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괴동 1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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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느낌글은 따로 쓸 생각이기 때문에, 1권과 2권 이야기만 적바림합니다.) 



 손 쓸 수 없는 바보스러운 누리
 [만화책 즐겨읽기 10] 모치즈키 미네타로, 《동경괴동東京怪童 (1∼2)》



 기계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이곳입니다. 기계가 아닌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이 누리입니다. 기계가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 나라입니다. 기계가 아닌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꽃과 열매를 맺기에 비로소 먹을거리를 얻는 우리 터전입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가르치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이곳 이 터 이 자리를 돌아볼 때에는 사람이 잘 안 보입니다. 온통 기계투성이입니다. 사람이 다루는 기계라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맨 기계들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라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누리에 자리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이제 와서 헤아린다면 퍽 우스운 이야기요, 이 우스운 이야기마저 사람들은 차츰 잊는다고 느끼는데, 예부터 한겨레 사람들은 ‘마음이 따스하며 사랑이 깊은 겨레’라 일컬었다고 합니다. 이웃을 아끼며 서로를 포근히 보살피는 겨레라 했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우리네 역사를 거슬러 봅니다. 참말 이 말이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틀리지도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따스하거나 사랑 깊은 사람은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웃 나라나 겨레하고 싸움을 벌였고, 파벌을 이루었으며, 농사짓는 사람들 삶하고 동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을 신분으로 가르고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지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들치고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은 퍽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적게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들, 적게 가지거나 못 가진 사람들, 적게 누리거나 못 누리는 사람들한테서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을 마주한다고 느낍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이나 사대부한테서 밥 한 그릇 얻지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 사는 궁궐은커녕 궁궐 둘레로 발을 들이지조차 못합니다. 사대부 으리으리한 집 대문을 두드리지도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당신하고 비슷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문을 두드리며 밥 한 그릇 얻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 돕고, 마음 아픈 사람은 마음 아픈 사람이 돌봅니다.

 지난날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며 밑바닥이었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너나 없이 밑바닥인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도우며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이 꽃피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너나 없이 배가 부를 뿐 아니라 돈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많이 움켜쥘 뿐더러 많이 누리기 때문에, 따스함이랑 넉넉함을 잃는구나 싶습니다.


- “그래, 넌 사실밖에 말 못하지.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저 나무, 싫어. 여전히 죽고 싶은 기분이야. 내 인생은 엿 같아.” “그렇지 않아. 다 왔다.” (1권 50∼51쪽)
- “나도 알아. 다들 이유가 있다는 것쯤은! 나도 나쁜 뜻은 없어. 입이 더러운 건 내 병이야. 하지만 약으로 낫는다며.” (1권 63쪽)
- “그림에도 자주 나오잖아. 고흐도 저 측백나무가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렸어.” “고흐. 더 잘 듣는 약을 줘. 다 토했더니 효과가 없잖아. 물리요법으로는 해결 안 나는 병이라니까.” “바보한테 듣는 약은 없어. 그야 네 병은 생각한 것을 숨김없이 다 입 밖으로 뱉는 증상이긴 하지. 하지만 결국 네멋대로 사람을 바보 취급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자신의 미숙함을 자각하는 인간은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이야. 본인은 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다들 마음속의 부담을 가지고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무리하게 살지 말고 솔직하게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아마도 그 방법밖에 없을 거야.” (1권 87∼88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마무리된 작품이고, 일본책에 붙은 이름은 “東京怪童”입니다. “도쿄에 사는 괴물 아이”라는 뜻입니다. “도쿄에 사는 끔찍한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볼썽사납거나 못 말린다거나 짜증스럽거나 미친 아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 일본 도쿄에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정신병원과는 또다른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더욱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1권과 2권을 가만히 보다가는, 3권이 나온 뒤 1권과 2권을 다시금 넘기며 생각합니다. 이들 “도쿄 괴물 아이”를 보살피거나 돌보거나 아픔을 씻어 주겠다는 사람들은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도시에서 겉모습을 감춘 채 지식을 높이 쌓아올린 사람’들입니다. 학문으로 파헤치고 돈을 들여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습니다. 그러나, 학문이든 시설이든 옳고 바르게 건사할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되려나요. 참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도쿄 괴물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어른은 몇이나 있으려나요.

 입으로 내뱉는 소리가 아닌,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마음이 보여주는 모습을 읽을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 “이 목소리는 하시? 그런 거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게 그 애라고?” “이 감촉, 역시 우리 애야. 엄마인 난 감각으로 알겠어.”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잤잖아!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하시가 돌아왔다구요!” “이렇게 기분 나쁜 괴물이 우리 애라니. 그리고 그 애는.” (1권 111쪽)


 사람은 한손에 한 가지를 쥡니다. 한손에 두 가지를 쥐지 못합니다. 먼 옛날 옛적 이야기를 떠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요,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한손에는 한 가지만 쥡니다. 한손에 사랑을 쥐었으면 돈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돈을 쥐었으면 사랑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이름값을 쥐었으면 믿음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믿음을 쥐었기에 이름값을 쥐지 못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은 한손에 사랑이나 믿음을 쥐지 않습니다. 한손에 두 가지 다 쥐려 하면 못 쥐는 만큼, 한손으로 사랑하고 믿음을 함께 쥐려 하다가 그예 놓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왼손에는 사랑을 쥐고 오른손에는 믿음을 쥐면 놓칠 일이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손에 책만 쥐어야지, 이 한손으로 책과 지식을 함께 쥐려 하면 둘 모두 놓칩니다. 책하고 지식은 사뭇 다를 뿐더러 한동아리가 될 수 없는데, 숱한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에 자꾸만 지식을 움켜쥐려 합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면 넉넉하고, 책 하나로 내 삶을 따숩게 돌아보면 흐뭇하지만, 이 흐름을 옳게 새기지 못합니다.


- “전에는 모두가 날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난 나의 이 인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으니까 적어도 나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하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 (1권 159쪽)
- “넌 입만 열면 사랑해 줘,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사랑받고 싶단 생각만 하느라 다른 사람 일은 아무래도 좋은 거지? 사랑만 받을 수 있다면.” (1권 184쪽)



 아이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은 몸이 아픈 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멋진 옷이나 예쁜 집이나 빠른 차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섞을 벗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비싸구려 손전화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몸소 보고 배울 뿐 아니라 즐거이 함께 살아가고픈 어른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대학교나 유학 따위를 꿈꾸지 않으며, 변호사나 판검사나 의사 같은 어버이를 꿈꾸지 않습니다.


- “그건 ‘너희’는 애초에 이상한 사람이고, 너는 사고로 머리에 이물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왜 이런 멍청이를 상대로 잠시라도 말을 꺼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넌 네 머리 때문이 아니야. 너라는 인간 자체가 저질인 거잖아!” (2권 15∼16쪽)
-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래, 하지만, 그건 병이 아니라도 다들 그런단다.” (2권 155쪽)



 적잖은 어버이들은 당신들이 돈을 조금밖에 못 벌어 당신 아이들을 더 따스히 돌보지 못하는 줄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 당신들이 한 달에 70만 원밖에 못 번다 한들 아이들이 당신들한테 서운하다고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값싼 튀김닭 한 마리 사 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들은 하나도 싫어한다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동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식은밥에 김치쪼가리 하나일지라도 밥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살가운 어버이를 바랍니다. 자가용으로 학원이나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돈 많은 어버이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걸어가느라 한참 걸리지만, 서로 손을 따숩게 꼬옥 잡으면서 얼굴을 마주보는 가운데 이야기꽃 피울 줄 아는 어버이를 기다립니다.

 어려운 일이란 한 가지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쉬운 일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할 때에 학교버스나 자가용 따위에 태울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아이랑 함께 학교에 가면 됩니다. 아이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더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굳이 학교에 안 보내겠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까닭은, 어른들이 바깥에서 돈을 벌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하고픈 일과 놀이’ 때문이니까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배우지, 학교에서 교과서랑 교사한테서 배우지 않아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에 독도가 있다는 지식을 갖추어야 나라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내 동네에서 식구들이랑 조용히 살아가면서 넉넉히 나라사랑을 합니다.

 더 아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애써 도시에서 살아갈 뜻이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온몸 가득 자연을 껴안으면서 자연스러운 넋을 북돋울 때에 아이들 또한 온마음 가득 자연을 보듬으면서 자연스러울 얼을 살찌웁니다. 아이들한테는 ‘자연그림책’을 사다 주어 읽히지만, 정작 어른들부터 자연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른들부터 자연을 헤아리는 책 한 줄 못 읽으며 지냅니다. 아이들이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한다면 어른들 또한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하는데, 막상 어른들은 자연하고는 등을 진 채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돈벌이에 얽매입니다.


- “부장님, 병 때문에 불감증에 걸린 환자 있댔죠? 누가 더 나을까요?”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나도 이 나이까지 이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왔어. 물론 다른 인생도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잖아?” (2권 193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일본 도쿄라는 곳은 한국 서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이랑 꾸리는 삶은 다르다지만, 두 곳은 서로 한몸과 같다 할 만합니다.

 일본 도쿄 아이들은 티없이 맑으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크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크고 맙니다. 한국 서울 아이들 또한 해맑게 빛나며 어여쁜 아이로 자라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자라고 맙니다.

 학교 건물이 너무 큽니다. 도시가 너무 큽니다. 한 학년 학급 수가 너무 많습니다. 학급마다 아이가 너무 많습니다. 교사들이 한 학교 모든 아이들 이름조차 ‘외우지’ 못합니다. 아이들 숫자가 너무 많으니 ‘이름 외우기’를 해야 하는데, 이름조차 못 외우는 판에 아이들 삶과 아이들을 둘러싼 삶과 삶터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골학교가 한결 낫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다만 가장 학교다운 학교라 할 때에는 한 동네나 마을에 하나씩 아주 조그맣게 꾸리는 학교입니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 같은 자리는 따로 없이, 오로지 아이들 삶을 헤아리는 교사만 있는 학교일 때에 비로소 학교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참다운 ‘배움터’ 노릇을 하겠지요.

 배우는 터전이어야지 가두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가는 터전이어야지 옭죄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지고 보면, 도쿄이든 서울이든 아이들도 너무 많이 득시글대지만, 어른들부터 지나치게 많이 복닥거립니다. 알맞게 얼크러지고, 살가이 어우러지며, 따숩게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 우리보다 더 손 쓸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난 알고 싶어졌어.” (2권 198쪽)


 더 손을 쓸 수 없도록 망가지면 어찌 될는지 모릅니다. 더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만, 자꾸자꾸 바보스러운 길에 붙들리다 보면 내가 바보인지 내가 사람인지 내가 기계인지 내가 돌멩이인지 내가 멍텅구리인지 내가 이웃인지 내가 목숨붙이인지 내가 나무인지 내가 컨베이어벨트인지 헷갈리다가 그만 고꾸라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사람다이 살아가며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나 스스로 어린이임을 느끼고, 어른들은 당신 스스로 어른임을 깨달아, 우리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을 알아채고, 우리 둘레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알아보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와 흙과 하늘과 바람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언제나 고마운 하루이고, 늘 새롭게 빛나는 하루이며,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고맙게 보내며 즐거운 하루이고, 새롭게 빛내며 알찬 하루이며, 사랑스레 누리며 오붓한 하루입니다. “도쿄 괴물 아이”들은 시설 좋은 병원에서는 그저 괴물 소리를 듣는 아이로 늙어 버립니다. (4343.12.13.달.ㅎㄲㅅㄱ)


― 동경괴동 (1∼2) (모치즈키 미네타로 글·그림,이지혜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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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6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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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사랑과 책방사랑과 사람사랑
 [만화책 즐겨읽기 16]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6)》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이 새로 나왔습니다. 1권부터 5권까지 즐겁게 읽었기에 6권도 즐겁게 집어듭니다. 다만, 4∼5권에 이르며 조금 느슨해졌나 하고 느꼈기에 6권을 집을 때에는 살짝 망설입니다.

 6권에서는 얼마나 탄탄하며 짜임새있게 ‘책과 책방과 사람’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6권에서 책과 책방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싱그러이 담지 못한다면 앞으로 7권이 나오든 70권이 나오든 굳이 장만할 까닭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에서는 ‘작은 책방 사장’으로 일하다가, 그만 ‘큰 책방한테 밀려 문을 닫고’ 말아, 나중에 ‘큰 책방 계약직 일꾼’으로 들어가서 잡지 부서를 다루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은 책방이 끝내 문닫고 말았을 때에 몹시 서운하며 가슴이 아팠을 테지만, ‘내 책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 책방’에서 일하는 몸이 되더라도 ‘책방을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즐거이 일하려 했답니다. 그러나, 즐거이 일하려던 이녁은 큰 책방 정규직 부서지기가 기운을 꺾는 말을 일삼아 그만 ‘자리를 지키며 매출이 떨어지지도 올라가지도 않게끔만 일을 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책방이라는 일터가 아니라도 이런 모습은 퍽 흔하리라 봅니다. 내 일과 내 일터를 아울러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이 있으나, 일이든 일터이든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 터전이든 일본 터전이든 저마다 제 삶을 사랑하여 돌보는 나날보다는 더 크거나 많은 돈을 벌어들여 한껏 신나게 돈을 쓰는 나날로 탈바꿈한다고 느낍니다.


- “아르바이트 직원을 혹사시키면서까지 페어를 열고, 미미하게 매출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의미?” “맞아요. 페어는 직원이 알아서 기획하고 있다구요. 무엇보다 우린 하루하루 주어진 작업을 처리하는 것만도 벅차요.” “음, 제가 하는 건 좋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29쪽)
- ‘(나는) 남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에는 엄청 서툰 사람이야. 오히려, 전부 혼자 해도 되는 거라면, 그게 훨씬 마음 편해. 그럼, 저 사람들은 왜 서점에서 일하지? 책을 풀어놓을 뿐이면 다른 소매점에서 일해도 되잖아?’ (31쪽)



 누군가 책방에서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한다면, ‘책방에서’ 일하는 뜻과 보람이나 값이 남달리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든 ‘일하는’ 뜻이나 보람을 찾을 수 있겠지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돈을 벌어 집식구 먹여살리’면 넉넉하다 여길 수 있겠지요.

 저로서는 자동차 만드는 공장이라든지 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돈만 벌어 집식구 먹여살리는’ 일은 하나도 달갑지 않습니다. 입에 풀을 바르지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판이고, 내 입만이 아니라 내 집식구 입을 떠올린다면 참말 아무 일이든 붙잡으려 할 노릇이라 할 텐데, ‘아무 곳에서든 돈만 벌어’ 집식구를 먹여살릴 때에, 내 집식구는 이러한 삶을 달가이 맞아들일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더 가난할 수밖에 없거나 더 쪼들릴 수밖에 없더라도, 마음이 무겁거나 힘들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제강점기에 도시에서 살아가자면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요. 오늘날 서울이나 부산에서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 살림집 마련하여 살자면 무슨 일을 찾아야 할까요. 손꼽히는 대학교를 나온다 해서 마땅한 일자리 하나 만만하지 않다는데, 이러한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거리를 헤아려야 좋을까요. 연봉 높으며 정년 지켜 주는 사무직 일자리만 찾기 때문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셈 아닌지요. 내 삶을 따스하며 포근히 꾸리도록 도와주는 일자리는 안 찾는 오늘날 젊은이가 아닌지요. 오늘날 젊은이를 키워 낸 어버이부터 돈으로 셈하는 살림살이는 북돋울지라도 마음으로 돌아보는 살림살이는 못 살찌운 셈 아닌지요.

 책방이라면 서울 종로에 있어도 책방입니다. 서울 용산이나 강동에 있어도 책방입니다. 불광동 안골이든 인헌동 옆골이든 어디에서든 책방은 책방입니다. 매장이 천 평을 넘어야 책방이지 않습니다. 매장이 두 평이라도 책방입니다. 갖춘 책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이어야 책방이지 않습니다. 갖춘 책이 이천 권이나 이백 권이어도 책방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집식구는 날마다 불고기를 먹든 피자를 먹든 열 몇 가지 김치를 먹든 해야 즐거운 밥차림이 아닙니다. 날마다 나물밥에 김치 한 조각 먹더라도 즐거운 밥차림입니다. 하루에 서너 끼니를 먹고 참까지 곁들여 먹어야 기쁜 밥차림이 아니요, 하루에 한두 끼 가까스로 챙겨 먹더라도 기쁜 밥차림입니다.


- “그건 뭐 하는 거야?” “아, 이렇게 아침과 밤에 잡지에 손을 올려 보면 몇 권이 팔렸는지 대충 알아.” “우와, 각각 두께가 다른데?” “응, 뭐, 매일 진열하다 보면 대강 감으로 알 수 있어.” “그렇게 하면 뭐가 편해?”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애정이야. 하루하루의 노력이 쌓이는 거지.” (44쪽)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에서는 살짝살짝 ‘이 일을 왜 이렇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닌 ‘이 일을 하루하루 즐기는 사랑에 담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사랑하니까 읽는 책이고, 사랑하니까 책방을 조그맣게 손수 열어 꾸리며, 사랑하니까 책방에서 사람들한테 내가 사랑하는 책을 보여주어 사서 읽도록 이끕니다.

 그래요, 사랑하기에 서로 만나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갑니다. 사랑하기에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너른 품으로 더 살가이 보듬습니다. 사랑하기에 더 잘난 일자리나 더 이름난 일자리나 더 거룩한 일자리보다, 나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 모두한테 아름다우며 즐거울 일자리를 찾습니다.


- “있잖아요, 전에 일했던 점포에 ‘책은 싫어’해도 ‘서점을 좋아’해서, 내내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만약 타사이 씨가 ‘서점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49쪽)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나 배와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로 나아가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물고기를 안 좋아할 뿐, 내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가 물고기를 좋아한다면 나로서는 내가 안 좋아하는 물고기라 하더라도 즐거이 낚아올리고 손질해서 밥상에 차립니다. 옳지 않으면서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삶이 아니라, 옳다는 테두리에서 내가 달가이 여기든 달갑잖이 여기든 마음으로 아끼는 가운데 할 일을 찾는 삶입니다.


- “오늘 말이야. 스오도(서점)에 갔었어. 치프도 봤어.” “뭐라고?” “여성과 임산부한테도 친절한 매장이 돼 있던걸?” “여자는 여자에게 친절한 매장을 만들려고 하지.”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서점은 백화점 안에 있는 점포의 특성상 여성의 비율이 높아서가 아닐까? 만약 남자가 많은 장소라면 다른 식으로 꾸몄을지도 몰라.” “이상하게 편드는군.”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해? ‘임신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잡지 매장에 육아서적을 놔두면 안 되겠어?’라고. 그러자 자기는 ‘귀찮아’라고 대답했지. 그걸 치프는 당연한 것처럼 쉽게 해 버렸으니까, 당연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손님도 바보가 아니니까. 타사이서점도 그런 곳이었어.” (50∼52쪽)


 책을 사랑하면서 책방을 사랑하지 않기 힘듭니다. 책과 책방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힘듭니다. 아니, 책을 사랑하기에 저절로 책방을 사랑하고, 책방을 고이 사랑하기에 시나브로 사람을 사랑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모습은 누구한테나 똑같지 않습니다. 아무개는 이렇게 사랑하고 저무개는 저렇게 사랑합니다. 이이는 이런 빛깔로 사랑하고, 저이는 저런 내음으로 사랑합니다.

 참다이 사랑할 때에는 다 다른 사람을 다 달리 바라볼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착하게 사랑할 적에는 다 다른 삶을 다 달리 껴안을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곱게 사랑할 무렵이라면 다 다른 넋을 다 달리 헤아릴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1권부터 5권까지 오는 동안 서점 숲에서 ‘일하는’ 아카리였고, 서점 숲에서 ‘부잊히고 넘어지며 배우는’ 아카리였는데, 차츰차츰 서점 숲에서 ‘사랑하는’ 아카리로 거듭납니다. 이 사랑이란 남녀 사이 애틋한 마음을 느끼는 사랑이기도 하지만, 내가 붙잡은 내 일과 일터를 아끼는 사랑이기도 하며, 내 둘레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며 서로를 보듬는 가운데 다 함께 착한 삶터로 가꾸고픈 사랑이기도 합니다.

 책방은 자그마한 책방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책방 또한 가게이지만, 가게로만 있는 곳이 책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커다란 책방일 때에도 가게로만 있는 책방이 아니라, 책방으로서 책방이 있는 가운데, 사람과 삶이 어우러질 수 있다면 아름답습니다.

 우리 나라 커다란 책방은 얼마나 책방답거나 삶터다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같은 이야기는 한낱 만화책 이야기일는지 모릅니다. 꿈으로만 꾸고, 꿈으로만 마주하는 사랑인지 모릅니다. 잘 팔리는 책만 더 잘 팔려 더 돈이 되도록 더 마음을 쏟는 책방 얼개를 내려놓고, 두루 사랑할 책을 두루 나누며 두루 넉넉할 수 있게끔 나아가는 책터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4343.12.12.해.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6)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1.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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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모모씨 1
타카하시 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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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먹는 삶이란
 [만화책 즐겨읽기 12] 다카하시 신, 《꽃과 모모씨 (1)》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을 때하고, 칼질을 하면서 밥상을 차릴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세 식구 밥상일 뿐이지만,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고는, 아침을 먹고, 치우며 설거지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살짝 쉬다가도, 어느덧 저녁에 무엇을 차려서 먹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변하지 못한 살림꾼은 살림꾼답게 아침저녁을 차려 내지 못합니다. 차리기야 하고 치우기야 하지만, 얼마나 알뜰하고 알차게 밥을 받아들여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이끄는지를 살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던 밥은 그저 배만 채워 주는 밥이었을까요. 내가 차리는 밥은 내 살붙이한테 배만 채워 주는 밥이고 말까요.


- ‘저(토끼)는 태어난 뒤로 대부분 모모씨가 만든 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제 몸은 모모씨의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61쪽)


 오늘 하루는 아침과 저녁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을 하자며 틈을 낸다든지 겨를을 얻지 못합니다. 고작 밥그릇 하나라 할는지 모르지만, 기껏 반찬 하나라 여길는지 모르지만, 이 하나 마련하여 차리기까지 퍽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얼추 헤아려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날마다 밥을 차리느니 밥을 새로 하느니 복닥거리기는 하지만, 정작 밥상을 받는 사람들 마음이나 느낌을 옳게 헤아리지는 않았습니다.

 ‘고맙다’ 소리를 들으려고 밥상을 차릴 수 없습니다. 먹는 사람 스스로 절로 ‘고맙다’ 말할 수 있으면 기쁠는지 모르지만, 먹는 사람을 바라보며 ‘고맙구나. 오늘은 무언가 먹을 만하게 차렸구나.’ 하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프거나 힘든 짝꿍 다리를 주무를 때에 ‘고마워’ 소리를 듣기를 바라겠습니까. ‘내가 제대로 주무르기나 하나?’ 하고 생각하며 주무를 뿐입니다. 국이나 찌개가 간이 잘 맞았는지, 밥물을 옳게 맞추었는지, 그나마 젓가락질을 하며 집을 찬거리가 있는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에 나오는 토끼가 속으로 읊는 말마따나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우리 살붙이 삶이 이루어지’니까요. 우리 살붙이 삶이 살림꾼 땀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얕은 마음이나 넋으로 밥을 차릴 수 없어요.


- ‘모모씨의 하루는 정말 바빠요.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저녁식사를 걱정한답니다.’ (10∼11쪽)
- “밥 먹고 나서 설거지, 빨래, 청소, 그리고 곧장 밭일. 진짜 열심히 일하네요. 엄청 힘들겠네요.” “전혀. 편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닌걸.” (208∼209쪽)
- “엄마, 여기는, 내 집이야.” (159쪽)
- “모모씨는 남편을 위해 매일 저녁밥상을 차린대.” “우와,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하하, 솔직히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안 해.” “그래도 얼마나 근사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접시를 놓는다는 게.” (216쪽)



 아이는 언제나처럼 일찍 깨어납니다. 일찍 깨어나니 일찍부터 배가 고플 테지요. 배가 고플 아이한테 아침부터 무언가 집어먹을 이런저런 밥거리를 마련해 주어야겠지요. 능금알을 깎아 주든 뭐를 마련해 주든 할 노릇입니다. 슬슬 배가 고플 무렵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그릇을 내어줄 수 있게끔 밥때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밥상에서 깨작거린다면 아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골을 부린다고만 여기지 말고, 아이가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상차림이 알뜰하지 못했다고 여길 일입니다. 억지스레 먹인다고 밥을 잘 먹으려나요. 가붓하며 기쁘게 차려서, 서로서로 즐겁게 밥술을 들어야지요.

 참말, 아침부터 집일이란 줄줄이 이어집니다. 밥하고 치우고 빨래하고 쓸고닦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꼴딱 넘어갑니다. 겨울해는 한결 짧아 빨래 널어 말리는 데에도 더 마음을 들여야 하고, 아이도 씻기고 아이랑 즐거이 놀며 아이가 새로운 말을 기쁘게 익히도록 그림책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살림살이를 북돋울 벌이를 해야 합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무를 다섯 뿌리 씻어 놓습니다. 우리 텃밭에서 뽑은 그리 굵지 않은 무인데, 이듬해 새로 텃밭을 일굴 때에는 거름을 제때 잘 내어 한결 굵게 거둘 수 있겠지, 하고 헤아립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손수 일구어 마련해 준 당근도 씻어 놓습니다. 아침 여덟 시 십 분쯤, 아이한테 당근을 갈아서 작은 밥그릇에 담아 줍니다. 아이는 잘 먹어 줍니다. 당근을 아침마다 갈아서 주면 아이가 제법 잘 먹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이제까지 아침마다 제대로 당근을 갈아서 준 일이 무척 드뭅니다. 길어야 오 분쯤일까요.

 당근을 마저 갈아 국그릇에 담습니다. 남은 녀석은 달걀 둘을 풀어 달걀말이를 할 생각입니다. 저는 달걀부침을 잘 못합니다. 더욱이 노른자를 예쁘게 살린 달걀말이는 거의 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용케 달걀말이는 합니다. 어릴 적부터 달걀부침은 잘 안 되었고, 달걀말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해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얇고 동그랗게 썹니다. 감자나 고구마를 길쭉하게 썰어서 무치면 아이는 건드리지 않고 입을 앙 다물기만 하기에, 저번에 한 번 ‘설마 동그랗게 썰면 먹으려나? 호박지짐이나 다른 지짐은 동그랗게 해 놓으면 잘 먹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해 보았는데, 생각대로 잘 받아먹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양파를 썰어 물을 조금 부은 널찍한 냄비에 작은불로 졸이듯 끓입니다. 고구마랑 감자가 다 익을 무렵 텃밭 배추를 잘게 썰어 넣고 불을 끈 다음 조청과 어간장을 넣어 버무립니다. 텃밭 배추는 벌레가 잔뜩 먹은 녀석인데 국이나 이런 데에 잘게 썰어 넣으면 냄새와 맛이 꽤 괜찮구나 싶습니다. 잘게 썰어 넣고 남은 배추는 달걀말이 하는 데에 넣기로 합니다. 맑은 무채를 한번 해 볼 생각으로 무도 채 썰어 놓았으나 손이 모자라 무채까지는 못하고 그냥 소금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러는 사이 흰쌀과 검은쌀과 보리랑 차조랑 수수랑 밀쌀로 짓는 밥이 다 되어 갑니다. 어제까지는 하루에 밥을 한 번만 했으나, 오늘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 할까 생각합니다. 손이 조금 더 갈 뿐, 새로 한 밥을 먹는 맛과 느낌이 훨씬 좋으니, 이 또한 하루에 오 분쯤 더 쓰자고 생각합니다. 반찬을 하든 밥을 하든 여기에 들이는 품과 겨를만큼 서로서로 한결 즐거울 테니까요.


- ‘후훗, 그럼 이제, 간식을 먹어 볼까. 식빵 자투리로 만든 러스크와 마당에서 뜯은 허브 티. 날씨가 정말 좋다. 빨래도 바싹바싹 잘 마르겠네.’ (24쪽)
- ‘모모씨는 큰 고구마나 감자만 보면 왠지 즐거워한답니다.’ (56쪽)
- “옛날에는 농사지을 때 온 동네 사람끼리 서로 도와가며 했거든. 그래서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새참’을 만들어 대접했지. 요리 정보도 교환하고 말이야.” (153쪽)
- “이 논도 모모씨가 얘기를 꺼내서 시작한 거야. 정말 아름다워.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아. 모모씨가 맡은 구역만 벼가 더 잘 자라는 것 같은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저렇게까지 정성을 쏟지 못하니까.” (215쪽)


 여덟 시부터 부산을 떨며 아침을 차리면서 아이한테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아 달라고 부릅니다. 스물여덟 달짜리 아이는 아빠 심부름을 잘 해냅니다. 그런데 달걀말이 담은 접시를 밥상에 올려놓고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혼자 한두 점 냠냠짭짭 할 테지요. “벼리야.” 하고 부르니 그제야 오고, “혼자 먹었니?” 하고 물으니 “응.” 하고 말합니다. 두부 담은 접시랑 도토리묵 담은 접시도 하나씩 들려 방으로 들입니다. 아이는 또 안 옵니다. 보나 마나 혼자 묵이랑 두부를 손가락으로 집어먹겠지요. 밥을 담은 냄비랑 국을 담은 냄비를 하나씩 아빠가 들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제 밥그릇을 벌써 자리에 착착 놓았습니다. 수저는 자리에 놓지 못했군요.

 먹다가 놀려 하고, 먹으면서 안 먹으려는 듯 땡깡을 부리는 아이를 구르고 달래며 나무라면서 그예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가 기름을 쏟은 두꺼운 깔개 하나는 아직 빨지 못했기에 오늘은 빨아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씻는방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거든요. 아이 옷가지랑 기저귀를 빱니다. 옆지기 두꺼운 겉옷을 빨고 깔개를 빱니다. 다 빤 깔개를 큰 대야에 담아 마당으로 나옵니다. 번쩍 들어 빨랫줄에 걸칩니다. 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겨울에 얼른 말라 주기를 바라면서 휘 돌아가며 깔개 밑자락을 꾹꾹 쥐어짭니다. 손아귀가 저릿저릿할 때까지 한참 쥐어짭니다. 허리를 토닥이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랑 아이가 씻는다 해서 엄마 먼저 씻고, 조금 뒤 아이 옷을 벗겨 씻는방으로 들입니다. 이제 좀 기지개를 켤 만한가 싶어 시계를 봅니다. 열한 시 사십 분. 귤 하나 까먹고 멍하니 앉아서 쉬자니 아이가 어느새 다 씻고 나올 무렵. 아이한테 옷을 입힙니다. 옷을 다 입은 아이는 조고마한 손으로 귤을 까서 반을 갈라 아빠한테 나누어 줍니다. 아이 얼굴에 신나게 뽀뽀질을 하고는 “이제부터 아빠는 아빠 일 할 테니까 좀 도와줘.”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아빠 옆구리에 등을 기대 앉아 다른 귤을 또 신나게 깝니다. 귤을 먹는 재미보다 귤을 까는 재미가 더 좋은 듯합니다.


- “설령 앞날이 어둡다고 해도, 생선이 이런 맛이고 이렇게 생겼었다는 걸 사,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35쪽)
- ‘아저씨는 버려진 자전거가 많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 주셨어요. 바람이 약간 빠진 바퀴는 비탈길을 피해 강을 따라 난 길을 힘차게 도라갑니다. 모모씨는 자전거를 탈 때 가슴을 쭉 펴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달립니다.’ (41쪽)
- “저기, 이, 쌀.” “그렇지? 밥이 반짝반짝!” (232∼233쪽)


 만화책 《꽃과 모모씨》 1권을 더듬습니다. 올해에는 2권이 나오기 힘들 테고 2011년 봄께에는 2권이 나올까 궁금합니다. 《꽃과 모모씨》는 일본 도쿄에 갑자기 피어난 어마어마하게 큰 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사라진 가운데, 이 사라진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큰꽃 둘레에서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모모씨는 이들 ‘사라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몸소 텃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날마다 밥상을 차리는 새댁입니다. 갓 시집을 가서 남편을 ‘잃었다’고 해야 할는지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워한다’고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하지만,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밥 한 그릇을 마련합니다. 땀을 들여 땅을 일구고, 땀을 들여 일군 땅에서 고마운 곡식과 푸성귀를 얻고, 이 곡식과 푸성귀를 혼자서 즐길 수 없다고 여깁니다.

 메말랐을 뿐 아니라 거칠고 쓸쓸하다 싶은 도쿄라는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 벼를 손수 길러 먹자며 논을 일구는 마음결이요, 힘겨운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는 마음씨요, 배고픈 이하고 즐거이 도시락이든 밥이든 나누어 먹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마련하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을 나누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밥으로 다시금 기운을 차립니다.

 꿈 같은 소리입니다만, 한국땅 서울에도 큼지막한 꽃 한 송이 피어나 군대도 정치꾼도 재벌총수도 어찌하지 못하면서 전기가 끊기고 신문과 방송 모조리 끊어지면서, 내 집 마당에 내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면서 내 밥상을 내 손으로 차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긴다면 얼마나 새삼스러우랴 싶습니다. 아, 그러나저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나 이제나 도심지 한복판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꽃밭이랑 텃밭이랑 살뜰히 일구면서 당신 살림을 예쁘게 보듬는 분들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4343.12.6.달.ㅎㄲㅅㄱ)


― 꽃과 모모씨 1 (다카하시 신 글·그림,강동욱 옮김,삼양출판사,2010.10.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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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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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읽는 멋, 만화 읽는 맛
 [만화책 즐겨읽기 9] 다카하시 루미코, 《경계의 린네 (1∼2)》


 길을 걷다가 반가운 벗이나 이웃을 만나면 그만 길에 우뚝 서고 맙니다. 이 길에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만, 스스로 걸림돌이 되는 줄 느끼지 못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다가는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자주 마주하는 반가운 벗이나 이웃하고도 스스럼없이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오랜만에 마주하는 반가운 벗이나 이웃이라면 더 오래 더 길게 더 애틋하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반가운 벗이나 이웃이랑 나누는 이야기란 하나도 새삼스럽거나 남다르지 않습니다. 반가운 벗이나 이웃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란 조금도 대단하지 않고 하나도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그대로 좋습니다. 오붓하게 나누는 이야기라서 좋고, 재미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기쁩니다.

 이런 뜻 저런 값 그런 보람이 없달지라도, 삶을 읽는 멋입니다. 삶을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삶을 이루는 수수하면서 고운 이야기예요.

 아이 키우는 이야기라든지, 아이가 얼마나 자랐느냐는 이야기라든지, 아이가 어떻게 뛰고 놀며 크느냐는 이야기라든지, 아이가 밥은 어떻게 먹고 동무는 어찌 사귀느냐는 이야기라든지, 아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아이를 안 낳은 사람하고든 아이를 여럿 낳은 사람하고든 아이 이야기만 나누면서도 하루 해를 꼴딱 새울 만합니다. 정치 이야기라든지 사회 이야기라든지 문화 이야기라든지 운동경기 이야기라든지 하나도 모를지라도 얼마든지 우리 살아가는 품으로 온갖 삶 흐름을 읽고 나누며 꽃피웁니다.


.. “이 녀석 봐라. 학교에서 지정한 체육복도 안 샀어?” “훗. 내가 그런 사치스런 물건을 사면, 지옥에 풀어져요.” “응? 너희 집이 그렇게 가…….” “지옥에 떨어져요.” “그, 그래. 알았다. 미안하다, 로쿠도.” “네, 다신 그런 소리 마세요.” ..  (1권 48∼49쪽)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한껏 무르익으면서 한결 구수한 맛을 베푸는 만화쟁이 다카하시 루미코 님 《경계의 린네》 1권과 2권을 읽습니다. 얼마 앞서, 그러니까 올 2010년 7월에 《이누야샤》 이야기를 56권으로 마무리지은 다카하시 루미코 님인데, 어느새 새 만화를 그려서 내놓습니다. 자그마치 열 해 가까이 그린 《이누야샤》임을 생각한다면, 좀 쉬면서 새 힘이나 넋을 가다듬거나 추스를 만하건만, 다카하시 루미코 님은 언제나 힘이 넘치게 만화를 그린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는 짧지 않습니다. 늘 꽤 길게 그리는 만화입니다. 그러나 퍽 길게 그리는 만화이면서 지루하게 늘어뜨리지 않습니다. 굵고 긴 만화이고, 단단하며 야무진 만화입니다.

 함께 만화를 즐기는 집식구가 어느 날 얼핏 이야기해 주어 새삼스레 깨닫기도 했는데, 다카하시 루미코 님은 ‘여학생 치마를 들춰 속옷이 보이도록 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소년물’이라 일컫는 만화들은 으레 이런 그림을 ‘독자 서비스(?)’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이사이 끼워넣지만, 다카하시 루미코 님만큼은 이런 그림을 도무지 안 그립니다. 주인공이 짧은치마 교복을 입은 채 하늘을 날든 하늘에서 떨어지든 치마가 말려올라가는 일이란 없습니다. 늘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달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들은 지난날 《란마 1/2》은 뭐냐고 물을 만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살피는 눈길이라면, 《란마 1/2》에서도 엉큼하거나 어리석게 여학생 치마 들추는 그림은 그리지 않았어요. 《란마 1/2》에서는 ‘대놓고(?)’ 젖가슴과 알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엉큼한 뜻이나 얄궂게 훔쳐보기 하려는 그림이 아닌 다카하시 루미코 님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알몸이나 젖가슴 그림을 그립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아름다운 결로 담아내고픈 넋을 보여주는 《이누야샤》이기에, 우리로 치면 열대여섯에서 열예닐곱 나이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리는 동안 서로 따스하게 손을 잡고 마지막에 이르러 어여삐 입맞춤을 합니다.

 이번에 새로 그리는 만화 《경계의 린네》에서도 이런 맛을 살포시 느낍니다. 이제 막 1권과 2권을 그렸을 뿐이니, 어쩌면 이 작품 또한 50권 넘게 그릴는지 모르며, 어쩌면 100권까지 그릴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 흐름이 어떻게 나아갈는지는 참 아리송하지만,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 밑바닥에 흐르는 ‘고운 사랑’ 이야기를 알뜰히 여미리라 봅니다.


.. “이봐요, 아가씨.” “네?” “아가씬 그렇게 젊은데, 아무런 미련도 없수?” “그래, 우리는 이제 여한이 없으니 됐지만.” “응, 여한이 없어.” ‘어라, 가만히 보니 …….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네. 다들 무척 만족스러워 보이고, 나도 어쩐지 즐겁다.’ “젊은 나이에, 정말 미련이 없어?” “네! 그냥 이제 됐다 싶네요.” ..  (1권 113쪽)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생각하며, 사람을 살피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을 다루고, 사랑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보듬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삶을 아끼고, 삶을 벗하며,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아무래도 문학이라 한다면, 또 만화로 이루어 내는 문학이라 한다면, 으레 사람과 사랑과 삶을 보여주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눈길을 두면서 가장 마음을 쏟거나 가장 땀을 들이는 일이란 바로 사람과 사랑과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보고 사랑을 느끼며 삶을 붙잡는 가운데 모든 일과 놀이가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 “악마가 무슨 거짓말로 속여넘겼는지 몰라도, 너무 바보 같지 않니?” “저, 저기 스즈 선배.” “정말 질색이야! 다신 문병도 안 갈 거야.” ..  (2권 115쪽)


 군더더기를 그리지 않는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입니다. 흐름이 몹시 빠르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서 한 꼭지를 마치고 다음 꼭지로 넘어서면서 아쉽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만화, 곧 시원한 만화입니다. 모든 꼭지가 끝날 때마다 후련하다고 느낍니다. 《란마 1/2》에서는 이런저런 아쉬움을 느끼곤 했지만, 이때에 느낀 아쉬움이란 왜 주인공들이 더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면서 툭탁질을 하느냐 싶은 아쉬움이었지, 만화 얼거리나 줄거리나 짜임새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아니었어요.

 《도레미 하우스》이든 《경계의 린네》이든 이런 줄기는 곧게 이어갑니다. 짧은만화로 그린 《P의비극》이었든 이번 《경계의 린네》이든 만화로 빚어서 나누는 문학인 다카하시 루미코 님 작품에는 한결같은 목소리가 서립니다. 삶을 읽는 멋으로 만화를 읽는 맛을 느끼자는 예쁘장한 눈웃음이 어립니다.


.. “범인은, 모릅니다.” ‘로쿠도, 왜 감싸는 거야?’ ‘린네 군?’ “너는, 부정입장자로군.” “네, 입장료와 파손된 물건의 수리비는, 제 친구가 내줄 겁니다.” “친구?” “정말 모르나? 위조지폐범을 고발하면 그 대신, 입장료와 수리비를 면제해 줄 수 있는데.” “아, 그렇구나! 그럼.” “제가 내죠.” ..  (2권 184∼185쪽)


 일본 만화쟁이 카루베 준코 님 작품을 읽을 때면 노상 ‘예쁜 만화’라고 느낍니다. 오자와 마리 님 작품을 읽을 적에는 언제나 ‘착한 만화’라고 느낍니다. 다카하시 루미코 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늘 ‘밝은 만화’라고 느낍니다. 사람과 사랑과 삶을 한결같이 밝은 빛깔과 밝은 목소리와 밝은 손길과 밝은 몸짓과 밝은 눈망울과 밝은 다리품으로 알뜰히 여미어 이야기 한 자락 베푼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 예쁘고 푸른 넋들이 좋은 ‘밝음’을 아리땁게 맞아들이면서 한결 푸르며 싱그러운 삶을 너그럽고 포근히 북돋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11.27.흙.ㅎㄲㅅㄱ)


- 경계의 린네 (1∼2) (다카하시 루미코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0/42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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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계의 린네를 보셨네요.저도 이 작품을 받지만 무척 재미 있지요.생각의 차이겠지만 다카하시 루미코가 야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볼수는 없지요.뭐 야한 그림의 정도문제 겠지만 앞서 말한 란마 1/2의 벗은 그림이 한국에서 청소년 음란물로 19금이겠지만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도 볼수있는 만화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작가가 나이를 먹고 나름 대가가 되면서 그런 장면을 더 이상 그리지 않나 싶습니다.사실 초기 작품인 도레미 하우스(전 이 작품이 무척 좋은데 당최 헌책으로도 구할길이 없네요)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sf만화의 경우 란마 못지않게 훌렁 훌렁 벗고 나오는데 이건 일본 소년물에서 기본이니까요^^

숲노래 2010-11-28 06:55   좋아요 0 | URL
도레미하우스에서 그런 그림들이 있고, 시끌별녀석들도 비슷하다 할 텐데, 루미코 님은 '엿보기 그림'이 없답니다. 늘 '통째로 다 보여주기'예요.

루미코 님한테서는 '엿보기'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은 '야한' 그림하고는 사뭇 다르답니다. 만화를 예술로 보는 눈길에서 그리는 다른 멋이지요. 여자가 여자를 그려서 다르기도 하다 할 만하지만, 루미코 님 만화는 자연스러움과 싱그러움과 꾸밈없음이라 할 수 있어요..

zlp2 2010-11-28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계의 린네 3권이 발매됬습니다... 발매된 날에 1,2권만 사신게 아닌지 염려(?)스러워 댓글답니다~

숲노래 2010-11-28 06:53   좋아요 0 | URL
3권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다가 이 글을 쓰고 나니 나왔더군요 ㅠ.ㅜ
이 글은 1권이 나와서 읽은 7월부터 쓰려고 하다가 이제서야 썼답니다 ...
 
니코니코 일기 2
마리 오자와 지음, 정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조촐한 꿈, 그리고 조촐함을 좋아하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 오자와 마리, 《니코니코 일기 (2)》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 퍽 많은 골목집 할매와 할배와 아주머니 들이 크고작은 꽃그릇에 온갖 꽃과 나무와 푸성귀를 기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웠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면 도시 한켠 골목동네는 참 작고 꾀죄죄하며 볼썽사납다 할 만합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거나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도시 한복판 골목동네는 몹시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따사롭다 할 만합니다. 십일월이라 하면 쌀쌀하다 못해 추운 날을 맞이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발이 휘날리기도 하는데, 이런 날씨에도 해바라기 알뜰히 키워 내어 소담스러운 노란 꽃송이를 구경할 수 있는 골목집이 있습니다. 골목집 꽃그릇에 배추포기 알차게 여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이분들한테 배추값이 오르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멀리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구경하라는 꽃이 아닙니다. 대단한 도시농업을 하고 있으니 지식인들이 눈여겨보거나 활동가가 알아보라는 환경운동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들 삶입니다.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고, 당신 스스로 누리는 삶이며, 당신 스스로 일구는 삶입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거나 심으며 풀을 뽑아 돌보는 모습을 바라보면 몹시 가지런하고 정갈합니다. 누가 와서 보라고 논밭을 이처럼 돌보지는 않을 텐데, 시골버스를 타고 지나가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든 둘레 논밭을 바라볼 때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우며 몸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농사짓기를 경제활동지수라든지 농업생산지수라든지 하는 숫자로 재거나 따지는 이들한테는 이렇게 돌보든 저렇게 가꾸든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머리에 스며들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나 공무원이나 정치꾼이나 회사원이나 기자나 교사가 도시 삶터를 바라볼 때에는 ‘한 달 벌이’를 잣대로 삼습니다. 이이가 버는 돈이 많으면 잘산다 여깁니다. 이이가 버는 돈이 적으면 못산다 여깁니다. 이이네 집에 꽃그릇이 몇 개요, 꽃그릇마다 몇 가지 꽃이 피는가로 잘사는가 못사는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이네 집에 탱자나무가 몇 살이요 대추나무가 몇 살이며 배나무가 몇 살인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이이네 집 빨래대는 언제 세웠고, 얼마나 많은 빨래가 이 빨래대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말랐으며, 이 빨래대 둘레에 질그릇이 몇 놓였는지를 헤아리지 않아요. 공무원은 나무전봇대를 베고 시멘트전봇대를 박을 뿐입니다. 골목사람은 목아지와 몸통이 뭉청 잘린 나무전봇대에 수국을 심어 흐드러지게 피워 냅니다. 골목사람이 따로 무슨 꽃씨를 심지 않아도 나무전봇대 서던 자리에는 들풀과 들꽃이 뿌리를 내리기 일쑤입니다.

 내 삶은 누구한테 드러내려는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좋아하여 즐기는 삶입니다. 네 삶 또한 누가 들여다보거나 재거나 따질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사랑하여 누리는 삶입니다.


- 이 아이를 맡기로 하면서 사랑을 포기했던 건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어. 애인이 생기면 어린아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저어, 니코, 언니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이브엔 그 사람과 데이트 하기로 약속했거든. 니코랑은 이브이브에 파티하자.” “이브이브?” “23일. 이브의 전날.” (53∼54쪽)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 2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는 한결 무르익은 ‘삶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결 무르익었다뿐, 아주 단단히 여물거나, 매우 튼튼히 뿌리내린 삶사랑까지는 아닙니다. 이제야 한결 무르익으며 참으로 신나며 보람찬 삶사랑입니다. 어떻게 이어가야 좋을지까지 살피지 못하는 한편, 얼마나 즐거운가를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어느 만큼 아름다운가를 헤아리지 못하는 삶사랑이에요.

 그런데요, 아직 잘 모르거나 못 느낀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직 어설프거나 어수룩하다 하여 사랑이 아니라 못박을 수 없어요. 어리석어도 사랑입니다. 모자라도 사랑입니다. 어줍잖아도 사랑이요, 어리둥절하더라도 사랑입니다. 설레면서 좋고, 씁쓸하면서 좋습니다. 달콤할 때뿐 아니라 쓰디쓸 때에도 좋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예 사랑이니까요. 사랑일 뿐이기에 언제나 좋습니다. 사랑임을 아니까 슬퍼도 좋고 기뻐도 좋습니다. 사랑을 하는 만큼 뜻을 이루어도 반갑고 뜻을 못 이루어도 고맙습니다. 이기거나 지려고 하는 운동경기가 아니듯, 얻거나 가로채려고 하는 사랑이 아니에요. 빼앗는다든지 사로잡으려는 사랑이 아니랍니다. 나와 네가 즐거우며 아름답고자 하는 사랑이에요.


- “24일에 만날 수 없다니, 갑자기 왜.” “아는 사람의 아이를 맡을 때, 그 아이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어. 왜냐면 그 애는 친엄마의 사랑을 모르고 크면서 지금까지 충분히 상처받아 왔으니까. 난 그 애가 날 필요로 하는 동안은 그 애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었어.” “24일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애한테도 특별한 날이야. 우린 어른이니까 지금까지 그런 날을 얼마든지 지내 왔고, 얼마든지 특별한 날을 만들 수 있지만, 어린아이는 다르잖아?” (62∼63쪽)


 꽤 어설프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딪힙니다. 참 어수룩한 탓에 이래저래 휘둘립니다. 퍽 멍청하거나 바보스럽다 할 만하기에 으레 헷갈립니다.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합니다. 머뭇거리거나 조마조마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느낌이 좋아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느낌들이 썩 달갑지 않겠지요.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하나둘 치러내면서, 차근차근 느끼면서, 바야흐로 사랑이란 이런 맛이구나, 사랑이기에 이렇게 멋있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글동글한 사랑이란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또는 하나부터 백까지, 모가 없거나 티가 없는 사랑이란 없답니다. 아파하고 슬퍼하며 힘들어하는 사랑입니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며, 고단하다가 개운해지는 사랑입니다.

 니코 어린이와 케이 언니는 이제까지 살면서 참다이 누리지 못하던 사랑을 늦깎이로 누립니다. 늦깎이 사랑이지만 둘도 없는 사랑임을 차츰 알고, 늦깎이 사랑이건 꽃등 사랑이건 새내기 사랑이건, 어떠한 사랑이든 사람을 곱게 가꾸어 주는 줄 배웁니다.


- “전부 합해서 782엔. 한 달에 500엔씩 용돈을 받고 있는데, 만화잡지 사고 남은 돈을 모은 거예요.” (81쪽)
- “니코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에서 자랐으니까. 그날이 처음이었어. 가짜라도 엄마 아빠랑 셋이서 외출한 것 같은 기분.” (161쪽)



 그렇지 않나요. 한 달에 백만 원을 벌면 넉넉하지 않나요. 세 식구이건 네 식구이건 다섯 식구이건. 아니,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벌어도 알뜰하지 않나요. 오십만 원 가운데 사십만 원을 밥값으로 쓰고 십만 원을 방삯으로 쓰더라도 살뜰하지 않나요. 돈이 모자라면 손전화는 안 쓰면 되지요. 돈이 없으면 텔레비전이나 빨래기계나 냉장고는 치우면 되지요. 돈이 없으니까 자가용은 안 몰면 돼요. 돈이 없는 만큼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아껴서 살아가면 되고, 돈이 없으니까 아파트 투자나 주식 투자 따위란 처음부터 아예 생각조차 않으며 살아가면 좋아요. 텔레비전을 안 보니까 연예인이든 연속극이든 운동경기이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 나누어도 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우리 식구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겪은 일을 돌이키면 됩니다. 이웃과 동무랑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됩니다. 우리 집 숟가락이 몇 있고, 너희 집 숟가락이 몇 있구나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됩니다. 우리 집 아이 기저귀 빨래는 몇 장 나오고, 너희 집 아이 기저귀는 몇 장이구나 하는 얘기를 하면 되어요.

 살림집 숟가락 갯수를 도표로 만든다든지 수첩에 적바림해 놓고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이나 나이나 태어난 해나 띠나 다닌 학교나 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머리속에 안 담아도 됩니다. 그때그때 말문을 열고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말을 섞으면 그만입니다. 부침개를 몇 장 더 했으니까 접시에 담아 나누어 주면 됩니다. 고맙게 부침개를 얻어 먹었으니 접시를 돌려줄 때에 잘 익은 감알 몇 따서 아이한테 들려 보내면 됩니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몇 점 걸렸는가 세 보아도 즐겁습니다. 오늘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올 때에, 멧등성이를 멋들어지게 날아가던 누렁조롱이를 마주한 일을 어머어머 오늘 있잖니 하면서 조잘조잘 떠들어대어도 신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내 삶에 다 있습니다. 즐거운 일은 내 삶에 고루 있습니다. 고운 꿈은 내 삶에 알맞게 있습니다.


- 그러나 이 아이의 주위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온통 거짓뿐이었다. (156∼157쪽)
- 지금부터라도 관계는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데, 미후유는 자신이 얼마나 아까운 걸 놓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158쪽)


 《니코니코 일기》 2권에 이르러 비로소 무르익는 삶사랑을 맛보는 케이 언니는 ‘아이를 낳는 아픔과 기쁨’이라든지 ‘갓난쟁이가 어린이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돌보는 고단함과 보람’을 모릅니다. 그러나 ‘여덟 살 어린이가 아홉 살 어린이가 되는 결’하고 ‘아홉 살에서 열 살로 접어드는 고비’를 복닥이면서 갓난쟁이일 때에는 갓난쟁이일 때대로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꼬맹이였을 때에는 꼬맹이였을 때대로 어느 만큼 어여뻤으며, 오늘 여덟아홉 살 어린이는 이 나이대로 어찌어찌 아리따운가를 헤아립니다. 쉬 놓칠 뻔한 삶을, 아니 이제껏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삶을, 어쩌면 앞으로도 꿈꾸지 못했을 삶을 고맙게 마주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고마운 하루하루임을 깨달으면서 더 보람차며 알차게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케이 언니 스스로 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케이 언니 둘레 사랑스러운 동무와 좋은 짝꿍한테 조촐히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케이 언니 둘레 사랑스러운 동무는 케이 언니가 왜 이렇게 촐랑대는지를 잘 알아챕니다. 케이 언니 둘레 좋은 짝꿍은 겉훑기로만 돌아봅니다. 사랑스러운 동무는 사랑스러운 여러 가지 얼굴을 모두 껴안습니다. 좋은 짝꿍은 틀림없이 좋은 짝꿍이기는 한데 속읽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 “괜찮아.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돼! 이리 와! 케이 언니도 그렇게 할게. 지금부터 니코의 친엄마라고 생각할게!” “언니.” “엄마답지 못한 엄마라 미안해. 그래도 니코를 정말 사랑해!” (165쪽∼166쪽)


 스물일곱 달째 함께 사는 딸아이 손을 잡거나 발을 잡거나 작은 몸뚱이를 껴안을 때에 ‘내가 이 아이 아버지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볼일을 봐야 해서 홀로 인천이나 서울로 마실을 가야 할 때에 시외버스를 타며 깡통보리술을 하나 톡 따곤 합니다. 홀짝홀짝 들이키며 가슴이 저밉니다. 글쎄, 가슴이 저미기 때문에 홀짝홀짝 들이킨다고 해야 옳겠지요. 오늘 하루 또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심심할 테고 엄마는 엄마대로 고단하겠다고 헤아리면서,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우리 살붙이하고 얼마나 따사롭거나 넉넉한 사람으로 지냈는가를 뉘우칩니다. ‘내가 참, 한 집안에서 지아비요 아버지임을 잊으며 살지 않았나.’ 하고 되새깁니다.

 만화책으로 다 보았고 거듭 보았으니 줄거리를 뻔히 알지만, 만화영화로 만들어 새롭게 나온 《블랙 잭》을 보면서 스르르 눈물이 흐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든 〈기적의 팔〉이든 훤히 꿰는 줄거리인데, 다시 보고 또 볼 때마다 가슴이 촉촉히 젖어듭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만화를 그려냈을까 곱씹으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니코니코 일기》를 2권째 차근차근, 한 장 두 장 천천히 넘기면서 오자와 마리 님은 어떠한 넋으로 이 만화를 담아냈을까 곰삭이며 가슴이 찡합니다.

 바로 사랑이겠지요.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일 테지요. 내 몸하고 나눈 피가 흐르는 살붙이라 해서 사랑인가요. 내 몸하고는 동떨어진 피가 흐르는 동무나 이웃이나 짝꿍이라 해서 사랑이 아닌가요.

 아이한테는 어머니 품처럼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은 없다 합니다. 그런데 내 어머니가 아닌 품이면서 어머니 품하고 똑같이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이 있습니다. 어머니 품하고는 사뭇 다르게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이 있어요.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대로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품으로 맞아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가 아닌 사람 또한 이 땅에 꼭 하나뿐인 품으로 맞아들여요.


- “난 그 애와 함께 즐기려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도 가끔은, 이 ‘가족’ 놀이를 함께 즐겨 주었으면 해.” (172쪽)


 꿈은 조촐합니다. 꿈인 만큼 조촐합니다. 꿈이니 조촐해요. 조촐하지 않을 때에는 꿈이 아닙니다. 조촐하지 않은 생각은 부질없는 허우적거림입니다. 조촐하지 않은 생각을 자꾸 품으면 덧없이 갈팡질팡해댈밖에 없습니다. 조촐함하고 등지며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나 믿음을 맛볼 수 없어요.

 니코 어린이는 엄마랑 아빠랑 니코랑 셋이 조촐히 나들이를 하는 삶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케이 언니는? 케이 언니는 어떤 삶을 누리고 싶어 하나요. 아마, 케이 언니는 니코 어린이를 만나지 못했으면 좁은 도시에서 좁다란 속알맹이로 좁다란 돈을 벌면서 좁다란 집에서 좁다란 삶을 좋다란 나날에 허덕이며 좁다란 줄 모르고 좁다랗게 숨을 거두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케이 언니는 니코 어린이를 만나 ‘거짓 엄마’라는 허울이 아닌 ‘참 엄마’라는 삶을 누립니다. 케이 언니 삶을 참다웁고 아름다이 일구는 길을 넉넉히 맞아들입니다. 조촐함을 즐기는 삶을 새롭게 느끼며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케이 언니가 품는 꿈이란? ‘니코 어린이 가슴에 더는 생채기가 안 생기도록 지키는’ 일이 아니라 ‘니코 어린이와 케이 언니 두 사람 가슴에 사랑을 심도록 서로서로 좋아하는’ 삶입니다. (4343.11.4.나무.ㅎㄲㅅㄱ)


― 니코니코 일기 (2) (오자와 마리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옮김,2002.9.3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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