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 - 미술 초보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안지영 지음 / 길벗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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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73



종이를 오리고 붓을 쥐며 꿈을 그리는 놀이

― 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

 안지영 글·사진

 길벗 펴냄, 2016.7.25. 16000원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추어 아이하고 어버이가 함께 누리는 미술놀이 이야기를 다루는 책 《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길벗,2016)입니다. 이 책을 쓴 안지영 님은 스스로 ‘아티스트맘’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합니다. 이녁이 예술가이기에 아티스트맘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지만, 아이들하고 즐겁게 미술놀이를 할 줄 안다면 누구나 아티스트맘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요.


  《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를 보면, 봄에는 테이프 그림, 동그라미 추상화, 휴지심 나무, 봄맞이 새 장식, 달걀판 거북이 같은 놀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름에는 나만의 종이 인형, 여름 수채화 놀이, 종이 상자 인형의 집, 알록달록 꽃다발 같은 놀이 이야기를 다뤄요. 가을에는 풀로 그린 그림, 해질녘 풍경화, 풍선으로 나는 집, 호박씨 가을 나무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요.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수채화 눈꽃 리스, 겨울 실루엣 나무, 눈사람 콜라주, 습자지 창문 장식 같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술은 아이가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에요. 미술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 안에서 행복한 자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6쪽)


저는 아이가 끄적이는 낙서 그림부터 함께하는 미술놀이까지 아이의 나이에 따라 파일로 정리를 해놓고 있어요. 가끔 펼쳐서 보면 아이의 성장이 보여서 참 뿌듯하지요. 아이들도 자기가 그렸던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23쪽)



  아이들하고 미술놀이를 하자고 얘기하는 안지영 님은 ‘우리 곁에 흔하게 있는 것’을 잘 살피기만 해도 미술놀이가 재미있다고 덧붙여요. 이를테면 ‘휴지심’으로 이모저모 멋진 미술품을 빚을 만하다고 합니다. 휴지심에 그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휴지심을 알맞게 잘라서 나무를 꾸미거나 호박처럼 빚거나 꽃처럼 엮을 수 있다고 해요.


  동그랗고 긴 휴지심에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만 글도 쓸 수 있어요.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알록달록 여러 빛깔로 노랫말이나 시를 적어 넣을 수 있어요. 한글놀이를 휴지심으로도 할 만합니다. 휴지심을 여러 가지로 잘라서 실을 이으면 천장에 붙여 모빌로 삼을 수 있을 테고요.



휴지심 나무는 아이와 엄마 모두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미술놀이예요. 매주 한두 개씩 생기는 휴지심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활용하면 멋진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거든요. (49쪽)



  어머니나 아버지가 너무 바쁘다면, 아이가 하루 내내 유치원이나 학원이나 학교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이때에는 아이들하고 함께 즐길 미술놀이하고 멀어집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너무 바쁘더라도 하루에 삼십 분쯤이라도, 또 한 주에 하루라도 틈을 내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노는 자리를 마련해 볼 수 있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을 수 있어요.


  어버이하고 아이가 나란히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리지요. 어버이하고 아이가 나란히 가위랑 풀이랑 종이를 들고 이것저것 오리고 붙이면서 놀지요.


  아이들은 미술학원에 가야만 미술놀이를 할 수 있지 않아요.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미술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여느 어머니나 아버지도 얼마든지 그림놀이나 가위놀이나 종이놀이나 붓놀이를 할 수 있어요. 뛰어난 재주를 가르쳐야 하는 미술놀이가 아니라, 아이하고 온 하루를 기쁨으로 누리는 길에 함께하는 미술놀이예요.



미술놀이를 아이와 함께 해서 좋은 점은 생활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같이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아이가 직접 만든 물건을 사용하면 성취감과 자신감,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창조 욕구도 상승하는 것 같아요. (73쪽)



  《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에서는 골판종이로 된 빈 상자를 오리는 놀이를 제법 많이 다룹니다. 참말로 골판종이는 여러모로 미술놀이에 쓰임새가 많습니다. 저도 골판종이를 집에서 아이들하고 흔히 쓰는데, 이밖에 ‘과자 종이상자’라든지 ‘우유 빈 곽’도 흔히 써요. 종이상자나 빈 곽을 잘 말린 뒤에 넓게 펴지요. 이런 다음에 그림을 그려 넣고 가위로 오려요. 이렇게 하면 ‘종이인형’이 태어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새로운 책이나 만화나 영화를 보고 나면 흔히 새로운 종이인형을 오려요. 하얗거나 누런 종이상자나 곽에 찬찬히 그림을 그려 놓고는 천천히 가위로 오려요. 이리하여 종이인형은 멋진 소꿉동무가 되고 놀이동무가 됩니다. 종이인형을 오리는 동안 아이들은 즐겁게 꿈을 지으면서 놀아요.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그림을 즐기는 바탕이나 놀이를 이루는 발판은 늘 우리 곁에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티스트맘의 참 쉬운 미술놀이》은 어머니가 아이들하고 그림으로 노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는데,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아이들하고 그림으로 함께 놀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이들하고 몸으로만 뛰어놀아야 하지 않아요. 아버지도 아이들 곁에 차분히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종이도 오리면서 신나게 꿈을 짓는 놀이를 물려주어 보셔요. 2016.10.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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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삶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8
홍세화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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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8



‘삶’을 배우며 사랑할 수 있는 청소년이 되기를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_삶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철수와영희 펴냄, 2016.9.30. 13000원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하고 똑같이 살자’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남하고 비슷하게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가게 일꾼이 되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남하고 다르게 살자’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남하고 똑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서, 남하고 다르게 살자는 마음도 나지 않았어요. 그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나대로 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삶이 내 것이어야 한다면 내 생각도 내 것이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죠. 그렇다면 신분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 내 몸이 자유롭다고 해서 내 생각도 자유로울까요? (22쪽/홍세화)


제가 충격을 받은 건 부모님과 제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의 현대사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미군이 폭격을 안 했더라면, 만약 할아버지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풀빵 장사를 안 했다면, 저는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53쪽/이계삼)



  ‘나대로 살기’란 무엇일까요?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나한테 ‘나답게 살기’를 가르치거나 들려주거나 이야기하거나 알려준 어른은 없었다고 느껴요. 둘레 어른들은 ‘학교 공부를 잘 해서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라’는 말만 들려줄 뿐입니다. 이때에 어른들한테 여쭈어 보지요.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요?’ 그러면 어른들은 ‘돈을 더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지.’ 하고 대꾸하고, ‘돈을 더 잘 번 다음에는요?’ 하고 다시 여쭈면 ‘좋은 여자를 만나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지.’ 하고 대꾸하며, ‘좋은 여자를 만나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요?’ 하고 거듭 여쭈면, ‘예끼! 그만 물어.’ 하고 알밤을 먹이곤 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에 둘레 어른들한테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지으면 즐거울까’ 같은 이야기를 묻지 않았습니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가 있고 결실을 돕는 곤충들도 있습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잡초들도 있겠지요. 그 작은 생명들이 채소를 키우고 열매를 맺게 하지요. 사람은 그저 성심껏 옆에서 보살피면 돼요. (113쪽/안철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2016)는 길담서원이 마련한 청소년 인문학교실 가운데 ‘삶’을 놓고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깃든 책입니다. 청소년 인문책이지요. 나는 푸름이가 아니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내 어릴 적을 떠올리고, 내가 푸름이 나이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을 되새기면서 읽습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인문 강좌’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뒤에도 인문 강좌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1980년대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문 강좌라는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오직 교과서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잘 푸는 입시공부만 있었어요. 이런 학교를 열두 해 다니고서 대학교에 갔어도 따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인문 강좌’는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제가 들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밤새 쏘다니는 이 녀석도, 만져 보면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자연의 바람, 흙, 이런 것들이 청결을 유지해 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21쪽/안철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읽으면, 홍세화·이계삼·조광제·안철환·박영희·노을이·정숙영, 이렇게 일곱 어른이 일곱 가지 삶을 꾸리는 이녁 발자국을 되짚으면서 푸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삶’을 이야깃감으로 삼아서 꾸린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에서 다룬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인문학교실에 함께한 푸름이들은 일곱 갈래 어른을 새롭게 만나서 일곱 갈래 길을 새삼스레 마주했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진짜 공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겁니다. 그걸 알아가는 게 참된 공부이고요. (151쪽/박영희)



  어린이나 푸름이가 나아갈 길은 한 갈래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곱 갈래도 아니지요.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저마다 다른 길을 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만 어린이가 있으면 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아름답고, 이백만 푸름이가 있으면 이백만 갈래 길이 있을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처럼 다 다르면서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로 스스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즐거운 노래를 익히는 길이지 싶어요. 교과서를 외우는 일이란 시험공부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 어른이나 푸름이나 어린이가는 ‘삶공부’와 ‘살림공부’와 ‘사랑공부’를 넉넉히 맞아들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도 할 수 있을 텐데, 시험공부만 하는 푸름이가 아니라, 삶도 살림도 사랑도 배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집안일도 함께 배우고, 집살림도 함께 익히며, 마을살림이나 마을일도 나란히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너그럽고 포근한 손길을 배울 때에 비로소 ‘맑게 푸른 사람’으로 자랄 만하리라 생각해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해야 다른 사람과 관계도 잘 맺게 돼요. (170쪽/노을이)



  청소년 인문책을 읽는 동안 나 스스로 푸름이 마음이 되어 봅니다. 나는 열서너 살이나 열예닐곱 살 푸름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붙들리던 지난날, ‘나는 나답게 살겠어’ 하는 다짐은 했으나 이 길이 막상 어떤 길이 될는지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다짐을 오늘날까지 고이 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 삶길을 닦으면서 웃는구나 싶어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우리 집 아이들을 먹입니다. 틈틈이 자전거를 몰아 아이들하고 골짜기나 바다나 들판으로 마실을 다닙니다. 밤에는 반딧불이나 별을 찾아서 걷고, 낮에는 풀밭과 서재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곧 내가 걷는 삶길이란 ‘남과 같을’ 까닭도 ‘남과 다를’ 일도 없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기쁜’ 길이면 된다고 느껴요. 우리 집 아이들도 이웃마을 아이들도 저마다 아이 스스로 저희를 사랑하면서 노래하는 기쁜 길을 걸을 때에 다 함께 얼크러지거나 어우러지는 사랑을 이 나라에서 이룰 만하리라 생각해요.



걸어 다니던 시절에는 세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풍경을 느끼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냥 지나칩니다. (62쪽/이계삼)



  중·고등학교 푸름이나 초등학교 어린이가 교과서 공부만 하지 말고,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같은 ‘인문 강좌’를 널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더욱 자주 ‘교사 아닌 어른’을, ‘우리 사회에서 저마다 새로운 길을 닦는 즐거운 살림꾼 어른’을 모셔서 조촐하게 ‘이야기 교실’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요.


  집에서 살림을 짓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호미를 쥐어 밭을 매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는 어른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나무를 깎아 집을 짓는 할배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저잣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시골버스를 모는 아재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빌어요.


  어린이와 푸름이 모두 꿈을 따스히 품고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냥 사는 하루’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짓는 하루’가 되어서, 언제나 스스로 기운찬 웃음으로 ‘삶을 짓는 사람’으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2016.9.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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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공주 난 책읽기가 좋아
다이애나 콜즈 글, 로스 아스키스 그림, 공경희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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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4



똑똑한 공주님은 어떤 ‘세 가지 꿈’을 꾸었나

― 영리한 공주

 다이애나 콜즈 글

 로스 아스키스 그림

 공경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2.4.24. 7000원



  ‘소원을 이루어 주는 반지’가 있다면, 이 ‘소원 반지’가 세 가지 꿈을 이루어 준다면, 우리는 어떤 꿈을 빌 만할까요? 우리는 세 가지 꿈으로 무엇을 빌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요? 어떤 세 가지 꿈을 이루면서 우리 살림과 사랑을 즐겁거나 신나게 북돋울 수 있을까요?



왕은 평생 보물을 모으며 살았고, 이 세상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것 또한 보물이었습니다 … 왕은 보석을 세고 지키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어서 딸과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놀 시간이 없었습니다. (7, 8쪽)


아레트 공주는 말타기 수업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말을 타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숲 속을 달리는 것이 좋았지요. 또 무용 수업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경쾌한 음악이 나올 때면 더욱 좋았지요. 하지만 매력적인 대화법 시간은 따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9쪽)



  다이애나 콜즈 님이 쓰고 로스 아스키스 님이 그린 어린이문학 《영리한 공주》(비룡소,2002)에는 ‘똑똑한 공주’가 나옵니다. 이 똑똑한 공주는 머리가 좋은 공주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을 깊고 넓게 할 줄 아는 공주예요. 이 똑똑한 공주는 이것저것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공주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생각을 넉넉하게 할 줄 아는 공주예요.


  그런데 말이지요, 어머니(여왕)가 일찍 돌아가신 뒤 아버지(임금)만 남았는데, 아버지는 이 아이(공주)를 돌보거나 사랑하거나 지켜보는 데에는 마음을 하나도 안 썼대요. 아버지는 그저 보석하고 돈만 바라보았다는군요. 게다가 가시내는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는군요. 가시내는 좋은 사내(왕자)를 만나도록 해서 ‘더 많은 보석하고 돈’을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시집을 보내면 된다고 여겼대요.


  공주는 이러한 집안에서 어떻게 자라야 할까요? 공주는 아무것도 못 배우는 채 커서 시집만 ‘잘 가면(?)’ 될까요?



‘그래!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잖아. 그중 한 가지만 써야지.’ 공주는 붓과 물감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반지를 문질렀습니다. 그러자 무지개 빛깔의 물감이 생겼습니다. 아레트는 행복한 마음으로 사람과 용, 성채, 배, 나무와 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지요. (33쪽)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상쾌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이나 지하실에 처박혀 있었으니까요.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서 목이 마르면 시냇물을 마셨고, 사과를 먹고는 사과 씨앗을 땅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해지면 햇볕을 쪼이며 쉬었지요. (42쪽)



  《영리한 공주》에 나오는 공주는 아기 적부터 곁에서 보살피는 유모 할머니가 도와주었기에 ‘아버지(임금) 모르게’ 이것저것 배우고 익힙니다. 책으로도 배우지만 말타기도 배워요. 머리로도 즐겁게 생각을 살찌우고 몸으로도 튼튼하게 팔다리를 가꿉니다. 그렇지만 공주는 임금한테 보석과 돈을 잔뜩 주겠다고 하는 사윗감(알고 보면 사윗감으로 몸을 숨긴 마법사)한테 팔리고 맙니다.


  딱한 노릇이지요. 그러나 공주는 이 딱한 일에도 기운이 꺾이지 않아요. 공주는 앞으로 제 길을 스스로 닦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공주를 보석과 돈으로 가로챈 마법사가 공주를 지하감옥에 가두었어도 공주는 늘 즐겁고 씩씩한 마음입니다. 지하감옥에서 공주는 ‘세 가지 소원’ 가운데 하나를 쓰기로 해요. 자, 공주는 어떤 꿈을 빌까요? 지하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바보스러운 아버지(임금)한테 앙갚음을? 아니면 마법사 큰코를 다치게?



아레트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자 슬슬 졸렸습니다. 피곤한 하루였거든요.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더기 천으로 꼬마 뱀에게 포근한 집을 만들어 주었지요. (50쪽)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를 짓는 거야. 하지만 종이도 펜도 잉크도 없는데 어떡하지? 소원도 딱 한 가지만 남았고…….’ (72쪽)



  똑똑한 공주는 이것도 저것도 바라지 않아요. 공주가 바란 첫 꿈은 ‘붓과 물감’이에요. 공주는 지하감옥을 온통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 놓아요.


  어느 모로 보면 터무니없는 공주라 할 테지만, 공주는 무척 슬기로운 마음이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오늘 있는 이곳’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슬기를 보여주었거든요.


  가장 좋은 터전에 있기에 가장 좋은 삶이 되지 않아요. 가장 좋은 터전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즐겁게 가꾸는 터전이에요.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곳이어도, 바로 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곳에 내 사랑을 듬뿍 쏟아서 아름답게 바꾸어 놓을 수 있어요.


  똑똑한 공주는 다음 꿈으로 실하고 바늘을 이야기해요. 옷을 짓기로 합니다. ‘공주가 옷을 짓는다니?’ 하면서 갸우뚱할 분이 있을 테지만, 공주는 어릴 적에 유모 할머니 곁에서 책과 말타기와 여러 학문뿐 아니라 바느질이며 살림짓기를 골고루 배웠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배웠다고 할까요.


  자, 그러면 이 똑똑한 공주는 어떤 셋째 꿈을 빌까요? 붓과 물감으로 지하감옥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어 놓고, 바늘과 실로 손수 옷을 지은 똑똑한 공주가 바라는 셋째 꿈은 무엇이 될까요?



꼬마 뱀이 물었습니다.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이제 암말이 널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함께 가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앰플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제가 여행하는 동안 이곳을 다스려 주세요, 네?” 공주는 두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두 사람은 입 맞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우선 모두를 행복하게 할 훌륭한 법부터 정해야겠어요.” 아레트가 말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백성들과 함께 의논하면 곧 좋은 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예요.” 앰플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94∼95쪽)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날 적에 돈을 한 푼조차 안 가지고 옵니다.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날 적에 집이건 옷이건 밥이건 아무것도 안 가지오 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 땅에 ‘고요하면서 맑은 넋’으로 태어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요. 이러면서 스스로 제 길을 닦지요.


  학교를 오래 다니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영화를 많이 보거나 여행을 두루 다니기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 사랑이 고요히 깃든 줄 알 적에 똑똑하게 자라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 고요히 깃든 사랑을 찬찬히 깨워서 보살피는 손길을 배울 적에 비로소 똑똑하게 자라지 싶어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비롯해서 동무랑 이웃 모두 즐겁게 아끼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마음일 적에 똑똑하게 크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어른도 그렇지요.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적에는 어떤 살림이 될까요? 즐겁게 노래하면서 일할 적에 즐겁게 노래하는 살림을 가꾸지요. 기쁘게 웃으면서 일할 적에 기쁘게 웃는 삶을 가꾸어요.


  세 가지 꿈을 슬기롭게 품는 길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내가 그릴 꿈과 아이들이 그릴 꿈을 천천히 헤아려 봅니다. 다 같이 그릴 즐거우면서 멋지고 사랑스러운 꿈을 하나하나 새롭게 마음에 담아 봅니다. 2016.9.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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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금지! 두근두근 어린이 성장 동화 5
디에고 아르볼레다 지음, 라울 사고스페 그림, 김정하 옮김 / 분홍고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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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3



‘말하는 토끼’를 다룬 책은 읽지 마!

― 책 읽기 금지!

 디에고 아르볼레다 글

 라울 사고스페 그림

 김정하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6.2.6. 12000원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소꿉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림을 즐겁게 그리는 아이한테서 붓하고 종이를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목소리를 빼앗는다든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말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한테서 책을 빼앗는다면?


  디에고 아르볼레다 님이 글을 쓰고, 라울 사고스페 님이 그림을 그린 《책 읽기 금지!》(분홍고래,2016)라는 어린이문학은 ‘아이한테서 책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빼앗은 뒤, 그 책을 뺀 다른 책은 얼마든지 읽어도 된다고 할 적에 아이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경고합니다. 이 집에서는 루이스 캐롤의 작품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뉴욕의 상류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어요. 우리 딸이 사람들에게 늦게 도착한 흰 토끼를 본 적이 있느냐 묻고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자기가 핑크빛 새들을 가지고 크로켓 경기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니…….” (76쪽)


공작이 죽은 해에 으젠느는 여러 귀족의 집에서 가정 교사 생활을 했다. 으젠느는 모든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모든 부모를 화나게 했다. (20∼21쪽)



  동화책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이 ‘상류 사회’에 있는데, 아이가 루이스 캐롤 책을 읽고는 사람들 앞에서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마치 참말 있다는 듯이 말하기’에 그들 얼굴이 깎였다고 여깁니다. ‘말하는 토끼’도 ‘말하는 나비’도 모두 터무니없는 ‘책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상류 사회 이웃들하고 사귄다고 하더라도 ‘루이스 캐롤이라는 사람이 쓴 재미난 책 이야기’를 그들하고 나눌 수 있을 텐데, 동화책에 나오는 두 어버이는 이 대목을 살피지 않아요. 그저 아이를 닦달하고픈 마음입니다. 그저 아이가 ‘사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 조그만 기사에는 후난 주의 통치자인 호치엔 장군이 책 한 권을 금서로 지정했다고 쓰여 있었다. 문제의 그 책은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장군이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이유였다. 말을 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11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책 읽기 금지!》에 나오는 어버이하고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얘들아, 꽃을 꺾고 싶으면 꽃한테 먼저 물어봐. 그리고 너한테 꺾이는 꽃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꽃은 나중에 씨앗을 맺을 아이들이야. 네가 눈으로 보면 될 꽃을 꼭 꺾어서 손에 쥐어야 꽃이 예쁜지를 생각해야 해.”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가 나비나 잠자리를 손으로 잡고 싶으면 먼저 나비하고 잠자리한테 말을 걸어. 너희를 한 번 손으로 만져 보고 싶다고 말을 조용히 건 다음에 손을 뻗어.”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얘야, 나무를 타고 싶으면 먼저 나무한테 물어봐야지. 나무가 너희를 태워 주고 싶은지, 나무가 너희하고 놀고 싶은지를 묻고서 나무한테 올라타렴.” 하고도 이야기해요.


  ‘말하는 토끼’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말하는 토끼가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무척 많을 텐데, ‘말하는 토끼는 있다’를 밝힌 어른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하는 토끼는 없다’를 밝힌 어른도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산타클로스는 있다’를 밝힌 어른도 없지만 ‘산타클로스는 없다’를 밝힌 어른도 없어요.


  이리하여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우리가 무엇이든 없다고 여기면 참말 없고, 우리가 무엇이든 있다고 여기면 참말 있어. 너희한테는 돈이 하나도 없어. 그렇지만 너희는 돈이 없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없어. 너희는 늘 즐겁게 놀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지.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돈이 많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즐거운 살림이 되지 않아. 아버지나 어머니 스스로 즐겁구나 하고 노래하는 살림을 가꿀 적에 비로소 즐거운 살림이 돼. 그러니까 너희한테 장난감이 많아야 잘 놀지 않고, 장난감이 없어도 맨손으로 맨몸으로 잘 뛰어놀지? 스스로 있다고 여길 때에 무엇이든 스스로 새로 지을 수 있어.”



거기에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앨리스의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모두 앨리스가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방은 ‘이상한 나라’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와 마분지, 나무,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재료들을 사용해서 앨리스가 만든 것들이었다. (165쪽)


앨리스는 지난 일 년 동안 만든 장식품들을 으젠느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열 살 소녀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174쪽)



  동화책 《책 읽기 금지!》에 나오는 아이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마침 루이스 캐롤 님이 빚은 문학에 나오는 이름하고 같습니다. 이 아이는 루이스 캐롤 책을 읽고 나서 더없이 사랑에 빠졌고, 이 사랑을 ‘루이스 캐롤 책에 나오는 대로 꾸미기’에 바쳤다고 합니다.


  얼마나 짠하면서 멋진 일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상류 사회 눈치’나 ‘사회 눈치’를 보지만, 아이는 스스로 ‘사랑할 살림’을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애틋하면서 고운 일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누군가는 ‘나무하고 어떻게 얘기를 나눠?’ 하고 여길 테지만, 누군가는 ‘나무하고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눕’니다. 누군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터무니없는 책으로 여겨서 아예 못 읽게 가로막을는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천사도 요정도 마녀도 만나면서 새로운 누리로 즐겁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어요.


  지식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시험을 잘 치르려고 책을 손에 잡기도 합니다. 시사상식을 얻으려고 책을 손에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꿈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앞으로 일굴 사랑스러운 살림을 찾으려고 책을 손에 잡기도 합니다. 반가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기쁘게 어울리거나 사귀려고 책을 손에 쥐기도 합니다.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책을 읽힐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책을 ‘못 읽게’ 해야 할까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하지 마!”나 “읽지 마!” 하고 가로막기 앞서 “우리 함께 해 볼까?” 하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 함께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 볼까?” 하고 마음을 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상류 사회 눈치가 아무리 대수롭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랑으로 낳은 아이’처럼 대수로울 수 없을 테니까요. 2016.8.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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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다는 것 - 연규동 선생님의 언어와 소통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13
연규동 지음, 이지희 그림 / 너머학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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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64



내가 말하는 대로 내 생각이 바뀐다면?

― 말한다는 것

 연규동 글

 이지희 그림

 너머학교 펴냄, 2016.7.12. 11000원



  말이란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말 한 마디에 어떠한 생각을 담는가 하는 대목을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내는 《말한다는 것》(너머학교,2016)을 읽습니다. 너머학교 출판사는 ‘-는다는 것’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생각·읽기·느끼기·그림·보기·놀기 같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말한다는 것》은 책이름 그대로 ‘말한다’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푸름이 스스로 더 깊고 넓게 헤아려 보자고 이야기해요.



아이들은 말을 배우며 삶을 배우고 세상을 배웁니다. 그들은 그렇게 말을 만들어 가며 삶을 만들어 가고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만들어 가지요. (5쪽)


우리는 모두 한국어의 많은 규칙들을 스스로 깨쳐 왔어요. 우리는 모두 한국어의 규칙을 배우지 않고도 이해했다는 말이에요. (16쪽)



  아홉 살 아이가 문득 ‘백조’라는 이름을 놓고 나한테 물어봅니다. 도감이나 만화책을 볼 적에 ‘백조’ 말고도 다른 이름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다른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아이는 여러모로 궁금해요. 아이는 여러모로 묻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백조(白鳥)’라는 이름을 흔히 쓰는데, 막상 ‘백조’라고 할 만한 새는 없어요. 한국말사전에서 ‘백조’를 찾아보면 “= 고니”처럼 풀이하지요. 한국에서 쓰는 ‘새이름’은 ‘고니’이기 때문입니다.


  아홉 살 아이가 우리 사회 얼거리도 헤아리면서 아이 나름대로 새나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놓고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합니다. “자, 생각해 볼까. 꽃을 보면 하얗게 피어나는 꽃이 많아. 그런데 어느 한 가지 꽃을 가리키면서 ‘흰꽃’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아. 하얀 꽃송이를 피우는 꽃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야. ‘흰꽃’을 한자말로 ‘백화’라 할 수 있을 텐데, 새한테도 똑같아. 새를 가만히 보면 하얀 깃털인 새가 많지. 이 새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흰새(백조)’라 하면 다른 “하얀 깃털인 새”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백조’는 도무지 알맞지 않은 이름이야. 그래서 ‘고니’라는 이름을 쓰지. 고니 가운데 털빛이 하얀 새는 ‘검은고니’라고 하고.”



말에는 ‘소리’와 함께 ‘뜻’이 포함되어야 해요. 뜻은 생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1쪽)


강 양쪽 변과 바닥에다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습지를 없앤 공사를 하면서 ‘녹색 성장’이라고 한다거나 방사능의 위험이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청정 에너지’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 말은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바꾸는 도구로 바뀌게 돼요. 즉, 생각이 말을 낳지만, 일단 언어가 생각의 도구로 확립된 다음에는 말이 생각까지 바꾸는 것입니다. (79쪽)



  청소년 인문책 《말한다는 것》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 책에서는 ‘녹색성장’이나 ‘청정 에너지’ 같은 이름이 자칫 무시무시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깨끗하지 않으면서도 ‘녹색’이나 ‘청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홍보를 하거나 광고를 하면 사람들은 이런 이름에 휘둘리기도 한다고 밝혀요.


  그러면 거꾸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나쁘지 않은 사람을 괴롭히려는 뜻으로 “나쁜 놈”이라는 말을 일부러 한다면, 나쁘지 않은 사람이 뜬금없이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릴 수 있어요. 책이나 영화를 놓고도 “좋은 책·나쁜 책·좋은 영화·나쁜 영화” 같은 이름을 붙여서 일부러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릴 수 있을 테고요.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거꾸로 말 때문에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혼잣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격려해서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행동을 더욱 활성화하는 힘이 있어요. 스스로의 행위를 지시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지요. (58쪽)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빅뱅’이든 ‘블랙홀’, ‘웜홀’이든 이름을 붙여야지만 우리의 생각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에요. 일단 말로 표현되어야지만 인식과 사유의 대상물이 된다는 것이지요. (64쪽)



  말과 이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일부러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릴 적에 이러한 이름 때문에 우리 생각이 바뀔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저마다 어떤 말을 곰곰이 읊는가에 따라서 우리 생각이나 삶이나 마음도 바꿀 수 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예쁘다”라든지 “나는 씩씩하다” 같은 말을 늘 스스로 읊을 수 있어요. “나는 노래를 잘해”라든지 “나는 춤을 잘 춰” 같은 말을 늘 스스로 읊으면서 살 수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 내가 안 예쁘거나 안 씩씩하거나 노래를 못 부르거나 춤을 못 출는지 모르지만, 스스로 읊는 말은 스스로 북돋우는 기운을 싣는다면, 나는 어느새 ‘내가 나한테 하는 말’에 맞추어 거듭난다고 할까요.


  즐겁게 말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는 셈입니다. 기쁘게 말하면서 기쁜 마음이 되는 셈이에요. 노래하는 몸짓으로 말을 하면서 내 마음에는 어느새 노래가 흐르는 셈이 될 테고, 꿈꾸는 매무새로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내 꿈을 하나둘 이룰 수 있으리라 느껴요.


  생각이 말로 나타나기에 생각을 슬기롭게 추슬러야겠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말이 다시 내 생각을 짓는 바탕이 되기에, 늘 읊는 말부터 새롭게 가꾸고 보듬을 줄 알아야겠다고 느낍니다. 2016.8.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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