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원의 가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70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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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2



시와 싸움터

― 五丈原의 가을

 복거일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8.4.15.



  봄이 무르익으면서 동이 일찍 틉니다. 이제 새벽 다섯 시 반 무렵이면 어슴푸레한 빛이 드러나고, 곧 따스한 기운이 퍼지면서 붉은 해님이 떠오릅니다. 다시 아침입니다. 어제에도 찾아온 아침이고 오늘도 찾아오는 아침입니다. 이 아침은 모레에도 새롭게 찾아오겠지요.


  아침볕을 쬐고 아침바람을 마시려고 마당에 서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새들이 푸르륵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릅니다. 처마에서 우듬지로 옮기고, 마당에 선 나무에 있다가 지붕으로 옮기며, 지붕에 있다가 지붕 너머 전깃줄로 옮깁니다.



.. 떨어지는 것은 으레 / 맨 아래 단추다. / 원래 공평하지 못한 게 삶이다. / 마음에 걸리면서도 며칠을 미적거리다, 눈 감고 찬물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 바늘을 찾는다 ..  (하숙 2)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새봄을 맞이한 감나무는 매화꽃이 모두 지고 매화잎이 푸르게 돋아서 짙게 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움이 틉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늑장을 부리는 나무라 할 테지만, 감나무보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더 늦게 돋습니다. 감나무는 새봄 사월에 이르러 비로소 조그맣게 잎사귀를 내밀면서 보들보들한 옅노랑빛을 보여주는데, 무화과나무는 아직 겨울눈이 터지지 않습니다. 대추나무를 보면 대추나무는 훨씬 늦어요.


  가만히 나무를 바라봅니다. 지난해에도 보고 지지난해에도 보던 나무를 바라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니 해마다 똑같은 모습을 본다고 할 텐데, 해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새롭게, 해마다 새로 돋는 잎도 그야말로 새롭습니다. 봄이 새롭고, 하루가 새로우며, 꽃과 잎과 나무가 모두 새롭습니다.



.. 겨울엔 / 겨울 마음으로 설 일이다 ..  (눈사람)



  나뭇줄기를 어루만집니다. 어느 나무이든 지난해와 대면 줄기가 굵고 가지가 넓게 퍼졌습니다. 나무는 해마다 차츰차츰 자랍니다. 봄이 저물고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도 한결 넓어지겠지요.


  나무를 어루만지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무처럼 아이들도 해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지난해에 입던 옷이 올해에 안 맞기 일쑤이고, 봄에 입던 옷이 가을에 안 맞기 마련이에요.


  그러면, 어른은 얼마나 자랄까요. 어른도 몸이 자랄까요. 아니면, 어른은 뱃살이 늘까요. 아니면, 어른은 늘 똑같은 몸으로 나이만 먹을까요. 아마, 어른도 아이처럼 해마다 새로운 철이 찾아온다고 느끼면서 기쁘게 웃으면 한결 튼튼하면서 씩씩한 몸으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퇴직금 봉투를 품에 넣어도, / 서른여덟 나이를 덮기엔 / 옷이 얇아라 ..  (사표 2)



  복거일 님이 쓴 시집 《五丈原의 가을》(문학과지성사,1988)을 읽습니다. 복거일 님이 처음 내놓은 시집이라고 합니다. 한글이 아닌 한자로 ‘五丈原’이라 적는 복거일 님은 서울대 상대를 마치고 은행과 기업체와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1983년에 사표를 내고 ‘오직 글만 쓰겠노라’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회사원을 그만두고 글쟁이가 되는 삶을 놓고 복거일 님은 ‘자유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복거일 님이 쓰는 글에 ‘자유’나 ‘자유인’이나 ‘자유주의’ 같은 낱말이 자주 나옵니다.


  ‘자유(自由)’는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을 ‘자유’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글만 쓰며 살든 회사원으로 살든, 또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든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든, 우리 스스로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뜻을 살리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입니다. 글만 쓰고 살더라도 ‘얽매이는 것’이 있다면 자유가 아닙니다.



.. 빈 책상들을 치우고 / 새 자리를 잡으면, / 삼차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던 入社同期도 / 추억이다 ..  (감원)



  시집 《오장원의 가을》은 자유를 노래한 글일까 궁금합니다.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온 이야기가 흐르는 시, 회사에서 겪은 여러 이야기가 흐르는 시, 추상과 비유가 흐르는 시, 오직 글만 쓰겠노라 외치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 이러한 시는 ‘어떤 자유’일까 궁금합니다.


  한자말로는 ‘자유’인데, 한국말로는 ‘홀가분’입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얽매이지 않으면서 제 마음대로 일구는 삶’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고, 이러한 삶을 ‘홀가분’으로 나타냅니다.


  ‘홀가분’은 “홀로 가벼움”입니다. 홀로 날갯짓을 하며 날듯이, 홀로 삶을 일굴 수 있는 모습이고, 홀로 삶을 일구기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 스스로 옥죄는 짐덩이 같은 무게가 없는 모습이기에 ‘홀가분’입니다.


  홀가분한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참다이 홀가분한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 너를 홀가분하게 맞이합니다. 내가 홀가분하기에, 이 아름다운 홀가분함으로 너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가 홀가분하니까, 다 함께 홀가분하게 꿈을 꾸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 “우리 고향에 있는 얘긴데, 능금을 먹으려면, 삼대가 걸린답니다. 능금나물 심는 사람, 가꾸는 사람, 능금을 따 먹는 사람.” 내 얼굴을 흘긋 살피고서, 박형은 말을 이었다. “지금 능금나물 심어서 따 먹잔 얘긴데…….” 말끝을 흐리면서, 그는 밖을 내다보았다. 나도 따라 내다보았다 ..  (능금나무)



  나는 우리 시골집에 나무를 심습니다. 내가 이듬해나 몇 해 뒤에 따먹을 열매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심는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나무를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돌보면서 저희 아이를 새롭게 낳아서 새롭게 물려줄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똑같이 ‘한 그루’이지만, 나부터 새롭게 마주하고,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마주하며,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도 새롭게 마주할 나무입니다. 같은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모두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나부터 홀가분하고 너도 함께 홀가분한 노래라 한다면, 바로 나무를 심는 노래이리라 느낍니다. ‘나는 자유야!’ 하고 외치는 노래가 아니라, ‘나는 사랑이야!’ 하고 노래하면서,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사랑이야!’ 하고 외치는 노래일 때에 비로소 참다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답게 퍼질 수 있는 씨앗 한 톨이라고 느낍니다.


  복거일 님은 요즈음도 시를 쓸까요? 부디 조용히 시를 쓸 수 있는 넋이 되기를 빕니다. 싸움터에서 조용히 벗어나서, 아름다이 꿈을 꾸는 삶노래꾼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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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6 10:22   좋아요 0 | URL
아..지난 시간 88년 이면 호돌이 굴렁쇠.
늦은 4학년.먼지나는 신작로.무궁화꺽꽂이.
또..내 기억폴더에..뭐가있더라....

숲노래 2015-04-16 11:22   좋아요 1 | URL
88년에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면서
나라는 그대로 얼어붙고
어디에서나 최루탄 냄새가 자욱했지요...

[그장소] 2015-04-16 11:50   좋아요 0 | URL
그들은 그저 바톤 터치만 할 뿐 이란걸..새삼스럽게...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
를 읽다..웃다 울다..그랬어요.
복거일시인의 시선 번호가88년이면 몇번이 붙는지 몰라도 황시인은 32번 째 문지 시선 입니다.
개정도 있고 재판인쇄도 있으나..그건 그렇다 치고 83년9월
자서를 시작으로 열죠.만
웃어요.그저..시간의 흐름을 막론하고 어쩌면 지금 현대를 그대로 읊나..
싶어서. 이런 시간차 공격을 뭐라 표현하는가 싶어서..서늘해지죠.

숲노래 2015-04-16 17:23   좋아요 1 | URL
먼 옛날도 없이
오늘도 없이
늘 흐르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이 시집을 새삼스레 읽는 동안
`1980년대 첫무렵에 회사에 사표를 쓰고 당차게 나온` 그분이
오늘은 어떤 일을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6 17:45   좋아요 0 | URL
아..모든 글을 업으로 사는 이들은..시대를 타고 난다 아니 산다..던가?요.. 그것이 저항이든 순응이든...
 
날랜 사랑 창비시선 134
고재종 지음 / 창비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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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1



시와 나락섬

― 날랜 사랑

 고재종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5.5.10.



  요즈음 시골에서는 헬리콥터를 흔하게 봅니다. 어느 때가 되면 마을마다 헬리콥터가 여러 대 떠서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골골샅샅 날아다닙니다. 마을에 헬리콥터가 뜨면 집집마다 대문과 창문을 꼭꼭 닫습니다. 지지난해까지는 헬리콥터가 뜰 무렵 면소재지에서 면내방송을 해서 장독 뚜껑도 닫으라고 알렸으나, 지난해부터는 헬리콥터가 뜨든 말든 면내방송을 아예 안 합니다.



.. 모진 돈들막 귀영치의 / 씨톨 하나도 깨우는 속삭임이여 / 논두렁 밑 양지녘엔 / 벌써 저리 냉이꽃 반짝이네 ..  (우수)



  요즈음 시골에서 뜨는 헬리콥터는 ‘농약 뿌리는 헬리콥터’입니다. 이제 시골마다 할매와 할배 나이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야말로 요즈음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손수 농약을 뿌리기 어려운 몸이 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 말씀으로는 ‘마음 같아서 날마다 농약을 뿌리’고 싶다는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마을마다 돈을 모아서 농협 헬리콥터를 빌립니다. 조금 덜 늙은 할매와 할배는 경운기를 끌고 손수 농약을 뿌리지만, 많이 늙은 할매와 할배는 돈을 들여 헬리콥터를 부르고는 신나게 농약을 뿌리도록 시킵니다.



.. 사람의 한평생은 아름다워라 / 윗논에서 논을 갈던 칠순 박영감 / 옆논에서 보리 베는 김영감 불러 / 한됫박 탁배기를 나눠 마시듯 ..  (새참)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빨래를 걷어야 하고, 아이들을 모조리 집으로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헬리콥터는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골골샅샅 돌아다니니, 농협 일꾼이 낮밥이나 샛밥 먹느라 살짝 쉬는 때에도 빨래를 내다 널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조차 나가 놀지 못하고 맙니다. 농약 뿌리는 때가 되면 아예 마을을 떠나서 도시로 나들이를 갑니다. 헬리콥터 소리가 귀청을 찢기도 하고, 농약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우며, 빨래이든 집안일이든 도무지 할 수 없는데다가, 아이들은 시골에 살면서도 바깥에서 뛰놀지 못합니다.


  별이 돋는 깜깜한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아직도 농약 냄새가 자욱합니다. 재채기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농약 헬리콥터가 돌아다닐 때부터 온 마을이 고요합니다. 헬리콥터 소리를 빼고는 아무런 소리가 없습니다. 개구리도 더 노래하지 않고, 제비도 몽땅 사라지며, 흔한 참새와 까치마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습니다. 헬리콥터가 뿌리는 농약은 온갖 풀벌레를 싸그리 죽이고, 풀벌레를 잡아먹는 새까지 몽땅 죽음길로 내몹니다.


  농약 뿌리는 헬리콥터가 온 마을과 들과 숲을 휩쓴 뒤에는 시골에 아무런 소리도 노래도 없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그저 경운기 소리와 마을방송 소리만 덩그러니 울릴 뿐입니다. 나비와 벌도 사라집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시골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도 목소리도 듣기 어렵습니다.



.. 나락섬에 불을 지르고 돌아온 이제풍씨 / 속 끓는 아내가 차려주는 쌀밥을 먹는다 / 울대를 치는 오열도 함께 꼭꼭 씹어서 // 군청에 농기계를 반납해버린 오근선씨 / 군청 앞 식당에서 김칫국에 쌀밥을 먹는다 / 가슴 뿌리부터 치밀어오르는 걸 애써 누르며 ..  (오늘도 쌀밥을 먹는다)



  고재종 님이 빚은 시집 《날랜 사랑》(창작과비평사,1995)을 읽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아재가 빚은 시집입니다. 늘 흙을 만지고 밟고 보듬고 돌보면서 삶을 일구는 고재종 님이니, 아무래도 고재종 님 싯말은 흙말이 됩니다. 흙에서 길어올린 노래요 시이며 이야기입니다. 흙을 먹으면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시입니다.


  문득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요즈음에는 시골에서 흙 만지면서 시를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흙 만지면서 시를 쓰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흙 만지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도 대단히 드뭅니다. 흙 만지면서 춤·노래를 펼치거나 연극·영화를 이루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흙 만지면서 교사나 교수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흙 만지면서 시장이나 군수 일을 하는 사람은 있을까요? 흙 만지는 국회의원은 있을까요? 흙 만지는 법관이나 의사나 공무원은 있을까요?



.. 내 마음의 불타버린 작은 숲에는 / 세월의 바람을 정갈하게 빗질하던 / 고고한 솔 한그루 자라지 / 않는다, 거기 동박새며 뱁새떼 / 우수수 오르고 우수수 내리던 / 잡덤불 속 생의 따뜻한 숨결은 어디 / 갔는가, 꿈의 산정을 치닫던 노루 한마리 ..  (불타버린 숲에서)



  흙을 만지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는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시골지기 삶을 헤아리는 정책이나 문화나 행정이나 교육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한테 시골일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일은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학교는 모든 아이가 오직 서울이나 큰도시로 나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고록 하는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시집 《날랜 사랑》을 조용히 읽습니다. 앞으로 흙내음이 감도는 시는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시를 쓰겠노라 당차게 외칠 만한 사람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면서 시를 배우려는 젊은이 말고, 시골에서 손수 흙을 가꾸면서 시를 익히려는 젊은이는 나올 만할까 궁금합니다.



.. 노타리 쳐서 물 방방히 실어놓은 / 내일쯤엔 모낼 논에 / 어디선가 날아내린 흰 고니 두 마리 / 그 긴 부리로 무언가를 콕콕 찍어댄다 ..  (문득)



  모든 사람이 꼭 흙을 만져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흙에서 자란 밥’을 먹습니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흙에서 자랍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에서 자라는 나락은 없습니다. 딸기도 수박도 참외도 토마토도 능금도 포도도 모두 흙밭에서 자랍니다. 요새는 소와 닭과 돼지한테 사료와 항생제만 먹이지만, 예부터 모든 고기짐승은 짚이나 풀을 먹었습니다. 풀과 곡식을 먹을 적에도 ‘흙’을 먹는 셈이요, 고기를 먹을 적에도 ‘흙’을 먹는 셈이에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우리는 늘 흙을 먹는 삶이니, 흙을 만지지 않는다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흙을 만지지 않아도 삶을 이루지만, 흙을 만지지 않으면 삶을 삶결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뿐입니다.


  시골지기가 나락섬에 불을 붙여서 태우는 아픔이나 생채기를 함께 느낄 만한 ‘도시 이웃’을 그려 봅니다. 시골지기가 농약을 쓰도록 부추기는 현대문명을 헤아려 봅니다. 시골지기와 어깨동무를 하려는 ‘도시 이웃’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가만히 손을 꼽아 봅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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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꽃씨 하나 창비시선 80
서홍관 지음 / 창비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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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6



제비춤 만나는 새봄

― 어여쁜 꽃씨 하나

 서홍관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9.9.15.



  요즈음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제비를 볼 길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도시로 찾아오는 제비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비는 지난해에 묵은 제 둥지로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도시는 끝없이 재개발과 재건축을 할 뿐 아니라, 제비 같은 새가 잡아먹을 애벌레나 날벌레가 사라져요. 자동차와 공장이 지나치게 많고, 풀숲이나 나무숲이 자취를 감추지요. 이런 도시는 제비뿐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도 메마르거나 팍팍하기 일쑤입니다.



.. 이제 네가 바라볼 것은 / 늦겨울 파릇하게 자라나는 보리싹과 / 봄날 강언덕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 들쑥무더기 같은 것들이니 ..  (민들레 2)



  제비가 찾아갈 수 없는 도시이지만, 도시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크기가 줄어드는 도시는 없습니다. 크기를 줄이려 하는 도시도 없습니다. 도시로 몰리는 사람은 끝없이 늘기만 합니다. 도시에 깃든 사람은 도시에서 빠져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도시에 발을 들였으면, 죽어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도시에만 머물려 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바퀴벌레와 모기와 파리를 빼고는 도무지 도시에서 못 살겠다고 하는데, 왜 사람은 도시로 몰리려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바퀴벌레와 모기와 파리를 빼고는 도시에서는 숨이 막혀서 거의 다 죽어 버리거나 미쳐 버리는데, 왜 사람은 도시를 붙잡고 안 놓으려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쩌면, 사람도 도시에서 죽어 버리거나 미쳐 버린 탓에 도시를 못 벗어나지는 않을까요.



.. 이 나라에서는 /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연다고 / 총경비 2조 4천 4백억원이나 들여서 / 외국인선수들 숙소에는 냉난방과 오락시설까지 갖춰놓고 / 우리 산업근로자들의 작업장에는 / 배기시설 안전설비도 안해놓고 / 수은을 먹건 카드뮴을 먹건 내버려둔다면서요 ..  (송면이가 떠나가요)



  시골에서 살기에 제비를 만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예전에는 손으로 짓는 시골일이었으나, 이제는 기계로 만드는 시골 ‘농업’이나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은 온통 기계투성이에 비닐투성이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사람 손길을 타는 땅은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온갖 곳에 농약을 뿌려대니, 사람이 손을 뻗어 흙을 만질 일이 없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마늘이나 파를 뽑을 적에는 손을 쓰겠지요. 그러나 농약투성이 밭뙈기와 논자락을 맨 살갗을 대면서 만지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도 논밭에서 살 수 없고, 개구리와 새도 논밭에서 살 수 없습니다.



.. 들길을 걷노라면 / 찰랑거리는 논물에는 / 물달개비 향기가 좋은데 / 잎잎이 붙은 물잠자리들이 / 달빛에 잠이 깰까 걱정되네요 ..  (넋 건지기)



  서홍관 님이 빚은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사,1989)를 읽습니다. 시집 이름 그대로 ‘어여쁜 꽃씨’를 그리는 이야기를 묶은 책입니다.


  꽃씨는 참으로 어여쁩니다. 새로운 꽃을 품은 씨앗이니 어여쁠 수밖에 없습니다. 꽃씨처럼 사람씨도 참으로 어여쁩니다. 비록 오늘날 이 지구별에는 전쟁무기가 끔찍하게 넘치고, 바보짓을 하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예술과 과학과 종교가 득실거리지만, 이러한 바보짓을 걷어내어 마음바탕을 읽을 수 있다면, 우리 가슴에는 아름다운 사랑씨가 있는 줄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바탕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별에 끔찍한 전쟁이 안 멈추리라 느껴요.



..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 총이 없어 도망쳐 다니는 / 우리집 아이가 안돼 보이기도 하고 / 장난감 총을 가졌다고 위협하고 다니는 / 옆집 꼬마가 괘씸하기도 하다 ..  (장난감 총)



  어른들은 스스로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스스로 손에 쥡니다. 어른들은 전쟁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한테 팝니다. 어른은 참말 서로 죽일 수 있는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아이는 놀이로 서로 죽이는 버릇을 일찌감치 몸에 익힙니다.


  남북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전쟁무기가 남북에 가득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총부리를 겨눕니다. 서로 아끼려 하지 않으니 탱크와 전투기와 폭탄과 미사일을 엄청나게 만듭니다. 서로 보살피거나 헤아리려 하지 않으니 군대를 키우고, 젊은이는 군대에서 썩도록 내몹니다.



.. 청무우 다발 위에는 청무우눈꽃 / 쌓아놓은 볏단 위에는 볏단눈꽃 / 쓰레기더미 위에는 쓰레기눈꽃 /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탱자나무눈꽃 ..  (눈꽃)



  우리한테 핵무기가 있어야 우리가 느긋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핵발전소가 있어야 우리가 전기를 잘 쓸 만하지 않습니다. 핵발전소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세우는 시설입니다. 핵발전소가 있어서 핵쓰레기가 나와야, 이 핵쓰레기로 핵무기를 만들어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핵발전소를 붙잡는 까닭은 군대와 전쟁무기를 붙잡는 까닭과 똑같습니다. 정부에서 군대와 전쟁무기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를 없앨 수 없습니다. 다른 전쟁무기는 그대로 있는데 핵무기만 없앨 수 있지 않아요. 모든 전쟁무기를 한꺼번에 없애려고 해야 비로소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없앨 수 있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도시이든 시골이든 우리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이 되어 기쁘게 노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손길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아름답게 노래를 부를 줄 알 때에, 제비는 도시와 시골 곳곳에 기쁘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제비가 돌아와서 깃들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을 가꿀 노릇입니다.



.. 나라에서는 / 철이네 식구들더러 / 핵우산의 보호 아래 / 편안히 잠들라 했다. // 어느 날 / 큰 나라들이 전쟁을 시작했고 / 서로 단추 몇 개를 누르더니 / 철이네 식구들은 / 곤한 꿈꾸다 사라져버렸고 // 그 후 수십 년 동안 / 그 나라에는 / 먼지만 오래도록 쏟아져내리더니 / 아직껏 풀도 나지 않고 / 새도 울지 않는다고 한다 ..  (핵우산)



  우리 보금자리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리기 좋은 곳이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남북녘 어디에서나 제비춤을 맞이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교사가 되며, 누구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를 쓰고, 누구나 노래를 부르며, 누구나 삶을 짓는 아름다운 숲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월에 사월꽃을 그리면서 밭자락에 어여쁜 꽃씨를 심을 수 있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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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속에서 잠자다 창비시선 143
김진경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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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말하는 시 90



시와 꿈노래

― 별빛 속에서 잠자다

 김진경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2.28.



  잠이 들 적에 즐겁지 않은 날이 없는 채 삽니다. 고작 십 분이나 오 분만 눈을 붙여야 하더라도, 잠이 들 적에는 늘 즐겁다고 여깁니다. 이 일을 마치지 못했건, 저 일을 마무리짓지 못했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잠이 들 적에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일을 내려놓습니다. 오직 잠 하나만 생각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 밤새도록 소쩍새 울음이 창호지문에 젖는데 불도저 소리가 어둠의 한켠을 꺼내리고 있다 ..  (밤나무를 본다)



  내 삶이 기쁨이면 잠자리에 들면서 기쁜 이야기가 꿈으로 찾아옵니다. 내 삶이 기쁨이 아니라면 잠자리에 들 적에 기쁘지 않은 이야기가 꿈으로 찾아오거나 아무 꿈을 꾸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떠한지 모릅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이러다 보니, 잠자리에 들 적에 아이들과 즐거이 노래합니다. 나로서는 가장 보드라우면서 따스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잠자리에서 두 아이를 왼쪽과 오른쪽에 누여서 늘 자장노래를 부르는데, 내 목소리가 이토록 곱고 맑으며 싱그러운가 하고 놀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자라는 사이 내 목소리는 자장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부를 적에도 제법 들어 줄 만합니다. 다만, 들어 줄 만하다 하더라도 훌륭하거나 멋있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나도 이만큼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과 웃고 놀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 가을이 와서 / 노랗게 물들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  (은행나무)



  삶은 늘 꿈대로 이룬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꿈을 꾸는 대로 내 삶이 나아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꿈을 꾸지 않는다면, 내 삶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합니다. 나 스스로 꿈을 지으려 하지 않으면, 나로서는 내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해요.


  꿈을 꿀 수 있을 때에 내 길을 걷습니다. 꿈을 꿀 수 있기에 내 노래를 불러요. 꿈을 꿀 수 있는 하루이기에 내 사랑을 내 마음속에서 길어올립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자랑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나를 추켜세울 일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꿈을 꾸면서 내 삶을 짓고 내 하루를 누립니다.



.. 억지로 술을 마신 날 / 담벼락 밑에 헛구역질을 하다가 / 담장 위로 보랏빛 눈을 뜬 수수꽃다리 ..  (낙타, 수수꽃다리 핀 골목에서)



  김진경 님 시집 《별빛 속에서 잠자다》(창작과비평사,1996)를 읽습니다. 김진경 님은 별을 우러르면서 어떤 꿈을 빌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김진경 님이 스스로 바란 꿈은 어느 만큼 김진경 님 삶으로 드러났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빚잔치로 허덕이던 아픔을 이제는 씻으셨을까요. 아이와 놀지 못한 채 아이를 시무룩한 얼굴로 유치원에 보내던 앙금을 이제는 씻으셨을까요. 가난도 사회운동도 이제는 이럭저럭 말끔하게 털거나 씻으셨을까요.



.. 어릴 적 빚 받으려는 아주머니들 학교로 찾아와, 수업 대신에 등나무 아래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행방을 모른다거니, 맹랑한 놈이라거니, 사람의 소음에 지쳐 귀를 닫으면 멀리서 뻐꾹새소리 들렸다 ..  (칡꽃)



  아픔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픔은 좋지 않습니다. 앙금이나 얼룩이나 생채기는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고 앙금이나 얼룩이나 생채기가 있어야 좋지 않습니다.


  아픔은 아픔일 뿐입니다. 앙금은 앙금일 뿐이에요. 내가 걸어가려는 길에서 겪거나 부딪히거나 만나는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멀리할 까닭도 가까이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내 꿈을 짓고 내 삶을 가꾸면서 내 넋을 사랑하면 됩니다.



.. 따뜻한 봄날 아침 철책 따라 길을 걷다가 병사에게 지명의 유래를 물으니 모른다 한다.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찔러총을 하는 병사들의 군홧발에 밟히는 노란 민들레 ..  (안인포구)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이불을 말리고 아이들 손발을 씻깁니다. 밥을 차려서 아이들과 곁님을 먹이고, 부엌과 마루를 치웁니다. 온갖 일을 건사하느라 하루가 바쁩니다. 모든 일을 돌보느라 눈알이 빙그르르 돕니다. 그러나, 이런 일과 저런 살림을 맡으면서 노래를 하고 웃으며 춤을 춥니다. 참말 나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면서 춤을 추어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춤추고 노래하면서 밥짓는 모습을 늘 지켜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빨래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언제나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잠자리뿐 아니라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도 으레 노래하는 모습을 노상 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늘 노래를 불러요. 놀면서도 부르고,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목이 아파서 노래를 그만 부르면 아이들이 뒤이어서 부릅니다. 나는 아이들을 재우려고 자장노래를 부르지만, 요새는 내가 아이들 노래를 들으면서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입니다.



.. 봉천동 가파른 계단 / 유치원 종일반에 가기 싫어 칭얼대는 / 아이를 업고 내려간다 ..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



  삶은 재미있습니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되기에 재미있습니다. 삶은 슬픕니다. 스스로 슬프다고 여기는 마음이 되기 때문에 슬픕니다.


  어떤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해요. 어떤 사랑으로 삶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해요. 어떤 생각을 마음에 심으면서 삶을 사랑스레 노래하고 싶은지 스스로 헤아려야 합니다.


  꿈이 되고 노래가 되는 삶입니다. 꿈과 노래를 고스란히 삶으로 드러내는 하루입니다. 우리 함께 시를 써요. 내 이야기를 시로 쓰고, 내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어요. 내 이야기를 노랫가락에 담아서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이 땅에 까만 씨앗으로 심어요.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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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시선 169
박영근 지음 / 창비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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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5



눈 감은 하루, 눈 뜨는 모레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박영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7.11.20.



  모처럼 아침에 해가 납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립니다.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골고루 이 몸에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온갖 멧새가 부산스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아침에 우리 집 뒤꼍에 서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 안개는 제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붙잡고 / 죽음의 기억까지 녹슬게 하고, / 우리는 찌그러진 반합통 같은 얼굴로 / 지난밤의 총탄이 박혀 있는 나무둥치와 / 몇 마리 오소리들을 보고 돌아서곤 했다 / 살아 붙잡을 것은 물소리밖에 없었던 / 내 마음의 대암산 / 이십년이 흘러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 귀울음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울려오는 선무방송 ..  (대암산)



  아침에 해바라기를 하면서 뒤꼍을 걷다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빨래를 신나게 해야겠구나. 아이들 옷을 모두 새로 갈아입힌 뒤 기운차게 빨래를 해야겠구나.


  볕이 나는 하루이니, 낮에는 이불을 내다 널 수 있을 테지요. 볕이 고운 하루라면, 아이들과 들마실을 다녀올 수 있겠지요. 엊저녁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들마실을 하는데, 바야흐로 논마다 유채꽃이 무르익으려 하면서 꽃내음이 짙습니다. 날마다 유채꽃이 곱게 올라올 테고, 들을 가득 채운 유채꽃물결이 우리 몸을 감싸면 새로운 봄빛으로 물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 철조망 녹슬어가는 높은 담장 안에 / 비무장한 나무들이 / 새 둥우리 하나 지키고 있다 ..  (용산에서 1)



  해가 있기에 삶이 있습니다. 해가 없으면 삶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삶이 있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숨이 막혀서 죽으니, 이때에도 삶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기에 삶이 있습니다. 비만 내리면 그예 축축하게 젖고 말지만, 꾸준하게 비가 내려 주어야 냇물이 흐르고 샘물이 솟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가 함께 있으니 흙이 기름지고,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별에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 오래 떠돌던 마음이 빗소리 속에서 집을 짓는다 // 새 한마리 / 배롱나무 가지 끝에서 / 비 그친 하늘 / 젖은 허공 한뼘을 물고 있다 ..  (빗소리)



  박영근 님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1997)를 읽습니다. 이 시집이 나올 무렵, 나는 강원도 양구에 있는 군대에서 볼볼 기어다녔습니다. 박영근 님은 대암산이라고 하는 곳을 시에 쓰는데, 나도 대암산이라는 곳에서 총을 들고 밤을 새야 한다든지, 삽을 들고 땡볕을 쬐면서 길을 다져야 했습니다. 비가 오면 물골을 내야 했고, 눈이 오면 눈을 퍼서 차곡차곡 쌓아야 했습니다.



.. 꽃 이운 자리에서 / 새까맣게 익은 꽃씨가 / 바람 속으로 / 떨어지고 있다 ..  (입추)



  사회나 정치에서는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고 말합니다. 군대에 들어가는 사내도 이 말에 젖어들기에, 휴가를 나오거나 전역을 하면 ‘군인이 나라를 지킨다’고 말한다든지 ‘내가 나라를 지킨다’고 읊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군인은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인은 제가 깃든 군부대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제자리에 맞게 착착 끼워맞추는 톱니바퀴 구실을 하면서 그곳에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허수아비 구실을 합니다. 군인이 되는 젊은 사내는 ‘머릿속에 모든 생각을 지운’ 뒤, 나라(중앙정부)에서 시키는 짓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되어 사회로 돌아갑니다.


  이리하여, 사회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를 반깁니다. 왜 반길까요? 군대 마친 사내는 군대에서 계급과 신분과 위계질서에 길들었기 때문에, ‘웃사람이 시키는 짓’을 척척 잘 따르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구실을 잘 합니다. 사회 조직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한테 ‘군 가산점’을 주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조직이 맡은 몫이란 ‘사람을 톱니바퀴처럼 짜맞추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얽매이는 일’이니까요.



.. 오밤중 두시 무렵 / 짓다 만 신축공사장 빈터 / 취한 내가 / 허리도 팔다리도 꺾고 / 쭈그리고 앉아 / 홀로 사위어가는 모닥불을 쬔다 ..  (모닥불)



  노동자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일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지, 노동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말과 한자말로 서로 갈리는 대목이 있기도 할 테지만, 사회 얼거리를 보면, 참말 노동자는 일꾼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은 ‘공장 톱니바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자리에서는 ‘사용자가 시키는 일만 똑같이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도 ‘노동자’나 ‘근로자’는 될 테지만, 공무원이나 교사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공무원과 교사도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 스스로 ‘새로운 삶을 짓는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노동자는 공장에서 톱니바퀴입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을 만들거나 지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이 팔아치워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공산품’을 똑같이 꿰어맞추는 몸짓으로 지내야 할 뿐입니다. 사용자가 노동자한테 바라는 것은 ‘몸뚱이’일 뿐, ‘머리’가 아닙니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머리 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바람에 / 구름 속 되살아나 / 비껴오는 / 한오라기 햇살 // 마저 그리움도 벗고 / 홀로 가거라 / 죽어 / 한점 비유도 없이 / 허공에 ..  (尹金伊)



  노동자가 노동자로만 남으려 한다면 노동자한테는 아무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가 우리한테 붙이려 하는 이름인 노동자’라는 허울을 벗고 ‘스스로 삶을 짓는 일꾼’이라는 이름을 손수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사랑스레 삶을 찾고, 아름답게 일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버는 회사 조직이 아니라, 삶을 짓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름(직책이나 지위)을 얻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사랑을 가꾸는 하루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부터 다 함께 눈을 떠서 이 지구별을 환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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