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 전경애 사진집
전경애 지음 / 열화당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34

 


넓은 들로 가고 싶어
― Thirsty land (광야)
 전경애 사진
 열화당 펴냄,2006.1.5./4만 원

 


  넓은 들로 가고 싶은 마음을 사진으로 찍으면 《Thirsty land (광야)》(열화당,2006)와 같은 사진책이 나오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넓은 들을 먼저 가슴으로 안고, 넓은 들에 서린 기운을 마음으로 가만히 느낀 뒤, 넓은 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곱다시 앉히면, 사진책 《Thirsty land (광야)》 하나 빚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넓은 들은 어디에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어느 곳에 넓은 들이 있다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멧골이 있고, 널찍하게 펼쳐지는 갯벌이 있으며, 아득하게 보이는 바다가 있어요. 꽤 넓다 할 만한 논밭이 길게 있는 데가 여러 곳 있다 하지만, 수십 수백 킬로미터 이어지는 들판은 이 나라에 없습니다.


  그런데 꼭 너른 들판이 있어야 할까 궁금해요. 너른 들판이 없기에 이 나라가 재미없거나 따분하다 여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수십 수백 킬로미터 해바라기밭이라거나 수수밭이라거나 밀밭이라 한다면, 사탕수수밭이요 무논이라 한다면, 이런 들판은 사람과 짐승한테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까 궁금해요. 숲 없이 들판만 있을 때에, 나무그늘 없이 들판만 이어질 때에, 못물이나 냇물 흐르지 않고 들판만 가득할 때에, 이와 같은 곳에 사람이나 짐승이 살아갈 만할까 궁금해요.


  너른들(광야)은 얼마나 넓어야 너른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만 평이나 십만 평쯤 되면 너른들이 될 수 없을까요. 백만 평쯤 되어도 너른들에 들기 어려울까요.

 

 


  몽골사람이나 티벳사람은 언제나 너른들을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에서도 조금만 도시 바깥으로 나가도 쉽게 너른들을 마주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런 여러 나라에서 만나거나 마주하는 너른들은 어떤 삶터일까요. 이와 같은 삶터는 사람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이야 멋지다’ 하고 손뼉칠 모습인가요. ‘우와 놀랍구나’ 하며 입을 벌릴 모습인가요. ‘허허 대단하구나’ 하면서 첫손가락 꼽을 모습인가요.


  사진책 《Thirsty land (광야)》 첫머리에는 랠프 깁슨 님이 머리말을 붙입니다. 랠프 깁슨 님은 전경애 님 사진을 놓고, “지형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대단히 개성적이고, 대단히 경험적이며, 대단히 진보적이다. 순수한 시각으로 사고하는 그녀에게는 고유한 예술가적 직관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이 사진들을 발견해서 기쁘다.” 하고 말합니다. ‘경험적’이거나 ‘진보적’이라는 말마디는 무엇을 가리킬까 어림해 봅니다. 땅과 사진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살피는 눈길이 ‘경험적’이라는 소리는 무슨 뜻일까 곱씹어 봅니다. 땅과 사진을 마주하는 눈썰미는 어떻게 ‘진보적’이거나 ‘안 진보적’일 수 있을까 되뇌어 봅니다.

 

 


  랠프 깁슨 님 머리말이 아니더라도, 전경애 님은 ‘맑은 눈길로 너른들을 마주하면서 가슴으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노래하듯 사진을 찍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 그래요. 전경애 님 스스로 사랑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삶자락을 사진 하나로 옮겨요. 전경애 님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고 싶어 너른들을 찾아갑니다. 너른들을 눈을 감고 바라봅니다. 너른들 냄새와 빛깔과 무늬와 소리와 결을 살결로 맞아들입니다. 사진은 그 다음입니다. 너른들을 한껏 즐기거나 누리거나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너른들을 섣불리 사진으로 찍으려 한들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낀 너른들이라 하면,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서 너른들 이야기가 몽실몽실 태어납니다.


  아이들과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서 모래밭 흙놀이를 하노라면, 아이들은 그리 안 넓은 모래밭이라 하더라도 하루 내내 신나게 놉니다. 해가 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백 평이나 천 평쯤 되는 조그마한 모래밭이라 하더라도 아이들로서는 백만 평 천만 평 되는 커다란 너른들인 셈입니다.


  어디에 찾아가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꼭 저기를 가야 한다거나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하기에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자리가 사진을 찍는 자리입니다. 마음이 사랑과 꿈으로 용솟음치도록 이끄는 자리가 사진을 누리는 자리입니다. 마음에 이야기씨앗 하나 내려앉아 이야기꽃잔치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사진을 빛내는 자리입니다.


  마을 밭뙈기에서도 너른들 이야기하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가까운 바닷가 이름없는 모래밭에서도 너른들 밝히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우리 집 마당에서도 너른들 보여주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조그마한 보금자리 조그마한 마룻바닥에서도 너른들 속삭이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랠프 깁슨 님은 “우리는 작은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땅과 물을 꿈꾼다. 전경애는 시각적 시인이며 그 가슴은 우주와 함께 박동한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말, 전경애 님은 시를 쓰듯 사진을 찍습니다. 아마, 사진을 찍듯 시를 쓸 수도 있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시를 쓰는 사람과 같고, 시를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시를 못 쓴다면 사진을 못 찍는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못 찍는다면 시를 못 쓰겠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시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시와 사진은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너른들에서 뒹굴고 싶은 꿈을 싯말 하나에 싣고, 사진 하나에 담습니다. 너른들 바라는 이야기를 싯노래로 옮기고, 사진 하나로 빚습니다. 너른들 사랑하는 마음자락을 춤사위처럼 싯사위로 펼치고, 노랫가락처럼 사진가락으로 드러냅니다.


  어디나 너른들입니다. 어디나 삶터입니다. 어디나 보금자리입니다. 어디나 이야기마당입니다. 스스로 갈 수 있으면 시를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갈 수 없으면 시를 못 쓰고 사진을 못 찍습니다. 전경애 님이 욥기를 노래하면서 이녁 사진을 보여주는 일이란, 전경애 님 삶이 이와 같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굳이 전경애 님 스스로 시 한 가락 새로 짓지 않아도 되리라 느낍니다. 다만, 지구별 온누리 너른들 굽어살피며 사랑하는 손길이라 한다면, 전경애 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싯말 하나 건져올려 살며시 노래한 다음, 사진춤 한 자락 뽑아올릴 수 있으면, 한결 멋스럽고 아름다우며 빛나는 사진그림 이루어지리라 느껴요. 파랑새는 몽골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어요. 나도 등에 아기를 업을 수 있고, 저 먼 나라 이웃도 등에 아기를 업을 수 있어요.


  넓은 들에 가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넓은 들을 바라지만 막상 넓은 들을 찾지 못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넓은 들에 찾아가서 사진을 찍습니다. 넓은 들을 바라보지만 가슴 한켠 넓게 열지 못하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4346.3.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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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8

 


따뜻하며 좋은 집
― 사이에서
 강태영 사진
 사월의눈 펴냄,2013.1.31./2만 원

 


  내가 먹는 밥은 내 숨결입니다. 봄나물 뜯어서 먹으면 봄나물이 내 숨결 되고, 라면 끓여서 먹으면 라면이 내 숨결 됩니다. 냇물을 떠서 마시면 냇물이 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가게에서 먹는샘물 사다 마시면 먹는샘물이 내 숨결로 거듭날 테고요.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는 사람은, 신문에 가득 실린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으며, 이녁 머릿속에는 사건과 사고 생각이 자꾸 맴돌며, 으레 이런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이웃과 동무랑 주고받습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본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면서, 이녁 머릿속에 마음속에는 씨앗하고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넘실거려, 이녁 이웃과 동무랑 이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비판은 늘 비판을 낳습니다. 비판을 하면서 어떤 정치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를 바꾸지 못합니다. 비판을 할 때에는 비판이 남고 새 비판이 자라며 다른 비판이 불거집니다.


  사랑은 늘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을 하면 정치이든 사회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헤아릴 뿐,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아요. 곧,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마음결로 정치를 가끔 헤아리면, 정치가 사랑스레 바뀝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문화를 더러 떠올리면, 문화가 사랑스레 달라져요.


  아픈 이웃한테 찾아가서 아픈 이웃 삶자락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으면 ‘아픈 삶자락 보여주는 사진’을 얻습니다. 살가운 이웃하고 함께 살아가며 살가운 이웃 삶자락을 틈틈이 사진으로 찍으면 ‘살가운 삶자락 나누는 사진’을 얻습니다.

 

 

 

 

 

 


  두멧시골 두멧나라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쁘장하고 몸매 늘씬한 아가씨를 만나서 사진을 찍어야 패션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찍을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런 갈래 저런 이름 붙이는 사진이 아닌, 그저 ‘사진’을 찍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떠올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픈 삶을 생각하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삶을 즐기며 찍는 사진입니다.


  어떤 부자가 돈을 또 얼마나 더 갈무리해서 더 어마어마하게 큰 부자가 되든 말든 나하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쓴들, 일억 원짜리 사진기를 수십 수백 대 갖춘들, 나하고 얽힐 일 없습니다. 일억 아닌 백억 원짜리 사진기가 그이한테 있다 하더라도, 그이는 나처럼 느긋하고 한갓지게 우리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떠들고 웃고 놀면서 사진을 찍지 못해요. 그이는 너무나 커다란 돈을 벌어 요모조모 건사하느라 바쁘거든요.


  내가 쓰는 사진장비는 아주 값쌉니다. 한물 갔다 할 만할 뿐 아니라, 두물 석물 넉물 간 구닥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갓 나오는 번쩍거리며 값지거나 값비싸다 하는 사진장비를 바라보면, 기계로 따질 때에는 문득 이런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나는 열 몇 해째 쓰는 낡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습니다. 나는 웃옷 한 벌 열 몇 해째 손빨래를 하고 마당에 해바라기하며 말려서 새로 입습니다. 큰아이는 다른 이웃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작은아이는 큰아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습니다. 아주 가끔 아이들한테 새 옷 한 벌 사 주기도 하지만, 이웃한테서 물려받아 입히는 옷이 참 곱고 예뻐요. 아이들은 즐겁게 옷을 받아 입고, 아이들은 스스로 새 웃음꽃과 노래열매 길어올립니다.

 

 

 

 

 

 


  따뜻하며 좋은 집은 ‘내 보금자리’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내 손길로 따사로이 돌보는 곳이 내 보금자리입니다.


  부동산은 부동산일 뿐, 보금자리가 못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살기는 하지만, 집을 보금자리로 여기며 누리는 사람이 있고, 집을 부동산으로 삼아 숫자를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집값이 오르면 내 보금자리가 나아질까요. 집값이 떨어지면 내 보금자리가 서글플까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쉰 해 백 해 오백 해를 살아가고 싶어요. 나는 내 보금자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우리 아이들은 새로 아이 낳아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집값이나 땅값이 오른대서 팔아치우고 다른 데로 갈 마음이 없어요.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픈 보금자리예요.


  강태영 님이 즐긴 사진으로 엮은 사진책 《사이에서》(사월의눈,2013)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여느 책방에서 구경할 수 없고, 인터넷책방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책을 펴낸 분한테 따로 연락을 하거나, 사진책 펴낸 작은 출판사 작은 인터넷집에 들어가서 주문하고 천천히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편지값까지 치러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뭘 이렇게 번거롭게 책을 만들어서 파느냐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은 누구나 이렇게 다루었어요.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운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여러 날 기다린 다음 받아서 읽었어요. 빨리빨리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라, 느긋하게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아로새기고 되새기고 곱새기고 돋을새기면서 즐길 때에 책이라고 했어요. 예부터 사람들은 책 하나 찬찬히 즐기면서 누렸지,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어치우지 않았어요. 다섯 수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오래도록 꾸준하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넋으로 즐기다가 시나브로 다섯 수레 책이 모일 뿐, 처음부터 큰돈으로 왕창 사들이는 책은 아니었어요. 곧, 누군가는 100조 원이니 1조 원이니 하는 큰돈 있는 부자라 하더라도, 이녁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지 못하면 모든 돈이 부질없어요. 일억 원짜리 사진기가 있다 한들, 당신 아이들 웃음꽃 사진을 한갓지게 담을 겨를이 없으면 무슨 보람 있겠어요. 아이들한테 천 원짜리 과자 한 봉지 사 주려 하더라도 바닥난 살림돈이 떠올라 그냥 물 마시고 밥 먹자고 말하는 살림살이이지만,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뛰고 함께 별바라기 해바라기 누리는 하루라면 모든 삶이 보람입니다.


  사진책 《사이에서》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누리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노래합니다. 이야기 한 자락이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 두 자락이 노래가 됩니다. 이야기 석 자락 있으면 사랑이 되겠지요. 이야기 넉 자락 있으면 이제 무엇이 될까요. 삶이 될까요. 꿈이 될까요. 믿음이 될까요. 웃음이 될까요. 나무가 될까요. 숲이 될까요.


  삶을 사랑하면서 꿈을 꾸는 마음 곱게 건사하면서 사진 한 장 즐기는 이웃이 차츰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이야기 한 꾸러미 자라기를 빕니다. 당신과 우리 사이에서 노래 한 가락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4346.3.8.쇠.ㅎㄲㅅㄱ


* 사진책 《사이에서》를 사서 읽고 싶으면 *
https://www.facebook.com/aprilsnowpress
honeyshy@gmail.com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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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
크리스토프 로비니.알레산드라 실베스트리 레비 엮음, 이재룡 옮김, 알베르토 코르다 사진 / 현대문학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33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 누리기
―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
 알베르토 코르다 사진·글,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펴냄,2006.5.17./13000원

 


  알베르토 코르다 님 사진과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현대문학,2006)를 읽습니다. 쿠바사람 알베르토 코르다 님은 처음에 패션사진만 찍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쿠바혁명을 맞이했고, 쿠바혁명 뒤로는 패션사진 아닌 ‘혁명’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진책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에 담은 사진과 글을 읽다 보면, 코르다 님과 쿠바가 이루는 혁명은 ‘갑작스럽지 않구나’ 싶어요. 삶에서 천천히 녹이는 혁명이고, 삶을 차근차근 즐기며 빛내는 혁명이며,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모아서 어깨동무하는 혁명이로구나 싶어요.


  코르다 님은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자연광만 좋아한다. 인공광은 현실을 왜곡한다(18쪽).” 하고 말합니다. 혁명쿠바에서 사진을 찍기 앞서, 패션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햇빛을 좋아했다고 해요.


  그렇지요. 빛은 자연이지요. 햇빛은 자연이에요.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따라 달라지는 빛은 자연이에요. 달빛과 별빛은 자연이에요. 구름빛과 무지개빛은 모두 자연이에요. 풀빛도 물빛도 모두 자연입니다. 사진으로 이루는 빛인 사진빛 또한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가꿀 수 있어요. 누군가는 따로 불을 펑펑 터뜨리며 찍을 수 있고, 누군가는 코르다 님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빛깔과 빛결을 살리는 사진길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쿠바라는 나라에 혁명이 없었으면 코르다라고 하는 사진쟁이는 어떠한 길을 걸어갔을까요. 패션사진만 서른 해 쉰 해 찍으면서 패션사진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 되었을 코르다 님일까요. 패션사진을 오래오래 찍다가 그만 이쪽 길에 질려서 다른 사진길을 걸었을 코르다 님일까요. 아니, 쿠바에 혁명이 없이 미국 식민지인 채 있었으면, 코르다 님은 쿠바사람 삶과 사랑과 꿈을 어느 만큼 짚거나 헤아리는 하루를 누렸을까요.


  사회를 살핀다고 해서 눈이 밝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를 돌아본대서 눈이 맑은 사진을 찍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사회에 어두운 사람이 눈 밝은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어요. 정치나 경제나 문화에 어두운 사람이 눈 맑은 사진을 찍을까 궁금해요.


  코르다 님은 “가벼운 삶만을 영위하던 중 서른 살에 운명을 바꾸는 예외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인형이 없어서 그 대신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있는 어린아이를 찍은 것이 그무렵이었다. 이러한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했던 혁명을 위해 이 작품을 헌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28쪽).” 하고 말합니다. 이녁 스스로 뜻하지 않았으나, 서른 살부터 이녁 사진삶이 아주 달라졌다고 말해요. 사진을 새로 찍으면서 삶을 새로 바라보고, 사진을 새로 느끼면서 이웃을 새로 느꼈겠지요.


  사진을 새로 생각하며 삶을 새로 생각합니다. 새 사진으로 거듭나면서 새 마음으로 거듭납니다. 이제까지 찍던 사진에서 사뭇 다른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새 눈길을 틔웁니다. 여태껏 걸어온 사진길하고는 아주 다른 사진길 걸어가면서, 스스로 새로 배웁니다.

 

 


  그러고 보면, 어떠한 갈래로 사진을 찍든, 스스로 배울 때에 스스로 새로 찍습니다. 새로 배우는 넋이나 매무새 아니라면, 스스로 새로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서른이 되건 쉰이 되건 일흔이 되건 언제나 새로 배웁니다. 새로 배우면서 새로 태어나는 삶이고, 삶이 새로 태어날 때에 사진이 새로 태어납니다.


  코르다 님은 체 게바라 님을 만난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적바림합니다. 먼저, “‘이 친구야, 목에 카메라를 걸고 다니는 꼴이 영락없이 양키군!’ 골프를 치는 체를 찍으려고 했더니 그가 내게 던진 말이다. ‘자네 호주머니에 가득 든 그 필름이 우리나라가 얼마나 비싼 값을 치룬 것인지 알기나 하나?’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슨 문제야? 내가 내 돈 주고 산 건데!’ 나는 나중에 해안봉쇄가 시작된 후에야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96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패션사진에서 혁명 찍는 사진으로 삶이 바뀌었다지만, 겉모습이나 속모암은 아직 혁명답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혁명가와 이 시민을 좇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저 혁명가와 저 백성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지만, 아직 사람들 마음속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그렇지만, 다 좋아요. 누구는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고, 누구는 나중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언제가 되든 스스로 깨달으면 돼요. 내 삶이 어떠한 빛깔인지 스스로 살피며 깨닫습니다. 내 사진빛이 어떠한 결인지 스스로 돌아보며 깨닫습니다.

 

 


  하늘빛은 나 스스로 어떤 하늘빛인가 하고 읽을 때에 하늘빛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결대로 바라볼 수 없어요. 풀빛은 나 스스로 어떤 풀빛인가 하고 읽으며 비로소 풀빛이에요. 똑같은 풀이 없고, 똑같은 빛이 없어요. 똑같은 숨결이 없으며, 똑같은 빛무늬가 없습니다.


  “체는 프랑스 기술자와 함께 개발한 신형 사탕수수 수확기인 알자도라를 시험운전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당시 복용하고 있던 코디손 때문에 조금 부은 얼굴은 기름때와 흙먼지로 새까맸다. 그는 냉소 섞인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더니 ‘아, 코르다, 자네 왔군.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시골인가, 도시인가?’ ‘나요? 아바나에서 오는 길입니다, 대장.’ ‘사탕수수를 추수해 본 적 있나?’ ‘아뇨.’ 그러나 그는 곁에 있는 군인에게 말했다. ‘알프레도, 이 기자 동무에게 추수용 칼을 구해 주게.’ 그러고 다시 나를 돌아보며 ‘사진촬영은 다음주에나 합시다.’라고 했다(156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빙긋 웃습니다. 코르다 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줍니다. 사탕수수를 많이 심고 거두는 쿠바에서 아직 사탕수수를 베어 본 적 없는 ‘인털레 사진기자 동무’한테, ‘쿠바 인민 누구나 온몸 바쳐 하는 일’이라 할 ‘사탕수수 베기 체험’을 시키는 체 게바라 님이에요. 손가락질로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가슴으로 느낄 때에 찍는 사진이라고 가르쳐 주는 셈이에요. 바깥에서 구경만 하는 사진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고 온마음으로 어깨동무할 때에 찍는 사진이라고 일러 주는 셈이에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 낫으로 나락 베어 본 적 있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 사진기자 가운데 텃밭을 일구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 사진작가 가운데 아이들 낳아서 온 하루 바치며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함께 놀고 글 가르치고 그림책 읽히고 하면서 살아가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은 어떠한 삶결을 스스로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한국에서 사진을 읽는(비평하는) 분들은 어떠한 삶결을 스스로 사랑하면서 사진을 말할(비평할)까요.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누리며 사진을 찍은 코르다 님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이 가르치는 즐거움을 듬뿍 누리며 카스트로 님을 찍고 체 게바라 님을 찍으며 쿠바 여느 사람들을 찍은 코르다 님이네 하고 느낍니다.


  누구나 내 삶을 사랑할 때에 사진을 사랑합니다. 누구나 내 삶을 아낄 때에 사진을 아껴요. 사진솜씨나 사진재주를 키우기 앞서, 내 삶이 어떠한가부터 헤아리기를 빌어요.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삶으로 스스럼없이 사랑하는 사진입니다. 티없이 맑고 밝게 살찌우는 삶으로 티없이 맑고 밝게 살찌우는 사진입니다. 4346.3.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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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슐 -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
정동헌 글.사진 / 눈빛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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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3

 


사진은 어디에서 왜 ‘기록’하는가
― 사진캡슐,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
 정동헌 사진·글
 눈빛 펴냄,2008.10.10./12000원

 


  신문사 사진기자 정동헌 님은 2006년에 《이주노동자, 또 하나의 아리랑》(눈빛)이라는 사진책 내놓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사진캡슐,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눈빛)이라는 사진책 하나 더 내놓습니다. 신문에 실을 사진 찍느라 늘 바쁠 테지만, 신문일 하는 사이에 정동헌 님 나름대로 다른 사진감을 찾아 이야기를 꾸렸기에 사진책 두 가지 내놓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사진감을 살피며 새로운 사진책 몇 가지 내놓을 수 있겠지요.


.. 사진기자는 연신 윙크를 하면서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 … 사진은 기술이 아니다. 사진은 주제가 있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 찰나의 느낌이다..  (9, 164쪽)


  사진책 《사진캡슐》을 보면,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며 마주한 여러 삶자락을 보여준다 할 텐데, 아무래도 ‘신문에 실을 만한 이야기’ 테두리에서 사람들 삶자락을 살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동헌 님은 신문사 사진기자이거든요.


  다른 사람, 이를테면 신문사 기자도 아니고 잡지사 기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돌아본다면, 이이는 어떠한 이야기를 길어올릴까요.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집에서 아이들 돌보면서 스물여섯 해를 보낸 아줌마 한 사람이 이웃사람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배가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작은도시 공무원이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이때에는 저마다 어떠한 사진말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아주 마땅하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으로 선보이겠지요.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꿈과 사랑을 보여줄 테지요.

 

 

 


.. 아무리 서툰 카메라 작업이라 하더라도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 사진은 시간을 기록한 역사가 된다 … 플레이를 잘하는 운동선수일수록 멋진 사진을 만들어 준다. 제대로 된 폼이 좋은 선수를 만들고, 좋은 선수는 멋진 사진을 만든다 ..  (10, 70쪽)


  사진기자는 사건과 사고를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합니다. 아이들 돌보는 아줌마는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아이들 삶과 아이들 동무 삶과 아이들 이웃 삶을 ‘기록’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시골에서 철철이 달라지는 삶자락과 숲을 차근차근 ‘기록’합니다. 작은도시 공무원은 작은도시에서 일터를 오가는 길자락을 곰곰이 헤아리면서 ‘기록’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곳과 저곳을 누비면서 마주한 웃음과 눈물을 한 올 두 올 ‘기록’합니다.


  모두 ‘기록’입니다. 모두 다른 ‘기록’입니다. 곧, 모두 다르게 ‘적바림하면서 되새기는 삶’입니다.


  주머니에 넣고 늘 갖고 다니는 사진 한 장 있으면, 이 사진 한 장은 크나큰 사랑이나 힘이 됩니다. 그리운 이를 사진 한 장으로 돌아보면서 애틋하게 웃음짓거나 눈물지어요. 사랑스러운 님을 사진 한 장으로 곱씹으면서 즐겁게 두 주먹 불끈 쥐지요.


  내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적바림한 사진 한 장은 나 스스로 새 사랑과 기운을 북돋우는 밑거름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숱한 이야기 퍼올리면서 새롭게 살아갈 꿈을 키웁니다.


..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찍어야 한다 … 사진은 단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  (18, 40쪽)


  사진은 기록이라 하지만, 꼭 기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아로새기니까요. 사진은 기록으로 남는다지만, 굳이 기록으로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없어도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이야기를 언제라도 떠올리니까요.


  사진이 있기에 되새기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기지 못한 이야기라면, 사진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하나도 못 떠올려요. 사진이 있기에 돌아보지 않습니다. 마음에 사랑 담아 적바림하지 않았으면, 사진이 있건 없건 아무것도 못 떠올리고 아무 이야기가 샘솟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진은 사진기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를 때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한 줄기 있기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즐겁게 살아가는 하루하루 모여서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오롯이 스며드는 이야기자락입니다.

 

 

 

 


.. 카메라를 가장 민감하게 의식하고 사진의 위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다 …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것이다. 세상의 표정을 담아내는 일은 사진 찍는 이의 마음에서 온다 ..  (96, 112쪽)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사진기자를 쳐다봅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 스스로 ‘정치’보다 ‘젯밥’에 눈이 멀기에 자꾸 사진기자를 쳐다봅니다. 정치를 하는 이라면 사진기자가 있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왼손 하는 일 오른손 모르도록 하라 했어요. 곧, 착한 일이건 궂은 일이건, 조용히 할 노릇입니다. 고운 일이건 미운 일이건, 고요히 할 노릇이에요. 이런 정책을 내(정치꾼 아무개)가 내놓아서 이루었대서, 내 정책보고서에 이런 이야기를 자랑하듯 떠벌일 까닭 없어요. 그저 말없이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예 즐겁게 할 일을 즐길 뿐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사진기자나 사진쟁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풀은 돋고 꽃은 피며 나무는 자랍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새는 노래하고 벌레는 춤추며 나비는 짝을 찾습니다.


  사진은 가만히 녹아들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살며시 스며들 때에 태어납니다. 사진은 천천히 하나되어 찍습니다. 사진은 오래오래 한마음 한뜻 아름다운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 카메라는 내가 사랑하고 슬퍼하고 희망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 항상 동참했다. 나와 카메라는 함께 비와 눈을 몸으로 맞으며, 보고 느끼고 생각했다 ..  (181쪽)


  내 사랑을 내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 눈물을 내 사진으로 빚습니다. 내 꿈을 내 사진으로 이룹니다. 정동헌 님 사진책 《사진캡슐》은 어느 모로 본다면, 1980년부터 2006년 사이 이 땅에서 일어난, 아니 이 나라 서울 언저리에서 일어난, 또 이 나라 서울 언저리 정치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할 텐데, 다른 눈길로 살피면, 정동헌 님 한 사람이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으로 이녁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아끼는 삶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은 역사를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었기에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사진은 늘 내 삶을 적바림합니다. 내가 바라보고, 내가 생각하며, 내가 즐기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내 사진입니다. 사진기자로 일하며 신문에 실을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신문사 편집부가 바라는 사진이기 앞서, 내가 몸으로 부대끼고 내가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마음으로 품은 이야기를 찍습니다.


  편집부장 눈에 들거나 안 들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사진기자 마음에 먼저 들어야 하고, 사진기자 스스로 마음이 흐뭇할 때에 비로소 이 사진 하나 편집부에 넘겨 신문에 실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나요. 사진은 왜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나요. 사진으로 오늘 하루 어떤 이야기 빚나요.


  사진으로 찍고픈 이야기를 가슴에 살짝 담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아침에 깨어나 조잘조잘 재잘재잘 떠들고 노래합니다. 마당에서는 멧새가 노래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내 가슴에 담고, 멧새 소리를 내 가슴에 나란히 담습니다. 좋은 하루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꿈을 꾸듯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아이가 웃으며 내가 웃고, 내가 웃을 때에 아이가 웃습니다. 서로서로 눈망울 맑게 빛내며 가슴으로 사진 하나 일굽니다. 4346.3.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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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 가슴 아픈 역사의 그림자를 담아낸 포토 에세이
최순호 글 사진 / 시공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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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2

 


이웃을 찍거나 남을 찍는 사진
―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최순호 사진
 시공사 펴냄,2008.9.25./14000원

 


  조선일보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신문사진을 찍는 틈틈이 ‘탈북자’를 만나 사진으로 담는다고 합니다. 《조선족 이야기》(민음사,2004)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고, 〈핑구어리〉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잔치를 열기도 했습니다. ‘탈북자’라 하든 ‘새터민’이라 하든 ‘꽃제비’라 하든, 남녘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으로서는 이들을 쉬 만나기 어려울 수 있고, 어느 모로 보면 곁에서 쉬 마주하며 이웃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재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사진은 늘 사진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1997년에 찍었다고 하는, 북녘에서 얕은 냇물 건너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북녘을 떠나 중국으로 시집가려 하는 두 아가씨와 샛꾼(브로커) 찍은 사진을 늘 맨 앞에 내놓으며 탈북자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최순호 님으로서는 이 사진이 스스로 가장 내세울 사진이요, 탈북자를 보여주는 가장 도드라지는 사진이라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탈북자란 북녘을 떠나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일까요. 탈북자란 굶주림과 가난과 억눌림을 떨치려고 북녘을 떠나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일까요.


  남녘나라 떠나는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탈남자’라 해야 할까요.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남녘나라 떠난 사람이 94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통계를 보면, 1968년에 5800명이 넘고, 1969년에 16000명이 넘으며, 1972년에는 26000명이 넘으며, 1974년에는 41000명이 넘습니다. 1988년에도 31000명이 넘는데, 2002년에 11000명을 끝으로, 이때부터는 1만 명을 안 넘습니다. 남녘나라 떠난 이들은 왜 떠나야 했을까요. 남녘나라 떠난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안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려 했을까요.


  북녘나라는 무척 가난하다면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큰힘을 쏟아붓는다 합니다. 그리고, 남녘나라가 얼마나 안 가난한지 모르나, 우주선 하나 쏘려고 어마어마한 돈과 품과 힘을 쏟아붓습니다. 북녘에서는 밥찌꺼기 하나 나오지 않을 테지만, 남녘에서 나오는 밥찌꺼기는 북녘사람 모두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고 푸지게 나옵니다. 북녘에서는 옷 한 벌 얻기 힘들다 할 테지만, 남녘에서는 옷이 남아돌 뿐 아니라, 멋내기로 한두 차례 입고 버리는 옷조차 아주 많습니다. 북녘에서는 겨울날 불을 땔 장작이 모자라다 할 텐데, 남녘에서는 기름값 펑펑 올라도 자가용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자동차에, 끝없이 늘기만 하는 새 고속도로와 찻길입니다.

 

 

 


  북녘나라는 왜 굶주리거나 힘겹거나 고단할까 궁금합니다. 남녘나라는 왜 북녘나라를 ‘이웃’이나 ‘벗’이나 ‘한겨레’로 안 여기면서 안 도울까 궁금합니다. 북녘이 도움을 안 받으려 하나요, 남녘이 북녘을 안 도우려 하나요. 누군가 누구를 돕는다고 할 때에는 ‘도와주려는 사람’이 어떤 낯빛 어떤 몸짓 어떤 눈길 어떤 사랑이어야 할까요.


  사진기자 최순호 님 사진책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시공사,2008)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북녘을 떠난 이들을 ‘탈북자’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들한테 탈북자라는 이름을 붙이든 말든, 이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책이 ‘우리 이야기’ 아닌 ‘그들 이야기’라고 먼발치에서 불구경 하듯 넘겨다보는 자리에 서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가요.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누구나 두 갈래 가운데 한쪽에 선다고 느낍니다. 첫째, 이웃을 찍는 사진입니다. 둘째, 남을 찍는 사진입니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린이를 ‘내 아이’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고, 어린이를 ‘남 아이’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지요.


  아리따운 아가씨를 찍는 자리에서는, 이 아가씨를 ‘내 벗님’으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고, 이 아가씨를 ‘나와는 동떨어진 모델’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지요.


  이웃을 찍을 때하고 도무지 모르는 남을 찍을 때하고 사뭇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내 아이를 찍을 때랑 영 모르는 남 아이를 찍을 때에는 아주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내 벗님이나 살붙이인 사람을 찍을 때와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는 모델을 찍을 때에는 참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한테 탈북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들’이 되는 ‘탈북자’는 최순호 님한테 어떤 사람인가요. 이들이 왜 북녘을 떠나야 했다고 생각하는가요. 북녘은 왜 이들이 고향나라 떠나도록 사회·정치·경제·문화 얼거리를 지켜야 할까요. 북녘과 한겨레라 하는 남녘은 이웃이자 벗하고 어떤 사이가 되어 사회·정치·경제·문화 얼거리를 꾸리는가요.


  사진 한 장에는 모든 이야기가 깃듭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 마음·생각·느낌·사랑·꿈이 깃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바라보는 눈길·눈썰미·눈높이·눈빛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북녘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남녘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북녘 정치와 남녘 정치는 어떠한가요. 얼마나 어둡다 하는 북녘 사회이고, 얼마나 밝다 하는 남녘 사회인가요. 북녘 사회는 고단하고 힘들다는데, 남녘 사회는 안 고단하고 안 힘든가요. 북녘 어린이는 제대로 못 먹고 동냥질이나 도둑질을 해서라도 끼니를 때운다는데, 동냥질이나 도둑질 안 해도 될 남녘 어린이는 얼마나 하루하루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거나 꿈을 키울 만한가요.


  사진은 이웃을 찍는 사진일 수 있으나, 남을 찍는 사진일 수 있습니다. 이웃을 찍는대서 더 훌륭한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남을 찍기에 더 못나거나 모자란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을 때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남 아닌 이웃을 찍더라도 사진다움이 빛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이웃 아닌 남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사진이 어떤 빛을 밝히면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새삼스레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을 떠올립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이웃’들을 찬찬히 사진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길을 즐겁게 걸어갑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누구’를 어떻게 사진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다시금 어떻게 길어올리는가요. 사진길을 얼마나 ‘즐겁게’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길을 당신 ‘어떤 이웃’한테 ‘어떤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은가요.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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