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 학교 대신 세계, 월급 대신 여행을 선택한 1000일의 기록
박 로드리고 세희 글.사진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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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3

 


살아가는 대로 태어나는 사진
―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박 로드리고 세희 글·사진
 라이팅하우스 펴냄, 2013.12.16.

 


  누구나 스스로 찍고 싶은 사진을 찍습니다. 찍고 싶지 않은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읽습니다.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을 헤아리며 움직입니다. 마음이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마음으로 노래하며, 마음으로 꿈을 짓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이들을 찾아나서며 사진을 찍습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속을 거닐며 사진을 찍습니다.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요. 애틋하게 아끼는 벗이 있으면 애틋하게 아끼는 벗을 한결 고우며 맑게 사진으로 찍고 싶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역사를 다루는 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문학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이문학을 즐겁게 읽어요. 만화책을 좋아하면 만화책을 읽고, 그림책을 좋아하면 그림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책을 굳이 집어들어 읽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이 닿지 않는 책을 애써 장만하여 읽지 않습니다.


.. 이렇게 멀 줄이야. 릭샤로 30분 넘게 달려왔다. 약속한 금액에서 얼마를 더 보태 삯을 치렀다. 운전수는 나를 내려주고 노점에서 담배 한 개비를 사 피웠다. 녹초가 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 남들은 다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데 너는 나를 구경하네. 그래, 텔레비전보다는 사진사 놈을 구경하는 게 더 낫다 …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본질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삶을 교정하는 것이다 … 길을 느낀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  (20, 25, 63, 213쪽)

 


  프랑스가 좋다면 프랑스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부탄이 좋으면 부탄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울릉섬이 좋다면 울릉섬으로 떠납니다. 거제섬이 좋으면 거제섬으로 갑니다.


  좋아하지 않는 데로 나들이를 갈 까닭이 없습니다. 반갑지 않은 데로 마실을 가야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어울리며 삶을 누릴 데로 나들이를 갑니다. 기쁘게 쉬고 얼크러지며 삶을 노래할 곳으로 마실을 가요.


  느긋하게 지낼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즐겁게 살림을 꾸릴 만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아름답게 어깨동무하고픈 곁님하고 알콩달콩 하루를 보냅니다. 가장 맛나게 먹을 밥을 가장 예쁘게 차립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면, 보람차면서 즐거운 일거리를 찾습니다. 돈을 쓸 때에는, 활짝 웃으면서 마음이 넉넉하도록 돈을 쓰지요.


  돈이 없다면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어요. 돈이 없으니까 아무 책이나 사들이지 않아요. 돈이 없기 때문에 아무 사진기나 되는대로 장만하지 않아요.


  아마,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이나 먹겠지요. 아무래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책이나 읽겠지요. 아무튼,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무 사진기나 되는대로 집어들어 되는대로 사진을 찍으리라 느껴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밥을 차리지 못해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아무 책이나 함부로 골라들지 않아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제 몸과 마음에 가장 알맞다 싶은 사진기를 헤아려서 손에 쥐어요.

 


.. 여행은 내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 고개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중국이고 저쪽은 키르기스스탄인데, 자연의 고개에 실제로 선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다. 위성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구 땅 위에는 아무런 경계선이 없다. 국경은 오직 지도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경계일 뿐이다 … 따지고 보면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서 꼭 영어를 써야 할 이유는 없다 … 도둑은 한국에도 있고 방글라데시에도 있다. 여태 여행하는 동안 두 번 도둑을 맞았다. 한 번은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였고 다른 한 번은 부자 나라인 호주였다. 곤경에 처한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 준 이들도 그 나라의 이웃이었다 ..  (35, 46, 59, 206쪽)


  별을 보고 싶은 사람은 별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햇볕을 쬐고 싶은 사람은 햇볕이 드리우는 곳으로 갑니다. 별 하나 볼 수 없는 데에서 별을 노래할 수 없어요. 햇볕이 깃들지 않는 데에서 햇볕을 바랄 수 없어요.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별바라기 할 삶터를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스스로 짓습니다. 해바라기 할 만한 보금자리를 스스로 짓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집은 스스로 가꿉니다. 내 손으로 가꾸는 보금자리요 집이며 삶터입니다. 내 가슴속에서 끄집어낸 사랑으로 우리 집과 살림과 이야기를 가꿉니다.


  다른 사람이 내 사진을 찍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 사진을 찍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일구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 삶을 일굽니다. 다른 사람이 무지개를 보아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지개를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이 밥을 먹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밥을 먹습니다. 참말, 다른 사람이 숨을 쉬어 주지 않아요. 몸이 아프거나 힘들더라도 스스로 숨을 쉬어 몸과 마음을 살립니다.


  이름난 작가들 사진이론을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고 헤아리면서 내 사진빛을 사랑하면 됩니다. 대단한 작가들 사진강의를 듣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고 돌아보면서 내 사진넋을 가다듬으면 됩니다. 훌륭한 작가들 사진전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품은 꿈을 깨달아 한 걸음 두 걸음 씩씩하게 사진길 걸어가면 됩니다.

 


.. 병원 치료만으로는 몸이 쉽게 낫지 않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살핌이 있어야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 나는 기차를 타고 몽골에 갔는데 그건 타임머신이었다. 길에서 만난 두 소녀에게서 내 어머니와 이모의 유년이 보였다 … 가족, 친구만 소중한 게 아니다. 아무리 시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인생에는 어떤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 유럽 친구들은 국경을 대하는 태도가 한국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해 아시아나 아프리카까지 가는 긴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을 여행하기도 했다 ..  (67, 95, 148, 214쪽)


  박 로드리고 세희 님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분은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뜻을 품었으니 늘 여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평생 여행하며 살겠다는 꿈을 세웠으니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 삶을 누리겠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꿈꾸는 대로 살아가니까요.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마음에 담은 뜻대로 길을 걸어가니까요.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는데 무엇을 이룰까요. 꿈이 있다고 하더라도, 꿈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꿈을 못 이룹니다. 마음속으로 품은 꿈을 낱낱이 그려야 해요. 마음속에도 그리고, 종이에도 그리며, 글로도 그릴 수 있어야 해요. 언제나 꿈을 이야기하고, 늘 꿈을 노래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 비로소 꿈을 이루어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 꿈이라면, 스스로 이루지 못해요. 스스로 노래하지 않는 꿈이라면, 앞으로 몇 해가 흘러도 이루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내며 사랑하는 꿈이 아니라면, 아무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해요.

 


.. 알치에서 지내는 사흘 동안 매일 보리밭을 구경해도 지겨운 줄 몰랐다. 매번 새로운 몸짓과 새로운 소리였으니 … 라다크에는 오염원이 아예 없어 하늘과 공기는 언제나 맑았다. 그만큼 사람들도 맑았다. 라다크 사람들은 좀처럼 화내는 일이 없다. 우리 기준대로라면 그들은 육체노동에 신음하고, 가난을 저주하며 궁색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 … 오랫동안 라다크를 지켜본 헬레나의 지적대로라면 지금 라다크는 파괴가 한참 진행중인 것이다. 우리들 여행자 모두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여행지에서 행동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의무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  (163, 169쪽)


  즐겁게 여행길에 오르면, 사진 또한 즐겁습니다. 즐겁게 나서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반가우면서 서로 즐겁습니다. 즐겁게 누리는 여행길에서는 라면 한 봉지를 끓여도 맛있습니다. 즐겁게 오가는 여행길이라면 기쁘거나 슬픈 일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어떤 일이건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어 줍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전문 사진작가 아닌 여느 사람들이 찍은 여행사진일 때에도 무척 맑거나 밝은 빛이 감돌곤 해요. 꼭 전문 사진작가여야 여행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들 마음결이 여행사진에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한껏 들뜬 채 아주 즐거운 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누리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들뜨며 즐거운 빛을 담습니다. 들뜨지 않거나 즐겁지 않은 채 ‘작품을 남기려’ 하는 전문 사진작가는 오히려 너무 우중충하거나 무겁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만 찍습니다.


.. 내친김에 주인에게 보내지 못한 사진들을 죄다 가지고, 내가 여행한 곳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싶다 … 나는 오랫동안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을 보면서 여행의 꿈을 키워 왔다 … 아이들이 사진 찍는 걸 보고 있자면 사진 찍는 것도 참 쉬운 일이다 … 영화용이든 사진용이든 모든 디지털카메라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건 필름카메라다. 디지털카메라의 품질을 논할 때, 얼마나 필름처럼 보이는지가 기준이 된다 … 여태 음식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는 나는 사람 흉내만 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남이 해 주는 음식만 먹어 봤지 남에게 음식을 해 주는 건 꿈에서도 생각 못 해 봤으니, 어디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  (172, 197, 200, 201, 223쪽)

 


  사진을 많이 배워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배운 적 없으니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즐겁게 사진을 찍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즐겁게 노래합니다. 즐겁게 춤을 추고, 즐겁게 밥을 지으며, 즐겁게 아이들과 손 맞잡고 놀아요.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즐겁게 편지를 씁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넌지시 손가락 하나 사진기에 올려 단추를 가만히 누를 뿐입니다. 사진을 놓고 무언가 배워야 한다면,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는 한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데에 ‘사진 작품이 있다’고 배우면 됩니다. 사진찍기도 사진읽기도 가르칠 수 없어요.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맞아들이며, 스스로 즐깁니다.


  사진작가 아닌 이들이 여행사진을 맑고 밝게 찍는 까닭은, 스스로 맑고 밝은 넋으로 여행길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사진작가들이 내놓는 사진책이 무겁거나 우중충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사진작가 스스로 너무 무겁거나 우중충하기 때문입니다.


  달려든다고 해서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붙잡는다고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고 싶은 사진은 모두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나둘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기쁘게 춤추면서 하나씩 내놓으면 됩니다.


  노래하며 찍은 사진은 이웃들이 노래하면서 읽습니다. 춤추면서 찍은 사진은 이웃들이 춤추면서 읽습니다. 억지스레 찍은 사진이라면 이웃들도 억지스레 읽어 주어야 합니다. 고단하게 찍은 사진은 이웃들 또한 고단하게 읽겠지요.


.. 총을 쏘는 사람과, 화분을 올려놓은 사람 사이의 강한 대비 속에 나는 누구를 지지하며 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명확하게 다짐할 수 있었다 … 한국을 비롯한 여느 나라였다면 터널을 몇 개나 뚫었을 텐데, 뉴질랜드는 시간 단축이나 합리성 대신 자연 보존을 선택하고 있었다 … 공원 내에서는 어떠한 것도 판매되지 않았다.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은 제가끔 먹을거리와 침구를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불편하지만 합당한 트레킹의 원형이었다 ..  (226, 266, 270쪽)


  사랑스럽게 살아가면 사랑스러운 사진을 빚습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면 평화로운 사진을 낳습니다. 너그럽게 살아가면 너그러운 사진을 선물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면 착한 사진을 엮습니다.


  마음결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마음씨에 맞추어 거듭나는 사진입니다. 아무개 제자라서 이런 사진을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어떤 흐름이나 사상에 맞추어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이 사진을 찍은 사람 넋이자 말이고 삶입니다. 모든 사진은 이 사진을 선보인 사람 꿈이자 사랑이요 노래입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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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0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 담긴 글과 사진도 좋지만 함께살기 님의 맑고 아름다운 글과 함께 경계도 없이 서로 섞이니 마치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이 잘 어울립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4-01-08 12:18   좋아요 0 | URL
고운 마음이 있어
즐겁게 잘 읽어 주시리라 느껴요.

아침이었나 어젯밤이었나 새벽이었나...
oren 님 지난 한 해 사진이야기도
아주 즐겁게 읽었어요~ ^^

페크pek0501 2014-01-0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을 쏘는 사람과, 화분을 올려놓은 사람 사이의 강한 대비 속에 나는 누구를 지지하며 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명확하게 다짐할 수 있었다"
- 총 대신 화분을 만지면서 살아야 좋은 삶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겠지요...

꼼꼼한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숲노래 2014-01-09 13:06   좋아요 0 | URL
모두들, 전쟁 아닌 평화를,
독재 아닌 민주를,
따사로운 사랑과 꿈으로 나아간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포토닷 Photo닷 2014.1 - Vol.2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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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4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
― 사진잡지 《포토닷》 2호
 포토닷 펴냄, 2014.1.1.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서 사진잔치를 열기도 하고 사진책을 내기도 합니다. 사진만 찍고 사진잔치를 안 열거나 사진책을 안 엮는 사진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꼭 사진잔치를 열어야 하지 않고, 반드시 사진책을 펴내야 하지 않아요.


  사진잔치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열어야 하지 않습니다. 전주나 순천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고흥이나 함평처럼 작은 시골에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사진잔치에 백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찾아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만한 곳에 전시관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디에서나 전시관을 열 만하고, 언제라도 사진잔치를 꾸릴 만합니다.


  사진잔치는 언론 매체에 알려져야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동무와 이웃을 불러 조촐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흐름을 사진으로 담아 종이에 앉힌 뒤, 돌잔치를 하거나 생일잔치를 하면서 이쁘장하게 사진잔치를 함께 마련할 수 있어요. 아이가 열 살을 맞이하는 날을 기려, 갓 태어난 날부터 열 살로 자라기까지 거친 삶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갈무리해서 벽에 차곡차곡 붙이는 사진잔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두툼한 사진책을 꼭 한 권 만들어서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어요.


  널리 알려져야 이름난 사진책이 아닙니다. 널리 이름을 날려야 멋진 사진가로 되지 않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2014.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도 함께 좋아해 주고 내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어 이제 저 혼자만의 놀이가 아닌 그들과의 약속이 되어 버렸어요(28쪽/김민수).”와 같은 말마따나, 스스로 좋아서 찍을 때에 사진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이 안 됩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벌 수 있고, 사진관(또는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으며, 사진기자로 일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직업이 ‘사진찍기’라서 ‘사진가’이지 않아요. 직업이 기자이기에 ‘글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시청이나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쓰는 보고서도 ‘글’이에요. 연필을 쓰든 셈틀을 쓰든 글을 만져요. 그렇지만, 공문서를 가리켜 ‘글’이나 ‘문학’이라 하지 않으며, 이런 글(보고서)을 쓰는 이들더러 ‘작가’라 하지 않습니다.

 


 

 

  사진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모국에 돌아와 다시 보게 된 우리 땅의 풍경은 안으로 스며 있고 오래 응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 몸과 같은 느낌이었다. 첫 눈에 매혹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질리지 안는 풍경 속에 스며 있는 빛을 찾아가고 있고 … 전시는 책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책의 형식으로 이미지를 엮어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은 사진가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사진을 알게 된 것도 사진책을 통해서였고, 책으로 내 작업을 정리할 때,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느낌을 받는다(101쪽/주상연).”와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습니다. 삶을 느끼고 읽을 줄 알면서, 이러한 삶을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진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을 줄 모른다면 사진가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봅니다. 삶을 느끼거나 읽더라도, 이를 사진기를 빌어 찬찬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찬찬히 담아냈어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나 스스로 즐겁게 웃거나 울지 못한다면 사진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고 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사진가입니다. 연필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글작가입니다. 붓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그림작가(또는 화가)입니다. 노래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노래꾼(또는 가수)입니다.


  시골마을 흙지기는 흙으로 이야기를 해요. 씨앗 한 톨로 이야기를 하지요. 풀 한 포기로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흙지기(또는 농사꾼)입니다. 시골 흙지기하고 사진가는 똑같아요. 손에 호미를 쥐거나 사진기를 쥐는 모습만 다를 뿐, 삶과 눈길과 넋이 똑같아요.


  이리하여, “사진가는 이전에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떤 세팅으로 어떤 분위기에서 먹었을 때 더 맛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한식은 물론 프랑스 요리까지 배웠다 … ‘오퍼레이터가 되지 말아라, 테크니션이 되지 말아라, 생각이 있는 사진가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업시간에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획과 사고능력이 있어야 롱런하는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122쪽/이종근).”와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는 사진가로 태어나지 못해요. 사진기를 잘 만진대서 사진가라는 이름을 얻지 못해요.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려는 이야기를 깨달아야 하고, 사진으로 엮어서 밝히는 빛을 알아차려야 해요. 사진가는 사진으로 삶을 짓는 사람이거든요. 사진가는 사진에 빛을 얹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거든요.


  생각을 모아서 엮는 사진책입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복닥복닥 모여 삶을 이루는 한켠에서 사진기를 손에 쥐고는 내 생각을 따사롭게 그러모아 이야기 한 타래를 사진빛으로 영그는 사진가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호를 덮으면서 꿈꿉니다. 이 땅 아름다운 사진가들이 사진을 한결 사랑하면서 삶을 더욱 즐기는 새해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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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시인 천상병 추모 사진집
조문호 사진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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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2

 


마음에 담을 이야기를 찍어야지요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조문호, 김종구 사진
 눈빛 펴냄, 2013.4.20.

 


  시인 천상병 님을 기리는 사진책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눈빛,2013)입니다. 그런데, 천상병 님 삶자락이나 이야기를 사진으로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조문호 님이 천상병 님을 만난 자리에서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고는 하지만, 조문호 님 스스로 “그 당시에는 뵐 때마다 찍을 형편도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활동반경도 너무 좁았다. 의정부 수락산 자락의 집과 인사동의 찻집 귀천과 주막 실비집, 그리고 춘천의 병원이 전부였다(후기).” 하고 말합니다. 천상병 님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못해, 아무래도 ‘그림이 될 만한 사진’을 얼마 못 찍었다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러면,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을 찍은 사진으로 사진책을 낸 분들은 어떠했을까요. 두 스님을 사진으로 담은 분들도 ‘스님이 다니는 곳’이 그곳이 그곳인 터라 ‘그림이 될 만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고 말해도 될까요. 성철 스님은 사진기자한테 사진을 찍으려면 삼천 번 절을 하고서 찍으라 말하기도 했어요. 꼭 삼천이라는 숫자를 채우라는 뜻도 될 테지만, 그만 한 마음가짐과 눈빛과 넋일 때에 비로소 사진다운 사진이 태어난다는 뜻도 돼요. 늘 같은 집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하루 내내 집에만 있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그림이 될 만한 사진’일 때에 사진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사진이 될 때에 사진’이에요. 사진이 되는 사진이란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에요.


  천상병 시인 얼굴을 찍어야 ‘천상병을 말하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천상병 시인이 읽은 책, 천상병 시인이 잠드는 잠자리, 천상병 시인이 곁님과 함께 먹는 밥상, 아침저녁으로 천상병 시인 집으로 스며드는 햇살, 천상병 시인이 꿰는 신 한 켤레, 천상병 시인 옷장, 빨래한 옷을 널어 놓는 빨랫줄과 빨래집게,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는 비누 한 장, 마룻바닥, 천상병 시인 손때를 탄 살림살이, 막걸리잔, 막걸리병, 원고지, 연필, …… 이야기가 될 빛은 아주 많아요. 그러나, 사진책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에는 이런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요. 천상병 시인 얼굴과 몸을 찍은 사진이 마흔 장 즈음 실었으나, 이 사진으로 책이름 그대로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와 걸맞는 이야기를 느낄 수 없어요.


  사진책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를 보면,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다는 김종구 님이 찍은 사진을 아홉 장 함께 싣습니다. 이 사진책을 보면서, 조문호 님 사진보다 김종구 님 사진이 한결 ‘시인 천상병 님 삶을 이야기하는 빛’이 그득하다고 느껴요. 그때그때 여러 곳에서 잘 찍은 사진이기에 이야기가 드리우지 않아요. 이야기를 깨닫고 느껴서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나란히 있을 적에 찍기에 ‘이야기 묻어나는 사진’이 되지 않아요. 같은 자리에 마주보고 앉아도 얼마든지 이야기 묻어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묻어나는 사진을 찍을 적에 우리들은 어느 한 사람을 가리켜 ‘사진가’나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조문호 님은 “선생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특유의 세금(?)을 바쳐 가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일이 좀 걸렸지만, 그동안 선생님의 순진무구한 표정들과 마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후기).” 하고 말합니다. 그래요. 사진을 찍어도 즐겁고 좋을 테지만, 굳이 사진을 안 찍어도 즐겁고 좋아요. 마음으로 이야기를 담으면 사랑스럽고 기쁩니다.

 

 

 

 

 

 

 


  조문호 님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나의 마음을 헤아리듯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숱한 초상사진을 찍어 왔지만 천 선생님보다 좋은 모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순간적인 기지로 연출하는 여유는 어느 연기자들의 몸짓이나 표정보다 한 수 위였다(후기).”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작은 사진책은 ‘늘 같은 곳에 있어도 늘 다른 빛으로 좋은 모델이 된 시인 한 사람’을 보여주는 사진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라면, 이 사진책은 천상병 님을 기리는 사진책이 될 수 없어요. ‘좋은 모델’을 찍는 일과, 이 땅을 떠난 시인을 기리는 사진책은 같은 자리에 놓이지 못해요. 천상병 시인은 ‘좋은 모델’이기에 앞서 ‘좋은 삶벗’이요 ‘좋은 이야기벗’이고 ‘좋은 이웃’으로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셨을 테니까요.


  마음에 담을 이야기를 찍을 때에 사진입니다. 마음에 담을 이야기를 찍으면 즐겁게 나누는 사진입니다. 대단한 모델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곳에 가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수백 장이나 수천 장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빛을 찍으면 됩니다.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찍으면 됩니다. 삶을 그리고 삶을 춤추며 삶을 밝히는 눈빛으로 사진 한 장 차근차근 찍으면 됩니다. 4346.12.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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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야마모토 토시하루 지음, 강석기 옮김 / 넥서스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4

 


사랑스러운 삶 물려주는 마음
―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야마모토 토시하루 사진·글
 강석기 옮김
 넥서스주니어 펴냄, 2006.2.25.

 


  일본사람 야마모토 토시하루 님은 지구별 곳곳 바지런히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사진책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넥서스주니어,2006)는 지구별 수많은 나라 가운데 캄보디아에 찾아가서 만난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사진으로 그러모아 보여줍니다. 책 첫머리를,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캄보디아의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하고 엽니다. 아이들더러 ‘얘야, 너한테는 무엇이 가장 크고 아름답니?’ 하고 물으면서 ‘네가 아름다우면서 가장 대단하다 여기는 한 가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했다고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꽃을 그리기도 하고, 숲을 그리기도 합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 지뢰가 없어 걱정 또한 없는 마을, 우리 집, 소, 돼지, 닭, 자동차, 달구지, 길, 부처님, 여신, 매춘과 인신매매 없는 나라, 우리 나라, 우리 나라 깃발 들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아이는 ‘나 스스로’를 그려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라면 무엇을 그릴까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더러 그림을 그리라 하면 무엇을 그릴까요.


  대학교를 그릴까요. 영어를 그릴까요. 축구? 월드컵? 손전화? 인터넷게임? 아파트? 돈? 권력? 대통령? 무엇을 그릴까요. 아니, 우리는 무엇을 가장 아름답거나 대단하게 여길 적에 스스로 삶을 즐겁게 누릴 만한가요.


  다른 사람한테 묻기 앞서 나 스스로한테 먼저 물어 봅니다. 나더러 그림을 그리라 하면 무엇을 그릴까 하고 물어 봅니다. 그래, 나한테 가장 아름다우면서 대단한 한 가지를 그림에 그려서 나타내라 한다면, ‘사랑’을 그리겠습니다. 사랑으로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겠어요. 사랑으로 피어나는 이야기가 자라는 보금자리, 숲, 햇볕, 빗물, 시냇물, 풀꽃, 새, 나비, 흙, 바다, 멧자락 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그리겠어요. 이 아름다운 터전에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착한 사람들을 그리겠어요.

 

 

 


  야마모토 토시하루 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이해하게 될 것이고, 지금보다 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들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지요.” 하고 말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들한테 아름다움을 물려주면, 우리는 아름답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우리 어른들이 스스로 나서서 사랑을 꽃피운다면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아 지구별에 사랑꽃 흐드러지도록 가꿀 수 있어요.


  학교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이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대통령이고 시장이고 군수이고 국회의원이고 공무원이고, 아름다움을 빛낼 길을 걸어가야 아름답습니다. 교육이나 정치나 행정이 아닌 사랑을 나누어야지요. 시인과 소설가는 문학이 아닌 사랑을 쓸 노릇입니다. 장사꾼은 물건이 아닌 사랑을 사고팔 노릇입니다. 시골 흙지기는 ‘농산물’ 아닌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사랑으로 돌보며 가꿀 노릇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함께 살아갈 노릇이에요. 돈을 은행계좌 숫자 늘리는 데에 쓰지 말고,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로 나아가도록 즐겁게 벌면서 나눌 노릇입니다.


  사랑스러운 삶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되어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스러운 삶 물려주고 싶은 넋이 되어 사진을 읽습니다. 지뢰를 밟아 다리 하나 날아간 아이는 울거나 징징 짜면서 살까요? 아니에요. 다리가 잘려나가 아프거나 고단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언제나 맑고 씩씩하게 사랑을 속삭입니다.


  신 한 켤레 변변하게 없어 흙땅을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한테 신발을 선물하면 될까요? 아니에요. 신발을 선물하지 않아도 돼요. 흙길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아 주지 않아도 돼요. 자동차가 없어도 돼요. 아늑한 숲을 건사하면서 푸르게 웃을 수 있는 평화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이 드리우도록 손을 맞잡으면 돼요.


  아이들이 말해요. 귀를 기울여 들어 보셔요. 아이들이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요. 아이들이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요. ‘자동차’를 말하는 아이도 있으면서, ‘달구지’를 말하는 아이도 있어요. 경운기나 트랙터는 몰라도 되고 없어도 돼요. 흙을 가는 ‘소’가 더없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어요. 집에서 기르는 닭을, 돼지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어요.

 

 


  어른들은 무엇을 바라보아야 좋을까요. 어른들은 무엇을 느껴야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사진기를 손에 쥐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른이에요. 아이들은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야기를 일구면서 나누어요. 어른들은 구태여 사진을 찍고 책을 펴내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줄 여겨요.


  캄보디아 아이들은 어떤 사진으로 담을 때에 싱그러울까요. 난민촌이나 빈민촌에서 잔뜩 얼굴 찌푸린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으면 무언가 ‘고발’할 만한가요. 푸른 숲 우거진 시골에서 살아가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마냥 흑백사진으로만 담아 ‘예술스럽게’ 보이면 무언가 대단한가요.


  까무잡잡 탄 아이들 살결을 돌아봐요. 이 나라 아이들 너무 허여멀건 살갗을 살펴봐요. 한국 아이는 왜 모래밭이나 운동장이나 학교에서 맨발로 뛰놀지 못할까요. 한국 아이들은 왜 학원과 사교육에 짓눌려 골목놀이 하나 즐기지 못해야 할까요. 한국 아이들은 왜 공차기나 공치기를 해야 하고, 한국 아이들은 왜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게임을 해야 할까요. 한국 아이들은 구슬땀 흘리며 놀 빈터를 얻으면 안 되나요. 한국 어른들은 주차장 늘리고 찻길 새로 닦는 데에만 마음 쏟으면 되나요. 아이들이 학원에도 입시에도 뭐에도 뭐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맺히도록 뛰놀게 할 수 없는 노릇인가요. 왜 아이들은 모두 대학바라기가 되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똑같은 옷을 군인옷처럼 맞춰서 입고는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지식만 쌓아, 도시 아이도 시골 아이도 온통 도시바라기가 되어야 하나요.


  사진책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는 “그게 뭘까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제일 필요한 것, 매일매일 살기 위해 꼭 해야 할 것,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정말 소중한 것,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에게도 참 중요한 것, 마음을 좀더 편안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사실, 그게 뭐든 상관없어요. 그냥 마음먹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 보세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끝을 맺습니다. 작은 이야기를 작은 사진과 작은 그림과 작은 말마디로 살풋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화가나 가수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기술자나 정치꾼이나 의사나 작가나 변호사 따위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뛰놀고 자라면서 어른이 되면 아름답습니다. 어른으로 자라며 이 땅에 오롯이 서는 ‘사람’으로 즐겁게 웃을 수 있을 때에 환하게 빛납니다. 햇볕을 노래하고, 들꽃을 노래해요. 빗물을 노래하고 들바람을 노래해요. 바닷내음을 노래하고 숲내음을 노래해요. 풀벌레하고 어깨동무하고, 멧새랑 손을 잡아요. 한손에는 사랑을 얹고, 다른 한손에는 꿈을 얹어 서로 기쁘게 만나요. 4346.12.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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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기계
노순택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1

 


내 사진을 가슴에 담아
― 망각기계
 노순택 사진
 청어람미디어 펴냄, 2012.5.3.

 


  사진기가 있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조금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편으로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거룩한 전쟁을 하며 적군을 물리치는가’ 하고 떠벌이는 자리에 사진을 씁니다.


  연필과 종이가 있어 글을 씁니다. 글을 쓰기에 사람들이 살아온 발자취가 남아 ‘역사’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먼 뒷날 사람들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은 글을 읽으며 지난날 사람들 삶을 돌아봅니다. 그런데, 연필과 종이를 쥔 사람은 모든 사람들 모든 삶을 적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적는 사람이 드뭅니다. 신문을 보고 책을 살피면 쉬 깨달을 수 있어요. 거의 모두 도시 언저리 이야기요, 정치꾼 이야기입니다. 먼 옛날 조선이나 고려나 고구려 적 이야기도 이와 같아요. 권력자 둘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 ‘역사’인 듯 남습니다.


.. 기록이란 여전히 강력한 것이지만, 기록되었다고 그것이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 때로는 기록이 어떤 중요한 기억을 왜곡하거나 망각하게 할 수 있다는 회의마저 들었습니다 … 다만 오늘의 한국사회라는 시공간에서 오월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억과 망각이 어떤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  (203, 204쪽)


  사진으로 안 찍힌 모습은 무엇일까요. 사진으로 안 찍혔으니 믿을 만하지 않을까요. 사진으로 못 찍어 사람들한테 못 보여주면 ‘없는 이야기’가 될까요.


  글로 남긴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글로 안 남겼으니 읽을 만하지 않거나 들을 만하지 않을까요. 글로 안 남겨서 사람들한테 못 읽히면 ‘없는 삶’이 될까요.


  기록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일까요.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 기록이고, 누구한테 이바지하는 역사일까요.


  경상도 밀양에서 싸우는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담는 사람이 있고, 제주도 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담는 사람이 있어요. 경기도 평택에서 싸우던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담은 사람이 있고, 새만금과 시화못에서 사진과 글로 이야기를 담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사진과 글로 담은 곳에만 이야기가 있을까요. 사진과 글로 담지 않거나 담지 못한 곳에는 이야기가 없을까요.

 

 

 


.. 투쟁의 주체는 참 평범한 사람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가던 노동자와 학생들이었지요. 그들은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이었습니다 …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정사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훼손되는 그 풍경은, 학생 시절 숨죽이며 보았던 학살의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어요. 계엄군의 총칼에 짓이겨진,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다짐하게 했던 그 얼굴들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 물론 그들이 말을 걸었다 해서,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다만 이런 생각은 했습니다. 일그러지고 녹아내리는 것은 저 사진들만이 아니라, 산 자들의 삶 자체다 ..  (205, 211, 212쪽)


  나는 1988∼1993년 사이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언제나 학교길에서 폐수처리장 곁을 걸어서 지나가야 했습니다. 또는 화학공장 옆을 걸어서 지나가야 했습니다. 1982∼1987년 사이에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는 식품공장 옆 폐수가 흐르는 도랑길을 걸어서 지나가야 했습니다. 이러면서 연탄공장 울타리 옆으로 지나가며 탄가루를 들이마셔야 했고, 인천부두에서 짐을 실어나르는 커다란 짐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를 고스란히 먹어야 했습니다. 내 동무는 유리공장 옆에서 유리가루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제철소 옆에서 쇳가루를 먹으며 놀던 동무도 있어요. 기찻길 옆에서 하루 내내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면서 탄가루를 그득그득 마신 동무도 있고요.


  요즈음 같으면 초등학교 옆에 연탄공장 못 짓겠지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식품공장을 지어 폐수를 하루 내내 들이부을 수 있을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바로 앞에 폐수처리장이나 화학공장 있어도 될까요. 다만, 내가 다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화학공장이 먼저 들어선 뒤 그 옆에다 학교를 지었습니다. 폐수처리장도 학교보다 먼저 있었어요. 그러니까, 문교부와 시 교육청에서는 공장과 폐수처리장으로 둘러싸인 한복판에 학교 허가를 내준 셈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에 앞서 그곳에는 여중과 국민학교가 나란히 있었어요. 두 학교가 버젓이 있었어도 화학공장과 폐수처리장이 그곳에 들어선 셈이랄까요.


  그러면 유리공장과 제철소와 연탄공장하고 담벼락 맞붙은 자리에서 살던 내 동무들 살림집은 무엇일까요. 공장에서 일하는 어버이를 두었으니 이런 자리에 집을 짓도록 했을까요. 공장에서 온갖 가루를 먹고 집에서도 갖은 가루를 마시는 삶은 어떤 삶이라 할 만할까요. 동무네 집에 놀러가서, 또 동무네 집과 가까운 자리에서 나란히 이 가루 저 가루 그 배기가스 마시는 삶이란 새삼스레 무엇이라 할 만할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그무렵 학교와 집 둘레에 그득그득 넘치던 공장을 놓고 옳거니 그르거니 따진 어른은 못 보았습니다. 그무렵에는 ‘공해’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인권’이라는 말도 학교에서 가르친 적 없습니다. 그무렵 학교는 주먹과 몽둥이로 국민학교 아이들조차 두들겨팼고 어마어마하게 거친 말로 아이들을 윽박지르기 일쑤였습니다. 다만,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없으며,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쓴 사람이 없어요. 신문에 이런 이야기 실린 적 없고, 책에서 이런 삶을 역사로 다룬 적 없어요.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빈번해진 대북삐라 살포현장에는 ‘광주폭동의 진상을 밝힌다’, ‘5·18의 화려한 사기극을 고발한다’ 따위의 자극적인 유인물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한미우호증진협의회라는 단체는 유네스코가 광주항쟁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걸 막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본부에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600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그 간첩들이 무기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고 합니다. 이는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의 온라인 카페에도 상세하게 게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 우리는 죽인 자와 죽임을 당한 자 모두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겁니다 ..  (208, 214쪽)

 


  서울사람은 인천 앞바다가 똥바다라 말하지만, 바로 서울로 올려보내는 가공식품 만드는 공장이 인천 앞바다에 버젓이 있으면서 날마다 쓰레기물(폐수)을 엄청나게 갯벌로 퍼부으니 인천 앞바다가 똥바다 되어요. 서울사람이 눈 똥오줌을 하수처리장 거쳐 인천 앞바다로 버리니 인천 앞바다는 더 지저분한 똥바다 됩니다. 이런 모습 저런 일을 겪으며 어린 나날 생각했어요. 국민학교 여섯 해 다니는 동안 날마다 식품공장 폐수도랑 곁을 지나며 생각했어요. ‘이렇게 쓰레기물 버리는 저 식품공장 이름이 붙은 회사 가공식품을 어떻게 먹을까?’ ‘집 옆에 식품공장이 없어, 식품공장에서 쓰레기물과 매연을 얼마나 만이 내버리는 줄 모르니 아무렇지 않게 가공식품 사다 먹을까?’


  연탄공장 옆을 지나며 언제나 손으로 입과 코를 막습니다. 입과 코를 막고 연탄공장 옆을 지나가도 재채기가 그치지 않습니다. 추우니 연탄으로 불을 때야 할 텐데, 연탄공장이 없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골에서라면 나무를 땐다는데, 도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헤아려 보았습니다. 연탄을 찍을 적부터 이렇게 탄가루 날려 숨이 막히는데, 연탄을 태우며 연탄내음 때문에 자칫 숨이 막힐 수 있다는데, 왜 깨끗하며 좋은 에너지 만드는 일에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안 쓰는지 알쏭달쏭했어요. 왜 어른들은 그저 돈 버는 일만 하는지 아리송했어요.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는 동안 폐수처리장 옆을 날마다 지나다닐 적에도 자꾸 생각했어요. ‘화학공장 폐수처리장을 저렇게 넓게 두어야 한다면, 화학공장에서는 무엇을 만들까. 저 폐수처리장에 가둔 쓰레기물을 한동안 두다가 바다로 흘려보내는데, 이렇게 되면 인천 앞바다뿐 아니라, 저 쓰레기물이 거쳐 지나갈 서해 바닷가는 모조리 더러워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조개와 바지락과 게를 아무렇지 않게 먹나. 인천 앞바다에서 멀리 떨어지면 다 괜찮나. 저 쓰레기덩이는 인천 앞바다뿐 아니라 남해에도 태평양에도 온 지구에도 그대로 돌고 돌며 모두 망가뜨리지 않나.’


  중국에서 끝없이 새로 짓는 공장마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린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버린 쓰레기는 우리 서해 바닷가로 닿는다고 해요. 한국에서 버린 쓰레기는 동해를 거쳐 일본 서쪽 바닷가로 닿는다고 해요.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아요. 자리를 바꿀 뿐이에요.


  러시아에서 터진 체르노빌 핵발전소 방사능은 러시아뿐 아니라 핀란드와 스웨덴과 아이슬란드까지 퍼졌다고 해요. 아마 영국에도, 아르헨티나에도 미국과 캐나다에도 브라질에도 퍼졌겠지요. 일본 후쿠시마에서 터진 핵발전소도 그렇지요. 바닷물과 하늘을 거쳐 온 지구별에 골고루 퍼졌으리라 느껴요.


  서울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도 이와 같아요. 서울에서만 맴돌지 않아요. 춘천으로 대전으로 퍼지고, 양구로 평양으로 퍼져요. 온 지구별에 서울 자동차 배기가스가 감돌아요.


.. 5·18재단의 일을 종료하고 나니, 제겐 광주 작업을 더 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언제 일단락지어야 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오월 광주를 좀더 오래 바라보고 좀더 오래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조급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매해 시간이 허락될 때, 막연히 광주에 들르곤 했습니다 ..  (209쪽)

 

 


  노순택 님 사진책 《망각기계》(청어람미디어,2012)를 읽으면서 온갖 생각이 갈마듭니다. 노순택 님은 1980년 전라도 광주 이야기와 삶을 사진으로 되새기는 일을 했는데, 나는 뜻밖에도 전라도 광주 아닌, 내가 태어나고 자라며 본 인천 바닷가 공장들 이야기와 삶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잊어버리는 기계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잊어버리는 기계’로 만들어요. 오직 대입시험 문제풀이만 머릿속에 가득 집어넣고는, 이웃과 삶과 사랑은 송두리째 잊는 기계로 내몹니다. 이 나라 학교교육은 대학교바라기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면서, 꿈과 빛과 지구별을 몽땅 잊는 노예로 만듭니다.


.. 타인의 고통 앞에서,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 숨은 채 비겁하게 셔터를 누르고, 사악하게 조형성을 추구합니다. 이 ‘비겁하고’, ‘사악한’ 과정은 대단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진이 생산되는 지극히 기계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모를까, 찍기로 판단했다면 그 물리적이고 조형적인 과정을 피할 수 없지요 ..  (217쪽)


  내 사진을 가슴에 담습니다. 내가 살아온 나날을 마음속에 담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 어린 날 삶을 사진으로 찍어 준 적 없고 글로 써 준 적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가슴에는 내 어린 날 삶이 바로 코앞에서 펼쳐지는 영화처럼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어느 공장에서 어떤 쓰레기를 내다버렸는지, 어느 폐수처리장에서 어떤 냄새가 코를 찔렀는지, 어느 학교에서 어느 교사가 우리들한테 거친 말 퍼붓고 주먹으로 얼굴을 갈겼으며 야구방망이와 골프채가 부러지도록 허벅지와 엉덩이를 두들겨팼는지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사진기를 쓰지 않았어도 내 마음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았어도 내 가슴은 글을 썼습니다.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그날 그곳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 그리고 누구보다 이녁 스스로 누린 삶과 이야기를 또렷하게 마음으로 담았겠지요. 언제까지나 떠오르는 빛으로 가슴에 아로새겼겠지요.


  추모공원 짓는대서 추모가 되지 않아요. 영정사진을 무덤 앞에 붙인대서 떠난 넋을 기리지 못해요. 왜냐하면, 마음으로 담지 않으면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로 추모공원 짓는들 어떠한 추모도 되지 못합니다. 가슴으로 아로새기지 않으면 훈장을 달거나 보상금을 쥐어 준대서 떠난 넋을 기리지 못합니다.


  ‘망각기계’를 만드는 한국 사회 얼거리요, ‘망각기계’를 낳는 한국 교육 틀거리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이런 나라에서, 이런 학교에서,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거나 가르칠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어떤 사랑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려 하나요. 이 나라에는 참말 꿈이나 사랑이 있기나 있는가요. 이 나라에서는 참말 빛이나 그림을 그릴 수 있기나 있는가요.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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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3-12-1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기를 쓰지 않았어도 내 마음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았어도 내 가슴은 글을 썼습니다... 짧은 글이 더 큰 생각을 불러 왔군요.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3-12-14 09:03   좋아요 0 | URL
사진기를 써도 다 사진이 아니듯,
사진기를 안 써도 사진이 되어요.
마음에 따라 달라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