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우 씨 동화는 내 친구 48
로알드 달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논장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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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9


미련한 세 사람은 여우를 잡으려고 악쓰는데
― 멋진 여우 씨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7.2.15./2017.3.15. 9000원


  1916년에 태어나고 1990년에 숨진 로알드 달 님은 1970년에 ‘fantastic Mr.Fox’를 씁니다. ‘여우 씨’를 다루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다가 2009년에 〈판타스틱 Mr. 폭스〉라는 이름을 붙인 영화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2007년에 비로소 한국말로 옮깁니다. 2017년에 이 어린이문학이 새 옷을 입습니다. ‘로알드 달이 태어난 지 100돌’을 맞이한 뜻에서 새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영화로도 재미있지만 책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영화는 영화 나름대로 곁이야기를 여러모로 입혀서 보여주고, 책은 책 나름대로 ‘여우 씨’가 숲에서 어떻게 사람들하고 맞서면서 슬기롭고 놀라운 생각과 재주를 뽐내는가 하는 대목을 도드라지게 보여줍니다.


여우 씨는 말을 하려다가 멈추더니 한숨을 쉬고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어요. 여우 씨가 다시 주저앉았어요. “소용없어. 어차피 안 될 거야.” “왜요, 아빠?” “굴을 더 파야 하는데, 사흘 밤낮을 굶었으니 우리에게 그럴 기운이 남아 있겠어?” 새끼 여우들이 벌떡 일어나 여우 씨한테 우르르 달려가며 소리쳤어요. “아니에요, 팔 수 있어요, 아빠! 할 수 있어요. 하는지 못하는지 한 번 보세요! 아빠도 할 수 있고요!” 여우 씨는 새끼 여우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어요. (59쪽)


  숲에서 사는 여우 씨는 수수한 수여우는 아닙니다. 이 여우 씨는 사람들이 가꾸는 농장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닭이나 거위나 칠면조를 훔치거든요. 대단히 날렵한 사냥꾼이요 몹시 뛰어난 숲짐승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와 달리 농장에서는 이 여우 씨를 끔찍하도록 싫어합니다. 여우 씨는 으레 세 군데 농장에서 집짐승을 훔쳐요. ‘보기스’네 농장에서 암탉을 훔치지요. ‘번스’네 농장에서 오리나 거위를 훔쳐요. ‘빈’네 농장에서 칠면조를 훔치고요.

  세 농장 임자인 보기스랑 번스랑 빈은 가멸찬 살림입니다. 여우 씨가 가끔 닭이나 거위나 칠면조를 훔친들 대수롭지 않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들 셋은 좀 미련하면서 까탈스럽습니다. 먼저 보기스는 날마다 고기만두를 듬뿍 곁들인 삶은 닭만 먹어요. 번스는 도넛하고 거위 간만 먹어요. 빈은 칠면조를 엄청나게 키웠지만 능금 농장도 하면서 밥은 한 톨도 안 먹고 오직 능금술만 마셔요.

  이러다 보니 마을에서 아이들은 세 농장 임자를 놓고 놀리는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보기스, 번스, 빈 / 뚱뚱보, 땅딸보, 말라깽이 / 이 지독한 악당들은 / 생김새는 영 딴판이지만 / 마음씨는 똑같이 치사하고 못됐다네.” 하고.

  마을 아이들이 이렇게 부르는 노래를 듣는 세 농장 임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세 아저씨는 마음씨를 다잡거나 추스르거나 고칠까요? 아니면 더욱 미련스럽거나 까탈스럽게 굴까요?


여우 씨가 명령했어요. “기다려! 정신 차리렴! 뒤로 물러서! 진정해라! 일을 제대로 해야지! 일단 다들 물부터 마시렴!” 새끼 여우들은 닭의 물통으로 달려가서 달고 시원한 물을 할짝할짝 마셨어요. 그러고 나자 여우 씨가 가장 통통한 암닭 세 마리를 골라 솜씨 좋게 꽉 물어서 바로 숨통을 끊어 놓았어요. (67쪽)


  로알드 달 님은 어린이문학 《멋진 여우 씨》로 여우 씨하고 세 농장 임자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여우 씨는 여느 날처럼 세 농장 가운데 한 곳을 골라서 즐겁게 사냥을 하려고 여우 굴을 나서다가 그만 총알질을 받습니다. 여느 날하고 바람이 다르게 부는 줄 더 깊이 살피지 않은 탓에 그만 세 농장 임자가 저희 여우 굴을 둘러싸고서 잔뜩 벼르며 총알을 잰 줄 알아채지 못했어요.

  이때에 여우 씨는 꼬리가 잘립니다. ‘멋쟁이’ 여우 씨는 그만 꼬리 없이 볼품없는 여우 씨가 됩니다. 그러나 일은 여기에서 안 그치지요. 세 농장 임자는 이 여우한테서 꼬리만 빼앗고 싶지 않거든요. 세 농장 임자는 여우네 식구들 목숨을 모조리 빼앗고 싶습니다.

  세 농장 임자는 처음에는 삽으로 굴을 파헤쳐요. 나중이는 기계를 가져와서 파헤치고요. 그렇다면 여우 씨는? 여우 씨는 온 식구가 죽어라 굴을 파서 더 깊이 들어갑니다. 세 농장 임자하고 여우 씨네 식구는 땅파기를 겨루면서 살아남느냐 잡느냐 하는 싸움을 벌입니다.


오소리가 분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자네 탓인 줄 다 아네! 농부들은 자네를 잡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불행히도 자네가 잡힌다는 건 우리도 잡힌다는 거지. 이 언덕에 사는 모두가 말이야.” 오소리는 한 발로 어린 아들을 감싸며 나직하게 말했어요. “우린 끝장이야. 가엾은 내 아내는 굴을 1미터도 팔 기운이 없다네.” (76쪽)


  여우 씨가 괜히 사람 농장을 건드렸기 때문에 온 식구가 죽을 고비를 맞이하도록 한 셈일까요? 여우 씨는 사람 농장은 안 건드려야 했을까요? 농장을 하는 사람들은 좀 너그러울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농장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어느 쪽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해요. 여우 씨는 사냥을 하러 갈 적에, 그러니까 보기스나 번스나 빈네 농장에 집짐승을 훔치러 갈 적에 더 꼼꼼히 둘레를 살폈어야겠지요. 보기스나 번스나 빈 세 사람은 ‘좋아하는 한 가지’만 먹으면서 늘 몸이 아프거나 뚱뚱해지거나 까탈스러워지는 모습을 털어낼 수 있으면 좋을 테고요.

  여우가 가끔 저희 집짐승을 한두 마리 훔친들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는 대단한 재산을 헤아린다면 아무것도 아니라 할 만해요. 이 대목에서 더 살핀다면, 사람들이 커다랗게 농장을 하는 탓에 숲짐승은 보금자리가 줄어들고 사냥터도 빼앗겼지요. 숲짐승 여우 씨로서는 먹잇감을 찾으러 사람 농장에 갈 수밖에 없는 얼거리이기도 합니다.


여우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여, 지금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내일과 모레와 글피를 생각해 봅시다. 밖으로 나간다면 우린 죽을 겁니다. 그렇죠?” “그래요!” 모두들 입을 모아 소리쳤어요. 오소리가 말했어요. “1미터도 가기 전에 총에 맞을 거요.” 여우 씨가 말했어요.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은 분 있나요? 우리는 다들 굴을 잘 팝니다. 바깥을 싫어하고요. 밖에는 적들이 득실거립니다.” (121∼122쪽)


  《멋진 여우 씨》라는 어린이문학에서 ‘여우 씨’가 그냥 여우가 아닌 ‘멋진 여우’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을 돌아봅니다. 이 여우 씨는 죽음이 코앞에 닥친 때에 머리를 번득이면서 ‘여우는 굴을 잘 판다!’는 생각으로 온 식구가 힘을 모아 굴을 더 깊이 파서 저 무시무시한 삽차한테서 벗어나자고 이끕니다. 이다음으로는 새롭게 생각을 번득여서 ‘보기스 번스 빈’ 셋이 여우 굴 어귀에서 더 깊이 파헤치는 데에만 사로잡혔으니, ‘여우 굴 파기 솜씨’를 부려서 세 농장 밑으로 굴을 내어 숨어들면 어떠할까 하고 아이들(새끼 여우)을 북돋웁니다.

  여우 씨는 ‘번득이는 생각’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세 농장 사람이 삽차로 온 숲을 파헤치면서 여우 식구를 찾아내려고 눈알을 부라리는 터라, 다른 숲짐승은 보금자리를 잃고 먹이마저 잃습니다. 이때에 여우 씨는 ‘모든 숲짐승’이 땅밑에 넓게 굴을 새롭게 파서, 또 이 굴을 바로 ‘보기스 번스 빈네 농장 밑’에 파서,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즐겁게 살아 보자고 이끌어요.

  자, 그러면 세 사람, 보기스랑 번스랑 빈은 무엇을 할까요? 이 세 사람은 삽차를 써서 땅을 어마어마하게 깊이 판 뒤에 천막을 치고 총을 거머쥔 채 굴을 지키기로 합니다. 여우 식구는 틀림없이 굶고 지쳐서 뛰쳐나올 테니 그때까지 이 녀석들을 기다렸다가 한 방에 골로 보내자고 생각하지요. 언제까지나, 내내, 하염없이, 마음속에 아무런 꿈이 없이 그저 여우를 총으로 쏘아죽이겠다는 생각만 품고서. 2017.4.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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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 - 엄마 아빠 21명의 자연주의 출산기
정환욱.배우 이윤지, 정상훈을 비롯, 자연주의 출산을 한 21명의 엄마 아빠 지음 / 샨티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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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6


‘칼질로 빨리’는 그만! 출산장려금도 그만!
―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
 정환욱과 자연주의 출산 엄마 아빠들 글
 샨티 펴냄, 2017.3.11. 18000원


  나라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걱정입니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을 이모저모 편다는 이야기가 꽤 예전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을 높인다고 하는 정책은 하나같이 ‘아기 머릿수에 돈을 주는’ 일이기 일쑤예요. 도시에서는 그나마 덜하지만 시골에서는 셋째를 낳으면 천만 원이니 넷째를 낳으면 또 얼마이니 하는 이야기가 쉬 오갑니다.

  아기를 낳아서 돈을 벌라는 정책일까요? 아기를 돈으로 바라보라는 정책일까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요. 돈을 더 주겠노라 하면서 높이는 출산율은 얼마나 보람이 있을 만할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돈 때문에 바들바들 떠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아기’를 돈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정책은 이제 멈출 노릇이지 싶습니다.


“좋아요, 원장님, 그러면 제가 집에서 아기를 낳을 때 의사가 아니라 친구로서 와 주시겠어요?” “친구로요? 의사가 아니라?” (14쪽)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샨티,2017)는 ‘아기를 받는 일’을 하는 의사 한 사람하고 ‘자연주의 출산 어머니 아버지’ 스물한 사람이 함께 쓴 책입니다. ‘분만대 없는 병원’을 꾸리는 정환욱 님은 의사로서 자연주의 출산이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밝혀 줍니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기를 만난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분만대 아닌 곳’에서 아기를 만나려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수술대나 수술도구로 ‘출산’을 하는 이야기는 이 책에 없습니다. 칼질로 ‘빨리빨리’ 아기를 받아내는 이야기도 이 책에 없습니다.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라는 책은 모든 아기가 사랑을 받아 어버이 품에 기쁘게 안기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자연주의 출산이 추구하는 바는 바로 이것, 가족이 함께하는 출산이요 그 과정에서 가정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 전문성을 앞세워 서둘러 출산을 끝내려 하기보다는, 기다려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18, 19쪽)

남편은 아내의 임신과 진통, 출산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어느새 자신이 방관자나 관찰자가 아닌 임신과 출산의 또 하나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31쪽)


  저는 두 아이를 도맡아 돌보는 어버이로서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를 읽으면서 ‘출산·아기’란 무엇인가를 돌아봅니다. ‘출산·출산율’ 같은 말을 쓸 적하고 ‘아기·아이’라는 말을 쓸 적에는 사뭇 다릅니다.

  어버이는 아기를 낳고 받아요. 아기는 어버이한테 찾아와요. 어버이는 아기를 기다리며 배냇이름을 짓고, 아기가 태어나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부릅니다. 아기를 낳아 아이를 돌볼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처럼 아기를 뽑아내어 숫자를 채우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에요.

  가시내하고 사내가 서로 사랑으로 어우러지는 동안 작은 씨앗이 만나 작은 목숨이 깨어납니다. 작은 목숨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느긋하게 자랍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열 달 동안 천천히 자라도록 기다리면서 지켜봅니다. 이동안 아기가 태어나는 길뿐 아니라 앞으로 아이로 자라는 삶을 곰곰이 생각하지요. 새롭게 맞이하는 목숨이 아름답게 살아갈 날을 그립니다.

  모든 아기가 놀라운 까닭은, 이른바 출산이 기적인 까닭은, 사랑하고 사랑으로 만나서 태어나는 새로운 사랑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지피는 작은 씨앗이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출산율 높이기’ 때문에 아기를 낳지 않아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보금자리에 사랑을 지피려’고 아기를 낳아요.


오랫동안 많은 엄마들이 회음 절개를 하지 않고 아기를 잘 낳아 왔다. 그 곁에서 조산사들은 회음 절개가 아닌 호흡으로 엄마가 분만 속도를 조절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아기가 저절로 나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47쪽)

태반을 폐기 처리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미라화’된다. 자연주의 출산 환경에서 아기 출생 직후 탯줄을 자르지 않고 태반이 말라 탯줄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아기와 함께 두는 것을 연꽃 출산이라고 한다. 아기와 태반의 혈액 순환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놔두고 관찰한다는 뜻이다. (150쪽)


  어느 어머니나 아버지도 ‘새롭게 맞이해서 아름답게 보금자리를 가꾸려는 사랑’으로 아기를 낳습니다. ‘출산 장려 정책’을 펴려고 한다면, 아기 머릿수에 맞추어 돈을 얼마 주겠노라 하는 정책 따위가 아니라, 어머니랑 아버지가 ‘아기를 느긋하게 사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자리부터 펼쳐야 마땅합니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에서 ‘출산·출산율’을 잘못 바라보는 까닭은 숫자에 얽매여 ‘사랑·보금자리·살림’을 자꾸 놓치기 때문이에요.

  어머니 몸에 칼질을 해대면서 빨리빨리 아기를 뽑아내는 길이 아닌, 즐겁고 느긋하면서 아름답게 아기를 맞이하는 자리부터 펴야지요. ‘자연주의 출산’은 바로 이처럼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새로운 살림을 즐겁고 아름답게 걷도록 이끄는 작은 징검돌이에요. 두 어버이가 고요하고 어두운 곳에서 아기를 낳아서 맞이하고 기뻐하도록 북돋우는 터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산부인과나 조산소가 아닌 여느 살림집에서도 넉넉히 아기를 낳는 터전을 이룰 수 있어야 아름다워요.

  그리고 아기를 낳아 돌보는 동안 천기저귀를 쓸 수 있도록 북돋우고, 기저귀뿐 아니라 배냇저고리라든지 모든 살림살이가 정갈하고 알맞도록 도와야 할 테고요.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안 쓸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살림살이가 아름답고 깨끗하도록 거드는 정책이 되어야 하고요.


남편은 머리만 나온 상태에서 스스로 몸을 돌린 아기가 처음 눈 뜬 순간을 봤다고 한다. 남편은 그 눈빛과 그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아직까지 이야기한다. (121쪽)


  ‘출산율 높이기’ 정책은 아기를 빨리 뽑아내려는 산부인과 시술로 이어집니다. 이는 아기가 자라는 동안 더 빨리 학교교육을 시키고, 더 빨리 입시지옥으로 내몰아, 더 빨리 서울 언저리 이름난 대학교에 붙도록 내모는 흐름하고도 맞물려요.

  오늘날에 사람들이 아기를 적게 낳거나 안 낳으려고 하는 뜻을 나라에서 잘 읽어야 합니다. 아기를 막상 낳고 보니, 온통 사교육에 입시교육에 피멍이 드는데, 어느 어버이가 선뜻 아기를 즐겁게 낳을 마음이 될까요? 겨우 사교육하고 입시교육을 지나갔어도 취업이 지옥 같고, 취업을 뚫었어도 일터에서 살아남는 일로 골머리를 앓는다면, 이런 사회에 아기를 낳아 돌볼 엄두를 못 낼 만합니다.

  아이한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기에 ‘어머니 몸에 칼질을 안 하는 아기 낳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평화롭게 아기를 낳고, 사랑으로 아기를 맞이하려는 마음이지요. 아기가 태어날 자리, 아이가 뛰놀며 배울 마을하고 보금자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새롭게 꿈을 품고 살아갈 터전, 이 여러 가지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맞물리도록 슬기를 모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끼우는 첫 단추가 바로 자연주의 출산일 것이라 확신했다. 아내 역시 우리 출산은 우리 둘만의 힘으로 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부터 아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267쪽)


  아기를 낳으려는 어머니나 아버지라면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를 곁에 두고서 더욱 씩씩하면서 고운 마음이 될 만하지 싶어요. 아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닌 벼슬아치도, 또 어린이집 교사나 여느 학교 교사도, 이러한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우리가 바라보거나 돌보는 모든 아이가 얼마나 놀라운 사랑으로 태어나서 이곳에 있는가를 헤아려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 푸름이한테 두 어버이가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으로 아기를 낳아 돌보는 아름다움을 알려줄 수 있으면 참으로 좋아요.

  아름답게 태어난 아이들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빌고,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사랑을 널리 나누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2017.4.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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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6
이유미 지음, 최소영 그림 / 철수와영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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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1



‘값싼 치킨’ 때문에 저버렸던 ‘동물 권리’

―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이유미 글

 최소영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7.3.29. 13000원



  사람은 ‘먹으’려고만 태어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먹고·입고·자는’ 세 가지를 하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이른바 ‘밥·옷·집’이 있어야 살아요. 먹지 않으면 굶어서 죽을 테고, 입지 않으면 추워서 죽을 테며, 집이 없으면 느긋하게 쉬지 못할 뿐더러 이리저리 치이며 고달플 테지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지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얻었어요. 오늘날에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거의 다 돈으로 풀어요. 시골에서 살며 ‘먹는’ 데만큼은 손수 지어서 거두더라도, 옷이나 신을 손수 짓는 분은 매우 드물고, 집을 손수 짓는 분도 무척 드물어요.


  무엇이든 손수 지어서 쓸 적에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하고 얽힌 일을 낱낱이 배우거나 알기 마련이에요. 오늘날에는 돈을 써서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누리느라, 이제 우리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가를 쉽게 잊거나 놓치곤 해요.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법에 명시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을 재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유 재산에 불과하므로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방치나 학대도 사실상 법으로 제재하지 못하는 실정이랍니다. (38쪽)


번식장의 엄마 개들은 따뜻한 햇볕도 촉촉한 흙의 느낌도 전혀 알지 못한답니다. 왜냐고요? ‘뜬장’이라고 불리는 철창에 갇혀 평생 강아지를 낳는 기계 노릇을 하기 때문이에요 … 강제 임신과 제왕절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견·종견들은 더는 번식을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이 일을 겪어내야 한답니다 … 우리나라에서 현재 불법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은 약 3천여 곳이라고 합니다. 한 달 평균 2만여 마리의 개가 경매장을 통해 거래되고요. (46, 48, 49쪽)



  이유미 님이 글을 쓰고 최소영 님이 그림을 그린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철수와영희,2017)는 우리가 흔히 잊거나 놓치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살며시 건드립니다. 언뜻 보자면 ‘동물 권리’를 밝히는 책인데 무슨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건드리느냐고 물을 수 있어요.


  자,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해요. 사람들이 아주 쉽게 흔히 먹는 ‘튀김닭(치킨)’은 무엇일까요? 고기가 되는 닭은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서 우리 앞으로 올까요? 세겹살이 되어 주는 돼지는 고기이기 앞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우리한테 올까요? 고기가 되는 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젖을 주는 소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아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살던 닭이나 달걀을 먹을 적에 우리 몸은 튼튼할 수 없으리라 느껴요. 고기가 되는 짐승뿐 아니라 나물이랑 열매도 매한가지이리라 생각해요. 시달리거나 들볶이는 나무에서 딴 열매는 맛나기 어렵겠지요. 따스한 손길이 아닌 매몰찬 손길을 받은 나물이나 열매일 적에도 우리 몸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테고요.



애완견 생산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은 3천여 곳이지만 식용 개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개 농장은 무려 1만 7천여 곳입니다 … 이 개들에게 사료란 사치스러운 음식입니다. 농장주들에게는 수지타산이 안 맞거든요. 1천 마리 이상 키우는 곳에서는 한꺼번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음식물 쓰레기를 공급받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같이 살았던 다른 개들의 사체에서 나온 내장 등의 부산물을 먹고살기도 합니다. (60, 61쪽)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는 우리 곁에 대단히 흔할 뿐 아니라 아주 많이 있는 수많은 ‘짐승’이 누릴 권리 이야기를 다룹니다. 짐승한테 무슨 권리를 챙겨 주느냐고 물을 분도 있을 텐데요, ‘죽은 다른 개’를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먹는 개’나‘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이 되는 개’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고기하고 달걀을 내어주는 닭이 무척 괴롭고 끔찍하며 무시무시한 곳에서 억눌린 채 산다면? 권리를 못 누리는 뭇짐승한테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만한지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우리는 이 같은 얼거리를 아주 쉽게 놓치거나 흘려 보내곤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리 살림을 손수 짓는 길이 아니거든요.


  손수 키운 닭을 잡아서 먹는다고 할 적에 아무것이나 먹이면서 아무렇게나 키우지 않아요. 돼지나 소를 손수 기를 적에도 아무것이나 먹이지 않을 테고요.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만 살가이 사랑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모든 짐승이 똑같이 사랑받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동물은 애완용, 식용, 실험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모두 같은 동물이지요. 여러분도 용도가 나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동물 실험을 통해 제조된 화장품 유통이 금지되었지만, 문제는 중국으로 수출하려면 동물 실험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답니다. 여기서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 수출을 포기할까요? (83, 85쪽)


우리가 믿는 바와는 반대로 의학과 생명 과학 분야에서 동물 실험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 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질병은 1.16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동물 실험으로 개발된 의약품은 사실상 보편적인 안전성을 보장해 주기 어려운 정도의 비율입니다. (89, 90쪽)



  손수 짓는 살림이 아닌 터라 자꾸 돈을 생각하고 맙니다. 더 싸고 더 많이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맙니다. 이러면서 저절로 ‘동물 학대’로 기울어집니다. 오늘날에는 ‘동물 실험’이 거의 보람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은 중국에 수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장품 동물 실험’은 그치지 않는다고 해요. 권리보다 돈이 앞서고 맙니다. 권리는 따지지 않고 돈만 따지는 셈입니다.


  동물 권리를 살피지 않는 흐름은 동물한테만 머물지 않는다고 느껴요. 이주노동자한테도, 이 나라 모든 사람한테도 똑같이 맞물린다고 느껴요. 정규직하고 비정규직으로 갈리는 사회 얼거리도 권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 모습하고 맞닿아요. 모든 차별이나 계급은 바로 ‘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마음’인 권리를 하찮게 여기는 모습하고 이어져요.



아이들은 특히 돌고래 쇼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것은 동물에 대한 인간 본성과 순수한 동심에서 표현되는 환호이지만 결국은 이 아이들도 자라서 동물 쇼의 배경을 알고 나면 마음이 매우 아프겠지요. (112쪽)


우리 주변에는 동물들로 넘쳐나는데 여전히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에서는 생명들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 상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그대로 반영된 사회 현상입니다. (160쪽)



  흔히 ‘양계장’이라고 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닭 공장’이라고까지 할 만한 얼거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아지 공장’하고 ‘고양이 공장’이 버젓이 있는 한국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목숨을 기계 부속품하고 똑같이 다루지요. 멀쩡히 산 목숨이지만 마구 다루고 함부로 죽이며, 어쩌면 기계 부속품만도 못하게 다루면서, 오로지 돈이라는 잣대로만 바라보고 말아요.


  이 슬픈 흐름을 끊을 수 있을까요. 돈을 그만 바라보고 권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돈을 벌더라도 아름답게 버는 길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참말로 돈을 버는 살림도 아름답고 사랑스레 이웃 목숨을 고이 헤아리는 몸짓으로 할 수 없을까요.



여러분이 그냥 인간 1, 2, 3, 4가 아닌 것처럼 연구 대상이 되는 침팬지라도 애정을 담은 이름으로 불린 것은 제인 구달을 통한 연구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과학자들도 많았지만 … (171쪽)


인간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태어난 여러분이 같은 생명끼리의 도덕과 의무를 인지하고 실천한다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41쪽)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를 쓴 분은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사람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태어난 우리’가 앞으로는 뜻있고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웃 짐승을 짓밟고 올라선 사람이 아닌, 이웃 목숨을 고이 사랑할 줄 아는 어깨동무로 나아가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이 책에서 펼쳐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쓴이가 다음처럼 묻는 말을 가만히 새겨 보아야지 싶어요. “이제는 치킨을 못 먹을”까 걱정하는 살림이 아니라, ‘닭고기를 즐겁게 먹는 길’을 생각하자는 말을 곰곰이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왜 그동안 우리 눈에는 이런 상황이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만약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한 번쯤은 동물들의 고통이 끔찍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플 것이고 한 번쯤은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되겠지요. 좀더 용감한 사람이라면 불쌍한 동물을 그런 식으로 키우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양계 농가는 다 망하고 우리는 치킨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이쯤에서 못 본 척 넘어가 버릴까요? (68쪽)



  못 본 척 넘어가기 때문에 아픈 이웃이 있습니다. 뭇짐승도 아프고 숱한 사람들도 아픕니다. 이제는 못 본 척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보고 똑바로 세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슬그머니 넘어가는 짓은 이제 끝내고, 슬기롭게 맺고 풀면서 함께 기쁘고 아름다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야지 싶습니다.


  작은 권리를 지키기에 큰 권리를 지킬 수 있어요. 작은 곳을 바라보기에 큰 곳을 바라볼 수 있어요. 작은 사랑으로 손을 맞잡을 때에 커다란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어요. ‘값싼 튀김닭’이 아닌 ‘맛있고 좋은 튀김닭’을 즐겁게 나눌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3.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인문책)


* 이 글에 붙인 그림은 책에 나오는 그림으로, 철수와영희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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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jifs 2017-03-2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저도 이 책 읽어야지 하고 생각 중 입니다^^

숲노래 2017-03-27 12:27   좋아요 0 | URL
글을 쓰신 분이 동물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도 하셔요.
읽어 보시면 여러모로 뜻깊은 이야기를 마주하시면서
생각을 한결 널리 북돋우실 만하리라 생각해요 ^^
 
콩팥풀 삼총사 - 정의를 위해 싸운다! 큰곰자리 27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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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3



힘센 아이한테 세 아이가 처음으로 맞서다

― 콩팥풀 삼총사

 유승희 글

 윤봉선 그림

 책읽는곰 펴냄, 2017.2.10. 1만 원



  힘센 아이는 왜 여린 아이를 괴롭힐까요? 저로서는 힘센 아이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아요. 모든 힘센 아이가 모든 여린 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아요. 그리고 모든 여린 아이가 힘센 아이 앞에서 늘 주눅들지만은 않아요. 힘센 아이 앞에서 오금도 못 펴는 아이가 있지만, 힘세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꼭 힘이 세다고 해서 여린 아이를 괴롭힌다고 느끼지 않아요. 힘이 세지만 언제나 여린 아이하고 한자리에 있으면서 돕고 아끼는 따사로운 동무가 있어요.



“아, 그랬구나. 나랑 인사 나누려고 했구나.” 풀무치는 싹싹하게 웃으며 팔을 사마귀 어깨에 척 걸쳤어요. 사마귀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거든요. (16쪽)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제멋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마귀 놈도, 자식 편만 드는 교감 선생님도, 그리고 교감 선생님에게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길앞잡이 선생님도!” (44쪽)



  유승희 님이 글을 쓰고 윤봉선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콩팥풀 삼총사》를 읽습니다. 이 책은 풀벌레 마을에 빗대어 사람 마을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을 다룹니다. 풀벌레 마을은 온갖 풀벌레가 어우러지는 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 교감은 사마귀예요. 이 학교에서 힘센 노릇은 바로 사마귀가 해요.


  그렇다고 교감 선생님인 사마귀가 힘센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교감 선생님네 아이인 사마귀가 힘센 노릇을 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교감 선생님 사마귀는 아이 사마귀가 학급하고 학교에서 어떤 짓을 하는지 몰라요. 한집에서 살고 같은 학교에 있지만, 정작 교감 선생님 사마귀는 제 아이가 동무한테 얼마나 못살게 구는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 사마귀는 아버지이자 교감 선생님인 사마귀 앞에서 거짓말을 일삼았고요.



하지만 아무리 쫓아도 콩중이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잡을 만하면 풀숲으로 숨고, 돌아서면 주먹으로 엊어맞기를 여러 번, 사마귀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어요. “앙앙, 이놈, 두고 보자. 앙앙, 아버지에게 일러서 혼내 줄 거야.” (51쪽)


터덜터덜 걷던 방아깨비가 갑자기 멈춰 섰어요. “스스로 이겨 내는 수밖에.” 풀무치가 했던 말이 떠올랐거든요. “얘들아,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하고 걸음을 멈췄어요. “우리 한 번만 용기를 내자. 맞는 게 무섭더라도. 맞게 되더라도. 한 번만 용기를 내 보자.” (78쪽)



  힘센 사마귀가 동무 풀벌레를 모두 괴롭히는 동안 모든 풀벌레 아이들은 괴롭습니다. 이 어린이책은 풀벌레 마을에 빗대었을 뿐, 사람 마을에서 똑같이 생기는 ‘학교 폭력’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슬프며 주눅이 드는데다가 재미도 보람도 즐거움도 없는가를 낱낱이 그려요.


  그런데 한 가지 고빗사위가 있어요. 이 풀벌레 마을에 ‘새로운 풀무치’가 찾아와요. 그동안 이 풀벌레 마을 풀벌레 학교에는 ‘같은 풀벌레’가 꼭 풀무치 둘만 있었는데, 다른 마을에서 풀무치 한 마리가 찾아와서 풀무치는 세 마리가 됩니다. 이리하여 이 세 풀무치는 ‘콩팥풀’이라는 이름 앞머리를 쓰는 짝꿍이 되어요.


  세 풀무치는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힘센 사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숫자로 1:3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다른 풀벌레 마을에서 찾아온 ‘콩팥풀’ 가운데 ‘풀이’는 사마귀를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저 여느 풀벌레 동무로만 여깁니다.


  다른 풀벌레는 ‘풀이’가 하는 몸짓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을 바꿉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마음에 드리웠지요. 무척 오랫동안 힘센 사마귀한테 짓눌리거나 주눅이 들었지만, 씩씩한 동무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에서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여린 풀벌레가 서로 똘똘 뭉쳐서 힘센 사마귀’한테 맞서는 슬기를 모두어요.



그 순간 사마귀는 알게 되었어요. 화려하던 시절은 이제 영영 가 버렸구나. 다시는 약한 곤충을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구나. “하하, 내가 언제, 선물을 바랐다고. 하하, 니들이 찾아와 줘서 고맙…….” 아이들은 사마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몸을 홱 돌렸어요. (85쪽)



  어린이책 《콩팥풀 삼총사》는 사람 마을 학교 폭력을 풀벌레 마을에 빗대어 한결 부드러우면서 찬찬히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아쉬워요. 풀벌레 마을이라면, 사람처럼 똑같이 장난감이나 돈이 오가는 모습이 아니라, 참말로 풀밭살림을 더 깊게 헤아리면서 이야기해 볼 만하지 않았으랴 싶어요.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풀벌레이지만, 막상 ‘풀벌레 살림살이’를 엿보거나 들여다볼 만한 대목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럴 바에는 그냥 ‘사람 아이’가 나오도록 해서 이야기를 풀어 보아도 되지 싶어요.


  그리고 《콩팥풀 삼총사》는 ‘풀무치 풀이’가 거의 영웅처럼 다른 여린 풀무치를 이끄는 모습이 돋보여요. 영웅이 있어도 말썽거리를 풀 수 있기는 한데, 영웅 같은 한 아이보다는, 참말로 ‘콩팥풀’ 셋이 여린 힘이랑 슬기로 더 아름답게 실마리를 푸는 길을 다룰 만하지 싶어요. 주먹에는 똑같이 주먹으로 맞서는 이야기가 이 책을 통틀어 너무 길게 나옵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주먹이 아닌 사랑’으로 ‘풀무치 풀이’가 힘센 사마귀를 타이르는 대목이 갑자기 나왔어요.


  힘센 사마귀로서는 스스로 뉘우치거나 깨달을 겨를이 없이 영웅 풀무치 하나가 모든 실마리를 맺고 풀면서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지은 셈입니다.


  아무튼 이 어린이책은 우리 아이들한테 한 가지를 잘 밝혀서 보여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나한테 힘이 있다고 여린 이를 괴롭히는 데에 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힘이 있으니 여린 이를 아끼고 보살피는 데에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힘이 없으면 동무나 이웃한테 따순 손길을 바라기도 하고, 무엇보다 언제나 스스로 차근차근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3.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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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그린 책 - 2020 볼로냐 라가치 상 COMICS Early Reader 대상 수상작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7
리니에르스 지음,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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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6



누구나 할 수 있는 글쓰기·책짓기

― 내가 쓰고 그린 책

 리니에르스 글·그림

 김영주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3.6. 11000원



  아이들은 늘 무언가 새로 짓습니다. 풀밭에 앉아서 풀을 뽑아 가락지를 엮기도 하고, 풀피리를 불려고도 합니다. 밭 귀퉁이에서 놀다가 흙을 호미로 콕콕 찍고는 흙떡이나 흙만두를 빚기도 합니다. 봄꽃 한 송이를 꺾어서 귓등에 꽂는다든지 책상맡에 살그마니 놓기도 합니다.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들려준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지만, 노랫말이나 노랫가락이 생각나지 않아 이리저리 새롭게 짜맞추어 부르기도 해요. 또는 아이 나름대로 아예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우와, 신난다! 엄마가 색연필을 선물로 주셨어. 예쁜 무지개 조각을 가진 기분이 드는걸. 아주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어!” (3쪽)



  무엇이든 새로 짓는 아이들은 이렇게 새로 짓는 솜씨를 누구한테서 배웠을까요? 아직 글을 몰라도 종알종알 ‘꿈나라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어른한테는 안 보이는 도깨비나 요정이나 괴물을 두 눈으로 보고 나서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모르지요.


  리니에르스 님이 빚은 《내가 쓰고 그린 책》(책속물고기,2017)은 아이들이 저마다 꿈나라 이야기를 짓는 모습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책에 나오는 아이는 고양이랑 둘이서 노는데, 이 아이는 고양이하고 말을 섞어요. 고양이는 아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아이는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요.


  이 아이는 고양이 말만 알아들을까요? 어쩌면 구름이나 꽃하고도 말을 섞지는 않을까요? 연필이나 지우개하고도 말을 섞을는지 모르지요.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야 이야기가 재밌어진다니까. 기대해!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야.” (13∼14쪽)



  아이는 마침 어머니한테서 새 색연필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새로운 색연필로 무엇을 하며 놀면 재미날까 하고 생각하다가 책을 써 보기로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쓰고 그린 책입니다. 다른 데에서 본 얘기가 아닌 아이 나름대로 새롭게 지은 이야기로 빚는 책이에요.


  아이 곁에 앉은 고양이는 아이가 짓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새 이야기를 한 장씩 슥슥 그리면서 고양이한테 이것은 이거요 저것은 저거라고 말을 해 줍니다.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고빗사위에서는 짠 하고 놀래킬 만한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해요.



“뒷이야기가 궁금하니까 빨리 그려야겠어. 난 ‘우아’라고 말하는 게 제일 좋더라.” (41∼43쪽)



  아이가 손수 쓰고 그려서 빚는 이야기책에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깃듭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다른 아이(이면서 아이 스스로일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눈빛이 파랗고 머리카락이 빨간 아이가 ‘아이가 쓴 책’에서 주인공이 되어 여러 가지 모험을 합니다.


  아이가 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씩씩합니다. 두려움을 모르고 여린 이웃을 돕는 따사로운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이 곁에 앉은 고양이는 아이가 그리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런 이야기를 부드럽고 따사로이 그리는 모습이 반갑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고양이는 아이가 빚은 이야기를 맨 먼저 보고 들으며 즐기는 첫 손님, 그러니까 첫 독자라고 할 만해요.



“내가 쓰고 그린 책 완성! 우리 함께 출판사에 가 볼까?” (70쪽)



  새로 선물받은 색연필로 새롭게 이야기를 짓습니다. 새로 선물받는 공책이 있어도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만합니다. 새롭게 선물받은 책이 있을 적에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신나게 새로운 이야기를 꿈꿀 만할 테지요.


  글을 잘 써서 작가가 될 수 있고, 그림을 잘 그려서 작가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책 《내가 쓰고 그린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스스로 즐겁게 이야기를 빚을 줄 알기에 작가가 될 만해요.


  출판사에서 멋스럽게 찍어 주지 않아도 책이에요. 아이 나름대로 종이를 손수 실로 꿰매어도 책이지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뜰히 여미어 주어도 책입니다. 이때에는 온누리에 꼭 한 권만 있는 책이 태어나요.


  그나저나 책에 나오는 이 아이는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뒤에 출판사에 마실을 간대요. 자, 이 아이가 빚은 ‘깊은 밤 머리 셋 괴물 이야기’ 책은 출판사에서 받아들여 줄까요? 아이는 고양이하고 출판사에 다녀온 뒤에는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떤 이야기를 새로 지을까요? 2017.3.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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