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음 - 개정판 카르페디엠 6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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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2



가시내도 사내도 모두 따뜻한 마음인걸

― 소녀의 마음

 하이타니 겐지로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2004.1.30.



  사랑받는 아이는 언제나 따사로운 마음이 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면 언제나 주눅드는 마음이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간다면, 몸을 얻어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짝을 지은 어버이가 있기 때문이요, 열 달 동안 몸속에 고이 품으며 나를 돌본 어머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낳은 어버이한테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어버이한테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른 수많은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늘 입는 옷과 기쁘게 잠드는 집을 일군 수많은 이웃이 있습니다. 버스를 모는 일꾼이 있고, 책을 쓴 어른이 있으며, 영화를 빚거나 만화를 그린 누군가가 있습니다. 공장에서 연필을 깎은 일꾼이 있으며,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꾼이 있어요.


  여기에 숲과 바다와 하늘이 있습니다. 숲에서 수많은 나무가 우리한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바다에서 너른 품을 베풉니다. 하늘은 파랗게 물든 바람을 베풉니다.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고운 노래를 베풉니다. 온누리를 가득 채우는 가없는 별이 밤마다 반짝반짝 빛납니다. 이 모두를 찬찬히 느끼든 못 느끼든, 이 모든 숨결과 넋과 바람이 우리를 둘러싸면서 흐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모든 이웃한테서 사랑받는 목숨입니다.



.. “자기들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그저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둥 반항기라서 그렇다는 둥 쉽게 말해 버리잖아. 그러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겠지.” … “가스리도 그런 선생님을 만난 경험이 있나 보지?” “있고말고요.” 잘난 척하며 가스리가 대답하자, 미네코가 말했다. “그런 말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애도 똑같이 둔해.” 순간, 가스리는 발끈해서 곧바로 되받았다. “그런 말로 자기 자식을 탓하는 부모도 둔해.” ..  (10, 21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청소년문학 《소녀의 마음》(양철북,2004)을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녀’는 열여섯 살입니다. 열여섯 살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집니다. 어머니는 새로운 사내를 맞아들여서 딸아이와 함께 삽니다. 아버지는 홀로 판화를 새기는 일을 하면서 삽니다. 어머니가 새로 맞아들인 사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집을 떠납니다. 열여섯 살 아이는 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혼자 사는 아버지한테 생긴 새로운 짝을 한 번 만나는데, 아버지는 다시 혼인을 할 뜻이 없습니다. 아니, 다시 혼인을 하더라도 아이를 더 낳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새롭게 생긴 짝을 떠나 보내고, 다시금 홀로 조용히 판화를 새기면서 삽니다. 이동안 ‘소녀’는 한 살을 더 먹고, 또 한 살을 더 먹습니다.



..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애쓰는 건 괜찮지만, 무조건 학교에 보내려고만 하니까 엣짱은 껍데기 속에 웅크린 달팽이가 되어 버렸어.” … “아이를 물질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고생시킨 적은 없고?” “당연하지.” “아주 상식적인 사람들이겠지?” “물론이야.” “이혼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들?” “아마도.” 가스리와 키쿠코는 얼굴을 마주보고 후후후 웃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행복이라고 말하겠지?” “그렇겠지.” …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런데 평소랑 조금 다른 걸 가지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엄만 좋겠어?” ..  (38, 39, 64쪽)



  《소녀의 마음》에 나오는 아이는 ‘어머니 집’에서 살지만 틈틈이 ‘아버지 집’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어머니 집에서 어머니와 늘 툭탁거리면서 마음이 다치면,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친 마음을 풉’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라진 뒤 아이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집은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라지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살도록 이끌려는 마음이라면, 아이는 ‘기쁜 사랑’을 생각하고 찾으면서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기쁜 사랑으로 자라고, 어버이도 기쁜 사랑으로 살림을 꾸리는 길은 ‘이혼은 죽어도 안 해야 하는 집’이 아닙니다. 어버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들한테 돈 걱정을 안 시킨대서 아이가 기쁘지 않아요. 어버이가 언제나 맛난 밥을 잔치처럼 차려 준대서 아이가 기쁘지 않아요. 아이가 눈부시게 고운 옷을 늘 입고 다닐 수 있대서 아이가 기쁘지 않아요.


  겉모습이나 겉차림 때문에 기쁠 아이는 없습니다. 어른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겉을 아무리 잘 꾸민다고 해서 기쁠까요? 말끔한 옷과 번듯한 자가용을 남 앞에서 뽐내야 삶이 기쁠까요?



.. “오해하지는 마. 엄마, 엄마가 누굴 사귀든 그건 엄마 자유고, 그것 때문에 내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내가 이상한 거지. 다만 내가 조금 기분이 나쁜 건, 엄마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거야.” … “뭐 어때서?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시집을 가든, 난 아빠랑 손 꼭 잡고 다닐 거야. 그러니까 아빠, 너무 싫어하지 마.” … “난 아빠 닮을래.” “그러지 마.” 사내가 힘주어 말했다. “가스리는 아빠를 닮지도 않았고, 엄마를 닮지도 않았어. 가스리는 가스리야.” ..  (67, 77, 110쪽)



  라면 한 그릇을 끓여서 한두 젓가락씩 나누어 먹더라도 깔깔 하하 호호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참말 놀라운 잔치밥을 차려서 먹더라도 아무 말을 않고 쥐죽은듯이 조용히 밥만 삼킬 수 있습니다. 콩 한 알을 두 쪽으로 갈라서 먹으면서도 배가 부를 수 있습니다. 수박 한 덩이를 혼자 먹으면서도 어쩐지 허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 마음이란 아이와 같은 눈길로 이곳에 서면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어른은 처음에 아이였으니, 오늘 이곳에서 ‘나는 어른이야’ 하는 생각으로만 선다면, 아이하고는 도무지 말을 섞을 수 없습니다. 모든 어른도 처음에 아이인 줄 슬기롭게 깨달으면서, 오늘 이곳에서 ‘너도 나도 똑같은 아이야’ 하는 마음으로 눈길과 넋을 고요히 맞출 수 있으면, 아이가 오롯이 품은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 “우에노,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어. 세상 어느 누구도.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는 한 누구한테든 사랑받고 있어.” … “인간이란 원래 갈팡질팡하는 존재지만, 한 번 결정한 것을 쉽게 번복하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안타깝게 비치지 않을까? 그러니까 너는 그 모습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거겠지.” … “아무리 남한테 신세를 져도 주눅 들 필요는 없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야. 신세도 갚고 인생도 즐기며 살면 천당에 간답니다.” ..  (133, 195, 200쪽)



  《소녀의 마음》에 나오는 아이는 ‘할 말을 숨기는 사람’을 달가이 여기지 않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채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제 어머니라 하더라도 속마음을 숨긴 채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 영 못마땅합니다. 아이는 사람들이 왜 속마음을 자꾸 꽁꽁 감추려고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직 아이라서 이를 모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이 눈길로 바라보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우뚝 서는 마음길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서로 속내를 숨겨야 할 까닭은 딱히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사이입니다. 기쁨만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습니다. 슬픔은 꽁꽁 가두어야 하지 않습니다. 생채기나 아픔을 홀로 삭인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줄어들거나 아물지 않습니다.


  《소녀의 마음》에 나오는 아이는 바로 이 대목을 바랍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스스럼없이 털어서 나누기를 바랍니다. 아버지하고 헤어진 어머니가 ‘새 남자친구’를 사귀든 ‘새 애인’을 만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머니 삶’이라고 여기니까요. 그런데, 이를 꽁꽁 숨기거나 감추려고 하면 답답합니다.



.. 가스리가 조그맣게 말했다. “부모가 이혼한 것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받는 건 싫어.” 사내가 말했다. “그것은 네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 … “너희 아버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무서워 보이지만, 일단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지?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거든.” 가스리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번졌다. “가난해서 무척 힘든 시절이었을 텐데도 그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아빠가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몰라.” ..  (226, 241쪽)



  즐겁게 살려고 할 적에 즐거운 삶입니다. 사랑스레 살려고 할 적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서 살려고 하면 돈을 많이 벌면서 꾸리는 삶입니다. 노래하며 살려고 하면 노래가 흐르는 삶이요, 꿈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 언제나 꿈으로 가득한 하루가 흐르는 삶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스러운 삶을 물려주는 넋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스러운 삶을 물려받는 숨결입니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기쁜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는 넋입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씩씩하게 자라면서 집일을 돕고 집살림을 거들다가 어느새 홀로서기를 배우는 숨결입니다.


  가시내도 사내도 모두 따뜻한 마음일 때에 사랑입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만날 적에 사랑입니다. 청소년문학 《소녀의 마음》은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나이로 흐르는 아이 목소리를 빌어서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짓는 마음’이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고 뿌리를 내리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어느 대학교에 붙을까 하는 근심이나 걱정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서는 길을 돌아보는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땅에 태어나 어버이와 하루를 누리는 아이라면, 어버이하고 마음을 여는 이야기꽃으로 기쁘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5.2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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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돌이 쳇 -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노 가즈요시 외 그림, 박경희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9



맑은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이더라도

― 쥐돌이 쳇

 미야자와 겐지 글

 이노 가즈요시·스카사 오사무 그림

 박경희 옮김

 작은책방 펴냄, 2003.11.6.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맑고 싱그럽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착하고 보드라운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착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될는지 안 될는지 궁금합니다.



.. “무슨 소리야? 난 자네를 속이지 않았어. 분명히 별사탕이 있었단 말야.” “예, 있긴 있었지요. 하지만! 벌써 개미들이 와 있었다고요.” “뭐, 개미가? 그랬나. 정말 잽싼 놈들이로구먼.” “개미가 다 가져가 버렸다고요. 나같이 약한 쥐를 속이다니 물어줘요, 물어줘.” … 고양이 대장은 크게 웃으며, “아하하, 선생도 돼먹지 못하고, 학생도 나쁘군. 선생은 언제나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고, 학생은 배울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하고 말했답니다 ..  (11, 37쪽)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어린이문학 《쥐돌이 쳇》(작은책방,2003)을 읽습니다. 작은책방 출판사에서는 모두 여섯 권으로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을 선보였고, 《쥐돌이 쳇》은 여섯 권 가운데 첫째 권입니다. 첫째 책에는 〈쥐돌이 쳇〉과 〈새 상자 선생님과 쥐돌이 후유〉와 〈쥐돌이 흥〉과 〈도토리와 살쾡이〉 같은 네 가지 이야기가 담깁니다. 여러모로 ‘쥐돌이’가 많이 나오는 《쥐돌이 쳇》입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하나같이 살짝 어리석거나 어리숙합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살필 줄 모르고, 제 앞가림에 바쁩니다. 제 삶을 살뜰히 가꾸는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쥐 눈치를 살살 보면서 겉치레를 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 테 의원은 아주 어려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신이 대견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쥐돌이 흥은 그것이 너무도 아니꼬워서, “에헴, 에헴!” 하고 상대편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지만 가능한 한 높은 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 “이놈은 사회 분열을 꾀하는 놈이야! 분열 분자라고! 체포해라, 어서 체포해!”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쥐는 마치 돌팔매질을 하듯이 흥에게 덤벼들어 쥐돌이 오랏줄로 칭친 묶어 버렸습니다 ..  (48, 50쪽)



  쥐돌이는 왜 하나같이 으스댈까요. 쥐돌이는 왜 저마다 우쭐거리면서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릴까요. 쥐돌이는 왜 다른 쥐는 낮은 데에 두고 저는 높은 데에 두려 할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은 쥐돌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사람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나고 자란 일본에서 늘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사람살이를 바로 쥐돌이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보여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정치권력을 쥔 쪽에서 본다면,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살던 무렵(1896∼1933)은 일본이 군대힘을 키워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던 때입니다. 곳곳에서 제국주의 물결이 넘쳤고, 사람들인 정치권력이나 군대힘에 억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가면서도 숨을 죽였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총알이나 탱크나 군인옷 따위를 만들면서도 소리를 죽였습니다.



.. 쥐돌이 흥은 새끼 고양이들이 너무나도 영리했기 때문에 부아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쥐돌이 흥이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을 외우는 데 반 년이나 걸렸기 때문입니다 … 고양이 대장에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뭣 좀 배웠니?” 그러자 네 마리 새끼 고양이가 일제히 대답했답니다. “예, 쥐 잡는 법을 배웠어요.” ..  (58, 59쪽)



  쥐돌이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어도 새끼 고양이보다 어리숙합니다. 《쥐돌이 쳇》에 나오는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가 아주 어릴 적에 손쉽게 깨우치거나 알아차린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깨우치거나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쥐돌이는 새끼 고양이를 시샘하고, 괜히 거드름을 피우고 싶습니다. 새끼 고양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대목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고양이 앞에 놓인 쥐이면서도 고양이한테 거드름을 피우는 쥐돌이입니다. 아무리 새끼인 고양이라 하더라도 쥐 한 마리쯤 잡아먹기는 쉬울 텐데, 쥐돌이는 무서운 줄 모릅니다. 아니, 너무 무서운 나머지 무서움을 잊은 셈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양이한테 잡아먹히겠구나 하고 무서워하기보다는, 새끼 고양이한테조차 거드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겠지요.


  쥐돌이 가운데 ‘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 새끼 고양이 사이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쥐돌이 흥은 어떻게 될까요? 거드름을 피우는 쥐 한 마리를 바라보는 새끼 고양이는 무엇을 할까요?



.. 시원한 바람이 쏴아쏴아 불자 밤나무가 후드득후드득 알밤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치로는 밤나무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밤나무야, 밤나무야. 살쾡이가 여길 지나가지 않았니?” 밤나무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살쾡이는 오늘 아침 일찍 마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갔어.” 하고 대답했습니다 … “오늘 사례 말입니다, 황금 도토리 한 되와 소금에 절인 연어 머리 가운데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황금 도토리가 좋겠군요.” 살쾡이는 연어 머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듯 빠른 말투로 마부에게 명령했습니다. “도토리를 한 되 가지고 오너라. 한 되가 안 되거든 도금한 도토리라도 섞어서 가지고 와, 얼른!” ..  (63, 82쪽)



  《쥐돌이 쳇》은 〈도토리와 살쾡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나옵니다. 숲속 재판에 어린이가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음이 맑은 어린이는 숲속 재판에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착한 말씨로 골칫거리를 손쉽게 풀어 줍니다. 이리 재거나 저리 따지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슬기로운 생각을 펼쳐 보여요.


  가만히 돌아보면, 모든 어린이는 어른이 됩니다. 모든 어른은 어린이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어린이가 마음이 맑다면, 모든 어른도 어릴 적에 누구나 마음이 맑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그리 안 맑은 마음으로 사는 어른이 있더라도, 이녁은 예전에 맑고 밝으며 착한 마음씨로 환하게 웃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안 맑은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마음이 흐리멍덩한 어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무리 마음이 어지러워지거나 흐리멍덩해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이제부터 밝은 숨결이 되고 포근한 사랑이 되면 즐겁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은 수수하고 투박한 이야기를 지어서 이 같은 생각을 찬찬히 밝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도 맑고 어른도 맑으니, 사람들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답게 살기를 바랐지 싶어요. 《쥐돌이 쳇》에 나오는 모든 쥐돌이 같은 어리석은 일본사람이 바보스러움을 하루 빨리 깨닫고 착하며 참된 넋으로 거듭나기를 바랐지 싶습니다. 이 동화책을 읽는 우리는 우리대로 슬기롭고 착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지을 때에 하루가 즐겁겠지요.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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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와가 여기 있었다 한림 고학년문고 11
닐 슈스터만 지음, 고수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8



바로 이곳에서 함께 어깨동무

― 슈와가 여기 있었다

 닐 슈스터만 글

 고수미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9.2.11.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어도 나무를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곳을 지나가면서도 개구리 노랫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 곳에 있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조차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싱그러이 바람이 불지만 바람맛이 어떠한가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있으나 바라보지 못한다면, 있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마음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두 눈으로 마주보지 않을 때에는 서로 아무것도 아닌 셈이리라 느낍니다.



.. 우리는 일제히 채찍 끝처럼 휙 고개를 돌렸다. 슈와가 거기 있었다. 우리 집 뒷마당 울타리에 몸을 기댄 채!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서 벙어리처럼 말문이 막혔다.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 나는 그 나무 같아. 내가 방에 서 있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면, 나는 거기에 아예 없었던 것과 같아. 가끔 나조차 내가 거기에 있기는 했는지 궁금해.” … “그런데, 슈와, 네 어머니한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슈와의 몸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 몸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정말로 그런 느낌이 왔다. … “내가 다섯 살 때 사라졌어.” 그러고는 덧붙였다. “다시는 묻지 마, 알았어?” ..  (35, 54∼55쪽)



  닐 슈스터만 님이 쓴 청소년문학 《슈와가 여기 있었다》(한림출판사,2009)를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슈와’라고 하는 아이는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에서 거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이 아이를 알아차리는 동무가 거의 없고, 교사도 마을 어른도 이 아이를 못 알아차리기 일쑤입니다. 아이 아버지조차 아이를 잊습니다.


  틀림없이 바로 이곳에 있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이 아이는 ‘없는 아이’일까요? 바로 옆에 있으나 옆에 있다고 알아차리려는 눈길이 없다면 이 아이는 ‘없는 아이’일까요?



.. “그러면 선생님이 네 성적표 만드는 걸 잊어버려서 못 받으면 넌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는지 말해 봐. 버스 운전사가 정류장에 서 있는 너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가 버릴 때는? 아버지가 네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혼자 먹을 것만 준비할 때는?” … 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취급 당해 왔다고 해서, 슈와가 그걸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엄마의 도자기 냄비에서 소고기 스튜가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슈와의 눈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 나는 들키지 않고 부엌에 들어갔다 나올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보여줄 권리가 있었다 ..  (85, 106, 147쪽)



  사회에서 따돌림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푸대접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왜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아야 할까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있어도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돈이 없기에 ‘없는 사람’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이름이나 힘이 없기에 ‘없는 사람’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지난날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없는 사람’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어야 한 사람들은 이름도 자국도 남지 않습니다. 궁궐 둘레에 성을 쌓거나 궁궐을 지은 수많은 사람들은 이름도 자국도 남지 않습니다.


  역사책에는 임금님 이름이라든지 몇몇 신하 이름이 남습니다. 사내들은 족보에 제 이름을 남깁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먹고살도록 곡식을 바친 시골사람 이름은 역사책에 없지요. 임금님이 걸친 옷을 지어서 바친 사람들 이름도 역사책에 없지요. 이름난 신하나 지식인이나 양반을 낳은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통령 이름 말고, 참말 이 나라를 버티고 살찌우며 일으킨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 곁에는 누가 있고, 우리 둘레에는 누가 있어야 할까요? 우리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사람은 누구이며, 우리와 함께 사랑을 속삭일 사람은 누구일까요?



.. 렉시가 말했다. “밴드가 맘에 들어. 소리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거든. 연주자 일곱 명의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어.” 나는 밴드를 떠올려 보았다. 30분 넘게 밴드의 연주를 보았는데도, 밴드가 모두 자리를 떠 버리자 연주자가 몇 명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놀라워! 넌 독심술가 같아. 마음으로 못 보는 게 없네.” … 렉시가 말했다. “보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서 빤히 보이지 않으면 못 보니까.” … “너, 사람들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사는구나?” 렉시가 씩 웃었다. “시각장애인을 몰라보는 사람들한테만 그래.” ..  (138, 170, 175쪽)



  《슈와가 여기 있었다》에 나오는 슈와는 몹시 외롭습니다. 슈와랑 동무로 지내려고 하는 ‘나’도 몹시 외롭습니다. 슈와는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그림자처럼 숨어서 지냅니다. ‘나’는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그림자가 안 되려고 합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나’는 발버둥을 칩니다. 그리고, 슈와도 발버둥을 칩니다. 바로 ‘슈와가 여기 있다’고 외치고, 나도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칩니다.


  나를 보라고 서로 외칩니다. 내가 여기에 있는 모습을 보라고 힘껏 외칩니다.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라면서 눈물겹게 외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이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 슈와라는 아이가 있고, 수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외로운 아이가 하나 있고, 쓸쓸하며 지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 “바구니가 몇 개 더 있으면 되잖아요. 나눠 담으세요.” 그제야 나는 엄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엄마가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일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달걀을 나눠 담으려고 말이다. 엄마는 엄마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랬다면 어떻게든 사라져 버릴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슈와의 어머니처럼 갑자기는 아니지만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  (216쪽)



  아이가 어버이를 부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며 부릅니다. 아이가 또 어버이를 부릅니다. 똥이 마렵다고 부릅니다. 아이가 다시 어버이를 부릅니다. 재미있게 놀아 달라고 부릅니다. 아이가 거듭 어버이를 부릅니다. 졸리니 재워 달라고 부릅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부를 적마다 달려갑니다. 배가 고픈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똥이 마려운 아이가 똥을 누도록 옆에서 지켜봅니다. 놀고 싶은 아이와 함께 놀고, 졸린 아이를 토닥토닥 재웁니다.


  우리는 함께 삽니다. 기쁨과 웃음과 노래와 눈물을 함께 나누는 삶지기로서 이 보금자리에서 함께 삽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삽니다. 사랑과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함께 삽니다.


  네가 여기에 있고, 나도 여기에 있어요. 내가 여기에 있으며, 너도 여기에 있지요. 그래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웃으면서 걷습니다. 노래하면서 달립니다. 여기에 함께 있기에 반가운 동무요, 여기에서 함께 웃기에 가슴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곁님입니다.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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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 아나스타샤 1, 미국동화 산하세계어린이 1
로이스 로우리 지음, 최덕식 옮김, 신혜원 그림 / 산하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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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100



가슴에 담은 말을 들려준다

―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로이스 로우리 글

 최덕식 옮김

 신혜원 그림

 산하 펴냄, 1992.10.25.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는 사람은 ‘사람 말’로 개나 고양이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때에 개나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나 고양이가 들려주는 ‘개 말’이나 ‘고양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한마음이 되면 ‘쓰는 말’이 달라도 마음으로 알아듣고, 서로 한넋이 되면 ‘마음으로 나누는 말’로 넉넉하게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사람들은 ‘사람 말’을 나누는 데에도 서로 무슨 뜻을 가슴에 품는지 못 알아채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입으로 말을 하고 손으로 글을 쓰는데, 정작 서로 어떤 마음이요 생각이며 꿈인가를 못 읽거나 안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오래도록 말을 나누었는데, 저마다 어떤 사랑이요 숨결이며 넋인가를 못 읽거나 안 헤아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 말’을 쓰지 않고 나무와 풀과 꽃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떤 사람은 ‘새 말’을 쓰면서 새와 속삭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꼭 말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서로 말을 나누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일까요.



.. 아나스타샤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은 네 번째 시집입니다. 대머리에 수염을 기른, 사진 속의 아저씨는 아나스타샤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지금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버지가 읽어 주는 시는 모두 다 부드러운 여운을 갖고 있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습니다 … 마치 물 위로 꽃잎이 떠오르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를 빨리 써 보고 싶어서, 아나스타샤는 집까지 단숨에 뛰어갔습니다 ..  (19, 25쪽)



  로이스 로이(로이스 로우리) 님이 쓴 어린이문학 가운데 일곱 권으로 나온 ‘아나스타샤’ 이야기 가운데 첫째 권인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산하,1992)를 읽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나스타샤’라는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입니다. 이 아이는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를 둡니다. 아이 아버지는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습니다. 많이 늙어서 요양원에서 지내는 할머니가 있으며, 곧 동생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좋아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아버지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이도 시를 마음으로 아끼면서 즐기려고 합니다. 멋지거나 잘난 시를 쓸 마음이 없는 아이요, 어떤 틀에 맞추거나 어떤 주제를 드러내 보이려는 시를 쓸 마음이 없는 아이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서 노래 한 가락이 흐르는 결을 붙잡고는, 이 마음노래를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서 활짝 웃는 아이입니다.



..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소리나게 읊어 보고는 책상 맨 윗서랍에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녹색 노트를 꺼내 2페이지를 펼쳤어요. ‘열 살 때 일어난 중대 사건’의 목록 세 번째에 ‘훌륭한 시를 썼다’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 “아나스타샤, 우리 주위에는 시를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단다.”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다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야.” 어머니가 성급하게 끼어들었어요. “바보일 뿐이죠?” 아나스타샤가 말했습니다 ..  (28, 40쪽)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를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아이들한테 ‘시’가 아닌 ‘틀에 박힌 문학’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 이러하지는 않겠지요. 아무튼, 아나스타샤는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버지’하고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가 가슴이 찡하다고 느낄 만한 시를 썼는데, 이 아이가 쓴 시를 학교에서는 ‘운율도 안 맞고 주제도 없는 바보 같은 시’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나스타샤 담임교사는 이 아이한테 낙제점을 주었다지요. 그렇다고,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사람이 ‘시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나스타샤를 돌보는 어버이는 어버이로서가 아니라 ‘시를 즐기려는 사람’으로서 이녁 아이가 쓴 시를 맞아들이려 했고, 학교에서는 교과서 수업진도에 따라서 ‘주어진 틀에 맞추고, 주어진 주제에 맞추는 글을 만들도록’ 시켰을 뿐입니다.


  글잣수를 맞추어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글잣수를 꼭 맞추어야 시가 되지 않습니다. 비유법이니 은유법이니 같은 수사법을 빌어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말솜씨를 뽐내야 시가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시입니다. 이야기를 담아야 글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삶이고 노래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랑이 피어나고, 이야기를 꽃으로 피우려고 꿈을 가슴에 품습니다.



.. “작은 죄도 저지르지 않았어.” “거짓말, 지난주에 메리 엘렌 베일리가 점심 도시락으로 가져온 케이크를 훔쳐먹었다고 했잖아?” “그것도 죄가 되니?” “그럼.” “천주교 신자는 케이크 같은 하찮은 것도 고백해야 하니?” … 새의 발처럼 생긴 기분 나쁜 할머니의 손이 뻗쳐 와서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몹시 부드럽고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손을 보지만 않으면 할머니의 손길은 더할 수 없이 흐뭇한 기분에 빠지게 하거든요 ..  (68, 104쪽)



  학교는 아이들한테 시험점수를 잘 받도록 이끄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주어진 틀에 잘 따르도록’ 길들이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성적표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어른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꿈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곳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몸과 마음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북돋우도록 이끄는 곳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책도 즐기고 이야기고 누리며 사랑과 꿈을 곱게 펼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려 한다면 어떤 시를 가르칠 때에 ‘학교다운 가르침’이 될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름난 시인이 쓴 작품을 보기로 들면서 ‘이름난 시인이 쓴 대로 틀을 맞추어서 쓰면 아름다운 시나 사랑스러운 시’가 되지는 않겠지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흉내내듯이 쓰는 글로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을 일으킬 수 없겠지요.


  한 반에 스무 아이가 있으면 스무 아이가 모두 다른 마음으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가르침이 된다고 느낍니다. 한 반에 쉰 아이가 있으면 쉰 아이가 모두 다른 생각을 길어올려서 저마다 다른 삶을 노래할 수 있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가르침이라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 “남자들은 울지 않아요?” “그래, 좀처럼 울지 않지.” “하지만 아빠는 가끔 울어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우는걸요.” “그래, 그래서 난 아빠와 결혼한 거야.” …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분명히 하늘을 바라보며 수많은 별들을 구경하고 계셨을 거예요. 아마 빙그레 웃고 계셨을 거예요.” … 아나스타샤는 아기 속옷을 하나 꺼내서 펴 보았어요. 맙소사, 이렇게 작은 아기가 이 세상에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134, 169, 175쪽)



  아이들은 자랍니다. 아이들은 생각을 살찌우면서 자랍니다. 어른들도 자랍니다. 어른들도 마음을 가꾸면서 자랍니다. 날마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랍니다. 언제나 생각이 자라고 사랑이 자랍니다.


  다만, 몸이든 마음이든 남이 나를 자라게 하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자라도록 나를 아끼고 보살핍니다. 어린이책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고 싶어서 가슴에 꿈을 담습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가슴에 담을 말’을 가만히 그립니다. 어느 때에 말을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어느 때에 어떤 말로 생각을 가꾸면 즐겁고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머잖아 스스로 제 길을 찾으리라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어른도 찬찬히 스스로 제 삶을 맑게 빛내리라 느낍니다. 4348.5.6.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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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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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6



함께 먹을 때에 맛나고 달다

―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글

 정지현 옮김

 낭기열라 펴냄, 2006.2.10.



  어제 낮에 아이들과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살짝 가게에 들러서, 과자 한 봉지씩 골라도 된다고 말하니, 두 아이 모두 초콜릿을 집습니다. 배가 고프다면서 초콜릿을 고릅니다. 초콜릿 값을 셈하고 나오면서 이제 군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우리가 탈 버스가 그만 코앞에서 부웅 하고 떠납니다. 시골에서는 손님이 적어 버스마다 자리가 널널하기 마련인데, 오늘 따라 군내버스가 읍내 버스역에서 일찍 떠납니다. 앞으로 한 시간 남짓 다른 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허허 웃다가 읍내 버스역 걸상에 아이들을 앉힙니다. 걸상에 앉아서 초콜릿을 뜯어서 먹으라고 얘기합니다. 초콜릿을 저마다 하나씩 쥐고 서로 나누어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내 어릴 적을 되새깁니다. 나도 어머니하고 저자마실을 나와서 ‘과자 하나 골라 봐’ 하는 말을 들으면 으레 초콜릿을 집었다고 느낍니다. 과자 한 봉지보다 값이 센 초콜릿은 여느 때에는 엄두를 못 내지만, 이렇게 ‘마음껏 고르라’는 말을 들으면 거침없이 손을 뻗습니다. 야금야금 먹으면서 몇 조각을 어머니한테 건네면, 어머니는 으레 ‘안 먹어, 너 다 먹어.’ 하고 말씀합니다. 나는 어머니한테서 배운 대로 우리 아이들이 초콜릿을 몇 조각 떼어 작은 손으로 내밀면 ‘응, 고마워. 너희 먹어.’ 하고 말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내밀면서 ‘아버지도 먹어야지요.’ 하고 말하면 그야말로 기쁘게 받아서 입에 넣습니다.



.. 저런 행위로 자기들끼리의 애정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그게 남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모르는 것일까 …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까? 나를 두고 뭐라 하고 있을까? 어린 여자애가 어쩌면 저렇게 뚱뚱하냐며 비웃고 있을까?’ … 왜 이렇게 괴로운 거지? 사실은 즐거워야 하잖아. 미헬과 사귀게 되었고, 내 옆에 프란치스카가 있으니까.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지? 벌써 오래전에 다른 것이 찾아왔는데, 왜 잊지를 못하는 걸까 ..  (12, 14, 67쪽)



  조그마한 과자 한 조각이라 하더라도 네 사람이 다시 넷으로 나누어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를 먹을 때가 있습니다. 과자 한 조각이 뱃속에 들어간다는 느낌조차 없을 만합니다. 그런데, 혼자 과자 한 조각을 먹으면 ‘아쉽구나’ 하고 느끼지만, 여럿이 아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먹으면 ‘즐겁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주 조그마한 조각이 뱃속에서 새로운 기운을 길어올립니다. 뱃속은 허전할는지 몰라도 마음은 넉넉하기에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웃음노래를 부릅니다.


  물 한 모금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마실 수 있습니다. 돈 한 푼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밥 한 술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할 만한 일이란 없습니다. 나눌 수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사랑도 나누고 꿈도 나누며 이야기도 나눕니다. 삶도 나누고 노래도 나누며 웃음도 나누어요. 그러니까, 함께 나눌 때에 더욱 기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을 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어깨동무를 할 때에 그야말로 기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을 때에는 어깨동무나 두레는 없이 쓸쓸하거나 썰렁하거나 고단합니다.



.. “젠장.” 에바는 수영용품을 챙겨 들고서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에바는 문을 쾅 히거 닫는 걸 좋아했다. 그건 에바가 화났을 때 유일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밖에 또 뭘 할 수 있을까? 소리라도 지를까 … 왜 아빠는 이따금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하게 행동하는 것인지 에바는 이해할 수 없었다 … 비곗살에 파묻혀 에바는 가려졌다. 지방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 가볍게 살아가는 에바, 사랑스런 모습이어야 할 에바, 진짜 에바, 참된 에바가 말이다 ..  (26, 34, 147쪽)



  미리암 프레슬러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씁쓸한 초콜릿》(낭기열라,2006)을 읽습니다. 《씁쓸한 초콜릿》은 초콜릿을 다루는 이야기책은 아닙니다. ‘에바’라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책이고, 에바라는 아이는 제법 통통한 몸집인 듯합니다. 어쩌면 살이 퍽 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가 ‘먹기’를 좋아하거나 즐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어요. 아 아이는 모든 짜증과 골과 힘겨움과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먹기’로 풉니다.



.. 베르톨트가 태어났을 때 에바는 벌써 다섯 살이었다. 동생이 태어나자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을, 흥분에 들뜬 아빠의 커다란 목소리를 에바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사내아이예요. 정말 사내아이라고요!” 아빠의 웃음은 전과 달랐다 … 베르톨트는 무척 빠른 속도로 먹었다. 사실 집어삼킨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베르톨트는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고집스럽게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에바야, 넌 왜 안 먹니?” 아빠가 물었다. 그제야 에바는 아직 자기가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는 아빠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아빠가 잔소리를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입맛이 나겠어요.” ..  (86, 95쪽)



  배고파서 먹는 사람이 있고, 아프고 슬퍼서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고프지만 못 먹는 사람이 있고, 아프고 슬퍼서 못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배부른 사람은 더 먹지 않아도 됩니다. 아픈 사람한테서는 아픔이 사라져야 합니다. 슬픈 사람한테서는 슬픔이 녹아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배고픈 사람이 자꾸 배고픕니다. 배부른 사람도 자꾸 배부릅니다. 아픈 사람은 자꾸 아프고, 슬픈 사람도 자꾸 슬픕니다.


  삶과 사회는 왜 이렇게 외곬로 치달아야 할까요. 우리 삶자락에 왜 이렇게 사랑과 꿈이 찬찬히 스며들지 못할까요.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이 왜 이렇게 퍼지지 못할까요.



.. 자유. 에바는 연어 한 점을 입 안에 넣었다. 자유. 모험이라든가 크고 넓은 세계처럼, 격정적이며 아름답게 들리는 단어였다 … 이번에는 음악에 젖어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번보다 많은 시간과 미헬의 손길이. 하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아주 좋아지기까지 했다. ‘난 할 수 있어. 늘 잘할 수 있어.’ … “넌 내 여자친구잖아. 난 네 남자친구고. 그런데 왜 날 두려워해?” 미헬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두려움? 그게 두려움이었을까 ..  (116, 135, 164쪽)



  청소년문학 《씁쓸한 초콜릿》에 나오는 ‘뚱뚱한(또는 통통한) 에바’는 저 스스로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에바는 저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저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미워합니다. 아들만 높이 여기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면서 이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들만 높이 여기다가 이 아들이 학교성적이 시원찮으니 아들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아버지를 그야말로 못마땅해 하지만 이런 마음조차 나타내지 못합니다.


  뚱뚱하거나 통통한 몸을 가리려고 널널한 치마만 입는 에바는 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적이 없습니다. 에바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에바가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듣거나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에바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퍼먹기’ 하나에다가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는 일’ 하나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 땅에도 ‘수많은 에바’가 있습니다. ‘먹기’로 아픔과 슬픔을 달래는 아이가 있고, ‘굶기’로 아픔과 슬픔을 다독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몰라서 헤매거나 떠도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왜 아프거나 어떻게 아픈가를 살피지 않아요. 그저 이 아이들한테 한마디만 합니다. ‘대학교에 가라’고. 아이들은 참으로 착해서 대학교에 갈 때까지 모두 꿋꿋하게 참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가고 나서는 ‘회사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어른이요 사회입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짝짓기를 하라’고 말하는 어른이며 사회이고, 짝짓기를 하면 ‘아기를 낳으라’고 말하는 어른과 사회이며, 아기를 낳으면 ‘아파트를 장만하고 연금과 보험에 들며 자가용을 몰라’고 말하는 어른입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일이 없는 어른이요 사회입니다.



.. 에바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뚱뚱한 가슴과 뚱뚱한 배, 뚱뚱한 다리를 가진 뚱뚱한 소녀가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 소녀는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약간 눈에 띄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못생기진 않았다. 에바는 뚱뚱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뚱뚱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도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었다. 대체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패션잡지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생긴 여자들만이 아름다운 것일까 …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에바는 갑자기, 자신이 원했던 에바가 되어 있었다. 에바는 웃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  (203∼204쪽)



  밥 한 그릇은 함께 먹을 적에 맛있습니다. 초콜릿 한 조각은 아무리 작아도 함께 나누어 먹을 적에 대단히 달콤합니다. 이야기는 함께 나눌 적에 아무리 ‘하찮은 것’을 놓고 이야기하더라도 즐거워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노래는 대중노래를 부르든 민중노래를 부르든 찬양노래를 부르든,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어서 부르면 늘 기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씁쓸한 초콜릿》에 나오는 ‘뚱보 에바’는 이제껏 제 삶을 제대로 바라보려 한 적이 없습니다.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뚱뚱하면 밉지’라든지 ‘날씬해야 예쁘지’ 같은 말에 휘둘렸습니다. 바보스러운 아버지가 외치는 말에 아뭇소리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뚱보 에바’는 ‘그냥 에바’로 살기로 다짐합니다. 아니, 뚱보도 날씬이도 아닌, 에바 그대로를 바라보기로 하면서, 스스로 무엇인가 달라진 줄 깨닫습니다.


  에바는 무엇을 했을까요? 에바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했습니다. 에바는 억지로 살을 빼려고 하는 짓을 그만두면서, 스스로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꿈꾸는 ‘나다움’을 찾자고 생각합니다. 나를 나대로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길을 바라보자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제대로 웃은 적이 없던 에바는 제 모습을 제대로 바라본 첫날, 비로소 웃음을 마음껏 짓습니다. 스스로 웃음을 지은 에바는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다만, 에바가 짜증과 골과 아픔과 슬픔 때문에 ‘퍼먹기’를 했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고, ‘이대로 많이 퍼먹는 삶’을 그대로 갈 수 없다고, 어머니한테 ‘밥’을 예전처럼 주지 말라고 말하면서, 에바도 스스로 제 밥을 짓는 삶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합니다. 에바네 어머니는 에바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는, 에바네 아버지한테 ‘앞으로 새로 지을 밥’이 입맛에 안 맞는다면 혼자 밖에 나가서 외롭게 밥을 사다 먹으라고 해야겠다고 말하면서 웃습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함께 꿈꾸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함께 짓는 사랑이 달콤합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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