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1
한홍구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129



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손대는 까닭은?

―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한홍구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6.11.17 15000원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살아갑니다. 나라를 본다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역사를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란 ‘선거라는 민주 제도로 한 표 권리를 쓴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이란 ‘평화로운 시위’를 가리켜요.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현직 대통령한테 한 표를 준 사람’도 있을 테고, 그이한테 한 표를 안 준 사람도 있을 테지요. 현직 대통령한테 표를 주었든 안 주었든 이제 ‘우리’는 그이, 곧 현직 대통령이 어떤 잘잘못을 저지르면서 나라를 어지럽혔는가를 바로 오늘 또렷이 알고 지켜봅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역사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어요.


  2016년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2016년 역사’를 학교에서 역사 교과서로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배울 수 있고, 마을에서 배울 수 있어요. 둘레 어른들한테서 배울 수 있고, 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깨달을 수 있어요. 2016년 가을겨울에 벌어지는 새로운 역사는 ‘책(교과서)’이 아닌 온몸(현장)으로 저마다 배우는 역사라고 할 만해요.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은 평범합니다. 나무꾼도 나오고 농사꾼도 나오고 우리 동네 ‘철수’도 나오고 ‘영희’도 나옵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편하고 재미있습니다. 지금 배우는 역사는 너무 거룩해요. 딱딱하고,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지요 … 우리는 그동안 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역사를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재미없는 역사’만 강요했습니다 … 이런 역사 교육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자체를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6쪽)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한홍구 님이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한국 현대 역사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철수와영희,2016)이 촛불모임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2016년 늦가을에 나옵니다. 이 책은 ‘재미없는 역사’를 떨치고 ‘살아서 숨을 쉬는 역사’를 어른들이 가르치고 푸름이가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습니다. ‘시험공부로 외우는 역사 지식’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깊이 받아들일 우리 역사’를 새로운 이야기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요즘도 학생들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강요하는 분들이 있지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래야 학생답다. 머리가 길면 산만해서 공부가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여러분, 학생답다는 게 뭘까요? 우리가 학생다우려면 인간다움을 버려야 하는 건가요. 민주 시민을 키워야 할 학교에서 왜 자꾸 사람을 길들이는 데 신경을 쓰느냐는 겁니다. (125쪽)


오로지 국·영·수로, 대입 시험 한 판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이 시대의 경쟁은 옳지 않습니다. 돈을 왕창 쏟아부은 사람이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 옆사람과 경쟁하지 마세요. 같이 고민하고 함께 싸워 나갈 친구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집니다. (161쪽)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한홍구 님도 중·고등학생이던 무렵에는 빡빡머리여야 했다는데, 저도 중·고등학생이던 무렵에 빡빡머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중·고등학생도 사내는 머리카락을 꽤 짧게 쳐야 하는데, 지난날보다는 조금 나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두발단속’이라는 제도가 버젓이 있어요. ‘두발단속’이란 이름조차 일본 한자말인데요, 일제강점기에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억누르던 학교 제도가 아직 다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사회에서도 ‘사내가 머리카락을 조금이라도 기르면’ 사내답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품행 단정’하고 어긋난다고 여기기 일쑤예요. 머리카락이 길대서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하거나 안 똑똑할 까닭이 없는데 말이지요.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는 어린이와 푸름이일 적부터 ‘사람다움’을 빼앗거나 억누르면서 ‘어른(기득권)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도록 길들이는’ 얼거리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든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이동안 동무들을 밟고서 더 높은 점수를 따야 한다고 밀어붙여요. 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꿈을 펼치도록 북돋우기보다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해야 한다고 몰아붙여요.



군대는 상명하복이죠. 그걸 민간인에겍 평시에도 적용하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회가 숨이 막히죠. 학교가 왜 그렇게 숨 막히는 곳이 되었느냐, 우리나라 학교의 기원이 일제강점기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에도 잔재가 남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해요. (189쪽)



  ‘상명하복’에다가 ‘생존경쟁’이 판치는 학교에서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기 어렵다고 느껴요. 정치권력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고 하는 까닭도 ‘상명하복 입시 생존경쟁’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면서 참다운 역사에서 멀어지도록 하려는 속셈이리라 느껴요.


  지난날 일제강점기는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기관이던 학교(189쪽)”였다면, 오늘날 현대 사회는 ‘입시지옥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혼자 잘살고 이웃하고 등지도록 내모는 학교’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학교가 된다면 저절로 민주나 평화하고 멀어질 테고, 민주나 평화하고 멀어질수록 군대질서가 퍼지면서 사회는 정치권력 입맛에 맞추어 어두워지리라 느낍니다.



역사는 길게 봐야 하는 거예요. 한두 해 보면 역사는 퇴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길게 보면 어때요? 역사는 진보하고 있습니다. (269쪽)



  한홍구 님은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이라는 책에서 또렷하게 외칩니다. “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는” 까닭은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없애 버리려는” 뜻이라고 외칩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잃도록 내몰면서, 기득권 세력이 온갖 부정부패로 사회를 억누르는 얼거리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이야기해요.



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없애 버리려는 거예요.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더 빨리 더 많이 바꾸려고 할 것 아닙니까.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아? 처음부터 지금의 기득권 세력이 세상을 다스려 온 거야. 헛된 꿈 꾸지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하고 스펙이나 열심히 쌓아. 밥은 먹게 해 줄게.” 이런 식으로 세상이 안 바뀐다는 잘못된 믿음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거예요. (270쪽)



  현역 대통령 지지율 4%나 5%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4∼5%를 뺀 우리’는 이제 “세상은 틀림없이 진보한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평화’를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거듭날 나라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을 바라는 우리는 ‘평화를 바라기에 평화로운 촛불모임’을 열어요. 앞으로 우리가 누리려고 하는 새로운 나라는 참말로 ‘평화·민주·평등·통일’이니, 이러한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 스스로 평화롭고 민주다우며 평등하고 통일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이룰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합니다.



1970년대에 박정희가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라서 경제 발전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괜히 민주주의가 어쩌고 떠들다가는 깡통 차고 북한한테 잡아먹힌다고 했어요. 하지만 박정희가 죽고 나서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이 알게 된 거예요. (242쪽)



  지난날 독재정권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 하고 윽박질렀습니다만, 참말로 민주가 밥을 먹여 줍니다. 서로 아낄 수 있는 마음이 밥을 먹여 줍니다. 밥 한 술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은 바로 민주요 평화이며 평등이고 진보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경제발전이 아니고,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짓는 아름다운 살림이 바로 경제발전이에요. 성장율이 아닌 평화와 민주가 바로 경제발전이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역사를 새로 씁니다. 비록 ‘한때 대통령을 바보스레 뽑았’을는지 모르더라도, 이제부터 새롭게 바꾸면서 하나씩 아름답게 세울 수 있어요. 현직 대통령을 뽑아 준 40%가 넘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다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손길로 바뀌어요. 한때 뒷걸음질을 하는구나 싶던 역사일 수 있지만,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더 씩씩하게 한 발을 뻗으려고 한동안 숨을 고르던 몸짓이었지 싶어요.



입시 제도가 이대로 유지되는 한 교육 개혁, 꿈과 낭만이 숨 쉬는 학교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죠. 하지만 여러분이라면 다를 수 있어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면 말이죠. (73쪽)



  역사를 가르치는 까닭이라면 ‘바로 오늘 이곳’을 우리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되새기려는 뜻이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뜻을 찾는다면, 어린이하고 푸름이 스스로 ‘바로 오늘 이곳’을 슬기롭게 살피는 눈길을 길러서 앞으로 이 땅에 ‘새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로 아로새기도록 이끌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지옥과 대입시험도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온갖 차별도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로만 쏠린 문화라든지 핵발전소 말썽거리도 얼마든지 손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새롭게 지으면 돼요.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역사를 올바로 살피고 돌아보면서, 역사를 똑똑히 지켜볼 뿐 아니라 우리 손으로 가꾸면서, 앞으로 새나라를 우리 힘으로 열 수 있습니다. 2016.11.2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 인문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 난 책읽기가 좋아
마인데르트 드용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짐 맥뭘란 그림 / 비룡소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60



새끼 고양이를 품은 늙은 개

―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

 마인데르트 드용 글

 짐 맥뮐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펴냄, 2004.9.24. 7000원



  고양이를 길러 보셨나요? 개를 길러 보셨나요? 개하고 고양이를 함께 길러 보셨나요? 이 세 갈래 가운데 한 갈래에 서 본 적이 있다면 마인데르트 드용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비룡소,2004)를 읽으며 가슴 한켠이 촉촉하게 젖거나 찡하거나 움찔하거나 움직이리라 생각합니다.



그 개는 주인아저씨의 개였어요. 너무 늙어서 눈이 멀고 몸도 불편했어요. 너무 늙어서 귀도 잘 안 들리고 냄새도 잘 못 맡았고요.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어요! 배고프고 목마른 것도 느끼고, 따뜻하고 추운 것도 느끼고, 사랑과 친절과 외로움도 느끼고, 간절하게 바랄 줄도 알았어요. (10쪽)


늙은 개는 듣고 보진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어요! 새끼고양이가 까칠까칠한 혀로 핥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늙은 개는 새끼고양이가 핥기 좋게 고개를 숙였어요. (18쪽)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를 보면, 맨 먼저 늙은 개가 나옵니다. 너무 늙어서 어느 모로 보면 죽음을 앞두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늙은 개는 ‘죽음을 앞둔 개’가 아닙니다. 그저 ‘아주 많이 늙은 개’요, 아주 많이 늙었기에 ‘더 사랑받고 더 손길받으며 더 삶을 즐거이 누리고픈’ 개예요.


  아무래도 늙은 개만 사랑받고 싶지 않으리라 느껴요. 우리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힘이 줄거나 눈도 어두워진다면 더욱 사랑을 받아야 해요. 손수 밥을 짓지 못하고, 곁에서 어깨를 짚어 주지 않을 적에 걷지 못한다면, 참으로 깊고 넓게 사랑을 받아야지요.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에는 늙은 개 다음으로 여러 고양이들이 나옵니다. 이 고양이들 가운데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낳는데, 새끼가 모두 일곱이래요. 이 일곱 새끼는 저마다 어미 고양이한테서 사랑을 받는데 그만 막냇고양이 한 마리만 좀처럼 사랑을 못 받는대요. 아니, 사랑을 못 받는다기보다 언니인 고양이들한테 힘으로도 몸집으로도 밀려서 젖도 우유(집임자가 주는 우유)도 거의 못 먹는다는군요.



저 밑에서 덩치 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새끼고양이가 나무 밑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어요. 새끼고양이는 발톱에 더욱 힘을 주고 휘청거리는 높은 가지에 꼭 매달렸어요. (41쪽)


새끼고양이는 지금 지쳐서 자고 있지만, 사실 길을 잃은 거예요. 지금 새끼고양이는 개들과 어미고양이와 여섯 형제가 있는 헛간에서 겨우 일곱 집, 일곱 마당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하지만 새끼고양이는 돌아갈 길을 몰랐어요. (66쪽)



  자연 사회에서는 흔히 ‘도태’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자연에서는 스스로 힘을 내지 못하는 여린 목숨은 그만 숨을 잃어야 한다고 해요. 이 대목은 어느 모로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여린 목숨도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지요. 가장 여리고 작고 낮은 목숨도 이 땅에 태어난 기쁨을 누리고 싶어요.


  이리하여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는 이 대목을 넌지시 건드립니다. 먼저 ‘사랑받고 싶은 늙은 개’ 이야기를 부드럽게 보여주고, 다음으로 ‘사랑받고 싶은 여린 새끼 고양이’ 이야기를 따스하게 보여주어요.



아저씨는 깜짝 놀라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아저씨는 새끼고양이가 헛간에 있는 철망 우리 속에서 늙은 개랑 함께 살았던 것도 몰랐어요. 그러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79쪽)



  농장을 거느리는 집임자는 여러모로 바쁘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집임자는 막상 이녁 헛간에서 늙은 개하고 새끼 고양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까맣게 몰라요. 집임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긿을 잃고 헤매다가 저희 집에 들어와서 쉬는 줄로만 여겼지만, 정작 새끼 고양이는 그 집임자네 헛간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였고, 어미젖도 제대로 못 물고 배를 곯다가 어느 날 ‘늙은 개가 머무는 개집’으로 굴러떨어져서 ‘늙은 개하고 새끼 고양이’가 서로 아끼면서 한동안 지냈다는군요. 이러다가 새끼 고양이는 바깥마실을 살짝 한다고 하다가 집이 어디인지 길을 잃었는데 용케 이리저리 헤맨 끝에 ‘늙은 개’ 곁으로 돌아갔대요.


  동화라고 하는 어린이문학에서 줄거리라든지 가르침도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문학에서는 줄거리하고 가르침을 넘어,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따사롭게 들려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대목이 참으로 뜻이 있지 싶어요. 어린이문학 《일곱 번째 새끼 고양이》는 이런 대목에서 눈여겨보고 아낄 만한 이야기책이라고 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조곤조곤 읽어 주면 좋을 이야기요,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 이 책을 나긋나긋 읽어 주어도 참으로 좋을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아웅다웅 다투는 개하고 고양이 사이가 아니라, 얼마든지 서로 아낄 수 있는 개하고 고양이 사이라고 하는 흐름을 잘 짚는 책입니다. 늙은 개하고 여리고 작은 새끼 고양이가 서로 어떻게 아끼고 따스히 품는가 하는 대목을 곱게 들려주는 책입니다. 새끼 고양이가 겪어야 하던 가시밭길은 참 안쓰럽지만, 그 가시밭길에도 지지 않고 더욱 씩씩하게 일어서면서 스스로 기쁜 삶을 찾은 대목도 더없이 예쁩니다. 2016.11.1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말
소야 키요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정성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49



유리 장난감을 깨뜨린 아이를 나무라지 말아요

― 유리 말

 소야 키요시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정성호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4.8.30. 7000원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일이란, 두 어버이한테는 더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라다가 어른이 되는데,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아요. 어버이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살림을 물려받아 철이 들면서 시나브로 어른이 되어요.


  그런데 어른이 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어른이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되려면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거두어 돌보는’ 살림을 꾸려야 해요. 어른 가운데에서도 더욱 많은 일을 하고 살림을 가꾸면서 더 넓게 깊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 적에 바야흐로 어버이 자리에 서요.



누리가 태어났을 때, 아빠와 엄마는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누리가 빨리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쪽)


“저 말(유리로 된 인형 말)을 마당에 풀어놓아 주고 싶어. 그러면 틀림없이 달려갈 거야. 저렇게 좁은 곳에서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잖아.” (14쪽)



  소야 키요시 님이 글을 쓰고, 하야시 아키코 님이 그림을 빚은 어린이문학 《유리 말》(한림출판사,2004)은 아이하고 어버이가 서로 어떤 사이인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이른바 ‘판타지문학’이기도 한 작품인데, 이 이야기책은 ‘어버이로서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기쁨’을 밝히고, ‘아이로서는 사랑스러운 어버이 곁에서 즐겁게 자라는 하루’를 보여준다고 할 만해요.



잠자는 새는 날개를 퍼덕거리고 나서 ‘쮸루루’ 하고 울고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나무에 기대고 있으니까 나무 줄기를 타고 네 목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 울려 오고 있으니, 내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23쪽)


“안 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유리 산의 생활에서는 밤이 어두운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오두막집 안이나 바깥이나 밤에는 어두운 법이야. 오늘 밤에는 별이 잔뜩 떠 있으니까 바깥이 더 밝을지도 몰라. 자아, 빨리 시작하거라.” (51쪽)



  아이는 때때로 아프면서 자라곤 합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다쳐요. 감기나 고뿔에 걸리기도 하고, 더위를 먹거나 몸살을 앓기도 해요. 어른이 되어도 몸이 아프면 괴로우면서도 이윽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참말 씩씩하게 앓고 씩씩하게 나으면서 더욱 튼튼하고 싱그러운 숨결이 된다고 느껴요.


  그런데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른 뒤, 이 잘못을 말끔하게 털어놓으면 될 텐데, 그만 어머니한테 잘못을 털어놓지 않고 감춥니다. 바로 ‘유리 말 장난감을 그만 떨어뜨려서 깨뜨린’ 잘못이에요.


  어른도 곧잘 유리잔이나 유리병을 떨어뜨려서 깨뜨려요. 아이도 얼마든지 떨어뜨려서 깨뜨릴 수 있어요. 깨뜨려서 아예 박살이 나거나 망가졌으면 하는 수 없이 버려야겠지요. 그러나 고치거나 손볼 수 있으면 고치거나 손보면 돼요. 걱정할 일이 없어요. 나무라거나 탓할 일도 없고요. 나무라지 말고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생각하면 돼요.



“이 물을 물독에 붓고 나면, 유리 산 아주머니가 말에 대해서 가르쳐 줄 거야. 물을 길은 다음에 유리 말을 찾자고 말했으니까 말이야.” (69쪽)


“자아, 큰맘 먹고 용기를 내서 뒤를 쫓아가거라.” 유리 산 아주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누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유리 말은 이미 반짝반짝한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리는 물독의 입구에 손을 갖다 대고 유리 말을 쫓아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78쪽)



  어린이문학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쉬운 길’을 젖히고 ‘어려운 길’을 갑니다. 쉬운 길이란 어머니한테 고스란히 털어놓는 길이에요. 어려운 길이란 꽁꽁 감추며 스스로 끙끙 앓는 길이에요. 《유리 말》에 나오는 아이는 마치 꿈을 꾸듯 ‘유리 산’이라고 하는 곳에 갑니다. 온통 유리로 이루어진 멧골이라고 해요. 이곳에서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를 만나고,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는 아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훤히 꿰뚫어봐요. 아이는 마법사 같은 아주머니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해내야 하며, 아이는 퍽 힘들지만 대견하게 끝까지 해냅니다.


  아장걸음을 뗀 아이가 새롭게 한 걸음을 더 나아간 셈이라고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차분히 지켜보면서 ‘넌 할 수 있어. 그러니 해 봐’ 하고 북돋아 준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른하고 어버이는 아이를 믿기 때문에 ‘아이한테 벅찬 일이 아니라, 아이가 찬찬히 오래도록 마음하고 힘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여겨서 일을 맡겨요. 아이도 어른하고 어버이를 믿기 때문에 ‘설마 못 할 일을 시키겠느냐고, 이 일을 해내며 누리는 기쁨하고 보람을 맛보라는 뜻일 테지’ 하는 마음이 되지요.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별도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누리는 그 넓고 넓은 하늘 어딘가에 있을 입구를 찾았습니다. 까마득히 앞쪽에, 검게 뻥하니 뚫린 원이 보였습니다. 누리와 유리 말은 지체 없이 검은 원을 향해 갔습니다. 누리는 검은 원을 발견했을 때부터 매우 낯익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50쪽)



  어린이문학 《유리 말》은 언뜻 읽자면 ‘꿈 같은 이야기’이거나 ‘판타지문학’으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을 ‘어버이 자리’에서, 또 ‘아이 눈높이’에서 새롭게 바라본다면, 이 이야기책은 어버이랑 아이가 서로 믿고 아끼면서 사랑하는 삶과 살림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따사로우면서 부드럽게 들려주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지 싶어요.


  아프면서 자랍니다. 아픔을 훌훌 털어내며 일어섭니다. 노래하면서 자랍니다. 노래를 널리 퍼뜨리며 방긋 웃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살림을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조그마한 손길로 살림을 보태고, 어른들도 야무진 손놀림으로 살림을 북돋아요. 서로 돕고 보살피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줄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2016.11.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핑크트헨과 안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9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이희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57



어른들은 참말로 뭘 아는지요?

― 핑크트헨과 안톤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이희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5.5.13. 6000원



  《핑크트헨과 안톤》(시공주니어,1995)은 독일에서 1930년에 처음 나온 어린이문학이라고 합니다. 1930년이라니, 어느 모로 본다면 퍽 까마득한 때입니다. 독일은 이무렵 전쟁 불구덩이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만하고, 한국은 일제강점기라는 수렁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만해요. 그무렵 독일에서는 전쟁에 넋이 나간 채 히틀러를 우러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착하며 고운 넋’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핑크트헨과 안톤》은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서도 ‘착하며 고운 넋’을 잊거나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서 태어난 어린이문학이라고 느낍니다. 아무리 팍팍하거나 메마른 ‘어른 사회’라 하더라도, 이 팍팍하고 메마른 ‘어른 사회’를 따끔하게 나무라고 꼬집으면서 ‘아이들이 새롭게 일굴 기쁜 누리’를 꿈꾸는 마음을 들려주는 어린이문학이지 싶습니다.



핑크트헨은 쌍둥이가 되었을 때를 그려 보는 것이 기쁜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내가 누구고 걔가 누군지 못 알아볼 거야.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걔고, 걘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고. 아유, 모두 장님이 되는 거지.” (21쪽)


“어른들은 저렇다니까. 우린 다 할 수 있지. 셈도 할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일찍 잠자리에 들 수도 있고, 공중제비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어른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그런데 나 이빨 하나가 흔들린다. 자, 봐.” (55쪽)



  1930년대를 지나 1940년대로 접어들 즈음 독일이라는 곳에서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거나 퍼뜨린 이들은 바로 어른입니다.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든 이들도 바로 어른입니다. 군인이 되어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인 이들도 바로 어른입니다. 나치를 우러른 이들도 바로 어른이요, 아이들이 ‘나치 선전대’ 구실을 하도록 닦달하거나 내몬 이들도 바로 어른이에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려 본다면, 어른들은 전쟁무기를 만들고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려고 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지요. 이러면서 정작 제 나라 사람들이 민주와 평화와 복지를 누리도록 하는 데에는 돈을 제대로 못 써요.


  《핑크트헨과 안톤》에는 두 아이가 나오는데, 한 아이(핑크트헨 또는 루이제)는 부잣집에서 삽니다. 다른 한 아이(안톤)는 어머니 혼자 계신데 어머니가 몸져눕는 바람에 아이가 집안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바깥에서 돈벌이까지 해요. 이러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너무 졸립고 고단한 나머지 수업을 받는 동안 으레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잡니다.



“또 안톤네 엄마는 벌써 몇 주째 돈을 전혀 벌지 못하세요. 그래도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돈을 누가 버는 줄 아세요? 바로 안톤이 벌어요. 그것도 물론 모르셨겠지만요.” 핑크트헨은 화가 났다. “도대체 아시는 게 뭐죠?” 다른 선생님들이 웃자, 브렘저 선생님의 얼굴은 대머리 꼭대기까지 전부 벌개졌다. (106∼107쪽)



  어른들이 사회를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사랑스레 가꾸는 데에 힘을 쓰고 돈을 쓰며 마음을 쓰고 생각을 쓴다면, 안톤처럼 집 안팎에서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아이는 없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웃한테 총을 내미는 어른 사회가 아니라, 이웃한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어른 사회라 한다면, 안톤처럼 고단한 살림을 지켜야 하는 아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핑크트헨과 안톤》에 나오는 핑크트헨은 이런 안톤을 알아봅니다. 핑크트헨은 야무지고 똘똘하며 착한 안톤이 더없이 마음에 듭니다. 핑크트헨 눈에는 ‘가난하거나 꾀죄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핑크트헨 눈에는 ‘야무지고 똘똘하며 착한 모습’이 보여요. 이와 함께 안톤 눈에도 핑크트헨이라는 아이 마음이 보입니다. 안톤은 핑크트헨네 집안이 ‘부잣집’이라는 대목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안톤은 핑크트헨이 달걀 요리 하나도 못한다고 해서 나무라지 않습니다. 안톤은 핑크트헨이 집안일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대서 핀잔하지 않습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동무가 됩니다.



(포게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이리 와! 왜 거지 아이와 함께 서 있는 거니?” 안톤이 말했다. “더 이상 못 참겠네. 저도 아주머니처럼 어엿한 사람이에요. 그것만은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친구의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전 아주머니 같은 분하곤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168쪽)



  우리 어른들은 어떤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볼까요? 핑크트헨을 놓고는 ‘부잣집 아가씨’이니 부러워하는 눈으로 볼까요? 안톤을 놓고는 ‘거지와 똑같다 싶도록 가난한 녀석’이니 혀를 끌끌 차는 눈으로 볼까요?



“아빠가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엄마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데 나랑 놀아 줄 시간이 없나 봐요. 그러니 엄마와 아빠 모두 나와 놀아 줄 시간이 없는 거죠. 이제 다른 보모가 오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죠.” (181쪽)



  어린이문학 《핑크트헨과 안톤》은 겉모습과 속마음 두 가지를 나란히 보여줍니다. 겉모습에 얽매여 정작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먼저 보여줍니다. 이다음으로는 속마음을 늘 따사로이 들여다보면서 겉모습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을 함께 보여주어요.


  핑크트헨은 어느 날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찾아갔다고 해요. 안톤이 늘 교실에서 졸거나 자기 때문에 안톤네 ‘부모님(어머니가 아닌)’을 학교로 오라고 해야겠다며 꾸중을 했다고 해요. 이 말을 들은 핑크트헨은 몹시 성이 났답니다.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하나하나 따지며 물었대요. 안톤이 어떤 아이인지 아느냐고, 안톤네 집살림을 아느냐고, 안톤에 어머니가 앓아누워서 안톤이 늘 보살피는 줄 아느냐고, 안톤이 집살림을 건사하려고 밤마다 장사를 하며 돈벌이를 하는 줄 아느냐고 묻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핑크트헨과 안톤은 고작 열 살 안팎인 나이입니다. 이 아이들은 부잣집이건 가난한 살림집이건 둘레 어른들한테서 좀처럼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1930년대 독일 사회를 넌지시 비추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대 한국 사회는 어떻다고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안다고 할 만할는지요. 핑크트헨이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따지면서 외친 “도대체 아시는 게 뭐죠?” 하는 말마따나 우리 어른들은 참말로 뭘 알면서 이 사회를 가꾸는 사람인가 하고 되돌아봅니다. 2016.10.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 - 짚풀 공예 신기방기 전통문화
정인수 지음, 최선혜 그림 / 분홍고래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55



짚살림을 가꾸던 때에는 쓰레기가 없었네

―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

 정인수 글

 최선혜 그림

 분홍고래 펴냄, 2016.7.9. 13000원



  어린이 인문책이라고 할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분홍고래,2016)를 읽고서 우리를 둘러싼 ‘짚살림’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지난날에는 짚이 없으면 살림을 할 수 없었다고 할 만하지만, 오늘날에는 짚이 없어도 비닐끈을 널리 써요. 오늘날에는 짚으로 살림살이를 꾸리는 손길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멍석은 평소에는 곡식을 널어 햇볕에 말리는 데 쓰지만, 잔칫날에는 마당에 깔아두고 손님을 앉게 했어. 또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방안에 깔아 방바닥처럼 쓰기도 했고, 재주나 장기를 부릴 때에는 무대처럼 쓰기도 했어. 동네 법이 지켜지는 법정이기도 했어. (41∼42쪽)


똬리가 이렇게 지방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야. (62쪽)



  문득 생각해 보니, 집안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려고 하면서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안 쓰려 하더라도 둘레에 비닐끈이 참 많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제가 어릴 적이던 1980년대 무렵에는 새끼줄을 도시에서도 심심찮게 썼고, 물고기를 엮을 적에도 새끼줄을 썼어요. 그때에는 능금이나 배를 파는 과일집에서 나무로 짠 궤짝을 쓰면서 겨를 깔았어요.


  그러나 요새는 과일집에서 으레 비닐을 씁니다. 뽁뽁이를 쓰고 스티로폼을 써요. 예전에는 책을 쌀 적에 정갈한 종이나 한지를 썼다면, 오늘날에는 대수롭지 않게 비닐을 써요. 더 생각해 본다면, 예전에는 책을 선물로 보낼 적에도 종이로 쌌어요. 책이 안 다치게 하도록 두꺼운 종이로 싸고, 겉은 누런 종이로 다시 마감했지요. 그런데 요새는 뽁뽁이라든지 비닐로 된 바람주머니를 씁니다.



설거지할 때에는 짚으로 만든 수세미를 사용했어. 대개 짚을 잘게 잘라 실패처럼 감아 만들었는데, 새끼줄을 둥그렇게 말아 쓰기도 했어. 둥그런 수세미로는 솥과 같이 검댕이가 많이 묻은 것을 닦을 때 썼어. 재와 모래, 기왓장 가루를 섞어서 세제로 쓰면 기름때가 묻은 놋그릇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이곤 하지. (75∼76쪽)


짚 그릇은 다른 재료로 만든 그릇보다 큰 편이야. 섬이나 가마니도 그릇이라고 하거든. 짚 그릇 중 멱서리는 쌀 한 가마니 양을 통째로 넣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아래를 넓게 만들고 둘레는 높게 올린 것을 말해. (101쪽)



  정인수 님이 글을 쓰고, 최선혜 님이 그림을 넣은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는 ‘짚살림’을 가꿀 줄 아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선보이는 멋진 ‘짚공예’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요. 온갖 짚살림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짚살림이 아득히 먼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안 된 가까운 우리 살림살이였다는 대목을 밝힙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제 어릴 적을 더 더듬어 보았어요. 우리 어머니나 이웃집 어머니는 된장을 담그려고 메주를 띄울 적에 새끼줄을 썼습니다. 비닐끈을 쓰지 않았어요. 도시에서도 참말 어디에선지 짚을 얻어서 썼어요.


  새끼 꼬기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가시내 머리카락 엮기하고도 닮습니다. 머리카락도 짚도 댓잎도 이래저래 엮으면서 살림을 짓던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손수 씨앗을 심어서 가꾼 나락을 베어 바심을 하고 절구를 찧어 쌀을 얻듯이, 손수 짚을 건사하고 말리고 가다듬어서 새끼를 엮고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빚지요.



팡개를 진흙에 푹 박으면 쪼개진 부분에 진흙이 잔뜩 끼는데, 그것을 새나 동물에게 던져서 새를 쫓았어. 흔히 바닥에 물건을 내동댕이치는 것을 팽개친다고 하는데, 바로 팡개에서 온 말이야. (117쪽)


소 담요란 소의 등에 얹는 언치를 말해. 소가 짐을 등에 실을 때 길마를 얹는데, 언치란 바로 길마 아래에 까는 물건이야. 소 등 아프지 않게 방석을 깔아두는 것이지. 언치를 두르면 겨울에는 한결 따뜻하니까 담요이기도 해. (120쪽)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를 읽으면 ‘짚수세미’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말 그렇겠네 싶어요. 수세미 열매를 말려서 설거지를 할 적에 쓰기도 하지만, 짚으로도 수세미를 삼을 수 있구나 싶어요. 저도 가끔 짚으로 설거지를 하거든요. 기름이 많이 묻은 냄비를 설거지를 하려면, 먼저 풀잎으로 훑어요. 날 풀잎도 좋지만, 마른 풀잎이 더 좋아요. 기름때를 훔친 풀잎이나 짚은 불쏘시개도 되고, 불쏘시개로 안 쓴다면 밭둑에 놓아 다시 땅으로 돌아가도록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짚신을 삼지 않고 미투리도 엮지 않습니다만, 화학섬유로 만든 신발은 다 낡거나 닳거나 찢어지면 쓰레기통으로 가요. 쓰레기가 됩니다. 지난날 짚신이나 미투리는 다 낡거나 닳거나 찢어지면 손질해서 더 쓰고, 더 손질하기 어려우면 땅으로 돌아가요. 짚살림에서는 쓰레기가 없지요.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가장 정갈하면서 아름다운 삶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지난날 시골살림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마디는 할 만해요.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지 않느냐고,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스스로 삶을 못 짓는 흐름이 너무 깊거나 짙지 않느냐고, 오늘날 우리 문명 사회에는 손수 짓고 쓰고 나누는 재미나 즐거움이 어느새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달걀 하나도 소중했던 그 옛날 한 알 한 알 일일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달걀 꾸러미는 정성이 가득한 선물이었어. 특히 가난하던 1950년대에는 설날 선물로 달걀꾸러미가 최고의 인기였어. (135쪽)



  어린이 인문책 《짚신 신고 도롱이 입고 동네 한 바퀴!》는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아주 흔하던 짚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주 흔할 뿐 아니라 시골사람 누구나 사랑하면서 보듬던 수수한 살림살이를 다루어요. 비록 오늘날에는 거의 다 잊히거나 자취를 감추어 버리려 하지만, 시골로 돌아가서 조용하게 살림을 짓고 싶다는 꿈을 키우려는 사람들한테 ‘짚을 이렇게 알뜰히 여겨서 쓸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짚살림을 가르쳐 줄 어른이 곁에 없더라도,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유투브 같은 데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새끼를 꼬는 손길부터 짚을 삼아서 그릇을 빚는 솜씨까지 익혀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머리로만 담는 지식이 아닌, 두 손으로 즐거이 짓는 살림을 다루는 아이들이 널리 아름다이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10.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