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창비시선 45
박용래 지음 / 창비 / 198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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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2.8.
노래책시렁 275


《먼 바다》
 박용래
 창작과비평사
 1984.11.5.



  글을 쓰는 자리에 서고 싶다면, 먼저 살림을 하는 자리에 설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엌칼을 쥐고서 도마질을 하여 밥짓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부엌칼·도마·밥·짓다’라는 우리말을 풀이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이런 낱말을 여미어 글을 쓰지 못 해요. 한자를 익히 읽고 한문책을 으레 읽은 사람은 한자말을 듬뿍 담아서 글을 씁니다. 일본말씨나 옮김말씨가 가득한 책으로 배운 사람은 이 말씨가 마음에 가득하니 이 말씨대로 글을 씁니다. 《먼 바다》를 되읽고서 생각합니다. 서른 해쯤 앞서 읽을 적에는 박용래 님이 글이름이나 글에 한자를 숱하게 적어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는데, 서른 해가 지나서 되읽다 보니 거슬립니다.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어린이가 어른이 될 서른 해 뒤라면 아예 못 읽힐 글이 많겠다고 느껴요. 앵두꽃도 살구꽃도 못 볼 뿐 아니라, 나무에서 앵두랑 살구를 따먹지 못 하고, 새가 앵두랑 살구를 쪼는 모습을 못 본다면, 이러한 한살림을 글로 담을 길이 없어요. 우리는 어떤 삶을 글로 여미는 하루일까요? 우리는 어떤 책을 곁에 두면서 어떤 말과 삶과 마음을 바라보는가요? ‘문학에 이름을 남기는 글’이 아닌 ‘아이들이 물려받으면서 삶을 기쁘게 노래하는 글’을 읽거나 쓰거나 나누는 하루인가요?

ㅅㄴㄹ

앵두꽃 피면 / 앵두바람 / 살구꽃 피면 / 살구바람 // 보리바람에 / 고뿔 들릴세라 / 황새목 둘러주던 / 외할머니 목수건 (앵두, 살구꽃 피면/30쪽)

한뼘데기 논밭이라 할 일도 없어, 흥부도 흥얼흥얼 문풍지 바르면 흥부네 문턱은 햇살이 한 말. / 파랭이꽃 몇 송이 아무렇게 따서 문고리 문살에 무늬 놓으면 흥부네 몽당비 햇살이 열 말. (小感/13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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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 박노해 시집, 30주년 개정판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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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2.8.
노래책시렁 273


《풀빛판화시선 5 노동의 새벽》
 박노해
 풀빛
 1984.9.25.



  잘난 분은 잘난 대로 삽니다.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삽니다. 잘난 삶은 높지 않고, 못난 삶은 낮지 않습니다. 다 다르게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배우고 사랑길로 새롭게 나아가는 하루입니다. 잘난 분이 잘난 삶을 고스란히 그리지 않고, 짐짓 거드름을 빼면서 가난을 노래한다면 얼마나 보잘것없을까요. 가난한 이가 가난한 하루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마치 잘난 분들처럼 거들먹거들먹 자랑하려 들면 얼마나 하찮을까요. ‘집짓기’는 낮은일이 아닌데 ‘건축업’처럼 한자말 이름을 붙이면 높은일이 될까요? 《풀빛판화시선 5 노동의 새벽》을 되읽었습니다. 이 노래책을 1992년에 처음 읽었습니다. 그때는 푸름이였고, 푸른배움터(고등학교)에서는 길잡이들이 “너 왜 불온서적을 학교에 가져오니!” 하고 윽박질렀습니다. 서른 해 지난 2022년에 “일하는 새벽”을 그린 노래는 아직도 ‘나쁜책’일까요, 또는 ‘좋은책’일까요? 일하는 사람이었기에 일하는 목소리를 담은 노래책인데, 1984년에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박노해 님도 글바치 흉내로 ‘노동의’ 같은 이름을 붙였을 텐데, 새판으로 낼 적에는 ‘일하는’으로 추슬렀다면 새삼스레 빛났으리라 봅니다. 마음소리는 삶소리요, 마음노래는 삶노래입니다. 새벽에는 이슬이 맺습니다.

ㅅㄴㄹ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데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 요즘 들어 빨래, 연탄갈이, 김치까지 / 내 몫이 되어도 /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천생연분/23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 오래 못가도 / 끝내 못가도 / 어쩔 수 없지 (노동의 새벽/1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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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소를 타고 - 개정판 민음의 시 8
최승호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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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12.8.
노래책시렁 276


《진흙소를 타고》
 최승호
 민음사
 1987.4.15.



  “노래를 하는” 사람은 차츰 줄고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갈수록 늡니다. ‘시·소설·문학’ 같은 이름을 내걸거나 받거나 듣거나 올려야 한다고 여기기에 ‘노래하기’ 아닌 ‘시작(詩作)’이라고까지 아예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는 사람까지 꽤 많습니다. 왜 “기성시인·평론가 입맛에 맞추 시문학 창작”을 해야 할까요? 왜 “오늘 하루를 스스로 노래하는 마음빛을 풀어내기”하고 등질까요? 시골에서도 서울(도시)에서도 자전거나 두 다리나 버스로 움직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요새는 ‘시인도 소설가도 평론가도 기자도 작가도 자가용을 몰기 일쑤’입니다. 부릉부릉 몰기에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침저녁 북새판에 납작오징어처럼 밟혀 보지 않은 이가 무슨 글을 쓸까요? 아기를 낳고 안고 돌보고 사랑하는 하루를 살아내지 않은 이가 무슨 노래를 부를까요? 《진흙소를 타고》를 읽고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늙은 사내’들은 으레 ‘사창가’ 얘기를 글로 쓰더군요. ‘쓰레기 청소부 마씨 = 聖者다운’ 같은 얘기는 그저 구경꾼으로 어깨너머에서, 또는 ‘자가용 차창 밖으로 흘깃 본’ 잔소리입니다. 제 삶을 쓰지 않고, 구경하거나 흘깃거린 바깥모습에 얽매이는 글이 문학이거나 시라면, 우리나라에는 문학도 시도 없습니다.


이제는 늙어 사창가에서도 쫓겨난 이후 / 같이 늙어가는 사내들에게 낡아빠진 몸을 팔려고 / 空山을 쏘다니는 들병이는 들여우 털을 뒤집어썼네 / 달밤에 헌 담요 펴고, 흰 종이컵에 소주 따르며 / 쥐포를 뜯는다, 들병이, 그 혼자 센 머리에 갈대꽃을…… (갈대꽃/24쪽)

쓰레기 청소부 늙은 마씨는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 늙은 말 같은 삶에도 두레질 하지 않고 / 그래서 聖者다운 삶, 쓰레기 청소부 늙은 마씨는 / 왜 허구헌날 이렇게 남이 버린 쓰레기더미에 처박혀서 (쓰레기 청소부 마씨/25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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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산 녹음방초 민음의 시 41
박종해 지음 / 민음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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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12.7.

노래책시렁 272


《이 강산 녹음 방초》

 박종해

 민음사

 1992.3.30.



  살아가는 집이고, 살펴보는 마을이고, 사랑하는 숲이고, 살림하는 푸른별입니다. 하나하나 맞이하면서 살고, 곰곰이 보면서 배우고, 찬찬히 누리며 즐겁고, 함께 살림하면서 빛납니다. 샘을 내면 고단하고, 미워하면 아프고, 싫어하면 거북하고, 등돌리면 바보입니다. 《이 강산 녹음 방초》를 읽으면서 텃마을이라는 자리를 문득 돌아봅니다. 태어나고 자라기에 텃마을일 수 있고, 어느 날 뿌리를 내려서 고이 살아가기에 텃마을일 수 있습니다. 텃마을이란 스스로 보금자리가 있다고 여기는 터전입니다. 서울이건 시골이건 멧골이건 섬이건 들이건 숲이건 내가 나로서 홀가분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하루를 사랑하는 자리이기에 보금자리이고, 이 보금자리를 둘러싼 터전이 텃마을이에요. 즐거이 뿌리내린 터전을 누리면 우리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이 즐겁습니다. 안 즐겁게 붙어서 일하거나 지내야 하면 우리 손에서 태어나는 글이 안 즐겁습니다. 즐거이 삶을 짓는 나날이라면 우리 입에서 피어나는 말이 새롭습니다. 안 즐거이 꾸역꾸역 보내는 나날이라면 우리 손은 자꾸자꾸 글을 꾸며대려고 덧바릅니다. 보금자리를 노래하면 됩니다. 텃마을을 노래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별을 노래하면서 숱한 이웃별을 함께 노래하면 됩니다.


ㅅㄴㄹ


나는 직장 따라 객지에 와 있고 / 큰애는 군에 가 있고 / 둘째 애는 공부 때문에 시내에서 하숙하고 / 아내와 막내딸애는 시골집을 지킨다. / 큰애가 휴가오는 날 / 우리 이산가족은 다시 만난다. (이산가족/23쪽)


불빛 휘황한 거리를 걸어가 보자 // 식당 다음에 술집 / 술집 다음에 여관 / 여관 다음에 교회 // 순환소수처럼 / 알맞게 배열된 도시의 내장을 들여다 / 보면 정말 가관이다. // 먹고 마시고 잠자고 난 다음에 / 회개하고 // 아! 회개하면 그만인 / 대한민국의 도시인들 (도시 구조론/4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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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숲노래 동시

사람노래 . 마리 홀 에츠 Marie Hall Ets



뭘 봐?

개미를 지켜보니?

여우를 찾아보니?

어떤 풀을 바라보니?


어딜 봐?

숲을 둘러보니?

바다를 살펴보니?

무슨 길을 지켜보니?


나랑 같이 놀까?

천천히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하루 누리자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모레도 글피도 다음날도

언제나 새롭게 처음으로

함께 나서는 바람꽃이야


+ + +


마리 홀 에츠(1895∼1984) 님은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을 자꾸 이른죽음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을 슬픔이나 눈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고요히 마음을 다독여서 아이들이 스스로 새롭게 서는 길을 찬찬히 찾아나서도록 상냥하게 북돋우고 돕는 꿈과 살림을 그림책으로 풀어냈습니다. ‘몸’이 여기에 없어도 ‘마음’은 늘 여기에 있어요. ‘넋’은 언제까지나 빛나고, ‘사랑’은 한결같이 아름답게 퍼지고 자랍니다. 놀 줄 알고, 같이 놀자고 부르는 눈망울에는 서로 아끼고 나누고 웃을 줄 아는 숨결이 흘러요. 이 땅에 새로 태어나는 아기한테도, 날마다 새롭게 놀며 말길을 넓히는 아이한테도, 아기를 안고 아이랑 살림을 짓는 어버이한테도, 봄바람을 담은 손길이 반갑습니다. 햇볕처럼 따뜻한 마음길이 모두한테 즐겁습니다. 이러한 기운을 단출히 여민 글·그림에 따사롭게 담아내어 들려준다면, 온누리 어린이는 마음 한켠에 즐겁게 사랑씨앗을 심으면서 저마다 듬직하게 꿈을 키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에 곁이 있는 동무와 같은 그림책 한 자락이 될 만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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