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9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21



다른 울음소리 알아듣기

― 동물의 왕국 9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12.25.



  어버이가 아이를 보살필 수 있는 까닭은 아이가 빈틈없이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기는 입으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말을 해요. 아기 티를 벗고 아이로 자랄 적에도 입으로 읊는 말보다 마음으로 들려주는 말이 더욱 깊고 넓습니다.


  어버이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읽기’를 하면서 아이를 보살핍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도 어버이 마음을 가만히 읽으면서 사랑을 느끼지요. 어버이하고 아이는 입으로 나누는 말을 넘어서는 ‘마음으로 나누는 말’을 함께 나누면서 보금자리를 가꾼다고 할 만합니다.



“넌 역시 약하군. 어째서 내 앞에 나선 거지? 날 죽일 힘도 없으면서.” (14쪽)


“예전에 나의 친구들도 네 녀석들에게 많이 잡아먹혔지만, 난 그 미움을 버리고, 너희와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37쪽)


“네가 기적의 아이냐? 좋은 표정이다. 잘못된 길로 가지 마라.” (57쪽)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2) 아홉째 권은 다 다른 짐승들이 다 다른 울음소리를 내지만, 다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키메라하고 맞서 싸우는 동안 차츰차츰 한몸이 되었고, 어느덧 한마음에 가까이 다가섭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사람하고 짐승이 왜 따로 있는가를 생각하고, 사람도 짐승도 모두 같은 숨결이라는 대목을 생각하며, 모든 목숨이 서로 아끼면서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생각합니다.



“타로우자가 뭘 줬는데?” “그저 도와주고 먹을 걸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줬어.” (75쪽)


‘들렸다. 뭐라고 울었는지 알아들었어. 울음소리가 다른데도 전해졌다. 캐서린의 생각.’ (174쪽)



  어버이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어버이 노릇을 못 합니다. 아이가 어버이 울음소리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로서는 이 땅에서 사랑을 찾지 못하면서 무섭거나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고 만 죽음기계’ 때문에 사람 스스로 죽음길로 가고 마는 바보짓을 ‘끝없는 싸움판’을 그려내면서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읽히기는 어렵고, 어른들도 쉽게 읽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만화책은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낱낱이 그리는데, 우리 사회는 겉속이 다른 수없는 싸움판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온통 싸움판이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시험성적을 놓고 싸워야 하고,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싸움을 벌여야 하며, 어른은 그야말로 돈을 어느 만큼 더 버느냐 마느냐 하는 싸움을 벌입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목소리인가를 읽고픈 마음이 없을까요? 우리는 서로 목소리를 읽을 마음이 없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서로 아끼며 보살필 줄 아는 사랑을 품는 자급자족을 하는 길을 갈 때에 비로소 사람다운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2016.4.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전 3시의 위험지대 2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47



옛날 내 모습을 너한테서 느끼며

― 오전 3시의 위험지대

 네무 요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12.15. 5500원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이어서 나온 《오전 3시의 위험지대》를 2권까지 읽고 3권은 더 읽지 않는다. 2015년에 4권까지 나왔는데 3권은 장만했으나 따로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만화책이 아예 못 볼 만큼 재미없는 만화라고 여기지는 않으나, 줄거리나 흐름이 너무 뻔하게 흐르겠구나 하고 느끼다 보니, 구태여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아, 젠장,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이지, 짜증난다.’ (18쪽)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니, 그거야말로 거짓 아닌가. 하긴, 어차피 내가 바뀌어 봤자.’ (20쪽)



  어떤 책을 읽든 ‘책을 이루는 이야기’에서 ‘오늘 내 삶을 되새기는 생각’을 엿본다. 이러한 생각을 엿보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내기도 하고, 미처 나 스스로 깨닫지 못한 대목을 곱씹기도 한다. 《오전 3시의 무법지대》2권에서는 두 마디를 가만히 헤아려 본다. 누군가한테서 ‘어리숙했던 옛날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일이란 짜증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짜증은 어느새 ‘지켜보는 눈길’이 되면서 ‘따스한 사랑’으로 바뀌곤 한다. 때로는 그냥 짜증만 더 커지면서 골부림이 될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 모습은 바뀔 턱이 없어’처럼 생각한다든지 ‘내가 바뀌어 보았자 딱히 뾰족한 수가 있겠어’처럼 생각한다면 이 생각처럼 나아간다. 나 스스로 나를 안 믿고 안 사랑한다면, 누가 나를 믿거나 사랑하겠는가. 내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좋아해 주거나 아낄 수 있겠는가. 2016.4.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9



생각을 지어 새로운 길을 걷는다

― 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1.30. 5000원



  씨앗에서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척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을 그저 땅에 묻을 뿐이지만, 이 작은 손짓으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나요. 더욱이 작은 씨앗 한 톨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위로 옆으로 퍼지면서 꽃을 피우지요.


  땅에 씨앗을 심어서 틔우듯이, 사람은 마음에 생각을 심는다고 느낍니다. 작은 씨앗이 고운 꽃을 피워서 넉넉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작은 생각 한 가지에 고운 꽃을 피워서 너른 꿈을 이루리라 느낍니다.



“신을 믿고 섬기는 일, 인간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일, 신과 함께 사는 일. 나도 줄곧 집에서 느껴 온 것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곳을 너와 함께 보며 갈 수 있다면.” (1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둘째 권에서는 ‘일본 신사’를 돌보는 일을 맡은 아버지가 어떤 꿈을 품고서 이 일을 했는가 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일본 옛술’을 담가서 마을에 파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내였고, 그저 집안일을 잇겠거니 하고 여기면서 살다가 ‘신사집 딸’한테 마음이 끌려요. 어릴 적부터 ‘나중에 집안일을 물려받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 앞날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살던’ 아이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각을 처음으로 품습니다. 어떤 생각을 품느냐 하면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이 없이 집안일을 물려받아도 내 삶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품어요. 이러고 나서 이 생각을 잇고 가꾸고 가다듬고 돌아보면서 ‘내가 스스로 여는 내 삶길은 무엇일까?’ 하고 다시 스스로 수수께끼를 냅니다.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고 계시겠지. 뭐, 어떻게든 될 거야.” (51쪽)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때의 감정인지는 지금 본인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니 어떻게 되든 이쪽도 그저 지켜볼 생각입니다.” (56쪽)



  어버이가 잘 가꾸어 놓은 집안일을 물려받는 일은 이 일대로 즐거울 만합니다.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른 길을 새롭게 갈고닦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일은 이러한 일대로 즐거울 만해요. 어느 쪽이든 즐겁고, 어느 길이든 기운을 내어 나아가면 돼요. 집안일을 물려받더라도 이 집안일에 어떤 넋이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할 노릇이고, 내 길을 내가 새롭게 닦으려 한다면 이러한 삶에서도 스스로 어떤 꿈을 가꾸면서 웃음꽃을 피우려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이에요.



“유코는 이곳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기에 제게도 소중한 곳이 됐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둘이 함께 이곳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88쪽)


“인간은 태어날 때 신의 세계에서 왔다가, 죽으면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거든. 할머니도, 신이 되어서 지켜보고 계실 거야. 우리 모습도.” (139쪽)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못 걷기도 하지만, 이냥저냥 흘러온 길에서도 기운을 내거나 웃음을 틔우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도 생각을 해야 밥맛이 나요. 옷 한 벌을 빨 적에도 생각을 해야 한결 깔끔하면서 고운 옷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가벼운 놀이를 할 적에도 생각을 해야 신나게 웃고 뛰놀 만해요.

  만화책 《은여우》는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톡톡 튀거나 대단하다 싶은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을 땅에 심어서 가꾸는 흐름처럼, 우리가 마음에 심을 고운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고 활짝 웃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주어진 길대로 가든, 새로운 길을 내든,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씨를 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마을에서든, 아이들은 슬기로운 어버이 곁에서 삶을 생각하는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16.4.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부이야기 8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617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다

― 신부 이야기 8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30. 7500원



  요즈음 들어 큰아이는 새롭게 뜨개질에 눈을 뜹니다. 지난해에 어머니한테서 코를 잡는 뜨개질을 익히기는 했는데 얼마 못 가서 다른 놀이에 빠져서 코잡기를 어느새 잊었어요. 이러다가 요즈음 들어서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쥡니다. 어머니가 실을 엮고 속에 솜을 채운 ‘집인형(수제인형)’을 지어서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어머니가 여러 날에 걸쳐서 한 코 두 코 찬찬히 떠서 지은 뜨개인형을 보고는 아주 반했어요. 작은아이도 이 뜨개인형에 몹시 반한 나머지, 어디를 가든 꼭 뜨개인형을 챙깁니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쥐면서 실엮기부터 합니다. 인형한테 줄 목도리를 조그맣게 뜨고, 아이 손에 끼울 가락지를 신나게 떠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까, 자꾸 짜증이 나서!” “새를 자수로 놓으면 즐거워요!” “아, 네, 그렇군요.” (48쪽)


“어머니가 되면 가족을 부양하니 모든 일에 책임을 가져야만 하지. 태어날 아이에게 입혀 준다는 생각으로 해 보거라.” “아이.” “응? 상상이 안 가느냐?” “그럼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며 수를 놓아 봐.” “그게 더 잘 될 게다.” (53쪽)



  모리 카오루 님이 빚은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6)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터전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책입니다. 이 만화책을 그리는 분들(작가와 도움이 모두)은 참으로 ‘죽어 나겠네’ 하고 느끼면서 읽는 만화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입는 옷은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무늬를 박은 옷’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든 배경에 나오는 사람이든 모두 ‘손바느질로 무늬를 알뜰히 넣은 옷’을 입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한 칸을 그리려고 해도 여러 사람이 수없이 그리고 다시 그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 여덟째 권에서는 ‘파미르’라는 아가씨가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 ‘신부’는 아니지만 앞으로 ‘신부가 될 아가씨’이지요. 그런데 이 아가씨는 ‘가시내는 모두 손바느질로 옷이며 옷감이며 깔개며 이불이며 살림이며 떠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건만, 뜨개질 솜씨가 영 시원찮습니다. 빵반죽은 무척 훌륭히 잘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바늘을 놀리는 데에는 아주 서툴어요.



‘뭐, 그대로 하라는 말씀은 없었으니까, 슬쩍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 “간단히 때울 생각만 하다간, 언제까지고 늘지 않을 게다.” (79쪽)


“정말 예뻐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는걸요.” “뭐, 처음에만 힘들 뿐이지. 한 번 할 수 있게 되면 그 후로는 점점 편해지거든. 게다가 말이다, 이런 건 매일 쓰는 물건이야. 볼 때마다 참 잘 만들었구나, 생각할 수 있어서 좋지 않으냐.” (91쪽)



  바느질을 하는 젊은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책을 읽다가 우리 아이들을 문득 바라봅니다. 한 코 두 코 잡으면서 실을 엮어서 뜨개질을 익히려는 손놀림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실가락지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가락지가 발판이 되어 앞으로 깔개도 뜰 수 있고, 목도리도 인형도 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입을 옷도 스스로 뜰 수 있을 테고요.


  나도 어릴 적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실과 수업에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다만, 실과 수업을 하던 학기에만 한 달 즈음 하고 그쳤을 뿐이에요. 교과서에 나온 수업이었으니 1980년대 학교에서도 열 살 안팎 아이들이 뜨개질을 배웠어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대바늘도 팔고 실도 팔았어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목도리나 장갑이나 양말쯤은 으레 ‘집옷’으로 떠서 입곤 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 무렵이라면 ‘옷을 사서 입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으리라 느껴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00년대 첫무렵이라든지 1800년대라 한다면, 누구나 제 옷은 제가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여기에서 더 헤아리면, 지난날에는 뜨개질이나 바느질만 스스로 하지 않았습니다. 천뿐 아니라 실까지 손수 얻었어요. 풀줄기에서 섬유질을 뽑아낸 뒤에, 이 섬유질을 말리고 다스려서 물레를 잣지요. 물레를 자은 뒤에는 베틀을 밟아요. 베틀을 밟아서 천을 짜고 나서야 비로소 바느질을 해요.



‘이대로는 안 돼. 무슨 수를 써야 해! 나는, 성격을 바꾸겠어. 나는 나의 이상형인 내가 되겠어.’ (168쪽)



  나는 오늘 어버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입히지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뜨개옷을 제법 지어서 입혔습니다. 이러다가 옷짓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나중에는 그냥 사서 입자고 하셨어요.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입자는 생각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서 사서 입으면 되고, 아니면 이웃한테서 물려받아서 입으면 되리라 여겼어요. 화학섬유로 공장에서 찍은 옷인지, 아니면 들에서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짓는 옷인지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면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늘 손으로 만지면서 놀 인형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좋은 옷이나 인형을 ‘돈을 넉넉히 벌어서 사서 쓰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실을 풀줄기에서 섬유질로 얻어서 물레도 잣거나 베틀도 밟는 길까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하고 바늘을 장만해서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할 수 있습니다. 뜨개질하고 바느질부터 하나씩 제대로 새롭게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옷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파미르 아가씨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새롭게 바느질을 하려고 애쓰듯이, 파미르 아가씨가 스스로 ‘새로운 나’로 거듭나려고 하듯이, 나도 올해부터 새로운 살림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기에 돈으로 사서 써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더라도 손으로 기쁘게 지어서 쓰는 살림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합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애벌레 말캉이 2 - 심심한 건 더 못참아!
황경택 글.그림 / 소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6



내 모습은 바로 ‘나를 낳은 엄마 모습’

― 꼬마 애벌레 말캉이 2

 황경택 글·그림

 소나무 펴냄, 2010.12.12. 9500원



  노랑나비도 흰나비도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봄입니다. 노랑나비하고 흰나비는 고흥에서 삼월 첫머리에도 반가이 보았고, 사월에도 기쁘게 봅니다. 삼월 첫머리에 깨어난 노랑나비라면 이월부터 번데기를 틀었다는 뜻이고, 한겨울에도 애벌레로 살았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겨울에도 갓이나 유채는 씩씩하게 돋습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한겨울에도 짙푸른 잎을 매답니다. 이른봄에 나비로 깨어나려고 하는 애벌레로서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먹을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모든 풀이 다 시들어서 죽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월부터 돋은 쑥에도 온갖 애벌레가 꼬물꼬물 붙어서 기어다녔어요. 어느 아이는 나비로 깨어날 애벌레일 테고, 어느 아이는 나방으로 깨어날 애벌레예요.



“똥이 더러운 거라면, 똥을 만드는 동물도 더러운 게 아닐까? 난 똥을 치워 주잖아.” “넌 먹잖아!” “내가 없다면, 이 세상엔 똥이 가득할 거야.” “설마. 그 많은 똥들을 혼자 다 먹냐?” (17쪽)


“난 밤에 짝을 찾으려고 불빛을 만들어내지.” “짝은 찾아서 뭐 하게?” “알 낳지.” “왜 다들 알을 낳으려는 걸까?” “내가 죽으면 내 대신 살아가야지.” “안 죽으면 되잖아?” “안 죽는 건 없어.” “난 안 죽어. 천재니까!” ‘저거 바보 맞네.’ (33쪽)



  엊저녁에 집에서 나방 한 마리를 봅니다. 집안에서 나방을 보기는 올들어 처음입니다. 나비뿐 아니라 나방도 깨어날 때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깥에서는 파리도 몇 마리 날아다닙니다. 벌도 부산하고 파리도 부산해요. 저마다 새로운 숨결로 새봄을 맞이하느라 부산해요.


  황경태 님이 빚은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소나무,2010) 두 권을 읽으면서 나비하고 나방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꼬마 애벌레는 ‘뽕나무 애벌레’입니다. 마침 우리 집 뒤꼍에는 제법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이 뽕나무 둘레에는 뽕잎을 먹는 애벌레가 꽤 많습니다.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주인공 애벌레는 우리 집 둘레에서 흔히 보는 숱한 애벌레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해요.



“나도 엄마한테 신호 보낼 거야. 어떻게 하는 거야?” “넌 안 돼.” “난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어.” (37쪽)


“우린 왜 먹어야 할까?” “낸들 아냐.” “왜 그럴까? …… 난 안 먹을래! 생명을 해치는 일, 난 안 해!” “너, 먹지?” “생각해 봤는데, 난 풀밖에 안 먹어.” “풀도 생명이야. 생명은 다 같아. 너도 나도 풀도 다 같은 생명이야.” (85∼86쪽)



  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말캉이는 처음에는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섞습니다. 뽕나무한테서 ‘말캉이’라는 이름을 얻은 애벌레는 나무 곁에서 나뭇잎만 먹으며 살기보다는 ‘너른 바깥누리’를 겪고 싶습니다. 씩씩하게 나무를 타고 땅바닥으로 내려서요. 다만, 하루 사이에 내려서지 못하고, 이틀에 걸쳐서 힘겹게 내려섭니다.


  문득 우리 집 애벌레를 떠올립니다. 애벌레는 하루 만에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하고.


  애벌레는 ‘작은 벌레’라고 하는 뜻처럼 작습니다. 뽕나무 곁에서 자라는 애벌레도 참으로 작습니다. 십 미터쯤 되는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오자면 한참 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달팽이보다는 빨라요. 꼬물꼬물 기는 몸짓이지만 이틀까지 걸려서 땅바닥으로 내려오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한곳에서 빙글빙글 돌 수 있어요. 때로는 ‘수많은 발’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하늘을 가르며 바닥에 톡 떨어지기도 해요. 지난해 봄에는 바람이 퍽 가볍게 불던 날씨인데에도 애벌레가 그만 땅바닥에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방법이 있다. 네 엄마가 누군지 아는 방법!” “그, 그게 뭔데?” “네가 엄마가 되어 보면 알지!” (90쪽)


“그럼 이상한 걸 먹냐?”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걸 먹는 거야. 먹는 건 사랑스러운 거야!” (107쪽)



  누군가는 이 애벌레를 징그러이 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똥을 핥는 파리’를 더럽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벌레는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서 먹을 뿐 아니라, 나무꽃이나 풀꽃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해 줍니다. 파리가 똥을 핥기에 사람이나 짐승이 누는 똥이 흙으로 돌아가서 풀하고 나무가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없어서 나비나 나방이 깨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셔요. 매화나무도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귤나무도 오얏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 모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해야 합니다. 밤나무도 잣나무도 은행나무도 참나무도 벚나무도 사람이 하나하나 손을 써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 테고요. 바람도 꽃가루받이를 시켜 준다고 하지만, 크고작은 날벌레하고 풀벌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애벌레와 날벌레가 너무 늘지 않도록 새가 함께 있어야지요.


  함께 사는 지구별이자 숲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자 마을이라고 할 만해요. 그래서 작은 애벌레는 나무한테서도 삶을 배우고, 이웃 여러 벌레랑 짐승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사람도 다른 사람만 스승으로 삼지 않아요. 사람도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작은 벌레한테서도 배웁니다.



“아, 졸려. 근데, 뭔가 막 하고 싶다. 실 뽑기! 위로 갈 거야.” “왜 갑자기?” “나도 몰라. 그냥 뭐가 하고 싶어졌어. 본격적으로 실 뽑기를 하고 싶다.” (136∼137쪽)


“난, 암컷이었어.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나를 낳았듯 멋진. 아, 지금 내 모습은 엄마의 모습?” (165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애벌레는 너른 바깥누리를 돌아다닌 끝에 뽕나무한테 돌아갑니다. 바깥누리를 돌아다니면서 사귄 여러 동무한테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을 배웠고, 다시 돌아온 뽕나무한테서 ‘꿈꾸면서 잠드는 하루’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윽고 이 애벌레 말캉이는 스스로 번데기를 틀어서 깊이 잠들어요. 오랫동안 꿈나라를 헤맨 끝에 가만히 깨어나요. 날개를 단 눈부신 몸으로 일어나지요. 그러고는 어느 때에 문득 깨닫습니다. ‘아, 나는 나를 낳은 엄마처럼 엄마가 되었구나!’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를 낳아서 우리는 저마다 즐겁고 씩씩하게 살다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우리는 다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새로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작은 애벌레는 작은 애벌레답고 수많은 이웃한테서 삶을 배워서 사랑을 키웠고, 사람은 사람대로 숱한 이웃한테서 살림을 배워서 사랑을 키웁니다. 모든 목숨이 싱그러이 깨어나서 무르익는 사월을 맞이하여 힘차게 기지개를 켭니다.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노래하는 살림을 꿈꿉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어린 새하고 번데기에서 거듭나는 새로운 나비와 나방처럼, 나도 날마다 껍데기를 벗고 슬기로운 어른이자 어버이로 힘차게 서자고 다짐합니다. 2016.4.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