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 - 토론하는 미래 시민을 위한 사회 개념어 이야기
구민정 외 지음, 김영랑 그림 / 고래이야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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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9



‘소비’ 아닌 ‘놀이’일 때에 ‘평등·민주 사회’

― 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

 구민정·국찬석·권재원·김병호·신동하 글

 김영랑 그림

 고래이야기 펴냄, 2016.3.5. 16000원



  구민정·국찬석·권재원·김병호·신동하 다섯 분이 글을 쓰고, 김영랑 님이 그림을 그린 《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고래이야기,2016)을 읽습니다. 열 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한국 사회’와 ‘지구 사회’를 슬기롭게 읽는 눈길을 북돋우려고 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어린이가 사회를 알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다룬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어린이가 차근차근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앞으로 ‘사회를 새롭게 가꿀 슬기’를 스스로 가꾸도록 돕는다고 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행복도 알 수 있을 텐데.” (15쪽)


“저런, 그건 노는 게 아니에요. 그냥 소비를 하는 거지. 말뚝박기, 자치기, 땅따먹기 등 재미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데요. 안타깝네요. 여러분은 원 없이 뛰놀며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나이인데.” (17쪽)



  ‘행복’이나 ‘자유’나 ‘인권’이나 ‘평등’이라고 하는 사회가치를 어린이한테 어떻게 들려줄 만할까요? 사회이론을 어린이한테 들려주면 될까요? 어린이한테는 사회이론이 아니라 살림살이를 보여주어야 하겠지요. 머릿속에 지식으로 담을 이론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거나 부대끼면서 스스로 생각을 짓도록 이끌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겠지요.


  《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에서도 말하는데, 오늘날 거의 모든 어린이는 ‘마음껏 놀지 못합’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어린이는 중·고등학교 푸름이 못지않게 시험과 공부라는 짐에 억눌립니다. 그나마 오늘날 어린이는 책읽기는 할 수 있어요.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러운 문학책이나 인문책이나 그림책은 두루 읽을 수 있어요. 중학교에만 들어서도 책읽기를 쉽게 하기 어렵고, 중학교부터는 대학바라기 입시공부에 얽매여야 하는 얼거리가 되기 일쑤예요. 대학바라기 입시공부가 아니라면 취업준비에 힘을 쏟는 얼거리가 되지요.



“똑같은 것이 아니라 차별이 없는 것이 평등입니다. 만일 시각장애인을 일반인과 평등하게 대한다고 보조장치 없이 시험을 보게 한다면 실제로는 평등한 것이 아니겠죠?” (23쪽)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만을 최우선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가 되었어. 그러니 아빠들이 집안일을 함께하기가 어렵기도 하지.” (37쪽)



  놀지 못한 채 자라야 하는 어린이라면 ‘행복’을 알기 어렵습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공부와 시험에 얽매여야 했다면 ‘공부와 시험’을 알 뿐,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를 알기 어렵지요. 놀이하고 ‘소비’는 다르기에 돈을 들여서 놀이시설이나 문화시설을 누려야 ‘놀이’가 되지 않아요. 놀이는 ‘소비’나 ‘문화생활’이 아니라 말 그대로 즐겁거나 기쁘게 몸과 마음을 활짝 펼치는 살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는 어린이로 삶을 지으면서 어른으로 자라야, ‘어른이 되어 짝을 만나 아이를 새롭게 낳은 뒤’에 ‘내가 낳은 아이’하고 즐겁게 놀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가 즐겁게 놀 만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요.


  자, 생각해 보아야지요. 어릴 적에 못 놀고 어른이 되면, 이 어른은 아이를 낳은 뒤에 무엇을 할까요? 놀이를 모르는 채 자랐으니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았’어도 어떻게 놀려야 하는가를 모를 테고, 아이가 놀아야 하는 줄도 모를 테며, ‘어른이 되기까지 이녁 스스로 겪은 그대로’ 새로 태어난 아이가 고스란히 입시 굴레에 갇히는 쪽으로 내몰기만 하겠지요.




“‘소비자는 왕’이라는 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거든.” (55쪽)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국가가 교육에 돈을 덜 투자해 왔단다. 국가가 할 일을 민간으로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사립학교도 많고 학원비 등에 돈도 많이 들어.” (61쪽)


“노동조합이 적은 나라일수록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 약 15%가 최저임금 노동자이죠.” (179쪽)



  《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루기도 하고 ‘마을공동체’와 ‘생활협동조합’과 ‘도시 재개발’과 ‘문화 공공성’을 다루기도 합니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교육과 문화에 제대로 나랏돈을 안 쓴 대목을 찬찬히 따지면서 어린이한테 알려주기도 합니다. ‘전쟁’과 ‘냉전’과 ‘난민’과 ‘올림픽과 월드컵’도 다루면서 한국을 비롯한 지구별 여러 나라 정부가 썩 슬기롭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사회를 다스리는 대목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언론 자유’와 ‘수도권 집중화’와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도 다루지요.


  ‘노동’을 다룰 적에는 우리가 저마다 소비자이면서 노동자라는 대목을 일깨우고, 노동조합이 어떤 구실을 하는가를 제대로 밝혀서 이야기해 줍니다. ‘전교조’라고 하는 교사 모임은 어떤 일을 하는가도 꾸밈없이 밝혀서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의식 있는 사람으로 크는 것이 두려운 걸 거야. 아직도 일부 권력자들은 학생들이 로봇처럼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고 있어.” (77쪽)



  아이들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길드는 사람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설피 엮은 사회를 새롭게 가꾸는 슬기를 꽃피우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꿈을 꾸는 어른으로 자라는 어린이일 때에, 이 어린이가 참다운 민주와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살찌우는 일을 하리라 봅니다. 꿈을 사랑스레 꾸는 어른으로 자라는 어린이일 때에, 이 어린이가 서로 돕는 어깨동무를 기쁨으로 할 만하리라 봅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은 ‘전쟁무기를 키우는 정책에 힘을 쏟는 어른’이 아니라 ‘마을살림을 가꾸며 두레와 품앗이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차갑고 메마른 정치나 행정이나 문화나 경제에 얽매이는 어른이 아니라, 따스하고 넉넉한 살림짓기와 사회짓기와 집짓기에 온힘을 쏟는 어른이 되어야지 싶어요.




“그러나 그 다음에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박정희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지. 나중에는 아예 시민들이 대통령을 뽑지 못하게 하고 체육관에서 몇몇이 대통령을 뽑게 했는데 늘 지지율이 99%를 넘었단다. 그것을 유신체제라고 해.” “그때는 대통령 비판만 해도 막 잡혀갔다면서요?” “뭐야, 북한하고 뭐가 달라?” … “아, 그 다음에 또다시 군인이 무력으로 권력을 잡았죠? 광주에서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면서.” (129쪽)



  역사는 우리가 짓는 길대로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오늘 어른인 우리들이 슬기롭게 살림을 가꾸면서 아이들을 사랑스레 가르친다면, 우리 역사는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쪽으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오늘 어른인 우리들이 슬기롭지 못한데다가 사랑스럽지도 못하다면, 우리 역사는 슬기와 사랑하고는 동떨어진 벼랑으로 내몰리리라 봅니다.


  왜 지난날 임금님과 사대부나 지식인은 신분과 계급으로 사람들을 가르면서 정치를 했을까요? 왜 남북녘 정부는 전쟁무기를 키워서 끔찍한 전쟁을 벌였을까요? 왜 1961년에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을까요? 왜 서슬 퍼런 군사 독재가 오래도록 이어졌을까요? 왜 군사 독재자는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였을까요? 왜 오늘날에는 막개발하고 사회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민주나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요?


  오늘 어른인 우리들이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오늘 우리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오늘 어른인 우리부터 사회를 올바로 바라볼 때에, 오늘 우리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사회를 올바로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하지만 만일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위한 경기장을 짓기 위해 병원이나 학교를 짓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래? 혹은 관광객을 위한 시설을 짓기 위해 사람들이 사는 집을 부수겠다고 한다면? … 최근에도 단 2주간 열릴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가리왕산의 5백년 원시림이 파괴되었어.” (206∼207쪽)



  돈을 벌어야 잘 놀 수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이 너그럽거나 넉넉하지 않으면 잘 놀지 못하고 즐겁게 놀지 못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성장을 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지 않다고 느껴요. 경제성장에 정부가 온힘을 쏟는다고 하지만, 막상 경제성장에만 온힘을 쏟을 뿐 ‘사람들 살림살이’하고 ‘마을 보금자리’에는 거의 힘을 안 쏟는 사회 얼거리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돈으로 ‘소비’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여가·여행·문화·예술·복지’가 되지 않습니다. 즐겁게 일하고 놀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일 때에 그야말로 즐거울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놀이’와 ‘소비’를 슬기롭게 가르칠 때에 아이는 사회를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깨달으리라 봅니다. 오늘 우리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기쁘게 놀면서 맑은 마음으로 자랄 수 있어야,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어려서 놀지 못하고 시험공부와 입시경쟁에 목이 매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사회를 이루려 할까요? 놀지 못한 채 ‘경쟁’만 하고 ‘소비’만 하던 아이가 어른이 된 탓에 국정교과서 말썽이나 테러방지법 말썽을 빚는 몸짓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소비가 아닌 놀이일 때에는 동무끼리 서로 아낍니다. 소비가 아닌 놀이에는 신분도 계급도 없이 어깨동무입니다. 소비가 아닌 놀이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린이 사회’를 나눔과 사랑과 돌봄과 평화와 민주와 자유와 평동으로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을 다스립니다. 《생각을 열어 주는 사회가치사전》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어린이도 어른도 함께 ‘생각을 열면’서 아름다운 살림과 삶을 열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3.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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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1
정숙영.조선영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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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6



이야기꽃 피우는 청소년은 생각이 자란다

― 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

 정숙영·조선영 글

 돌 스튜디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5.11.11. 13000원



  정숙영 님하고 조선영 님이 함께 쓴 《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철수와영희,2015)를 읽습니다.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 옛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와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고 하는 책입니다. ‘옛이야기’라면 이 낱말 그대로 “옛날부터 이어온 이야기”를 가리켜요. 옛날 옛적 이야기이니 옛이야기이고, ‘옛날이야기’라고도 해요.


  옛이야기는 옛사람이 살림을 지으면서 누리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옛날 옛적에 이루어진 이야기이니, 옛날에 살던 사람이 누리던 이야기일 테지요. 그런데 옛날 옛적 사람이 누리던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오늘날까지 흘러오지 않아요.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가 뜻있게 돌아보거나 값있게 되새길 만한 이야기일 적에 비로소 ‘옛날하고 오늘날 사이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가 즐겁게 누리거나 나눌 만하다고 여길 적에 비로소 “옛이야기가 된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가 서로 누리거나 나눌 만하지 않다면 “그냥 오래된 이야기”이거나 “그냥 낡은 이야기”이거나 “그냥 잊힌 이야기”쯤 되리라 느껴요.



문서로 기록하기 전에도 옛이야기는 존재했습니다. (16쪽)


이는 바꾸어 말하면, 옛이야기가 민족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다는 뜻이 아닐까요? (24쪽)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성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옛이야기의 범주에 들 수 없겠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게 되면 이것 또한 미래에는 ‘옛이야기’로 여겨질 것입니다. (43쪽)



  지난밤에 올들어 첫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밤 두어 시 무렵이었는데,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하고 후박나무 사이에 서서 밤하늘을 살피다가 아스라이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마을논에서 깨어난 개구리일는지, 좀 먼 들에서 깨어난 개구리인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스라이 들리는 울음소리이기에 좀 먼 들에서 먼저 깨어났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난 뒤에 아이들을 불러서 개구리 울음소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들아, 아버지는 어젯밤에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올해에 처음 들었어.” “개구리? 개구리가?” 아직 어린 아이들은 새봄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처음 터져나오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아들을 만할까요? 그래서 “우리 집 개구리도 곧 깨어날 테야. 이제 저녁이나 밤이 되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자.” 하고 덧붙입니다.



이야기가 오락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했다고 해서 그것이 본래 지니고 있던 근원적인 성격까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59쪽)


금기가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대체로 금기가 지켜지지 못합니다. (126쪽)



  그냥 하는 말이라면 ‘그냥 말’로 끝납니다. 말에 생각을 담아서 살을 붙여 줄거리를 엮으면 ‘새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서로 이 이야기를 쉽게 잊을 수 있고,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서로 오래도록 되새길 수 있어요.


  아침에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곁에서 바느질을 하는데, 큰아이가 문득 나를 보더니 큰소리로 외치더군요. “아버지 코에 콧물이!” 나는 바느질에 온마음을 쏟느라 코에서 콧물이 주룩 흐르는지 못 느꼈어요.


  이때에 이 일을 놓고 우리는 ‘그냥 말’로 끝맺을 수 있고, ‘아버지가 너희 나이만큼 어리던 날 콧물을 흘리면서 놀던 나날’을 떠올리면서 ‘새 이야기’로 이을 수 있습니다. 또는 “떼끼!” 하면서 뭔 콧물을 보고 그러느냐 하고 아무 이야기가 없이 지나쳐 버릴 수 있겠지요. 또는 ‘콧물’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그야말로 꿈나라를 누비는 ‘새로운 이야기잔치’를 벌일 수 있어요. “콧물나라에 콧물공주가 살고 콧물나무꾼이 사는데 …….” 하면서 재미난 한때를 보낼 만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짓거나 나눈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누리는 삶이나 일구는 살림을 돌아보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생각을 꽃피울 모습’을 느끼거나 알아채도록 북돋운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으로도 ‘밥 이야기’를 지을 수 있고, 늘 하는 소꿉놀이로도 ‘소꿉 이야기’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이야기’를 지을 수 있고요.



사람들은 왜 자기가 겪거나 듣거나 본 이야기를 전하려고 할까요? 아마도 재미나고 흥미롭기 때문에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146쪽)


이처럼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 하는 이야기는 사람의 목숨도 구하고 상대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린다는 걸 보여줍니다. (166쪽)



  《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흔히 ‘옛이야기’라고 하면 어린이만 재미있게 듣고 끝내는 이야기로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만, 예부터 ‘옛이야기’는 늘 ‘오늘이야기’로 즐기거나 나누었다고 하는 대목을 밝혀요. 이 나라 푸름이가 ‘옛이야기·오늘이야기·이야기’ 이 세 가지 얼거리를 찬찬히 짚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새로 짓는 살림 이야기’를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까마득히 오래된 옛날에 있던 일을 들려주는 ‘옛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오늘 이곳에서 주고받을 때에는 ‘오늘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돌아보면서 되새길 만한 생각이나 슬기나 느낌이나 꿈이 깃든 이야기이기에 두고두고 즐기면서 물려주는 ‘옛이야기’이자 ‘오늘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마음이 자랍니다.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사랑이 함께 피어나고, 이야기로 잔치를 벌이면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두레를 이루어요.



특이한 점은 옛이야기 속 호랑이 이야기에서는 뛰어난 포수나 힘이 센 장정이 호랑이를 잡는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고슴도치나 어린아이가 호랑이를 상대해 이겨내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187쪽)


민담은 어렵고 힘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보다는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190쪽)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배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짓고, 아이가 즐겁게 맞아들이는 이야기를 새록새록 빚어서 함께 나누어요.


  아이들한테는 어머니랑 아버지가 어릴 적에 살던 이야기도 옛이야기가 됩니다. 아이들한테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예전에 살림하던 이야기도 옛이야기가 되어요. 백 해나 삼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쯤 흘러온 이야기만 옛이야기이지 않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짓는 삶이 ‘오늘이야기’이면서, 이튿날부터 ‘옛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쁨으로 가꾸는 살림이 아름다운 ‘오늘이야기’에서 사랑스러운 ‘옛이야기’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지은 살림은 ‘옛이야기’로 뿌리를 내리면서 새로운 생각을 북돋울 만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오늘 지은 살림은 그냥 잊혀지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요? 비 그친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빨래를 신나게 하고, 밥도 어제와 다른 새롭고 맛난 밥으로 짓자고 생각하면서 ‘이야기살림’을 되새깁니다. 책에 남는 이야기를 넘어서,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되돌아봅니다. 글로 적어서 남기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마음에 사랑으로 남길 수 있는 이야기를 헤아리는 하루입니다. 2016.3.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청소년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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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 한국사 속 두 사람 이야기 10살부터 읽는 어린이 교양 역사
윤희진 지음, 이강훈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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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8



밥하고 빨래하며 노래하는 아버지

―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윤희진 글

 이강훈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09.10.9. 9500원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쓰던 1980년대를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국민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해마다 ‘장래희망’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장래희망을 종이에 적어서 내야 했는데, 교사가 나누어 주는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서 1번부터 5번까지 하나하나 적으라 했어요. 1980년대는 2010년대하고 사뭇 다르다 할 테니까 요새 어린이하고 무척 다른 장래희망을 적었을 테지요. 그때에 내가 적은 장래희망 가운데 하나는 ‘가정주부’였습니다. 1번에 가정주부를 적지는 않았지만,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도 2번이나 3번에는 으레 가정주부를 적었어요.


  가시내 아닌 사내가 가정주부를 적는다고 해서 놀린다거나 비웃는 교사나 동무가 제법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내 ‘앞으로 이룰 꿈’ 가운데 하나를 ‘가정주부’로 적었습니다. 이 꿈은 서른 살을 지날 무렵 ‘살림꾼’으로 바꾸었어요. 집일만 하는 돌쇠가 아니라 살림을 가꾸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 먹으라고 고추장을 직접 담가서 보내는 아버지는 요즘에도 드물 거야. 겉으로는 엄하게 대해도 자식들을 생각하는 아버지 박지원의 마음이 특별하구나. (16쪽)


봄바람, 달, 술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데 어떻게 책에만 빠져 있느냐며 책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빠지지는 말라는 뜻이지. 부인의 마음이 웬만한 남자들보다 커 보이지 않니? (27쪽)



  윤희진 님이 글을 쓰고, 이강훈 님이 그림을 그린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책과함께어린이,2009)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린이 역사책입니다. 책이름은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입니다만, 이 책은 조선 무렵 역사를 어린이한테 들려줍니다.


  어느 모로 보면 좀 뜬금없다 싶은 책이름일까요? 틀림없이 뜬금없다고 여길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만하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놓칠 만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사임당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생명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그렸어. 수박밭에서 수박을 갉아먹는 들쥐, 가지 옆을 날아다니는 나비와 방아깨비, 오이 덩굴 옆의 개구리 같은 것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냈지. 그렇게 그린 그림을 친척들이 얻어 가곤 했어. (41쪽)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재산이 넉넉할 리 없었지. 하지만 이익은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오히려 양반입네 하고 일하지 않는 자들을 나무라며 스스로 농사를 지었고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지. (131쪽)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박지원 님이라고 합니다. 박지원 님은 글이나 학문으로 오늘날 우리한테 뜻깊은 옛사람으로 돌아볼 만한 어른이 되지만, 이런 모습뿐 아니라 아이들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하는 몸짓이 대단했다고 해요.


  손수 고추장을 담글 줄 아는 아버지 박지원이라면 틀림없이 밥도 손수 지을 줄 알 테고, 나무를 할 줄도 알 테며, 아궁이에 불을 지필 줄도 알 테지요. 빨래를 할 줄도 알 테고,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거두어 갈무리할 줄도 알 테고요.


  박지원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한테 슬기로운 숨결을 베풀 수 있던 바탕에는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같은 살림넋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기쁨을 아는 몸짓으로 마을과 나라를 살림하는 보람을 헤아리는 이야기를 글과 책으로 여밀 수 있었겠지요.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정치만 잘 하는 정치 전문가가 정치를 얼마나 잘 할는지 생각해 볼 만해요. 전문가가 정치를 해야 정치가 훌륭할까요? 틀림없이 그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치 전문가이지만 집안일을 하나도 모른다거나 서민 삶을 하나도 모른다면? 정치나 행정이나 서류는 잘 만질 줄 알지만, 밥짓기나 옷짓기나 집짓기는 하나도 모른다면? 아이키우기나 집안일은 하나도 모르면서 전문가로 있다면?



고문의 후유증일까. 낯선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정약용은 귀양 온 직후 크게 앓은 적이 있었어. 그는 의학 책을 보고 스스로 약초를 달여 병을 치료했지. 그런 그를 보고 마을 사람이 부탁했어. (88쪽)


정약용은 단순히 유학의 경전들을 읽고 해석한 게 아니라, 현실을 개혁할 방법들을 연구했지. 유배지에서 만난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 고단했거든 … 정약용이 유배 생활 동안 학문에 집중했던 반면, 정약전은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어. 어부들과 술도 마시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살아갔지. (90쪽)



  어린이 인문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아주 수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우리 어린이가 인문 지식을 더 많이 갖추기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어린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에 서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훌륭한 역사 인물이 있었다는 지식보다는, 이런 옛사람이 어떤 숨결로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지었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를 읽는 아버지한테 “아버지 그 책 재미있어? 어떤 사람들이 나와?” 하고 묻습니다. 나는 아직 우리 집 아이들한테 ‘역사 인물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홉 살 어린이한테는 좀 먼 이야기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아이들한테 몸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처럼 나는 “김치 담그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함께 노는 아버지”로 지내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마실 다니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함께 나무와 흙을 만지는 아버지”로 지내고, “밥을 아침저녁으로 지어서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수저를 드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정도전은 재상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꿨어. 현명한 임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임금도 있을 수 있으니, 임금이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뛰어난 재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122∼123쪽)


천문학에 밝은 사람들을 뽑아 중국 유학을 보내기로 했는데, 거기에 관노 출신 장영실이 들어간 거야. 세종 초기 이미 장영실의 기술은 당대 최고라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관노를 불러 학문에 대해 묻고 유학까지 보내 준 세종 또한 대단한 임금이지? (149쪽)



  오늘 나는 ‘살림꾼’이 되자는 다짐으로 “밥하고 빨래하며 노래하는 아버지”로 하루를 누립니다. 다만, 이 일만 하지는 않습니다. 집안일도 하고 집밖일도 합니다. 이 일 저 일을 몽땅 도맡느라 때때로 등허리가 휩니다. 그런데 등허리가 휠 즈음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멋진 모습을 아버지한테 보여주면서 웃도록 해 줍니다. 누나는 동생을 아끼고, 동생은 누나를 아끼면서 어버이한테 기쁨을 나누어 줍니다. 멋진 소꿉놀이를 아버지한테 보여주고, 고운 글이나 그림을 아이들 나름대로 빚어서 선물로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어린이 인문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옛사람은 저마다 “삶을 노래하는” 어른이었겠구나 싶습니다. 저마다 고단한 일을 겪어야 했든 아픈 일을 맞닥뜨려야 했든 참으로 삶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간 어른이었지 싶어요.


  노비 신분이었어도 과학자로 살림을 꾸린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지요. 모든 권력이 임금한테 쏠리지 않도록 행정을 세우려 했던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지요. 유배지에서 마을 사람들한테 꿈을 보여준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고요.


  역사책에 이름이 남든 안 남든 우리는 늘 어른이거나 어버이로서 기나긴 삶을 보냅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있든 없든 우리는 언제나 어른이거나 어버이로서 아이들 앞에 서요. 이때에 우리는 어떤 마음이 되거나 어떤 몸짓이 될까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지을까요?


  “된장 담그는 대통령”이나 “간장 담그는 국회의원”이나 “빨래하는 의사”나 “자장노래 부르는 대학교수” 같은 어른이 하나둘 나타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한 가지 일만 잘 하는 전문가이기보다는 아이들하고 삶과 살림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슬기로운 어른이자 살림꾼이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2016.3.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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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 난 책읽기가 좋아
크리스 도네르 지음, 필립 뒤마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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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6



아이는 ‘시인’인가 ‘거짓말쟁이’인가

―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3.10.2. 6500원



  “착한 거짓말”이 있다고 해요. 듣기 좋도록 하는 거짓말이라고 해요. 이를테면 “너 참 예쁘네” 하는 말을 “착한 거짓말”로 한다지요. 그런데, “너 참 예쁘네” 같은 말을 “착한 거짓말”로 한다면 썩 들을 만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안 예쁘다고 여겨서 예쁘다고 거짓말을 하는 셈이니까요.


  거짓말하고 참말을 가르는 잣대라면 한 가지가 있으리라 느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인가 아닌가에 따라 다르리라 느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면 참말이 될 테고, 마음에 없는 말이라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토마는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걸 아주아주 좋아한다.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동생 기저귀를 갈아 주는 동안, 그러면 어떤 때는 엄마가 토마 이야기를 잘 들어 보려고 하던 일을 멈출 때도 있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너, 그 얘기 굉장하다!” (7쪽)



  크리스 도네르 님이 글을 쓰고, 필립 뒤마 님이 그림을 그린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비룡소,2003)를 읽습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즐기지 않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즐길 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차츰 이야깃거리가 줄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처음 학교를 다닐 적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이 새로운 이야기를 집에서 어머니한테 들려주며 기뻤는데,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새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늘 똑같은 일만 벌어지고, 늘 똑같은 것만 가르친다고 여겨서,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즐거움’이 사라져요.


  이제 이 아이는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풀리기’를 떠올립니다. 아주 조그마한 일을 크게 부풀립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하기로 합니다.



“아, 그렇겠구나.” 엄마는 알아들은 척한다.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엄마는 토마가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19쪽)


아빠는 엄마하고는 다르다. 토마는 아빠한테는 엄마한테처럼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빠는 점수에만, 그것도 좋은 점수에만 관심이 있다. 아빠는 여자 애들이 화장실에 갇혔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전혀 재미있어 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굉장하네!” 같은 말은 하는 적이 없다. (22쪽)



  아이 어머니는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이야기 즐기기’만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부풀리기’를 곁들이더니, 이제는 온통 ‘부풀리기’만 있거든요. 게다가 이 부풀리기는 차츰 ‘거짓말’로 가지를 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가 부풀리는 이야기는 참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지 않은 일을 말하고, 스스로 보지 않은 일을 말하며, 스스로 겪지 않은 일을 말하니까요.


  아이 아버지는 이녁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부풀리든 거짓이든 이렇게 ‘꾸미는’ 이야기가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에만 좋아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일’도 좋아한다고 해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거짓말을 자꾸 키우면서 걱정스럽다 하고, 아이 아버지는 ‘시인이 될 낌새’라면서 좋다고 합니다.



“저거 봐, 토마! 네가 거짓말을 하니까 엄마 아빠가 어떻게 되는지 봤지? 결국 거짓말 때문에 싸우게 되잖아.” “나 때문이 아니에요.” 토마가 말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돼.”“거짓말 안 했어요.” “거짓말쟁이!” “저 봐, 또 거짓말하잖아!” “시인이라니까!” “거짓말쟁이야!” “시인!” (51쪽)



  시인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인은 삶을 사랑으로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에요. 시인은 삶을 꿈으로 짓는 사람이고, 시인은 삶을 기쁨으로 그리면서 웃음꽃하고 노래잔치를 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에 나오는 아이는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이 아이한테는 이야기가 없으면 ‘사는 보람’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두 어버이는 아이를 놓고 한참 다투고야 마는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끝에 훌륭한 실마리를 하나 찾아냅니다. 무엇인가 하면, 아이더러 ‘글을 쓰도록’ 해요. 어머니는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거짓스러워서 못마땅하니, 이를 글로 쓰되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으로 가자고 마음을 맞춥니다.


  아이는 먼저 글로 제 이야기를 마음껏 지을 수 있겠지요. 학교 운동장에 우주선이 내려앉았다고 하든, 학교 선생님 머리에 새똥이 비오듯이 떨어졌다고 하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땅이 쩍 갈라져서 땅밑 깊은 곳까지 빠졌다가 ‘지구 내부 세계’를 구경하고 돌아왔다고 하든, 아이는 마음껏 이야기를 지어서 쓸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이야기에서는 무엇이 참이거나 거짓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이야기라고 하면 헷갈릴 만하니, “사는 이야기”하고 “생각 이야기” 이렇게 나누어야지 싶어요. “꿈꾸는 이야기”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도 있어요. 마음에 밥이 되는 이야기요, 생각에 날개를 다는 이야기입니다. 삶에 고운 꽃을 피우는 이야기요, 즐거운 사랑으로 자라나는 이야기입니다. 온누리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새록새록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2016.2.2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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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 -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7



개구쟁이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노네

―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2.1.25. 8000원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1960년대에 세 꼭지를 쓰고, 1980년대에 새롭게 세 꼭지를 썼다고 합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980년대에 쓴 세 꼭지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삐삐 이야기를 빚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은 2002년 1월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비롯해서 《장난을 배우고 싶은 꼬마 이다》랑 《에밀의 325번째 말썽》이라는 이야기책은 모두 ‘어린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이야기를 빚은 할머니’를 기리면서 나옵니다.



선생님은 에밀네 집 파티에 초대받은 것이 너무너무 기뻤어요. 눈 내리는 겨울의 기나긴 일요일을 학교에서 혼자 보내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테니까요. 그래요. 파티 날에는 눈이 펑펑 내렸어요. 그날 카트풀트 농장의 일꾼 알프레드 아저씨는 눈 치우는 도구를 말에 연결해서 몰고 다니며 아침 내내 눈을 치웠어요. (6∼7쪽)



  책이름으로 떡하니 붙은 ‘개구쟁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세 가지 이야기책에서 모두 장난꾸러기요 말썽쟁이요 개구쟁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오빠 ‘에밀’이요 동생 ‘이다’인데,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바라보자니 그저 ‘여느 수수한 아이들’ 같습니다. 더욱이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이 아이들이 노는 몸짓은 마냥 ‘수수하면서 귀엽’습니다.


  아이들이라면 참말 이렇게 놀고 싶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개구지다느니 짓궂다느니 장난스럽다느니 하고 말하지만, 아이라면 참말 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린이 아닌 어른’인 내 모습과 삶으로 바라보자면,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아이들이 그저 개구지거나 짓궂거나 장난스럽다고 보이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얘가 또 말썽을 일으키네’ 같은 생각을 하거나 ‘또 어지르네. 누가 치우라고?’ 같은 생각을 품으면, 아이들 놀이나 몸짓이 못마땅하다고 느낄 만해요.




에밀은 쌩하니 눈 쌓인 마당으로 튀어나갔어요. 히야, 재미있겠다! 파티에 온 다른 아이들도 에밀을 따라 우르르 뛰어나갔고요. 다들 기운이 펄펄 넘쳤죠. 학교 선생님은 장화를 신고 외투를 껴입고는 사령관처럼 으스대며 현관 앞에 서 있었어요. 선생님이 말했어요. “어머님 아버님도 함께 하시지 않겠어요?” 에밀의 아빠가 무뚝뚝하게 대꾸했어요. “나 참, 우리가 철딱서니없는 애들입니까?” (12∼13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놀지 못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도 몸뚱이에 살집이 붙을 수 있습니다만, 놀이가 없는 채 살집만 붙는다면 ‘마음이 자라지’ 못한다고 느껴요. 놀이가 없어서 놀이동무가 없는 채 나이만 먹고 만다면, 어른이 되어도 삶을 재미있거나 즐겁게 누리는 길을 모르리라 느껴요.


  놀면서 ‘사는 기쁨’을 누릴 줄 알 때에, 어른이 되어서 일을 하는 동안 ‘일하며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할 적에도 ‘일하다가 틈틈이 쉬면서 놀이로 기운을 북돋우는 기쁨’을 누릴 테지요.


  놀이는 아이한테뿐 어른한테도 몹시 대수롭습니다. 일만 있고 놀이가 없으면 어른은 짜증(스트레스)을 풀 길이 없어요. 왜냐하면, 일만 해야 하면 몸이나 마음이 지치거나 고단하기 마련인데, 지치거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지 못하면, 사랑스러운 어른이 아니라 짜증스러운 어른, 이른바 짜증만 내는 어른이 되거든요.



에밀의 인형들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바로 목사님이에요. 빔메르비에 살고 있는 부자 아주머니도 인형을 죄다 사고 싶다고 했고요. 하지만 에밀은 인형을 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알프레드 아저씨가 에밀더러 어른이 될 때까지 인형을 잘 간직하라고 했거든요. 알프레드 아저씨 말은 이랬어요. “네 아이들한테 물려주면 좋을 거야.” (29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에밀 아버지’는 놀이를 안 합니다. 어른이 놀이를 하려 하면 ‘철딱서니없는 짓’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에밀 아버지’는 참말 아이하고 놀아 줄 줄 몰라요. 아이가 아버지한테 놀자고 다가서지 못하고, 아이는 아버지가 늘 골만 부린다고 여겨요. 에밀 아버지는 에밀이 못마땅하다고 여길 때마다 목공실에 가두어요.


  뭔 아버지란 사람이 이러나 싶다가도,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얼마나 살가운 아버지 노릇을 하는가 하고 곰곰이 뉘우칩니다. 더군다나 아이(에밀)는 아버지가 골을 부려도 그리 성을 내지 않습니다. 에밀은 목공실에 갇혀도 이곳에서 새로운 놀이를 찾아요. 뭔 놀이를 찾느냐 하면, 목공실에 가득한 나무를 깎지요. 목공실에 워낙 자주 갇히다 보니, 나무칼도 나무도 솜씨 좋게 다룹니다. 게다가 나무 인형을 무척 많이 깎았어요. 수백 개에 이르는 나무 인형이 목공실 선반에 놓였대요.



사람들이 또 까르르 웃어댔어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목사님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목사님도요. 목사님 부인이 나직이 말했어요. “가엾은 에밀. 뽀뽀 대신에 낼 돈 10외레가 없니?” 에밀이 가슴을 쭉 펴고 말했어요. “있어요. 하지만 나, 돈 같은 거 안 낼 거예요.” (51쪽)



  개구쟁이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놉니다. 내가 어릴 적에 얼마나 북새통을 이루며 놀았는가 하고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오늘 어버이 자리에 서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합니다. 아무렴 이 아이들이 저희 아버지만큼 개구지게 놀았을까 하고.


  나는 우리 집 큰아이 나이만 하던 어릴 적에 나무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치고, 높은 가시울타리에 올라가서 기우뚱기우뚱 걷다가 미끄러져서 한쪽 팔이 쇠가시에 파이고 깊이 긁혀서 너덜거린 적이 있고, 야구방망이에 귀가 맞아서 찢어진 적이 있고, 두 손 놓고 자전거를 신나게 밟다가 엄청나게 자빠져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적이 있고, 개골창에 빠져서 옷을 몽땅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아침에 말끔하게 갈아입은 옷이 저녁이 되면 흙투성이에 땀투성이가 되었어요.


  아이들은 참말 개구지게 놀아서 사내도 가시내도 씩씩하고 싱그러운 개구쟁이요 말괄량이로 자라야지 싶습니다. 《에밀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우리 모두 ‘놀이하는 아이’랑 ‘놀이하는 어른’으로 신나게 살림을 짓자고 다시금 생각합니다. 2016.2.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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