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진오기굿 한국의 굿 20
조흥윤 지음 / 열화당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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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수남 님 <한국의 굿> 사진책 스무 권 가운데 오직 하나만 검색됩니다. 그나마 이 한 권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0번 사진책으로 소개하는 글을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어, 저는 1권으로 소개글을 씁니다.

 

 

 


 내 이웃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4] 김수남,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

 


 1983년 7월 20일 첫선을 보인 ‘열화당 한국의 굿’ 스무 권 1번을 빛내는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은 첫 사진 첫 글을 “81년 6월 23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황해도 큰만신 김금화의 집에서 내림굿이 있었다(17쪽).’로 엽니다. 첫 장으로 깃든 사진은 책 뒤쪽에도 자그맣게 실립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자그마치(?) 스무 권으로 꾀한 《한국의 굿》을 여는 실타래가 되면서, 이제껏 한겨레 굿놀이와 굿판과 굿잔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거나 가르치거나 생각하도록 이끌던 흐름을 따사로이 보듬으려는 손길이 됩니다. 엉뚱한 눈길을 바로잡는다든지, 터무니없는 손길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저 곱게 바라보는 사랑과 꿈을 이야기합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을 펴낸 열화당 출판사 편집부는 책머리에, “무속사진을 찍는 사람이 학자일 경우에는 사진이라고 하는 전달매체의 특징을 백분 살리는 데에 미흡하여 무속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놓치기 쉽다. 그와 반면에 사진전문가일 경우에는 무속 내용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어 그 본령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있다. 때문에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품위를 왜곡 변질시키는 무속사진이 시각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공개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무속이 어찌해서 우리 문화의 고향일 수밖에 없는가를 깨닫고 느끼게 하기보다는 사라져 가고 있는 관광자료에 불과한 민속이나 미신이라고 설명하려는 무속사진들이 더이상 쏟아져 나오기 전에, 전국의 무속을 정리하고 무속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시점에 이르렀다(이 책을 간행하면서,12쪽).” 하고 적습니다. 나는 이 첫머리 글을 읽던 고등학생 때(1991년)나 오늘(2012년)이나 늘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 내놓으며 이렇게 머리글을 붙이던 일이란 1976년에 태어난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이곳에서 1981년에 내놓은 《민중 자서전》이랑, 1983년에 내놓은 《한국의 발견》 뒤로는 처음이자,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이러한 말마디를 새로 듣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곰곰이 헤아리면, 이와 비슷한 말마디를 내놓은 책으로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이 있다고 느껴요.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에서 문화를 읽고 전통을 느끼며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책이 거의 태어나지 못하는 채, 으레 연구실과 자료실에서 쌓이는 연표와 통계는 온통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 쪽에서 바라보는 책만 쏟아지는데, 《한국의 굿》 스무 권은 이러한 사진밭 흐름에 좋은 사랑씨앗이 되려고 했구나 싶어요.

 

 더 되짚으면, 이들 책에 앞서 예용해 님이 1963년에 빚은 《인간문화재》(어문각)라는 책이 있기에, 한겨레 삶자락을 살가이 돌아보는 기틀을 닦을 수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따로 책이라는 틀로 무언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스레 살았어요. 애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하루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맞이했어요. 누군가 조선 막사발을 첫손 꼽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막사발을 썼고 수저를 썼어요. 한겨레 문화와 역사와 예술과 전통이라 한다면, 밭을 일구는 호미 한 가락입니다. 쌀겨나 티를 까부르는 키 하나입니다. 옷을 기우는 바늘 하나이고, 갓난쟁이한테 대는 기저귀 하나예요. 궁중에서 입는 옷이 되어야 전통이나 문화가 되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늘 입는 옷이 바로 전통이나 문화예요. 그런데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서는 이러한 옷을 전통이나 문화라고 바라보지 않아요. 그저 삶입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에 나오는 굿판 굿마당 굿잔치 굿놀이 사람들 몸가짐과 차림새 또한 남다르다고 여길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예부터 이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한 모습이에요. 애써 돋보이도록 꾸미는 모습이 아니에요. 여느 삶 모습이에요. 일부러 도드라지게 덧대는 모습이 아니에요. 꾸밈없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습니다. 더 높여야 하지 않고, 더 낮춰야 하지 않아요.

 

 이리하여, 한겨레에서 문화를 찾거나 예술을 바라거나 전통을 지키려 하는 어떤 흐름이 있다면, 김수남 님이 사진기를 들고 ‘한국의 굿’을 찍었다 할 때에, 어느 자리에선가는 ‘한겨레 옷’을 찍을 법했어요. ‘한겨레 집’을 찍고 ‘한겨레 밥’을 찍으며 ‘한겨레 길’과 ‘한겨레 논밭’과 ‘한겨레 바다’와 ‘한겨레 마을’을 찍을 만했어요. 이리하여, ‘한겨레 마을’까지는 아니나 《제주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자그마한 이야기책이 반석이라는 출판사에서 꽤 많이 나온 적 있어요. 엮음새가 너무 투박하기는 했으나, 제주섬에서 제주 마을만 돌아본 ‘제주의 마을 시리즈’는 참으로 소담스러운 선물이라 여길 ‘여느 사람 삶을 톺아보려는 사랑몸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유산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문화유산을 두루 밟으며 한겨레 옛삶을 살필 만해요. 이러한 데에 애틋하게 눈길을 보내는 삶이라 한다면, 언젠가는 ‘한겨레 오늘 삶’을 깨달아, 전통이든 역사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어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는 ‘엉뚱하게 적바림되며 참뜻하고 동떨어질까 걱정스러운’ 한국굿 이야기를 소담스레 담은 《한국의 굿》 스무 권을 만날 수 있어요. 아쉽다면,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만난다 할 텐데, 아직 우리 스스로 우리 오늘 삶을 착하며 곱게 돌아보거나 보듬는 손길이랑 눈길을 북돋우지 못한 탓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 ‘한겨레 골목길’조차, ‘한겨레 숟가락’조차, ‘한겨레 비녀’조차, ‘한겨레 바지랑대’조차, ‘한겨레 구멍가게’조차 꾸밈없이 바라보며 얼싸안지 못해요.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한테 1980년대는 서른 해나 지난 아스라한 옛삶입니다. 204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는 2010년대 오늘은 참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207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2010년대는 무척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전통이나 문화나 역사나 예술은 어디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두 발 디딘 이 자리 삶자락이 전통이요 문화요 역사이며 예술이에요. 내가 살아내는 하루가 전통이에요. 내가 누리는 보금자리가 문화예요. 내가 먹는 밥이 역사예요. 내가 살붙이랑 나누는 이야기가 예술이에요.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 책날개 뒤쪽에 김수남 님이 적은 맺음말을 읽습니다.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되어 버린 굿을 찍으면서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이 최소한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한 계층이 처한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속한 사회에서 변모해 가는 삶의 현장을 남기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수남 님은 ‘굿판을 사진으로 찍었다’기보다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을 사진으로 찍은 셈입니다. 김수남 님 좋은 이웃을 예쁘게 사귀면서, 이 이웃들하고 사진으로 이야기꽃을 피운 셈입니다. (4345.1.14.흙.ㅎㄲㅅㄱ)

 


― 황해도 내림굿 (김수남 사진,김인회·최종민 글,열화당 펴냄,1983.7.2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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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굿』이라는 책을 지난달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살펴본 적이 있었답니다. 정말 인상적이고도 다양한 사진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어찌보면 우리들 삶의 깊숙한 뿌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도 딱 한권의 책만 있던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책에 관한 멋진 글을 만나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름답고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2-01-14 23:09   좋아요 0 | URL
예나 이제나
이만 한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는 늘 틀에 박힌 대로만 배우고 길들여지니
학교를 다니며 사진을 배우면 찍지 못한다 할 텐데,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 이렇게 남겼으니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겨야 할까 싶기도 해서
많이 슬프답니다...
 
세상의 어린이들 - 이기웅 사진집
이기웅 / 열화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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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와 이웃 아이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40] 이기웅, 《세상의 어린이들》(열화당,2001)

 


 지난 2001년 1월 1일 첫선을 보인 사진책 《세상의 어린이들》(열화당,2001)을 2001년에 들여다볼 때를 곰곰이 떠올리면서 2012년 올해에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내 모습을 비추어 이 사진책을 다시 펼칩니다. 우리 시골마을 사진책도서관 책꽂이에서 이 책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래, 나는 이 책을 아직 혼인하지 않고 나한테 아이가 없을 때에 처음 만났지.’ 하고 되새깁니다. 예전 내 삶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의 어린이들》이랑 오늘 내 삶으로 헤아릴 《세상의 어린이들》은 얼마나 같거나 얼마나 다를까.

 

 아이들과 살아간다는 나날을 헤아리거나 겪지 못하던 때에 바라보는 어린이 사진하고, 아이들과 스물네 시간 함께 살아가며 늘 들여다보고 노상 치닥거리하는 나날 바라보는 어린이 사진은 참 다르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오늘 두 아이랑 복닥인다 하더라도 ‘아이가 없거나 아이하고 복닥이지 않는 사람’하고 견주어 어린이 사진을 더 잘 읽는다거나 어린이 모습을 사진으로 더 잘 찍을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마음과 사랑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사진·글·그림·이야기 모두 달라지니까요.

 

 열한 해 앞서 읽은 책을 열한 해 만에 다시 손에 쥔다면, 똑같은 느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열한 해 동안 똑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이어질는지 모르지만, 사진을 읽든 그림을 읽든 시를 읽든 만화를 읽든, 열한 해라는 나날에 걸쳐 새롭게 일군 내 땀방울과 꾸덕살 이야기를 발판으로 더 깊게 읽거나 한결 넓게 읽을 수 있어요.

 

 열화당 대표 이기웅 님이 일군 사진책 《세상의 어린이들》을 새삼스레 다시 만지작거리며 홀로 생각합니다. ‘열한 해 앞서 이 사진책을 장만했으니 이렇게 오랜 나날에 걸쳐 책과 사진을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구나. 그저 책방에 선 채로 읽었다면, 아니면 도서관에 이 책을 넣어 달라 말하며 빌려서 읽었다면, 누군가 장만해서 이녁 집 책꽂이에 꽂은 책을 빌려서 읽었다면, 아마 그 한 번 읽은 느낌으로만 이 책을 헤아리지 않겠니. 애써 장만해서 오래도록 건사하는 책 하나가 내 집에 있으면,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곱씹고 되씹으면서 내 넋과 사랑과 꿈과 빛을 한결 따사로이 북돋울 수 있어.’ 사진책 하나 장만하는 일은 기쁨으로 그치지 않아요. 내 눈길을 날마다 새롭게 일구도록 도와요. 언제나 곁에 있는 책을 틈틈이 들추면서 열 번 백 번 천 번 되읽으며 새롭게 생각하거나 돌아보는 빛씨앗을 베풀어요.

 

 이기웅 님은 사진책 《세상의 어린이들》 끝자락에, “새천년의 첫 해가 다 저물어 가는 십이월 어느 날, 강운구 형의 지프를 타고 몇 날 동안의 새벽녘에, 햇볕 찬란한 한낮에, 그리고 저녁 어스름에 바흐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이 나라 남도의 들과 마을들을 달려 지나고 있었다. 그때도 여느 때처럼 나는, 우리 국토는 이렇듯 참담하게 망가져 가고 있으며,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처럼 일그러져 가고 있는가를 화내고 있었다. 나라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로공사로 무자비하게 파헤쳐지고 있는 산천들, 무책임한 건축공사로 속속 들어서고 있는 변태적인 인공구조물들, 치졸의 극에 달한 글자꼴의 간판과 디자인(423쪽).” 하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아, 그래요. 2001년만 하더라도 한국땅 남녘자락이 얼마나 망가지던지요. 2012년이라면 훨씬 더 망가졌겠지요. 앞으로 더 망가질 테며, 2022년쯤 되면 사랑스럽거나 아름답다 싶은 시골마을이 깡그리 무너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기웅 님은 “무자비한 도로공사”를 “지프를 타고 달리며” 느낍니다. 두 다리로 남녘자락을 천천히 거닐며 느끼지는 않아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들은 이 고흥자락이 참 어여쁘며 좋습니다. 고속도로 없지, 기차길 안 들어오지, 고흥으로 들어서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지,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재벌회사도 따로 없지, 고흥군에는 대학교 없지, 커다란 회사도 없지, 공장도 보이지 않지, 골프장 없지, 군수가 앞장서서 친환경농업을 하겠다고 외치지 ……. 고흥에서 다른 마을로 마실을 가자면 퍽 고달픕니다. 왜냐하면, 다른 데에서 고흥으로 들어서는 길이 외통수요 멀디멀리 돌아야 하는 만큼, 고흥에서 밖으로 나갈 때에도 외통수이며 멀디멀리 돌아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멀고 돌아야 하는 길이 즐겁습니다. 지난해 가을녘,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을 거쳐 남원 지나 전주로 가는데, 시외버스 일꾼이 부러 고속도로나 고속국도 아닌 시골국도를 달리더군요. 이 때문에 시외버스는 다른 때보다 좀 더디 달릴밖에 없었는데, 나는 이렇게 달려서 참 좋았어요. 오가는 자가용 아주 드문 시골국도는 우람하게 자란 나무숲 사이로 달리는 길이면서, 가을자락 깊이 물든 남녘땅 어여쁜 빛깔을 듬뿍 베풀었어요. 시외버스로 세 시간을 달리면서 모처럼 차멀미를 안 할 수 있었어요.

 

 고흥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옮기려고 혼자서, 때로는 아이랑 둘이서, 때로는 네 식구 다 함께 찾아와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며 움직이기도 했지만, 두 다리로 여러 시간 걸어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천천히 걸어 돌아다니면서 ‘고흥이라는 데로 들어올 바깥 자동차’가 몹시 드물 뿐더러, 마을사람 스스로 자동차 타고 움직일 일도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읍내조차 그닥 어수선하지 않아요. 참 조용해요. 그렇다고 개발 손길이 아예 없지 않으나, 개발을 한대서 돈을 뽑아낼 무언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차분하면서 예뻐요.

 

 구례라든지 곡성이라든지 함양이라든지 양양이라든지 아마 다들 비슷하리라 느껴요.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어디든 한갓져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하고 가깝지 않다면 호젓하면서 예뻐요. 자동차 아닌 자전거로 움직이면, 시골버스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거닐면, 이 예쁜 온누리를 온통 내 마음으로 받아들일 만해요.

 

 어쩌면, 열화당 대표 이기웅 님이 새천년 첫 자락에 지프 아닌 두 다리로 천천히 남녘자락 시골길을 거닐어 보셨으면 또다른 이야기와 사랑과 느낌을 맞아들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러나, 이기웅 님은 지프를 타고 움직이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지프를 타고 움직이며 더 깊으며 그윽한 멋을 맞아들이지 않았기에 사진책 《세상의 어린이들》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기웅 님은 “이 망가진 세상 속에서 어린이들은 차라리 들꽃이었다. 내 카메라의 렌즈는 그 아름다운 꽃송이를 향해 달려간다. 무념무상으로(423쪽).” 하고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끔찍한 막개발과 막삽날을 당신 스스로 느끼지 않았으면 온누리 아이들 들꽃송이 웃음빛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 했을 수 있어요. 이러한 생각을 했어도 아주 느즈막하게 했을 수 있고, 굳이 사진책을 내놓자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느껴요. 이기웅 님이 천천히 두 다리로 거닐면서 남녘자락 시골마을 사람들 삶을 받아들였으면, 이러한 결대로 또다른 시골마을 사람들 이야기와 웃음과 눈물을 사진으로 담는 길을 열 수 있었으리라고.

 

 사진책 《세상의 어린이들》이 나온 지 열한 해가 되었어요. 이제 두 번째 《세상의 어린이들》이 나올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라밖에서 만날 아이들도 예쁘고, 나라안에서 만날 아이들 또한 예뻐요. 멀리 있는 이름 모르는 아이들도 예쁠 테지만, 우리 집 내 아이들도 예쁘고 이웃집 아이들도 예뻐요.

 

 애써 비행기 타고 러시아나 인도로 나들이 가지 않더라도 한국땅 곳곳에서 눈빛 맑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요. 먼저 나부터, 곧 우리 어른들부터 눈빛 맑은 어른으로 살아가면 눈빛 맑은 아이들을 느끼면서 서로 신나게 놀고 예쁘게 어우러질 수 있어요. 이렇게 서로 곱디곱게 춤을 추며 노래하면서 가끔 한두 장 사진을 찍으면, 흐드러지는 춤꽃 노래꽃 이야기꽃 사진들이 피어나리라 믿어요.

 

 좋다고 느끼는 사진은 좋다고 여길 내 삶을 즐거이 일굴 때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찍더라도 태어나요.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진은 아름답다고 여길 내 삶을 아름다이 지을 때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담더라도 태어나요.

 

 내 아이를 바라보며 온누리 아이들을 읽을 수 있어요. 온누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아이를 느낄 수 있어요. 내 아이들을 찍어도 온누리 아이들 찍는 일하고 같아요. 온누리 아이들 찍는 일은 내 아이들 찍는 일하고 같아요. (4345.1.9.달.ㅎㄲㅅㄱ)


― 세상의 어린이들 (이기웅 사진,열화당 펴냄,2001.1.1./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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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역사적 기억
진동선 지음 / 눈빛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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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역사가 아닙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35] 진동선 엮음, 《사진과 역사적 기억》(눈빛,2003)

 


 진동선 님이 엮은 《사진과 역사적 기억》(눈빛,2003)이라는 사진책 앞글에 적힌 “역사학자들은 사진이 현대사 자체라고 말을 한다. 현대사가 곧 사진의 역사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카메라의 냉정한 기록성 때문인지, 아니면 목격자로서, 해석자로서, 전달자로서 시대 앞에 섰던 사진가의 시선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진’이라는 시간의 코드 때문인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23쪽).” 같은 말은 마땅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진동선 님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하고 끝에 붙였으니 “현대사가 곧 사진의 역사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라 했던 말을 뒤엎는다고 여길 수 있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말마디로 사진을 다루는 일조차 못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역사가 아니니까요. 사진은 역사가 될 수 없으니까요. 역사는 사진이 될 수 없고, 사진으로 역사를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진에 기대어 역사를 살필 수 없어요.

 

 사진은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사진은 “사람들마다 다 달리 살아가며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1965년 부산에서 왼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살짝 찡그린 아저씨를 사진으로 담았대서 이 얼굴 사진이 1965년을 말하는 사진이나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왼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살짝 찡그린 아저씨는 왜 이러한 모습 이러한 얼굴이었을까요. 배앓이라도 할까요, 졸음이 쏟아졌을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술 한 잔 걸치다가 이런 얼굴이 되었을까요.

 

 사진은 사람들마다 바라보는 눈길이기에, 이 눈길이 모든 사람 눈길을 보여준다 할 수 없을 뿐더러 ‘시대를 말한다’거나 ‘사회를 말한다’거나 ‘나라를 말한다’거나 ‘정치를 말한다’거나 ‘문화를 말한다’거나 ‘역사를 말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경모 님이 담은 사진에는 대나무창 들고 나란히 선 아가씨들이 나오지만, 어느 마을 어느 곳에서는 아가씨들한테 대나무창 들게 해서 군대 훈련 시켰다지만, 바로 이 마을 곁 어디에서는 아가씨들이 빨래를 하고 길쌈을 하며 밥을 지었겠지요. 사랑하는 님하고 만나 애틋하게 웃음을 나누며, 예쁜 아기한테 젖을 물렸을 테고,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었겠지요.

 

 그러나 물 긷고 물동이 이는 사진은 《사진과 역사적 기억》에 나오지 않습니다. 조셉 브라이텐바흐 님이 담은 사진에 나오는 1950∼70년대 한국땅 여자들 사진책 《Women of Asia》(the John day com,1968)에서는 빨래바구니를 이는 아주머니라든지 잠든 아이를 품에 안으며 풀빵 굽는 아주머니라든지 저잣거리에서 활짝 웃으며 푸성귀를 파는 아주머니라든지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진과 역사적 기억》이라는 사진책에는 밭에서 김매는 아줌마라든지 논에서 모내는 아저씨라든지 멧골짝에서 나무하는 아이라든지 갯벌에서 조개 캐는 할머니라든지 나타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을 말할까요. 사진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이 역사라 할 만한가요. “사진과 역사적 기억”이라는 이름은 누가 왜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붙이는 이름이 될까요.

 

 1970년대 서울 망원동에서 흙길을 누비는 아이들이 《사진과 역사적 기억》에 나타납니다. 오늘날 서울 망원동에는 논이 없습니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높다란 건물과 끝없는 빌라뿐입니다. 서울 망원동 옛날 판자집 사진은 역사가 될까요, 기억이 될까요, 삶이 될까요, 발자국이 될까요.

 

 조그마한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식구들 둘러앉아 책을 읽는 사진 하나 보이는 《사진과 역사적 기억》입니다. 오직 한 장, 이렇게 수수한 삶자리 살며시 보여주는 사진이 실렸기에, “역사적 기억”이라 하는 어마어마하게 무겁디무거운 이름이 서로 어울리지 않구나 하고 보여주지만, 한국전쟁통에도 사람들은 밥을 지어서 먹었으며, 아이를 낳아 기저귀를 빨았으며, 똥을 누고 별을 올려다보며 논물을 맞추었습니다. 그래, 서울 망원동 사진 가운데에는 바지랑대 받쳐 기저귀를 빨아 넌 사진이 하나 깃들어요. 그지없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늑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그러면, 이 사진은, 하얀 기저귀 빨래가 바지랑대 빨래줄에서 나부끼는 이 사진은, 어떤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보여준다고 이름표를 붙여야 할까요.

 

 이름표를 붙일 때에는 사진은 사진이라는 구실을 잃습니다. 딱지를 붙이면 사진은 사진이라는 빛을 놓칩니다. 번들거리는 삶을 우쭐대는 사람들을 보여주거나 되살리는 일은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 찾아다니며 적바림하는 일은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적바림(기록)하는 몫이 사진에 있다지만, 적바림을 한대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적바림을 한다면 그저 적바림, 곧 기록입니다. 기록을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똑같은 말이 되는데, 예술은 예술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예술을 한다면서 사진기를 손에 든대서 사진찍기이지 않아요. 예술하기일 뿐입니다. 사진기를 들어 기록을 한다면 기록하기이지 사진찍기가 아니에요. 사진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교육이지 사진이 아니에요.

 

 기록을 하는 사람은 기록을 하려고 사진기를 빌립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예술을 하려고 사진기를 빌려요.

 

 기록을 하는 사진이기에 다큐사진이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진이라서 패션사진이 아니에요. 모두들 잘못 짚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지, 사진을 놓고 기록이라느니 예술이라느니, 또 문화라느니 역사라느니 하면서 엉뚱하게 옷을 입히면 사진빛과 사진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사진과 역사적 기억》이라는 사진책은 참 아름답습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이 작은 사진책 하나로 우리들 살아온 지난날 어느 한 자락을 예쁘게 돌아볼 수 있어 참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애먼 군말은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거추장스러운 이름표는 떼어야 합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누리고, 사진은 사진으로 즐겨야 합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바라보면서 사진은 사진결 그대로 찍을 때에 빛납니다. (4345.1.4.물.ㅎㄲㅅㄱ)


― 사진과 역사적 기억 (진동선 엮음,눈빛 펴냄,2003.7.9./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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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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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삶을 걸쳐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75] 김수남,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

 


 고등학생이던 때 《한국의 굿》(열화당)이라는 사진책 스무 가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읽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는 굿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벌써 사라지고 없는 푸닥거리로 여길 뿐입니다.

 

 그무렵 인천에서는 황해도 굿을 해마다 벌이는 자리가 있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굿구경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든 한국 사회를 들려주든, 우리 겨레 굿이 무엇이고 어떻게 펼쳐지며 왜 하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1992∼1993년, 나한테는 고등학교 2∼3학년이던 때에 인천에 있는 일곱 군데 도서관을 요일에 맞추어 찾아가며 열람실을 뒤집니다. 《한국의 굿》이라는 책이 있나 헤아립니다. 스무 권을 다 갖춘 도서관은 아예 없고, 그나마 한두 권조차 없는 데마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찾아서 읽지 못하는데, 부평에 있던 헌책방에서 《한국의 굿》을 대여섯 권쯤 만납니다. 나중에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여러 권 만납니다. 동인천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과 동인서관에서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보았던가 가물가물합니다. 부평에 있던 새책방 한겨레문고에는 이 책이 있었는지 갸웃갸웃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은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은 헌책방에서 살펴야 하는구나.’

 

 대학생이 되어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갑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굿을 알거나 보거나 생각하거나 들은 동무는 없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똑같습니다. 나는 내 고등학생 때 하나둘 그러모은 《한국의 굿》을 가방에 짊어지고 대학교로 가서 동무와 선후배한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대학생쯤 된다면 한국 문화 한 가지쯤 옳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을 붙이며 책을 빌려줍니다.

 

 책을 빌려준다기보다 읽으라고 밀어붙이는 셈이었구나 싶은데, 옳게 다 읽고 돌려준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만 스윽 넘기고는 뒤에 붙은 글은 읽지 않기 일쑤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나 혼자 멀디먼 전철길에 책을 되읽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며 비행기를 타는 오늘날 한국사람한테는 《한국의 굿》은 영문을 알 수 없고 뜻을 짚을 수 없는 머나먼 ‘미개 나라’ 이야기입니다. ‘문명 나라’ 사람으로서는 가끔 방송을 타는 다큐멘터리 흉내를 낸 모습을 들여다보면 되지, 굳이 책으로까지 읽으며 머리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수남 님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나온 사진책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을 읽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서 엮은 책이로구나 싶지만, 글이나 사진이 좀처럼 환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편집이 퍽 어수선합니다. 글도 사진도 한눈에 확 사로잡도록 엮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두는 오늘날 사람들을 이 책에 어떻게 끌어들일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김수남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무당이 놀라운 춤사위를 벌이는 그림도 많으나, 애틋하게 눈물겨운 그림도 많습니다. 어여삐 빛나는 그림도 많으며, 눈부신 무지개 그림도 많아요. 김수남 님 사진책은 으레 겉그림이나 대표작으로 흑백사진만 내세우곤 하는데, 《魂, 김수남 사진굿》에도 실린 어여삐 빛나는 무지개빛 사진을 겉에 곱게 깔면서 보드랍고 따사로이 이야기를 펼치는 엮음새로 책을 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김수남 님 사진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좀 덜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1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김수남 님 스스로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김수남 님한테 사진을 찍힌 이들 또한 스스로 좋아서 사진으로 찍힙니다.

 

 뭐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한 가지를 붙잡아 담은 사진이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김수남 님이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이야기 하나를 바라본 사진이에요.

 

 김수남 님은 한국 굿에서 외국 굿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1980년대에 굿 사진을 찍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찌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텐데요, 김수남 님이 사진으로 담는 한국 문화를 ‘굿’ 다음으로 ‘밥’이나 ‘밭’이나 ‘길’이나 ‘옷’으로 삼았다면, 아마 이때에는 밥굶기 딱 좋았으리라 봅니다. 요즈음도 한국 굿뿐 아니라 한국 밥과 한국 밭과 한국 길과 한국 옷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누군가 있다면, 그야말로 밥굶기를 다짐하면서 사진길을 걷겠지요. 그래서 오늘날 사진쟁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여느 사람들 밥먹기와 밭일과 길(골목길·고샅길·논둑길·멧길·바닷길·들길)과 옷차림을 찬찬히 담아내지 않아요. 모두들 그럴듯한 그림이나 돈벌이 되는 사진으로만 흘러요.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다행히 내 카메라는 의식들을 안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미리 가는 것이다. 한 지역에 뭔가가 있다고 하면 미리 간다(46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함께 어우러질 만큼 좋아하는 사람하고 부대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행사가 펼쳐진 때’에만 뚝딱 사진을 찍고 떠나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찾아와서 노닥거립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퍼질러 앉아서 노래하며 놉니다.

 

 혼인잔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20분쯤 앞서부터 신부대기실을 찍고 신랑신부 행진과 주례 같은 모습을 찍겠지요. 그러나 짧은 행사를 마치고 밥을 먹을 즈음 장비를 챙겨 돌아갑니다. 혼인잔치 ‘행사’를 찍는 사진관 일꾼이 아닌, 혼인잔치 ‘잔칫날 좋은 일’을 기리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혼인잔치를 앞두고도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잔칫날에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을 테며, 잔치가 다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 기뻐해 주겠지요.

 

 사진만 따로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삶과 함께 사진입니다. 사진만 동떨어져 작품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과 함께 얼크러지면서 사진이야기 일굽니다.

 

 “외국 작가는 돈 주고 데려오면서 왜 한국 작가들에게는 그저 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52∼5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전국에 있는 문화재단이라든지 문화체육관광부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대학교라든지 기업이라든지, 바로 오늘 우리 삶을 아끼며 사랑하는 손길로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글·그림·만화·사진·춤·노래·연극·영화 들로 담아낼 수 있으며 즐겁습니다.

 

 볍씨 한 알에 싹을 틔워 싱그러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 다음 이삭이 패는 흐름을 곱게 사진으로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담는 사람을 뒷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수수한 여느 일을 사진으로 담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보람차면서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뒷배를 해야 합니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비롯해 재봉틀질을 하는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야 해요. 밥하기와 설거지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야 해요. 손빨래이든 기계빨래이든 사진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요.

 

 “사진 하면 아트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기록성이 사진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나는 사진이 예술뿐 아니라 역사라든가 사회 가운데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104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사진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사진기로 적바림(기록)’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니 무어니 하기 앞서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사진작품은 ‘적바림하는 사진’이어야 해요. 적바림하지 않고서는 예술도 문화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적바림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적바림하는 대목’만 뽑아내어 예술작품으로 빚는다 하면, 그야말로 예술일 뿐 사진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필이나 붓을 놀려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라 하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글자를 그리더라도 그림이 되지 이야기 담긴 글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무언가를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필로 만화를 그리며 풍선에 말을 적었어도 그저 만화이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오늘날 숱한 만듦사진은 예술 테두리에 넣어야지, 만듦사진을 사진으로 다룰 수 없어요.

 

 “20년 전의 사진을 들고 간 나에게 그리 오래 자신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 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201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의 문화를 얘기해야 할 때 나의 사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말을 현지 지식인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나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들의 옛 모습을 서양사람들이 찍은 것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 남의 것이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슴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277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안타깝다 할 수 있고 슬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김수남 님은 사진으로 담았는걸요. 나라밖 누군가는 김수남 님이 애써 사진으로 찍어 주어 고마운걸요. 우리도 이 나라로 찾아온 누군가 찍어 준 사진이 있어 고마워요.

 

 어떤 외국사람은 한국 삶자락 담은 사진을 비싼값에 팔 테지만, 퍽 많은 외국사람은 돈 한 푼 안 받고 당신이 찍은 사진을 모두 선물합니다.

 

 외국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을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요.

 

 굿을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굿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흙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흙일꾼 한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패션모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빚겠지요.

 

 다만, 요사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동안 붙잡는 ‘사진 찍힐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지나가고 마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한 번 사랑하고 끝날’ 이음고리가 아닌데, 온삶을 걸쳐 고이 만남끈을 잇지 않곤 해요.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주제는 없어도 돼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오직 온마음 바쳐 사랑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면서 따뜻해요. (4345.1.3.불.ㅎㄲㅅㄱ)


― 魂,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글·사진,고운기·양진·백지순 풀이글·정리,현암사 펴냄,2007.2.5./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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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를 만들자 과학 그림동화 18
울리 쉬텔처 글 사진, 곽성화 옮김 / 비룡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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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사랑스러운 집을 함께 짓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9 : 울리 쉬텔처, 《이글루를 만들자》(비룡소,2003)

 


 아이들과 즐기는 사진책 《이글루를 만들자》(비룡소,2003)를 읽다가 문득 궁금합니다. 어, 이 사진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쇠톱으로 얼음을 잘라 얼음집을 만드네. 온통 얼음나라요 눈나라인 곳에서 쇠톱을 언제부터 썼지? 쇠톱이 없던 나날 이곳 사람들은 얼음집을 어떻게 지었지?

 

 예전에는 톱이 아닌 막칼이 있었을까. 기다랗고 잘 드는 칼이 있었을까. 아니면 돌을 잘 갈아서 눈을 자르거나 썰었을까. 굳이 옛날 사람들 이글루 짓기를 보여주어야 하지는 않다지만, 이 궁금함을 풀 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구나.

 

 아마 남녘땅에서는 눈을 잘 썰어 눈벽돌을 만든 다음 차근차근 그러모아 눈집을 짓는 일을 꿈꿀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깊디깊은 멧골이라면 눈이 꽤 펑펑 쏟아지기도 하지만, 눈벽돌을 할 만큼 오래도록 단단히 눈이 쌓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추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보금자리를 헤아리도록 돕는 사진책입니다. 우리처럼 흙을 쉬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멘트 얻기도 만만하지 않을 추운 나라에서 살림집을 어떻게 꾸리는가를 알려주는 사진책이에요. 눈집 짓기는 그림으로 곱게 그려서 보여줄 만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또렷하게 보여주는 일도 좋습니다. 그림일 때에는 결이 고울 테지만, 사진일 때에는 ‘참 춥’고, ‘참 눈 덮은 나라’이며, ‘참 만만하지 않으나 이렇게 눈집을 지을밖에 없’네 하고 느낄 수 있어요.

 

 그나저나, 아이들 읽는 사진책인 《이글루를 만들자》는 책이름이 “이글루를 만들자”로군요. 이 나라 아이들 누구도 눈집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눈사람이라도 굴릴 만할까요? ‘과학 그림동화’로 내놓은 책이라 한다면, “만들자”라는 말마디보다 “눈짓 짓기”나 “이글루 짓기”처럼 수수하게 붙이는 말마디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은 오직 ‘지식’만 보여주니까요.

 

 문득 또 한 가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알뜰히 보여주는 어린이책 《이글루를 만들자》인데, 이 사진책 내놓은 출판사에서 “흙집 짓기”라든지 “풀집 짓기” 같은 어린이 사진책을 함께 내놓았을까요. 앞으로 이러한 사진책을 내놓을 생각을 할까요. 그예 지식으로 바라보는 사진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라는 틀을 넘어, 나중에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제 보금자리를 짓는 꿈을 꾸는 길잡이가 되게끔, ‘어린이가 읽으며 배우는 나무집 짓기’라든지 ‘어린이가 어른이랑 함께 하는 흙집 짓기’ 같은 사진책을 예쁘게 보여준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더 돋보이는 사진이 아니어도 됩니다. 더 볼 만한 사진이 아니어도 됩니다. 땀흘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실으면 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제 밥·옷·집을 옳게 들여다보면서 슬기로이 깨닫도록 이끌면 됩니다. 아이들이 저희 두 손과 두 발을 써서 삶을 짓는 아름다운 꿈을 꾸도록 도우면 됩니다.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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