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를 쏘다 - 안티기자 한상균의 사진놀이
한상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42

 


사진을 읽는 길
― 고릴라를 쏘다
 한상균 글·사진
 마로니에북스 펴냄,2012.10.15./15000원

 


  연합뉴스 사진기자 한상균 님이 쓴 《고릴라를 쏘다》(마로니에북스,2012)를 읽습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어 매체에 실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지난 2012년에 한상균 님이 내놓은 책은 ‘사진찍기’ 아닌 ‘사진읽기’를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한상균 님 스스로 사진을 어떻게 읽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놀이라면 재밌어야 하지 않을까요(18쪽)?” 하는 말처럼, ‘사진놀이’일 적에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놀이’이니까요. 노래놀이가 되든 그림놀이가 되든 글놀이가 되든 춤놀이가 되든, 놀이일 적에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를 꽃피우고 재미를 나누는 놀이예요.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서로 재미있자고 합니다. 공놀이도 씨름놀이도 함께 재미있자고 해요. 죽자 사자 겨루면서 누가 이겨야 하는 놀이가 아니에요. 곧, 사진놀이일 적에는 서로 재미있는 길을 찾으면서, 사진이란 이렇게 재미나구나 하고 깨닫자는 뜻입니다. 1등이나 꼴등 따로 없이 어느 사진이든 재미있게 놀자는 뜻입니다.


  사진놀이 아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사뭇 다릅니다. 사진놀이에는 놀이라는 이야기가 함께 따르지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놀이가 따를 수 있기도 하지만 일이 따를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삶이 따릅니다.

 

 

 


  놀이와 일과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곧, 사진이라 할 때에는 즐거움입니다. 삶도 일도 놀이도 즐겁게 나누자는 뜻이요, 삶과 일과 놀이 되어 어우러지는 사진이란,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가진 카메라에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과 일상이 주로 담기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러이러한 사진은 나쁜 사진이라는 틀을 가지고 시작하면 나중에도 그 습관을 벗어던질 수가 없습니다 … 매우 개인적인 것이 사진입니다. 그냥 자기 사진이 있을 뿐입니다(69쪽).” 하는 말을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 사진기로는 이녁 여느 삶을 담겠지요. 그런데, 더 생각해 봐요.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여느 삶(일상)’이 아닐까요? 사진기자가 찾아다니는 취재 현장은 ‘여느 삶터’가 아닐까요? 바로 오늘 어떤 일이 터져 어떤 현장이 되었다지만, 바로 이곳은 조금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삶터였어요.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운동선수이건 처음부터 국회의원이었거나 대통령이었거나 운동선수가 아니었어요. 모두 여느 사람이었어요. 여느 아기로 태어나 여느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곰곰이 따지자면,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도 ‘여느 삶’을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기자가 찍는 ‘여느 삶’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이 쳐다보는 매체에 실린다뿐입니다.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매체 보도’가 되어 ‘보도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속살을 파헤치면 모두 똑같은 ‘여느 삶’을 보여주어요. ‘여느 삶’에서 ‘보도가 될 이야기’를 새로 얻는다고 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여느 사진기로 여느 삶을 찍는 여느 사람인 우리들은 ‘여느 이야기’를 일굽니다. 여느 이야기에서 여느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여느 사랑에서 여느 꿈과 여느 마음을 가꾸지요.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궁한 가능성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결코 ‘뭘 찍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찍지?’의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75쪽).” 하는 말마따나,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우리 여느 삶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즐겁게 찍는 사진은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기에 즐겁게 나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찍는 사진이라면 억지로 읽어야 해요. 억지로 꾸미거나 만든 사진일 때에는 억지로 읽어내거나 억지로 비평하거나 억지로 문화나 예술 이름표를 붙이고 말아요.


  무엇을 찍느냐? 바로 우리는 우리 삶을 찍습니다. 무엇을 찍느냐? 사진기자는 기자로서 매체에 담을 삶을 찍습니다. 이이가 찍거나 저이가 찍거나 모두 삶을 찍어요. 이 사람이 찍었기에 대단한 사진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찍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진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찍을 때에 즐겁게 읽을 만한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찍지 않을 때에는 겉보기로 그럴듯한 모습만 나타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 등을 잘 이용해서 색감, 구도 등이 잘 나온 사진을 찍었다면 그게 적어도 나쁜 사진은 아니겠지만 잘 찍은 사진이 꼭 좋은 사진일까요(120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각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을 잘 살펴 찍은 사진은 “조리개 잘 살핀 사진”이거나 “셔터스피드 잘 맞춘 사진”이거나 “감도 잘 맞춘 사진”이거나 “렌즈 화각 잘 살핀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사진이고 좋은 사진이고가 아닌,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색감, 구도 들이 잘 나온 사진”이라면 “색감이 잘 나온 사진”이거나 “구도가 잘 나온 사진”이지요. 이런 사진을 놓고 좋은 사진이라거나 나쁜 사진이라 할 수 없어요.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흉내낸 사진은 흉내낸 사진입니다. 스스로 찍은 사진은 스스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랑스레 찍은 사진은 사랑스러운 사진이에요.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은 활짝 웃는 이야기 담은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할 때에 좋아할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낄 때에 아낄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못하거나 아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남이 해 주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단추를 눌러요. 스스로 바라봅니다. 스스로 느껴요. 스스로 삶을 이룹니다.


  한상균 님이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는 “여행이 좋아 사진을 찍는다면 모를까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간다면 말에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그냥 출사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네요(194쪽).”와 같은 말마디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좋아할 때에 사진을 좋아할 수 있어요. 스스로 꿈을 꿀 때에 사진을 꿈꿀 수 있어요. 스스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진으로 이야기를 빛낼 수 있어요.


  그럴듯한 모습에 사로잡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남이 찍은 모습을 흉내내서는 내 사진을 이루지 못해요. 다른 사람 삶을 뒤꽁무니 쫓는대서 내 삶이 나아지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없듯, 나는 늘 내 사진을 생각하고 찾으며 즐길 뿐입니다. 내 삶을 내가 빛내어 누리듯, 내 사진을 내가 빛내어 누립니다. 사진을 읽는 길이란, 삶을 읽는 길입니다.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일구는 사람은, 사진을 스스로 웃음꽃으로 피웁니다.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얘들아, 학교 가자
안 부앵 지음, 오렐리아 프롱티 그림, 선선 옮김, 상드린.알랭 모레노 사진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2

 


어린이한테 사진을 보여주는 마음
― 얘들아, 학교 가자
 안 부앵 글,상드린·알랭 모레노 사진,오렐리아 프롱티 그림,선선 옮김
 푸른숲 펴냄,2006.12.15./18800원

 


  모두 서른 나라에서 저마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가 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 《얘들아, 학교 가자》(푸른숲,2006)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은 ‘상드린·알랭 모레노’ 두 사람은 마흔여덟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사진책에는 서른 나라 학교 모습을 담는데, 사진작가 두 사람이 다니지 않은 나라는 다른 여러 사진작가들 사진으로 넣어요. 이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강제훈 님 사진도 두 장 함께 들어갑니다. 한국(남녘) 학교를 다루는 자리에서는, 글을 쓴 ‘안 부앵’ 님이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물을 튕기며 놀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오솔길에서 다람쥐를 쫓으며 뛰고 걸었던 학교 가는 길을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시골 아이들의 고향이자, 이 시대 모든 어른이 그리워하는 마음속 고향이 사라지고 있어요(4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국 학교는 ‘시골에서 사라지는 작은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참말 시골학교는 작습니다. 시골에서도 읍내에 있는 가장 큰 초등학교는 도시 초등학교 못지않은데, 읍내를 벗어난 면소재지 초등학교 가운데에는 전교 학생이 열이나 아홉이나 열하나인 데가 많아요. 이런 학교는 머잖아 문을 닫아요. 그러고는 더 큰 면소재지에 있는 더 큰 학교로 노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한국땅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더 큰 도시’로 가도록 길들어요. 시골을 떠나는 삶에 길들고, 도시바라기를 하는 삶에 길듭니다. 시골학교에서는 시골살이를 안 가르칩니다. 시골에서 이웃들이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을 만지는 삶을 안 가르쳐요. 그런데, 도시에서도 이와 똑같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사람들 시골살이를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이 나라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이 나라 어른들은 학교를 어떻게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얘들아, 학교 가자》에는 한국 이야기가 한 꼭지 깃들지만, 머잖아 이러한 사진책에 한국 이야기가 함께 담기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초등학교 적부터 학원 뺑뺑이를 하거나 인터넷게임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꼭지 깃들는지 모르지요. 제 빛을 잃는 한국이요, 제 빛을 찾지 않는 한국이며, 제 빛과 스스로 동떨어지려는 한국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학교다울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는,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대학교는 저마다 어떤 곳일 때에 학교답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어떤 구실을 할 때에 아름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줄 때에 아름다운 어른이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떤 학교를 어떤 꿈과 사랑을 담아서 지을까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거나 어떤 이야기를 누릴까요. 시골과 도시에서 살아갈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으로 자랄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얘들아, 학교 가자》 끝자락에는, 책에 사진을 담은 ‘어른(사진작가)’들 짧은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 말을 살피면서, 이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어떤 사진을 어떻게 보여주려 했는가 하는 마음을 돌아봅니다. 먼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해 보려 애썼고요 … 우리는 이 글과 사진들이 그 아이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해 주었기를 바라요(상드린·알랭 모레노).”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한국에는 어떤 고유한 문화가 있고, 한국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고유한 한국 문화’를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고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온통 대학입시에만 파묻힌 한국 학교 아닌가 싶어요. 한국사람다움을 배우기 어려운 학교라 할 텐데, 집이나 마을에서도 한국사람다움을 느끼거나 마주하거나 배우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이들의 눈이 되기 위해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저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프랑세스코 아세르비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내 눈’을 북돋우겠지요. 나 스스로를 바라보고 내 이웃을 살펴보는 눈을 살찌우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내 눈’으로 ‘내 삶’을 얼마나 바라볼 만할까요. 아이들이 바라볼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인가요. 사랑스러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 문화인가요. 고속도로만 씽씽 달리려는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바라볼까요. 아파트만 더 높이 새로 짓는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살펴볼까요.


  “사진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저 너머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지요(필립 앙드리외).”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조차 제대로 살피기 힘든데, 오늘 이곳을 넘는 꿈나라나 사랑나라는 얼마나 헤아릴까 알쏭달쏭합니다. 꿈이 아닌 직업전선을 생각해야 하고, 사랑이 아닌 현실안주에 파묻혀야 하는 아이들 아닌가 싶어요.


  텔레비전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나요. 인터넷과 손전화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알려주나요.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나요. 문학책과 인문책은 아이들한테 어떤 빛이 되나요. 사진은 또 아이들한테 어떤 삶벗이나 길벗이나 이야기벗이 될 수 있나요.

 

 


  사진을 찍은 어느 한 분은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사실 전 앞으로 제가 어떤 것을 발견할지, 어떤 것을 사진에 담게 될지 알지 못해요(마트 자코브).”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른이지만 어른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을는지 모른다’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모습이 펼쳐질는지, 어떤 이야기가 스며들는지, 두근두근 설레면서 맞이한다는 뜻이에요.


  삶은 기쁨이에요. 날마다 새로운 빛이 드리우는 기쁨이에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기쁨을 한 장 담습니다. 삶은 노래예요. 언제나 눈부시게 환한 노래예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노래를 두 장 싣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기쁘게 웃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노래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내 둘레 사람들은 기쁜 웃음을 나누어 받습니다. 사진을 담는 사이 내 곁 삶벗과 길벗한테 환한 노래 눈부시게 퍼집니다.


  “사진은 달라요. 사진작가는 사람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어야 해요 …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사진작가는 사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어야 하는 유일한 직업이거든요(그레구아르 코르가노).”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모두 이야기예요.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과 풀과 나무가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푸른 숨결 뿜으며 지구별을 포근히 감싸듯, 글과 그림과 사진은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뜰히 밝힌다고 느껴요.

 


  사진을 찍자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나 집이나 숲이나 목숨들 앞에서 사진작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합니다. 글을 쓸 적에도, 글로 쓰려는 이야기에 나올 사람이나 집이나 숲이나 목숨들 앞에 이녁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찍지 못하는 사진이고, 구경꾼일 때에는 쓰지 못하는 글이며, 구경꾼이라면 그리지 못하는 그림입니다. 어깨너머로 구경할 바에야 사진기 들 까닭이 없어요. 귓동냥으로 들으려면 연필 쥘 까닭이 없어요. 호박씨 까듯 흐르는 뒷말이라면 붓을 잡을 까닭이 없어요. 사랑스러운 삶으로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다운 삶이라고 느껴 글로 엮습니다. 즐거운 삶으로 함께 누리면서 그림으로 옮깁니다.


  아이들한테 사진을 보여준다 할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모습을 찍어서 보여줍니다. 아이들한테 글을 읽힌다 할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사랑스레 살아갈’ 모습을 엮어서 읽힙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을 내보일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즐겁게 누릴’ 모습을 꿈꾸면서 내보입니다.


  “사진을 마구 찍어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카나카 민중학교가 바로 그러했어요. 제가 찍어야 할 사람들이 작가인 저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고, 나아가 제 작업이 진정한 참여의 중거로 남아야 했기 때문이지요(장 프랑수아 마랭).”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사진은 한 장을 찍어도 되고, 백 장을 찍어도 되는데, 굳이 한 장조차 안 찍어도 됩니다. 사진은 열 장을 찍어도 모자랄 수 있고, 천 장이나 만 장을 찍었는데 모자랄 수 있어요. 적게 찍었기에 모자라지 않고, 많이 찍었기에 쓸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찍는 사진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만나느냐 하는 대목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내려다보는 사진이라면? 올려다보는 사진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사진이라면? 문득 들여다보는 사진이라면?

  사진을 찍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라도, 어린이와 어른은 누가 더 높거나 낮을 수 없습니다. 서로 같은 자리에 섭니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함께 웃고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을 어른이 찍는 사진에서도 서로 같은 자리에 설 때에 참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납니다. 어른이 어른을 찍는 사진에서도 나란히 어깨동무를 할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사진이 샘솟는구나 싶어요.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함께 웃고 같이 노래할 적에 환하게 빛나는 눈부신 사진 한 장 얻어요. 어린이한테 사진을 보여주려 하는 어른은, 내 이웃과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도록 돕고픈 따사로운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 강제윤 시인의 풍경과 마음
강제윤 지음 / 호미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41

 


걸으며 찍는 사진으로 길동무
―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강제윤 글·사진
 호미 펴냄,2013.6.10./16000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사진을 못 찍습니다. 꽃씨를 심어 꽃을 돌보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꽃을 좋아합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꽃씨를 못 심고 꽃을 못 보지요.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자가용을 좋아해요.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모는 사람은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라면? 네, 두 다리를 좋아하니까 천천히 걷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천천히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면서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쬡니다.


  고기를 좋아하니 돼지고기이든 물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먹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고기를 길러서 잡아먹지는 못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몇몇 사람만 스스로 집짐승 키우면서 손수 잡아먹을 뿐입니다. 풀을 먹는다는 채식꾼도 이와 같아요. 손수 집에서 풀을 돌보면서 풀을 먹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적잖은 채식꾼은 가게에서 풀을 사다 먹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니 집짐승 키우거나 풀을 돌보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소고기 좋아한다면 소가 풀을 뜯을 만한 숲이나 골짜기나 들이 있어야 할 텐데, 도시에서는 이런 숲과 골짜기와 들을 누리지 못해요. 물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못이나 시내나 바다를 누리지 못하지요. 풀을 좋아하는 이들도 텃밭을 마땅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리하여, 도시에서 무엇 하나 좋아하면서 즐기는 사람은 ‘제대로’ 누리거나 즐기지 못해요. 왜냐하면, ‘마지막(결과)’ 자리에서 고기를 굽거나 풀을 헹구어 먹기만 하니까, 새끼부터 키우는 집짐승이랑, 씨앗부터 돌보는 풀을 알지 못해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어린 집짐승이 자라는 결을 살피지 못하고, 풀씨 하나 떡잎 돋고 줄기 오르는 아름다운 흐름을 마주하지 못해요. ‘먹기’에서만 그치지 말고 ‘기르기’와 ‘돌보기’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아끼기’와 ‘사랑하기’로도 나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이렇게 해야 저마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오롯이’ 누리거나 즐기면서 우리 삶이 다 다른 곳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어우러지는가를 환하게 느낍니다.

 

 

 


  섬마실꾼이라 할 강제윤 님이 섬마실 다니면서 느낀 이야기를 시와 사진으로 갈무리한 책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를 읽습니다. “여행의 목적지”라고 책이름을 적습니다만, “여행하는 목적지”라든지 “여행을 가는 곳”이라는 뜻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행을 가는 곳이 여행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길을 나서는 곳이 길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선 이 길이 바로 마실길이요 삶길이라는 뜻이에요. “파도 속에서는 파도가 되고, 바람 속에서는 바람이 되어 가라. 그대는 마침내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다(30쪽).” 같은 말마따나, 바람을 맞는 곳에서는 바람이 됩니다. 초피나무에 앉아 초피 열매 쪼아먹는 멧새는 초피나무가 됩니다. 초피잎에 알을 낳아 초피잎 먹고 자라다가 번데기로 여러 날 잠든 뒤 깨어난 범나비는 초피잎 되겠지요. 눈부신 날개마다 초피잎 갉아먹은 내음과 결과 무늬가 알알이 깃들어요.


  바람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스스로 바람이 되면 됩니다. 바다를 사진으로 찍고 싶을 때에는 스스로 바다가 되면 되어요. 강제윤 님은 스스로 섬이 됩니다. 스스로 섬이 되어 섬을 노래하고 섬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섬에서 만난 할매와 할배를 생각하는 강제윤 님은 문득 “자기가 사는 마을의 동구 밖도 나가 보지 못한 노인마저 은하 여행자인 것이다(38쪽).” 하고 말합니다. 여행이란, 비행기를 타고 티벳이나 부탄쯤 가야 여행이 되지 않아요. 아궁이에 지필 불을 헤아려 땔감을 마련하고자 멧골에 들어가 나무를 하고 지게에 얹어 내려오는 길도 여행입니다. 할매가 군불 지피면서 솥에 물을 맞추어 밥을 끓이느라 부엌과 마당을 오가는 길도 여행입니다. 문간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나날도 여행이지요. 여행하는 사람만 나무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기지 않아요. 마을 할매와 할배도 먼산바라기를 하고 하늘바라기를 하며 구름바라기를 하면서 생각에 잠겨요. 이 모두 여행입니다.


  곧, 여행이란 삶입니다. 삶은 여행이고, 다시 삶은 삶이며 여행은 여행이겠지요.

 

 

 


  “집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바쁘게 걷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시 속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길가의 풀과 나무와 들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새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걷는다면, 또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풍경을 놓친다면, 길에 얽힌 이야기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대체 이 자연의 길을 걷는 의미는 무엇일까(40쪽).”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서 자가용을 씽씽 달리기만 해서 어떤 사진을 찍겠습니까. 시를 쓰고 싶다면서 비행기 걸상에 앉기만 한다면 어떤 시를 쓰겠습니까.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면서 텔레비전만 멍하니 들여다본다면 어떤 사랑을 노래하겠습니까.


  걸어야지요. 움직여야지요. 생각해야지요.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빗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 말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삶을 삶결 그대로 마주하면서 느낄 때에 비로소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면서 찰칵 소리 내며 단추를 누릅니다.


  강제윤 님은 “천사 날개가 그려진 벽화 앞에 서면 누구나 천사가 된다. 구름 뜬 하늘 그림 앞에서는 누구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49쪽).” 하고 말합니다. 그럼요. 마음에 따라 몸이 바뀌는걸요. 마음에 따라 사진이 바뀌고, 마음에 따라 시와 노래와 춤이 모두 바뀌어요. 마음을 어떻게 건사하느냐에 따라 사진을 읽는 눈매가 바뀌어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사진을 찍는 손길이 바뀌어요.

 


  “도시의 길들은 자동차와 온갖 장애물들의 위협으로 더 이상 생각에 몰두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59쪽).”라고 하지요. 도시에서는 걷기가 참 나쁩니다. 걷자면 걸을 수 있지만, 생각을 활짝 열면서 걷기 힘듭니다. 너무 시끄럽고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마음을 따사로이 돌보면서 걷기 힘든 도시입니다. 이렇기 때문인지 모르나,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자락에서 마음을 따사로이 돌보며 걷기 힘들다 보니, 도시에서는 이웃한테 따사로이 마음을 쏟는 사람 만나기 퍽 힘듭니다.


  걸으면서 사진을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스튜디오에서든 방송국에서든 무대에서든, 우리는 걸으면서 사진을 생각하고 걸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뛰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지만, 사진기 손에 쥔 이들은 으레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걷다가 우뚝 멈추어요. 숨을 고르다가는 숨까지 멎은 채 사진기 단추를 눌러요.


  참말, 사진이란, 걷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 사진을 누리자면, 자가용하고 헤어진 채 홀가분하게 걸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참말, 사진을 빛내자면, 활짝 웃고 노래하면서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을 디디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먼 섬일수록 섬길은 걷기의 천국이다. 외지인들이 섬으로 차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섬에게도, 섬을 찾은 사람들 자신에게도(62쪽).”라 하잖아요. 섬길을 걸어다닐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워요. 섬길은 그예 걷는 길이라 하니 얼마나 사랑스러워요. 섬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나비가 팔랑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스쳐요. 섬길을 천천히 걷다가 조용히 멈추면, 거미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에 줄을 살며시 드리우면서 볼볼볼 하늘을 걷듯 실을 짜서 집 짓는 모습을 소리와 빛깔로 만날 수 있어요.


  내 손에 사진기가 꼭 있어야 하지는 않아요. 그저 가만히 멈춘 채 눈을 감아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요. 나를 둘러싼 이 섬길에서 어떤 바람이 흐르고 어떤 햇살이 내리쬐며 어떤 냇물이 흐르고 어떤 물결이 일렁이는지 헤아려요.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마음속 그림에 빛깔을 입혀요. 빛깔을 입힌 마음속 그림을 싯말로 영글어 노래로 불러요.

 


  사진이란 사진인 까닭은, 여행이란 여행인 까닭하고 같아요. 삶은 삶이고 사랑은 사랑이에요. 사랑은 돈이 아니고 부동산이 아니며 성형수술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에요. 사랑은 쓰다듬기나 입맞춤이 아니에요. 쓰다듬기는 쓰다듬기요 입맞춤은 입맞춤이지요. 사랑은 오직 사랑이에요. 걷기는 걷기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에요. 나들이는 나들이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니에요. 된장찌개는 된장찌개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그예 여행이고, 삶은 그대로 삶이며, 사진은 곧 사진입니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그려내는 풍경이 제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60쪽).”라고 말하는 강제윤 님입니다. 덧붙여, 섬마을 할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인은 돌담에 기대선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 아직 멀었어요. // 콩은 / 감나무 이파리 세 잎 날 때 심어요(128쪽).” 하고. 섬마을 할배 이야기는 싯말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나저나, 이파리는 ‘석’ 잎일 텐데요.


  감나무에 이파리 갓 돋을 적에는 감잎을 톡 따서 냠냠 씹습니다. 감잎에서는 감잎내음이 납니다. 나는 아이들과 여린 감잎을 뜯어서 먹고, 여린 느티잎을 뜯어서 먹습니다. 여린 버들잎도 먹을 만해요. 여린 단풍잎도 퍽 맛깔납니다.


  쑥잎을 날것 그대로 먹으면, 날푸성귀로 먹으면, 쑥맛이 납니다. 부추잎을 날것 그대로 먹으면, 부추맛이 나요. 모시잎에서는 모시맛이 납니다. 고들빼기에서는 고들빼기맛이 나요.


  모든 잎사귀, 그러니까 들풀, 다시 말하면 풀잎은 다 다른 맛과 냄새와 멋입니다. 냉이는 냉이일밖에 없고, 씀바귀는 씀바귀일밖에 없어요. 섬에서 살거나 섬으로 마실을 다니면서 스스로 섬이 되기에 섬을 노래할 수 있고 섬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예쁜 모델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아주 마땅히, 예쁜 모델과 내가 하나로 되어야 해요. 사랑스러운 짝꿍을 사랑스레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예쁘장한 모습 아닌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담아서 찍으면 됩니다. 예쁘장하게 찍으면 그저 예쁘장한 사진이에요. 사랑스러운 모습을 바라면 ‘사랑스러운 삶’을 ‘사랑스러운 마음’ 되어 생각해야 해요.


  시와 사진이 어우러진 섬마실 이야기책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는 “부자가 되어서 나누는 삶은 아름답다. 하지만 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더욱 아름답다.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얻게 되는 모든 것을 나누어 버릴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215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르면서 끝맺습니다. 이 얘기란, 섬마실꾼 강제윤 님은 스스로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이녁이 섬마실을 하며 누린 모든 꿈과 사랑을 이 책 읽는 벗님한테 나누어 주고 싶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그럴듯한 사진이나 멋들어진 글 아닌, 섬과 한몸 되어 오롯이 누린 삶이 어떤 이야기로 태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짚고픈 마음이라고 할까요. 대단한 작품이나 문학이나 예술이 아닌, 저마다 사랑할 삶은 어디에 있을까를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 아름답게 일구는 기쁨을 스스로 찾는 마음결이라고 할까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대학교에 가거나 사진강좌를 듣거나 사진이론을 파고들 까닭이 없어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을 찍을 사진기를 장만해서 손놀림을 익히면 되고, 사진기 다루는 손놀림 익혔으면 신나게 내 삶을 누리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삶을 누리는 사람이 찍는 사진입니다. 작가가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사진입니다. 비평가가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쓰는 책입니다. 전문가가 쓰는 책이 아닙니다. 이제 책 다 읽었으면, 책상맡에 내려놓고 ‘마음 사진기’를 열어요. 종이나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에 안 담아도 오래오래 빛나고 언제까지나 해맑은 이야기 한 자락 내 삶에서 길어올려요. 우리는 누구나 지구별을 여행하는 아름다운 길동무입니다.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낌을 찍는 사진사
강종진 지음 / 해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0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

― 느낌을 찍는 사진사
 강종진 글
 해뜸 펴냄,2007.5.10./12000원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멋지다고 느끼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느끼는 아름다움이 늘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진기 손에 쥔 이들은 멋진 모습을 자꾸 찍으려 합니다. 멋진 모습을 찍을 수 없는 줄 깨닫지 않습니다. 더 나은 장비를 갖추고 손놀림을 새롭게 익히면 멋지다 싶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줄 잘못 생각합니다.


  아름답다 싶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이들도 이와 같아요. 아름답다 싶은 모습은 사진으로 담지 못해요. 제아무리 대형사진기를 쓰거나 이름난 스승한테서 사진을 배운다 하더라도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멋진 모습이건 아름다운 모습이건, 내 마음속에 있지 내 바깥에 있지 않아요. 내 마음속을 담는 사진이라면 멋지거나 아름다운 모습 얼마든지 보여줄 테지만, 내 바깥에 있는 모습에 얽매여서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담지 못해요.


..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파시체 앞에 선 직접 경험자로써의 사진가가 갖는,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며 사진을 감상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도울 수 있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 마주보며 활짝 웃는 엄마와 아이의 사진에서 ‘사랑’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고, 패션모델이나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비치는 감미로운 침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읽을 수 있다. 사랑, 행복, 아름다움, 평화로움 등의 형태가 없는 추상명사가 피사체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9, 14쪽)


  사랑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마음으로 아낄 때에 시나브로 사랑스러운 눈길이 되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움직입니다. 이때에는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어떤 모습을 찍더라도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감돕니다. 파리 한 마리를 찍든 개미 두 마리를 찍든 나비 세 마리를 찍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빚어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마음으로 아끼지 않으면 사랑스러운 눈길이나 손길이 되지 못하고 말아, 애틋하게 입을 맞추거나 부둥켜안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더라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그저 ‘입맞춤 사진’이나 ‘껴안는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곧,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언제나 아름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마음 깊이 아끼며 시나브로 아름다운 넋과 몸짓과 얼과 매무새 되면서 천천히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비로소 아름답다 싶은 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사진 한 장 얻어요.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사진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삶으로 깨달을 사진입니다. 사진책이나 사진교재로 배우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짓고 일구면서 알아차려 누리는 사진입니다.


  마음속에 평화로움이 없이 어찌 ‘평화’를 사진으로 보여주겠어요. 마음속에 민주와 통일과 평등이 감돌지 않고서야 어찌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말하는 사진을 빚겠어요.


.. 장미꽃이 보인다는 것은 꽃을 이루는 물질들이 지니고 있는 숨겨진 속성들을 보는 것이다 … 실제로 사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진가는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감상자는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  (16, 51쪽)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살아가는 사람일 때에 ‘가난한 이웃’이 어떤 ‘가난한 삶’인가를 온몸 깊이 돌아보면서 사진이야기 하나로 빚습니다. 가난하니까 불쌍하게 바라볼 이웃이 아니에요. 가난하대서 가엾게 생각할 동무가 아니에요. 가난하건 가멸차건 똑같은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생각하고 생각해야 해요. 은행계좌에 10억 원이나 100억 원이 있는 사람은 안 불쌍하거나 안 가엾을까요? 은행계좌에 돈은 잔뜩 있지만, 돈을 더 긁어모으려고 악을 쓰는 이들은 안 불쌍하거나 안 가엾을까요? 주머니에 가득한 돈을 나눌 줄 모르는 모습이야말로 불쌍하거나 가엾지요.


  그래서, ‘가난함’을 보여주는 사진은, 옷차림이 후줄근하거나 살림집이 꾀죄죄해 보이는 모습을 찍는 사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알아채어 ‘가난’이란 무엇인가 하는 참모습을 밝히는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참모습을 밝힐 때에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고,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는 참빛을 밝힐 적에 아름다운 사진이 돼요.


..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은 사진가의 몫이며 의지의 표현이다. 디지털카메라와 핸드폰카메라가 보편화된 후 젊은이들 사이에 ‘얼짱각도’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즉 ‘셀카’라 별칭 되는 ‘셀프 포트레이트’ 촬영기법에 관심이 몰리면서 자기 모습의 촬영 각도 중 가장 아름답게 혹은 멋지게 찍히는 카메라의 위치와 표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십 수백 차례 찍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찾아낸다 … 그림자는 빛의 상대개념으로 어두움을 의미하지만, 빛에 의해 생성되며 빛과 동시에 표현되기 때문에 빛의 또 다른 모습이고, 빛과 그림자는 상호지원 기능을 한다 ..  (52∼53, 67쪽)


  사랑을 부르기에 사진입니다. 꿈을 부르니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부르니까 사진입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아요. 무엇을 부를 수 있는 사진일까요. 무엇을 부르면 즐거울 사진이 될까요. 무엇을 부르면서 살아가는 내 하루가 되면, 내 사진은 어떻게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날 만할까요.


  이 자리에서는 ‘사진’을 말하지만, ‘사진’을 ‘그림’과 ‘글’과 ‘노래’라는 낱말로 바꾸어 생각해도 언제나 똑같습니다. ‘집살림’이라든지 ‘회사일’ 같은 낱말을 넣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연애’와 ‘학문’ 같은 낱말을 넣으며 생각할 수도 있어요. ‘주식투자’라든지 ‘스포츠’ 같은 낱말을 넣으면서 생각해도 되지요.


  우리 삶 모든 모습을 ‘사진’을 바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우리 삶 모든 모습을 바탕으로 사진을 읽을 수 있어요.


  삶을 읽을 때에 사진을 읽고, 삶을 못 읽을 때에 사진을 못 읽어요. 삶을 즐길 때에 사진을 즐기고, 삶을 못 즐길 때에 사진을 못 즐겨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사랑할 수 있어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사진을 꿈꿀 수 있지요. 사진과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이란, 삶을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스레 가꾸는 사람입니다.


.. 외무부 지정 여권사진 규격에 의한 증명사진 촬영이 아닌 한, 사진도 마찬가지로 사진가와 감상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완성된 사진에서 촬영시의 감동이 약화되는 이유는 사진가가 현실로부터 얻은 직접경험에 의한 감동과 느낌을 차원변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몇 가지가 누락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72, 76쪽)

 

 

 

 


  강종진 님이 사진이론을 펼친 《느낌을 찍는 사진사》(해뜸,2007)를 읽습니다. 조금 더 쉽고 수수하며 가붓한 말마디로 사진이론을 펼치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만 한 깊이와 눈썰미로 사진이론 펼치는 한국 사진작가는 퍽 드물어요. 책이름에 적은 “느낌을 찍는 사진사”라는 말처럼, 사진쟁이는 “느낌을 찍”어요. 다른 것을 찍지 않습니다. 아니, 다른 것은 못 찍어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늘 헤아리는 “내 느낌”을 찍습니다. 다른 사람 느낌이 아니라 “내 느낌”을 찍는 사진이에요.


  그러면, 내 느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야지요. 내 느낌이란 “내 삶”입니다. 다른 사람 삶이 아닌 내 삶이기에 내 느낌입니다. 나 스스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내 이야기 되고, 내 꿈 되며, 내 사랑 되지요. 이러한 이야기와 꿈과 사랑을 헤아려서 “내 느낌”이 어떤 빛과 그림자 되어 내 사진으로 태어날 만한가 하고 살핍니다.


.. 사진가는 상상과 관념의 세계로부터 형성된 생각과 주관을 통하여 현실세계를 사진으로 번역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 그러나 사진 속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메시지가 있다. 감상자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가슴으로 볼 수 있는 메시지이다 ..  (77, 93쪽)


  느낌을 찍어야 사진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야기를 찍어야 사진입니다. 새로운 말로 하자면, 사랑을 찍어야 사진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찍어야 사진이에요.


  느낌도 이야기도 사랑도 마음도 찍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습니다. 느낌과 이야기와 사랑과 마음을 한동아리로 아름답게 엮어서 빛과 그림자를 정갈하게 드리울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느낌을 쓰지 못하면 글이 아니에요. 사랑을 그리지 못하면 그림이 아니에요. 이야기를 부르지 못하면 노래가 아니에요. 마음을 추지 못하면 춤이 아니에요. 삶을 밝히지 않다면 삶이 아니고, 삶을 돌보지 않으면 그야말로 삶이 아닙니다.


.. 사진은 촬영자의 말이다. 비록 셔터를 누른 이후의 광학적 화학적 물리적 기록프로세스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셔터를 누르기 직전까지의 모든 선택은 사진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 컨셉과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사진이라면 연출이건 합성이건 사진가 고유의 창작행위이자 방법론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을 수 있다 ..  (95, 98쪽)

 

 

 

 


  신문기자라 하더라도 “신문사 느낌”을 찍지 못합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는 내 느낌을 찍습니다. 무엇보다 “신문사 느낌”이란 없어요. 언제나 내 느낌일 뿐입니다. ㅈ신문에서 일하건 ㅎ신문에서 일하건, 사진기자로 찍는 사진은 “신문사 주관과 잣대와 논조”를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신문기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느낀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이에요.


  참모습을 가리는 사진을 찍는다면, 그 신문사가 참모습을 가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문기자 스스로 참모습을 가립니다. 감춰진 모습을 캐내어 밝혔다면 그 신문사가 감춰진 모습을 캐내어 밝혔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문기자 스스로 감춰진 모습을 캐내어 밝힙니다.


  그럴듯한 모습만 찍는 사진기자가 있다면, 사진기자 이녁 스스로 그럴듯한 겉모습에 치우쳤다는 뜻입니다. 눈물겹거나 웃음나는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가 있으면, 사진기자 이녁 스스로 눈물겹거나 웃음나는 삶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사진을 보든, 사진 찍은 사람 삶이 드러납니다. 어느 사진에서든, 사진 찍는 사람 마음과 생각과 사랑이 환하게 나타납니다.


..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 또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그 이유는 사진이 창조적인 작업인가 현실의 단편적 기록일 뿐인가라는 의문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라 하겠다 ..  (106쪽)


  사진을 예술이라고 여긴다면 사진은 예술입니다. 사진을 빛이라고 여긴다면 사진은 빛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사진이 달라집니다. 스스로 아끼고 마음을 기울이는 대로 사진이 거듭납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라고 여기면 사진은 그저 사진이지요. 그럼, 그저 사진인 사진이란 또 무엇일까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들 스스로 사진을 생각하고 톺아보면서 사진빛을 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꽃피워 다 다른 삶을 빛내는 사진길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사람 - 물구나무 그림책 71 파랑새 그림책 71
송창일 지음, 이승은.허헌선 인형, 이상혁 사진 / 파랑새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1

 


눈이 내리지 않는 이 나라
― 눈사람
 이승은·허헌선 인형,이상혁 사진,송창일 글
 파랑새 펴냄,2008.7.10./9800원

 


  눈사람을 굴리자면 눈이 얼마만큼 내려야 할까요.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눈이 펑펑 내리면, 꺄아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나와서 눈사람을 굴릴 만할까요.


  눈이 올라치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저런, 저런, 길이 막히겠는걸.’ 어른들은 어느새 두 다리로 걷는 어른 아니라,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는 어른 되고 말아, 하늘을 하얗게 채우며 빛나는 눈송이를 반기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겨울날, ‘오늘은 버스 말고 전철 타야겠어.’ 하고 생각하는 어른들투성이인 도시입니다. 시골에서도 다르지 않아요. 시골에서도 어른들은 ‘자동차 다니기 나쁘니’까 얼른 눈을 쓸자며 넉가래로 밀고 빗자루로 쓸지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앞서부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어른도 아이도 가만히 지켜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쓸자면 다 내리고 나서 쓸면 되어요. 괜히 한참 내리는데 쓸 까닭 없어요. 한참 내릴 때에 눈을 쓸며 다니면, 발에 눌린 자리는 더 쓸기 어렵지요.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어릴 적 들은 옛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에 농사가 잘 된다’라는 한 줄 떠오릅니다. 눈이 많이 와서 들판에 소복소복 쌓이면 이런 벌레 저런 벌레 잘 죽기도 하고, 겨우내 흙이 포근하게 쉬며, 이 눈이 녹는 봄에는 고운 물기 퍼져 한결 기름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눈은 그대로 둘 노릇이에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도시도 시골도 온통 아스팔트길이고 시멘트땅입니다. 흙이 그대로 남은 땅이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텃밭 일구는 사람 매우 적어요. 도시에서 빈터 남은 데 거의 찾아볼 길 없어요. 하늘하늘 내리는 눈이 느긋하게 쉴 자리 없어요. 도시에서는 눈이 거추장스러워 얼른 치우려 할밖에 없어요.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맨 먼저 걱정하면서 염화칼슘 같은 화학약품 마구 뿌릴밖에 없어요. 아스팔트 밑에 깔린 흙땅이 염화칼슘 때문에 더러워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니, 흙땅이 아스팔트한테 깔리고 자동차한테 눌리며 얼마나 아파 하는 줄, 도시사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아요.

 

 

 


  송창일 님 글에 맞추어 인형을 만든 이승은·허헌선 님입니다. 두 분이 만든 인형을 예쁘장하게 사진으로 찍은 이상혁 님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눈사람》(파랑새,2008) 한참 들여다보고, 아이들과 읽습니다. 눈사람이 앙증맞고, 눈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아이들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 돌보는 어머니가 사랑스럽고,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이 살갑습니다. 아름다운 넋으로 글을 쓴 사람 있어, 이 아름다움을 받아 인형을 만듭니다. 아름다움 깃든 인형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마음을 기울인 한 사람 있습니다. 그래요, 옛날에는, 아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는, 모두들 이렇게 눈을 맞이하고 집에서 복닥복닥 놀며 하루를 길고 아름답게 보냈어요. 눈이 오니 눈을 바라보면서 눈 노래 불러요. 눈을 바라보며 즐겁게 뛰놀고, 눈을 기쁘게 맞이했어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아름답게 맞아들이면서 눈놀이 아름답게 누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사랑스레 마주보면서 눈사람 사랑스레 굴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눈싸움 신나게 뒹굴지 못할까요.


  예쁜 사진책 《눈사람》인데, 눈사람 굴리기를 ‘흘러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고운 사진책 《눈사람》이니, 겨울눈 이야기를 ‘지나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오늘날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아이들이 땀 송송 흘리며 눈사람 굴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눈을 만지며 손이 얼얼하고, 눈을 굴리며 싱그럽게 웃으며, 눈을 척척 쌓으며 두 손 번쩍 치켜들 수 있어야지 싶어요.


  무대가 아파트나 빌라라 하더라도, 삶터가 도시요 서울이라 하더라도, 길 한복판에 눈사람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눈사람 곳곳에 선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천천히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하늘과 땅과 이웃과 동무를 살뜰하게 마주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싱긋빙긋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눈놀이 즐기고, 눈놀이 사진으로 기쁘게 담으며, 눈놀이 이야기 두고두고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3-06-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은 허헌선 인형작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이 부부 작가를 직접 뵌적이 있어요. 코 뾰족하고 눈 파란 인형이 아니라 누가 봐도 우리를 닮은, 우리 삶이 드러나는 작품들이었어요.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오래전 일이네요.

숲노래 2013-06-22 13:41   좋아요 0 | URL
아, 전시회를 가셨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예전에 전시회에 가 본 적 있는 듯도 하고...
저로서는 퍽 어릴 적 일이라서요~ ^^

이렇게 사진그림책으로 나온 적 있는 줄 보고는
놀라면서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