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1
시무라 타카코 지음, 오주원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고운 삶
 [살가운 만화 53] 시무라 타카코, 《푸른 꽃 (1)》



- 책이름 : 푸른 꽃 (1)
- 글ㆍ그림 : 시무라 타카코
- 옮긴이 : 오주원
- 펴낸곳 : 중앙북스 (2009.12.23.)
- 책값 : 7800원



 (1) 다짐


.. “미안해. 말 안 해서.” ..  (41쪽)


 《섹시 가이 (1∼7)》(세주문화,2000∼2003)와 《방랑 소년 (1∼8. 앞으로 더 나옴)》(학산문화사,2007∼2010)이 나라안에 옮겨진 일본 만화쟁이 시무라 다카코 님 《푸른 꽃》 1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는 3권까지도 나와 있고 만화영화로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 우리 나라에는 1권만 나와 있습니다. 《방랑 소년》은 새로운 권이 옮겨질 때마다 띠종이에 새 말이 하나씩 붙는데, “우리들의 비밀”과 “우리들의 꿈”에 이어 8권째에는 “우리들의 결단”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방랑 소년》은 이야기가 마무리된 다음에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하는데, 8권째에 이르러 ‘힘들게 헤매던 아이들’이 굳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방랑 소년》에서 주인공인 여자아이는 중학생 2학년이 된 때에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또다른 주인공인 남자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단짝동무였던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온 모습을 보고 여러 날 마음앓이를 한 끝에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기로 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 정체성이 흔들리는’ 삶이라 하겠지요. 그러나 여느 사람들이란 누구를 가리킬는지 궁금합니다. 이 아이들 눈길에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걷고 싶은’ 삶입니다. 이 아이들 또한 여느 아이요 여느 사람이며 여느 길을 걷는 고운 목숨입니다. 다만, 이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걷고 싶기 때문에 갈팡질팡합니다. ‘여느’라는 이름을 앞에 내거는 어른이나 동무들은 하나같이 겉보기로만 ‘여느’이지, 알고 보면 틀에 박히거나 판에 박힌 제도권만을 쑤셔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에는 무얼 하고 저 나이에는 무얼 하며, 이때에는 무슨 옷을 입고 저 자리에는 무슨 일을 하며 …… 하면서 모든 자리 모든 때에 맞추어진 틀이 있습니다. 이 틀을 따라야 ‘여느’ 삶이라 하고, 이 틀을 따르지 않으면 ‘미친’이나 ‘얼빠진’이나 ‘바보스런’이 되고 맙니다. 좋아하는 야구단이 있어야 하고, 체육 시간에는 다 같이 뜀박질을 해야 하며, 학교에서는 공부에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여느’가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렇게 꾸리는 삶이 ‘여느’라 할 수 있을까요.

 만화책 《방랑 소년》 8권은 주인공인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나, 스스로 누구임을 밝히자 학교가 온통 뒤집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에는 거의 아무런 말썽이 되지 않았으나,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니 더없이 크게 말썽이 됩니다. 그래도 일본이니까 여자아이가 남자 교복을 입어도 그렁저렁 지나가지, 우리 나라였다면 똑같이 뒤집어졌겠지요.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남자아이가 여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면 아홉 시 새소식에서도 다루고 기자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법석을 이루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흑……, 으…….” “또 뭔가 생각이 났구나? 울음 뚝! 밤엔 자는 거야! 알았어?” “응……. 옛날에도 이렇게 너한테 자주 혼났지.” “너네 할머니만 할까?”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대단했지.” “난 옆집 애였는데 맞았다니까!” “그 할머니도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  (66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가 머리를 ‘단발머리’만큼이나마 기르는 일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사이야 다들 흔히 머리를 기르곤 합니다만, 우리 나라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머리카락을 아예 안 깎으며 살던 겨레였으며, 고작 백 해 앞서는 누구나 이렇게 살았습니다. 남자가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는 사회문화는 일제강점기에 스며들었고 군사독재정권이 정부권력을 붙잡았을 때 뿌리내렸습니다. 반드시 독재정권과 ‘머리길이’ 이야기를 맞댈 수 없습니다만, 사회와 문화와 제도와 법이 차갑게 틀어막힌 나라에서는 ‘머리길이를 짧게’ 하려고 안달입니다.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도록 다스리고, 사람마다 다 다른 머리결을 다 다른 모양새로 손질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억누릅니다. 운동선수라 하여 머리를 다 짧게 쳐야 하지 않고, 운동선수로 뛰면서도 긴머리를 휘날릴 수 있습니다. 물에서 헤엄을 칠 때에 ‘전신수영복’을 입을 수 있고 ‘아주 짧은 헤엄옷’을 입거나 아예 알몸일 수 있습니다. 달리기 선수도 저마다 입고픈 옷을 입기 나름이고, 달리면서 흩날리는 머리결 느낌을 좋아할 수 있으며, 흐르는 땀을 머리띠로 막을 수 있는 한편, 박박 민 머리에 와닿는 바람 느낌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카락 길이를 우격다짐으로 틀에 박아 버립니다. 초등학생은 어떠하고 중학생은 어떠하며 고등학생은 어떠하도록. 대학교에서조차 교수에 따라 학생들 머리길이를 놓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곤 합니다. 요즈음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1994∼1998년에 대학교에 한동안 머물고 있을 무렵 저는 ‘남학생 주제에 머리가 길다고 학점이 깎이기’ 일쑤였습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딱히 눈총을 안 받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는 때까지 고향동네 인천에서든 서울로 마실을 나올 때이든 ‘저 남자는 뭔데 머리를 길러? 미쳤나 봐?’ 하는 수군거림을 뒤에서 숱하게 들었습니다. 길 가던 할배나 전철길 할배 가운데에는 저를 붙잡고 머리를 깎으라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대로 놔 두고 고무줄로 한 번 묶어 주었을 뿐인데에도.

 하리수 님이야 성을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지만, 성을 바꾸는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이 치마를 입고 다닌다면 틀림없이 경찰이 달려와 붙잡아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영어로 ‘커밍아웃’이라는 일을 하든 스스로 ‘성 정체성 밝히기’를 하든 ‘남자가 남자 사랑하기’나 ‘여자가 여자 사랑하기’를 하든, 둘레에 있는 사람들은 등을 돌리거나 손사래를 치거나 손가락질을 하리라 봅니다.

 우리한테는 꿈 같은 소리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는데, 삶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든 만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이든, 《방랑 소년》 두 주인공은 8권에서 굳게 다짐을 하고 저희들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푸른 꽃》에서는 8권까지 안 가고 바로 1권부터 주인공이 ‘나(여자)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며 이러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습니다.
 







 (2) 사랑


.. “확실히 나무 쪽이 정취가 있지.” “후지가야(고등학교) 멋있던데요.” “그야말로 도서관이라는 느낌이랄까.” “아키라가 그 학교를 고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 아키라는 그때 있던 제 …….” “후지가야에는 ‘도서관의 그대’라는 게 있었는데.” “머, 멋있네요.” “물론 선생님은 장난으로 그렇게 부른 거였지만, 그걸 몰래 들은 학생이 있어서 소문이 났지. 그것뿐이야. …… 왜 울어?”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딱 붙지 마세요.” “그럼 심호흡해.” “하아아아.” ‘철제 책장에 둘러싸인 도서실이 나와 선배가 처음으로 키스한 곳.’ ..  (114∼116쪽)


 사랑은 어떻게 느끼는 마음일까요. 사랑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마음일까요. 사랑은 누구한테 느끼고 누구한테서 배울까요. 사랑은 어떻게 드러내거나 나타내면서 손길을 내밀까요.

 어버이 된 사람들은 아이들이 느끼며 맺으려고 하는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이들이 느끼며 맺으려고 하는 사랑이 철없어 보이는 짓이라 느끼기에 뜯어말려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예전에 다 겪은 어른들인 까닭에 아이들은 당신들처럼 잘못되거나 어수룩하거나 못난 길을 다시 안 밟기를 바라며 ‘한 번에 척 하고 멋진 사랑을 이루’라고 다그칠 수 있을까요. 사랑이란 누구나 맨 처음 붙잡는 사람하고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더없이 흔히 쓰는 말마디 ‘사랑’은, 흔하고 또 흔하고 다시금 흔하게 쓰더라도 조금도 닳거나 낡지 않습니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더욱 빛나고 고운 결로 살며시 내려앉으며 우리들 삶에 스며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설프게 외치는 사랑이든, 겉발림으로 들먹이는 사랑이든, 참다이 어루만지는 사랑이든, 기쁘게 나누는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고자 할 때에는 맑음과 밝음이 알맞게 어우러진다고 느낍니다.


.. “괜찮은데, 그 머리. 잘 어울려.” “선배.” “응?” “저, 선배랑 같이 등교하는 거 그만둘래요.” “뭐, 그래도 괜찮긴 한데. 아! 아키라 때문이구나! 아키라한테 혼났어?” “아키라는 그런 애 아니에요.” “정리하자면 아키라와 먼저 약속했는데 나랑 마주친 거구나.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래,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죄송해요.” “등교는 아키라한테 양보할게. 하교는 나를 위해 남겨 놔. 내일부터라도 좋으니까.” “선배.” “여자애는 참 손이 많이 간다니까.” ..  (126∼128쪽)


 만화책 《푸른 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생 나이로 사랑을 느끼고 말하고 아파하며 기뻐합니다. 이 나라에서 고등학생이라면 중학생 때보다 한결 모질고 끔찍하게 대입 시험에 매달리며 세상하고는 담을 쌓을 뿐 아니라 옆에 앉은 동무를 쳐다보아서도 안 되는 듯 내몰리는 가녀린 아이들입니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 다음에 비로소 집인 아이들이나, 집에서 식구들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동무들하고 속을 터놓는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습니다. 동아리에 들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동아리에 들어간들 꿈을 키울 수 있을까요. 모든 꿈이든 뜻이든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 듯이 짜여 있는 이 나라입니다. 옌예인이 되고자 하여도 대학 졸업장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이며, 농구를 하거나 야구를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할지라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농사를 짓는다든지 공장에서 기계를 다룬다든지 버스나 택시를 몬다든지 빵을 굽는다든지 물고기 살을 가른다든지 떡을 찐다든지 할 때에도 대학 졸업장이 먼저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대학 졸업장이 없을 수 없겠지요. 법관이 되거나 판사가 되고자 한다면 아주 마땅하게도 대학 졸업장입니다. 일터에서 함께 지내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몸과 머리 모두 다스리는 삶이란 아예 막혀 있습니다. 늘 졸업장을 먼저 내밀어야 합니다. 늘 사람이 아닌 서류를 봅니다. 늘 겉모습과 겉차림을 살핍니다. 늘 속마음이나 속뜻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만화책 《푸른 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건 3학년이건 스스로 꿈꾸고 바라는 길을 깊이 돌아봅니다. 연극부에 몸을 담든 도서관에서 책을 살피든,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 책장을 넘기며 스스로 생각하여 말을 꺼냅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이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전철역에 가고 전철을 타며 학교에 간 다음 스스로 귀를 기울여 수업을 듣는 삶이니까요. 스스로 찾아서 듣고 익히는 하루하루이니, 사랑을 느낄 때에도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 따라 느낍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이니, 사랑을 나누고자 할 때에도 스스로 바라는 마음결에 따라 움직입니다. 엄마한테 얘기하고 입맞춰야겠습니까. 아빠한테 말하고 손을 잡아야겠습니까.

 내 힘으로 붙잡습니다. 내 넋으로 곱씹습니다. 내 말로 나타냅니다. 내 몸으로 어루만집니다. 내 눈으로 바라봅니다.

 사랑이란 바로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닌 내 힘과 넋과 말과 몸과 눈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찾아왔구나’ 하고 느끼는 따스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이란 다름아닌 나 스스로 깨달으면서 ‘이런 마음이 내 속에 있었구나’ 하고 기뻐하는 넉넉함이 아니랴 싶습니다.
 







 (3) 한 사람이 되어 걷는 길


..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 내 사고방식이 너무 단순한 건가?’ …… “이쿠미, 있잖아.” “응.”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면 어떡할 거야?” “저, 정말?” “만약의 이야기라니까.” “아! 그래서 코우 오빠랑 안 만나는구나.” “만ㆍ약ㆍ에! 그리고 코우 오빠 문제는 이거랑 별개의 문제고!” “아, 그래? 만약이란 말이지.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면 어떡할래?” “응? 으응, 응원?” “고마워. 그럼 그게 최선이 아닐까?” “음.” ..  (144∼146쪽)


 만화책 《푸른 꽃》을 이루는 주인공 둘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둘은 어릴 적 단짝동무입니다. 서로 열 해 만에 만났는데, 단짝동무 하나가 다른 단짝동무한테 ‘여자 선배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단짝동무는 어떡해야 좋을까를 한참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풀이법을 찾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나란히 앉는 옆 동무한테 물어 봅니다. 스스로 풀이법을 찾지 못하기에 옆 동무한테 도움을 바랍니다. 옆 동무 또한 마땅한 풀이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풀이법이 없으면 없는 대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이란 늘 뾰족하고 또렷한 풀이법이 있지는 않으니까요. 다가오는 대로 부딪히면서 딱지가 나고, 밀려오는 대로 부대끼면서 새살이 돋으니까요.

 마땅한 노릇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이든 우정이라는 이름이든 믿음이라는 이름이든, 늘 반갑고 기쁘고 고마운 일만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슬프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함께 생깁니다. 반가울 때에는 반가운 대로 받아들이고 슬플 때에는 슬픈 대로 받아들이면서 단단해집니다. 기쁠 때에는 기쁜 대로 껴안고 괴로울 때에는 괴로운 대로 껴안으면서 부드러워집니다. 고마울 때에는 고마운 대로 함께하고 어려울 때에는 어려운 대로 함께하면서 아름다워집니다.


.. “아침에 날 바람 맞혔더라.” “아! 그게! 그건 그 …….” “나, 어떡해야 돼?” “……” “응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 “……” “음, 그냥 그대로?” “아! 그대로!” ..  (152∼153쪽)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대끼고 부딪히면서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아파하면서 자라고, 괴로워하면서 큽니다. 아파하면서 단맛과 함께 쓴맛이 있음을 느끼고, 단맛만 있지 않고 쓴맛이 있어서 좋은 사랑이요 삶이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쓴맛이 있어 단맛이 좋음을 느끼고, 단맛이 있어 쓴맛이 닥칠 줄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누구나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기까지 아이인 때를 거쳤고, 우리 또한 오늘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때와 곳에서 스스로 길을 찾느라 헤매고 떠돌고 갈팡질팡하면서 내 길을 붙잡았습니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옷을 걸치고 있지만, 속내는 예전과 다름없이 아이인지 모릅니다. 우리보다 나이든 어른 또한 웃어른이라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인지 모릅니다. 웃어른이라고 더 세상을 부대끼거나 겪으며 단맛 쓴맛을 고루 안다고 하기 힘듭니다. 아이라고 덜 세상을 부대꼈거나 겪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부대끼거나 겪습니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사랑을 만나고 어루만집니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손을 내밀고 맞잡으며 쓰다듬습니다.


.. “후미, 아까부터 얼굴이 빨개.” “진짜? 그렇게 빨개?” “혹시 야한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냐?” “아냐!” “농담이야. 얼굴 빨간 건 진짜야.” …… 너무나도 작은 그 꽃은 너무나도 작아서 바로 곁에 있지만 알지 못하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그런 꽃 ..  (186∼187쪽)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운 삶이지만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운 삶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든, 서로를 달뜨게 하며 기쁘게 하는 마음결이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일 때일 테니까요.

 만화책 《푸른 꽃》은 내가 한 사람으로서 다른 한 사람한테서 아름답고 보드라운 넋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삭트는 푸르고 풋풋한 고등학생 아이들 삶을 그려냅니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과 어울림은 이 만화에서 드러나듯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고운 삶’으로 보여질 수 있고, 또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호미를 쥐고 밭뙈기를 일구는 땀방울에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고운 삶’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흘리는 땀방울에서 이 마음자락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을 조용히 헤아리면서 내 손길이 새롭게 탈 좋은 책 하나 찾는 땀방울에서 이 마음밭이 샘솟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으며, 사랑이란 우리 마음속 깊은 자리이든 얕은 자리이든 노상 머물고 있는 가운데, 사랑이란 우리 터전과 자연과 뭇목숨 어느 한켠에 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러한 사랑을 느끼느냐요, 언제 어떻게 이와 같은 사랑한테 손을 내밀며 뜨거워지느냐입니다. (4343.2.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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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커 토우마 1 - 안개 속
가나리 요자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 도시에는 어떤 ‘숲 발자국’이 있을까
 [살가운 만화 52] 노마 로쿠, 《토우마》 1∼3권



- 책이름 : 토우마 1∼3
- 그림 : 노마 로쿠
- 글 : 카나리 요자부로
- 옮긴이 : 김은명
- 펴낸곳 : 서울문화사 (2009)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오늘


 며칠 동안 뭇사람들하고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골목마실이란 다름아닌 ‘내가 살아가는 이 동네에 어떤 이웃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거나 만나려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달릴 수 있으나 두 다리로 더욱 슬금슬금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골목 한켠에서 오래도록 둘러볼 수 있고, 동네이웃하고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참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떠나면서 나라밖 사람하고 부대끼며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우듯,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내 삶터 가까이나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부대끼면서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웁니다.

 저는 늘 다니는 골목마실이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고 철과 때와 날씨에 따라서 골목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새삼스럽지 않다 할 만한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새삼스럽습니다. 어릴 적 태어나서 살던 골목을 만나든, 여태까지 한 번도 겪거나 본 적이 없는 골목을 거닐든,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손자국과 발자국을 만납니다.

 오래된 문패를 쓰다듬고, 굵직하게 박혀 있는 나무전봇대를 어루만집니다. 오래된 골목동네에는 으레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습니다. 시멘트전봇대를 박으러 시설이나 차를 몰고 들어올 수 없어 이대로 잘 살아남아 있곤 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지는 알 길이 없는 제비집을 올려다보고, 이제는 거의 안 쓰는 예전 유리문을 들여다봅니다. 올록볼록 무늬가 새겨진 유리문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마련한 유리문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유리문에 붙인 판박이가 스무 해나 서른 해, 때로는 마흔 해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보기도 합니다.

 토박이가 없다는 인천이라 하지만, 외려 이제는 토박이가 많은 인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웬만한 도시이든 시골이든 이렇게 세월 손때가 구석구석 남은 살림집과 골목집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쉰 살 먹은 살림집들로 온 골목이 가득가득한 동네가 우리 나라에 몇 곳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부산쯤? 목포쯤?


.. “젠장, 이틀 동안이나 아무런 단서를 못 잡았잖아.” “당연하죠, 형사님. 이렇게 넓은 산에서 겨우 한 사람을 찾는 거니까요. 자연을 너무 쉽게 보면 안 됩니다.” … “내가 무섭지 않았나요?” “예.” “!!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요?” “발자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짜 당신은 자연을 사랑하는 착한 마음의 주인입니다.” … “영우라는 동물은 멋지게 왼발, 오른발을 나란히 걷거든.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어때 재미있지? 이 여우는 이쪽에서 이쪽을 보면서 걸어왔어. 신중하게 주위를 신경쓰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왔어.” … “아무 소리가 없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내 청력 때문인가?” “숲도 살아 있습니다.” ..  (1권 6쪽, 31, 50, 71쪽)


 추운 겨울날 온몸이 얼어붙으며 골목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두껍게 껴입는 옷과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면 겨울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95%쯤 되는 정보를 눈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낀다고 하는데, 눈을 감고 코나 살갗이나 귀로 느낄 수 있는 겨울 살림살이와 매무새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휘휘 둘러볼 때에, 골목동네라는 곳에서든 아파트숲이라는 곳에서든 얼마나 겨울다움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흙 한 줌 느긋하게 길바닥에 엎어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골목길이라고 해서 흙길이 아닙니다. 골목사람이 흙을 짊어지고 와서 조촐하게 골목밭을 일구고 골목꽃그릇을 가꾸니 흙내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있을 뿐입니다. 흙내음을 싣고 흐르는 바람결이 없고, 꽃내음을 담아 오가는 바람물결이 없습니다.

 흙이 없으니 지렁이가 없습니다. 풍뎅이도 없습니다. 나비도 없고 벌도 없습니다. 골목밭을 알뜰살뜰 일구는 동네 외딴 구석에서는 가끔가끔 벌나비를 만나지만, 도심지에서 벌나비를 만날 길이란 없습니다. 벌나비뿐 아니라 잠자리도 없고 사마귀와 메뚜기도 없습니다. 소금쟁이와 물방개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렁이나 조개를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인천 앞바다 드넓은 갯벌은 국제공항 닦는다며 모조리 덮고 메우는 바람에, 또 예부터 항구를 넓히고 공장을 세우며 아파트를 박는다면서 하나하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한강을 타고 흘러드는 쓰레기물에다가 인천 앞바다를 빙 둘러 세운 숱한 중화학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물이 겹치며 갯벌이 죄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말로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느끼는 봄이란, 여름이란, 가을이란, 겨울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자연을 어느 만큼 맛보거나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뭉게구름 없고 무지개 없는 이 땅인데. 소나기 없고 눈부시게 맑은 햇살 사라진 이 땅인데. 살랑바람도 꽃바람도 죽어 버린 이 땅인데. 이 땅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목숨붙이가 되어 서로 부대끼면서 복닥복닥하고 있는가요.


.. “도시의 규칙은 너무 복잡하죠. 때로는 단순한 규칙 따윈 보이지 않게 되죠. 일어서지 못할 정도까지 걷고 난 후에는,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쉬면 됩니다.” … “하지만 생물은 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활동하기 위해서, 더 생산해 내기 위해서. 그 사실은 오늘 숲에서 배웠습니다. 전 이제 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를 해고하신다고 해도!” … “정말 찾을 수 없게 되는 건 그렇게 말하고 포기할 때입니다.” …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약자는 항상 강자의 그림자에 겁을 먹으며 살아가야 해. 하지만 그런 약자도, 가끔 목숨을 걸고 강자에게 도전할 때가 있단다. 자신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승산이 없는 상대라 해도 말야! 넌 제비꽃을 피해서 걷는, 마음씨 착한 사람이더구나.” ..  (1권 74, 78, 125, 156∼157쪽)


 골목마실을 함께하는 분들하고 동네 만두집에 들어갑니다. 지난날 오성극장이 있을 때에 극장 앞에서 만두를 굽거나 쪄서 팔던 길가 만두집입니다. 따뜻하게 구운 만두를 씹어먹는데, 만두집 라디오에서 ‘연봉 100억이 넘는 사람 …… 연봉 1억이 넘는 사람 ……’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라디오이든 방송이든, 또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온누리에 퍼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돈하고 얽혀 있습니다. 이 땅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소식과 정보는 온통 돈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돈을 다루기만 합니다.

 돈이 아닌 삶을 다루는 소식과 정보는 참으로 드뭅니다. 돈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소식과 정보는 더없이 드뭅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는 책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돈맛과 돈바람이 아닌 따순바람과 너른바람을 고이 담고 있는 책을 찾아 읽기도 어렵습니다.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는 책인데, 이 책들 가운데 바람내음과 구름내음과 비내음과 눈내음과 바다내음과 땅내음을 고이 싣고 있는 책은 손가락 몇 개로 꼽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이는 책을 읽는 이대로, 책 아닌 인터넷이나 방송에 기대는 이는 이들대로, 머리속을 꽉꽉 채우는 지식보따리만 큽니다. 사람다움과 목숨다움을 살리는 이야기는 거의 눈꼽만하다 싶을 만큼 초라하게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 “이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니까요.” … “큰소리나 메일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단다. 상대의 호흡, 체온의 온기, 심장의 박동.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말과 문자만이 아니란다.” ..  (1권 166, 211∼212쪽)


 오늘을 살아간다지만, 도무지 오늘 무얼 하며 살아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 길이 없는 주제에 날마다 길을 나섭니다. 골목길을 나서고, 책길을 찾습니다.
 





 (2) 어제


 오늘은 사진기를 들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오늘은 아기를 한손에 안은 몸으로 사진기를 목에 걸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어제는 자전거 짐바구니와 짐받이에 신문을 가득 싣고 골목길을 누볐습니다. 외딴 골목이나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서는 들머리나 어귀에 자전거를 세우고 겨드랑이에 신문뭉치를 낀 다음 후다닥 달리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실장갑 하나를 낀 채 신문딸배(신문배달)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형과 동생은 모두 오토바이를 탔지만 저는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오토바이 딸배보다 먼저 일을 마쳤고, 맨 먼저 일을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와서 형들하고 함께 먹을 아침을 차렸습니다.

 왼손으로는 무거운 자전거를 붙잡으며 달립니다. 짐바구니에는 쉰 부, 짐받이에는 백칠십 부를 실은 자전거입니다. 제가 돌린 ㅎ신문은 그나마 신문 두께가 얇았고, 다른 이들이 돌린 신문은 두께도 두껍고 부피도 많았습니다. ㄷ신문 딸배 아저씨는 단단하고 굶은 쇳가락을 용접해서 짐바구니를 둘 달고도 짐받이에는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도록 신문을 싣고 달리곤 했습니다. 이웃 우유딸배 아주머니는 우유상자를 일곱 개 자전거에 붙이며 골목을 누볐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누구나 왼손으로 손잡이를 버티고, 오른손으로는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슥 꺼냅니다. 이윽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꿴 다음 오른허벅지에 탁 치며 반으로 접고, 다시금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꿰어 오른허벅지에 또 한 번 탁 치며 다시 반으로 접습니다. 그러고는 손아귀로 슥 움켜쥐고 손목힘으로 휙 날리면 골목집 대문 안쪽으로 종이비행기처럼 시잉 날아가서 골목집 신발 놓는 섬돌에 톡 하고 떨어집니다.

 골목집은 집 모양이 모두 다른 까닭에, 어느 집은 이렇게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탄 채로 ‘한손 접기(한손으로 신문을 그 자리에서 접기)’를 하며 넣지만, 대문에 걸치는 집이 있고 우유주머니에 넣는 집이 있으며 창문을 살짝 열고 끼워 놓는 집이 있습니다. 2층에 사는 분이라면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어깨와 팔뚝힘을 써서 휘익 하고 던져 넣고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멈추고 신문을 넣으면 그만큼 시간을 잃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전거에 탄 채로 한손으로 휙휙 넣고 다른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나중에 신문딸배 일이 익숙해진 뒤에 3층집에 신문을 넣을 때에도 자전거에 탄 채로 가끔 해 보았는데, 3층집까지 자전거에 탄 채로 넣자면 여느 내기로는 퍽 힘듭니다. 저도 두 번 가운데 한 번은 실패해서, 엉뚱한 데에 떨어진 신문을 다시 주워 넣느라 시간을 더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좀더 익숙한 사람들은 4층집뿐 아니라 5층집까지 신문을 잘 접어서 던져 넣습니다. 접는 매무새가 여느 종이접기하고는 많이 다른데, 제대로 접지 않으면 잘 날아가지 않을 뿐더러, 갓 나온 신문이 구겨집니다. 날아갈 때에도 잘 날아가고, 독자네 문에 톡 부딪히며 바닥에 착 펼쳐질 때에 구김살이 사라지도록 옳게 접을 줄 알자면 신문딸배 다섯 해는 되어야 합니다.


.. “자신이 유괴되면서도 범인인 엄마의 마음을 배려했었으니까요. 그래요, 언제나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건 어른이고, 어린이는 그런 어른을 보면서 어른 이상으로 잘 자라는 겁니다.” … “왜 이렇게 모두들 열심히 수색하는 거죠?” “누구라도 한 번쯤은 미아가 된 경험이 있겠죠?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섭고, 누구라도 그런 힘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구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숲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2권 54, 151쪽)


 신문딸배를 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날씨읽기를 배웠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날씨읽기를 방송이나 신문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가면서 느끼고, 집안에서도 밥을 먹으며 느낍니다. 빨래를 하고 널면서 느끼고, 신문값 걷으러 다닐 때에 느낍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고, 밤골목에 가만히 서서 밤바람을 살갗으로 맞으면서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유딸배한테는 비가 오더라도 우유가 젖어서 못 쓸 일이 없지만, 신문딸배한테는 비가 와 신문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죄다 못 씁니다. 여느 비 안 오는 날에도 뜻하지 않게 젖을 수 있고 찢어질 수 있습니다. 골목집에서 기르는 개가 쉬를 눈다든지 물어뜯을 수 있으니까요. 잠자리에 들기 앞서 이튿날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를 가늠하고, 비가 오면 언제쯤 얼마나 올까를 헤아립니다. 신문을 돌릴 무렵에 비가 올 때하고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비가 올 때에는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비가 쏟아질 때와 질금질금 흩뿌릴 때에도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신문딸배가 먹고사는 일인 사람은 날씨방송이나 날씨기사가 아닌 내 몸과 느낌으로 날씨를 알아채야 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느끼며 바람과 햇살에 실린 물기가 어떠한가를 느껴야 합니다.


.. “너무 피곤해요. 당신 질문에 대답하는 게 힘들 정도로.” “숲속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는 일은 그 정도의 중노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아를 찾아도 표정을 지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 당신을 찾아 주셨던 분들도 똑같지 않았을까요? 어둡고 넓은 숲속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돌아다니면서 몇 시간씩이나 사람을 찾아 헤맨다는 건 우리처럼 매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로도 힘든 작업인데, 갑자기 불려나온 익숙치 않은 자원봉사자들이면 더더욱 그렇죠.” ..  (2권 158쪽)


 신문딸배로 먹고살던 지난날은 벌이가 영 시원찮을 뿐더러, 신문값 떼어먹고 내빼는 사람들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러나, 도심지에 살면서도 도시에서 어떻게 자연을 느끼는가를 배웠습니다.

 도심지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는 길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아파트 난간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든지, 달동네 오르막에서 홀로 자전거에 기댄 채 새벽 햇살을 느낀다든지 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술이 얹혀 꺽꺽대는 사람들까지 모두 잠든 깊은 새벽에 조용히 홀로 일어나 내 자전거 페달 소리와 골목길을 내닫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가만 울리는 하루하루는 기뻤습니다. 언제나 잠들어 있는 도시 골목길에서, 늘 맑게 깨어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갓 찍어 잉크냄새 짙은 신문이 내 몸과 옷과 손에 짙게 배어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3) 글피


 아기는 힘을 알맞게 맞추며 손놀림을 하기에 아직 이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잎사귀가 아야 해. 잎사귀는 살그머니 대면서 귀여워 해야지.” 하고 넌지시 일러 주면, 아기는 이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서 꽃잎사귀를 살그머니 쓰다듬거나 아주 천천히 손끝으로 톡 갖다 댑니다.

 그런데 갓난쟁이가 아닌 다 큰 어른들은 “그렇게 마구 다루면 어떡해?” 하고 일러 주어도 한귀로 흘리거나 “내 맘이야!” 하면서 나무를 차고 밟고 꽃잎사귀를 후두둑 잡아당겨 뜯습니다. 갓난쟁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삶터 목숨붙이들을 고이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곧잘 알아듣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연 삶터에서 태어난 또다른 목숨붙이이고 푸나무와 우리는 동무요 이웃이라고 일러 주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머리통 굵은 우리 어른들은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알아들을 마음조차 없습니다. 흔히 일컫는 대로 우리 어른들은 돈한테 노예가 되어 끄달리고 휩쓸린 채 살아갑니다.


.. “거리에서의 난 너무나 무력하다. 범인의 낌새도 알아차릴 수 없는 상태다. 도시는 내가 살아가는 숲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연은 전부 아스팔트로 덮혀져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이곳에 트래커인 내가 있을 곳은 없는가?” ..  (3권 68쪽)


 만화책 《토우마》 1권, 2권, 3권을 읽습니다. 《토우마》는 꼭 세 권으로 마무리된 짧은만화입니다. ‘토우마’는 《토우마》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이 토우마는 숲에서 사람들한테 숲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나들이길을 알려주는 길동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우마라는 사람은 ‘발자국사람(발자국을 좇으면서 정보를 얻는 사람. 영어로 하면 트래커)’입니다. 발자국사람이기 때문에 발자국을 살피면서 이 발자국을 남긴 목숨(사람과 사람 아닌 뭇목숨)들이 어디로 걸어가는지, 걸으면서 어떤 마음인지, 언제 걸어서 지나갔는지를 읽어냅니다.

 토우마는 처음부터 숲길동무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이었습니다. 경찰 가운데 발자국으로 범인을 찾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경찰로 당신 삶을 꾸리면서 오래오래 당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경찰일을 하면서 겪은 큰 아픔 하나를 씻어내고자 숲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숲은 토우마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를 고이 얼싸안으며 쓰다듬었고, 토우마는 당신을 살려주고 보듬은 숲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주면서 숲사랑이 바로 내 삶을 사랑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숲을 찾아온 사람들’은 토우마가 들려주거나 보여주려고 하는 숲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니,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숲사랑을 느끼려 하지 않으니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저 어쩌다 찾아온 숲이요, 공원이라고 마련한 숲이니 숲인가 보다 할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술이며 담배며 자가용이며 노래방이며 오락기이며 파친코이며 갖가지 재미난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데, 굳이 다리 아프게 숲을 거닐 까닭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상은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과 더 큰 권력을 좇으면서 달려가는데, 숲속에서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어 그리 대수이느냐고 합니다.


.. “그보다도 과장님! 보셨어요? E포인트 지점요!” “어?” “역시 산위는 아래와 계절이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벚꽃이 지금도 활짝 피어 있어 너무 멋져요. 못 보셨으면 꼭 한 번.” “필요없어.” ..  (3권 113쪽)


 만화책 《토우마》를 보려면 내 삶이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픈 마음이 있는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나부터 우리 식구와 동무와 이웃들하고 오순도순 어우러지고픈 뜻이 있는가를 곱씹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에 담기는 기쁨을 찾으려는 삶인지, 내 손과 발을 힘껏 움직여 나와 이웃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울 길을 찾으려는 삶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발자국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루는 지식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거나 잊은 자연을 찾자는 가르침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고단한 물질문명 현대 사회를 비판한다는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느낄 만화요, 가슴으로 받아들일 만화이며, 가슴으로 살아낼 이야기를 함께 찾자는 만화입니다.


.. “네? 감사장요? 수사에 협력해 줘서 표창한다고요. 저어, 어느 오오카미 토우마 씨에게 전화 거신 건가요? 우리 사무실의 오오카미 토우마는 자연을 사랑하는, 표창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그런 가이드입니다.” ..  (3권 182쪽)


 만화책을 덮으며 돌아봅니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우리 터전은 어떠한 삶터인가 하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면, 우리 아이는 이 터전을 어떻게 일구거나 보듬으면서 살아갈까 하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우리 나라 터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터전인지 궁금합니다. 사람하고 다른 뭇목숨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다 함께 흐뭇할 만한 우리 나라 터전일는지 궁금합니다. (4343.1.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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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전쟁으로 모두 빼앗겨도 다시 사랑을 꿈꾸는 사람
 [살가운 만화 51] 데즈카 오사무, 《아돌프에게 고한다 1∼5》



- 책이름 : 아돌프에게 고한다
- 글ㆍ그림 : 데즈카 오사무
- 옮긴이 : 장성주
- 펴낸곳 : 세미콜론 (2009.9.28.)
- 책값 : 한 권에 9000원씩



 (1) 명품이 떠도는 나라에서


 요즈음, 그러니까 2010년을 코앞에 둔 요 몇 해 사이에 새로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는 ‘걷는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1990년대부터 문을 연 가게가 많은 골목을 거닐 때에도 ‘걷는 맛’은 잘 못 느낍니다.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가게가 깃든 골목에서는 어느 만큼 ‘걷는 맛’을 느낍니다. 1970년대나 1960년대에 이루어진 가게와 집이 깃든 골목에서는 발걸음을 아주 늦추면서 ‘걷는 맛’을 그지없이 느낍니다.

 1950년대나 이에 앞선 일제강점기부터 이루어진 골목을 거닐 때에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걷는 맛’이 아닌 ‘사는 맛’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들 땀내음과 손자국이 깊이 배인 터전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고작 쉰 해나 서른 해밖에 안 된 길과 집을 만나면서도 가슴이 뿌듯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나무를 바라볼 때에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키가 자란 나무를 보면 가슴이 뿌듯한데, 우리는 숱한 전쟁과 식민지와 봉건제도 탓에 백 해뿐 아니라 즈믄 해나 두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를 껴안기 몹시 힘듭니다. 기껏 만난다고 해 보아야 천연기념물이라 하여 줄기를 만질 수 없는 나무뿐입니다. 온몸으로 껴안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일 오래된 나무가 없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요, 온삶이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동네가 없는 이 나라 한국입니다.


..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비천한 민족이라며 박해당한다던데, 일본도 똑같아요. 전 일본인이 되려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싸워야 해, 아돌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단다. 울상 짓고 멈춰 있으면 안 돼. 차별과 탄압에 맞서서 싸워야 해.” ..  (1권 146쪽)


 제가 태어나고 어린 나날을 보냈으며 오늘 하루도 옆지기와 아이하고 살림을 꾸리는 인천이라는 곳은 ‘명품도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품도시’라는 이름은 인천만 내걸고 있지 않더군요. 창원, 구미, 아산, 수원도 내거는 한편, 서울 서초구와 새만금명품복합도시까지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구청임에도 스스로 명품도시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남다르다고까지 할 텐데, 그만큼 쓸 돈과 쓰는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나라 곳곳에서 내세우고 있는 명품도시란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곳을 두고 명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도시는 명품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떠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가운데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서 명품이라고 내거는 곳치고 예부터 이어온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조금이라도 깃들어 있는 곳은 없다 할 만합니다. 아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높직한 주상복합 아파트나 건물을 올려세우는 도심지가 있는 곳이 명품도시인 듯 여깁니다. 돈으로 올려세우면 명품이 이루어진다고 여기며, 돈을 발라 놓으면 명품도시가 이룩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가꾸는 명품이란 없다고 여기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일구는 명품도시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명품’이라고 할 때에는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이 아닌 돈을 많이 들인 값어치에 치우쳐 있으니, ‘도시를 가리켜 명품이라 하는 자리’에서도 똑같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다부진 속알을 살피지 않는 우리 삶인데,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이 겉치레로 명품을 외치는 일은 나올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 “여긴 부랑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오래 계실 필요 없습니다.” “잠깐 멈춰요. 좀 걷고 싶은데,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을, 여긴 극히 위험한 곳입니다! 부랑자들이 우글거립니다!” ..  (2권 116쪽)


 그렇지만 나라밖 마실을 나가는 사람들은 유럽땅을 비행기로 밟으면서 ‘역사 깊은 모습’에 입을 쩍 벌립니다. ‘역사 깊은 골목’과 ‘역사 깊은 집’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합니다. 수없이 사진으로 찍고 글을 쓰며 서로서로 느낌을 나눕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어느 도시이건 시골이건 이 땅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에는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는 이들이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ㅅㄱㅇ대학을 나왔다손치더라도 옳은 길을 가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우리 스스로, 수수하고 투박할지라도 옳은 길을 가고자 힘을 모두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땅 모습을 사진으로 꾸밈없이 담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 이 땅 삶과 사람을 꾸밈없이 글로 담아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지만 우리 스스로 작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쓴느 작은 사람으로는, 아니 굳이 많이 쓰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알맞게 벌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합니다.


..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그 정도로 철저하게 교육하면 좋겠어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한 명도 남김없이 쫓아내려면, 아이들한테도 유대인을 죽이는 것 정도는 가르쳐야 해요.” “흥, 그런 식으로 교육했으니까 나처럼 형편없는 살인자가 나온 거야!” “당신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죠? 그놈들은 냉혹하게 부녀자들을 살해했어요, 수백 명이나. 유대인을 죽이는 건 올바른 일이에요.” ..  (5권 220쪽)
 





 (2) 경쟁이 떠도는 나라에서


 두 살이 된 아기는 곧 세 살이 됩니다. 세 살이 되면 네 살이 다가오고 머잖아 다섯 살이 될 테며, 여섯 살과 일곱 살도 금세 찾아오리라 봅니다. 벌써부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다음을 걱정할 일은 없다 할 만하지만, 걱정할 일은 없어도 생각할 일은 많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우리 식구는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을 생각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맞힐 텐데 어떡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에 앞서 제도권학교를 보내느냐 마느냐를 생각해야 하며, 아이한테 어떤 말을 가르쳐야 하는지와 아이한테 영어를 언제 어느 만큼 가르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또래는 죄 학원에 가고 없을 텐데 또래를 어떻게 사귀거나 어울리도록 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안학교에 넣을 생각이라면, 마땅하고 알맞춤한 대안학교가 있는 동네로 우리 살림을 아예 옮겨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해야 합니다.


.. “잘 들어라, 아돌프. 히틀러 소년단에선 유대인이 세상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쓰레기인지 낱낱이 가르쳐 준단다.” “우리들의 우정을 갈라 놓지 마세요, 제발!” “……” “교장 선생님, 아돌프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아돌프 아버지는 이미 저 아이의 아돌프 히틀러 슐레 입학 수속을 끝냈습니다. 일단 입학하고 나면 유대인 친구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릴 겁니다.” ..  (1권 204∼205쪽)


 나중에 아이 스스로 바란다면 제도권학교라도 얼마든지 보낼 생각입니다. 아이 스스로 아무런 학교를 바라지 않는다면 아무런 학교로도 보내지 않을 생각이며, 다만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한번 겪어 보도록 한 다음 그만두더라도 그만두라고 할 생각입니다.

 대안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도권학교라 할지라도 경쟁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한번 보낼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나 옆지기가 나온 예전 학교를 비롯하여 앞으로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라 한다면 ‘배우는 곳’, 이른바 ‘배움터’여야지, 싸우는 곳인 ‘싸움터’나 ‘겨룸터’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서로 겨루라는 지식이 아닌 서로 도우라는 앎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깨동무를 하라는 배움터여야지, 나 홀로 잘되거나 이름을 높이라는 겨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왼손은 죽을 때까지 마음대로 못 쓴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럼, 앞으로도 쭉 전쟁터에 안 나가도 되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에코 씨1 손을 못 쓴다는데 기뻐하란 말입니까?” “죄송해요. 그치만 전쟁터에 끌려가면 왼손이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목숨을 건진 셈이잖아요. 도게 씨, 아버지처럼 덧없이 목숨을 버리시면 안돼요.” ..  (3권 75쪽)


 그러나 우리 세 식구 살아가는 오늘 하루에도 숱한 겨룸과 다툼이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서로 복닥복닥 지내고 있으니 바깥일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할 만하지만, 오늘도 새벽부터 지옥철은 끝없는 사람물결로 악다구니판이 이루어졌을 테며, 서울을 한복판에 놓고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여느 노동자는 여느 노동자대로 온몸이 지치도록 시달리고 있겠지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시험점수로 시달리며, 대입 턱걸이인지 미끄러짐인지를 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테고, 새로 입시지옥에 뛰어들 아이들은 다가올 겨울방학이 방학 같을 수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닌, 더 돈을 버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사랑스러운 삶이 아닌, 더 이름값을 높이는 삶을 바라고 있거든요. 더 빛나는 삶이 아닌 더 큰 힘(권력)을 바라고 있거든요.


.. “애국심이 왜 싫어요?” “아니, 그건 오로지 전쟁을 위해서 이용당하는 개념에 불과해. 일본인이 함부로 떠드는 ‘야마토다마시’란 말을 듣고 만주인들이 얼마나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난 몇 번이나 목격했어. 남들한테 경멸당하고 미움받는 애국심 따윈 질색이야!” ..  (4권 44쪽)


 곰곰이 따지면, 명품이 있기에 다툼이 있고, 다툼이 있기에 전쟁이 터집니다. 전쟁을 부르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치고박고 겨루면서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고, 제 밥그릇을 더 키우려는 곳 어디에서나 명품 가꾸기에 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 스스로 자가용을 버릴 수 있는 삶이란 내 몫이 적거나 거의 없어도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내 앞가림에 앞서 어깨동무를 생각하는 삶이며, 나 혼자 잘 되자는 삶이 아니라 다 함께 잘 되자는 삶입니다. 석유뿐 아니라 전기를 덜 써야 하는 삶이라기보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자원을 쓰기는 쓰되 알맞게 쓸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이고, 자가용을 아예 안 타야 한다는 소리라기보다 자가용을 타려면 타되 알맞게만 타고 넘치게 타거나 쓸데없이 타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뽐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지 않으면서 내 마음밭을 가꾸려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내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다른 이 터전인 골목동네를 밀어붙이지 말며, 내 일자리가 정규직이기를 바라면서 다른 이들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에 얽매인 채 고달프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목숨을 받아먹으며 내 목숨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이 땀방울이 있기에 내 삶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 터전이 있기에 이곳에서 먹을거리 입을거리 쓸거리를 고맙게 얻습니다.
 





 (3) ‘데즈카 오사무’가 남긴 만화


 만화책 《아돌프에게 고한다》 다섯 권을 읽었습니다. 한 권에 9000원짜리로 나온 판이기에 다섯 권이면 퍽 비싸다 할 값입니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 님이 이 만화책에 담은 넋과 뜻이 있기에 사만오천 원이라는 책값을 기쁘게 치르며 장만합니다. 또한, 인터넷책방에서 십 퍼센트 눅은 값으로 장만하지 않고 동네책방에서 온돈을 다 치르고 장만합니다.


.. “하지만 당신은 변했어요.” “변하다니, 어떻게?” “나치당에 들어간 다음부터 예전하고는 달라졌어요.” ..  (1권 211쪽)


 1989년에 세상을 떠나기 앞서 몇몇 작품은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다고 하는 데즈카 오사무 님입니다. 그래서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당신이 당신 손으로 마무리를 지은 마지막 작품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루어 낸 목소리라 할 만합니다. 이 작품으로 만화상을 받을 때는 1986년이고 이무렵 당신은 쉰일곱 나이입니다. 1928년에 태어나 갓 철이 들 무렵 일본이 일으킨 숱한 전쟁을 몸소 지켜보거나 겪었으며, 그 뒤로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떨칠 때에도 부지런히 만화를 그렸습니다.


.. “기죽지 마라, 당연한 거야. 나도 내가 처음으로 죽인 시체를 보고 토했단다. 지난번 전쟁 때, 난 지원병으로 전선에 나갔지. 열여덟 살 때였어. 그러고는 곧바로 프랑스 병사를 죽였단다. 태연하게 적을 죽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도 안 걸렸어. 너도 곧 익숙해질 거다.” ..  (3권 148∼149쪽)


 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를 읽으며 ‘나는 이런 생채기가 늘 되풀이되기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고 ‘내 둘레 젊은 넋이 이런 생채기에 휘둘리기 쉬운 이 나라 흐름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죽이도록 가르치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도록 내모는 곳이거든요. 아니, 군대란 계급 높은 이들이 어디에선가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면 내 목숨을 걸고 다른 이 목숨을 빼앗든지 내 목숨을 내버리도록 짓밟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군대란 곳은 남을 죽이고 나도 죽는 곳입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죽이고 다른 이 마음을 죽이는 곳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할 텐데, 다른 이가 죽을 때에도 다른 이 어버이와 식구와 동무 모두 슬퍼합니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에서는 어느 누가 죽어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마디를 외칩니다. ‘나라사랑’.


.. “이 집이고 저 집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 전쟁통에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요. 그런데도 무언가를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죠. 인간이란 참 멋져요.” ..  (5권 201쪽)


 이제 와 돌아보면, 군대에 끌려가서 강원도 양구 민통선 안쪽에서 이태 넘게 지내야 했을 때 ‘왜 나는 아무개처럼 총을 안 들겠다고 다짐하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군대에서 지내는 세월보다 조금 더 오래 영창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세월이 더 아깝다고 느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만큼 내 마음은 더러워지고 나빠졌으니까요. 거꾸로 보면 여러모로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서 군대를 겪어냈기에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젊고 푸른 넋이 주눅들고 짓밟히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나중에는 누구나 그동안 받은 만큼 ‘고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새내기를 주눅들게 하고 짓밟는지 느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군대를 마친 뒤에는 사회에서 선후배 사이를 깍듯이 지킵니다. 내 밑사람한테는 빈틈없이 반말이요 주먹이 오가고, 내 웃사람한테는 어김없이 높임말이요 굽신굽신입니다. 더욱이, 입시지옥뿐 아니라 취업지옥인 이 나라에서 내 이웃이건 동무이건 더 밟고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야 맙니다. 아니, 아주 마땅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눔이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사랑이란 처음부터 깃들지 못합니다. 믿음이란 처음부터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군대란 평화를 지키는 모둠이 아니라, 평화를 꺾는 모둠입니다. 다른 이한테서 무언가 빼앗을 건덕지가 있기에 무기를 갖추어 으르렁거리는 모둠입니다. 군대에 끌려가거나 스스로 들어가거나 이곳에서는 바보가 되고야 마는데, 우리는 스스로 바보가 된 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군대를 떠나고 난 다음에도 우리 마음이 어떻게 바보가 되고 우리 몸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바뀌었는지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군대를 겪었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이 같은 군대를 겪었기에 더욱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고 꽃처럼 아름답고자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이 못난 사람으로서 못난쟁이한테도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아예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어요. 《아돌프에게 고한다》를 마무리지은 데즈카 오사무 님이 5권이 끝날 무렵 넌지시 들려주는 말마디, “인간이란 참 멋져요.”처럼 우리 사람들은 참으로 멋없고 못난 길로만 빠져들거나 굴러떨어지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조그맣게 다시 키우기에 “멋져요”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삶자락이지만 믿음을 자그맣게 새로이 가꿉니다. 멀디먼 길이지만 사랑할 노릇이요, 아득하디아득한 길이지만 믿을 노릇입니다. 사람은 참 멋지다고. 전쟁통에 모두 잃거나 빼앗겼어도 다시금 사랑하고 믿는 목숨붙이가 바로 사람이라고. (4342.1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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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로 간다 -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컷 만화인생
이홍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풍자’와 ‘비아냥’ 사이에서 오락가락 시사만평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8] 이홍우, 《나대로 간다》



 〈동아일보〉에서 “국장급 편집위원”으로 있던 만화쟁이가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은 1980년 11월 12일부터 2007년 12월 26일까지 ‘나대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스물일곱 해에 걸쳐 8568번이나 네 칸 만화를 그려 왔습니다. 몇 해를 더 그렸으면 서른 해를 채우고 1만 번째 만화까지 빛을 보면서, 김성환 님 ‘고바우 영감’에 못지않는 시사만화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 9000번째 만화를 코앞에 두고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며 2008년 1월, ‘한나라당 부산 진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당신한테는 안타깝게도 공천심사에서 떨어집니다. 그러고 나서 상명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 1988년 KBS TV에서 방영된 〈광주는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5ㆍ18 민주화운동을 말하지 못할 때 〈전남일보〉 시사만화 ‘미나리 여사’에서만 광주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렸다”고 소개하며 방송 화면에 광주 상황을 그린 만화를 한동안 비춰 준 적이 있다. 〈전남일보〉 시절 5ㆍ18 민주화운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나는 보도가 통제되는 가운데 간접적으로라도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당시 ‘미나리 여사’를 그릴 때마다 고민도 많이 했다 … 기분 좋게 시작한 ‘나대로 선생’과 노 대통령(노무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시사만화가가 항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풍자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무척이나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종종 있다. 최근 들어 시사만화의 풍자에 가장 못 견뎌 하는 정치인이 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 한때 권력의 칼날을 맘껏 휘두르던 그(1985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가 “정부(노무현 정부)를 더 비판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권력의 패러독스를 느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손 안의 권력과 남의 손에 든 권력은 다른 모양이다 …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 게 좁은 대한민국 사회다. 그러다 보면 철천지 원수가 아닌 이상 어느 자리에서든 얼굴 볼 일이 없겠는가. 그런데 노 정권(노무현) 사람들은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는 밥 한 그릇도 같이 먹지 않는 유별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제는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날 것 같다. 나도 이제 느즈막히 코드나 찾아볼까? ..  (64, 113, 146, 160쪽)


 흔히 ‘조중동’으로 일컫는 신문에서 스물일곱 해에 걸쳐 만화를 그린 분 이름은 이홍우입니다. 신문에 만화를 그린 분으로는 드물게 낱권책을 여럿 펴냈습니다. 1979년에 《미스 앵두》, 1987년에 《오리발》, 1995년에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 1996년에 《재롱이 만화일기》를 내놓았습니다. 이홍우 님은 만화이름 그대로 “나대로 간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2004년부터 신문읽기를 끊었기에,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분 만화며 다른 분 만화이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잘 모릅니다. 2004년 겨울에 〈한겨레〉 ‘미주알’을 그리던 김을호 님이 붓을 꺾은 뒤로는 〈한겨레〉마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지난날 ‘나대로 선생’이며 ‘왈순 아지매’며 ‘야로씨’며가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목소리로 우리 삶과 사람을 읽어내어 그림으로 담아냈는가를 돌아볼 때에는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시사만화는 틀림없이 ‘세상일’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어느 만화가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신문에 싣는 시사만화는 더더욱 ‘풍자’를 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도록 그립니다. 한자말 ‘풍자(諷刺)’ 뜻을 살피면,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인데, 말풀이가 처음부터 이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풍자’는 세상 잘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까밝히면서 속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도록 하는 말마디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비웃다’ 말풀이는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몸짓을 터무니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여겨 얕잡거나 업신여기다”이거든요. 우리가 풍자를 한다고 할 때에는 맞은편을 얕잡거나 업신여기는 매무새가 아니라, 잘잘못을 밝히면서도 슬쩍슬쩍 눙치거나 꾸지라다가도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거든요.


.. 매일 검열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날은 만화를 하루에 일곱 번 그린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해야 했다 … (이회창 총재가 묻기를) “매일 매일 시사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시사만화 소재를 어떻게 찾으십니까?” 평이한 질문이었으나 다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내가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 그(이회창 총재)를 미리 만나 봤더라면 실제로 둥근 안경을 세모로 그리면서까지 날카로운 캐리커처로 묘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정치인이다 ..  (75, 116∼117쪽)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엊저녁과 다시 일을 하러 서울로 길을 나서는 오늘 아침에 이홍우 님 다섯 번째 책 《나대로 간다》를 읽습니다. 앞서 나온 《미스 앵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해 읽지 못했으나 《오리발》과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는 일찌감치 읽었습니다. 이 만화 두 가지를 읽을 때에는 나라안 10대 중앙일간지를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기사와 만평을 샅샅이 견주어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무렵에 ‘나대로 선생’을 들여다보던 저는, ‘이분이 스스로는 풍자를 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고 말씀하실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풍자가 아닌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 총질로 사람들 가슴에 구멍을 뚫는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있기에, 이홍우 님으로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보수이든 수구이든 오른쪽이든, 또 진보이든 개혁이든 왼쪽이든, 지켜야 할 대목은 지켜야 합니다. 사람된 매무새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갈고닦아야 할 길은 갈고닦아야 합니다. 섬겨야 할 어른은 섬기고, 받들어야 할 넋은 받들며, 고개숙여야 할 곳에서는 고개숙여야 합니다.

 꼭 ‘조중동’이라고 묶는 세 신문사라서가 아니라, 세 신문사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그림을 그려 넣는 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붙잡아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헤아리시는지 궁금하며, 우리 삶자락을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마음밭을 어떻게 일구어야 기쁘고 반갑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검열을 뚫고 할 말’은 무엇이었으며, 검열을 없애려고 보여준 움직임은 무엇이었고, 검열에 스러지는 이웃과 동무를 어느 만큼 느끼는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하고 1980년대 〈동아일보〉랑 1990∼2000년대 〈동아일보〉는 서로 얼마나 닮거나 다를까요. 만화쟁이 이홍우 님이 스물일곱 해라는 기나긴 동안 〈동아일보〉에서 보여주고 들려준 ‘나대로 선생’ 말마디와 생각마디는 우리 이웃과 터전을 어느 만큼 비추거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공천심사부터 떨어졌기에 더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클 텐데, 공천에 붙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면, 당신이 걷는 길은 지난날과 또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요.


.. 1972년 6월 19일에 실린 그(윤영옥, ‘까투리 여사’)의 만화가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풍자했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결국 그는 펜을 놓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의 만화 ‘까투리 여사’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른바 “서울신문 필화 사건”으로 한동안 지방신문 등에 만화를 그리던 윤 화백은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한국시사만화계의 소중한 자료인 《한국시사만화사》를 펴내기도 했다 ..  (217쪽)


 1986년 3월 24일치에 그린 ‘나대로 선생’ 때문에 하루 동안 끌려가 몇 대 얻어맞고 나왔다는 이야기(78∼79쪽)는 있지만,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 첫무렵에 어떤 그림과 이야기로 그 어둡던 나날을 그려내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이 눌리다 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던 무렵부터 조금씩 ‘전두환 비판’을 그리기는 했다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단단하던 무렵에는 ‘나대로 선생’이 얼마나 ‘나대로’라고 하는 길을 걸었는지는 239쪽짜리 책에 한 줄조차 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회창 씨 앞에서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하며 읊던 말마디처럼, 지난 열 해에 걸쳐 집권여당만 신나게 ‘조지는’ 만화를 그리면서, 당신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음을 이 책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 겉장에 굵직하게 찍혀 있는 “땡전 뉴스에서 경포대까지 시사만화가 이홍우의 네 칸 만화 인생”이라는 말마디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제 포기 대통령 노무현 조지기’만 가득 담긴 책에, 이홍우 님 만화쟁이 삶과 발자국이란 무엇이었는지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노무현 옛 대통령이 잘못한 일은 어김없이 있었고, 안타깝다고 여길 일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 《나대로 간다》는 ‘아무개 조지기’를 하겠다는 책은 아니지 않았던가요? 어릴 때부터 온삶을 ‘만화에 미쳐’서, 부산에서 중학생이던 때에 공납금 두 달치를 몰래 모아서 집을 뛰쳐나온 까까머리가 만화쟁이가 되려고 바득바득 땅을 기면서 애쓰던 삶과 꿈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 아니었는가요? 좁다란 골방에서 아내와 힘겹게 살아내던 일이며, 열세 해 만에 어렵사리 아이를 얻은 기쁨이며, 만화 외길에 큰뜻을 품은 김성환 님 같은 어르신들 ‘세상에 잘 안 알려진 아름다운 이야기’며를 담아내고자 했던 책이 아니었는지요?


.. (‘사자에 상’을 그린) 하세가와 여사의 만화는 가정의 일상성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통합하는 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만화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233쪽)


 책 끝에 나라 안팎 시사만화(또는 신문만화)를 그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일본사람 하세가와 마치코 님 만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가를 몇 쪽에 걸쳐서 들려줍니다. 아직 이분 만화가 한국말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헌책방에서 이분 만화책을 몇 권 사들여 틈틈이 꺼내어 다시 읽곤 합니다. 글은 못 읽어도 그림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를 헤아릴 수 있고, 그림만 보아도 눈물겹고 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홍우 님도 이야기하지만, “가정의 일상성”으로 “일본 사회를 통합”한 만화 ‘사자에 상’이요, “시대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으로 “일본의 시대 변화”까지 읽도록 해 줍니다.

 자, 그러면 이홍우 님 ‘나대로 선생’은 어떤 만화로 자리매김을 할까요.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은 우리 만화와 문화와 삶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저 ‘스물일곱 해 동안 팔천 번 넘게 그린 기록이 남는’ 이름 하나 아로새길는지요? 이 만화마다 어떠한 깊은 이야기나 뜻이나 생각이 간직되어 있었다는 눈물이나 웃음을 새겨 줄 수 있는지요? 참말 이홍우 님 당신은 당신 네 칸 만화가 ‘풍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한 번도 ‘비아냥’이나 ‘비웃음’이나 ‘비꼬기’나 ‘비틀기’ 언저리에서 맴돌았다고는 느끼지 않으십니까? (4342.10.15.나무.ㅎㄲㅅㄱ)


 ┌ 《나대로 간다》(동아일보사,2007)
 ├ 이홍우 씀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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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소복이 지음 / 새만화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란
 [살가운 만화 50] 소복이,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책이름 :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
- 글ㆍ그림 : 소복이
- 펴낸곳 : 새만화책 (2009.7.25.)
- 책값 : 8000원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 이야기를 만화로 담은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는 아주 조그마한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 이상범 님(48), 경아 씨(38), 은동원 씨(36), 함은희 씨(37), 인섭이(20), 지희(12)는 남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네에서 저마다 제 삶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이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에서 상범, 경아, 동원, 은희, 인섭, 지희 같은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는, 이 같은 이름으로 우리 땅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당신 이름을 세상에 내놓거나 드높이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160쪽짜리 자그마한 만화책은, 그린이가 만화를 다 그릴 무렵, 매화동 마을회관에서 조촐하게 만화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만화에 나온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인 따뜻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책 사이사이에는 그린이가 만난 여섯 사람이 손수 그린 그림 한두 장을 살짝살짝 곁들여 놓았습니다. 그린이가 사는 곳에서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으로 가자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는데, 매화동은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이면서, 집값 싼 곳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고, 시골스러움과 어수선하지 않음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있으며, 예부터 농사짓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고 합니다.


.. “뭐, 정신을 차려도 삶 자체가 변해야 되잖아요. 극단을 접거나, 혹은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을 하거나. 그런데 여기서 공연을 해도 사람들은 공연 보러 서울로 가요. 못 믿는 거죠.” ..  (37쪽)
 





 오늘은 새벽 네 시 반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기가 그무렵에 깨었기 때문입니다. 잘 자다가 갑자기 깬 아기는 끙끙거리고, 아기 엄마가 기저귀에 손을 넣어 보더니 “똥 쌌네.” 한 마디. 뜨이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아기를 안고 씻는방으로 가서 기저귀를 벗기고 밑을 씻깁니다. 곧바로 똥기저귀를 빱니다. 일어난 김에 아기 엄마와 아빠는 모기를 대여섯 마리쯤 잡고 불을 끕니다. 아기는 이십 분쯤 더 칭얼거리며 엄마아빠 배며 등이며 올라타고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빠는 곧바로 일어날까 했지만, 몸이 무거워 더 잠들기로 하고 다섯 시 오십 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안칩니다. 머리를 감고 셈틀을 켭니다. 그런데 모니터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엊저녁, 아기가 모니터에 대고 오줌을 갈겼는데, 그 탓에 모니터 전원단추가 맛이 간 듯합니다. 그제는 셈틀 자판에 똥을 갈기는 바람에 자판이 맛이 갔습니다. 지난달에는 엄마아빠 손전화를 입에 넣고 빠는 바람에 엄마아빠 손전화가 모조리 맛이 가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 엄마가 쓰는 노트북을 켜고 글 몇 조각을 쓰는데, 예전에 아기가 쥐어뜯은 자판 몇 군데가 잘 눌리지 않습니다. 히유.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아기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일곱 시 이십이 분에 나섭니다. 늦어도 이십 분 안쪽에 길을 나서야 전철역에 알맞게 닿는데,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 사진 몇 장 찍는다며 이 분쯤 어기적거립니다. 전철역에 닿고 보니, 삼십삼 분에 들어왔어야 할 급행전철이 삼 분 늦어졌다고 합니다. 아침에 좀더 바지런히 길을 나서고 골목 사진 찍는다며 깨작거리지 않았어도 때맞추는 전철은 못 탔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제때 안 들어온 전철 때문에 전철역에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히유. 오늘도 첫 역인 이곳에서 자리잡고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50살에 자살할 거예요.” “그때 너무 잘 살고 있으면요?” “그럼 그냥 오래 살구요.” “하하.” “저는 집에 있는 게 고통스러워요. 저는 막내인데, 사랑받는 막내는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 밥은 내가 차려 먹었어요. 엄마가 차려 주면 이상해요. 엄마는 내가 밥 먹기 전에 이 닦는 걸 극도로 싫어하셨어요. 손으로 칫솔을 만져 보고 검사까지 했다니까요. 원래 제 꿈은 만화가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들겠다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럼 지금의 꿈은 뭐예요?” “성공이요. 목표를 달성해서 행복하게 미소짓는! 세계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고등학교 때는 개근상 받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성공하는 게 목표예요.” ..  (51∼53쪽)
 





 전철에 타면서 자리는 꿈조차 꾸지 않고 바퀴걸상이나 자전거를 놓는 자리 안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펼칩니다. 이 다음으로 서는 주안역부터 퍽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 탑니다. 이이들도 아침 전철이 늦어지는 바람에 줄이 더 길어졌으니까요. 이리하여 부평역에서 사람들이 탈 때에는 서서 가는 사람은 옴쭉달싹 못할 만큼 꽉 끼게 되고, 끄트머리에서 책을 펼치던 저는 창문 쪽으로 몸이 눌립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송내며 부천이며 역곡이며 더 타려는 기나긴 줄은 지치지 않고 더 몰려들고, 먼저 들어와서 눌렸든 늦게 들어와서 누르든 서로서로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전철기사는 여러 차례 안내방송을 하면서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었으나 시원하지 않을 듯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문득 1994년 봄이 떠오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끔 책방 마실(교보문고나 헌책방)을 하러 서울에 전철을 타러 왔고,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 자가용이 없어 전철을 타고 작은아버지 댁에 찾아갔는데, 이때에는 선풍기만 있거나 선풍기조차 없는 전철칸이 그렇게까지 덥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 출퇴근 지옥철을 탈 일이 없이 전철을 타서 그랬을 텐데(이무렵에는 다들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1994년 봄에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처음으로 ‘지옥철’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인천 끄트머리부터 구로역 둘레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이 전철을 탈밖에 없으나, 그사이에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타기만 해야 합니다. 또한, 서울과 가까운 곳이라 해서 서울로 수월히 갈 수 있지 않고, 외려 탈 자리가 없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는 판이니, 벌써 꽉 들어찬 전철이라 하여도 우격다짐으로 밀면서 타려고 합니다. 서로서로 괴로운 노릇이지요. 그때, 1994년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에는 선풍기만 있었습니다(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도 매한가지). 게다가 선풍기는 안 돌아가기 일쑤였고, 그나마 돌아가는 선풍기라 하여도 한 칸에 두어 대가 달랑 달려 있었습니다.


.. ‘요즘 나는 매일 바란다. 오늘 밤 꿈에서 엄마를 만나기를. 몇 년 전,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못 봤다. 우리 엄마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견디고 사셨을까?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엄마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셨는데 말이다.’ ..  (67∼68쪽)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여의도를 지나면 전철은 홀가분하다고 느낄 만큼 사람이 줄어듭니다. 서울에서 움직이든 서울 바깥에서 서울로 들어오든, 저마다 제 갈 곳을 찾아서 사람 물결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겠습니다. 오늘은 800쪽이 조금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조금 읽다가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살짝 펼쳤습니다. 고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두툼한 책은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씨앗은 힘이 세다》는 2006년에 처음 장만해 놓고 한참 읽다가 줄거리가 조금 지루해졌을 때 덮어놓고는 이태 넘게 다시 펼치지 않다가 이즈음 마저 읽으려고 집어들고 있습니다. 서대문역에서 내리기 앞서 “소비자들이 때깔이나 크기로만 농산물을 선택한다면 이 땅의 농부들은 농약을 안 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비자의 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하겠지요(199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는데, 오늘은 새삼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곡식이나 열매를 사먹는 도시사람들이 ‘굵직굵직하고 빛깔 고우며 벌레먹은 곳 없는 말끔한 녀석’을 찾는다면, 어느 농사꾼이건 농약과 비료를 듬뿍듬뿍 안 칠 수 없습니다. 포도며 능금이며 배며 복숭아며 수박이며 갖은 농약과 비료에 범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도시사람들은 뻔히 농약과 비료를 많이 친 줄 알면서 이런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알 수 없는 우리 씀씀이요 삶이 아닌가 싶으나, 밀고 밀리는 사람 물결에서 벗어나서 아침햇살 받고 한글학회까지 거니는 동안 곱씹어 보니, 《씨앗은 힘이 세다》를 쓴 농사꾼이 외친 이 말마디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은 온통 껍데기로 겉치레를 하는 데에 매여 있다’는 소리로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책이란 알맹이(줄거리)를 살피고 사서 읽어야 합니다. 껍데기가 곱거나 멋스럽다고 사서 읽습니까. 꽂아 놓기에 보기 좋다고 사들이는 책입니까. 뭐, 누군가는 틀림없이 ‘꽂아 놓으려고 책을 사들일’ 수 있고, 이렇게 하는 일은 그이 권리입니다. 다만, 책은 꽂아 놓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가 아닙니다. 읽으려고 만드는 종이뭉치입니다.

 곡식이나 열매는 먹으려고 일굽니다. 보기 좋으라고 일구지 않습니다. 배속에 들어와서 우리 몸에 새힘을 불어넣도록 하려고 일굽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은 어떠한가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요. 우리 스스로 내 모습을 어떻게 차리고 있지요? 우리 스스로 내 이웃하고 마주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마주하는지요? 우리들 옷차림은 얼마나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는 옷차림입니까? 우리들 집치레나 몸치레는 얼마나 내 삶터를 사랑하며 돌보는 집치레이거나 몸치레인가요? 우리는 왜 일을 하지요? 우리는 왜 사랑을 하지요? 우리는 왜 아이를 낳아 기르지요? 우리는 왜 밥을 먹지요? 우리는 왜 돈을 벌지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한테 표를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무개 정치꾼이 죽은 일에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 “부모님은 수원에 사시구요. 여기도 곧 정리할 거예요. 귀농할 거거든요.” “왜요?” “농촌은 뿌리고 도시는 꽃이라고 하는데, 음, 썩은 꽃이죠. 도시는 죽이는 일만 해요. 지구라는 별에서 제대로 살려면 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혼자 가면 외롭지 않겠어요?” “술 안 드시죠? 술 마시면 외로운 것도 몰라요. 하하!” “농사일이 힘들 텐데요.”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해요. 농업이 아니라 농사가 되어야지요. 팔아먹을 거 생각하면 고되져요. 나는 행복하려고 가는 거예요.” ..  (127∼128쪽)
 





 그제 일터로 오는 길에 만화책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다 읽어 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일터 책상에 그대로 두고 나왔습니다. 어제와 오늘, 다 읽어 낸 만화책을 다시 더듬어 보면서, 이 만화는 우리한테 무슨 말을 걸고 싶어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그나마 저는 집이 아닌 일터에 있기 때문에 이 만화책을 생각할 겨를을 얻었습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면, 아기를 보고 놀고 씨름하느라 온 기운이 다 빠져서 책이고 뭐고 거들떠보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로 전철을 타고 와서 돈을 얼마쯤 버는 일을 한답시고 아기를 옆지기한테 통째로 맡겨 놓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이 일이란 얼마나 저와 옆지기와 아기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쓰며 이것저것 곁일을 거들면서 가까스로 버는 돈으로 도서관 달삯을 대고 집삯을 또 어찌어찌 대며 우리 살림을 이렁저렁 꾸릴 때하고 견주면, 어느 회사 한 곳에 엉덩이를 지긋이 눌러붙이면서 일할 때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 우리 세 식구는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우리 삶을 가꿀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을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한테 목숨 하나 내려주고 이 땅으로 보내준 ‘너른 자연’은 무슨 마음을 먹고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목숨 하나 붙잡으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굽어살피고 있을 하늘나라 넋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내 밥그릇만 챙기면 된다고 하는 이 터전인데, 너른 자연이든 하늘나라 님이든 따지기 앞서, 우리한테 목숨을 선사한 우리 어버이는 무슨 사랑과 믿음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버이한테, 《우주의 정신과 삶의 의미》를 그린 만화쟁이 소복이 님 어버이한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여섯 사람네 어버이한테, 당신들이 살아온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으며, 당신 아이들한테 보여주거나 나누려고 하던 뜻과 보람은 무엇이었을까요. (4342.8.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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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림체가 일반일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군요.요즘은 암만 알맹이가 좋아도 포장이 나쁘면 사지 않은 시대이니까요.

숲노래 2009-08-23 08:21   좋아요 0 | URL
'일반인'이란 누구일까요?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그림체'란 무엇일까요?

책은, 편견으로 보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책일 뿐입니다.
편견에 맞추어 주면 더 훌륭할는지 모르나,
그저 유행으로 그칠 뿐입니다.

카스피 2009-08-2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말씀 마따나 책은 편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하지만 암만 좋은 책도 독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쉬이 읽혀 질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관주성경(아주 고풍스러운 20~30년대 문체의 성경인데 제목이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네요)을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아마 반도 이해하지 못할것입니다.
솔직히 좋은 내용의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포장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