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시공 청소년 문학 11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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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5



아버지랑 딸이서 먼 여행길에 올라

―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마르야레나 렘브케 글

 김영진 옮김

 시공사 펴냄, 2006.9.29. 7500원



  아이들은 대문 밖에만 나서도 활짝 웃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마당에 서서 달리기나 술래잡기만 해도 깔깔 웃습니다. 마을 한 바퀴를 걷자고 해도 웃고, 골짜기나 바다를 다녀오자고 하면 펄쩍펄쩍 뜀박질을 하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나들이를, 마실을, 그야말로 매우 좋아하면서 반겨요.



아빠는 설레는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그러는 것처럼 양 볼이 발개졌다. 아빠의 눈은 벌써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빛났다. 아빠는 남들이 아빠에게 꿈을 이루라고 말해 준 것에 대해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11쪽)


어느 날 저녁 아빠가 내게 말했다. “오늘 우리 공장에서 네 일자리를 찾았단다.” “공장 안에서요? 거긴 더럽고 먼지투성이잖아요.” “난 그 먼지들로 너희들을 먹여 살린다.” (37쪽)



  마르야레나 렘브케 님이 쓴 청소년소설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시공사,2006)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핀란드사람인 마르야레나 렘브케 님은 북유럽에 우거진 드넓은 들과 숲을 자동차로 천천히 가로지르는 두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청소년소설에 나오는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입니다. 오롯이 둘이서 여행길에 나서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는 살림돈을 버는 일을 하느라 늘 바쁜데, 그렇다고 살림돈을 넉넉하게 벌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아주 가난하지는 않으나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라고 해요. 온 식구가 여행길에 나서는 일이 드물고, 어버이가 아이하고 오롯이 먼 여행길에 나서는 일도 드물다고 합니다.



자기 아빠랑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으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아빠도 우리가 단둘이 보내야 할 기나긴 시간이 겁나고 걱정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71쪽)


“이건 낯선 곳에서 펼쳐지는 네 첫 번째 여행이야. 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장과 숲과 벌판을 지날 거란 말이야. 날씨가 화창해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데 넌 지금 책을 읽겠다는 거니?” (77쪽)



  북유럽 여느 살림집하고 한국 여느 살림집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를까요?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아버지는 이녁 여느 딸하고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아버지하고 아들 사이에서는, 또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는, 또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 만할까요?


  열다섯 살에 이르도록 함께 여행길에 나서지 못했다고 해서 둘이 주고받을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될 테니까요. 집안에서나 집밖에서나 똑같아요. 집안에서 못하던 일을 집밖에서 잘하기 어렵고, 집안에서 안 하던 일을 집밖에서 갑자기 하기란 어려울 테지요.


  그렇지만 두 어비딸은 여행길에 나섭니다. 무척 긴 여행길에 나섭니다. 이 여행길은 아버지가 꼭 나서고 싶다 하던 여행길이라 하고, 아이는 아버지하고 먼 여행길을 함께하는 동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한다고 합니다.



“뭔가를 새로 알고 싶으면 잘 들여다봐야 해 … 열다섯 살은 그냥 열다섯 살인 거야. 하나도 흠잡을 거 없는 나이지.” (82쪽)


“얘야, 긴장을 좀 풀려무나! 힘을 좀 빼! 웃어 보렴! 춤은 사형 선고가 아니라 즐거움이야!” (109쪽)


“너한테는 여기가 너무 조용해서 익숙하지 않을 거야. 여긴 사람 목소리라곤 없으니까. 난 말이야, 네가 이런 고요함을 좋아하길 바란단다. 사실은 고요하지 않은 이 고요함 말이야.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 법’만 배우면 돼.” (123쪽)



  아이가 본 어버이 모습은 아이가 태어난 자리에서 본 모습입니다. 아이는 이녁 어버이가 아이로 지내던 모습을 알 길이 없습니다. 아이는 이녁 어버이도 저랑 똑같이 아기였고 아이였으며 웃고 울면서 무럭무럭 자랐구나 하고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람한테 둘러싸여서 살고 자라고 생각하고 사랑했는가를 알기는 어려울 테지요.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에 나오는 딸아이는 먼 여행길을 아버지하고 둘이서 가는 동안 ‘새로움’을 느낍니다. 이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아버지 살붙이’를 처음으로 만납니다. 이렇게 ‘우리 집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아버지가 나고 자란 어린 나날 발자취’가 짙고 깊게 새겨진 대목을 처음으로 헤아립니다. ‘일만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삶이 있고 사랑을 꿈꾸던 한 사람’인 모습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내가 핀란드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아빠는 러시아어로, 볼프강은 하모니카를 바닥에 내려놓고 독일어로 노래를 불렀다. (142쪽)


“나야 아래쪽 카렐리야에 있었으니까. 나는 독일사람을 동지로도, 적으로도 만난 적이 없어. 어쨌거나 볼프강의 용기는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제 아버지들이 그토록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 곳을 혼자서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다니 말이야 … 전쟁을 잊어버리는 데 15년이란 세월은 충분치 않단다.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은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156쪽)



  독일이 일으켰다는 전쟁이 끝난 뒤 열다섯 해가 흐른 무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이니, 1960년 언저리 북유럽 모습을 이 책에서 엿볼 만합니다. 유럽을 불태운 싸움이 수그러든 지 열다섯 해 뒤에도 사람들은 그 끔찍한 싸움을 잊기 어렵다고 하는데, 1960년대 한국이라면 어떠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를테면, 1960년 언저리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찾아와서 무전여행을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런데 전쟁은 ‘무전여행을 하는 젊은이’가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를 낳은 어버이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테고요. 이 젊은이를 낳은 어버이는 전쟁을 거스르려던 씩씩한 어른이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전쟁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려 하던 허수아비였을 수 있겠지요. 젊은이는 어버이와 달리 너르면서 맑고 착한 넋으로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어른들로서는 끔찍한 전쟁을 잊을 길이 없지만, 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아이들은 전쟁을 떠올리는 삶이 아니라 평화를 그리면서 사랑하는 살림을 배울 노릇이지 싶습니다.



나는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다. 신문 배달이었다. 다행히 아침 일찍 날이 밝았고,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마티 오빠한테 꾼 돈을 갚자 내 스스로 신뢰 있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86쪽)



  1960년대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가로지르는 청소년소설을 읽다가 생각해 보니, 나도 우리 집 큰아이(딸)하고 느긋하게 먼 여행길을 다닌 일이 매우 드뭅니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큰아이가 아주 어리던 때에 둘이서 짧게 여행길을 다녀온 적이 있기는 한데,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고 느긋하게 삶을 돌아보며 따사롭게 사랑을 들려주는 여행길은 아직 나서지 못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굳이 먼 여행길에 나서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는 않습니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집안에서든 집밖에서든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서 차분하게 생각을 꽃피울 적에 비로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합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주고받으려는 이야기가 아닌 삶과 살림을 사랑으로 일깨우려는 이야기를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나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어버이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없었든, 나는 오늘 우리 아이들 앞에서 어버이라는 자리에 있는 만큼, 슬기롭고 즐겁게 이야기를 밝히고 꿈을 밝히며 사랑을 밝힐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가 갈 길은 기쁨이 되도록,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갈 길은 노래가 되도록,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갈 길은 고운 꿈이 되도록, 오늘 하루도 마음속으로 웃음이라고 하는 씨앗을 심으려 합니다. 2016.6.2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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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 개정판 산하작은아이들 30
도미틸 드 비에나시스 지음, 백선희 옮김, 그웬달 블롱델 그림 / 산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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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2



사랑을 속삭이는 말소리도 고운 노랫소리

―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도미틸 드 비에나시스 글

 그웬달 블롱델 그림

 백선희 옮김

 산하 펴냄, 2004.11.5. 8000원



  깊은 밤에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문득 눈을 뜹니다. 뜨거운 물을 달라는 곁님 목소리입니다. 그렇구나 하고 느끼면서 부시시 일어납니다. 잠귀가 참 밝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왔으니 한밤에도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면서 일어날 수 있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두 아이가 갓난쟁이였던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기저귀에 쉬를 하는 소리에도 잠을 깼거든요. 그래야 축축한 기저귀를 얼른 갈아 줄 수 있으니까요.


  물을 끓여서 곁님한테 갖다 줍니다. 길게 하품을 하며 마루문을 닫습니다. 밤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밤에 비가 내리겠구나 싶어 낮에 바지런히 뒷밭 풀을 뜯었습니다. 열흘쯤 앞서 뜯어 놓고 잘 말린 풀은 낮에 모깃불을 태우면서 재로 바꾸어 놓았고요. 느긋하게 빗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반가운 비를 맞으면서 우리 집 옥수수는 더 무럭무럭 자라겠구나 하고요.



샤를로트와 할아버지는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연인들의 말은 노래처럼 들립니다. “예쁘지 않니? 음악 소리 같지?” 보엠 할아버지가 속삭입니다. 말로 된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은 말의 영혼입니다. (19쪽)



  도미틸 드 비에나시스 님이 글을 쓰고, 그웬달 블롱델 님이 그림을 빚은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산하,2004)를 큰아이하고 함께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큰아이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어떠니? 노래는 어디에서 올까?” “노래? 어디에서 오지?” 책을 읽었어도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아직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스스로 생각해 볼 만합니다. “노래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우리 삶이 모두 늘 노래야.”



‘자장가를 연주하면 좋겠네.’ 샤를로트는 한쪽 눈으로 할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생각합니다. 재미난 것은 피아노 건반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음들이 아이들 목소리처럼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내려오면 늑대 소리처럼 낮고 굵은 음이 납니다. (44쪽)


“음악은 힘이 세단다. 그래서 널 웃게 할 수도 있고, 울게 할 수도 있지. 음악은 늙고, 몸이 무겁고, 피곤한 사람을 춤추게 할 수도 있어!” (54쪽)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이 들려주는 목소리도 노랫소리입니다. 여름날 밤에 찾아오는 빗소리도 노랫소리입니다. 개구리가 터뜨리는 우렁찬 울음소리도 노랫소리입니다. 풀벌레도 노랫소리를 들려주고, 바람도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시골에서는 나락이 익거나 자라는 노랫소리도 흐르고, 열매가 익거나 꽃이 피는 노랫소리도 흘러요. 귀를 더 크게 열면서 푸나무를 마주할 수 있다면, 참말로 꽃송이가 터지는 노랫소리라든지 풀잎이 짙푸르게 달라지는 노랫소리도 들을 만해요.



보엠 할아버지가 가슴에 손을 갖다 대며 말합니다. “타악기가 내는 소리는 심장이 뛰는 고동 소리와 비슷하단다. 리듬은 음악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도 생명을 주지. 네가 냄비로 연주를 하더라도, 거기에 리듬이 있다면 소음이 아니라 멜로디가 되는 거란다.” (67쪽)



  우리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면, 우리 입에서 흐르는 모든 말은 노래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우리 마음이 즐거움이 아니라면, 우리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아무리 목청을 뽑아도 노래가 되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악보대로 가락을 뽑아야 노래가 되지는 않아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노래가 되리라 느껴요. 빼어난 솜씨가 있어야 노래를 부르거나 켜거나 들려주지 않아요.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따사롭고 넉넉하며 신나고 어여쁜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노래를 깊은 곳에서 끌어내어 선보일 만하다고 느껴요.


  피아노나 피리나 기타로도 노래를 들려주지만, 손뼉으로도 발장구로도 노래를 들려줍니다. 휘파람이나 고갯짓으로도 노래를 들려주지요. 웃음을 짓는 모습으로도, 두 팔을 벌려 흔드는 춤사위로도 얼마든지 노래가 태어나요.



샤를로트는 사르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나무라고 생각해 봅니다. 발 밑으로 커다란 뿌리가 있다고 상상합니다. “목소리를 몸통 아래에서 목 위로 끌어올려 보렴. 그래, 바로 그거야! 정말 예쁜 목소리로구나.” (74쪽)



  어린이책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는 노래가 언제나 우리 곁에 사랑스레 있다는 대목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바로 내 가슴에서 노래가 자란다고 하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줍니다. 먼발치에서 찾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곱게 끌어내어 한껏 즐기고 실컷 나누는 따사로운 노래를 밝히지요.


  노래가 흘러 싱그러운 바람이 됩니다. 노래가 자라면서 맑은 숨결이 됩니다. 노래를 너랑 나랑 함께 부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아름다운 사랑이 환한 웃음꽃처럼 우리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2016.6.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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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일공일삼 58
찰스 레빈스키 지음, 김영진 옮김, 흐리겔 파르너 그림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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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숲에 길을 내려면 나무한테 물어봐야지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찰스 레빈스키 글

호리겔 파르너 그림

김영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9.12.20. 8500원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비룡소,2009)라는 어린이문학을 읽다가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외계인이 지구사람한테 들려주는 말이 무척 재미나다고 느껴서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이야기는 글쓴이가 짐짓 꾸몄을 수 있고, 참말로 겪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참이고 거짓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참말 있다고 할 수 있고, 글쓴이 꿈속에만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에 나오는 외계인은 어린이 모습이라고 합니다. 지구에 온 외계인은 저희 외계별에서는 누구나 처음에는 어른으로 태어났다가 차츰 자라면서 어린이로 바뀐다고 해요. 더군다나 그 외계별에서 갓 태어난 어른(그러니까 그 별에서는 어린이라고 할 사람)은 너무 철이 없어서 버릇도 없고, 뭐든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 사는 외계별에서는 갓 태어난 어른이 차츰 자라서 400살쯤 넘기며 어린이로 몸이 바뀔 즈음(!) 비로소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제대로 삶이나 사회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500살을 앞두고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저마다 은하를 누비면서 다른 별로 가서 체험활동을 하고는, 다른 은하 다른 별에서 지낸 이야기를 보고서로 써내는 숙제를 한다고 해요.



"이제 질문에 답을 해 주지. 나는 우리 별에서 왔어. 네가 우리 별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이유는 지구 사람들이 무식해서야.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잖아." (25쪽)



  아주 뚱딴지 같은 이야기이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에 왔다는 499살 외계인이 하는 말은 자꾸자꾸 지구사람(글쓴이) 머릿속을 콕콕 찌릅니다. 시간을 멈추었다가 뒤로 돌릴 수 있는 외계인이요, 하늘을 난다든지 잠을 한숨도 안 자더라도 졸리지 않는다든지 빵을 한꺼번에 수십 덩이를 먹을 수 있다든지 하는 모습을 놓고 본다면, 또 맞은편 마음속을 읽을 줄 알고 나무하고도 이야기할 줄 아는 외계인 모습을 본다면, 이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면서 너희는 무식하다고 하는 말을 하하 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일 만하지 싶어요.


  참말 그렇잖아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라는 별로 나들이를 와서 지구 체험을 한다지만, 이 지구별에 사는 우리는 다른 어느 별로도 체험을 하러 다녀오지 못해요. 그러니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자면 지구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습니다(무식합니다).



"그럼 굉장히 혼란스럽겠는데." "왜?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거나 못 알아보건 하지 않아." (36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한테는 이름이 따로 없다고도 해요. 이 외계인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이름을 늘 새롭게 짓는다고 해요. 다른 외계인도 모두 그처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로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하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되물어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 지구사람 머릿속에 못을 박기도 하는데요,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하 하고 무릎을 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며 놀아도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재미난 이름(별명)을 붙여 주어도 이 아이들은 언제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든 자전거를 타든 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겉모습으로만 마주하지 않아요. 아니, 우리도 서로서로 마주할 적에는 겉모습보다는 마음으로 사귀어요. 마음으로 맞는 이웃이기에 기쁘게 어우러지지요. 겉모습이 이쁘장하다기에 어우러지지 않아요. 마음이 곱고 착하며 참답기에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가 됩니다.



"사람이라고? 도로를 숲에다 만든다면서, 너희 별에선 사람들한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단 말이야?" "그럼, 사람들한테 묻지, 아님 누구한테 물어?" "당연히 나무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무들은 베이는 게 싫을지도 모르잖아." (50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사람이 너무 바보스러워 보인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너무 엉뚱한 짓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숲을 밀고 길을 닦는다면서 왜 숲에 있는 나무한테는 물어보지 않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물어요. 이때에 지구사람은 할 말을 잊습니다. 어떻게 나무한테 물어보느냐고 되물으려다가 그만 멍하니 입만 벌리지요. 지구사람으로서는 나무한테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이와 비슷해요. 숲을 밀거나 갯벌을 메우려는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숲이나 갯벌한테 묻는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일 적에도 냇물이나 도룡뇽이나 물고기나 새나 들꽃한테 물어본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뜻깊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를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어느 날 어떤 육상 코치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이 달리기를 대단히 잘하는 줄 알아채고는 육상 선수가 되어 보라고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이 외계인은 육상 대회에 나가서 아주 천천히 트랙을 돌아요. 육상 코치는 외계인더러 "게임을 즐기라"고 말했고, 외계인은 그 말 그대로 빙긋빙긋 웃으면서 14분도 넘게 아주 천천히 트랙을 거닐면서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하는 말이란, 즐거운 나들이였기에 아주 느긋하게 즐겼다고 하지요. 즐겁지 않다면 후다닥 해치웠을 테지만, 즐거웠기에 아주 천천히 걸었다고 해요.



"다른 선수들은 왜 빨리 뛰어야 하고 넌 왜 빨리 뛸 필요가 없는데?" "그 선수들은 즐겁지 않았으니까요. 즐겁지 않은 일은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좋잖아요. 저도 다른 선수들처럼 그렇게 다리가 아팠으면 아주 빨리 뛰었을 거예요. 얼른 끝내 버리려고요." (144쪽)



  외계인은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구사람이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둘은 그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서로 다르게 사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달리기를 할까요?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이나 문화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은 어떠한 사람으로 우뚝 설 적에 슬기로운 마음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까요? 지구사람인 우리는 나무나 풀이나 새나 벌레나 바람이나 구름한테 말을 걸면서 저마다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읽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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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1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우리 나라 작가들도 이렇게 틀에 박히지 않은,`뚱딴지 같은 생각`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내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6-06-11 15:42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벌써 읽지 않으셨다면...
벌써 절판된 책이니 ㅠ.ㅜ

저는 절판된 이 책을 문득 찾아내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비룡소쯤 되는 출판사라면
이 같은 책은 절판시키지 말고
잘 다루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hnine님 말씀처럼
한국 작가도 이렇게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
 
아름다운 가치 사전 2 - 모두를 위한 가치 아름다운 가치 사전 2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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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5



‘질서·솔선’ 교육보다 ‘사랑스런 살림’을 꿈꾸며

― 아름다운 가치 사전 2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한울림어린이 펴냄, 2015.8.17. 13000원



  동화를 쓰는 채인선 님은 2005년에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썼고, 2015년에 《아름다운 가치 사전 2》을 내놓습니다. 둘째 권을 살피면 모두 스물네 가지 ‘가치’를 다룹니다. ‘경청·공감·끈기·바른 마음·보살핌·부지런·생명 존중·솔선·아름다움·양보·우정·자연 사랑·자유·절약·절제·정돈·정성·즐거움·질서·착한 마음·평화·함께하기·협동·희망’을 놓고서 짤막하게 쓴 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경청이란, 할머니 말씀을 새겨듣는 것.

경청이란,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

경청이란, 마음의 소리도 귀 기울여 듣는 것.



  ‘가치(價値)’는 ‘값어치’를 가리키는 한자말이고, 이는 “사물에 깃든 쓸모”를 뜻합니다. 또는 “사람이 이루려는 참됨·착함·아름다움”을 ‘가치’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 첫째 뜻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면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운 쓸모”를 찾는 셈이요, 둘째 뜻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면 “아름다운 참됨·착함·아름다움”을 찾는 셈입니다. 그런데 둘째 뜻이라면 “아름다운 아름다움”을 말한다고 할 터이니, 겹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지난 2015년 7월부터 정부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을 내놓았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따로 교과로 짜서 아이들한테 가르친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밝힌 ‘인성교육 8대 사항’은 “예절·효도·정직·책임·존중·배려·소통·협동”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도덕’이라는 교과는 사라졌습니다. 지난날 학교에서 ‘도덕’이라는 교과는 정부에서 밝힌 ‘국민교육헌장’에 힘입어 사회질서와 사회윤리를 지키는 시민이 되자는 뜻을 집어넣는 구실을 했습니다. 이른바 ‘체제 순응 인간 육성’이라는 길로 도덕 과목을 내세웠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도덕 과목을 없애면서 ‘인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과목이 생긴 셈이로구나 싶어요.



솔선이란, 친구가 도와 달라고 하기 전에 얼른 다가가 돕는 것.

양보란, 남에게 착한 마음을 베푸는 것.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것.

우정이란,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것. 함께 고민하고 함께 걱정하는 것.



  도덕이나 인성은 얼마든지 가르칠 만하다고 느낍니다. 아니, 도덕이나 인성은 슬기롭게 가르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찬찬히 보여주고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다만, 외치는 말(구호)로 아이들한테 시키는 몸짓(강요)이 아니라, 즐거우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살림이 되도록 누리는 이야기꽃이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이 스스로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사랑스레 살림을 지으면, 이때에는 따로 도덕 교육이나 인성 교육이 없어도 ‘아름다운 삶·살림·사랑’을 아이들이 배울 만하리라 느껴요. 아름다운 삶이 바로 교육이고, 즐거운 살림이 언제나 교육이며, 기쁜 사랑이 한결같이 교육이 될 테니까요.


  인성교육 8대 사항을 보면 ‘예절’과 ‘효도’가 첫째입니다. 예절과 효도는 틀림없이 뜻있는 값어치 가운데 하나일 테지만, 인성교육에서 이를 첫째로 다룰 만한가를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정직’과 ‘책임’을 이 다음으로 다루는 대목도 곰곰이 짚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유신정권과 새마을운동이 사회를 다스리던 때에 서예와 표어와 포스터로 교실과 마을마다 붙이던 구호하고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 존중이란, 생명을 가진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 함부로 하지 않는 마음.

자유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

착한 마음이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내 것을 양보하고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름다운 가치 사전》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려고 합니다. 그런데 스물네 가지 주제를 풀어낸 이야기를 찬찬히 보면 ‘한자말 구호’를 여러모로 풀어낸 도덕 교육(인성 교육)과 같구나 하고 느낍니다.


  곳곳에 ‘존중’이라는 말이 잇달아 나오는데 ‘존중’이란 어떤 몸짓인지는 뚜렷하게 다루지 않기도 합니다. 생명도 자유도 착함도 ‘존중’이라는 한자말로 풀어낸다면, 막상 ‘존중’이란 무엇이라고 할 만할까요?



아름다운 마음이란, 남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마음.

자연사랑은, 숲을 가꾸고 나무를 베지 않는 것. 강과 바다를 더럽히지 않는 것.



  한자로 ‘진·선·미’라고도 하는 ‘참됨·착함·아름다움’은 저마다 다른 마음결을 나타냅니다. “남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이란 말 그대로 ‘착함’이에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마음”은 말 그대로 ‘따뜻함’입니다.


  참되면서 착하고 아름다울 적에 이러한 마음결은 ‘사랑’으로 이어져요. ‘참됨’은 옳고 바른 길을 슬기롭게 아는 숨결이에요. ‘착함’은 상냥하고 부드러우면서 따스한 몸짓과 말이 되는 숨결이에요. ‘아름다움’은 훌륭하면서 보기 좋아서 즐거움을 일으키는 숨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옳고 바르면서 슬기롭고, 상냥하고 부드러우면서 따스하며, 훌륭하면서 보기 좋아 즐거움을 일으키기에, 여기에서 ‘사랑’이 시나브로 태어난다고 해요.


  어떤 외침말(구호)로 들려주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도덕 교육이나 인성 교육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삶을 즐거움으로 짓고 살림을 기쁨으로 가꾸는 길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손을 맞잡고 살필 수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숲을 가꾸자”는 말만 하지 말고 “숲을 어떻게 가꿀 적에 즐거울까”를 함께 살피고,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어떻게 돌보면서, 우리 삶에서 나무를 어떻게 쓸까”를 함께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즐거움이란, 기분이 좋은 것.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는 것.

즐거움이란, 아기 동생이 재롱부리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웃으시는 것.

즐거움이란, 새로 산 우산을 들고 비를 맞이하며 나만의 기쁨을 누리는 것.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라는 책은 어린이가 몸과 마음으로 익힐 적에 좋다고 여기는 ‘여러 가치’를 다룹니다. 다만, 여러 가치를 다루기는 하지만 ‘한자말 구호를 조금 쉽게 풀어내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나 하고 느낍니다. ‘즐거움’을 ‘만족’이나 ‘행복’이라는 낱말로 풀이하는데, ‘만족’이라는 한자말은 ‘흐뭇함’을 뜻해요. ‘행복’이라는 한자말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뜻하지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즐거움이란 …… 나만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적기도 합니다.


  ‘즐거움’은 나 스스로 어떤 일이 마음에 드는데, 이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기쁨’은 어떤 일이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밖으로 환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아름다움을 밝히는 ‘여러 가치’ 가운데 하나로 즐거움을 어린이한테 들려주려고 하는 일은 틀림없이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뜻과 말결을 조금 더 깊이 살펴야 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도덕 교육·인성 교육’이라는 틀을 넘어서서 ‘삶을 사랑하는 살림’이라는 마음결로 수수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질서’나 ‘솔선’을 말하지 않아도, 어른들이 즐겁고 사랑스레 삶을 지으면, 그러니까 ‘사랑스런 살림’이 되면, 아이들은 이를 곁에서 늘 지켜보면서 기쁘게 살림을 배우리라 봅니다. 2016.6.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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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하는 작별 -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양철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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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같은 어버이, 어버이 같은 아이

― 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글

 도희진 옮김

 양철북 펴냄, 2016.5.10. 14000원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아이한테 돈을 줄 수 있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학원 교육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한테 여느 학교 교육을 줄 수 있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조용한 살림’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이한테 오직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주는 대로 받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대로 마음하고 몸을 키웁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살면서 마음속으로 꿈을 키웁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으로 마음이랑 몸을 살찌우면서 꿈을 키워요. 사랑이 없이 다른 것(돈이나 학원이나 학교)만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이 빠진 채 다른 것만 바라보는 마음이나 몸이 될 수 있어요.


  어른이자 어버이인 우리는 아이하고 어떻게 살 적에 즐거울까요? 어버이요 어른인 우리는 아이한테 무엇부터 주고 무엇부터 나누며 무엇부터 베풀 때에 아름다울까요?



가끔 나는 아파트 창밖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안드레아의 모습을 내려다보곤 한다. 늘씬한 청년이 회색빛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나처럼 저 아이의 마음속에도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가 있겠지만, 상상에 그칠 뿐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 버스가 도착한다. 아이의 뒷모습이 버스 안으로 사라진다. 버스가 떠나자 텅 빈 길가에는 우체통만 덩그러니 남는다. (17쪽)



  룽잉타이 님이 쓴 《눈으로 하는 작별》(양철북,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은 룽잉타이라는 분이 두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째, 어머니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둘째, 딸이요 아이로서 어버이를 마주하는 이야기가 흘러요.


  책을 읽다가 문득 돌아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요 어른’입니다. 나이가 열 살이라면 ‘그냥 아이로만 있다’고 할 만하지만, 열 살 아이는 어느새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을 거치며 예순 살을 지나요. 나이가 여든 살이라 하더라도 ‘백 살 어버이’나 ‘백열 살 어버이’가 튼튼히 살아서 곁에 계실 수 있어요.



문득 끼니 걱정을 혼자 어깨에 짊어졌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서재에 몰래 숨어들던 소녀였겠지. (88쪽)



  우리는 늘 두 자리에 함께 서면서 살아간다고 느낍니다.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라는 자리에 서서 생각을 짓고 살림을 가꾸어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서 마음을 돌보고 사랑을 베풀어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더라도 아이한테는 사랑을 물려주려 합니다. 어버이한테서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을 물려받았어도 아이한테는 ‘반갑지 않은 것’은 안 물려주려 할 수 있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반갑지 않은 것’을 아이한테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어요.



친구는 가난했던 기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좁은 뒷골목에 자리잡은, 골목만큼이나 비좁은 집 안은 가득 쌓인 일감으로 더욱 좁게 느껴졌다고 한다. 플라스틱 조화와 크리스마스 전구를 끼우는 일이었는데, 그 집에서 언제나 피로에 지친 엄마가 유럽으로 팔려나갈 값싼 크리스마스 장식을 쉴 새 없이 조립했다. (202쪽)



  두 자리에 선 사람은 이녁 아이 앞에서는 쓸쓸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흐르다가도, 이녁 어버이 앞에서는 살며시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씁니다. 두 자리에 선 사람은 이녁 어버이 앞에서 아쉬우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느끼다가, 어느새 이녁 아이도 이녁을 바라볼 적에 ‘어머니(어버이)는 왜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려주기에 아차 하고 무릎을 칩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건, 정말 웃겨요, 아빠도 초보 시절이 있었을 거잖아요. 태어나자마자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지는 않았겠죠? 아빠는 젊었을 때 차가 뒤집힌 적도 있잖아요. 도로를 벗어나면서 그대로 뒤집혔다면서요. 아빠도 젊어서 그랬겠죠? (272쪽)



  아이 같은 어버이입니다. 아이처럼 해맑은 마음을 고이 품으면서 즐겁게 살림을 짓고 싶은 어버이입니다. 어버이 같은 아이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때때로 잘못을 하거나 서툰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이런 어버이를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되지?” 하는 말로 달래 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늘 기다려 줍니다. 밥을 좀 늦게 차려도 기다려 줍니다. 살림돈이 떨어져서 옹송거려도 기다려 줍니다. 밭일을 하느라 바빠서 함께 놀지 못해도 밭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참으로 아이들은 잘 기다려 주고, 잘 지켜보면서, 잘 자랍니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아이들을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이제 막 바닥을 기는 갓난쟁이더러 일어나서 걸으라고 할 수 없겠지요? 글씨를 아직 모르는 아이더러 글을 써 보라 할 수 없겠지요? 차근차근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따스한 손길과 말길과 눈길로 마주할 적에 아이들은 느긋하면서 씩씩하게 자라리라 느낍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이라고 하는 책은 바로 이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그저 따스한 눈길이 되자고, 그저 넉넉한 손길이 되자고, 그저 사랑스러운 마음길이 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펼칩니다.


  아이들은 ‘비싼 자전거’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엄청난 놀이공원’이 아닌 ‘함께 노는 어버이 손길’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값비싼 아파트’가 아닌 ‘따사로운 보금자리’를 바랍니다. 수수한 자리에서 수수하게 빚는 살림이면서 수수하고 바라보는 눈망울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2016.6.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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