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집 평화 발자국 3
이승현 글 그림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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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는 돈 좋아하는 사람만 남으라 하자
 [만화책 즐겨읽기 7] 이승현, 《파란집》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신문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때에도 우리 살림집에는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로 들어와 홀살이를 처음 할 때에는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잤습니다. 날마다 신문을 돌리며 날마다 열세 가지 아침신문(스포츠신문 두 가지랑 경제신문 하나까지)을 읽었습니다. 신문배달 일꾼으로 지내던 삶을 마감하고 책마을 일꾼으로 바뀐 1999년 여름부터는 내가 돌리던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신문을 영 보아 주기 힘들다고 느껴 끊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차마 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신문배달 일꾼으로 여러 해를 살았거든요. 사람들이 신문을 끊으면 ‘신문사 본사’가 아닌 ‘신문사 지국’이 피를 봅니다. 신문사 본사는 ‘독자 구독료’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문에 나는 광고 값’으로 움직이는 신문사입니다. 독자 구독료는 신문사 지국이 살아가는 돈입니다. 그나마 신문사 지국은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지국을 차릴 때에 신문사 본사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냅니다. 독자 구독료 가운데 꽤 큰몫을 본사로 보냅니다. 신문사 지국으로서는 기자가 받는 달삯보다 훨씬 적은 돈을 독자 구독료에서 떼어 일삯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지국장쯤 되어야 그럭저럭 ‘살림을 꾸릴 달삯’이 될 뿐, 총무라 하여도 신문배달 달삯으로는 살림을 꾸리지 못합니다. 여느 일꾼들은 달삯이 몹시 적습니다. 지국에서 먹고자는 일꾼이 가장 잘 받고, 알바 대학생이 둘째로 받으며, 아줌마가 셋째로 받고, 중·고등학교 알바생이 넷째로 받으며, 초등학생이 막째로 받습니다. 똑같은 부수를 돌리더라도 받는 일삯이 꽤 크게 벌어집니다. 이렇게 계급을 두어야 지국장은 조금이나마 돈을 더 챙길 수 있고, 신문에 넣는 광고종이는 오로지 지국 몫인데, 이 몫은 으레 지국장이 다 챙깁니다. 이리하여, 신문 독자가 신문을 끊으면 지국은 벌이가 하나 줄 뿐 아니라 본사에 벌금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신문배달을 그만두던 1999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는 지국이 본사로 ‘독자 한 사람이 신문을 끊을 때마다 5만 원’씩 물도록 했습니다. 거꾸로, ‘지국에서 독자 한 사람을 늘리면 본사에서 5만 원’을 줍니다. 조·중·동이라 일컫는 신문사 지국은 이 ‘벌금이자 성과금’이 더 센 줄 압니다. 이런 형편을 아니까, 신문에 실리는 글이 영 못마땅해도 지국 일꾼들 살림살이가 걱정스러워 신문을 끊지 못했는데,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서울을 떠나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기던 2005년에 이르러 겨우 신문을 끊습니다. 이때부터는 어떠한 신문도 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은 1994년부터 끊습니다. 텔레비전 있는 집에 찾아갈 때라든지 밥집에서라든지 옆지기 어버이 댁에서만 방송을 봅니다. 있으니 같이 보는 셈인데, 신문을 읽던 지난날이든 더러더러 방송을 함께 봐야 하는 오늘날이든,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이야기란 언제나 도시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도시사람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거의 모두 서울사람 이야기에 머뭅니다. 부산이나 대구 이야기라든지, 서울하고 가까운 인천 이야기라든지, 다른 도시 이야기는 참말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95%가 서울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서울이라는 큰도시에서 제법 잘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대사 한 줄조차 없으나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보는 만화가 아니라 읽는 만화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넘기는 만화책이 아니라, 그림에 서린 이야기를 읽는 만화책입니다.


.. 희망을 안고 파란집에 끝까지 남았던 영혼들께 바칩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앞쪽에 그린이 말이 깃듭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서울 용산에서 잿더미가 되고 만 가난하고 가녀린 사람들 삶을 담았다고 합니다. 아마,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이라는 이름이 붙어 쫓겨나거나 죽어야 했던 사람들 삶만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만히 헤아리면 서울 용산뿐 아니라 온나라 곳곳에서 쓸쓸하고 슬프게 쫓겨난 모든 가난한 사람들 삶터와 삶자락을 담았다고 해야 한결 알맞을 테지요.


.. 아내가 열이 나 아팠습니다. 그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라고 지나쳤는데, 오늘 제가 열이 펄펄 끓습니다. 제 몸이 아프니까 그제야 아내의 아픔이 이해가 됩니다. 왜 그때 좀더 관심을 갖고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뒤쪽에 그린이 말이 다시 깃듭니다. 그린이는 늦쟁이라 할 만합니다. 제때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 아니라 느즈막히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도 느즈막히 헤아린다면 고맙지요. 느즈막히는커녕 죽는 날까지 못 헤아리는 바보스러운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데요. 대학교까지 나온들, 대학원까지 다닌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들,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된 삶을 살피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요.

 《파란집》이란 서울 용산에만 있지 않으며, 서울 용산에만 있을 턱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울 용산 이야기는 그럭저럭 서울 한복판에서 살던 사람들 이야기라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납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한 줄로조차 안 다루는 온나라 곳곳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삶이 매우 많습니다. 이 많은 아픈 삶을 그려 주는 이는 드물고, 이 숱한 가난한 울음과 웃음을 고이 담아 주려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보고 읽고 곰삭이고 되뇌고 돌아봅니다. 자그마한 내 살림집에서 올망졸망 오순도순 알뜰살뜰 지내던 사람들은 ‘더 커다란 돈’을 노리는 사람들 손아귀에서 생채기를 잔뜩 받은 채 쫓겨납니다. 재개발은 서울 강남 같은 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값싼 땅을 아파트로 바꾸어 비싸게 팔아야 큰돈이 되지, 비싼 땅 아파트를 허물어 다시 지어서는 큰돈이 되지 않습니다. 재개발업자라든지 정부 건설 부서에서는 ‘땅값하고 집값이 싼 가난한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집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살림살이로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일수록 재개발 값어치가 클 뿐 아니라 ‘이렇게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란 늘 개발 반대 목소리가 불거지는 곳’이니 얼른 밀어내려고 합니다. 권력자한테는 돈이 큰 값어치일 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소담스레 나누는 공동체 또한 얄궂은 걸림돌이니까요. 돈은 돈대로 벌면서, 사랑스러운 작은 동네를 허물어야 검은 꿍꿍이를 언제까지나 이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갈 데가 없어 버티던 작은 사람들은 이슬이 됩니다. 또는 잿더미가 됩니다. 일자리가 없어 도시로 몰려들던 사람들은, 더 큰 도시로 찾아오던 사람들은 작은도시로든 시골로든 돌아가지 못합니다. 도시로 찾아와 일자리를 찾던 어버이가 낳아 키우던 아이들은 시골을 모릅니다. 시골로 갈 마음을 품기 어렵습니다. 치고박고 다투어야 하는 도시에서 내 작은 살림 꾸릴 뿐 아니라 ‘셋집에서 집임자로 거듭나기’를 꿈꿀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집삯을 내더라도 도시에서 일자리를 붙잡으며 도시에서 버티려 할 뿐, 시골 논밭을 일구며 스스로 벌고 스스로 쓰며 스스로 살아가는 땀맛과 손맛을 찾으려 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인크루트라고 하나, ‘일자리를 알음알이 해 준다’는 여러 가지 매체가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대학생 일자리를 걱정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이든 저런 일자리이든 하나같이 도시에서 펜대를 붙잡거나 기계 손잡이를 붙잡는 일자리입니다. 쟁기와 낫과 삽과 호미를 드는 일자리란 없습니다. 시골에서조차 농업고등학교란 사라졌는데,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농사꾼 가르치는 학교는 없고, 농사꾼 가르치는 교과서 또한 없습니다. 게다가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안 쓰면서 거름을 만들고 땅심과 밥심을 살리는 교과서란 아예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 귀퉁이라든지 방송 끄트머리에라도 실리지 않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도시에서 아프게 살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 생채기를 살뜰히 그렸습니다. 그래요, 도시에서는 ‘파란빛’ 집이겠지요.

 그렇다면 ‘푸른빛’ 집이란 없으려나요. 하늘과 바다는 파란 빛깔입니다. 땅(흙)은 누런 빛깔입니다. 하늘(파랑) 기운과 물(파랑) 기운을 받으며 땅(누렁) 기운을 얻어 자라나는 새 목숨 풀·꽃·나무·열매는 푸른 빛깔입니다. 재개발 보상금이나 이삿돈은 그야말로 코딱지돈이라 할만큼 적은데, 이 적다 하는 돈은 도시에서는 적을지라도 시골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꿈을 꿉니다. 저는 ‘파란집’ 꿈보다는 ‘푸른집’ 꿈을 꿉니다. 큰숲에 깃들던 작은 집에서 살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살림집은 바로 푸른집이었습니다. 재개발 보상금으로는 도시에서 새 살림집을 마련하기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새 살림집을 넉넉히 마련하여 조용하고 오붓하며 신나게 살아갈 수 있답니다. 도시 한켠 가난한 골목동네를 싹 쓸어내어 재개발을 할라치면, 그래요 다 떠나 주지요. 다 옮겨 주지요. 한 동네 사람들 통째로 시골로 옮겨 가지요. 도시에서는 돈있고 힘있고 이름있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 보라지요. 버스기사랑 전철기사도 가게 장사꾼도 청소부도 전기회사 일꾼도 헌책방 사장님도 택배기사도 모두모두 시골로 옮겨 주지요. 국회의원 대통령 재벌총수 의사 판사 검사 같은 분들만 도시에 덩그러니 남아 스스로 잘 살아 보라고 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시골에서 스스로 땅을 일구며 스스로 작은 집에서 서로서로 벗삼으며 마을잔치 즐기며 살아갈 테니까, 가멸찬 분들은 도시에서 300평짜리 아파트를 지어 떵떵거리며 살아가라지요. 도시에서는 파랗디파랗 아파트를 높디높게 올려세우며 살라 하고, 시골에서는 푸르디푸른 살림집을 살붙이들 어우러질 만큼 조그맣게 마련하여 살아가면 되지요. (4343.10.27.물.ㅎㄲㅅㄱ)


― 파란집 (이승현 글·그림,보리 펴냄,2010.1.2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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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사 지국은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지국을 차릴 때에 신문사 본사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냅니다라고 하셨는데 조중동은 그렇다고 언젠가 PD수첩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한계레까지 그럴줄은 몰랐네요.

숲노래 2010-10-27 12:44   좋아요 0 | URL
제가 일하던 한겨레 서울 아무개 지국은, 어느 날 이런저런 회계정리를 하다가 문득 영수증을 보고 알았는데, 2천만 원을 내셨더군요. 그때에는 신문사 지국을 여는 데에도 경쟁이 많아 꽤 목돈을 내야 했습니다만, 한겨레신문 지국을 차리려는 이들은 신문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부금처럼 낸다고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어찌 되었든 다 '장사'이니까 이런 돈을 받을밖에 없어요...
 
어제 뭐 먹었어?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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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만화를 읽으며
 [만화책 즐겨읽기 6] 요시나가 후미, 《어제 뭐 먹었어? (1∼3)》



 글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긋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그을 수 없습니다. 글책을 읽으며 빈자리에 느낌글을 몇 줄 끄적인 다음 앞이나 뒤쪽 흰 종이에 쪽수를 적어 놓습니다. 나중에 다시 펼칠 때에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살필 수 있도록.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느낌을 적바림할 빈자리가 없습니다. 책 앞이나 뒤 하얀 종이에 쪽수를 적은 다음, 이 옆에다가 느낌을 적바림합니다.

 만화책 《어제 뭐 먹었어?》를 이태 만에 다시 펼칩니다. 2008년에 1권이 나온 《어제 뭐 먹었어?》를 곧바로 사서 읽은 다음 2권이나 3권은 더 사지 않고 책시렁에 얌전히 모셔 두었습니다. 이태 앞서 이 만화를 본 다음 뒤엣권을 더 사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더 안 사기도 했으나, 이 만화책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고이 묵혔습니다.

 새롭게 읽는 만화는 늘 새롭습니다. 예전에 열 번을 읽었든 백 번을 읽었든 언제나 새롭습니다. 줄거리를 떠올리며 ‘이제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지?’ 하고 어림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예전에 읽을 때에는 놓친 그림이나 구석을 곰곰이 헤아리기만 합니다. 노상 새로 읽는 책으로 자리하는 만화입니다. 글책을 읽을 때이든 사진책을 읽을 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뭐 먹었어?》 1권을 다시 읽으며 ‘느낌이 와닿는 대목’에서 한동안 눈길을 멎은 다음 책 앞쪽 흰 종이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책을 다시 읽고 덮기까지 모두 네 차례 눈길이 멎고, 네 차례 눈길이 멎은 쪽수를 헤아리니 이태 앞서 이 책을 읽으며 눈길이 멎을 때하고 똑같습니다.


.. ‘흠, 저녁 준비는 정말 대단해. 일을 깔끔히 마무리지었을 때나 느끼는 보람을 하루에 한 번은 맛볼 수 있으니. 이 뿌듯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는지.’ ..  (13쪽)


 첫째, 《어제 뭐 먹었어?》는 밥하기를 즐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살뜰히 그립니다. 밥하기는 숱한 살림일 가운데 하나이며 몹시 커다란 살림일입니다. 옷도 때 맞춰 잘 빨아야 하고 이부자리도 느긋해야 하는데, 끼니때에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밥하기를 살뜰히 그리며 아름다운 살림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뭅니다. ‘요리와 맛’을 다루는 작품만 쏟아지는 오늘날이거든요.

 그런데 《어제 뭐 먹었어?》에 나오는 밥하기란 ‘요리와 맛’이 아닌 ‘여느 살림꾼 삶자락’이기는 하나,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값이 더 싼 먹을거리’를 ‘마트’에서 삽니다. ‘마트에 들어오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공산품 먹을거리’에 어떤 성분이 깃들었으며, 어떤 화학 양념과 물질이 스몄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널리 잘 퍼진 생활협동조합 물건은 한 차례조차 안 씁니다.

 만화를 보는 분들이 눈여겨보는지 모릅니다만, 다카하시 신 님이 그린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만화 주인공 아가씨는 먹을거리를 살 때에 언제나 ‘생협 목록’을 들여다봅니다. 딱 한 번인가 두 번, 이 그림이 나오는데, 다카하시 신 님이 남달리 생각하여 ‘생협에서 먹을거리 장만하기’를 그렸다 할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조금 생각있게 사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한테까지 ‘공산품 아닌 생협 물건’을 써야 하는 줄 퍽 널리 퍼져 있다 할 만합니다.

 생협 물건이 마트 물건과 견주어 ‘아주 비싼’ 값이 아닐 뿐더러, 생협 물건이 더 값쌀 때가 있기도 합니다. 아니, 더 값싸다 해야 옳겠지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쓴 능금 한 알을 1500원에 파는데, 굵고 소담스러운 능금 한 알 또한 1500원을 웃돌기 일쑤입니다. 생협 소시지하고 마트 좋은 소시지, 생협 세겹살과 마트 좋은 세겹살 값은 그닥 안 벌어집니다.


..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 많이 벌기야 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일에만 매달려야 할 테니 시급으로 치면 편의점 알바비 정도일걸. 난 적당히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거야.” ..  (15쪽)


 둘째, 《어제 뭐 먹었어?》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뜰히 그립니다. 만화를 옮긴 분은 “적당히 벌면서”라 적었습니다만, 한자말 ‘적당’을 넣은 이 대목은 자칫 잘못 읽힐까 걱정스럽습니다. 이 대목은 “난 알맞게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쯤으로 옮겨야 했을 텐데요. 잘못 읽으면 “적당히 벌면서”는 “대충 벌면서”처럼 되고 맙니다.

 그나저나,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돈만 왕창 번들 무슨 보람과 재미와 기쁨이 있겠습니까. 《어제 뭐 먹었어?》를 보면 주인공이 동성애를 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건 머리방에서 일하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막일을 하건 교사로 일하건, 대통령으로 일하건 시장으로 일하건 다를 구석이 없어요. 저마다 내 꿈을 알맞게 키우며 내 삶을 알맞게 누릴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 “사장님은 손님들한테 자기 부인이랑 자식들 얘기 한다구. 왜 난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 입 닫고 살아야 하는데……?” ..  (57쪽)


 셋째, 《어제 뭐 먹었어?》는 수수하게 살아가는 재미와 멋을 수수하게 그립니다. 자랑이 아니요 떠벌임도 아니지만 감출 일이라거나 숨길 일 또한 아닌 삶입니다. 돈이 제법 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며 감출 일이 아닙니다. 돈이 하나도 없다 해서 숨길 일이 아니나 떠벌일 일 또한 아니에요. 그저 똑같이 사랑스러운 우리 삶입니다. 그예 한결같이 고운 내 삶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내 살붙이입니다. 우리가 아끼는 우리 벗님이자 이웃입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를 걱정하면서 옆지기가 아픈 몸으로도 늘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몸이 튼튼한 옆지기라면 몸이 튼튼해서 좋다는(몸이 여리다면 몸이 여려서 여린 대로 좋다는) 얘기를 오순도순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이 가서 닿는 삶이고, 네 사랑이 와서 닿는 삶이에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이랍니다.


..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두렴. 어머니는 네가 게이나 범죄자여도 네 전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야!” ‘……. 어머니한텐 내가 범죄자하고 동격이로군.’ ..  (156∼157쪽)
 

 넷째, 《어제 뭐 먹었어?》는 꾸밈없이 어우러지는 빛깔을 그립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꾸밈없이 어우러지면 됩니다. 꾸밀 때에는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꾸미니까요. 꾸미기에 숨겨지니까요. 꾸미기에 허울을 뒤집어쓰고 마니까요.

 이렇게 네 가지로 알차면서 재미난 작품 《어제 뭐 먹었어?》라고 느낍니다. 그림결은 깔끔하고 줄거리나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아요. 어느 구석이든 허술하지 않습니다. 참 잘 그린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사랑할 만하고 두루 사랑받을 만합니다.

 다만, 저는 이 만화책은 1권 하나로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1권 하나를 보았어도 즐겁다고 여깁니다. (4343.10.24.해.ㅎㄲㅅㄱ)


― 어제 뭐 먹었어? (1∼3)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노미영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08∼2010/50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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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 3 바닷마을 다이어리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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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하게 살면서 곱고 착한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18] 요시다 아키미,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이브의 잠》이나 《바나나 피쉬》나 《러버스 키스》라는 만화책을 그렸다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운데 3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보다. 이분 다른 만화책도 보고 싶은데 만화책방에 갈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는 잊고 만다. 아직 다른 만화책들은 판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더 까먹지 않는다면 즐겁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겠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책에 붙인 큰이름인데, 일본글로는 ‘海街diary’로 적는다. 그러면 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에는 ‘바닷마을 일기’나 ‘바닷마을 이야기’나 ‘바닷마을 편지’쯤으로 옮겨야 알맞은데, 엉뚱하게 ‘다이어리’라 적고 만다(이 나라 만화책 출판사 편집자 마음씀이 아쉽다). 일본사람은 워낙 영어를 일본말인 듯 여기며 함부로 자주 쓰지 않는가.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또한 영어를 참 쉽게 쓴다. “열린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라 말할 줄 아는 오늘날 한국사람은 퍽 드물다. 으레 “오픈 마인드”를 주워섬긴다. 몇 해 앞서부터 시월 끝무렵에 한국방송국(KBS 아닌)에서 벌이는 책잔치 이름은 “책잔치”가 아닌 “북쇼”이다.

 만화쟁이 요시다 아키미 님은 ‘바닷마을 일기’를 어느덧 세 권째 그린다. 첫째 권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2009.5.)이고, 둘째 권은 《한낮에 뜬 달》(2009.12.)이며, 셋째 권은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2010.10.)이다. 앞으로 몇 권까지 더 그릴는지 모른다만, ‘바닷마을 일기’는 일본에서 ‘카마쿠라’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복닥이는 삶을 담아낸다. 언뜻 보기에 아무 이야기가 없을 듯하다 여길 수 있고, 썩 재미난 일이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참 작은 시골마을(또는 작디작은 도시이거나 시골 읍내쯤)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신니면 산골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고, 전라도 고흥군 풍양면 바닷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다. 이 작디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이 하루하루 벌이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바닷마을 일기’이다.

 일본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을 잘 들여다보며 알뜰살뜰 만화 하나로 엮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한국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은 들여다볼 생각 없이 더 잘 팔리거나 더 눈길을 끌거나 더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에 휩쓸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삶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집에 텔레비전을 안 들여놓고 내 살붙이와 동무랑 오순도순 지내는 맛을 안다면, 살붙이와 동무랑 복닥이며 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삶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웃음이 있는가를 깨닫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품는 짝사랑 하나로도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가슴에 차츰차츰 커 가는 또다른 사랑과 믿음 또한 그지없이 깊은 이야기로 여미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은 어떠할까. 어른들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배우거나 놀거나 일하거나 어울리는 삶은 어떠하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꼬박꼬박 적어 보는 사람은 알 테지. 한 해 삼백예순닷새 일기 가운데 똑같이 적바림하는 일기란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할지라도 날마다 똑같은 낱말과 말투로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글자수로 적바림하는 일이란 없다. 나 스스로 똑같다 잘못 생각할 뿐, 어느 하루조차 똑같을 수 없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달지라도 날마다 날씨가 다르며,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라든지 보내는 겨를은 다르다. 햇살이 드리울 때하고 비가 쏟아부을 때가 다르다. 옷장에서 꺼내어 입는 옷이 다르다. 빨래를 할 때에 드는 품이 다르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다르며, 텔레비전 구경을 좋아한다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바닷마을 일기 셋째 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가득 채우며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같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되씹어 본다.


- “어쩔 수 없지. 그런 부분까지 다 좋아했던 걸 테니까.” (19쪽)
- ‘길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생겼었고, 산도 강도 깨끗하고, 마을도 사람들도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 따윈 바라지 않았다.’ (24∼25쪽)
- ‘유아, 눈치 채고 있었구나. 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유야. 나서서 허드렛일도 챙기고, 혼자서 잠자코 재활 연습을 하고. 강하구나.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하다. 뭐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50∼51쪽)
-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데 그럼 안 되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병 때문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75쪽)
- “응. 곱게 유카타도 차려입었어.” “유카타라.” “그에 비하면 우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집 배는 고기잡이 배니까 차려입으면 불편하다고. 슈퍼 비닐봉지나 들고 있고. 딱 아줌마네.” “하지만 과자가 없으면 아쉬우니까.” “피부도 까맣고.” “어쩔 수 없잖아. 밖에서 뛰는 축구부니까.” (86쪽)
- ‘지금쯤 유아도 어딘가에서 이 불꽃을 보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유아의 다리에 대해 알면서도 사귀는 걸 테니 분명 좋은 아이겠지. 유야의 다정함과 배려는 다른 모두에게도 평등하게 향해 있던 거구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더. 유아는 잘못한 게 없어.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 하지만 그 아이를 향한 유아의 마음은 역시 조금은 특별한 거겠지?’ (94∼95쪽)



 만화책을 보면서 잘 그린 그림이라서 집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 더없이 멋진 그림이구나 싶어 집어드는 만화책이란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림책을 볼 때에는 참 잘 그렸구나 싶은 책을 사들 때가 있기도 하다만, 그림만 잘 되어 있을 때에는 몇 번 넘기기 힘들다. 솜씨만 빼어난 그림이라면 벽에 걸어 놓고 오래오래 두고두고 바라보기 어려우니까. 내 마음을 건드리는 만화나 그림이어야 즐겁게 넘기고 다시 넘기며 우리 딸아이한테까지 물려줄 만하니까. 내 삶을 밝히거나 빛내는 고운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거나 그림책일 때에 비로소 기쁘게 장만하여 우리 집 책꽂이에 예쁘게 꽂아 놓으니까.

 요시다 아키미 님 만화를 보면서 이분 만화결이 빈틈이 없다거나 예쁘장하다거나 맛깔스럽다거나 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결인지 아닌지조차 느끼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든 《한낮에 뜬 달》이든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이든 수수하게 붙인 책이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시사람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시골사람 자잘한 이야기로 스며들어 엮은 줄거리가 내 마음을 얼싸안는다.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살가이 보듬는 만화쟁이 마음씨를 느끼며 고맙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만화결이 훌륭하다고 이 만화책을 사지 않듯이 글솜씨가 빼어난 작품이라 해서 이 글책(문학책이든 인문책이든 예술을 다루는 책이든)을 사지는 않는다. 토박이말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해서 뛰어나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문학이 될까? 현대문학에서 손꼽힌다 하는 작품이라 하여 멋지거나 재미나거나 고운 문학이 될까? 노벨문학상을 탄다 한들, 이상문학상을 탄다 한들, 아쿠타가와상을 탄다 한들 무엇이 다르려나. 훌륭하기에 상을 받는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은 작품이 내가 읽어서까지 빛깔 곱거나 아리따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이지는 않다. 나는 내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하게 일구는 데에 길동무가 될 좋은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하다.

 조용하거나 한갓지다 느낄 수 있고, 들뜨거나 두근거린다 느낄 수 있는, 차분하면서 따사로운 말마디를 거듭거듭 되뇌어 본다.


- ‘산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몰라.’ (104쪽)
- “유야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실은 나 조금 안심했어. 혹시 유야랑 스즈가 사귀게 되어서 그런 두 사람을 계속 곁에서 봐야 한다면, 나 분명 속상해서, 속상해서 …….” (107쪽)
- ‘어쩐지 이상하다. 1년 전에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언니와 ‘자매’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요시노 언니나 치카 언니와도 ‘자매’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옥토퍼스(축구단)의 친구들도 감독님도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야마가타의 작은 온천 마을에서 또다른 ‘가족’과 지금도 살고 있었겠지. 진학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달콤한 간식도 먹거나 …….’ (128∼129쪽)
- ‘그때 언니는 잠자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봈다. 딱히 슬퍼하거나 하지 않은 채, 그렇지만 무언가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133쪽)
- “그리고 그 ‘정말 소중한 것’은 누가 봐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74쪽)
- “사과하시더라구. 지금껏 못난 딸이 붙들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어. 날 원망할 때가 훨씬 편했어. 부부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그분들은 나처럼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까.” (179쪽)
- ‘마음의 병을 앓는 아내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여 앞으로도 절대 지워지지 않겠지. 나는 그걸 계속 지켜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불만을 쌓아 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건 대체 뭐였던 걸까?’ (183∼184쪽)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고운 문학이란 무엇인가. 맑은 문학이나 밝은 문학, 또는 기쁜 문학이나 예쁜 문학이란 어떤 모습이려나. 참된 문학이나 착한 문학을 생각해 볼 수 없나. 내 좋은 삶을 꿈꾸며 좋은 문학을 찾거나 즐기면 어떠하려나. 내 고운 삶을 일구려는 매무새로 고운 작품 하나 어깨동무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착한 넋 착한 이 착한 말 착한 꿈 착한 삶으로 이어지는 착한 만화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보낸다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

 제법 사랑받으며 읽히는 만화 ‘바닷마을 일기’일 테지만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리라 본다. 꽤 두루 팔리기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바닷마을 일기’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 님은 당신이 그리는 이 만화를 100만 사람이나 1000만 사람이 읽고 가슴 뭉클히 받아들여 주리라 바라지 않겠지. 10만이 아닌 1만 사람일 뿐이더라도, 1만조차 아닌 1천 사람이나 1백 사람일지라도, 가슴으로 따뜻하게 껴안아 줄 고운 벗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그린이가 먼저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면서, 읽는이 또한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곱고 맑은 온누리에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보금자리를 바라 마지 않겠느냐 싶다. (4343.10.16.흙.ㅎㄲㅅㄱ)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이정원 옮김,애니북스,2010.10.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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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아이 4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단한 만화에는 대단한 이름이 안 붙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4] 이가라시 다이스케, 《해수의 아이 (1∼4)》



 2008년 8월에 1권과 2권이 나온 뒤, 2009년 9월에 3권이 나오고, 2010년 9월에 이르러 비로소 4권이 나온 《해수의 아이》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해수의 아이》를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만화를 함께 그렸습니다. 저는 《리틀 포레스트》를 읽고 나서 《해수의 아이》를 읽었고, 집식구가 이이 만화책은 모두 훑고 싶다 해서 《마녀 (1∼2)》(2007)와 《영혼》(2008)을 장만하여 함께 읽었습니다.

 올해에 넷째 권이 나온 《해수의 아이》를 펴낸 출판사에서는 “장대한 스케일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이루어진 만화라 말하고, “이야기의 완성도와 대중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넷째 권이라 말합니다.

 출판사에서 누리책방에 보도자료를 띄운 그대로 《해수의 아이》는 틀림없이 큰 판을 짜서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도록 이끌어 가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한결 빈틈없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곳곳을 가다듬으며 비로소 무언가를 밝히며 끝맺겠구나 싶습니다.

 처음 《해수의 아이》 1권을 집었을 때부터 두 해가 지나 4권을 집은 엊그제까지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 다른 만화에서도 얼핏 느끼지만, 무엇보다 《해수의 아이》를 보면서 이 만화에서는 ‘만화 그림’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만화 《해수의 아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텐데, 바닷물 안팎 이야기를 그리면서 ‘사진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립’니다. 네모난 틀에 나오는 그림결과 짜임새는 으레 ‘사진기로 들여다본 모습’입니다.

 어떠한 만화책이든 뒷그림을 그릴 때에는 사진을 찍어서 그린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서 밑그림을 그린 뒤에 펜으로 마무리하자면 힘드니까요. 사진을 찍어 놓고 일터로 돌아와서 뒷그림을 그리며, 이러한 뒷그림은 흔히 다른 이한테 도움을 받아 그립니다. 널리 알려진 만화 《요츠바랑!》을 잘 살피면, 이 만화에 나오는 뒷그림이나 무대나 자전거 그림 들은 ‘만화로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사진을 만화로 옮긴 그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요츠바랑!》 1권부터 9권까지 보는 내내 ‘처음부터 만화로 여기어 만화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다음 만화로 옮긴 그림’이었기 때문에 못마땅하다거나 거리끼는구나 하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요츠바랑!》에서는 이러한 그림결이 만화 이야기에 살며시 잘 녹아듭니다. 이와 달리 《해수의 아이》에서는 ‘사진 틀거리에 맞춘 그림’이 작품에 썩 녹아들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에서 옮겨 그린 그림이면서 ‘구도가 깨진’ 그림이 있는가 하면 ‘조화가 어긋난’ 그림이 자주 보입니다. 흔한 말로 ‘데생 연습이 모자란’ 셈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일부러 ‘못 그리는 그림’으로 만화를 그리는 분이 있습니다만, 그림이 좀 어설프더라도 이야기를 슬기로우며 알차고 재미나게 이어가면 ‘어설픈 그림’이 외려 힘이 되거나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만화 《해수의 아이》에 고래가 자주 나옵니다. 고래를 이야기하기로는 소설 《모비딕》이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얼마 앞서 소설 《모비딕》을 새롭게 다시 읽은 적 있는데, 《모비딕》을 읽는 동안 《해수의 아이》가 떠올라 이 만화를 겹쳐 읽고 보니(《모비딕》 새 번역은 2010년 1월에 나왔습니다. 새 번역을 읽으며 《해수의 아이》 1∼3권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만화책에서 고래 발자국을 바탕으로 바다와 우주와 사람과 어머니와 자연과 목숨과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 하나 그리고팠구나 하고 느낍니다.

 누구나 그리고픈 만화를 그려야 합니다. 어느 때에 이르러 나 스스로 그리고픈 만화를 그릴 수 있고, 부딪히고 싶을 때에 부딪히며 그릴 수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은 다음에만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가 지나야만 제대로 무르익는 만화쟁이로 우뚝 서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그리는 내 만화가 나로서는 가장 무르익을 때 그리는 만화로 여길 수 있어요.

 이제 5권이 나올 《해수의 아이》는 5권으로 끝을 맺을는지, 6권이나 7권으로 이어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어떻게든 끝을 내겠지요. 그런데 작품 하나를 끝맺으면서 읽는이한테 말고 그린이 스스로 무엇을 깨닫거나 보거나 헤아릴는지 모르겠습니다. 만화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읽거나 보는 사람 가슴을 뭉클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바야흐로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만, ‘읽거나 보는 사람에 앞서 그리는(또는 쓰거나 찍는) 사람부터 당신 스스로 당신 가슴이 뭉클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사람들 앞에 ‘작품’이라고 밝히며 내놓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한테 《해수의 아이》는 어떤 만화일는지요?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한테 이 만화는 ‘작품’으로 꼽을 만한지요?

 굳이 출판사 보도자료에 적힌 몇 마디를 들었습니다만, 만화 《해수의 아이》는 가없이 크고 넓은 우주와 자연과 바다와 어머니와 삶과 사랑과 목숨 들을 골고루 뒤섞어 알뜰히 보여주고자 힘씁니다. 그러면 묻고 싶습니다. ‘우주’라는 낱말을 꺼내야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나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듯 집에서 손수 굽는 빵 하나와 빚는 양념 하나에 얼마든지 너르고 깊은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 이 양념은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라 읊으며 무언가 깨닫는 사이 저절로 어머니 이야기를 너르고 깊이 다룹니다. 생각없이 숲길이나 시골길을 거니는데 ‘사각’ 소리를 내는 가랑잎을 밟은 그때에 나 스스로도 모르게 자연을 밝힌 셈입니다. 힘든 나날이라 도쿄를 떠나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가 지내며 마주하는 사람들하고 시나브로 사랑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섣불리 내세운다고 제대로 내세워지지 않는 삶입니다. 대학교 철학과를 다녀야만 철학을 하지 않습니다. 철학교수여야 생각이 깊거나 너르겠습니까. 데생 솜씨가 온누리에서 첫손을 꼽아야 그림을 가장 잘 그리거나 만화가 가장 아름답다 하겠습니까. 가장 비싼 장비를 써야 사진을 가장 잘 찍지 않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은 비싼 장비를 쓰고파 하는 마음앓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더 비싸거나 더 크거나 더 빠른 차를 장만해야 서울이나 부산 같은 도시에서 출퇴근을 더 느긋하며 즐거이 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러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두 다리로 출퇴근할 줄 모를 뿐더러 자전거로 출퇴근할 줄조차 모릅니다. 길이 막혀 길에서 기름을 쏟아부으며 버리는 돈뿐 아니라 애먼 시간을 헤아리면서, 아침에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일찍 나서며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면 내 삶과 삶터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살필 겨를이 없는 한국사람이고 서울사람(도시사람)입니다.

 《해수의 아이》 5권이 나오면 곧바로 장만할 생각입니다. 6권이나 7권까지 나오더라도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그러나 1권을 집었을 때부터 4권까지 오는 동안 ‘만화를 읽는 즐거움’과 ‘작품 하나 만나는 재미’가 자꾸 옅어집니다.

 긴 작품을 그리고 싶으면 참말 길게 바라보며 길게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짧은 작품이라 해서 빼어난 작품이 아닐 수 없을 뿐더러, 짧게 끝맺는 작품을 하나둘 꾸준히 내놓다 보면, 바로 이 ‘짧은 작품이 끈처럼 하나로 이어지며 또다른 긴 작품’ 하나로 새삼스레 태어나거나 거듭나는 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애써 힘겹게 너무 ‘커다란’ 말과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풀숲에 깃든 수많은 들풀 가운데 한 포기만 바라보아도 얼마든지 목숨 하나와 자연 사슬을 밝힐 수 있으니까요. 수십억에 이르는 사람이 바글거리는 지구인데, 사람 이야기 하나 못 다루겠습니까. 좋은 끈은 가까이에 있어요. 바다는 늘 우리 곁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참다이 느끼려 하지 못하니 못 느낄 뿐이랍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이 흘리는 땀방울이 고요하게 묻어나 촉촉해지는 작품 하나를 다시금 만나고 싶습니다. 팔에서 힘을 빼셔요. 머리에서 생각을 지우셔요. 마음에서 아쉬움을 터셔요. (4343.10.11.불.ㅎㄲㅅㄱ)


― 해수의 아이 (1∼4) 

 (이가라시 다이스케 글·그림,김완 옮김,애니북스,2008∼2010/9500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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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고양이를 사랑하며 만화를 그리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3] 이와오카 히사에, 《고양이 동네》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4343.10.6.물.ㅎㄲㅅㄱ)


―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7.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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