돌보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사랑을 보여주는 동화입니다. 지치거나 힘들 때마다 새롭게 일어서는 기운이 되는 사랑을 들려주는 동화입니다. 아프거나 괴로울 적마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 새삼스레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사랑을 밝히는 동화입니다.


  겨울을 씩씩하게 난 씨앗이 봄에 활짝 웃습니다. 겨우내 옹크리던 풀씨가 새봄에 기지개를 켜면서 야무지게 잎을 틔우고 꽃을 터뜨립니다.


  봄꽃 같은 아이들입니다. 겨울에 손과 발이 꽁꽁 얼더라도 눈놀이를 하면서 봄을 부르는 아이들입니다.


  자, 어깨를 펴요. 시험성적이나 학원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끄고 바깥으로 나가요. 봄바람을 쐬고 봄비를 맞아요. 봄뼡을 쬐고 봄꽃내음을 맡아요.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맑은 꿈을 스스로 지어서 사랑스레 일굴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곁에서 든든한 숲이 되어 주기를 빌어요. 봄꽃 같은 아이들 곁에서 봄나무 같은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1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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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을 찾아서 창비아동문고 275
현덕 지음, 김정은 그림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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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94



가슴으로 떠오르는 빛 한 줄기

― 광명을 찾아서

 현덕 글

 김정은 그림

 창비 펴냄, 2013.11.8.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야말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해님은 온누리를 따뜻하게 감쌀 뿐 아니라, 우리 모두한테 고운 숨결을 나누어 줍니다.


  처음에는 새빨갛게 떠오르고, 이내 노오란 빛이 되다가, 어느새 하얀 햇살로 번집니다. 해가 뜬 하늘이 까망에서 보라빛을 지나 하늘하늘 물들다가 파랗게 밝는 모습을 함께 봅니다. 왜 ‘해맑다’라 하며, ‘하얗다’라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 이런 여러 낱말이 ‘해’에서 나왔고, 해가 ‘하양’을 가리키는 줄 또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해를 보면서 하얀 숨결을 가슴에 담았을 테고, 스스로 제 가슴에 하얀 숨결을 담으면서 눈부신 노래를 지었을 테지요.


  누가 시켜서 보는 해가 아닙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스스로 바라보는 해입니다. 스스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거듭나려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거듭나면서 스스로 일구니 기쁜 삶입니다.



.. 아이들은 또 창수에게 은근히 찾아와 타이르듯, 창수 일을 근심해 주는 듯 말했습니다. “어떻게 된 셈이냐? 너 오늘도 안 가지고 왔니? 우리 반이 제일 떨어졌다. 너도 형편이 딱하겠지만 우리도 여간 사정이 딱하지 않다.” 어느 반이 먼저 후원회비를 완납하나 경쟁을 걸어 반마다 성적을 내는 판이었습니다 … 오늘의 자기는 완전히 그들에게서 쫓겨난 몸인 양 외롭고 갈 데 없습니다 ..  (12, 29쪽)



  현덕 님이 쓴 어린이문학 《광명을 찾아서》(창비,2013)를 읽습니다. 이 책은 194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순 해 남짓 지나서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온 셈입니다. 현덕이라는 분이 빚은 어린이문학을 남녘에서 두루 읽은 지 얼마 안 된다고 할 텐데, 이제는 제법 여러 가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현덕 님 문학을 빌어 일제강점기와 해방 둘레에 이 나라 어린이와 푸름이가 겪거나 마주해야 하던 삶을 곰곰이 짚을 수 있습니다.



.. 하루 천 원도 벌 수 있고 만 원도 벌 수 있다던 벌이란 수만이의 말대로 쉽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줄만 알았지, 이렇게 두렵고 누추한 일인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창수는 처음부터 이런 것인 줄 짐작하면서도 좋을 대로 생각하려던 것이 잘못의 시초였을 것입니다 … 당사자 수만이나 곰보는 자기가 한 일이 한 사람을 얼마큼 비참하게 만들었나 하는 것에는 조금도 생각 없이, 어린아이들의 무슨 장난처럼 극히 대수롭지 않게 아는 것입니다 ..  (73, 83쪽)



  1949년에 나온 《광명을 찾아서》에 나오는 아이는 ‘후원회비’ 때문에 크게 시름을 앓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학교에 바쳐야 하니, 가난한 아이는 몹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돈을 바쳐야 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아이들이 슬기로운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학교라면, 돈 때문에 닦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 많이 빨리 내는 다툼’을 붙이는 일이야말로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학교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도 이런 물결에 그대로 휩쓸립니다. 《광명을 찾아서》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서 돈 때문에 괴롭습니다. 동무들도 이 아이를 따스히 보듬을 줄 모릅니다. 그저 ‘다른 학급한테 밀리니 안 된다’고 여깁니다.


  이런 모습은 그저 문학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참말 이러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네 학교는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가르치는 구실을 못 맡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둘레에도, 또 1950년대와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게다가 1980년대에도 ‘돈을 바치는 곳’이 학교였어요. 이런 학교에 아이들이 ‘의무’로 다녀야 했습니다.



.. 언젠가 한 번 이런 찬란한 하늘을 본 성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몇 해 전인가 시골 외갓집에 갔을 때 마당에 멍석 펴고 앉아 쳐다보던 하늘 같았습니다 … “너, 다시는 그런 일 안 한다고 그랬지.” “네, 다시는 그런 일 안 하겠어요.” “그래 다시는 그 일을 안 한다면 그러면 그다음 날부터 뭘 하겠니? 뭘 하고 먹고살겠느냐 말이다.” ..  (116, 162쪽)



  곰곰이 돌아보자면,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합법으로 돈을 거두어 학교와 교사가 이 돈을 빼돌리는 곳’ 구실을 한 셈입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슬기롭게 철이 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돈’에 따라 사람값이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덜 때리거나 안 때린다고 하지만, 고작 열 몇 해나 스무 해 앞서까지 이 나라 학교는 ‘아이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패는 감옥’과 같았습니다.


  돈을 걷고, 때리고, 거친 말을 일삼고,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입시지옥으로 들볶고, 이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잇따르고, 교과서 지식만 외우느라 삶짓기는 하나도 할 줄 모르고, 시험공부만 하면서 사랑은 도무지 모르고, 이러면서 어른들 눈길에서 벗어나 술담배와 살섞기로 노닥거리고, …… 바로 이런 곳이 한국 사회에서 학교라는 곳입니다.



.. “내가 네게 말하려는 새로운 계획이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가진 그 손을 부끄러운 일에 쓰지 않고 뭘 창조하는 일에 쓰게 하자는 것이다. 즉 창조하는 생활을 하게 하자는 것이다 … 너도 이제부터는 매일 저 아침 해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라.” … (187, 190쪽)



  어린이문학 《광명을 찾아서》에 나오는 아이는 혼잣힘으로 이 모든 가시밭길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이겨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떨어져 나가거나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따순 어른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따순 어른이 ‘가녀린 아이’한테 손을 내밉니다. 따순 어른은 가녀린 아이더러 ‘학교를 다시 다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서 시골에 ‘새로운 마을(독재정권이 세운 새마을운동이 아닌)’을 짓자고 말합니다. 스스로 삶을 짓고,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지으면서, 틈틈이 즐거이 배우자고 말합니다. 돈과 시험과 졸업장 따위로 사람 사이에 금을 긋는 무시무시한 제도권학교가 아니라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삶을 가꾸는 배움마당’을 함께 짓자고 말합니다.


  한편, 《광명을 찾아서》를 덮으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1949년에 처음 나옵니다. 아직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찾아서 누리지 못하던 때에 나온 책입니다. 이리하여 ‘빛’이라는 한국말이 아닌 ‘광명’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더욱이, “무슨 일요일 같은 날, 친한 동무와 산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푸른 하늘 아래 광명이 찬란한 가운데서 어두운 생각에 머리를 썩힌다는 것은 얼마나 옳지 못한 일인가(108쪽).” 같은 글월을 보면 ‘산보’라는 일본말이 나옵니다. “푸른 하늘 아래”와 “찬란한 가운데서”는 ‘서양말을 일본사람이 옮겨서 쓰던 말투’, 이른바 ‘번역 말투’입니다. 이 글월에는 “친한 동무”라는 글월도 나옵니다. 이 글월은 어쩐지 말이 안 됩니다. 그냥 한자말로 ‘친구’라 하든지 한국말로 ‘동무’라 하든지 “가까운 동무”나 “좋은 동무”나 “어깨동무”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이 글월은 “무슨 일요일 같은 날, 오랜 동무와 마실을 하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파랗고 햇빛이 눈부신 곳에서 어두운 생각에 머리를 썩힌다니 얼마나 옳지 못한 일인가”쯤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비록 1949년 작품에서는 일본말이나 일본 말투를 털지 못했어도, 조금 손질을 하거나 꼬리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사람 스스로 벗어나거지 못하거나 털지 못한 ‘일본 말’이나 ‘일본 말투’를 어떻게 손질할 만한지 찬찬히 보여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책이름도 “광명을 찾아서”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빛을 찾아서”나 “새빛을 찾아서”나 “꿈빛을 찾아서”처럼 새롭게 붙일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현덕이라는 분이 1940년대가 아닌 2010년대에서 살며 이 책을 새롭게 내놓는다고 한다면, ‘낡은 이름이나 말’은 가볍게 내려놓고 ‘새로운 숨결을 담는 이름이나 말’을 쓰실 테니까요. 그야말로 ‘빛’을 담는 새로운 말을 쓰실 테지요. 4348.4.1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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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야 푸른숲 작은 나무 6
김향이 지음, 김유대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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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93



‘이야기’를 담을 때에 책이다

― 나는 책이야

 김향이 글

 김유대 그림

 푸른숲 펴냄, 2001.8.28.



  김향이 님이 쓴 동화책 《나는 책이야》(푸른숲,2001)를 읽습니다. 《나는 책이야》라고 하는 동화책은, 도서관에서 사람들 손길을 아직 한 번도 못 받은 책이 슬퍼하는 이야기로 첫머리를 엽니다. 아이들은 아무도 이 책을 안 건드렸고, 이 책은 참으로 오랫동안 제 몸을 활짝 펼치지 못한 채 잠들어야 했는데,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이 책을 처음으로 책꽂이에서 끄집어 내어 빌려간다고 합니다.



.. 기가 막혀서! 내 얼굴만 보고, 내 이름만 보고 내가 재미없다니, 말도 안 돼 ..  (11쪽)



  ‘나는 책이야’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끄집어 낸 아주머니는 이녁이 이 책이 읽을 마음이 아닙니다. 이녁 아이한테 읽히려는 마음입니다. 아주머니는 아이한테 책을 안기지 않습니다. 그저 밥상맡에 놓을 뿐입니다. 이러고 나서 텔레비전을 켜서 멀거니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이때에 밥상맡에서 신문을 찾던 아저씨가 신문을 뒤적이려다가 이 책을 알아보았고, 신문읽기나 밥먹기를 잊은 채 이 책을 먼저 펼쳤다고 합니다. 이러자, 이 집 아이가 아버지가 푹 빠진 책에 비로소 눈길을 두면서, ‘그 책은 내가 읽을 책이야’ 하고 말하면서 가져갔다고 해요.


  여러모로 살피면, 이런 모습은 오늘날 흔히 엿볼 만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좀 아리송합니다. 아저씨가 부를 적에 고개도 안 돌리고 텔레비전만 멀거니 들여다보는 아주머니가 책을 얼마나 즐기는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한집에서 서로 말도 안 섞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텔레비전과 신문과 책에서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길어올릴는지 궁금합니다. 한집 사람하고 말도 안 섞고 신문부터 찾으면서 밥을 먹으려 하는 아저씨가 어떻게 책을 알아채고는 신문을 내려놓고 책을 읽는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 나는 아줌마가 좋아. 첫 번째로 나를 데리고 나오기도 했지만, 마치 아기를 안듯 우리를 가슴에 안아 줬기 때문이야 ..  (17쪽)



  ‘이야기’를 담을 때에 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기만 하는 책은 재미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도 이와 같아요. 서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적에 재미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서 떠든다면 재미없습니다.


  이야기는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적에 피어납니다. 한두 사람만 목소리를 외치는 자리에서는 외곬생각이 뻗을 뿐입니다.


  어떤 책이든 이야기를 담기 마련인데, 어떤 책이든 외곬생각을 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사람이 스스로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책은 첫 쪽부터 끝 쪽까지 그저 이야기를 품습니다. 책이 품은 이야기를 가리거나 고르거나 추려서 ‘새로운 이야기’로 짓는 사람이 ‘읽는이’입니다. 읽는이는 제 삶에 비추어 이야기 한 타래를 새롭게 엮습니다.



.. “오늘 저녁 신문 어디 있지?” 아빠가 엄마에게 물었어. “거기 테이블에 있잖아요.”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어. 신문을 찾던 아빠가 나를 집어들고 말했어. “나는 책이야? 이거 하얀이 책이구나.” ..  (29쪽)



  우리는 책을 얼마나 읽어야 할까요? 삶을 아름답게 북돋울 기운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기쁘게 읽어야 할 테지요. 몇 권을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해에 한 권을 읽든, 열해에 한 권을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꼭 도서관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스스로 장만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더라도, 집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이러한 삶은 사람다운 삶이 되기 어렵습니다. 《나는 책이야》에 나오는 ‘하얀이네 집’은 책읽기보다 ‘말섞기’부터 해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집안일만 하는 어머니와 바깥일만 하는 아버지 모습이 ‘오늘날 흔한 모습’일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흔한 모습을 깨고서, 아이들이 새롭게 거듭나도록 이끌 만한 이야기를 이러한 동화책에서 담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른 말 없이 신문부터 찾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을 ‘아주머니’이든 ‘아이’이든 와장창 깰 수 있는 줄거리를 보여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나는 혼자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바람에게 부탁을 했어요. “바람아, 이곳에서 떠나게 해 줘. 아무 데나 좋아. 제발 부탁이야.” … 참 이상한 일이지요. 어린 씨앗들이 내 몸에 뿌리를 내린 다음부터 나는 아픈 줄도 몰랐고요, 내 처지를 슬퍼하지도 않았어요. 그 대신 온몸의 힘을 모아 어린 씨앗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썼어요 ..  (78, 113쪽)



  《나는 책이야》라는 동화책은 이른바 ‘틀에 틀이 있는 얼거리’입니다. ‘이야기 하나에 다른 이야기가 깃든 얼거리’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는 ‘이야기 하나’와 그리 잇닿지 않습니다. 이야기에 깃든 다른 이야기가 ‘바탕 이야기’를 꾸리는 밑힘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 책은 《나는 책이야》인데, ‘나는 책이야’라는 이름이 붙은 책은 ‘책’을 말하지 않아요. 그냥 이런저런 여러 이야기를 뒤섞어 놓았습니다.


  책이름이 ‘나는 책이야’라고 한다면, ‘이야기’를 푸는 실마리나 실타래를 ‘책’으로 엮어서, ‘책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넉넉하고 깊으면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조각맞추기를 할 때에 잘 어울리리라 느낍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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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4-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숲노래 2015-04-08 09:0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 동화 보물창고 5
로이스 로리 지음, 미디 토마스 그림, 이금이.이어진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2



스스로 삶과 생각을 짓는다

―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

 로이스 로리 글

 미디 토마스 그림

 이어진·이금이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07.3.30.



  로이스 로이 님 이야기책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보물창고,2007)를 읽습니다. 미국에서 이 책이 처음 나올 적에는 어떤 이름이었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구니 버드 그린’입니다. 미국에서 나온 책에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말은 안 붙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에 나오는 ‘구니 버드 그린’이라고 하는 아이는 동무들한테 ‘이야기 들려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머리로 지은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겪은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스스로 즐거우며,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삶을 즐깁니다.


  책이름을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로 붙이면, 이 책에서는 구니 버드라는 아이가 ‘놀라운 이야기꾼’이라는 대목에 머뭅니다. 책이름을 수수하게 ‘구니 버드 그린’이라고 붙이면, 이 책에서는 구니 버드 그린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지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아이’라는 흐름으로 나아갑니다.



.. “좋아요, 마침 오늘 사전을 가져왔거든요. 제 자리는 어딘가요?” 잠옷 차림의 아이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선생님이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온 전학생이에요. 이름은 구니 버드 그린이고요, 차이나에서 막 이사 왔어요. 저는 교실 한가운데 자리에 앉고 싶어요. 주목받는 걸 좋아하거든요.” ..  (9쪽)



  이야기책 얼거리를 살피면, 구니 버드 그린을 맡은 학교 선생님은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수업 사이사이에 합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제 이야기를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합니다. 다른 데에서 본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이 저마다 새롭게 겪은 삶을 여러 동무 앞에서 씩씩하게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요.


  구니 버드 그린이라는 아이는 이 선생님하고 죽이 잘 맞습니다. 구니 버드 그린은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선생님도 이 아이 이야기를 즐겁게 듣습니다. 담임 교사는 학교에서 주어지는 다른 수업도 알뜰살뜰 챙기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야 할 대목’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을 줄 압니다.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수업 진도를 나가야 할까요? 교과서 지식을 잘 알려주어서 시험성적이 잘 나오도록 해야 할까요?



.. “여러분, 자꾸 방해하면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없어요. 조금 있다가 질문 시간을 줄 테니까, 할 말이 있으면 그때 손을 들고 하세요. 여러분이 자꾸 떠드니까 집중이 잘 안 되잖아요.” 구니 버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요, 아니면 듣기 싫은가요?” 구니 버드가 한숨을 쉬었다 ..  (38∼39, 57쪽)



  학교가 맡은 몫은 ‘성적 향상’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발표 잘하기’를 이끌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저마다 싱그러운 숨결로 씩씩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도록 이끄는 몫을 맡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 시험성적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씩씩하게 서서 제 꿈을 기쁘게 짓도록 돕는 몫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100점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외워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꿈을 지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빠짐없이 다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손수 삶을 짓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야기책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는 바로 이 대목을 찬찬히 건드립니다. 그저 ‘이야기 잘 하는 아이’가 나오는 동화책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찾고, 내 생각을 스스로 가꾸며, 내 이야기를 스스로 들려줄 수 있는 철’이 드는 아이를 보여주는 동화책입니다.



.. “그동안 지각에 대한 재미있는 별별 변명을 모두 들어 봤지만 네가 말한 변명은 처음이구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햇다.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구니 버드가 말했다 … 선생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공부하는 것보다 구니 버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재미있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요. 내일 구니 버드가 또다른 이야기를 해 줄 거예요.” 자리에 앉아서 수학책을 꺼내던 구니 버드가 깜짝 놀라 선생님을 쳐다봤다. “아니요, 이제 없어요. 이건 제 마지막 이야기였어요.” 구니 버드가 말했다. 모두 “안 돼!” 하고 슬픈 목소리로 외쳤다 ..  (79, 109쪽)



  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 온 첫날, 잠옷 차림입니다. 이때에 담임 교사는 잠옷 차림을 나무라지 않고, 이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담임 교사가 그저 ‘아이만 바라보’니까, 같은 반 동무들도 구니 버드 그린이라는 아이를 겉모습이나 겉차림이 아닌 마음결과 생각날개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담임 교사가 구니 버드 그린 옷차림을 놓고 한 마디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끔찍하겠지요.


  삶에서 대수롭게 살필 대목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이야기에서 대수롭게 들여다볼 대목은 ‘글치레’나 ‘말치레’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을 읽어야 하고 꿈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꾸어야 하고 꿈을 북돋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나아갈 때에 아름답고, 꿈으로 한발 내딛을 적에 즐겁습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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