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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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7



사진을 밝히는 재미

―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글·사진

 이른아침 펴냄, 2008.11.29.



  찍어야 할 삶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는 이상엽 님이 선보였던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이른아침,2008)을 읽습니다. 이상엽 님은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때에 “하나같이 아름답고 재기발랄한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그 온전한 형식보다 뭔가 부족한 내용에 마음이 걸렸습니다(7쪽).” 하고 느꼈다고 해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온전한 형식”이지만 “부족한 내용”이 있다고 느꼈을까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지는 않을까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다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못 쓰지 않나 싶어요. 사진이 아닌 그림도 이와 같거든요. 붓놀림이 대단하다기에 그림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화가가 그렸대서 그림이라 하지 않아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그림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노래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가 춤출 때에 글입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남의 사진을 인정해야 내 사진도 인정받는다(15쪽).” 하고 말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수 있어야, 내 사진을 나 스스로 ‘읽을’ 뿐 아니라,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느껴요.


  사진은 남한테서 ‘인정을 받으려’고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나 스스로 ‘읽’고, 내 이웃하고 함께 ‘읽’고 싶어서 찍습니다. 읽히려는 뜻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나누려는 뜻에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속에 이야기를 담으면서 제대로 읽히도록 하자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이상엽 님은 “틈날 때마다 그 장면을 연상하고, 어떻게 찍을지 고민한다(17쪽).” 하고 말합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늘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기에, 눈앞에서 ‘내가 마음으로 그린 모습’을 마주했을 때에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찰칵 하고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합니다. ‘글을 쓰’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사랑을 하’거나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속에 삶을 그려야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는 삶이 없으면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해요.


  사진과 삶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사진과 삶은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하다’, ‘아름답다’ 등의 느낌은 사진이 단순했을 때 가장 빠르게 파악된다(27쪽).”와 같은 말처럼, 삶에서 우리가 느긋하거나 넉넉하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느낄 때를 헤아리면 사진을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우리 삶은 언제 넉넉한가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삶을 가만히 살필 때에 사진을 환하게 알아챕니다. 이론을 배워야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알아야 찍는 사진입니다. 지식을 익혀야 잘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할 때에 사랑스럽게 찍는 사진입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사진을 빛냅니다. 이리하여, “나는 사진이 자연 환경의 파괴를 막는 도구가 되길 원한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31쪽).”처럼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삶을 밝히는 새로운 빛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아무런 새 빛을 빚지 못해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총칼을 앞세워 전쟁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주먹질과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온갖 따돌림과 푸대접 따위로 사회를 비트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이들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요? 이들이 찍은 것은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베이징을 짧게 보고 가는 외국인들에게는 자금성과 천안문만 보이겠지만 진정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적 풍취를 느끼고 싶다면 후통을 들러 볼 일이다(7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치는 사람은 스칠 뿐입니다. 머무는 사람은 머물 뿐입니다. 바라보려는 사람은 바라봅니다. 느끼려는 사람은 느낍니다.


  천안문은 무엇일까요? 천안문은 천안문일 뿐입니다. 천안문은 중국 역사가 아니라, 그저 천안문입니다. 그러면 중국 역사는 무엇일까요? 중국 역사는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을 보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일 때에 실마리를 쉽게 찾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때에 실마리를 바로 찾습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은 무엇일까요? 경복궁은 무엇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이 한국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지요. 남대문은 남대문이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도 아니고 문화도 아닙니다. 그저 이런 것들일 뿐입니다. 한국 역사란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이란 무엇일까요? 정치권력자 이름은 삶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자가 전쟁무기를 만들어 벌인 땅뺏기는 삶이 아니요 역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구면서 가꾼 하루가 삶이요, 이러한 삶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책에 없습니다. 역사는 늘 우리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내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내 삶을 읽으면서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여러 사진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짤막하게 몇 마디 주고받은 이야기를 곁들여 ‘사진빛’을 보여줍니다. “강재훈의 사진 인생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은 마음속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이지 꼭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인이고 그것을 잊어 본 적도 없다(213쪽).”와 같은 이야기는 강재훈이라는 분이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이면서, 이상엽이라는 분이 스스로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이상엽 님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이상엽 님입니다. 이야기와 돈, 이 두 가지를 늘 돌아보면서 하루를 일구는 이상엽 님입니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은 “지친 몸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한산한 해변이나 호젓한 숲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드는 건 어떨까? 멋지지 않는가(310쪽)?”와 같은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네, 이 말이 맞습니다. 멋집니다. 바닷가나 숲속에서 읽는 책은 무척 멋집니다. 참말 이렇게 해 보셔요. 바다에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어마어마하게 잘 읽힙니다. 숲으로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엄청나게 잘 읽힙니다.


  책에 마음을 쏟아 잘 읽는 분은 서울 한복판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잘 읽습니다. 종로나 압구정동 시끌벅적한 길거리에서도 책을 얼마든지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닷가나 숲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모입니다. 바닷가나 숲에서는 우리 둘레에 있는 바람과 나무와 풀과 흙과 물이 우리 몸을 가볍게 건드리면서 싱그럽게 어루만집니다. 이동안 우리들은 티없는 넋이 될 수 있고, 티없는 넋이 되면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알뜰히 받아먹을 수 있어요.


  바다나 숲이나 멧골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은 까닭을 알 만해요. 아름다운 바다나 숲이나 멧골에서는 나 스스로 그야말로 ‘나다움’, 곧 ‘사람다움’, 그러니까 ‘빛다움’을 깨닫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재미를 맛봅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요? 그러면 숲으로 가셔요. 숲에 가서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인 뒤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그리고, 숲을 떠나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서는, 내 보금자리 둘레에서 내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두근거리게 하는 아름다운 것을 살펴보셔요. 아름다운 것을 느낄 때에 이야기가 자라고, 이야기가 자랄 때에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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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6 - Vol.7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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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5


사진은 누구 곁에 있는가
― 사진잡지 《포토닷》 7호
 포토닷 펴냄, 2014.6.1.


  사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 곁에 없은 적이 없습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찍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찍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찍든 정물을 찍든, 또는 사진기라는 기계나 필름과 인화지라는 종이만으로 그림을 앉히든, 나 스스로 이곳에서 살기 때문에 ‘사진을 얻’습니다. 오늘 이곳에 없다면 ‘사진을 얻지 못’합니다. 실험실이나 사진관이나 현상실에서 종이와 그림을 만지작거린다 하더라도, 이 모든 곳은 지구별에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엮어서 ‘사진을 만들’더라도 우리 스스로 이곳에서 숨을 쉬고 살아야 합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7호를 봅니다. 만드는 사진을 하는 오혜리 님은 “너무나 익숙하고 사소한 일상의 부분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진정한 삶의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더 이상 관심 갖지 않는 사물들을 재조립하고 변형시켜 시각적인 충격을 줌으로써 삶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오혜리/3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찍는’ 사진도 ‘만드는’ 사진도 언제나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삶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찍’거나 ‘만들’거나 사진으로 담습니다.

  삶에서 느끼지 않으면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느끼지 않으면 노래로 부를 수 없어요. 삶에서 느끼지 않는데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도, 노래나 춤도, 늘 삶으로 느끼기에 나타냅니다.






  사진학과 교수인 이경홍 님은 “사진 전공에서 예술로서의 사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유명한 전통 건축물을 사진가들에게 많이 찍어 두게 한다. 그것이 그 나라의 문화와 이미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큐멘터리는 삶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 사진에서도 원칙을 지키면 디테일이 살아나고, 그 디테일이 창조의 토대가 된다 … 작품보다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이고, 사진은 삶으로부터 와야 한다(이경홍/87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경홍 님이 말하는 그대로, ‘어떤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먼저 ‘삶’을 보는 눈을 익혀야 합니다. 내 삶을 보고 네 삶을 봅니다. 우리 삶을 봅니다. 사람이 누리는 삶을 보고, 풀과 나무가 누리는 삶을 봅니다. 짐승과 새와 벌레가 누리는 삶을 봅니다. 지구별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봅니다.

  삶을 보면서 사람과 사랑을 봅니다. 사람과 사랑을 보면서 이야기를 봅니다. 이야기를 보면서 빛을 보고, 빛을 보면서 사진을 봅니다.

  “윤상혁은 처음에 지인의 집을 빌리거나 배우를 섭외해 작업을 진행했지만 장소와 인물 사이의 간격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다 실제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또는 일하는 공간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점차 그 간격은 메워졌다(박정현/42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을 때에 빛날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어 보여주면서 ‘사진’이라는 이름을 얻을까요.





  그저 찍기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모델을 얻기에 더 낫다 싶은 모습을 담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찍으려면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 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모델이 있어야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숨결’이 있어야 합니다.

  삶이 없이 그럴듯한 모습을 찍을 때에는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람이 없고 숨결이 없이 그럴듯한 빛을 잘 맞춘다 하더라도 사진이 되지 않아요.

  “정우성은 사진을 찍는 중간중간 내 카메라 렌즈를 향해 씩 웃는다. 나는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웃음 속엔 사진가 친구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들어 있다(조선희/113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가 누구를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서로 믿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흐를 때에 빛이 흐릅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서로 웃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마음일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모델들은 자신들이 항상 사진 찍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준비된 자세를 유지하며 쇼를 준비한다. 그래서 점차 나는 무대 뒤보다 패션 하우스 앞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디나 리토브스키/69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모델은 ‘찍히는’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찍히는 사람이니 늘 ‘찍히려는 몸가짐’으로 삽니다. 찍혀야 하는 일이고, 찍혀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모델’한테는 삶이 무엇일까요. 사진 모델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어떤 몸가짐이 ‘자연스러운 하루’일까요. ‘준비된 자세’란, 그러니까 ‘빈틈없이 차린 모습’은 안 자연스럽다고 해야 하고, 빈틈이 사라져서 느슨한 모습일 때에만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에서 사진을 찍는 권철 님은 우토로 사진을 찍기도 했고, 가부키초 사진을 찍기도 햇습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인 ‘텟짱’을 찍기도 했어요. 권철 님은 “텟짱의 사진을 찍으며 다큐 사진가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하면서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이 텟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만큼 이를 기록하고 싶었다(권철/8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찍기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 삶’을 느끼고, 다른 사람 삶을 느낄 때마다 새로운 빛을 배워요.

  그러면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어떠할까요. 사진에 찍히는 사람도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떠한 눈빛과 마음결과 넋으로 다가오려는지를 살피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도 사진에 찍히는 사람한테 ‘삶을 새롭게 느끼거나 배우도록 이끄는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손녀를 깔끔하게 차려 입히고 나오셨습니다. 자신은 옷이 지저분하다며 옆으로 비켜서시며 손녀를 크게 찍어 달라고 하시네요(황성찬/12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손녀를 크게 찍고 싶은 할아버지 마음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할아버지 마음’을 느낍니다. 그러면,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느낄까요. 어린 손녀가 앞으로 자라고 나서 이 사진을 들여다볼 적에는 ‘사진을 찍어서 준 사람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거나 느낄까요.




  하동군 공무원인 조문환 님이 펴낸 사진책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를 놓고 “빛 하나를 잘 다스려서 ‘빛나는’ 사진을 빚는 일도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딘가 아쉽습니다. 사진에 빛만 잘 들어오면 될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빛으로만 찍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풀도 나무도 꽃도 빛으로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도 들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빛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빛과 볕과 살을 골고루 누릴 적에 목숨이 싱그럽습니다. 빛과 볕과 살을 함께 먹고 마실 적에 숨결이 푸릅니다. 사진도 빛뿐 아니라 볕을 찬찬히 담아서 포근하거나 따스하거나 살가운 숨결을 건사할 때에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요. 사진도 빛과 볕에다가 살을 알뜰살뜰 실어서 즐겁게 노래하고 기쁘게 사랑하는 넋을 나눌 때에 더욱 눈부시지 않을까요(최종규/147∼148쪽).”와 같이 이야기하는 느낌글을 되새깁니다. 사진은 누구 곁에 있을까요? 네 곁에 있을까요, 내 곁에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 곁에 있을까요. 사진은 어떤 빛을 담을까요? 내 눈빛을 담을까요, 네 눈빛을 담을까요. 아니면 우리 눈빛을 담을까요.

  사진을 읽으면서 늘 물음표를 찍습니다. 사진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묻는 물음표를 찍고, 사진은 이러한가 저러한가 하고 헤아리면서 물음표를 찍습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오늘 누리면서 느낀 사진은 오늘대로 즐겁습니다. 오늘을 보내며 이튿날 새로 맞이하는 하루일 때에는 이튿날대로 새삼스레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스스로 새로 묻고, 날마다 스스로 새로 말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새로 바라보고, 언제나 스스로 새로 만납니다. 내 곁에 있는 사진을 봅니다. 내 곁에서 숨쉬는 사진을 어루만집니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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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
고경원 지음 / 갤리온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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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76



고양이를 부르는 사진

―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경원 글·사진

 갤리온 펴냄, 2007.1.24.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잘 알아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음이 움직입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으로 갑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더라도 숲바람을 느낍니다. 언제나 숲노래를 부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갑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하고 무척 멀리 떨어진 데에서 일하더라도 문득문득 바다내음을 맡습니다. 늘 바다노래를 부르면서 활짝 웃습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을 볼까요? 길고양이를 볼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길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갈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시 한복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다가도 문득문득 ‘길고양이가 야옹 하고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경원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갤리온,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찍으러 다니다 보면 낯선 골목길로 들어가게 되기 일쑤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참말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경원 님이 들어가는 ‘낯선 골목길’이란 ‘사람 눈길’로 보았을 때에 낯선 골목길이요, 고양이한테는 낯익은 길이거나 골목이요, 고양이로서는 아늑하거나 포근한 쉼터이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여느 사람한테는 낯선 골목길이, 여느 길고양이한테는 ‘사람한테 치이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쉬는 한편 다른 고양이와 어울리는 터’가 되거든요.


  길고양이를 오래도록 지켜본 고경원 님은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몸에 어떤 무늬가 나오든 관심이 없다(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키와 몸무게로 태어나도 다 좋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몸으로 태어나도 다 반깁니다.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어요. 오직 ‘우리 아이’라고 느끼며 기쁩니다.


  고양이와 사람만 이와 같지 않아요. 새와 물고기도 그렇지요. 온갖 짐승은 다 이와 같아요. 어느 어버이가 아기한테 ‘너 말야, 100억쯤 손에 쥐고 태어나야지?’ 하고 묻겠어요. 안 따집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아기를 바라보며, 오직 사랑스러운 눈길과 손길로 아기를 쓰다듬습니다.


  길고양이를 사진으로 찍든, 골목개를 사진으로 담든, 우리들은 사랑 하나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눈길로 길고양이나 골목개를 바라본다면, 고양이와 개는 사람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꽁지를 빼겠지요.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을 만나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흰 고양이를 ‘고비’라 부르고, 카오스 무늬 고양이는 ‘부비’라고 부른다(42쪽).” 하는 이야기처럼,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은 이녁 나름대로 길고양이한테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여서 살갑게 부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사람과 똑같이 반가운 님이자 벗입니다.


  그런데, 길고양이는 왜 길고양이일까요. 우리한테 언제부터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되었을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고양이를 따로 집에서 기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 손길을 반기는 고양이가 있을 때에는 집에서 곧잘 먹이를 줍니다. 사람 사는 집과 가까이 지내는 고양이한테는 ‘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한테는 ‘들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요? 궁금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 말이 생긴 때를 헤아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난날 여느 시골에는 ‘도둑고양이’가 있기 어렵습니다. 그렇겠지요?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시골집에는 고양이가 훔쳐서 먹을 만한 먹이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은 풀과 열매와 곡식을 먹는데, 고양이가 이런 먹을거리를 훔칠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해요. 고양이는 쥐를 먹으려고 사람이 사는 집에 가까이 오기만 했겠지요. 그러면, 물고기라든지 ‘고기’ 냄새가 나는 먹이는 어느 집에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부잣집에 있었겠지요. 여느 시골집에서 지내는 흙지기로서는 고양이가 안쓰러워도 따로 먹이를 챙겨서 건네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랑 국을 건넬 뿐입니다. 아마, 지난날 ‘시골고양이’는 사람하고 똑같은 밥이랑 국을 먹으면서, 곧잘 쥐나 개구리나 새를 잡아서 먹었겠지요. 그리고, 부잣집에 살그마니 기어들어 ‘고깃살’을 낼름 먹곤 했겠지요. 부잣집에서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고양이 이름을 더 헤아린다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는 ‘길고양이’입니다. 그렇지만, 서울이나 부산이라 하더라도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동네에서는 ‘골목고양이’입니다. 골목에서 지내니 골목고양이예요. 바닷마을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바다고양이’가 될 테고, 섬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섬고양이’가 될 테지요.


  동네에서 동네사람처럼 지내는 고양이는 ‘동네고양이’예요. 도시에서는 동네고양이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이기에, 시골에서 마을사람처럼 수수하게 지내는 고양이는 ‘마을고양이’입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도 마을고양이가 여럿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든지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우리 집 처마 밑이나 평상 밑이나 자전거 밑으로 살그마니 기어들어 옹크리면서 쉬곤 합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쓴 고경원 님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고양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159쪽).” 하고 말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어떤 빛일까요. 아마, 고양이만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개한테도 비둘기한테도 참새한테도 직박구리한테도 오소리한테도 족제비한테도, 그리고 사람한테도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이리라 생각해요.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만하리라 느낍니다.


  사회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빕니다.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경제 모두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저마다 즐겁게 땀흘리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빛을 찾아서 즐겁게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웃을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마주하고, 살뜰히 어깨동무하는 손길로 사진을 찍으면 아주 고운 숨결이 흐르리라 봅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는 길고양이를 노래하는 자그마한 책인데, 길고양이가 ‘길’에서 삶을 누리는 고양이임을 한결 또렷하게 느낄 만한 ‘길빛’이 흐르는 사진으로 조금 더 가다듬으면 더 좋겠습니다.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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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다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1
앤드루 바이어트 외 지음, 김웅서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보슬비 님 고맙습니다~! ^^


..


찾아 읽는 사진책 174



파란 별을 품은 가슴으로

― 아름다운 바다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1)

 앤드루 바이어트·앨러스테어 포더길·마서 홈즈

 김웅서·정인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002.8.1.



  ‘The Blue Planet’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나왔던 책을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바다》(사이언스북스,2002)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The Blue Planet’이라 할 적에는 ‘아름다운’이라는 낱말은 없을 텐데, 너르며 깊은 바다를 보여주는 사진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보니, 이렇게 뜻을 바꾸어서 붙였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파란 별’이라고만 책이름을 붙이면 못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으니 “아름다운 바다”라는 책이름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을 둘러싼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은 바다가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이웃 일본은 어떨까요? 이웃 중국과 러시아는 어떤가요? 한국과 꽤 가깝다고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바다는 어떤가요?


  ‘마틴 파’라는 분이 찍은 사진을 보면, 쓰레기가 둥둥 떠서 흐르는 바닷가에서 아이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모습이 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쓰레기가 둥둥 흐르는 곳에 발을 담글 뿐 아니라 몸을 담급니다. 그리고, 이 어른과 아이는 쓰레기가 둥둥 흐르는 곳에 쓰레기를 더 버립니다.


  나는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을 떠올립니다. 이때 우리 아버지는 나와 형을 데리고 네 식구가 곧잘 마실을 다녔어요. 자가용이 없이 시외버스와 기차를 타고 꽤 먼 데까지 마실을 다녔습니다. 이때에는 솥이랑 천막까지 짊어지고 마실을 다녔어요. 언젠가 동해 쪽으로 마실을 갔는데, 사람도 많고 쓰레기도 많았습니다. 가게는 바가지를 씌우기 바쁘고, 오줌을 누려고 하면 냄새가 고약합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놀러 왔는지 먹고 마시다가 쓰레기를 버리려 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도시를 떠나 ‘깨끗한’ 바다를 보러 마실을 왔으면, ‘깨끗한’ 바다가 ‘깨끗하게’ 잇도록 잘 돌보고 아껴야 할 텐데, 이런 손길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 나는 두 아이를 거느리는 어버이입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바닷가로 마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택시를 불러 네 식구가 함께 바닷가로 마실을 가기도 합니다. 이른바 ‘여름 휴가철’에는 바닷가에 갈 생각을 안 합니다. 시골에 있는 우리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어 ‘여름 휴가철’에도 바닷가에 몇 차례 간 적 있는데, 들끓는 도시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가 차마 보기에 너무 끔찍해서 싫어요.


  관광객은 어떤 사람일까요. ‘깨끗한’ 시골이나 숲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도시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일까요? 바닷가에도, 골짜기에도, 마을에도, 들과 숲에도, 논둑과 밭둑에도 온통 쓰레기입니다.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은 아무것이나 다 버리고,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농약병과 비료푸대와 술병과 비닐 따위를 버립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은 핵발전소가 터졌습니다. 이제 일본 바다는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바다입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핵발전소가 터졌지요. 두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지 제법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방사능 찌꺼기는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는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서 움직여요.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이 늘 움직입니다. 전투함이 바다를 가르고, 전투기가 하늘을 찢어요. 이런저런 전쟁무기는 모두 핵물질이나 석유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지요. 게다가,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는 바다에서 핵무기 실험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한국과 이웃한 중국도 핵무기 실험을 숱하게 했고, 중국은 한국과 맞닿은 바닷가에 공장을 무섭게 때려지어요. 중국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한국으로 밀려옵니다. 한국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또 일본으로 밀려갑니다. 그러면, 일본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자꾸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떠올립니다. ‘깨끗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을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내뿜습니다. 도시를 버티려면 수많은 공장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쓰레기를 내놓고 매연을 뿜어야 합니다. 시골에서는 도시에 내다 팔 곡식과 열매를 엄청나게 쏟아내려고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아주 많이 씁니다. 도시사람을 먹이려고 닭공장과 소공장과 돼지공장을 돌립니다. 알에서 깬 지 한 달쯤 된 병아리를 재빠르게 살찌워서 닭고기로 만들어 냅니다. 닭공장에서는 알 낳는 닭을 잠을 안 재우고 사료를 끝없이 먹여서 닭을 ‘알 낳는 기계’로 들볶습니다.


  모두들 돈을 벌 생각으로 엉망이 됩니다. 도시와 시골은 돈 때문에 서로 엉터리가 됩니다. 도시에서는 돈 때문에 다투다가 다치고, 싸우다가 죽습니다. 시골에서는 돈 때문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쓰다가 흙을 망가뜨리고, 시골사람도 농약에 몸을 다쳐서 죽습니다.


  그렇지만, 바다는 아직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바다는 아직 파랗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지구는 아직 푸르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바다는 파랗게 빛나고, 뭍은 숲을 이루어 푸르게 빛납니다. 파란 빛깔과 푸른 빛깔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물은 파랗게 맑을 때에 싱그럽고, 풀은 푸르게 밝을 때에 싱싱해요. 사람은 파란 기운과 푸른 기운을 함께 맞아들이고 드러낼 때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가슴에 있는 파란 별을 느끼기를 빌어요. 우리 마음에 있는 푸른 꽃을 깨닫기를 빌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파란 별이 있어요.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속에 푸른 꽃이 빛나요.


  아름다운 바다를 누리려면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다를 아름답게 가꾸려면 우리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이 모두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으려면, 삶도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마을도 학교도 집도 모두 아름다운 빛이 흘러야 합니다.


  파란 별을 품은 가슴으로 함께 노래해요. 푸른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함께 춤추어요. 파랗게 꿈을 꾸고, 푸르게 사랑해요.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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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72



그리운 사람을 보여주는 사진

―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임종진 글·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08.2.15.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기도 하다가, ‘달팽이사진골방’을 열어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임종진 님이 2008년에 내놓은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랜덤하우스코리아,2008)를 읽습니다. 떠난 김광석 님을 담은 사진과 함께 김광석 님을 그리는 글을 엮은 책입니다. 떠난 이를 놓고 이렇게 사진과 글을 엮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책이 너무 무겁다고 느낍니다. 300쪽을 조금 넘는 책인데 많이 무겁습니다. 펼쳐서 보기에도 그리 안 좋습니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이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엮음새도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사진 사이사이에 글을 넣은 엮음새라 할 수 있는데, 사진만 앞에 따로 그러모은 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을 그리는 글은 뒤쪽에 잔글씨로 묶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떠난 이를 그리는 사진은 ‘초점도 잘 맞추고 흔들리지 않고 빛도 잘 맞추어’야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 한 장이 있어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예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면서 애틋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글을 붙이는 사람이 만들어 주지 않아요. 이야기는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스스로 길어올립니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은 사진하는 임종진 님한테도 애틋하겠지요. 그런데, 이 애틋함을 책으로 묶는다고 한다면, 임종진 님 혼자 품은 애틋함을 보여주기만 할 수 없어요. 임종진 님이 늘 말하듯이 ‘소통’이란, ‘내 것을 보여주기’에 앞서 ‘너와 내가 한 자리에서 같은 눈길로 따순 사랑을 속삭일’ 때에 이룬다고 느낍니다.


  책을 ‘무겁게’ 만들려 했다면 판을 키우는 쪽이 나았을 테고, 여느 판짜임으로 사진을 앉히려 했으면 종이를 가볍게 하는 쪽이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이도저도 아닌 판짜임으로 무겁기만 하다 보니,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임종진 님은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내놓으면서 “함께 나눈 작은 소통의 근거물이기도 한 필름들은 형이 삶을 멈춘 지난 1996년 1월 이후 오래도록 벽장에 들어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보낼 일이야 없지만, 그즈음 필름 안에 담긴 형의 얼굴을 다시 마주한다는 게 작지 않은 슬픔이기 때문입니다(5쪽).” 하고 말합니다. 아마 김광석 님 노래를 듣는 이들도 마음으로 슬픈 울림을 늘 느낄는지 몰라요. 그런데,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달라요. 김광석 님이 살아서 노래하던 때 노래를 듣던 어른이 아니라, 1990년대에 태어나거나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달라요. 2010년대에 태어나거나 2020년대에 태어날 아이들도 달라요. 이 아이들한테 김광석 님은 ‘꽤 먼 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저 노래로 만나는 이웃입니다.


  그리운 사람을 보여주는 사진은 어떤 빛이 될까요. 그리운 사람은 우리한테 어떤 넋이 될까요. 슬픔? 눈물? 기쁨? 웃음? 서운함? 고마움? 사랑? 미움? 무엇이 될까요.


  임종진 님은 “사진은 어떤 즐거움의 행위이고 또한 어떤 나눔의 형식을 통해 대상 자체와 소통의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첫 모델이 바로 광석이 형이었음을 이젠 스스로 인정합니다(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김광석 님 사진을 꺼내어 책으로 묶는 동안 슬픔을 말하지만, 어느덧 즐거움을 다시 말합니다.


  그래요. 슬픔과 즐거움은 남남이 아닙니다. 한몸입니다. 낮과 밤은 한몸입니다. 꽃과 열매는 한몸입니다. 풀과 나무는 한몸입니다. 비와 바람은 한몸입니다. 흙과 모래는 한몸입니다. 사람과 벌레는 한몸입니다. 하늘과 땅은 한몸입니다. 해와 달은 한몸입니다. 모든 숨결은 서로 한몸입니다.


  남남이란 없어요. 파리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개미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새가 없거나 개구리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없으면 지구별이 무너질 일이 없다고들 하는데, 사람만 있기를 바라는 현대문명은 지구별을 어떻게 하는가요. 사람도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숨결 가운데 하나로 있으면서, 다른 숨결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광석 님이 부르는 노래가 슬프거나 아프다 하더라도 슬픔과 아픔이지만은 않습니다. 슬픔과 아픔이면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눈물이면서 웃음입니다. 거꾸로, 웃음이면서 눈물이에요. 언제나 한몸으로 움직이는 삶을 노래합니다. 늘 한마음이 되어 사랑하는 숨결을 노래합니다.


  임종진 님은 “그는 공연 때마다 자주 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종종 하늘 향한 그의 눈빛이 어느 곳으로 고이는지 궁금했습니다(7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임종진 님은 김광석 님을 사진으로 담으며 어떤 눈빛이거나 눈길이거나 눈높이가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디를 바라보면서 임종진 님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빛을 담으려 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냥 김광석이니까 찍은 사진인가요. 여러모로 자주 만나기에 찍은 사진인가요. 마음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찍은 사진인가요. 따사로이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숨결로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하는 사람을 노래하듯이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가 들려주는 눈물과 웃음을 고루 섞으면서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로 어루만지는 삶을 포근히 보듬으면서 찍은 사진인가요.


  김광석 님 몸뚱이는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러나 김광석 님 노래는 언제나 이 땅에 있습니다. 김광석 님은 돈이라든지 이름이라든지 힘 따위를 남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김광석 님은 맑고 밝으면서 고운 노랫가락과 함께 이야기 한 자락을 남겼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김광석 님을 찍은 사진은 무엇을 책으로 갈무리해서 남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을 그리는 사진이고, 어떤 삶과 사랑을 그리는 노래일까요. 4347.5.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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