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 2단계 세바퀴 저학년 책읽기 7
하치카이 미미 글, 이영미 옮김, 미야하라 요코 그림 / 파란자전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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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0



목도리를 다 뜨고 기뻐서 춤추는 ‘빨랑빨랑 양’

―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하치카이 미미 글

 미야하라 요코 그림

 이영미 옮김

 파란자전거 펴냄, 2011.8.20. 8900원



  뒤꼍에서 쑥을 뜯고, 이 쑥을 살살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반죽을 하고서, 반죽에 쑥을 섞으며, 이 쑥반죽을 부치거나 찝니다. 천천히 익는 반죽은 어느새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로 거듭납니다. 뜨끈뜨끈 김이 솟는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를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면, 짜잔 즐겁고 맛난 주전부리나 샛밥이 됩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손수 실을 짰을 테고, 오늘날에는 가게에서 실을 고릅니다. 실을 고른 뒤에는 바늘을 고릅니다. 그런 뒤 손수 틀을 짜거나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펴서 옷을 뜨지요. 손수 틀을 짜든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피든 품이 들기 마련이고, 바늘을 놀려 뜨개질을 해서 옷 한 벌을 이루기까지 또 제법 오래 품을 들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빨랑빨랑 양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 자꾸자꾸 뒤처지고 말았어요. (14쪽)


빨랑빨랑 양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은근히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자라도 괜찮을까?” (27∼28쪽)



  하치카이 미미 님이 글을 쓰고, 미야하라 요코 님이 그림을 넣은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파란자전거,2011)에는 두 마리 양이 나옵니다. 두 마리 양이 수컷하고 암컷인지, 또는 암컷하고 수컷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지만 늘 곁에 있는 동무요 이웃으로 지냅니다.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면서 늘 서로서로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한 발짝씩 살가이 다가서는 살림을 꾸려요.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느릿느릿 양은 그림을 그립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멋진 그림을 그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립니다. (35쪽)


느릿느릿 양이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는 동안, 빨랑빨랑 양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뭇잎 석 장. 이게 과연 숲이 될 수 있을까?’ 그림을 보고 있으니 빨랑빨랑 양도 나뭇잎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41쪽)



  ‘느릿느릿 양’은 이 이름처럼 늘 느릿느릿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느릿느릿 양답게 스스로 가장 즐거운 결을 살펴서 움직일 뿐입니다. ‘빨랑빨랑 양’은 이 이름대로 늘 빨랑빨랑 움직인다고 해요. 그렇지만 우악스레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어느새 빠르게 움직일 뿐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느릿느릿 삶결을 헤아리면서 차분하고 꼼꼼한 살림을 짓습니다. 빨랑빨랑 양은 빨랑빨랑 움직이다가 어느 때에 이 빠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잃는구나 하고 깨닫고는 ‘빠르기’가 아닌 다른 자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두 양은 서로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고, 느림도 빠름도 대수롭지 않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느려 보이거나 빨라 보일 수 있는 삶결이 아닌, 서로 즐겁고 함께 기쁜 자리를 찾을 때에 하루가 그야말로 즐겁거나 기쁜 줄 알아차려요.



느릿느릿 양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빨랑빨랑 양도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요. (49쪽)


빨랑빨랑 양은 느릿느릿 양 몰래 목도리를 뜨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양은 얼마 전에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자기 털로 직접 뜬 먹진 파란 목도리였지요 … “다 됐어, 다 됐다!” 빨랑빨랑 양은 너무 기뻐서 빙그르르 돌며 춤까지 추었어요. 자기 물건을 만든 것보다 훨씬 기뻤지요. 빨랑빨랑 양은 예쁜 종이에 목도리를 싸고 리본을 달았습니다. (62, 69쪽)



  빠르기란 무엇일까요? 빠르기는 무엇으로 잴 만할까요? 빠른 사람은 무엇이 빠르다고 할 만할까요? 느림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느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느린 사람은 무엇이 느리다고 할 만할까요?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야 할 까닭이 없고, 어른들도 빠르게 살아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느리게 자란다거나 느리게 살아야 할 까닭도 없지 싶어요. 저마다 다른 몸과 넋에 따라서 알맞게 자라고 살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익숙해서 다른 사람보다 빠르구나 싶도록 해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손에 익지 않거나 더 오래 누리려고 다른 사람보다 느리구나 싶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말이나 글을 빨리 익히는 아이가 있을 테고, 말도 글도 느리게 익히는 아이가 있어요. 책을 빨리 많이 읽는 어른이 있을 테며, 책은 덜 읽거나 안 읽지만 재미나게 살림을 짓거나 가꾸는 어른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에도 나오는데, 뜨개질로 목도리를 뜨자면 여러 날이 걸릴 수 있고, 때로는 이레나 달포가 걸릴 수 있어요. 그런데 돈으로 목도리를 사자면 몇 분 만에 장만할 수 있겠지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여길 수 없어요. 돈으로 빠르게 장만하는 길을 갈 수 있고, 손수 실을 장만해서 차근차근 한 땀씩 떠서 목도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빨랑빨랑 양’은 목도리를 다 뜨고 나서 춤을 추었다고 해요. 제가 쓰려고 뜬 목도리가 아니라 선물을 하려고 뜬 목도리였는데, 더없이 기뻤다고 해요. 그래서 이 목도리를 곱게 싸고 고운 댕기까지 달아서 이웃 ‘느릿느릿 양’한테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빨랑빨량 양은 무리 속으로 섞여 드는 느릿느릿 양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보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뒤에도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84∼85쪽)



  책을 덮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쑥을 뜯어 쑥밥을 짓자면 품이나 겨를이 제법 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짓는 밥은 한결 맛나면서 즐겁습니다. 부침개나 버무리가 익기까지 기다리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에도 재미납니다. 아이들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언제 다 되는가를 웃으며 기다립니다.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손길도 이와 비슷해요. 씨앗 한 톨이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올리며 줄기가 자라고 잎이 퍼져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석 달이 걸려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아요. 옥수수 한 자루를 먹으려면 석 달을 알뜰살뜰 돌본 끝에 기쁘게 톡 따서 다시금 ‘옥수수 삶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요.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에서도 모든 일에는 품하고 겨를이 들어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지을 적에도,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열면서 사귈 적에도, 살림을 가꾸어 보금자리를 이룰 적에도, 참말 늘 품하고 겨를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고, 삶도 살림도 꿈도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겠지요.


  춤추는 기쁨을 누리려고 손수 살림을 만지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손수 살림을 건사합니다.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누리면서 마음을 열어 사귀고, 손을 맞잡고 한길을 걷는 사랑을 나누면서 언제나 서로 따사로이 바라봅니다. 2016.4.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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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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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2



‘우주를 꿈꾸는 작은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는다

― 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 글

 문학동네 펴냄, 2016.1.8. 15000원



  꿈을 꿀 수 있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날마다 꿈을 꿀 수 있고, 이 꿈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으며, 이 꿈을 가슴에 품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꿈을 꿀 수 없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느 하루도 꿈을 꿀 수 없고, 꿈이 없어 한 걸음씩 걷는 일이 없으며, 아무런 꿈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삶이란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꿈을 꿀 수 있기에 살림을 새로 지을 만하지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기운을 내지 싶어요. 꿈을 꾸는 마음으로 손수 살림을 짓는 동안 사랑이 피어날 만하지 싶고요.


  그리고, 꿈을 꿀 수 없기에 살림을 새로 짓는 데에 마음을 못 쓰겠구나 싶어요. 꿈을 꾸지 못하기에 날마다 똑같은 쳇바퀴처럼 느낄 만하지 싶으며, 꿈을 가슴에 못 품으니 재미도 보람도 즐거움도 누리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어린이들은 반항도 비판도 정해진 한계 안에서나 허용된다는 걸 안다. 그럴 때 그들의 마지막 방어는 ‘거기 없음’을 택하는 것이다.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혹은 ‘저는 없었어요’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15쪽)


어린이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지고 함께 굶주리는 일은 어떤 사실이나 보고서도 해낼 수 없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33쪽)



  어린이책 이야기를 쓰는 김지은 님이 선보인 어린이문학 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문학동네,2016)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어린이문학을 바탕으로 비평을 들려주는 《거짓말하는 어른》입니다.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숱한 어른들이 ‘거짓말하는 삶’이라는 대목을 넌지시 짚으려고 하는 문학비평이라고 느낍니다. 참말이 아닌 거짓말로 기울고, 말뿐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거짓으로 기울며, 삶과 살림까지 거짓으로 기울다가, 그만 사랑까지도 거짓스러운 쪽으로 기우는 한국 사회 어른들 모습을 어린이문학으로 비추어서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제멋대로 짐작해 버리는 것일까. 행복과 불행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35쪽)


우리 동화에서 인물의 목소리가 저점 잦아들고 우물거림이 많아진다거나 인물의 동선이 좁은 영역에서 움을 파는 소극적 구성이 많아지는 것은 아이들의 처지는 물론 글을 쓰는 어른들의 우울함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65쪽)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행동에 날개를 달아 준다. 자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67쪽)



  어린이문학을 비평하는 글은 어린이가 읽도록 쓴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문학 비평은 아무래도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한테 읽히려는 글입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 조금 더 마음을 열어서 꿈씨앗 한 톨을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어린이책을 안 읽는 어른’한테도 어린이책 한 권이 곁에 놓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읽을 이야기를 글로 짓는 어른’이 읽도록 쓰는 어린이문학 비평일 테지요. 어린이는 어린이문학 비평을 읽지 않더라도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이 이러한 비평을 읽으면서 ‘어린이한테 어떤 이야기밥’을 나누어 주거나 베풀 수 있을 때에 어른으로서도 즐거우면서 보람이 있고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보도록 북돋울 만하리라 느껴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행동에 날개를 달아 준다(67쪽)”고 하는 대목을 새롭게 되새겨 봅니다. 어른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에 어른부터 스스로 즐거우면서 홀가분해요.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스스로 즐거우면서 홀가분하다면 아이한테 늘 웃음짓는 얼굴로 노래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스스로 안 즐거우면서 안 홀가분하다면, 그러니까 어른 스스로 늘 안 웃고 안 노래하면서 산다면, 이때에 이 어른은 어떤 몸짓이 될까요?


  다시 말하자면, 어른 스스로 즐거움이 없고 사랑이 없으며 웃음이 없을 적에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길을 가로막거나 괴롭히는 짓을 어른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저지르지 싶어요.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은 어른이 어른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삶이기 때문에 벌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변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운이 되어 줄 수 있다. (105쪽)


내 마음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사회적 마음을 상상하는 일은 소중하다. (116쪽)



  아이를 낳기에 어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에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를 가르치기에 교사가 아니라, 아이와 사랑으로 함께 배우는 숨결이기에 교사이지 싶습니다. 아이 곁에 있기에 어른이 아니라, 아이를 따사로이 품고 사랑할 수 있기에 어른이요 어버이라고 느껴요. 아이한테 책을 읽히고 교과서를 건네기에 교사가 아니라, 아이하고 함께 책을 읽고 아이하고 함께 선 이 자리에서 슬기롭게 함께 배우려는 몸짓이기에 교사이지 싶어요.


  어린이문학다운 어린이문학이라면, 언제나 사랑을 담으리라 봅니다. 교훈이나 훈계가 아닌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느끼도록 북돋우는’ 이야기가 바로 어린이문학이 되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살림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해요. 새로운 하루를 사랑하고, 싱그러운 숲을 사랑하며, 슬기로운 이웃을 사랑하지요.



어린이들이 좀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욕설을 한다. (160쪽)


환상은 선과 악의 정의를 내리거나 명확한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서 잘못과 잘못 아닌 것에 대해 돌이켜보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199쪽)



  어린이문학 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은 여러 어린이문학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린이문학을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뜻’을 새삼스레 되새기자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책을 많이 읽히자는 목소리가 아니고, 좋은 책을 읽히자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어떤 책을 어린이한테 읽히더라도 아이들이 즐거운 삶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어른도 함께 즐기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판타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판타지를 골라서 읽힐 까닭은 없어요. 더 재미있거나 더 나은 판타지를 찾아서 읽힐 까닭도 없겠지요. 그리고 판타지이든 아니든 대수롭지 않아요. 어떤 책이건, 어떤 문학이건, 어느 작가가 썼건,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찾고 느끼며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하면 되리라 느낍니다.


  이 작은 집에서, 이 작은 마을에서, 이 작은 고장에서, 이 작은 나라에서, 이 작은 별에서, 이 작은 우주에서, 그리고 드넓은 온누리에서, 우리 숨결은 어떠한 뜻이고 넋이며 마음이고 빛이며 사랑이요 노래인가 하는 대목을 어린이가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우리 어른들이 슬기롭게 헤아려서 가만히 들려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삶이나 살림이 될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집을 되찾는 일은 학교가 달라지는 것, 나아가서 사회가 달라지는 것과 연관이 깊다. (222쪽)


집은 이런 곳이다. 우주를 꿈꾸는 곳이다. 회사가 학교가 주지 못하는 평온함을 듬뿍 안겨 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곳이다. 내 꿈을 어떤 잣대로도 잘라내지 않는 곳이다. (226쪽)



  우주를 꿈꾸는 작은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쳇바퀴를 도는 사회가 아닌, 크고작은 말썽이나 사건·사고가 끝없이 터지는 사회가 아닌, 체벌과 따돌림과 폭력이 춤추는 학교나 사회가 아닌, 불평등과 전쟁과 반민주가 넘실거리는 사회가 아닌, 그러니까 아름다운 삶이 흐르는 곳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이 흐를 수 있는 곳을 꿈꾸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살림을 가꿀 수 있는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마음 깊이 생각하면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이도 꿈을 꾸고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는 삶터를 헤아리며 어린이책을 읽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꿈을 꾸면서 이 꿈을 키워 삶으로 이룰 수 있는 길을 걸으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참말로 ‘우주를 꿈꾸는 집’에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사건이나 사고나 전쟁이 아니라 삶과 사랑과 살림을 일으킬 수 있는 집·마을·고장·나라를 꿈꾸면서 어린이책을 읽어요. 조그마한 문학비평인 《거짓말하는 어른》이 이러한 삶길이나 책길이나 꿈길로 우리 어른들을 찬찬히 이끌 수 있기를 빕니다. 글을 쓰는 어른도, 그림을 그리는 어른도, 집살림을 도맡는 어른도, 교과서로 가르치는 어른도, 마을살림을 다스리는 어른도, 정치나 행정을 맡는 어른도, 기계를 다루는 어른도, 모두 홀가분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사랑스러운 어린이책’ 한 권을 손에 쥐고서 활짝 웃는 몸짓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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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 킨더랜드 책가방 1
오성균 지음, 류미선 그림 / 킨더랜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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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1



초등학교 교과서에 ‘어려운 한자말’이 많구나

―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

 오성균 글

 류미선 그림

 킨더랜드 펴냄, 2016.1.15. 14800원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킨더랜드,2016)은 초등학교 낮은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말’을 쉽게 풀이하는 몫을 맡는 ‘작은 사전’이라고 할 만합니다. 부드럽고 재미난 그림이나 만화를 곁들여서 초등학교 낮은학년 어린이가 스스로 읽고 스스로 생각해서 수수께끼를 풀듯이 ‘말에 얽힌 궁금한 대목’을 찾아내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고 할 만해요.



낱말이 한자어인 경우, 한자의 음과 뜻을 알려주어 낱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낱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유추해 보세요. (일러두기)



  그러면 초등학교 낮은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말’이란 무엇일까요? 일러두기에도 나오는데, ‘한자말’이 어린이한테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을 보면 ‘한자말 풀이’에 크게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엮어요. 한자말을 놓고 어떤 한자로 엮었는지를 알려주고, 한자를 엮어서 어떻게 낱말을 짓는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감동]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크게 느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말해요. (비슷한말 : 감명, 감탄)


[거인] 몸이 아주 큰 사람이에요. (비슷한말 : 대인) (반대말 : 소인)



  어른한테는 ‘감동’이나 ‘거인’ 같은 한자말은 대수롭지 않을 만합니다. 그러나 어린이한테는 달라요. 아무래도 낯설고 쉽지 않아요. 그래서 ‘감동’을 “마음이 움직이는 것”으로 풀이하고, ‘거인’을 “큰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자, 여기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이를테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감동’이라고 쓸 수도 있지만, 어린이가 누구나 쉽게 잘 알 수 있도록, 마음이 움직이는 때에 ‘마음이 움직인다’고 말할 만해요. 큰 사람을 보고 “야, 저기 거인이다!”라 하기보다는 “야, 저기 큰사람이다!”라 할 만하고요.


  한자로 ‘거 + 인’이라는 낱말을 지을 수 있지만, 한국말로 ‘큰 + 사람’이나 ‘큰 + 이’로 낱말을 지을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을 두고 ‘뭉클하다’나 ‘짠하다’ 같은 낱말이 있어요. ‘느끼다’를 쓸 만한 자리도 있어요. “이 책을 읽고 뭉클했어요”라든지 “이 영화를 보고 슬픔을 느꼈어요”라든지 “이 그림을 보니 아름다움을 느끼겠어요”처럼 말해도 얼마든지 ‘감동’이라는 낱말이 없이 이야기를 나눌 만합니다.



[고민] 어떤 문제로 마음이 편하지 않고 괴로운 일을 말해요. (비슷한말 : 걱정, 근심)


[관람] 영화나 연극, 운동 경기, 전시 같은 것을 구경하는 일이에요 (비슷한말 : 구경)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은 ‘고민’을 “괴로운 일”로 풀이하고 ‘관람’을 ‘구경’으로 풀이합니다. 그렇지만, ‘괴롭다’나 ‘구경’은 무엇을 뜻하는지 따로 풀이하지 않아요. 그리고 ‘걱정’이나 ‘근심’은 어떤 뜻인지 풀이해 주지 않습니다. ‘비슷한말’이라고 하면서 낱말만 보여줍니다.


  이렇게 되면, ‘근심’이나 ‘걱정’이나 ‘구경’은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은가를 잘 알기 어려워요. 한국말 ‘걱정·근심·구경’ 쓰임새도 함께 풀어내면서, 이러한 낱말을 어린이와 어른이 슬기롭고 즐겁게 쓸 수 있는 길도 나란히 보여준다면,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은 한결 짜임새가 돋보이고, 어린이도 한국말을 한결 넓으면서 깊게 배울 만하리라 봅니다.



[가운데] 처음과 끝 사이에 있는 중간 부분이에요. (비슷한말 : 중앙, 한복판) (반대말 : 가장자리, 변두리)


[동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말해요 (비슷한말 : 벗, 친구)

-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나 학교에 함께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동무’라고 해요. ‘벗’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가운데’와 ‘동무’ 풀이를 살펴봅니다. ‘가운데’를 ‘중간’으로 풀이하고 그냥 넘어가요. 그래서 다른 한국말사전에서 ‘중간(中間)’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중간’은 “1. 두 사물의 사이 2. 등급, 크기 차례 따위의 가운데 3. 공간이나 시간 따위의 가운데 4.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여느 한국말사전에서는 ‘가운데 = 중간’이고 ‘중간 = 가운데’인 꼴이에요. 돌림풀이입니다. 뜻이 같지만 하나는 한국말이고 하나는 한자말인 셈이에요.


  우리는 두 가지 낱말을 다 쓸 수 있습니다만, 어린이한테 어렵다고 할 만한 ‘중간’을 구태여 써야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가운데’라는 말을 쓰고, ‘한가운데’와 ‘한복판’과 ‘복판’은 또 어떻게 다른가를 알맞게 갈라서 알려줄 때에 한결 슬기로운 한국말사전 노릇을 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동무’를 “친하게 지내는 사람”으로 풀이해 놓는데, ‘동무’랑 ‘벗’이랑 ‘친구’는 어떻게 다른 낱말일까요? 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놓고 여러 가지 낱말이 있을까요? 이런 대목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찬찬히 수수께끼를 풀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에서는 이 대목을 다루지 못합니다.



[모둠] 어떤 모임이나 물건을 작은 꾸러미로 묶은 것을 말해요. (비슷한말 : 분단, 조)


[바탕] 어떤 물체의 틀이나 뼈대를 이루는 것 또는 사람의 타고난 마음씨를 말해요. (비슷한말 : 기반, 근본)


[흥미] 즐거운 마음이 생기는 일을 말해요. (비슷한말 : 재미, 관심)



  ‘모둠’이라는 낱말을 놓고도 비슷한말로 ‘분단’하고 ‘조’를 들기만 하는데, ‘분단’이나 ‘조’라는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털려고 ‘모둠’이라는 한국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이러한 대목을 더 깊이 살펴서 들려주지 못하는 대목도 살짝 아쉽습니다. ‘모둠’을 놓고는 ‘모임·동아리·무리·떼’ 같은 비슷한말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풀이하고 밝혀서 알려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바탕’은 ‘기반’이나 ‘근본’ 같은 비슷한말이 있다고 드는데, ‘바탕’하고 참말 비슷한 ‘밑바탕’이나 ‘바닥’이나 ‘밑바닥’이나 ‘틀’이나 ‘밑틀’이 그야말로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서 들려주는 쪽이 나으리라 생각해요.


  ‘흥미’라는 한자말은 ‘재미’라는 한국말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올림말]

(한국말) 가운데 겨레 고을 골탕 군더더기 궤짝 글 글자 까닭 꾀 꾸러미 꿈

(한자말) 가족 간판 감동 강당 거인 게시판 결승 겸손 경험 고민 고집 곤충 공격 공예 과정 관람 광장 교훈 구별 국어사전 궁리 권유 귀국 기본 기술


(한국말) 아우 외딴 이야기

(한자말) 안내 안전사고 야단 약도 약초 역할 연속 염료 염색 예절 완성 요술 우주 운전면허 원인 위험 유학 은혜 응원 이장 이해 인심 인형극


(한국말) 자랑 줄거리 쪽지

(한자말) 작문 작별 잡지 장면 재치 전학 접수 정성 정직 조리 조립 조사 조상 존중 종류 주인공 주장 준비 지혜 짐작


(한국말) 토박이말 하루 허수아비

(한자말) 차례 참견 채점 처방 처자 처지 천연 체감 체조 체험 초대 추천 추측 축하 충고 치료 친정 탑승 태도 태연 특징 파견 판결 편리 평생 포장 표정 표지판 표현 필요 합격 해결 행사 형식 확인 환호 활용 훈화 흡입 흥미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이라는 책에 실린 올림말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ㄱ’에서는 한국말이 이럭저럭 있으나, ㄴ부터 ㅎ까지 보면 한자말이 훨씬 많습니다. ‘ㅊ’이나 ‘ㅍ’에서는 한국말이 아예 한 가지도 없습니다. ㅊ이나 ㅍ에서는 어려운 한국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운데’나 ‘이야기’나 ‘하루’ 같은 낱말을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에서 다루는 만큼, ㅊ이나 ㅍ에서도 어린이가 한국말을 깊고 넓게 살피도록 이끌 만한 한국말을 올림말로 뽑았어야 하리라 느껴요.


  그런데 이 책은 ‘초등학교 낮은학년 교과서’에 실린 낱말을 바탕으로 엮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낮은학년 교과서에 실린 낱말이 으레 한자말이고, 더욱이 ‘쉽지 않은 한자말’이라는 뜻을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구나 싶어요. 초등학교 낮은학년 교과서에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는 한국말을 좀 슬기롭게 가려서 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국어가 좋아지는 국어사전》도 ㅊ이나 ㅍ뿐 아니라 이모저모 골고루 한국말을 슬기롭게 다룰 수 있으리라 느껴요.


  한자말을 쓰느냐 안 쓰느냐를 따져야 하기보다는, 어린이가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말을 우리 어른들이 잘 살펴서 들려줄 수 있기를 바라요. ‘이 한자말을 저 한국말로 풀이하는’ 틀에서 벗어나고, ‘이 한국말을 저 한자말로 풀이하는’ 돌림풀이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요. 생각을 담는 말이듯이, 생각을 담는 말을 적는 글이듯이, 이 대목을 환하게 밝히면서 말살림을 가구는 새로운 책을 기다려 봅니다. 2016.3.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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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아이 노릇 - 세계적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교육 이야기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39



학교에 가지 않으면 ‘반사회적 행동’일까?

― 어른 노릇 아이 노릇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미래인 펴냄, 2016.3.15. 11000원



  열흘 남짓 평상 짜기를 한 끝에 드디어 모든 마무리를 짓습니다. 제법 큰 낡은 평상 하나를 고쳤고, 섬돌에 얹는 평상을 새로 하나 짰습니다. 다른 일은 안 하고 평상 짜기만 했으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뚝딱하고 끝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평상도 짜고 살림도 하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을 놀리거나 가르치고 이모저모 다른 일을 모두 하면서 평상을 짜느라 틈틈이 일손을 놀렸습니다.


  봄맞이 집 안팎 청소도 마무리지으면서 처마 밑에 놓을 수납장을 손질하는데, 마지막 망치질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매우 세게 찧었습니다. 곁에서 아버지 일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아파?” “응, 매우 아파.” 지잉 울리면서 얼얼한 손가락을 호호 달래면서 망치질을 끝냅니다. 일을 거의 다 마칠 즈음 손가락을 찧으니 더 아픕니다.


  마당과 뒤꼍에서 신나게 뛰논 두 아이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깔고 눕힐 적에 큰아이가 새삼스레 묻습니다. “아버지, 아까 어느 손가락 찧었어?” “응, 첫째 손가락.” “그러면 엄지손가락?” “응.” “아직도 아파?” “아니. 이제는 괜찮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손가락을 망치로 찧었어?” “그러게. 망치질을 할 적에는 못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살짝 딴생각을 했나 봐.” “무슨 딴생각?” “글쎄, 이제는 다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보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그렇게 망치를 잘못 놀릴 수 있어.”



선정도서라든가 지정도서라든가 과제도서 같은 신물 나는 용어가 아이들을 둘러싼 독서 문화에 많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좋은 책, 혹은 해가 되지 않는 책이라는 의미지만, 그건 참으로 쓸데없는 참견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만날까 하는 두근거림이야말로 책이 가진 생명입니다. (16쪽)


아이들은 모두 농담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농담, 놀이, 장난의 세계라고 할까요.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고, 목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손이 즐거운 세계입니다. (19쪽)



  며칠 앞서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를 치웠습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가 물이끼를 걷어내는 둘레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샘터를 치워 놓으면, 두 아이는 샘터를 둘러싸면서 놀고, 널따란 빨래터를 막대솔로 벅벅 문지르면서 다 치우면 바야흐로 빨래터에 뛰어들어서 옷까지 물에 옴팡 적시면서 놉니다.


  물이끼를 다 걷고 등허리를 토닥이며 기지개를 켠 뒤 《어른 노릇 아이 노릇》(미래인,2016)이라는 배움책을 읽었습니다. 말끔해진 빨래터를 바라보면서 읽는 책은 맛깔납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읽는 책은 한결 재미납니다.


  그림책 작가인 고미 타로 님은 이녁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배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몸은 어른이되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을 다루고, 몸은 아이인데 아이로 살기 어려운 사회를 다룹니다. 새삼스러우면서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초등학생들의 가방은 거의 란도셀입니다. 직장인들은 양복입니다. 더 어울리는 신발이나 옷이 널려 있는데, 그야말로 넘치도록 풍족한 사회인데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도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48쪽)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에게 선생님이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시킨 일을 왜 하지 않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62쪽)



  고미 타로 님네 작은딸은 중학교를 얼마쯤 다니다가 그만둔 뒤로 학교를 다시는 더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작은딸은 스스로 하고픈 일을 즐겁게 찾아서 멋지고 신나게 살림을 잘 꾸린다고 합니다.


  고미 타로 님은 이녁 작은딸이 ‘아버지, 나 학교 그만 다닐래요.’ 하고 말할 적에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퇴를 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도 ‘말릴’ 뜻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스스로 초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고 나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학교는 더 다닐 만하지 않다’고 느꼈으니, 이 아이 마음을 헤아려야겠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다만 고미 타로 님네 큰딸은 그냥 학교를 다 마쳤다고 해요. 큰딸은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 마친 뒤 큰딸대로 살림을 잘 꾸리면서 산다고 해요. 학교를 다 마치든 학교를 안 마치든 대수로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어른 노릇 아이 노릇》이라는 책에는 학교 안팎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홀가분하게 흐릅니다. 학교라는 틀이 어떠한가를 다루고, 학교를 바라보는 어버이와 교사 마음이 어떠한가를 다루며, 학교를 왜 굴레나 짐처럼 여기는 사회 얼거리가 그대로 있는가를 다룹니다.



이 세상에서 ‘이지메’를 없애고 싶다면, 우선 현재의 학교 시스템을 없애야 합니다. 학교에 이지메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구조 자체가 이지메라는 뜻입니다. (69쪽)


학교에 가지 않는 건 반사회적인 행위이고, 사회로부터 소외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죽지 않는 아이, 게으름 피우지 않는 아이, 부지런한 아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들을 관리합니다. 아제 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관리자, 관청입니다. (82쪽)



  우리 집 두 아이도 학교를 안 갑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스스로 하고픈 것을 스스로 하면서 스스로 배웁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스스로 하려는 것을 스스로 하면서 스스로 배워요. 나는 두 아이를 늘 건사하고 돌보고 토닥이면서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만,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살림은 언제나 ‘아이한테서도 새롭게 배우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평상을 고치거나 새로 짤 적에 두 아이는 내 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여다봅니다. 가끔 일손을 거든다고 할 적에는 잘 거들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저희 나름대로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다가 그만둡니다. 이러고는 내 곁에서 신나게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놀아요. 다 짜고 손질해서 옻까지 바른 평상에 기쁘게 올라앉아서 소꿉놀이를 마음껏 즐깁니다. 그림책을 갖고 나와서 평상에 앉아서 읽어요. 종이를 들고 나와서 평상에 엎드려서 그려요.


  평상에 앉아서 해바라기도 하지요. 평상에 앉아서 나무도 바라보지요. 구름을 살피고, 낮에 뜬 달을 올려다봅니다. 저녁에도 평상에 앉아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한낱 평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평상을 발판으로 삼아서 아이들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를 찾고 재미난 이야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슬며시 묻지요. 왜 옻을 발라야 하느냐고 묻고, 옻은 뭐냐 하고 묻고, 옻붓이랑 그림붓은 뭐가 다르냐고 묻고, 망치로 찧은 손가락은 어떠냐고 물으며, 망치하고 못은 어떻게 쓰고 만드느냐고 물으며, 톱으로는 왜 나무를 켤 수 있느냐고 물으며, 톱을 손수 잡고 켜 보기도 하고 …… ‘가르침’이나 ‘배움’으로 치면 수많은 이야기와 손길이 오가면서 어우러집니다.



석고 데생만 죽어라 하다가 그리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체질이 되기도 합니다. 참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다 결국 석고 데생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기도 하죠. 그쪽으로는 아직 전통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103쪽)


창조성과 개성과 감성이 부족한 곳일수록 아이들의 창조성과 개성과 감성을 중요시하는 교육을 한다는 홍보 문구를 붙여놓습니다. (146쪽)



  학교에서 교사가 교사 자리에 설 수 있다면, 교사 스스로 늘 ‘새롭게 가르칠 삶 이야기’를 즐겁게 배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집에서 어버이가 어버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어버이 스스로 늘 ‘새롭게 나눌 살림 이야기’를 기쁘게 배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이든 배웁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어른인 우리는 어버이도 되고 교사도 되고, 때로는 그냥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어 아이들을 둘러싸고 무엇이든 보여줍니다. 재미나거나 새로운 모습도 보여줄 테고,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러운 모습도 보여줄 테지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든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삶과 살림을 배웁니다. ‘몇 살 나이’에는 ‘어느 학교를 몇 해 다녀’야 배우지 않아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배워요. 초등학교 졸업장이나 중학교 졸업장이나 고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배웠다’고 하지 않습니다. 졸업장은 졸업장일 뿐이지 ‘배움 증명’이 되지 않아요. 배움은 언제나 삶과 살림으로 시나브로 드러나요.



아이들은 어른을 그냥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으니까요. 어른들의 훌륭함을 보는 것도, 비판하려고 엄격하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거기 있으니까 볼 뿐입니다. (200쪽)


열 살까지 세상을 제대로 확실히 보는 눈을 기르지 않고 흘려보내면, 왠지 그 후 인생이 시들시들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피아제나 슈타이너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피아제와 슈타이너 속의 아이들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동물도감만 들여다보는 동물학자 같습니다. (210쪽)



  《어른 노릇 아이 노릇》은 차분한 목소리로 삶 이야기하고 살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삶과 살림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른들은 삶과 살림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어진 틀에서 주어진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더 빠르게 많이 넣는 입시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꿈꾸고 생각하면서 즐겁고 사랑스레 할 수 있도록 삶과 살림을 가르치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옷 한 벌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집을 어떻게 짓거나 고치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말 한 마디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씨앗 한 톨, 책 한 권, 종이 한 장, 젓가락 한 벌, 능금 한 알, 장난감 하나, 연필 한 자루 …… 우리가 흔히 곁에 두는 모든 것이 태어난 흐름을 아이들이 가만히 살펴보면서 생각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합니다.


  나 스스로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란 끝에 어른이라는 몸으로 거듭난 내 발자국을 되짚으면서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 곁에 새로운 아이로 찾아온 이 어여쁜 숨결이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바라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녁에 함께 잠들고 아침에 함께 일어나면서 어떤 하루를 지으면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른 노릇하고 아이 노릇이 어우러지면 ‘사람 노릇’이 될 테고, 사람다운 길을 걸으면 저절로 사랑스러운 손길이 태어나리라 느껴요. 온누리 모든 어른하고 아이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사이좋은 살림을 짓자고 꿈꿉니다. 2016.3.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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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읽는다는 것 - 엄마 독서평론가가 천천히 고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책 40
한미화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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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8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 배우는 살림

― 아이를 읽는다는 것

 한미화 글

 어크로스 펴냄, 2014.8.18. 14000원



  나는 어린이책을 어린이일 적에는 얼마 못 읽었습니다. 내가 어린이였던 1980년대 첫무렵에는 거의 다 전집책이었는데, 전집책은 집에 제법 돈이 있지 않고서야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즈음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학교도서관이 없었고 학급문고도 없었습니다. 내가 살던 인천에서 우리더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라고 알려준 어른도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가고서야 도서관은 ‘시험공부 하러 가는 곳’인 줄 알았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도서관은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여는데, 번호표를 주어요. 번호가 찍힌 표는 ‘책상 번호’이고, 이 종이가 있어야 도서관에 들어가서 ‘내 자리’를 얻어서 그 책상에 틀어박혀 시험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도서관이 많이 달라지지요. 예전처럼 ‘책 없는 도서관’은 자취를 감추지요. 아무튼 나는 어릴 적에 어린이책은 거의 읽지 못한 채 마냥 뛰어놀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땅한 어린이책이 드물었고, 더러 손에 쥔 어린이책은 ‘요즈음 그 책을 다시 들추니 하나같이 일본 어린이책을 몰래 베낀 판’이었습니다.



어린이책을 읽자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소녀가 걸어 나와 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가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할 때 나는 심부름도 못 갈 만큼 외모를 신경 쓰던 사춘기를 떠올렸다. (9쪽)


똑똑한 척을 하려 들면 사람이 경직되기 마련이라 재미가 없다. 가장 큰 웃음은 자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때 나오는 법이 아닌가. (25쪽)



  책을 비평하는 일을 하는 한미화 님이 평론가 자리에서 살며시 내려와서 ‘어머니 자리’에서 어린이책을 읽은 느낌을 갈무리한 《아이를 읽는다는 것》(어크로스,2014)을 읽습니다. 한미화 님은 어머니(또는 어버이)가 되어 어린이책을 읽는 동안 평론가로서 어린이책을 읽을 때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이책을 손에 쥐면서 ‘삶을 읽는 눈’이 달라지거나 새롭게 트이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린이책을 어린이일 때가 아니라 어른일 때에 읽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린이책을 읽었느냐 하면, 스무 살에 읽고 스물네 살에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 대학교 둘레 책방을 다니다가 만난 어린이책을 읽고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글씨만 빼곡한 ‘어른 인문책’은 온갖 딱딱한 말투로 갖은 어려운 이론이 가득한데, 글씨도 적고 그림이 많은 ‘어린이책’은 퍽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더군요.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이토록 쉽고 부드럽게 들려주는 어린이책으로 ‘토론’을 한다면 훨씬 뜻있고 값있을 뿐 아니라 즐겁게 새 넋을 가꿀 만하겠다고 느꼈어요.



되돌아보니 잔소리는 부모인 내가 마음이 지치고 몸이 힘들 때, 아이를 지나치게 어리게만 취급할 때 더 심해졌던 것 같다. (44쪽)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애정을 쏟지 않는 한,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없다. (67쪽)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에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군대에서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내가 군대에서 볼 수 있던 ‘글’은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내리는 ‘지시사항’이었고, ‘스포츠신문’에다가 ‘ㅈ일보’하고 ‘국방일보’였습니다. 1990년대 군대에 책은 거의 들어올 수 없었지만 ‘재미있게’도 스포츠신문하고 ㅈ일보는 잘 들어왔습니다. 아무튼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첫 날 드디어 손에 쥔 책은 어린이책이었습니다. 스물네 살에 비로소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이때부터 어른 인문책 곁에 어린이책을 나란히 놓으면서 읽었고, 둘레에서 이웃들이 ‘너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면서 왜 어린이책을 읽니?’라든지 ‘너는 장가도 안 간 주제에 왜 어린이책을 읽니?’라든지 ‘너는 혼자 살고 애도 없으면서 어린이책을 왜 읽니?’라든지 ‘너는 대학교도 자퇴해서 앞으로 교사 일도 할 수 없을 텐데 어린이책을 왜 읽니?’ 같은 말을 물을 적마다 몇 가지로 대꾸했습니다. 첫째, “이 어린이책이 참 재미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둘째, “어른책보다 훨씬 훌륭하니까 이 어린이책을 읽어요.” 셋째, “나중에 혼인해서 아이를 낳은 다음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이제부터 바지런히 읽어야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물려줄 어린이책을 제대로 가릴 수 있어요.”



《요술 손가락》을 읽어 보면 어린이들이 얼마나 틀에 박히지 않은 멋진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악당들이 끔찍한 최후를 맞는 걸 얼마나 즐기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79쪽)


그렇다면 톰은 왜 큰어머니나 오빠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고? 왜냐하면 그들은 해티만큼 간절하게 톰을 원하지 않으니까. (129쪽)



  한미화 님은 《아이를 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빌어서 이녁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습니다. 다만, 이 책을 살피면 한미화 님이 살림을 지은 이야기보다는 ‘책 줄거리 소개’가 조금 길어서 이 대목이 아쉬워요. 책 줄거리는 우리가 스스로 읽으면 얼마든지 다 알 수 있으니 ‘줄거리 소개’는 더 짧게 줄이거나 끊은 뒤에, 그 책을 왜 읽었는가를 들려주고, 그 책을 읽으며 받은 기쁨이나 슬픔을 밝히며, 그 책을 읽고 나서 한미화 님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대목을 풀어놓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나는 한미화 님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지으면서 즐겁게 어린이책을 마주하는 이웃을 알았거든요. 평론가로서 추천도서를 소개하려는 책읽기가 아니라,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려는 책읽기를 보여주기에 반갑습니다.



직장에서는 해고와 실직이 아버지를 위협하고, 회사에 매여 가정을 등한시한 탓에 불만과 권태에 찌든 아내는 남편을 주눅 들게 하고, 성공과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돈 못 버는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할 말이 없다. (208쪽)



  어린이책을 읽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신나는 생각날개’를 가꾸는 기쁨을 누립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은 어른답게 ‘재미난 살림날개’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책에서 생각을 한껏 북돋우는 발판을 얻습니다. 어른은 어린이책에서 살림을 한껏 일으키는 바탕을 얻어요.


  자, 가만히 헤아려 봐요. 아이들은 우리 어른과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바랄까요? 더 많은 돈을 바랄까요?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바랄는지 모르지요. 그래서 아이한테 더 많은 돈을 선물해 줄 수도 있지요. 그러면, 참말로 아이들한테 더 많은 돈을 선물해 보셔요. 그때에 아이들은 또 무엇을 바랄까요? 더 큰 집? 더 빠르고 새까만 자가용? 외국여행? 우주여행?


  아마 이 모두 다 아니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우리 어른과 어버이한테 오직 하나를 바라요. “나랑 같이 놀자!”


  더 많은 돈을 버느라 바쁘기에 아이하고 못 놉니다. 아이하고 못 놀면 아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사랑스레 자라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자라지 못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더 많은 물질만 베풀려고 하다가 그만 물질에만 얽매이고 말아 ‘마음’을 잊고 ‘사랑’을 잃으며 ‘살림’을 놓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마음과 사랑과 살림이 없이 아이를 키운다면, 정작 어른인 우리부터 스스로 안 재미있고 안 보람차고 안 즐거운 하루가 되지는 않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어린이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 있다 … 꾸밈없이 순진한 세계를 어린이책에서 만날 수 있다. (249쪽)



  ‘엄마 독서평론가’라고 하는 한미화 님이 책 한 권으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바로 사랑 하나입니다. 사랑으로 어린이책을 읽고, 사랑으로 이녁 아이를 돌보려 합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랑으로 어린이책을 읽을 적에 기쁩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하루가 즐겁습니다. 아이하고 나눌 한 가지는 언제나 ‘즐겁게 어울려 놀듯이 짓는 사랑스러운 살림’이라고 느껴요. 이 대목을 늘 가슴속에 고이 새기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비질을 하고 이부자리를 여미고 집안을 건사하고 텃밭에 씨앗을 심고 나무하고 인사하면서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리라 봅니다. 2016.3.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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