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마이노리티 시선 5
이한주 지음 / 갈무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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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하는 내 이웃
[시를 노래하는 시 35] 이한주, 《평화시장》

 


- 책이름 : 평화시장
- 글 : 이한주
- 펴낸곳 : 갈무리 (2000.3.10.)
- 책값 : 5000원

 


  장모님과 옆지기는 김치를 담그느라 부산하고, 아이들은 뛰노느라 바쁩니다. 장모님과 옆지기는 김치를 담그면서 김치내음이 온몸에 흠뻑 배고, 아이들은 뛰놀면서 땀내음이 온몸에 물씬 뱁니다.


  나한테는 어떤 내음이 날까 생각해 봅니다. 밥을 먹으면 밥내음이 날 테고, 술을 마시면 술내음이 날 테지요. 떡을 먹으면 떡내음이 날 테며, 두부를 먹으면 두부내음이 나겠지요.


  풀을 즐겨먹는 사람한테서는 풀내음이 납니다.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한테서는 고기내음이 납니다. 흔히, 세겹살 구워먹은 다음 옷에 고기내음이 밴다고들 말하지만, 옷에만 고기내음이 배지 않아요. 온몸에 고기내음이 배어요. 왜냐하면, 내가 먹은 세겹살은 내 뱃속을 거쳐 내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거든요. 세겹살은 내가 되고, 나는 세겹살이 돼요. 그러니까 스스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어요. 화학조미료를 먹는 사람은 스스로 화학조미료가 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먹는 사람은 스스로 자동차 배기가스가 됩니다. 발전소 매캐한 매연을 먹는 사람은 매캐한 매연이 되고 말아요.


  먹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되듯, 보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됩니다. 듣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되고, 생각하는 대로 내가 그 모습이 돼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란다면, 스스로 ‘어떤 모습인 삶일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해야 해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생각한 다음, 이 아름다운 모습을 누리고 돌보며 가꿀 수 있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 즐겁게 일구어야 합니다.


..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면 / 다음날 아홉시에 퇴근하고 / 아침 아홉시에 퇴근하면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일요일이나 빨간날이나 / 또 그 다음날 아홉시에 출근해야 하는 / 똑딱똑딱 / 스물네 시간 맞교대 / 내가 일하는 날은 / 비가 오지 말아야 하고 / 너무 춥거나 덥지도 말아야 하고 / 가을, 단풍이 너무 흐드러지지 말아야 한다 / 이틀 중 하루는 / 친구나 선배나 후배나 친척들 누구라도 / 아프지도 말며 결혼도 하지 말고 / 그 하찮은 모임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스물네 시간 맞교대 나는)


  의사 집안에서는 의사가 나옵니다. 공장 노동자 집안에서는 공장 노동자가 태어납니다. 농사꾼 집안에서는 농사꾼이 태어납니다. 정치꾼 집안에서는 정치꾼이 태어납니다. 늘 보고 자란 대로 배웁니다. 언제나 마주하며 살아온 대로 젖어듭니다.


  의사 집안이 더 거룩하지 않고, 공장 노동자 집안은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높고 낮은 직업이나 신분이나 계급이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 사회라 한다면,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든, 공장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공장 노동자가 되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 나라가 참말 민주주의 사회가 맞아, 평화와 평등이 꽃피우는 아름다운 삶터라 한다면, 농사꾼 집안에서 자라며 농사꾼 일을 하든, 정치꾼 집안에서 자라며 정치꾼 일을 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길을 걸어가면서 제 넋과 사랑과 꿈을 보듬으면 넉넉합니다.


.. 자르고 깁고 다리고 / 누이들의 눈물로 흐르던 / 복개천의 폐수를 알기에는 / 호기심보다 키가 작았을 무렵 / 발 밑에 돌을 얹어 놓고 / 까치발하며 몰래 넘겨보던 평화시장은 / 빨강 초록 옷가지보다 / 구경거리가 더 많이 널린 / 온통 내 희망이었습니다 ..  (사랑법 8―청계천 평화시장)


  나는 고운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이녁한테 고운 이웃이 되고 싶거든요. 나는 착한 동무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당신한테 착한 동무가 되고 싶어요. 나는 참된 살붙이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나 스스로 우리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얼크러지는 참된 삶을 누리고 싶어요.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빛을 바라봅니다. 어둠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둠을 바라봅니다. 꿈을 바라보는 사람은 꿈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처럼, 모두들 돈을 바라보도록 내모는 곳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돈만 바라보면서 막상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를 돌아보지 못해요.


  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돈은, 그예 돈입니다. 돈은, 물건을 사거나 팔 때에 주고받는 이음고리입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돈을 치릅니다. 책 한 권을 만들 적에 돈을 치릅니다. 스스로 돈을 좋다고 여기거나 나쁘다고 여기면, 그만 ‘돈수렁’에 빠집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돈이기에, 꾸밈없이 돈을 돈대로 바라보며 마주하기만 하면 돼요.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숲을 바라보면서 늘 똑같이 여깁니다. 시골숲이라서 더 좋지 않고 굳이 나쁘지 않습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말마디로 시골숲을 금그을 수 없어요. 시골숲은 시골숲이에요. 풀이 자라고 나무가 크며 새들이 둥지를 트는 시골숲입니다. 하늘빛 파란 무늬를 눈부시게 올려다보는 시골숲입니다. 냇물이 쪼르르 흐르며 맑은 기운 뽐내는 시골숲입니다. 기름진 흙에 온갖 풀이 마음껏 자랍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갖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개구리도 뱀도 시골숲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잡니다. 시골숲은 사람이 먹고사는 밑바탕이 됩니다. 시골숲은 모든 짐승을 살찌우는 밑터가 됩니다. 시골숲은 어떤 풀이나 나무라 하더라도 넉넉히 껴안아 품에 보듬는 밑자리가 됩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울타리를 씌울 수 없는 시골숲은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는 너른 멧골과 같습니다. 너른 멧골은 푸른 들판과 같습니다. 푸른 들판은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같습니다.


.. 동대문 지하철역 다번 출구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수원행 막차가 지날 때까지 개떡쑥떡팥떡을 풍채만큼 넉넉하게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실 거예요 오실 때쯤이면 누런 변또에 김치뿐인 점심을 드실 시간이겠군요 살짝 목례라도 하고 계단을 마저 오르면 한일은행이 보이지요 은행 옆길, 언제나 개나리처럼 노오랗게 웃어주시는 김씨 아주머니의 꽃집을 따라 고사리 손등처럼 오막조막 시장이 펼쳐지지요. 과일가게 대원식당 구두가게 옷가게 창신이발관 떡볶이집이 숨차게 놓여 있고요 마주보는 떡집과 옷가게 사이 파도 팔고 고등어도 팔고 떨이 사과도 파는 손수레들이 노란색 중앙선으로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들고 있지요 ..  (창신동―평화의 집)


  나와 어깨동무하는 이웃은 누구인지 헤아려 봅니다. 나를 둘러싼 이웃은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내 이웃은 어떤 숨결일까요. 내 이웃과 이웃한 다른 이웃은 어떤 꿈결일까요. 저마다 어떠한 마음 되어 어떠한 노래를 부르는 하루를 누릴까요.


  도시는 나쁘고 시골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도시는 좋고 시골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시는 도시일 뿐이요, 시골은 시골일 뿐입니다. 그저,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도시는 어떤 곳이며 시골은 어떤 곳인가를 제대로 알아야 할 뿐입니다.


  도시는 시골을 빨아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도시는 모든 땅뙈기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습니다. 도시에는 발전소나 공장 같은 위해·위험시설을 들이지 않습니다. 발전소나 공장 같은 위해·위험시설은 몽땅 도시 바깥이나 시골에 세웁니다.


  도시에는 논밭을 두지 않습니다. 도시는 논밭을 파헤쳐 아파트나 건물로 바꿉니다. 도시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나 기찻길이나 공항을 자꾸자꾸 새로 짓습니다. 도시는 도시를 키우려고 시골을 망가뜨리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다며 시골을 허물어뜨립니다.


  도시는 스스로 먹을거리를 빚지 못해요.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사다가 실어 날라야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한국 시골에서든 아니면 중국이나 칠레나 필리핀 시골에서든, 먹을거리를 돈을 치러 사다가 실어 날라야 합니다.


  도시는 학교를 짓습니다. 도시에 지은 학교는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도시에 남아 도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장사꾼이 되도록 길들입니다. 도시에 지은 학교 가운데 아이들이 시골숲으로 깃들며 흙을 일구거나 나무를 아끼라고 가르치는 데는 없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시골 어린이집에서까지도,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를 가르치는 데는 없어요.


  시골은 햇살이 있고 바람이 있으며 풀과 나무가 있는 데입니다. 시골은 무지개가 뜨고 뭉게구름이 피어나며 미리내가 노래하는 데입니다. 시골은 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데요, 맨발로 흙을 밟으며 새 숨결을 빛내는 데입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틀로 도시와 시골을 바라볼 까닭이 없습니다. 도시 속살과 시골 속내를 꾸밈없이 올바로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어떤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살아가고 싶은가’를 슬기롭게 깨달아야 할 뿐입니다.


.. 팽이처럼 / 밖으로 밖으로만 나돌다가 / 두루루 / 앞치마를 두르고 / 저녁밥을 짓는다 / 감자도 볶고 / 시금치도 무치고 / 국만 끓으면 / 밥상 가득 들어찰 / 모처럼만의 안식에 / 진득허니 끓어야 한다던 / 콩나물국을 / 몇 번이고 엿보다 ..  (신혼일기 3―일요일)


  이한주 님 시를 갈무리한 《평화시장》(갈무리,2000)을 읽습니다. 이한주 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서울에서 노동시를 쓰는 길을 걷습니다. 서울사람으로서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시 하나로 갈무리합니다.


  이한주 님 시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한주 님 삶을 드러냅니다. 이한주 님 시는 ‘아름답거나 안 아름답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예 이한주 님 넋을 나타냅니다. 이한주 님 시는 ‘읽을 만하거나 안 읽을 만하거나’ 하지 않아요. 온삶 그대로 이한주 님 꿈을 보여줘요.


.. 가난보다 / 서너 발짝 앞서 오는 겨울이 / 발을 뻗어 / 창신동 아랫목에 / 잠시 머무는 사이 / 동화처럼 / 눈이 내리고 / 비탈길, / 아이들은 / 햇살을 주워 봄이 된다 ..  (겨울)


  우리 집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노래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집에서건, 도시로 마실 나온 뒤 찾아가는 아파트나 여러 층짜리 건물에서건 신나게 쿵쿵쾅쾅 뛰고 놉니다. 아래층에 발소리를 내건 위층에 노랫소리를 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신나게 터뜨립니다. 아이들은 저희 가슴속에서 샘솟는 몸짓을 흐드러지게 뽑아냅니다.


  우리 이웃 아이들도 개구지게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이웃 아이들 누구나 목청껏 소리질러 노래를 부르고, 온몸이 부서져라 뜀박질을 하면서 들과 멧골과 숲과 바다에서 흙투성이 개구쟁이가 되기를 빕니다.


  재미나게 놀며 자란 아이들은 재미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이 돼요. 신나게 놀며 큰 아이들은 신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이 돼요. 사랑스레 놀며 손을 맞잡는 아이들은 사랑스레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살가운 어른이 돼요.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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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같은 하루 삶의 시선 25
최성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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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눈높이
[시를 말하는 시 7] 최성수, 《천 년 전 같은 하루》

 


- 책이름 : 천 년 전 같은 하루
- 글 : 최성수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9.18.)
- 책값 : 6000원

 


  졸린 아이는 품에 안아도 잠들지만, 가만히 무릎에 누이고 팔베개를 한 다음 이불로 살포시 덮고 나긋나긋 노래를 부르면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포근하게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이때에 아이 낯빛에는 따사로운 그림 하나 빛나요.


  날마다 두 아이를 갈마들어 재우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어버이 되어 두 아이들 보살필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고맙고 놀라우며 즐거운 삶인가 하고. 내가 아버지 되어 두 아이들 돌볼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재미나며 신나고 멋진 삶인가 하고.


.. 별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바람이 되고, / 바람은 풀이 되고, / 풀은 끝내 저 혼자 흘러 흔적이 된다 ..  (고비에서)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모두 알아듣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낯빛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아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몸짓과 매무새 하나로도 무엇을 하려는가 미리 헤아립니다.


  아이와 마주한 어버이로서 생각을 기울여요. 내가 아이 자리에 서고, 아이가 내 자리에 선다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 하고 생각을 기울여요.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제 고운 짝꿍을 사귄 다음 제 고운 아이를 낳을 무렵, 이 아이가 저희 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이란 바로 오늘 내가 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기울여요.


  서로 눈을 맞춥니다. 서로 마음을 맞춥니다. 서로 생각을 맞춥니다. 서로 사랑을 맞춥니다.


  아이가 먹을 밥이란 어버이가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가 지내는 집이란 어버이가 함께 지내는 집입니다. 아이가 마실 바람과 먹을 햇살이란 어버이가 함께 마실 바람이요 함게 먹을 햇살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일과 놀이를 누려야 기쁠까요. 우리는 어떠한 꿈과 사랑으로 스스로 빛나야 아름다운 숨결일까요.


.. 파키스탄이 고향인 압둘아마드는 이슬라바마드보다 가리봉동이 낯익다며 웃는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흰 이가 환한 그의 웃음은 한국사람과 닮아 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카오티홍니는 시집올 때 가져온 모자 ‘논’을 쓰고 들일 나서고, 비닐하우스 파프리카 농장 바쁜 손 놀리는 네팔사람 크리슈나 라마 부부는 공장 다닐 때 떼인 월급보다 사장의 욕설에 더 가슴이 떨린다 ..  (제비꽃 나라)


  아이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이웃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동무들 눈높이에 서 봅니다. 아이들은 따숩게 건네는 말씨를 반깁니다. 겉으로만 웃는 말씨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스러운 말씨를 반깁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랑스러운 말씨로 노래를 부릅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어른들 누구나 사랑스러운 말씨가 반갑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말씨로 말을 건네면 어느 어른이라 하더라도 달갑지 않아요.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사랑스러운 말씨가 반갑고 즐거우며 흐뭇합니다. 사랑스러운 말씨로 사랑을 꽃피우고, 사랑스러운 말씨로 꿈을 키우며, 사랑스러운 말씨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달콤한 과자나 사탕을 주기에 받아먹지 않습니다. 따순 마음으로 따순 손길 되어 건네는 과자나 사탕이기에 즐거이 받아먹습니다. 따숩지 않은 마음에 따숩지 않은 손길로 건네는 과자나 사탕일 적에는 아이들 마음밭에 ‘사랑’이 따스히 자리잡지 못해요. 그예 달달한 과자나 사탕만 바랄 뿐, 이 과자와 사탕 하나에 깃든 숨결을 읽지 못하고 말아요.


.. 며칠 햇살 좋더니 / 산수유 꽃눈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  (찌른다)


  어른들은 어떤 삶이 즐거울까요. 돈만 많이 주면 즐거울까요. 일삯을 한 푼이라도 더 쳐 주는 데에서 일해야 즐거울까요.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는 메마른 일터에서 일삯으로 돈만 더 쳐 준다면, 이러한 데에서 일할 뜻이나 보람이나 값어치가 있을는지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시험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험공부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더 빨리 더 잘 배워야 하는 영어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숨결을 푸르게 쉬면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고운 목숨입니다. 어른이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어린 나날을 푸르게 살아온 고운 목숨입니다. 곧, 아이와 어른은 같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같아요. 모두 사랑스러운 사람이요, 모두 고운 사람이에요.


.. 학교 옆, / 주택조합 결성 축하 / 현수막이 걸리더니 / 멀쩡한 집 때려부순다 / 쿵 쾅 쿵 쾅 / 몇 번 두들겨대니 / 벽돌빛도 선명한 집 무너져 내린다 / 저 집 짓고 / 마음 넉넉했을 / 누구의 행복도 흩어진다 ..  (폐허―수수꽃다리)


  살아가는 뜻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랑을 빛내는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뜻을 환하고 맑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 눈높이에 서 봐요. 나무 눈높이에 서 봐요. 바람과 햇살과 구름 눈높이에 서 봐요. 흙과 풀과 꽃 눈높이에 서 봐요.


  나는 어떤 눈높이로 내 이웃과 동무를 만나는 사람인가요. 나는 어떤 눈썰미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사람인가요. 나는 어떤 눈결로 내 이웃과 동무랑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인가요.


  풀벌레와 멧새와 개구리 노래하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풀잎에 앉은 이슬이 천천히 마르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제비가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다 주며 날갯짓하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자전거가 들길을 가르며 쏴아 일으키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나는 아이들과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우리 아이들 둘레에서 살아가는 동무는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어떤 소리를 즐길까요.


.. 셋째 시간, 하늘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 눈발 퍼덕이기 시작한다 / 첫눈이다 / 아이들 모두 소리 지르며 창가로 몰려간다 / 나도 책 덮고 날리는 눈 바라본다 ..  (첫눈)


  교사 최성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천 년 전 같은 하루》(삶이보이는창,2007)를 읽습니다. 최성수 님은 교사라는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서 이웃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서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봅니다. “잎새들이 / 새봄을 만든다(여린 잎새들 자라나)”고 하는 노래를 헤아립니다. 참말 잎새들이 새봄을 만듭니다. 그러면, 잎새는 누가 만들까요. 잎새를 만나는 님은 누가 만들까요.


  나는 무엇을 만들까요. 나는 어떤 숨결을 지을까요. 나는 어떤 사랑을 빚으면서 하루를 일굴까요.
  나를 만든 손길을 그립니다. 나를 만든 손길은 어떤 기운이었을까요. 내가 무엇인가 만드는 손길을 그립니다. 내가 무엇인가 만들 적에 내 손길에는 어떤 기운이 묻어날까요.


.. 영월 법흥사 절터 앞에는 / 작은 개울 하나 있지요. // 발 시리게 찬 그 물에 / 버들치 마을 이루고 살지요 ..  (법흥사 버들치―어머니 6)


  삶을 그리기에 시를 씁니다. 삶을 꿈꾸기에 사랑을 나눕니다. 삶을 즐기기에 책을 읽습니다. 삶을 아끼기에 서로 어깨를 겯으며 씩씩하게 이 길을 걷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아끼고, 아이는 어머니를 아낍니다. 어머니는 풀 한 포기를 돌보고, 풀포기는 어머니 손등을 쓰다듬습니다. 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땀을 훔치고, 하늘은 어머니 이마를 곱게 어루만집니다.


  시를 낳는 가슴은 포근합니다. 시를 읽는 마음은 넉넉합니다. 서로 포근한 가슴이 되어요. 다 함께 넉넉한 마음이 되어요. 시를 읽을 수 있을 때에 사랑을 읽을 수 있어요. 시를 쓸 수 있을 때에 꿈을 쓸 수 있어요. 4345.1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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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의 모국어 민음의 시 180
이기철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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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꿈
[시를 말하는 시 6] 이기철, 《나무, 나의 모국어》

 


- 책이름 : 나무, 나의 모국어
- 글 : 이기철
- 펴낸곳 : 민음사 (2012.2.24.)
- 책값 : 8000원

 


  비인지 눈인지 얼음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밤입니다. 아마 다른 데에는 눈이 내리겠구나 싶은데, 하루 내내 구름 잔뜩 낀 날씨였습니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 빨래줄 기저귀는 빨래집게를 꽂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해도 들지 않으면서 바람도 불지 않으니, 빨래를 말리기에는 더없이 궂은 날입니다. 옷가지를 마당에 넌대서 빨래가 마를 듯하지 않아, 낮 두 시부터 빨래는 집으로 들입니다.


  낮이 기울어 저녁으로 넘어설 무렵 두 아이와 자전거마실을 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 어느 길로 달려도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쌀쌀한 기운도 다른 날보다 한결 적게 느낍니다. 그래도 손이 시려 얼어붙습니다. 이제 장갑을 끼고 자전거를 탈 철인데, 자꾸 잊습니다.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바람소리 들리지 않으니, 작은아이 곁 큰아이랑 자전거 이끄는 아버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데,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얘기합니다. “이제 노래 그만 불러 줘요. 보라(동생 이름) 자니까요.”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 구름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겼을까요. 멀찍이 떨어진 데에서 바라보니 ‘구름덩이’일 텐데, 훨훨 날아 구름 곁에서 바라본다면 구름덩이란 ‘물방울이 무리지은 모습’으로 느낄 수 있을 테지요. 우리 눈으로는 한 덩이를 이룬 모습으로 보지만, 구름은 한 덩이 아닌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이룬 어깨동무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내 몸 또한 멀리서 볼 적에는 한 덩이라 할 터이나, 찬찬히 뜯어서 살피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졌고, 수많은 세포는 빈틈없이 이어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포를 이루는 원자나 분자를 따지면 서로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요.


.. 돌이 따뜻해질 때까지 / 돌 위에 앉아 시를 쓴다 ..  (나무, 나의 모국어)


  나는 무엇으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삶은 무엇으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밥이란, 물이란, 바람이란, 햇살이란, 흙이란, 나무란, 풀이란, 저마다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이루는 분자나 원자는 왜 이렇게 서로 가까이 이어지며 나란히 움직일까요. 내 몸은, 구름덩이는, 무지개는, 별은, 잎사귀는, 어쩜 이렇게 어여쁜 모습으로 엮인 채 삶을 누릴 수 있는가요.


  내가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가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국을 끓이며 국을 바라봅니다. 국은 펄펄 끓으며 나를 바라봅니다.


  고즈넉한 밤입니다. 비인지 눈인지 얼음인지 내리기에 훨씬 고즈넉합니다. 들새도 멧새도 이 차가운 물방울에 젖지 않으려고 모두들 깊은 숲이나 굴에 머물며 쉬겠지요.


  이런 날, 새들은 먹이를 어디에서 찾을까요.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새들은 먹이를 못 찾고 벌벌 떨기만 해야 할까요. 시골숲에서 살아가는 너구리나 족제비나 오소리나 삵은 저희 삶을 어떻게 꾸릴까요. 토끼나 다람쥐나 노루나 고라니는 저마다 저희 삶을 어떻게 누릴까요.


.. 창을 달자 첫 내방객은 햇빛이다 // 내 시의 첫 글자는 햇빛 / 그 아래서 바람은 생을 건축한다 / 하루는 태양의 분말이라고 쓰고 / 그 뒷 구절은 침묵 ..  (마음 허공에 창을 달다)


  누구나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꿈을 꾸지 않은 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기쁜 꿈이든 서운한 꿈이든, 밝은 꿈이든 어두운 꿈이든, 저마다 스스로 꿈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넉넉히 받으면서 사랑스러운 꿈을 꿉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사랑이 사라진 꿈을 꿉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이웃과 동무한테도 사랑을 퍼뜨립니다. 사랑이 메마른 사람은 이웃과 동무한테도 메마른 가슴을 퍼뜨립니다.


  고소한 밥내음은 멀리멀리 고소한 이야기로 흩어집니다. 고약한 쓰레기내음은 두루두루 고약한 이야기로 흩어집니다.


  말 한 마디는 살가운 꿈처럼 번집니다. 글 한 줄은 서글프거나 아픈 화살처럼 퍼집니다. 한 사람이 빚는 사랑스러운 꿈이 온 사람이 누리는 사랑스러운 꿈이 됩니다. 한 사람이 빚는 퀴퀴하고 어두운 꿈이 온 사람이 누리는 퀴퀴하고 어두운 꿈이 됩니다.


.. 스스로 가슴에 들어와 집을 짓는 이름들 / 그것을 누가 처음 사랑이라 불렀을까 ..  (한 그루의 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기에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이른바 ‘만장일치’라 하지만,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니 모두가 흐뭇해 할 길을 찾지 못할 뿐입니다.


  언제나 가장 바탕이 되는 대목을 살펴야 합니다. 곧 ‘삶’을 살펴야 합니다. 살겠습니까, 죽겠습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길과 죽는 길을 놓고 살펴야 합니다. 살고 싶으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물어야 합니다. 즐겁게 살고 싶은지 슬프게 살고 싶은지를 다루어야 합니다. 웃으며 살고 싶은지 울며 살고 싶은지를 보아야 합니다.


  일부러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애써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왜 이런 슬프고 아픈 길을 가려 할까요. 어떤 슬픔과 아픔이 이녁을 죽음으로 내몰까요.


  꿈을 찾아 사랑으로 보듬을 때에는 누구나 반가이 맞아들입니다. 꿈도 사랑도 아닌 정책이나 제도가 되면, 어쩌는 수 없이 다수결로 나아가고, 이때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생깁니다. 모든 사람이 즐거울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어떤 사람’이 셈속을 챙기는 길로 빠지고 말아요.


  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을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사대강개발을 밀어붙일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미국 군대가 이 나라에 틀어앉아 수많은 무기를 만드는 데에 엄청난 돈을 쓰게 할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입시지옥은 사라질 낌새 없이 더 커지기만 할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 그러면 키 큰 빌딩들이 새를 부르지 못하는데 그 아래 선 나무들이 새를 불러 모으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  (불멸―숲에 들 때)


  꿈을 꿀 때에 사랑을 합니다. 꿈을 꾸며 사랑을 할 때에 시를 씁니다. 꿈을 꾸며 사랑을 할 때에 시를 쓰면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이 피면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이야기가 샘솟으면서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따로 문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따로 시집이 나오며, 따로 문학평론이 있습니다. 따로 시를 짓는 사람이 있고, 따로 시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으며, 따로 시를 배운다는 대학교 학과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정화조를 묻고 상수도를 묻어 수도물을 마십니다. 따로 댐을 짓고 따로 온갖 시설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히는 시설과 공장을 만들’어 물과 바람을 따로 ‘걸러서 먹고 마시’도록 꾀합니다. 처음부터 ‘물과 바람과 흙을 안 더럽히도록 시설과 공장이 없’다면, 누구나 냇물을 떠서 마시고 샘물이나 우물물을 퍼서 마시겠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죽음길로 나아가요. 돈 되는 길이라 일컫지만, 돈이 되는 길은 정작 죽음길이로구나 싶어요.


  왜 커다랗게 공장을 세워 먹는샘물을 페트병에 담아 팔아야 하나요. 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공장을 세우고, 찻길을 닦으며, 짐차로 나르고, 가게 불빛을 밝혀 먹는샘물을 돈으로 사고팔아야 하나요. 전기도 석유도 어떻게 뽑아내어 쓰는가요. 이 모든 품과 겨를과 돈과 흐름을 헤아린다면, 냇물이 그저 냇물이도록 지켜보면서 돌보면, 누구나 가장 맑고 싱그러운 물을 돈 안 들이고 늘 마실 수 있어요. 수도물을 만들고 먹는샘물을 만들면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다른 수많은 사람’은 도시에서 노예처럼 쳇바퀴살이에 허덕이고 말아요.


.. 시집 한 권 살 돈이 없어 온종일 헌책방 돌 때 있었네 / 남문시장 고서점, 시청 옆 헌책방 돌 때 있었네 / 하루에 서른 편 키 큰 서가 아래 지팡이처럼 서서 읽을 때 있었네 / 모두들 서럽고 쓸쓸한 말로 시의 베를 짜고 있었네 ..  (사랑의 기억)


  이기철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나무, 나의 모국어》(민음사,2012)를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무가 ‘내 어머니말’이라고 밝히는데, 나무는 누구한테나 ‘나무말’일 뿐입니다. 풀은 누구한테나 ‘풀말’이요, 바람은 누구한테나 ‘바람말’입니다.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말’입니다. 사람은 ‘사람말’이요, 사랑일 때에는 ‘사랑말’이에요.


  꿈을 꾸는 사람은 ‘꿈말’을 나눕니다. 저마다 삶을 누리며 ‘삶말’을 해요.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우리들은 언제나 ‘목숨말’, 곧 내 온 목숨이 서린 말을 합니다.


.. 겨울에도 파란 마늘잎 미나리잎을 보며 / 저것이 내 국어책이라고 생각했다 ..  (나의 국어책은 들판이었다)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내 글 한 줄 쓰자면, 나는 내 삶을 글로 쓰기에, 스스로 삶을 읽어야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느껴요.


  당신은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나는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당신은 어떤 꿈으로 살아가나요. 나는 어떤 꿈으로 살아가나요.


  시는 꿈입니다. 시쓰기는 꿈쓰기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시를 씁니다. 꿈을 누리는 사람은 스스로 시를 읽습니다. 돌멩이를 만지며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어머니 머리카락을 쓸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아이들 먹을 밥을 차리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별빛 쏟아지는 시골 밤하늘 누리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왁자지껄 시끄럽고 어수선한 서울 한복판에서도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면 사랑이 서린 꿈으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사랑이 없는 채 바삐 몰아치거나 쳇바퀴 돌듯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이녁은 이녁대로 쳇바퀴를 시로 삼아 읽고 쳇바퀴를 시로 씁니다.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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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수도원 민음의 시 100
고진하 지음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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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이 나한테 온다
[시를 노래하는 시 22] 고진하, 《얼음수도원》

 


- 책이름 : 얼음수도원
- 글 : 고진하
- 펴낸곳 : 민음사 (2001.4.9.)
- 책값 : 5500원

 


  서울에서는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아서, 서울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들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려요. 그런데 서울에만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지는 않아요. 부산도 인천도 광주도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많아요.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숱한 먹을거리가 내 앞에 놓여요.


  서울사람은 손에 흙 한 줌 안 묻히고도 밥을 먹어요. 부산사람은 손에 핏방울 하나 안 묻히고도 고기를 먹어요. 인천사람은 손에 바닷물 한 방울 안 묻히고도 물고기를 먹어요. 광주사람은 손에 가시 한 번 안 박히고도 포도랑 능금이랑 대추랑 밤이랑 맘대로 먹어요.


  모두들 손에 아무것 안 묻히면서 배만 불러요. 모두들 손에 무엇을 들고 살아가는가를 돌아보지 않고 잔뜩 먹어요. 이러면서 밥쓰레기가 잔뜩 나와요. 여느 밥집에서도, 여느 살림집에서도, 여느 학교나 기관 급식실에서도, 온통 밥쓰레기예요.


  밥쓰레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니까, 따로 밥쓰레기를 건사하는 공장이 서야 해요. 밥쓰레기가 해마다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하는 한국인데, 정작 한국 ‘식량자급율’은 20%를 웃돌까 말까 해요. 게다가 20%라는 숫자도 쌀 하나 때문이지, 다른 모든 먹을거리를 헤아리면 한국이라는 나라 식량자급율은 1%도 안 된다고 할 만해요.


.. 아침마다 산을 오르내리는 나의 / 산책은, / 산이라는 책을 읽는 일이다. / 손과 발과 가슴이 흥건히 땀으로 젖고 / 높은 머리에 이슬과 안개와 구름의 관(冠)을 쓰는 / 색다른 독서 경험이다 ..  (꽃뱀 화석)


  무언가 느끼는가요. 무언가 일그러진 삶을 느끼는가요. 스스로 엉터리로 살아가는 줄 무언가 느끼는가요. 재벌 우두머리나 관료 몇 사람이나 정치꾼 아무개가 엉터리라는 소리가 아닌, 바로 여느 사람이라 하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일반 시민’이야말로 엉터리로 살아가기에 이 나라가 엉터리로 굴러가는 줄 조금이나마 느끼는가요.


  대통령 한 사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아주 작아요. 정치꾼 삼백 사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조금 많겠지요. 공무원 수십만이 내놓는 밥쓰레기는 훨씬 많겠지요. 그런데, 모든 밥쓰레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부피는 바로 서울에서 나와요. 다음으로 부산이요, 다음으로 대구일 테고, 고양이나 성남이나 용인에서도 엄청나게 쏟아지겠지요.


  시골에는 밥쓰레기가 없어요. 짐승이 함께 먹는 밥이에요. 밥쓰레기가 있는 시골은 없어요. 먹고 남으면 흙으로 돌려보내요. 거름이 되니까 흙이 먹는 밥이 돼요.


  밥을 먹은 사람이 누는 똥오줌도 서울에서는 몽땅 쓰레기예요. 이른바 ‘똥쓰레기’쯤 될까요. 서울 한 곳에서 나오는 똥쓰레기는 얼마나 많을까요. 부산이랑 대구랑 인천이랑 대전이랑 울산에서 나오는 똥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시골에는 똥쓰레기가 없어요. 요사이는 몇 군데를 빼놓고 화학농사를 짓기에 똥거름을 잘 안 쓴다지만, 시골에서는 똥오줌만큼 훌륭한 거름이 없어요.


.. 바짝 말라붙은 섬진강, / 움푹움푹 패인 몇 개의 웅덩이에 / 고인 물이 썩고 있다. / 바위도 자갈들도 썩는지 거무튀튀하다. / 이름뿐인 강, 그렇지만 / 이름 그대로 나그네인 나는 /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 ..  (토지문학공원 5)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서울로 가면서 시골살이가 무너져요. 그런데,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이는 서울은 사람살이가 일어서나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는 말은 누가 지었을까요. 이런 말은 어떤 꿍꿍이로 지었을까요.


  사람들 잔뜩 모인 서울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살이를 이루는가 궁금해요. 사람이 지나치게 모인 나머지, 서로 금을 긋지 않나 궁금해요. 참말 그렇잖아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입으로는 외치지만, 정작 서울사람 스스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금을 그어요. 그런데, 정규직·비정규직 금을 긋기 앞서 장애인·비장애인 금을 그었어요. 장애인·비장애인 금을 긋기 앞서는 대졸자·고졸자·무학자 금을 그었어요. 요사이는 얼굴이랑 몸매로도 금을 그어요. 또, 은행계좌 크기로도 금을 그어요. 자가용 크기로도 금을 긋잖아요.


  모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서울이라 하는데, 정작 사람을 끌여들여서 하는 짓이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삶에 허덕이도록 내모는 짓으로만 보여요. 왜 서로 다투어야 하나요. 왜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나요. 왜 등수와 시험이 있어야 하나요. 왜 서로 겨루고 서로 해코지하고 서로 미워해야 하나요.


  진보도 보수도 부질없어요. 아름다이 살아갈 꿈을 키워야 할 뿐이에요. 거지한테 동냥을 하면서 “이봐, 자네 진보인가? 보수인가?” 하고 물어 보나요.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적에 “이보게, 자네 대통령 누구를 뽑을 텐가?” 하고 물어 보나요. 예배당에서 떨꺼둥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자리에서조차 ‘진보와 보수’ 금은 안 그어요. 다만, 몇몇 예배당에서는 예배를 보아야 밥을 준다 하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누구한테나 밥을 주는걸요. 떨꺼둥이 아닌 사람한테도 밥을 주는걸요. 당신이 진보라면 보수한테는 밥 한 톨 안 줄 생각인가요? 당신이 보수라면 진보한테는 10원 한 닢 안 줄 생각인가요?


.. 수도원보다 오래된 늙은 측백나무, / 한쪽 허파를 떼낸 사람처럼 서 있다 ..  (낙타무릎의 사랑 1, 피정 일기)


  어버이는 누구나 열 손가락이 다 아파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을 턱이 없어요. 팔을 잘라 봐요. 안 아픈가요. 다리를 잘라 봐요. 걸을 수 있나요. 백 마리 양이 있을 때에 한 마리 양이 길을 잃었으면,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야 해요. 아흔아홉 마리를 건사한다고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내동댕이치면, 앞으로는 아흔아홉 마리에서 또 한 마리가 길을 잃을 테고, 아흔여덟 마리에서 다시 또 한 마리가 길을 잃을 테니까요. 모든 양을 골고루 사랑하고 아끼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야 해요. 아름답게 살려고 해야 아름다웁거든요.


  벚꽃이 아름다우면 매화꽃도 아름답겠지요. 장미꽃이 예쁘면 감꽃도 예쁘겠지요. 철쭉꽃이 어여쁘면 부추꽃도 어여쁘겠지요. 모든 꽃은 저마다 곱게 빛나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맑게 빛나요.


  그런데, 서울이든 부산이든, 이 땅에서 도시라 하는 곳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맑게 빛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안 빛날 만한 사람이란 없어요. 안 고운 꽃이 없고, 안 맑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서울은 너무 커진 나머지, 서울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버렸어요. 부산은 지나치게 커진 탓에, 부산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버렸어요.


  돈을 번대서 살아갈 수 있지 않아요.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큰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한대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아요. 꿈을 꾸어야 너그러이 지낼 수 있어요.


  사랑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이듯, 사랑을 나누며 활짝 웃는 어른들이에요. 사랑을 꽃피우며 크는 아이들이듯, 사랑을 품앗이처럼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어른들이에요.


.. 집에 돌아와 신발 끈을 풀어도 내 / 산책은 끝나지 않습니다 / 하루가 천년 같은 나의 하루는 / 이렇게 깊습니다 ..  (이렇게 깊습니다)


  모든 책이 나한테 옵니다. 종이책이 나한테 오고, 삶책이 나한테 오며, 사랑책이 나한테 옵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동안 아이들 조그마한 손길을 타고 콩닥콩닥 뛰는 숨소리가 나한테 옵니다. 이 어여쁜 ‘어린이책’이라고는! 들길을 거닐다 유채풀 한 포기 살며시 뜯어 입에 넣고 냠냠 씹습니다. 유채잎을 타고 봄기운 여름기운 가을기운 살그마니 스며듭니다. 이 어여쁜 ‘풀책’이라고는!


  파란 하늘 올려다보면서 하늘책을 누립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별책을 누립니다. 살가운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야기책을 누립니다. 밥을 지으며 밥책을 누리고, 빨래를 하며 빨래책을 누려요. 온통 책입니다. 온통 사랑이요, 온통 꿈입니다.


.. 뚝, 뚝, 꺾어다 찐 옥수수마다 통통한 벌레들이 / 둥지를 틀고 살았던 흔적이 / 꺼뭇꺼뭇하다 / 나는 마음놓고 옥수수를 뜯어먹는다 ..  (나는 마음놓고 하모니카를 분다)


  시집 하나 펼칩니다. 고진하 님이 쓴 《얼음수도원》(민음사,2001)입니다. 왜 얼음수도원일까 궁금하지만, 고진하 님 스스로 생각하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꿈이 ‘얼음수도원’이니까 이러한 이름을 붙여 이러한 싯말을 길어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얼음을 빗대어 사랑을 말할는지 모르고, 수도원을 빗대어 책을 말할는지 몰라요. 어머니 삶을 돌아보며 수도원을 헤아릴 수 있고, 잎사귀 하나 바라보며 얼음을 떠올릴 수 있어요.


.. 뜸뜨는 밥솥 곁에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 / 밥 냄새는 구수하다 ..  (85쪽)


  스스로 찾는 삶이고, 스스로 찾는 넋이며, 스스로 찾는 책입니다. 스스로 찾는 사랑이고, 스스로 찾는 말이며, 스스로 찾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읽는 책은 ‘내가 읽는 책’입니다. 나는 ‘추천도서’를 읽지 않습니다. 나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읽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책’을 읽습니다.

  내가 사랑할 책이란 ‘백만 사람이 읽었다는 책’일 수 있고, ‘백 사람조차 안 읽고 사라진 책’일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이든 나는 나 스스로 사랑할 만한 책을 찾아서 즐겁게 읽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속에서 사랑 한 줄기 샘솟도록 이끕니다.


  내 삶은 내가 누립니다. 남이 내 삶을 누리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 삶 또한 내 아이들이 누리지 내가 누리지 않습니다. 내 삶은 내가 누리지 내 어버이가 누려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바라보고 싶기에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바라봅니다. 스스로 마주하고 싶기에 아이들 상긋 웃는 얼굴을 마주합니다. 스스로 즐기고 싶기에 늦가을에도 찬바람 맞으면서 들길을 아이들이랑 자전거로 달립니다.


.. 비에 젖어도 푸른 잎새엔, / 비의 지문이 남지 않을 것이다 ..  (뻐꾸기의 지문)


  서울에 깃든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밥쓰레기로 만들지 않으면서 돈 아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에는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산에 보금자리 마련한 사람들이 손수 흙을 만지며 푸성귀 몇 가지를 거둘 수 있을 때에 사람살이가 얼마나 예쁘게 거듭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총칼을 든 혁명으로도 나라를 바꾸겠다면 바꾸겠지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일로도 나라를 고치겠다면 고치겠지요.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이 나라를 바꾸고 이 마을을 고치고 싶어, 내 삶부터 내 손으로 가다듬습니다.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읽습니다. 가을바람 살랑이는 보드라운 결을 느끼면서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 씻기고 나서 아이들 옷가지를 복복 빨아 풀벌레 노랫마디 읊으며 빨래를 넙니다.


.. 펼쳐 읽지 않고 품에 안고만 있어도 좋은 책이 있다 한다. // 그런 품을 지닌 이가 / 지금은 바다를 안고 있다 ..  (그런 품)


  모든 책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그리움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모든 이야기가, 모든 꿈이, 모든 믿음이, 모든 노랫가락이, 모든 손길이 나한테 천천히 다가옵니다.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누렇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들면 하늘은 새삼스레 파랗게 빛날 테며 들판은 푸르게 달라지겠지요.


  숲에서 나무가 자라고, 바다에서 물고기가 헤엄칩니다. 하늘을 나는 제비가 저 먼 바다를 가로질러 우리 집 처마로 찾아들 테고, 옛 보금자리를 손질해서 새로운 새끼를 낳겠지요. 새로운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 아이들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부를 테고, 햇살은 따사롭게 온누리를 감싸겠지요.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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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은 괜찮아요 창비시선 287
차창룡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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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말하기
[시를 말하는 시 5] 차창룡, 《고시원은 괜찮아요》

 


- 책이름 : 고시원은 괜찮아요
- 글 : 차창룡
- 펴낸곳 : 창비 (2008.4.21.)
- 책값 : 6000원

 


  시골에서는 깊은 밤에 마당으로 나오기만 해도 별이 우수수 쏟아집니다. 해가 진 이른저녁에 별빛이 하나둘 돋고, 밤이 깊을수록 별빛이 짙어집니다. 시골 고샅을 밝히는 등불이 없는 들판이나 멧자락으로 들어서면 별무리가 한껏 빛납니다. 마당에서도 미리내를 볼 수 있지만, 들판에서 보는 미리내는 더 또렷해요.


  시골에서는 아침마다 환하게 트는 동을 바라보며 고운 기운을 받아들입니다. 도시에서도 아침마다 동트는 하늘 바라볼 수 있다지만, 으레 이 건물에 막히고 저 아파트에 가려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지하철이 많이 뚫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가더라도 햇볕 한 줌 못 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터가 아예 땅밑이기도 하고, 높고 큰 건물 안쪽에 깃드느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햇살 한 조각 못 먹는 사람마저 있어요.


  사람은 햇볕을 못 먹어도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땅밑 깊은 감옥에 갇혀도 스무 해나 서른 해나 쉰 해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바람을 마실 수 있고 물을 먹을 수 있으면 어떻든 목숨을 이을 수 있어요.


  그런데 퍽 궁금해요. 목숨을 잇는대서 사람이라 할 만할까요. 목숨만 이으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


.. 토방 대신 마당을 방으로 사용하면, 밤마다 하늘이 더욱 가까이 내려온다. 은하수의 강물이 몸속으로 들어와 뱃속에서 꾸르륵거리고, 별빛은 살갗에 박혀 소름으로 돋는다 ..  (마당방)


  참으로 ‘살아가는구나’ 하고 느낄 때에 살아가는 하루라고 느껴요. 참으로 삶을 누릴 때에 삶을 누리는구나 싶어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에서는 삶도 꿈도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해요. 톱니바퀴 하나가 되어 늘 똑같이 움직이는 삶이라면 사랑도 믿음도 못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 중·고등학교 아이들 입에서 아주 거칠고 막되먹은 말씨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고작 열서넛이나 열대여섯밖에 안 된 푸른 아이들 입에서 어쩜 이렇게 슬프고 딱한 말씨가 튀어나올까요.


  곰곰이 살피면, 이제 서너 살이라 할 만한 아이들이 자동차 이름을 줄줄 욉니다. 텔레비전 우스갯소리를 따라서 하고, 온갖 대중노래 춤사위를 흉내냅니다. 어떤 아이는 너덧 살에 영어로 노래를 부릅니다.


  아하, 그렇지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그대로 아이들이 받아먹어요. 어른들이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그대로 아이들이 말해요.


  어른들을 보셔요. 거친 말을 얼마나 흔히 하나요. ㅆㅅㄲ라든지 ㄱㅅㄲ라든지, 또는 ㅆㅎ이라든지 ㅆㅂ이라든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아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지 않으면서 말해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말해요.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은 ‘듣는 이’ 아닌 ‘말하는 이’ 스스로를 깎아내려요. 막된 말을 뱉는 사람은 ‘듣는 쪽’ 아닌 ‘말하는 쪽’ 스스로를 갉아먹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아먹는 줄 모르면서 거친 말을 일삼아요.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벌써 어른인 척해요. 몸뚱이는 크지만 마음그릇은 아주 좁다란 채, 주먹질을 하고 욕질을 하며 발길질을 하고 말아요. 커다란 몸뚱이처럼 마음그릇을 키울 줄 모를 뿐 아니라, 아이들 둘레 어른들치고 ‘큰 어른 몸뚱이에 걸맞는 큰 마음그릇으로 사랑을 나누는’ 분이 몹시 적구나 싶어요.


..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 ..  (고시원에서)


  차창룡 님이 쓴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창비,2008)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차창룡 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내놓았을까요. 이 시집은 시인 차창룡 님 스스로 이녁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글줄이 될까요.


  차창룡 님이 써서 내놓는 싯말 하나는, 잡지에 실리거나 책에 실리는 글이 아닙니다. 차창룡 님이 써서 내놓는 싯말은 바로 ‘차창룡 님 삶을 스스로 노래하고 누리는 말’입니다. 남들 들으라고 쓰는 시란 없어요. 스스로 되읽으면서 삶을 되새기는 시일 뿐이에요.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밝히는 싯말이고 시노래예요.


  어느 잡지나 기관지나 신문에서 시 한 줄 써 달라고 얘기했기에 써서 보내는 시란 없어요. 누군가 나한테 시를 써 달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없으면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못 써요.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면, 누가 써 달라 하지 않아도 백 줄이나 천 줄이나 기쁘게 써요.


..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 하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뵙기 위한 것일 뿐 // 고층아파트도 있는데 왜? ..  (내가 옥탑방을 선택한 이유)


  차창룡 님이 옥탑방도 아파트도 도시도 서울도 아닌 데에서 살아가면 어떤 시를 썼을까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고시원에서 살아가려 하니까 《고시원은 괜찮아요》 같은 시를 쓸 테지요. 스스로 절집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절집은 괜찮아요” 하고 이름을 붙이면서 새로운 노랫가락을 빚겠지요. 숲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숲은 괜찮아요” 하는 이름과 함께 숲내음 숲바람 숲짐승 이야기가 얼크러진 새삼스러운 노랫자락을 펼칠 테고요.


  삶터가 삶을 빚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려 하는 마음이 삶터를 부릅니다. 스스로 어떤 사랑을 바라는가에 따라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스스로 어떤 꿈을 이루려는가에 따라 마을을 돌봅니다. 스스로 어떤 믿음을 펼치는가에 따라 나라를 세워요.


  이를테면, 아인슈타인 같은 이는 군대를 끔찍하게 미워했어요. 아니, 미워했다기보다 ‘지구별에 없어야 할 첫째 것으로 군대를 꼽았’어요. 좋고 싫고 아끼고 미워하고가 아니라, 군대란 지구별을 무너뜨리려고 어떤 검은 우두머리가 만들어 사람들을 바보처럼 꼬드기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자,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편지를 쓰며 어떤 글로 이웃들과 사귀었을까요. 그리고, 시인 차창룡 님은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를 내놓으며 이녁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북돋았을까요.


.. 지하철은 참 신기하다. / 상계동에서 상도동까지, 지도로 보면 아득한데, 노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면, 지하를 헤매고 헤매어 건대입구역에서 지상으로 나와 잠시 한숨 돌리고, 다시 지하로 잠입, 나는 어느덧 상도동에 서 있다. 이처럼 신기한 두더지작전을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은 상상력이 참 풍부한 사람이다. 어떻게 우리이 발밑에 길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  (지하철은 참 신기하다)


  시란, 삶입니다. 시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시읽기란, 삶읽기입니다. 글도 삶이요, 글쓰기도 삶쓰기입니다. 사진찍기란 삶찍기요, 사진읽기 또한 삶읽기입니다. 그림그리기일 때에도 삶그리기입니다. 그림보기 또한 삶보기예요. 노래부르기란 삶부르기입니다. 노래듣기란 삶듣기예요.


  모두 삶입니다. 삶 아닌 것 하나 없습니다. 스스로 바라는 꿈이 시와 글과 사진과 그림과 노래에 실립니다. 스스로 되려는 몸짓이 시와 글과 사진과 그림과 노래에 어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내가 쓰는 시’가 달라져요. 어떻게 살고 싶나에 따라 ‘내가 읽는 시’가 달라져요.


  할 말을 쓰는 시입니다만, 할 말이란 살아가고픈 모습입니다. 살아가고픈 모습을 말로 빚으면서 시가 태어납니다.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 시 한 줄로 드러나고, 내가 사랑하는 모습이 시 두 줄로 나타나며, 내가 살아가는 오늘 모습이 곧바로 시로 그려져요.


  꿈을 쓰면서 시예요. 사랑을 쓰면서 시예요. 삶을 쓰면서 시가 될 테지요. 꿈이 있는 사람은 글로도 시를 쓰고 마음으로도 시를 써요. 사랑이 있는 사람은 글 아닌 노래로도 시를 써요. 삶이 있는 사람은 굳이 글을 안 쓰더라도 눈빛 하나로 아리땁게 무지개빛 시를 쓰고 미리내빛 시를 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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