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
유기억 글, 장수길 사진 / 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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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8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
―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
 유기억 글,장수길 사진
 지성사 펴냄,2013.4.1./3만 원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비꽃을 사랑하고 제비꽃을 아끼며 제비꽃 살아가는 터를 숲내음 물씬 흐르는 고운 보금자리로 일굴 줄 아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면, 퍽 쉽게 헤아릴 만할 텐데, 감자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매화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배추꽃이나 유채꽃이나 붓꽃이나 부추꽃이나 능금꽃이나 등꽃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굳이 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누구라도 스스로 알아차리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덧붙인다면, 아이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 누구일까요? 골목길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 누구일까요? 도시와 아파트와 현대문명 가장 잘 찍는 사람 누구일까요? 달동네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이나 오일장이나 저잣거리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 누구일까요?


  어려운 물음 아닐 테지요. 참 쉬운 물음일 테지요. 아이를 낳고 돌보는 어버이라면, 어버이 아닌 삶이지만 아이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아이 사진 참 잘 찍습니다. 첫째이냐 둘째이냐 하고 가를 수 없이 누구나 아이 사진 잘 찍습니다.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골목동네 골목길 예쁘게 잘 찍습니다. 골목동네에서 태어나지도 살지도 않더라도, 골목이웃 사귀면서 골목동무 좋아하는 삶 누리고, 언제나 골목삶 어깨동무하듯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골목 사진 해맑고 어여쁘게 잘 찍어요.


  어떤 사진이든 이와 같아요. 스스로 어떤 삶이요 어떤 마음이며 어떤 사랑인가에 따라 다릅니다. 또한, 사진찍기 아닌 글쓰기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사진과 글을 넘어, 공부와 학문과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노동에서도 이와 같아요. 스스로 어떤 몸가짐인가에 따라 달라져요. 스스로 어떤 넋이 되고 어떤 꿈을 품는가에 따라 하루하루 바뀌지요.


.. 산자락에 도착한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40여 명의 등산객은 거의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 등산복만 제대로 갖춰 입으면 산을 제대로 즐기는 것일까. 산을 오르는 목표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연을 벗 삼아 눈을 즐겁게 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자 멋인 것 같다 … 무작정 정상을 향해 오르지 말고 주변을 살피며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필름 한 장이라도 아끼려고 엎드렸다 쪼그려 앉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정성을 다했던 때도 있었는데,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된 지금은 셔터를 수없이 반복해 눌러 찍어 그중 한 장만 건져도 성공이다. 오히려 사진 정리가 더 어렵고 번거로워, 자료를 쌓아 놓지 않으려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  (24∼25, 129쪽)


  사진을 가장 잘 찍는다는 말은, 스스로 사진을 누릴 줄 안다는 뜻입니다. 내가 남보다 뛰어나서 가장 잘 찍는 사진은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기에 내 삶을 사진으로 ‘가장 잘’ 찍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라는 뜻입니다. 내 삶은 내가 가장 잘 찍지, 내 옆지기도 내 아이들도 가장 잘 찍을 수 없습니다. 곧, 내 옆지기 사진은 내 옆지기 스스로 ‘가장 잘’ 찍을 수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옆지기 삶을 가장 잘 찍어서 보여주지 못해요. 다른 사람이 내 옆지기 사진을 찍는다면, ‘다른 사람인 이녁 넋과 눈길과 삶’에 맞추어 바라본 모습입니다. 옆지기 넋과 눈길과 삶으로 돌아보거나 헤아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우리 집 두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나는 ‘내가 낳아서 돌보는 아이’ 모습을 가장 잘 찍을 뿐입니다. 내가 찍는 우리 아이들 사진이란 ‘아이들이 저마다 일구는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일구는 삶을 가장 잘 찍을 사진이란, 바로 아이들 스스로 손에 사진기를 쥐어 스스로 찍을 때에 얻습니다. 나는 그저 어버이로서,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벗으로서, 아이들 놀이와 웃음과 꿈을 지켜보는 길동무로서, 이 아이들 모습을 다른 사람보다 오래도록 한결같이 꾸준히 내내 마주하며 사진으로 찍을 뿐입니다.

 


.. 서로 할 말이 없어 방안이나 거실은 겨울철 얼음장 같은 차가움과 정적만이 흐른다. 바보상자로 불리는 텔레비전도 그 원인 중의 하나이다. 빠르고 쉽게 뉴스를 접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은 있지만 인기 있는 드라마 한두 편이면 가족 간의 대화는 뒷전이 된다. 설령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옷, 신발, 악세서리 같은 그들의 스타일에 관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시골에서 자란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것저것 알고 있던 것도 많았고, 채집을 가거나 현장조사를 나가서 식물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상황 이해가 빨라서인지 머릿속에 쉬이 저장되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식물 이름은 남들보다 빨리 외웠던 것 같다 ..  (41, 137쪽)


  유기억·장수길 두 분이 일군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지성사,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생물학을 배우고 식물분류학을 파고드는 두 분은 학문을 하면서 언제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비꽃 한 가지를 깊이 들여다보더라도 제비꽃과 얽힌 글을 써야 하며, 제비꽃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곰곰이 지난날을 헤아려 봅니다. 아직 사진이 널리 퍼지지 않던 지난날 식물학을 하거나 꽃과 풀과 나무를 살피는 학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지난날 식물학자라면 글과 그림을 했겠지요. 이녁이 파헤치는 꽃과 풀과 나무 이야기를 글로 쓰는 한편, 그림으로 찬찬히 밝혀서 보여주는 길을 걸었겠지요. 눈으로 바라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귀로 소리를 듣고 살갗으로 느끼는 모든 이야기를 손으로 차근차근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겠지요.


  오늘날 식물학자 가운데에도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식물학자라면 누구나 사진을 함께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기자나 사진작가 못지않게 여러 사진장비 갖추어 사진 숱하게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식물학자 스스로 가장 마음에 찰 때까지 쉬잖고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표본을 모으려고 여러 장비를 챙겨 잔뜩 무거운 베낭에 세발이와 여러 사진장비까지 아울러 갖춰 높고낮은 멧골을 타고오르는 한편,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풀과 꽃이 말라서 비틀어지기 앞서’ 표본을 갈무리하고, 또 이듬날 새벽에는 새벽에 이슬 맞고 봉오리 벌리기 앞서 어떤 모습인가를 사진으로 담으려고 졸린 눈 비비며 길을 나서리라 생각합니다.


  꽃 좋아하는 분들도 꽃 사진 아리땁고 훌륭하게 찍을 테지만, 꽃을 파헤치는 학자들도 꽃 사진 아리땁고 훌륭하게 찍으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꽃을 파헤치는 학자들은 ‘아리땁고 훌륭하게 찍는 사진’을 넘어 다른 누리 다른 갈래 다른 숨결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다 할 수도 있으리라 느낍니다.

  숲에서 찍는 사진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서 찍는 사진을 생각해 봅니다. 공장에서 찍는 사진을 생각해 봅니다. 집회나 시위를 하는 자리에서 찍는 사진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마다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숲을 자주 찾는 사람과 숲을 처음 찾는 사람은 숲에서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았어도 서로 찍는 모습과 느낌과 빛과 이야기가 다릅니다. 시골에서 흙바닥에 엎디어 일하는 할매 할배 모습 찍는 사진도 그래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이가 사진기 들어 사진 찍을 때랑, 도시에서만 지내던 이가 시골로 처음 와서 사진 찍을 때랑, 시골에서 시골일 하며 살아가는 이가 사진 찍을 때, 세 가지 사진이 같거나 비슷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 다 다른 생각 다 다른 삶결 묻어나는 사진이 나옵니다.


  공장 일꾼 헤아리는 마음결 따라, 공장 일꾼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공장과 개발과 도시와 문명과 사회를 헤아리는 생각밭 따라, 공장 모습과 공장 둘레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노동권과 노동법과 노동자 삶과 권리와 현실과 현장을 헤아리는 눈썰미에 따라, 집회나 시위를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선제비꽃 자생지 주변의 밭을 일구면서 밭둑이 무너져 그 주변에 있던 개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채집한 식물은 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표본이 든 자루는 보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열 시간 이상 산을 헤매다 숙소로 돌아오면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적어도 두세 시간 이상은 채집해 온 표본을 정리해야 하루 일과를 마칠 수 있다 ..  (49, 138쪽)


  이렇게 찍은 사진이 옳고, 저렇게 찍은 사진이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사진입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렇게 찍은 사진은 저렇게 살아온 사람들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나오는 일간신문 ㅈ에 실리는 사진과 ㅎ에 실리는 사진이 달라요. 왜냐하면, 신문 ㅈ과 ㅎ은 같은 사람 같은 일 같은 자리에 서더라도, 서로 생각과 마음과 뜻이 달라요.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과 뜻인 만큼, 대통령 한 사람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더라도 사뭇 다른 느낌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두 사진을 놓고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 하며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운동경기를 사진으로 담을 때조차 크게 달라요. 맞붙은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사람이 담는 사진, 어느 한 사람을 더 좋아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담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운동경기 흐름과 규칙과 재미를 아는 사람과 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담는 사진은 참 다릅니다.


  시를 아는 사람이 시인을 만나서 찍는 사진하고, 시를 모르거나 알려 하지 않는 사람이 시인을 만나서 찍는 사진은 같을 수 없어요. 시골 작은학교 배움터를 찬찬히 헤아리는 사람과 하나도 모르거나 조금도 안 헤아리는 사람이 시골 작은학교 찾아가서 찍는 사진은 비슷할 수조차 없어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구름빛 조금씩 바뀔 적마다 ‘아!’ 하고 놀라면서 이내 사진기를 쥐겠지요. 구름을 안 좋아하거나 구름 쳐다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뿐더러, 구름빛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모습 보이면, 곧바로 사진기 들어 한 장 담고 싶은 마음 생깁니다. 책을 썩 좋아하지 않거나 아예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면, 잔디밭에 벌렁 드러누워 책으로 얼굴 가린 채 잠든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못 알아보는 한편, 이런 모습 보더라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 품습니다.


.. 제비꽃 종류가 있다는 말에 얼른 달려가 보니 찾고 있던 왜졸방제비꽃이었다. 꽃이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잎사귀 위로 하나씩 올라와 있는 열매가 꽃을 대신해 주었다. 줄기가 J자 모양으로 휘어져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지만 부분부분의 특징을 잡아내기 위해 사진기에 접사렌즈를 붙이고 이리저리 특징을 살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누가 보면 작품 사진이라도 찍는 줄 알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말이다 …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공하는 식물을 만나게 되면 한 번 볼 것을 두 번 보게 되고, 사진도 한 장만 찍어도 되는 것을 몇 장씩 찍게 된다.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신기해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말 그대로 특별해지는 것이다 ..  (66, 146쪽)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이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을 수 있을까요? 어떤 마음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제비꽃 사진 가장 사랑스럽게 찍을 수 있나요? 어떤 생각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제비꽃 사진 가장 곱게 찍을 만한가요?


  느티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니, 느티나무에 느티꽃 피는 줄 생각하면서 느티꽃 피는 봄날 기다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호박꽃뿐 아니라, 오이꽃, 수세미꽃 기다리며 곱다시 사진으로 찍으려 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호박꽃 사진, 오이꽃 사진, 수세미꽃 사진, 여기에 수박꽃 사진이나 박꽃 사진까지 곁들여, 이런저런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삶 되고, 어떤 사랑 되며, 어떤 꿈 될 때에, 이러한 사진을 가장 잘 찍는다고 스스로 느낄 만할까요?


.. (남산제비꽃) 우리 이름은 남산이란 지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어느 곳에 있는 남산인지, 아니면 남쪽에 있는 어떤 산을 가리키는 것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일부러 제주도를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것이고, 그나마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 처음 보고된 1918년 이후 약 90여 년이나 흘렀고, 서울은 빠른 도시화로 건물이 늘고 아스팔트로 길이 덮이면서 흙을 밟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처음 발견될 무렵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젠 식물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해 버려 점점 찾아보기 힘든 주인공이 된 것이다. 서울제비꽃의 자생지 분포는 대폭 수정해야 하지만 이름까지 바꾸기는 어렵다. 이는 비단 서울제비꽃만의 일이 아니다 ..  (156, 186, 219쪽)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은 어떤 책이라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꽃도감이라 할 만할까요. 생물학 관련 책이라 하면 될까요. 환경책 가운데 하나로 넣으면 좋을까요. 아니면, 사진책 가운데 하나로 삼아 사진비평을 받을 만한 손꼽히는 좋은 책으로 삼아도 될까요.


  사진밭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날이 갈수록 패션사진과 만듦사진 비평이 줄줄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무척 오랜 예전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일구던 ‘식물학 사진’은 거의 어떠한 사진비평도 못 받는구나 싶습니다. ‘식물학 사진’은 가끔 ‘특수 사진’ 갈래로 나누기는 하되, 꽃을 담는 사진이나 풀을 찍는 사진이나 나무를 보여주는 사진은 아예 사진비평으로 다루는 비평가나 평론가나 교수가 없구나 싶어요.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라는 분이 내놓았던 사진책 《TREES》(Rizzoli,1991)가 떠오릅니다.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라는 분은 왜 나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글로 여미어 사진책 하나 내놓았을까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나는 “꽃들”이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글을 엮은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을 밝히는 이론이나 사조나 비평이나 해설 한 마디 없이, 오직 꽃과 얽힌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사진으로 밝히는 사진책 하나 내놓는다면, 이러한 사진책을 사람들은 얼마나 헤아리고 어떻게 마주할까 궁금합니다. “꽃들”을 이야기하는 책 하나에서 사진을 읽거나 느끼거나 만나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 사진을 찍으려고 잘생긴 놈을 골라 사진기 접안 창에 눈을 갖다 댔더니 그 속에는 잔털제비꽃이 한껏 함박웃음을 짓고 서 있었다. 잎사귀에 뽀얗게 나 있는 하얀 털은 덜 가신 추위에 대항이라도 하려는 듯이 여러 개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하얀 꽃잎은 눈이 부실 정도로 싱그러웠다. 이 모습을 마음 가는 대로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이고,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없으니 그저 열심히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  (190쪽)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을 내놓은 유기억·장수길 두 분은 이 책에 ‘사진 이야기’를 틈틈이 적습니다. 제비꽃 말하는 책을 내놓으면서 제비꽃 이야기와 나란히 사진 이야기를 적습니다. 제비꽃을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제비꽃과 살아가는 기쁨이 시나브로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는 기쁨하고 하나되었다 할 만합니다. 사진길 걷는 사진작가나 사진기자 아닌 ‘식물학자’요 ‘생명학자’이면서 ‘제비꽃 학자’이지만, 어느새 ‘사진 즐김이’요 ‘사진 전문가’이면서 ‘사진쟁이’도 되었다고 할까요.


  이리하여, 유기억·장수길 두 분은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이 됩니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는지 모르나, 유기억 님은 유기억 님 나름대로, 장수길 님은 장수길 님 나름대로, 이녁이 마주하는 들판 제비꽃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이녁 스스로 제비꽃 가장 잘 찍는 사람이 됩니다. 제비꽃 한살이 사랑스레 알고, 제비꽃 한삶 사랑스레 돌보며, 제비꽃 한목숨 사랑스레 지키고픈 마음이 어우러져서, 제비꽃 사진 가장 잘 찍는 사람으로 나날이 거듭나요.

 


.. 한번은 전라남도 해남 근처로 조사를 갔는데, 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산 쪽으로 오르다가 튼튼해 보이는 제비꽃 집단을 만났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윤기를 발산하며 제비꽃들이 늘어서 있었다. 임도 주변의 황토색 흙과 인근에 흩어져 자라는 다양한 초본들 사이에 무리지어 자리를 잡은 제비꽃은 바로 자주잎제비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기부터 들이밀었다. 잎에 반사되는 햇빛과 살랑이는 바람에 살짝살짝 드러내는 잎 뒷면의 자색은 마치 한 편의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우리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245쪽)


  사진기를 손에 쥐면, 누구나 이녁 스스로 가장 잘 찍는 이야기 하나 만납니다. 연필을 손에 쥐면, 누구나 이녁 스스로 가장 잘 쓰는 이야기 하나 깨닫습니다. 붓을 손에 쥐면, 누구나 이녁 스스로 가장 잘 그리는 이야기 하나 헤아립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빛을 느낍니다. 바다를 내다보며 바다빛을 느낍니다. 내 짝꿍을 사랑하며 사랑빛을 느낍니다. 밭자락에서 푸성귀 뜯으면서 풀빛을 느낍니다. 냇물 한 모금 마시면서 물빛을 느낍니다.


  빛은 늘 우리 곁에 환하게 있습니다. 빛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도 우리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낄 뿐이거나 우리 스스로 살갑고 따사롭게 느낄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낀대서 잘못이거나 어리석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잘 느낀대서 똑똑하거나 올바르다 하지 않습니다. 느끼면 느끼는 대로 느끼는 빛을 즐겁게 껴안아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또 노래로든 춤으로든 몸짓으로든 누리면 돼요.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 스스럼없이 흐르도록 하면 돼요.


  느낄 때에 담는 빛입니다. 느낄 때에 누리는 빛입니다. 느끼면서 밝히는 빛입니다. 느끼면서 가꾸는 빛입니다.


  가슴속에서 샘솟는 빛줄기를 살펴요.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빛줄기를 스스로 맑고 밝게 보듬어요. 사진빛은 삶빛입니다. 삶빛은 사진빛입니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알라딘서재에 글을 띄우면서 '책 선물' 받은 적이 꼭 두 차례라고 느껴요. 제가 떠올리지 못해, 더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첫 번째 선물도 사진책, 두 번째 선물도 사진책입니다. 저한테 책 선물 해 주신 두 분께 고맙다는 인사 새삼스레 적습니다. 제비꽃 사진책 선물해 주신 appletreeje 님한테 한 번 더 고맙다고 인사말 남깁니다. 이 글 쓰려고 한 달 삭히고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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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을 자주 찾는 사람과 숲을 처음 찾는 사람은 숲에서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유기억.장수길 두 분의 빛과 넋이 담긴 제비꽃책,이 또 다시
함께살기님의 빛과 눈과 마음과 넋으로 쓰신 글로
아름다운 제비꽃으로 오늘도 방방곡곡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군요.
저도 오늘, 제 가슴속에서 샘솟는 빛줄기 살피며 스스로 맑고 밝게 보듬으며
즐겁게 살아야겠습니다.^^
언제나 훌륭하시고 좋은 글 감사드리며
함께살기님! 좋은 날 되세요. *^^*

숲노래 2013-05-17 09:35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저녁까지
좋은 마음 좋은 빛
좋은 사랑 좋은 마음
즐거이 누리시기를 빌어요~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 지식은 내 친구 5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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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6

 


사진은 ‘잘’ 찍어야 하는가
―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사진·글,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2013.2.20./1만 원

 


  사진은 ‘잘’ 찍어야 하는가 궁금합니다.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할 적에 ‘잘’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잘’과 ‘잘못’은 누가 따지며, 어떤 잣대로 따지고, 어떤 틀거리로 따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에 사진학과 있고, 곳곳에서 사진강좌 엽니다. 모두들 사진을 이야기하고 사진찍기를 다룹니다. 그런데, 학교에서건 강좌에서건 으레 ‘사진 잘 찍기’ 쪽으로 기울어지곤 합니다. ‘사진찍기’아닌 ‘사진 잘 찍기’로 치우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글을 가르치는 학교나 강좌에서 ‘글쓰기’ 아닌 ‘글 잘 쓰기’를 가르치는지 생각합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학교나 강좌에서 ‘그림그리기’ 아닌 ‘그림 잘 그리기’를 가르치는지 생각합니다.


  노래를 가르치는 곳, 춤을 가르치는 곳, 도자기 빚기를 가르치는 곳, 아이 돌보는 삶 가르치는 곳, 밥과 반찬 하는 살림살이 가르치는 곳, 자동차면허 따도록 가르치는 곳, 자전거 타기 처음 가르치는 어버이, …… 모두들 무엇을 가르칠까요. ‘잘 하도록’ 가르치나요, 다른 대목을 가르치나요.


.. 한번은 순록을 찾으러 강 근처 언덕에 올라간 적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알래스카 북극권의 끝없는 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잿빛 덩어리가 느릿느릿 움직였지요. 같이 있던 일행이 “그리즐리(곰)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야생 곰을 처음 본 순간이었습니다. 워낙 거리가 멀어서 드넓은 풍경 속의 한 점으로 보일 뿐이었는데도 엄청난 힘이 느껴졌습니다 …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에게 동물이란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  (4쪽)


  사진잔치 열린 곳에 가서 “참 잘 찍었다”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면, 사진잔치 마련한 사람은 사진을 “잘 찍었다”고 할 만한지, 사진을 읽는 분이 사진을 “잘 읽었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잘’ 찍기는 하되, ‘이야기’를 찍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좋거나 빛나는 사진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시를 읽거나 소설을 읽거나 산문을 읽는 이들이 ‘잘’ 쓴 글을 읽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잘 쓴 시’를 읽으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잘 쓴 시’ 흉내를 내면서 ‘시 잘 쓰기’를 하면 즐거울까요?


  그림을 ‘잘 그려야’ 그림맛이 날는지 궁금합니다. 서울 홍대 언저리에 미술학원 수두룩하게 많고, 미술학원 앞에는 ‘잘 그린’ 작품을 내놓아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한테 ‘그림 잘 그리기’를 가르쳐서 홍대이니 다른 미술대학이니 들어가도록 북돋우는데, 이런 ‘잘 그린 그림’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빛나거나 훌륭한지 궁금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술학원이나 미술대학에서 아이들한테 ‘그림 잘 그리기’만 가르치는 오늘날 흐름으로 어떤 아름다운 그림 태어나는지 궁금해요. 이야기는 없이, 곧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그럴듯한 ‘잘 그린 그림’으로 사람들 가슴을 얼마나 사로잡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아니, 그림을 그린 사람 스스로 가슴이 울렁거리는 즐거움 누리면서 그림을 그렸나요?

 

 


.. 빙하가 무너져 내린 곳의 바닷물이 높이 솟구치더니 집채만 한 파도가 내 쪽으로 몰려왔습니다. 순간 나는 몹시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  (17쪽)


  한국에서 사진기 없는 사람 없다 할 만큼, 사진기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내로라 할 만한 사진작가는 손꼽기 쉽지 않습니다. 다들 값비싸거나 값나가는 사진기를 갖출 만한 돈은 있고, 넉넉한 돈으로 넉넉한 사진장비 그러모으지만, ‘사진 잘 찍기’에 휘둘리느라, 정작 ‘내 삶 내 사진으로 나 스스로 찍기’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한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잘 찍은 사진이라서 작품이 되지 않아요.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작품은 ‘이야기 있는 사진’일 때에 작품이라는 이름이 붙어요.


  한국에서 사진잔치 열거나 사진책 내놓는 사진작가 제법 많습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잔치도 열고, 나라밖 사진잡지에 작품을 싣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진 이곳저곳 들여다볼 때에, 가슴 후벼파도록 찡 울리는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첨단을 달린다든지 유행에 앞선다든지 새로운 실험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이야기는 억지로 쥐어짜거나 만든다고 해서 태어나지 않아요. 어떤 주제를 또렷이 드러내려고 손질을 하거나 포토샵 프로그램 만진다고 해서 ‘사진’이 되거나 ‘작품’이 되지 않아요. 빅토르 위고 님이 쓴 글에 생명력 넘치는 까닭을 읽어야 해요. 정약용 님이 쓴 글이 수백 해 흐르도록 되읽히는 까닭을 읽어야 해요. 아무리 지구별에서 미국이 큰힘 뽐내어도 한국사람이 한글로 생각과 마음과 사랑을 담아내는 까닭을 읽어야 해요.


  한국에서 사진길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걸어온 분들이 사진강의를 마련하고 사진이론 펼치며 사진책 내놓습니다. 그렇지만, ‘사진 원로’라 일컫는 분들 말씀 가운데 가슴 깊이 아로새길 만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리송하곤 합니다. 참말 아리송합니다.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 아득히 먼 옛날 산에 내려 쌓인 눈이 빙하가 되고, 그 빙하를 녹여 내가 마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바닷가로 밀려온 빙하 조각들은 곧 밀물에 쓸려 다시 바다로 돌아가겠지요. 그리고 녹아서 바닷물이 되겠지요 ..  (19쪽)


  빨래를 잘 하는 법은 없습니다. 밥을 잘 하는 법은 없습니다. 걸레질이나 비질 잘 하는 법은 없습니다. 집을 잘 짓는 법이라든지, 바느질 잘 하는 법이라든지, 호미질 잘 하는 법이 있을까요?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다른 어느 갈래에서도 없는 ‘잘’이라 하는 대목을, 사진밭에서 자꾸 들춥니다. 사진작가 스스로 ‘잘 찍기’라는 수렁에 빠집니다. 사진비평가 스스로 ‘잘 찍기’라는 그물에 걸립니다. 사진기 장만해서 사진모임 즐기려는 여느 사람들조차 ‘잘 찍기’라는 올가미에 사로잡힙니다.


  얼짱각도란 없습니다. 얼짱각도란 바보 되는 사진틀입니다. 제아무리 얼짱각도로 꾸며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싱그럽게 짓는 웃음꽃 묻어나는 ‘잘 못 찍은’ 사진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얼짱각도 사진에는 어떤 이야기도 꿈도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싱그럽게 짓는 웃음꽃을 놓치지 않고 즐겁게 사진 하나로 담으면, 살짝 흔들렸든 빛이 덜 맞았든 한쪽으로 기울어졌든 다 괜찮습니다. 즐겁고 재미나며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 담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싱그럽게 짓는 웃음꽃 담은 사진 한 장은 ‘잘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렘브란트 님이라든지 벨라스케스 님이라든지, 이런 그림쟁이가 빚은 그림은 ‘잘 그린 그림’ 아닌 ‘이야기 있는 그림’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 빚는 그림’이고 ‘이야기 넘치는 그림’입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도록 이끄는 그림이에요.


  사진에서도 이와 같을 때에 아름답다고 말해요. 사진 한 장 보면 볼수록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 북돋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말합니다. 벽에 붙이든 지갑에 넣든, 꺼내어 들추든 날마다 마주하든, 들여다볼 적마다 마음 깊이 사랑스러운 꿈 한 자락 피어나도록 이끄는 이야기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고 ‘작품’입니다.

 

 


.. 사진을 찍기 위해 바다표범들이 잠든 틈을 타서 천천히 카약을 몰고 다다갔습니다. 이따금 어미 바다표범이 눈을 뜨고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그때마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어미 바다표범은 마음을 놓고 다시 잠에 빠집니다.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노를 한 번 더 저었더니, 너무 가까워져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근새근 잠든 어미와 새끼를 깨울까 봐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  (20쪽)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글로 엮은 사진책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논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판으로 엮었습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입니다. 어린이가 함께 읽으면서 사진을 생각하거나 꿈꾸도록 이끄는 사진책입니다. 아주 쉽고, 부드러우며, 따사롭습니다. 사진이란 이렇게 쉽다고 이야기하고, 사진이란 이처럼 부드럽다고 이야기하며, 사진이란 이토록 따사롭다고 이야기합니다.


.. 눈이 녹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작은 꽃들이 한꺼번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 생명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요 … 눈이 녹은 곳으로 텐트를 옮겼는데, 흙냄새가 무척 좋았습니다 … 긴 겨울이 끝나자, 모두 햇빛에게 고마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  (27, 28쪽)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을 들여다보고, 호시노 미치오 님 글을 읽습니다. 사진에서도 글에서도, 참말 “햇빛에게 고마워 하는” 느낌 감돕니다. 참 즐겁구나 싶은 사진이며 글입니다. 참 재미있고 따사롭구나 싶은 이야기입니다.


  곰곰이 돌아보셔요. 호시노 미치오 님은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알래스카로 찾아가지 않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몸으로 알래스카를 누비고, 마음으로 알래스카를 사랑하며, 사진으로 알래스카를 담고 싶습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세 흐름입니다. 몸으로 실컷 껴안습니다. 마음으로 듬뿍 들이마십니다. 사진으로 기꺼이 담습니다.


.. 카메라가 얼지 않도록 품에 안고 잤습니다.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 북쪽 하늘에 한 줄기 파르스름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 신비로운 빛은 점점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오로라입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았습니다. 어찌나 격렬하게 움직이던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로라의 춤이 펼쳐지는 밤하늘은 쥐 죽은 듯 고요합니다. 지금 이 광대한 알래스카 산맥에 있는 것은 오직 나뿐입니다. 홀로 드넓은 극장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 놓은 카메라로 사진을 잔뜩 찍었습니다 ..  (37쪽)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를 교재로 쓴다면, 사진길에 첫발 내디딜 젊은이들 가슴에 아름다운 사랑 깃들도록 이끌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사진평론 하는 분들이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를 틈틈이 알리고 얘기하면, 사진삶 돌아보려는 사람들 마음에 좋은 꿈 심도록 북돋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은 잘 찍어야 하지 않고, 잘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즐겁게 찍을 노릇이요, 사진은 즐겁게 가르칠 노릇입니다. 사진을 즐겁게 읽으면서, 사진책 또한 즐겁게 장만해서 꾸준히 들여다볼 노릇이에요.


  즐거울 때에 삶이 빛나듯, 즐거울 때에 사진이 빛나요. 사랑할 때에 삶이 아름답듯, 사랑할 때에 사진이 아름답지요. 꿈꿀 때에 삶이 좋은 결로 흐르듯, 꿈꿀 때에 사진이 좋은 결로 태어납니다.


  삶이 사진을 빚습니다. 삶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사랑할 때에 사진기 쥔 손이 해맑고 푸릅니다. 4346.5.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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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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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7

 


웃음을 남기는 사진
―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
 김지연 사진·글
 눈빛 펴냄,2013.4.16/29000원

 


  사진을 찍습니다. 즐겁게 웃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슬프게 울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싸움터나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굶주린 이웃 모습을 널리 알려 사람들 마음 움직이려고 하는 사진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슬프게 울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하겠지요.


  숲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멧봉우리에 올라 사진을 찍습니다. 바닷가에 서서 사진을 찍습니다. 너른 들판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환하게 트이는 곳에서 빙그레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봄날 씨앗 한 톨 심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을 실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가을날 열매 거두어들이며 사진을 찍습니다. 꿈을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여름날 뭉게구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이야기 조곤조곤 나누듯 사진을 찍습니다. 겨울날 눈밭에서 뒹굴며 사진을 찍습니다. 까르르 웃음 터뜨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쥘까요.


  자전거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마음 되어 길을 달릴까요.


  사진기를 쥐거나 자전거를 달리거나, 또 밥을 짓거나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거나, 사람들은 누구나 늘 같은 마음 되리라 느낍니다. 풀 한 포기 돌보듯 나무 한 그루 돌봅니다. 아이 한 사람 보살피듯 이웃 한 사람 보살핍니다. 흰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이야기 적바림해서 글월을 띄우듯, 사진기 손에 쥐어 한 장 두 장 찍는 동안,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사랑과 꿈 적바림하려는 마음이지 싶어요.


.. 저는 사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굳이 말이나 글로 장황하게 떠들 것이라면 이미지로 형상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429쪽)

 

 

 


  밥을 차려 아이들과 함께 먹습니다. 아이들은 배부르게 먹고 나서 저희끼리 뛰어놉니다. 논흙을 퍼서 마당으로 옮기더니, 마당에서 흙놀이를 합니다. 마당에서 잡기놀이도 하고, 자전거놀이도 합니다. 이것저것 손에 닿는 대로 놀잇감 됩니다. 달리면 달리기 되고, 뛰면 뜀뛰기 됩니다.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상 앞에 앉아 만화책을 읽습니다. 아이들 남긴 밥을 먹다가는, 나중에 아이들이 출출할 때에 더 먹으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남긴 밥을 다 비우지 않습니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합니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만화책을 들춥니다. 아이들 노는 모습 지켜봅니다. 유채꽃 노란 송이마다 잔뜩 달라붙는 벌을 바라봅니다. 벌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고,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커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아이는 숟가락질부터 하다가, 두 돌을 앞두고 바야흐로 젓가락질에 재미를 붙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나도 모두 젓가락질을 하니, 저도 젓가락질 하고 싶겠지요. 젓가락질은 아직 어려울 테니 숟가락이나 찍개를 쓰더니,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젓가락을 씁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그래, 작은아이로서는 밥자리에서 젓가락만 쓰려 한 때가 오늘 아침이 처음이네. 밥상머리 곁에 둔 사진기를 쥡니다. 작은아이 젓가락질 모습 열 장 남짓 사진으로 담습니다. 큰아이가 서툰 젓가락질 익숙해지기까지 수백 수천 장 찍던 사진을 떠올립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젓가락질을 합니다. 작은아이한테도 남겨 줄 ‘첫 젓가락질 밥먹기’ 사진을 요모조모 살펴 찍습니다. 큰아이 젓가락질 모습 찍던 때에는 미처 헤아리지 않거나, 그때에는 안 찍어 본 새로운 눈높이로 작은아이 모습을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습니다.


.. 우리 어린 시절에 학교는 절반 이상이 놀이터였다 ..  (353쪽)

 


  웃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울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이야기를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구나 싶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꿈꾸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준히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오래고 한결같은 삶넋 북돋웁니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차분하고 너른 사랑씨앗 심습니다. 꿈꾸는 이야기를 살몃살몃 사진으로 찍으면서, 스스로 마음속에 따사롭고 포근한 꿈날개 펼칩니다.


  문학을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즐기려고 쓰는 글입니다. 예술을 하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지 않아요. 1등을 하거나 기록을 세우려고 운동경기를 하지 않아요. 즐거움을 누리려고 글을 써요. 기쁨을 나누려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요. 땀흘리는 보람을 맛보면서 운동경기를 하지요.


  교육 목적에 맞추어 아이들과 놀지 않습니다. 훈육이나 보육 때문에 아이들을 놀리지 않습니다. 어떤 지식이나 사상을 얻어야 하니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삶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며, 꿈을 이루는 길이 아름답다고 느껴 하나하나 배우고 책을 읽어요.


  문학일 까닭이 없는 글이지요. 예술일 까닭이 없는 그림이에요. 문화일 까닭이 없는 사진입니다. 오직 삶이 되는 글이요, 사랑이 되는 그림이고, 꿈이 되는 사진이에요.


.. 내가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는 생활 주변에 있는 회사나 관청의 직책, 즉 회장 사장 전무 부장 과장 등 아니면 높으신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변호사 의사 등이 관심 있게 눈에 들어왔고, 또 그것이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직책인 줄 알았다. 이장이라니! 아직도 그런 직함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런데 시골로 들어오면서 이장이 하는 일이 참으로 놀라웠다 ..  (210쪽)

 

 

 

 


  전라북도 진안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리던 김지연 님은 전라북도 전주로 사진터를 옮겨 ‘서학동 사진관’을 일굽니다. 정미소를 ‘두레박물관’이라 할는지 ‘시골박물관’으로 삼아 시골마을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장님 이야기도, 이발소 이야기도, 용담댐 이야기도, 보따리 이야기도, 조그마한 방 한 칸 이야기도, 모두모두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한 장에 삶 한 타래 담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두 장에 사랑 한 자락 실어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 석 장에 꿈 한 가지 품으며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김지연 님 사진은 예술도 문화도 기록도 역사도 아닙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김지연 님 스스로 이녁 사진은 예술이나 문화나 기록이나 역사라 여기지 않거든요. 김지연 님은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는 길벗으로 사진을 곁에 두어요. 김지연 님 살아온 발자국을 사랑하고, 김지연 님을 둘러싼 이웃들 삶을 사랑합니다. 아름답구나, 좋구나, 예쁘구나, 즐겁구나, 환하구나, 따스하구나, 하고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찬찬히 담아요.


.. 사진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베허 부부의 사진을 보고 단번에 질리고 말았다. 사진으로서 예술성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내 추론으로는 버거운 일이었고, 우선 그 엄격성, 단호함, 단순함, 획일성, 그리고 긴 시간과 많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 등이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  (153쪽)

 


  사진은 무엇일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이룩할 때에 꿈을 이룬다고 할 만할까요.


  사진은 왜 기록을 한다고 여기는가요. 기록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 되어 어떤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진이 되는가요.


  아이들 싱그럽게 자라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기록’이라 해야 할까요. ‘역사’나 ‘문화’나 ‘예술’ 같은 이름표를 굳이 붙여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면서 영양소라든지 요리라든지 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먹고, 알맞게 먹으며, 배불리 먹으면 좋다고 여길 뿐입니다. 아무렇게나 먹이지 않으나, 철분이니 단백질이니 탄수화물이니 열량이니 하고 따지지 않아요. 나는 내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사랑 담아 차린 밥을 받아서 먹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 아름답게 누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요.


  쑥을 뜯으며 쑥맛을 생각하지요. 꽃마리와 돗나물 뜯으며 꽃마리맛이랑 돗나물맛을 생각해요. 민들레잎 뜯으며 이 민들레잎에 서린 푸른 숨결 생각합니다. 차츰차츰 봉오리 단단하게 여무는 후박꽃 올려다보면서 이 후박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얼마나 고운 빛 우리 집에 드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늘쫑 뽑을 때에는 뽕뽕 소리와 마늘줄기에서 피어나는 싸한 냄새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소나무를 찍어 사진예술 빛낼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마늘밭에서 마늘쫑 뽑는 손길을 찍어 사진삶 나눌 수 있어요. 누군가는 골목길을 찍거나 도시 한복판을 찍어 사진문화 뽐낼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씨앗 한 톨 흙에 심으면서 사진꿈 펼칠 수 있어요.


..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억을 찍는 사진가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뒤처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감정을 사진을 빌어서 말하는 사람이라 여긴다 … 물론 여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것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향수지만, 모두와 함께 공유하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 간혹 이발소 주인은 반문한다. 당신 혼자 이 사진을 찍고 다닌다고 해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도 아닐 텐데 뭐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그렇다! 역사에 남을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  (154, 155쪽)

 

 


  사진은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관이나 스튜디오에서만 찍어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들에서도 밭에서도 찍는 사진입니다. 돌쟁이 아이를 찍어도 사진이고, 아리따운 모델을 찍어도 사진입니다. 가난한 나라 찾아가서 가난한 사람들 찍어도 사진이고, 여느 마을 여느 아이들 늘 마주하듯이 살포기 찍어도 사진입니다.


  미국 어느 우람한 도서관에 찾아가서 찍어도 사진이겠지요.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이들하고 그림책 읽으며 찍어도 사진이에요.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운동선수 찍어도 사진이겠지요. 우리 아이들 우리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두 장 찍어도 사진이에요.


  단추를 눌러 파일을 만들 때에는 아직 파일입니다. 파일 하나마다 이야기를 담아 나눌 수 있으면, 이때부터 사진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단추를 눌러 필름에 그림을 앉힐 때에도 아직 필름입니다. 필름 한 장마다 이야기를 얹어 함께할 수 있으면, 이때부터 사진이라는 이름을 얻어요.


  두툼한 책으로 파일이나 필름을 묶었다 해서 모두 사진책 되지 않습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보여주는 모습마다 이야기 새록새록 깃들지 않으면 사진책 되지 않아요. 으리으리한 전시장에 값진 틀로 끼워 내걸어 잔치마당 열어야 사진전시 되지 않아요. 사진 하나하나 이야기 감돌며 서로 얼크러져 한 동아리 흐름을 이룰 때에 바야흐로 사진잔치라는 이름 쓸 수 있습니다.


..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다져진 감수성으로 작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겪어 온 기억들을 소박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 예전에는 동네마다 다른 물맛이 있었기에 콩나물, 두부, 만두, 막걸리 등의 맛이 달랐다. 큰 공장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 무엇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  (101, 103쪽)

 

 


  김지연 님 사진에는 김지연 님 사진삶 있습니다. 김지연 님 사진에는 김지연 님 사진사랑 있습니다. 김지연 님은 이녁 사진꿈을 하나둘 보여줍니다. 김지연 님은 이녁 사진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어느 훌륭하다는 사진작가하고 닮아야 하는 김지연 님이 아닙니다. 어느 대단하다는 사진교수한테서 배워야 하는 김지연 님이 아닙니다. 사진기 다루는 손길이라든지, 사진작가 뒷이야기쯤이라면 사진학교에서 배울 수 있어요. 그러나,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 일구면서 다 다른 사진 사랑하는 길은, 늘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보면서 배워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삶이듯,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일구는 삶이듯, 날마다 새롭게 일구는 사진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김지연 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사진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한테서 사진을 배울 수도 없고, 다른 사람한테 사진을 가르칠 수도 없어요. 다만, 서로서로 다른 삶을 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을 마주하면서 저마다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고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마다 얼마나 다른 사진 태어나는가 하고 놀라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을 백 군데 있다면, 백 군데 물맛과 막걸리맛과 밥맛이 있어요. 사진작가 백 사람 있으면, 백 사람 사진맛과 사진삶과 사진사랑과 사진꿈이 다 다르겠지요. 백 가지 사진빛이 환하게 어우러져요.


  더 눈부신 사진 없고, 덜 환한 사진 없어요. 더 돋보이는 사진 없고, 덜 돋보이는 사진 없어요. 김지연 님은 언제나 김지연 님 삶을 추스르고 보듬습니다. 그럴밖에요. 김지연 님은 김지연 님 하루를 살아가는걸요. 김지연 님 사진을 사랑하고, 김지연 님 이야기를 김지연 님 손놀림과 눈썰미로 사진 하나에 싣는걸요.


..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만이 확장하고 변화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짓고 부수고, 흥하고 망하고, 절망과 희망을 노래한다 … 시골 정미소에서 더 이상 쌀을 빻지 않고 한 귀퉁이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장사를 하는 남자가 이야기했다. “시골에 사는 일이 가끔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고. 희망이라고는 없어요.” 그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81, 82쪽)


  사진책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눈빛,2013)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발자국을 432쪽에 걸쳐 그러모읍니다. 열 해 남짓 한 발자국을 고작 432쪽으로 갈무리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전주 ‘서학동 사진관’ 새롭게 일구는 손길과 꿈으로 지난 발자국을 찬찬히 갈무리합니다. 사진책 이름처럼 “작은 유산들”이 되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고, ‘작다’라느니 크다라느니 하는 모양새를 넘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유산’이라느니 무엇이라느니 하는 이름이나 틀을 아우르는 사진이요 삶이며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니까요. 사진유산 되어야 사진이나 유산이지 않아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에요. 사랑하는 삶일 때에 사진이고, 삶을 사랑하는 눈빛일 때에 사진입니다. 사랑으로 삶을 일구면서 사진을 사랑스레 일구고, 삶을 사랑 가득 채우면서 사진에 얹는 이야기를 온통 사진으로 채웁니다.


  사진을 찍으면 기록이 될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글쎄, 사진을 찍으면 기록이 될까요? 아마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삼을 수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남겨요.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며 꽃노래 흐드러지게 부릅니다. 김지연 님 사진찍기는 어떤 삶짓기일까요. 김지연 님은 어떤 삶노래 부르고 싶어 사진하고 살갑게 사귀는 하루를 누릴까요. 김지연 님은 삶을 어떻게 사랑하기에 사진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이처럼 적바림하고 싶을까요. 4346.4.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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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의 호흡,같은 훌륭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오월에는 이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을 소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야겠습니다.
늘 좋은 글과 좋은 책들 좋은 사진들..감사드려요. *^^*

숲노래 2013-04-29 21: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김지연 님이 그동안 내놓은 여러 사진책 이야기를
한 자리에 그러모았어요.

김지연 님 다른 사진책을 하나하나 사서 모아도 좋고
(저는 도서관을 하니까 그렇게 합니다 ^^;;)
이 도톰한 작은 책 하나로
열 몇 해 발자국을 찬찬히 살펴도 좋아요.

사진 좋아하거나 사진길 걷고 싶은 분들은
이 책으로 여러모로 좋은 생각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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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5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진
―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오오타 야스스케 사진·글,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2013.3.10./11000원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1984년인가 1985년이었는데, 담임 교사가 인천하고 서울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줍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처음 설 적, 어느 사람이 ‘서울(수도)’로 삼을 곳으로 마땅한 자리를 알아보며 인천이 참 좋겠다 여기며 멧자락 숫자를 세는데, 인천은 꼭 구백아흔아홉 개 있었답니다. 멧자락 천 개 되어야 비로소 서울로 삼겠는데 아무리 세어도 하나 모자라는 바람에 안 되겠다며 접고는, 다른 자리 알아보며 오늘날 ‘서울’을 서울로 삼았다고 해요.


  어릴 적 이 이야기 들으면서 믿거나 말거나 아니겠느냐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 그러네 하고 여겼습니다. 이 이야기 아니더라도 인천은 멧자락 많아요.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높은 멧자락 아니지만, 나즈막한 멧자락 참 많아요. 높다란 멧자락 아니니 쉽게 올라가서 놀 만합니다. 높다란 멧자락 아니지만, 얕은 뒷동산이라 하더라도 꼭대기나 언덕받이에 오르면 동네를 훤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느 동네이든 계단이 참 많습니다. 계단 많고 비탈길 많다 보니, 헉헉거리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뒤를 문득 돌아보면 이제껏 올라온 계단길 내려다보입니다. 새삼스럽게 동네를 다시 살펴봅니다. 높은 멧자락 오르면 얼마나 멀리 바라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높디높은 멧골에서는 얼마나 머나먼 데까지 환하게 바라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꼭대기 집 언저리에서 놀 적하고, 아래쪽 집 둘레에서 놀 적하고 바람맛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트이는 눈길도 다르지만, 마시는 바람과 먹는 햇살도 다르다고 느낍니다. 다만, 어릴 적에는 이렇게만 느꼈어요. 더 깊이 내다보지는 못했어요.


.. 구조 활동을 하면서 현장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나 올리던 조용한 블로그가 비참한 사진으로 채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후쿠시마에서 본 비참한 개와 고양이는 사고만 없었다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을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버려지고 굶어죽는 비극의 주인공일 리가 없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본에는 원전이 54기나 있다. 원전에 대해 모두 침묵해 버리는 비정상적인 이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  (5∼6쪽)

 


  국민학교를 다니며 동무들하고 골목길에서 놀며 골목 구석구석에서 돋는 풀이나 꽃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꽤 많이 보았어요. 공놀이를 하면서, 구슬치기를 하면서, 땅금놀이를 하면서, 곳곳에서 자라는 풀이나 꽃은 으레 보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쳤어요. 민들레쯤 되어야 꽃이 피는 줄 깨닫고, 다른 조그마한 꽃은 꽃인 줄조차 못 느꼈어요.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새벽에 학교로 붙들리고 늦은 밤 열한 시에야 비로소 학교에서 놓여나니, 골목길 거닐어 학교를 오갔어도, 골목마다 피어나던 골목꽃을 살피지 못했어요. 골목꽃뿐 아니라 골목나무도 못 알아보았어요. 골목사람들 빨래 너는 눈부신 빛깔을 깨닫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마치고 고향인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지내고, 충청도 멧골로 들어가서 살았어요. 이러다가 서른 몇 살 즈음 되어 인천으로 돌아왔어요. 열아홉 살에 떠난 고향을 서른서너 살 즈음 돌아왔는데, 열너덧 해 사이에 달라진 모습보다는 열너덧 해 동안 고스란히 이어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참 많이 보았어요.


  그동안 달라진 모습이라면, 내 어릴 적 나처럼 골목을 뛰놀던 아이들이 거의 몽땅 사라진 대목이에요. 이제 아이들은 집에서 자라지 않아요. 이제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자라요. 이제 아이들은 동네에서 놀지 않아요. 이제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공부방에서 놀다가는, 집으로 바삐 돌아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쳐다봐요.


  그동안 안 달라진 모습이라면, 골목꽃 골목나무 골목빨래 골목집 골목문패처럼, 골목사람 삶자취입니다. 그리고, 빈집이 하나둘 늘면서 골목밭이 넓어져요. 빈집을 헐고 돌과 쓰레기를 골라서 골목밭을 일구더군요. 요즈음 인천 골목동네에서 아이들 만나기란 참 힘들지만, 다른 도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고즈넉하면서 어여쁜 빛깔과 무늬는 쉽게 마주할 수 있어요.


.. 교차로에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선뜻 다가오는 녀석. 목걸이를 하고 있는 개. 누군가가 키우던 개였을 것이다. 일단 배를 채우라고 사료를 내밀자 입에 슬쩍 댔다가 이내 내게 기대 온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컸던가 보다 … 돼지 축사는 더 끔찍했다. 겹겹이 쌓인 돼지 사체 사이로 간신히 살아남은 돼지가 보였다. 살아남은 돼지들은 서로 의지하며 힘없이 조용히 기대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버려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생명들 … 오래전부터 인간은 가축을 사육해 왔다. 나도 고기를 먹어 왔고,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지옥을 만든 것은 원전 사고이다. 그러나 이 지옥을 만든 것은 근본적으로 원전을 만든 인간이다 ..  (17, 34, 54쪽)

 


  고향사람으로서 찍는 사진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동네사람으로서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곳이라서 더 애틋하게 찍는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살아가는 곳이라서 즐겁게 살내음 부비면서 찍는 사진이라고 느껴요.


  고향이나 ‘살아가는 동네’가 아닌데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이때에는 다큐사진이 될까요. 관광사진이나 여행사진이 될까요. 아니면, ‘구경하는 사진’이 될까요.


  고향이니까 더 예쁘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네이니까 더 아리땁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고향이 아니니 아무렇게나 찍어도 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네가 아니니 함부로 찍어도 되지 않습니다.


  고향인 곳이든 처음 찾아간 곳이든, 언제나 똑같은 마음결 되어 찍어야 사진이 됩니다. 살아가는 동네이든 마실하며 찾아간 동네이든, 늘 똑같은 마음자락 되어 찍어야 사진이 되지요.


  내가 이름을 아는 아무개를 찍어야 활짝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찍지 않아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아무개를 찍으니 방긋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못 찍지 않아요. 그러나, 내가 이름을 아는 아무개라 하지만 속삶과 속내와 속사랑을 사진으로 못 찍기도 해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아무개라 하더라도 속삶과 속내와 속사랑을 사진으로 알뜰히 찍기도 해요.


.. 가사오무라는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펼쳐진 논밭 사이로 깨끗한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일본의 풍경 그대로인 곳이다. 그런데 워너전으로부터 30킬로미터 이내인 이 마을이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지정되어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가 버렸다. 목가적인 전원마을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40쪽)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삶을 일구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귀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서울사람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제주마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부산골목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강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강진시골을 더 잘 찍지 않아요.


  살아가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과 사진을 읽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누구하고 살아가려 하느냐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이 빚은 사진책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책공장더불어,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어떤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어떤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에서 들짐승이나 집짐승을 찾아다녔을까요.


  후쿠시마에는 사람이 싹 사라졌습니다. 죽어서 사라지기도 했고, 죽고 싶지 않아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후쿠시마에서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아니, 후쿠시마에서는 사람들 얼굴이나 몸짓은 몽땅 사라졌고,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과 손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살던 짐승들, 사람들이 고기로 먹으려고 키우던 짐승들, 또 사람들 손길을 받으며 자라던 나무와 사람들 손길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스스로 숲을 이루고 들을 이루던 풀을 살펴볼 수 있어요.


.. 나는 계속 용서를 빌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게 지금 죽어 가는 소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신음하듯 울부짖으며 셔터를 눌렀다 … 돼지들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가져간 개 사료를 주며 기운 차리고 살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다음날 밤에 가 보니 모두 살처분 당해 있었다 ..  (56, 98∼99쪽)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 이야기를 오늘 사진으로 찍습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오늘 모습을 오늘 그림으로 그립니다.


  어제를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모레나 글피를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꼭 오늘 모습만 사진으로 찍습니다.


  웃는 얼굴이건 찡그린 얼굴이건, 바로 오늘 짓는 얼굴빛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웃음을 찍든 눈물을 찍든, 바로 오늘 찍는 사진이에요.


  외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울부짖는 외침을 찍는 사진입니다. 노래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따사롭고 포근하게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밥을 짓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하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아이들 품에 안아 자장자장 재우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꽃을 바라보듯이 찍는 사진이요, 나무를 쓰다듬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붙잡아서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밭에서 자라나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다스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결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보듬으며 찍는 사진입니다.


.. 이 시대 원전 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이다. 원전이 없으면 정말 전력 대란을 맞을까? 원전이 멈춘 일본에서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했다. 에너지에 의존해서 살던 우리 삶의 방식,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할 때이다 ..  (132∼133쪽)

 


  삶을 생각하기에 사진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사진을 사랑합니다. 삶을 생각하지 못하면 삶을 속속들이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 삶을 따사롭거나 넉넉하거나 즐겁거나 곱게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오오타 야스스케 님은 후쿠시마에 ‘남겨져야’ 하던 짐승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빚어서 내놓습니다. 이 책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이 책을 읽을까요. 구경하는 사진찍기 아닌 살아가는 사진찍기로 책 하나 태어났어요. 구경하는 사진읽기 아닌 살아가는 사진읽기로 이 책 하나 만날 수 있는가요. 구경하는 삶읽기 아니요, 스쳐 지나가는 사랑읽기 아닌, 어깨동무하는 삶읽기와 손 맞잡는 사랑읽기로 이 책 하나 만날 수 있나요.


  후쿠시마 짐승들도, 후쿠시마 사람들도, 이 나라 짐승들도, 이 나라 사람들도 모두 한 가지를 바라요. 다 함께 어깨동무하며 사랑할 수 있는 삶을 바라요. 서로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따사로운 삶 이룰 수 있기를 꿈꾸어요. 사진 하나로 빛을 살리고, 글 한 줄로 빛을 살찌웁니다.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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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아빠 아기동물 사진 그림책 4
우치야마 아키라 글 사진, 이선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0

 


사진을 찍는 아버지 마음
― 고마워요, 아빠
 우치야마 아키라 글·사진,이선아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2002.3.15./7500원

 


  큰아이 낳을 적과 작은아이 낳을 적을 돌아봅니다. 2008년 8월과 2011년 5월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이들 태어나고부터 이제껏 깊이 잠잔 적은 하루도 없습니다. 언제나 토막잠을 자고, 늘 자다 깨곤 합니다. 2013년 올해에 석 돌을 꽉 채울 작은아이도 곧 밤오줌 가릴 때가 될 테니, 작은아이가 밤오줌 가리고 나면, 드디어 밤잠을 조금 느긋하게 누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을 먹이고 이를 닦이면서 작은아이 이를 살피니, 앞으로 한 달 사이에 위아래로 어금니 다 날 듯합니다. 이렇게 되면, 작은아이도 스스로 밥을 씹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두 팔 번쩍 치켜들며 만세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금니 난대서 아이돌보기가 끝나지 않아요. 하나하나 새롭게 마주하며 새롭게 즐겁습니다. 작은아이가 ‘엄마 어머니 아빠 아버지’ 같은 말을 차츰 배우는 모습 즐겁고, 작은아이 스스로 신을 꿰려 용을 쓰는 모습 즐겁습니다. 배고픈 작은아이가 허둥지둥 밥그릇에 달라붙는 모습 예쁩니다. 밥상을 차리면 작은아이가 먼저 밥상 앞에 착 달라붙어 무릎 꿇고 앉아서는, “누우나!” 하고 부릅니다. 얼른 와서 같이 먹자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밥을 차리는 동안 작은아이는 눈 동글동글 빛내며 기다립니다. 더 어릴 적에는 안 기다리고 손을 뻗어 낼름낼름 했지만, 이제는 밥상 다 차려서 아버지가 “밥 먹자!” 하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뿐 아니라, 밥상 다 차리면 식구들을 불러요.


  작은아이는 세 살이지만 아직 스스로 신을 잘 못 뀁니다. 으레 큰아이가 도와줍니다. 아버지가 밥이랑 국 끓이면서 이것저것 부산하면 큰아이한테 동생 쉬 누여 달라고 말합니다. 큰아이는 동생 쉬 잘 누여 줍니다. 동생 옷도 입힐 줄 알고, 옷가지 갤 줄 알며, 동생이 물 쏟은 바닥을 걸레로 닦을 줄 압니다. 서로서로 같이 잘 놀고, 같이 잘 놀다가 툭닥거리고, 툭닥거리다가도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새롭게 놉니다.


  이 모든 모습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실컷 누립니다. 어린이집 교사나 유치원 교사라면 이러한 모습을 날마다 즐겁게 부대낄 테지요. 초등학교 교사도 아이들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나날이 기쁘게 맞이할 테지요. 하루에도 숱하게 자라고, 그때그때 새롭도록 눈망울 밝히면서 어여쁜 이야기꽃 피웁니다.


  아이들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두 아이 앞에서 어버이요 아버지 자리에 있으나, 나도 서른 몇 해 앞서는 내 어버이한테 아이로 있었어요. 나 또한 갓난쟁이와 아기와 어린이 나날 누리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어린이 삶자락 고스란히 있어요. 나는 어른마음이면서 어린이마음입니다. 곧, ‘옹근 사람마음’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이 자라듯 어른들도 자라지요. 아이들이 크듯 어른들도 크지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나란히 큽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도 몸과 마음이 함께 커요. 어른들은 키는 더 크지 않을 테지만, 아이들 안고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놀리고 함께 다니고 하면서 손목과 발목과 팔뚝과 허벅지가 차츰 단단히 여뭅니다. 어버이로 지내는 사람들은 누구나 몸과 마음이 새삼스레 자라요.

 

 

 

 

 

 


  우치야마 아키라 님이 빚은 사진책 《고마워요, 아빠》(웅진주니어,2002)를 봅니다. 남극에서 ‘황제펭귄’ 삶을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펭귄 가운데에서도 황제펭귄 삶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기나긴 해 꿈꾸며 기다렸다고 해요. 우치야마 아키라 님은 들짐승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은 지 서른 해 지나고서야 비로소 남극으로 찾아가 황제펭귄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꿈속에서까지 보았던 어린 새끼를 발견한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얼음 바닥에 납작 엎드려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렌즈 속의 새끼 펭귄도 나를 보고 웃음짓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열흘 동안, 눈보라가 치고 필름이 찢어질 만큼 추운 날도 있었지만 하루 중 언제든 마음이 내킬 때면 펭귄 서식지로 펭귄을 만나러 갔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웃고 얼마나 눈물 흘리며 황제펭귄 식구들 삶을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어미 황제펭귄이 새끼들 낳아 돌보는 모습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들 삶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아름답다고 느꼈을 테지요. 그러니까, 이 사진책 《고마워요, 아빠》에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알뜰히 갈무리할 수 있겠지요.


  나는 펭귄이든 황제펭귄이든 잘 모릅니다. 나는 남극까지 가 보지 못했고, 남극 안쪽 깊은 곳에서 황제펭귄이 새끼를 낳아 돌보는 데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황제펭귄을 만나려고 남극기지에서도 비행기로 여섯 시간이나 날아서 깊숙한 데까지 들어갔다고 하니, 참말 황제펭귄은 조용하고 고즈넉하며 정갈한 터전에서 새끼를 낳아 돌보는구나 싶어요.


  우치야마 아키라 님은 “황제펭귄은 극한 속에서 새끼를 키웁니다. 수컷은 새끼를 기르는 4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암컷은 추위를 무릅쓰고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먹이를 구하러 갑니다. 이 책을 통해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내는 황제펭귄의 생활력과 깊은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컷 황제펭귄이 넉 달 동안 아무것 안 먹으며 새끼를 돌본다 하는군요.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암컷 황제펭귄은 무엇인가 먹을까요? 먹이를 찾은 다음 먹이를 조금 먹고 나서 새끼한테 먹이를 건넬까요?


  너무 마땅한 일이라고 느끼는데, 수컷과 함께 암컷도 아무것 안 먹으며 넉 달에 걸쳐 새끼를 돌보리라 생각합니다. 암컷은 먹이를 찾아 입에 물고 돌아오더라도 이녁 몫으로 한 점조차 안 먹으며 통째로 새끼한테 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와 옆지기도 이와 같거든요. 아이들한테 먼저 밥을 주지, 어버이가 먼저 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밥상을 차리면, 작은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밥과 반찬을 잘근잘근 씹어서 다 먹여야 비로소 내 밥을 먹지, 내 밥 먹으면서 작은아이 밥을 먹이지 못해요. 큰아이 낳아 돌볼 때에도 이와 같았지요. 큰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챙겨서 먹입니다. 큰아이가 배부르게 다 먹었구나 싶어야 비로소 내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다가 내 어린 날 내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곤 해요. 그래, 내 어머니도 나한테 밥을 먹이려고 당신 밥은 늘 뒷전이었어요. 내가 다 먹고 나서야 어머니도 밥술을 들었어요. “어머니 밥 드셔요.” 하고 여쭈면, 어머니는 “너나 먹어.” 하고 대꾸했지요.


  지난날,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한테 사랑을 먹입니다. 사진을 찍는 아버지 마음이란, 아이들 예쁘장한 모습을 예쁘장하게 찍는 마음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는 나날을 사랑스러운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하려는 마음이 되어 사진을 찍습니다. 4346.4.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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