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반갑다 사회야 10
김현주 지음, 권송이 그림 / 사계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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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5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한 굴레에 갇히다

―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김현주 글

 권송이 그림

 사계절 펴냄, 2016.3.3.30. 12000원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는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의 관료들이 남긴 기록에 많이 나와요. 게으르고 지식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노예 노동을 시킨 것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꾸며 낸 것이지요. (40쪽)



  김현주 님이 글을 쓰고, 권송이 님이 그림을 그린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사계절,2016)를 읽으면서 가난이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먼저, 이 책에 나오는 ‘빈곤(貧困)’은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을 뜻해요. 사회에서는 흔히 ‘빈곤’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그저 ‘가난’이라고 하면 된다는 소리입니다. 가난한 모습 가운데 먹을거리가 없는 모습은 ‘굶주림’이라 합니다. 몹시 가난한 모습은 ‘억판’이나 ‘엉세판’이라 해요. 무엇이 모자라서 어렵게 지낼 적에는 ‘몰리다’라는 낱말을 써요.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먹을 것을 사고 약을 살 돈이 없어서 어렵고 불편한 게 아니에요. 그보다 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어 힘들지요. (16쪽)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있다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요. 어느 한쪽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다른 한쪽에는 안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쪽에 힘없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다른 한쪽에는 힘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가난은 무엇이 될까요. 가난하면 잘못일까요? 가난이 잘못이라면 가난하지 않은 살림은 잘못이 아닌 셈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살림일 적에 ‘가난하다’고 말할 만할까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을 벌어서 오백만 원을 고스란히 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서 오십만 원을 쓰고 오십만 원을 남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그리고, 한 달에 십만 원을 벌랑 말랑 하지만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지어서 손수 누리기에 돈을 한 푼도 쓸 일이 없다면, 이러한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우리 겨레뿐 아니라 이웃 수많은 나라를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이 땅을 지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얻던 나날에는 ‘경제발전’이나 ‘국민소득’이 모두 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경제교류나 상업이 거의 안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자급자족을 하면서 이웃하고 주고받는(교환) 살림을 꾸린다면, 그야말로 ‘돈 한 푼 없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없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와 달리 경제발전을 이루거나 국민소득이 높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누립니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사회나 경제에서는 ‘돈이 있어도 가난할’ 수 있고, 더군다나 ‘돈이 많아도 가난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집가난(하우스푸어)’이 있어요. 집이 있습니다만 빚을 잔뜩 짊어져요. 그리고 ‘일가난(워킹푸어)’도 있어요. 다달이 돈을 버는 일자리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바지런히 일해도 살림살이가 뾰족하게 나아지지 않는 살림이에요.



부자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가난할 수 있어요. 2011년 미국에서는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빈곤 상태에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23쪽)



  미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한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나라’일까요? 미국 어린이 다섯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다면, 어른도 이와 비슷할 테지요. 무엇보다도 가난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아예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이든 ‘지나치게 많이 거머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누리는 살림으로 넓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지구 사회라면 ‘몇몇 대륙이나 나라’에만 가난이나 굶주림이 있지 않아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가난한 여러 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책에서는 ‘가난한 한국 어린이 삶’까지 다루거나 짚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도 틀림없이 가난한 어린이가 있고, 꽤 많으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가난한 살림 때문에 주름살하고 시름이 늘어요.



식량 배급소를 찾아 얻을 수 있는 죽 한 그릇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생활 터전을 함부로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일이에요. (115쪽)



  한국이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되더라도 이웃나라가 가난하다면 한국도 이 가난을 함께 살필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한국에서도 바지런히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한국 아닌 이웃나라에 공장을 세워서 그 나라 사람들한테서 아주 값싼 일삯으로 한국에서 ‘무척 값싼 물건’을 쉽게 사서 쓰는 얼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가난하다면 가난이 있다고 느껴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밥을 굶는다면 가난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서로서로 기쁠 살림으로 나아가는 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에서도 다루듯이 ‘식량 배급소’나 ‘원조’나 ‘구호’가 아니라 ‘살림터를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길’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돈에 얽매이지 않아도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살림이 되도록 정책이 서야지 싶어요. 지구별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에 갇히는 굴레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면서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기쁨누리가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4.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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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4
고성국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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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7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해요

―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고성국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6.4.19. 12000원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즈음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 꿈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떠오를 듯 말 듯하면서 안 떠오르면 그만두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듯이 떠오르면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으면서 서로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씨앗을 심느냐고 묻고, 나는 어떤 씨앗인가 하고 이름을 말한 뒤에 이 씨앗들이 싹이 트는 모습을 날마다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우리 사랑을 모아서 씨앗을 심어서 돌보자고 이야기해요.


  아직 잘 모르기에 묻습니다. 먼저 겪어서 알기에 알려줍니다. 아직 서로 잘 모르지만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조금씩 실타래를 풉니다. 궁금한 대목을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어느새 수수께끼를 환하게 풀곤 합니다.



아이가 다시 묻지요. “꽃이 뭐야?”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기에서 막힙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꽃의 본질에 대해 몰라서일 수도 있어요. 아이가 유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질문을 통해 자신이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혹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22쪽)



  고성국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철수와영희,2016)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하는데, 이 말하기를 깊이 헤아릴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바쁠 적에는 얼렁뚱땅 말하고 지나가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이야기를 못 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학교를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는 으레 교사 한 사람이 말을 이끕니다. 아무리 한 학급이 작더라도, 스무 아이가 저마다 한 마디씩 1분만 말하더라도 수업 진도를 나갈 수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학교 얼거리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는 내내 거의 입을 다물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고, 어쩌다가 한두 마디를 곁들일 뿐이라는 뜻이며, 교사가 혼자서 신나게 말하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길게 말해야 한다면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알려주기에는 수월해요. 그렇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내처 말하기 때문에 ‘다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가’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몇몇 아이들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싶은 대목이 나와도 어쨌든 진도를 나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생각,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내 생각, 내 느낌, 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말은 상대의 생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상대의 느낌과 감성을 나의 것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닏. (63쪽)


말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성과 정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64쪽)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은 ‘말을 하는 까닭’을 찬찬히 풀어냅니다. 나 혼자 떠들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밝혀요. 내 마음을 밝히되, 나도 네 마음을 들으려고 말을 한다고 밝혀요. 그러니까 ‘혼잣말’이 아닌 ‘이야기’가 되려면,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밝히고 너도 차분히 네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너는 내가 말하는 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네가 말하는 사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상대를 잘 알아야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안다는 것,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81쪽)


대화는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90쪽)



  그러면 우리는 왜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이루려 할까요? 왜 한 사람이 떠드는 얼거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골고루 말하는 얼거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까요? 바로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림을 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함께 보살피고 아끼는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알고 생각을 읽으려고 말을 섞어요. 서로서로 사람됨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길을 찾으려고 말을 나누어요.


  함께 느끼려는 이야기이고, 함께 알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서, 함께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예요.



이기는 게 토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억지로 내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한들 누구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124쪽)


여러분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순간 세상이 열립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음악과 시와 그림에 평생을 매달리는 이유예요. (140쪽)



  ‘토론(討論)’이라는 한자말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논의(論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내어 토의함”을 뜻한다고 해요. ‘토의(討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검토하고 협의함”을 뜻한다 하고, ‘협의(協議)’는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함”을 뜻한다 하며, ‘의논(議論)’은 “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음”을 뜻한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견(意見)’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뜻해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말풀이를 찾느라 길어졌는데, ‘토론 = 논의 = 토의 = 협의 = 의논 = 의견 주고받음 = 생각 주고받음’인 얼거리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토론·논의·토의·협의·의논’ 같은 한자말을 두루 씁니다만, 어느 한자말이든 “생각 나누기”를 가리키는 셈이에요.


  그러니까,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이 밝히듯이, “토론을 하는 까닭은 이기려는 뜻이 아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지려고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이기거나 지려는 뜻이라면 ‘말싸움·말다툼’이라고 하는 ‘논쟁’을 하겠지요.


  생각을 나누려 하기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돼요.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에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돼요.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는 동안 마을이 아름답게 거듭나고 두레나 품앗이도 즐겁게 이루어요.


  우리는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이란 바로 우리가 서로 한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꽃피우도록 북돋우는 멋진 징검돌이지 싶습니다. 2016.4.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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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동사니 대장 동화는 내 친구 16
폴라 폭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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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3



사랑스런 손길로 놀잇감을 아이랑 함께 지어요

― 나는 잡동사니 대장

 폴라 폭스 글

 잉그리드 페츠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0.3.25. 6000원



  플라스틱이 없던 옛날에는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손수 깎아서 아이한테 선물로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아이들 모든 놀잇감은 집집마다 달랐고, 아이마다 달랐어요. 똑같은 놀잇감은 하나조차 없었고, 아이들은 오직 저 한 사람만 생각하며 어버이가 지어서 선물한 놀잇감을 무척 알뜰히 여기고 보듬으면서 자랐어요.


  플라스틱이 넘치는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놀잇감을 어버이가 돈으로 사서 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돈 흐름을 깊거나 넓게 알지 못하니, 길을 가다가 가게에서 보는 장난감을 보면 ‘저거 사 줘!’ 하면서 떼를 쓰다가 악을 쓰다가 앙앙 울기도 합니다. 사랑이 깃든 오직 하나뿐인 놀잇감을 선물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플라스틱으로 찍은 값비싼 장난감’을 쌓고 쌓아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 자꾸 ‘다른’ 장난감을 더 얻어서 모으고 싶습니다.



모리스의 부모님은 종종 손님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모리스의 방을 보면, 한 동네에 쓰레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새삼 놀란다고. 또 엄마는 모리스가 잡동사니를 모으는 덕분에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모리스를 두둔했다. (12쪽)


클랭크 아저씨는 모리스의 수집품만큼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은 모리스한테 캐러멜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음, 넌 물건 보는 눈이 있어. 비록 잡동사니를 모으긴 하지만. 네 마음속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단 말이야.” (25쪽)



  폴라 폭스 님이 글을 쓰고, 잉그리드 페츠 님이 그림을 넣은 《나는 잡동사니 대장》(논장,2000)을 읽으면서 가만히 살림살이를 돌아봅니다. 내가 뜻했건 뜻하지 않건 우리 집에도 플라스틱이 참 많습니다. 냉장고나 세탁기 껍데기도 플라스틱이고, 셈틀을 쓸 적에 두들기는 글판도 플라스틱입니다. 볼펜 자루도 플라스틱이요, 바닥에 끼는 물이끼를 벗기는 솔도 플라스틱입니다.


  밥그릇이나 수저는 플라스틱이 아닌 것으로 장만해서 쓰지만,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하나 살피면 플라스틱 아닌 것이 매우 드물다시피 합니다. 짚이나 나무나 돌로 엮거나 깎은 장난감은 매우 드물구나 싶어요.



모리스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어젯밤에 어둠 속에서 팻시를 감시하느라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팻시는 모리스보다 먼저 곯아떨어졌고, 그래서 모리스의 물건을 하나도 훔쳐가지 못했다. (43쪽)



  우리는 아이들한테 플라스틱을 물려주어도 될까요? 비닐봉지는 백 해가 흘러도 안 썩는다고 하는데, 안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것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늘 만지면서 놀아도 될까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돌이나 나무나 모래나 흙이나 풀이나 나무를 만지지 못한 채 자라도 될까요? 따스한 숨결이 깃든 장난감을 어버이한테서 고이 선물로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집 얘기가 아니라 우리 집 얘기로 돌아봅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놀잇감을 내주었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일찍 깨달았든 늦게 깨달았든, 아무튼 깨달았으면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요, 나무를 얻기 퍽 손쉽다 할 만합니다. 그러니, 나는 손이 닿는 대로 얻는 나무를 칼로 잘 깎아서 아이하고 함께 새 놀잇감을 빚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만지는 기쁨이나 재미를 아이들도 느끼고 어버이인 나도 더 깊이 느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펼쳐졌다. 트럭이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건물도, 주유소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푸른 산과 나무와 전선에 앉아 있는 새들뿐이었다. (92쪽)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 나오는 아이는 ‘잡동사니 모으기’를 합니다. 다만, 어른들이 보기에 ‘잡동사니’입니다. 그러면 아이가 보기에는? 아이는 언제나 ‘보물’을 모아요.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재미나게 갖고 놀 장난감을 모읍니다. 다만, 아이는 길을 가면서 둘레를 살피다가 ‘버려진 것’ 가운데에서 장난감을 찾아서 모을 뿐입니다. 버려진 매트리스도, 버려진 매트리스 용수철도, 이 아이한테는 더없이 멋지고 재미나며 훌륭한 장난감입니다. 이 아이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언제나 한숨을 폭폭 쉬거나 잔소리를 할 뿐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아름답고 신나며 기쁜 놀잇감을 손수 지어서 누리자’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못해요.



그밖에도 가죽이나 나무, 쇠붙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많았는데, 모리스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굵은 햇살 한 줄기가 바닥에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문가에 서 있었다. 건초 부스러기와 먼지가 아빠 주위를 떠다녔다. (103쪽)


“맨 먼저 뭘 할 건데?” 모리스가 말했다. “일단 물건들의 이름부터 알아내야지.” 제이콥이 물었다. “왜?” 모리스는 의젓하게 대답했다. “원래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알았어?” (106쪽)



  가게에서 무엇이든 살 적마다 쓰레기가 하나씩 생깁니다. 비닐봉지가 생기고, 비닐로 된 껍데기나 싸개가 생깁니다. 다 쓰고 난 빈 통도 쓰레기가 됩니다. 이를 되살리면 재미난 놀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생활쓰레기를 되살리기는 벅찰 만해요. 게다가, 생활쓰레기를 되살리는 길을 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생활쓰레기가 아닌 살림을 가꿀 적에 더욱 재미나면서 알차리라 느껴요. 손수 짓고 가꾼다면, 손수 아끼면서 보듬을 수 있다면, 이런 살림살이에서는 근심이나 걱정이 차츰 가시겠지요?


  어린이문학 《나는 잡동사니 대장》에서는 아버지가 크게 다짐을 합니다. 이대로는 도무지 안 된다고 여겨서 집을 옮겨요. 도무지 더 견딜 수 없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지요. 마당이 있고 헛간이 있는 시골에서 살기로 해요. 아버지는 일터로 오가는 품이나 겨를이 많이 든다고 해도, 아이를 헤아려서 시골살이를 다짐합니다. 이러면서 시골집 헛간을 통째로 아이한테 주어요. 시골집 헛간에 있는 모든 ‘농사 연장’을 아이가 마음껏 만지면서 ‘새로운 놀이살림’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 책에 나오듯이 오늘날 도시에 있는 집집마다 ‘아이가 흙과 연장을 마음껏 다룰 시골집을 찾아서 새로운 길로 떠나기’를 하기는 수월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수월하지 않더라도 못할 만하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해 보면 되지요. 그리고 아주 조그맣더라도 어버이 스스로 놀잇감을 깎고 다듬어서 아이하고 함께 놀 수 있어요. 뜨개질로 인형을 뜨고, 나무를 깎아 놀잇감을 지을 만해요. 아이더러 ‘잡동사니 그만 모아!’ 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우리 함께 멋진 놀잇감을 손수 지어 볼까?’ 하고 물어보는 길이 한결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6.4.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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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 - 반다나 시바의 나브다냐 운동 이야기 생각을 더하면 7
반다나 시바.마리나 모르푸르고 지음, 알레그라 알리아르디 그림, 김현주 옮김, 전국여성농민 / 책속물고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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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4



숲을 사랑하는 멋진 ‘씨앗지기’가 될 수 있어요

―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

 반다나 시바·마리나 모르푸르고 글

 알레그라 알리아르디 그림

 김현주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6.3.25. 11000원



  뒤꼍에서 괭이를 들고 밭 한쪽을 갑니다. 겨우내 시든 풀잎으로 덮인 땅은 폭신폭신합니다. 짚을 걷어서 한쪽으로 쌓고, 씨앗을 심을 자리를 고릅니다. 잔돌은 그대로 두고 커다란 돌을 골라서 씨앗자리로 삼는 테두리에 하나씩 놓습니다.


  아이들한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괭이질을 하는데, 큰아이는 집안이나 마당에 아버지가 없는 줄 어느새 알아채고는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뒤꼍에서 아버지를 찾아냅니다. 그러고는 호미를 챙겨서 뒤꼍으로 다시 와서 “나도 해 볼래!” 하고 외칩니다.


  이내 두 사람은 호미질을 하며 제법 굵은 돌을 고르고 자리를 반반하게 다스립니다. 까무잡잡한 흙에서는 까무잡잡한 냄새가 나고, 이 냄새를 두 손이랑 온몸으로 느끼면서 알맞게 땅을 갑니다. 이렇게 흙을 만지니 지렁이도 기웃하고, 굼벵이도 놀란 모습을 보입니다. 개미들이 왁자하게 오가고, 새끼 딱정벌레라든지 아직 알인 벌레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싱그럽고 좋은 흙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 떡갈나무 숲은 숲 전체게 망가져 있기도 했는데, 사과를 대량으로 생산할 큰 농장을 만든다더군요. 큰돈을 벌려고요. 떡갈나무가 쓸모없어 보였나 봐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떡갈나무 숲은 장마철 폭우가 내릴 때 빗물을 흡수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서 홍수도 막아 주고, 가뭄도 막아 줘요. (8∼9쪽)


그리고 환경이 파괴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관계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되었지요. (11쪽)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책속물고기,2016)라고 하는 작고 야무진 책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이 책을 읽으니 큰아이는 고개를 가만히 내밀면서 “무슨 책 읽어?” 하고 묻습니다. “나도 읽고 싶어.” 하고 말하는 큰아이한테 “기다리렴. 아버지가 먼저 다 읽고 나서, 너도 읽을 만한지 살펴서 줄게.” 하고 얘기합니다.


  반다나 시바 님하고 마리나 모르푸르고 님이 글을 쓰고, 알레그라 알리아르디 님이 그림을 넣은 책이에요. ‘어린이 생태환경 인문책’이라 할 텐데, 100쪽이 살짝 안 되는 가볍고 작은 책이지만, 속에 깃든 이야기는 참으로 알차고 야무지네 하고 느낍니다.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를 함께 쓴 반다나 시바 님은 인도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히말라야 멧골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하고, 나중에는 핵물리학자라는 길을 걸었다고 하는데, 어느새 ‘흙을 만지며 씨앗을 사랑하는 새로운 길’로 삶을 바꾸었다고 해요.



오늘날 쌀, 밀, 옥수수, 콩, 사탕수수 등 고작해야 몇 가지 작물만 상품으로 재배해서 세계 시장에서 팔리고 있어요. 원래 사람들이 먹었던 작물이 무려 8500가지나 됐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13쪽)


우리가 기르는 농작물은 농사를 지을 때도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서 대규모로 경작하는 쌀은 1년에 2500밀리미터의 빗물이 필요하지만, 농민들이 대대로 이어온 농사법으로 재배한 토종 쌀은 200∼300밀리미터 정도면 충분해요 … 농약을 사용하는 작물이 1명을 구할 때, 토종 작물로는 400명을 구할 수 있는 거예요! (18쪽)



  오늘 갈아서 오늘 심는 씨앗은 앞으로 여러 날이 지나야 비로소 싹이 틉니다. 그리고 여러 달이 지나야 열매를 맺어서 거둘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에서 열매 한 줌을 얻기까지 한철이 흘러야 해요. 이동안 우리는 지난해에 갈무리한 열매를 먹을 수 있고, 풀잎이나 남새를 얻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지구별 어느 곳에서나 이렇게 손수 심고 가꾸고 거두고 갈무리하면서 살림을 지었어요. 그리고, 밥짓기를 하는 사이사이 풀줄기에서 실을 뽑아서 옷을 짓지요. 그리고, 밥짓기랑 옷짓기를 하는 틈틈이 숲에서 나무를 알맞게 얻어서 집을 짓고 집살림을 장만해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자연환경은 빈곤해지지만 일회용인 잡종 씨앗과 화학비료, 농약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고 있어요. (38쪽)


한국에는 원래 1450가지가 넘는 쌀이 있었다고 해요. 많은가요? 아니면 적게 느껴지나요? 그런데 이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고요, 지금은 450가지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해요.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쌀들도 농촌진흥청 저장고에 보관만 되어 있어 지금 당장은 맛볼 수 없다는 점이에요. (49쪽)



  큰아이랑 둘이서 뒤꼍에서 흙을 만지니, 이제 작은아이도 어슬렁어슬렁 달라붙습니다. 함께 놀 ‘두 사람’이 안 보이기 때문이지요. 작은아이도 호미를 챙겨서 ‘아직 갈지 않은 자리’, 그러니까 며칠 뒤에 갈 자리를 콕콕 쫍니다.


  슬슬 쉬엄쉬엄 땅을 갈아 돌을 고른 뒤에 손바닥으로 반반하게 자리를 다집니다. 이제 씨앗을 심을 때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콕콕 구멍을 내고, 두 아이는 저마다 씨앗을 손에 쥐어 한 톨씩 넣습니다. 우리 꿈을 담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노래를 부르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얹어서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다 심은 뒤에는 큰아이가 물을 길어서 골고루 뿌립니다. 나는 밭에서 나온 쓰레기를 거두어서 한쪽에 모읍니다. 연장에 묻은 흙을 물로 씻어서 한쪽에 놓습니다. 따스한 볕이 골고루 들면서 나무한테도 풀한테도 땅한테도, 또 마당에 넌 빨래한테도 기쁜 기운을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다국적 씨앗 회사들은 씨앗을 서로 나누는 농부들을 골칫거리로 생각했어요. 씨앗을 보관하고 나누는 것이 원래 농부의 일이고 권리인데 말이에요. 씨앗 회사들은 농부들에게 씨앗을 팔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특허 제도를 도입하고 씨앗이 특허를 낸 사람의 지적 재산이 되도록 해서 농부들이 서로 씨앗을 교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자는 것이었어요. (50쪽)



  어린이 인문책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는 씨앗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풀어 줍니다. 옛날부터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손수 심고 가꾸면서 아낀 씨앗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늘날에는 이 씨앗을 다국적기업에서 돈벌이를 앞세우면서 독점과 특허와 유전자조작을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씨앗을 심거나 나누는 살림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들이 스스로 씨앗을 아끼면서 심고 갈무리하는 곳에서는 ‘가난’이 퍼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그렇구나 싶어요.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손수 얻으면 언제나 ‘자급자족’이에요. 자급자족을 하는 곳에서는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은 딱히 없을 만해요. 상품으로 내다 팔려고 하는 땅짓기가 아니라, 한집하고 한마을이 조용히 오순도순 사이좋게 어우러지려고 하는 땅짓기요 땅살림이기 때문입니다. 반다나 시바 님하고 마리나 모르푸르고 님이 함께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세계경제’가 아닌 ‘마을살림·집살림’을 스스로 즐거우면서 재미나고 알차며 아름답게 가꾸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느껴요.



여러분이 어른이 되면 가질 수 있는 직업 중에 ‘농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농부는 자연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항상 접할 수 있는 무척 멋있는 직업이랍니다. (88쪽)



  우리 집 아이들은 앞으로 ‘씨앗을 심고 가꾸고 돌보고 갈무리해서 누리는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아이들이 이 시골집에서 ‘농사꾼’이 되든 안 되든, 또는 다른 일을 찾든 안 찾든, 그러니까 앞으로 아이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땅을 아끼고 살피면서 돌볼 줄 아는 손길하고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서 어버이인 나부터 땅을 조물주물 만지면서 사랑하려 합니다. 손수 짓는 살림을 가꾸려고 합니다. 스스로 돌보는 살림을 스스로 북돋우면서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작은 씨앗 한 톨이 밥 한 그릇으로 거듭나요. 작은 손길 하나가 사랑스러운 살림으로 거듭나요. 작은 마음 하나가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피어나요.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라는 책이 들려주듯이, 씨앗이 있기에 밥이 있어서 우리가 살지요. 땅에도 씨앗을, 마음에도 씨앗을, 보금자리에도 씨앗을, 골고루 심어요.


  우리는 언제나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생각도 살림도 사랑도 씨앗으로 심는 고운 이웃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누구나 ‘씨앗지기’가 될 수 있어요. 너른 논밭이 아니어도 손바닥만 한 짜투리 빈터에 씨앗을 심어서 돌볼 수 있어요. 집안에 작은 그릇을 놓아 씨앗을 심어서 가꿀 수 있어요. 너나 없이 다 같이 씨앗지기가 되고 씨앗동무가 되며 씨앗이웃이 된다면, 언제나 맛나고 싱그러운 밥 한 그릇을 누릴 만하리라 생각해요. 2016.4.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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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1
장성익 지음, 홍자혜 그림 / 분홍고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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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1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 작은 지구

― 있다! 없다!

 장성익 글

 홍자혜 그림

 분홍고래 펴냄, 2015.8.19. 12000원



  마음 가득 즐거운 생각을 스스로 품을 때에 즐겁구나 하고 느낍니다. 즐거움은 남이 일으켜 주거나 선물해 주지 않아요. 밥을 짓든, 빨래를 하든, 길을 걷든, 노래를 부르든, 그냥 웃든, 하늘을 보든,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참말 스스로 즐겁게 바라보고 마주할 때에 비로소 즐거울 수 있어요.


  억지로 놀라고 한들 즐겁게 놀지 못해요.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되어서 놀아야 비로소 즐거워요. 어른들이 하는 일에서도 이와 같아요. 억지로 시켜서 해야 하는 일보다는 스스로 나서서 하는 일에서 즐거움이 피어나고 보람이 생겨난다고 느껴요.


  스스로 즐거울 수 있기에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느끼기도 해요. 왜냐하면, 교실에 앉아야만 배우지 않고, 책을 펴야만 배우지 않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을 스스로 고이 품을 수 있으면, 교실에 앉지 않아도 배울 만해요. 새로운 살림을 꿈꾸는 마음을 스스로 기쁘게 헤아릴 수 있으면, 책을 펴지 않아도 배울 만할 테고요. 그래서 내가 스스로 즐거우려 하지 않으면 즐겁지도 않은데다가, 내가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배우지도 못하는 하루가 어제하고 똑같이 되풀이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자,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 먹이사슬에서 메뚜기가 멸종되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또는 뱀이 그렇게 된다면? (19쪽)


어쩌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졌으니까요. (26쪽)



  장성익 님이 글을 쓰고 홍자혜 님이 그림을 그린 《있다! 없다!》(분홍고래,2015)를 읽으면서 즐거움과 배움이라는 대목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있다! 없다!》는 어느 한 가지를 ‘한쪽 눈’으로만 보지 말고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하도록 이끄는 어린이 인문책입니다. 사회라든지 책이라든지 언론에 나오는 ‘한쪽 눈’을 넘어서, 사회나 책이나 언론이 안 짚거나 안 다루는 ‘다른 한쪽 눈’도 헤아려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꾸러미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있다! 없다!》에서 다루려 하는 ‘두 눈’은 ‘속눈’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겉눈’으로만 볼 적에는 “있다!” 하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속눈으로 함께 볼 적에는 “없다!” 하고 깨달을 수 있어요. 겉눈으로만 볼 적에는 “없다!”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속눈으로 다시 볼 적에는 “있다!” 하고 새삼스레 알아차릴 수 있어요.



현대 산업 문명은 무조건 많이 생산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필연적으로 나오는 엄청난 쓰레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60쪽)


20세기 초 정도까지만 해도 우주가 이렇게나 넓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태양과 우리 지구가 속한 은하계가 우주 전부라고 알고 있었어요. (42쪽)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을까요? 밤하늘에 별을 보기 어렵도록 매캐한 하늘을 등에 이고 사는 사람들(어른과 아이 모두)은 별이 있는 줄 없는 줄 얼마나 알 만할까요? 깊은 시골에 사는 사람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은 ‘별이 얼마나 있다’고 여길 만할까요? 또, 서울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하고 숲에 깃들어 사는 사람은 ‘자동차가 얼마나 있다’고 여길 만할까요?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을 때에 즐거움이 함께 있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이 있도록 이 삶터를 가꾸고 우리 마을이나 살림터를 돌볼 적에 서로 즐겁거나 아름다울 만할까 하고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돈이 있고 없는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집이 있고 없는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군수나 시의원이나 군의원을 뽑는 자리란 무엇일까요. 해마다 봄이 되어 밭을 갈고 논을 갈아 씨앗을 심는 시골지기란 누구일까요. 우리는 이 봄을 어떠한 마음이나 몸짓이나 생각으로 맞이할 만할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오늘날 한국에서 5%가 안 된다고 하는데, 이 5%로도 우리는 어디에서나 늘 먹고 마실 수 있는 삶이에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거나 없는 셈일까요. 앞으로 이 5%가 1%나 0%가 되어도 우리는 넉넉히 먹거나 마실 수 있는 삶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생각은 대체로 우리가 사는 지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방금 살펴봤듯이 지구는 우주 전체 차원에서 보면 그야말로 티끌보다도 훨씬 더 작습니다. (45쪽)



  생태사슬에서 파리가 사라지면 똥이 온 지구에 넘치고 맙니다. 생태사슬에서 날벌레 한 가지가 사라지면 먹이사슬이 그만 끊어집니다. 새 한 가지가 사라질 적에도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숲짐승 한 가지가 사라져도 먹이사슬이 끊어져요.


  얼마 앞서까지 사람들 누구나 수천 가지에 이르는 씨앗을 저마다 심어서 온갖 곡식이나 열매를 골고루 누렸다고 해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손꼽는 씨앗이나 열매 가짓수는 몇 가지 안 돼요. 이러면서 가게마다 과자나 빵 가짓수는 자꾸 늘어납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얻으면서 무엇을 잃을까요. 《있다! 없다!》를 빚은 두 어른은 어린이들한테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 작은 지구’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려 합니다. 너무 많은 어른들이 ‘우주 눈길’을 잃을 뿐 아니라 ‘지구 눈길’조차 잃고, 지구뿐 아니라 ‘아시아’라든지 ‘한국’이라든지 ‘마을’이라는 눈길마저 잊는 대목을 곰곰이 짚어서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간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 집’이나 ‘우리 보금자리’라는 눈길까지 잃거나 잊은 채 너무 바쁜지 몰라요. 집을 손수 짓고 살림을 손수 가꾸며 아이들을 손수 가르치고 사랑하는 삶을 어느새 잊거나 잃었다고 할 만한지 모르지요.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문제는 자유로운 경쟁만 강조하면 힘센 쪽만 계속 이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린 유치원생 아이와 다 큰 대학생 청년을 똑같은 출발선에 세워 놓고 ‘자유롭게’ 달리기 경주를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102쪽)



  우주라는 테두리에서 지구를 바라보자고 하는 까닭은, ‘우리가 티끌’이라는 대목을 깨닫자고만 하는 이야기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주 테두리에서는 티끌일 수 있는데, 우리 몸을 가만히 헤아리면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원자와 분자’로 치자면 ‘우리 몸도 우주 가운데 하나’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우주’이면서 ‘티끌’인 숨결인 셈이에요. 크면서도 작고, 작으면서도 크다고 할 만해요. 이리하여 내가 선 자리를 찬찬히 바라보고, 내가 갈 길을 가만히 꿈꾸며, 내가 지을 삶을 하나하나 이룰 때에 바야흐로 즐거움하고 기쁨을 손수 일으킬 만하다고 느껴요.


  남들이 시키는 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길을 갈 때에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어른도 어린이도 모두 ‘있다 없다’라는 두 눈으로, 그러니까 겉눈뿐 아니라 속눈으로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길을 갈 때에 기쁘게 웃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고요히 눈을 감고서 속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가만히 속눈을 뜨고서 마음으로 서로 아낄 수 있기를, 느긋하게 속마음을 열고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있다! 없다!》라는 책을 되새겨 봅니다. 2016.4.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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