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생활하기
최광호 지음 / 소동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당신은 사진을 왜 찍습니까?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 최광호, 《사진으로 생활하기》


- 책이름 : 사진으로 생활하기
- 글ㆍ사진 : 최광호
- 펴낸곳 : 소동 (2008.5.15.)
- 책값 : 16000원



 (1) 사진기를 든 손과 사진기를 쥔 마음


 그동안 잘 쓰고 있던 렌즈가 지난 8월 15일에 망가졌습니다. 어디 떨어뜨리거나 부딪히지 않았으나 망가졌습니다. 이 렌즈는 지난해 6월 25일에 열 번째로 제 품을 떠난 사진기(도둑맞거나 잃거나)를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로 떠나보낸 다음 새로 장만한 녀석입니다. 꼭 한 해하고 한 달하고 열흘 만에 망가진 셈입니다. 그동안 이 렌즈로 이만 장 남짓 찍었는데, 값싼 렌즈치고 잘 버티어 준 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비바람이 몰아치건 춥건 덥건 언제나 제 땀을 먹으면서 지내던 사진기요 렌즈입니다. 어떤 이는 제 사진기와 렌즈를 보면서 ‘너무 막 다루고 있지 않으시나요?’ 하고 묻는데, 저는 사진기와 렌즈를 막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나 한쪽 어깨에 걸쳐 놓거나 한손으로 쥐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 자전거를 몰 때에도 목에 사진기를 걸고 언제나 찍을 수 있게끔 비옷 안쪽에 두고 있습니다. 몹시 추운 날 손가락이 얼어붙어도 맨손으로 사진기를 쥡니다. 장갑 낀 손으로 쥐는 느낌하고 장갑 낀 손으로 단추를 누르는 느낌이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에 사진을 찍을 때에는 으레 사진기를 겉옷으로 감싸며 걷지만, 겨울에는 온몸과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는 채 사진을 찍으며 사진기도 함께 벌벌 떱니다. 손가락은 얼어붙더라도 사진기는 얼지 않기를 비손하며 돌아다닙니다. 여름에는 웃옷 안쪽에 사진기를 모셔 놓으며 몸으로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사진기만은 젖지 말아 달라며 비손하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마구 눌러대는 사진은 싫어합니다. 꼭 찍어야 할 만큼만 찍고, 한 번 찍은 사진은 되도록 지우지 않으려 합니다. 고단하도록 돌아다닌다 해서 더 많이 찍어야 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고단하게 돌아다니면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디지털사진기를 쓰는 매무새는 필름사진기를 쓰는 매무새하고 같습니다.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돈이 몇 백 원씩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허투루 사진을 날릴 수 없습니다. 또한, 허투루 찍었다가 날린다면, 이 사진을 지우느라 시간을 몇 초씩 버려야 하며, 이렇게 시간을 버리다 보면, 나중에는 잘못 찍은 사진을 지우느라 더 눈여겨보거나 들여다볼 ‘내 사진감’을 몇 초 동안 못 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한 장을 찍건 열 장을 찍건 백 장을 찍건, 모두 ‘내 사진’이라 말할 수 있도록 빛과 셔터빠르기와 조리개값을 알맞고 올바르게 맞추어 찍어내려 합니다. 사진을 찍기 앞서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하며,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까지 내 사진감이 내 눈길로 들어와 내 마음길을 거쳐 내 몸길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 내려고 합니다.
 





.. 아침에 일어나면 예쁜 햇살이 나를 반기기에 사진을 찍는다. 아내가 밥상을 차리면 그 밥이 예쁘고 맛있어 또 찍는다 …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 사는 것이다. 사진하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으로 이 세상을 이야기하고 서로 나누는 방법이 무엇일까 나는 꾸준히 고민했다. 그래서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사진 찍고 땀냄새와 생활이 배어 있는 사진을 찍자고 항상 주장해 왔다 … 나다운 방식으로 열심히 한다는 것은 작업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다운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산다, 사진으로 사는 삶, 살다 보니 내 것이 되어 있는 나다운 삶, 내가 나다운 바른 생각을 해야 바르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올바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알게 되었다 ..  (4∼5, 148쪽)


 지난해에 사진기를 열 번째로 도둑맞고는 힘이 쪼옥 빠졌습니다. 그동안 쓰던 사진기는 영영 다시 쓸 수 없을 뿐더러, 내 꿈은 파노라마사진기 장만할 돈은 다시는 못 모으겠다고 생각하니 무엇하러 사진을 찍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시 허리띠 졸라매고 몇 해 동안 돈을 모으면 사진기며 렌즈며 알뜰히 되살 수 있겠지만, 그 몇 해 동안은 사진하고 헤어져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죽기’를 떠올리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돈 좀 있거나 힘깨나 씀직한 곳에 이래저래 편지를 띄워 ‘사진기를 빌릴 수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적금을 붓듯 다달이 조금씩 갚아 나갈 테니, 사진기를 ‘스물넉 달 갚기’로 팔 수 있는지, 렌즈를 ‘서른여섯 달 갚기’로 내어줄 수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대꾸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름 안 난 사진쟁이라 그럴 수 있고, 저와 비슷한 까닭으로 사진기와 렌즈를 빌려 주십사 하는 분들이 많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때 옆지기는 ‘우리가 다른 일을 못해도 괜찮으니, 밥을 굶더라도 사진기부터 어떻게든 먼저 사자’고 하며 기운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로 백팔십만 원짜리 캐논 엘렌즈에, 사십팔만 원짜리 니콘 에프엠 이번에, 또 디지털사진기까지 장만하랴 싶었습니다. 말은 고맙지만 주머니가 후줄근하면 어찌할 길 없는 노릇입니다. 시무룩하니 며칠을 지내다가 목포에 사는 형한테 도와 달라는 아쉬운 이야기 담은 편지를 띄웁니다. 어려울 때마다 늘 도움을 받아 미안하지만, 또 도와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형은 스스럼없이 또 도와줍니다. 외려 그만큼만 보태 주면 되느냐고 걱정해 줍니다. 우리 식구가 힘들 때마다 보태 주는 손길이 고맙고 미안해, 새 디지털사진기 하나(캐논 450디) 장만할 만큼 빌리고, 렌즈는 번들이 아닌 녀석 가운데 가장 값싼 녀석으로 장만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진을 다시 찍으니 ‘사진을 아예 못 찍던 때를 생각하면 숨통이 트이고 살맛이 납’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신나고 즐겁게 찍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이 렌즈로는 이만큼밖에 안 보이는구나. 예전 렌즈로는 훨씬 넓게 보였는데’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예전 렌즈로 찍었다면 한결 잘 나왔겠지’ 하는 생각마저 자주 품었습니다.


.. 그 인상을 기록하다가 보면, 그 기념사진을 모아 작품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 꼭 이런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하며 찍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도록 내 생활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사진으로 생활하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12, 47, 55∼56쪽)
 





 이렇게 한 달쯤 보내고 두 달째 접어들 무렵, 값싼 렌즈로 찍은 사진을 종이로 뽑아 보면서 ‘그럭저럭 잘 나왔네. 생각보다 꽤 잘 나오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라, 그동안 헌책방마실을 하며 찍은 숱한 사진을 하나씩 돌아보았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이 퍽 좋아하는 제 작품들(헌책방이나 골목길을 찍은 사진)은 다름아닌 바로 오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값싼 렌즈와 값싼 사진기로 찍었던 녀석이 아니었는가 하고 곱씹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사진기와 렌즈가 없더라도 내가 바로 이곳에 늘 있는 가운데 찍은 사진이기에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반가이 여기는 작품이 아니었느냐고 되씹습니다. 비록 파노라마로 담지 못했다 할지라도, 내 사진에는 내 눈물과 땀방울과 웃음과 손길을 골고루 담아냈다 한다면,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껴안아 주고 사랑해 주지 않았느냐고 되돌아봅니다.

 1998년 1999년 2000년 무렵에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춰내며 들여다봅니다. 나한테는 돈도 없었지만 사진기조차 없어서 후배한테 빌려서 찍었습니다. 신문사 지국에서 나와 출판사에 들어간 뒤에는, 두 번째로 일한 출판사에서 사장님이 사진기를 한 대 선물해 주어 그 장비를 몹시 고맙게 여기며 다루었습니다. 그때에도 제 사진기에 달린 렌즈는 퍽 값싼 녀석이었고, 그 뒤 이태 동안 푼푼이 모아 다른 사진쟁이들 발가락만큼 따라가는 장비를 헌 것으로 겨우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값싼 장비를 남한테 빌려서 사진을 찍었든, 여러 해에 걸쳐 푼돈을 조금씩 모아 마련한 조금 괜찮은 장비로 사진을 찍었든, 제 사진은 늘 한결같았구나 싶습니다. 어떠한 장비를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사진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또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 봅니다. 저한테 사진을 처음 가르쳐 준 분은 저나 다른 사람들한테 ‘어떤 장비를 써야 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꽤 비싼 장비를 자랑하듯 만지작거리면서 수업을 들으면 당신이 미국에서 사진을 찍고 배우고 가르치던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라밖 사람들은 1회용 사진기로도 퓰리처상을 받을 만한 사진을 찍는데, 한국 사진기자들은 수천만 원짜리 사진기로도 기념사진 하나 제대로 못 찍는다’고 말하며 나무랐습니다.

 우리들한테 저마다 제 사진감을 하나씩 붙잡고 이 사진감을 우리가 눈을 감는 날까지 놓지 말라는 말만 끝없이 되풀이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붙잡는 사진감에 따라 어떠한 사진기가 알맞거나 걸맞는지는 잠깐조차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화각’이라든지 ‘광각-망원’ 렌즈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필름 인화와 현상이라든지, 잘라내기(트리밍)라든지 숱한 사진솜씨 이야기는 한 가지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저는 여태까지도 이런저런 사진 잔솜씨는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갖출 까닭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진솜씨 이야기는 ‘너희들이 집에 가서 시간 내어 책을 읽어 봐’ 하면서 끝냈습니다. 집에서 암실을 마련해 손수 만들어 보아도 좋지만, 그냥 사진관에 다 맡기고 길에서 사진기 부둥켜안고 너희들 사진감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말까지 하곤 했습니다.
 





.. 기록이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찍는 사람도 대상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 한창기 사장은 그제야 껄껄 웃으며, ‘야, 최광호, 사진을 못 찍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볼 줄 모르는군’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도자기에도 앞뒤가 있으니, 그것부터 공부하라며 집으로 데려가 도자기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건 이렇게 찍어라, 또 이런 건 저기서 이렇게 보아야 한다, 하는 식으로 사진을 찍는 방법 이전의 더 근본적인 관점과 생각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전통 한옥을 좋아했던 한창기 사장은 그 후에도, 함께 여행을 다니다가 시골마을에서 예쁜 한옥이나 초가를 지나치면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 집 대문을 두드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집을 둘러보면서 건축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했다 ..  (64, 75쪽)


 사진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스스로 사진감을 제대로 찾아내고 알아내면서 지치지 않고 사진길을 걷도록 이끌’ 구실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사진기 몸통이나 렌즈는 우리 스스로 하나씩 알아 가면서 마련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이었을까요.

 열한 해 앞서 있던 일을 하나하나 되짚어 봅니다. 그무렵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서는 총장님께서 뒤에서 저지른 비리가 말썽이 되어 날이면 날마다 대자보가 춤을 추고 집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달에 걸친 집회와 싸움은 가끔 일간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끝내 말썽 많은 총장을 물러나게 하고, 당신이 저지른 잘못과 앞으로 이 대학교에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들을 동판에 새겨 도서관 앞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몇 해쯤 지나고 나니 모두들 이때 일을 잊어버렸고, 이때 학교에서 쫓겨난 분은 교육부장관 자리를 한동안 맡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앞에 세웠던 동판은 소리 소문 없이 어느 날 깨끗이 사라졌고, 후배들 어느 누구도 사라진 동판을 알지 못할 뿐더러, 열한 해 앞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한창 집회를 하고 수업거부까지 하며 강의실 걸상을 모조리 건물 밖이나 운동장에 쌓아 두고 있던 그때, 그 사진학과 강사(이제는 정교수가 됨)는 우리들한테 큰소리를 쳤습니다. ‘너희 대학교 총장 비리 문제는 잘 알고 있다. 나도 너희들 뜻하고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집회는 너희가 밖에서 알아서 하고, 내 수업은 내 수업이니까 내 수업을 안 듣겠다고 거부할 권리가 없다. 나는 너희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외쳤습니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었는데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외치면서 수업을 하겠다고 버티었고, 그날 하루는 끝내 ‘해야 할 수업을 못했’습니다.

 이때 저는 강의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창문에 붙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아쉽게도 이때 찍은 필름은 잃어버렸습니다). 두 시간에 걸친 실랑이를 사진으로 담으며 조금 우쭐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실랑이나 이런 사진찍기는 오래도록 앙금으로 남아 뒷맛이 하나도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일까. 왜 그날 그 수업을 굳이 꼭 하겠다던 그 시간강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그때처럼은 안 하겠지요. 그무렵 우리한테 조금 더 넉넉하고 느긋한 마음이 있었다면, “선생님,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총장 비리 말썽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모든 학과 모든 수업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 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수업을 안 듣기란 참 힘들고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의실 수업이 아닌 길거리 수업이나 운동장 수업, 또는 다른 데에 가서 사람들이 안 보는 자리에서 우리 수업을 조용히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건네면서 타협을 볼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사진가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사진에 자신의 인생과 사진을 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사진 찍기 때문이다. 사진에 자기 이야기를 담고 사진으로 세상 이야기를 나누려면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서 내가 있기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내가 보기에 한국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사진이 사람들의 삶과 생활과 한데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따로, 작품 따로, 이런 식으로 겉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  (184, 186쪽)


 사진을 찍으며 늘 느끼고 배웁니다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델을 써서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한다 해서 우리 생각과 느낌을 환히 담아낼 사진을 얻지는 못합니다. 살아가는 흐름을 거슬러서는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찍히는 사람이나 건물이나 풍경 앞에서 우악스럽게 군다 해서 이들이 제 모습을 오롯이 우리한테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든 사람은 늘 기다려야 하고, 뛰어들어야 하며, 어깨동무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흐름을 우리 스스로 고이 헤아리면서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좋은 사진을 찍는 바탕을 마련합니다. 이런 바탕을 마련한 다음 더 오랫동안 곰삭이고 껴안으면서 시나브로 좋은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잘 찍는 솜씨를 굳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교실을 다닌다든지 사진강좌를 들을 때에도 사진 잘 찍는 이야기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다루는 우리 매무새를 배워야 합니다. 사진을 다루는 매무새는 우리가 살아가는 매무새하고 같아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쥔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학교나 강좌에서 듣고 배워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마음은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하고 같으며,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마음은 내 사랑하는 사람 손을 어루만지는 마음하고 같아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2) 사진이야기 《사진으로 생활하기》라는 책


 사진을 좋아하던 최광호 님은 어느새 사진을 배우려고 나라밖을 떠도는 사람으로 지냈고, 나라밖을 떠돌다 돌아온 한국땅에서 제 사진길을 꿋꿋이 가다가 젊은이한테 사진을 가르치는 자리에 섰습니다. 사진책 몇 권을 펴내기도 한 최광호 님은 ‘사진이 아닌 말’로 당신이 걸어온 사진길이 무엇이고 당신이 찍은 사진작품이란 무엇이며 당신이 붙잡은 사진기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조곤조곤 풀어 놓습니다.


.. 그 당시 여의도에서는 반공궐기대회가 자주 열렸다. 기독교인들은 교인들대로 모여 하느님과 예수를 찬양한다고 하면서 반공을 앞세우는가 하면, 군인들은 탱크를 앞세우고 여의도에서 마포 지나 종로로 시가행진을 하기도 했다.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나는 거기에 물들지 않을 나다운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자 전국을 방황하기도 했다. 사진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나를 갈구했던 것이다 … 나는 일본에서의 생활이 사진가로서 최상의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멋있는 사람, 멋있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일본 유학 가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우리 나라에는 훌륭한 작품은 있는데 인생이 담긴 훌륭한 작가는 없다고. 그런데 일본에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사진가다운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개성 있는 작가들이 많다고 ..  (23, 93∼94쪽)


 사진쟁이 최광호, 또는 사진학과 교수 최광호 님이 쓴 《사진으로 생활하기》를 읽어 보면, 맨 마음으로 쓴 글과 함께 술 한잔 걸치며 쓴 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최광호 님은 맨 마음인 채로 사진을 찍는 날이 있을 테며 술을 걸친 채 사진을 찍는 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맨 마음이 아니고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날이 있었을 테며, 술기운이 아니고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던 날이 있었겠지요.

 어느 때 어떻게 찍었든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잘 찍었건 못 찍었건, 찍힌 모습 그대로 이야기를 남깁니다. 찍은 모양새 그대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배부른 사람은 배부른 이야기를 남기고,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이야기를 남깁니다. 사랑이 철철 넘치는 사람은 사랑이 철철 넘치는 사랑을 사진에 담고, 사랑이 메말라 쩍쩍 갈라진 가슴으로 지내는 사람은 사랑이 메말라 쩍쩍 갈라진 가슴 그대로 사진에 제 느낌을 담습니다.

 감추려 한다면 얼핏설핏 감출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감추면서 내보이는 작품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농사꾼 밀레가 추운 겨울날 손이 덜덜 떨리고 얼어붙는 가운데 주린 배를 붙잡고 그린 그림에 밀레가 겪은 가난함이 안 배어 있을 수 없습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죽는 날까지 붙잡는 가운데 빛줄기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고흐 형제가 두 사람 힘으로 이루어 낸 그림에 둘이 겪은 외로움과 괴로움에다가 빛줄기가 안 담겨 있을 수 없습니다. 목숨을 바쳐 일구어 내어 목숨이 다해 세상을 떠난 최명희 님 작품 《혼불》에 최명희 님을 비롯한 둘레 사람들 넋과 삶결이 안 스며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으로 생활하기》에는 사진하고 서른 해 남짓 살아가고 있는 최광호 님 온몸과 온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도 담기고 믿음도 담기며 미움과 아픔이 고루 담겨 있습니다. 그리움이 깃들고 아련함이 깃들며 애틋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 그러나 돈 많은 사람들이 돈벌 욕심에 돈, 돈, 돈, 하지 가난은 오히려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든다 …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자신있게 살 때만이 이 모든 것은 가능하고, 부족하기에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돈이 부족하면 생활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돈 없는 불편함을 극복하는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 가끔 아마추어들이 촬영하는 장소에 가 보면 사진기를 보물 다루듯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진기 망가질 것이 겁나서 저렇게 소중하게 다루면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사진기에 사람이 눌려 있음을 느낄 때,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  (35, 245쪽)


 지난달에,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공씨책방〉에서 《환희와 우정》(조선일보사,1988)이라는 사진책을 하나 만났습니다. 틀림없이 예전에도 곧잘 만났을 사진책이 아닌가 싶은데 여태까지는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 눈에 살며시 들어왔더라도 제 손은 가 닿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런 겉치레 사진책이 무슨 사진책이라고?’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꾀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 그늘진 자리를 감추는 이 같은 사진책은 더없이 씁쓸하고 안타깝다고 느끼면서 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같은 사진책을 즐겁게 만지작거립니다. 무슨 꿍꿍이셈이 있든 없든, 사진은 사진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사진에 새겨 놓은 꿍꿍이셈은 이러한 셈속대로 읽어내면서, 나 스스로는 꿍꿍이셈이 아닌 참사랑과 참믿음을 보여주거나 나눌 수 있도록 참삶을 가꾸며 참사진을 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올봄, 서울 봉천동(올해부터인가 ‘낙성대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봉천동’이라는 이름은 가난하다는 느낌이 사람들한테 콱 박혀 있다고 하면서)에 있는 헌책방 〈흙서점〉에서 《박상원-a monologue》(에디션 뿔,2009)라고 하는 사진책을 하나 만났습니다. 연기를 하는 박상원 님이 사진책을 펴냈다고 하니 뜻밖이면서 놀랐습니다. 펴낸 곳은 ‘웅진출판사 임프린트’라고 하는 곳입니다.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 보면서, ‘이분은 이런 사진을 좋아하며 찍는구나’ 하고 느끼는 가운데, ‘이와 같은 사진이 이렇게 좋은 꾸밈새로 세상에 또 하나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잘 찍고 못 찍고 하는 틀로 따져서 이 책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만한 사진이 아니고서는 사진책으로 내 주기 어려운 우리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세상에서 받아들이는 ‘다 다름(다양성)’이란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졌고, 우리 세상에서 사진을 한다는 사람은 왜 사진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은 사진을 왜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 구경꾼의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남을 통해 자기 삶을 느낄 수 있기는 하나, 자신의 외로움과 자신의 이야기는 표현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의 삶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외로움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  (236쪽)


 올 1월에는 서울 동묘앞에 있는 헌책방 〈영광서점〉에서 1960년대 첫머리 국민학교 졸업사진책을 세 권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두 권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국민학교 것인데, 파주에 있던 국민학교는 1960년대에 ‘수학여행을 인천으로 왔’습니다. 이 자취가 졸업사진책 뒤쪽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50년대 끝무렵에 ‘각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공원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멕아더동상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몇 해 뒤에는 수봉공원으로 옮겨갔지만 이맘때까지는 자유공원에 놀이기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유공원에서 멕아더동상 앞에 서면서 묵념을 하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할까요. 그 다음에는 연안부두나 만석부두나 월미도 쪽으로 가서 배를 탑니다. 경기도 파주라면 뭍만 있는 땅이요 산과 들밖에 없을 테니, 인천 앞바다처럼 놀이기구에 ‘반공교육 하기 좋은 멕아더동상’에다가, 여기에 갯벌에 바다에 배까지 고루 있는 곳은 수학여행을 보내기에 딱 어울릴 만한 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이 졸업사진책을 뒤적이면서 제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젊은 나날을 보내던 인천 한구석을 조용히 돌아보았습니다. 벌써 예닐곱 달이 된 이야기이지만, 이 졸업사진책을 만나던 그날은 헌책방 골마루 한쪽에 선 채로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이 졸업사진책은 그날 장만한 뒤로 여태껏 제 책상맡에 놓고는 가끔 들추어 봅니다. 들추어 보고 다시 덮을 때마다 ‘사진은 뭘까? 내 사진은 뭘까?’ 하고 거듭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을 사진으로는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말로 설명하는 사진이 아닌 신선한 느낌이 살아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일상 생활에 대한 감동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 현실을 보며 감동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 매일 보던 사물을 새롭게 볼 줄 아는 시선을 갖추어야 한다 … 좋은 앵글이란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가장 잘 느끼고 전달할 수 있는 시각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  (270쪽)
 





 《사진으로 생활하기》는 지난해 여름에 장만했습니다.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장만하던 그날부터 즐겁게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 조금조금 뜯어먹으며 읽던 지난 겨울날, 살림집 물이 얼어붙었다가 녹았는데, 물이 녹으면서 그만 수도꼭지가 터져 부엌이며 마루며 온통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 책은 물바다에서 옴팡 젖어 버렸습니다. 물바다가 된 날 꽤 많은 책이 젖거나 퉁퉁 불어 못 쓰게 되었는데, 《사진으로 생활하기》는 그나마 아주 버리지는 않았고, 책장을 하나하나 닦아내고 며칠에 걸쳐 말리니 그럭저럭 넘길 만큼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바다를 치르며 적잖은 책을 버리게 되니, 젖었다가 살아난 《사진으로 생활하기》를 넘기기 싫어졌습니다. 다른 다친 책들과 망가진 책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렇게 반 해쯤 한쪽 구석에 팽개치듯 꽂아 놓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지난달쯤, 도서관에 나들이를 온 어느 분이 이 ‘물 먹고 퉁퉁 불어터진 책’을 애틋하게 여기면서 두어 시간 동안 이 책 하나만 읽고 돌아가더군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말끔하고 깨끗하고 번듯한 책이 가득가득 있는데 어쩜 저 책 하나만 그리 알뜰하게 여기면서 들여다본담?’

 손님이 돌아가고 난 뒤 퍽 오랜만에 《사진으로 생활하기》를 끄집어 냅니다. 끄집어 내는 바로 이때, 지난겨울 물바다가 떠오르고, 그날 버리게 된 아까운 책들이 떠오릅니다.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할 책들을 눈물과 함께 떠나보낸 일이 새록새록 가슴을 쑤십니다. 그러나, 떠나간 책을 놓고 아파할 수만은 없습니다. 살아남은 이 책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등돌린 채 지낼 수 없습니다.

 지난해에 읽다가 만 대목을 찬찬히 훑습니다. 밑줄을 그었던 대목은 두 번씩 읽고, 밑줄을 안 그었던 몸글은 천천히 읽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전철길에 금세 다 읽어냅니다. 이제 책을 덮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을 차례입니다. 며칠쯤 더 책상맡에 올려놓고 있은 다음 책꽂이에 꽂아 놓을 생각인데, 아무래도 저한테는 이 책 《사진으로 생활하기》가 그날 그렇게 물바다에서 반쯤 죽다가 살아나 주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곰곰이 되읽으면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난해에 다 읽었다면 더 좋았을는지 모르나, 이제 와서 다 끝마치니 한결 낫지 않느냐 싶습니다. 마침, 사진기며 렌즈며 여러모로 말썽을 부리는 요즈음, 값싼 장비를 붙잡고 사진길을 어떻게 이어가면 좋을까를 놓고 걱정인 요즈음, 다른 어느 책보다 이 책 《사진으로 생활하기》가 저한테 좋은 길잡이나 이슬떨이, 아니 길동무나 사진동무가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최광호 님은 “사진으로 생활하기”이고, 저는 “사진으로 살아가기”입니다. 사진쟁이자 사진학과 교수님으로서는 한자말 ‘생활’을 넣고, 우리 말 지킴이로 살아가는 저로서는 토박이말 ‘살아가기’를 넣습니다. 아마 어느 분은 ‘life’나 ‘living’이라는 말마디를 넣어서 “사진 삶”을 가꿀 수 있겠지요. 어느 이름이든 우리가 걷는 길은 사진길입니다. 어떤 사진기를 쓰든 우리가 이루려는 삶은 사진삶입니다. 어느 갈래 사진길을 걸으며 어떤 모습 사진삶을 일구든 우리가 바라보는 곳은 사진밭입니다. (4342.8.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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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인간 (특별보급판) - 1957-2006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 최민식 사진집 휴먼(Human)
최민식 지음 / 눈빛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예식장 비싼 밥이 아닌 사진책을 선물로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 최민식, 《HUMAN 1957∼2006》



- 책이름 : HUMAN 1957∼2006
- 사진 : 최민식
- 펴낸곳 : 눈빛 (2006.12.7.)
- 책값 : 6만 원


 (1) 사진에 담는 삶


 너른 터가 생긴 광화문 앞길을 가로질러 보았습니다. 한글회관에서 나와 문화체육관광부로 건너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땅밑길로 지나다녔다 하고, 몇 해 앞서 비로소 건널목이 생겼으며, 이제는 너른 터가 생겨 자동차 흐름은 조금 줄면서 걸어다니기에 한결 나아졌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나와 서울 시내 이런저런 모습을 찍는 사람이 제법 있고, 남녀 짝을 지어 오붓하게 하루를 즐기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다리쉼을 하는 공공근로 할매와 할배가 보이고, 개인옷을 입은 경찰과 제복을 입은 경찰이 곳곳에 많이 보입니다.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대리석으로 보이는 돌을 새로 깔았습니다. 너른 터가 되었으나 아스팔트 밑에 있던 흙바닥을 밟을 수 있지는 못하며, 사람들이 집회나 시위를 하지 못하게끔 꽃밭을 가꾸어 놓았습니다. 시청 앞 너른 터에는 잔디를 심고 광화문 앞 너른 터에는 꽃밭입니다.

 이나마 너른 터 한 곳이 늘어나니 반갑다고 해야 할까 싶지만, 돈을 지나치게 많이 들인 너른 터요, 꼭 무엇무엇을 세우고 놓고 마련해야만 하는 너른 터입니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어 억지로 무엇인가를 만들지 않으면 땡볕에 그예 드러나야 하고, 비라도 올라치면 고스란히 맞아야만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으면 흙땅은 딱딱해진다지만, 우리한테는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대리석이 아닌 맨흙을 풀기운과 나무그늘을 함께 느끼면서 밟을 수는 없는가 궁금합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숲길을 마련할 수 없고, 조그맣게라도 나무숲을 이룰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문득 오늘날 사진이 자꾸자꾸 날카롭거나 차갑거나 딱딱한 채 겉멋과 겉치레와 겉꾸밈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 사진만 판치거나 넘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운 멋도, 자연스러운 움직임도, 자연스러운 손길도, 자연스러운 눈길도 찾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푸나무와 흙이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이렇게 사람만 오갈 수 있으며, 참새나 비둘기 한 마리 깃들 틈조차 없으니까요. 이렇게 차 소리 가득한 가운데 귀가 멍멍해지는 터전에서 돈만 버는 일을 해야 하고, 돈만 쓰는 문화를 누려야 하고, 돈만 들이는 집을 얻어서 살아야 하니까요.


.. 내 앞선 세대에 그토록 불멸의 사진을 찍었던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보며 나도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고, 몸을 조이는 긴장감을 주는 그런 사진을 찍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  (책 끝에 붙인 말 / 최민식 - 나의 사진 인생 50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에서 서울로 옵니다. 새벽에 아빠가 일을 나갈 때면 어김없이 깨어나 ‘아빠 가지 말라’며 울면서 종아리에 달라붙는 아기를 달래며 홀로 떨어져 나와 하루 절반 남짓을 집 밖에서 보냅니다. 쇠와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 놓은 책상 앞에 앉아 셈틀을 또닥거립니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를 듣고, 모임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며,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다시 찻길에서 차 소리며 사람들 수다 소리며 가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들에 휘감긴 채 전철역으로 걸어갑니다. 전철은 쇠를 긁는 소리를 내고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에어컨 소리와 방송 소리를 냅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 해도 옆에까지 들리는 디엠비 소리를 듣고, 전철에서 울리는 소리보다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나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쳐 놓고 있지만, 새벽에 집을 나서며 전철에 올라 서울에 닿은 뒤 일터에서 아홉 시간쯤 보내고 나서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사진기 단추를 누를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이 쳇바퀴 같은 하루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쳇바퀴 삶’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길과 전철에서 부대끼거나 스치는 아가씨들 반바지와 치마를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길과 전철에서 부딪히거나 뒤엉키는 아저씨들 담배 꼬나문 모습이나 침 뱉는 모습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철에서 잠든 사람들 모습을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철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모습만 사진감으로 삼을 수 있으며, 사람들 다리께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틈틈이 바뀌는 전철 광고판만 찍어도 재미있는 사진감이 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건물 들머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며, 건물 10층이나 20층에서 길거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 흐름을 담을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엇을 사진감으로 하느냐도 크게 돌아볼 대목일 터이나, 무엇을 사진감으로 삼든 사진쟁이 스스로 무슨 생각과 마음과 뜻과 넋을 담느냐가 훨씬 크게 돌아볼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 또는 《HUMAN》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데, 최민식 님 사진감은 늘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최민식 님이 사람을 찍든 말든 ‘당신들 깜냥껏 바라보거나 느끼는 사람’을 찍습니다. 모델을 찍든 알몸을 찍든 만듦사진으로 꾸미든 다큐로 찍든,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누구나 으레 사람을 사진감으로 삼습니다.


.. 진정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것은 그 현실 자체에 이미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책 끝에 붙인 말)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이 사진감을 얻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이 어울리는 마을이나 도시가 사진감을 찾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나 사람한테 바람과 물과 먹을거리를 대어 주는 자연이 사진감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을 마주 바라보며 찍어도 사람 사진입니다. 사람이 아닌 길이나 건물을 찍어도 사람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길이건 건물이건 사람이 짓기 때문입니다.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뒷골목이든 앞골목이든 사람 사는 터전이라, 골목을 어떻게 담더라도 사람 이야기가 스며듭니다.

 그런데, 사람을 찍은 사진 가운데 사람맛이나 사람멋이 나지 않는 작품이 있습니다. 섬뜩하거나 밋밋한 사진이 있습니다. 지루하거나 눈 버리는 사진이 있습니다. 빼어난 솜씨를 선보인다 하지만 손재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남다른 눈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손놀림 말고는 무엇도 스미지 않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 사진은 나를 찾아 주었다. 나는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사진기에 나를 송두리째 맡겨 버렸고, 내 인생을 사진으로 가득 채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  (책 끝에 붙인 말)


 나 스스로 우리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때에는 내가 담는 사진에 힘찬 넋이 서립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을 사랑스레 바라보거나 껴안으며 살아갈 때에는 내가 찍는 사진에 사랑스러운 얼이 스밉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삶일 때에는 내가 이루는 사진에 따스한 기운이 녹아듭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도시문명에 젖어든 삶이라 할 때에는 자본주의 도시문명을 깊이 느끼는 사진이 됩니다.
 





 (2) 사진책 《HUMAN》을 이룬 최민식 님 삶이란


 1928년에 태어나 1950년대 끄트머리부터 사진을 찍어 온 최민식 님 《HUMAN 1957∼2006》은 당신 사진길 쉰 해를 그러모읍니다. 사진길 쉰 해를 기리는 뜻에서 새롭게 사진책이 하나 나오기도 했고, 이무렵 《진실을 담는 시선, 최민식》(예문,2006)과 《뭘 그렇게 찍으세요, 사진 작가 최민식》(우리교육,2006)과 《소망, 그 아름다운 힘》(샘터사,2006)이 잇달아 나왔습니다.

 사진찍기 한길을 쉰 해나 이었다는 대목은 무척 놀랍고 대단하며 기릴 만한 일입니다. 사진쟁이 최민식 님을 기리는 책이 한꺼번에 네 가지 나오는 일이란 마땅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어쩌면 예전에 나오고 다시 못 나오는 책을 새로 펴낼 수 있으며, ‘최민식 사진전집’을 묶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2006년 사진길 쉰 해를 맞이하기 앞서인 2005년에는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라는 이름으로 ‘사진쟁이 최민식이 생각하는 사진’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좀더 앞서인 1996년에는 사진길 마흔 해를 돌아보는 가운데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한양출판)이 나오기도 했고, 이 책은 2004년에 고침판으로 다시 나옵니다.


.. 나의 사진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험난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내 사진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체험이 있었기에 일관되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삶의 진실을 추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휴머니즘의 정의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  (책 끝에 붙인 말)
 





 그런데 궁금합니다. 사진길 쉰 해를 걸은 최민식 님을 말하는 사람들은 최민식이라는 사람을 얼마나 샅샅이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들여다보거나 만나거나 껴안거나 부대끼거나 감싸안으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을까요. 곧게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최민식 님처럼 당신 스스로들 남다른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길동무 최민식’을 바라보는지, ‘넘볼 수 없는 위인전 주인공’으로 바라보는지, ‘눈물 콧물 웃음 쏟아내는 사진을 선사한 고마운 이’로 바라보는지, ‘꾀죄죄한 사람들 꾀죄죄한 삶 꾀죄죄한 사진’으로 바라보는지, ‘가난한 사람을 찍어 거룩하거나 아름다운 사진’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에 몇 마디 말이나 시나 글을 붙이는 분들은 얼마나 최민식 사진을 당신 마음속 깊이 부둥켜안으면서 말마디나 글줄을 뱉어내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는 최민식 님 사진을 놓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부터 군부가 등장한 1960년대,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 가열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모습으로 포착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최민식 님을 놓고 “최민식은 한국 사진예술의 1세대로서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존재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진이란 찍는 사람 삶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하지만, 사진이란 보는 사람 삶결 그대로 느끼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보는 사람이든, 제 깜냥에 따라서 사진을 이루거나 즐깁니다. 내 눈길뿐 아니라 손길과 마음길과 몸길에 따라서 내 손으로 빚어내는 사진이 달라집니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사진을 다르게 느낍니다.

 어떤 이로서는 최민식 님 사진에 담긴 사람들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모습’이라고 느낄는지 모르나, 최민식 님은 당신 사진에 담긴 사람들을 바라보며 ‘비참한 현실’이 아니라고 느낄는지 모르며, 사진에 담긴 사람들 스스로 당신 삶을 ‘비참한 현실’인 적이 없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흔히들, 골목동네를 가난하고 구질구질하고 어둡고 퀘퀘하다고 여기지만, 골목동네 바깥에서 겉스치는 눈으로 잘못 바라보거나 대충 바라보니 이렇게 여길 뿐입니다.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가난 또한 어느 만큼 영향을 끼치겠지만, 가난보다도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훨씬 영향을 끼칩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밥 한 그릇에 흐뭇할 수 있으면, 가난하면서도 웃습니다. 돈이 없이도 즐거운 삶이요, 기쁜 삶이며, 보람찬 삶입니다. 큰도시 큰 아파트에서 깊은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불을 켜 놓고 있어야 ‘구질구질하지 않고 어둡지 않’은 삶이겠습니까. 청소부들이 바지런히 손을 놀려 쓰레기를 치워 놓는다고 ‘퀘퀘하지 않고 지저분하지 않’은 삶이겠습니까. 우리 눈앞에 안 보인다고 ‘없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최민식 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를 당신 사진에 담았을 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을 때에는 가난한 그대로를 담습니다. 멋부리고 어여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일 때에는 멋부리고 어여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그대로를 담습니다. 싱그러운 웃음은 싱그러운 웃음 그대로, 하품하는 졸린 낯빛은 하품하는 졸린 낯빛으로 찍습니다. 아이 키우며 고단한 주름살은 아이 키우며 고단한 주름살 그대로 찍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그대로 찍습니다. 힘겹게 얻은 국수 한 그릇 허둥지둥 먹는 아이는 힘겹게 얻은 국수 한 그릇 허둥지둥 먹는 그대로 담습니다. 다 다른 사람을 다 다른 느낌 그대로 살리면서 다 다른 삶임을 느끼도록 보여줍니다.


.. 사진작품 속에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이를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소중한 친구가 된다 ..  (책 끝에 붙인 말)
 





 최민식 님을 놓고 “한국 사진예술의 1세대로서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추켜세우는 말마디는 어쩐지 몹시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먼저, 최민식 님은 사진예술 1세대가 아닙니다. 우리네 사진예술 1세대는 임응식 님이나 이해문 님 같은 분들입니다. 또는, 이 나라에 사진을 처음 들여온 지운영 님 같은 이름을 들어야 합니다. 지운영 님 또래를 사진예술 1세대라 한다면, 임응식 님이나 이해문 님은 2세대가 될 테지요. 그러고 나서 최민식 님이나 이해문 님 같은 분들은 3세대라 할 테고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사진 발자취가 어떠한가를 참으로 잘 모릅니다. 참으로 잘 모를 뿐 아니라 참으로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참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참으로 안 알아봅니다. 참으로 안 알아볼 뿐 아니라 참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참으로 깊이 곰삭여 새로 태어나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이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최민식 님 사진을 ‘넘어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사뭇 다른 길에서 사뭇 다른 아름다움을 꽃피우’거나 하는 우리들 사진동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사진길 쉰 해를 기리면서 이 책 저 책 나오기는 했으나, 무엇보다도 최민식 님 사진열매 가운데 가장 눈여겨보면서 아끼고 사랑해야 할 《HUMAN 1957∼2006》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인데, 우리네 얕은 사진문화로서는 어찌할 길 없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2008년 3월에 ‘특별보급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와 주었습니다. 2006년판은 6만 원이었고, 특별보급 2008년판은 3만5천 원입니다(저는 2006년판 6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보았습니다).

 ‘삼청각’ 같은 곳에서 혼인잔치를 하면 밥값이 5만5천∼10만 원이라고 합니다. 여느 예식장에서 혼인잔치를 해도 밥값이 몇 만 원쯤 합니다. 돌잔치를 해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식구는 혼인잔치도 안 하고 돌잔치도 안 했습니다. 문득문득 새로운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데, 우리 식구가 나중에 어느 만큼 살림이 펴서 ‘늦깎이 혼인잔치 또는 돌잔치’를 하는 날을 맞이한다면, 최민식 님 사진책을 500권쯤 한꺼번에 장만해서 손님들한테 ‘밥은 안 주고 책을 한 권씩 드리면’ 더없이 좋겠구나 싶습니다. 돈은 제대로 못 버는 주제에 꿈만 꾼다고, 새로 꿈 하나 꾼 만큼 이 꿈을 이루도록 돈을 신나게 벌어 볼까 합니다. (4342.8.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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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19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오늘 신촌 숨책에 갔더니 여자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요사이 책들을 안 읽어선지 책들도 잘 안들어 온다고요.
아이고 어른이고 책들 잘 안 읽는 상황에서 결혼식에 밥 대신 책을 돌리면 아마 신문 기사에 나던지,다시는 그 집안 결혼식에 안갈지 아마 둘중의 하나일걸요 ㅜ.ㅜ
 
한국현대사진가선 이해문 - 1950~70년대 사진들
박평종 글, 이해문 사진 / 포토넷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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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고 즐기며 껴안다가 살포시 찍는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 이해문 사진,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



- 책이름 :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
- 사진 : 이해문
- 엮은이 : (사)민족사진가협회
- 펴낸곳 : 포토넷 (2008.12.30.)
- 책값 : 15000원
  







 (1) 사진을 보는 눈


 사진기는 우리가 단추를 누르는 대로 찰칵찰칵 찍어 줍니다. 사진기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로 얼마든지 담아내 줍니다. 우리가 곱다고 느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진기를 들이민다면, 사진기는 어김없이 곱다고 느끼는 대로 담아내 줍니다. 다만, 빛과 빠르기와 그늘을 잘 맞추어 준다면. 아무리 있는 그대로 담아내 준다는 사진기라 할지라도 기계 다루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초점이 어긋나거나 흔들리거나 뿌옇거나 날아가거나 합니다.

 사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온갖 모습을 골고루 찍어 줍니다. 우리가 반갑게 맞이하려는 모습이든,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모습이든, 우리가 돋보이도록 하고픈 모습이든, 우리가 내리누르려 하는 모습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어느 높이에서 어디를 보고 어느 쪽에 중심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모습을 찍는다 하여도, 마음속에 품은 생각에 따라 사뭇 다르게 느낄 사진을 찍기 마련입니다.

 또한, 사진은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가운데, 찍는 사람 느낌과 생각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몸싸움하는 두 사람이 치고박고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지만, 사진쟁이가 ‘어느 한쪽이 아흔아홉 대를 몹시 아프게 흠씬 얻어맞는 모습’은 멀뚱멀뚱 구경만 하다가 ‘딱 한 번 어쩌다 뻗은 손이 다른 편 얼굴에 가닿은 모습’을 잽싸게 찍어냈다 했을 때, 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이때가 어떤 흐름이었는가를 깊이 따지면서 사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맙니다. 게다가, 사진쟁이가 사진 밑에 사진말을 어떻게 달아 놓느냐에 따라서 사진은 대단히 다르게 받아들여질밖에 없습니다.

 이는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시위 현장이 아닌 우리 삶터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파트를 찍을 때에도 찍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루빨리 ‘재건축허가’가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파트를 찍을 때, 수십억에 이르는 집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을 때, 아파트 문화를 비판하고 싶을 때, 외딴 시골에서 살다가 처음 아파트를 보는 사람 눈으로 바라볼 때,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에 나들이를 와서 아파트를 찍을 때, 언제나 다 다르게 찍을밖에 없습니다.

 골목길을 찍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골목길 삶터가 ‘남이 아닌 바로 내가 살아가는 터전’일 때 담는 사진하고, ‘구경꾼으로 잠깐 찾아와서’ 담는 사진에다가, ‘어릴 적에 살던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길에’ 담는 사진은 모두 다릅니다. 여기에, 도시재정비를 하려는 공무원 눈길로 골목길을 바라본다면 어떠한 사진이 될까요. 가난한 살림집이라고 하나 가난만 있는 골목집이 아니고, 어느 만큼 변두리라고 하나 삶과 마음과 넋이 변두리이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데까지 찬찬히 헤아리거나 짚는 가운데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진을 처음 배우던 1998년에 저를 가르친 분도 말씀하셨고, 저 스스로도 사진을 찍는 동안 뼛속 깊이 느끼는 이야기인데, 어느 누구라도 사진을 이제 막 배워서 찍겠다고 한다면 다른 머나먼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서 찍을 생각을 하지 말고, 바로 내가 사는 집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식구부터 찍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내 삶터를 먼저 찍고 내 식구를 먼저 찍은 다음, 내가 사는 동네를 찍으면서 나와 이웃한 동무를 찍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차츰 테두리를 넓혀 ‘내가 내 깜냥껏 나 스스로 즐길 사진감은 무엇으로 잡을까’를 찾아나서야 비로소 옳고 바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한편, 첫마음을 끝마음이 되도록 곱게 붙잡으면서 사진길을 걸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내 사진감은 내가 사랑하는 사진감일 테니까요. 내 사진기에 담으려는 모습은 내 일거리일 뿐 아니라 내 삶이요 내 생각일 테니까요. 내 눈길이고 내 몸짓이며 내 넋이요 내 마음일 테니까요. 내 다리품이고 내 땀방울이며 내 손자국과 손때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만큼 내 집과 식구를 껴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내 동네와 이웃과 동무를 부둥켜안습니다. 사진은 내 마음그릇만큼, 또는 내 사랑그릇만큼, 아니면 내 믿음그릇만큼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단추를 꾸욱꾸욱 누르는 춤사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날갯짓을 하듯이, 신나거나 구슬픈 노래를 부르듯이, 무더운 날 부채질을 하다가 까무룩 단잠에 빠져들듯이 단추를 살몃살몃 누르는 손놀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우리가 높이 사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숱한 사진 작품은 ‘내 삶’ 아니면 ‘네 삶’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나 스스로 담아내지 못했을지라도 누군가 나한테 찾아와서 내 삶을 ‘꾸밈없이 꾸준히 알알이’ 담아낸다면 훌륭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과 자취를 내가 가까이 다가서면서 지긋이 바라보고 껴안고 보듬고 어깨동무하면서 차근차근 사진으로 담아낸다면, 나는 ‘내 이웃 삶’ 그러니까 ‘네 삶’을 사진작품으로 아름답게 새로 태어나도록 이끌어 낸 셈입니다. 브레송이 담은 한때이든, 살가도가 담은 한동안이든, 모두모두 ‘내 삶’ 아니면 ‘네 삶’입니다. 다만, 이 모습들이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깨닫고 있을 뿐입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라고 다르겠습니까. 연극은 어떠하지요. 춤이나 노래라고 아주 새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문화와 예술은 바로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얼우고 사귀고 고꾸라지고 일어서고 스러지는 이 땅에서 샘솟습니다. 이 땅에서 샘솟지 않는 문화란 없고, 이 땅에서 비롯하지 않는 예술이란 없습니다. 여느 한국사람이 부러워해 마지 않는 서양 문화라 해 보았자, 하나같이 ‘서양사람 여느 삶’입니다. 스티글리츠 눈에 담긴 사진은 ‘스티글리츠 삶’이거나 ‘스티글리츠 이웃이 꾸리던 삶’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담은 1960년대 청계천은 ‘구와바라 시세이가 이웃으로 여기던 사람들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삶은 바로 ‘우리 삶’입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사진으로 안 담았을 뿐입니다.

 이리하여 나라 안팎 모든 거룩하거나 훌륭하다는 사진쟁이는 ‘내 삶’을 찍는 사람입니다. 또는 ‘네 삶이지만 내가 꾸리는 삶으로 곰삭이고 받아들여서’ 찍는 사람입니다. ‘네 삶이라 할지라도 내 삶처럼 녹여내고 껴안으며’ 찍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내 삶’을 담고, 내가 살아가는 대로 ‘네 삶을 내 삶과 같이 바라보며’ 찍는 사람입니다. 












 (2)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에 담긴 사진


 1922년에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나 1956년에 ‘신선회’라는 사진모임을 함께 열어서 꾸린 뒤, 1981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리얼리즘’ 사진 하나를 붙잡았다는 이해문 님 사진책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을 봅니다. 나라안 사진밭에 그다지 이름이 나지 않은 분이요, 살아 있는 동안에 당신 사진책이 나온 일은 없지 않느냐 싶은 분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취를 사진으로 담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하던 1981년부터 스물일곱 해가 지난 뒤 비로소 당신 이름을 걸고 사진책이 하나 나와 주었습니다.

 지난 2008년 12월에 나온 사진책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에 비평글을 실은 박평종 님은 이해문 님 사진을 놓고, “이해문의 사진이 50∼60년대 생활상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지니는 가치는 점차 커져나갈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그 시대 다른 사진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염두에 둘 점은 리얼리즘 사진이 지니는 사진사적 맥락에서의 문제이다. 리얼리즘 사진의 흐름 속에서 활동했던 사진가들의 차별성을 말해 주는 개인적 시각은 50∼60년대 작가들에게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덧붙여, “1950년대부터 이해문이 기록해 온 한국의 생활상은 크게 몇 가지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작가 주변의 가족, 친척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가족들의 모습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진 활동을 했던 작가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피사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가족들의 일상을 일반적인 기념사진의 형식이 아니라 리얼리즘적인 기록의 형식을 빌려 촬영함으로써 그것을 동시대의 보편적인 생활상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어느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1950년대 사람들이 1950년대를 그때에 찍었을 때 그때 값어치는 어떠했느냐 궁금하고, 2000년대 오늘날 바로 오늘 모습을 담는 사진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이해문 님 사진들이 값어치가 있다는 셈인지, 세월이 흐르지 않았어도 이해문 님 사진이 값어치가 있다는 셈인지, 또렷하게 갈라서 밝혀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값어치가 있다는 사진이라면, 사진쟁이 스스로 먼 앞날만 바라본 사진이었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때그때 사람들과 숨결을 같이할 만한 사진작품으로까지 빚어내지 못했다는 소리인지를, 제대로 나누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연구만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손쉽게 ‘1950년대’이니 ‘1960년대’이니 읊지만, 참 역사에는 1950년대나 1960년대란 없습니다. ‘1958년 4월 7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몇 번지, 그날 몇 시 몇 분, 아무개하고 어디에서’라고 하나하나 밝히는 가운데 비로소 참 역사가 있습니다. 좁다란 양철통에 누나랑 동생이랑 멱을 감는 사진이든, 추운 겨울날 동네 꼬마가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진이든,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엄마 따라 나온 아이가 멍석을 깔고 낮잠에 빠져 있는 사진이든, 그 모습 하나하나가 ‘몇 년대 어찌어찌한 역사’가 아니라,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곳 누구네 어찌어찌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참된 역사는 세월이 지난 뒤에만 값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진이 한낱 ‘기념사진’이라 할지라도, 이 사진을 찍은 바로 그날 그때부터 값어치가 있습니다. 찍힌 사람과 찍은 사람 모두한테 값이 있는 가운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 그런 사진을 기막히게 하나 찍었단 말이야!’ 하면서 더욱더 높은 값이 쌓입니다. 찍힌 사람부터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사진을 들여다보고, 찍은 사람 또한 눈물겨운 웃음으로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이해문 님 사진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이무렵 사진쟁이들은 한결같이 비슷했을 텐데, 사진찍기로는 먹고살 수 없을 뿐더러 필름값 대기에 만만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진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을 터이며, 부지런히 집 바깥으로 짬을 내어 사진찍기를 나섰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해문 님은 바깥에서도 사진을 부지런히 찍는 가운데 집 안쪽에서도 사진을 신나게 찍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대목이 ‘이해문 님 리얼리즘 사진’을 그무렵 다른 사진쟁이하고 갈라 놓을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식구들한테 ‘사진을 좋아하는 남편’이자 ‘사진을 좋아하는 아빠’로서 바깥에서 맴돌이만 하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하고 오붓하게 지내는 가운데 사진을 담았거든요. 이러는 가운데,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이 붙는 사진은, 사람들 삶을 꾸밈없이 담는 사진이어야 할 테지만, 바로 이 리얼리즘은 남들을 구경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나부터 내 삶을 꾸밈없이 들여다보고, 이런 눈과 몸짓을 바탕으로 내 이웃을 껴안는 데에 있지 않겠느냐’는 깨달음까지 간다고 생각합니다.

 숱한 사진쟁이들이 집식구 사진을 곧잘 찍지만,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에 담긴 사진처럼 싱그럽거나 짠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이해문 님 ‘삶 사진’은 억지스럽거나 어설프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살아가는 집과 동네를 ‘부끄러움 없이’ 보여줍니다. 딱히 숨기지 않으며, 굳이 내세우지 않습니다. 감출 구석 없고 자랑할 구석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사진쟁이 스스로 삶이 사진이 되고 사진이 삶이 되었습니다.

 〈팽이〉나 〈꼬마도서관〉 같은 작품이 퍽 돋보인다 하지만, 이런 돋보이는 사진이 있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멀리 나가서 여느 사람 수수한 모습’을 찾으려 아둥바둥하기보다, ‘바로 내 집에서 내가 바로 여느 수수한 사람임을 깨달아 나와 내 식구부터’ 찍는 길을 걷고 나서 사진을 넓게 바라보아야겠다고 느끼는 매무새가 고스란히 사진에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또한 제 삶마디에 따라서 헌책방을 찍고 골목길을 찍고 자전거를 찍으며 우리 아기를 찍습니다. 아기를 돌보고 집 안팎 살림을 꾸리느라 집은 온통 어질러져 있는데, 이런 어질러진 모습을 사진눈에서 슬쩍 빼놓을 수 있는 가운데 더 잘 들어오도록 찍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따로 빼지 않고 굳이 더 넣지 않습니다. 꼭 그만큼, 제가 찍어야 하는 만큼만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어떤 ‘적바림(기록)’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좋아서 찍습니다. 좋아서 찍은 사진을 좋아서 두 장씩 찾은 다음, 음성에 살고 있는 부모님한테 한 장씩 모은 꾸러미를 띄우고, 저는 저대로 집에 차곡차곡 한 장씩 갈무리해 놓습니다.

 오늘도 집에서 몇 장 담았고, 골목길마실을 하면서 몇 장 찍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이듬날도 매한가지로 사진과 함께 살아갈 생각입니다. 이해문 님은 이해문 님이 살던 그무렵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진을 즐겼듯, 저는 저대로 제가 발딛고 있는 터전에서 제 둘레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제 사진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당신 첫 사진책 《한국현대사진가선 : 이해문》 같은 작품을 하나하나 장만해서 제 도서관 책시렁에 고맙게 꽂아 놓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2.8.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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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i 사진의 발견 - 'i' 김윤수와 함께 17人 17色 사진의 정원을 거닐다
김윤수 지음 / 바람구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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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말하지 않는 사진 이야기
 [잠깐 읽기 38] 김윤수, 《17+i, 사진의 발견》


- 책이름 : 17+i, 사진의 발견
- 글ㆍ사진 : 김윤수
- 펴낸곳 : 바람구두 (2007.1.2.)
- 책값 : 16000원


 (1) 삶이 없는 사진이란


 제가 2007년 4월부터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이 깃든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으로 ‘사진 찍으러’ 찾아오는 바깥 손님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될 산업도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인천시 개발계획에 맞서는 동네사람 싸움이 여러 해째 이어지는 가운데, ‘곧 사라질는지 모를 골목길’ 모습이라 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옵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은 사진을 수없이 찍습니다. 쉬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 와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는 하여도, 스스로 찍는 골목길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기에 눈을 박느라 바쁘고, 맨눈으로 골목집과 골목꽃과 골목사람과 골목풀과 골목나무를 살피고 맨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말마디를 나누려는 몸짓은 거의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열어 놓은 ‘사진책 도서관’에서도 ‘촘촘히 꽂힌 사진책’을 한 권쯤이나마 끄집어 내어 펼쳐 보려는 손길은 매우 드뭅니다. 그저 사진찍기에 바쁩니다.

 보다 못해 사진만 찍어대는 사람을 ‘다른 사람 책 보기에 걸리적거리니 나가 주셔요’ 하고 내쫓았고, 도서관 문간에 쪽지를 하나 붙였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마련한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사진만 찍으려고 하는 분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셔요’라 적어 놓은.


.. 정말이지 선생님은 모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많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아요?” 선생님은 동그래진 내 눈을 바라보며 특유의 눈꼬리가 올라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풀과 나무들과 같이 자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 ..  (14쪽)


 사진은 ‘적바림’입니다. ‘새겨 놓음’입니다. 한자말로 바꾸면 ‘기록’입니다. ‘각인’입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부대끼거나 스친 사람들을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내가 발디디는 동네 모습을 적바림하고, 내가 어울리는 동네 삶터를 고스란히 새겨 놓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찍든 저런 모습을 찍든,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찍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삶 찍기”가 사진찍기요, “삶을 적어 놓기”가 사진찍기입니다.


.. 어떤 공간은 나의 과거 속 기억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자꾸만 탐험하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떤 공간은 불편하고 답답한 기운이 숨을 죄어 오기도 한다. 이것은 허름하거나 고급스럽다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허름해도 진짜가 많고, 화려할수록 두려운 가짜가 많은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  (51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 삶’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내 모습 찍기’가 아닌 ‘남 모습 찍기’일 테니까요. 그런데, 남 모습을 ‘내 눈길에 따라’ 찍습니다. ‘내 눈높이에 따라’ 찍습니다. ‘내 마음그릇에 따라’ 찍고, ‘내 생각줄기에 따라’ 찍습니다. ‘내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 깜냥껏’ 찍는 사진이며, ‘내 솜씨만큼’ 찍는 사진입니다.

 언뜻 보기로는 ‘나 아닌 삶’을 찍는 듯한 사진이지만, 알고 보면 ‘다름아닌 내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들여다본 대로 찍는다’는 소리는, ‘나한테 보여지는 대로 찍는다’는 소리이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만큼 나한테는 이렇게 보이니 이대로 찍는다’입니다. 이리하여 내 사진에 찍힌 세상사람 모습은 바로 ‘나 사는 모습’이며 ‘내 삶’입니다.

 속깊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바로 속깊이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만 예쁘장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겉으로만 예쁘장해 보이도록 꾸민다는 뜻입니다. 머나먼 딴 동네에서 그럴듯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신 곁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보듬는 가슴이 없이 겉치레 해바라기에 매여 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돈 되는 사진만 찍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에 돈벌기만 들어차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면 스타일은 무엇일가?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경험한 대로 뒤죽박죽 정의를 내리자면 스타일은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오감을 통해 자극되어진 모든 행위의 집합체이다. 무엇을 먹고, 입고, 듣고, 읽고, 느끼고, 웃고, 분노하고, 울고, 찡그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걷고, 달렸는가가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되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스타일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재생되는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날 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의 마법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67쪽)


 그래서 저는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과 삶과 사람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제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부대끼기로는, ‘글과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글과 다른 삶’ 또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쓴 글하고 삶은 똑같지만, 옷입히기 잘하는 사람들 손놀림(글재주)에 빠져들면서 참모습을 못 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읽는이가 되면 글쓴이 속내를 못 읽어요. 저부터 이와 같았고, 저부터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아니 마땅히, 저 스스로 아직 슬기로운 읽는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조금씩 갈고닦으며 거듭나는 읽는이라고 느낍니다. 잘못 읽거나 어설피 읽거나 어리석게 읽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를 믿습니다. 잘 읽으면 잘 읽은 대로 믿고, 잘못 읽으면 잘못 읽은 대로 믿습니다. 잘 읽어 흐뭇한 사람하고 사귀는 삶은 흐뭇함 그대로 즐기고, 잘못 읽어 뒷통수를 맞거나 쓴맛을 보게 되면 뒷통수 맞기와 쓴맛 보기를 달게 받아들입니다.


.. 가정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도서관에는 얼마나 자주 새 책이 투입되는가? 당신은 이 도서관의 성실한 열림자인가? 책들의 호흡주기를 파악하고 있고,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뿜어내는 광채가 온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이다 … 2000년, 오사카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작업실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를 만나러 3층으로 올라가기까지 내 눈에 비친 지하부터 지상까지 그의 작업실은 건축사무소라기보다는 하얀색 도서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책과 대화하고 살았는지, 또 살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책장 가득 빽빽이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권위적이지 않은 대화법과 아주 쉬운 단어로 안도 타다오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쉼 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건축가였다 ..  (104, 115쪽)


 올해 2009년에 접어들면서,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는다며 마실 오는 사진쟁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2010년이 되고 2011년이 되면 훨씬 더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웬만한 골목길이 재빨리 사라지는 탓인데, 웬만한 서울 골목길이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여도, 사랑스레 살아남아 고스란히 이어가는 골목길 참모습을 옳게 읽어내는 눈썰미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쟁이들은 ‘골목길은 이래야 하거든’ 하면서 ‘어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앞선 다른 이들이 찍은 골목길 사진만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때로는 잔뜩 멋과 예술감각(?)을 불어넣으며 찍습니다. 5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만 원짜리 사진기로, 20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0만 원짜리 사진기로, 두어 시간 ‘전철역 둘레 1km 안팎을 오가며’ 찍습니다.

 옆에서 이분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참으로 멋스럽게 찍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이분들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노라면, 이분들은 ‘골목길을 찍으려고 인천에 오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골목길이라 이름붙은 유행을 찍으려고 잠깐 서울 밖으로 나와 보았다’는 느낌만 짙습니다.

 골목길을 다루는 글도, 사진도, 그림도, 영상도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을 다루는 글 사진 그림 영상 또한 매한가지였습니다. 아기를 다루어도, 연예인을 다루어도, 문화재를 다루어도, 섬마을을 다루어도 매한가지일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먼저 삶을 일구면서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당신들 삶을 알차게 가꾸는 가운데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들고 마니까요. 사진기만 뻘쭘하게 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어떤 사진기가 좋으냐 따질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어떻게 꾸려야 아름다운가를 돌아볼 줄은 모르니까요. 사진기 장만하려고 카드를 긁을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찾고 생각하며 품과 땀과 시간을 들일 줄은 모르니까요. 
 







 (2) 삶을 말할 줄 알면 사진을 말할 수 있다


 ‘사진가 열일곱 사람’을 말하는 사진비평 《17+i, 사진의 발견》을 읽습니다. 이 책은 틀림없는 사진비평입니다. 그러나 글쓴이 김윤수 님은 ‘아무개 사진은 이렇고 저무개 사진은 저렇다’는 말을 토씨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딴소리라고 할는지, 엉뚱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를 이야기만 길게 늘어붙입니다.

 그런데 이런 딴소리 늘어뜨리기가 외려 ‘아무개 사진은 아무개가 이런 흐름으로 당신 삶을 가꾸기 때문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어떻게 담아야 좋은 사진인가?’ 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꾸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하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가 고스란히 ‘삶 = 사진’이라는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줍니다.


.. 나는 서울을 대놓고 비난할 수도, 또 아주 예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파적일 수 없는 것은 서울은 어쩌면 내 모습의 일부이고 나를 가장 편안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기이기 때문이다 … 나는 서울의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지도 속의 동네 이름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는 한가로운 멋을 찾을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이른 아침 까페나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한가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한가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색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온종일 학원으로 과외로 내몬다. (나 또한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 13년 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나의 일상은 다이어리의 칸이 넘치도록 이어지는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  (165쪽)


 책을 손에 쥐고 나서 한 시간 만에 훌떡 읽어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읽어치웠습니다. 가볍고 밝고 싱그럽게 쓴 글입니다. 꾸미지 않고 내세우지 않으며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고,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사진비평이 하나쯤 나왔다는 데에서 반갑고 기쁩니다. 이 나라 사진쟁이 숫자는 열일곱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17+i, 사진의 발견》도 나옴직하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책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고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또다른 일은 보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돌출 행동과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언어의 조합이 언제나 기막히게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특별한 영혼을 가진 아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서울이라는 곳은 여리고 순수한 영혼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이 무궁무진한 원석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지 못하고, 둥글게 멋없이 깎아 돌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선 ‘돌이 되어야 살기 편하지’라며 위로하곤 한다. 세상은 보석들이 많아야 정교하게 빛나는데, 서울은 점점 더 돌들만 가득해지고 있다. 그것도 애교 넘치는 자갈돌이 아닌 울퉁불퉁한 바윗둘로만 가득 차 있어 발을 다칠까 멍이 들까 늘 두렵다.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마지막 일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  (169쪽)


 다만, 글쓴이 김윤수 님이 만난 사진쟁이 열일곱 사람이 ‘이래저래 비슷한 사진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상선, 배병우, 양현모, 윤석무, 박경일, 김지양, 구본창, 이윤진, 조정환, 김현성, K.T.KIM, 오형근, 최민호, 박기호, 문형민, 박지혁, 천경우, 이렇게 열일곱 사람 가운데 K.T.KIM이라는 분 사진만 살며시 다르다는 느낌일 뿐, 다른 열여섯 사람은 어슷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틀림없이 이 열여섯 분 사진은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진 매무새와 사진 생각은 한동아리가 아닌가 싶어요.

 좀더 테두리를 넓혀 더 많은 사진쟁이를 만나 보았다면, 아주 배고프게 사진일을 붙잡는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오래오래 사진끈을 붙잡던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도시나 도시와 가까운 데에서 사는 사진쟁이 말고 도시와 먼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도 만났더라면, 서울 테두리를 넘어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로도 나가 보았다면, 하다 못해 수도권이라는 틀에서 사람들과 만나 보기라도 했다면, 또한, ‘만드는’ 사진이 아니라 ‘꾸밈없는’ 사진을 조용히 찍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면, 이 책 《17+i, 사진의 발견》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거나 빛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진비평을 더 기다립니다.


..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몇 날 며칠을, 길게는 수 년을 애통해 하고 술을 벗 삼아 지내면서도, 자신의 기록을 잃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기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다 ..  (193쪽)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겨우, 우리 사진밭에 발맞춤하는 사진비평 걸음마를 밟았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머나먼 갈 길을 앞두고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지만,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보다는, 좀더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걸려넘어지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사진비평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말하면서 사진을 말하는 이음고리를 사랑하고, 삶을 밝히면서 사진을 밝히는 이음쇠를 믿으며, 삶을 가꾸며 사진을 가꾸는 이음마당을 아끼는 길찾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여행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카페에서 우유크림이 수북한 카푸치노 한 잔 마실 여유도 없는 숨가쁜 일정을 짜곤 한다. 그리고는 피곤에 지쳐 뭘 얻었는지 모르는 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관광지 사진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 여행은 정신 수양을 위한 것도, 이야깃거리를 만들러 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로 돌아가서 자연의 나와 만나고 오는 시간이다 ..  (203쪽)


 저는 오늘 하루도 아기 사진 스무 장 남짓, 골목길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었습니다. 조금 뒤 낮밥을 느즈막히 먹은 다음, 또는 낮밥을 거른 다음 아기를 안고 동네 마실을 나가면 쉰 장이나 일흔 장쯤 골목길 사진을 더 찍으리라 봅니다. 내일쯤 서울마실을 나가면 헌책방에도 들러 헌책방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니 날마다 즐겁고, 날마다 즐겁게 사진을 찍으니 내 사진을 내가 보면서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는 동네 이웃한테는 거저로 주고, 제 사진을 좋아해 주는 도서관 손님한테는 사진 한 장에 천 원에 팔곤 합니다(조금 큰 판은 종이값이 드니까 이천 원이나 사천 원을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작품사진을 고작 천 원에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못해도 10만 원은 받아야지요?’ 하고 도움말씀을 해 주시는데, 저로서는 ‘작품사진이라면 더더욱 천 원만 받으며 팔고’ 싶어요. 싸구려로 넘기는 사진이라기보다, 나도 천 원에 팔고 당신도 천 원에 팔면서, 서로 홀가분하게 수많은 사진을 언제나 듬뿍듬뿍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사진삶이 즐겁습니다. (4342.6.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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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9-07-13 20:44   좋아요 0 | URL
좀더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느낌글이 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아직은 제 마음그릇으로는 이만큼밖에는 느낌글을 못 쓴다고 헤아리며, 어줍잖으나마 느낌글을 걸쳤습니다.

부끄러운 글을 읽어 주시니 저로서 더 고마울 뿐입니다. 그나저나, 한 번 사진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신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새 이야기를 보태어 가신다면, 차근차근 한결 빛나며 사랑스러운 사랑이야기를 둘레에 고이 나누며, 김윤수 님 아이한테도 기쁘게 물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2 - 삶이 되지 못한 사진이라면 돈벌이나 겉멋일 뿐
 : 김영갑,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책이름 :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글 : 김영갑
- 펴낸곳 : 하날오름 (1996.9.10.)
- 1996년에 처음 나올 때에는 김영갑 님 글만 모아서 묶었습니다. 2004년에 ‘휴먼&북스’에서 사진을 넣어 새판으로 다시 펴냈고, 2007년에는 ‘김영갑 2주기 기림’판으로 새로 펴냅니다. 저는 이 가운데 1996년에 처음 나온 판으로 만나서 읽었습니다.



 (1) 만화에서 느끼는 사진


 준코 카루베라는 일본 만화쟁이가 그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열 권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이듬해 2001년에 뒷이야기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 열두 권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가 나올 무렵에는 얼른 알아채고 열 권을 모두 장만해서 기쁘게 읽었는데, 뒷이야기까지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그만 놓치고 말았고,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는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에 이 만화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끝에 지난달 가까스로 열두 권을 장만했습니다. 마침 골목마실을 하며 지나는 길에 본 ‘문닫은 대여점’에서 값싸게 내놓은 책꾸러미 가운데 이 녀석이 있었어요. 이 만화책을 갖추어 놓은 대여점이 있었구나 싶어 놀라면서 즐겁게 장만했는데, 열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읽는 동안, ‘이 만화는 대여점에서 거의 안 읽힌 듯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느 책이든 사람들이 찾아서 읽으면 읽은 자국이 남습니다만, 이 만화책 열두 권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2001년에 나온 만화임에도 먼지가 그리 내려앉지 않았고요.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만난 만큼 한 번 보고 그칠 수 없어 거듭 펼치고 다시 넘기고 합니다. 7권을 보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초등학생 딸아이를 앞에 놓고 “찌주루(딸아이 이름), 그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엄마는 뽐내고 있었단다. 찌주루의 모든 걸 엄마가 낳았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찌주루가 가지고 와 준 거야.(25∼26쪽)” 하고 생각합니다. 꾀병을 부리던 딸아이가 참말로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말 않고 꾹 참는데, 아이 어머니는 “숨겨도 소용없어. 엄마는 다 알고 있는걸. 찌주루의 일은 전부. 왜냐면 찌주루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까.(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 “며칠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하고, 몇 년 기다려 찍은 사진하고는 다르겠죠. 취미로 사진하는 게 아니거든요.” … 한 장이라도 감동적인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안, 정작 부모님의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 많은 이들을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 ..  (13, 127, 204쪽)


 더없이 착하디착한 만화인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에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엇비슷합니다. 어쩌면 모두 똑같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심통을 부린다 할지라도 금세 풀어지거나 누그러뜨립니다. 아프거나 괴롭게 하는 이야기란 나오지 않습니다. 슬프거나 힘겹게 하는 이야기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화책을 넘기는 내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가슴속 깊은 자리까지 스며들면서 콕콕 찌르는 뭉클함이 있어, 눈물 없이 만화를 볼 수 없습니다.

 다 읽고 덮으면서도 뭉클뭉클함이 고이 남아서 책등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사진기를 들고 골목마실을 나가면, 눈이 한결 맑아지고 손길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착한 만화를 보면서 제 마음이 착해지는 가운데 제가 담아내려는 사진 또한 착해진다고 할까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착한 이야기이고, 이처럼 착한 사람들 나오는 만화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한편, 저 스스로 즐기면서 이웃하고 나누고픈 사진이란 다름아닌 착한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목동네와 헌책방동네라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와 착한 그림과 착한 사진처럼, 저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제 삶터를 착한 마을로 일구는 일에 손을 거들고 싶다고 할까요.


..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의리나 배신, 명예나 권력, 돈, 이 모두는 나와 무관하다. 나의 삶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명될 수도 없는 사생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삶, 움막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알을 품은 채 하품하는 일상들. 일 년 내내 혼자 지내며 흘린 눈물도, 웃음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랜 세월 열과 성으로 품었던 알에서 탄생된 생명인데도 나의 사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극적인 드라마를 원한다. 눈물겹고 재미있는 감동의 드라마만을 원한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행복한 드라마를 원한다. 성공했다 실패하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성공하는 영광의 드라마를 원한다. 나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내가 껴안은 드라마는 처음부터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  (45쪽)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을 보면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때로는 책을 몹시 거룩하게 드높이는 사진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주 천덕꾸러기처럼 다루고, 옛추억에 잠기게끔 하려는 모양새로 다룹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못합니다. 지금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과 내일과 어제가 어떻게 달랐으며, 책이 살아온 오늘과 어제에다가 내일은 또 어떻게 다를는지를 헤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골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은 헌책방을 찍는 사진하고 어슷비슷합니다. 꼭 닮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두들 제 깜냥껏 바라보는 셈입니다. 제 깜냥껏 좋은 책을 알아보면서 고를 뿐입니다. 눈이 더 밝다면 더 많은 책이 좋음을 알아차리고 더 많이 읽고 장만하는 헌책방마실이 될 테지요. 눈과 생각이 한결 밝다면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사람 삶자락을 더욱 깊숙이 껴안으면서 녹아드는 가운데 사진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낼 테지요.

 무엇보다도, 헌책방이나 골목길에서 따로 사진 한 장 찍지 않더라도, 두 곳에서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리라 봅니다. 사진이란 찍어도 좋지만 안 찍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부지런히 단추질을 해도 즐겁지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어깨에만 얌전히 걸치고 있어도 즐겁습니다. 사진에 우리 삶을 담는다 하면, 필름에 앉혀 종이로 찍어내는 사진이 되지 않고, 눈을 거쳐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언제나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는 우리 발자취’로 간직하고 있어도 사진이 됩니다.


..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일기예보는 참고나 할 뿐 그들 방식대로 하늘을 보고, 바람 부는 방향과 강약 그리고 느낌을, 바다의 물결이나 색감을 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은 자연의 변화를 읽지 않고는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대가가 사용했던 명품의 카메라를 가졌다고 해도, 사진가가 원하는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없다 …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진가들과는 시대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른데 그들을 흉내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 … 누구도 나에게 사진에 대해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  (169∼170, 190∼191쪽)


 그러고 보면, 김수정 님 만화책을 해마다 한 번씩 통째로 되읽는 데에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김수정 님 만화는 잡지에 이어실리는 대로 다 보았고, 학교(초중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낱권책을 장만해 놓고 거듭 보는데, 그무렵 일은 오늘날까지도 환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수정 님 만화에는 그무렵 1980년대 사람들 삶자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단출한 줄이 이어지며 이루어진 만화이지만, 구석구석 꼼꼼하게 우리 동네 골목이 살아숨쉬고 이웃 동네 골목이 펄떡펄떡 뛰고 있습니다.


.. 어둠에 묻힌 정원은 어두운 대로 좋고, 달빛에 드러나는 정원은 그대로 좋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눈이나 안개에 묻히면 묻히는 대로, 나를 매혹시킨다 … 사진가들 중에 사진의 우연성에 필요 이상 과대포장을 하려 한다. 사진의 미학 중에서 우연성이 사진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 … 마라도는 일 년에 십만 명 정도 관광객이 다녀간다. 그 중에 사진가들도 많다. 이 사람 저 사람 카메라 들이대다 보니 주민들은 카메라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 … 현실을 상대하여 작업하지만 사진가의 마음에 여과된 것이다. 사진가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다르다. 사진 속의 현실은 사진가의 마음에서 여과된 현실이지, 있는 그대로 복사된 현실이 아니기에 사진이 예술일 수가 있다 … 감동을 주는 사진은 우연히 만나 촬영할 수도 있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 잔재주를 피워 쉽게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다 ..  (57, 180, 182, 198쪽)


 오늘날 만화를 보면 ‘배경 잘 그려 주는 도움 만화가’가 꽤 많아, 거의 사진을 옮겨놓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 만화처럼 싱그럽지 않아요. 잘 그리기는 솜씨있게 잘 그렸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예전 만화는 배경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만화를 보았다고 느꼈으며, 다시 보고 또 보면 지난번에는 못 본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는데, 요새 만화는 배경까지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사진 찾아보면 되지?’나 ‘내가 몸소 거기에 가면 되지?’ 같은 마음만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채우려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까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 ‘만화를 왜 즐기는가’를 헤아리지 않고 기술자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 나라 사진작가 숫자가 대단히 늘어나기는 했어도 근심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모두들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사진‘기술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찍는 솜씨’는 빼어난데, ‘찍는 마음’은 하나도 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착한’ 만화를 좀더 좋아해서 사진도 착한 사진을 더 좋아할는지 모릅니다만, 착하지 않은 만화라 하여도 ‘울림’이 있으면 반갑습니다. ‘찡함’이 있고 ‘움직임’이 있으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아무 맛이 없다면, 멋만 가득하고 예쁘게 보이기만 한다면 달갑지 않아요. 이런 만화는 만화가 아니요, 이런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만화가 되든 사진이 되든,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리 눈길을 저절로 그곳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2) 책에서 느끼는 사진


 아침에 골목마실을 다녀왔습니다. 요즈음은 일산과 인천을 오가느라 몸이 고단하여 골목마실을 제대로 못 다니는데, 도서관 문을 열어 놓는 금토일 사흘에 걸쳐 아침저녁으로 틈을 쪼개어 사진마실을 나갑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용현동이나 학익동으로 나가 보려고 했는데, 그만 도원동과 선화동에서 붙잡힙니다. 도원동과 선화동 골목길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가 몹시 싱그럽고 좋아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다른 때에도 이와 같아서 아예 눈을 감듯 자전거로 씽하고 달려 다른 동네로 가야 비로소 그곳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어제도 찍고 그제도 찍었어도 그예 지나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본 모습과 그제 본 모습은 오늘 본 모습하고 같지 않기 때문이에요. 어제는 어제대로 좋고 그제는 그제대로 좋으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기 때문이에요.


.. 십 년을 줄곧 섬에서 생활했는데도 지금도 나는 뭍의 것들 속에 포함된다. 섬 것들 속에 포함되려면 삼대가 지난 뒤에야 자연스레 섬의 것들 속에 포함될 수 있단다. 나도 이제는 섬사람이라고 고개를 세우고 되물으면 섬의 토박이들은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변방이라 부르던 시절 토박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인내와 희생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살다 간 토박이들의 땀과 눈물을 채우고 있다 … 내가 작업하고 싶은 사진만을 작업하며 생활하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사진작가로,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할 이유도, 까닭도 없어졌다 ..  (166∼167쪽)


 요 몇 달에 걸쳐 《빅토르 하라》를 읽는데 아직 끝마치지 못합니다. 《말괄량이 삐삐》나 《국가는 폭력이다》나 《식민주의와 언어》나 《지로 이야기》 같은 책은 진작에 다 읽었으나 느낌글로 갈무리하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다 읽은 책이 책상맡에 한아름 쌓이고 두 아름 쌓입니다. 그렇게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른 이 책을 마치고(졸업) 다른 책으로 뻗어 가야지’ 하는 생각을 잇고 잇다가 ‘두 번 읽고 세 번 읽게’ 되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지난번에 읽으며 놓친 대목이 이번에 읽을 때 눈에 뜨입니다. 지난번에 읽으며 잡아챈 대목이지만 이번에 읽을 때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러는 동안 ‘어, 이 책 느낌글을 일찍 썼다면 너무 아쉬웠겠는걸’하고 생각합니다. ‘이 책 느낌글을 마무리짓지 못한 까닭은 따로 있었구나’ 하고 느끼고, ‘더디 읽어야 할 책은 더디 읽어야’ 하고 ‘더디 새겨야 할 책은 더디 새겨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적어도 열 해쯤은 해야’ 무언가를 한다는 시늉이라도 낸다고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기에 가끔은 방송사나 잡지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어떤 기자는 그저 흥미 위주로 묻기도 하고 어떤 기자는 꽤 심각한 질문만을 골라 던진다 … 대부분 기자들이 나 같은 풋내기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얻는 것은 없겠지만 성의없는 태도를 보이면 나도 하품이 난다. 아무리 풋내기 사진가라지만, 상대가 무성의하게 질문하면 나 또한 무성의한 대답을 할 뿐이다. 그러나 예의를 갖추고 질문하면 나도 진지하게 임한다. 나에게도 나만의 가슴속에 묻어 둔 눈물, 한숨, 기쁨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공염불이다 …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프고, 내가 슬프면 남도 슬픈 줄 안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눈높이로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 늘 떠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가끔은 곤혹스럽고, 긴장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얼굴 마주하고 나의 깊은 곳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끔 인간적으로 나를 대한다. 진실에는 진실이 제격이다 … 여유있는 사람들의 서재에서 먼지가 쌓여 가는 값비싼 작품집이기보다는 손과 손에서 옮겨다니며 구겨지고 찢어지는 엽서와 카드이길 원했습니다 … 구한말 이 땅의 중요한 사건이나 사회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은 외국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미 사진이 이 땅에 들어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집으로 묶여 나온 것들이 대부분 외국인이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모르는 이들이 작업했기에 호기심에 의한 기념사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직장을 가지게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만을 보고 세상을 한탄할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여주는 세상에 의지해서 세상을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찾아가 보고 난 후에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밝은 세상,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 내 자신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그들을 닮아 보고, 흉내라도 내 보고 싶었습니다 ..  (81∼90쪽)


 오늘날 쏟아지는 책들을 살피면 글에 곁들이는 사진이 퍽 많습니다. 사진 없이 글로 이루어진 책은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면서 ‘굳이 넣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진을 넣는다고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글은 글이고 그림은 그림이며 사진은 사진이거든요.

 글에 보태려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더 잘 알도록 한다며 글을 붙일 수 없습니다. 글은 글대로 홀로서야 하고, 그림과 사진은 그림과 사진대로 홀로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잘 알거나 깨달아서 이런 이야기를 끄적이지는 않아요. 그저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책과 함께 뒹굴다 보니 어느 결엔가 저도 모르게 툭툭 내뱉게 되는 말마디였을 뿐입니다. 사람들하고 술잔을 부딪히며 책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이런저런 말마디가 와르르 쏟아지곤 합니다. 집으로 비틀비틀 해롱해롱 돌아와 자빠진 이튿날, ‘어제 내가 뭔 소리를 지껄였지?’ 하며 머리가 아플 때가 있으나, ‘어제 내가 했던 이런 말은 섣부르거나 부끄럽지 않았나?’ 하며 머리가 맑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삶이 되면 알게 된다고 할까요. 삶이 되니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되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삶이 되니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할까요. 사진하고 함께 산 지는 아직 스무 해가 못 되었으나 책하고 함께 산 지는 스무 해쯤 되다 보니 ‘책이란 이렇구나’ 하고 혼자 싱긋 웃을 때가 잦습니다. 이런 느낌을 곧바로 사진으로 이어 ‘책이 이러하면 사진도 이러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책과 그림과 사진이, 그러니까 글과 그림과 사진이 서로 다르지 않구나 싶어요. 모두 한 흐름이요 한 줄기요 한 뿌리이구나 싶어요.


.. “곱쌍헌게 여편네 같쑤다.” 인물이 훤한 양반이 머리는 왜 묶느냐고 걱정을 한다. 머리 묶은 덕에 노인들과 어렵지 않게 말문이 열린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남자답고 사내라고들 생각한다. 남자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우려한다. 만나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찾아 무인도에서 무인도로 옮겨 다니듯 사진가들도 분주하게 촬영지를 찾아나선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떠나려 한다 ..  (158, 182쪽)


 글쓰기를 가르치자면 글로 가르쳐야 하고, 그림을 가르치자면 그림으로 가르쳐야 하며, 사진을 가르치자면 사진으로 가르쳐야 한다고들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글로도 글을 가르치지만 그림으로도 글을 가르친다고. 사진으로도 글을 가르치고, 글로도 사진을 가르친다고. 왜냐하면, 글이 삶이 되면 무엇으로든 글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림이 삶이 되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니까요. 사진이 삶이 되면 누구하고 있더라도 모두 사진으로 바라보고 사진으로 삭이게 되니까요.

 어릴 적에는, 그러니까 제가 철부지일 적에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요즈음도 아직은 철부지가 아닌가 싶은데, 예전만큼은 철부지가 아닌지 모릅니다만, 아무튼 예전이나 이제나 똑같은 철부지라 하여도 요사이는 새로 느끼는 이야기가 많아요. 철부지인 주제에 깨닫는 셈입니다만, ‘온힘 쏟아 책 하나 펴낸 사람이 모두 잊고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글은 한 줄도 안 쓰면서 새로 배우는 일’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저이들이 뭣하러 저렇게들 하나 알쏭달쏭하기도 했고, 배불러 저러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저이들이 ‘지난날 스스로 오른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려’고 그렇게들 애쓰는 몸짓이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를 일이지요. 철부지 머리로 헤아릴 뿐이니까요.


.. 섬 구석구석 아스팔트 길이 트이고 시멘트 건물이 늘어나면서 토박이들은 신명을 잃었다. 할망당이 없어진 자리에 대신 교회가 들어섰다. 하늘길이 열린 후 사람들이 몰려오자 인정도 사라졌다 … 마라도를 이해하는 데 태풍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마라도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바람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마라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 아주 작은 섬이지만 자연의 교향악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아주 감동적이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라도에서는 한 철을 혼자 살아도 그리운 사람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온종일 바다로 하늘로 공허한 마음을 채운다 … (사람들은)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건물 짓고 기념비를 세운다. 마라도가 오염돼 환경이 파괴되면 왔던 손님도 되돌아간다. 볼 것이 없고 느낄 것이 없으면 마라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마라도를 잊어버리는 날 민박집, 교회, 절이 폐가가 되어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시절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사람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건물도 도시도 오래되면 늙는다. 늙으면 죽는다. 늙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매혹시키는 것이 마라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부각시키는 개발이 아니면 그 개발은 실패작이다.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보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외면한다 ..  (21, 185∼186, 200쪽)


 예나 이제나 아직 철부지이며, 이런 철부지이니 철부지로서 책을 펼치고 그림을 즐기고 사진을 맛봅니다. 철부지이니 아쉽거나 모자라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받아들이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맞아들입니다. 섣불리 더 뻗댈 마음이 없으며, 괜시리 숨기거나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늘 제 마음그릇 그대로 드러내면서 온몸으로 껴안고 싶습니다.
 





 (3) 김영갑 님 사진삶을 담은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밝히는 김영갑 님 사진삶이 담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읽습니다. 204쪽짜리 자그마한 책 마지막을 채우는 말마디입니다. 이 말마디 앞에는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글로 표현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한 줄로 밝힐 수 없다면 백 줄로도 살을 붙일 수 없고, 백 줄을 채우지 못한다면 한 줄로 간추릴 수 없다는 이야기와 매한가지일 테지요.


.. 아버지에 대한 미움, 증오가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긴장한다. 내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만큼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했다 …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내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 ..  (140, 173쪽)


 김영갑 님은 오로지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습니다. 루게릭병이 찾아들어 더는 사진기를 손으로 못 찍고 마음으로만 찍게 된 뒤부터는 두모악갤러리를 만들었고, 이곳 두모악갤러리는 당신 뜻을 잇는 분이 야무지게 꾸리고 있습니다. 제주섬마실을 하는 분들은 우도나 마라도에 들르듯 으레 이곳에 들르고, 김영갑 님이 온삶을 바친 사진을 고개를 끄덕이며, 또는 눈물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또는, ‘저게 뭐야? 나도 찍겠는걸?’ 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쉰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마흔을 조금 넘기고부터 병이 찾아들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 여러 매체와 만나서 남긴 이야기를 살피니, ‘쉰조차 못 되어 이슬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쉰 살 가까이 살아남은 나는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냐고 밝혔더군요.

 그래, 쉰은커녕 마흔이나 서른에, 또는 스물이나 열에 떠난 넋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스스로 못 느낄 뿐이지만, 우리는 이 젊거나 어린 넋들이 있었기에 오늘처럼 우리 목숨을 고이 여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앞에 길을 마련한 숱한 땀방울이 있었기에 우리들 누구나 잔걱정 덜하면서 세상살이를 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정신나갔다고 혀를 찬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도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뭐했냐고 다그쳐도 나는 웃는다. 십 년 세월 동안 밥벌이도 안 되는 일에 몰두했지만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으려 나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  (160쪽)


 김영갑 님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펴내던 해는 1996년이고, 이때 당신 나이 마흔이었으며, 제주섬에 흘러든 지 열두 해째입니다. 이 책에 스스로 적은 해적이를 보면, 이무렵까지 20만 장 넘게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다고 했는데, 김영갑 님은 여느 필름이 아닌 파노라마사진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찍어댔습니다. 숨돌릴 틈 없이 찍었고, 오늘 어제 내일 가리지 않고 찍었습니다.

 한 장을 얻으려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는지 모르나, 제가 느끼기로는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20만 장을 얻으려고 찍은 20만 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뒤로 더 찍어 50만 장을 이루었다면 50만 가지 모습을 나누고 싶어 50만 장을 찍었으리라 봅니다. 김영갑 님한테 제주섬 중간산에 살며서 사진찍는 일이란 당신 삶이었으니까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삶이고, 하루도 놓칠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아니, 하루조차 아닌 한 시간도, 한 분도 한 초도 잊을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한때 한때 사진으로 담아 한삶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렇게 담은 한삶을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얄궂게 찾아든 병 때문에 당신 사진을 당신 스스로 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당신한테 병이 찾아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사진기만 붙잡았을 테며, 당신은 훨씬 더 많이 사진을 남겼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모인 사진은 당신 스스로나 다른 사람 누구나 짐을 질 수 없을 만큼 되었으리라 봅니다.

 당신을 부른 뜻이 하늘나라 뜻인지 모르겠지만, ‘제주섬 중간산을 제주섬 중간산 그대로 담아내는 일은 이제 그쯤이면 넉넉하구나. 이제부터는 있는 그대로 느끼며 담아낸 제주섬 중간산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끔 갈무리해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김영갑 님한테 병을 내려주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김영갑 님 스스로 아쉽거나 모자란 대목을 느낀다면, 그 아쉬움과 모자람은 사람들이 당신이 남긴 사진을 보면서 깨달으면 된다고 헤아렸을지 모르고요.


.. 사람들은 사진 공해 속에서 살면서도 사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 신문, 잡지 …… 고개를 들면 사방에 사진이다. 문밖을 나서면 골목에도, 지하도에도, 전철에도, 버스에도 사진이다. 그런데도 무관심이다 ..  (69쪽)


 2006년에 나온 《김영갑 1957∼2005》(다빈치)라는 사진책이 떠오릅니다. 이 사진책이 나온 지도 벌써 세 해가 되었고, 김영갑 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네 해가 되었습니다. 참 빠르구나 싶으면서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싶습니다. 《김영갑 1957∼2005》를 들춰봅니다.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같은 글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제주섬 중간산은 김영갑 님과 한몸으로 있던 삶이었군요. 비록 ‘세 대에 걸쳐’ 살지 않아 ‘제주 토박이’가 되지는 못했으나, 당신 그 삶으로 한몸이 되는 길을 찾았군요. 그러니, 돈벌이 사진이 아닌 두모악갤러리를 마지막으로 남겼고, 죽기 얼마 앞서 찾아온 기자 앞에서도 ‘기자 양반,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그때는 사진 찍기를 배우라’고 스스럼없이 말했군요. (4342.5.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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