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우리 -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레아.여유 지음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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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3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
― 따뜻해, 우리
 레아·여유 글·사진
 시공사 펴냄, 2012.12.4. 13000원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따뜻합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따뜻하다기보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 하루를 마음 따뜻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즐겁다기보다, 날마다 마주하는 새 하루를 마음 즐겁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따라 사진에 감도는 빛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너그러운 빛 감도는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이 환한 사람은 연필을 손에 쥘 적에 환한 빛 서리는 글을 씁니다. 마음이 고운 사람은 붓을 손에 쥘 적에 고운 빛 눈부신 그림을 그립니다.


  기계를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로는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는지 모르지만,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진이 되자면, 먼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되자면, 언제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곧, 삶도 사랑도 없이 기계만 다루며 작품을 만들거나 기록을 쌓을 수 있어요. 컴퓨터한테 맡겨 멋들어진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놀라운 기록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에는 삶이 없어요. 작품은 그저 작품일 뿐이고, 기록은 그예 기록일 뿐입니다.


.. 아내는 사진을 사랑합니다. 남편도 사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세 살이 된 딸은 그래서, 운명처럼 카메라를 좋아하고 사진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  (4쪽)


  사진기를 써서 작품을 만드는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사진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예술가가 제법 많아요. 이들은 사진기라는 연장을 빌어 예술을 합니다. 붓을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빌어 예술을 하기도 해요. 돌을 빌고 종이를 빌어 예술을 하지요. 쓰레기더미에서 이것저것 캐내어 예술을 하기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합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지요.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일 뿐, 사진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예술도 예술일 뿐, 예술은 작품이나 기록이 아니에요.


  가을걷이를 하는 시골 흙지기들 삶은 예술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가을을 맞이해 이녁 삶으로서 가을걷이를 합니다. 그런데, 가을걷이를 하며 나락을 말리려고 볏다발 묶은 모습을 보셔요. 참깨를 베고 콩포기를 베어 묶어서 말리는 다발을 보셔요. 흙지기마다 다르게 묶습니다. 마을마다 다르게 엮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가는 볏짚다발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시골 흙지기는 스스로 ‘예술’이라 여기지 않고 ‘삶’으로 볏짚다발 묶거나 엮었지만, 어떤 사진가 눈에는 이보다 어여쁜 ‘예술’은 없겠다고 보여, 이 사진가는 볏짚다발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작품도 기록도 아닌 ‘사진’으로.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락을 말리려고 길바닥에 싯누런 나락을 죽 펼칩니다. 싯누런 나락을 여러 날 해바라기 시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나락을 뒤집습니다. 나락을 뒤집으려고 슬슬 긁으며 모양이 달라져요. 일본사람은 앞마당 잔돌을 찬찬히 쓸어서 예쁜 무늬를 만드는데, 한겨레 흙지기는 나락말리기를 하며 고운 무늬를 만들어요. 예술가 아닌 흙지기로서 삶을 아름답게 일굽니다.

 


.. 모든 것이 다 눈물겹다. 사람도 공기도 촉감도 심지어 아가를 위해 틀어놓은 경쾌하기만 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까지도 … 워낙 키도 작고 자그마한 체격이라 아기띠를 하고 가는 모습이 벅차 보였나 보다. 커다란 생수통을 어깨에 든 아저씨가 빵 봉투를 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 어깨에 있는 생수통이 더 무거워 보여요, 라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인상 좋게 웃으며 애기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럴 땐 꼭 서울이 봄처럼 따뜻하다 ..  (19, 26쪽)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요새는 손전화 기계로도 멋지거나 예쁜 사진 쉽게 찍을 수 있으니, 이제는 누구나 아이들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즐겁게 찍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어머니가 아이들 모습을 스스럼없이 찍는 사진보다는 아이들 아버지가 아이들 모습을 가끔 찍는 사진이 더 많지 싶어요.


  성평등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버지가 집에서 살림을 건사하거나 보살피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적에, 아버지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거꾸로, 아버지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 때에, 어머니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참 흔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번다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내내 지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길을 타며 자라지요.


  오늘날에도 지난날에도 아버지 자리에 선 사람들은 아이들과 마주할 틈이 아주 적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더라도, 하루 동안 아이가 놀고 뛰고 먹고 입고 구르고 자고 하는 온갖 모습을 골고루 만나지 못합니다. 젖을 물리고 젖떼기밥을 먹이며 여느 쌀밥을 먹이는 일을 아버지가 맡아서 하거나 조금이라도 거드는 일이 드뭅니다. 집일을 도맡고 아이들 또한 도맡아 보살피는 어머니는 몹시 바빠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예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 찍을 겨를이 없고, 손전화 기계를 얼른 켜서 사진으로 남길 틈이 없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집일을 거의 안 맡거나 안 하면서 가끔 아이들과 노는 아버지는 쉽게 사진기를 들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곧잘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는 찬찬한 흐름과 빛과 결과 이야기까지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을 한두 살 적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배우는 동안, 어버이는 아이들을 자라게 이끌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해요. 그만큼 아이들 눈빛과 몸빛과 마음빛을 못 읽고 못 느껴요.


  아침저녁으로만 얼굴을 보더라도 놀라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놀라운 사진’에서 그쳐요. 삶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을 가꾸는 사진으로 넘어서지 못해요. 함께 살아가는 한솥밥지기인 줄 느끼는 하루를 차근차근 누리는 동안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어지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일구는 삶이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함께 살아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요. 가끔 한두 시간 놀아 준다면 ‘가끔 놀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요.

  이 사진이 더 낫고 저 사진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마음을 담아 찍으면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삶을 즐길 때에 사진이 즐겁고, 스스로 삶을 사랑할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 레아야, 이건 눈이야. 너와 함께 눈을 밟다니 정말 감격스럽다 ..  (56쪽)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삶을 일구는 길입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고 읽으며 나누는 길이란 사랑을 빚고 찾으며 함께하는 길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요. 아이를 품에 안고 숲길을 걸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어요. 갓난쟁이 똥오줌 기저귀를 손으로 즐겁게 빨래하며 노래를 불러요. 아이들 옷을 개며 노래를 부르고, 식구들 옷을 개면서 노래를 불러요. 비질과 걸레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요. 밥상을 차리며 노래를 부르고,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불러요. 칼을 갈며 노래를 부르고, 마당을 쓸며 노래를 불러요.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 누리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이 어버이 모습 말똥말똥 지켜본다면, 이 아이들은 어느새 빙그레 웃음짓고는 까르르 빛노래 부르겠지요.


.. 내 눈으로 직접 조리과정을 보지 못한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아 직접 만들어 먹이기로 결심했다 … 남편도 아가도 잠이 들면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로 살금살금 나 혼자 분주해진다. 남편이 얼마 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다니겠다고 해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정확히 새벽 5시 30분에 밥이 되도록 쌀을 씻어 예약 버튼을 눌러둔다 ..  (73, 104쪽)


  레아 님과 여유 님이 함께 일군 사진책 《따뜻해, 우리》(시공사,2012)를 읽습니다. 그동안 레아 님은 혼자서 사진책을 내놓았는데, 《따뜻해, 우리》는 옆지기가 나란히 나오고, 레아 님과 옆지기가 낳은 아이가 함께 나옵니다. 세 사람이 이루는 보금자리가 ‘따뜻하구나’ 하고 느껴 따뜻하게 누리는 삶을 들려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책 끝자락을 보면, 레아 님네 세 식구에 이은 넷째 숨결이 나옵니다. 앞으로 한 해나 두 해가 더 흐르면, 네 식구 살림살이 복닥이는 이야기 흐드러지는 새로운 ‘따뜻한 삶’을 사진과 글로 선보일 수 있겠지요.


.. 오후의 빛과 가족의 뒷모습이 꼭 들어맞는 하나의 감정이 되어 물드는 것을 나는 보았다. ‘따뜻해, 우리’ 이러면서 ..  (135쪽)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에,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고, 생각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마음자락에 따라 사진빛이 바뀝니다. 생각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결이 달라집니다.


  레아 님한테 옆지기가 나타나고, 두 사람이서 새 숨결을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레아 님이 그동안 찍던 사진에 새 무늬가 감돕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레아 님 사진을 빛내면서 새로운 내음과 결이 서립니다.


  앞으로 네 식구 살림일 적에는 어떤 사진빛이 환할까요. 옆지기가 바깥일 하느라 집을 오래 비우는 동안 두 아이와 복닥이며 고된 나머지 사진기를 손에 쥘 겨를도 힘도 없을까요. 바쁘고 힘들어도 사진기만큼은 씩씩하게 손에 쥐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사진으로 엮을까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기대는 사람이 있고 나를 기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옆지기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누리는 마을과 보금자리와 숲이 있습니다.


.. 언제 또 부산에 갈 수 있을까. 너무 착하고 아름답고, 목소리가 시끌시끌 정신없이 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누나들 좀 챙기라는 면박에 괜히 파프리카를 한 상자나 보내주는 엉뚱한 순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하는 곳. 기장만 가면 오징어를 샀던 우리 부부를 떠올려 주는 아름다운 그들이 있는 곳 … 나는 지금 삼십 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 아기를 낳아 시간이 부족하거나 예쁘지 않은 외모로 집을 지켜도 딱히 억울하거나 곤란하지 않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시간이 저릿저릿 아플 만큼 좋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그리 우울하지 않다 ..  (152, 223쪽)

 


  사진은 바로 이곳에서 찍습니다. 사진은 바로 오늘 찍습니다. 무지개는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납니다. 미리내도, 달도, 별도,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모두 바로 이곳에서 오늘 만나요.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삶을 내 손으로 담아 사진이 됩니다. 내가 가꾸는 아름다운 하루를 내 손으로 일구어 사진이 됩니다. 내가 누리는 사랑스러운 나날을 내 손으로 가꾸며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가슴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이론가들 책상머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바로 우리들 보금자리에서 샘솟습니다. 사진은 최신사진도 첨단사진도 서양사진도 유행사진도 아닙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 삶이고, 내 삶은 언제나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집 안에 무지개가 떴던 아침 ..  (185쪽)


  집 안에 별이 뜹니다. 집 안에 귀뚜라미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햇살이 드리웁니다. 집 안에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집 안에 가을바람이 붑니다. 집 안에 제비가 노래 한 가락 부르고 휙 날아갑니다.


  우리들은 흙땅에 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우리들은 마음밭에 사랑씨 한 톨을 심습니다. 우리들은 사진기를 빌어 삶이야기 한 가락을 심습니다. 사진 찍는 동안 따뜻한 마음은 나한테서 아이한테 이어지고, 다시 아이한테서 나한테 흐릅니다.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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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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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9

 


내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8.2.20. 12000원


 

  내 두 눈은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봅니다.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도 아름답고, 내가 바라보는 우리 집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과 내가 바라보는 들판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가을 접어든 시골마을에서 쑥꽃을 구경합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그러께에도, 나는 우리 집 풀밭에서 쑥꽃을 구경하며 가을내음 맡습니다. 푸르던 들판이 누르스름하게 바뀌는 빛깔을 바라볼 적에도 가을내음 맡는데, 개구리 노랫소리 차츰 수그러들면서 풀벌레 노랫소리 높아지는 풀소리 듣는 동안에도 가을내음 맡습니다. 여름부터 꾸준하게 떨어지던 후박나무 가랑잎이 차츰 줄면서 겨울 앞두고 짙푸르게 빛나는 반짝반짝 새로운 잎사귀를 볼 적에도 가을내음 맡습니다. 후박나무와 함께 한겨울 짙푸른 잎사귀로 나는 동백나무를 함께 보면서도 가을내음 맡아요.


  어느덧 하얀 꽃송이 모두 떨구며 씨앗을 맺는 부추풀을 보면서 가을내음 맡습니다. 짙붉게 익는 초피나무 열매를 보면서 가을내음 마십니다. 제비 떠난 쓸쓸한 제비집 둘레에서 바지런히 집을 짓는 말벌 무리를 바라보며 가을빛 헤아립니다. 막바지 날개춤 반짝이는 잠자리떼를 보며 가을물결 돌아봅니다. 가을은 마을에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습니다. 가을은 손으로 빨래하는 대야에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며 물을 만지는 개수대에도 있습니다.


  시를 쓰다가 사진을 함께 찍으면서, 시와 사진을 나란히 노래하는 신현림 님이 한창 사진을 배우던 무렵에 이녁이 서양사진 즐긴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 《나의 아름다운 창》(창작과비평사,1998)을 가을날 읽습니다. 신현림 님은 “사진은 세계를 보는 안목을 높여 주고 정신의 해방감을 준다(6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신현림 님 스스로 온누리 바라보는 눈썰미를 높이면서 이녁 넋을 살찌우니까 사진을 찍으려 했겠지요. 사진을 찍는 한편, 사진을 읽으려고 했겠지요.

 

 

 

 


  사진을 찍고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가는 파인더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세계를 발견한다(17쪽).”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창을 바라보며 너른 창을 느껴요. 작은 창에서 너른 창을 깨달아요. 작은 창 곁에서 너른 창을 배웁니다.


  연필을 내려놓아요. 사진기를 내려놓아요. 붓도 내려놓고 손전화도 내려놓아요. 가을날 가을길 천천히 거닐어요. 혼자 걸어도 좋고 아이와 걸어도 좋아요. 동무나 이웃을 불러 함께 걸어도 즐겁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워도 흐뭇하고, 아무 말을 않고 고요하게 걸어도 사랑스럽습니다.


  가을빛과 가을내음을 가을길에서 느껴요. 가을숲으로 접어들어 가을바람 마셔요. 가을나무 곁에서 가을잎을 쓰다듬어요. 먼저 마음으로 느끼고, 차츰 몸으로 받아들여요. 먼저 눈으로 바라보고, 이윽고 코와 귀와 입으로 마주해요.


  가을날 풀벌레는 몸빛을 바꿉니다. 여름날 풀벌레는 아주 맑은 풀빛인데, 가을날 풀벌레는 아주 짙은 흙빛입니다. 가을이 되며 누르스름하게 시드는 풀잎에 맞추어 풀벌레 몸빛이 시나브로 달라져요. 이런 숲빛을 느낄 수 있다면, “모든 풍경은 나를 흥분시키며 황홀하게 타오른다. 내가 머문 길 속의 풍경과 하나 되는 바로 그 순간 생의 보람을 느낀다(24쪽).”와 같은 노래를 활짝 웃으며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 이제 발걸음을 가만히 멈추어 볼까요. 신현림 님이 우리를 부르는군요. “쉬잇, 또다른 근사한 사진 속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흐느끼고 풀과 꽃들이 춤을 춘다. 이 사진을 보니 오늘 하루는 재수가 좋을 것 같다(39쪽).” 하고 나긋나긋 속삭이는군요.


  숲에서 바람소리를 듣듯이, 사진에서 바람소리를 들어요. 숲에서 나무내음을 맡듯이, 사진에서 나무내음을 맡아요. 숲에서 하늘 바라보며 두 팔을 치켜들고 기지개를 켜듯이, 사진에서 하늘빛을 살피고 하늘숨을 쉬면서 두 팔을 치켜들며 기지개를 켜요.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도시 한복판에서 찍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이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골 흙일꾼도 흙밥을 먹고, 대통령도 흙밥을 먹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논밭에서 안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지 않아요. 국회의원 나으리는 흙 아닌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지 않아요. 모든 사람 누구나 흙당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습니다. 고기를 즐겨먹는다 하더라도, 소나 돼지나 닭 또한 흙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먹이를 얻어요. 흙맛을 모르고는 밥맛을 모르는 셈이요, 숲바람을 마시지 않고는 삶을 살찌우는 바람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곧, “자연이 망가지면 더이상 아름다운 사진도 없고 행복한 삶도 없다(43쪽).”고 할 만합니다. 숲이 숲답지 않다면 사진이 사진답지 않습니다. 숲을 망가뜨리는 권력자 놀음놀이 속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를 읽지 못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숲을 아끼며 보살피는 흙일꾼 손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에 감도는 사랑과 꿈을 읽지 못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요.


  어른도 아이도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하다. 자신을 걸 목표가 있는 자는 행복하다. 그것이 곧 희망이고 사랑이므로(50쪽).”라 말해야 하리라 느낍니다. 어른도 가장 뜻있는 일을 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가장 뜻있도록 즐겁게 놀이를 해야 아름답습니다. 뜻없고 값없는 일을 해서는 안 아름답고 안 즐거워요. 뜻없고 값없는 놀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 가운데 뜻없거나 값없다 할 만한 놀이가 있을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찍을 수 있을까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사진은 어디에서 찍을 때에,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서로 웃으며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따뜻한 햇볕 아래 들길을 걸으면서 살아 있는 나를 느끼고 싶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들국화 한 다발씩 선물하고 싶다(78쪽).” 하는 말처럼, 따뜻하게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모두 즐겁겠지요.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모두 기쁘겠지요.

 


  마음과 몸을 즐겁게 가다듬을 적에 사진이 즐겁습니다. 삶터와 마을과 숲을 아름답게 가꿀 적에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그나저나, 신현림 님은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에서 서양사진만 이야기하는데, 일본사진이나 한국사진을 따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사진책도 찬찬히 쓰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름난 사진작가 작품만 다루지 말고, 이름 안 난 사진작가 작품도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싶어요. 아마, 신현림 님으로서는 이름난 서양사진만 다루려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신현림 님 스스로 즐긴 사진을 이야기하려고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을 썼을 테지요.


  그렇지만 말예요, “공장 굴뚝에서 토해내는 연기며, 온 도로를 메우며 치달리는 자동차며, 농토에 살포되는 농약이며, 미친 듯한 쓰레기며 생활하수며 폐수며 백화점을 메운 외제 상품들, 무슨 욕설처럼 떠 있는 흐린 하늘이 그렇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 세대는 바람난 세상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가? 일상이 자동화되어 인생이 무엇이고 왜 사는가를 자문할 새도 없이 점점 돈 버는 기계로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246쪽)?” 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에 걸맞다 싶은 사진은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에서 몇 가지 못 다루었구나 싶어요. 어느 사진을 바라보거나 읽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서양사진을 굳이 들추지 않고, 신현림 님이 찍은 사진만 가만히 보여주면서 얼마든지 ‘신현림 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고 기쁘며 신나고 아름답게 펼쳐 보일 수 있어요.


  애써 다른 작가 사진을 들추지 않아도 돼요. 신현림 님이 즐겁게 찍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사진을 곱게 보여주면서, 예쁘며 고운 글도 함께 보여주셔요. 신현림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이야기를 신현림 님 손으로 빚은 아름다운 싯노래로 보드라이 들려주셔요.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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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향기 - 사진작가 이은주를 사로잡은 77인
이은주 글.사진 / 오픈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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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8

 


곁에 있는 고운 님들
― 인연의 향기
 이은주 글·사진
 오픈하우스 펴냄, 2012.2.3. 15000원

 


  가까이에서 으레 마주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귀지 않는다면, 사진으로 제대로 못 담기 마련입니다. 둘레에서 자주 마주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살피지 않는다면, 글로 제대로 못 쓰기 마련입니다. 오래도록 바라보았기에 그림으로 제대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바라보았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아요. 한 번을 보든 열 번을 보든 백 번을 보든, 마음으로 깊이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으로나 글로나 그림으로나 빚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녁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녁이 사랑스레 마주하는 사람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녁이 사랑하는 사람을 찍습니다.


  때로는 스쳐 지나가듯이 구경하는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림이 될 듯하다’고 여기면서 구경하듯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참말 구경하듯이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그림이 될 듯하다’는 사진을 찍어요.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한 사이라면 늘 ‘그림이 될 듯하다’고 느낄 만한 사진에서 맴돕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면 오랜만에 만나서 사진을 찍더라도 ‘마음을 울리는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찍습니다. 아주 마땅한 일이에요.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에서는 오랜만에 만날 적에도 시원스럽고 홀가분하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워요. 사진이란 바로 이야기꽃이기에,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야기꽃처럼 시원스러우며 홀가분하고 즐거운 빛 감도는 사진을 빚습니다.

  이은주 님이 내놓은 사진책 《인연의 향기》(오픈하우스,2012)를 읽습니다. 이은주 님은 이은주 님하고 ‘인연이 향긋하게 닿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사진책에 나오는 일흔일곱 사람이 여러모로 내로라 할 만한 사람일 수 있으며, 무척 이름있다 할 만한 사람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런 이름값은 얼마나 대수로울까요. 동네 이웃을 찍든 유명인사를 찍든 늘 같아요. 내 동무는 동네 이웃일 수 있고, 유명인사일 수 있어요. 내 동무는 가수나 연예인일 수 있으며, 수수한 아줌마나 아저씨일 수 있습니다.

 

 

 


  이은주 님은 “1973년 김 주교님은 영국에서 돌아와 장애인 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를 세웠다. 그 시절 김 주교님은 내게 사진을 부탁하셨다. 사진을 보내야 영국 본부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다 하셨다. 아직 아마추어였지만 김 주교님의 헌신에 감동한 나는 학교 사진을 열심히 찍어 드리는(4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으로 아끼는 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 말씀하기에, 이은주 님으로서도 마음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어느 건축가 사진을 찍으면서 “결국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좋은 건축이라는 심오한 철학에 감동한 나는 그저 훌륭한 건축가의 인물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49쪽).” 하고 이야기해요. 이은주 님이 사귀는 어느 건축가한테서 깊고 너른 넋을 읽거나 느끼기에, 이렇게 느낀 깊고 너른 넋을 사진으로 담고자 마음을 기울입니다.


  고운 님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고운 님한테 둘러싸인 채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람들 모습을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찍고 싶다면, 바로 내 곁 고운 님들을 느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웃을 떠올리고, 내가 이웃하고 어떤 삶을 서로 이으면서 즐겁게 웃음꽃 이루는가 하고 되새기면 됩니다.


  사진기라는 기계를 손을 놀려야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마음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있을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손가락질이나 기계질로는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뿐입니다. 마음을 담을 때에 사진입니다. 마음을 담아 부를 때에 노래입니다. 마음을 담아 출 때에 춤입니다. 마음을 담지 않으면 글이 못 되고 그림이 못 됩니다.


  할머니 나이가 된 소설가를 만난 이은주 님은 “방에서 함께 필름을 보면서 사진을 고르던 추억 속 선생님은 ‘사진은 역사를 남기는 작업’이라고 하셨다. 나는 오늘도 그 말씀이 떠올라 무거운 카메라를 기꺼이 들고 현장으로 나선다(7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어떤 역사를 남길까요? 네, 사진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받던 역사를 남기겠지요. 사진은 사람들이 꽃피운 사랑이라고 하는 역사를 남기겠지요. 사진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일구면서 가꾼 사랑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아로새기겠지요.


  사진길 걷는 이은주 님은 이녁이 만난 이웃한테서 사진길 씩씩하게 걸어갈 기운을 나누어 받곤 합니다. 이를테면, “리허설 때 무대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을 때는 행여 셔터소리가 연주가를 방해할까 봐 가슴을 졸이곤 했다. ‘혹 제 셔터소리가 방해되면 찍지 않을게요’라고 했더니 백건우 씨의 답이 뜻밖이었다. ‘걱정 마세요. 저에게는 피아노 소리만 들립니다’ 그랬다(81쪽).” 같은 이야기라든지, “그때 장사익 씨가 들려준 얘기가 있었다. ‘사진이야말로 가장 겸손한 예술’이란 말이다. 사진 속 피사체인 무대 위의 예술가를 한껏 부각시키는 사진을 만들면서도 정작 사진가는 늘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141쪽).” 같은 이야기를 함께 읽어 보셔요. 백건우 님은 삶을 짓고 사랑을 이루는 길을 넌지시 들려줍니다. 장사익 님은 삶을 노래하고 사랑을 나누는 길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밥이 끓는 냄새를 맡습니다. 잘 익은 밥을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들판에서 꽃내음 맡는 아이는 꽃송이 고운 빛을 바라봅니다. 바람에 실리는 너른 들판 뭇 들꽃 내음이 어우러지는 빛을 가만히 느낍니다.


  밥을 짓는 동안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들판에서 꽃을 마주하는 동안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가장 즐겁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생각하거나 헤아립니다.


  곁에 있는 고운 님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고운 님은 ‘나무’이거나 ‘바다’이거나 ‘냇물’이거나 ‘골목’일 수 있습니다. 사진기 손에 쥔 분들이 저마다 이녁한테 고운 님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사진으로 담을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바로 우리 가슴속에 있습니다. 4346.9.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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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우스, 그녀들의 이야기
이승은 지음 / 달과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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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7

 


즐거우니 찍는 사진
― 돌 하우스 그녀들의 이야기
 이승은 글·사진
 달과소 펴냄, 2008.9.22. 13500원

 


  즐거워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다큐멘터리를 엮으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을 느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으며, 돈을 벌어야 하기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삶자리가 다릅니다. 삶자리가 다른 만큼, 사진을 찍는 자리가 다릅니다. 사진을 찍는 자리가 다르니, 사진을 읽는 자리가 다릅니다. 사진을 읽는 자리가 다른 터라,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다르고, 사진을 보여주거나 나누는 자리도 달라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빛을 다 다른 사진에 담습니다. 알래스카와 남극과 적도와 이탈리아와 러시아와 한국과 일본에 드리우는 해는 똑같은 해라 할 테지만, 골골샅샅 드리우는 볕살은 저마다 달라요. 그래서, 일본과 한국은 바람과 물과 흙이 다릅니다. 적도와 남극도 바람이랑 물이랑 흙이 달라요. 곧,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 저마다 다른 빛을 누리고, 저마다 다른 빛을 누리니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인형을 살뜰히 아끼며 즐기는 이승은 님이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책 《돌 하우스 그녀들의 이야기》(달과소,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승은 님은 인형을 아끼고 따사롭게 돌보니, 늘 인형과 말을 나누고 인형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늘 아이를 아끼고 따사롭게 돌볼 테니, 언제나 아이와 말을 나누고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테지요. 인도나 티벳이나 네팔이나 부탄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찍으러 나들이 다니는 분들은 이곳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삶자리와 숲을 살뜰히 아끼고 마주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테고요.

  이승은 님은 “소녀는 인형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예쁜 구두나 신나는 게임기도 좋았지만, 그보다 인형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1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예쁜 구두를 더 좋아했다면, 어쩌면 예쁜 구두를 사진으로 담으며 이야기를 빚거나, 예쁜 구두를 신고 나들이를 다니는 삶을 사진으로 보여주었을 수 있습니다. 신나는 게임기를 더 좋아했으면, 어쩌면 새로운 게임을 좇아 자꾸자꾸 나아가면서 이야기나 사진하고는 동떨어진 다른 길을 걸어갔을 수 있습니다.

 

 


  이승은 님이 들려주는 “어른들의 놀이는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했을 뿐, 아무것도 새로 채워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문득 어렸을 때 좋아했던 놀이들을 떠올렸습니다. 놀고 난 뒤의 느낌을 떠올렸습니다(15쪽).”와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감정을 소모”한다면 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놀이는 즐거움이니까요. 놀이는 신나게 즐기는 삶이니까요. 놀이는 활짝 웃으며 맑게 부르는 노래이니까요.


  아이들만 놀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놉니다. 아이들만 신나게 놀아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감정 소모”나 “감정 소비” 아닌 “마음을 살찌우는 놀이”를 누릴 때에 즐거운 삶이 됩니다. “마음을 밝히는 놀이”를 즐길 때에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즐겁기에 찍는 사진일 때에 빛이 납니다. 기쁘기에 찍는 사진일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신나게 놀며 찍는 사진일 때에 웃음이 스며듭니다. 알뜰살뜰 살아가며 찍는 사진일 때에 따스한 기운이 서립니다.


  이승은 님은 인형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형 ‘연두’와 숲마실을 누리다가, “연두가 깨운 숲 속의 잠자는 공주는 제 마음속에 있었나 봅니다(5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공주도 하느님도 왕자도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바깥에서 찾는 공주가 아니고, 먼 곳에서 바라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동화책이나 연속극에서 찾는 왕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속에서 느끼면서 찾는 왕자입니다. 곧, 사진이란,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읽으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헤아릴 적에 사진을 즐겁게 찍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할 적에 사진을 착하며 곱게 찍어요.

 

 


  이승은 님은 “미쉘은 아무것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물감들을 섞어 보아도 빛나는 햇빛과 반짝이는 잎사귀들을 그릴 색은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5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또, “그대로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겁이 났지만 조금씩 조금씩 걸었습니다. 어쩌며 저는 세상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길을 잃었어도 괜찮습니다. 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267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햇빛과 반짝이는 잎사귀를 물감으로 그릴 수 없다고 하지만, 두 눈으로는 똑똑히 바라보아요.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는 햇빛과 반짝이는 잎사귀라 한다면, 물감으로도 사진으로도 제대로 담지 못할 수 있어요. 두 눈이 가장 걸맞고 알맞겠지요. 그런데,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는 햇빛이라면, 내 눈으로 스며드는 결과 무늬를 마음으로 삭혀서 내 손을 찬찬히 놀려 물감으로나 사진으로나 즐겁게 담을 수 있습니다.


  두 눈으로 바라볼 때하고는 빛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마음을 믿고 손을 사랑하면 새로운 빛과 결과 무늬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요. 마음을 아끼고 손을 보살피면 새삼스러운 빛과 결과 무늬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야기 한 자락 새삼스레 길어올려요.


  멋진 모습 보여주는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 앞에서 멋지게 보이는 삶을 가꾸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놀라운 모습 드러내는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일을 해야 하지 않아요. 나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는 하루하루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사람이 모델이 될 수 있고, 고양이가 모델이 될 수 있어요. 아파트가 모델이 될 수 있고, 골목집이 모델이 될 수 있어요. 인형이 모델이 되거나 자전거가 모델이 될 수 있어요. 무엇을 모델로 삼든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즐거운 웃음꽃이 있으면, 모두 아름다운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6.9.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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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 - 아이와 함께 근교에서 즐기는 도시락 나들이
박혜찬 글 사진 / 나무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46

 


숲에서는 누구나 숲사람
― 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
 박혜찬 사진·글
 나무수 펴냄
 2010.10.12. 13800원

 


  박혜찬 님이 이녁 아이와 서울 둘레에서 즐겁게 놀러다니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그러모은 책 《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나무수,2010)를 읽습니다. 아이가 박혜찬 님한테 찾아들었기에 이렇게 “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 하고 아이한테 물으면서 아이와 함께 신나게 뛰놀면서 사진으로도 함께 놀 만한 자리를 찾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 깃든 ‘놀이터 또는 나들이터’는 즐겁거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가 있기에 한결 재미나고,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새롭게 바라보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박혜찬 님도 “결혼과 함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쁜 딸 윤정이가 나에게 왔고, 아기가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내 눈을 바라보며 처음 옹알이하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언제부터인가 내 카메라에는 늘 딸이 함께 있었다(8쪽).” 하고 말합니다.


  윤정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방긋 웃을 적에는 어머니 박혜찬 님도 윤정이를 바라보며 방긋 웃기 마련입니다. 윤정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음꽃 터뜨리면 어머니 박혜찬 님도 윤정이를 마주 바라보면서 까르르 웃음꽃 터뜨리기 마련이에요. 힘들거나 서운하거나 고단한 일이 있어도 아이와 함께 웃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며 웃고, 아이가 하루를 한껏 누릴 만한 데를 찾으면서 다시금 웃습니다.


  윤정이가 태어나기 앞서, 박혜찬 님은 이녁 짝꿍하고 가을마실 다니고 봄나들이 다녔겠지요. 그때에도 “울긋불긋, 나뭇잎의 색이 정말 곱고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18쪽).” 하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박혜찬 님과 짝꿍(아이 아버지)에다가 아이가 있습니다. 그동안 두 사람 또는 한 사람이 누리거나 느낀 고운 빛을 새롭게 한 사람이 더 누립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또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고운 빛을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가을빛을 나뭇잎에서 찾고, 가을내음을 나무한테서 맡으며, 가을놀이를 어머니 곁에서 즐깁니다.


  길을 걷다가 고운 가을빛을 볼 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아이를 부릅니다. 얘야 저기 좀 보렴, 저기 저 아름다운 가을빛을 바라보렴, 하고 말합니다. 시골에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 곳곳을 흰구름이 몽실몽실 채우면, 이 구름춤을 올려다보면서, 얘야 저기 좀 봐라, 저기 저 고운 구름빛을 바라보렴, 하고 말해요.


  “이곳은 사방이 파스텔 색상이라 아이가 정말 흥미로워한다(30쪽).”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새롭게 바라보고 새삼스레 만지면서 삶을 배웁니다. 아이한테는 놀이가 가르침이요 삶입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고, 아이들은 노는 동안 사랑과 꿈이 큽니다. 그래서, 《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에 나오듯이 어버이가 되고 나면 누구나 집 둘레에서 신나게 찾아가서 즐겁게 뛰놀 만한 데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집 둘레 먼 곳으로 마실을 다니기도 하면서, 집에서 누릴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하지요.

 

 

 


  마루에서도 생각을 펼쳐 나들이를 다닙니다. 마당에서도 꿈을 이어 마실을 다닙니다. 꼭 수목원이나 깊은 시골이 아니더라도, 도심과 떨어진 조그마한 풀숲에서도 숲바람을 실컷 들이켤 수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정말 천진난만한 움직임과 모습, 표정을 보여준다(40쪽).”는 말처럼, 아이들은 숲에서 숲아이 되어 숲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바다아이 되어 바다노래를 불러요. 아이들은 들에서 들아이 되어 들노래 부릅니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아파트아이가 됩니다. 학원에 가는 아이들은 학원아이가 됩니다. 학교에 다니며 숙제를 짐처럼 받으면 숙제아이가 돼요. 작은 일 하나로도 꾸지람을 들으면 꾸지람아이 되고, 늘 웃음 어린 이야기를 어버이한테서 들으면 웃음아이 됩니다.


  삶은 저 먼 나라 아닌 바로 이곳에 있어요. 삶처럼 사진 또한 저 먼 곳에서 나들이를 해야만 찍지 않고, 바로 이곳에서 늘 찍어요.


  아이들 웃음꽃은 언제 어디에서나 찍을 수 있습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서로 믿고 기대고 돌보고 아끼고 사랑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사진을 얻고, 날마다 잠이 드는 자리에서 사진을 얻습니다. 날마다 노래하고 노는 어느 자리에서나 사진을 얻어요.


  방바닥에 엎드려 곯아떨어진 아이를 사진으로 담아요. 여름에는 곁에서 부채질을 하고, 겨울에는 곁에서 이불 한 장 더 덮어 주면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책 《윤정아, 우리 어디 갈까?》 끝자락을 보면, ‘도시락 싸기’를 덤으로 보여줍니다. 어머니(또는 아버지)가 집에서 예쁘장하게 꾸릴 만한 도시락을 잘 보여줍니다. 나는 늘 도시락을 투박하게 싸기만 했는데, 이렇게 도시락을 예쁘장하게 꾸리면 나들이를 하면서 한결 맛나게 먹을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붙인다면, 아이와 함께 멀리 나들이를 다니지 못하고 집 언저리에서 아이와 어울려야 할 때에, 어떠한 놀이를 누리고 어떠한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몇 쪽으로나마 담으면 더 알찰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가까운 놀이터 알아보기, 조그마한 공원 살피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아이와 쉬면서 놀 만한 데 찾기, 이런 이야기 저런 생각을 그러모으면, 윤정이네 식구를 비롯해 이 땅 모든 식구들 보금자리에 웃음꽃과 웃음이야기 감도는 웃음사진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푸른 잔디밭에서 아이와 엄마의 발을 함께 찍어 두는 것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느낌의 사진이다(72쪽).”와 같은 말처럼, 사진은 멋들어진 어떤 틀에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은 삶에 맞추어 찍습니다. 사진은 이야기에 맞추어 얻습니다. 사진은 생각에 맞추어 빚습니다. 사진은 사랑에 맞추어 나눕니다.


  숲에서 찍으면서 숲을 노래하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숲이 아닌 아파트에서 찍더라도 마음속에 숲을 담으며 꿈꾸기에 숲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고, 사랑스레 바라보기에 책 하나 사진 한 장 살가이 읽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찍을 때에 즐거울까를 느낍니다. 마음으로 마주하며 어디에서 찍을 적에 아름다울까를 깨닫습니다.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며 이 땅에서 언제나 누리는 맑은 웃음과 노래를 살찌웁니다. 4346.8.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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