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백승종 / 효형출판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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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3

 


사진은 ‘분단’도 ‘통일’도 안 바란다
―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에리히 레셀 사진
 백승종 글
 효형출판 펴냄, 2000.6.5.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효형출판,2000)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동독 도편수’인 ‘에리히 레셀’ 님이 1950년대에 북녘으로 가서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을 거들면서 찍은 북녘 모습을 담은 책입니다. 에리히 레셀 님은 북녘을 ‘추억’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에리히 레셀 님 둘째 아들은,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백승종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 “집에 손님이 오면 북한에서 손수 찍어 온 필름을 환등기로 함께 보았어요. 필름 한 장 한 장을 기계에 일일이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걸 너무나도 즐기셨어요 …… 가난하고 온통 전쟁의 상처투성이였던 나라, 어디를 가나 도로가 제대로 닦이지 않은 그런 곳. 하지만 산천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사람들이 몹시 점잖고 친절한 나라. 신기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나라, 북한(2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숲과 사람이 아름답던 ‘한겨레’를 떠올리면서 이녁이 찍은 사진을 모두 한국(남녘)에 기증했다고 해요.


  1950년대에 북녘에서 제 나라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북녘땅 곳곳을 홀가분하게 누비면서 북녘사람 여느 삶을 수수하게 사진으로 담는 일을 누군가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거꾸로 보면, 1950년대 남녘에서 이 나라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사람은 몇이나 있었을까요. 예술사진이나 보도사진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바라보고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찍은 사진은 얼마나 있었는가요. 남녘에서도 남녘땅 곳곳을 홀가분하게 누비면서 남녘사람 여느 삶을 넓고 깊이 사진으로 담는 일은 아무도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북녘에서는 북녘대로 사상과 자유와 정치를 억눌렀고, 남녘에서는 남녘대로 사상과 자유와 정치를 억눌렀거든요.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모두 ‘간첩’이라는 딱지를 받습니다. 남북녘 모두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을 꽁꽁 옥죄거나 주리를 틀거나 목숨까지 앗았습니다. 남녘이 북녘을 나무랄 수 없고, 북녘이 남녘을 꾸짖을 수 없습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곳에서는 자유도 평화도 없습니다.

 

 


- 이렇게 깊숙하고 험한 산속까지도 길을 뚫어 철길을 깔았으니, 그 힘의 반의 반만으로도 그까짓 철조망으로 두 동강 난 국토는 쉽게 이을 수 있을 텐데. (39쪽)
- 전쟁, 그 단어만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41쪽)
- 장난기 가득한 몇몇 아이들도 귀엽지만, 그저 선량하다고 할밖에 달리 뭐라 이를 수 없는 우리네 아이들이다. 그냥 이렇게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26쪽)
- 나무꾼이나 소달구지는 모두 변두리 마을에서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 하나는 누군가의 아궁이를 지피려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려 주려고. 이렇듯 도시는 시골을 먹고 산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182쪽)
- 군인은 무장을 풀었을 때가 보기에 좋다. 도무지 누구를 향해 총질을 하겠다고 무장을 갖추는가. 어딘가 총칼을 내려놓고 웃는 군인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240쪽)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을 읽습니다. 사진마다 애틋한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한국땅 모습이요 한국사람 모습이지만, 정작 한국사람은 스스로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리에 동독사람이 북녘에서 사진을 찍었으니 몹시 고맙습니다. 동독사람 아닌 북녘사람이 찍은 사진이라면 남아날 수 있었을까요. 남녘에서도 웬만한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면 남녘땅 곳곳을 찍은 사진이 남아나기 어려웠습니다. 남녘을 찾아온 일본 사진작가나 서양 사진작가가 남긴 사진이 곧잘 책으로 묶이기에, 이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네 예전 삶자락을 가만히 돌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에 글을 붙인 백승종 교수는 어딘가 살짝 어긋났지 싶습니다.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바라는 길을 얼마나 슬기롭게 바라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전쟁, 그 단어만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41쪽).” 하고 외치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면, 전쟁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요? 북녘 사회를 그저 깎아내리기만 해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

 

 


- 인적이 끊어진 곳에 시멘트 다리라니, 생뚱하지 않나. (43쪽)
- 북한 당국은 그들의 취향에 맞는 휴양시설을 풍광이 수려한 동해안 바닷가에 지어 놓았다. (70쪽)
-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다 힘없고 굶주리기는 매일반.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든지, 빈들에 수숫대마냥 서 있든지 얼굴에는 그저 수심만 가득하다. (112쪽)
- 북쪽에서는 이른바 출산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애낳기를 적극 권장했다. 인구증가는 장차 노동력의 증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19쪽)
- 이들 새 건물이 완성되면 누가 여기서 살게 될까. 사진에 보이는 평범한 노동자 농민들의 차지는 아닐 듯하다. (175쪽)
- 지나가는 차라곤 하나도 없이 휑한 큰길을 건너고 있는 젊은 남자와 여자도 따지고 보면 무슨 귀족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높은 동무가 아닐까. (181쪽)
- 이게 학예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분에 넘치게도 아이들은 지금 정치적 연극의 한 대목을 맡고 있다. (251쪽)


  남녘에서도 ‘출산장려금’을 줍니다. 남녘에서 하는 ‘애낳기 정책’은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 아리송합니다. 남녘에서도 아이들은 “정치적 연극의 한 대목(251쪽)”을 아직도 맡습니다. 아직도 남녘 어른들은 아이들을 끌어들어 마스게임을 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서로 똑같습니다. 나도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엄청난 행사에 엄청나게 끌려다니면서 ‘정치 연극 꼬맹이’ 노릇을 해야 했고 ‘반공 웅변’으로 목에서 피가 나와야 했습니다.


  애써 북녘 사회를 깎아내린대서 남녘 사회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굳이 북녘 사회를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대서 남녘 사회가 더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다.


  꾸밈없이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비판받을 대목은 남이나 북이나 서로 똑같습니다. 북녘에서 금강산 언저리에 ‘시멘트 다리’를 놓은 모습이 거북한가요? 남녘은 그렇게 안 하나요? 남녘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하늘차(케이블카)를 함부로 놓습니다. 남녘도 국립공원 곳곳에 시멘트 다리뿐 아니라 아스팔트 찻길을 엄청나게 냈어요. 남녘은 국립공원 멧자락에 구멍 뻥뻥 뚫고 고속도로를 놓았습니다. 요즈음은 국립공원 구역을 몰래 해제하면서 온갖 공사를 벌이는데, 4대강사업처럼 무시무시한 시멘트공사를 엄청나게 저질러요. 밀양에 송전탑 박겠다고 하는 짓을 생각해 봐요(밀양은 이 책이 나오고 나서 한참 뒤인 요즈음 일이지만, 2000년 언저리에도 이런 비슷한 일은 숱하게 많았습니다).


  북녘에 자유와 민주가 없다고 말하지만, 남녘에는 얼마나 자유와 민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북녘에 자유와 민주가 없어 북녘사람 수수한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다지만, 남녘에는 얼마나 자유와 민주가 있어 남녘사람 수수한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 그런 어설픈 집들이 이렇게 줄지어 늘어선 것이다. ‘위대한 당과 수령동무’의 도움 없이도 부시시 기지개 켜며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이게 풀뿌리 백성의 강인한 힘, 그 생명력이다. (88쪽)
- 인민의 당이라는 조선노동당이 눈처럼 허연 기름진 쌀을 나누어 줄 리 없으니, 산동네 사람들은 애써 가꾼 옥수수를 갈무리하여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자 한다. 그게 그네들이 이삼백 년 전부터 살아온 방법이다. (108쪽)
- 이제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된다고 하는 사회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잘 대접받기 위해서는 양반 조상을 무조건 부정해야 할, 그런 때가 온 것이다. (145쪽)
- 오토바이의 속도계는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어서는, 아예 날아가는 현대판 페가수스를 꿈꾸는 중인 게다. 허망한 그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볼품없는 인민군 막사의 현관이 아가리를 떡 벌리고 서 있다. (154쪽)
- 기골이 장대한 노인. 호랑이를 두들겨 잡던 북도인의 강인함이 느껴지는데, 노인의 표정에는 어딘가 처량한 구석이,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221쪽)


  사진을 사진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은 책이름처럼 ‘추억’입니다. ‘비방’이나 ‘비판’을 할 책이 아니라, 남북녘이 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이야기를 찾자는 ‘추억’입니다.


  백승종 교수는 책 끝머리에 “동서 양 진영에서 세차게 불고 있던 냉전 바람은 레셀을 가만두지 않고 괴롭혔다. 서독으로 탈출하자마자 그는 북한 친구들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미국의 유력한 정보기관이 그를 불렀다. 미국인 기관원은 레셀을 집중적으로 심문했다(270쪽).” 하고 덧붙입니다. 에리히 레셀 님은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갔다지만, 서독에 가서는 미국 정보요원이 들볶았다고 해요.


  자유란 무엇일까요. 민주란 무엇일까요. 평화란 무엇인가요. 통일이란 무엇인가요.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진에 붙이는 글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사진에 붙이는 글로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리면 될까요.


  북녘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이 사진으로 있는데, 백승종 교수는 이런 사진조차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는 투로 글을 붙입니다. 사진과 글이 어긋납니다. 활짝 웃는 개구진 북녘 아이들 사진에 대고 ‘근심과 걱정과 아픔이 가득하다’는 투로 글을 붙입니다. 사진과 글이 동떨어집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아닙니다. 사진에 붙인 글을 모두 털어 주셔요. 사진책 앞뒤로 붙인 긴 글을 모두 물려 주셔요. 에리히 레셀 님 이야기를 실어 주고, 에리히 레셀 님 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담아 주셔요. 1950년대 북녘이 어떤 삶이었는지, 꾸밈없이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주셔요. 195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나아가는 북녘에서 그곳 여느 사람들이 어떤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로 하루하루 삶을 지었는지 알 수 있도록 징검돌이 되어 주셔요. 백승종 교수가 소설을 쓰고 싶다면, 따로 소설책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애틋한 사진에 대고 소설을 쓰는 일은 삼가기를 바랍니다.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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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4 - Vol.5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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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4

 


사진쟁이가 들려주는 노래
― 사진잡지 《포토닷》 5호
 포토닷 펴냄, 2014.4.1.

 


  아침밥을 즐겁게 먹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놉니다. 봄비가 그친 아침은 아주 맑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들을 덮듯이 새로 돋는 풀은 푸르게 빛납니다. 얼마나 곱게 어우러지는 하늘과 들인가 하고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새로 돋는 풀 둘레에는 지난겨울 시든 풀잎이 누렇게 있습니다. 봄에는 시든 풀빛과 새로 돋은 풀빛이 함께 있습니다. 들은 누런 빛과 푸른 빛이 어우러져요. 이런 들 너머로 멧자락마다 알록달록 새로운 빛입니다.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 멧벚나무가 있고 콩배나무가 있어요. 사이사이 진달래와 철쭉이 있습니다. 멧자락 너머로는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있지요. 전문 그림쟁이가 아니더라도 물감이랑 종이를 챙겨 그림을 그리고 싶은 봄날입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아니더라도 사진기나 손전화를 쥐어 사진을 찍고 싶은 봄빛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5호(2014.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포토닷》 5호에 사진쟁이 임재천 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임재천 님은 곧 제주도를 사진으로 담는다고 합니다. 제주도를 왜 사진으로 찍느냐는 물음에 “관광지 제주가 아닌 제주사람들의 삶과 현재 모습을 풍경과 더불어 보여주는 작업이 될 것(19쪽).”이라고 말합니다. 임재천 님이 느끼기에 제주만큼 빠르게 바뀌는 곳이 없다고 해요.

 

 

 

 


  한국에서 제주가 가장 빠르게 바뀔까요? 어느 모로 보면 그렇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한국에서는 어디를 보나 빠르게 바뀝니다. 서울은 서울대로 빠르게 바뀌고, 부산은 부산대로 빠르게 바뀌어요. 도시는 도시대로 빠르게 바뀝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빠르게 바뀌지요. 관광도시나 관광시골은 관광지인 만큼 빠르게 바뀌고, 관광지가 아닌 도시나 시골은 공장이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댐이나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바뀝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4대강사업이 거의 마무리되는 요즈음, 이 나라는 어디를 보나 아주 빠르게 바뀌었어요.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 사진을 훌륭하게 생각한다. 아마와 프로의 경계가 무너져 있는 사진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내가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를 알아보고 나와 가까이 있는 대상을 촬영했으면 좋겠다(155쪽/서영걸).”와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강과 낙동강과 금강과 영산강에서만 끔찍한 시멘트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크고작은 시골 읍과 면에서도 시멘트공사가 이루어졌어요. 면소재지에서 벗어난 작은 마을에서까지 시멘트공사가 이루어졌어요.


  시민운동이나 기자는 몇몇 커다란 공사터만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고 반대운동을 했는데, 크고작은 시골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진을 찍지 않고 기록을 하지 못하며 반대운동을 하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무언가 할 만한 사람은 거의 다 도시로 갔거든요.


  사진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진쟁이는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어떤 넋일까요. “나에게 사진은 ‘놀이’이다.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로모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시작했는데 동생을 모델로 많이 찍었다. 생애 첫 카메라를 가지게 된 그날부터 사진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의 작업은 내가 성장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결과물들이다(35쪽/장인아).”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사진쟁이 장인아 님한테 사진이란 ‘놀이’이고 ‘삶’이자 ‘일’입니다. 놀이가 되고 삶이 되며 일이 되는 사진은, 장인아 님한테 이야기이고 노래이며 꿈입니다. 이야기이고 노래이며 꿈이 되는 사진은, 장인아 님한테뿐 아니라 다른 사진쟁이한테도 이웃이자 동무이고 사랑이 될 테지요.

 

 

 

 


  우리는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거나 읽을까요. “나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다(57쪽/구본창).” 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돌아봅니다. 누구라도 날마다 불꽃이 튀는 삶을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저마다 다른 불꽃을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더 대단한 불꽃이 없고, 더 놀라운 불꽃이 없습니다. 서로 아름답게 얼크러지면서 피어나는 불꽃이라고 느껴요.


  봄날 들판을 덮는 봄풀과 봄꽃은 작은 잎사귀와 꽃망울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 꽃이 저 꽃을 넘보지 않아요. 이 잎이 저 잎을 가리지 않습니다. 작디작은 풀꽃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푸릅니다. 함께 푸르고 함께 빛나며 함께 아름답습니다.


  “이전 나무 작업은 아름다운 배경과 어우러진 나무 사진으로 전시에서 작품이 모두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지만 점차 소재주의적이지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보기에는 좋지만 사진적인 의미는 부족했던 것 같다(88쪽/윤길중).”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은 누구라도 이렇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사진이라고 해서 나쁠 까닭은 없어요. 보기에 좋은 사진은 보기에 좋을 뿐입니다. 언제나 그뿐이에요. 아름다운 사진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진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따스한 사진은 언제나 따스합니다. 차가운 사진은 언제나 차갑고, 눈물겨운 사진은 언제나 눈물겨워요.

 

 

 


  옳은 사진이나 그른 사진은 없습니다. 이래야 맞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저렇기에 틀린 사진이란 없습니다. 구도가 흔들리거나 초점이 안 맞은 사진은 구도가 흔들리거나 초점이 안 맞은 사진일 뿐입니다. 구도가 흔들렸어도 내 마음을 애틋하게 담은 사진은 언제나 애틋합니다. 초점이 잘 맞았어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는 사진은 언제나 아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사진은 빈틈없이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은 빈틈없이 써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빈틈없이 펴내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넋과 얼로 찍는 사진인가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쓰는 글인가 슬기롭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떤 꿈과 사랑으로 펴내는 책인가 참답게 헤아려야 합니다.


  김수남 님 사진책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를 다룬 사진비평이 하나 있습니다. “시골내기가 사라지는 한국에서는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집니다.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지는 한국이니까, 한국에서는 이제 더 ‘한겨레 빛과 숨결’을 느끼도록 할 만한 사진을 찍기 어렵고 글을 쓰기 힘듭니다. 도시에서 넘치는 온갖 도시문명과 현대문명을 빗대거나 꼬집거나 뒤트는 행위예술은 있어도, 문화와 삶은 자취를 감춥니다 …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한테 자꾸 학교를 세워서 무언가 가르치려 들고, 자꾸 예배당을 세워서 무언가 믿으라고 윽박질러요. 다 다른 겨레 보금자리에 자꾸 병원을 짓고 자꾸 뭔가를 세우려 합니다. 다 다른 겨레는 스스로 삶을 짓고 이제껏 아름답게 사랑했는데, 다 다른 겨레를 찾아오는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가 어떤 꿈과 사랑인가를 읽지 않고 교육을 시키려 하고 문화사업을 들이댑니다(96∼97쪽/최종규).”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새겨 읽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한국문화를 보여주고자 사진을 찍는 일이 드뭅니다. ‘아름다운 강산’을 사진으로 찍거나 담는 분은 한결같이 있으나, ‘한겨레 삶과 문화’를 2014년 오늘날에도 오늘날에 걸맞게 찍거나 담는 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사진은 어디로 가는가요. 사진은 어디에 있을 적에 곱게 빛날까요. 사진은 어디로 갈 때 사랑스레 빛날까요.


  “어느 공간이 독특하다고 느껴져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빈 공간을 찍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본다(109쪽/신은경).”와 같은 이야기는 사진쟁이가 사진쟁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이겠지요.


  사진에 담는 모습은 ‘내가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사진으로 찍는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으로 나누려는 모습은 ‘내가 이웃과 어깨를 겯으면서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사진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궁금합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사진길 걷는 사진쟁이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는지 궁금합니다. “세계적인 전시들이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듯 일상이 된 지금, 국내외 아트페어나 옥션에서 꽤 비싼 가격에 작품들이 팔리는 지금, 돈 많은 기업과 재단의 사진미술관들이 풍요롭게 작가를 지원해 주는 지금, 이 우울함이 가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125쪽/진동선).”와 같은 이야기마따나, 어느 한쪽은 배부르고 어느 한쪽은 배고플까요. 어느 한쪽은 너무 앞서가고 어느 한쪽은 한 걸음 내디디기조차 벅찰까요.


  사진잡지 《포토닷》 5호를 덮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길을 사진을 바탕으로 다달이 새삼스레 읽습니다. 삼월을 지나 사월입니다. 삼월바람은 저물고 사월바람이 붑니다. 사월바람은 한결 포근하면서 보드라우리라 생각합니다. 사월에는 개구리가 신나게 노래할 테고, 풀벌레도 조물조물 고개를 내밉니다. 사월에는 제비가 돌아오며, 사월에는 매화꽃 진 자리마다 매화열매 굵습니다. 능금알도 복숭아알도 천천히 굵겠지요. 다 다른 꽃은 다 다르게 아름답듯이, 다 다른 사진쟁이는 다 다른 빛을 사진 하나로 즐겁게 나누리라 믿습니다. 4347.3.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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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 김수남의 아시아 문화 탐험, 개정판
김수남 지음 / 석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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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7

 


사진을 찍는 목소리
―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김수남 글·사진
 석필 펴냄, 1997.11.1.

 


  사진을 찍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진 한 장을 읽으면서 사진길 걷는 사진벗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사진마다 사진벗이 노래하는 삶이 깃듭니다. 사진벗이 노래하는 삶이란 사진삶이고, 사진삶이란 사진노래이며, 사진노래란 사진빛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 한 줄에 노래를 담습니다. 글 한 줄에 담는 노래란 글삶이고 글노래이며 글빛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 하나에 노래를 담아요. 그림 하나에 담는 노래란 그림삶이고 그림노래이며 그림빛입니다.


  우리 삶은 어디에서나 늘 노래이고 빛입니다. 집에서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살림노래와 살림빛입니다.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할매는 저잣노래와 저잣빛입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은 바다노래와 바다빛입니다. 하늘을 꿈꾸는 아이들은 하늘노래와 하늘빛입니다.


.. 때로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 오지의 정보를 갖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방법을 알려준다 한들 그들이 나처럼 미련한 길을 택할지는 미지수이지만, 한 지역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고지식해질 필요가 있다 … 그곳에 들어가 석 달이 되든 넉 달이 되든 시간을 갖고 어린 시절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그 지역의 삶의 순수한 풍경을 찾아낸다 … 수천 수만 년을 전해 내려온 정신 문화를 직접 접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과학 문명이 주는 즐거움에 비할 수 있을까? 이미 선배들이 다 작업을 끝내 영역이 너무나 비좁다고 한탄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적어도 문화의 영역이란 그리 단순하거나, 얕은 우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  (17∼18쪽)

 

 


  김수남 님은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석필 펴냄)라는 책을 써낸 적이 있습니다. 1997년입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소수부족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태어났습니다. 293쪽에 이르는 책이고 글씨가 깨알같습니다. 큼지막하게 들어간 사진이 있으나, 이 책에 넣은 사진은 거의 다 조그맣습니다.


  그동안 김수남 님은 이녁 사진으로만 책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의 굿》(열화당) 스무 권과 《호미씻이》(평민사)라든지 《제주바다 潛嫂의 四界》(한길사)를 선보였습니다. ‘빛깔있는 책들’에 굿 사진과 전통문화 사진을 선보였고, 1995년에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스페이스)을 내놓았습니다. 이 여러 책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는 사뭇 다른 빛을 보여줍니다. 사진 못지않게 글을 많이 실었고,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못지않게 글로 밝히는 눈빛이 곱습니다.


  사진을 바라보고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젖습니다. 김수남 님이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며 바라본 하늘과 땅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김수남 님이 사진기로 담은 빛과 사진기에 굳이 안 담은 빛을 가슴속으로 담아 봅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아이들과 함께 소나기를 맞으면서 놀던 이야기를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내 나라 문화’를 사진과 글로 담는 일이랑 ‘이웃 여러 나라 문화’를 사진과 글로 담는 일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기에 문화가 될까요? 글로 적어서 책이나 논문으로 선보이면 역사가 될까요? 사진으로 찍지 않고 마음속에 담는 문화는 무엇일까요? 글로 쓰지 않고 책으로 엮지 않는 역사는 무엇일까요?


.. 사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얼마나 많은 사진가들이 이런 기다림의 순간 속에서 자신을 소진하며 자신의 사진을 일구어 왔는가 … 사진은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아니 당연히 찍는 사람의 사상과 생각이 들어간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의 의사를 언어나 문자가 아닌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사유하면서 느린 박자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 … 먀오족의 딸들은 다섯 살만 되면 바늘을 들고 자수를 배우기 시작하고, 열 살이 넘으면 숙련된 솜씨로 다양한 도안의 수를 놓을 수 있다고 한다 ..  (25, 43, 131쪽)

 

 


  김수남 님은 아시아 여러 겨레를 만나면서 ‘노래’를 늘 듣습니다. 아시아 여러 겨레는 저마다 ‘말’을 합니다. 겨레마다 말이 다릅니다. 겨레마다 ‘나라’가 있지만, ‘공식 국가 언어’보다는 ‘겨레말’을 씁니다. 우리로 치자면, 제주말이나 울릉말이라 할 만합니다. 전라말과 경상말과 함경말이라 할 만합니다. 전라말에서도 곡성말과 고흥말이라 할 만하고, 작은 시골 고흥에서도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쓰는 말이라 할 만하고, 면소재지에서도 더 들어간 두멧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쓰는 말이라 할 만합니다.


  김수남 님이 만난 아시아 여러 겨레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신문도 없고 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랜 나날 차근차근 삶을 잇습니다. 학교나 교사나 시험이나 문명은 없지만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몸에서 몸으로 물려받습니다.


  책으로 밥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론이나 학문으로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나 문화학자나 건축학자가 집짓기를 연구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느 겨레이든 모든 사람이 스스로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합니다. 겨레마다 서로 다른 빛과 숨결을 담아서 다 다른 옷을 지어서 입고, 다 다른 밥을 지어서 먹으며, 다 다른 집을 지어서 살아갑니다.


  오키나와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를 읊은 김수남 님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겠지요.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수남 님 어린 나날을 떠올렸겠지요. 김수남 님을 낳은 어머니가 집살림을 가꾸면서 하던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그렸겠지요. 먼먼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는 문화요 삶인 한편, 바로 김수남 님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두고두고 누리거나 즐기거나 가꾸던 문화이면서 삶을 느꼈겠지요.


.. 발리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항상 신을 생각하고 신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정신과 육체 간에 대화를 해야만 한다. 너무 바빠서 당장 쉴 수가 없다면 몸을 달래야 한다 …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사진이 우리 나라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앞으로 십 년 정도 지나면 사회가 많이 달라져 외국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 같은데, 이삼 년 안에 내 사진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늘 달고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작업을 정부나 공공기관, 문화단체에서 후원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52, 64, 73쪽)

 


  모든 겨레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겨레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내기를 하든 가을걷이를 하든 풀베기를 하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나물을 캐거나 뜯거나 꺾으면서 나물노래를 불렀습니다. 절구질을 하면서 절구노래를 불렀고, 방아를 찧으면서 방아노래를 불렀습니다. 베틀을 밟으면서 베틀노래를 불렀고, 다듬잇돌을 통통통 두들기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노래입니다. 밥상에 수저를 얹으면서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흙바닥에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면서 노래입니다. 냇물에서 헤엄치면서 노래입니다. 도랑에서 가재를 잡고 다슬기를 주우면서 노래입니다. 나비를 잡고 잠자리를 좇으면서 노래입니다. 어깨동무 노래를 부르고 씨동무 노래를 부릅니다. 미나리밭에 앉는 노래를 부르며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 나라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부르던 노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제 마을에서 오순도순 부르던 노래가 없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는 텔레비전을 켜고 ‘가수’라는 사람이 ‘작곡가’가 지어 준 ‘대중노래’만 듣습니다. 제 삶에서 제 노래를 길어올리지 않고, 남들이 만든 문명에 따라 ‘문화를 소비하는 노래’만 듣고 외웁니다.


  대중노래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제 이 나라에는 스스로 노래를 짓고 부르며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이 나라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만 있을 뿐, 아이를 보살피면서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삶을 가꾸는 빛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 사진기를 들고 굿판을 헤매다 보면 불과 몇 년 전에 사진으로 담아냈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일산 신도시가 그렇다. 일산의 정발산 정상에서 한 해 걸러 말머리굿이 벌어졌었다. 정발산에서 내려다보던 일산은 드넓은 논밭과 드문드문 들어선 가옥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 제주도가 관광지로 개발되고 육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둑 없는 순박한 고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져 버렸다 … 섬들 사이로 거대한 태양이 바다로 내려앉아 점점 그 모습을 지우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시인이 아니라도 한 줄 시를 쓰고 싶은, 아니면 남의 시라도 한 수 읊고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  (63, 70, 103쪽)

 


  김수남 님은 여행을 떠납니다. 김수남 님은 여러 나라 여러 겨레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행을 다니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느덧 문화도 삶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도시문명만 넘치지, 시골문화와 시골삶이 없어요. 시골에서도 모두들 텔레비전을 켜서 연속극을 바라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 스스로 놀이문화나 노래문화를 누리지 않아요. 시골 할매와 할배 모두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만 따라 부르지, 이녁이 흙을 만지고 풀을 먹으면서 즐기는 노래는 깡그리 잊을 뿐 아니라, 새로 노래를 짓지 못해요.


  더군다나, 시골을 떠나도록 부추깁니다.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이녁 아이들을 모조리 도시로 보냈습니다. 학교로 보낸다든지 ‘힘든 시골일’을 안 시키겠다는 뜻으로, 한국 어린이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 도시내기로 살고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도시내기가 됩니다. 시골내기는 사라지는 한국입니다. 시골내기가 사라지는 한국에서는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집니다.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지는 한국이니까, 한국에서는 이제 더 ‘한겨레 빛과 숨결’을 느끼도록 할 만한 사진을 찍기 어렵고 글을 쓰기 힘듭니다. 도시에서 넘치는 온갖 도시문명과 현대문명을 빗대거나 꼬집거나 뒤트는 행위예술은 있어요, 문화와 삶은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행위예술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예술은 있되 문화와 삶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문명을 누리기만 할 뿐, 삶을 짓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삶을 짓지 못하니 노래가 없습니다. 삶을 짓지 못해 노래가 없으니 싱그러운 꿈과 사랑을 짓지 못합니다. 싱그러운 꿈과 사랑을 짓지 못하니, 이 나라에서 수수한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사진을 찍는 이들도 나타날 수 없어요.


  외국으로는 나가지요. 한국에 없는, 아니 한국에서 사라진, 아니 한국에서 우리 스스로 없앤 삶을 외국에서 찾으려고, ‘지구별 오지(두멧시골)’를 찾아나섭니다. 티벳을 가고 몽골을 가요. 네팔을 가고 부탄을 가요.


  거듭 말하는데, 지구별 두멧시골을 찾아나서는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더 두멧시골을 찾을 수 없기에 외국으로 나가야 사진을 찍을 만하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사진을 찍으러 찾아올’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날 개화기라든지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외국 여러 나라에서 ‘고요한 아침 나라 조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남기고 싶어 찾아왔어요. 그렇지만, 이제 이렇게 한국을 찾아오는 발걸음이 없어요. 한국다운 한국살이를 찾아보거나 느낄 수 없으니, ‘인기 연속극 무대’를 찾으려고 한국으로 오는 ‘한류 바람 관광객’은 있어도, ‘한국살이를 곱게 느끼며 새로운 사진과 글로 엮으려는 사람’은 나타날 수 없어요.


.. 오키나와는 대부분 산호초 섬들이므로 해안가는 산호초로 이루어져 있고, 산호초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검은색을 띤다 …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 중 많은 부분을 조선에서 받아들였다고 생각을 하는 반면, 일본은 자신들을 침략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 이곳 사람들에게 아리랑은 낯선 노래가 아니었다 … 마을에 들어서면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우리 나라의 새마을운동 같은 마을 근대화 운동을 벌여 전통적인 마을 모습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 파도가 없는 뱃길은 너무도 평화롭다. 세상에 걱정이라고는 없다는 듯 태양이 빛나고,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뒤편으로 멀리 야에야마 제도의 섬들이 흩어져 있다 ..  (79, 85∼86, 91쪽)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어떤 사진을 찍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찍는 사진에 우리 스스로 어떤 목소리를 담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어떤 이야기인지 헤아릴 일입니다.


  사진은 무엇일까요. 사진은 왜 찍을까요. 사진을 찍는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나누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고, 왜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왜 사진으로 목소리를 낼까요.


.. 외국어를 잘하는 젊은 친구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에 통역에 오류가 생기기 쉽고, 문화를 잘 아는 지식인은 언어가 시원치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 설사 그 취재여행 자체가 수포로 돌아간다 해도 돈을 주고 그 상황을 재현시킨 사진은 찍지 않는다는 것이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자존심이다 … 동족은 자신들의 문자가 없는 까닭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노래에 담아 구전해 왔다. 그들의 조상이 어디에서 기원해 어디를 거쳐 이곳으로 왔는지, 방대한 서사시를 노래로 면면히 이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달라졌나 보다. 청년들은 그들의 노래를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  (110, 115, 124쪽)


  김수남 님은 이녁 사진책에서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혼자 다니는 사진여행에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하면서 하루하루 누립니다. 사진을 왜 찍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이웃나라 문화를 찾아나서는 까닭을 스스로 묻습니다. 한국에서 겪은 새마을운동이 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근대문명과 문화사업이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근대문명은 폭력입니다. 문화사업이란 독재입니다.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소수부족) 삶을 짓밟습니다. 다 다른 겨레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누리는 이야기를 짓밟는 근대문명이에요. 다 다른 겨레한테는 학교가 없지만, 아무도 걱정하거나 어렵지 않아요. 다 다른 겨레는 저마다 다 다른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한테 자꾸 학교를 세워서 무언가 가르치려 들고, 자꾸 예배당을 세워서 무언가 믿으라고 윽박질러요. 다 다른 겨레 보금자리에 자꾸 병원을 짓고 자꾸 뭔가를 세우려 합니다. 다 다른 겨레는 스스로 삶을 짓고 이제껏 아름답게 사랑했는데, 다 다른 겨레를 찾아오는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가 어떤 꿈과 사랑인가를 읽지 않고 교육을 시키려 하고 문화사업을 들이댑니다.


  짚신 신던 한겨레가 고무신을 신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고무신을 신던 한겨레가 플라스틱 인조화학소재로 된 운동화와 구두를 신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모시와 삼베로 옷을 스스로 지어 입던 한겨레가 인조화학소재로 된 옷을 비싼값 치르고 사다 입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던 한겨레가 자가용을 싱싱 몰며 고속도로를 달리니 문명이 되엇을까요?


  조그맣고 가난한 골목동네를 찾아서 벽화사업이라든지 도보여행이라든지 문화탐방이라든지 하는 문화사업을 벌이니 문화가 꽃피우는지 궁금합니다. 다 다른 골목동네는 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골목밭을 짓고 골목꽃을 심으며 골목나무를 가꾸었어요. 골목집 담벼락은 담벼락이면서 빨래를 너는 옷걸이 구실을 하고, 덩굴풀이 올라와서 살가운 무늬를 빚었는데, 이런 담벼락마다 페인트로 척척 무언가 바르면서 문화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이곤 하는 공공기관이요 예술가입니다. 문화사업은 문화로 돈을 버는 사업일는지 모르지만, 삶이 아닙니다. 삶을 읽지 않고 껍데기로만 꾸미는 독재요 폭력입니다.

 


..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 뜻밖에 차도 얻어 타고,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의 사진도 찍고, 게다가 노래까지 곁들여진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 이곳의 반체제 지식인들은 여전히 옛 명칭인 버마와 랑군을 고집해서 쓴다. 지금도 계속되는 독재정권 하에서 모든 것이 퇴행해 버린 나라, 그래서 사람들은 미얀마를 ‘시간이 멈춰 버린 땅’이라고 부른다 … 우리의 신들은 거의 사라진 반면 미얀마의 신들은 아직도 현실 속에 그들의 생활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  (134, 147, 170, 181쪽)


  벽화사업을 마친 골목동네를 찾아다니는 관광객이 늘어납니다. 벽그림이 예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벽그림이 예뻐 골목동네를 찾아가야 할까요? 벽그림이 없던 때에는 골목동네가 안 예쁘거나 꾀죄죄하거나 못났을까요? 동네를 이루는 자그마한 골목집이 하나둘 모였기에 예쁜 삶터이지 않나요? 작은 사람들이 작은 사랑으로 모여서 작은 골목동네를 이루었기에 이곳이 예쁜 보금자리이지 않나요?


  아시아 소수부족 마을에 학교가 서고 콜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으며 교복을 입고 운동화를 꿴 뒤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문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과 콜라와 햄버거와 학교와 병원과 자동차과 아스팔트길이 들어선 소수부족 마을은 얼마나 문화답고 문명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자가용 모는 소수부족 마을에 어떤 노래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곳으로 찾아가서 ‘오랜 전통문화’를 마주하거나 지켜보거나 나눌 일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이들까지 나눌 수 있는 정이 생기근 곳. 이렇게 아시아 곳곳에는 나의 딸, 조카가 있다.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항상 행복해진다. 그들과 나누었던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 나의 쓸쓸함이야 내 선택의 몫이지만 갈수록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함께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고, 또 내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고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덕담도 한마디 해 주고 세뱃돈도 주어야 할 텐데 … 공해가 없는 곳이라 산성비도 아닐 터이니 이 비를 맞는다고 엉성해진 내 머리카락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처마 밑을 나와 벌거숭이 아이들과 어울린다. 비가 어찌나 굵은지 떨어지는 빗줄기에 살갗이 얼얼할 정도로 아프다  ..  (191, 224, 238쪽)


  김수남 님은 말합니다. “아시아의 소수민족들과 어울리는 동안에 내가 어느덧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일까(256쪽).” 하고. 그래요. 김수남 님은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어요. 아니에요. 김수남 님은 ‘사랑이’가 되었어요. 사랑쟁이가 되고 사랑꾼이 되었어요. 사랑님이 되고 사랑빛이 되었어요. 무정부주의 아닌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보았어요. 무정부주의를 넘어 사랑이 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했어요. 이웃과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면서 저절로 사진을 얻고 글을 받았어요. 하늘이 내려준 사진이에요. 땅이 베푼 글이에요. 하늘이 선물한 사진이에요. 땅이 보내준 글이에요.


  김수남 책에 실린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에 찍히니 웃지 않습니다. 김수남 님이 빙그레 웃으니 마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소수부족 사람들은 제 겨레를 빛내거나 알리고 싶어서 사진에 찍히지 않습니다. 소수부족 사람들은 김수남 님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고 싶기에 웃습니다. 김수남 님도 어떤 ‘사명’이나 ‘의지’가 아닌, 살가운 이웃과 사랑을 꽃피우는 삶이 즐거우니까, 사진기를 내려놓고 웃습니다. 슬며시 사진기를 들고 웃습니다. 다시 사진기를 내려놓고 웃습니다. 새삼스레 사진기를 들고 웃습니다.


  제주섬에서 태어난 맑은 넋이 지구별을 두루 돌았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맑은 넋과 부산에서 태어난 맑은 넋은 오늘날 어느 곳을 두루 돌까요. 원주에서 태어난 밝은 넋과 밀양에서 태어난 맑은 넋은 오늘날 어느 마을을 두루 돌까요. 이 땅 모든 어린이와 어른이 즐겁게 웃기를 빕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삶을 누리기를 빕니다. 즐겁게 웃으면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맑게 노래하면 맑게 담는 사진입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면 사랑스럽게 빚는 사진입니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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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母さんへ、世界中の子どもたちからプレゼント: あなたのたいせつなものはなんですか? (大型本)
야마모토 토시하루 / 小學館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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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책은 서재이웃 '순오기' 님이 지난 12월 7일 제 생일을 맞이해서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이래저래 책선물이 3월 19일쯤 고흥에 닿았어요 ^^;;; 석 달이 더 지난 뒤에 받은 생일 책선물입니다. 고마운 책선물을 곰곰이 헤아리며 느낌글을 적습니다. 책선물은 언제나 반깁니다. 멋진 책을 선물해 주시는 이웃님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함께 띄우면서~

 

..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70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진
― お母さんへ, 世界中の子どもたちからプレゼント
 야마모토 토시하루(山本 敏晴) 사진·글
 小學館 펴냄, 2013.4.22.

 


  야마모토 토시하루(山本 敏晴) 님 책이 한국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달과소,2003)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넥서스주니어,2006)가 나왔습니다. 의사로 일하면서 지구별 아픈 이웃을 만나던 야마모토 토시하루 님은 의료봉사로는 아픈 이웃을 달랠 수 없다고 깨닫습니다. 의사이면서 의사라는 이름을 살포시 내려놓고는 사진기를 쥡니다. 그림종이와 크레파스를 들고 아이들을 만납니다.


  의료봉사도 더없이 큰 뜻이 있고 아름다운 빛이 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서로 만나서 사귀는 일도 더없이 큰 뜻이 있으며 아름다운 빛이 되어요. 몸만 고친대서 아픈 사람이 낫지 않아요. 마음을 함께 달래면서 포근히 어루만질 수 있어야 비로소 아픈 곳이 나아요. 야마모토 토시하루 님은 지구별 아픈 아이들 마음을 달래면서 아이들마다 마음밭에 사랑씨앗을 스스로 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이 사랑씨앗은 지구별 여러 나라 아이들 마음밭뿐 아니라, 이녁이 나고 자란 일본에도 이웃 한국에도 또 다른 수많은 나라에도 곱게 드리울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진책 《お母さんへ, 世界中の子どもたちからプレゼント》(小學館,2013)를 읽습니다. “어머니한테, 온누리 어린이가 보내는 선물”입니다. 어떤 선물일까요. 아이들은 어머니한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을까요.

 

 

 

 
  지구별 여러 나라 여러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다 그린 그림을 들고 활짝 웃습니다. 아이가 말합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적에 즐거워요.” “나는 어머니 팔에 안기기를 좋아해요.” “나는 어머니가 칭찬해 줄 때에 즐거워요.”


  어머니로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는가요.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어떤 낯빛을 짓는가요. 아이들은 무엇을 받고 싶을까요. 어른들은 무엇을 주고 싶을까요.


  아이들이 돈을 바라거나 집을 바라거나 졸업장을 바랄까요? 아이들이 자가용을 바라거나 여행을 바라거나 놀이공원을 바랄까요?


  아이들은 옷조차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입히는 옷이면 모두 좋습니다. 아이들은 비싸거나 값진 옷보다 어머니와 아버지 손길이 사랑스레 깃든 옷이면 다 반갑습니다. 아이들은 비싸거나 값진 밥을 바라지 않아요. 어머니와 아버지 손길이 따사롭게 깃든 밥이면 늘 맛있고 배부르게 먹어요.

 

 

 

 
  사진이 좋다면 마음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이 즐겁다면 마음을 감싸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이 아름답다면 마음을 보듬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이 사랑스럽다면 마음을 아끼고 살찌우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으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예술도 좋고 사진문화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술이 되는 사진이 아니고, 문화라는 이름을 얻어야 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어깨동무하는 길에 시나브로 예술로 피어나고 문화로 자라는 사진입니다.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들길을 거닐며 들노래를 부를 적에 사진 한 장 천천히 태어나고 사진 두 장 살며시 샘솟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대서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모델이 되어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겁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어른 모두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함께 즐겁게 살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해요.’ 하고 노래합니다. ‘우리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춤추어요.’ 하고 속삭입니다.

 

 


  아이들은 총을 만들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군대를 만들지 않아요. 아이들은 질서나 계급이나 위계를 세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함께 놀아요. 옆에서 머뭇머뭇 구경하는 아이가 있으면 얼른 동무로 삼아 함께 놀아요. 함께 흙밭을 뒹굴고, 같이 들판을 달립니다. 함께 손을 잡고 서로 노래를 부릅니다.


  평화조약을 맺어야 평화가 아닙니다. 함께 놀고 함께 웃으며 함께 밥을 나눌 적에 평화입니다. 수호조약을 맺거나 자매결연을 맺어야 평등이 아닙니다. 함께 춤추고 함께 일하며 함께 노래를 부를 적에 평등이에요.


  사진책 《お母さんへ, 世界中の子どもたちからプレゼント》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어머니(아버지), 선물이 무엇인 줄 알겠어요, 하고 사근사근 속삭입니다. 아이들이 내미는 선물은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어른한테 주는 선물도,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받고 싶은 선물도, 언제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달래는 사진은 사랑을 찍어요. 마음을 아끼고 북돋우며 살찌우는 사진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가꾸며 삶을 빛내는 사진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꿈을 담습니다. 4347.3.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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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3-2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었군요!
기프티북을 처음 보내면서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까닭에
오래오래 기다려 받은만큼 더 많은 즐거움 누리시어요!^^
방금 보내주신 책꾸러미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거 같은 느낌, 이웃과 함께 잘 보겠습니다!!^^

숲노래 2014-03-26 14:32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이 비슷한 형식으로 된 책이 한 권 번역되었는데
그 책은 금세 절판되었어요.
아무래도 출판사를 잘못 만난 탓이지 싶어요.

일본에는 아름다운 길 걷는 분들이 퍽 많아서
이런 분들이 내놓는 보배와 같은 선물이라고 느끼며
이런 사진책을 만나요.

정갈하게 엮고 꾸민 책이에요.
즐거우면서 고맙게 잘 읽고
사진책도서관에서 잘 보이는 자리로 옮겨 놓았어요 ^^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김병규 글, 황헌만 사진, 김승태 감수 / 소년한길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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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6

 


메뚜기는 어디에 있나요
―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황헌만 사진
 김병규 글
 소년한길 펴냄, 2009.6.15.

 


  빗소리를 듣습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여러 날 맑고 밝은 햇볕이 내리쬐더니 오늘은 낮부터 비가 줄줄 내립니다. 비가 듣기 앞서 우체국을 다녀옵니다. 웬만하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우체국에 다녀오지만, 아직 아침을 먹이지 않았기에 아침밥상을 차리고 바로 자전거를 몰아 우체국으로 갑니다.


  우체국을 다녀오고 나서 씻습니다. 씻으면서 빨래를 합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빗줄기가 듣지 않으니 옷가지를 마당에 내놓습니다. 빗방울이 들을 무렵 걷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미처 듣지 못했어요. 마당에 내놓은 옷가지가 외려 더 젖은 뒤에 부랴부랴 빨래를 걷습니다.


  빗물에 새로 젖은 빨래는 다시 빨지 않습니다. 다른 고장이라면 모르겠으나,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빗물은 깨끗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비구름이라면 몇 해 앞서 일본에서 터진 핵발전소 방사능이 묻은 빗물일 수 있겠지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 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에는 우산을 받고 빗놀이를 즐기지만 오늘은 두 아이 모두 집에서만 뛰놉니다. 마루에서 방에서 쿵쿵쿵 콩콩콩 깔깔거리면서 놀아요.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면서 빗소리를 느긋하게 들을까 생각했으나 작은아이는 한참 낮잠을 안 자겠다고 하면서 복닥이느라 빗소리를 듣기에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황헌만 님 사진에 김병규 님이 글을 붙인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소년한길,2009)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 사진책에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메뚜기나 거미나 사마귀나 온갖 풀벌레를 집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집 바깥, 그러니까 마당이나 들에서 만나는 풀벌레가 있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복닥이는 풀벌레가 있어요. 어버이인 내가 굳이 아이들더러 “얘들아, 이 녀석을 좀 보렴.” 하고 말을 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오래도록 온갖 풀벌레를 만나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마당에서 흙놀이를 합니다. 한겨울에도 손과 발이 꽁꽁 얼면서도 꽃삽으로 흙을 파고 뒤집어쓰면서 놀아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이 석 채 있는데, 이 가운데 한 채에 제비 아닌 다른 새가 깃들곤 해요. 여름에는 제비가 살지만, 여름이 저물어 가을이 찾아오면 마을 텃새가 살그마니 깃들며 겨울나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 우리 집 아이들은 처마 밑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게다가, 마을 고양이라든지 떠돌이 개가 언저네 우리 집에 찾아와요. 고양이도 개도 우리 집에서 먹이를 얻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처마 밑에서 여러 마리가 궁둥이를 척 비비면서 우리 식구와 나란히 빗소리를 듣고 빗내음을 마십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같은 책은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앞서까지 웬만한 아이들은 다 메뚜기 한살이를 스스로 알았어요. 책이나 교과서가 없더라도 스스로 삶에서 메뚜기를 만나고 마주하며 바라보았어요. 학자들이 책이나 교과서에서 사마귀를 다루기에 사마귀를 알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에서 사마귀를 만나서 알아요. 거미도 개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도 꽃도 풀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이 메뚜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제비를 만나는 시골아이도 드물어요. 이제 아이들은 책이나 교과서로 제비를 만날 뿐, 삶에서 제비를 만나지 못해요. 책이나 교과서 지식으로 제비를 생각할 뿐이에요. 사진책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은 메뚜기 사진을 무척 잘 찍었는데, 지난날에는 누구나 흔히 보던 모습을 이제는 누구도 흔히 못 보는 모습이 되어 책으로 태어난다고 할 만해요. 지난날에는 책이 없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책으로 새롭게 들여다보아야 알 뿐 아니라, 책으로 들여다본다고 해서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봄에 할미꽃이 피어요. 봄에 개나리에 앞서 진달래가 피고, 진달래에 앞서 별꽃이나 냉이꽃이 피어요. 저잣거리에서 냉이를 사거나 쑥을 사서 어머니가 국을 끓여야 먹는 냉이나 쑥이 아닙니다. 봄에 맞이하는 냉이요 쑥이에요. 봄에 만나는 꽃다지이고 민들레입니다. 책으로 만날 이웃이나 동무가 아닌, 언제 어디에서나 살가이 마주하는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메뚜기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도 사라질밖에 없어요. 메뚜기가 이 땅에서 보금자리를 누리지 못하면 사람들도 살가이 살아가기 어려워요. 숲이란 숲이면서 푸른 쉼터요, 들이란 들이면서 푸른 삶자락이에요. 섬서구메뚜기만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도 모험을 합니다. 즐거운 모험일는지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으려는 모험일는지 모르나, 모두 다 모험을 하면서 진땀을 흘립니다. 부디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맑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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