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국제앰네스티 지음, 김태희 옮김, 니키 달리 외 그림 / 사파리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한테 틀림없이 없는 책이기는 한데


- 글 : 국제엠네스티
- 그림 : 존 버닝햄을 비롯해 스물일곱 사람
- 옮긴이 : 김태희
- 펴낸곳 : 사파리 (2008.9.30.)
- 책값 : 12000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합니다. 밥과 옷과 집, 이 세 가지는 누구한테서도 빼앗을 수 없을 뿐더러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돈으로 움직이는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며 크고작은 사고로 살림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을 죽음 구덩이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경쟁, 남을 밟고 올라서도록 하는 경쟁만 나돕니다. 이러다 보니, 어른이 읽는 책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에서도 경쟁을 넘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줄거리를 제대로 못 담아내곤 합니다. 억지스런 가르침이나 우격다짐 같은 충효가 아니라, 살갑게 받아들일 아름다움과 고맙게 받아먹는 깨우침이어야 할 텐데, 자꾸만 ‘골든벨’이나 ‘우리 말 달인’과 같은 지식잔치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서른 가지 조항에 따라 그림 하나씩 넣어 엮은 책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는, 선언은 있으나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실천도 뒤따르지 않지만 한국땅에서는 거의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스물여덟에 이르는 그림책 작가들이 보여주는 재미나고 톡톡 튀는 그림결은 우리가 미처 못 보거나 못 느낄 ‘우리 둘레 이웃과 동무가 나와 함께 누릴 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그려낸 작가들이요,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쥐는 그림책을 엮어낸 작가들이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들도 함께 즐겨보는 그림책을 펴낸 작가들입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른 삶을 꾸리는 동안 저마다 달리 부대끼거나 부딪힌 삶 한 자락들이, 그림책 한 권에서 골고루 섞이면서 무지개 빛깔로 새삼스레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고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서는, 한숨이 푸우우욱 하고 나옵니다. 서른 가지 세계인권은 우리 삶하고 그다지 이어져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도시로 쏠리며 무너지거나 고달프게 되는 시골 농사꾼 삶,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학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사회 얼거리, 돈-힘-이름 세 가지를 움켜쥔 권력자와 기득권이 제 밥그릇을 튼튼히 지키려고 공직과 언론을 쥐고 흔드는 모습, 인권을 짓밟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살아숨쉬는 정치 흐름, 교육이 아닌 입시밖에 없어서 아이들이 벼랑에 내몰린 교육 터전, 돈 없으면 못난쟁이로 여겨지는 경제판, 아이 밥상뿐 아니라 어른 밥상에 유전자조작을 하고 비료와 항생제로 찌든 먹을거리만 올리게 되는 형편, 남북이 아직까지 끝없이 군대를 크게 키우며 무기산업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보건복지는 뒷전인 나라,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이 모든 문제를 바로보거나 고치도록 마음먹지 못하게 되고 만 얼거리, 값비싼 아파트만 새로 짓고 서민 살 골목집은 때려부수는 토건 왕국, 차 없으면 길거리에 나다닐 수 없게끔 짜여진 도시계획 …… 2000년대 세계인권선언이라면, 아니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권리’를 말하자면 이렇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 땅 우리 아이들한테 두루뭉술한 ‘명제’만 읽도록 할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고 그이는 어떤 일로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는지를 꼼꼼이 짚어내고 밝혀내면서 아이 스스로 세상을 알아보면서 세상을 밝힐 작은 촛불 하나 켤 수 있게끔 이끌어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만, 허울뿐인 외침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인권선언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라도 달랑 하나쯤은 우리 나라 책방과 도서관에 꽂히면서, ‘여보시오, 인권이란 게 있읍디다’ 하고 말건넴이라도 해야 하는 우리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한테 틀림없이 없는 소중한 그림책이지만 알맹이가 빠져 있어 아쉬운데, 그래도 이만한 책이라도 한 권 펴내 주니 고맙습니다. (4341.10.25.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바꿀 수 있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5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바꿀 수 있는 삶을 어영부영 대충 살지 않나요?
 [그림책이 좋다 52]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책이름 :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글ㆍ그림 :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 옮긴이 : 김경연
- 펴낸곳 : 보림 (2008.9.16.)
- 책값 : 9800원






 (1) 아이를 생각하며 내 삶부터 바꾸기


 제가 ‘세탁기도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없이 잘산다’고 하니, ‘그러면 왜 컴퓨터는 쓰냐?’고 되묻는 이가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안 쓰는 물건이 있다면 그러한 물건을 왜 안 쓰는지를, 또 그러한 물건을 안 쓰면서도 왜 잘산다고 하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나서 되물어야 할 텐데, 그리 묻지 않고 막바로 되묻기만 한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를 합니다. 냉장고를 안 쓰고 그때그때 저잣거리에서 장만하여 먹습니다. 냄비로 덥히지 전자레인지를 돌리지 않을 뿐더러, 덥혀야 할 먹을거리를 구태여 마련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굳이 커다란 기계를 씻는방에 들여서 씻는방을 좁게 쓸 까닭도 없지만, 빨래를 전기와 많은 물을 들여서 할 까닭 또한 없다고 느낍니다. 손빨래는 좋은 운동이자 자기 옷을 더욱 사랑해 주는 일이 됩니다. 알맞게 입고 알맞게 빨면서 옷과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저절로 냉장고를 안 쓰게 됩니다. 냉장고를 두어 보았자 넣어 놓을 먹을거리도 없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날푸성귀를 먹으니 김치를 둘 일이 없습니다. 미역을 먹어도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불리고 다른 반찬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찌개 하나나 날푸성귀로 올려놓는 밥상이면 배가 부릅니다. 처음 밥을 할 때부터 누런쌀에 보리쌀을 섞고 대여섯 가지 잡곡과 콩팥 옥수수 들을 넣으니 밥만 먹어도 조그마한 그릇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젖병을 데울 때만큼은 전자레인지가 쓸모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주전자로 물을 끓여서 담가 놓으면 오래지 않아 젖병이 따뜻해집니다. 다만, 전자레인지와 견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아기를 잘 얼르고 있으면서 물리면 되니 괜찮습니다. 더욱이 젖병으로 엄마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뱃속을 씻어 주고자 숯가루를 먹일 때뿐이니(처음에는 엄마 젖꼭지가 헐어서 젖병을 썼지만) 전자레인지를 들여놓아 부엌을 좁게 할 일이 없음을 더더욱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틀림없이 되묻겠지요. 자전거도 똑같이 공장에서 만드는데 왜 똑같이 공장에서 만든 물건인 자동차는 안 타면서 자전거는 타느냐고.

 이때에도 답답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좀더 속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는 한편, 우리 스스로도 좀더 속깊이 생각하려는 매무새가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기름을 먹는 자동차와 두 다리로 굴리는 자전거는 같을 수 없으며, 자동차 한 대 값이면 자전거는 수백 대를 장만합니다. 또,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 드는 쇠붙이와 플라스틱과 온갖 자원과 자전거 한 대 만드는 데에 드는 자원은 견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를 굴리려면 길을 깔아야 하지요. 자전거 다닐 길도 깔아야 하지만, 사람이 걸어다닐 만하면 자전거도 크게 걱정없이 다닙니다. 좁은 골목길도 자전거는 넉넉히 다니지만 자동차는 못 지나갑니다. 더군다나 몰지 않을 때 자동차는 아주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전거는 아주 적은 자리만 차지할 뿐 아니라, 접는자전거는 접어서 신발장 옆에 두어도 되고 헛간에도 쏙 들어가며 문간에 놓아도 넉넉합니다.


 “아이참, 이 연못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랄트.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난 친구랑 놀고 싶어요.” ..  (2쪽)



 저나 옆지기는 어릴 적에 예방주사를 많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맞았고, 우리 어머니도 꼭 맞혀야 한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알아보니,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성분에는 수은과 포름알데히드가 있는 한편, 예방주사가 ‘병을 다 막아 주는’ 주사가 아니라, 몇 퍼센트라는 확률로 막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공개된 ‘예방주사를 맞아서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확률과 예방주사를 안 맞고도 병에 안 걸리는 확률’ 자료란 없습니다. 재료를 내놓는 과학자도 없고, 자료를 만들려는 과학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예방주사를 맞아서 부작용에 걸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를 다룬 자료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먹을거리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무턱대고 맞히는 예방주사가 얼마나 알맞는지, 얼마나 아기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 꼼꼼하게 밝혀 놓은 자료를 미리 읽고 나서, ‘예방주사를 맞힐는지 안 맞힐는지’를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맞아서 후회될 일 없잖아요?’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맞힐 주사가 아닙니다.

 우리 아기도 병원에서 우리 모르게 맞힌 비형간염 백신주사 때문에 황달에 걸려서 쉰 날을 넘긴 지금까지도 애를 먹이고 있는데, 화학물질 항생제로 맞히는 주사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을, 병원에서는 또다른 화학물질 항생제로만 처방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아이 엄마한테 젖을 끊기고 분유를 먹이라 하지만, 요즈음 분유에 섞인 성분 때문에 크게 말썽이 되듯, 분유는 요즈음만 말썽이 아니라 그동안 말썽거리 성분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야 겨우 터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멜라민을 비롯한 온갖 문제 있는 화학성분이 섞인 분유를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몸에 어떤 문제가 깃들고 있는 셈일까요.

 풀 먹는 짐승인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니 고기소들이 몸에서 부작용이 생기며 ‘미친소’가 되었고, 이렇게 미친소가 된 가여운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해 먹으니 사람들 몸에도 끔찍하고도 나쁜 병이 생겨나게 됩니다. 과학자들 말씀마따나 ‘미친소 고기를 먹어도 꼭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할 테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확률이 낮아도 죽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떠들썩해집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엄마젖을 먹이고 병에 걸린 아기가 여태까지 있던가요. 엄마젖과 아기가 어떤 사이인가를 돌아본다면, 엄마젖을 끊으라고 하는 양의학 병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일본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유기수은 중독’ 때문에 벌어진 무시무시한 대물림 돌림병인 ‘미나마타병’처럼, ‘수은’은 아기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몹시 나쁘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그런 수은 성분이 든 예방주사를 어떻게 아기한테 함부로 맞힐 수 있겠습니까. ‘부작용이 없을 가능성이 99퍼센트’라고 해도 그 1퍼센트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99.99퍼센트라 해도 1만 아이 가운데 한 아기가 걸리니, 그 한 아이 삶은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오천만에 가까운 숫자인데, 나날이 새로 태어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헤아리면 99퍼센트라도 걱정이고 99.9퍼센트라도 걱정입니다.





 “이 농장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잉게.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흐응.”
 “흐응이라니?”
 “친구가 있으면 틀림없이 더 재미있을 거예요.” ..  (7쪽)


 그러나 이모저모 따져 보아도, 전자제품만 말썽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만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화학성분 예방주사만 멀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모든 이가 골고루 텃밭농사를 지을 만한 넉넉한 땅이 모자랍니다. 빈틈만 있으면 아파트를 짓느니 빌라를 짓느니 주차장을 만드느니 하는 판이니까요. 그나마 옥상이 있는 집에 세들어 살면 옥상 농사라도 짓는다지만 몇 사람이나 이렇게 하겠습니까.

 유기농을 하는 분들한테서 곡식을 사다 먹어도 동네 재래시장하고 발을 끊어야 하니, 사람 사는 마을에서 한식구로 어울리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에요. 그냥 대충대충 살자고 할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무나 대충 뽑아 놓고 어영부영 아무 정책이나 내놓든 ‘내 한몸 먹고살기에 빠듯하게 지내도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옆지기야 앞으로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더 살면 더는 이 땅에 미련을 둘 일이 없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앞으로 쉰 해도 예순 해도 일흔 해도 살아야 할 이 땅 어린이들은 어찌하나요. 그리고 이 어린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낳아 기를 아이들은 또 어찌하지요?


 “이 숲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지만 필립, 넌 멋지게 살고 있잖니?” ..  (13쪽)


 틀림없이 힘들지만 바꾸어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고달프지만 고쳐야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달걀로 바위 치기 같지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가야 합니다. 얼핏 보면 우리 세 식구만 아둥바둥하는 듯해도, 예방접종 문제로 함께 머리를 싸매면서 슬기로운 길을 찾는 모임이 있으며(http://www.selfcare.or.kr), 유기농 곡식으로 우리 밥상을 깨끗이 지키며 시골 살림도 지키자고 마음 기울이는 모임도 많습니다. 찾아보면 나오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 더 단단해지며, 몇 안 되는 숫자라 해도 자기가 뿌리내린 동네부터 하나하나 바꾸려고 힘을 내면 눈에 도드라지게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우리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식구가 달라지면 우리 아이가 뒷날 즐거울 수 있고, 우리 아이가 뒷날 즐겁게 된다면 우리 식구들을 둘러싼 이웃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테고, 머나먼 뒷날 우리 손주와 사위와 동무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 뒷날 아이 스스로 바꿀 수 있게끔


 “그런 건 따분해요. 전 한 번도 안 해 본 걸 하고 싶어요.”
 “거꾸로 날아 보거나 나비랑 놀아 보렴.”
 “그런 거 말고요. 돼지처럼 똥 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물고기처럼 연못에서 헤엄을 치거나 …….”
 “우리가 보기에 넌 어리석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제가 보기에 엄마 아빤 …….”
 “입 다물어라.” ..  (16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펼칩니다. 독일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서른다섯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읽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참 훌륭하구나 하고 새삼 느끼며 두 번 펼치고 세 번 펼치다가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펼쳐 넘깁니다.

 생각해 보니, 권정생 할아버지가 남긴 동화 〈강아지똥〉은 1969년에 쓴 작품인데 오늘날에도 나라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이자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안에서 첫손 꼽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이 쓴 대표가 되는 작품은 하나같이 일제강점기 때, 해방 뒤, 박정희 독재정권 때 나왔습니다. 서른 해는 우습고 쉰 해 일흔 해 넘긴 작품들이 처음과 같이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습니다.

 어디에 그런 힘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작품이 될까, 여러모로 곱씹습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글에 담았기에, 어떤 얼과 넋을 그림에 실었기에, 그토록 오래오래 수많은 아이들한테, 또 여러 나라 아이들한테, 또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까지 사랑을 받을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 아빠 물고기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하랄트가 요즘 성격이 아주 느긋해졌어요. 혹시 그 우스꽝스런 친구들 때문일까요?” ..  (30쪽)


 성경에도 적혀 있듯이 ‘어린이한테 읽힐 글이요 어린이한테 보여줄 그림이라서 어린이마음을 품고 어린이 눈길로 적어 내려가고 그려 내려갔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어린이 눈높이가 되는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두루두루 맛나게 곰삭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았기 때문일까요.

 처음부터 이웃나라 아이들한테까지 보여준다기보다, 처음부터 온나라 아이들한테까지 골고루 보여준다기보다, 먼저 내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즐기자는 마음이었기 때문일까요. 내로라하는 어느 작품을 보아도 ‘우리 아이 아무개한테 바친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아마, 다른 아이보다도 내 아이가 먼저 재미있게 보고 신나게 받아들이며 기쁘게 몸으로 삭여낼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아이한테도 보여주면서 함께 웃고 울 수 있음을 깨닫는지 모를 일이에요.

 그렇잖습니까. 농사꾼 마음이 ‘우리 식구가 먹을 곡식’으로 생각하면 농약 한 방울 안 칩니다. 모두 손으로 일구고 거둡니다. 농사꾼 마음이 ‘더 많이 내다 팔아서 더 많이 돈벌어야지’가 될 때, 농약 잔뜩 치고 비료 듬뿍 쳐서 살이 오동통 오르는 곡식, 빛깔 반지르르하게 보이는 열매가 되도록 합니다.


 엄마 아빠 돼지가 놀라워합니다. “요즘 잉게가 아주 상냥해졌어요. 그 희한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1쪽)


 늘 느끼는데, 마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꾸기 어렵다라는 생각이 아닌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더디 걸려 이백 해나 삼백 해가 걸리게 되더라도 바꾸어 나가도록 나부터 한 삽을 뜨려는 생각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과 수원에서 맨 먼저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면 넉넉하다 http://bike.jinbo.net)’ 모임을 이끌어 낸 자전거꾼들은, ‘하루아침에 우리네 길 문화를 자전거로 넉넉하고 즐겁게 출퇴근을 하고 학교를 오가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게 이끌어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더디 가고 느리게 가더라도 한 사람씩 자전거 맛을 느껴 가면서 밑에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다지 읽히지 않는 글이라 해도 부지런히 써서 꾸준하게 잡지도 내고 책으로도 역는 글쟁이들 마음은, 자기가 끄적인 글 한 줄이 누군가한테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살이 되어서, 우리 삶터를 좀더 아름답게 보살피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배를 곯으면서 글을 쓰고, 곁방에서 눈치를 보면서도 죽는 날까지 고단한 삶을 놓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 새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필립이 훨씬 명랑해졌어요. 어쩌면 그 괴상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2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다시금 펼쳐 봅니다. 그림책에 펼쳐지는 삶터는 어린이들(새끼 물고기, 새끼 돼지, 새끼 멧새)이며 어른들이며 몸 튼튼히 오붓하게 지내기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새끼 물고기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연못 바닥에는 버려진 자전거며 수레바퀴며 갖가지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돼지우리 둘레에는 늘 똥냄새입니다. 멧새 지내는 나무숲은 나무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그래서 이들,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한테는 동무가 없습니다. 동무가 태어나 자라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서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를 기르는 어미 물고기와 어미 돼지와 어미 멧새는 당신들한테 하나 있는 아이를 끔찍이 돌보고 아끼고 키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라고 있어요. 아이들 어버이는 참으로 좋은 분들이지만, ‘우리들은 동무를 사귀어 함께 놀고 싶다’고.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 모르나 아이들은 꿈을 꿉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목숨임에도 어깨동무를 하게 됩니다. 물고기는 돼지한테 걷기를 배우고, 돼지는 멧새한테 날기를 배우며, 멧새는 물고기한테 헤엄치기를 배웁니다. 여느 어른들, 아니 보수수의나 수구주의에 갇힌 어른들 눈에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집어던질지 모르는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일 수 있지만, 아이들한테는 ‘참 그렇구나!’ 하면서, 동무란 마음이 맞으며 언제나 서로를 믿고 함께하는 사이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손길을 내밉니다. 마음을 열어 꼬옥 안아 줍니다.

 그냥 그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대로 억눌린 채 살고자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냥그냥 외롭고 쓸쓸한 그대로 자기 삶을 허거프게 보낼 생각이 아니었기에.

 자기 마음을 먼저 바꾸고, 자기 매무새를 먼저 바꾸며, 자기 삶을 먼저 바꿉니다. 이러면서 바뀐 자기 마음에 동무 마음을 담고, 바뀐 자기 매무새에 동무 매무새를 배워 다스리며, 바뀐 자기 삶에 동무 삶을 두루 헤아리는 너그러움을 깃들여 놓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조차 힘들면 열 번에 한 가지씩. 열 번에 한 가지도 힘들면 백 번이나 천 번에 한 가지씩 느긋느긋, 차근차근. (4341.10.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개구리
이금옥 지음, 박민의 그림 / 보리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곳에 사는 개구쟁이 ‘청개구리’
 [그림책이 좋다 51] 이금옥(글)+박민의(그림), 《청개구리》



- 책이름 : 청개구리
- 글 : 이금옥
- 그림 : 박민의
- 펴낸곳 : 보리 (2007.3.30.)
- 책값 : 9800원





 (1) 옛이야기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옛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려주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주셨는가 떠올려 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저나 형한테 옛이야기를 얼마나 이야기해 주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형이나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한 자락쯤 들려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한테든 형한테든 옛날 옛적 이야기를 얼마만큼 이야기해 주었나 곱씹어 봅니다.

 형한테는 들려주었는지 모르고, 저도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어머니한테나 아버지한테나, 또 할머니한테나 할아버지한테나 옛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듣고 자란 옛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제 둘레에 책이 얼마 있지 않았으나 옛날이야기를 제법 읽어서 알기도 했습니다.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속삭이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 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4쪽)


 집에는 동화책 한 권 마땅히 없었어도 학교에는 학급문고라고 해서 백 권쯤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국민학교 때에는 학급에 있던 책 백 권도 참 ‘많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가면 그 학급문고하고는 손 흔들며 헤어져야 하는데, 한 해 동안 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거든요. 죽어라 다 읽어내 보자고 부딪혔으나 쉰 권까지 겨우 읽고 두 손을 들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한 반에 그 학급문고를 거의 다 읽은 계집아이가 있어서, 어린 마음에 ‘나도 저 아이처럼 부지런히 읽어야지’ 하는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읽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딱히 책읽기가 좋아서 읽은 책이 아니었기에, 읽기는 징하게 읽었어도 마음에는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아니, 아예 안 남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책읽기에 푹 빠진 동무아이를 보면서, ‘책에 무슨 재미가 있기에 저렇게 얌전하게 앉아서 책에 빠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더운 여름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확 몰려들고 하얀 커튼이 나부끼는 가운데 창가에 앉는 동안, ‘책읽기란 이런 느낌일까?’ 하고 돌아보곤 했습니다. ‘뭐, 오늘 뛰놀지 못한 만큼 내일 신나게 뛰놀면 되지’ ‘오늘 못 논 만큼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동네 동무들하고 숨바꼭질 하고 놀면 되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청구개리 엄마는 부지런한 엄마.
아침부터 늦게까지
어이구, 너무 바빠.
짤까당 가다닥 짤까당 가다닥
쉴새없이 베를 짜고
바느질 하고요. (6쪽)



 그 어릴 때 읽은 몇 가지 책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바로 〈청개구리〉입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인지 모릅니다만, 이제 와서 가만히 돌아보면, 이원수 님이나 이주홍 님이 고쳐쓴 옛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이든 괜찮습니다. 저로서는 〈청개구리〉는 열 번을 읽어도 열 번 모두 그때그때 모습만 눈에 선하면서 새롭게 읽었고, 끝에 이르러 왜 이처럼 눈물겹게 마무리가 되어야 하나 싶어서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내 삶은 얼마나 청개구리인가 하고 뉘우치기도 했는데, 이렇게 뉘우친다고 해 보아야, 그 어린 마음은, 이내 개구쟁이 짓을 뉘우친 일을 잊어버리고는 또 개구쟁이 장난질이 펼쳐졌습니다. 고무줄 끊기는 안 했지만(다른 이 재산을 다치게 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참 짓궂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교단으로 불려가는 아이 엉덩이를 몰래 겨냥해서 똥침 놓기 따위를. 이렇게 하면 그 녀석은 날 때려 주고 싶고 짜증을 부리고 싶어도 못하니까.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면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쫓아올 때 안 잡히려고 교실바닥을 휘저으며 내빼야 했고.


청구개리는 장난꾸러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아, 너무 신나.
연줄 끊기, 편싸움, 돌 던지기.
맨날 동무들을 울리기만 했어요. (8쪽)






 그나저나, 청개구리는 왜 그리도 어머니를 속썩이는 짓만 골라서 했을까요. 어머니는 왜 그리도 청개구리를 다그치지 못했을까요. 하루이틀이 아니고 한 번 두 번이 아닌 장난질은 왜 그리도 깊어만 갔고는지.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 하여도, 아이를 따끔하게 꾸짖거나 나무라지 못할 까닭이 있었을는지.

 처음 〈청개구리〉를 읽던 지난날부터 그림책 《청개구리》를 펼치는 이제까지, 아이와 어머니 사이를 곰곰이 되짚습니다. 어머니도 어릴 때에는 자기 아이처럼 말괄량이였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약도 듣지 못하는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마는 어머니 몸처럼, 아이한테도 어떤 꾸지람이나 타이름은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는지요. 한쪽 어버이가 없이 홀몸으로 살림 꾸리랴 아이 키우며 가르치랴 몹시 고되고 벅찼기에 그만 손을 못 쓰고 말았는지요.

 청개구리네 이웃집 어르신들은 왜 이웃 아이 청개구리를 바르게 다잡아 이끌어 가지 못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제 삶 꾸려 나가기에 바빠서 청개구리네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남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면서 살았는지요.

 열 번 읽고 백 번 읽고 천 번쯤 읽은 〈청개구리〉인데,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이 뻔한 이야기에 뻔한 줄거리가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으면서 언제까지나 무겁게 하는가 싶어서.


엄마의 딱 한 가지 소원은
봄이면 진달래꽃 복숭아꽃 피고
새들이 훨훨 즐겨 찾아오는
양지바른 산언덕에
조용히 잠드는 것이었어요. (21쪽)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밤낮 힘껏 일하며 살림이 조금 피게 되면, 후유 한숨을 돌린 다음 아이를 다독이려고 했을까요. 저 또한 아이 아버지가 되면서 느끼지만, 하루 내내 아이와 어울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노라면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잠은 잠대로 잘 수 없으면서 일거리는 일거리대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인 저와 어머니인 옆지기도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밥벌이 될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자기가 밥벌이할 까닭도, 자기 밥을 자기가 차릴 일도, 자기 옷을 자기가 빨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면. 또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리면. 신나게 놀기를 바라고,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며, 그지없이 뒹굴기를 바랍니다.

 청개구리 장난이 좀 짓궂기는 했어도, 아이 때에는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두 번 했다가 이내 맛이 들리고 재미가 납니다. 또, 또래 동무들이 자기하고 어울려 주지 않으면 부러 못살게 구는 장난을 생각해 냅니다. 청개구리가 저지른 장난은 못된 장난이기는 했어도, 자기와 살갑게 놀아 주는 동무가 없으니, 차츰차츰 마음 한구석이 비뚤어지게 되면서 동무들을 괴롭히고, 또 집에서도 어머니 타이름하고는 어긋난 쪽으로 자꾸자꾸 나아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참된 사랑과 믿음으로 청개구리한테 다가오지 않으니, 청개구리 스스로도 마음을 열지 않을 뿐더러, 더욱 모질게 장난질에 매일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객객, 엄마.
마지막 부탁만은 꼭 들어 드릴게요!”
청개구리는 물이 찰랑거리는 강기슭에
엄마 무덤을
정성껏 만들어 드렸답니다. (26쪽)



 기다림만한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보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에, 자기 기다림을 놓았습니다. 진작에 했어야 할 아이 다스리기를, 숨을 거둘 때에 이르러서야 하고 마니까, 마지막때에 비로소 눈을 뜬 청개구리는 어머니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온삶을 눈물로 보내며 기다리던 어머니도, 온삶을 장난질로 보내며 제 모습을 잃었던 아이도, 또다시 눈물바람으로 뒷삶을 잇게 됩니다.

 “아침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에서 딱 두 식구뿐이지만 오붓하게 살던 청개구리네인데. 비록 가난하고 살림은 팍팍했어도 마음속에 곱고 따뜻한 사랑을 잃지 않으며 살았던 청개구리네인데.





 (2) 재일조선인한테서 받는 선물


 《청개구리》는 재일조선인이 글을 새로 쓰고 그림을 알뜰히 넣으며 이루어낸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를 잃고 딴나라에서 살지만, 딴나라에서 살더라도 똑같은 목숨붙이인 이웃 일본사람한테까지 우리 겨레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 마음이 열매를 맺어서 태어난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 아닌 딴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고유한 우리 옷을 즐겨입을 뿐 아니라, 요즘 삶에 걸맞게 잘 고쳐서 입고 있는 재일조선인들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그림책입니다. 재일조선인도 한국사람이요 한국땅 한겨레도 한국사람이며 중국땅과 러시아땅 한겨레도 똑같은 한국사람임을 깨닫는 한편,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 마음결로 빚어낸 그림책입니다.

 《청개구리》를 보면, 수많은 ‘어른 청개구리’와 ‘아이 청개구리’가 나오는데,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옷차림도 어느 하나 같지 않습니다. 키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얼굴도 다릅니다. 옷차림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를 테고, 즐기는 놀이가 다른 만큼 속에 품은 꿈도 다를 테지요.

 무엇보다도, 〈청개구리〉라는 옛이야기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한겨레들이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물려서 내려온 삶임을 고이 느끼도록 해 주는 글이요 그림이 담긴 그림책 《청개구리》입니다.


.. 아득한 옛적, 어머니께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  (글쓴이 이금옥) / .. 나는 재일 조선인 2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다섯 남매를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는데,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옛이야기를 참 많이 들려주셨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놓인 일은 아직도 생생해요 ..  (그린이 박민의)


 서민이라고도 할 테고, 백성이라고도 할 테며, 낮은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터입니다. 논밭을 일구고 베틀을 밟으며 손으로 빨래를 하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물에서 놀고 고샅에서 놀며 논밭이랑 산과 들에서 노는 사람(아이)들입니다.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덮으며 맨발로 땅을 밟고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라는 이 땅 사람들입니다.

 조용히 꾸리는 삶이며, 호젓하게 가꾸는 삶이고, 다소곳이 닦아 온 삶입니다. 이 삶을 옛이야기라는 틀에 담았습니다. 도란도란 밤을 밝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아비나 지어미가 지은, 또는 지아비와 지어미도 당신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듣고서 자란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사람 일에 눈을 뜨며 제 삶에 눈을 뜹니다.

 옛이야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삶을 가만히 되새기게 해 주는 한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아이들 스스로 짧지만 이제까지 보내 온 삶을 되짚으면서 앞으로 꾸려 갈 삶을 내다보게 해 줍니다.

 퍽 흔히, 꽤 자주 새롭게 고쳐지고 다시 나오는 옛이야기 〈청개구리〉인데, 재일조선인 두 사람이 엮어낸 그림책 《청개구리》는 두 분 재일조선인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뼛속 깊이 맛보는 동안 몸에 아로새기진 눈물과 웃음이 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씨앗은 아프면서 새로 태어나고, 사람도 아프면서 큰다고 하는데, 아픔을 먹은 사람들은 외려 기쁜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참 아름답도록. 거룩하도록. (4341.9.16.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잘잘잘 옛이야기 마당 1
이미애 지음, 백대승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펴내면 좋을까?


- 책이름 :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 글 : 이미애
- 그림 : 백대승
- 펴낸곳 : 미래아이 (2008)
- 책값 : 12000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호랑이(범)’ 이야기 한 가지만 골라서 엮은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라는 책은, 사람이 아닌 짐승을 빌어서 우리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한 자락마다 모두 다른 빛깔로 그림을 담아낸 품새 또한, 흔히 떠돌고 웬만큼 퍼져 있기에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호랑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기도록 이끕니다. 시원시원한 판짜임은,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을 널리 살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느 한편으로 바라본다면, 좀더 수수하게 엮으면서 책값을 낮출 길을 찾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옛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 말투를 보면 한결같이 판박이로 되어 있습니다.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서정오 님 이야기책’부터 퍼진 ‘입말 투’라 할 텐데, 입말 투는 ‘똑같은 토씨로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처음에는 이런 입말 투가 무척 새로우며 놀랍다고 느꼈는데, 똑같은 말투가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더 나아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또 우리 입말 투가 무엇인가를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는 동안, 다른 작가나 서정오 님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입말 투’에서 멀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서정오 님 옛이야기 책이나 다른 분 옛이야기 책이나, 거의 판박이처럼 ‘-했어’, ‘그랬어’, ‘그랬지’ 하고 말끝을 맺습니다. 입말 투라고 하면서 ‘-다’가 아닌 ‘-어’나 ‘-지’로 끝맺는데, 우리들 입말 투는 ‘-다’로 끝맺을 때도 있고 ‘-어’나 ‘-지’로 끝맺을 뿐 아니라, ‘-구나’라든지 ‘-네’라든지 ‘-구만’으로 끝맺기도 합니다. 낮춤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닌 어설픈 입말 투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차라리 높임말을 쓰면서 아이들을 섬기는 매무새를 보여줄 때가 한결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입말 투는 ‘것(거)’을 함부로 자주 붙이지 않습니다. ‘말했던 거야’나 ‘그랬던 거야’나 ‘먹었던 거야’가 아니라 ‘말했지’나 ‘그랬거든’이나 ‘먹었네’처럼 붙여야 올바릅니다.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는 이 어설픈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바람직하지 않은 ‘순화대상 낱말’이 곳곳에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한 그림이야기책을 싼값으로 조촐하게 꾸민다고 하면, 요새 어머니들은 외려 이 책에 깃든 보물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로서도, 독자로서도, 또 우리 형편으로도 단출한 판짜임과 엮음새보다는, 어딘가 무지개빛이 가득가득 수놓인 엮음새가 보기에 좋다고 느끼고, 큰 판이 더 나은 그림책인 듯 생각하며, 옛이야기도 ‘입말 투로 보이는 말씨’로 되어 있어야 좋은 듯 알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호랑이’라는 말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 호랑이한테는 ‘무섭다’는 생각을 심어 줄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어느 곳에서 ‘호랑이를 본다’고, 호랑이는 무서운 짐승이라는 듯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요? 지난 먼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마음결을,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차근차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책을 펴내고 있을까요? 이제는 “무서운 공무원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나 “무서운 법관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나 “무서운 전투경찰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같은 책을 내어야 알맞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는 처음 마주하는 호랑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동물원에서나 겨우 보는 호랑이라는 짐승을 머리로 헤아려 보면서, ‘무서운 짐승한테도 따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가르침 하나는 얻을 테고요.

 옛날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떻게 다시 들려주면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있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호랑이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남습니다. ‘왜 옛날사람이라고 하면서 죄다 조선 후기 사람만 그리고, 더구나 양반들만 그리고 있는지’를 뒷통수 좀 긁적이면서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어떤 신을 신었을지’, ‘산골 깊숙한 마을 집은 어떤 모양일는지’, ‘우리 나라 깊은 산골 나무는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일는지’도 가만히 되새기면서 창조와 상상력을 북돋운다면 한결 나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법의 조막손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 지음, 고향옥 옮김, 노베 아키코 외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다름’을 헤아리는 마음
 [잠깐 읽기 12] 다바타 세이이치, 《마법의 조막손》



- 책이름 : 마법의 조막손
- 그린이 : 다바타 세이이치
- 글 : 선천성 사지장애아 부모회, 노베 아키코, 시자와 사요코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우리교육 (2008.8.4.)
- 책값 : 9500원



 (1) 아이를 키우는 마음


 사회가 조금씩 발돋움을 하고 있는지, 요즈음 들어서 ‘다름’을 말하는 사람들을 부쩍 자주 봅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말하면서 더 널리 껴안는 마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은 늘 ‘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빼앗기거나 들볶이는’ 쪽에서 말하지, 누르거나 짓밟거나 빼앗거나 들볶는 쪽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만 해도, 정작 ‘재개발이 되어 떠나야 하는 주민들 생각’을 찬찬히 듣고 묻고 알아 가면서 하는 재개발이란 없습니다. 보증금 100만 원에 달삯 1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수수한 식구들이 깃들어 있는 조그마한 골목집 사람들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이만한 돈으로 깃들 만한 집을 새로 지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한 평에 1천만 원도 아닌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이나 하는 아파트만 새로 지으려고 하면서 ‘주택보급’을 이야기합니다. 서민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비싼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외칩니다. 이런 모습도 ‘다름’일까요?


.. 마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내가 엄마야!” “아냐, 오늘은 나야. 나도 엄마가 하고 싶단 말이야!” 마리는 얼굴이 새빨개져 씩씩거리며 말했어요. “넌 엄마 못 해! 손가락 없는 엄마가 어딨어!” 옆에 있던 유키랑 나오코도, “맞아!” “말도 안 돼!” 하고 말했어요 ..  (10∼12쪽)


 이제 열흘 동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 딸아이 기저귀를 갈고 똥오줌을 빨아내어 털어 널면서, 또 아직 덜 마른 기저귀를 부지런히 다림질을 하며 말리는 새벽 두어 시에 홀로 생각합니다. 병원(산부인과)에서는 이 어린 목숨붙이한테 ‘40 + 8 검사’를 해 준다고 하더군요. 나라에서 뒷배하여 1만 원만 내면 해 주는 검사가 여덟 가지이고, 8만 원을 더 내면 병원에서 마흔 가지 검사를 더 해 준다고.

 그래서 병원 간호사한테 물어 봅니다. 나라에서 해 준다는 여덟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또 병원에서 한다는 마흔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저처럼 물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네? 여덟 가지가 황달하고 혈액형하고 또 뭐 해서 여덟 가지예요.” “그러니까 그 여덟 가지 검사가 무언데요?”

 옆에서 다른 간호사가 알파벳으로 휘갈겨진 서류를 한 장 내보이면서, “영어로 적혀서 못 알아보겠지만, 이렇게 여덟 가지 검사예요.” 하고 앵돌아진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알아볼 수 없게 적은 검사 항목’을 보여주어서 어쩌겠다고. 알 수 없는 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데?

 간호사는 이런저런 말로 대충 얼버무린 다음, “아기한테 장애 검사를 하는 ……” 하면서 말을 잇습니다. 한참 듣다가, “저희는 그런 장애 검사는 안 받겠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병원에서 생각하는 ‘장애’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그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고, 장애가 없으면 없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아이 혈액형이 A형이면 어떻고, O형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혈액형 아니겠습니까. 굳이 벌써부터 알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혈액형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텐데. 아기한테 정작 베풀어 줄 일은 ‘장애가 있는 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버이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보듬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직 이어갈 수 없는 이 가녀린 목숨을 사랑해 주기일 텐데.


.. “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생겨?” 삿짱은 엄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엄마는 두 손으로 삿짱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어요. “삿짱, 네 손은 말이야, 학교에 들어가도 지금이랑 똑같아.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삿짱. 너에게는 소중하고 소중한 손이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딸의 예쁘고 예쁜 손이야…….” 삿짱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어요. “싫어, 싫어, 이딴 손 싫어!”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  (24쪽)


 기저귀를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빱니다. 아기가 사흘을 지낸 때에는 스무 장쯤 빨았는데, 나날이 빨랫거리가 늘어납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부터는 쉰 장까지도 빨아야지 싶습니다. 왜 ‘방수천’이나 ‘방수담요’를 쓰는지 알 만합니다. 젊은 어머니들이 왜 ‘1회용 기저귀’를 쓰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목숨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어버이한테 내맡기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이나마 어버이로서 똥기저귀를 빨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노릇, 아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제 몸이 느낍니다. 아이가 살아갈 이 삶터가 1회용 기저귀 때문에 더 더러워지고 있는데, ‘어버이로서 조금 고단하다고’ 하면서 돈 몇 푼으로 1회용 기저귀를 사서 쓰면, 어버이한테도 나쁘고 아이한테는 더 나쁠 일이라고 느낍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아파하면서 나온 목숨인 딸아이인 한편, 저도 옆에서 똑같은 시간을 함께 아파하면서 옆지기를 주무르고 돌보면서 낳은 딸아이입니다. ‘여느 사람 말’은 아니라 할 터이나, 아기가 ‘으’ 하고 외마디소리를 나지막히 내뱉을 때, ‘끄’ 하고 외마디소리를 낮게 내뱉을 때, 지금 ‘내(딸아이)가 오줌을 지렸으니, 아버지는 얼른 기저귀 갈아 주셔요’ 하는 이야기건넴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장모님이나 다른 분들은 이 소리를 못 알아채지만, 저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설핏 잠이 들어서 쓰러져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에 손을 대 보고는 촉촉함이나 물컹함을 느끼고는 서둘러 갈고 새 기저귀를 깝니다. 가슴에 살며시 제 손을 대고 다시 잠들도록 기다린 뒤, 젖은 기저귀를 들고 뒷간에 가서 신나게 빨아 목초액에 담가 놓습니다. 손이며 몸이며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었는데, 이 냄새가 ‘세상에 찌든’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비빔질을 하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짝살짝 베어서 다친 손가락이 쓰라립니다. 1센티미터쯤 살짝 찢긴 살점이지만, 물이 닿으면 쓰립니다. 그래도 꾹 참고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를 생각합니다. 기저귀를 갈 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아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딸아이 이름)야, 아버지가 이번에는 기저귀를 좀 늦게 갈아 주었구나. 꿉꿉한데 얼른 갈아 주었어야 했는데. 엉덩이에 묻은 오줌도 닦고 발에 묻은 오줌도 닦고,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 불쑥 삿짱이 말했어요. “아빠, 나도 엄마 될 수 있어?” 아빠는 깜짝 놀라, 삿짱을 바라보았어요. “나, 손가락 없어도 엄마 될 수 있어?” ..  (33쪽)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저보고 아기 기저귀를 뭣하러 다리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말없이 웃습니다. 너무도 마땅한 이야기라서, 굳이 대답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웃을 뿐입니다. 어른인 저도, 빨아서 말리기만 한 천기저귀하고, 빨아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한 천기저귀하고 느낌이 사뭇 다른데요. 어른 살갗이 아닌 아기 살갗은 더 날카롭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어린 아기한테는 잠을 좇으면서 더 뽀송뽀송하고 부드럽게 기저귀를 마련해서 대어 주는 일이, 어버이로서 할 몫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을 못하는 아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아기인데, 이 아기 말을 제대로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로서, 또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제 몫을 못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손가락이 다쳐서 아프면서도 아픔을 꾹 참고 기저귀를 빠는 새벽나절, 마음으로 딸아이한테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 아버지가 조막손일 수 있는데, 아버지가 조막손이라 해도 벼리한테는 똑같은 아버지일 테지요?’


 (2) 아쉬움 몇 가지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을 읽습니다. 금세 읽고 덮은 다음, 두어 번 다시 읽어 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스물세 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한국땅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 옮겨 낼 만한 값과 무게가 있으니 예쁘장하게 꾸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한국에도 장애를 안고 있는 어린이가 몹시 많을 텐데, 왜 한국땅에서는 ‘한국땅 장애 어린이’ 삶과 생각을 담은 이야기책은 보기가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법의 조막손》(일본책 이름은 ‘삿짱은 조막손’)은 틀림없이 훌륭하게 엮은 책이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이나 필리핀에서 옮겨내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이하여 한국사람들은 이만한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을 한국 삶과 삶터와 사람에 맞추어서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우리 땅에도 장애 때문에 눈물 흘리는 아이가 많고 어버이가 많은데, 왜 우리 스스로는 이런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한국땅에서 ‘그림 작가’라고 내세우는 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글 작가’라고 뽐내는 분이 두셋이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어이된 셈인지 장애 어린이 이야기는 눈 씻고 찾아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렵게 한 권 세상에 나와도 ‘참 안 팔립’니다. 《마법의 조막손》 또한, 훌륭한 이야기와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로 애틋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하고 몇 해가 지난 뒤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동화작가라는 분들이 눈길을 두면서 쓰는 글감을 보면, 그림책작가라는 분들이 마음을 기울이면서 그리는 그림감을 보면, 어째 우리 나라는 제자리걸음으로 우려먹는 일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아파하는 사람들 이야기, ‘다르게 사는’ 이야기는 어인 일인지 제대로 다루어지는 일도 없지만, 겉핥기로나마 다뤄지는 일조차 드문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는 ‘집에서 낳기’를 하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말았지만, 왜 아이를 ‘병원에서 낳아야’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집에서 아이 낳는’ 일은 미친 짓(?)처럼 바라볼까요.


.. 드디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삿짱도 아빠 따라 병원에 갔어요. 아기는 요람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  (30쪽)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에서도 ‘병원에서 아기 낳기’가 나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면, 일본에서는 아기 엄마 곁에 요람을 놓고 둘이 함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신생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아기들을 어머니하고 떨어뜨려 놓고 분유를 먹여서 ‘아기 때부터 엄마젖을 못 먹게’ 만들어 버리는 데다가, 1회용 기저귀로 꽁꽁 싸매어 놓습니다. 더구나 아기 머리 위로 형광등이 바로 따갑게 내리쏘고 있는걸요.


.. 삿짱은 씩씩대며 서 있었어요.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어요. “엄마, 왜 내 손은 다른 애들이랑 달라? 왜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없는 거야? 왜 그래?” ..  (18쪽)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갈 뿐입니다. 다르게 살든 똑같이 살든 모두 소중한 목숨붙이입니다. 대통령 뽑을 때 이명박 씨한테 표를 주었든 권영길 씨한테 표를 주었든, 모든 사람은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건 대학원까지 나왔건, 두 사람은 ‘나뉘어진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뿐 아니라, 인기 연예인과 비인기 연예인이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팔 하나가 있든 팔 하나가 없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벌이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되기 어려운 살림이든, 한 달에 오억 원을 버는 살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 아이가 소중하고, 내 목숨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닐까 싶어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면서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둘레에 있는 남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푸대접을 하거나 깔보지 않느냐 싶어요.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은 ‘책에 쪽수가 없는’ 이상한 편집을 하고, 쪽수가 많지 않은 그림책치고 책값이 너무 비싸며, 책이름을 너무 뭉뚱그리셔 붙인 대목이 아쉽습니다(일본에서 처음 나올 때에는 수수하게 “삿짱은 조막손”이라고 했지 ‘마법’ 같은 말은 넣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이만한 이야기조차 빚어내지 못하니 눈물까지 날 판입니다만, 모자라나마 이 그림책 하나로 우리가 자꾸만 잃거나 내버리고 있는 ‘다름이 아름다운 까닭’과 ‘다름이 사랑스러운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으니, 이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삿짱’이라는 아이는 조막손이어도 삿짱이고, 조막손이 아니어도 삿짱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8-29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8-08-29 17:4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말로 볼 때, 처음에 "삿짱"이라고 나와서 뒤에 적힌 히라가나가 "조막손"을 뜻하리라고 넘겨짚고 일어사전을 안 뒤적여 보았는데, 그 한 마디를 더 찾아보았어야 했는데, 도움글 고맙습니다. 일어사전 한 번 덜 찾아본 탓에, 저로서도 이 글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군요 ㅠ.ㅜ

흠... 일부러 쪽수를 안 적는다니... 쪽수란 아무런 뜻이 없을 수 있지만, 또 그렇게 하는 뜻도 있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무척 번거롭게 되어서, 읽으면서 손으로 쪽수를 매겨 가게 됩니다... -_-;;;;

그런 버릇도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모르겠네요. 에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