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아빠 육아 - 할 일 많은 직장인 아빠의 육아법,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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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7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곱다

― 하루 10분 아빠 육아

 안성진 글

 가나북스 펴냄, 2015.11.25. 13000원



  《하루 10분 아빠 육아》(가나북스,2015)를 쓴 안성진 님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느 아버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성진 님은 회사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도맡아서 보살피지 못합니다. 다른 회사원도 엇비슷할 텐데, 아침에 일찍 일터로 가서 저녁에 늦게 집으로 돌아오지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밥을 챙겨 준다든지, 아이들 옷을 챙겨 입힌다든지, 아이들이 새롭게 배울 것을 찬찬히 살펴서 알려주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안성진 님으로서는 ‘하루 10분’을 다짐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10분씩 오롯이 아이하고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겠노라 하고 다짐합니다.



지금 중년 세대들의 어릴 적 부모들은 다 살갑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저절로 크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훌쩍 크고 나니 부모 자식 간의 사이가 어색하다. (17쪽)


표현이 어색한 아버지들이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꼭 말로 해야 알겠느냐?’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꼭 말로 표현하세요!’라고. (24쪽)



  아이하고 하루 10분 동안 얼굴을 마주하겠노라 하는 다짐은 어떠할까요? ‘고작 10분’일까요? 아니면 ‘10분씩이나’일까요?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육아》라는 책을 빌어서 ‘10분’을 말씀하는데, 10분이란 두 가지 뜻입니다. 첫째, 참말로 꼭 10분은 아이하고 두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에요. 잔소리나 꾸중을 늘어놓는 10분이 아니라, 살가우면서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이야기로 10분을 누리자는 뜻이에요. 둘째, 10분은 상징입니다. 아이하고 날마다 10분씩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놀이를 즐길 줄 안다면, 10분이 아닌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얼마든지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온 하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설이나 한가위에 모처럼 ‘회사일을 안 하고 쉰다’고 한다면, 이때에 이 나라 수많은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낼까요? 회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며칠 동안 아이하고 얼마나 재미있는 하루를 지을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몹시 바쁘기에 주말에만 놀자고 아이를 달랜다면 ‘한집에 살아도 주말 아버지’가 될 텐데, 아이를 낳고도 ‘주말 아버지’로 산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기쁠 만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쁘거나 힘들더라도 ‘하루 10분’은 꼭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만 생각하며 아이하고 함께 짓는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루 10분 육아》라고 할 만합니다.



심신이 지쳐 힘들 때도 아이들과 놀아 줄 수 있어야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어도 아이들과는 즐겁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0쪽)


평소 아이와 대화가 없는 아빠라면 아이의 마음을 읽을 기회를 갖지 않는 것과 같다. (48쪽)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기에 소홀하면 실패하는 육아를 하는 것과 같다. (61쪽)



  아침이 되면 마당으로 내려가서 나무를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합니다. 저녁을 지나 밤이 가까우면 손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별한테 밤 인사를 합니다.


  나는 온 하루를 아이들하고 함께 보냅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이러면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일을 합니다. 한 해에 몇 차례쯤 혼자 바깥일을 보러 시골집을 떠나는 날이 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늘 아이들 곁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나는 아이들하고 ‘하루 10분’이 아닌 ‘하루 내내’ 지낸다고 할 텐데, ‘때와 곳(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서 ‘아이 마음 읽기’를 늘 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는다고 해서 ‘하루 10분’이 아니라, 밥상맡이 아이들한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누릴 자리’가 되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하루 10분’인 셈이에요.


  나무한테 인사를 하든, 별한테 손을 흔들든, 달과 해를 함께 바라보든, 흙과 풀을 함께 만지든, 자전거를 함께 달리든, ‘같이 있다’를 넘어서 ‘같이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하루 10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아이들도 즐겁고 부모인 나도 즐거운 일이다. (73쪽)


아이와 함께 나가게 되면 이렇게 한 번 해 보기 바란다. 아이가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그냥 놀아 주는 것이다. (115쪽)


이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아이들에게 저녁이면 책을 읽어 준다. 결심한 대로 매일 읽어 주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162쪽)



  안성진 님은 《하루 10분 아빠 육아》라는 책 겉그림에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같은 글월을 뚜렷하고 새겨 넣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은 어머니한테 넘길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돌봄이 아줌마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요, 아이들을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끝이 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배우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함께 살면서 생각을 키우고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나니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으려고 태어나니까요.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읽으면, 안성진 님은 ‘아이 아버지’인 이 땅 ‘이웃 아버지’들한테 ‘육아책’을 바지런히 챙겨서 읽자는 이야기를 힘주어 밝히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버지로 사는 수많은 한국 사내는 어려서부터 ‘아이 돌보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아이를 낳은 뒤에라도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자고 이야기해요. 이제껏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집일이나 아이한테 등을 돌리면서 회사일이나 바깥일만 챙기는 몸짓이 되지 말고, 아이가 모든 삶을 새롭게 배우듯이 아버지도 모든 집일이나 돌봄을 새롭게 배울 노릇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다. 즐겁지 않은 일을 의지만 가지고 해내기란 쉽지 않다 … 사랑하게 되면 대상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반대로, 알게 되면 더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 익숙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더 배우고 싶어한다. (190쪽)



  우리는 모두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났어요.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어요.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한테서 넉넉히 사랑받았을 수 있고,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수 있어요. 나는 어릴 적에 어떤 나날을 보냈든,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새롭게 보금자리를 지으면서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에 기쁘게 사랑받은 아이로 자랐으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기쁘게 사랑을 물려주는 살림을 꾸리면 돼요. 내가 어릴 적에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야 했으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우리 아이들한테 새로 짓는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살림을 꾸리면 되고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을 바란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저희한테 돈을 달라 하지 않아요. 아이는 늘 사랑을 바라지요. 아이는 저희한테 장난감을 달라 하지 않아요. 때로는 장난감을 놓고 투정을 할 테지만, 아이는 ‘사랑’하고 ‘장난감’ 사이에서 늘 사랑을 손에 쥐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어버이들은, 우리 아버지들은, ‘사랑’하고 ‘일’ 사이에서 어느 쪽 길을 걸을 때에 즐거울까요? 삶을 곱게 짓는 슬기로운 숨결은 어떻게 가꿀 만할까요?


  하루 10분이 어렵다면 하루 1분이라도 아이하고 웃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야기하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하루 10분을 누린다면 하루 11분, 하루 12분, 하루 13분 …… 이렇게 시간을 늘리면서 더욱 재미나면서 알찬 나날을 짓는 몸짓이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아버지가 고운 어른으로 일어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아버지가 착한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아버지가 참다운 슬기로움을 가슴에 품는 어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해요. 4349.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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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 돈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3
이시백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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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글을 손질해서 새롭게 띄웁니다.


..


푸른책과 함께 살기 91


돈은 그저 돈이에요
―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이시백·제윤경·박성준·박권일·강신주·송승훈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2.3.24. 12000원


  책방에서는 책을 팔기도 하면서, 책에 담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기 마련입니다. 책방은 예나 이제나 책만 팔지 않습니다. 책과 얽힌 사람들 삶을 함께 보여줍니다. 커다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는 이들 커다란 책방과 얽힌 사람들 삶을 보여줍니다. 조그마한 마을에 깃든 조그마한 책방에서는 이들 조그마한 책방과 얽힌 사람들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책방이든 삶을 보여줍니다. 어느 책방에서든 삶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큰책방을 다니면서 큰책방 삶과 익숙해지고, 큰책방 삶을 시나브로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작은책방을 다닐 때에는 작은책방 삶과 가까워지며, 작은책방 삶을 천천히 맞아들입니다.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달동네 이웃들 삶을 내 살결로 받아들입니다.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 이웃들 삶을 내 숨결로 맞아들여요.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 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찾는 삶이요, 누구나 스스로 일구는 삶입니다. 어떤 이는 이쪽 자리에 서고, 어떤 이는 저쪽 자리에 섭니다. 저마다 이웃하는 삶이 다르기에 저마다 생각하는 삶이 다릅니다. 저마다 누리는 삶이 다른 만큼, 저마다 깨닫거나 알아채는 삶이 달라요.


.. 우리 나라에서 농민들이 1년 내내 열심히 농사지어서 받는 돈이 쌀 한 가마니당 20만 원이에요. 이에 비해 앞으로 수입될 미국 쌀의 예상 가격은 10만 원이 채 안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마트에 두 개의 쌀이 동시에 진열되어 있을 때 어느 쌀을 사 먹겠습니까 ..  (25쪽)


  오늘날 학교에서는 ‘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학문’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마을’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어린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키우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낳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집안일’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닌 적 있다면 하나하나 느끼리라 보는데, 학교에서는 어느 하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오직 교과서를 읽히고 시험을 치르며 점수를 따집니다. 학교에서는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다른 삶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짝꿍을 살가이 품에 안거나 어깨동무하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착한 삶하고 멀어집니다. 학교를 많이 다닐수록 참다운 사랑하고 등집니다. 학교를 자꾸 다닐수록 고운 꿈하고 등돌립니다.


.. 우리는 점점 돈에 대해 헷갈리는 세상을 살다 보니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돈 많은 친구가 당연히 부럽죠 … 처음엔 제 아이도 그랬습니다. 누구는 얼마 받고 누구는 어떤 옷을 입고……. 그러다 용돈을 스스로 결정해서 쓰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제 아이는 나이키니 뭐니 하는 브랜드를 잘 몰라요.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냥 자기 필요에 따라 돈을 쓰면서 그 자체에 만족했거든요. 자기는 원하는 걸 계획을 세워서 가지니까 즐거운 거예요 … 원래 돈을 벌려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번 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잘 쓰면 되겠죠 ..  (57, 61, 69쪽)


  학교에서는 흙이나 물이나 바람이나 햇볕이나 목숨을 가르치지도 않지만, 이 모두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지만, 스스로 ‘밥이 되는 곡식이나 열매’를 거둘 줄 모르기도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지을 줄 모르지만, 스스로 ‘옷으로 지을 감’을 어떻게 얻거나 마련해야 하는가를 모르기도 합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조차 ‘삶·사랑·꿈’ 어느 한 가지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학생쯤 되면 남녀가 끼리끼리 어울려 살섞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만, 살을 섞으려 할 뿐, 막상 사랑을 꽃피우거나 나누지 못합니다. 이제껏 겪거나 배우거나 받거나 나누지 못하던 사랑을 하루아침에 ‘열아홉 스물’이 됐대서 즐거이 누리지는 못하니까요.

  학교는 무언가 배우거나 가르치는 곳이라 하지만, 나로서는 학교에서는 어느 하나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좋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좋을까요. 아이들은 맨 먼저 무엇을 배워야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맨 먼저 무엇을 가르쳐야 좋을까요.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아이들은 무엇보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며 ‘꿈’을 키우는 길을 살펴야 하리라 느낍니다. 삶을 가르칠 때에 교사요, 사랑을 물려줄 때에 어버이가 되며, 꿈을 살피도록 이끌 때에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일’이든 ‘돈’이든 ‘몸’이든 무엇이든 이야기할 틀을 마련한다고 느낍니다.


.. 전쟁을 통해 ‘전쟁 상인’들이 버는 돈은 어디서 올까요? 자기 돈으로 전쟁을 할까요?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세금에서 나옵니다 … 우리가 대학에 가는 이유는 나중에 졸업해서 자기 노동력을 비싸게 팔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하면, 더 나은 조건 즉, 월급 더 받으려고 대학을 갑니다 … 서울대학교에 갔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 되었다고 좋은 상품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얘기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  (95, 162, 171쪽)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셋째 권으로 나온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인문학책방이라 하는 길담서원에서 청소년과 함께 나누는 인문학교실을 연다고 합니다. 서울 아이들은 참 좋겠구나 싶고, 서울 아이들은 이만 한 책쉼터라도 없으면 안 되겠구나 싶습니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서울인 만큼, 서울 푸름이들이 푸른 넋과 꿈과 사랑을 오롯이 건사하자면, 어디에서든 숨통을 틀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더 빛나는 삶길을 이야기할 수 있든 없든, 아이들이 참답게 생각하고 스스로 슬기를 빛내는 마당이 있어야 합니다.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이야기가 첫째로 ‘일’이었고, 둘째로 ‘몸’이었으며, 셋째로 ‘돈’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도시 삶터에서 먼저 눈길이 갈 만한 이야기대로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문득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가 일을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몸을 모르면 어떤 삶이 될까요? 돈을 모르면 어떤 살림이 될까요? 일이란 무엇이고, 몸이란 무엇이며, 돈이란 무엇일까요?

  기쁨을 찾는 일을 만나는 푸름이인가요? 사랑을 배우는 몸을 다스리는 푸름이인가요? 꿈을 가꾸는 돈을 마주하는 푸름이인가요? 우리 어른들은 푸름이한테 일과 몸과 돈을 어떻게 가르치거나 보여주는가요?


.. ‘로컬 푸드’라는 말 들어 보셨죠. 그렇게 되면 지역 경제도 살리면서 운반에 따르는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착한 기업’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아예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거죠. 천규석 선생이나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 같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소비 자체를 줄이지 않고서는 이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이죠 ..  (138쪽)


  돈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돈이란 무엇일까요. 어른들한테 돈이란 무엇일까요.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는 아이들한테 몹시 크게 다가올 만한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아이들로서는 무척 궁금하게 여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무엇을 이야기거리로 삼든 삶과 사랑과 꿈을 찬찬히 들려줄 수 있다면 좋은 노릇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는 푸른 아이들 스스로 돈이 무엇이라고 느끼도록 돕는 이야기마당이면서 이야기책이 될까요.

  시골 논밭에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얻는 어른이라면, 이렇게 시골 논밭에서 땀흘려 얻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즐겁고 좋은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하면 기쁘리라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쌀값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이보다는 ‘내 밥을 내가 마련하는 즐거움’을 돈으로 어떻게 따질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면 훨씬 기쁘리라 생각해요.

  전쟁 장사꾼이 죽음을 사고파는 일은 ‘군대’라는 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요. 전쟁 장사꾼 몇몇만 나쁜 놈이 되지 않아요. 전쟁 장사꾼과 정치 권력자가 만든 군대라는 틀에 들어가 ‘나라사랑(애국)’을 한다고 외치는 젊은이가 많아요. 이들 젊은이 목소리는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를까요. 이 대목을 짚으면서 이 나라 푸름이가 몇 해 뒤 맞딱뜨려야 할 ‘군 입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해요. ‘나라사랑’을 돈으로 따진다면, 군대와 무기와 전쟁을 돈으로 따진다면, 삶을 북돋우는 복지나 문화를 돈으로 따진다면, 아이들 스스로 아끼며 사랑할 나날을 돈으로 따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대목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해요.

  청소년 인문학교실은 좋은 이야기마당이라고 느껴요. 학교에서는 인문학교실이든 이야기마당이든 아예 없잖아요. 학교에서 삶을 이야기하거나 사회를 돌아보는 일이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애써 마련한 인문학교실이라 한다면 더 단단히 조이고 더 슬기롭게 가다듬으면 기쁘겠어요. 지식을 물려주거나 지식을 굳히는 인문학교실이 되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인문학교실 얼거리로 거듭나면 반갑겠어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돈이란 그저 돈입니다. 돈은 삶이 아니고, 돈은 사랑이 아니며, 돈은 모두가 되지 않을 뿐더러, 돈은 꿈이나 일이나 빛이 아니에요. 돈은 오직 돈입니다. 삶이기에 삶이고, 사랑이기에 사랑이며, 꿈이기에 꿈이에요. 4345.3.20.불/434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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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함께 사계절 아동문고 58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이선민 그림 / 사계절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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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5



‘어머니·곁님·여자’ 없는 집에 세 남자

― 용과 함께

 하나가타 미쓰루 글

 이선민 그림

 고향옥 옮김

 사계절 펴냄, 2006.1.18. 7500원



  하나가타 미쓰루 님이 쓴 어린이문학 《용과 함께》(사계절,2006)를 읽으면 세 사내가 나옵니다. 먼저 초등학교 일학년인 사내 아이가 나오고, 중학교 일학년인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여기에 이 두 사내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가 나와요.


  한집에 세 사내만 있는데, 아버지는 바깥일을 하느라 바빠서 집에는 ‘돌봄이 아줌마’를 둡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 손길이나 따스한 눈길은 하나도 받지 못하면서 마치 세 사람이 ‘남남’이라도 되는 듯이 지내요. 세 사내는 서로 말을 섞는 일조차 없고, 얼굴을 마주보는 일조차 드문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합니다.



우리 집은 반 년 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마마 보이였던 여섯 살짜리 남동생은 그 충격 때문에 맛이 가서…… 그러니까 문학적으로 말하면 슬픔이 너무 커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어두운 반 년 간을 거쳐 요즘에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11쪽)



  세 사내는 처음부터 남남처럼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이끄는 중학교 일학년 사내 아이 목소리가 밝히듯이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기 앞서’까지는 집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웃음이 흐르며 노래가 감도는 나날이었으리라 생각해요. 어머니가 죽어서 이 집을 떠난 뒤로는 하루아침에 말도 수다도 이야기도 웃음도 노래도 모두 사라졌구나 싶어요.


  이 집안에서는 말도 수다도 이야기도 웃음도 노래도 사라진 뒤에 더 크게 사라진 한 가지가 있어요. 바로 막냇동생한테서 거의 모든 말이 사라진 대목입니다. 더욱이 이런 막냇동생을 두고 큰아이나 아버지는 제대로 눈길을 두지 못해요. 마음을 쓰지도 못하고, 선뜻 말을 걸지도 못합니다. 함께 나들이를 다니지도 못하고, 다 같이 누리는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해요.



“저어, 네 애완동물 용…… 뭐였지? 으응, 포치였던가? 저어, 그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알려 줄 수 있겠니……?” 스파게티를 입 속으로 밀어넣던 도키오가 얼굴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정반대로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형, 포치를 싫어하지 않았던 거야?” (24쪽)


“그때 말이야, 내가 기운이 쑥 빠져 있으니까 엄마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알을 사두 주셨어. ‘이건 그냥 알이 아냐. 용의 알이야.’ 하면서. 나는 날마다 소중하게 품어 주었어. 그랬더니, 어느 날 알에서 진짜로 아기 용이 나왔어.” (30∼31쪽)



  아버지는 회사에 오래 머물면서 ‘곁님 잃은 슬픔하고 아픔’을 달랩니다. 형은 학교에서 노래패(밴드)를 하면서 ‘어머니 잃은 슬픔하고 아픔’을 다스립니다. 두 사람은 둘 나름대로 슬픔하고 아픔을 달래거나 다스릴 만한 길이 있는데, 이제 초등학교 일학년인 막냇동생은 슬픔하고 아픔을 달래거나 다스리는 길을 모릅니다. 한집에서 지내는 형이나 아버지는 이 아이를 달래 주거나 다스려 주지 않습니다. 따스히 품어 줄 겨를이 없을 만큼 두 사내도 슬픔하고 아픔이 커요. 어머니 품을 넉넉히 누려야 할 아이가 어머니 품을 더 누리지 못하는 허전함을 한집 사내들이 조금도 헤아려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중학교 일학년밖에 안 되는 형이 동생을 잘 달래 줄 만큼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일학년인 형도 중학생이기 앞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하고 아픔이 크지요. 형도 어머니 사랑을 더 받고 싶었을 테지요.


  어버이요 어른이라 할 아버지는 이제껏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맡아 본 적이 없으니 돌봄이를 둡니다. 그렇지만 정작 스스로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생각해 본다면 ‘죽고 없는 곁님 빈자리’를 더 느낄 수밖에 없어서 괴로우니까 등을 돌리는지 몰라요.


  이리하여 어린 막냇동생은 혼자 웅크립니다. 혼자 꿈누리를 헤맵니다. 형한테도 아버지한테도 말을 걸지 않고, 오로지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내가 먼저 가자고 해 놓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뭣하지만, 형제끼리 단둘이 외출한 것은 난생 처음이어서 꽤나 거북했다. (42쪽)


나는 그제야 내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답지 못했는지도 몰라,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잘 모른다.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아니니까. (56∼57쪽)



  떠나고 없는 사람을 그리느라,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서로서로 모릅니다. 형은 동생 마음을 모르고, 아버지는 작은아이 마음을 모릅니다. 게다가 동생도 형이나 아버지 마음을 모르고, 아버지는 큰아이 마음마저 몰라요. 세 사내는 서로서로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지냅니다. 한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이입니다만, 밥과 잠을 빼고는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는 사이예요. 따스함도 즐거움도 웃음도 노래도 없으니, 먹고 자기는 하지만, 집이 집다울 수 없는 흐름이요 얼거리입니다.


  막냇동생은 꿈속에서 어머니가 저한테 주었다는 ‘용 알’을 품어서 ‘새끼 용’이 태어나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용이 곁에서 늘 함께 있다고 여깁니다. 막냇동생은 용한테 ‘포치’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형은 이런 동생을 바보스럽게 여기지만, 시나브로 동생 마음을 느낍니다. 동생한테 한 걸음씩 다가서려 합니다. 동생도 저한테 다가서려는 형을 느끼고는, 동생 나름대로 형한테 한 걸음씩 다가서려 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큰아이한테도 작은아이한테도 다가서지 못합니다. 작은아이한테 ‘정신병(비정상)’이 생겼다고 여겨서 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아이하고 말을 섞거나 마음을 나눌 생각은 안 하는 채, 아버지다움이나 어버이다움이나 어른다움 모두 놓치거나 잊고 말아요.



아버지가 눈길을 돌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얘기는 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화를 내고 있다. 왜 그런 중요한 일을 진작에 말하지 않았는가, 하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중요하다니…… 포치에 대해서보다 그런 것이 더 중요할까. (76쪽)


“그 얼굴은 뭐냐? 잠깐이라고 했잖아, 잠깐이라고……. 저 녀석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가 나에게서 눈길을 돌린다. ‘정상이라는 게 무슨 말이야, 정상이?’ 나는 나 자신에게 묻교 있다. “저 녀석은 충분히 정상이잖아요. 엄마가 죽은 충격 때문에 이상해진 건, 충분히 정상적인 반응이잖아요.” (88∼89쪽)



  ‘어머니·곁님·여자’ 없는 집에서 세 남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머니가 없으니, 곁님이 없으니, 여자가 없으니, 그저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중에는 얼굴조차 안 보고 살아도 될까요? 조금씩 마음을 열 실마리를 스스로 찾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문학 《용과 함께》를 읽으면, 막냇동생은 ‘늘 곁에 있는 용’을 따라서 하늘로 뛰어오르려 합니다. 건물 옥상에서 ‘용이 부르는 손짓’을 따라서 참말로 하늘로 뛰어오르려 하지요.


  아버지는 이때까지 작은아이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채 ‘어른으로서 느끼는 슬픔하고 아픔’만 생각하느라 넋이 나갔는데, 이 모습을 보고는 머릿속이 와장창 무너집니다. 이제 보아야 하는 줄 알아차리지요. 이제 작은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줄 깨닫지요. 곁님이 없는 자리에 작은아이까지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비로소 느끼지요. 떠나서 없는 사람만 생각하느라 막상 바로 옆에서 사랑을 바라면서 기다리는 아이를 안 쳐다보면 어떻게 되는가를 온몸으로 찌릿찌릿 배우지요.


  갑작스레 떠나고 만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누구한테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떠난 사람만 있지 않아요. 곁에 있는 사람도 있어요. 아이들은 곁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기다려요. 아버지요 어버이인 자리에서는 ‘떠난 사람 생각’에만 얽매일 틈이 없습니다. 아버지요 어버이인 자리에서도 슬픔과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이 느낄 슬픔하고 아픔을 헤아릴 몫이 바로 아버지요 어버이인 사람한테 있습니다.


  마음이 다친 아이를 달랠 사람은 바로 어버이입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어루만질 사람은 바로 어버이예요. 어린이문학 《용과 함께》는 세 사내가 한집에서 어떻게 새로 일어서면서 씩씩하게 살림을 가꿀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을 수 없는 삶을 그리고, 아이도 자라며 어른도 함께 자라면서 생채기를 돌보는 삶을 그려요. 434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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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클럽 난 책읽기가 좋아
티에리 르냉 지음,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4



값비싼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못 사귄다

― 바비 클럽

 티에리 르냉 글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1.13. 7000원



  아이들은 저한테 남보다 값지거나 비싸거나 좋은 것이 있을 적에 ‘자랑’을 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저한테 있는 어떤 것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눔’을 하고 싶을까요? 다른 동무들 앞에서 ‘내 것 뽐내기’를 하면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아니면 여러 동무들하고 오순도순 도란도란 아기자기 신나게 놀 적에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티에리 르냉 님이 글을 쓰고, 한지선 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비룡소,2005)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릴 적을 더듬으니, 사내는 사내대로 로봇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기를 즐겼고,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인형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선보이기를 즐겼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부잣집 아이는 거의 없었기에 ‘자랑’할 동무는 거의 없었고, 자랑하려고 뭔가를 가져왔다가는 주먹힘이 센 아이한테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장난감이든 집에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까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는 옳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쉬는 때라든지, 낮밥을 먹는 때에 장난감으로도 놀고 싶습니다. ‘하지 마’나 ‘갖고 오지 마’라 말하지만 말고, ‘한번 가져와서 다 같이 놀아 볼까?’라 말하면서 장난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즐거운가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디에고가 히죽거린다. 축구공이 방금 바비 인형 캠핑카를 짓이겨 놓았다.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저놈의 물건, 아마 200프랑은 나갈 것이다. (9쪽)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상드라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증거가 없이 남을 몰아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교육 과정에 그런 게 있었다. (15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을 보면 여러 아이가 나옵니다. 맨 먼저, 이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학교에서 권력을 흔드는 어머니를 둔 부잣집 가시내 아이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이를 둘러싼 ‘바비 클럽’이 되는 가시내 아이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아랍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가시내 아이가 나와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버이 권력’에 맞추어 똑같이 움직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서운 모습이에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고스란히 가르치거나 물려준 셈이거든요. 사회를 주름잡는 권력이나 이름값이 있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동무들 앞에서 똑같이 권력이나 이름값을 휘두르려고 해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교육 과정에 나온 대로 하는 어설픈 중립’을 지킵니다.


  모든 말썽과 실마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까요? 어른인 교사는 팔짱을 끼기만 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녁이 거느리거나 휘두르는 권력을 아이들이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이 즐거울까요?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없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높은 어버이를 둔 아이’한테 억눌리거나 짓눌려야 할까요?



이 아랍 아이는 이번 학기에 전학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유명한 인형을 하나 들고 나타나서 바비 클럽 여자애들한테 다가갔다. “나, 너희들이랑 놀아도 돼?” 오렐리는 찬성하지 않았다. 걔네 식구들은 아랍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아랍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21쪽)



  내 어릴 적을 다시 돌아봅니다. 내 동무들을 살피면 ‘바비 인형’처럼 돈값이 꽤 센 인형을 학교로 몰래 가져와서 ‘와 예쁘네’라든지 ‘나도 한번 만져 볼게’ 같은 말이 나오게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더 많았는가 하면, 두꺼운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그림을 그린 ‘종이인형’을 손수 빚는 아이가 훨씬 많았어요.


  나는 사내입니다만, 나도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내가 놀 종이인형이라기보다 다른 아이한테 줄 종이인형입니다. 처음에는 50원이나 100원을 받고 팔겠노라며 종이인형을 오리지만 아무도 안 사요. 그래서 나중에는 다 그냥 동무들한테 줍니다. 나한테서 종이인형을 한 번 두 번 받다 보니, 어느새 동무들은 나한테 종이인형을 그려 달라 하거나 오려 달라 합니다. 자꾸자꾸 종이인형을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솜씨가 늘어서 그저 재미로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참을 수 없이 심술이 나서 아이들은 배가 아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장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상드라네 할머니를, 그 다음에는 이렇게 비싼 것을 사 줄 수 없는 자기들 할머니들을 원망했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화는 곧바로 제밀라에게 미쳤다. 제밀라는 아랍 애니까. (40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은 ‘바비 인형’을 둘러싸고 아이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생길 뿐 아니라 ‘따돌림’에다가 ‘인종 차별’까지 버젓이 일어나는 프랑스 사회를 그립니다. 여기에다가 ‘이 모든 말썽거리를 팔짱 끼고 구경하는 어른(교사) 모습’을 넌지시 나무라는 투로 보여줍니다. 이런 학교에서 주인공 사내 아이가 모든 말썽거리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멋진 생각을 보여줍니다. ‘바비 클럽’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부잣집 아이가 아랍 아이를 못살게 굴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적에 주인공 사내 아이가 꾀를 써요. 아랍 아이가 고빗사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올 구멍을 아무도 몰래 마련하면서, 부잣집 아이가 반 아이들과 교사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이 되도록 꾀를 써요.


  이야기 마지막을 보면서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책에 나오듯이 아직 철이 없어서 동무를 괴롭히기도 하고, ‘부자인 어버이나 할머니’가 있느냐 없느냐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때에 어버이나 어른이 슬기롭지 않으면 아이들은 엉뚱한 길을 배워요.


  참말로 학교에서 ‘인형놀이 교육’이나 ‘장난감 교육’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난한 집 아이나 부잣집 아이나 모두 즐겁게 ‘종이인형 오리기’를 하면서, 모든 장난감이나 인형은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길 수 있다는 대목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틈틈이 새 종이인형을 오려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꾸준히 새 종이인형을 다시 오리고, 나이가 드는 동안(한 살 두 살 더 먹는 동안) 아이들이 오리는 종이인형은 한결 거듭납니다. 두꺼운종이로 된 과자상자라든지 골판종이는 모두 종이인형을 오릴 밑종이가 돼요. 값비싸게 장만해야 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참답게 사귈 수 없다는 대목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무를 참답게 사귀는 길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될 때입니다. 살가운 마음이 깃든 장난감으로, 또 살가운 마음이 흐르는 손길로 서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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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29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이정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3



말을 더듬어서 놀림감이 된 적 있니?

―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베아트리스 퐁타넬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8.5.30. 5500원



  베아트리스 퐁타넬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시공주니어,2008)를 읽는데 가슴이 짠합니다. 마치 내 어린 나날에 겪은 모습이 나오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말더듬이로 어린 나날을 보낸 어른이라면,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같은 어린이문학을 읽기는 수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더듬이 모습을 말끔히 털었기에 새삼스레 이러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누가 녀석을 ‘어버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좋은 말은 아니지만, 녀석한테는 잘 어울렸지요. 녀석도 아무 대꾸를 못했어요. 솔직히 그 말은 금방 입에 붙었어요. 우리는 화장실 문을 쾅쾅 차며 장난쳤지요. “경찰이다! 빨리 문 열어! 안에 누가 있냐?” “나 어버버야. 얘들아, 다다다른 데로 가 줘…….” 글쎄, 녀석도 이렇게 대답했지 뭐예요. (12쪽)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말더듬이 아이는 동무들한테서 놀림을 받습니다. 동무들은 이 아이가 쉬를 하러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문을 발로 쾅쾅 차면서 놀려요. 이렇게 놀리는 짓을 하는데 말리는 아이가 딱히 없습니다. 게다가 말더듬이 아이가 ‘말더듬질’을 하지 않으려고 ‘낱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담임 교사는 버럭 부아를 내요. 이 아이더러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여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고는 교장실로 보내기도 해요.


  말더듬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무들뿐 아니라 담임 교사마저 이러하다면, 이 아이는 학교에 오기가 얼마나 싫을까요? 마치 학교를 끔찍한 불구덩이로 여기지 않을까요?


  동무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감이 되는데다가, 담임 교사는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아 주지 못하니 더없이 괴로울 텐데, 이 아이는 앞으로 학교를 모두 마칠 때까지 늘 놀림감으로 살아야 할까요? 나중에 사회에서도 똑같이 놀림감이 되어야 할까요?


  놀림감이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놀림감으로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놀림쟁이 짓을 하는 아이들은 여린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거나 힘든가를 알아채기 어렵지요. 놀림쟁이 아이들이 여린 아이들 마음을 안다면 함부로 괴롭히지 않아요. 슬프고 괴롭고 아픈 아이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엿본다면 섣불리 따돌리거나 못살게 굴지 않아요.



“너도 귀머거리가 아니니까 알지. 내가 다다, 바바, 보보, 그그그런 바바발음을 잘 못하잖아. 내 이름을 말할 때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게 싫어. 정말 싫어. 끄끔찍해!” (20쪽)



  말을 더듬는 아이한테는 ‘말을 더듬는 목소리’를 ‘말을 안 더듬는 목소리’하고 똑같이 여기는 동무나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가 주눅이 들지 않도록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마주해 줄 수 있는 동무하고 이웃이 있어야 해요.


  ‘발음 교정 교육’으로는 말더듬질을 바로잡지 못합니다. 말더듬질은 ‘바로잡아야’ 하는 ‘잘못된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몸짓이나 모습이나 숨결 가운데 하나예요. 누군가는 다리를 절 수 있고, 누군가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낄 수 있고, 누군가는 귀가 잘 안 들릴 수 있고, 누군가는 말을 더듬을 수 있어요. 웅변을 배우거나 합창 연습을 하면서 말더듬질을 찬찬히 고칠 수 있기도 하지만 꽤 오래 걸리기 일쑤예요. 말을 좀 더듬었대서 함부로 놀리거나 섣불리 웃지 않는 포근하고 살가운 터전이 있어야 하지요.



“저 안 뛰어내려요! 다들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저 좀 내버려 두세요! 다들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진짜 말도 안 돼요. 어버버는 말을 전혀 더듬지 않았어요. (39쪽)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는 퍽 짧게 이야기를 끊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너무 갑작스레 ‘말더듬이 아이를 괴롭히던 동무들이 괴롭힘질을 멈추’는 모습이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말더듬이 아이한테 아버지가 없다는 대목을 아이들이 알고, 말더듬이 아이가 학교 지붕에 올라가서 ‘혼자 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른 뒤에, 갑자기 ‘괴롭힘질·따돌림질’이 사라져요.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작은 일 하나로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말 이렇게 동무들이 하루아침에 따돌림이나 괴롬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탕이 나쁘지 않았을 동무들’이라 할 테니까, 괴롭힘질이나 따돌림질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겨서 뚝 그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어린이책이기에 말더듬이 아이가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까지는 차마 안 그렸을 수 있지요. 다만, 어린이한테 ‘말을 더듬는 동무를 괴롭히지 말고 아끼자’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려고 한다면, 한 발짝 더 다가서면서 손을 내미는 얼거리를 보여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말더듬이 아이 목소리를 듣고, 말더듬이 아이가 좋아하거나 즐기거나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이야기도 담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해요.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동무들 앞에서 말을 더듬거릴 적에 갑자기 둘레가 조용해요. 나는 이내 알아차리지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 말더듬이 듣기 싫었나? 내 말더듬이 웃긴가?’ 이때에 누구 하나라도 웃음을 터뜨리면 다 웃어 버리지만, 슬기로운 동무가 다른 쪽으로 눈길이 쏠리도록 말을 꺼내면 ‘말더듬’은 쉽게 잊고, 놀림감으로 삼지 않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을 더듬거리더라도 내 말을 듣는 아이가 차분히 내 눈만 똑바로 바라보면서 들어 주면, 다른 아이들도 웃지 않고 가만히 ‘말더듬이 목소리’를 들어 주면서 상냥한 흐름으로 바뀝니다.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에서는 이런 이야기나 실마리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도 “그날 뒤로 어버버는 말을 덜 더듬었어요. 어버버의 말투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41쪽).” 하고 나와요. 짧은 한 마디로 슬그머니 넘어가는 셈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를 해 주기만 해도 말더듬이 아이는 씩씩하게 기운을 찾을 수 있습니다. 434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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