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2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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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8



사진은 ‘전문(프로) 사진가’만 찍는가?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1∼3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4.25. 4500원



  무더운 한여름을 식히려면 무엇이 좋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바다하고 골짜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습니다. 부채만 있습니다. 한여름 한낮에 해가 높이 걸리면 그야말로 후끈후끈하지만, 처마 밑이라든지 나무 그늘은 제법 시원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모기그물을 치고 마룻바닥에 드러누워도 퍽 시원합니다. 시골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으면 서늘합니다. 도시라면 밤에도 더위가 꺾이지 않을 텐데, 시골하고 도시가 다른 대목은 바로 흙이랑 나무랑 숲이랑 풀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없고 나무하고 풀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어렵습니다. 흙이 있고 나무하고 풀이 넘실거리는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 골짜기로 나들이를 갑니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갈아입을 옷만 챙깁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햇볕이 스미지 않는 골짜기에서는 골짝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골짜기에서는 귀가 멍할 만큼 우렁찬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이가 부딪힐 만큼 차가운 물살에 몸을 맡기면 더위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물방울이 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물방울이 튀는 바위 틈으로 살살 다가가서 손이랑 발을 내미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미끌미끌한 돌을 밟고 골짝물에 풍덩 빠지는 모습을 보다가, 제비나비가 춤추며 날아가는 모습을 헤아리다가, 작은아이가 돌 틈에서 가재를 알아보고는 한참 들여다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쩍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나는 ‘사진가’ 아닌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커다란 카메라? 찌, 찍었어? 방금 찍은 거야? 왜 갑자기, 게다가 아무 말도 없이 찍고 가 버리는 건 또 뭐야?’ (1권 12∼13쪽)


“아, 그대로 있어. 먹는 모습 찍는 걸 좋아하거든.” “머, 먹는 모습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1권 26∼27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학산문화사,2015)이라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모두 세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입니다. 만화책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만화책은 ‘사진기’와 ‘젊음(사랑이 꽃피는 계절)’을 그립니다. 사진을 좋아해서 ‘전문 사진가’가 되는 꿈을 키우려는 주인공(유키)이 있고, 전문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 마음이 사로잡힌 다른 주인공(아카리)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꽤 오래도록 ‘전문 사진가’답게 사진을 찍으며 살았습니다. 전시회를 연다든지 작품집을 낸 일은 없지만, 고등학생이어도 푼푼이 돈을 모아서 사진기하고 필름을 장만할 뿐 아니라, 손수 현상과 인화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얼결에 서로 짝꿍이 된 뒤에 처음에는 ‘모델’처럼 사진에 찍히기만 하다가, 짝꿍이 선물한 조그마한 사진기를 보배처럼 간수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는데, 오직 한 사람, 제(아카리) 마음을 사로잡은 짝꿍(요키) 모습만 찍어요.




“알바는 오늘 쉴 수 있는 거지?” “응!” “그럼 오늘 하루는, 같이 사진 찍으면서 보내자. 걸어가는 모습도, 이야기하는 것도, 하늘도, 길을 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1권 123쪽)


“국도 중앙분리대에 서서, 신호가 바뀔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종일 찍은 적이 있어. 카메라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숨기는 사람, 노려보는 사람, 개의치 않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였지.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어. 다들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는 것 같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투명해진 기분이 들었어.” (1권 127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에서 흐르는 사진 이야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남다르거나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멋있거나 훌륭하다 싶은 ‘사진 이론’이라든지 ‘사진 철학’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프로 사진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작은 도시를 벗어나서 큰 도시(도쿄)로 가고 싶은 아이(유키)는 ‘사랑이 꽃피는 짝꿍’을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프로 사진가’이든 ‘아마 사진가’이든 생각한 일도 생각할 일도 없는 아이(아카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늘 알바를 하면서 살림돈을 보태느라 취미나 꿈은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가, 그야말로 눈에 뜨이는 몸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가, 다른 사람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한길을 걷는 아이(유키)를 처음 마주한 뒤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그리움이라면, 이윽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느낌이며, 곧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며 함께 놀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작은 35mm 필름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이 그림을 새겨서 잊지 않도록 해야지. 언제든지 오늘 아침을 떠올릴 수 있도록.’ (1권 154쪽)


‘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줄 몰랐어.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 (2권 16쪽)




  사진을 처음 배우고, 사진기를 처음 다루며, 사진을 그야말로 처음으로 찍은 아이(유카리)는 문득 마음속으로 생각 한 줄기를 길어올립니다. ‘눈앞에 보는 그림을 마음에 새기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만 찍지 않고 마음으로 찍자고 생각해요.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서 들은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아카리라는 아이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눈빛이며 넋이고 삶인가 하는 대목을 사랑스럽게 읽어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합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 치자면 어리숙하지요. 사진기조차 선물로 받은 한 대만 있어요.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느 누구도 이 아이 마음을 따를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읽는가요? 언제나 마음으로 읽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면서 언제나 사랑이 피어나는 마음입니다.



‘내가 유키를 찍은 사진에 ‘감정’이 담긴 걸까?’ (2권 33쪽)


‘유키가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이제부터 내가 찍어 주겠어.’ (2권 48쪽)



  ‘유키’라는 일본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눈’하고 ‘하양’ 두 가지 뜻도 있습니다. 아카리라는 아이는 제 짝꿍을 떠올리면서 “내 생활은 흑백이었다. 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가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색깔이 사라지려 한다.(2권 73∼74쪽)”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유키’라는 아이는 흑백사진처럼 흑백이라고 여길 수 있고,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바탕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얗게 감싸는 숨결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흑백(유키)’을 만나기 앞서 ‘흑백(따분한 삶)’이었다가, ‘하양(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무지개, 재미난 삶)’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문득 이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얘야, 흑백도 사랑스러운 삶이고, 컬러도 아름다운 삶이란다. 흑백도 즐거운 사랑이고, 컬러도 기쁜 사랑이란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하루를 즐겁게 나누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한단다.




“그보다 나는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아무리 애써도,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2권 71쪽)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같은 혼잣말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는 자주, 또는 으레 느끼는 생각이지 싶습니다. 참말 뭣 때문에 사진을 찍을까요? 재미있어서 찍겠지요. 좋아서 찍겠지요. 즐겁거나 기뻐서 찍겠지요. 아프거나 슬플 적에 이 마음을 달래려고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찍겠지요.


  전시회는 왜 하고, 작품집은 왜 낼까요? 예술을 하거나 이름을 떨치려고 사진을 찍을까요? 어쩌면, 예술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고, 예술가로 이름을 알리거나 돈을 벌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어떻게 사진을 찍든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훌륭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만 찍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기 때문입니다.


  몇몇 전문가만 쓰라고 하는 사진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루면서 제 삶이랑 사랑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게 찍으라고 하는 사진기입니다. 노출이나 초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찍는 사진’이나 ‘좋은 사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작’이나 ‘걸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오늘 이곳에서 제 삶을 사랑하면서 찰칵 하고 단추를 눌러서 빚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자고 하는 사진기를 가슴으로 포근히 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반갑습니다. 4348.7.1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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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Modern Times - 한영수 Han Youngsoo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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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0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

― 서울, 모던 타임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엮음

 한스그라픽 펴냄, 2014.6.20. 3만 원



  사진가 한영수 님은 1986년에 《우리 강산》(열화당,1986)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 《삶》(신태양사,1987)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우리 강산》은 책이름처럼 이 나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삶》은 책이름대로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하게 빚는 삶을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두 가지 사진책은 모두 한겨레 삶터와 삶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한겨레 삶터와 삶이되,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진 삶터와 삶 가운데 남녘땅과 남녘사람 이야기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는 남녘 작가도 북녘 작가도 어느 한쪽만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강산”을 말하든 “삶”을 말하든 참말 어느 한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쓰라린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쓰라린 나라와 사람을 따스한 눈길로 마주할 수 있다면, 북녘에서 북녘만 찍든 남녘에서 남녘만 찍든 ‘삶을 누리는 기쁨’과 ‘삶을 가꾸는 보람’과 ‘삶을 나누는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어느 모로 보면 가난하거나 구지레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다르게 바라보면 ‘가난한 삶터에서도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구지레한 차림새’라 하더라도 ‘기운차게 일하면서 아이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살림을 가꾸는 어른(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옷이 넉넉하지 않고, 빨래도 자주 할 수 없지만, 맑은 넋으로 밝게 웃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조그마한 집이고, 판자로 다닥다닥 얽은 집이며, 우물이나 냇물을 긷자면 한참 지게질을 해야 하는데, 넉넉한 마음으로 따스하게 노래하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한영수 님은 ‘가난’을 찍지 않습니다. 한영수 님은 ‘꾀죄죄한 모습’을 찍지 않습니다. 그예 내 모습을 찍고 네 모습을 찍으며 우리 모습을 찍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거나 추억으로 되새길 모습이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람들이 저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하루를 짓던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일에 치여서 고단하게 등짐을 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하다가 지쳐서 아무 데나 지게를 세우고 꾸벅꾸벅 졸 수 있습니다. 학교 모자를 눌러쓰고 양담배를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 일본책이나 서양책을 두 손에 쥐고 들고 다니면서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대통령 이름을 따지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늘 내 둘레 이웃을 헤아리면서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돈이 있기에 두레를 하지 않아요. 살림이 가멸차기에 품앗이를 하지 않아요.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는 숨결이기에 두레도 하고 품앗이도 합니다.





  195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던 여러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나 ‘한겨레’로 여겨서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80년대를 지나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사진기를 손에 움켜쥐고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이 되어 어떤 삶을 사진으로 찍는 하루를 누릴까요?


  2014년에 새롭게 나온 한영수 님 사진책 《서울, 모던 타임즈》(한스그라픽,2014)는 오늘 이곳에 선 우리 모습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나간 1950∼60년대를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닙니다. 가볍게 이 사진책을 바라본다면 ‘지나간 서울 모습’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사진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진기를 쥔 사람’이 ‘오늘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서 이웃을 바라보느냐’ 하는 눈길하고 마음하고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2015년을 사는 우리라고 한다면, ‘2015년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나(사진가)하고 누가 이웃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하며, 손을 맞잡고 함께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구경하는 눈길’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깨동무하는 손길’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구경하는 눈길이라면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기록을 할 수는 있겠지요. ‘사진찍기·사진읽기’는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손길이자 마음길입니다. 내가 너를 찍든 네가 나를 찍든, 우리가 함께 ‘사진을 한다’고 할 적에는 예술 작품을 빚으려고 하는 몸짓이 아닙니다. 서로 어떤 삶이고 어떤 사랑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바라보고 알려고 하는 몸짓일 때에 비로소 ‘사진을 한다’고 말할 만합니다.






  삶을 보기에 삶을 찍고, 삶을 찍기에 다시 삶을 봅니다. 삶을 껴안기에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면서 새롭게 삶을 껴안습니다.


  1987년에 나온 사진책 《삶》은 2014년에 《서울, 모던 타임즈》라는 새 옷을 입는데, ‘서울’이나 ‘오늘날(모던 타임즈)’이라고 하는 이름이란 바로 사진가 한영수 님이 스스로 어떤 넋이요 숨결인가를 늘 찬찬히 헤아렸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양복쟁이도, 호텔보이도, 등짐꾼도, 길거리 담배장수 아이도, 젖을 물리는 어머니도, 빨래터 어머니도, 한강 모래밭을 양산 쓰고 걷는 아가씨도,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면서 바로 나이고 우리 어버이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는 작가’가 찍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웃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고 문예기금을 받은 작가가 찾아가는 외딴 마을에서 만나는 시골사람이나 변두리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서 찍은 사진하고, 먼발치 변두리 사람을 구경하면서 찍은 사진은 참으로 다릅니다.






  서울에서도, 서울 아닌 도시에서도,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도, 우리 삶을 우리가 스스로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전문작가 손을 빌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어떤 사진기로든(손전화 사진기이든 디지털 사진기이든) 즐겁게 찍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에서 서울을 찍어도 되고, 대구에서 대구를 찍어도 되며, 대전에서 대전을 찍어도 됩니다. 아니, 저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 마을’하고 ‘내 이웃’하고 ‘내 보금자리’를 찍으면 됩니다. 서울을 찍기에 값있지 않고, 숲이나 시골을 찍기에 뜻있지 않습니다.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따스한 손길로 어깨동무할 적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을 기쁘게 붙일 이야기꽃’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문가나 예술가가 기록해 주어야 남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서 문득문득 한 장씩 찍을 적에 오래도록 이야깃감이 되는 사진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붙임글 (한영수문화재단 페이스북에 나온 자료에서 옮김)

 www.facebook.com/hanyoungsoofoundation)


“전쟁 후 나의 관심은 어떤 사람을 그의 주어진 환경에서 포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 후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조도 포탄의 연기가 가시지 않은 황폐함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보도성이 강한, 리얼리즘의 경향이 만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수입되었던 영화로 ‘길’ 이라던가 ‘지붕’ 같은 것이 기억되는데 전후의 삭막함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짙은 휴머니티를 다루었습니다.


  6·25를 겪고난 우리에게도 여러곳에 전쟁의 상처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포탄 껍질로 되어있는 굴뚝이라던가, G.I 의 맥주 깡통을 이어서 만든 지붕, 군복을 염색해 입은 찌들은 얼굴은 나의 초점 대상이었습니다. 사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 자체가 현상된 결과이고, 또 그 가시적 효과를 더 강조하기 위해 기술적인 처리를 연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미가 더 빨리 마음을 울린다는 일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녀가 아름다울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 나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진입니다. 자신의 경험, 인상, 꿈에 대한 통로를 영상을 통해 만들어 냅니다. 나는 이것을 개성 표현과 함께 시도해 보려고 어떤 기법이나 혹은 어떤 진귀한 순간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둔해서 얘기하는 도중이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표정이 굳어져 원하던 앵글을 놓치고 말지만 시장 바닥이나 청계천 군복 염색하는 곳에서 여념없이 일하는 사람들 속의 무심함을찍는 재미로 사진에 깊숙이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1978년 6월1일 통권 1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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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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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을 놓고 2011년에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2015년을 맞이해서 느낌글을 아주 새롭게 다시 쓴다.

왜 새롭게 다시 쓸까?

아름다운 사진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니까.


..


사랑·꿈으로 오래도록 품을 들인 ‘골목이웃’ 사진



 책이름 :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

 눈빛 펴냄, 2011.8.27. 29000원



  골목에 깃들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사람은, 골목으로 찾아와서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 빛살과 그림자를 어떻게 가누느냐에 따라 ‘내 눈에 비치는 골목 모습’뿐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에 그려지는 골목을 바라볼 다른 사람이 느낄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압니다. 조금만 빛살을 바꾸어도 골목동네가 맑으면서 밝게 보입니다. 조금만 빛살을 어둡게 하거나 그림자를 짙게 담으면 골목동네가 퀴퀴하거나 어둡게 보입니다.


  골목길을 끼는 골목동네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던 사람은, 골목동네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을 사랑스레 헤아리거나 어깨동무하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를 압니다. 무척 많은 사람들은 으레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로 사진기를 다룰 뿐입니다. 골목동네에서 사는 사람을 ‘이웃으로 느끼’면서 ‘우리 이웃’이 누리는 삶과 넋과 꿈에 함께 젖어들면서 어깨동무하려 하는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살면서 찍는 사진’하고 ‘구경하며 찍는 사진’은 다릅니다. 골목동네에 살면서 모든 빛과 어둠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누리는 몸으로 아침·낮·저녁·밤·새벽을 마주하는 사진이랑, 골목여행을 한다면서 어쩌다가 한 번 찾아와서 한두 시간 슥 훑고 지나가며 찍는 사진은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어릴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 (33쪽)



  1938년에 태어난 김기찬 님은 2005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을 모두 여섯 권 내놓았고,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하나씩 내놓았습니다. 《골목안 풍경》은 이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골목동네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풍경)’을 담아서 나누는 사진이면서 이야기이고 사랑입니다. 2011년 8월에 새롭게 나온 두툼한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은 골목동네에서 사랑과 이야기를 찾아서 ‘골목사람을 이웃으로 여기며 어깨동무를 하려던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그러모은 사진책입니다.


  아름다이 아로새긴 옛이야기입니다. 아름답게 갈무리한 옛노래입니다. 아름다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옛사랑입니다. 그런데, 옛이야기는 그저 옛날 옛적에 머물지 않습니다. 작은 사진기를 손에 쥐고 골목동네를 하루 내내 거니는 사람은 ‘이녁이 어릴 적에 본 모습(풍경)’이 ‘오늘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흐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람은 다르지만 삶은 같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랑은 같습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은 다르지만, 이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일하거나 노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꽃은 한결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체취를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마드리드의 뒷골목이나 멕시코 외곽에 오래된 도읍의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홍미진진한 이색 풍물이 그 나라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김형국/234쪽)



  사람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사랑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두 장 찍습니다. 살내음을 맡으면서 사진을 석 장 찍습니다. 어느덧 필름 한 통을 다 씁니다. 새 필름을 넣어 감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을 찍는 ‘늙수그레한 어른’은 어릴 적에 마냥 골목을 뛰놀면서 놀았습니다. 어릴 적에 ‘내가 놀던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어서 남겨야지!’ 하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1940∼50년대에 ‘골목아이’로 뛰놀던 아이 가운데 ‘내가 오늘 이곳에서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생각한 아이가 있을까요? 아마 사진기라는 기계조차 모르기 일쑤였을 테지요.


  그런데, 1940∼50년대에 골목아이로서 골목길을 뛰놀던 아이는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습니다. 사진기는 없으나, 손가락으로 찰칵 하고 찍습니다. 필름도 뭣도 없지만, 온몸과 온마음에 ‘골목에서 놀던 이야기’를 깊디깊이 아로새깁니다.


  이제 ‘골목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골목아이는 한손에 작은 사진기를 하나 쥡니다. 옛생각에 잠겨 골목길을 걷다가 ‘어쩜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모습하고 이리도 똑같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음하고 눈물이 함께 흐릅니다. 웃으면서 사진을 찍다가 울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늘 골목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일하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영정 속에서 볼 수 있었다. (385쪽)



  아름다이 아로새긴 옛이야기란 바로 ‘풍경’입니다. 김기찬 님은 이녁 어린 날을 아름답게 돌아보면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누군가한테 보여준다거나 전시회를 연다거나 기록을 한다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웃는 사진이요, 스스로 기쁘게 눈물에 젖는 사진입니다. 어제 살던 아이가 누리던 이야기를 오늘 사는 아이가 누립니다. 앞으로 모레나 글피가 되면, 이 골목은 재개발 때문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현대 도시문명이 널리 퍼지면서 ‘골목삶(골목 문화)’은 뿌리뽑힐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골목 안쪽까지 파고들면서, 골목길에 놓던 평상이나 돗자리는 밀려날 수 있습니다.


  골목사람은 늘 오늘을 삽니다. 이튿날 철거가 되어 쫓겨나야 하더라도 텃밭을 가꿉니다. 골목집 한 채가 헐려서 사라지면,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돌을 고르고 흙을 북돋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남새 씨앗도 심고 나무 씨앗도 심습니다. 언제 재개발이 될는 지 모르지만 나무를 키워서 열매까지 얻습니다. 골목동네마다 스무 해나 서른 해가 넘는 감나무가 꼭 있습니다. 마흔 해를 묵은 오동나무나 쉰 해를 묵은 호두나무가 있기도 해요.


  그리 넓지 않은 골목인데, 아니 퍽 좁다고 할 만한 골목인데, 시멘트로 깔린 골목길 한쪽을 쪼아서 조그맣고 길다란 텃밭을 마련합니다. 시멘트 바닥을 쫄 수 없으면 스티로폼 상자나 빈 통을 그러모아서 꽃그릇으로 삼습니다. 작은 꽃그릇에서 고추꽃이 피고 부추꽃이 핍니다. 작은 꽃그릇에 상추씨를 심어서 틈틈이 상추잎을 얻은 뒤에는 상추꽃을 보고 상추씨를 새로 얻어서 이듬해에 다시 상추씨를 심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따뜻해야 사진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뿜는다. 비평적인 사람의 사진에서는 날카롭게 번득이는 사진에서 차가움이 먼저 느껴진다. 일부러 따뜻한 채, 날카로운 채 위장하려 해도 되지 않는 게 사진이다. 단순히 기계로 찍어 내기만 하는 것 같은 사진이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정식/5쪽)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 전집》에 나오는 사람들이 웃습니다. 아이도 웃고 어른도 웃습니다. 아기도 웃고 할매랑 할배도 웃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낯선 사진쟁이 앞’에서 웃음을 터뜨릴까요? 바로 김기찬 님은 이들 골목사람을 ‘피사체’나 ‘구경할 만한 모습’이 아니라 ‘이웃’이고 ‘동무’이며 ‘어여쁜 우리 아이’로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웃으로서 사진기를 손에 쥐었으니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다가, 한참 동안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동무로서 사진기를 손에 들었으니 활짝활짝 웃으면서 놀다가 문득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이웃’인 골목사람을 담벼락에 붙여놓고 증명사진 찍듯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골목이웃이 골목에서 일구는 ‘골목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한 장 찍습니다. 골목삶이 드러날 수 있는 빛살하고 그림자를 살핍니다. 골목노래를 부를 만한 이야기로구나 하고 느낄 적에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골고루 살펴서 ‘작은 골목동네에 무지개가 드리우는’ 사진을 빚습니다.


  칼라사진이라서 무지개빛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칼라필름으로 찍더라도 ‘너와 내가 이웃이 아닌 채’ 찍으면 시커먼 그늘이 지기 마련입니다. 흑백필름으로 찍더라도 ‘나와 너는 늘 살가운 이웃’으로 서면서 찍으면 맑으면서 밝은 해님이 방긋 고개를 내밀기 마련입니다.


  김기찬 님은 오래도록 다리품을 팔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니, 다리품을 판다기보다 오래도록 골목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다가 문득문득 넌지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웃으로 지내기’에 자주 찾아와서 인사를 여쭙니다. 이웃으로 지내니까 꾸준히 찾아와서 말을 섞고, ‘기념사진’을 찍어서 골목이웃한테 나누어 줍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내 나이도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90쪽)



  호젓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에서나 골목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꽃은 ‘빈 식용유 통’이나 ‘빈 스트로폼 상자’에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골목꽃은 꽃그릇이 아닌 길바닥이나 담벼락에 뿌리를 내려서 피어날 수 있습니다.


  한갓진 골목동네에서 골목이웃을 만나러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디에서나 골목나무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골목동네에서 마주한 골목나무를 꼽아 보자면, 감나무, 배나무, 능금나무, 포도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오동나무, 탱자나무, 모과나무, 매화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배롱나무, 수수꽃다리, 무화과나무 …… 들입니다. 수세미 넝쿨이 전봇대나 전깃줄을 타고 오르다가 큼지막한 열매를 맺는 모습도 쉽게 봅니다. 굵고 큰 호박알이 담벼락이나 지붕을 올라탄 모습도 어렵잖이 봅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열매를 나눕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골목이웃은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꿈과 노래와 웃음을 나눕니다.


  나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내 어릴 적 동무는 모두 골목동무이고, 나도 내 동무한테는 골목동무이면서 서로 골목이웃입니다. 그런데, 이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사진기를 손에 쥐고 찾아오는 사람’을 보면 으레 공무원이나 작가인데,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하루 빨리 이 골목동네를 밀어내어 아파트를 높이 세우는 정책에 자료로 쓸 사진’을 찍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가난한 옛날을 추억처럼 되새기는 아련한 흑백필름 영화 같은 모습으로 보여질 만한 구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동네에서 골목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골목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공무원이나 작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치듯이 구경하면서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는 눈매하고, 한동네 이웃으로서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는 눈빛은 사뭇 다릅니다. 어쩌다가 한 번 사진여행이나 출사를 와서 사진을 찍는 손매하고, 한동네 사람으로서 즐겁게 뿌리를 내리며 사진을 찍는 손길은 매우 다릅니다.


  한 달을 살며 한 달 동안 마주한 기쁨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한 해를 살며 한 해 동안 겪은 즐거움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한 삶을 오롯이 가꾸며 한 삶에 걸쳐 빚은 모든 꿈과 노래와 웃음을 사진으로 아로새깁니다.




이 집을 계단집이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오른쪽에 앉아 이가 아프신지 인상을 쓰고 계신 분이 왕초 할머니시다. 이곳에 모이는 분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아 왕초 언니라고도 했다 … 11년 후, 그동안 왕초 할머니와 나는 많이 친해졌다. 왕초 할머니가 사진 촬영하는 나를 놀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550쪽)



  열 살 어린이는 골목에서 신나게 뛰놉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골목에서 벗어나 다른 삶터를 꿈꿉니다. 서른 살과 마흔 살을 거치면서 다른 고장에서 바지런히 일하다가, 쉰 살 언저리가 되면서 골목을 새삼스레 다시 봅니다. 예순 살을 지나면서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기록도 추억도 되새김도 정취도 아닌’ 줄 시나브로 또렷하게 알아차립니다. 골목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란, 어른으로서 누리는 ‘골목놀이’입니다. 삶이 태어나는 자리를 사랑하는 눈길로, 삶을 가꾸는 보금자리를 어루만지는 손길로, 골목동네 이야기를 사진으로 영글어 놓습니다.


  김기찬 님이 찍은 사진이 좋아 보여서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언뜻 스치듯이 찍거나 한두 번 찍고 그친다면, ‘김기찬 님이 골목동네를 마음으로 끌어안으면서 보여준 숨결’을 사진으로 되살리지 못해요. 《골목안 풍경 전집》에 흐르는 사진은 ‘그저 풍경’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골목안 노래 풍경”이고 “골목안 사랑 풍경”이며 “골목안 놀이 풍경”에다가 “골목안 이야기 풍경”입니다. 노래와 사랑과 놀이와 이야기는 구경꾼 눈길로는 담아낼 수 없습니다. 모든 골목집에 햇볕이 손바닥만큼 골고루 비추듯이, 모든 골목동네 사람들을 살가운 이웃으로 느끼는 가슴이 되면서 찬찬히 다가서려는, 그러니까 ‘골목을 내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는’ 발걸음과 손짓이 될 적에 비로소 “골목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찍지 않는 사진이라면, 골목동네를 빨리 허물어서 높은 아파트로 바꾸는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일부러 퀴퀴하고 어둡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 개발업자 사진질하고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이웃이기에 빙그레 웃는 낯빛이 곱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꽃밭하고 텃밭으로 일구는 이웃이기에 꽃내음을 함께 맡으면서 정갈한 바람을 마십니다.


  골목꽃이 사진꽃으로 거듭납니다. 골목노래가 사진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골목빛이 사진빛을 새롭게 북돋웁니다. 골목삶을 사진삶으로 맞아들여서 이 지구별에 따스하고 넉넉한 바람 한 줄기를 일으킵니다. 오랜 나날 품을 들였기에 내놓을 수 있는 《골목안 풍경 전집》입니다. 사랑하고 꿈으로 오래도록 품을 들인 ‘골목이웃’ 사진이 《골목안 풍경 전집》에서 그치지 않고, 이 나라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눈빛과 손길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앞으로도 조촐히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빕니다.


  그러고 보니, ‘골목’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골목길’에 이은 ‘골목집·골목사람·골목꽃·골목나무·골목동네·골목이웃·골목아이·골목삶’ 같은 낱말을 하나씩 새로 짓습니다. 이런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을 텐데, 사전에 없는 말이어도 즐겁게 쓰고 싶습니다. 골목을 사랑스레 바라본다면 ‘골목밭·골목놀이·골목살림·골목사랑’ 같은 낱말도 새삼스레 지을 수 있겠지요.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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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이야기 - 하늘과 맞닿은 화원에서 펼쳐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진 동화집 4
신응섭 글.사진 / 여우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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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7



솔숲바람 먹는 예쁜 이웃, 송이버섯

― 송이버섯 이야기

 신응섭 글·사진

 여우별 펴냄, 2012.9.20.



  그늘진 곳이라고 해서 버섯이 꼭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늘이 지면서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면 버섯이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곤 합니다. 도시에서는 우리가 먹을 만한 버섯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시 한복판에는 아스팔트와 자동차와 건물이 가득하니까, 여느 풀포기를 찾아보기도 어려워요. 게다가 도시에서는 땅값이 비싸다고 하니까 나무가 우거진 자리를 좀처럼 마련하지 않고요.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에서 지낸다면, 숲에 깃들어 버섯을 찾아볼 만합니다. 숲에서 숲나물을 캐면서 버섯을 함께 딸 수 있습니다. 버섯은 아무 곳에서나 돋지 않으나, 버섯이 한 번 돋은 곳이라면 ‘버섯씨’도 틀림없이 그 둘레에 퍼졌을 테니, 앞으로도 버섯을 찾아볼 만합니다.



태백산의 높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릅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지만 숲은 생명들의 소리없는 움직임으로 가득합니다. (15쪽)




  신응섭 님이 사진으로 빚은 이야기책인 《송이버섯 이야기》(여우별,2012)를 읽습니다. 신응섭 님은 여러 가지 버섯 가운데 소나무 둘레에서 잘 자라는 송이버섯을 오랫동안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송이버섯을 따려고 찾아다녔을까요? 송이버섯을 찾아서 즐겁게 딸 수도 있을 텐데, 이보다는 송이버섯이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이야기를 어린이하고 나누고 싶어서 ‘어린이가 함께 보는 이야기 사진책’을 엮습니다. 소나무와 함께 송이버섯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이 나라 어린이가 기쁘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진책 한 권을 내놓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요즈음 어린이는 버섯을 숲에서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버섯 모습으로 그리는 만화나 그림은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가게에 가면 팩에 담기거나 랩에 싸인 버섯을 손쉽게 살 수 있습니다만, 요즈음 어린이는 숲바람을 쐬고 숲내음을 맡으면서 ‘숲이웃’ 가운데 하나인 버섯을 마주하기가 몹시 어려워요.



어디선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후두둑후두둑! (40쪽)





  《송이버섯 이야기》는 송이버섯이 이제 막 땅에서 돋는 모습부터 보여줍니다. 아니, 송이버섯이 잘 자라는 두멧자락하고 숲을 먼저 보여줍니다. 숲이 있어야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어야 버섯이 있습니다. 숲이랑 나무랑 버섯이 있는 곳에는 다른 숲이웃이 함께 있습니다. 크고작은 숲짐승이 숲에 살지요.


  송이버섯은 숲에서 돋는 버섯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도 송이버섯을 먹고, 숲짐승도 송이버섯을 먹습니다. 사람이나 숲짐승이 송이버섯을 먹지 않으면, 송이버섯은 천천히 갓을 벌리면서 씨앗을 흩뿌리고는, 다시금 천천히 숨이 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솔숲에 송이버섯이 널리 퍼지려면, ‘아무도 안 따먹은 송이버섯’이 있어야 해요. 꽃이 피고 씨앗을 흩뿌리는 송이버섯이 있으니 차츰차츰 송이버섯이 퍼질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숲에서 버섯을 따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버섯을 훑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모든 버섯을 다 따지 않아요. 앞으로 씨앗이 두루 퍼져서 이듬해에도 즐겁게 버섯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알맞게 ‘남겨’ 놓습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도 새끼 고기까지 모조리 훑지 않아요. 새끼 고기가 남아야 나중에 다시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송이버섯의 갓이 활짝 꽃피었습니다. 화려한 불꽃인 양, 머나먼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선인 양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소나무의 잔뿌리에서 자라나 온 세상에 향기를 흩뿌리고, 자신은 기꺼이 소나무의 영양분이 됩니다. (54쪽)




  《송이버섯 이야기》를 살며시 덮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집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골짜기로 나들이를 갑니다. 골짝물에 몸을 담그면서 더위를 식힙니다. 자전거로 골짜기를 오르내리면서, 또 자전거를 숲 어귀에 세워 놓고 두 다리로 골짝물까지 걸어가면서, 둘레에 버섯이 돋았나 하고 살핍니다.


  때로는 큰갓버섯을 만나고, 때로는 달걀버섯을 만납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버섯을 만나기도 합니다. 잘 자란 버섯을 즐겁게 따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어린 버섯은 더 자라기를 바라면서 지켜봅니다. 지난해에 만난 버섯을 올해에도 만나기를 바라고, 올해에 만나는 버섯을 이듬해에도 만나기를 바라요.


  숲이 파헤쳐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숲이 숲 그대로 고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짙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기를 바랍니다. 시골마을 작은 숲이 토목공사나 4대강 지류사업 따위로 망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시골마을 시골사람 누구나 조그마한 시골 숲자락을 아끼고 돌보면서 오래오래 이 짙푸른 아름다움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꽃이 피고, 버섯이 퍼지고, 숲짐승이 뛰놀며, 멧새가 노래하는 숲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숲을 곁에 두면서 삶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음과 몸을 씩씩하고 튼튼하게 가꿉니다. 4348.7.1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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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5.7 - Vol.20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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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09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다

― 사진잡지 《포토닷》 20호

 포토닷 펴냄, 2015.7.1.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쌀알을 끓여서 밥을 짓기도 하고, 밀을 반죽해서 빵을 굽기도 합니다. 고기를 장만해서 익히기도 하며, 풀을 뜯어서 나물로 무치기도 합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받아들여도 언제나 밥입니다. 즐겁게 맞이하는 밥 한 그릇이요, 기쁘게 나누는 밥 한 끼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먹으면서 생각합니다. 밥맛이 좋으려면, 밥을 짓는 사람 마음이 좋아야 합니다. 좋지 않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이 고스란히 밥에 깃듭니다. 좋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도 고스란히 밥에 깃들어요. 그러니,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맛난 밥도 짓고 안 맛난 밥도 지어요.



나는 도시와 같은 어떤 공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찰하는 게 좋았다. (19쪽/김영경)


사진 중에 노란 자전거를 탄 할머니가 지나가는 배경의 낡고 허물어진 집들은 술을 제조하던 양조장이다. 그런데 지난달에 갔을 때 그곳에 포크레인이 있었다. 이처럼 지정된 보존 가옥 외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27쪽/최철민)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기라는 기계’보다도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장비를 갖추었어도, 마음이 좋지 못하다면,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즐거울 적에 사진이 즐겁고, 마음이 고울 적에 사진이 고우며, 마음이 사랑스러울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0호(2015.7.)를 읽습니다. 《포토닷》 20호는 ‘2015년 최민식 사진상’을 특집 기사로 다룹니다. 올 2015년에는 ‘최민식 사진상’을 최광호 님이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 한길을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나누는 사진상인 만큼, 이 상을 받은 분이나 이 상을 못 받은 분 누구나 기쁘게 사진길을 더욱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수많은 정치적 희생자들이 머물렀던 건물이나 장소를 촬영하는 것은 그곳에서 고통 받고 사라져 간 사람들 모두의 희생을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55쪽/다이애나 마타)


순천으로 내려와 시간이 많아졌다. 주변 환경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책도 천천히 읽고, 사진도 천천히 하게 됐다. 기다릴 줄 알게 된 것 같다. 지방은 나름대로 새로운 작업환경을 제공하는데 여건이 좋다고 생각한다. (79쪽/지성배)



  가만히 보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밥맛이 달라지고, 사진이 달라지는데, 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달라집니다. 아이들도 마음이 안 좋으면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좋은 마음일 때에 비로소 신나게 웃으면서 놀아요. 장난감이 아무리 많은들, 놀 틈을 아무리 넉넉히 내어준들, 아이들 스스로 좋은 마음으로 지내지 못한다면,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흐르지 않습니다. 웃지 않는 아이들은 놀지 않고, 놀지 않는 아이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노래하지 않는 아이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아이하고 어른은 좀 달라서, 어른은 마음이 안 좋아도 꾹 누르거나 참으면서 일을 합니다. 힘들어도 일을 하고, 지겨워도 일을 하며, 싫어도 일을 하지요. 그야말로 꿋꿋하게 일어서서 일을 하는 어른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이어도 이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을 하는 어른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으로 힘겨이 일할 적하고,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할 적에, 일하는 보람은 어느 쪽이 나을까요? 아주 마땅하게도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누리면서 활짝 웃겠지요.




내 사진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지만 내가 가진 생각은 글로 쓸 수밖에 없다. 사진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글까지 보면 좀더 많은 해석과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82쪽/최수연)


나는 내 생각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 표현에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다 … 사진은 아무리 상상해도 현실에 베이스를 두기 때문에 추상이 되지 않는다 … 나는 이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리스트를 표지로 하고 싶었다. ‘이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멋진 사진을 담았어요’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3, 96, 98쪽/사이이다)



  사진은 언제나 삶을 찍습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우리가 사는 하루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만지든, 처음부터 기계에 손을 보아서 ‘추상’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든, ‘추상’을 담으려고 하면 ‘추상이 아닌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삶이 있기에 추상을 나타낼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우리한테는 저마다 다른 삶이 있기에,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꿈을 그립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면,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고 싶은 삶입니다.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려는 삶은 어떠한 숨결로 흐를까요? 바로 사랑으로 흐릅니다.


  이리하여, 삶을 찍는 사진은, 늘 꿈을 찍는 사진이면서, 언제나 사랑을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삶이랑 꿈이랑 사랑을 스스로 기쁘게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이야기로 엮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크툼이니 아우라니 하는 말로 자기 사진의 예술성을 보증하려 한다. 그 속뜻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로댕은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한다.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풍크툼도 아우라도 아니라고. (111쪽/장정민)


이제 보도사진을 다루는 사람의 자격 요건에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글씨’를 잘 쓰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연관성이 없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설득력 있는 사진을 내보일 수 있는 표현력과 넘쳐나는 사진들 속에서 ‘보도될 만한 사진’을 솎아낼 수 있는 시각적, 윤리적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다. (115쪽/이기원)



  사진잡지 《포토닷》이 바라보는 곳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사진잡지 한 권이 나아가는 길은 ‘사람이 있는 길’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먼저 보고, 네가 함께 봅니다. 네가 찍은 사진을 네가 기쁘게 보면서 나도 기쁘게 함께 봅니다.


  전문 사진가이든 아마추어이든, 풋내기 사진가이든 아직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는 고요하면서 홀가분하고 따사로운 숨결이 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이제껏 사진을 찍은 햇수’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녔다거나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웠다’고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앞에 마주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나눌 밥을 짓습니다. 요리사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난 솜씨쟁이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짓는 밥입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현을생 님이 제주섬이나 제주 해녀나 절집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예술이나 정치나 교육 같은 것을 따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제주섬하고 제주 해녀하고 절집이 사랑스러워서 찍는 사진입니다. (125쪽/최종규)


늘 건강하시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2014년 2월의 일이었다. 사진을 한다는 딸로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드리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 다행히 아버지는 마치 내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시려는 듯이 기적처럼 깨어나셨지만 더는 일어서실 수가 없었다. (140쪽/조정숙)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차분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에 기쁜 웃음을 가득 실으면서 기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눈물젖은 사진을 찍습니다. 아프고 슬픈 삶을 되새김질을 하면서 아프고 슬픈 사진을 찍습니다.


  모든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삶을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진에는 저마다 새로운 숨결이 도사립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랑을 마음으로 품으면서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면 넉넉합니다. 멋진 사진을 찍기도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멋진 삶을 가꾸면 됩니다. 고운 사진이나 예쁜 사진을 찍으려면, 스스로 고운 삶이 되고 예쁜 사랑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스스로 웃음덩어리가 되어 웃음이 피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눈물바람이 되어 눈물이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고, 스스로 바람이 되어 바람처럼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4348.7.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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