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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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2



삶은 언제나 재미난 춤사위

―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조던 매터 사진

 이선혜, 김은주 옮김

 시공아트 펴냄, 2013.4.15.



  우리 삶은 언제나 춤입니다. 우리 삶은 누구나 춤입니다. 언제나 춤사위처럼 움직이는 삶이고, 누구나 춤사위처럼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삶입니다. 직업이 춤꾼이어야 춤을 추지 않습니다. 대단한 스승한테서 배워야 춤을 잘 추지 않습니다. 인간문화재가 되어야 춤을 출 만하지 않습니다. 예부터 고이 물려받으면서 이은 춤사위란 여느 마을 여느 집 여느 사람이 누리던 춤입니다.


  즐겁기에 어깨춤을 춥니다. 즐거우니 발짓으로 춤을 춥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이 바로 웃음춤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몸이 가볍게 움직입니다. 노래춤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은 춤을 추듯이 글을 써요. 글춤이라 할까요. 이와 같이, 그림춤과 사진춤이 있습니다. 이야기춤이 있으며, 빨래춤과 밥춤과 청소춤이 있을 테지요.


  조던 매터 님은 ‘전문 춤꾼’을 한 사람씩 만나면서 ‘여느 삶’에서 아름다운 춤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다만, 춤옷을 입지 않습니다. 삶옷, 그러니까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고 입는 옷차림으로 여느 자리에서 즐겁게 추는 춤사위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줘요.


  조던 매터 님은 처음에는 ‘뉴욕에서만’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아마 뉴욕에서만 찍은 사진들은 무척 놀랍거나 재미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뉴욕에서만 찍은 사진으로는 ‘우리 삶’을 보여주기에 넉넉하지 못해요. 뉴욕에도 사람이 많고, 이야기가 많으며, 사랑과 노래가 흐릅니다. 뉴욕에서 찍은 사진으로만 사진책을 엮지 못하란 법은 없어요. 뉴욕에도 온갖 사람이 골고루 살아가니, 뉴욕에서 만난 온갖 사람을 보여줄 만합니다. 뉴욕에서도 텃밭을 찾을 수 있을 테고, 뉴욕에서도 큰 집과 작은 집을 찾을 수 있을 테며, 뉴욕에서도 아기 낳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어요.






  한국말로는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시공아트,2013)으로 나온 사진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조던 매터 님이 뉴욕을 벗어나 드넓은 숲과 들과 바다와 물줄기를 마주하면서 담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뉴욕에서 바라본 삶은 뉴욕이 우주가 됩니다. 뉴욕을 벗어나서 바라본 삶은 지구별을 우주로 삼습니다. 그리고, 우주 가운데에 있는 지구별을 보여주고, 지구별에서 저마다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나는 아이와 노는 동안, 내 아들의 눈에 투영된 세상을 보여주는 사진 작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8쪽).”와 같은 마음이면 됩니다. 사진책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에는 춤꾼들이 춤을 추는 멋진 빛이 흐르는데, 굳이 춤꾼을 찍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찰칵 하고 한 장 담아 보셔요. 아이들 몸짓은 언제나 춤짓입니다. 아이들 목소리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아이들 얼굴은 언제나 웃음입니다. 아이들 말은 언제나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요. 우리 어른도 몸짓이 언제나 춤짓으로 이어지는가요. 우리 어른도 목소리가 언제나 노래로 흐르는가요. 우리 어른도 얼굴은 언제나 웃음이면서, 말이 언제나 이야기처럼 곱게 퍼지는가요.


  춤꾼을 찍은 사진이기에 춤사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춤꾼도 사람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사랑을 속삭여요. 아이를 낳고 아이와 어울리며 나들이를 다닙니다. 춤꾼이 보여주는 새삼스럽고 남다른 춤사위가 있다면, 춤꾼이 아닌 우리들은 우리 삶에서 어떤 춤사위로 스스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할까요.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촬영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서 점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223쪽).” 하고 조던 매터 님은 말합니다만, 춤꾼은 어려운 몸짓을 스스로 해내면서 즐겁습니다. 어버이는 아기 똥기저귀를 치우고 아기를 살살 달래며 자장노래 불러서 재우면서 즐겁습니다. 젖떼기밥을 끓여서 먹이면서 즐거운 어버이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잠을 잊으면서 아이를 돌보지요. 춤꾼이 대단한 춤사위를 선보이려고 여러 시간 수없이 뛰고 다시 뛰듯이, 여느 보금자리에서 여느 어버이는 하루이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을 새면서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뿐 아니라 늙은 어버이도 돌보지요.






  밥을 짓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천을 물로 적셔서 이마에 얹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빨래를 해서 너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살포시 안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나는 묘비 위에 축 늘어져 있는 클로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창조적인 작업 과정이 주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사진은 나를 보호해 주는 담요와도 같다. 그날 밤, 나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홀로 이 작품을 바라보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238쪽).”와 같은 마음이기에 사진 한 장 즐겁게 빚습니다. 조던 매터 님은 “셔터를 계속 누르는 연속 촬영에 의존하기보다는 각각의 점프마다 단 한 컷의 사진만 촬영한다. 내게는 원하는 작품을 운 좋게 얻는 것보다 결정적인 순간을 예측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251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밥을 먹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으로 삶을 사랑하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더 멋진 모습을 찍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나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더 빼어난 모습을 안 놓치도록 찍어야 하지 않아요.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울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맛있게 먹으면서 웃음꽃 피어나는 밥을 차리면 돼요. 요리대회에 1등으로 뽑힐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글을 써서 띄우는 편지예요. 신춘문예라든지 문학상을 거머쥐도록 쓰는 글이나 편지가 아닙니다.


  그나저나, 조던 매터 님이 빚은 사진책은 미국에서 《Dancers Among Us: A Celebration of Joy in the Everyday》(2012)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한국말로 나온 이름처럼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춤을’입니다. ‘날마다 즐거운 잔치’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삶은 언제나 잔치’라고 노래하는 사진이에요. 날마다 잔치를 누리는 즐거움으로 춤추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입니다.


  “무용수들은 때로는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252쪽).” 하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계에 도전하는 멋을 말하려고? 아니지요. 춤꾼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면서 춤을 춘 사람은 없다고 느껴요. 벼랑에서 춤을 추더라도 위험을 무릅쓴 춤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춤꾼은 벼랑에 섰어도 벼랑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그저 춤이고, 그저 삶이며, 그저 노래요, 그저 사랑이라고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즐거움도 춤이 되고 슬픔도 춤이 됩니다. 기쁨도 아픔도 모두 춤이 됩니다. 잔치굿을 하고 씻김굿을 해요. 모두 굿이에요. 잔치마당이요 굿마당입니다. 언제나 어울림마당입니다.


  웃을 적에도 벗이 되는 사진이면서, 울 적에도 동무가 되는 사진입니다. 가슴 벅찬 기쁨이 솟을 적에도 벗이 되는 사진이요, 가슴 시린 아픔으로 괴로울 적에도 동무가 되는 사진이에요.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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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5-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즐겁게 읽었었는데 이렇게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로
다시 보니~ 더욱 좋네요~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리뷰,이십니다~*^^*

숲노래 2014-05-15 07:47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아름답게 읽어 주시니
아름다운 넋을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진령 지음 / 이안북스(IANNBOOKS)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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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1



노래하고 사랑하는 사진

― 짓

 오진령 사진

 이안북스 펴냄, 2014.4.1.



  비가 오고 집안에 지네가 볼볼 기어다닙니다. 벌써 지네가 깨어나 볼볼 기어다니는 철이 되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도 한 마리를 보았어요. 집에서 기어다니는 지네를 얼른 잡아서 풀밭에 휙 던진 적이 있어요. 오늘 본 지네도 잡아서 바깥 풀밭에 휙 던질까 하다가 방바닥에 불을 넣기로 합니다. 낮부터 비가 죽죽 내려서 집안이 축축하니 지네가 들어오나 싶습니다.


  비가 오면서 바람이 세게 붑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바람 따라 나무가 휘청휘청 흔들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불고 나면 오월에 핀 꽃은 잎이 많이 떨어져요. 비를 맞고 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또 비바람 따라 들딸기알이 툭툭 떨어지기도 합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습니다. 비가 내리는 시골길을 우산을 받고 거닙니다. 곳곳에서 흙물이 흐릅니다. 가는 비가 내리든 굵은 비가 내리든, 요즈음은 어느 시골에서나 흙물이 흐릅니다. 비가 여러 날 내리고 난 뒤 마을 논밭을 보면, 어느 밭자락은 흙이 많이 쓸려서 갈라지기까지 합니다. 해마다 적잖은 시골집에서 흙을 사다가 논밭에 붓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 봄을 맞이해서 씨앗을 뿌릴 즈음, 참말 여느 시골 논밭은 흙이 메말라요. 비료와 농약으로 고단하게 한 해를 보냈으니 흙이 메마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모든 곳에서 흙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지 않는 땅에서만 흙물이 흐릅니다. 이를테면, 고추와 마늘만 심고는 다른 풀은 한 포기도 못 자라도록 다 뽑거나 약을 쳐서 죽이는 논밭에서는 어김없이 흙물이 흐릅니다. 논둑에 아무 풀이 없도록 다 깎거나 태우거나 농약을 뿌려 없앤 곳에서도 반드시 흙물이 흘러 논둑이 무너집니다. 이와 달리, 여느 풀이 옹기종기 자라는 곳에서는 흙물이 덜 흐르거나 안 흐릅니다. 참말, 풀이 수북하게 자란 곳에서는 빗물이 고이기는 하더라도 흙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풀이 흙을 단단하게 붙잡으니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오진령 님 사진책 《짓》(이안북스,2014)을 가만히 읽습니다. 어느덧 한 달 째 책상맡에 놓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사진책 《짓》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오진령 님은 사진책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웃는다. 살며 웃고, 사랑하며 웃고, 감사하며 웃고, 행복하며 웃고, 기쁨에 웃고, 슬픔에 웃으며, 울다가 웃고, 헤어질 때 웃고, 머쓱해서 웃고, 주고받으며 웃고, 절망에 웃고, 실패하여 웃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즐거울 때에 웃고, 슬플 때에 웃습니다. 즐겁게 울다가 때때로 웃고, 슬프게 울다가 다시금 웃어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에 담은 모습은 웃음일까요 눈물일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웃을까요 울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은 웃는가요 우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빛을 사진으로 찍어서 이웃한테 보여주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어떤 노래를 사진으로 담아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려는 생각인가요.


  오진령 님은 “절규하며 웃고, 진심을 담아 웃고, 진실을 감추며 웃으며, 웃기 위해 웃고,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 웃는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밥을 차리면서 웃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웃습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웃습니다. 아이를 안으면서 웃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서 웃습니다. 책을 읽다가 웃습니다. 영화나 만화를 보면서 웃습니다.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웃어요. 버스를 탈 적에 웃고, 기차에서 내리면서 웃습니다.


  가만히 보면 삶은 웃음입니다. 맛난 밥을 먹으면서 웃습니다. 참 맛없는 밥을 먹다가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잘 끓인 미역국을 먹으면서 웃습니다. 엉성하게 끓여 엉성한 미역국을 먹다가 하하 웃습니다.


  맛있게 지은 밥이라면 다음에도 맛있게 지어서 먹으면 즐거워요. 맛없게 지은 밥이라면 다음에는 맛있게 지어서 먹자고 생각하며 즐겁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리면 안 넘어졌으니 즐겁습니다. 자꾸 넘어지다가 무릎이 깨지면 아파서 쩔뚝거리면서도 다음에는 안 넘어지고 잘 뛰놀자고 하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책 《짓》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이야기를 가만히 비추는 빛일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책 《짓》을 빚은 오진령 님은 이녁 이웃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이와 같은 빛을 이루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진령 님은 “얼굴, 그 헐벗은 곳에서, 마치 인생을 대변하듯, 주름진 굴곡들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날리면서, 견디고, 차갑고 강한 바람, 뜨거운 태양 아래 눈물, 콧물, 그리고, 땀, 반복하여 호흡한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하, 그렇지요.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하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숨을 쉬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흘리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햇볕이 뜨겁다고 느끼는 여름에 사진을 찍습니다. 햇볕이 따스하다고 느끼는 겨울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찍습니다. 사진은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사진을 못 찍을 날은 없습니다. 사진을 못 찍을 곳은 없습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빚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웃고 울며 노래하기에 사진을 찍어요.


  오진령 님이 사진에 담아서 보여주는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한 사람이 웃는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웃음, 현재의 웃음이 아닌 웃음, 이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은 그런 웃음, 생의 터널 밖을 향한 소멸의 순간에 웃음, 시간이 멈추어 버린 호흡하지 않는 웃음을 본다.”와 같은 이야기처럼, 웃음은 어제와 오늘을 이어 모레와 글피로 나아갑니다. 삶은 어제와 오늘을 지나 모레와 글피로 뻗습니다.






  빗소리가 굵습니다. 굵은 빗소리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잠깁니다. 어쩌면, 개구리는 이 굵은 빗줄기에 가만히 쉴는지 몰라요. 개구리도 빗소리를 듣느라 노래를 안 부를는지 몰라요. 어서 비가 그쳐서 저희 노래를 들과 숲에 가득 퍼뜨리고 싶을는지 모릅니다.


  옛날이라면, 이 비를 맞고 떨어진 꽃잎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옛날이라면, 이 비가 내리는 오월에 헌 잎을 떨구는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잎사귀는 흙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나 오늘날은 이 비를 맞고 떨어지는 꽃잎이나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꽃잎도 나뭇잎도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바닥에서 구릅니다. 갈 곳이 없어 헤맵니다. 따로 청소 일꾼이 있어야 잎사귀를 쓸어서 쓰레기봉투에 담습니다. 잎이 흙이 아닌 쓰레기봉투로 들어가면서 나무 둘레가 허전해요. 흙에 제 빛을 잃습니다.


  그러면, 제 빛을 잃는 흙을 알아보는 오늘날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제 빛이 사라진 흙과 풀과 나무를 알아차리는 오늘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제 빛을 잃는 흙을 이야기하는 교과서나 책이나 매체는 얼마나 있을까요. 제 빛이 사라지는 흙과 풀과 나무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오진령 님은 “그들이 누구이고 왜 웃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웃음은 웃음으로, 영원한 순간이 되도록.” 하고 이야기합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사진을 찍을 뿐이라 합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찍고, 웃음은 웃음으로 나눕니다. 노래는 노래로 찍으며, 노래는 노래로 나누어요.


  사랑은 사랑으로 받습니다. 눈물은 눈물로 받습니다. 바람이 맑게 불면 내 몸과 마음도 맑습니다. 바람이 차디차게 불면 내 몸과 마음도 차디찹니다.


  노래하고 사랑하는 사진이 되는 길이라면, 노래하고 사랑하는 삶이 되는 길이리라 느껴요. 웃고 꿈꾸는 사진이 되는 길이라면, 웃고 꿈꾸는 삶이 되는 길이리라 느껴요. 바라보는 대로 삶을 짓고, 바라보는 대로 짓는 삶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태어납니다. 마주하는 대로 삶을 이루고, 마주하는 대로 이루는 삶이 차곡차곡 사진으로 거듭납니다. 삶짓이 그대로 사진짓입니다. 사랑짓이 그대로 사진짓입니다. 말짓과 몸짓과 꿈짓이 그대로 사진짓입니다. 하늘을 우러르듯이, 숨을 쉬듯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듯이, 사진은 우리 삶을 살뜰히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4347.5.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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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김야원 사진 / 이담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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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0



골목집에 깃든 사람 손길을

― HUMAN(휴먼)

 김야원 사진

 이담북스 펴냄, 2014.4.22.



  골목집은 골목에 있는 집입니다. 골목에 있는 집은 서로 담을 맞댑니다. 담이 없이 집만 지었으면 서로 마당을 나눕니다. 담이 있어도 까치발로 서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터에 작게 지은 골목집이기에 담을 높이면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지 않습니다. 바람을 알맞게 막고 햇볕을 살뜰히 받아들일 만한 높이로 담을 세웁니다. 길손이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을 만한 높이로 담을 올리고, 집안에서 바깥을 살짝 내다볼 만한 높이로 담을 쌓습니다.


  나중에 층을 올리기는 하지만, 골목집은 으레 한 층으로 짓습니다. 서로 한 층 높이로 어우러지면서, 여름에도 겨울에도 햇볕을 나누어 누립니다. 햇볕을 더 누리거나 덜 누리지 않습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나눕니다. 작은 사람들은 작은 사랑을 작은 손길로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골목집 어디나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기에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쪽에 꽃그릇을 놓거나 나무를 심거나 꽃밭이나 텃밭을 꾸밉니다. 흙 한 줌을 알뜰히 가꾸고, 풀 한 포기를 살뜰히 건사합니다. 버려도 될 만한 흙은 없으며, 없어도 될 만한 풀은 없습니다. 모든 흙은 모든 풀과 나무를 살리면서 사람을 살립니다. 모든 풀과 나무는 모든 바람과 빗물을 살리면서 사람을 살려요.





  자동차 드나드는 큰길은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싱싱 달리는 큰길은 바람이 매섭습니다. 이와 달리 골목 안쪽은 조용합니다. 높다란 집이 없는데 골목 안쪽은 호젓해요. 골목 안쪽은 바람이 매섭지 않습니다. 작은 집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옹크리니, 매서운 바람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서로서로 등을 기대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포근한 볕을 함께 받습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다가 사라졌다는 덕천마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엮은 《HUMAN(휴먼)》(이담북스,2014)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은 김야원 님은 머리말에서 “그분들의 흔적 속에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살아온 모습이 깃든 골목동네요, 살아갈 모습이 드러나는 골목집입니다. 비록 철거를 앞두거나 벌써 철거된 집이나 골목이라 하더라도, 그동안 정갈하며 조용하게 지내던 빛이 환합니다. 대문과 담이 빛이 바랬다지만 무척 깨끗합니다. 창틀은 얼마나 가지런한지요. 집안과 마당은 얼마나 깔끔한지요. 해가 드는 곳에 줄을 드리어 빨래를 넙니다. 빨래를 너는 곁에 꽃그릇이 앙증맞게 있습니다. 흐트러짐이 없고 쓰레기가 구르지 않습니다. 어지러움이 없으며 작은 새가 찾아들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아파트를 새로 지으면 작은 새가 찾아들지 못합니다. 아파트에 꾸미는 꽃밭에는 아파트 지킴이가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립니다. 새도 벌레가 아파트 꽃밭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에 살구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었어도 꽃만 멀찍이 떨어져 구경할 뿐, 손으로 만지가 무섭습니다. 겉보기로는 놀이터가 있고 꽃밭과 나무가 있는 아파트이지만, 속으로 보면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고, 골바람이 높은 층집 사이로 매섭게 붑니다. 그늘진 자리는 겨울에 더 춥고, 볕이 드는 자리는 여름에 더 덥습니다. 층집마다 빼곡한 에어컨에서 후끈후끈 더운 김이 쏟아집니다.





  사진을 찍은 김야원 님은 “무너뜨리기 위해 포장을 칠 때는 마치 염을 하는 모습같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의 풍화가 만들어 낸 색감을 누가 감히 흉내낼 수 있을까요?”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골목집을 허물려고 커다란 천을 씌워서 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버릇없는 꼴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무지 골목집을 아끼지 않습니다. 도무지 골목동네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당탕탕 때려부수어야 하는가요. 그처럼 마구잡이로 허물어야 하는가요.


  중국에서는 집을 허물 때에 벽돌 하나하나 알뜰히 건사합니다. 다만, 이제 중국도 벽돌을 건사해서 다시 쓰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우리도 지난날에는 골목집을 허물 적에 와장창 때려부수지 않았어요. 벽돌 하나 기둥 하나 살뜰히 뜯어서 새 집을 지을 적에 되살려 썼습니다. 창틀이나 대문을 버리는 일이 없어요. 물건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오래 빈집으로 있다가 스스로 무너진 집이 있으면, 이웃집에서 돌과 쓰레기를 찬찬히 골라서 텃밭으로 가꿉니다. 골목집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정갈한 밭이 되어요. 게다가 쓰레기라고 하는 것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아니, 쓰레기라 할 것 없이 모두 알뜰히 되쓰지요.


  사진책 《HUMAN(휴먼)》은 무엇을 보여주는 사진을 담았을까요. 김야원 님은 “부서지고 파괴되는 모습 속에서 장려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열심히 살아온 그곳의 사람들 때문이지,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진다는 꿈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부서지거나 허물어지면서 사라지는 마지막 자취를 남기려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사진을 찍는 뜻도 틀림없이 있고, 이러한 사진도 얼마든지 찍을 만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내 마음 한켠이 쓰립니다. 왜 김야원 님은 이런 모습만 찍었을까요. 왜 김야원 님은 텅 빈 골목동네에서 더 짙거나 깊은 사람내음과 살내음을 마주하지 못할까요. 왜 김야원 님은 아직 텅 비지 않은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꽃을 가꾸고 풀을 뜯으며 빨래를 널고 밥을 짓는 작은 사람들 살림살이와 이야기를 더 가까이에서 만나지 못할까요.


  하얗게 맑은 구름과 파랗게 밝은 하늘이랑 골목집 빨래는 눈부신 무지개빛입니다. 살랑이는 바람과 한들거리는 작은 꽃송이와 골목집 창문은 아름다운 무지개빛입니다. 손으로 새긴 문패와 주소패는 집집마다 다른 문살과 창틀 무늬와 어우러지는 무지개빛입니다.


  빛을 보려는 사람은 빛을 봅니다. 꿈을 보려는 사람은 꿈을 봅니다. 이야기를 보려는 사람은 이야기를 봅니다.





  아파트에서 사진을 찍건 골목동네에서 사진을 찍건 아주 마땅히 사람이 나와요. 사람 그림자가 없어도 사람이 나옵니다. 다만, 사람이 나오는 사진이지만, 어떤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 사진인가를 잘 읽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HUMAN(휴먼)》에 추천글을 쓴 박동욱 님은 “칼바람이 부는 겨울과 뜨거운 여름에 악취가 진동하고 옷 속을 파고드는 모기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 속에서 현장을 기록하고 그들의 삶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게 한 힘은 그의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심장과 미래를 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추천글을 읽다가 적잖이 소름이 돋았습니다. ‘악취가 진동’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살 적에는 쓰레기 하나 구르지 않았을 테지만, 사람들이 모두 떠나 빈 동네에는 술병과 쓰레기와 똥오줌이 구르기 마련이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를 테지요. 그러면, 이런 고약한 냄새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왜 생겼을까요. 이런 냄새는 골목사람 냄새인가요, 누구 냄새인가요. 사진책 《HUMAN(휴먼)》은 ‘악취가 진동’하고 ‘파고드는 모기’를 뚫고 이룬 멋진 기록물인지요?


  즐겁게 누린 골목마실이 아니라면 즐겁게 나눌 골목빛 감도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고약하고 힘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남긴 기록물이라면 ‘기록하는 값’은 될는지 모르나,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그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사진책 《HUMAN(휴먼)》은 어떤 사진일는지요? 추천글과 같은 사진일는지요, 아니면, 참말 덕천마을에서 ‘마을살이’를 가꾸던 사람들이 애틋하게 떠올리면서 가슴으로 부를 사랑노래를 담은 이야기꾸러미일는지요? 골목집에 깃든 사람들 손길을 읽는 사진이 되기를 빕니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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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5 - Vol.6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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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4



사진이 찾아와서 빛이 될 때

― 사진잡지 《포토닷》 6호

 포토닷 펴냄, 2014.5.1.



  밥을 먹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 손빛이 곱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실을 다니면서 사진기를 목에 겁니다. 내 손은 둘이니 왼손에 큰아이를 잡고 오른손에 작은아이를 잡습니다. 사진기를 목에 걸지 않으면 사진기를 갖고 다닐 수 없으며, 사진기를 목에 걸어야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뛰노는 모습을 그때그때 찍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탈 적에도 사진기를 목에 겁니다. 두 아이를 뒤에 태운 자전거를 달리자면 허벅지가 터질 듯합니다. 그렇지만 하루 달리고 한 해 달리며 서너 해 예닐곱 해 꾸준히 달리는 동안 허벅지 힘살이 새로 붙습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할 수 있도록 기운이 늡니다. 이동안 우리들이 지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틈틈이 건사하고 싶어 한손으로는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쥐어 찰칵 누릅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면 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한테 오기 앞서 나는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렸어요. 자전거를 몰아 신문을 돌릴 적에 늘 한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손으로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꺼내 허벅지에 대고 탁탁 튕기면서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은 뒤 살며시 잡아서 골목집 대문 안쪽으로 휙 던집니다. 어쩌면 나는 ‘사진을 하나도 모르던 지난날’부터 ‘오늘 사진을 즐겁게 잘 찍는’ 훈련을 한 셈인지 모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6호를 읽습니다. 다달이 나오는 사진잡지가 반갑습니다. 요즈음은 전자책으로 나오는 사진잡지가 여럿 있습니다. 종이책을 받아보는 ‘사진 즐김이’가 퍽 적기에, 돈이 안 된다 하거든요. 이달에도 야무지게 나온 《포토닷》을 펼치니, 첫 이야기는 ‘세월호 사고’를 다룹니다. “현장에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국가와 ‘기레기(기자 쓰레기)’다 … 기레기라는 말은 여기서 출발한다. 자신들의 사정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혀 봐야 언론화 되지도 않고 도리어 정부 방침을 홍보하는 전도된 증거로서 기능한다. 사진에 찍혀 봤다 선동하는 불순 외부세력 또는 종북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이다(18∼19쪽/이상엽).” 아, 그 ‘기레기’가 이런 뜻이었군요.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흔히 쓰기에 ‘기러기’라는 새를 엉뚱하게 부르는 이름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신문도 방송도 안 보다 보니 이런 말을 영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그렇습니다.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는 왜 꾸밈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할까요. 신문 지면이 좁을까요. 방송으로 내보내기에는 너무 길까요. 신문 지면이 좁다면 정치꾼 이야기와 스포츠 소식과 주식시세표를 없애면 되리라 느껴요. 우리들 이야기를 싣도록 해야지요. 경제 정책이나 무역 이야기도 덜고, 자동차 광고와 새 손전화 광고도 던 뒤, 신문에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야지요.


  세월호 사고 이야기는 앞으로도 신문과 방송에 넘치도록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신문과 방송에 어떤 이야기가 넘치도록 나올까요. 참과 거짓을 밝히는 이야기가 나올까요. 대통령이 국무위원 앞에서만 넌지시 ‘사과 발표’를 한다는 이야기를 다룰까요.





  ㅈㅈㄷ으로 일컫는 신문 가운데 ‘중앙일보’에서 일하는 박종근 기자가 찍은 사진을 다루는 글을 읽습니다. 박종근 님은 취재현장에서 ‘취재를 받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사진으로 찍히는가’를 재미나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박종근은 이 작업을 통해 먼저 신문에 나온 사진과 실제 촬영현장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현실을 비꼬는 듯 드러낸다(35쪽/김소윤).” 신문에 나오는 사진과 현장 모습은 다르다는군요. 그러면, 신문에 나오는 글과 현장 이야기는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신문으로 사람들한테 알리거나 보여주는 이야기는 얼마나 ‘제대로 꾸밈없이 올바르고 알맞게’ 알리거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가요. 박종근 님이 재미난 사진을 찍는 일은 틀림없이 재미나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슬픕니다. 왜 재미난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신문에 참모습을 싣지 못할까요. 왜 신문은 참된 이야기를 다루려 하지 않을까요. 왜 사람들은 참모습을 안 싣는 신문을 읽을까요. 왜 사람들은 참된 이야기를 안 다루는 신문에 얽매인 채 살아갈까요.


  사진을 찍는 김미루 님이 김용옥 님 딸인 줄 처음 깨닫습니다. 《포토닷》에서 김미루 님 사진을 다루면서 이런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모르는 채 지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미루는 김미루이고 김용옥은 김용옥인데, 굳이 두 사람 사이를 밝혀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르다. 사막의 모습뿐만 아니라 낙타도 다르고 문화도 많이 다르다. 작업의 깊이를 위해 여러 곳을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얀 사막도 있고 하얀 낙타도 있다. 그리고 낙타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71, 73쪽/김미루).”


  곰곰이 생각하면, 김미루는 김미루이지만 김용옥과 살아온 나날이 있는 김미루이기도 합니다. 더 넓게 헤아리면 김미루이든 김용옥이든, 또 대통령 아무개이든 저무개이든,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로 살던 이웃이요 동무이며 살붙이입니다.





  남이란 없습니다. 서로 똑같은 ‘나’이고, 나한테서 너를 읽으며 너한테서 나를 읽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에서 너를 읽고, 네가 찍는 사진에서 나를 읽습니다.


  오진령 님이 열 해만에 새로운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2004년에 《곡마단 사람들》을 선보였고, 2014년에 《짓》을 선보입니다. “사진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때라 사진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을 의식하지 않고 찍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기자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서커스에 대한 애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열일곱 나에게 서커스는 판타지였고 소우주였다 … 내가 걸어온 길은 변함없고 작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다 … 하루 넘게 운전해서 찾아간 곳을 되돌아오길 몇 번 되풀이하면서 카메라를 내리고 자연을 바라보게 되었다(96, 101쪽/오진령).” 사진이 우리한테 찾아와서 빛이 됩니다. 사진이 우리 마음에 깃들면서 별빛이 됩니다. 사진이 우리 눈을 간질이면서 햇빛이 됩니다. 사진이 사랑을 북돋우며 꽃빛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찍는 정물, 인물, 패션 사진 모두 컬러가 어둡고 밝음을 떠나 그 안에는 맑은 ‘나’가 들어가 있다(112쪽/어상선).”와 같은 이야기처럼, 어느 사진에서든 우리들은 또 다른 내 모습을 읽습니다. 꽃을 바라보면서 꽃이 참 곱구나 하고 느끼기도 하고, 이 꽃과 같이 나도 고운 삶으로 사랑을 하면 참 즐겁겠구나 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빛이 되는 사진은 나한테도 너한테도 빛이 돼요. 빛이 되는 사진은 우리 삶을 밝히는 숨결이 돼요. 빛이 되는 사진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활짝 여는 노래가 돼요. “꽃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정확하게 묘사만 해도 충분히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꽃 사진은 살아 있는 생물이 그 대상입니다 … 생명에 대한 애정 없이는 좋은 꽃 사진을 얻을 수 없는 자명한 이유입니다(132쪽/김병권).” 사람도 ‘산 목숨’입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도 꽃을 찍듯이 ‘살아서 움직이는 목숨’을 찍는 줄 느껴야 합니다. 느끼지 못하면 ‘느낌이 없는’ 사진만 찍어요. 느끼면 ‘느낌이 있는’ 사진을 찍어, 이웃 마음을 건드리겠지요. ‘감동을 빚’겠지요.


  이상엽 님이 진주 팽목항을 다녀오며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첫머리를 여는 《포토닷》은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기자 아닌 기레기라는 이들은 ‘취재원’을 ‘꽃’처럼 여기지 못했습니다. 꽃과 같은 ‘산 목숨’인 줄 느낄 때에 ‘취재원’이 아닌 ‘이웃’을 만나면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쓸 수 있어요. 죽은 사람도 아픈 사람도 슬픈 사람도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바로 나’인 줄 깨달아야, 비로소 사진기 단추를 눌러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신문사 사진기자가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볼 적에 똑같은 눈길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하고, 어느 한 사람을 안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 어느 한 사람을 취재하는 기자가 둘 있을 적에, 어느 한 사람을 잘 아는 쪽하고 잘 모르는 쪽은 서로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144쪽/최종규)?” 사랑을 아는 기자와 사랑을 모르는 기자가 똑같이 진주 팽목항에 간다면 저마다 어떤 사진을 찍을까 궁금합니다. 서로를 이웃으로 느끼는 기자와 서로를 이웃으로 안 느끼는 기자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취재한다면 저마다 어떤 기사를 쓸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빛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어둠으로 드리울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빛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한테 어둠으로 손목을 죄거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무엇입니까? 사진으로 무엇을 읽습니까? 사진으로 무엇을 찍습니까?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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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임응식 -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예술가 이야기 3
권태균 지음 / 나무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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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잡지 <포토닷> 2014년 5월에 싣는 글입니다.

어제 <포토닷>이 나왔기에

비로소 이 글을 걸칩니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8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

―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권태균 글

 임응식 사진

 나무숲 펴냄, 2006.9.28.



  사진은 으레 ‘꾸밈없이 찍어 참모습을 밝힌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진은 ‘거짓을 찍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숨김없이 찍고 남김없이 찍는 사진이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은 맞지 않습니다. 사진은 ‘찍는 일’이지 ‘참을 찍­는다’거나 ‘거짓을 밝힌다’거나 ‘참을 못 찍는다’거나 ‘거짓을 찍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참을 밝히는 글(붓)’이라고 얘기했어요. 꾸밈없이 써서 참모습을 밝히는 글(붓)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글은 언제나 꾸밈없이 쓰면서 우리 누리에 깃든 참모습뿐 아니라 감춰진 모습까지 밝힌다고 할 만할까요.


  아마 누군가는 거짓을 쓰기도 하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거짓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겠지요. 꾸민 글이 있고 꾸민 사진이 있습니다. 감추는 글이 있고 감추는 사진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매체일까 생각해 봅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올바르게 보도를 하는 매체일까요. ㄱ신문을 읽는 사람은 ㄱ신문이 올바르게 보도한다고 여기겠지요. ㄴ신문을 읽는 사람은 ㄴ신문이 올바르게 보도한다고 여기겠지요. 신문을 놓고 ‘좌 편향 우 편향’이라 나누기도 하고 ‘보수신문 진보신문’이라 가르기도 하는데, 이런 잣대는 얼마나 올바르거나 알맞을는지 궁금합니다. 신문은 ‘새로운 소식을 담는 매체’일 뿐이지 싶습니다. ㄱ신문이건 ㄴ신문이건 다 다른 사람이 일하는 곳이니, 다 다른 눈길로 ‘새소식을 기사로 다룰’ 뿐이지 싶습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볼 적에 똑같은 눈길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하고, 어느 한 사람을 안 좋아할 적에 찍는 보도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 어느 한 사람을 취재하는 기자가 둘 있을 적에, 어느 한 사람을 잘 아는 쪽하고 잘 모르는 쪽은 서로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느티나무에도 꽃이 핍니다. 느티꽃은 아주 작습니다. 이십 미터나 삼십 미터까지 우람하게 자라는 느티나무인데, 느티꽃은 아기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습니다. 갓난쟁이 코딱지보다도 작다 할 만한 느티꽃입니다. 그런데, 느티나무에 꽃이 피는 줄 알아채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느티꽃을 두 눈으로 본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느티나무 한 그루를 사진으로 찍는 자리에서, 느티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저마다 찍는 사진은 어떤 빛과 느낌이 될까요? 느티꽃을 잘 아는 사람이 찍는 사진과 느티꽃을 잘 모르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를까요? 느티꽃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이 ‘느티나무 찍은 사진’을 바라볼 적에 이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얼마나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 훗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어서도 임응식은 그날 사진관에서 겪었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사진사 할아버지의 눈빛이었습니다. 사진기 앞에 선 노인의 눈빛은 아주 엄숙하고 경건했지요 … 임응식은 행크 워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가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충격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  (8, 23쪽)



  권태균 님이 쓴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나무숲,2006)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무숲’이라는 출판사는 어린이책을 펴내고, 이곳에서는 ‘삶을 그림으로 빚은 사람’ 이야기를 엮습니다. 나무숲 출판사에서 펴낸 책 가운데 ‘삶을 사진으로 빚은 사람’ 이야기는 오직 하나, 임응식 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에서 ‘사진길 걸어온 사람’ 이야기는 매우 드뭅니다. 어린이책을 두루 살피면, 임응식 님과 최민식 님 꼭 두 사람 이야기만 있습니다. 그만큼 두 어른이 한국 사진밭에서 큰 빛이 되었다 할 만하고, 그만큼 ‘위인전에서 사진가를 안 다루거나 못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을 그린 분들 이야기는 어린이책으로 꽤 많이 나옵니다. 사진을 찍은 분들 이야기는 어린이책으로 거의 태어나지 못합니다. 한국 사진가뿐 아니라 외국 사진가 이야기도 어린이책으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다큐사진을 찍든 보도사진을 찍든 예술사진을 찍든 패션사진을 찍든, 그러니까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가 이야기’는 좀처럼 어린이책으로 나오지 못해요.


  사진가는 아이들한테 보여줄 만한 ‘어른’이나 ‘직업인’이 못 되기 때문일까요. 사진가가 걷는 길은 아이들한테 보여주거나 아이들 손을 잡고 이끌 만한 길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 임응식은 용감하게 촬영을 다녔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빼앗는 통제에 대항한 거지요. 일본 헌병들은 그런 임응식을 따라다니며 감시했고 유치장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 임응식이 태어나고 자란 부산은 지금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곳입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눈 덮인 세상을 대하니 뱃멀미 따위는 씻은 듯이 사라졌지요. 퍼붓는 눈을 맞으며 임응식의 눈과 가슴은 시원하게 열렸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든 임응식은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  (15, 17쪽)





  어린이가 읽을 만한 사진비평을 쓰는 어른이 없습니다. 어린이가 함께 즐길 만한 사진 이야기를 쓰는 어른이 없습니다.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사진빛과 사진삶과 사진길을 책으로 엮는 일도 아직 없습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직업인’이기도 하지만, ‘취미로 사진을 노래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직업을 떠나 한길을 파는 이슬떨이’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누가 찍을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요. 사진은 어느 나이에 이른 뒤에 찍을까요. 사진은 어떤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 찍는가요.


  전문과정을 밟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다가 전문과정을 밟을 수 있고 유학도 다녀올 수 있어요. 어떤 스승한테서 배워야 하거나 책을 많이 파야 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즐기고 노래하면서 찍는 사진이요, 스스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진입니다.



.. 아름다운 창덕궁의 단풍 아래 끝없이 늘어선 핏빛 시체를 보며 임응식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쟁으로 벌어진 끔찍한 상처를 눈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상처를 향해 또 한 번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임응식에게 기록사진가로의 변신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서 남겨야 한다’는 임무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임응식은 냉정해야 하는 사진가의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 임응식은 사진 전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의 기록을 통해 진실과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24, 31쪽)





  아이들은 글쓰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그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진찍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 아이들 손에 들어가기 앞서, 여느 손전화였을 적에도 아이들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찍는 사진에 눈길을 보내는 어른이 없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찍는 수많은 사진을 눈여겨보거나 비평하는 어른이 없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아이들한테 사진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어른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를 놓고 여러모로 많이 배웁니다. 아이들은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를 배울 자리가 무척 넓고, 학원강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여느 어버이가 아이한테 글쓰기와 한글 익히기와 그림그리기를 이끕니다. 그러면, 여느 집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사진찍기와 사진읽기를 이끌까요? 이끌 수 있을까요? 이끌려는 마음이 있을까요?



.. 임응식은 건축사진을 독자적인 예술사진의 하나로 다루었습니다. 건물의 형태를 똑같이 담아내는 틀에서 벗어나, 건물이 가진 세밀한 표정과 이야기를 찾아내 건축사진의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 지금은 누구나 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하지만, 임응식이 활동하던 시절 우리나라 문화계는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57, 63쪽)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사진을 곁에 두면서 사랑하고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릴 적부터 제 둘레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빛을 고운 손길로 착하게 사진으로 담는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권태균 님이 쓴 《사진가 임응식,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는 ‘사진은 무엇을 찍는가’라는 대목을 어린이 눈높이로 들려주려고 첫발을 내딛은 책이라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너희도 우리(어른)와 함께 사진을 즐기면서 사진빛을 노래하지 않겠니?’ 하고 따사롭게 건네는 이야기까지 뻗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꾼 아름다운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두루 읽으면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돌봅니다. 아이들이 즐길 아름답고 멋있으며 살가운 사진책이 이제부터 하나씩 둘씩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아주 좋겠습니다. 사진길 걷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어른들이 ‘어린이가 함께 읽고 즐기며 나누는 사진책’을 알뜰히 일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은 삶과 사랑과 꿈을 찍습니다.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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