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코레 - 박로랑 사진집
박로랑 지음 / 눈빛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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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8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가
― 봉주르 코레
 박로랑 사진
 눈빛 펴냄, 2013.4.17.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로랑 님이 담은 사진으로 엮은 《봉주르 코레》(눈빛,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박로랑 님은 이녁이 내놓은 세 번째 사진책인 《봉주르 코레》에서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것으로 보여지는 것을 집중적으로 사진 찍었다.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한국의 새로운 이미지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부상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찍기 위해 대한항공과 현대 그룹의 후원을 받아 1986년에 다시 한국에 왔다(192쪽).”고 밝힙니다.


  박로랑 님 말마따나, 사진책 《봉주르 코레》를 살피면, 이제 사라지고 없는 모습을 애틋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책에서만 피어나는 모습이 물씬 흐릅니다.


  박로랑 님은 한국에서 곧 사라질 모습을 어떻게 알아챘을까요. 박로랑 님 눈길에는 한국사람이 무엇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보였을까요. 한국에서 곧 사라질 모습이란, 한국사람이 아끼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라 하겠지요?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아끼거나 사랑하는 모습이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박로랑 님이 사진으로 담은 모습이란,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 모습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등지거나 멀리하고 싶은 모습을 찍어서 남긴 사진이 모여 《봉주르 코레》가 태어난 셈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즐겁게 찍지 않은 모습이요, 한국사람 스스로 기쁘게 누리지 않은 모습이며, 한국사람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지 않은 모습입니다.


  박로랑 님은 “나의 태권도 사범이자 나중에 나의 의형제가 된 이관영의 카리스마 덕분에, 나는 아주 빨리 그 당시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던 300여 명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유학생, 예술가, 외교관, 체육계, 종교계, 상공인, 요식업계 사람들. 나는 그들의 모임에서 유일한 프랑스인이었고,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곧바로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191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와서 살아가는 이웃들하고 살가이 사귀고 싶어 한국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하나도 안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박로랑 님은 사이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습니다. 살가운 동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웃이 하는 말을 배우고,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고 싶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 가운데 이웃 고장에서 쓰는 말을 애틋하게 아끼거나 즐겁게 배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며 전라도말을 배우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며 경상도말을 배우는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그저 남남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살아간다는 골목동네나 판자촌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은 사람은 꽤 많습니다. 골목동네나 판자촌에서 학술조사를 하거나 건출연구를 하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배운다거나, 가난한 이웃들 사랑을 배운다거나, 판자촌 동무를 사귀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박로랑 님은 어느 날 겪은 이야기를 《봉주르 코레》에서 들려줍니다. “1988년에 나는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만났다. 원래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내 책 두 권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부인인 마르틴 프랑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자리였다. 그는 내 책은 펼쳐 보지도 않고, 내게 오이겐 헤르겔의 책에 대해서만 오랫동안 이야기했다(193쪽).”고 합니다. ‘오이겐 헤르겔’이라는 이름이 낯익은 분이 있을 테고, 낯선 사람이 있을 텐데, 눈빛 출판사에서 나온 《봉주르 코레》에서, 이녁 이름을 잘못 적었습니다. ‘Eugen Herrigel’은 ‘헤리겔’로 적어야지요. 이녁 책은 2012년 3월에 《마음을 쏘다, 활》(포토넷 펴냄)이라는 이름을 붙어 새롭게 나오기도 했어요. 이 책은 2004년 3월에 《활쏘기의 선》(삼우반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적 있습니다.


  활쏘기를 배우는 동안 무엇을 깨닫느냐 하는 대목을 밝히는 ‘오이겐 헤리겔’ 님 책은, 마음닦기뿐 아니라 사진찍기와 글쓰기가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빛을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박로랑 님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진이란, 마음으로 사귀고 꿈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고픈 삶입니다. 이 땅 한국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아닌,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랜 나날에 걸쳐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꿈꾸고 노래한 빛을 찍은 사진입니다.


  어떤 모습을 찍어서 사진으로 남길까요? 기록이 될 만한 무언가를 캐내어 사진으로 남길까요? 어쩌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면, 무엇이 기록이 될 만한가요? 대통령 모습? 정치꾼 모습? 의사나 박사나 예술가나 유명인이나 연예인 모습?


  때로는 대통령이나 연예인 모습이 기록이 될는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애틋하게 돌아보며 환하게 웃음짓도록 이끄는 사진은 ‘사진에 깃든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따사롭게 사랑하는 삶이 흐르는 사진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하게 삶을 가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오래오래 ‘기록’ 노릇을 합니다. 여느 삶터 여느 마을에서 만난 모스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찍은 사진이 두고두고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며 ‘예술’이 됩니다.


  박로랑 님은 한국에서 곧 사라질 만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고개숙여 이야기하지만, 《봉주르 코레》에 흐르는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 어느 사진이든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면서 곱습니다. 웃음이 흐르고 눈물이 돋습니다. 이야기가 샘솟고 노래가 퍼져요.


  사진은 늘 오늘을 찍습니다. 곧 사라진다고 해도, 바로 오늘 이곳에 이 모습이 있으니 찍습니다. 내가 찍고 나서 몇 초 뒤에 사라지고 말지라도, 사진은 늘 오늘 이곳을 찍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이웃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낄 빛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사진기를 들어 사진을 찍습니다. 알아채는 사람은 연필을 들어 글을 씁니다. 알아내어 사랑하려는 사람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립니다.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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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2-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사귀고 꿈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고픈 삶입니다."
- 저도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웃음과 눈물로 노래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

숲노래 2014-02-10 23:59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처럼 잘 하신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웃으면서 글로 노래를 나누어 주셔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 - 최민식의 16가지 생각
최민식 글.사진 / 하다(HadA)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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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6

 


눈빛 밝혀 사진을 찍는다
―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
 최민식 글·사진
 하다 펴냄, 2010.7.16.

 


  눈빛을 밝히며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이든, 전남 고흥에서 군수와 개발업자가 한목소리 되어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시골마을 바닷가 국립공원 한쪽에 지으려고 하는 일을 반대하는 집회에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때이든, 늘 눈빛을 밝히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모델을 세워서 패션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가난하고 아픈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을 삼키고 다큐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저마다 눈빛을 밝히며 사진을 찍습니다.


.. 그 시대에 촬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과 사진가의 사물에 대한 사상이 분명히 표현되어야 한다. 내용이 희박하여 감동이나 느낌을 줄 수 없다면 가치 있는 사진이라고 말할 수 없다 … 내 사진의 중심을 이루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애였다 ..  (9, 23쪽)


  눈이 반짝 빛날 때에 사진을 찰칵 찍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적에 사진기를 덥석 쥡니다. 눈빛이 밝지 않다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눈빛이 곱지 않다면 사진기를 못 쥡니다.


  사진은 눈빛으로 찍습니다. 눈빛 가운데 밝은 눈빛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눈길로 찍습니다. 눈길 가운데 맑은 눈길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눈빛을 밝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눈빛을 밝게 다스리자면, 먼저 삶을 밝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 밝게 빛난다면, 곧 삶빛이 환하다면, 마음에 따사로운 빛이 흐르면서 마음빛이 눈부십니다. 삶빛과 마음빛이 눈부실 적에 비로소 눈빛이 고이 퍼지면서 사진 한 장 아름답게 일굽니다.


  눈빛이란 삶빛입니다. 삶빛이란 마음빛입니다. 마음빛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에 서리는 빛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바로 사랑이에요. 마음빛이란 사랑빛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에 사랑빛이요, 이 사랑빛을 바탕으로 마음빛을 가꿉니다. 사랑을 담아 가꾸는 마음빛으로 살아가기에 삶빛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삶빛이 새롭게 태어나니, 즐겁고 씩씩하게 사진기를 손에 쥐어 눈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사진들은 본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들뿐이다. 표현기교로만 이루어진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 조잡한 사진에서는 사진가의 의식과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은 평등하다 … 나의 사진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가난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졌다 ..  (33, 45쪽)


  온마음 가득 사랑을 끌어올려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온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온마음으로 눈빛을 밝혀 찍는 사진입니다. 온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삶에서 샘솟는 따사로운 눈빛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멋지게 찍어서 사진이 아니라, 마음으로 찍어서 사진입니다. 대단하게 찍어서 사진이 아니라, 사랑으로 찍어서 사진입니다. 놀랍거나 빼어나게 찍어서 사진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과 빛을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담기에 사진입니다.


  최민식 님이 쓴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하다,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젊은 사진가한테 띄우는 짤막한 편지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입니다. 젊은 사진가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열여섯 가지로 간추려서 띄우는 책입니다.


  이 작은 책 하나를 읽으면 ‘좋은 사진가’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작은 책을 첫걸음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사진책을 만나고 사진을 만나며 책을 만날 뿐 아니라, 사람들과 이웃과 풀벌레와 숲과 하늘과 흙 모두 골고루 만나기를 바라는 길잡이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이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고 싶다. 사진이 내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듯이, 독자들도 나의 사진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고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 이웃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오늘도 나를 이 땅에서 사진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  (57, 82쪽)


  사진을 왜 찍을까요? 즐겁기에 찍겠지요. 무엇이 즐거울까요? 삶이 즐겁지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으로 이루어진 빛이지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나와 네가 한몸 한마음인 줄 깨달으면서 어깨동무하는 눈빛이지요.


  그러니, 사진은 눈빛으로 찍는데, 그냥 눈빛이 아닌 ‘사랑하는 눈빛’입니다. 사랑하는 눈빛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또한, 그냥 사랑하는 눈빛이 아니라, ‘즐겁게 노래하고 웃고 춤추면서 지구별에 아름다운 꿈 드리우기를 바라는 눈빛’입니다. 평화롭게 노래하기를 바라는 눈빛입니다. 따사롭게 춤추기를 바라는 눈빛입니다.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기를 바라는 눈빛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눈빛을 밝힙니다. 눈빛을 밝히는 사람은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노래를 부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 적에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돌아봐요.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빙그레 웃는지 헤아려요. 사진 한 장 종이에 앉혀 이웃한테 선물하면서 까르르 웃음꽃과 노래잔치 이루어지는지 살펴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슨 사진을 찍든, 사진은 맑은 눈빛을 가다듬고 밝은 눈빛을 곱게 나누면서 찰칵 한 장 찍습니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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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2 - Vol.3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지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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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7

 


사진저작권이란 무엇인가
― 사진잡지 《포토닷》 3호
 포토닷 펴냄, 2014.2.1.

 


  사진저작권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잡지 《포토닷》 3호(2014.2.)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돈으로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문제 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성동훈/77쪽).”와 같은 이야기를 돌아본다면, 저작권이란 돈 문제가 아닙니다. 저작권 사용료로 돈을 더 주기에 반갑거나 고맙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누리거나 즐기는 사진 한 장이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지만 현장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몰입도는 정말 대단해요(윤승준/25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온힘과 온마음을 쏟을 적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온힘을 쏟지 않은 사진이란 없습니다. 온마음을 바치지 않고 태어나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은 사진이 좋고 즐거워서 사진을 찍습니다. 좋고 즐거운 마음으로 찍는 사진이기에, 이 사진을 이웃과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좋고 즐거운 마음으로 찍어서 나누는 사진이기에, 비싼값을 치러 사진을 팔 생각이 아닙니다. 제값을 받고 제대로 대접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곧, 좋고 즐겁게 사진을 읽을 이웃과 동무를 바랍니다. 좋고 즐겁게 사진을 마주하면서, 사진마다 깃든 이야기와 사랑을 헤아릴 이웃과 동무를 기다립니다.


  사진저작권 사용료는 0원이 될 수 있고, 1억 원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0원에 거리낌없이 사진을 내줍니다. 누군가한테는 1억 원을 받고 똑같은 사진을 팝니다.

 


.. 온빛사진상 운영위 측은 “수 년간 사비를 들여 작업해 출판 및 전시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가 있는 미발표 포트폴리오를 보도의뢰용 수량 이외에 전체를 요구하거나 무료로 게재하는 것은 홍보의 수위를 넘는 것”이라며 유감과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 곽윤섭 기자는 “보도자료에만 의지하면 대동소이한 기사가 나올 뿐이며 제한된 사진만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며 “다른 목적이라면 당연히 사진 원고료를 지급하지만 보도용 기사에까지 원고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  (82쪽)


  사진비평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비평을 하겠지요. 그러나, 사진비평은 ‘사진을 보여주는 비평’이 아닙니다. ‘사진을 이야기하는 비평’입니다. 사진을 이야기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한다면, 이때에는 비평이 아닙니다. 신문에 싣는 기사도 아닙니다. 사진을 보여주기만 하는 신문이라면, 이때에는 ‘화보’가 될 테지요. 기사나 비평이 아닌 화보로 꾸민다면, 신문사에서는 마땅히 사진저작권 사용료를 제대로 치러야 합니다. ‘보도 기사’에까지 사진저작권 사용료(원고료)를 주어야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화보’로 쓰면서 사진저작권 사용료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기사나 비평은 ‘보도자료’를 받아서 쓰지 않습니다. 기사나 비평은 사진을 보고 사진책을 읽으면서 씁니다.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는 사진과 사진책을 저마다 슬기롭고 찬찬히 읽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비평을 하는 비평가(또는 전문가나 작가)는 사진과 사진책을 스스로 슬기롭고 찬찬히 읽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나이가 몇이요 무슨 일을 했으며 몇 해쯤 사진을 배웠고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웠느니 하는 보도자료를 읽어야 ‘사진 소개’나 ‘사진책 비평’을 할 수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 소개’는 사진을 읽고서 합니다. ‘사진책 비평’은 사진책을 읽고서 합니다. 그러니까, 한겨레신문 곽윤섭 기자가 말한 “제한된 사진만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같은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진책 한 권을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할 적에 ‘사진책에 실린 사진 모두를 지면에 실어 보여주면서 소개하지 않’습니다. 사진상을 받은 어느 작가를 소개할 적에도 ‘사진상을 받은 작가가 만든 포트폴리오에 실린 사진을 모두 보여주면서 소개해야 이 작가를 제대로 잘 소개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진 한 장을 읽고 소개글이나 비평글을 쓰더라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소개글이요 비평글입니다.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고 비평가는 비평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도자료에 기대어 보도자료를 간추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도자료 아닌 사진과 사진책을 스스로 느끼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삭히고 읽어서 글을 써야 비로소 기자요 비평가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을 더 읽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이 처한 엄중하고 참혹한 상황을 뉴스처럼 바로 느끼게 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에 의문을 갖게 하고 싶었다. 뉴스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지만 그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 어떤 것들,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지켜본다(윤성희/81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새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매무새요 마음인가를 차근차근 짚어 봅니다.

 


  사진기자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꾸준하게 사진을 찍는 ‘할아버지’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일기를 쓰듯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사진은 역사라는 생각을 항상 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다 … 빛을 많이 본다. 지금까지 못 보던 풍경, 보는 순간에 가슴을 흔드는 이미지들을 포착하고자 한다(전민조/87, 89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찍을까요. 사진으로 찍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어떻게 비출까요.


  사진저작권이란 무엇일까요. 신문이나 매체에서 사진을 소개하는 글이나 비평하는 글이란 무엇일까요. 신문기자나 비평가는 사람들한테 무엇을 소개하고 어떤 이야기를 비평하면서 사진길을 밝히는 몫을 맡는가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라디오에서 시를 한 줄 읊으면, 한 줄 읊는 만큼 저작권사용료를 치릅니다. 라디오에서 노래 한 가락 틀으면, 노래 한 가락 튼 만큼 저작권사용료를 치릅니다. 그런데, 방송 가운데 방송국 정규직 노동자가 촬영을 할 적에는 취재원한테 흔히 출연료를 지급하는데,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가 촬영을 할 적에는 취재원한테 출연료를 지급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똑같이 피디요 방송작가요 촬영기사이고, 똑같은 방송국에 나오는 방송이지만, ‘누가 찍느냐’에 따라 취재원이 출연료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갈립니다.

 


  “때때로 광고 촬영이 끝나면 허무하다. 내가 마치 그들의 아바타가 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표현에 대한 욕구에서 사진을 시작했는데 남의 욕구를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방전이 되곤 한다(111쪽/김한준).”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비평이란 어떤 글이 되는가 돌아봅니다. 상업사진을 찍는 이들은 그때그때 사진값을 번다고 한다면, 다큐사진을 찍는 이들은 언제 사진값을 벌까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사진책을 소개해 주거나 알리는 일은 사진작가나 사진전시회에 도움이 된다고 할 만할까요. 사진책을 알리는 일을 하니, 사진가와 출판사는 신문사에서 사진을 달라고 하면 무턱대고 주어야 할까요.


  “일백 년 전, 하와이에서 사진을 공부한 최창근은 번역서 《자택독습 최신사진술》을 이 땅에 선보였다. 이유는 하나, 누구나 집안에서 독학, 독습으로 최신 사진술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진동선/115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은 누구나 스스로 배울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는 누구나 혼자서 배워 혼자서 즐길 수 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이름난 스승을 좇아다녀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고 즐거운 마음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좋고 즐거운 마음일 때에 밥을 맛나게 짓고, 노래를 신나게 불러요. 스스로 좋고 즐거운 마음일 때에 홀가분하게 놀고, 빙그레 웃으면서 글을 씁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 혼자서 스스로 사진찍기를 배울 수 있듯, 누구나 혼자서 스스로 사진읽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알려주어야 사진읽기를 하지 않습니다. 신문기자나 비평가가 알려주니까 사진읽기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찍는 사진이듯, 스스로 즐겁게 읽는 사진입니다.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안목,2013)을 비평한 글에 나오는, “사진은 잘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다울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빗대어 말한다면, 노래는 노래다울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학교를 다니며 글을 배우거나 교과서를 익혀야 글을 쓰지 않아요. 악보를 읽거나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아요. 즐겁게 쓰는 글이고, 즐겁게 부르는 노래예요. 사진 또한 즐겁게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에요(최종규/150, 153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저작권이란 ‘즐거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빚은 이야기가 사진 하나로 태어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저작권 사용료가 0원이 될 수 있고 1억 원이 될 수 있는 까닭이란, ‘즐거움’은 돈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즐거움도 사랑도 꿈도 돈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진작가는 이 사람한테는 거저로 사진을 선물해 줍니다. 사진작가는 저 사람한테는 1억 원을 받아도 사진을 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작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려는 이웃한테는 구태여 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으면서 꿍꿍셈을 번뜩이는 이가 엄청난 돈을 내밀 적에는 고개를 홱 돌립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말하지요.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사진을 사진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사진을 온몸으로 말합니다. 사진을 웃음으로도 말하고 노래로도 말합니다. 사진을 글 한 줄이나 말 한 마디로도 들려줍니다. 사진을 꿈 한 자락으로 선보이거나 춤 한 사위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포토닷》 3호에 나오는 사진작가 최광호 님 이야기처럼, 사진을 말하고 보여주며 나누는 길은 수없이 많습니다. 사진기를 쓰면서도 사진을 말하지만, 사진기를 안 쓰면서도 사진을 말해요.


  사진소개나 사진비평 또한, ‘사진 작품을 두루 보여주면서 할 수 있’는 한편, ‘사진 작품을 하나도 안 보여주면서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쓰는 학자가 이런 책 저런 자료를 살피며 논문을 마무리지을 적에, 학자한테 ‘내 책을 살핀 사용료를 내라!’ 하고 윽박지르는 작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논문이 아닌 화보나 전시를 하는 자리라면, ‘내 책이나 내 사진을 화보나 전시에 썼으면 마땅히 사용료를 내야지!’ 하고 외칠밖에 없습니다. 마이클 케냐 님 사진을 놓고 불거진 일도 이와 같은 흐름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솔섬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런데, 굳이 ‘다른 이가 찍은 그 자리 그 구도’를 똑같이 하면서 ‘이름과 돈을 얻으려’ 한다면 참 쓸쓸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도 찍을 만한 사진이 없었을까요? 창작하는 상상력이 그렇게도 없어, 다른 사람 구도를 고스란히 따라해야 했을까요?


  눈을 들면 온누리 모든 곳에서 아름다우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온누리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에도 바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훔치지 마요. 애써 화보를 만들지 마요. 즐겁게 창작을 해요. 기쁘게 비평을 해요. 사진저작권이란 즐거움입니다. 다른 사람이 즐겁게 누리며 빚은 좋은 꿈과 사랑을 함부로 망가뜨리거나 다치게 하지 마요. 오직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로 사진을 바라보기를 빌어요. 4347.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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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 박대원 사진집 안목 모노그래프 1
박대원 사진, 박태희 글 / 안목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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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2월호(3호)에 사진비평으로 실은 글이다. 잡지에 이 글이 통째로 다 실렸는지, 간추려 실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포토닷> 3호가 나왔으니, 기쁘게 이 느낌글을 띄운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4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는 사진
―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박대원 사진
 안목 펴냄, 2013.12.25.

 

 


  사진은 잘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다울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빗대어 말한다면, 노래는 노래다울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글은 글답고 그림은 그림다우며 만화는 만화다울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괜스레 치레한다면서 노래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에 이것저것 붙이거나 꾸미면 노래도 글도 그림도 만화도 안 된다고 느낍니다. 그저 노래이면 되고 글이면 돼요. 달리 무엇을 붙이거나 달아야 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꽃을 꽂아야 더 예쁘지 않습니다. 꽃은 꽃대로 풀숲이나 들판에서 피고 지는 모습 그대로 예쁩니다. 사람은 꽃으로 꾸미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쁩니다. 사진도 이와 같아요. 이런 솜씨나 저런 재주를 부릴 적에 한결 멋들어지거나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솜씨를 부리면 ‘솜씨 부린 모습’이 드러납니다. 재주를 부리면 ‘재주 부린 모습’이 나타나요.


  오랫동안 사귄 벗님이나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 ‘오랫동안 사귄 결’이 오롯이 깃듭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문득 찍으면, ‘처음 만난 이’라는 느낌이 오롯이 나타납니다. 사진을 허둥지둥 찍어 보셔요. 찍은 이 스스로 이 느낌을 잘 알아챕니다. 오래오래 지켜보다가 가만히 찍어 보셔요. 찍은 이 스스로 이 느낌을 곧바로 깨닫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사진기는 비싼 것이야’ 하고 생각하면, 이 생각이 곧바로 사진에 서립니다. 사진을 찍으며 ‘내 사진기는 값싼 것이야’ 하고 생각하면, 이때에는 또 이때대로 이 생각이 고스란히 사진에 감돕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속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진을 찍으면 늘 마음속 모습과 빛깔과 무늬가 하나하나 박힙니다.

 

 


.. 황학동에서 허탕치고 오는 길이다. “저, 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요!” “이 꼴을요?” 허 참! 하며 어이없어라 웃는다. 이 꼴, 아름답지 않은가 ..  (12쪽 사진)


  박대원 님이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안목,201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은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이지만, 한 장 두 장 사진을 넘기는 동안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이 사진책 이름으로 “노숙자”라든지 “몸이 아픈 친구”라든지 “비둘기 날다”라든지 “우리 아이 사랑스럽네”라든지 “구름이 내려앉은 도시”를 붙였어도 이런 느낌이 그대로였으리라 생각해요. 책에 붙인 이름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겉에 넣은 사진이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이니, 그저 그렇구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아이스께끼를 파는 여인은 내 곁님일 수 있고 내 오랜 동무일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일벗일 수 있고, 이웃집 아낙일 수 있습니다. 이녁한테 어떤 이름을 붙이든 대단하지 않아요. 내 마음속에 드리우는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담았을 뿐이요,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엮는 사진을 빚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란,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는 일입니다. 내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으니 사진입니다. 내 마음속을 사랑스럽게 찍어 이웃과 동무하고 빙그레 웃고 싶으니 사진이 됩니다.


  사진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내가 선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 사진이 있습니다. 박대원 님은 황학동에서 무엇을 허탕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황학동에서 허탕을 쳤기에 12쪽에 넣은 사진 하나, “이 꼴,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놀라며 즐거워 할 만한 사진을 얻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 허탕이었을까요. 얼마나 예쁘고 멋진 허탕이었을까요.

 

 

 


.. “왜 벌써 가시게요, 형님?” 그 사이 나는 ‘형님’이 되어 있었다. “나 쪽방 있어요! 형님은 어디 잘 데나 있는가요?” 딴데 가지 말고 같이 가자며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외로워서이리라. 요 며칠 전 일하다 넘어져 퉁퉁 부은 눈, 그 눈이 젖는다. 나는 또 만나면 되니 사진 좀 찍게 한 번 웃어 보라고 그를 어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웃지 못 하고 혼자 말끝을 흐린다. “어떻게 웃는 건지 …… 다 잊어버려서요.” ..  (67쪽 사진)


  누군가는 어떻게 웃는지 잊습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웃는지 잊은 이와 형과 동생이 되어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삶을 찍는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를 영글어서 선보이는 사진꾼 한 사람은 무엇일까요.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67쪽에 넣은 사진 하나를 놓고, 참 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자리가 된다면 훨씬 더 길게 풀어 놓았을 이야기를, 따로 책 한두 권으로 더 풀어 놓을 만한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담은 뒤 말 몇 마디로 마무리합니다.


  사진 하나에 담는 이야기는 얼마나 길거나 짧을까요. 이야기 하나 없이 사진만 있을 수 있을까요. 사진 하나를 들여다보면서 아무런 이야기를 느낄 수 없다면, 아무런 이야기는 느낄 수 없는데 ‘참 멋진 작품이네’ 하고 말한다면, 어떠한 이야기도 샘솟지 않는데 ‘참 그럴듯한 예술이네’ 하고 말한다면, 이런 사진은 어떤 뜻이요 어떤 값이 될까요.


  이리하여, 사진찍기란, 마음속에 사랑을 심는 일입니다. 사랑 씨앗 한 톨을 마음속에 심고 싶어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나날을 곱게 그리면서 씨앗 한 톨 심는 넋이 사진 찍는 손길로 나타납니다.

 

 

 


.. 노숙자 사진은 애써 피해 온 터이다. “한 장 찍어 주소.” “예?” “내 사진 한 장 …….” “아∼! 예, 찍어 드리죠.” 엉겁결에 대답은 했지만 막막했다. 그냥 막스냅이라면 몰라도. “한 장에 얼마요?” “돈은 안 받습니다.” “…… 고맙소.” (73쪽 사진)


  사진기 만든 사람이나 회사는 돈을 벌 생각이었겠지요. 우리들이 쓰는 사진기는 많든 적든 값을 치러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필름 만드는 회사도 돈이 안 되니 필름을 예전처럼 만들지 않아요. 필름을 만들다고 문을 닫은 회사도 있습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만들어 주던 사진관도 꽤 문을 닫았어요. 아무래도, 모두 돈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진은 돈이 있어야 찍거나 읽을 수 있을까요. 돈이 없으면 사진을 못 찍고 못 읽을까요.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진을 누릴 수 있는가요. 돈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사진을 제대로 못 읽거나 찬찬히 안 읽는가요.


  노래를 하고 싶으나 기타 살 돈이 없을 수 있어요. 노래를 즐기고 싶지만 피아노 장만할 돈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요, 돈이 없어 기타나 피아노를 못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타나 피아노만 악기가 아니에요. 아주 값싼 기타나 피아노도 있어요. 빌려서 칠 수 있고, 푼푼이 돈을 모아서 악기를 장만할 수 있어요. 아무 악기 없이 맨손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손수 나무를 깎아 새로운 악기를 만들 수 있어요. 손뼉으로 가락을 넣을 수 있어요. 발을 구르며 가락을 지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려 찰칵찰칵 사진놀이를 해요. 눈을 찡긋 감았다 뜨면서 사진놀이를 해요. 필름을 쓰거나 중형사진기나 대형사진기를 써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쓰든, 손전화기에 딸린 사진 기능을 쓰든, 편의점에서 1회용사진기를 사다가 쓰든, 모두 사진이 되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기계로 찍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진은 졸업장으로 찍지 않아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먼 나라로 유학을 다녀와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이름난 어느 작가한테서 배워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머릿속에 이론을 잔뜩 집어넣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학교를 다니며 글을 배우거나 교과서를 익혀야 글을 쓰지 않아요. 악보를 읽거나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아요. 즐겁게 쓰는 글이고, 즐겁게 부르는 노래예요. 사진 또한 즐겁게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에요.

 

 

 


.. 파지가 그냥 파지 되는 게 아니었다. 종이에 따라 분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책은 겉 표지와 속 종이가 나눠져야 한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얼마나 많이 나는 속을 모른 채 겉만 찍었던가 ..  (126쪽 사진)


  사진은 마음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랑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은 꿈을 찍어서 사진입니다.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은 무엇을 찍었을까요? 사진책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을 펴낸 출판사 일꾼은 어떤 이야기와 어떤 사진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고픈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은 예나 이제나 바로 이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작가’들이 만들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사랑 한 타래와 꿈 한 모금과 빛 한 줄기를 어우르면서 활짝 웃는 꽃내음으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백 해쯤 지난 뒤에, 앞으로 이백 해쯤 흐르고 나서, 앞으로 오백 해쯤 삶이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어떤 사진책을 들추면서 어떤 사진을 바라보고 가슴이 촉촉히 젖어들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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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aret Bourke-White: Moments in History (Hardcover)
Margaret Bourke-White / Distributed Art Pub Inc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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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9

 


읽는 눈길, 찍는 손길
―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
 Margaret Bourke-White 글·사진
 Simon & Schuster, 1963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을 읽어야 합니다. 사진을 읽지 못한 채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인가를 읽을 때에 비로소 어떤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으려면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면서 사진을 읽지 못합니다. 사진에 깃든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이 누리는 어떤 삶인가를 어떤 눈빛으로 찍었는가를 헤아릴 때에 비로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먼저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삶’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읽습니다. 숲에서 풀과 꽃과 나무를 찍을 적에도 풀과 꽃과 나무가 숲에서 어떻게 있는가를 찬찬히 읽습니다. 패션모델을 찍거나 사건·사고를 찍을 적에도 패션모델이 보여주는 옷차림과 사건·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낱낱이 읽습니다. 읽을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에 담기는 사람을 찍은 사람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읽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눈길과 생각과 삶으로 삶을 그리려 했는가’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보도사진을 읽든 다큐사진을 읽든, 초상사진을 읽든 스냅사진을 읽든, 사진기를 쥔 사람이 어떤 자리에 서면서 어떤 넋이었는가를 읽습니다.

 

 

 

 

 

  미국사람 마가렛 버크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님이 이녁 삶을 돌아보며 적바림한 책 《Portrait of myself Margaret Bourke-White》(Simon & Schuster,196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자서전을 읽으면, 이녁이 처음 사진을 찍던 이야기부터 한국전쟁 때 한국에 찾아온 이야기, 한국전쟁 뒤에 한국에 다시 찾아온 이야기가 흐릅니다. 세계 사진역사에 이름을 남긴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라 하는데, 이녁 사진삶에 한국전쟁과 한국 이야기가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녁은 한국전쟁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요. 이녁은 한국에 찾아와서 어떤 자리에 서서 한국사람을 바라보았을까요. 이녁 스스로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이녁 곁에 ‘한국 정부 수행원’이 붙은 채 몇 군데만 돌아다녀야 하면서 사진을 찍었을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외국 사진기자로서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외국 사진기자인 만큼 한국 군 간부들 술자리에도 함께하면서 사진을 남깁니다. 싸움터 한복판에도 설 수 있었겠지만, 한국 군대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사진을 남깁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사람을 만나기도 하되, 여느 시골마을이나 여느 골목동네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군 간부도 한국사람이고, 정부 수행원도 한국사람입니다. 시골 흙일꾼도 한국사람이요, 저잣거리 아지매도 한국사람입니다.


  여느 사람은 누구일까요. 수수한 사람은 어떤 삶빛일까요. 한국 사진기자가 지구별 여러 나라로 취재를 하러 갔을 적에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 만할까요. 정부에서 보살피는 사진기자 아닌 홀몸으로 다니는 사진작가일 적에는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사람들 어떤 삶을 어떤 빛으로 찍을까요. 이것은 사진이고 저것은 사진이 아닐까요. 이 사진이 이 나라 사람을 잘 보여주고 저 사진은 이 나라 사람을 잘 안 보여준다고 할 만할까요. 이 사진에 담은 사람들이 바로 ‘그 나라 사람’ 모습이요, 저 사진에 담은 사람들은 ‘그 나라 사람’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다르게 찍습니다. 똑같은 한 사람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하더라도, 연필을 쥔 사람마다 다르게 씁니다. 밀린 일삯을 받으려고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 사진기를 쥔 사람마다 사진을 다르게 찍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싸고 글을 쓰는 사람마다 글빛이 다 다릅니다. 표절과 저작권침해를 둘러싼 일이 터졌을 때, 이 일을 놓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피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누군가는 가해자 자리에 서서 생각하거나 말합니다. 이를테면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을 떠올릴 만해요. 일본 정치꾼이나 지식인 가운데에는 툭하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을 추켜세우면서 이웃나라를 깎아내리는 말을 일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저지른 식민지 전쟁을 고개 숙여 뉘우치면서 참과 거짓을 또렷이 밝히려는 일본 학자와 지식인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쓰는 농약을 놓고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골 일손이 없는데다가 풀밭과 벌레를 어찌 하겠느냐며 농약을 쓸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약으로 태워 죽이는 풀이란 모두 우리가 먹는 나물이요, 흙에 농약을 뿌리면 이 농약 기운이 푸성귀와 곡식에 그대로 스며들 뿐 아니라, 농약은 냇물과 샘물에도 스며들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더럽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달려야 더 먼 곳을 더 빠르게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달릴수록 배기가스는 늘어나 바람이 더러워집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 공해가 생깁니다.


  제국주의 전쟁 역사를 추켜세우는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일본군 위안부로 아픈 나날을 보내야 한 할머니 자리에 서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ㅈ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사진기를 쥐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ㅎ신문사 기자로 일한다든지, 아무 신문사에도 몸담지 않으며 사진을 찍을 적에는 어떤 이야기를 사진 한 장으로 들려줄까요. 이주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과 회사 간부 자리에 서는 사람이 바라보는 사진은 얼마나 같거나 다르거나 비슷할까요.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은 미국을 발판으로 지구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이녁 삶과 넋대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물레를 앞에 두고 책을 읽는 간디를 찍은 사진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 님이 인도사람이라면, 파키스탄사람이라면,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계급인 사람이라면, 티벳 여느 사람이라면, 필리핀사람이라면, 한국사람이라면, 브라질이나 볼리비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이라면, 간디라고 하는 사람을 어떤 테두리에서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까요.


  우리들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스탈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탄광에서 일하는 흑인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한국전쟁 국군이나 토벌대 국군을 찍은 사진을 어떻게 읽는가요.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 서서 사진을 읽는가요. 우리들은 ‘우리가 선 자리’에서 사진을 읽는가요, 아니면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읽는가요. 내 손에 사진기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만지는가요. ‘내 삶과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아니면 ‘내가 맞다’라든지 ‘내가 옳다’라든지 ‘내가 참이다’라는 틀을 세우면서 사진을 찍는가요. 4347.1.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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