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미소 난 책읽기가 좋아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 비룡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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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0



시골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말의 미소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비룡소 펴냄, 1997.7.11. 6500원



  어린이문학 《말의 미소》(비룡소,1997)는 프랑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랑스도 한국하고 시골살림은 비슷한지, 시골은 자꾸 줄어들고, 사람도 떠나고, 아이들도 차츰 사라져서, 시골학교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을 마냥 지켜볼 수 없다고 여긴 시골학교 교사 한 사람은 생각을 짜내고 짜내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있을까 하고. 어떻게 하면 이 스러져 가는 시골마을에 새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도록 북돋울 수 있을까 하고.


  이리하여 어느 날 ‘말’을 떠올립니다. 말 한 마디를 학교에 들이자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어도 말을 장만할 돈이 없습니다. 교사도 주머니를 탈탈 털고, 아이들도 저금통을 탈탈 텁니다. 그러나 말 한 마리를 장만할 돈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교사와 아이들은 말 한 마리를 얻어요.



비르 아켕이 왜 그렇게 쇠약해졌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지 말이 늙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원인을 찾아보지 않고 은퇴시키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 나이로는 더 이상 돈벌이를 할 수 없을 거야. 도살 전문가가 고기값으로 돈을 준다면 모를까.” (22쪽)



  교사도 아이들도 말을 잘 모릅니다. 이러저러하게 생긴 짐승이 말인 줄 알 뿐입니다. 말 사육장을 거느린 사람은 말을 압니다. 어느 말을 경마장에 내보내면 돈을 잘 벌 만한가를 알고, 어느 말은 ‘은퇴’시켜서 도살장으로 보내어 고기로 바꾸면 돈이 될 만한가를 압니다.


  말 사육장을 거느린 백작은 시골학교 교사가 찾아왔을 적에 속으로 ‘잘되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늙었는지 어디가 아픈지 아무튼 경마장에서 더는 달릴 수 없는 말을 시골학교 교사한테 팔기로 했지요. 도살장에 넘기려고 했는데, 도살장에 넘기는 값보다 돈을 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늙었는지 아픈지’ 알 길이 없는 말을 모르는 척 떠넘깁니다.


  그러면, 말 사육장을 거느린 백작은 말 한 마리가 ‘늙었는지 아픈지’ 왜 모를까요? 이녁은 말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돌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돈벌이만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말은 웃지 않는다. 말이 윗입술을 콧구멍 위까지 들어올릴 때는,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배가 아프기 때문에, 몹시 아프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수의학에서는 이를 ‘위통’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말을 만나기 전부터 줄곧 말을 사랑해 왔다. (33쪽)



  시골학교 교사와 아이들은 말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아 말이란 이렇게 크구나, 아아 말이란 이렇게 멋지구나, 하고. 그런데 말이 웃는 낯입니다. 아이들은 ‘말이라는 짐승을 아직 몰라’요. 그래서 말이 웃는 낯인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러한 모습인가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저 말이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웃네!’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내가 하려는 일은 아주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말을 거절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고 싶어했다. (41쪽)



  시골학교 교사하고 아이들 앞에서 웃는 낯이던 말은 얼마 못 걷고 길바닥에 픽 쓰러집니다. 입에 거품을 뭅니다. 교사도 아이들도 저희 돈을 몽땅 털어서 장만한 말인데, 나날이 초라해지고 쓸쓸해지는 시골마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서, 아이들한테 꿈을 심어 주려는 뜻에서, 그야말로 온 사랑을 쏟아서 말 한 마리를 시골학교에 두면서 돌보려고 했는데, 말을 데려온 날, 이 말은 힘없이 길바닥에 쓰러져서 몹시 끙끙 앓습니다.


  수의사가 달려옵니다. 수의사는 이 말이 이제 더 살 수 없다고 진단을 합니다. 그러나 교사도 아이들도 말한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수의사를 바라봅니다. 부디 이 말이 살아나도록 해 달라고 바랍니다. 수의사는 ‘웃는 말’을 보고는 이 말은 ‘죽음으로 가는 말’인 줄 알지만, 차마 아이들한테 그 이야기까지는 털어놓지 않습니다. 수의사로서 ‘말이 부디 덜 아픈 채 죽음으로 가도록 할 생각’이었으나,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합니다. 마취 주사를 놓고 배를 가르기로 합니다. 큰 수술을 하기로 합니다.



아이들은 말의 털을 만져 보았고, 말의 온기와 냄새를 느꼈다. 아이들은 말의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했는지 말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려고 말의 몸을 정성껏 쓰다듬었다. (46쪽)



  늙고 아픈 말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늙고 아픈 말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이 말한테서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시골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수의사는 큰 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의사는 ‘기적’도 ‘놀라움’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 눈망울을 보고는 말을 차마 죽음으로 보내지 못하고 큰 수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길바닥에 쓰러진 채 끙끙 앓는 말을 어루만져 주고 기운을 내라는 얘기까지 들려줍니다.


  말이라고 하는 짐승이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알아듣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늙고 아픈 말은 마취에서 풀려난 뒤 무언가를 느낍니다. 제 곁에서 저를 지켜보면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낍니다. 거의 죽음 문턱에 이르렀던 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짭니다. 아니, 마지막 힘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스스로 일으킵니다. 앞으로 경마장에서 달릴 일은 없을 테지만, 이 말은 말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립니다. 앞으로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받고, 또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새롭게 살 수 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 맞아! 어른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는 것은 역시 아이들뿐이야!’ (53쪽)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문학 《말의 미소》입니다. 이 작품은 수의사 눈길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말 한 마리를 둘러싸고 시골마을 작은 학교 교사하고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는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른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는 아이들”을 노래하면서 끝맺습니다.


  이 작은 이야기에서도 들려주는데, 시골아이가 할 수 있는 ‘큰 일’은 없습니다. 시골아이한테는 돈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한테는 사랑이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사랑이 있고, 다른 목숨을 아끼는 사랑이 있으며, 따사롭고 너른 마음에 가득한 사랑이 있어요.


  마을을 살리는 힘이라면, 마을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리고 마을뿐 아니라 나라와 지구별을 살리는 밑힘이라면 바로 아이들이겠지요. 웃는 아이들이 모두를 살리고, 웃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온누리를 따사로이 어루만질 테지요. 4348.1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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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왕자 덜신 동화는 내 친구 47
C. W. 니콜 지음, 서혜숙 옮김 / 논장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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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1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배운다

― 벌거숭이 왕자 덜신

 C.W.니콜 글·그림

 서혜숙 옮김

 논장 펴냄, 2006.11.25.



  아침에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볕이 들 듯 말 듯 구름이 짙습니다. 바람이 살며시 불기에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낮밥을 먹는 자리에서 작은아이가 문득 밖을 내다보더니 “비다! 비가 온다!” 하고 외칩니다. 이러면서 마당으로 달려나가려 합니다. 나도 부랴부랴 일어나서 마당으로 달려나가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침에 누나하고 평상에 잔뜩 올려놓고 놀던 장난감이 비에 젖을까 보아 걱정합니다. 나는 잘 마른 빨래가 빗물에 다시 젖을까 보아 근심합니다.


  빨래를 걷으며 작은아이를 바라봅니다. 작은아이는 고 작은 손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고 작은 가슴에 잔뜩 안습니다. 영차영차 소리를 내면서 맨발로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걸어갑니다.


  문득 옛일을 더듬습니다. 이 아이들이 더 어릴 적에는 이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그대로 둔 장난감도 내가 다 거두어야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 장난감은 아이들이 스스로 건사하고, 나는 우리 식구 빨래만 건사하면 됩니다.



켈토이의 콘라 왕은 사인즈나크 해적들을 격퇴하기 위해서 배를 서른세 척이나 만들도록 명령했다. 서른 척이 넘는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 이상 된 참나무 500그루, 붉은 느릅나무 80그루, 가장 키가 큰 산 소나무 100그루, 1000년 이상 된 거대한 전나무 다섯 그루를 온 나라의 숲에서 베어야만 했다. (20쪽)


“우리 켈토이는 항상 산과 숲의 비밀을 소중하게 보호해 왔지요. 오랫동안 이런 비밀들은 보통 사람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하려고 문자로 전하지는 않았지요. 단지 나는 단순하고 짧은 시를 노래했어요.” (73쪽)



  C.W.니콜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논장,2006)을 읽습니다. 이 책은 켈트 겨레가 지난날 어떠한 삶을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켈트 문화를 책으로 읽으면서 옛날과 오늘과 앞날 사이에 흐르는 너른 숨결을 슬기롭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책이름이 ‘벌거숭이 왕자’인데, 왕자 ‘덜신’은 스스로 깊은 숲에서 혼잣힘으로 씩씩하게 살아남아서 다시 왕자 자리로 돌아간 아이입니다.


  연장도 무기도 없이, 게다가 옷이랑 신조차 없이, 아주 알몸으로 궁궐에서 쫓겨나 숲에서 한 해 남짓 살아남아야 하는 덜신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는 이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맞아들입니다. 왕자가 왕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꿍꿍이 때문에 궁궐에서 내쫓긴 덜신 왕자인데, 덜신 왕자는 이렇게 내쫓기는 일을 나쁘게 바라보지 않아요.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하는 징검돌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어요.



“덜신 왕자님, 이 까마귀는 재생의 여신, 모리간의 눈을 한 신의 심부름꾼이에요. 모리간은 두렵고 힘센 존재지요. 그 여신이 지금 어 이린 까마귀의 눈을 통해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어요. 그 까마귀를 잘 보살피세요. 이건 아주 중요하답니다. 엄마처럼 그 새를 보호하세요.” (44쪽)


덜신은 안장 없이 말 등에 올라타면 말의 기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49쪽)


“그래, 그랬었지. 그러나 이미 돌아와서 반 년 정도 산에서 지내면서 바람과 나무들이 전하는, 불쌍하게 파멸되어 가는 켈토이 소식을 듣게 되었지. 그래, 귄더, 바람과 숲과 강이 웅얼대며, 새가 지저귀며, 잎과 가지가 바삭거리며 똑같이 내게 말하더군.” (84쪽)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을 읽을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쩌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설마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 알몸으로 숲에서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는지 모르지요. 오늘날에는 깊은 숲이란 데가 없을 터이며, 궁궐에서 쫓겨나도 편의점이 있지 않겠느냐고 여길 어린이나 푸름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혼잣힘으로 씩씩하게 삶을 짓도록 북돋울 만한 깊은 숲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다섯 살쯤 되는 푸른 넋이 제 몸을 가꿀 옷을 숲에서 얻고, 제 몸을 살찌울 밥을 숲에서 찾으며, 제 몸을 갈고닦을 모든 배움과 훈련을 숲에서 깨달으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아니, 이러한 생각을 할 만한 푸른 넋은 아예 없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시험공부로 바쁠 터이니, 무슨 옷이며 밥이며 집을 스스로 건사하느냐고 여길 만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봅니다.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에 나오는 덜신 왕자는 오롯이 홀로서기(자립)를 합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다른 어른한테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몸짓은 숲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배우는 하루가 됩니다.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맨발로 숲을 거닐면서 흙과 풀과 나무를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입을거리를 얻으려고 풀줄기를 훑고 실이 될 만한 것을 헤아리면서 그야말로 숲이 어떠한 터전인가를 새롭게 알아차립니다.



“덜신, 잘 들어라. 이제 너는 신들의 자식이며 자연의 보호를 받는다. 야생의 형제와 자매들을 관찰해서 그들의 말을 잘 듣고, 항상 그들을 존경과 예의로 대하라. 이제 너는 인간 생활의 족쇄에서 자유롭다. 단순한 것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아라. 귀 기울여 보아라.” (92쪽)


낮이 밤으로 이어져 여러 날이 지나갔다. 덜신은 항상 먹을 것에 대해 생각했고, 언제나 배고픔에 시달렸다. 덜신은 점점 더 약해지고 아주 말라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 대신에 색깔이나 소리 그리고 냄새는 더욱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밤에는 사냥하는 박쥐의 높은 울음소리도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98쪽)



  돈을 많이 벌어서 살아야 홀로서기이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지을 때에 홀로서기입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손꼽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기에 홀로서기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아파트 한 채를 ‘내 집’으로 장만하기에 홀로서기라고 하지 않아요.


  연봉이 높은 회사를 다닌다 한들, 그 회사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요. 내 집인 아파트가 있다 한들, 전기가 끊어지고 물이 끊어지면 어찌 될까요. 내 자동차가 있다 한들 기름이 마르면 어찌 될까요.


  현대문명을 거슬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삶이 서는 자리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첨단문명이나 도시 사회에 등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기계나 연장을 안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손수 짓고 빚고 가꾸고 가다듬을 줄 아는 몸짓이 되어야 합니다.



으르렁거리거나 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최대한 맑게 하고, 검은번개의 앞이마의 삼각형 표시에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곳으로 투사하면, 검은번개가 반응을 보였다. (136쪽)


덜신은 바다표범과 더불어 노래하고 헤엄치며 놀았다. 그들은 친구들인데, 어떻게 그들의 신뢰를 배반할 수 있을까. (159쪽)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울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물음에 ‘네!’ 하고 말하려 합니다. 이르든 늦든, 더디든 빠르든,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스스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를 차곡차곡 다니면서 시나브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무 학교도 안 다니면서 천천히 배울 테지요. 어떤 아이는 예순 살이나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아차려서 새로 배울 테고, 어떤 아이는 아흔 살에 눈을 감으면서도 하나도 못 배울 테지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져서 지식이나 정보를 빠르게 얻는 아이가 있을 테고, 책도 인터넷도 없이 머리와 생각과 느낌으로 차근차근 깨닫고 알아차리는 아이가 있을 테지요.


  옛사람은 텔레비전을 켜서 날씨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알지 않았어요. 개미 움직임이나 제비 날갯짓을 보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바람맛을 보고, 구름 흐름을 살피면서 날씨를 알았어요. 그리고, 옛사람은 식물도감을 뒤져서 풀이름을 알지 않았지요. 옛사람은 모두 어버이한테서 풀이름을 배웠고, 풀이름뿐 아니라 풀을 어떻게 다루고 건사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 하는 대목까지 낱낱이 익혔어요.



덜신은 라그다의 손에서 하프를 받아서 부드럽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 소리는 상쾌하게 동굴에 울려퍼졌다. 즉시 덜신의 가슴에서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는 인간의 말도 리듬도 아니었다. 그 노래는 바람, 나무, 파도, 새 그리고 동물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서로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223∼224쪽)


자란 나뭇잎들은 그 자체가 말이었다. 나무들은 모든 날씨와 태양, 달, 별의 복잡한 운행을 알고 있었다. 나무들은 새들의 이야기를 알았고, 새들로부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의 움직임을 전해 들었다 … 미래는 도토리나 밤의 껍질 속에 보호되어 잠자고 있었다. (231쪽)



  우리 집 여덟 살 아이가 걸레질을 합니다. 설거지도 합니다. 곁님이 집에서 구운 빵을 썰 적에는 큰아이한테 빵칼을 맡겨 봅니다. 우리 집 다섯 살 아이도 요즈막에는 제 잠옷을 제법 잘 갭니다. 다섯 살이나 되어서야 잠옷을 개느냐고 나무랄 어른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아이는 그동안 실컷 노느라 바빠서 옷을 개는 일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이제는 제 옷을 스스로 건사하고 다루는 손길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지식이나 정보를 익혀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교과서를 받고는 똑같은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여덟 살이면 초등학교를 가야 하거나, 열네 살이면 중학교를 가야 하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나이일 뿐이에요. 혼인을 몇 살에 해야 하는 법이란 없고, 아기를 몇 살에 낳아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열아홉 살에 아기를 낳을 테고, 누군가는 마흔 살에 아기를 낳을 테지요. 어떤 아이는 열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젊은이는 스물아홉 살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요.


  나이에 맞추어 어떤 지식을 아이한테 밀어붙이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삶을 즐기고 누리고 가꾸고 사랑하고 펼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옆에서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도와주면 되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일어서도록 북돋우면 되리라 느껴요.



“이 싸움은 복수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왕자의 마음에서 화를 풀어내야만 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269쪽)



  청소년문학 《벌거숭이 왕자 덜신》에 나오는 덜신 왕자는 어떻게 될까요? 숲에서 홀로 살아남은 덜신 왕자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씩씩하게 다스리는 길을 스스로 배웁니다. 이리하여 ‘앙갚음’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았고, ‘사랑’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차렸어요. 새가 지저귀는 노래에 깃든 이야기를 스스로 알아듣고,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가지가 들려주는 노래를 스스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받으며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이 가슴속에 꿈씨 한 톨을 곱게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곱게 자라는 꿈씨를 가슴속에 심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깨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모두 맨손이고 알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새롭게 태어나고, 처음부터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기쁘게 웃을 수 있습니다. 4348.11.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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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 - 고고학 생생 노트
김영숙 지음, 송진욱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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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19



오늘은 살림살이, 먼 뒷날은 발자취

―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

 김영숙 글

 송진욱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2.7.31. 11000원



  오늘 내가 쓰던 작은 물건 하나를 알뜰히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은 이 작은 물건을 고이 여겨서 새 아이들한테 물려준다면, 이리하여 이 작은 물건을 물려주고 물려받기를 되풀이하면서 오백 해쯤 흐른다면, 앞으로 오백 해 뒤에는 새로운 유물이 될 만합니다.


  쓰레기통에 넣으면 쓰레기가 되고, 불에 태우면 한줌 재로 바뀌지만, 나 스스로 살뜰히 간수해서 두고두고 돌볼 수 있다면, 오늘 이곳에서는 예쁜 살림살이로 누리고, 먼먼 뒷날에는 재미난 유물이 될 만합니다.



이 작은 돌멩이가 바로 전곡리를 세계적인 유적으로 알린 유물이야. 이 유물의 이름은 바로 주먹도끼. 무심코 보면 그냥 돌멩이 같지만, 한 번 관찰하면 특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9쪽)


엄청난 위력의 홍수로 퇴적층이 쓸려 나가고 뒤집히면서 수천 년 동안 묻혀 있었던 암사동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드러난 거야. (21쪽)




  《100년 전 우리는》이나 《조잘조잘 박물관에서 피어난 우리 옷 이야기》를 쓴 김영숙 님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고고학과 옛 유물 이야기를 들려주는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책과함께어린이,2012)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어린이 인문책에서 다루는 ‘우리 역사’는 유물로 살피는 역사입니다. “역사 이전”이라고 하는 ‘선사 시대’ 유물부터 백제와 가야 무렵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물까지 차근차근 살핍니다.


  큰물이 지면서 땅 밑이 넓게 드러나서 찾아낼 수 있던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아파트를 짓는다며 땅 밑을 깊이 파헤치면서 새롭게 나타난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바다 밑에서 건져올리면서 수수께끼를 풀도록 도와준 유물을 이야기합니다.


  자그마한 유물 하나가 나와서 우리 역사가 바뀝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만한 유물 하나가 나타나서 우리 발자취가 달라집니다.



암사동 선사 주거지는 참 재미있고 특별한 유적인 것 같지? 지금은 높은 아파트 단지와 자동차 행렬이 끊이지 않는 도로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주 먼 옛날,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갈돌과 갈판에 갈아 빗살무늬 토기에 끓여 먹던 장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26쪽)


가루베 지온은 6호분에서 나온 유물을 고스란히 자기가 채익고, 조선총독부에는 이미 도굴된 것으로 보고했어. 광복 후 가루베 지온은 훔친 유물을 트럭에 싣고 대구로 가서 일본인과 함께 일본으로 유물을 가져가 버렸어. 그리고 이렇게 약탈한 유물을 가지고 《백제 유적의 연구》라는 책까지 펴냈지 뭐야. (81쪽)



  높다란 아파트를 올리려고 땅 밑을 깊이 파헤치면서 나오는 유물은 무엇을 말할까요. 높다란 아파트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유물이 나오거나 말거나 먼저 아파트부터 지어야 할까요.


  삶을 돈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본다면, 유물 조사는 굳이 할 까닭이 없이 아파트만 지어대면 됩니다. 삶을 경제성장이라는 틀에서 바라본다면, 유물 조사뿐 아니라 환경 조사도 애써 할 까닭이 없이 아파트나 공장이나 온갖 시설을 지어대면 되지요.


  땅 밑을 파헤치는 일이 있을 적마다 으레 유물 조사를 하려는 까닭이라면, 자그마한 옛 유물 하나로 옛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뜻을 읽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역사책에 아로새기려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온 길을 더듬으면서 오늘을 되새기고 앞날을 새로 가꾸려는 뜻으로 읽는 역사라고 느껴요.



이처럼 중요한 유적이 오늘날에는 안타깝게도 등산로, 체육 시설, 군사 시설 등으로 훼손되고 있어. 구의동 보루 같은 경우에는 발굴 이후 아파트 숲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도 힘들어. (91쪽)


무덤 발굴에서는 유물이 나오든지 나오지 않든지, 무덤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를 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커. (101쪽)




  일제강점기에 여러 일본 학자는 이 나라 유물을 많이 훔쳤다고 합니다. 신안 앞바다에서 유물이 나왔을 적에 적잖은 사람들이 바다 밑 보물을 가로채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 유물을 훔친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나 도굴꾼이나 수집가뿐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한국 유물을 가로채거나 훔친 사람이 무척 많아요. 이들은 모두 돈이 될 만한 길을 살폈습니다. 주머니를 두둑하게 챙길 마음이었고, 혼자 연구 성과를 차지하면서 이름을 드날릴 마음이었어요.



고고학자들이 흥분하고 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심각한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어. 유적의 규모와 중요성을 감안해 복천동 고분군의 보존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오자, 새로운 연립주택이 지어질 것을 기대했던 주민들이 쫓아와 문화재관리국 담당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벌어진 거야. (109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정부에서 역사 교과서를 갈아치우겠노라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새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외치는 셈이라 할 텐데, ‘어떤’ 새 역사를 가르치고 싶기에 정부에서도 역사 교과서를 쓸 생각일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역사 교과서를 쓸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역사 교과서를 쓰라고 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정부 교과서’도 다른 역사 교과서하고 똑같이 ‘다른 여러 학자한테서 감수를 받아’야지요. 정부에서 쓰는 교과서도 꼼꼼하게 감수를 받아서 잘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지요. 그리고, 정부에서 쓰는 교과서는 학교마다 역사 교사가 여러 교과서를 스스로 살펴서 알맞게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어야지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한국 사회는 독재 사회가 아닌 민주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도 역사 교과서를 쓰고 싶다면 쓰라 하고, 이 ‘정부 교과서’도 학자 같은 전문가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한테서 감수를 받을 노릇이며, 교사와 학생이 여러 교과서 가운데 스스로 배우고 싶은 교과서를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안 앞바다에 보물선이 가라앉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어. 전국의 골동품 상인과 도굴꾼들이 신안에 몰려들기 시작했어. 재빠른 도굴꾼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서 값비싼 도자기들을 건져 올렸어. 뒤늦게 경찰이 나서서 도굴꾼들을 붙잡기에 이르렀는데, 도굴꾼들의 창고를 열어 보니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급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 (115쪽)



  어린이 인문책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땅 밑과 바다 밑에서 나온 유물을 몇몇 사람이 혼자서 차지한다면 우리 옛 역사를 제대로 적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모습을 몇몇 사람이 쓴 ‘국정 교과서’ 한 가지만 아이들한테 읽혀서 가르치려고 한다면, 참말 오늘날 한국 사회 모습을 제대로 밝힐 수도 없고 알려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습니다.


  역사를 읽는 까닭은 역사 지식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물을 찾아서 박물관을 짓는 까닭은 오래된 유물을 자랑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제를 읽어서 오늘을 돌아보고, 오늘 이곳에서 흐르는 삶을 읽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날을 꿈꾸자는 뜻으로 역사를 읽고 유물을 돌아봅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살림살이로 누리고, 먼 뒷날에는 아련하면서 즐거운 발자취로 되새길 수 있도록 역사와 유물을 살핍니다.


  역사책을 쓰려고 하는 어른들이 부디 슬기로울 수 있기를 빌어요. 정치를 이끄는 어른들이 부디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나서 아이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기를 빌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든 몸짓과 모습도 ‘역사’로 남습니다. 먼 앞날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고, 먼 앞날 아이들한테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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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 한국.중국.일본의 교류 이야기 처음 읽는 이웃 나라 역사
강창훈 지음, 오동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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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17



독재자가 엮는 역사 교과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강창훈 글

 오동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3.7.29. 12000원



  ‘국민교육헌장’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다짐말을 외우게 하는 학교가 있을까 모릅니다만, 군사독재로 이 나라를 짓누르던 권력자는 아이들한테 참을 보여주지 않고 거짓을 보여주면서 바보로 길들이려 했어요.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로 맞아야 했고, 교과서마다 맨 첫머리에 이런 다짐말을 굵은 글씨로 새기고 독재자 얼굴을 나란히 싣기도 했습니다. 이는 북녘에서도 엇비슷합니다.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모두 독재인 나라에서는 독재자 사진이나 그림을 교실이나 광장이나 회사나 공장마다 커다랗게 붙여놓기 일쑤입니다.


  오직 정부에서만 교과서를 엮어서 학교에서 가르칠 적에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 이른바 ‘국민’을 키웁니다. ‘국민’이라고 하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 사회에서 ‘천황 폐하를 섬기는 나라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아시아에서 한국이 맨 마지막으로 겨우 몰아내고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이라는 이름은 어린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만 몰아냈을 뿐 사회 곳곳에서는 아직 널리 씁니다.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이름으로도 쓰지만, ‘국민 여동생’이나 ‘국민 배우’ 같은 이름으로도 씁니다. 그야말로 한국사람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역사를 슬기롭게 가르치지 않았으며, 역사를 참다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없던 탓입니다.



고조선의 힘이 더 세질까 봐 걱정한 한나라 황제 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했고, 결국 고조선은 멸망하고 말아. (11쪽)


한 무제는 사방으로 전쟁을 일으켜 이웃 나라를 정복했지만, 정복한 지역을 직접 다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 신하와 군대를 일일이 파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필요했지. (18쪽)



  강창훈 님이 쓴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책과함께어린이,2013)라는 어린이 인문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나라’는 한국하고 중국하고 일본입니다. 세 나라가 지난 이천 해에 걸쳐서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며 살았는가 하는 대목을 짚으면서, 세 나라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적에 함께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려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외교 문서에는 어떤 글자를 사용해야 했을까? 당연히 중국 황제가 사용하는 한자를 사용해야 했어. 중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한자를 알아야 했단다 … 중국과 외교 관계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학문과 문화 교류도 늘어 갔어. 국경을 오가는 무역도 증가했지. 그 바람에 한자의 쓰임새도 함께 커졌어. (36쪽)




  흔히 한국하고 중국하고 일본을 ‘한자 문화권’이라고도 말하는데, 이 말은 썩 옳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세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한자 지식을 갖추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학교 교육 힘으로 꽤 많은 사람이 한자 지식을 갖추지만, 한자를 아는 사람보다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더 파고들어서 말한다면, ‘글을 모르는 사람’이나 ‘글을 안 쓰는 사람’이나 ‘글을 안 읽는 사람’이 무척 많아요.


  지난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이천 해 앞서 세 나라에서 ‘한자를 알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중국에서도 한자를 알던 사람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도 정치권력이나 문화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글이나 책을 읽을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도 한국하고 똑같은데, 거의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90퍼센트가 넘는 수수한 사람들은 시골에서 흙을 부치며 살았어요. 시골에서 시골지기로서 땅을 일구며 먹을거리를 지은 사람들은 글(한자)도 책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문화권’이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소리입니다. 권력자끼리 의사소통을 하려고 쓰던 글인 한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권력자는 바로 이 ‘의사소통 도구’인 한자를 빌어서 여느 사람들을 짓눌렀어요.



안시성 전투가 끝나고 20여 년이 흐른 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아. 그런데 그때는 훨씬 많은 고구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당나라로 끌려갔단다. (53쪽)



  나라마다 힘을 키울 적에는 언제나 군대를 늘립니다. 군대를 늘려서 힘을 키운 나라는 어김없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중국도 일본도 이러했고, 한국도 이러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는 흔히 ‘영토 확장’이라고 말하지만, 고구려가 만주나 중국 쪽으로 땅을 ‘넓힌’ 일은 만주나 중국 쪽에서 옛날부터 조용히 살던 사람들한테는 ‘침략’입니다. 중국과 일본만 한국으로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로 나라힘을 키웠다고 하는 모든 나라는 이웃나라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보다는 이웃나라를 넘보면서 ‘땅을 빼앗는 침략 전쟁’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당나라에는 신라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고, 조선에는 일본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어. 일본에는 명나라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지. (61쪽)




  다만, 정치 권력자는 침략 전쟁을 생각했어도, 여느 사람들은 침략도 전쟁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은 조용히 땅을 일구며 살기도 했고, 이웃나라로 씩씩하게 건너가서 새로운 마을을 일구어서 무역을 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당나라로 건너간 신라 사람이나, 조선에 찾아온 일본 사람이나, 중국으로 넘어간 중국 사람은 ‘정치 권력자가 시켜’서 여러 나라를 오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열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림을 지으려는 생각입니다.


  평화는 언제나 문화가 흐를 적에 이룹니다. 평화는 언제나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조용히 어깨동무를 할 적에 이룹니다. 평화는 언제나 정치 권력자가 아니라 시골에서 흙을 사랑하며 살던 사람들이 오순도순 손을 맞잡을 적에 이룹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조선에서 건너간 《팔만대장경》 인쇄본이 50여 부나 남아 있어. 일본 승려들은 《팔만대장경》 인쇄본을 일본 곳곳의 절에 대대로 잘 보관했을 뿐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크게 기여했단다. (91쪽)


‘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탄생했지만 한국과 일본도 중국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어. 한국은 세계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고려청자의 비색과 상감 청자 기술을 창조했고, 일본은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여 세계적인 자기 생산국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110쪽)




  강창훈 님이 쓴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라는 어린이 인문책은 세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도 다루지만, 세 나라 사이에서 사랑스레 흐른 문화 이야기를 찬찬히 다룹니다. 누가 더 훌륭하거나 낫다는 이야기가 아닌, 세 나라가 저마다 제 삶자리에 맞추어 새롭게 가다듬거나 북돋운 아름다운 문화를 다루어요.


  《팔만대장경》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일찌감치 알아본 일본에서는 조선 정부에 끊임없이 ‘인쇄본’을 달라고 바랐다 하며, 조선 정부가 내어준 인쇄본은 일본 곳곳에 알뜰히 건사해서 오늘날까지 정갈하게 지켜 주었다고 합니다. 비록 일본은 여러 차례 일으킨 전쟁에서 이 땅을 마구 어지럽히거나 책도 사람도 함부로 빼앗았습니다만, 정치 권력자 몸짓이 아닌 수수한 사람들 몸짓에서는 아름다운 숨결이 흐릅니다.


  우리 어린이가 세 나라 역사를 살피면서 바라볼 곳은 바로 이 대목이지 싶어요. 정치 권력자가 자꾸 일으키려고 한 전쟁이나 침략이 아니라,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조용히 일구면서 주고받은 아름다운 문화와 삶과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조선은 연은분리법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어. 은을 생산해서 은화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지. 이 기술로 은 생산량을 늘리면, 명나라에서 다시 옛날처럼 은을 조공으로 바치라고 요구할지도 모르니까. (125쪽)



  조선 사회는 이웃 중국 등쌀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문화를 더 북돋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만, 조선 사회 스스로 봉건 계급주의에 사로잡혀서 어떤 문화를 어떻게 북돋아야 하는가를 모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도 한국 스스로 어떤 문화와 숨결과 역사를 어떻게 북돋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모르는 채 헤매는 몸짓이 아닐까요? 대통령 한 사람이나 정치꾼 몇 사람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삶을 짓는 우리들도 조금 더 슬기롭고 조금 더 따사로우며 조금 더 아름다운 살림이 되도록 스스로 일어설 노릇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치 권력자는 이 나라 사람들을 아직 바보로 알기 때문에, 더군다나 대통령이나 집권자나 정부가 시키면 고분고분 따르기만 해야 하는 줄 알기 때문에, ‘국정교과서 말썽’을 일으킵니다. 왜 독재 권력자는 아무것도 못 깨달을까요? 아무것도 못 깨닫기 때문에 독재 권력자가 되고 말 터입니다만, 역사를 보고 배우지 못하기에 독재 권력자가 될 터입니다만, 억지스레 뜯어고치려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국정교과서’가 나온다면, 이런 교과서를 누가 믿고 따를까요. 4348.10.2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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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따오기 눈물 꿈터 책바보 11
질 르위스 지음, 정선운 옮김 / 꿈터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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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16



교육받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주홍 따오기 눈물

 질 르위스 글

 정선운 옮김

 꿈터 펴냄, 2015.10.15. 12000원



  아이들은 꼭 학교에 가야 하는가 하고 돌아보곤 합니다. 우리 집에 두 아이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어릴 적에 학교를 다니면서 즐겁거나 재미있다고 느낀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하루 내내 동무들하고 노는 재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학교에서도 힘이 센 아이들이 힘이 여린 아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나도 이런 괴롭힘이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놀 수 없으니 고단했어요. 게다가 숙제는 얼마나 많으며, 숙제를 안 하면 이튿날 얼마나 얻어맞아야 했는데요.


  흔히 말하기를 학교를 안 다니면 ‘사회생활을 못 한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만, ‘사회’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학교란, 사람들이 ‘위(정치 우두머리)에서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허수아비’를 만드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몸짓’에 길들지 싶어요.



“괜찮을 거야, 얘 혼자서 해야 해.” 나는 레드에게도 내 담요를 두르고 같이 앉아서 작은 새끼 새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애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여?” 나는 레드를 내 쪽으로 더 껴안으며 말했다. (21쪽)


“찌르레기, 푸른 박새, 뿔닭, 재갈매기, 집 참새, 롤러카나리아, 청둥오리, 타조, 양비둘기…….” 나는 계속했고, 새들의 이름은 차분한 리듬 속에서 내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곁눈질로 보니, 레드가 몸을 흔드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31쪽)



  영국에서 날아온 어린이문학 《주홍 따오기 눈물》(꿈터,2015)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을 쓴 질 르위스 님은 《바람의 눈을 보았니?》나 《흰 돌고래》나 《반달곰》 같은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이 책은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글쓴이 질 르위스 님은 오늘날 아이들이 숲하고 멀리 떨어진 채 사는 대목을 눈여겨보면서 언제나 ‘숲하고 아이’를 잇는 징검돌을 헤아립니다. ‘바람’이나 ‘돌고래’나 ‘곰’이라고 하는 이름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한국말로 나온 질 르위스 님 넷째 책인 《주홍 따오기 눈물》에서는 ‘따오기’가 열쇠말로 흐릅니다. 따오기, 이 가운데 주홍 따오기는 ‘새’ 가운데 하나예요.


  새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하늘을 마음껏 나는 숨결입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닌 하늘을 마음껏 나는 숨결이기에 새입니다. 다만, 《주홍 따오기 눈물》에 나오는 새는 ‘동물원에 있는 새’입니다. 날개가 있는 숨결이지만 막상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지 못하는 새가 나오지요.



짐 아저씨가 레드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우리는 또 다른 버드맨을 갖게 되었군.” 레드가 짐 아저씨를 올려보았다. 아저씨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양쪽 입꼬리에서 작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나는 버드 보이예요.” 레드가 말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레드는 그 누구도 결코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고, 말을 걸거나 웃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것이 레드의 병의 일부라고 했다. (56쪽)



  《주홍 따오기 눈물》에는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먼저 주인공인 열두 살 가시내 스칼렛이 있고, 이 아이 동생 레드가 있습니다. 여기에 두 아이를 돌보는 몫을 맡았으나 아이들을 거의 팽개친 채 지내는 어머니가 있어요. 아이들 어머니는 곁님(아버지)이 일찍 숨을 거두는 바람에 넋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열두 살 스칼렛이 집일이랑 집살림까지 도맡습니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는 몫도 열두 살 스칼렛이 맡아요.


  그런데 어린 동생 레드는 ‘여느 사회 구성원인 여느 사람이 보는 눈길’로는 ‘장애 아이’입니다. 누나 스칼렛이 바라보는 동생은 ‘그저 동생’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스칼렛 동생을 오로지 ‘장애 아이’로만 여겨서 ‘사회 돌봄’이나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지요. 그리고, 사회에서는 두 아이가 ‘억지로(강제로)’ 복지 혜택이나 사회 돌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세 식구가 오붓하게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세 사람을 뿔뿔이 찢어서 어머니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스칼렛은 임시 입양 보호가정에 맡기며, 동생은 보호시설에 넣어요.



담뱃갑을 엄마 얼굴 앞에 들고서 크게 소리쳤다. “엄마가 하는 일이라곤 이런 것에 돈을 쓰는 것뿐이에요.” (63쪽)


“있잖아, 만일 엄마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가 쟤를 돌봐줄 수도 있어. 네가 할 수 있겠어?” 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드 표정이 점잖고 진지했다. (68쪽)



  복지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무엇일까요? 세 식구를 법에 따라 뿔뿔이 찢어 놓을 뿐 아니라, 이러한 결정 사항을 세 사람 뜻을 묻지 않고 ‘위원회’에서 ‘회의를 열어서 결정’해도 될까요?


  그러나, 다르게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보호 장치’조차 제대로 없다고 할 만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여러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지켜 주겠다면서 복지사가 있고 복지 제도가 있어요.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와 정책과 공무원은 막상 ‘아이들 목소리’를 안 듣기 일쑤예요.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귀여겨듣지 않고 말아요. 열두 살 스칼렛이 제 동생을 그저 ‘동생’으로만, 오직 사랑스러운 동생으로만 바라보면서 아끼는 몸짓을 어른들은 하나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병원에서 전문 의사와 간호사가 정기검사를 해야 한다고 여기고, 어른들은 병원 검사에서 나오는 숫자를 따져서 ‘정상·비정상’을 가르려 합니다.


  가만히 보면, 학교에서도 이와 같아요.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을 놓고서 높낮이를 따지지요. 시험성적이 높으면 모범생이요, 시험성적이 낮으면 문제덩어리입니다.



만일 레드가 여기에 있었다면 비둘기는 레드를 신뢰했을 것이다. 새들과 있을 때, 레드는 매우 조용했고 움직임이 적었다.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가끔은 나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21쪽)


나는 짙은 갈색의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름다운 아이일지도 모른다. (154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참다이 배울 수 있을까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채, 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임시 입양(또는 위탁) 보호가정에 갇힌 채 늘 감시를 받으면서 동생도 어머니도 볼 수 없는 자리에 놓여야 하는 아이는 ‘어떤 복지와 돌봄’을 받는다고 할 만할까요? 이러한 삶을 치러야 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무엇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너희는 좋은 가족이 있는 좋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일 저녁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너희 엄마와 아빠는 너희를 돌봐 주시지. 너희 부모님은 미치지도 않았어. 그리고 너희에게 욕을 하지 않고 너희 이름을 부르시지. 하지만 레드와 나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서로뿐이야. 그리고 만일 너희가 우리에 대해 얘기해 버린다면, 우리는 헤어지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게 되는 거지.” (214쪽)



  어린이문학 《주홍 따오기 눈물》은 주홍 따오기가 흘리는 눈물을 이야기합니다. 동물원이나 새장이 아니라 하늘을 가르면서 바람을 타고 싶은 숨결을 이야기합니다. 번지르르한 정책이나 제도나 사회가 아니라, 따스한 사랑이 흐르는 사람들 마음씨를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받고 싶겠습니까. 아이는 언제나 오직 한 가지를 받고 싶어요. 돈도 집도 으리으리한 집도 장난감도 아닙니다. 아이는 누구나 언제나 오로지 한 가지, 바로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아이는 교육을 받을 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을 숨결입니다. 아이는 보호나 돌봄을 받을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는 따순 손길로 사랑을 받을 넋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고 어버이가 사랑을 베풀 때에 비로소 마을이 섭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고 어버이가 사랑을 나눌 때에 비로소 학교가 학교답게 섭니다.


  사랑으로 흐르는 삶이 있은 뒤에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가 있을 노릇입니다. 사랑으로 흐르는 삶이 없다면 학교도 마을도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부질없습니다. 4348.10.2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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