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서울 - 1960~1980년대 한치규 사진집 2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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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9



신호등 없던 이쁜 서울을 그린다

― 변모하는 서울

 한치규 사진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직업군인이던 한치규 님은 군부대에 머물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치규 님은 직업군인이면서 사진을 무척 좋아했어요. 사병이 아닌 장교였던 터라 군부대에서도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군부대 언저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군부대에서 휴가를 받아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서울 시내를 사진으로 담고, 이녁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요. 이리하여 1960년대부터 한치규 님이 찍은 사진은 《한씨네 삼남매》라는 이름으로, 또 《분단 이후》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으로 태어납니다. 《변모하는 서울》(눈빛,2016)은 군부대와 집 사이를 오가는 길에 틈틈이 바라본 서울 시내를 아스라이 보여줍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은 1960년대를 지나고 1970년대를 가로질러 1980년대에 닿는 서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울 시내에 꾸준히 있으면서 지켜본 서울은 아닙니다. 군부대와 서울 사이를 가끔 오가는 길에 살펴본 서울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늘 서울에 머물거나 있던 사람은 ‘서울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미처 못 느낄 수 있어요. 때로는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더라도 미처 사진으로 못 담을 수 있습니다.


  한치규 님은 군인이라는 몸으로 군부대하고 서울을 오가는 길이었기에 ‘서울이 달라지는구나’를 여느 서울사람보다 살갗으로 알아챕니다. 그리고 짧은 휴가 동안 사진으로 찍어야 하니 ‘이렇게 바뀌는 흐름을 바지런히 찍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작 1960∼70년대인데, 이무렵 서울 시내를 보면 신호등이 잘 안 보입니다. 꽤 넓은 길인데 자동차하고 사람이 알맞게 섞입니다. 아직 전차가 다니는 모습도 사진으로 엿볼 만합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을 보다가 문득 이 대목을 눈여겨보아야겠다고 느낍니다. 한국도 196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때로는 1970년대로 접어든 뒤에도, 서울 시내에 ‘신호등·건널목’이 없던 곳이 많았구나 싶어요. 오늘날 2010년대에는 서울 시내 어디에나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습니다만,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아도 교통사고가 잦아요. 지난날이라고 해서 교통사고가 드물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만, 길이 ‘오직 찻길’이 아니라 ‘사람하고 차가 섞일 수 있는 길’이라면 사뭇 다르리라 느껴요.


  사람하고 차가 길에 함께 있다면 차는 아무래도 빠르기를 줄여야 해요. 함부로 빨리 달려서는 안 되지요. 사람하고 차가 함께 있기에 차는 한결 느긋할 만합니다. 너른 길을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건널 수 있기에 시내는 아주 많이 시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 많은 길하고 차 없는 길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을 뿐이라 하지만, 차 없는 길은 대단히 조용합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나 가을에는 서울 시내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차 많은 길에서는 풀벌레 노랫소리는커녕 사람 말소리도 알아듣기 어렵지요. 자동차가 한 대만 지나가더라도 ‘걷는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예요.


  서울 광화문 앞에 모이고, 경복궁 앞에 모이며,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이 우렁차게 내는 소리가 서울을 오랫동안 뒤덮었습니다. 작은 사람들이 드넓은 찻길을 차지하면서 손에 쥔 촛불 한 자루로 어둠을 환하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길이란 자동차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길에는 사람이 지나갑니다. 우리가 걷고, 우리가 가게를 내고,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고, 우리가 마을을 가꾸고, 우리가 삶을 짓는 길 한켠입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에서는 대단히 꿈틀거리거나 용솟음치는 그런 서울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에 깃든 조용하며 아늑하고 따사로운 서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와 드넓은 찻길을 뽐내는 서울이 아니라,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이 짓는 살림으로 이쁘장한 서울을 돌아볼 수 있어요.


  이 나라 서울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골골샅샅 모든 고장과 마을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우지끈 뚝딱 허물거나 세우는 도시나 시골이 아닌, 따뜻한 사람들이 따뜻한 손길로 차근차근 일구어 빛내는 어여쁜 마을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보퉁이를 인, 아기를 업은, 가벼운 고무신 차림으로 걷는 아지매 손이 이 나라를 튼튼히 살찌웠습니다. 2017.3.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셔서 고맙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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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녜 - 김흥구 사진집
김흥구 지음 / 아카이브류가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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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8



제주에서 좀녜를 마주한 열네 해

― 좀녜

 김흥구 사진

 아카이브류가헌 펴냄, 2016.11.30. 4만 원



  사진책 《좀녜》(아카이브류가헌,2016)를 보면, 사진가 김흥구 님이 풋풋한 젊은이였던 무렵(2003년) 문득 사진으로 담은 좀녜 이야기를 그 뒤 열 몇 해가 흐른 오늘에도 꾸준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자국이 고이 흐릅니다.


  한때 눈여겨보고 사진으로 신나게 아로새긴 좀녜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녜를 보고, 어머니를 보고, 가시내를 보고, 아버지를 봅니다. 이러면서 어느덧 김홍구 님 스스로를 본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이윽고 섬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섬과 섬 사이에서 물질을 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김홍구 님 스스로 섬과 섬 사이에서 사진질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진책 《좀녜》에는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처럼 ‘좀녜’만 나옵니다. 그런데 좀녜인 분들은 바다에서 물질만 하지 않아요. 물질을 하러 바닷가로 걸어가요. 물질을 해서 딴 바닷것을 짊어지고 나와요. 불을 피워 몸을 말려요. 함께 물질을 하는 이웃 좀녜하고 이야기꽃을 피워요. 물질 말고도 밭일을 하지요. 집안일을 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아요. 살림을 꾸리며 아이를 가르쳐요. 학교라는 곳이 서기 앞서까지 좀녜인 분들 누구나 ‘일꾼’이면서 어머니요 아버지이자 살림꾼이자 ‘교사(아이를 가르치는 이)’로서 이 땅에 튼튼히 선 숨결이에요.


  바다에서 물옷 ‘소중이’를 입을 적에는 좀녜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볼 적에는 어머니예요. 살림을 꾸리며 집안을 이끌 적에는 아버지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씨앗 심어 밭을 일구는 손길을 물려줄 적에는 교사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얻지 않더라도, 좀녜는 좀녜로서 살갑고 사랑스러우며 씩씩한 숨결로 늘 제주섬 한켠에서 마을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지은 분들 삶에 붙은 이름이라고 느낍니다. 김흥구 님이 빚은 사진책은 좀녜를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며 여자와 아버지와 김흥구 님 스스로를 만나는 동안 한 올 두 올 피어난 이야기일 테고요.



해녀가 있다. 

매일 볼 때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 혹은 일 년에 한두 번 볼 때도 있다.

있다, 있는 것은 온통 해녀뿐인데

어떤 날은 어머니였다가, 여자였다가, 때로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늘 섬과 섬 사이에 있었다. (17쪽)



  마을에서 할매가 호미를 손에 쥐고 나물을 캡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호미질을 했고, 나물을 캤습니다. 이 나물은 온식구한테 밥이 됩니다. 때로는 저잣거리로 들고 나가서 팔아요.

  마을에서 할배가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합니다. 할배는 먼먼 옛날부터 나무를 했어요. 땔감을 마련해서 집에 쟁였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는 살뜰히 건사하면서 먼 뒷날 아이들이 집을 새로 지을 적에 쓰도록 남겼습니다.


  마을에서 할매가 물질을 하며 바닷것을 땁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물질을 했고, 바닷것을 땄습니다. 처음에는 식구들이 먹을 바닷것이었고, 마을에서 나눌 바닷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나라에서 바닷것을 바치라고 했어요.


  마을에서 할배가 먼먼 옛날부터 하는 일을 헤아려 보면,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며 새끼를 꼬았습니다. 바구니를 삼고 그릇을 엮었어요. 이러다가 나라가 생기고 임금이 서면서, 할배 같은 사내는 젊을 적에 군역을 진다든지 성벽을 쌓는다든지 하는 자리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할매가 걸어온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할배가 살아온 날에는 무엇이 흐를까요. 예부터 할매랑 할배는 온몸으로 온살림을 짓는 데에 온힘을 기울였어요. 이러면서 온마음으로 이야기를 지어 아이들한테 들려주었어요. 할매나 할배는 먼 옛날부터 ‘슬기로운 사람’ 자리에 있었어요. 젊은이나 어린이는 할매나 할배한테서 슬기를 물려받고 사랑을 이어받으면서 이녁을 고이 섬기는 삶이었어요.


  사진책 《좀녜》를 읽으면서 할매랑 할배가 이 땅에 남긴 자국을 헤아립니다. 제주에서 ‘좀녜(해녀)’로 일을 한 할매들 자국은 역사책에 몇 줄 안 나옵니다. 이른바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에는 임금님 이야기만 잔뜩 있어요. 따로 좀녜 이야기를 갈무리한 역사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인문지리학에서도 좀녜를 찬찬히 살피거나 파고든 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지요. 요즈음 들어서야 조금 있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은 김흥구 님은 앞으로도 낮은 걸음으로 제주 좀녜를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스물을 갓 넘긴 때에 바라본 좀녜하고, 서른을 지나며 바라보는 좀녜는 다를 테고, 마흔을 지나고 쉰을 지나며 바라볼 좀녜는 또 다르면서 새로운 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윽고 김흥구 님이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 좀녜를 꾸준히 찍는 사진길이 된다면, 그때에는 사진으로 빚고 이루는 남다르면서 새로운 실마리를 살며시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함께 늙고 함께 삽니다. 함께 나이가 들고 함께 슬기를 얻습니다. 함께 무르익고 함께 자랍니다. 바닷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일렁이는 곳에서 고요히 물속에 잠겼다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물밖으로 나와서 살림을 이루는 손길을 사진마다 따사로이 마주합니다.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류가헌갤러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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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다, 보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지음 / 아카이브류가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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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7



나뭇가지에 걸린 빨간 넥타이가 일깨운 사진

― 놓다, 보다

 김지연 글·사진

 아카이브류가헌 펴냄, 2016.10.31. 22000원



  사진을 찍는 김지연 님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리기도 했고,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리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나날을 ‘사진 + 마을’로 이야기를 엮으면서 살림을 노래한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마을을 담고, 마을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으며, 이 마을 이야기를 차근차근 사진전시나 사진책으로 일구는 길을 걷는데,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빈 방’에서 보았다고 해요.


  사람들한테서 잊혀진, 그러니까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은 ‘빈 방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던 어느 날이었다는데, ‘빈 방에서 아주 조용히 목숨을 끊었’으나 둘레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던, 그런 죽음을 마주한 적이 있다지요. 그런데 이에 앞서 숲길에서 ‘빨간 넥타이’를 보았대요.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걸린 빨간 넥타이는 무엇을 말했을까요? 어떤 분이 넥타이를 숲길 나뭇가지에 걸었을까요? 넥타이를 숲길 나뭇가지에 묶으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빨강 넥타이] 이른 아침 숲길 나뭇가지에 걸린 빨강 넥타이 하나가 이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얼마 전에 빈 집 촬영하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니 실제로는 이 넥타이 풍경이 먼저였다. (12쪽)



  사진책 《놓다, 보다》(아카이브류가헌,2016)는 죽음하고 삶이 맞물린 자리를 곰곰이 돌아보는 손길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누군가 스치며 지나간 자리를 되새깁니다. 오늘 그 자리에 서는 사진가 모습을 돌아봅니다. 앞으로 그 자리로 스치고 지나가거나 가만히 찾아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요.



[새장] 나는 자유가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래 놓고 적당히 안주하기를 바란다. 한 쪽 다리가 장애인 새 한 쌍.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새를 나무에 걸어 놓는다. (14쪽)



  새장이란 어디일까요. 새장 안이 갇힌 곳일는지요, 아니면 새장 밖이 갇힌 곳일는지요. 우리는 새장 밖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텐데, 참말 이 나라나 사회는 자유로울는지 물을 만합니다.


  이 사회에는 우리 눈에만 안 보일 뿐인 쇠그물이 촘촘하게 선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쳐진 ‘블랙리스트’에 매일 수 있어요.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걸릴 수 있어요. 거꾸로 이웃이나 동무를 내 마음속에서 금을 긋거나 고개를 돌리면서 넌지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모시 적삼] 어머니는 내게 작은 모시 적삼을 만들어 주었다.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냐고 하니 네가 작기 때문이라고 했다. (18쪽)



  사진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참으로 작을는지 몰라요. 그저 찍고 그저 남기고 그저 보여줄 뿐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진 한 장으로 찍은 모습에 깃드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흐를 수 있어요. 어느 날 일어난 일을 놓고서 다시금 새기고 거듭 되뇌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달랠 수 있습니다.


  모시 적삼 한 벌에서 이야기가 번집니다. 찔레꽃 한 송이에서 이야기가 자랍니다. 걸상 하나에서 이야기가 솟습니다. 흔해서 지나치던 것이지만 사진으로 다시 바라보면서 예전에 지나친 모습을 깨닫습니다. 수수해서 안 들여다보던 것이지만 사진으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오늘 문득 한 가지를 배우기도 합니다.



[찔레꽃] 5월에 찔레꽃을 보면 장암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제남마을에 얼마 전 92세로 돌아가신 장암 할머니. ‘낡은 방’을 찍은 계기로 그 집에 자주 들어 다녔다. 산에서 찔레꽃을 꺾어 가시를 떼고 한 다발 손에 안겨 드리며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멋지게 포즈를 지었다. (46쪽)



  연필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을 수 있습니다. 연필이 있기에 글을 쓰고 싶을 수 있습니다. 몽당연필인지 새 연필인지 살피면서 몽당연필일 적에는 이 연필을 쥐고 적바림한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떠올릴 수 있어요. 새 연필을 보면서 앞으로 새롭게 그릴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어요. 아이가 쥔 연필하고 할아버지가 쥔 연필 사이에 다르게 흐르는 숨결을 살필 수 있어요. 시험을 치르는 곳에서 사각이는 연필 소리랑, 그리운 이한테 편지를 쓰는 자리에서 서걱이는 연필 소리를 나란히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닳은 호미 한 자루에서 살림새를 읽을 수 있어요. 닳은 호미 한 자루 옆에 놓은 새 호미 한 자루에서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어요. 임자를 잃고 먼지를 먹는 호미 한 자루를 바라보면서 지난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어요.


  놓인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놓다’하고 ‘보다’가 맞물리면서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사진책 《놓다, 보다》는 두 몸짓이 어우러지는 곳을 사진으로 잇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두 개의 의자] 왜 의자를 보면 앉고 싶을까? 몸을 내려놓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64쪽)



  나뭇가지에 걸린 빨간 넥타이가 일깨운 사진입니다. 나뭇가지에 빨간 넥타이를 건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새로 배우는 사진입니다. 나뭇가지에 앞으로 다른 넥타이가 걸릴는지, 이제 나뭇가지에 넥타이가 걸릴 일은 없을는지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되새기는 사진입니다.


  우리 삶은 앞으로도 나뭇가지에 넥타이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길을 걸을까요? 아니면 이제 나뭇가지를 보면 그네를 걸어 아이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길을 걸을까요?


  나뭇가지에 걸린 넥타이는 슬픔하고 아픔을 애틋하게 보여준다면, 나뭇가지에 거는 그네는 기쁨하고 웃음을 살뜰하게 보여줄 수 있겠지요. 사진 한 장에 앞서 우리 몸짓이 늘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1.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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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다정한 - 엄마와 고양이가 함께한 시간
정서윤 글.사진 / 안나푸르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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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46



‘우리 집 순돌이’가 된 길고양이

― 무심한 듯 다정한

 정서윤 글·사진

 안나푸르나 펴냄, 2016.5.27. 13800원



  부산에서 살며 일하는 정서윤 님은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납니다. 이 길고양이하고 다섯 달 즈음 만나면서 밥을 챙겨 주었다고 해요. 누군가 이 길고양이를 거두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정서윤 님 스스로 이 길고양이를 건사하자고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새끼 고양이 아닌 다 큰 고양이 한 마리는 정서윤 님한테 새로운 동생처럼 한식구가 됩니다.


  사진책 《무심한 듯 다정한》(안나푸르나,2016)은 길고양이를 한식구로 맞아들이고 나서 ‘집에 어떤 바람이 새롭게 불었나’ 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이끄는 이야기 주인공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정서윤 님이 아닙니다. 글쓴이를 낳은 어머니, 바로 ‘할머니’입니다.



솔직히 순돌이를 찍기 전에는 엄마의 모습을 애써 찍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순돌이와의 예정된 이별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면서, 정작 나이 든 엄마와의 이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7쪽)



  할머니한테 ‘다 큰 딸’은 집에 늦게 들어옵니다.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남편)은 집에서 거의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몹시 조용한 집인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새롭게 찾아들면서 집안 바람이 바뀝니다. 길고양이는 ‘순돌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제 순돌이는 조용하던 집이 덜 조용하도록 북돋웁니다. 말을 나눌 살붙이가 거의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한테 말동무가 되어 줍니다. ‘우리 집 순돌이’가 되었어요.



겨울철 순돌이를 따라다니면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 엄마는 따뜻한 곳만 잘도 골라 눕는 순돌이가 몹시 똑똑하다며 감탄하다가, 곁에 누워 토닥여 주며 ‘등 지지기 모드’에 돌입하셨다. (49쪽)


여름이면 삼베 이불을 즐겨 덮는 엄마는 순돌이 잠자리에도 풀 먹인 삼베 이불을 깔아 주셨다. (119쪽)



  《무심한 듯 다정한》을 빚은 정서윤 님은 처음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를 우리 한식구로 받아들이며 아끼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이러다가 이 마음이 ‘어머니(할머니)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로 차츰 달라졌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순돌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새 식구 순돌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어느새 ‘순돌이 사진’보다는 ‘순돌이하고 함께 있는 어머니’ 사진을 찍는 손길로 달라졌다고 해요.


  이러면서 어머니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껏 다른 사진은 제법 찍었으나 막상 ‘우리 어머니 사진’은 찍을 생각을 거의 해 보지 않았다고 해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온 숨결을 여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순돌이가 집안에 새로 깃들면서 글쓴이 삶에서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문득 깨달았다고 합니다.



집 안 곳곳 순돌이가 즐겨 머무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깔아 놓은 두툼한 수건잉 있다. 순돌이는 자기만의 지정석을 찾아가 야무진 식빵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본다. (135쪽)


순돌이가 가족이 된 후에 찍은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전에 입양 보내려던 고양이가 맞느냐며 다들 놀랐다. 편안한 생활 덕에 살이 올라 예쁘게 보인 점도 있겠지만, 극적인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사랑을 꼽고 싶다. (157쪽)



  《무심한 듯 다정한》에는 순돌이 한 마리만 나옵니다. 이때까지 정서윤 님은 나이든 어머니 아버지하고 한집에 살아요. 책을 내고 한 해가 지난 2017년, 정서윤 님은 혼인을 하면서 제금을 난다고 하는데, 함께 살아갈 짝꿍한테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오랜 한식구로 있다고 하는군요. 정서윤 님은 혼인을 하며 제금을 나더라도 주말부부로 지내야 하는 터라 순돌이도 꽃비도 어머니(할머니) 곁에 둘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마치 손자처럼 살뜰히 돌보며 아낀 순돌이를 떠나 보내기 힘들던 할머니(어머니)는 손자 하나가 더 생긴 셈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무심한 듯 다정한” 이야기는 새롭게 거듭나겠군요. 두 손자(순돌이·꽃비)하고 어우러지는 할머니 이야기가 태어날 테고, 어쩌면 할아버지 이야기도 살몃살몃 묻어날 수 있습니다. 얌전한 순돌이와 달리 개구진 꽃비라고 하니까, 집안에서 말수가 거의 없는 할아버지가 말문을 활짝 트는 모습이 되도록 이끌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작은 손길을 뻗어 길고양이 한 마리를 한식구로 받아들인 뒤, 살림살이가 시나브로 달라집니다. 길에서 흔히 보는 고양이가 아니라, 마음을 나눌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손길이었기에, 이 작은 손길에 따사로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구나 싶습니다. 모두 튼튼하고 즐겁게, 이러면서 넉넉하고 곱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꽃이 되기를 빕니다. 2017.1.16.달.ㅅㄴㄹ


순돌이하고 꽃비가 어우러진 사진을 만나려면 https://www.instagram.com/fly_yuna/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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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 - 전세계 최고 인기 커뮤니티, 셔터 시스터스가 공개하는 사진 비법
셔터 시스터스 지음, 윤영삼.김성순 옮김 / 이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사진책 읽기 345



빛나는 사진보다 수수한 사진이 아름다워

―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

 셔터 시스터스 엮음

 윤영삼·김성순 옮김

 이봄 펴냄, 2012.7.27. 2만 원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이야기하거나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어요. 예전에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무렵에는 기계나 필름을 다룬다든지 암실을 쓰는 길을 하나하나 배워야 비로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디지털로 사진을 널리 찍으면서 ‘기계를 잘 몰라’도 사진을 찍고, 필름이나 암실이 없어도 사진을 찍어요. 포토샵으로 사진을 만지기도 하지만, 포토샵은 하나도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습니다. 더욱이 사진기 아닌 손전화 기계 하나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고, 태블릿으로도 사진을 찍어요. 여기에 동영상까지 홀가분하게 찍을 수 있고요.



우리가 있는 곳,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풍경과 환경이 바뀐 훗날에도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13쪽)


나는 이 사진을 소중히 역긴다. 아주 힘든 시기의 내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 눈 아래 다크서클, 무기력한 시선, 거친 세파에 시달린 연약한 영혼. 쾡한 눈 뒤에 고인 눈물바다를 본다. (27쪽)



  셔터 시스터스가 엮은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이봄,2012)은 ‘사진을 좋아할 뿐 아니라, 사진을 제법 전문으로 찍는 여성’들이 저마다 어떤 사진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진이 넘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어느 모로 보면 누구나 손쉽고 즐겁게 사진을 누리거나 나눌 수 있는 오늘날 흐름에 발맞추어 ‘전문으로 사진을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 ‘사진 찍기를 어려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에 ‘조금 더 재미나고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사진을 즐기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짚으려 해요.



인물사진을 통해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사진 속 인물이 가진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생명력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29쪽)


빛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 빛을 좇아야 한다. 부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든, 겨울날 오후 해가 지면서 길게 늘어뜨린 마지막 햇살이든 말이다. 멋진 이야기는 눈부신 불꽃이나 섬광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조용하고 음산하고 졸리운 풍경도 독특한 후처리를 통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52쪽)



  사진은 빛을 담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빛그림’이라는 말을 지어서 쓰기도 해요. 빛으로 그리는 이야기요, 빛으로 그리는 마음이며, 빛으로 그리는 사랑이기에, ‘빛그림’이라는 말은 ‘사진’하고 참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사진은 “눈부신 빛”이나 “아름다운 빛”만 좇지 않습니다. 사진은 “슬픈 빛”이나 “어두운 빛”도 좇아요. 환한 빛뿐 아니라 흐린 빛도 좇고, 고운 빛뿐 아니라 투박한 빛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작품을 멋지게 뽐내려고 사진을 찍지 않아요.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짓는 삶을 즐겁게 한 장 남겨서 두고두고 오붓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기에 사진을 찍어요.



집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을 포착하고 싶다면, 정리를 한 다음에 사진을 찍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바닥이 더럽든 테이블 위가 어수선하든 우리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잡기 전에 먼저 청소를 하려고 뜸을 들이는 동안 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날악가버릴 것이다. (63쪽)


완벽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찍는다면 이런 사진 한두 장으로 나름 진솔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17쪽)



  셔터 시스터스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은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이라는 책에서 내내 이 대목을 짚습니다. ‘완벽한 작품’을 찍으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 이야기’를 찍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남 흉내를 내거나 이름난 전문가 꽁무니를 좇지 말자고 말합니다. 집안이 좀 어질러진들 대수롭지 않다고, 아이랑 함께 지내는 오늘 하루를 환한 웃음으로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 찍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좀 어질러진 집안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그 모습을 사진으로 돌아보면 꽤 재미난 옛이야기(추억)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즐겁게 찍을 사진이란 ‘잘 찍을 사진’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사진은 잘 찍기보다는 참말로 ‘즐겁게 찍으면’ 된다는 뜻이에요. 남한테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니라, 바로 내가 즐기는 사진이고, 바로 우리 식구나 동무나 이웃이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누리는 사진이라는 뜻이에요.


  이야기를 담기에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바라보기에 사진을 찍어요. 이야기를 주고받으려고 사진을 읽어요. 내 이야기는 너한테 스며들고, 네 이야기는 나한테 찾아들어요. ‘빛나는 사진’이 아니라 ‘수수한 사진’ 한 장으로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갈무리하고 사랑스럽게 남길 수 있습니다. 2016.12.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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