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탄생을 위한 출산 동반자 가이드 - 자연주의 출산을 생각하는 산모와 동반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
페니 심킨 지음, 정환욱 옮김 / 샨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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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2



노래하는 두 아이, 나무 밑 두 아이

― 출산 동반자 가이드

 페니 심킨 글

 정환욱 옮김

 샨티 펴냄, 2016.3.10. 22000원



노래나 악기 연주 외에 간단한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도 좋다. 아기가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같은 이야기를 거듭해서 읽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49쪽)



  두 아이를 늘 돌보는 아버지로서 《출산 동반자 가이드》(샨티,2016)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고 작은아이가 여섯 살입니다. 집안일하고 집밖일을 모두 도맡는 아버지로서 굳이 《출산 동반자 가이드》를 읽을 까닭이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 집에 ‘넷째 아이’가 찾아오려 했기 때문에, 아기를 낳고 돌보는 살림을 새롭게 되새기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곁님과 함께 ‘병원 아닌 집에서 낳으려는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모두 ‘병원에서 낳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이자 어버이로서 배움이 모자란 탓이 있고, 곁님이 몸이나 힘이 너무 여려서 견디거나 버티거나 씩씩하지 못한 탓이 있다고 할 만합니다. 두 아이는 병원에서 낳았어도 다음 아이는 꼭 집에서 조용히 낳아서 고요히 돌보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지냈어요.



만출 단계가 느려지는 것은 아기가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혹은 엄마의 골반에서 가장 좋은 자세를 취하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임을 기억하자. (134쪽)



  아홉 살과 여섯 살인 두 아이는 언제나 내 곁에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내가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면 이 아이들은 내 둘레에서 뛰어놀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놀기도 하고 마을을 여러 바퀴 달리면서 놀기도 합니다. 내가 집안에 있으면 언제나 다시 집안으로 돌아와서 내 곁에 있지요. 내가 마당이나 밭자락에서 흙을 만지면 이 아이들은 집안에 머물지 않고 마당이나 밭자락으로 나와서 저희끼리 뭔가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지어내서 놉니다. 밭일을 두 시간 하면 두 시간 동안 나란히 흙놀이를 하고, 밭일을 네 시간 하면 네 시간 동안 나란히 흙놀이를 해요.


  잠자리에서 늘 이불을 뻥뻥 걷어차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은 아버지인 나를 믿는 몸짓일까요? 나는 여태까지 밤마다 아이들 이불깃을 열 차례 넘게 여밉니다. 나는 언제나 밤에 틈틈이 잠을 깨고 일어나서 이불깃을 여며요. ‘틀림없이 이때쯤이면 이불을 걷어찼겠지’ 하고 느끼면서 부시시 일어나지요.


  이불깃을 여미다가 가끔 두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적을 떠올립니다. 두 아이가 아기였던 때에는 밤에도 삼십 분마다 천기저귀를 갈았으니, 마치 기저귀를 갈아 주듯이 이불깃을 여미어 주는 셈입니다.



출산 동반자는 가능하면 아기와 함께 지내야 한다. 아기에게는 가까이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314쪽)



  《출산 동반자 가이드》는 아기를 낳는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 구실을 할 사내들이 차근차근 읽고 되새기도록 돕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는 이 책을 그야말로 틈틈이 읽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이는 틈에 몇 쪽씩 읽고, 거의 날마다 빨래를 하고 마당에 널어서 저녁에 걷은 뒤 개고 나서 몇 쪽씩 읽어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하고 공부하는 사이에도 몇 쪽씩 읽고요.


  두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고 하던 지난날, ‘학교에서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것을 스스로 배우려고 무던히 힘들었어요. 곁님이 일깨우고 이끌어서 배웠습니다만, 학교에서는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살림’을 한 번도 안 가르쳤거든요. 학교에서는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동영상이나 이론으로 더러 가르치기는 하지만, 정작 ‘아기 낳기’하고 ‘아기 돌보기’하고 ‘살림 꾸리기’는 가르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살피고 찾아서 배워야 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아기를 낳고 돌보는 살림은 ‘어머니(여자)만 알면’ 되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한집에서 한살림을 짓는 아버지(남자)가 아기를 낳고 돌보는 일이나 흐름을 모른다면 어떠할까요? 사내는 집밖에서 돈만 잘 벌면 될까요? 사내는 ‘돈 버는 구실’ 말고 ‘아버지 노릇’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도 될까요?


  《출산 동반자 가이드》라는 책은 사내가 ‘아버지 노릇’을 똑똑히 하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기까지 아버지 자리에서 출산 동반자로서 무엇을 알고 생각하고 살펴야 하는가’를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출산 동반자, 그러니까 앞으로 아기를 낳아서 ‘함께 사랑으로 살아갈 사람’으로서 무엇을 알고 느끼고 생각할 때에 즐겁게 삶을 지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다루고 들려줍니다.



(예방주사로) 비타민 K를 거부하는 것은 약간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아기가 VKDB를 갖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병은 흔하지느 않다. (383쪽)



  《출산 동반자 가이드》라는 책은 예방주사 맞히는 이야기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 이야기를 틈틈이 들려줍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예방주사나 병원 치료를 ‘권장’은 하되 ‘강요’는 하지 않아요. 아기한테 맞히라고 하는 예방주사로 ‘반드시 예방’이 되지는 않는다는 대목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나는 두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동안 예방주사란 무엇인가를 놓고 참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살피며 따져 보았습니다. 예방주사를 맞혀야 병이 안 걸릴까요? 아니면, 병원균을 미리 아이들 몸에 집어넣기에 병원균에 감염이 될까요?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어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려는 마음이 된다면,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아요. 아이를 따스하고 넉넉하게 보살피려는 살림이 된다면, 아이는 걱정없이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고 웃는 튼튼한 몸으로 자라요.


  내 곁에는 어느새 아홉 살하고 여섯 살로 자란 두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4년에 그만 너무 일찍 찾아와서 핏덩이인 채 무화과나무 곁에 묻힌 ‘셋째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에 다시금 너무 일찍 찾아와서 아주 작고 가녀린 핏덩이인 채 석류나무 곁에 묻힌 ‘넷째 아이’가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우리 집 ‘셋째·넷째’를 가리켜 ‘유산’이라는 말을 쓸 텐데, 나는 두 숨결을 그저 ‘셋째·넷째’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지난밤에 우리 집 석류나무 곁을 호미로 파서 아주 조그마한 핏덩이를 땅에 묻으면서 보름달을 올려다보았어요. 아침에는 읍내로 가서 미역하고 소고기하고 수박을 장만해서 돌아오며 뜨거운 봄볕을 마주했어요. 튼튼한 몸으로 자란 아이들을 돌보는 어버이로서뿐 아니라, 네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보살피는 짝꿍(아버지)으로서 내가 설 자리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출산 동반자’는 ‘살림을 함께 짓는 사람’이고, ‘삶을 함께 누리는 벗’입니다. 남녀 평등이나 가사 분담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사람·삶·살림·아기·출산·양육’ 모두 우리 아버지들이 제대로 바라보고 슬기롭게 알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에게 본격 진통 단계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진통을 한다는 생각에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꾹 참고 아기가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임신부는 우울해질 수 있다. (109쪽)



  아기를 낳는 일은 어머니한테뿐 아니라 아버지한테도 ‘삶을 새롭게 깨닫는 한때’가 되리라 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니까 이 땅 사내들이, 어머니(짝꿍·여자) 곁에서 아기를 함께 낳고, 아기를 함께 받고, 아기를 함께 돌보고, 아기와 함께 지내는 살림을 함께 가꾸면서, 아기를 함께 가르치고, 아기랑 함께 놀며, 아기하고 하루하루 함께 누리는 삶이 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선 이 자리는 무척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달라지리라 느껴요. 내 보금자리를 내가 스스로 사랑으로 가꿀 수 있다면, 우리 사회나 터전도 어느새 사랑이 가득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여자와 남자라는 틀을 넘어서, 수학도 과학도 국어도 영어도 사회도 역사도 배워야겠습니다만, ‘육아·출산·양육’이라고 하는 ‘삶·살림·사랑’을 먼저 제대로 올바로 슬기롭게 따사로이 넉넉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무화과나무 곁에 묻고, 석류나무 곁에 묻은, 작은 숨결이 일깨운 사랑을 가만히 그립니다. 2016.5.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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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6-05-22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 마음이 전해지는것같습니다.


숲노래 2016-05-22 06:21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조금씩 한창 읽다가
어제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앞으로 다섯째 아이가 찾아오려 한다면
다시 책꽂이에서 꺼내야지요.
고맙습니다..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처음 만나는 사전 시리즈 1
이상권 지음, 김중석 그림 / 한권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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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148



코피가 날 적에 쑥잎을 써 보렴

―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이상권 글

 김중석 그림

 한권의책 펴냄, 2014.7.10. 13500원



  갈대, 강아지풀, 개구리밥, 개망초, 괭이밥, 국화, 꽃다지, 나팔꽃, 냉이, 달맞이꽃, 달래, 도라지, 며느리밑씻개, 봉숭아, 민들레, … 잔디, 제비꽃, 질경이, 코스모스, 토끼풀, 패랭이꽃, 할미꽃, 이렇게 서른여섯 가지 풀이나 꽃을 알려주는 어린이 인문책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한권의책,2014)을 읽습니다. 풀이나 꽃을 잘 모르는 채 자란다고 할 만한 도시 아이들한테 길동무가 되도록 빚은 책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풀이나 꽃은 무척 많지만,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서 서른여섯 가지를 추려서 엮어요.


  그런데 이 책에 실은 풀이나 꽃을 살펴보자면 “들꽃 사전”보다는 “풀꽃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갈대나 강아지풀은 들꽃이 아니고, 개구리밥도 들꽃이 아니거든요. 나팔꽃이나 봉숭아나 잔디도 들꽃이라 하기는 좀 어려워요. 도라지도 그렇고, 할미꽃도 들꽃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려요. 도라지는 나물 쪽에, 할미꽃은 깊은 숲에서 자라는 멧꽃 쪽에 넣어야지 싶습니다. 쇠뜨기나 쇠무릎도 들꽃보다는 들풀이라 할 만하고, 뱀딸기나 쑥이나 억새도 들꽃이라 묶기에는 어쩐지 안 어울려요. 그러니까 ‘들꽃’보다는 ‘풀이랑 꽃’을 다루는 “풀꽃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일 적에 아이들도 ‘풀이랑 꽃’하고 한결 살가이 다가서도록 도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다가 지치거나 입이 심심해지면 괭이밥 이파리를 따서 씹어 먹었어요. 괭이밥 이파리는 부드럽고 새콤하니 신맛이 나거든요. 아이들은 ‘고양이싱아’라고 불렀지요. ‘싱아’라는 말에는 ‘시다’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27쪽)



  나는 어릴 적에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 같은 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1980년대에는 이만 한 책이 한국에서는 나온 적이 없거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은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몰랐고, 학교 선생님도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모르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를 ‘풀 선생님’이나 ‘꽃 선생님’으로 모셨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어머니, 이 풀은 뭐예요?” 하고 물으면 거의 척척 알려주셨어요. 다만, 어머니가 이름을 알려주셔도 고개를 돌리고 나면 곧 잊었습니다.



친구하고 싸우다가 코피가 나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쑥 좀 찾아보자.” 하고 말했어요. 쑥 이파리를 뜯어다가 둘둘 말아서 코를 막으면 흐르던 피가 멎거든요. (95쪽)


잔디밭은 곤충들의 천국이에요. 농약만 치지 않는다면 잔디밭은 곤충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끝없이 펼쳐진 천국이나 다름없지요. 방아깨비, 섬서구메뚜기, 풀무치, 팥중이, 콩중이, 밑들이, 사마귀 들이 바글바글해요. 아이들은 놀다가 지치면 메뚜기를 잡는다며 뛰어다녔어요. (115쪽)



  생태동화를 꾸준히 쓰는 이상권 님은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이라는 이쁜 책을 빌어서 어린이가 이 땅에서 풀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권 님이 어릴 적에 보고 겪고 만지고 누리던 풀하고 꽃 이야기를 이 책에 가만히 풀어놓습니다.


  도시 아이들이 도시에서 들풀이나 들꽃이나 숲풀이나 숲꽃을 만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도시 아이들이 도시에서 들나물이나 멧나물을 마주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 책을 빌어서 ‘풀 한 포기가 사람한테 베푸는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마실 수 있기를 바라지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은 예전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어른’이 훨씬 많아요.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 모르기 일쑤예요. 일부러 배우지 않으면 모르고, 애써서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지요.



이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서 손으로 만지기도 힘든 풀이었어요. 며느리는 아픔을 참으면서 시어머니가 준 이파리로 밑을 닦았답니다. 그래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54쪽)



  그나저나 이쁜 생태도감이라 할 수 있는 《처음 만나는 들꽃 사전》인데, 풀이름을 놓고 잘못 알려진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며느리밑씻개’하고 얽힌 이야기인데,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은 일본사람이 일본 옛이야기를 빌어서 붙인 풀이름(繼子の尻拭い)입니다. 우리 겨레 이야기가 아니지요. ‘며느리밑씻개’하고 이름이 비슷한 ‘며느리배꼽’도 잘못 알려지고 잘못 퍼진 풀이름 가운데 하나예요.


  한국 풀이름은 ‘사광이아재비’하고 ‘사광이풀’입니다. ‘며느리밑씻개’가 아니라 ‘사광이아재비’라고 해야 올바르고, ‘며느리배꼽’이 아니라 ‘사광이풀’이라고 해야 올발라요.


  일본 학자가 일본 옛이야기를 빌어서 ‘재미나게’ 또는 ‘슬프게’ 붙인 이름을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요. 이런 일본 옛이야기도 한국에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요. 다만, 한국 풀이름이 버젓이 있다면, 이 풀이름을 찬찬히 살펴서 왜 ‘사광이’라는 이름을 쓰는가를 생각해서 아이들한테 알려줄 수 있으면 더 나으리라 생각해요. ‘사광이’는 ‘삵(살쾡이)’에서 온 말이라고 해요. 사광이아재비나 사광이풀이나 어린 싹부터 날카로운 가시가 줄기에 잔뜩 돋거든요.


  아무쪼록 온누리 아이들이 온갖 들풀하고 들꽃을 사랑하는 싱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들나물을 즐겁게 먹고, 들꽃을 곱게 사랑하면서, 들바람을 해맑게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5.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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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꿈 난 책읽기가 좋아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콜슨 그림, 김옥주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47



꿈꾸는 인형이 참말로 토끼가 되었네

― 인형의 꿈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클슨 그림

 이옥주 옮김

 비룡소 펴냄, 1998.11.6. 7000원



  마저리 윌리엄즈 님이 1922년에 “the Velveteen Rabbit”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어린이문학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사랑받는 날에는》이나 《헝겊 토끼의 눈물》이나 《토끼 인형의 눈물》이나 《사랑받는 날에는 진짜가 되는 거야》나 《벨벳 토끼 인형》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책을 살피다가 이 가운데 《인형의 꿈》을 골라서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작품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꿈꾸는 인형’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를 다루기에 “인형의 꿈”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값비싼 장난감들도 토끼 인형을 무시했지. 헝겊 쪼가리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 (9쪽)


토끼 인형은 진짜 토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 무엇을 본떠 자길 만들었는지도 몰랐지. 진짜 토끼도 모두 자기처럼 톱밥으로 가득 차 있는 줄만 알았지. (10쪽)



  단출한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토끼는 ‘그냥 토끼’가 아닙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형 토끼’입니다. 인형인 토끼이니 몸에서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뼈가 없어요. 소리를 내지 못하고, 뛸 수 없을 뿐 아니라, 웃거나 울 수 없어요. 밥을 먹지 않고, 똥을 누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인형입니다. 마음이 없다고 여길 만하고, 생각도 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가만히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어느 날 문득 어느 아이 곁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값싼 인형이라며 놀리는 다른 장난감이 있지만, 이 인형 토끼는 ‘오래된 장난감 말’이 들려준 이야기를 늘 마음에 새겨요. 오래도록 따사로이 사랑을 받으면 ‘인형이 아니라 목숨이 깃든 토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을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얘야, 뭘로 만들어졌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너도 진짜가 될 수 있고말고. 누군가 널 장난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 너도 진짜가 될 수 있지.” (14쪽)


소년은 어딜 가든지 토끼 인형을 데리고 다녔지. 토끼 인형을 손수레에 태워 주기도 했고, 정원에 데려가 점심을 먹기도 했어. 꽃밭 울타리 뒤 산딸기 나무 밑에다 동화에 나오는 오두막 같은 예쁜 토끼집도 지어 주었어. (19쪽)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인형인 토끼는 꿈을 꾸면 ‘폴짝폴짝 뛰는 토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이 말도 안 될 만한 일은 참으로 일어날 만할까요? 문학이니까, 게다가 어린이문학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만할까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애타게 바라고 온힘을 쏟아서 꿈을 꾸면 이룰 수 있을까요?


  인형 토끼는 어느 날 ‘인형을 아끼는 아이’하고 들판으로 마실을 가요. 이때에 ‘인형이 아닌 참말 목숨이 있는’ 토끼를 만나지요.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을 보고는 처음에는 동무인 줄 여기다가, 나중에는 인형인 줄 알아요. 인형 토끼는 저도 높이 뛸 수 있고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외치지만,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 토끼를 더 쳐다보지 않고 떠납니다. 인형 토끼는 너무 서럽고 슬프지만, 저를 아끼는 아이가 다가왔기에 아이 품에서 잠들고 놀면서 서러움하고 슬픔을 달랩니다.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아름다움을 잃으면서까지 사랑을 받아 진짜 토끼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눈물 한 방울이, 진짜 눈물 한 방울이 누더기가 된 벨벳 코를 간지럽히며 흘러내리더니 땅에 떨어지네. (36쪽)



  책을 덮고서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벼리야, 이 책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참말로 폴짝폴짝 뛰는 멧토끼가 되었네.” “응. 진짜 토끼들처럼 진짜 토끼가 되었어.” “그러면 인형 토끼는 어떻게 진짜 토끼가 되었을까?” “음, 꿈을 꿔서?” “그래, 인형 토끼가 꿈을 꾸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인형 토끼?” “인형인 채 있으면서 꿈을 안 꾸었으면 그냥 인형으로 있겠지. 그냥 인형으로 있다가 낡거나 해지면서 버려지겠지.”


  아이한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줍니다. “우리도 늘 꿈을 품으면, 이 꿈을 자꾸 되새기면서 한결같이 마음속으로 그리면, 아침에 일어나서 꿈을 새롭게 그리고, 저녁에 자면서 꿈을 다시금 그리면, 이렇게 늘 꿈으로 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렇지만 꿈이 안 이루어질 수도 있지.” “언제? 언제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꿀 때에는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꾸니까 이루어질 꿈이 없겠지?” “응. 그래. 그러면 꿈을 꾸어야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그렇지. 그리고 꿈을 그냥 꾸기만 할 뿐 아니라,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늘 그릴 수 있어야 꿈이 이루어져.”


  《인형의 꿈》을 읽으면, ‘사랑받은 장난감’은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꿈을 꾼 장난감’은 오직 헝겊 토끼 하나입니다. 헝겊 인형이던 토끼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꿈을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에 새겨요. 기쁠 때에도 꿈을 그리고, 슬플 적에도 꿈을 그려요. 마침내 막다른 벼랑 같은 자리에 놓여도 인형 토끼는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꿈이 없이 지내는 삶은 어떤 뜻이 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꿈을 그리기에 꿈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고, 꿈을 안 그리기에 아무 꿈이 없이 쳇바퀴를 도는 삶이 된다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더없이 쉽고 그지없이 마땅한 이야기인데, 바로 이 쉽고 마땅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늘 잊은 채 똑같은 쳇바퀴를 굴리지는 않나 하고 돌아봅니다. 멧토끼가 되고 싶은 꿈을 품어서 끝내 멧토끼가 된 헝겊 인형 토끼처럼, 나도 내가 될 새로운 모습을 꿈으로 고이 꾸면서 마음에 찬찬히 아로새기자고 생각합니다. 2016.5.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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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
황주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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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9



교사는 돈 잘 벌고 안정된 일자리?

―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황주환 글

 갈라파고스 펴냄, 2016.4.11. 15000원



  경상북도에서 교사로 일하는 황주환 님이 쓴 ‘자기고백 교육비평’이라고 할 만한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갈라파고스,2016)를 읽다 보면, 황주환 님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이를테면, 여학생 뺨을 때린 이야기라든지, 또 아이들을 때린 일을 그만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그 학생하고 만났을 적에 그 학생이 왜 저를 때렸는가 하고 물었을 때 대꾸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낱낱이 써도 될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자기고백’을 하기에 오늘날 이 나라 학교교육를 차근차근 짚고 바라보면서 비평을 할 수 있으리라고도 느낍니다.



왜 나는 그런 지도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마도 내 몸에는 그런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미 몸으로 학습한 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까닭이다. (57쪽)


학교폭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손톱만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도, 그것을 승자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더 이상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75쪽)



  교사 황주환 님은 스스로 보기에도 부끄럽고 남한테 밝히기에도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까닭을 곰곰이 파헤칩니다. 황주환 님이 어릴 적에 학교에서 교사한테 늘 맞고 자랐으니 ‘맞고 자란 몸’이 버릇으로 굳었고, 이 버릇대로 ‘교사 자리에 서고 나서는 때리는 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몸으로 학습한 것(57쪽)”은 마음보다 늘 앞섰다고 털어놓아요.


  그러니까,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폭력 아닌 사랑으로 배운 일’이 몸에 남지 않은 터라, 아무리 ‘머리에 이론이나 지식’으로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치자’고 하는 말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론이나 지식이 제대로 샘솟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폭력을 안 쓰고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을 뿐 아니라 ‘나는 왜 저렇게 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부끄러이 여겼고, 황주환 님으로서 부끄러운 몸짓을 ‘이제부터 새로 배워서 털어내자’고 다짐했다고 해요.



아이들이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란다. 국어 교과서에 소원 세 가지를 적어 보라는 예비 문제에, 돈 많이 벌기, 돈벼락 맞기, 돈 많은 애인 만나기를 적는 것처럼, 오로지 돈을 반복하는 학생들이 교사가 되고 싶단다. (80쪽)


공부를 못한다고 자기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자기 몫을 주장하고 곳곳의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행하는 이 수업이 바로 연대의 사례라고, 내 믿음으로 말한다. (107쪽)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라고 붙인 책이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분이 ‘자기고백’을 하면서 밝힌 대목에서 이 책이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학교가 ‘질문을 가르치지 않’을 때에, 학생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찾는 삶’을 몸에 익히지 못합니다. 스스로 묻지 않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체제와 정치와 사회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따르는 ‘기계’가 되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묻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돈 많이 버는 안정된 일자리’를 바란다고 합니다. 또는 ‘돈 많은 애인 만나기’를 바란다고 해요. 아이들은 교사라고 하는 자리를 ‘돈 잘 벌고 안정된 일자리’로 바라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주환 님은 아이들 머릿속에 ‘돈’만 남도록 되고 만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시무시할 뿐 아니라 앞길이 캄캄한 노릇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을 찾으려는 삶이 아니니 앞길이 캄캄하지요. 꿈을 꽃피우고 사랑을 나누려는 아이들이 아니라 돈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된다면 더없이 무시무시하지요. 아무리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을 정부에서 시키려 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사회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이 억눌리거나 짓밟히는 모습이라면, 아이들은 오직 돈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왜 우리는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하지 못할까. 그러니까 왜 우리는 부당한 지시에도 충직하기만 한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저항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지 않던가! (168쪽)



  교사 황주환 님은 이녁이 학생일 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교사로 학생을 마주하는 오늘날에도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 얼거리에서는 ‘저항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 안팎에서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학생’만 기르려 한다고 털어놓습니다. 교사를 비롯해서 ‘어른 자리’에 있다는 이들은 학생과 어린이와 젊은이가 ‘공손한 태도’이냐 아니냐만을 따진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바라는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교사나 어른이 너무 적다고 털어놓습니다.


  문득 높임말이라고 하는 말을 떠올립니다. 높임말이란 서로서로 높이려고 쓰는 말입니다만, 어느 때에는 낮춤말로 탈바꿈하기도 해요. 한쪽만 높이도록 하는 높임말일 적에는, 다른 한쪽은 어느 한쪽을 낮추는 말이 되어요. 어느 한쪽은 나이가 많대서 높임말을 받고, 높임말을 받으면서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 반말(낮춤말)만 쓸 적에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공손하게 높임말을 안 쓴다’고 하면 아무리 ‘바른 말(정당한 요구)’을 한다고 하더라도 ‘버릇없다’고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귀를 닫기 일쑤예요.



왜 교사는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을까? 왜 교사는 학생의 요구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의하기보다 학생이 공순하냐 아니냐에 민감할까? (172쪽)



  ‘묻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묻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 또는 생각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학교가 아이들을 ‘묻는 사람’으로 키운다고 한다면, 학교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운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아이들을 ‘묻지 않는 사람’으로 길들이려 한다면, 이는 아이들을 ‘생각을 잃어버린 채 고분고분하기만 한 기계’로 길들이려 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시골학교에서도 도시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골교사 한 사람뿐 아니라 도시교사 누구나 아이들한테 ‘생각하기’를 가르치고 ‘생각하는 사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묻는’ 사람이 되어서, 새롭게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2016.5.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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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과서 어휘능력 12000 : D-1단계 초등학생의 학습 능력이 자라는 초능력 시리즈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 지음 / 아울북 / 2015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146



아이들은 ‘한자말’을 얼마나 알야아 할까?

―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 글

 박종호 그림

 아울북 펴냄, 2015.10.21. 12000원



12000자는 무척 많은 어휘이지만 핵심 어휘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초등교과서에는 한자가 42만 번도 넘게 나오는데 100번 이상 등장하는 한자는 500개를 넘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말)



  아홉 살 큰아이가 어느 책을 읽다가 ‘특징’이라는 낱말이 나와서 잘 모르겠다면서 어머니한테 묻습니다. 아이가 어머니한테 묻는 말을 옆에서 듣다 보니, 참말 어른들은 ‘특징(特徵)’이라는 한자말을 꽤 흔히 쓰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특징’을 찾아보면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으로 풀이합니다.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으로 풀이해요. 그러니까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점’을 가리키는 셈인데,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한다 하고, ‘구별(區別)’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남”을 뜻한다고 해요. 다시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뜻한다 하며, ‘차이(差異)’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을 뜻한다 하고, ‘색(色)다르다’는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다”를 뜻한다 해요. 이제 여기에서는 ‘특색(特色)’이 나오는데, 이 한자말은 “보통의 것과 다른”을 뜻한다고 해요.


  자, 이제 ‘한자말 뜻풀이’ 찾기를 마칩니다. ‘특징’ 하나를 알려고 참으로 여러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다시금 간추리자면,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하여 (차이가 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보통과 다른 특색이 있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특별’하지 않고 다른 ‘보통과 다른’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인 셈입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낱말 가운데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한국말사전을 찾아본 어버이라면 ‘특징’을 놓고 빙글빙글 수없이 겹말풀이로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다 진저리를 치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간추리자면, ‘특징’을 풀이하려고 하는 동안 ‘특별·보통·구별·평범·차이·색다르다·특색’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특징’을 풀이하며 처음 나오는 ‘특별’은 ‘보통’을 거쳐서 다시 ‘특징’으로 돌아가요. 게다가 여러 한자말을 가만히 살피면 어디에나 ‘다르다’라는 한국말이 나오지요. 다시 말해서 “달라서 눈에 뜨이는 모습”을 ‘특징’이라 할 만하고 ‘특별·특색’도 이와 같다고 여길 만해요.



종자(種子)는 씨앗을 뜻해요. 종(種)이 ‘씨앗’이라는 뜻이거든요. 우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건 모두 작은 씨앗 덕분이랍니다. 쌀을 만드는 건 볍씨, 옷을 만드는 건 목화씨니까요. (32쪽)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는 뜻이에요. 무죄는 죄가 없다는 뜻이고, 무료는 요금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 다음 빈칸을 채워 낱말을 완성해 보세요. 이름 없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은 □□씨,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용사는 □□용사. (94쪽)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아울북,2015)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오는 한자말을 살펴서 이 한자말을 잘 익히도록 도와주는 참고서라 할 만합니다. 책이름에 나오는 ‘12000’은 우리 사회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쓰인 한자말이 자그마치 12000 낱말이 넘기 때문에 이 12000 가지 한자말을 샅샅이 익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숫자입니다. 모두 20권으로 엮은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이고, 네 등급으로 나누어서 등급마다 다섯 권씩 묶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책에서 밝히는 통계 자료를 보니, 12000 가지가 넘는 한자말이 우리 사회 어린이책에 나온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100번 넘게 나타나는 ‘흔히 쓰기에 잘 알아야 할 만한’ 한자말은 500가지도 안 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말을 어린이책에 쓰는 우리 사회요 어른이라 하지만, 막상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게 한자말을 좀 지나치게 쓴다고 할 수 있어요.


  ‘씨앗’이라는 한국말이 있는데 우리는 왜 ‘종자’ 같은 한자말을 쓰거나 가르쳐야 할까요? 이름을 알 수 없을 적에는 흔히 ‘아무개’라는 한국말을 쓰는데 왜 ‘무명’이라는 한자말까지 써야 할까요?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거나 한자말을 안 써야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살림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알맞게 나타낼 만한 낱말을 슬기롭게 쓸 수 있도록 어린이를 이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걸어서’ 간다고 하면 될 일을 ‘도보’로 간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쉰다’고 하면 될 일을 ‘휴식’이라 하지 않아도 돼요. ‘하늘을 난다’를 ‘공중을 비행한다’라 하지 않아도 되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을 ‘취침하고 기상한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을 살펴보니, 이 책은 어린이가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를 차근차근 익히도록 잘 도와주는 얼거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굳이 안 가르쳐도 되는 한자말까지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왔다’는 까닭 때문에 애써서 외우도록 이끄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쉽게 쓰고 주고받을 만한 한국말이 버젓이 있다면 구태여 ‘한자 지식 외우기’까지 이끌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이 물건은 특징이 이렇습니다”라 써도 되고, “이 물건은 이렇게 다릅니다”라 써도 돼요.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쓰도록 이끌되, 생각을 환하게 열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곰곰이 짚고 생각할 대목이라면, ‘하늘’이나 ‘땅’이라고 하는 낱말은 이 낱말을 소리로뿐 아니라 뜻과 느낌으로 함께 살필 때에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천·지’나 ‘天·地’라고 적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천·지’이든 ‘天·地’이든 ‘하늘·땅’을 알아야 비로소 말을 알아요.


  아이들한테 새로운 말을 가르쳐서 이 새로운 말로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을 즐겁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북돋우는 테두리에서 영어도 한자말도 한국말도 슬기롭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한테 더 많은 한자말을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한자 천재’나 ‘한자 달인’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말’을 알아야 하고, ‘말에 생각을 담는 길’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2016.4.24.해.ㅅㄴㄹ



하늘이나 땅이란 뜻이 ‘천(天)’이나 ‘지(地)’라는 음으로 낱말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익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낱말 속에서 이 관계를 살피는 습관만 들여놔도 초등 어휘 학습의 반은 끝납니다. (프로그램 특징 : 10살 어휘, 수능 시험까지 간다)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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