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쓰세요 - 개인 정보 유출 사건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8
사스키아 훌라 지음, 이나 헤텐하우어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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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1


광고종이와 광고편지가 넘치는 나라에서
―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
 사스키아 홀라 글
 이나 하텐하우어 그림
 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4.30. 1만 원


  여기를 보아도 광고가 있고, 저기를 보아도 광고가 있습니다. 광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넘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를 둘러싸는 광고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하루 내내 수많은 광고에 휩쓸려 버릴 만하리라 느낍니다.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를 갈라치면, 우리가 앉는 자리 바로 앞 걸상 머리받이에도 광고가 있습니다. 멍하니 앞을 본다면 우리 눈높이에 있는 광고를 고스란히 쳐다보아야 합니다. 시골 군내버스 걸상 머리받이에도 광고판이 있어요.

  참말로 딱한 노릇입니다. 도시에서는 전철이나 버스를 탈 적에 어마어마한 광고에 둘러싸여야 하지요. 그냥 걷는 길에도 곳곳이 광고투성이입니다. 길바닥에는 수많은 광고종이가 바람에 나부끼곤 합니다.


비니는 광고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어요. “내일이라도 당장 이 트램펄린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광고지에 딸란 엽서에 주소만 적어 보내면 응모할 수 있어요! 우편 요금은 우리가 지불하니 우표를 붙일 필요도 없어요!” “우리도 응모하자! 주소만 쓰면 되니까 식은 죽 먹기야!” (5쪽)


  우리는 광고더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광고종이나 광고판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요? 어린이책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책속물고기,2017)은 너무 끔찍한 광고더미하고 얽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이책에서도 광고더미를 다룰 만큼 이제 우리를 둘러싼 광고물결은 매우 끔찍합니다.

  저희는 시골에서 살기에 저희 집 우체통에는 광고종이가 꽂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 이 대목은 낫다고 할 만해요. 집이 드문드문 있는 시골마을까지 돌며 광고종이를 뿌리는 사람은 없어요. 비록 마을 어귀에 있는 군내버스를 타는 곳 유리벽에 드문드문 광고종이가 붙기는 하지만요.

  가끔 도시로 마실을 가서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라든지, 이모 집이라든지, 큰아버지 집을 찾아갈 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 우체통이며, 이모 집 우체통이며, 큰아버지 집 우체통이며…… 또 다른 이웃집 우체통이며 그득그득 넘치는 광고종이를 으레 봅니다. 이 많은 광고종이는 왜 이렇게 새로 찍어서 왜 이렇게 날마다 수북하게 뿌려야 할까요. 이렇게까지 안 하면 안 되는 노릇일까요. 이렇게까지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이렇게까지 광고종이를 뿌리느라 숲이 아픈 줄 참으로 모르는 어른들일까요.


안타깝게도 기다리는 트램펄린은 오지 않았어요. 그 대신 집배원 아저씨는 메고 온 검은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건네주었어요. 선크림, 냉동 시금치, 트렁크 3종 세트, 커피 머신 등을 소개하는 광고지였어요. “쳇, 이런 걸 기다린 게 아니라고!” (17쪽)


  어린이책 《주소를 쓰세요,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은 아이들이 어느 날 문득 광고종이 하나를 보고는 ‘거저로 트램펄린을 준다’는 말에 사로잡혀서 멋모르고 ‘우편엽서를 보낸 일’에서 이야기를 엽니다. 아이들은 광고종이에 나온 그대로 믿어요. 틀림없이 ‘거저로 트램펄린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아무래도 광고를 하는 어른들은 이런 ‘착한’ 마음을 노리겠지요. 멀쩡한 사람들이 광고를 그냥 믿고 속아넘기를 바라는 속셈이겠지요. 아이들은 ‘개인 정보 유출’이 되는 줄 모르는 채 광고종이에 바보처럼 속고 맙니다.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살짝 속여서 물건을 파는 광고종이가 있어요. 행사장에 오면 뭘 거저로 준다고 속이고는 막상 행사장에서 뭔가 사지 않으면 못 나가게 하는 일이 흔하지요. 전화로도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를 속이는 광고가 꽤 흔합니다. 시골 우체국을 보면 ‘광고전화에 속아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말라’는 알림글을 매우 크게 곳곳에 붙여놓아요.

  그나저나 이 아이들한테 오는 것은 트램펄린이 아니에요. 이 아이들은 ‘거저로 주는 광고편지’를 받습니다. 우체부는 날이면 날마다 수많은 광고 편지를 아이들한테 나르지요. 날마다 수북하게 받는 광고편지는 아이들 방이며 마루이며 집안에 가득 쌓입니다.


“맙소사! 이게 다 어디서 온 거야? 혹시 누구한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줬니?” 수많은 광고지를 보고 바나나의 엄마가 물었어요. “엄마, 사실은 …… 딱 한 군데에 …… 트램펄린을 받고 싶었거든요.” 바나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았어요. (23쪽)


  아이들은 어머니한테 꾸밈없이 말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털어놓습니다. 아이들 말을 들은 어머니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기에 이 말썽거리를 푸는 길을 찾아내려 합니다. 아이들은 ‘수신거부’를 몰라도 어른들은 이를 할 줄 알아요. 그리고 아이들은 호되게 한 번 일을 치렀으니 다음에는 ‘주소를 함부로 남한테 알려주는’ 일 따위는 안 하겠지요.


개 사료 광고지로 종이비행기를 만들며 말했어요. “나도 심심해.” 비니는 유람선 여행 광고지를 둘둘 말아 원통을 만들었어요 … 비니가 대답하며 선크림 광고지를 둘둘 말아 작은 원통을 하나 더 만들었어요. “이걸로 뭔가를 만들어 볼까?” (24쪽)


  제 어릴 적을 더듬어 봅니다. 19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낸 저는, 그무렵에는 광고종이조차 알뜰히 건사했습니다. 그무렵에는 광고종이를 함부로 뿌리는 사람이 드물었고, 종이 한 장조차 곳곳에 쓸 데가 많았어요. 어른은 어른대로 종이를 알뜰히 건사해서 쓰고, 아이는 아이대로 종이접기를 합니다. 딱지도 접고 비행기도 접어요. 광고가 적힌 종이이건 아니건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종이를 알뜰히 쓰자’는 마음뿐입니다.

  달력종이를 뒤집어서 교과서나 책을 쌌어요. 어릴 적에는 다달이, 또는 보름마다, 때로는 주마다 학교에서 ‘폐품 모으기’를 했으니, 길을 가다가도 뭔 종이가 날리는 모습을 보면 얼른 주워서 모아 놓기도 했어요. 제가 어릴 적에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신문종이에 싸서 주기도 했습니다.

  종이를 아끼거나 알뜰히 쓰는 마음이라면, 모든 종이가 숲에서 오는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베어서 얻는 종이인 줄 알기에 종이를 함부로 굴리지 않아요. 광고종이를 수없이 뿌리고, 광고 편지를 끝없이 보내는 어른 사회는 ‘숲에서 온 종이’보다는 ‘광고를 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속셈’이 더 크다고 할 만합니다.

  ‘개인 정보’를 마구 캐내어 여기저기 퍼뜨리는 짓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합니다. 돈 때문에 하지요. 권력 때문에 하고요. 서로 돕는 작은 마을이라면 광고종이가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살림을 알뜰히 가꾸는 살가운 마을이라면 광고편지를 자꾸 띄우지 않아도 서로서로 오붓합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개인 정보를 함부로 캐내거나 빼내지 않아요.

  돈으로 얼룩진 광고종이하고 광고편지는 이제 그칠 수 있기를 빕니다. 개인 정보를 넘보는 짓도 이제 말끔히 사라질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2017.5.1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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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 - 왔노라, 찾았노라, 내 발로!
안민영 지음, 임근선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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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9


왜 친일파가 살던 집까지 다리 아프게 살필까?
―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
 안민영 글
 임근선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7.4.7. 14000원


  어디에나 ‘숨은 유적’이 있습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숨은 유적이 있고, 숨은 유물도 있어요. 제가 사는 시골에도 숨은 유적이 있어요. 문화재로 오르지 않았어도 마을 곳곳에 고인돌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는 마당 한켠에, 어느 집에는 밭 한켠에 고인돌이 덩그러니 있지요.

  저희 집 밭뙈기에서 ‘숨은 유물’을 캐내기도 합니다. 어떤 숨은 유물인가 하면 1980년대 첫무렵에 전라도 쪽에서 돌던 ‘짝퉁 베지밀 유리병’입니다. 이곳 시골에 처음 터를 얻어 밭을 일구려고 바지런히 호미질을 하다가 땅속에서 캐냈어요. 요새는 볼 수 없는 ‘짝퉁 베지밀 유리병’은 어느 모로 본다면 쓰레기일 수 있을 텐데, 이런 쓰레기도 서른 해 남짓 흐르면, 또 여기에 서른 해가 더 흐르면 ‘지난 어느 한때를 돌아보는 유물’ 구실을 할는지 몰라요.


겸재 그림 속의 필운대는 소나무 숲 뒤의 절벽과 그 앞의 너른 바위가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현재는 바위 바닥 위로 건물이 세워져 있어 예전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24쪽)

수성동 계곡을 찾아 올라가는 길은 여느 계곡 길과 달라요. 주택가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죠. 숲도 없는 이런 도심에 무슨 계곡이 있을까 생각하며 골목 끝에 이를 무렵, 갑자기 인왕산의 풍경이 펼쳐진답니다. (32쪽)

수성동 계곡 복원 사업으로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오랜 기간 이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아쉬움이 컸던 거예요. 그래서 건물 일부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기를 원했고, 결국 서울시에서 이런 잔해를 남겨 둔 거라고 해요. (37쪽)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안민영 님이 쓴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역사교사 한 사람이 손과 발과 땀과 품으로 일구었다고 할 만합니다. 숱한 역사 자료를 더듬고, 수없이 골목을 헤집으면서 ‘숨은 유적’을 하나하나 찾아냅니다. 스쳐 지나갈 적에는 알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다리품을 팔거나 손품을 팔면서 속속들이 찾아내어 밝혀요.

  이 책은 닷새에 걸쳐서 다섯 군데 숨은 유적을 이야기합니다. 닷새 동안 다섯 곳을 함께 걷자고 이끌지요.

  이 대목에서 얼핏 ‘고작 닷새를 걷는다고?’라든지 ‘겨우 다섯 군데라고?’라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닷새에 걸쳐 다섯 군데를 걷자면 한두 시간이 아닌 여러 시간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 시간을 걸으며 여러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슥 훑고 지나가는 닷새나 다섯 군데가 아닙니다. 한 가지를 바라보더라도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이러한 ‘숨은 유적’하고 얽힌 수수께끼하고 실마리를 더 곰곰이 생각해 보자는 뜻이지요. 더 많은 것을 보거나 더 먼 길을 나서기 앞서, 작은 것 하나를 눈여겨볼 줄 아는 몸짓하고 마음을 들려준다고 하겠습니다.


나라 팔아넘기고 사례금을 받은 윤덕영은 프랑스에서 넘어온 설계도를 입수해 집을 지었어요. 지금 우리가 사진으로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데,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땠을까요. (44쪽)

지금 답사를 다니면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요? 우리가 왜 친일파가 살던 집의 흔적까지 찾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여태껏 우리는 벽수산장 입구의 대문 돌기둥을 찾고, 벽수산장이 있던 곳을 둘러보고, 99칸 한옥이 있던 곳까지 살펴봤어요. 어땠나요? 다리 아프다고요? 그래요. 다리 아플 만큼 꽤 긴 거리였죠. 그만큼 당시 친일파 윤덕영이 소유했던 토지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거죠. (60∼61쪽)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첫날 ‘서촌 일대’를 걷습니다. 배화여고 둘레에 있는 필운대에서 첫발을 뗍니다. 백호정 바위 글씨를 살피고, 수성동 골짜기하고 기린교를 살피지요. 서울 한복판에서 ‘골짜기’를 살펴요. 재미나지요.

  이다음으로 박노수 집을 돌아봅니다. 벽수산장이라는 우람한 집이 있었다는 터를 돌아보고, 이 벽수산장이 선 자국을 알려주는 담장이나 돌기둥이나 다릿돌을 찾아나섭니다. 윤덕영 집도 돌아봐요.

  일제강점기에 친일매국을 한 사람들 집을 돌아보는 길인데, 이러한 사람들 옛 집터를 돌아보는 데에도 뜻이 있습니다. 이들이 나라를 팔며 휘두르던 무시무시한 권력을 새삼스레 되새기고, 우리가 이 땅에서 새롭게 걸어갈 길을 되짚는 뜻이 있어요.

  가재우물을 살피고, 우당기념관을 지나서, 선희궁과 세심대를 살펴요.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또 봅니다. 신교 다릿돌이 오늘날 어디에 있고, 이 다릿돌을 어떻게 찾아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동안 학교 운동장에 있던 돌 조각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죠. 최근에 100년 전 독일 신부들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되면서 운동장 조각들이 신교 다릿돌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거예요. (78쪽)

10여 년 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그때만 해도 집이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때 잘 보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죠. 그런데 건물 아래쪽으로 몇 층의 기단이 보이네요. 꽤 공들여 돌을 깎은 듯하죠. 현진건 선생이 집을 지을 때 깎은 건 아닌 것 같아요. (98쪽)


  둘째 날은 ‘창의문 밖 동네’를 걸어요. 이때에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현진건 집 자리를 살핍니다. 현진건 님이 살던 집은 얼마 앞서까지 꽤 멀쩡하게 있었다지만, 그만 헐리고 사라졌다지요. 한국 현대문학을 밝힌 이들 가운데 옛집이 오늘날까지 멀쩡히 살아남은 곳이 매우 드물다는데, 이 가운데 한 곳인 현진건 집은 나라에서도 서울에서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셋째 날은 ‘한양도성’을 인왕산을 따라서 걸어요. 만만할 수 없는 길입니다. 도성길을 걸으면서 성을 쌓은 돌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엿봅니다.

  넷째 날은 ‘서대문 밖 동네’를 걸어요. 서대문 밖에 있는 독립문이 언제 어떻게 자리를 옮겼는가를 살피고, 서대문형무소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눕니다. 옥바라지 여관 골목을 지나고 ‘달쿠샤’라는 집을 살펴요. 달쿠샤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처럼 있던 집이라고 했다더군요. 이 집을 지은 서양사람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사람을 도우려고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서 쫓겨났대요. 그래서 이 집을 지은 서양사람이 살던 집은 오랫동안 빈 채 있었다더군요.

  이제는 병원 한쪽에 움츠러든 경교장을 돌아보고 서대문 터가 어디인가를 살핍니다. 이러구러 본다면 넷째 날에 걷는 곳은 한국 현대사에서 독립운동과 맞물립니다. 그런데 독립운동하고 맞물리는 ‘숨은 유적’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 이들하고 다르게 아프고 슬픈 자국이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이들이 살던 집은 좀처럼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대문 형무소) 건물과 담장이 헐리면서 남은 벽돌은 이 부근의 독립공원을 조성하는 데 쓰였지요. 일부는 강원도의 한 공사장에 팔려 나갔다가 뒤늦게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고요. 그 벽돌은 서대문형무소라는 유적지의 한 조각이기도 하지만,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힘들게 노동(노역)을 해서 만든 것이기도 하거든요. (169쪽)

(독립운동을 한) 테일러 가족이 1942년에 미국으로 추방된 뒤 딜쿠샤는 주인이 없는 채로 방치되어 왔죠. 그러다가 10여 가구가 이곳으로 들어와 칸을 나누어 살기 시작했어요. (178쪽)

김구 선생 서거 후 경교장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요. 몇몇 나라의 대사관으로 사용되다가 병원이 들어서지요. 경교장 뒤로 병원 건물이 지어지고, 경교장 내부도 병원 공간으로 바뀌면서 변화가 생기죠. (192∼193쪽)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는 다섯째 날 ‘정동 일대’를 걸으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옛 러시아 공사관을 지나고, 프랑스 공사관하고 신사 참배 터를 지나요. 손탁호텔 터하고 이화학당을 살피고, 유관순 빨래터라는 곳을 돌아보지요. 이밖에 정동교회나 배재학당이나 경성재판소나 덕수궁 구름다리 들을 돌아보는데, 알게 모르게 서울 한복판에서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을 듯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서울은 눈부시게 달라져요. 아파트뿐 아니라 건물이 매우 높게 올라요. 서울에서 서른 해 즈음 된 건물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쉰 해나 일흔 해를 묵은 건물이나 집은 더욱 쉽지 않고요. 꼭 한 곳에서 쉰 해 동안 자리를 지킨 오랜 가게를 찾아야 하지 않더라도, 너무 빠르게 달라지는 서울인 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거나 모이거나 남기 어렵다고도 할 만해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공회 서울성당에서는 기와, 처마와 서까래, 한옥 문살 등의 우리 전통 가옥 요소를 찾아볼 수 있었어요. 서양 기독교가 현지에 와서 건축 문화를 일부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려 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252쪽)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유적이 아닌 살림이었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유적이 아닌 무시무시한 권력이었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뼈아픈 생채기였습니다. 숨은 유적은 지난날에는 수수한 마을이거나 골짜기이거나 바위였습니다.

  2017년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 새로운 유적을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광화문 한쪽에 조그맣게 ‘촛불돌’을 놓을 수 있어요. 거짓으로 얼룩진 권력을 평화롭게 끌어내린 ‘촛불돌’을 놓을 만해요. 촛불돌 곁에는 거짓으로 얼룩진 권력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동안 아프게 가라앉고 만 배 한 척을 되새기는 ‘뱃돌’을 놓을 수 있어요. 바다에 가라앉는 배가 아닌, 하늘로 날아오르는 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들 가슴이 아물면서 새로운 사랑이 돋을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을 담은 ‘뱃돌’을 나란히 작게 둘 만합니다.

  우리는 나라 곳곳에 ‘소녀상’을 놓으면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새기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톺아봅니다. 겉보기로는 작은 소녀상일 뿐이겠으나, 우리 역사는 바로 우리 손으로 짓는다고 하는 뜻을 밝히는 거울이 되어요.

  숨은 유적을 찾는 걸음이란, 숨은 이웃을 찾고, 숨은 역사를 만나며, 숨은 새길을 헤아리는 나들이라고 느낍니다. 닷새에 걸쳐 서울에서 숨은 유적을 찾아본 몸짓으로 나라 곳곳에 깃든 숨은 유적을 함께 찾아나서 보면 어떨까요? 2017.4.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 다음 그림/사진은 책과함께어린이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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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7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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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2


‘누구 뽑느냐’에서 ‘어떻게 살까’로
―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7.4.19. 15000원


  대통령 자리에 있던 사람을 2017년 봄에 촛불물결이 끌어내렸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 새 일꾼이자 심부름꾼을 앉히려고 2017년 5월에 선거를 새로 합니다. 앞으로 몇 해 뒤에는 지자체 우두머리를 새로 뽑을 테며, 국회의원도 새로 뽑을 테지요. 몇 해에 한 차례씩 ‘나라일꾼’이나 ‘나라심부름꾼’을 새로 뽑습니다.

  저는 대통령이라는 이름부터 새롭게 생각해 보려 합니다. 정치나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대통령’이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만, 이 자리에 서는 이가 하는 일을 헤아린다면, ‘크게 아울러 다스리는’이라는 뜻보다 다른 뜻으로 바라보고 싶어요.

  그저 대통령이라고 할 적에는 가장 높거나 센 권력자로 느끼기 마련입니다. 이러다 보니 이제껏 대통령 자리에 선 이는 언제나 가장 높거나 센 권력으로 행정을 맡았고 정책을 폈어요.

  대통령 자리에 서는 이들이 ‘한 표를 얻고자’ 사람들 앞에 설 적에는 저마다 ‘머슴’이라거나 ‘일꾼’이라거나 ‘심부름꾼’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표를 거두어들여 대통령으로 뽑히면 하루아침에 ‘가장 센 권력자’로 바뀌기 일쑤였어요.


인종, 종교, 성별, 재산, 학력에 따른 차별 선거권이 없어지고 보통 선거권이 정착된 까닭은 민중들의 요구 때문이었어. (11쪽)

나를 포함해서 기성세대는 권리보다 의무에 익숙하고, 일상생활 속 정치적 권리에 둔감한 편이란다. (20쪽)

(한국에서) 역사상 최초의 보통 선거에 여성은 참여하지 못했고 10% 정도의 세대주 남성이 선출한 대의원이 1948년 국회의원 선거법의 기초인 보통선거법을 마련했던 거야. (24쪽)


  다가오는 새 선거날을 비롯해서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선거날에 제 한 표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대통령 뽑기’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권력자인 대통령이 아니라, 스스로 머슴이라 밝힌 이라면 참말로 ‘머슴’ 구실을 하며 나라살림을 가꿀 사람을 뽑고 싶습니다. 스스로 일꾼이라 밝힌 이라면 참말로 ‘나라일꾼’이 될 사람을 뽑고 싶어요. 스스로 심부름꾼이라 밝힌 이라면 참말로 ‘나라심부름꾼’이 될 사람을 뽑고 싶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벼슬자리란 크거나 드센 권력을 부려서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다그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정치나 나라나 사회를 세우는 까닭은 권력자가 권력을 누리도록 하려는 뜻이 아닌, 아름다운 나라와 즐거운 나라와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도록 일할 슬기로운 사람을 곁에 두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1950년에) 이승만은 방위군 지도부에 대한청년단 간부를 임명했어. 그런데 이들이 예산을 횡령하고 식량과 침구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소집된 사람들이 굶거나 얼어 죽었단다. 이 사건은 국회의 조사로 사정이 알려졌지. 국회 조사단은 6개월 동안 5만 명 이상의 징집병이 군 훈련소에서 굶어 죽었으며 생존자 가운데 80%가 일을 할 수 없는 신체 쇠약자라고 보고했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년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도망 다니거나 일부러 손가락을 잘랐다는구나. (49쪽)

(1956년에) 공약과 정견 발표는커녕 경쟁자르 친일, 친공으로 몰아붙이던 이승만과 자유당은 선거를 맞아 ‘반공 통일, 민주 창달, 자립 경제’라는 3강과 14항목을 발표했어. 그런데 이 14개 항목은 실현 가능한 정책 방안이 아니라 일반적 언급에 그치고 있어. 참으로 성의 없는 공약이라 할 수 있어. (90∼91쪽)


  이임하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철수와영희,201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이임하 님은 대학교수이면서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니라고 합니다. 한국을 가로지르는 선거 역사를 살피던 어느 날 ‘처음으로 투표권을 쓴 딸아이’를 마주하다가 불현듯 ‘이 선거라는 권리를 그동안 너무 얕게 여겼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해요. 선거권을 처음 누릴 적에도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피를 흘려야 했다는데, 이렇게 피를 흘려 얻은 선거권조차 꽤 오랫동안 숱한 차별로 이루어졌다지요. 더욱이 선거권은 있더라도 ‘한 번 뽑힌 사람이 일꾼 구실을 못 하거나 안 할 적에 사람들이 이를 따지거나 나무랄 길’이 오랫동안 제대로 서지 않았다지요.

  2017년에 사람들이 작은 손길을 수없이 그러모아 촛불 한 자루를 들고서 일군 ‘대통령 끌어내리기’는 법을 뛰어넘고 정치나 사회라는 틀마저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물결을 이룬 발자취로 역사에 적히겠지요. 국회가 하지 못하거나 않고, 정치꾼이 안 하거나 고개를 돌렸던 일을, 바로 작은 사람들 스스로 했어요.

  이임하 님은 이 여러 흐름과 얼거리와 이녁 딸아이를 마주하면서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를 썼다고 합니다. 이제 처음으로 선거권을 손에 쥐고 이 한 표를 쓸 젊은이한테 우리 선거권 발자국을 제대로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앞으로 선거권을 손에 쥐고서 우리 권리를 비로소 누릴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도 이 나라 선거권이 걸어온 길을 똑똑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지요.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쌓여 있던 국민의 불만이 (4·19혁명을 거치며) 각종 시위로 폭발했단다. 그런데 민주당은 민중들이 요구하는 부정 선거 원흉 처단, 발포 책임자 처벌, 부정 축재자 처리에 소홀히 했어. 게다가 창당 초기부터 갈등을 겪었던 구파와 신파가 심하게 대립했단다. (148쪽)

(1961년에 쿠테라를 일으킨 박정희) 집권 세력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지방자치제의 형식까지 폐기했어. 따라서 오늘날 지방자치제의 시행은 독재 권력에 끊임없이 투쟁해 얻은 민주화의 결실이라 할 수 있어. (151쪽)


  고려나 조선, 또 발해나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나 가야나 부여, 또 옛조선 같은 나라에서는 나라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핏줄에 따라 물려주었습니다. 그무렵에는 선거권이란 아예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계급이 있었지요. ‘종’이나 ‘머슴’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서 해방이 된 뒤에 비로소 ‘몇몇이 거머쥔’ 정치 틀이 살짝 달라집니다. 비록 한국에서 첫 선거는 차별이 없는, 이른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선거는 아니었으되 1940년대 끝무렵부터 한국에서 선거라는 역사가 첫 발자국을 떼어요.

  처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는 대통령이라는 이름마따나 ‘가장 센 권력자’로서 사람들 위에 올라서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럽거나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닦는 데에는 마음을 안 썼다지요. 그 드센 권력을 더욱 단단한 권력으로 움켜쥐려고 하는 데에만 마음을 썼다고 해요.

  한국사람은 첫 선거권을 손에 쥐었으나 그만 안타까운 길을 걸었습니다. 다음 선거권에서도, 이다음 선거권에서도 이 아픈 발자국은 이어집니다. 이러다가 1960년에 드디어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4월 혁명’을 이루지요.


주민등록 발급 연령은 17세, 운전면허는 18세, 공무원 임용은 18세, 혼인 적령은 남 18세와 여 16세란다. 대부분 18세에 권리가 주어지는데, 뚜렷하 근거 없이 18세에 선거권만 허용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득권 세력은 젊은이들을 두려워해. (152쪽)

국민들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강력히 요구했어. 그런데 비밀회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정권은 차관을 비롯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만 치중했어. 이에 학생과 시민, 언론은 ‘굴욕적인 대일 외교’에 반대했어. (184∼185쪽)


  우리가 우리 손으로 혁명을 이룬 1960년 그무렵, 정치꾼은 이녁 정치 권력을 붙잡는 데에 바빴다고 합니다.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이 대목을 놓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같은 일이 오늘날 자칫 되풀이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슬기롭게 역사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똑똑하게 역사를 새로 짓지 않는다면, 뼈아픈 생채기는 다시 생길 수 있어요.

  혁명이란,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고 할까요. 권력자를 끌어내린 자리에 다른 권력자가 들어서지 않도록, 대통령을 비롯한 벼슬자리는 권력을 휘두르라고 하는 자리가 아닌, 일꾼이나 심부름꾼이 일하고 심부름을 하는 자리가 되고록 가꾸어야 한달까요.

  글쓴이 이임하 님은 ‘일상 정치’에 오래도록 무디었다고 해요. 선거권을 잘 누리면 되는 줄, 선거만 잘 하면 되는 줄 여겼다고 해요. 그렇지만 이제는 선거권만으로는 될 수 없고 끝나지 않는 줄 느낀다고 해요.

  젊은이하고 푸름이하고 어린이 앞에서 새롭게 배우며 가르칠 수 있는 어른(기성세대)이 되어야지 싶어요. 우리 손으로 일꾼이나 심부름꾼을 새롭게 뽑을 뿐 아니라, 우리 집과 마을과 고장이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럽도록 힘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권리를 넘어서, ‘참답게 일할 사람을 슬기롭게 살피는’ 권리가 되어야지 싶어요.


(박정희) 공화당은 통일이나 지방자치제 등 모든 문제는 경제 성장 뒤에 이룩하자고 주장했지. (190쪽)

박정희는 야당은 거짓말쟁이라며 여당의 성공한 정책으로 한일 회담과 우러남 파병, 1차 5개년 계획으로 인항 중농 정책을 꼽았어. (194쪽)

(1967년에 박정희가 내놓은) 대국토 건설 계획은 20년에 걸친 장기간의 개발 계획으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국민의 소망을 반영한 것도 사실이야. 그 결과는 100만 표차의 압승으로 나타났지. 그런데 지금도 이런 국토 건설 공약이 낯설지가 않지? 4대강 사업, 경인 운하 등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내걸었던 공약이야. (197쪽)


  일흔 해 가까운 한국 선거 발자취를 살피면, 대통령으로 뽑히는 이들은 으레 ‘경제 성장’하고 ‘국토(또는 지역) 개발’을 내세웁니다. ‘성장·개발’이 나쁜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동안 성장이나 개발이라는 말 앞에서 모든 마을살림이나 시골살림이 무너져야 했습니다. 여태껏 성장이나 개발을 앞세워 민주나 평화나 평등이나 통일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성장하고 개발을 내세운 이들이 대통령이 된 뒤에 무엇을 했는지, 또 이들이 한 일 때문에 나라가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를 차분히 되새겨야지 싶어요. 한 번 지으면 오래 가는 아파트가 아니라 얼마쯤 지나 재개발을 해야 한다는 아파트만 가득한 한국이에요. 대형발전소와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온 나라가 멍들었어요. 평화 아닌 안보만 앞세우면서 군대와 전쟁무기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고, 남녘이나 북녘 모두 이 군대와 전쟁무기를 끌어안느라 허리가 졸려요. 군대에서는 온갖 말썽이 끊이지 않기까지 해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야 할까요? 대통령 공약이나 정책을 들여다보기 앞서,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삶과 살림과 마을 바라는지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돈을 더 벌도록 해 준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니까 우리한테 좋았을까요? 성장과 개발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적에 우리한테 도움이 되었을까요?


(전두환) 신군부는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거나 보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행정과 사법 전반에 걸친 주요 업무를 장악했어. 그러고는 정치인의 정치 활동 통제, 공직자 숙청, 언론 통폐합, 민주화 활동을 하 교수와 기자의 해직, 삼청교육대 운영 따위의 조치로 사회 통제를 강화해 나갔어. (253쪽)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경제 성장률 7%, GDP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대국 입성이라는 747공약은 휴짓조각이 됐지. 오히려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률만 엄청나게 늘어났어 … 박근혜의 임기 동안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기는커녕 삶은 점점 힘들어졌지. 세월호 참사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지. (294, 296쪽)


  누구를 뽑느냐도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만, ‘누구 뽑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삶·살림’을 지으려 하느냐 하는 생각이 곧게 서야지 싶습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꿈꾸며 어떻게 사랑할 적에 스스로 기쁜 하루가 될 만한가를 생각해야 ‘누구를 뽑아야 좋을까’ 하는 그림이 환하게 나오리라 봅니다. ‘대통령 적합도’를 따지기 앞서 ‘우리 집·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스스로 살피고, 이러한 길을 저마다 즐겁게 걸어가면서 선거날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잘 벌게 해 준다는 거짓말에는 더는 안 속아야지 싶어요. 2017.4.1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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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한 수학자의 탄식
폴 록하트 지음, 박용현 옮김, 이승우 감수 / 철수와영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6


‘수즐이’ 아닌 ‘수포자’를 기르는 학교
―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폴 록하트 글
 박용현 옮김
 철수와영희 펴냄, 2017.3.30. 12000원


  ‘수포자’라는 말을 처음 듣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첫말은 “뭔데?”입니다. 이 아리송한 말을 누가 왜 지어서 쓰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수포자 = 수학 포기 자’를 줄인 낱말이더군요. 저라면 ‘수그이(수학을 그만둔 이)’나 ‘수집사(수학을 집어치운 사람)’쯤으로 줄여서 쓸는지 모르지만, 수포자이든 수그이나 수집사이든 다 그 말이 그 말일 테지요.

  그나저나 ‘수포자’라는 말은 꽤 묵은 말이로구나 싶고, 이 이름을 받거나 붙이거나 듣는 사람이 제법 많구나 싶어요. 그러면 이 말마따나 ‘영포자(영어 포기)’나 ‘국포자(국어 포기)’나 ‘과포자(과학 포기)’, 나아가 ‘학포자(학교 포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미학적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단순한 게 아름답다’. 수학자들은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즐긴다 … 바로 호기심을 느끼고, 놀이를 하고, 상상력을 이용해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24, 25쪽)

학교에서 이뤄지는 수학 교육을 보면서 가슴이 아픈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저토록 다채롭고 환상적인 상상의 모험인 수학을 고작 메마른 암기와 문제 풀이법 따위로 쪼그라뜨려 놓았다 … 예술은 ‘정답’이 아니라 설명과 논증에 있다. 정답이 나오는 맥락을 밝히고 그것이 왜 그런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논증이다. 수학은 논증의 예술이다. (28, 30쪽)


  저는 수학이라고 하는 갈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미워하거나 때려치우자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퍽 재미있으면서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풀어내는 길을 스스로 새롭게 찾는 수학이라는 놀이를 그야말로 놀이로 여겨요. 공부나 과목이나 학문이라기보다 놀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교과서를 펴거나 시험종이를 코앞에 놓으면 이때부터 아찔하더군요.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오직 숫자하고 기호만 춤추는 지식이나 정보나 시험 문제일 적에는 수학은 그야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녀석이 되었어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는 수학뿐만이 아니에요. 윤동주 님 시나 김소월 님 시를 문학으로 읽지 않고 낱낱이 쪼갠다면 어떻겠어요? 시 한 줄을 문학이 아닌 ‘문장 분석’이나 ‘성분 분석’ 따위를 한다면 어떠할까요?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나게 누리지 않고, ‘주제·구성·교훈·소재·비유·은유’를 찾는다면서 갈갈이 쪼개 놓으면 너무나 따분하면서 골이 아프기까지 할 테지요.


아이들은 지금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니까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수학 수업을 받느니 아예 수학 수업을 없애버리는 게 낫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요. (36쪽)

수학을 한다는 것은 발견과 추측을 해나가며 직관과 영감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혼돈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 학교 수학 교육의 핵심 문제점은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수학 수업에서 ‘문제라고 하는’ 게 있기는 하다. 저 재미없는 ‘연습 문제들’ 말이다 … 좋은 문제는 당신이 푸는 방법을 몰라야 한다. 그래야 좋은 퍼즐이 되고 좋은 기회가 된다. (39, 43, 44쪽)


  폴 록하트라는 수학자가 쓴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철수와영희,2017)를 읽었습니다. 참으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수학자인 글쓴이는 수학이 대단히 아름답고 재미난 ‘놀이배움’이나 ‘배움놀이’인데 그만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갈갈이 쪼개 놓으면서 거의 모든 학생이 이 놀이배움·배움놀이를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기고 만다고 밝힙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수학은 ‘방정식·수식·공식’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수학은 ‘스스로 생각을 지어서 실마리를 찾고 수수께끼를 푸는 기쁨을 누리는 놀이’라고 합니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도록 이끄는 수학이 될 때에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활짝 웃음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예요, 정작 이렇게 수학을 즐겁게 가르치거나 기쁘게 배우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한국사람이 쓴 책이 아닌 외국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러니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수학 교육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못 한다는 소리입니다. 꽤 많은 나라에서 수학을 골치가 아픈 지겨운 과목으로 굴러떨어뜨린다는 소리예요.


역사 교사는 역사적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와 동떨어져 인물 이름과 날짜만 나열하는 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왜 수학 교육만 19세기 방식에 고착된 걸까? (64쪽)

우리 학생이 창조적인 추론과 같은 ‘높은 수준’의 사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역사에 대한 글이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에세이는 왜 쓰게 하는 거죠? 학생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교사가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들은 무엇 하나도 스스로 증명해 본 적이 없습니다 … 수학을 한다는 건 언제나 패턴을 발견하고, 아름답고도 의미 깊은 설명을 빚어내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67, 69쪽)


  글쓴이는 문학이나 역사나 다른 여러 가지에 빗대어 오늘날 수학 교육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줍니다. 역사를 가르치면서 ‘연표·이름·날짜’만 외우도록 한다면 대단히 지겹고 싫으며 괴롭겠지요. 수학도 이와 같아서 ‘어느 문제를 하나 풀어내는 흐름과 길을 즐기도록’ 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지겹고 싫으며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역사 교육은 ‘임금님 이름 외우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어느 사건이 일어난 날짜 외우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어느 사건에 얽힌 주제나 교훈 찾기’가 아닙니다. 역사 교육은 우리 살아온 나날을 가만히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오늘 이곳에서 짓는 살림을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새롭게 찾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마당일 때에 뜻있고 참되어요.


살아 있는 인간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중 하나로 써내려간 재치 있고 즐거운 논증 대신에, 우리는 이처럼 시무룩하고 영혼 없는, 마치 관공서에서 온 우편물 같은 획일적인 증명을 보고 있다 … 학생은 필요에 따라 정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75, 84쪽)

학교는 그동안 생각하고 창조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는 그저 등급을 매기기 위해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도록 훈련하는 곳이다 … ‘수학은 유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이들은 미래에 기업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영혼 없는 노동을 감당할 노동자로 키워질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7, 127쪽)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쓴 분은 누구보다 ‘수학 교사’를 매우 매섭게 꾸짖습니다. 교육 정책이나 교과서도 매섭게 나무라지만, 참으로 수학 교사를 아주 꾸짖어요. 수학 교사가 듣기에는 난데없는 불벼락일 수 있을 텐데, 곰곰이 듣고 보면 수학 교사가 불벼락을 맞을 만하구나 싶기도 해요. 아무리 나라에서 교과서를 쥐어 주고 이 교과서대로 ‘진도를 나가라’고 교사한테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교사로서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도록 ‘공식을 외워 문제 정답 맞추기’만 하도록 닦달하거나 다그쳐서는 안 될 노릇일 테니까요.

  공식을 못 외워도 얼마든지 ‘스스로 새로운 길(공식)을 찾아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거의 잘 잡았으나 막상 ‘정답은 틀리게’ 적었어도 ‘문제를 풀어내는 길’을 즐겁게 걸었는가를 돌아보고 북돋울 줄 알아야 할 테고요.

  문학이나 말(한국말·국어)을 가르칠 적에도 같아요. 문학 시험을 치르면서 ‘정답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사람마다 문학을 다르게 느끼면서 읽으니까요. 윤동주 님이나 김소월 님 시를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껴서(감동해서)’ ‘똑같은 교훈이나 주제’를 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아요. 똑같은 책 한 권을 놓고서 스무 아이가 있으면 스무 가지 느낌글(독후감)이 나올 수 있도록 북돋아야 참다운 문학 교사이겠지요. 수학 교사도 이와 같으니, 아이들이 공식만 잘 외워서 시험 문제만 잘 풀어 정답만 잘 맞히도록 하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당신의 수학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당신이 내 학생이라면 나는 단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밌게 풀어 봐. 나한테 진행 상황이나 알려줘.” (129쪽)


  교사가 학생하고 문학을 배울 적에는 그저 문학 작품을 읽어 줄 뿐입니다. 이렇게 느끼거나 저렇게 생각하라고 길을 못박아서는 아니 될 노릇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느껴야 하고 저 시는 저렇게 느껴야 하지 않아요. 이 노래는 이렇게만 불러야 하지 않아요. 저 그림은 저렇게만 느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르게 가꾸면서 재미있게 배우도록 할 적에 비로소 교사는 교사 구실을 하리라 느껴요. 이때에는 수학은 수학대로 제자리를 찾고 학교는 학교대로 제자리를 찾을 테고요.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어른도 아이도 ‘수포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수포자’ 아닌 ‘수즐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주어요. ‘수즐이’란 무엇일까요? ‘수학을 즐기는 이’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우고, 즐겁게 놀다가 배울 수 있는 수학이 되기를, 또 교사나 여느 어른 모두 수학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아름답게 가르치고 아름답게 배울 수 있다면, 또 사랑스레 가르치고 사랑스레 배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17.4.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책/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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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틀 박사 이야기 둘리틀 박사의 모험 1
휴 로프팅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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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6


마음을 열면 상어하고도 얘기를 나눈다
― 둘리틀 박사 이야기
 휴 로프팅 글·그림
 장석봉 옮김
 궁리 펴냄, 2017.3.10. 1만 원


  삼월이 저물고 사월이 되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달력 한 장을 바꾼다고 생각할까요? 사월이 저물고 오월이 되거나, 오월이 저물고 유월이 될 적에 대구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무엇을 헤아릴 만할까요? 이때에도 그저 달력 한 장을 새로 넘긴다고 여길까요?

  달이 바뀌어도 달력 종이만 넘길 적에는 숫자 말고 다른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달이 바뀔 적에 달력 종이를 굳이 안 넘기더라도 다른 곳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달과 함께 날씨가 차츰 바뀌면서 새로 피고 지는 꽃을 눈여겨볼 수 있습니다. 새싹이나 겨울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겨우내 시든 풀줄기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지며 새로운 흙이 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겨우내 뜸했던 새소리가 봄이 깊어지면서 새벽부터 두루 퍼지는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고요.


“이렇게 오빠 멋대로 하다간, 최고의 고객들 중 누구도 오빠를 의사로 보지 않을 거예요.” “난 그 ‘최고의 고객’보다 동물이 더 좋은걸.” 박사가 말했다. (12쪽)

박사는 동물들도 자기들만의 말이 있어 서로 이야기를 한다는 걸 이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내내 밖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앵무새) 폴리네시아는 부엌 탁자에 앉아 박사가 수첩에 받아 적을 수 있도록 새들의 말을 가르쳐 주었다. (17쪽)


  휴 로프팅 님이 쓴 어린이문학 《둘리틀 박사 이야기》(궁리,2017)를 읽습니다. 휴 로프팅 님은 1886년에 태어나 1947년에 숨을 거두었고, 1920년대에 ‘둘리틀 박사’ 이야기를 썼어요. 모두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썼다고 하며, 바야흐로 이 이야기를 모두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한국말로 옮긴다고 해요.

  기나긴 이야기가 흐르는 ‘둘리틀 박사’ 삶인 셈인데요, 둘리틀 박사하고 얽혀 기나긴 이야기가 흐를 수 있는 바탕은 ‘말’입니다. 어떤 말인가 하면 사람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말이 아닌 바로 ‘사람을 둘러싼 뭇짐승하고 나누는 말’이에요.


밖으로 나가도록 박사가 문을 열어 주자 쟁기질하는 말이 말했다. “박사님, 문제는 아무나 자기가 동물을 진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동물들이 불평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요. 사실 좋은 동물 의사가 되는 건 좋은 사람 의사가 되는 것보다 몇백 배 더 힘든 일인데 말이에요.” (18쪽)

“사람들이 날 아프게 해. 사람들은 자기들만 대단한 줄 알아. 세상이 시작된 지 천 년도 넘었겠지? 그런데도 사람들이 알아듣는 동물 말이라는 건 고작 개가 꼬리를 흔들면 ‘기분이 좋다’는 것뿐이야. 웃기지 않아?” (22쪽)


  둘리틀 박사는 뭇짐승을 모두 아낍니다.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짐승이 없어요. 마을에서는 고슴도치도 싫어하고 악어도 싫어해요. 그렇지만 둘리틀 박사는 고슴도치도 악어도 모두 한결같이 아낍니다. 무서워하는 짐승이 없고, 꺼리는 짐승조차 없어요. 모든 짐승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요.

  둘리틀 박사는 앵무새한테서 말을 배운다지요. 아마 둘리틀 박사는 맨 먼저 앵무새한테 마음을 열기에 앵무새가 들려주는 ‘앵무새 사이에 주고받는 말’을 배울 수 있었을 테고, 앵무새가 이끄는 대로 마음을 더 활짝 열기에 ‘앵무새를 비롯한 뭇짐승 말’까지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리라 느껴요.


“형님, 인간이란 정말 이상한 동물이로군요! 대체 누가 그런 땅에서 살고 싶어 할까요? 맙소사, 정말 형편없는 족속이로군요!” (73쪽)

“인간이란 정말이지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철부지 같은 족속이군. 멍청하긴! 그런 걸 좋아하다니. 제기랄, 그건 감옥이잖아.” (75쪽)


  《둘리틀 박사 이야기》라는 어린이문학이 자그마치 백 해라는 나날이 가깝도록 사랑받는 힘이라면 이처럼 ‘마음을 열어 우리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자’고 하는 따스한 줄거리가 흐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돈을 번다든지 이름을 얻으려고 ‘뭇짐승 말을 배우는’ 둘리틀 박사가 아니에요. 둘리틀 박사는 오직 ‘사랑하는 뭇짐승을 더 깊이 아끼는 마음이 되려’는 뜻으로 온갖 말을 익혀요.

  개한테 ‘개말’을 쓰지요. 잔나비한테 ‘잔나비말’을 써요. 제비한테 ‘제비말’을 쓰고, 소한테 ‘소말’을 써요.

  마음을 닫지 않고 열기에 새로운 말을 배웁니다. 새로운 말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맞아들입니다. 생각을 가두지 않고 활짝 열기에 즐거이 새로운 길(모험)로 나섭니다.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아닌, 즐겁고 새롭게 배운다고 하는 몸짓이에요.


제비 한 마리나 두 마리는 힘이 그리 세지 않다. 하지만 제비도 엄청난 수가 모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배에 동여맨 끈이 천 가닥이 넘었고, 그 끈 하나마다 2천 마리의 제비들이 달라붙어 배를 끌었다. (104쪽)

박사가 말했다. “그래, 그만둬야 해. 넌 이미 배를 충분히 오래 탔어. 멋진 배들과 좋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물에 빠뜨렸고. 남은 인생은 착한 농부로 살아야 해. 상어가 기다리고 있어. 시간을 너무 뺐지 말라구. 마음을 정해.” (116∼117쪽)


  바다에서 해적한테 된통 시달린 둘리틀 박사입니다만, 둘리틀 박사는 ‘상어가 둘리틀 박사를 도와서 해적을 잡아먹어도 되겠느냐’ 하고 물을 적에 상어를 말려요. 이러면서 해적한테 말하지요. ‘그대를 상어가 잡아먹지 못하게 막아 줄 테니, 이제는 해적질을 그만두고 섬에 가서 농사꾼이 되게나’ 하고 말이지요.

  해적질을 그치고 흙살림으로 바꾸다 보면 저절로 흙한테서 배우고, 풀이랑 나무랑 바람한테서 배울 것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셈이에요.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갈고닦으며 스스로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어 주지요.

  제비가 돕고 상어가 돕습니다. 제비를 부르고 상어를 부릅니다. 제비하고 동무요 상어하고도 벗이에요.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동무가 되어요. 마음을 활짝 열기에 참말 누구하고도 벗님으로 지내요.

  우리가 삼월에서 사월로 접어들거나 사월에서 오월로 접어들어도 날씨나 철이 바뀌는 흐름을 제대로 못 느낀다면, 아직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탓이지 싶어요. 바람결을 느끼고 구름하고 풀을 살피며 벌나비 날갯짓을 가만히 살필 수 있다면, 이 같은 숲바람에 마음을 활짝 열어 몸을 맡길 수 있다면, 우리는 둘리틀 박사마냥 ‘사람 사이 말’을 넘어서 ‘한결 깊고 너른 숲말’을 누구라도 배울 만하지 싶습니다. 평화롭고 자유로우면서 사랑스럽게. 2017.4.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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