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6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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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738



혼자 켜고 듣는 노래가 아닌

― 순백의 소리 16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10.25. 4800원



“당신은 이 여행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지? 나도 찾고 있었어.” (41쪽)


‘나도 할배나 와카나 형이 있었으니까 후토자오 소리는 누구나 당연히 듣는 거라 생각했다.’ (119쪽)


“궤도에 오르면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니야말로 목표가 뭐꼬?” (191쪽)



  우리는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뭐가 뭔지를 잘 모르지요.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모르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모릅니다. 왕자는 거지를 모르고, 거지는 왕자를 몰라요. 시골쥐는 서울쥐를 모르고, 서울쥐는 시골쥐를 모르지요.


  늘 누리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늘 못 누리는지를 모릅니다. 좋은 것이든 궂은 것이든 말입니다. 늘 못 누리고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떠한 살림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순백의 소리》를 이끄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나 형이 늘 후토자오를 켰기에 언제나 후토자오라는 악기 소리를 누리며 살았어요. 이러다 보니 다른 숱한 여느 사람들이 이런 노랫소리를 못 듣거나 못 누리는 줄 거의 모른 채 자랐습니다. 게다가 이 아이는 딱히 학교를 다닐 마음도 뜻도 생각도 없다 보니, 또래 아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조차 잘 모를 뿐더러, 헤아리지도 못해요.


  사회에 어울랄 수 없는 순 시골돌이라 할 만한데,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고, 할머니 어머니 형 모두하고 이어진 가장 정갈한 노랫가락이란 무엇이고, 이 노랫가락을 둘러싸고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찾고 싶어서 시골집을 떠나서 도시 한복판에서 온갖 삶을 부딪히기로 합니다. 《순백의 소리》 열여섯째 권에서는 오랜 일본 악기를 켜서 음반을 내는 동무를 보고 형을 보면서, 음반이란 무엇일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해 보는 조용한 한때를 보냅니다. 노래라면 언제나 스스로 악기를 켜서 그 자리에서 부르는 줄로만 알던 아이는, 이제 새로운 노랫가락에 조금씩 눈을 뜨려고 합니다.


  바쁜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도 들을 수 있는 노래를, 집에 악기가 없는 사람도 방바닥에 누워서 느긋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음반에 담아 보는 길을 어렴풋하게 생각합니다. 2017.11.1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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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8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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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7



카고메는 카고메

― 이누야샤 8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어쩔 수 없었단 말야! 보고 싶었는걸!” “나를?” “뭐야, 그 얼굴은?” (33쪽)


“키쿄우는 영력이 하루하루 약해져, 이 땅의 요괴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지. 왜인지 아느냐, 이누야샤? 키쿄우가 보잘것없는 반요에게 반해, 힘없는 보통 여자로 전락했기 때문이야.” (45∼46쪽)


“그래도, 역시 네 얼굴을 보니까, 왠지 힘이 났어. 역시 카고메가 곁에 있어 주면 좋겠어.” (74쪽)


“살아 있는 자들은 새로운 시간을 새겨 가오. 그러나 죽은 자인 그대의 시간은 멈춰 있소. 결코 섞일 수 없는 것인데, 불쌍한…….” (104쪽)


“난 역시, 키쿄우의 대용품이야?” “뭐? 바보야! 절대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알겠어! 물론 처음엔 닮았다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카고메는 카고메야. 너를 대신할 건 없어.” (184쪽)



  연필이 닳으면 새로 연필을 장만합니다. 새 연필을 쓰면서 옛 연필을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연필을 쥐면서 새롭게 쓸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여요. 오랫동안 아끼며 쓰던 살림을 잃으면 새로 마련합니다. 잃은 옛 살림을 서운하게 여길 일은 없습니다. 오늘 손에 쥐며 꾸리는 살림을 헤아릴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도 여느 물건이나 살림처럼 척척 새사람을 맞이해서 곁에 둘 만할까요?


  새로 사귀는 동무가 있습니다. 새로 만나는 이웃이 있습니다. 새로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부터 사귀거나 만나는 사람을 멀리하거나 싫어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모두 다르면서 아름다운 사람이지요. 저마다 다르면서 반가운 사람이에요.


  만화책 《이누야샤》는 여덟째 권에 이르면서 카고메하고 키쿄우 사이에서 이누야샤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를 그립니다. 키쿄우가 요괴를 누르면서 마을을 지키던 힘을 잃은 까닭이 무엇인가를 모두 알아차립니다. 키쿄우는 나라쿠한테 속아서 죽고 말았는데, 죽음에 이르면서 이승에 아쉬움을 남깁니다. 홀가분하게 저승으로 못 가고 이승을 떠도는 넋이 되어요. 이승에 있는 사람을 저승으로 같이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누야샤는 죽은 넋인 키쿄우를 따라서 함께 저승으로 가고 싶을까요? 아니면 죽은 넋이 스스로 곱게 마음을 달래어 저승으로 떠나고, 이승에서 카고메라는 아이 곁에 있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는 삶을 짓고 싶을까요? 갈림길에 선 마음입니다. 갈림길에서는 옳음이나 그림이 아닌 스스로 가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2017.11.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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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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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6


죽었으나 저승에 못 가는 안타까움
― 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1.5.30. 8000원


‘내 모습이 변치 않았다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24쪽)

“당신은 그냥 당신이니까, 무리해서 신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에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46쪽)

“서늘한 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를, 늘 지켜 주었죠. 어쩌면 당신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고, 나도 그 발밑에 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분명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예요.” (134쪽)

“어떡해, 어떡해? 우리 마사히로, 벌써 1살이야. 무려 1살이라구. 1살!” “어머님, 아버님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그렇게 맡겨 두고 와서?” “무슨? 괜찮아. 오히려 기뻐하고 계셔. 빨리 돌아가자, 기쁨을 선사해야지.” “너무 들뜬 거 아냐?”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가 있어? 그 아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188쪽)


  한국말에 ‘이승·저승’이 있어요. 산 사람이 사는 곳은 이승이요,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은 저승이라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쪽·저쪽’인 셈입니다. 이곳 너머가 저곳이요, 이 길을 떠나면 저 길을 가는 셈이고요.

  “이리 와”하고 “저리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와” 하고 부를 적에는 이쪽에서 함께 살아가요. “저리 가” 하고 내칠 적에는 한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싫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면 이곳 너머가 저곳이지만, 저곳에서 보면 저곳 너머가 이곳이지요.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보자면 우리 아닌 너희는 남이지만, 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바로 남이 되어요.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미우, 2011)은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을 다룹니다. 다만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이 숲에 있어요. 이 숲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 드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느 때 숲 바깥에서는 숲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막상 숲에 발을 들이고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보지 못한 숱한 ‘다른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숲 바깥에서는 하찮은 돌멩이입니다만, 숲에서는 ‘스스로 걷고 움직이며 말하고 웃거나 찡그릴 줄 아는’ 목숨인 돌멩이가 되어요. 숲 바깥에서는 그저 흔한 길고양이나 들개라 하더라도 숲에서는 ‘사람하고 똑같이 말하고 웃고 울고 노래할 줄 아는’ 목숨으로 보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서는 숲 안팎을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사내가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사내가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첫째 권 끝자락에 살며시 담아요. 숲 안팎을, 그러니까 이승저승을 홀가분하게 오가는 사내는 꼭 1살 적에 두 어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대요.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어버이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지만 두 어버이가 저(1살 아기)한테 주려던 장난감 자동차는 멀쩡했다지요.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오랜 장난감 자동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를 가만히 되새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 사내는 길을 잃은 ‘돌멩이 정령’을 비롯해서 숱한 목숨붙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이끄는 몫을 맡습니다.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살이를 하느라 바빠서 쳐다보지 않거나 마음조차 안 쓰는 ‘작은 이웃(사람이 아닌 모든 목숨붙이)’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사람 아닌 숱한 이웃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눈이나 힘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초능력이 있어야 돌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쁘게 몰아치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쪼그려앉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알 적에, 바람소리를 듣겠지요. 잎소리를 들을 테고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숱한 이웃들한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린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사회에 물들지 않기에, 사회에 휩쓸리지 않기에, 사회에 끄달리지 않기에,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려 하기에, 우리는 꽃 한 송이를 아끼고 이웃을 보듬는 넉넉한 삶을 가꾸리라 봅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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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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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5



오직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 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글·그림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4.9.26. 13500원



“사쿠라 넌 다른 꿈 같은 거 없어?” “있어. 고고학자. 나 있지, 화석을 보거나 조사하는 게 좋아. 언젠가 유적 발굴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어. 근데 그런 얘기 하면 아빠도 엄마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져. 여자애답지 않대.” (30쪽)


“우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건 난 몰라. 난 그저 어찌됐든 간에 우주를 꿈꾸는 친구들과 쭉 함께하고 싶은 것뿐인데, 당신이 진짜 내 아버지라면 제발 좀, 제발 좀 알아 달란 말이야!” (146∼147쪽)


“똑같은 사람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마리카는 우주를 꿈꾸며 노력 중인 평범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일세.” (200쪽)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똑같은 것이란 없어요. 나비가 낳아서 깨어나는 애벌레도, 고양이가 낳은 새끼도, 사람이 낳은 쌍둥이도, 똑같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것은 모두 달라서 뜻있습니다. 모두 다른 목숨은 모두 다르기에 아름답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은 모두 다른 터라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저마다 달리 꿈을 키웁니다.


  그런데 모두 다른 것이든 목숨이든 사람이든 한 자리에서 만나요.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짓는 고운 사랑이라는 자리에서 만나지요.


  이래라 하고 시킬 수 없어요. 저래라 하고 맡길 수 없습니다. 스스로 움직여서 합니다. 때로는 바지런히 서둘러서 합니다. 때로는 미적거리면서 늦춥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하든 모두 제자리를 찾으면서 맞물려요.


  여름에는 해가 높고 겨울에는 해가 낮지요. 늘 높지 않고, 언제나 낮지 않습니다. 만화책 《트윈 스피카》 일곱째 권은 차츰 저무는 여린 아이들하고 천천히 무르익는 아이들이 서로 어우러집니다. 일찍 저물든 천천히 무르익든, 모두 동무가 되어 아낄 줄 아는 마음입니다. 2017.1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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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곁에서 -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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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4


병에 담은 바람이 체코 여행 선물
― 너의 곁에서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옮김
 이봄, 2016.9.23. 12000원


  마스다 미리 님 만화책 《너의 곁에서》(이봄, 2016)는 《주말엔 숲으로》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너의 곁에서》를 펴면 첫머리에 어머니하고 아이가 주고받는 말이 나와요. 아이는 학교에서 ‘내가 태어난 날 이야기’를 집에 여쭙고서 학교에서 말하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아이는 이 숙제를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어머니는 아이 말을 듣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한 마디를 해요.


“엄마, 내가 태어난 날 말인데, 어떤 날이었어?” “알고 싶어?” “응!!” “특별한 날 이야기니까 차 마시면서 천천히 할까.” (9쪽)

“엄마는 그래서 알았지. 타로가 오늘 태어나는구나. 왜 거기 병원 앞에 커다란 졸참나무가 있잖아.” “응.” “졸참나무 잎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기뻐! 기뻐!’ 하고 말했어.” “나뭇잎이?” “응. 엄마에게는 그렇게 들렸어.” (12쪽)


  어머니하고 아이가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찻잔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두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적거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낸 숙제이기 앞서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삶과 사랑이 얽힌 이야기인 터라, 느긋하게 나누려고 하지요.

  아이는 처음에 어머니가 왜 바로 이야기를 안 해 주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시나브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겠지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오직 하루 있는 날일 뿐 아니라, 서로 두 눈으로 처음 마주한 날이거든요.

  아이는 제가 태어난 날을 어머니가 또렷이 떠올리는 모습에 놀라기 일쑤예요.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어버이 나이가 되면, 어버이가 된 아이로서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새로 낳은 아이하고 얽힌 일’을 거의 모두, 때로는 송두리째, 낱낱이 떠올릴 만하지 싶어요.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지. 자, 연필 대신 작은 나뭇가지로.” “옛날에는 이걸로 편지 썼던 거 아냐?” “그럴지도. 학교 교과서도 잎으로 되어 있으면 재밌겠다.” (25쪽)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이 타로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엄마는 날 좋아해서 가르쳐 준 거야?” (35쪽)


  해질녘에 가랑잎을 모아서 불을 피우곤 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이제 잎이나 줄기가 그리 많이 돋지 않으니, 드문드문 모닥불을 피웁니다. 아이들한테 딱히 말하지 않고서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두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슬금슬금 마당으로 나와 불가에 앉습니다.

  가을에 봄에 여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골집이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숲에 느긋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시골집이란. 자전거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이란.

  만화책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숲을 가로질러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일부러 숲길을 가고, 좋아서 숲길을 간다지요. 어머니하고도 곧잘 숲마실을 하면서 숲 이야기를 배워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숲 이야기를 들려주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불을 피우면서 피어오르는 불꽃하고 연기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차근차근 알려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선생님, 저 밤나무는요, ‘친절한 나무’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 줬어요. 친절한 나무는 친절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지 해도 된대요.” “어떤 거라도?” “네. 말하기 힘든 마음 같은 것도요.” (77∼78쪽)

“선물은 뭐야?” “오! 질문 잘하셨습니다. 봐 봐. 이 병에 체코의 공기를 담아 올게!!” (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체코라는 나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한테 ‘체코 바람’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마실을 가든, 부산을 떠나 광주로 마실을 가든,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누리고 싶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일본 바람이나 중국 바람을 쐬지요.

  새로운 바람을 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숲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기쁨을 지핍니다.

  돈으로 치르지 않고 작은 병에 담아 온 바람 한 줄기가 선물이 되어요. 작은 엽서에 적은 글월이 먼곳에 사는 이웃한테 선물이 되어요. 때때로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동무한테 선물이 됩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숲 나무 이야기’를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처럼 들려줍니다.

  나는 네 곁에서 즐겁게 삶을 꾸립니다. 너는 내 곁에서 즐거이 살림을 가꿉니다. 우리 곁에 있는 바람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하루를 되새깁니다. 십일월에 만화책 한 권 곁에 두면서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 이름 “너의 곁에서”는 “네 곁에서”로 손질해야지요. 한국말은 ‘너의’가 아닌 ‘네’입니다. 2017.1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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