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까마귀나무 빨간우체통 3
리타 얄로넨 글, 크리스티나 루이 그림, 전혜진 옮김 / 박물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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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6



아이한테 아버지 자리는 어디일까?

― 소녀와 까마귀나무

 리타 얄로넨 글

 크리스티나 루이 그림

 전혜진 옮김

 박물관 펴냄, 2008.6.5. 8800원



  아이한테 아버지 자리는 어디일까 하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나를 낳고 돌본 아버지를 헤아리면서 물어보고, 내가 낳아서 돌보는 아이를 헤아리면서 물어봅니다. 먼저 우리 아버지를 헤아린다면, 우리 아버지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시느라 바빠서 이녁 아이들하고 얼굴을 마주할 겨를조차 몹시 적었습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이었으니까요. ‘아버지하고 논다’고 하는 일은 겪은 일이 하나도 없다고 떠오를 뿐 아니라 ‘아버지하고 말을 섞는다’고 하는 일조차 참으로 드물었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내가 우리 아이들하고 보내는 나날을 헤아립니다. 나는 집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놉니다. 나는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고, 바깥일이 있으면 이 바깥일도 도맡습니다. 이러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가르치는 몫도 도맡습니다. 솜씨 있거나 야무지기에 이렇게 온갖 일을 다 하지는 않아요. 함께 짓는 살림에서 아버지로서 맡는 몫이 좀 더 많다고 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얘기할 만한데, 힘이 조금 더 센 사람이 짐을 더 많이 날라요. 두 어버이 가운데 힘이 조금 더 있는 쪽이 여러모로 집일이나 집살림을 더 많이 하는 셈입니다.


  아무튼, 나를 낳아 돌본 아버지를 헤아리면서, 내가 낳아 돌보는 아이를 헤아리니, 내가 걷는 길은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서 거의 받지 못한 사랑을 우리 아이한테 새롭게 지어서 물려주려고 하는 길이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어릴 적에 거의 받지 못한 ‘아버지 사랑’이기에 ‘아버지로서 선 나’로서도 우리 아이들한테 ‘아버지 사랑’을 물려주기 어렵다고 할 만하지요. 그렇지만, 먼 옛날부터 이어졌을는지 모를 ‘사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지 못하거나 물려받기 어렵던 사랑’은 이제 끝나도록 마음을 쏟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까마귀들을 놀라게 하면 안 되니까 나무 꼭대기를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잎사귀들 사이로 작고 동그란 까마귀 머리들이 까닥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9쪽)


첫 번째 까마귀가 날아오르면 다른 까마귀들이 따라 날아오릅니다. 이때 나무들은 몸을 부르르 떨고 가지들은 흔들거리지요. (10쪽)



  리타 얄로넨 님이 글을 쓰고, 크리스티나 루이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문학 《소녀와 까마귀나무》(박물관,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만 보아서는 소녀하고 까마귀나무가 도무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알기 어려울 만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이문학 첫 쪽을 넘기니, 《소녀와 까마귀나무》에 나오는 ‘소녀’한테는 아버지가 없어요.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었어요.



우리 보트를 닦을 때처럼 병든 나무도 깨끗이 씻어 주어야 하는데, 아무도 나무를 돌보지 않습니다. 나무를 씻어 주는 것은 비뿐이랍니다. (16쪽)


나는 벌써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앨범에 보트 사진들이 있는데,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우리 엄마도,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빠도요. (27쪽)



  어린이문학 《소녀와 까마귀나무》에 나오는 소녀는 ‘까마귀나무’를 무척 애틋하게 여깁니다. 나무 가운데 ‘까마귀나무’라는 나무가 있지는 않아요. 까마귀가 무척 많이 내려앉는 나무이기에 ‘까마귀나무’라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까마귀나무는 바로 ‘소녀네 아버지’가 소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알려준 나무예요. 두 사람(아버지와 아이)이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나무입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티나, 키사 그리고 사라가 내게 와서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슬프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친구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답니다. (37쪽)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마다 아빠와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지금도 무심결에 자전거를 준비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곧 아빠가 계시지 않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38쪽)



  어떤 사람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말아서 아버지하고 얽힌 이야기(추억)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아직 튼튼히 계시지만 아버지하고 말을 섞는 일이 드물거나 얼굴조차 거의 마주하지 않기에 서로 나눌 만한 이야기(추억)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어도 ‘아버지가 사는 동안’ 서로 나눈 이야기가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하고 한집에서 사는 데에도 막상 서로 마음을 열지 않아서 따사롭거나 너그럽거나 즐겁게 꽃피우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없기도 합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살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으레 “아버지 좋아요. 아버지 사랑해요.” 같은 말을 읊습니다. 나는 이제껏 우리 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제대로 읊은 일이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부장 사회에서 자란 터라 사내(아들)가 아버지한테 “아버지 좋아요. 아버지 사랑해요.” 같은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고 ‘핑계’를 댈 수 있을 테지요. 그야말로 핑계이지요. 가부장 사회가 단단하건 말건,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어버이와 아이라면, 아이로서 어버이한테 “아버지 사랑해요”이든 “어머니 사랑해요”이든 얼마든지 말할 만해요. 가부장 사회나 권력이나 얼거리는 ‘이런 틀을 그대로 두라’고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가부장 사회나 권력이나 얼거리를 깨고 아름다운 삶자리가 일어서도록 바꿀 수 있어요.



엄마는 한 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자 본 적이 없어서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44쪽)



  어린이문학 《소녀와 까마귀나무》는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를 잇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씩씩하게 하루를 새로 맞이하면서 어머니하고 지낼 뿐 아니라 동무하고 지내는 소녀 이야기를 곰곰이 들려줍니다. 어린 가시내는 무엇을 하든 이곳에서는 이곳에서 함께 지내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저곳에서는 저곳에서 함께 놀던 아버지가 떠오르지만, 그야말로 씩씩하지요. 그러나, 남모르게 눈물에 젖는 날도 많을 테고, 남이 알도록 눈물을 흘리는 날도 많을 테지요. 다만, 눈물에 젖든 눈물을 흘리든, 아버지하고 함께 지내고 놀고 어울리고 복닥이던 나날을 기쁜 사랑이라는 씨앗으로 가슴에 심습니다. 아이로서는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어머니로서는 짝꿍을 여의었어요. 아이는 어머니 마음까지 헤아리고, ‘까마귀나무’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무도 함께 헤아립니다. 어버이 한 사람이 곁을 떠나서 무척 슬플 텐데, 슬픔은 슬픔대로 맞아들이면서도 이 슬픔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스려요.



나는 이 아주머니와 봉은 잊어버리고 병에 걸린 나무의 움푹 패인 곳을 만져 보았습니다. 어쩌면 나무도 만져 주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무 옆에 서 있으면 내 생각을 듣겠죠. (60쪽)



  아침에 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 손길을 받으면서 잠을 깹니다. 저녁에 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 손길을 받으면서 잠자리에 듭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아침저녁으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줍니다. 아침저녁으로 함께 책상맡에 앉아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해요. 아침저녁으로 집 안팎에서 함께 뛰고 달리면서 놀고요.


  나를 낳은 아버지한테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나를 낳은 아버지한테는 꼭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이녁 손자하고 스스럼없이 웃고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내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하고 말을 거의 안 섞으며 살았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오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만히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을 즐겁게 받을 적에 참말 즐겁게 자라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랑도 기쁘게 받을 때에 그야말로 기쁘게 자라요.


  아이한테 아버지 자리란 ‘사랑자리’요 ‘꿈자리’입니다. 아이한테 어머니 자리도 ‘꿈자리’이고 ‘사랑자리’예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도 아이는 늘 ‘사랑자리’이면서 ‘꿈자리’일 테니까, 어버이랑 아이는 서로서로 ‘사랑꿈자리’이고 ‘꿈사랑자리’로 한집살이를 이루리라 봅니다. 4349.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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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비밀 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세진 옮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 비룡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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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7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쓴다

― 엠마의 비밀 일기

 수지 모건스턴 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이세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8.9.26. 6500원



  초등학교에서는 으레 일기쓰기를 시킵니다. 이러면서 일기검사를 합니다. 일기를 쓰도록 하는 까닭은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되새긴다든지 새로운 하루를 내다보면서 내 삶을 아로새기는 길을 알려주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잖은 학교에서 적잖은 교사는 ‘일기검사’를 숙제로 시켰고, 이 숙제를 안 하면 매질이나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나는 1988년에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일기검사’에서 풀려난다는 대목이 대단히 기뻤습니다. 즐겁게 쓰도록 북돋우는 일기가 아닌 숙제와 매질(체벌)로 얼룩진 일기검사만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5년에 ‘일기검사’는 어린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그냥 검사’만 하는 일로는 틀림없이 ‘사생활 침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따스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일기검사’는 ‘인권침해’가 될 테지요. ‘검사’라는 말이 붙는 대목부터 ‘일기검사’는 아이를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돌보려는 숨결이 깃들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기장에 남겨 보렴. 이건 엠마의 비밀 일기장이야.” 미레유 아줌마의 설명을 듣고, 엠마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줌마,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제 이름밖에 못 쓰는걸요…….’ (4∼5쪽)




  수지 모건스턴 님이 글을 쓰고, 세브린 코르디에 님이 그림을 그린 《엠마의 비밀 일기》(비룡소,2008)를 읽으면서 일기쓰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6년부터 아홉 살이 되고, 2016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로 하면서 일기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돌아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서 띄어쓰기라든지 받침이라든지 글씨쓰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쓰는 일기를 ‘검사’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적에 어느 낱말에서 띄고, 어느 낱말은 어떻게 쓰는가를 ‘살피’기만 합니다. 잘 틀리는 대목은 따로 ‘쓰기 공책’을 마련해서 찬찬히 보기글을 들면서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자르다’라는 낱말은 ‘자른 뒤·자르니까’처럼 ‘자 + 르’ 꼴로 쓰기도 하지만, ‘잘랐다·잘라내다’처럼 ‘잘 + 라(랐)’ 꼴로 쓰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을 짚어 준다든지, 일기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때에 스스로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일러 주려면, ‘검사’가 아닌 ‘살피기’를 해야 하고,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일기를 쓰면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하루 이야기를 새롭게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미레유 아줌마는 엠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엠마야, 꼭 글로 쓰지 않아도 된단다.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도 되고……, 네가 그림을 그려도 되고, 나뭇잎이나 꽃을 따서 붙일 수도 있지.” (6∼7쪽)



  어린이책 《엠마의 비밀 일기》를 보면 글도 그림도 무척 곱습니다. 무엇보다 ‘일기쓰기’는 꼭 글로만 써야 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잘 밝힙니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사진을 붙일 수 있어요. 나뭇잎이나 껌종이를 붙일 수 있어요. 마음을 담는 ‘내 빈책’이 일기장입니다. ‘빈책(공책)’을 새롭게 이야기로 채우기에 일기장입니다. 텅 비어서 아직 아무런 얘기가 안 적힌 책에 내 나름대로 살아낸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차곡차곡 아로새기는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쓰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일기를 쓰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내 책을 쓴다’고 할 만하지요. 아이가 아이 나름대로 삶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겪고 헤아린 이야기를 아이 손으로 즐겁게 빚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테지요.




수요일에는, 돌아가신 자크 할아버지 사진을 붙였거요. (12쪽)



  가만히 돌아보면,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민학교는 한 교실에 쉰 아이나 일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학교는 한 반에 여든 아이가 넘기도 했어요. 한 반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을 적에는 ‘일기검사’가 ‘썼느냐 안 썼느냐’라든지 ‘얼마나 썼느냐’라든지 ‘어제 쓴 얘기를 똑같이 베꼈느냐 안 베꼈느냐’ 따위를 따지면서 아이들을 매질(체벌)하는 무시무시한 숙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로서도 아이를 하나하나 살뜰히 살피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지기 어렵지요.


  어른(어버이나 교사)이 아이들 일기를 들여다본다고 할 적에는 아이가 제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가 되고 이슬떨이가 되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따지지 않고, 즐겁게 삶을 쓰고 기쁘게 이야기를 짓도록 곁에서 도우려는 뜻으로 일기를 살피면서 도움말을 들려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레유 아줌마를 만난 날, 엠마는 아줌마에게 비밀 일기장을 살짝 보여줬어요. 아줌마는 일기장을 펴 보고 환하게 웃었지요. “엠마가 참 재미있게 지냈구나.” (22∼23쪽)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일기쓰기를 서로 즐겁게 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재미있게 지내는 하루를 재미나게 돌아보려고 일기를 쓴다는 뜻을 함께 살필 수 있을 때에 기쁘리라 봅니다.


  일기는 숙제가 아닙니다. 일기쓰기는 고단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섣부른 일기검사로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힘들게 한다든지, 무엇보다 아이가 제 이야기를 숨기거나 감추면서 안 쓰는 일이 생기도록 하지 말 노릇입니다. 일기는 아이가 스스로 쓰고 스스로 되읽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가꾸도록 하는 멋진 글쓰기인 줄 알아차리도록 도와야지 싶습니다.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씁니다. 지구별에도 우주에도 그야말로 딱 한 권만 있는 책을 아이가 씩씩하게 씁니다. 아이가 누린 하루는 참말 이 지구별에서도 온 우주에서도 꼭 하루뿐인 삶이고, 둘도 셋도 없는 삶입니다. 이 아름답고 멋지며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가 손수 쓸 수 있을 때에 서로서로 활짝 웃으면서 기쁜 노래가 흐를 수 있습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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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 - ‘사회’를 아는 만큼 내가 보인다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3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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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7



아이들은 왜 ‘사회를 알아야’ 하는가?

―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

 손석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12.25. 12000원



  곁님하고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기 앞서부터 이러한 마음이었고, 아기를 낳은 뒤에도 이러한 마음입니다. 큰아이뿐 아니라 작은아이도 학교에 안 보내려 해요.


  곁님하고 내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낸다고 하는 얘기를 듣는 이웃은 ‘나중에 사회생활을 어떻게 시키’려고 하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걱정스러울는지 모르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은 굳이 ‘사회생활을 해야’ 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회사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연금생활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회라는 곳에서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키울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사랑을 가꿀 노릇입니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처럼 입시 지옥에 갇혀 학교를 마치자마자 저마다 학원으로 가거나, 밤이 깊도록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모습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살풍경입니다. (14쪽)


한국 사회에서 ‘규제 완화’를 쓸 때, 그 대부분은 사회구성원의 권인이나 인권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많은 돈(이윤)을 벌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완화할 때 어떻게 될까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납니다. (18쪽)



  손석춘 님이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철수와영희,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손석춘 님은 ‘사회’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이 책에서 밝히면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푸름이 스스로 이 땅에서 어른이 될 적에 마주할’ 삶터가 어떠한 결인가를 다루려 합니다. 정치권력이나 국가권력이 사람들 생각을 옭아매거나 얽어매는 틀인 ‘사회’가 아니라, 푸름이가 앞으로 ‘새로운 어른’이 되어서 ‘새롭게 어우러질 삶터’인 사회를 어떻게 가꾸거나 일굴 적에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권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고등학교 졸업생과 대학 졸업생 사이에 월급 차이가 없이 일만으로 평가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많은 10대들의 꿈이 바뀔 수 있습니다. (25쪽)


외부 침략이 없고 내적 착취가 상대적으로 적은 ‘태평성대’에도 노비나 천민들은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평민들도 양반의 위세에 내내 눌려 살아야 했지요. (62쪽)



  사회생활은 회사생활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다만,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회사생활만 사회생활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버는 살림일 때에 사회생활이 아니라, 스스로 가슴에 품은 꿈을 일구는 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사회생활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만 밥을 먹지 않아요. 손수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얻어도 밥을 먹습니다. 돈을 벌어서 옷을 사야만 하지 않습니다. 모시풀을 심고 거두어서 실을 얻은 뒤, 모시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옷을 지어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을 들여 집을 장만해야 집짓기나 집살이가 아닙니다. 손수 숲을 가꾼 뒤에 숲에서 나무를 베어 집을 지어도 집짓기요 집살이입니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어올리고 동상을 세우는 데 앞장선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기적을 이룬 사회’입니다 … 그렇다면 정부 수립 과정이 곧 분단 수립 과정이었다는 엄연한 사실, 그 과정과 결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 일방적인 산업화로 노동자들이 희생당한 사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인 민중의 생활은 더 팍팍해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돤 사실 … (33, 35∼36쪽)



  나는 아직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직 우리 아이들한테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밥이며 옷이며 집을 손수 짓는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서로 돕고 북돋우는 살림을 가꾸려는 꿈을 키웁니다.


  돈으로 짓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짓는 삶을 생각합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으로 어떤 일을 하지 않고, 꿈과 사랑으로 일을 하는 나날을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한테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바랍니다만, 어떤 일을 할 적에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아 사랑을 돌보는 삶’에는 자격증도 졸업장도 없습니다. 자격증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낳지 않아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를 낳지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손길은 자격증이나 졸업장으로 키우지 않아요. 오직 사랑스러운 손길이 될 때에 씨앗을 심어서 돌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 바로 그것이 개인의 등장이었습니다. (88쪽)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자본이 누리는 절대적 자유’를 뜻하므로 그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자본 독재’가 됩니다. (105쪽)


그들(조선 사회 양반·지식인)이 말하는 공론, 언로와 간쟁은 신분제 사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양반계급이 백성을 위한다며 내세운 ‘민본 정치’ 또한 신분제도의 틀에 갇혀 있었지요. (114쪽)



  청소년 인문책 《10대와 통하는 사회 이야기》를 살피면, 조선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쥔 이들’이 ‘사회 밑바탕을 이룬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얼마나 옥죄면서 괴롭혔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언제나 권력을 지키려고 ‘사회’를 단단하게 짓누르면서 톱니바퀴 얼거리를 짰어요. ‘사회 밑바탕을 이룬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톱니바퀴로, 그러니까 소모품으로 다루는 얼거리를 짰지요.


  비정규직이라든지 정리해고란 무엇인가 하면, 수수한 여느 사람들이 언제나 소모품이 되어 ‘쉽게 갈아치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벌이는 슬픈 몸짓입니다. 서로서로 이웃이요 동무로 여긴다면, 어느 사회에서든 비정규직이 있을 수 없고 정리해고도 나올 수 없어요. 자격증이나 졸업장 때문에 일삯을 다르게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가난이나 푸대접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전쟁무기와 군대 때문에 돈을 엉뚱하게 쓰느라, 막상 삶과 살림(문화와 복지)에는 등을 지는 사회 얼거리가 되어야 할 까닭이 없지요.



‘국민’이라는 번역은 옳지 못합니다. ‘people’은 결코 ‘국민’으로 옮길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특정 국가의 틀에 갇힌 국민이 아니거든요. (133쪽)



  먼먼 옛날부터 슬기로운 어른은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쳤습니다. 슬기로운 어른은 학교나 책이나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쳤습니다. 풀이나 나무나 짐승이나 벌레한테 붙인 이름은 모두 수수한 여느 사람이 사랑으로 지어서 붙였습니다.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이 있어야 아는 이름이 아니라, 수수한 여느 사람이 스스로 삶을 짓고 가꾸면서 고장마다 다 다르게 곱고 재미난 지어서 붙인 이름입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마을에서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웃고, 꿈으로 빚는 보금자리에서 꿈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노래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사회생활이 아닌 마을살이입니다. 사회가 아름답도록 하기에 앞서 마을이 아름다울 노릇입니다. 그리고 마을이 아름다우려면 먼저 여느 집살림부터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자세히 분석하면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 성장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를 계속 부추겨 물건을 사도록 조장하고, 그렇게 이윤을 남김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는 강화되어 갑니다. (171쪽)



  아이들은 사회를 알아야 하기 앞서 ‘삶’을 알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을 외우기 앞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따거나 자격증을 거머쥐기 앞서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곁님하고 시골에서 삶하고 사랑하고 꿈을 함께 짓고 누리면서 이러한 숨결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돌보려 합니다. 교과서를 쓰고 시험점수를 받아야 하며 입시지옥 대학바라기로 나아가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 삶이랑 사랑이랑 꿈을 아이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나날을 생각합니다.


  삶을 알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안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배울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꿈을 가꿀 때에 비로소 사회도 제대로 가꾸는 길을 걷는다고 느낍니다. 삶도 사랑도 꿈도 모르거나 배운 적 없이 어릴 적부터 사회생활에 길든다면 그예 삶도 사랑도 꿈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몸짓을 보이지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사회를 제대로 배우고 알’도록 먼저 삶·사랑·꿈부터 제대로 배우고 알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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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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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22



어머니는 열여덟 살 때 뭘 알았어요?

― 사랑하는 안드레아

 룽잉타이·안드레아 글

 강영희 옮김

 양철북 펴냄, 2015.11.23. 13000원



  아침에 밥을 하다가 그만 엄지손가락을 칼로 베었습니다. 물을 만지는 부엌일을 하자면 밴드를 안 붙일 수 없습니다. 밴드를 붙이고 아침을 마저 짓고 밥상을 차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왼손 엄지손가락에 밴드를 붙인 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은 무릎이 크게 까지건 말건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나, 밴드 붙이기를 재미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로 여겨요. 좀 긁히거나 까지거나 핏방울이 맺더라도 그냥 두면 곧 낫는 줄 알지만 밴드를 붙이고 싶지요. 이러다 보니 아버지가 손가락에 감은 밴드를 아주 빨리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오늘 큰아이는 좀 남다르게 말합니다. “아버지 손가락에 밴드 붙였으니 내가 설거지를 할게.” 씩씩하고 의젓한 살림순이는 밥그릇을 다 비운 뒤 아버지 그릇이랑 동생 그릇까지 정갈하게 설거지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너는 물었어. “엄마, 엄마는 열여덟 살 때 뭘 알았어요?” (19쪽)


엄마가 만 열여덟 살이었을 때 아폴로가 달에 착륙했고, 미국과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를 침입했어. 미국 전역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23쪽)



  룽잉타이 님하고 안드레아 님이 주고받은 글을 엮은 《사랑하는 안드레아》(양철북,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어머니(룽잉타이)하고 아이(안드레아)가 나눈 글을 가장 많이 가장 많이 실었지만, 안드레아보다 어린 동생이 형한테 쓴 글도 더러 싣습니다. 두세 사람이 주고받은 글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보낸 글도 사이사이 함께 싣습니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아이가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어머니하고 아이가 주고받는 글을 읽은(신문에 실린 글을 읽은) 사람들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 느낌하고 생각을 보냈고, 이 글 가운데 몇 꼭지를 나란히 싣습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사랑하는 안드레아》는 아이가 스스로 이 땅에 우뚝 서서 생각을 곱게 가다듬고 튼튼하게 갈고닦는 길에 동무나 이웃이나 곁님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함께 빚은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엄마는 걱정이 지나치신 것 같아요. 여름에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말예요, 어느 날 아침, 동생은 아직 자고 있고 저는 막 잠에서 깬 참이었죠. 엄마는 그런 절 붙들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느니, 너무 많이 논다느니, 공부는 뒷전이라느니 불평을 늘어놓으셨어요. (56쪽)


안드레아, 너는 어렸을 때 네가 찬 공이 어느 집 정원에 떨어졌을 때조차도 선뜻 들어가서 가져오지 못했어. 지금의 너는 필립에게 뭐라고 말해 줄래? (68쪽)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글을 씁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이가 글을 씁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가 살림을 가꿉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아이가 살림을 거듭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가 아이랑 손을 맞잡고 즐겁게 놉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아이가 어버이랑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어머니는 아이한테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라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면 되어요. 그리고, 어머니라고 하는 자리는 어머니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서 스스로 곱게 거듭나면서 이러한 숨결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 훌륭하거나 빼어나거나 멋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면 되지요. 그리고, 아이라고 하는 자리는 아이 스스로 생각을 가꾸고 북돋우고 살찌우고 돌보면서 스스로 새롭게 깨어나면서 이러한 숨결을 어버이한테 보여줍니다.



저는 이 사회구조 속의 가상적인 일면만 볼 수 있을 뿐이에요. 심지어 그것을 참아낼 수도 있고요. (71쪽)


“엄마는 성인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도덕의 취사선택은 개인의 일이야. 논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76쪽)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쓴 어머니는 아이한테 “엄마는 거룩한 사람(깨어난 사람/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참말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어머니가 안 거룩하거나 안 깨어나거나 안 슬기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새롭게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지식이나 정보로 가르칠 수 없는 줄 깨닫는 어버이는 누구나 ‘슬기로운 숨결’로 거듭나요.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가르치고 보살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즐거운 삶이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어버이는 모두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나요.


  우리 집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웃을 곱게 안고 포근히 아낄 수 있는 손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한테 어버이인 나는 ‘거룩한 사람’일까요? 네, 나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거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구태여 거룩하고 훌륭하고 이러하고 저러하고 하는 이름을 떠나서, 어른으로 기쁘게 서고 어버이로 즐겁게 서며 사람으로 기쁘게 설 수 있는 숨결입니다. 아이가 배울 만한 몸짓을 스스로 지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는 넋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습니다.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삶을 물려받지요. 내가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이나 사랑이란 언제나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삶이요 사랑입니다.



형은 반년 동안 사귄 친구들이 유럽 학생들뿐이고 본토 학생은 거의 없다면서, 그 이유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초래한 장벽 때문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진짜 중요한 건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 홍콩에서 2년을 살면서도 나는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사귀지 못했어. (178쪽)


집을 나서기 전 미국과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에게 시위행진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다들 기말시험 준비 때문에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186쪽)



  나는 나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서 오롯이 서는 사람입니다. 나는 나다우면서 아름답고 아이는 아이다우면서 아름답습니다. 내 곁에 있는 이웃은 이녁대로 아름다우며, 이웃이 낳아 돌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저마다 다르게 슬기롭습니다. 저마다 다르면서 사랑스럽고, 저마다 다르게 기쁜 노래를 불러요.


  아침저녁으로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춤을 춥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짓는 춤놀이는 똑같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놀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밤마다 흐드러지는 별빛을 잔치처럼 누립니다.


  이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줄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이 아이들이 맛나게 밥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이 아이들이 내 노래를 즐겁게 들어 주니 재미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저희 나름대로 새롭게 노래를 지어서 불러 주니 싱그럽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네게 묻고 싶은 건 말이야, 안드레아. 네가 말하는 키치가 대체 어떤 거니? 네 아버지 세대의 독일인들이 벽에 걸어 놓은 마리아나 목각으로 만든 천사는 예술이니, 키치니? (231쪽)


빈랑(담배처럼 씹는 것)을 씹는 사람을 왜 정부에서 관리해야 하죠? 그런 논리라면 양치질하지 않는 사람, 변기를 사용한 뒤 물을 내리지 않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방귀를 뀌는 사람 등도 다 정부가 관리해야겠네요? (259쪽)



  아이한테 글을 써서 띄운 어머니(룽잉타이)는 어머니대로 새롭게 자랍니다. 어머니한테 글을 써서 보내는 아이(안드레아)도 아이대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머릿속에 담은 지식을 글로 써서 띄우지 않아요. 이 지구별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썰미를 글로 담아서 띄웁니다. 교과서나 책에 적힌 이론을 글로 써서 보내지 않지요.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빚어서 보냅니다. 몸소 치른 삶을 글로 엮어서 보냅니다.


  온누리 모든 어버이와 아이가 저마다 수수한 보금자리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교사가 되거나 박사가 되어야 이야기를 잘 들려줄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요 아버지이면 됩니다. 그저 어버이요 어른이면 돼요. 그리고 아이들은 그저 아이인 넋으로 어버이와 어른을 마주하면서 꿈을 새롭게 지으면 됩니다. 글 한 줄이란 꿈이고, 글월 두 줄이란 사랑입니다. 4348.12.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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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 책과함께어린이 찾기 시리즈
정숙영 외 지음, 김영곤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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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5



삶을 가르치는 이야기꽃을 나누자

― 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

 정숙영·심우장·김경희·이흥우·조선영 글

 김영곤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3.3.14. 9800원



  학문을 하는 이들은 ‘민담’이나 ‘민간 설화’ 같은 말을 쓰기도 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이야기’라고만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따로 ‘옛날이야기’나 ‘옛이야기’라는 이름을 쓰지만, 얼마 앞서까지 그냥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랐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옛날 옛날 한 옛날에”처럼 말머리를 열곤 했기에 ‘옛날이야기’나 ‘옛말’이라고도 하지만,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꾸준히 흐르고 한결같이 사랑받는 이야기이기에 아이들은 늘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이 새끼 서 발이 여러 과정을 거쳐 새색시를 얻고 부자로 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 작고 사소한 것들이 거듭되다 보면 아주 큰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이야기로는 다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지. (14쪽)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핍니다. 왁자지껄 이야기잔치를 이룹니다. 이야기하고 얽힌 말은 ‘이야기밥·이야기꽃·이야기잔치’입니다. 따로 ‘옛이야기밥·옛이야기꽃·옛이야기잔치’처럼 쓰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어도 귀를 쫑긋 기울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어도 새롭게 살을 붙여서 새로운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마음을 차근차근 슬기롭게 가꿉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은 마음을 새삼스레 돌아보면서 삶을 즐거움으로 일구는 길을 추스릅니다.



우리가 아는 옛이야기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이야기보다 호랑이를 골탕 먹이고, 놀려 먹고, 줄줄이 꿰어 잡는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아. (20쪽)



  《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를 읽습니다. 예부터 고이 흐르는 이야기에 서린 생각과 뜻과 보람과 꿈을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옛날부터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옛이야기)에는 ‘생각을 깊고 넓게’ 담습니다. 아이들이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도우려는 숨결을 이야기 한 자락에 담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기쁘게 꾸릴 수 있도록 이끌려는 넋을 이야기 두 자락에 담지요.


  그야말로 삶을 넌지시 가르치려고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드러내어 ‘훈육’이나 ‘훈계’를 하려는 뜻이 아니라, 재미를 섞고 웃음이나 눈물도 담으면서, 삶꽃과 삶잔치를 이루기를 바라는 이야기꽃이요 이야기잔치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도 이야기에 서린 뜻을 새롭게 되새깁니다.




자린고비만큼은 아니지만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상황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 예를 들면 건강하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다이어트가 그렇지. 건강한 몸은 뒷전이고 오로지 다이어트가 목적이 되어서 무작정 굶기만 하는 경우 말이야. (32쪽)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서야 우리는 삼형제가 실은 스스로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바보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뛰어난 재주를 익히게 하기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먼저 가르쳤어야 했던 거야. (42쪽)



  이야기를 아는 아이들은 어떤 일을 맞닥뜨릴 적마다 스스로 생각합니다. 이야기 하나에서 길찾기를 한다고 할 만합니다. 겨울날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고 나누는 이야기도 되고, 여름날 나무 그늘 밑에서 바람을 쐬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되는데, 버스나 기차를 타고 먼먼 마실을 다니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됩니다. 밭에서 함께 호미를 놀리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되고, 밥상맡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되며,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쉬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됩니다.


  함께 나누지 못할 만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빌어 꿈과 사랑을 노래하고, 이야기로 삶과 살림을 밝히며, 이야기로 두레와 어깨동무를 보여줍니다. 어머니 말을 듣지 않던 개구리 이야기이든, 제비 다리를 고친 이야기이든, 베를 짜는 베짱이 이야기이든, 미리내를 건너며 한 해에 꼭 한 번 살짝 만나는 두 사람 이야기이든, 박을 타거나 나무를 타거나 달을 타는 이야기이든, 오랜 나날에 걸쳐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흐르는 이야기에는 오늘 이곳에서 삶을 재미나면서 새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 차곡차곡 얹힙니다. 한 사람 입을 거치면서 새롭게 살아나고, 두 사람과 세 사람 마음을 지나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이야기예요.




얼핏 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 꼬마 신랑의 행동은 매우 중요해. 꼬마 신랑은 자신이 고자질을 하면 시어머니 앞에서 신부가 곤란해진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던 거지. 이 일이 있고 난 뒤 신부와 꼬마 신랑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67쪽)


이 이야기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얻으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이 이야기에서는 훨씬 중요한 게 아닐까? (94쪽)



  아이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반기고 좋아합니다. 삶을 배울 수 있는 무척 뜻깊은 ‘말밥’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머릿속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몸짓을 뉘우치거나 되새깁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을 다독여요. 이야기를 들은 뒤에 내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짓기도 합니다. 내가 겪은 어떤 일이 ‘옛날 옛적 이야기’ 아닌 ‘바로 오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날마다 겪는 어떤 일을 살며시 바꾸어서 이야기로 지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두 아이가 서로 툭탁거리는 모습을 쥐나 고양이 같은 짐승을 빌어서 조용히 타이를 만 합니다. 두 아이가 서로 아끼며 돌보는 모습을 박새나 까마귀 같은 짐승을 빌어서 가만히 북돋울 만하지요. 신분하고 계급으로 사람을 가르던 지난날에는 이야기 틀을 빌어서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이 잘못하는 일을 차분히 나무라기도 했을 만합니다.




성에 대한 호기심은 무조건 피하거나 억제하기만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걸 그 시절을 겪어 낸 훈장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아이에게 구슬을 삼키라고 충고했던 거지. (103쪽)



  《옛이야기 속에서 생각 찾기》는 이야기 한 자락을 읽으면서 조금 더 깊고 넓게 생각을 키워 보자는 뜻을 보여줍니다. 그저 재미있거나 우습거나 놀랍기만 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이 이야기 한 자락마다 생각을 살찌울 만한 대목이 녹아들었다는 뜻을 밝히지요.


  이야기를 들려준 어른은 아이들한테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될까?’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준 어른은 아이들한테 딱히 보탬말을 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희 깜냥껏 생각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떡장수 할머니하고 범이 얽힌 이야기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할 만하고, 콩쥐하고 팥쥐가 나오는 이야기에서 ‘우리 형(동생)하고 어떻게 지내야 즐거울까’를 생각할 만합니다.


  그리고 어버이로서 어릴 적에 몸소 겪거나 본 일을 알맞게 가다듬으면서 ‘온누리에 꼭 한 가지만 있는’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딴 사람 옛이야기’가 아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한결 한껏 키울 수 있어요.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 추운 겨울은 포근하게 흐릅니다. 이야기로 마음을 주고받는 동안 더운 여름도 시원하게 바뀝니다. 4348.12.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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