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 오늘 만나는 우리 역사 생각을 더하면 12
이정화 지음, 송진욱 그림, 심준용 감수 / 책속물고기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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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4


손수 짓는 살림이 바로 문화유산
―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이정화 글
 송진욱 그림
 책속물고기 펴냄, 2017.6.5. 11000원


  다음 사람들한테 물려줄 만한 살림살이를 놓고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다음 사람들이란 바로 어린이입니다. 이 땅에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될 무렵 넉넉히 누리거나 즐겁게 맞이할 만하도록 고이 간수하자고 하는 살림살이가 바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울에 있는 남대문이나 수원에 있는 수원성이 문화유산입니다. 훈민정음이나 경주 첨성대나 팔만재장경이 문화유산입니다. 그리고 기와로 얹은 오래된 집이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시골집도 문화유산이지요. 오래된 도자기를 비롯해서 짚으로 엮은 숱한 세간도 문화유산입니다.


은성이 아빠는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고고학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성이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출장을 자주 가는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은 게 그저 불만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은성이는 고고학자가 되어 아빠와 유물 발굴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8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책속물고기,2017)은 우리 곁에서 크고작은 문화유산을 가꾸거나 지키거나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언뜻 보자면 요즘 사회에서 그리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일 수 있다고 할 텐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슬기롭게 가꾼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어요. 오랜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길을 갑니다.

  예부터 종이를 얻거나 나무를 돌본 슬기를 오랜 ‘나무 살림살이’에 비추어서 오늘날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흙이나 돌이나 나무나 짚만으로 튼튼하며 멋진 집을 지은 슬기를 비추어 보면서 오늘날 정갈하며 아름다운 집살림을 이루는 길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그냥 지켜진 것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그대로 다시 물려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42쪽)

“평생 모은 문화유산을 그냥 준다고요? 공짜로요? 그럼 할머니가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또다시 시작된 태민이의 질문 공세에 할머니가 웃었다. “녀석, 숨도 안 찬 모양이네. 그동안 그림이며 도자기를 수집하느라 돈을 많이 썼으니 손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박물관에 기증하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연구에도 보탬이 되니 더 좋은 일이지.” (68쪽)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건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에 깃든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들려줍니다.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돌본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앞으로 새롭게 문화유산이 될 새로운 살림을 짓습니다.

  왜 그렇잖아요, 공장에서 수천만 개씩 똑같이 찍어낸 물건을 가리켜 문화유산이라 하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저마다 품을 들이고 오랫동안 아끼면서 손수 지어낸 살림은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투박한 수저 한 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손수 나무를 하고 깎고 다듬어서 지었다면, 얼마든지 문화유산이 되어요. 부채도 연도 베개도 문화유산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겁게 누리는 살림을 적에는 ‘손때가 타는 문화유산’이 됩니다. 배냇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지요. 색동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어요. 누비옷이나 누비이불이 문화유산이 됩니다. 으리으리하게 올려세우지 않더라도, 우리가 날마다 만지고 쓰다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는 싱그러이 살아서 숨쉬는 따사로운 문화유산이 되지요.


“난 오늘 소원 하나를 이루는 거란 말이야.” “소원이 겨우 궁궐 지킴이였다고? 박물관장이 아니고?” “진짜 내 소원은 ‘문화유산 지킴이’로 살아가는 거야. 난 유물이나 유적이 정말 좋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그냥 막 가슴이 설레거든.” (84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린이한테 돋보이거나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잔하면서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유리 진열장에 꽁꽁 가두어 놓는 문화유산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늘 고이 흐르는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해요. 즐겁게 아끼고 기쁘게 나누던 작은 살림에서 피어난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달포에 걸쳐 장갑이나 모자나 조끼를 떠 봐요.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는 멋진 살림을 지어 봐요. 돈 몇 푼을 내면 곧장 사들일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닌, 어버이로서 넉넉히 사랑을 들여서 여러 날에 걸쳐 손수 깎은 놀잇감을 아이들한테 선물해 봐요.

  생각을 새롭게 북돋우는 발판이 되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삶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열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이웃하고 나누도록 이끌기에 문화유산입니다. 2017.8.2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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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14
루이사 비야르 리에바나 지음, 클라우디아 라누치 그림, 이선영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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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5


악기를 만지는 기쁨을 꺾지 마요
―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
 루이사 비야르 리에바나 글
 클라우디아 라누치 그림
 이선영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6.20. 10000원


  악기 값은 얼마쯤 할까요? 아마 악기를 장만해 보기 앞서까지 모르겠지요. 저는 국민학교라는 곳을 다닐 무렵 학교 앞 문방구에서 리코더를 장만한 뒤로 딱히 악기를 장만해 보지 않았습니다. 악기하고 제가 죽이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학교 수업으로 있는 음악 시간에는 우리가 노래를 즐기도록 북돋우지 않았어요. 오직 시험점수로만 따지면서 주눅이 들게 내몰았어요.

  곁님하고 살림을 꾸리면서 리코더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알토 리코더하고 소프라노 리코더가 있고, 리코더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악기가 있고, 우리 겨레 오랜 악기인 단소는 나무뿐 아니라 옥으로 빚기도 하더군요. 플라스틱 악기는 플라스틱이라는 결이 있다면, 스텐이나 옥이나 나무는 저마다 다른 소릿결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소릿결을 학교에서는 느끼기 어려웠어요. 더욱이 스스로 악기를 켜거나 불거나 타거나 뜯거나 치는 즐거움을 학교 음악 교육에서는 아이들한테 느긋하게 가르칠 겨를이 없기도 했습니다.


“용아, 너 방금 일어났구나. 이제 뭐 할 거야?” 조금 전부터 고도프레드를 지켜보던 꼬마 들국화가 물었어요. (10쪽)

어디선가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어요. 고도프레드는 먹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지요. 어떤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아, 정말 고운 소리야!” (16쪽)


  피아노를 장만하던 날을 떠올립니다. 피아노는 돈이 많은 사람들 집에나 있는 악기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으나, 헌 피아노라면 백만 원 남짓 들이면 장만할 수 있더군요. 백만 원 남짓 이르는 돈이 적다고 할 수 없으나 여러 달 푼푼이 모으거나, 한두 해 살림을 아끼면 피아노 한 대를 들이는 일도 할 만하더군요. 피아노는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재미나며 살가운 놀잇감이자 악기로 늘 곁에 있어요.

  그리고 바이올린도 장만했어요. 피아노처럼 바이올린도 헌 악기로 장만할 적에는 값이 매우 눅습니다. 어린이가 처음 소릿결을 익힐 적에 쓰는 헌 악기라면 더욱 눅은 값이고요.

  이렇게 곁님하고 아이들이 누릴 악기를 하나씩 천천히 장만하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저도 저한테 악기를 선물하고 싶어요. 저도 제가 누릴 악기를 갖고 싶어요. 한참 헤아린 끝에 저는 저한테 북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나무랑 가죽을 쓴 북으로 장만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북을 치면서 가슴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릿결을 느껴 봅니다.


고도프레드는 한 번만 연주하게 해 달라고 지휘자를 졸랐어요. 결국 바이올린 연주를 허락받았지요. 하지만 활로 바이올린을 켜자마자 줄이 힘없이 끊어져 버렸어요. 지휘자의 말은 정말이었죠. (20쪽)

“네가 그렇게 슬프기만 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도 마음이 아파.” 다른 들국화들도 고도프레드를 다독였지요. (36∼37쪽)


  어린이문학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책속물고기,2017)를 읽으면서 악기와 삶과 꿈을 나란히 떠올립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긴 잠에서 깨어난 용한테 들꽃 한 송이가 넌지시 말을 걸면서 첫머리를 열어요. 긴 잠에서 깨어난 용은 딱히 무엇을 하겠노라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들꽃은 용한테 ‘긴 잠에서 깨어났으니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어요. 용은 이 물음을 듣고는 깜짝 놀라요. ‘그래, 긴 잠에서 깨어나면 스스로 꿈(하고픈 일)을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지요. 꿈에서 깬 뒤에 꿈을 찾는다고 할까요. 잠에서 깨었으니 새로운 길을 걷는다고 할까요.


운동선수도 고도프레드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고도프레드의 마음속에는 바이올린 생각뿐이었지요. (44쪽)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에 나오는 용은 막 잠에서 깨어나고서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어느 아이가 켜는 바이올린 노래를 듣고는 흠뻑 사로잡혀요.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픕니다. 들꽃은 용을 북돋우는데, 들꽃을 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용을 말려요.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는 용하고 들꽃하고 사람들이 나오네요. 들꽃은 용이 기운을 내도록 돕고, 사람들은 용이 하는 일마다 ‘안 돼!’ 하면서 가로막네요.

  용은 이 일도 저 일도 가로막힐 뿐 아니라, 도무지 이 땅에서 살아갈 뜻을 못 찾아요. 용은 이것도 저것도 저한테는 안 어울린다고 여기면서, 참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는 하루를 보내요.

  사람들은 왜 용한테 ‘넌 바이올린을 켤 수 없어!’ 하고 잘라서 말해야 했을까요? 용한테 맞춘 커다란 바이올린을 마련해 줄 수는 없었을까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장만하면서 살피니, 어린이한테 맞춤한 작은 바이올린이 있고, 어른한테 맞춤한 조금 큰 바이올린이 있어요. 그러니 용한테 맞춤한 커다란 바이올린도 얼마든지 짤 만하지요.


“참 신기한 소리네! 난 저 바이올린이 정말 좋아!” 고도프레드가 말했어요. “바이올린이 아니야. 저건 콘트라베이스지.” 옆사람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뭐라고요? 콘트라베이스요?” 콘트라베이스는 고도프레드만큼 커 보였어요. 고도프레드가 용인데 말이에요. (52∼53쪽)


  꿈을 품는 아이나 어른이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루고 싶으며 하고 싶은 길을 누구나 즐거우며 씩씩하게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것 때문에 안 되거나 저것 때문에 못 한다고 울타리를 쌓지 않으면 좋겠어요.

  용도 바이올린을 켤 수 있기를 빌어요. 바이올린이 아니라면 다른 악기를 용이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피리도 피아노도 좋지요. 콘트라베이스도 기타도 좋지요. 북도 좋고 장구도 좋아요.

  어느 악기가 되든 마음껏 누리면서 새로운 소리나 노랫가락을 깨우면 좋겠어요. 어느 악기를 타거나 켜거나 뜯거나 불거나 치든, 늘 즐거운 꿈을 사랑스레 지피는 길을 저마다 신나게 펼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7.7.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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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 강에서 배우는 문명과 역사 지식은 내 친구 14
신현수 지음, 심가인 그림 / 논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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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2


냇물이 맑게 흐르는 나라가 아름답다
―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신현수 글
 심가인 그림
 논장 펴냄, 2017.4.20. 13000원


  요즈막 들어서 가뭄이 잦습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그러께에도 비 한 방울 없이 봄이며 여름이 퍽 오래 흐르곤 합니다. 어쩌면 이듬해나 그 이듬해에도 이 같은 봄가뭄이나 여름가뭄이 이어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한국은 비가 안 올 적에는 몇 달이고 가뭄이다가, 비가 올 적에는 벼락처럼 쏟아지는 날씨가 될 만해요.

  날씨가 바뀌는 일을 놓고 흔히 기후변화라고 합니다만, 날씨는 그냥 바뀌지 않습니다. 숲을 밀어서 도시를 늘리고, 공장을 올리며, 아파트를 세우니, 날씨가 안 바뀔 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끝없이 하늘을 가르고, 자동차가 줄줄이 찻길을 메우는데다가, 핵발전소를 비롯한 큰 발전소에다가 엄청난 송전탑이 들과 등성이를 가득 채우니, 날씨는 바뀔밖에 없지요.

  여기에 한 가지 또 있어요. 지난 몇 해 동안 4대강사업이라는 막삽질이 있었어요. 멀쩡한 냇물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막삽질을 벌였는데요, 멀쩡한 냇물뿐 아니라 멀쩡한 골짝물에다가 시냇물에다가 도랑물까지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했어요.


지구의 70%는 물이에요.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 파랗게 보이는 것도 물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구에 있는 물 가운데 97%는 짠 바닷물이고 나머지 3% 정도만 이 소금기가 없는 민물이에요. (33쪽)


  어린이 인문책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논장,2017)를 읽습니다. 4대강사업을 짚는 어른 인문책은 꽤 나왔습니다. 매체나 책에서도 자주 다루는 4대강사업이기에, 어른들은 퍽 손쉽게 자료나 정보를 살필 만합니다. 앞으로 이 땅을 물려받아 살아갈 아이들을 헤아릴 적에 막삽질이란 끔찍한 일이에요.

  자, 그러면 오늘 어른 곁에서 살아가는 어린이한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요. 오늘 이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이는 어떤 이야기를 살피거나 찾으면서 날씨와 철과 땅과 냇물과 하늘을 헤아리면 좋을까요.


한강은 서울과 주변 도시 사람들에게 먹을 물을 대 주고, 넓고 기름진 평야에서 질 좋은 곡식을 생산할 수 있게 해 줬어요. 또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었지요. (86쪽)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냇물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다루려 하는가를 가만히 짚습니다. 냇물을 둘러싼 여러 문명과 문화를 찬찬히 짚습니다. 사람한테 물이 없다면 삶도 없는 노릇이라, 예나 이제나 물은 대단히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냇물을 정갈하게 건사할 줄 아는 나라는 아름답게 거듭난다는 대목을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막삽질 아닌 따스한 손길로 냇물을 어루만지는 길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뒤틀거나 바꾸는 물길이 아닌, 오랫동안 흘러온 결을 그대로 살리는 물길이 될 적에 냇물이 깨끗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무숲은 비가 내리면 빗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흘려 보내요. 나무뿌리가 흙과 엉켜 빗물을 가둬 둠으로써 빗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꺼번에 비가 많이 내려도 산사태와 홍수를 막을 수 있고, 가뭄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답니다. (106쪽)


  가문 날씨에도 숲은 시원합니다. 가문 날씨에도 숲에는 골짝물이 흐릅니다. 어느 누가 물을 따로 안 주어도 숲에서는 풀이며 나무가 잘 자랍니다. 크고작은 나무와 풀이 저마다 뿌리로 물을 붙잡거든요. 숲에서는 서로서로 물을 나누어 가지기도 하고, 함께 붙들기도 해요.

  비가 드세게 퍼붓는 날에도 풀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는 빗물이 콸콸 흐르지 않습니다. 풀하고 나무가 우거진 숲은 드센 비바람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풀이나 나무가 없는 맨땅은 작은 빗물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숲을 밀어 고속도로를 내거나 관광단지나 커다란 발전소나 운동장을 지을 적에 앞으로 날씨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숲을 밀어내어 건물이나 아파트나 골프장 들을 세우는 몸짓을 멈출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시멘트를 걷어내어 풀하고 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돌려놓아야지 싶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는 이처럼 강에 인공물을 설치하고 함부로 손을 댄 것이 잘못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강에 세운 댐과 콘크리트 제방을 허물고, 직선으로 고친 물길을 자연 그대로 구불구불 흘러가게 바꿔 놓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사람의 손을 타서 병든 강을 건강한 자연 그대로의 강으로 되돌리려 애쓰는 것이지요. (114쪽)


  사람 손길을 타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면서 살아요. 다만 지난날에는 집을 짓거나 마을을 이룬다고 할 적에 ‘사람이 알맞게 쓰고 누릴 만큼’만 숲을 건드렸어요. 숲을 마구 밀지 않던 지난날이에요. 마을을 이룰 적에도 마을숲을 건사하던 지난날이지요. 집을 지을 적에도 마당에 나무를 심을 뿐 아니라, 집 둘레로 나무가 자라도록 한 지난날입니다.

  깨끗한 물을 얻자면 마을을 이루는 삶터가 깨끗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을이 깨끗하고 숲과 들이 깨끗하면 냇물은 저절로 깨끗하기 마련이에요.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 사회는 억지스레 시멘트만 퍼붓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자연스러운 길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요. 자연스러운 길, 곧 삶터가 숲과 같이 되도록 하는 길은,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살기 좋은 터전으로 가꾸는 길이 될 테니까요.

  냇물이 맑게 흐르는 나라가 아름다워요. 냇물이 싱그러이 흐르는 곳에서 사람들이 환하게 웃음지어요. 냇물이 구불구불 이어진 터전에서 새와 물고기와 풀벌레와 숲짐승이 고루 어우러지면서 넉넉한 살림을 이루어요. 2017.6.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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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삼촌 - 제7회 5.18 문학상 수상작 도토리숲 문고 2
황규섭 지음, 오승민 그림 / 도토리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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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3


아이들한테 어떤 역사를 가르치는 어른인가요
― 열두 살 삼촌
 황규섭 글
 오승민 그림
 도토리숲 펴냄, 2017.5.18. 12000원


  이 땅에 아이들이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돈을 모르고 재산이나 역사를 모른다 하더라도 날마다 즐겁게 놀고 어우러지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무기나 군대를 몰라도 해맑게 어깨동무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을 몰라도 연을 알며 살았고, 아이들은 자동차를 몰라도 버들피리를 불며 살았어요.

  이러던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앓습니다. 어른들이 신분이나 계급을 갈라서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합니다. 어른들이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좇아요.


삼촌은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입을 닫고 살았다.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거의 표정도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또박또박 말도 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44쪽)

삼촌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꽥 지르면서 목발로 자전거를 홱 밀어 버렸다. 자전거는 맥없이 쓰러졌다. 민국은 어리둥절했다. 자전거 때문에 다리를 잃은 삼촌의 마음은 알지만, 그때는 삼촌이 너무 미웠다. (47쪽)


  웃음을 짓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는 웃음을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미움을 짓는 어른들 사이에서 크는 아이는 미움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짓는 사람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보살필 적에 아름다울까요?

  황규섭 님이 글을 쓰고 오승민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도토리숲,2017)을 읽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열두 살 나이에서 멈춘 듯 보이는 삼촌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에 나오는 아이는 열두 살이라고 해요. 삼촌은 아이 아버지보다 몇 살 어려요. 몸은 어른이라 할 테지만 마음은 아이하고 같은 열두 살이라고 해요. 아이는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삼촌 같은 어른이 왜 저랑 같은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갇힌 채 꼼짝을 못하는지 알 길이 없어요.


바로 아빠가 끔찍이 사랑하는 이 도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가게 유리문 저쪽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 여기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민국은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상상할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50쪽)

민국은 상상해 보았다. ‘장갑차의 육중한 바퀴가 잔디를 짓밟고 팡팡 총을 쏘아대며, 총소리와 최루탄 연기가 거리에 퍼진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51쪽)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해서 이 역사 지식을 살갗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겪거나 치러 보지 않고서야 몸으로 느끼기 어려워서 머리에서 맴도는 지식이 되곤 해요. 손수 씨앗을 심어 보지 않는다면 씨앗 한 톨이 땅속에서 자라서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흐름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지식하고 삶이 달라요. 지식만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지 않아요.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은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아이들이 어렴풋한 지식만 붙잡고서 자전거 도둑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몸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아주 넌지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겹쳐 놓습니다.


“여기서부터 엄마 가게 있는 곳까지는 아주 성스러운 곳이다. 겁나게 많은 사람들이 여서 피 흘리고 쓰러졌지. 저 동네는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어. 집집마다 한두 명씩 그날 일로 괴로워하고 있을 정도야.” (87∼90쪽)

“삼촌은 민국이 너처럼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어. 자전거라고 해 봤자 할아버지가 타던 커다란 짐바리 자전거였지.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자가용이었어. 할아버지가 싸전을 해서, 쌀가마니를 자전거에 싣고 다니셨지.” (90쪽)


  《열두 살 삼촌》에 나오는 삼촌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조카를 보는 나이로 자랐겠지요. 그러나 목숨은 건사했어도 마음에 남은 생채기는 아물지 않습니다. 내 한 몸은 살아서 남았으되 둘레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진 숱한 사람을 보아야 했어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헬리콥터가 떠서 무시무시하게 총알을 쏘아댔다는 이야기가 요즈막에 밝혀지려고 합니다. 그무렵에 헬리콥터뿐 아니라 온갖 전쟁무기가 여느 길거리에 몰려들어 여느 사람들을 마구 총질해대며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두들겨패고 밟고 죽이고, 또 두들겨패고 밟고 죽였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를 바라지 않는 독재권력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사람들을 죽이고 밟았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하고는 동떨어진 독재권력을 더 단단히 하려는 이들이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끌어들였어요.


삼촌의 인생은 어쩌다가 이렇게 꼬인 것일까? 누가 삼촌을 열두 살 나이에 가둔 것일까? 아빠는 왜 저렇게, 가족 얼굴도 보기 힘들 만큼 바쁘게 사는 것일까? (123쪽)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사회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교사인 어른이며 어버이인 어른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역사를 배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삶이나 사회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서 어떤 사랑이나 역사를 보여줄 만할까요?

  전쟁무기가 군대가 없이도 평화로운 나라를 짓는 살림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신분이나 계급이 없이, 비정규직이 없이, 돈이나 부동산으로 금을 긋는 일이 없이, 참으로 아름답고 넉넉한 어깨동무로 나아가는 평화로는 사회를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은 열두 살 마음에 머물고 만 삼촌이 가슴에서 떨치지 못하는 생채기를 다룹니다만,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 어른들 누구나 열두 살 아이다운 맑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적바림했다고도 여길 만하지 싶습니다. 2017.6.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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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투스 - 코르착이 들려주는 영화 같은 이야기
야누쉬 코르착 지음, 송순재.손성현 옮김 / 북극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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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43


‘교육 받기’보다 ‘사랑 받기’ 바라는 마음
― 카이투스
 야누쉬 코르착 글
 송순재·손성현 옮김
 북극곰 펴냄, 2017.4.19. 14800원


  마법사하고 요정이 나오는 어린이문학이 있습니다. ‘마법사’하고 ‘요정’이라고 하면 흔한 어린이문학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는 판타지문학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문학은 마법사하고 요정이 얽힌 이야기를 판타지문학이 아닌 ‘배우는 살림’으로 다룹니다. 아이가 스스로 삶을 배우는 길을 보여주는 어린이문학이요,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면서 이끌 적에 슬기로운가 하고 짚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카이투스의 소원은 학교에 가서 모든 걸 몽땅 배우는 거였어. 그래서 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거야. (8쪽)

“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주문을 외울 거야. 꼭 그럴 거야. 난 마법사가 될 테니까. 선생님은 주문이나 마법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냐. 선생님이 모르는 거지. 위대한 시인들도 마법사 이야기를 하잖아. 왕들도 그런 게 있다고 믿었어.” (11쪽)


  유럽에서 전쟁 기운이 불거지던 무렵 폴란드에서 어린이 사랑을 몸소 펼친 야누쉬 코르착 님은 《카이투스》(북극곰,2017)라는 책을 씁니다. 이 책은 마법사가 된 어린 사내하고 요정이 된 어린 가시내가 부딪히는 여러 이야기를 가만히 다루어요.

  마법사가 된 어린 사내는 처음부터 마법을 마구 쓰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학교에서 즐겁게 새로운 삶과 살림을 배우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학교라는 곳에 가 보니 아주 딴판이었대요. 학교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삶과 살림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해요. 또래들은 서로 괴롭히거나 놀리는 짓궂은 짓을 일삼고, 으레 장난질을 해댄다고 합니다. 배울 만한 것이 없는데다가 사귈 만한 동무를 찾지 못한 어린 사내는 오직 스스로 길을 찾고 생각을 기울여 마법을 하나하나 익힌대요. 어느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으나 스스로 마법사가 되었대요.

  아이는 스스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는 책에서만 엿볼 수 있는 모습일까요? 어쩌면 아이가 스스로 마법사가 되는 이야기는 책에서만 엿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더 헤아려 본다면 마법사 아닌 다른 길, 이를테면 ‘아이 스스로 식물 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나무 박사가 될 수 있어요. 자동차 박사라든지 컴퓨터 박사가 될 수 있지요. 책 박사라든지 만화 박사가 될 수 있어요. 누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요리 박사가 될 수 있기도 하지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착한 마음씨란다.” 이건 할머니의 말이야. “착한 사람은 걱정이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주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잖니. 착한 이웃을 많이 만나야 어려울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단다.” (26∼27쪽)

의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어. “직접 이 아이를 간호하시겠다는 말씀이죠? 뭐, 좋습니다. 가출한 녀석이니까 회초리 좀 맞아야겠죠.”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 친구들 꼬임에 넘어갔을 겁니다. 얘야, 너 정말 가출했던 거니?” (55쪽)


  배우려는 뜻이 있기에 배워요.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배우려는 뜻이 없을 적에는 아이도 어른도 못 배워요.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제아무리 훌륭하거나 뛰어난 교사가 코앞에 있어도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이에요. 배우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대단히 뜻있고 아름다운 책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한 쪽조차 못 읽고 하품을 하기 마련입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먼 길을 마다 하지 않아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책으로도 배우고, 몸으로도 배우며, 마음으로도 배워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어린이여도 배우고 젊은이여도 배우며, 쉰이나 일흔이나 아흔이라는 늦깎이 나이여도 배워요.

  예순 살이 넘어서 화가로 우뚝 서는 사람이 있고, 예순 살이 넘어선 뒤에 즐겁게 사진가로 서는 사람이 있어요. 비록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지만 시나 소설을 아름답게 써서 따사롭고 너른 이야기를 베푸는 사람이 있지요.


카이투스는 집 생각이 났어. 엄마 아빠 생각도 났어. ‘분신이 함께 있으니까 내가 집을 나온 줄도 모르실 거야. 그러면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116쪽)

서커스 단장은 전보를 쳐서 카이투스를 위해 멋진 집을 마련해 놓았지. 엄청나게 큰 정원이 있는 집이었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집이었지.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정원에서도 놀면 안 되고 친구들을 불러도 안 되고 파티를 열어도 안 되고 집 안에서 뛰어다녀도 안 되고. (159쪽)


  《카이투스》에 나오는 ‘안톤 카이투스’는 마법을 하나하나 익힐 적마다 마법힘이 커지는데, 이렇게 커진 마법힘으로 도시 하나를 수렁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만큼 마법힘이 세지기까지 해요.

  아이는 스스로 마법을 익혀서 마법사가 되었으나, 막상 마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마음을 배우지는 못했어요. 카이투스네 아버지는 카이투스를 따사롭고 부드러이 마주할 줄 알지만,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카이투스하고 말을 섞을 기운이 없어요. 어머니도 매우 착하고 상냥하지만 카이투스가 스스로 배우고 싶은 삶길을 밝히는 데까지는 돕지 못해요. 할머니는 카이투스한테 늘 슬기롭고 따스한 마음을 베풀지만, 카이투스는 아직 할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길 만큼 철이 들지는 못했어요.

  카이투스는 그저 마법힘을 빌려서 돈을 잔뜩 얻고, 마법힘에 기대어 이름을 높이 드날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며 이름을 한껏 얻고 나서 ‘이 모두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똑똑히 깨닫습니다. 학교가 싫어서 달아나고, 집이 귀찮아서 달아난 아이는 자꾸자꾸 달아날 수밖에 없는 고비에 이르고, 이렇게 달아나고 달아나다가 어느 날 ‘요정’이 된 아이 조슈아를 만나지요.


“조슈아, 넌 언제부터 요정이었엉?” 카이투스가 물었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난 오래전부터 요정이 되고 싶었거든. 숲속에서 블루베리를 따거나 작은 꽃을 엮어 모자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 요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이들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을 잘 지켜 주고 싶었어. 가난한 사람들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어. 그런데 요정이 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어.” (215쪽)

“안톤, 진정해.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때마다 화내고 흥분하면 정말 도움이 안 돼. 이제 중요한 건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 거야.” 조슈아는 카이투스를 달랬지. “엄마한테 돌아간다고? 엄마는 널 알아보지도 못하실 거야!” “하지만 내가 엄마를 알아보겠지. 그리고 가까이 가겠지. 난 노력할 거야. 엄마를 돌봐 드리고 위로해 드릴 거야!” (221쪽)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가르칠 적에 즐거울까요? 어버이로서 바깥일이 너무 바쁘다면서 오직 학교에만 아이를 맡겨도 될까요? 교사인 어른은 교과서 수업만 잘 알려주고 아이들한테 마음 됨됨이에는 눈길을 보내지 못해도 될까요?

  마법사 아이는 마법을 쓸 줄은 알아도 마법을 건사할 줄 몰랐습니다. 요정 아이는 마법사 아이처럼 대단한 힘은 없지만 따사로운 사랑이 있습니다. 따사로운 사랑을 찬찬히 베풀면서, 마음이 아프거나 힘겨운 마법사 아이를 달래요. 마법사 아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웃 사랑’을 일깨워 주고, 이웃에 앞서 ‘마법사 아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때부터 작게 물결이 일어요. 마법사 아이 마음속에 물결이 일지요.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대목을 요정 아이한테서 배우면서 고개를 숙이는 마음을 받아들여요. 이웃을 따사로이 품는 요정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마법사 아이 스스로 그동안 어떤 짓을 어떻게 했는가를 되새기고 뉘우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앞서 남긴 ‘착한 마음이 되는 삶’을 돌아봅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잘 해 주세요. 우리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또 그것이 때때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른들은 잘 몰라요. 사람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목표점까지 가는데 모두가 반듯한 길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들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과 소원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어른들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될 수는 없엉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저를 믿어 주세요.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제자 안톤 올림.” (242쪽)


  《카이투스》는 두 아이가 ‘학교 밖’에서 온갖 수렁과 고비와 벼랑길에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슬기를 모으고 사랑을 길어올려서 하나하나 풀어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판타지문학이라고 할 만하면서 가르침·배움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꿈 같은 이야기라 할 만하면서 삶·살림을 이루는 바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조금 더 어른스럽게 아이를 따스히 마주하자는 뜻을 들려줍니다. 우리 어버이들이 조금 더 상냥하면서 넓게 아이를 가르치고 함께 살림을 짓자는 뜻을 밝혀요.

  아이들 누구나 ‘교육 받기’에 앞서 ‘사랑 받기’를 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지식 가르치기’에 앞서 ‘삶과 사랑 나누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씩씩하게 꿈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저마다 아름답고 즐겁게 사랑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6.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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