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돌아와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36
크리스티나 부스 글.그림,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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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7



바다에서는 고래가 살고,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놀아야

― 이제 그만 돌아와

 크리스티나 부스 글·그림

 정경임 옮김

 지양사 펴냄, 2015.8.1. 1만 원



  크리스티나 부스 님이 빚은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지양사,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 남방긴수염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아이 눈길로 고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바닷속에서 고래가 노래하듯이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외침소리는 아이만 듣습니다.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는 못 듣습니다. 다른 이웃도 못 듣습니다. 아이는 왜 저한테만 고래 외침소리가 들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귀를 기울여서 고래가 저한테 외치는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바다로 나가서 듣고, 잠자리에 누워서 듣습니다. 언제나 고래 노랫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강에서 들려왔습니다. 달빛은 강물 위에서 춤추고, 고래 속삭임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4쪽)




  남방긴수염고래는 새끼를 세 해에 한 마리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영국은 호주를 유배지로 삼으면서 고래잡이배를 써서 죄수를 영국에서 호주로 보냈다고 하며, 이때에 고래잡이배는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서 고래를 수없이 잡았다고 합니다.


  고래잡이배가 지구별 온 바다마다 휘저으면서 고래를 잡는 동안 고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나라가 수많은 고래잡이배를 띄워서 고래를 잡아죽이는 동안 고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과 기술이 발돋움하면서 고래잡이배도 고래를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쉽게 잡아서 죽일 수 있는 솜씨를 갖춥니다. 고래잡이를 못 하도록 하는 법이나 제도가 생겨도 일본에서는 ‘그물에 걸려서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직 몰래 고래잡이를 한다고도 합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로 둘러대면서 ‘고래가 스스로 죽었다’고 할 테지요.



엄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빠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6쪽)



  고래잡이배 일꾼은 고래가 들려주는 노래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초음파 기기를 써서 고래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서 얼른 잡아죽이려고 할 뿐, 고래가 울부짖는 소리도, 고래도 노래하는 소리도, 고래가 웃거나 기뻐하는 소리도 하나도 안 듣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고래가 외치는 소리뿐 아니라, 나무가 외치는 소리도 못 듣습니다. 나무가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숲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냇물이 아파하고, 바다가 아파하며, 들이 아파하는 소리는 누가 들을까요.


  한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다가 송전탑에다가 해군기지나 미군기지에다가 골프장과 고속철도와 고속도로에다가 공장에다가 4대강사업에다가 끝없는 막개발하고 관광단지 공사에다가 먹는샘물 개발에다가 그야말로 끝도 없습니다. 모두들 경제개발을 이루어 은행계좌에 돈이 늘어나는 소리를 들으려 할 뿐, 우리 둘레 이웃이 아파하거나 끙끙 앓는 소리에는 모조리 귀를 닫습니다.





고래는 말했습니다. 지난날 그 기억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를. 고래 이야기는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8쪽)



  어린이는 노래하면서 놀고 싶습니다. 어린이는 시험공부에 갇히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학교에서 교과서 수업진도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정부와 기관과 학원에서는, 또 마을과 집에서까지, 아이들한테 이런 교육에 저런 학습에 그런 입시를 자꾸 닦달합니다. 청소년한테도 참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주려 하지 않아요. 청소년한테는 어린이한테보다 훨씬 더 모질고 매섭게 입시지옥으로 채찍질을 하지요.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라면서 아주 목을 죄지요.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는 사람들 등쌀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고래한테 ‘부디 이 바다에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너희(고래)가 다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겠다고, 어른들은 어린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온힘을 다해서 너희(고래)가 이 바다에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꼬리가 물 위로 치솟더니 물줄기를 내뿜으며 고래가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아기 고래가 얼굴을 니밀었습니다. (26∼27쪽)



  바다에서는 고래가 살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는 새가 마음껏 바람을 가를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들에서는 개구리도 뱀도 풀짐승도 홀가분하게 함께 살 수 있을 때에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숲에는 송전탑 아닌 나무가 우거질 수 있어야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어른한테서 배울 수 있을 때에, 바로 우리 지구가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군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차츰 자라서 젊은이가 될 무렵 전쟁무기 다루는 재주나 사람 죽이는 전쟁훈련 따위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이제 그만 돌아와》가 고즈넉히 속삭이듯이 노래하는 이야기로 밝히듯이, 우리는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이 될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고래를, 아이들을, 서로를, 우리 모두를, 곱게 사랑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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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곤충의 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 3
곤도 구미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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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6



풀벌레는 사람한테 이웃이자 동무

― 찾았다! 곤충의 집

 곤도 구미코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08.1.7. 1만 원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빗자루를 들고 가랑잎을 씁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가랑잎을 쓰느라 바쁩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네 철 푸른 만큼 꾸준하게 가랑잎을 내놓고, 겨울에 앙상한 가지로 쉬는 나무는 가을마다 가랑잎을 잔뜩 내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랑잎을 쓸어도 마당에는 가랑잎이 소복합니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미루면 더 많이 쌓여서 구릅니다.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가랑잎을 고이 쓸어서 풀밭으로 옮깁니다. 마당에서 바스라져서 흙이 되기보다는 풀밭이나 나무 둘레에서 천천히 삭아서 흙이 될 때에 한결 싱그러울 테니까요.


  마당을 쓰는 김에 누렇게 시든 풀을 베거나 뽑습니다. 줄기마다 새 뿌리가 생기면서 뻗는 여뀌를 걷다가 뿌리가 토톡 소리를 내며 뽑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개미가 함께 튀어나옵니다. 아차, 너희가 여뀌 뿌리 언저리에서 집을 짓고 살았구나. 이것 참 미안한 노릇이네. 그래도 너희는 집을 대단히 잘 지으니까 다시 손질해서 잘 가꾸렴.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로 땅을 쪼면 으레 개미집이 나옵니다. 또는 벌레집이나 애벌레가 나오기도 합니다. 굼벵이도 나오지요. 이럴 때마다 풀벌레한테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괜찮아, 씨앗만 심고 갈 테니까. 씨앗을 마저 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렴. 씨앗을 다 심으면 그 뒤로 이 땅은 도로 너희 보금자리가 되겠지. 땅속을 알뜰살뜰 잘 보듬어 주렴.


  잘 자란 쑥대라든지 모시풀이라든지 젓가락나물이라든지 고들빼기를 베어서 마당 한쪽에 쌓았습니다. 달포 즈음 그대로 두어 바싹 말렸는데, 이 풀짚을 풀밭으로 옮기면서 보니, 아래쪽에도 온갖 벌레가 바글거립니다. 지렁이도 이곳에서 기어다니고, 쥐며느리와 집게벌레와 여러 벌레가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런데 풀짚 밑바닥은 어느새 까무잡잡한 흙밭입니다. 고작 달포를 그대로 두었을 뿐이지만, 밑바닥에 있던 풀은 잘게 바스라졌을 뿐 아니라 동글동글 이쁘장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까무잡잡한 멋진 흙으로 바뀌었어요.


  풀벌레와 지렁이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지구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풀벌레가 지렁이가 꾸준히 새로운 흙을 일구어 주면서 사람한테 아름다운 이웃이자 동무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마른 풀이나 말라죽은 풀을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밥찌꺼기도 어느새 흙으로 바꾸어 주는 풀벌레와 지렁이입니다. 게다가 개미는 풀벌레 주검을 흙으로 바꾸어 주지요.



생각 없이 보아 넘긴 풍경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었어요. 나뭇잎을 잘라 돌돌 말거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나무줄기 속에나 땅속에 굴을 파거나, 저마다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갖가지 슬기를 짜내어 살아가요. (25쪽)





  곤도 구미코 님이 빚은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한울림어린이,2008)을 읽으며 흙과 풀과 시골과 땅을 함께 헤아려 봅니다. 곤도 구미코 님 그림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네 권이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톡! 씨앗이 터졌다》, 《와글와글 떠들썩한 생태일기》, 《꼬물꼬물 곤충이 자란다》와 함께 《찾았다! 곤충의 집》은 네 권으로 네 철 이야기를 골고루 들려줍니다.


  이 가운데 《찾았다! 곤충의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이야기 말(설명 글)’이 붙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만한 땅거죽이나 물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다음 쪽에서는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한 땅속이나 물속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주 조그마한 풀벌레와 날벌레와 물벌레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꼬물꼬물 조그맣고 앙증맞으며 재미난 그림으로 보여주어요.


  처음에는 ‘응? 무슨 그림일까?’ 하고 궁금하도록 이끌고, 한쪽을 넘기면 앞쪽하고 바탕은 같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벌레가 저마다 얼크러지고 어우러지는 얼거리’를 한자리에 그러모아서 보여주지요.


  그런데, 그림책 《찾았다! 곤충의 집》을 보면, 온갖 벌레가 서로 잡아먹거나 잡아먹히는 모습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느 벌레는 잡아먹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어느 벌레는 잡아먹으면서 빙긋 웃습니다. 그럴밖에 없어요. 참말 풀밭 먹이사슬에서는 목숨앗이가 뚜렷하게 갈려서 서로 먹이가 되고 삶이 되며 삶터를 이룹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꾸밈없이 들여다봅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으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이 벌레는 이러한 삶이로구나 하고 깨닫고, 저 벌레는 저러한 삶이네 하면서 깨닫습니다. 수많은 벌레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이루는 새로운 삶을 마주합니다.



벌레 똥은 벌레 집. 혹잎벌레 집은 벌레 똥이거든.

나는 노랑쐐기나방. 내 고치는 길쭉동글한 초코볼처럼 생겼어.

난 팽나무혹파리. 나뭇잎 벌레혹 속에 살지.

나는 물속 청소부, 물방개.

나는 빨간 바탕에 까만 점이 콕콕 박힌 무당벌레. 나무껍질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 다 함께 겨울을 나. (그림책 면지에 있는 그림)





  가을볕이 뜨겁다면서 마루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마당으로 부릅니다. “얘들아, 우리 집 빨랫줄을 보렴. 잠자리가 네 마리나 나란히 앉았는걸.” 아이들은 “어디? 어디?” 하면서 내다봅니다. 마당으로 맨발로 내려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찾아냅니다. “아, 저기 있구나!”


  저녁에 잠자리를 깔고 함께 눕습니다.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거미들은 왜 태풍이 오면 안 날아가?” “거미는 태풍이 올 적에 안 날아간다기보다 태풍이 오면 미리 알아채고 줄을 다 걷고서 숨지. 그래야 태풍에 날아가지 않으니까. 태풍이 오면 거미줄로 잡을 벌레도 없으니 줄을 걷어야지.” 엊그제 두 아이는 마당에서 애벌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맨발로 마당에서 놀다가 애벌레를 보았다더군요. “저기, 저 나무에서 이리로 떨어졌어. 다시 나무로 올려주려고 나뭇잎을 대는데 얘가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고 혀만 빨갛게 낼름낼름 내밀어.” “나뭇잎으로 안 올라오면 다른 나뭇잎을 써서 뒤에서 밀어 주면 되지.” “얘는 범나비 애벌레일까, 아니면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일까?” “글쎄,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 같기는 한데, 혀 내미는 빛깔하고 다리 옆으로 난 하얀 띠를 보니까 범나비 애벌레 같아.”


  나는 풀벌레나 애벌레를 잘 몰랐고, 아직 얼마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수많은 풀벌레하고 애벌레를 늘 아이들하고 지켜보면서 새롭게 배웁니다. 여기에다가 멋진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벌레를 다루는 그림책은 아이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공룡 그림책 못지않게 벌레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벌레가 사람하고 아주 가까운 이웃이자 동무인 줄 마음으로 아는 셈일까요? 벌레가 이 지구별에 있기에 모든 주검과 쓰레기를 삭혀서 아름다운 흙으로 바꾸어 주는 줄 마음으로 알까요?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벌레를 더 재미있고 살가이 배웁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사랑스러운 벌레 그림책을 읽으면서 ‘인문 지식’이 아닌 ‘우리 곁 예쁜 숨결’이라는 테두리에서 벌레 한살이와 이야기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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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4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 달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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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5



언제나 네 곁에서 사랑을 물려주는 어머니란다

―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고 녀석 맛있겠다 4)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달리 펴냄, 2011.8.17. 11000원



  아이들이 곁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 곁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로 삼아서 이곳에 태어났고, 나는 어버이요 아버지로서 아이들한테 삶을 보여주면서 사랑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따사로운 사랑으로 삶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그리고 따끔한 몸짓으로 다그치면서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일 만합니다. 첫째 길은 사랑이고 둘째 길은 ‘훈육’입니다.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 까닭은 아이가 앞으로 사랑으로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훈육으로 다스리면서 길들이는 까닭은 아이가 앞으로 사회살이를 똑똑히 잘 해내어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폭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아이, 가여워라. 여기 있으면 누가 먹어 버릴지도 모른단다.” 엄마 마이아사우라는 작은 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돌아갔어요. (1쪽)




  그림책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달리,2011)를 읽습니다.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림책꾸러미 가운데 넷째 권입니다. 이 그림책꾸러미는 만화영화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넷째 권인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는 육식공룡이 어떻게 초식공룡한테서 태어나서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줄거리를 살짝 살피면 이렇습니다. 큰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날 초식공룡인 착한 어미 공룡이 ‘어머니 잃은 알’을 보아요. 마음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떠도는 알’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어떤 알인지 모르더라도 이 ‘길 잃은 알’을 품어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초식공룡은 깜짝 놀랄밖에 없습니다. 착한 어미 초식공룡이 주운 알은 무섭거나 사나운 육식공룡 알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이 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공룡을 보면서도 이 새끼 공룡을 숲에 버려둘 수 없습니다.



끝내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처음 주웠던 숲에 돌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가야, 미안하다. 미안해 …….”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뒤돌아 걸었습니다. 바로 그때, “코오 …….” 엄마는 작은 숨소리를 듣고 다시 성큼성큼 아기에게 돌아가더니, (6∼8쪽)



  마음속에 착한 숨결이 흐르지 않고서야 육식공룡 알을 품어서 키울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저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그런 생각은 안 합니다. 처음부터 생각이 달라요. 착한 어미 초식공룡은 ‘어머니도 길도 보금자리도 모두 잃은 알’한테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예요. 오직 한마음이지요. 어떤 공룡이 이 알에서 깨어나든 언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사랑으로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만 생각합니다.





엄마가 꼭 안아 주자 하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 티라노사우루스예요? 난 엄마 아이가 아닌 거예요? 아니죠?” 엄마가 하트를 힘껏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넌 누가 뭐래도 엄마한테 소중한 아들 하트야.” (32∼33쪽)



  육식공룡은 초식공룡은 어머니를 두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무 걱정이 없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오직 한 가지, 그러니까 오직 사랑만 물려받은 새끼 육식공룡은 몸집이 큼직하게 자란 뒤에도 바로 이 기운을 가슴 깊이 품습니다. 다른 육식공룡을 만나서 ‘이제껏 살아온 내 모습은 무엇인가?’ 하고 가슴 아프게 뒤돌아보더라도, 어미 초식공룡이 들려주고 물려주고 보여주면서 언제나 함께하던 ‘사랑’을 되새깁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할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내 아이도 사랑하고 네 아이도 사랑합니다. 우리 아이도 사랑하고 너희 아이도 사랑하지요. 모든 아이는 나한테 아이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아이를 이녁 아이로 삼습니다. 따스하게 품습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집니다. 넉넉하게 품습니다. 사랑 어린 말로 다독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어머니가 오롯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까닭은 아직 아버지는 오롯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아무래도 어쩌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람은 아기를 오롯이 어루만지면서 품지 못하기 일쑤예요. 아기를 낳아 아버지가 된 사람은 으레 ‘밖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지’ 하고 생각할 뿐, ‘집에서 아이를 더 사랑해야지’ 하고 생각하지 못하곤 합니다.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아이하고 사랑으로 삶을 짓겠노라 하고 생각할 줄 아는 아버지는 너무 적습니다.




“으윽, 왜 이러는 거냐. 난 너와 같은 티라노사우루스인데 …….” 티라노사우루스가 괴로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니야, 난 하트야. 하트일 뿐이라고.” 하트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36∼37쪽)



  어른으로 자란 육식공룡은 이제 제 모습을 깨닫습니다. 초식공룡이 아닌 육식공룡인 줄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깨달은 아이는 더는 어머니하고 동생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알아차립니다. 이제 떠나야 합니다. 그동안 알뜰살뜰 보살펴 주면서 사랑을 물려준 어머니 곁을 떠나야 합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합니다. 홀로 삶을 짓고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따스한 어머니 품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담으면서, 이제부터 저 스스로 새로운 ‘따순 품’을 지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어른 육식공룡으로서 육식공룡으로 살되 ‘마음 가득 사랑이 흐르는’ 몸짓으로 새롭게 꿈을 키워야 합니다.


  어른이 된 육식공룡은 눈물을 흘려요. 눈물을 주루룩 흘려요. 얼마나 북받치는 눈물일까요. 가슴이 저미고 저릴 테지요. 가슴이 찢어지고 무너질 테지요. 그렇지만 이 아이는 씩씩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새롭게 일어서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육식공룡이야!”가 아닌 “나는 하트야!”와 같이 스스로 누구인가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육식공룡’이되 ‘마음은 착한 사랑’입니다. ‘몸은 다른 공룡 살점을 뜯어먹는 육식공룡’이되 ‘마음은 모든 이웃을 사랑으로 마주하는 착한 숨결’입니다. 4348.9.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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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곰이야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2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글.그림, 서애경 옮김 / 현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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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4



풍선을 타고 도시 한복판에 떨어진 곰 한 마리

― 나 진짜 곰이야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글·그림

 서애경 옮김

 현북스 펴냄, 2011.3.18. 10500원



  아이들은 곰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아무리 깊은 두멧자락이라 하더라도 범이나 여우나 이리나 늑대나 곰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가 더러 있지만, 너구리나 족제비나 오소리나 고슴도치를 곧잘 찾아볼 수 있지만, 이만 한 숲짐승조차 머잖아 자취를 감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속도로와 골프장은 자꾸 늘어나기만 하고, 공장도 자꾸 늘어나기만 하며, 대형 발전소와 송전탑도 자꾸 늘어나기만 하거든요. 조용한 시골이나 숲은 자꾸자꾸 자취를 감춥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은 거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문명과 물질이 발돋움한 오늘날이 아닌 옛날이라면 아이들은 곰을 어떻게 마주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숲에서 나무를 하고, 숲에서 나무를 얻으며, 언제나 숲에 둘러싸여 살던 옛날이라면, 아이들은 범이나 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곰을 무척 귀엽게 여기기도 하는데, 숲에서 곰이나 범을 코앞에서 맞닥뜨리는 지난날에도 아이들은 곰을 귀여운 숲짐승으로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곰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와아, 이상한 굴이다.’ 곰은 풍선 바구니를 보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낮잠 자긴 참 좋겠는걸.’ 곰은 바구니로 기어 들어갔어요. (5쪽)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님이 빚은 그림책 《나 진짜 곰이야》(현북스,2011)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미국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미국에서 깊은 숲에서 조용히 지내던 곰 한 마리가 어느 날 낮잠 잘 만한 곳을 찾다가 ‘풍선 바구니’를 보았어요. 처음 보는 낯선 것이지만, 곰은 풍선 바구니가 아늑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은 모두 치우고 풍선 바구니에 들어가서 꿈나라로 갑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타고 온 풍선 바구니는 곰을 태우고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희 풍선 바구니가 사라졌는데 깊은 숲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이제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 말고 곰을 걱정할 일입니다. 곰은 오랫동안 낮잠을 잤고, 풍선 바구니는 오랫동안 하늘을 가르다가 ‘뉴욕’이라는 하늘까지 닿았다고 해요. 그리고, 뉴욕 하늘에 풍선 바구니는 풍선이 터져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갔답니다.



풍선이 내려온 곳은 가장행렬이 펼쳐지는 어느 도시였습니다. 막 행진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구경꾼 하나가 외쳤어요. “와아! 재미있게 하네요. 풍선을 타고 사람이 내려왔어요. 저 사람 꾸민 것 좀 봐요! 참말 곰 같아요.” (8쪽)



  곰은 낯설디낯설 뿐 아니라 곰 아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떨어지니 몹시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곰을 곰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곰을 곰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여깁니다. 더더구나 가장행렬을 하며 잔치를 벌이는 데에 떨어졌거든요.


  곰은 얼결에 가장행렬에 휩쓸립니다. 방송국 사람이 곰을 낚아채어(?) 방송국으로 데려가서 인터뷰를 합니다. 곰은 이리저리 휩쓸리고 휘둘리면서 배가 고픕니다. 담뱃대가 먹을 것인 줄 알고 집었다가 깜짝 놀랍니다. 사람들은 ‘곰처럼 꾸민 사람’이 마치 ‘곰처럼 연기도 잘 하네!’ 하면서 웃고 재미있어 합니다.


  곰은 이리저리 내뺍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서 곰이 갈 곳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때에 ‘마음 착한 도시 이웃’이 ‘곰’이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을 도와주려고 나섭니다. 모두들 텔레비전에서 ‘곰이 아닌 곰처럼 꾸민 사람’을 보았기에 기쁘게 도와주려고 해요.



“빵!” 출발 신호가 울리자 선수들이 뜁니다. 총소리에 놀란 곰은 오토바이에서 펄쩍 뛰어내려 달립니다. 곰은 마치 치타처럼 뛰어나가 선수들을 앞질렀어요. 결승선도 넘었지요. 그러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5쪽)




  미국 뉴욕 사람들이 곰이 참말 곰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곰처럼 꾸민 사람이 아닌 참말 곰인 줄 알았어도 오토바이에 태우고 택시에 태우고 소방차에 태우면서 ‘도와주려’고 했을까요?


  이제 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곰이지만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듭니다. 모두들 ‘곰처럼 꾸민 사람’이 궁금합니다. 게다가 ‘곰처럼 연기를 잘 한다’고 여기기에, ‘곰 연기’를 보고 싶어서 우루루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립니다.


  이때에 ‘풍선 여행객’이 다시 나타납니다. 풍선 여행객은 저희 풍선 바구니를 곰이 타고 간 줄 모릅니다. 그저 ‘곰’이 아니라 ‘곰처럼 꾸민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고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말했어요. “저기 봐! 아까 텔레비전에서 봤던 사람이야. 저 아래 몰린 사람들 때문에 무서운가 봐. 우리가 도와주어야겠어.” 풍선이 사다리 꼭대기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남자는 곰이 바구니에 올라타도록 도와주었어요. (24쪽)



  따스하고 착한 손길로 마음을 읽는 이웃이 반갑습니다. 미국 뉴욕 사람들은 비록 ‘곰처럼 꾸민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저마다 ‘곰’을 따스하게 마주했고, 착한 손길로 도우려 했습니다. 다만, 곰인 줄 몰랐을 뿐입니다.


  곰인 줄 알았으면 모두 놀라서 꽁무니를 뺐을 테지요. 그리고, 도시 사람들은 곰이 곰인 줄 몰랐기 때문에, 곰이 참말 무엇을 바라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사람 말’만 하거나 들을 줄 알 뿐, ‘곰 말’은 하거나 들을 줄 몰라요. 곰이 아무리 ‘곰 말’로 도와주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어도, 사람들은 ‘사람 말’로만 생각하려 했습니다.


  곰은 한 번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얼결에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곰은 언제나 곰이었으나 사람들은 곰을 처음부터 곰이 아닌 사람(연기자)으로만 여겼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곰을 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도시 사회에서는 곰이나 범이나 온갖 숲짐승을 이웃처럼 곁에 두고 지내지 않으니까요. 여느 때에 본 적도 만난 적도 마주친 적도 없는 숲짐승이 도시 사람들한테 이웃이 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그림책 《나 진짜 곰이야》를 아이들하고 읽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어여쁜 빛깔이 눈부시게 흐르고, 재미난 이야기가 우스꽝스레 흐릅니다. 이 그림책은 멋진 빛깔잔치와 이야기잔치가 어우러지면서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넌지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지 싶어요.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읽으면서 곰을 곰으로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대목을 짚거든요. 곰을 곰으로서 마주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곰을 곰으로 맞아들이면서 도우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이녁은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튼, 곰을 곰으로 마주하든 ‘곰처럼 꾸민 사람’으로 마주하든, 우리가 스스로 따스하고 착한 손길로 마주한다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 누구나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을 헤아리며, 이웃을 사랑하는 숨결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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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다 오감 톡톡! 인성 그림책 1
후쿠다 이와오 그림, 다니카와 슌타로 글,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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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62



우리 ‘무엇 하며’ 놀면 재미있을까?

― 만들다

 다니카와 슌타로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15.9.25. 12000원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뭔가를 ‘하’면서 놉니다. 소꿉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뒹굴기도 합니다.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어깨동무도 합니다. 아이들 삶은 온통 놀이인데, 놀이는 늘 ‘놀이하다’입니다.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일을 할 테고, 일은 늘 ‘일하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놀이를 하며 삶을 짓기에 재미있고, 일을 하면서 살림을 지으니 즐겁습니다.



흙으로 무엇 만들지? 흙으로 뱀 만들지.

뱀으로 무엇 만들지? 뱀으로 항아리 만들지.

→ 흙으로 무엇 하지? 흙으로 뱀 빚지.

→ 뱀으로 무엇 하지? 뱀으로 항아리 빚지.


항아리로 무엇 만들지? 항아리로 술 만들지.

술은 무엇 만들지? 술은 친구 만들지.

→ 항아리로 무엇 하지? 항아리로 술 담그지.

→ 술은 무엇 하지? 술은 친구 사귀지.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한국말로 옮긴 《만들다》(북뱅크,2015)를 읽습니다. 일본말 ‘つくる(作る)’를 ‘만들다’로 옮겼는데, 일본말 ‘츠쿠루(つくる)’하고 한국말 ‘만들다’는 쓰임새가 아주 다릅니다. 게다가 일본말 ‘츠쿠루’는 한자로 ‘作る’처럼 적습니다. ‘作’이라는 한자를 새길 적에 한국에서는 “지을 작”이라 합니다. 일본말에서는 ‘츠쿠루’라면 한국말에서는 ‘짓다’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짓다’하고 ‘만들다’는 사뭇 달라요. ‘짓다’는 집이나 옷이나 밥을 마련하는 일을 가리키며 씁니다. 이때에는 ‘만들다’라 하지 않아요. “밥을 만들다”나 “옷을 만들다”처럼 쓰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똑같은 물건을 척척 찍어서 내놓는다면, 이때에는 “밥을 만들다(즉석요리 밥을 만들다)”처럼 쓸 수 있겠지요. “집을 짓는다”는 살아갈 터를 마련한다는 뜻이고, “집을 만들다”는 “물건을 새로 내놓는다”는 뜻으로 씁니다. ‘짓다’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나타나도록 한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이름을 짓는다”거나 “생각을 짓는다”거나 “사랑을 짓는다”나 “꿈을 짓는다”처럼 씁니다. ‘만들다’는 “힘을 쓰거나 연장을 다루어, 갖거나 얻고 싶은 것을 이룬다”는 뜻을 바탕으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힘이나 연장으로 어떤 것을 마련할 적에 ‘만들다’를 쓰는데, 이때에는 어느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도록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찬찬히 살핀다면,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만들다”가 아니라 “짓다”로 옮겨야 옳습니다. 그런데, 일본말 ‘츠쿠루’를 더 살피면, 이 일본 그림책은 “짓다”로 옮겨도 그리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말 ‘츠쿠루’는 “어떤 재료를 써서 무엇을 만들다. 모임이나 회사를 세우다. 마련하다. 줄을 짓다. 새로 사귀다. 처음 선보이다. 논밭을 가꾸다. 버릇을 들이다. 글을 쓰다. 맞수를 두다. 돈이나 재산을 이루다. 밥을 하다. 아이를 낳다. 꾸미다. 거짓으로 보여주다. 한 집안을 이루다” 같은 자리에 두루 쓰는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염소로 가죽 만들지.

가죽으로 무엇 만들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 염소로 무엇 하지? 염소로 가죽 뭇지.

→ 가죽으로 무엇 하지? 가죽으로 북 만들지.


북으로 무엇 만들지? 북으로 리듬 만들지.

리듬은 무엇 만들지? 리듬은 축제 만들지.

→ 북으로 무엇 하지? 북으로 노래(가락) 짓지.

→ 노래(가락)는 무엇 하지? 노래는 잔치 되지.




  일본에서는 일본말로 일본 어린이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일본말 ‘츠쿠루’를 잘 살린 멋지고 재미난 이야기 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말에 맞게 새롭게 바라보고 제대로 한국말을 살펴서 한국 어린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 《つくる(作る)》를 살피면, 두 쪽으로 펼친 자리에서 두 가지로 수수께끼를 한 가지 물으면서 실마리를 하나씩 내놓습니다. 처음 묻는 수수께끼 말을 ‘한국 번역판’에서는 모두 ‘만들다’를 쓰지만, 한국말 쓰임새를 살핀다면, ‘만들다’가 아니라 ‘하다’를 넣어야 알맞습니다. “이것으로 무엇 하지?”처럼 물어야 올발라요. 이렇게 ‘하다’로 물은 뒤, 한국말 결을 살펴서 ‘하다’를 다 다른 쓰임새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흙으로 뱀처럼 길게 빚습니다. 뱀처럼 길게 빚은 흙으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를 빚지요. 항아리로 무엇을 할까요? 항아리에 술을 담그지요. 술로 무엇을 할까요? 술로 동무를 사귀지요.


  ‘만들다’만 쓰면 이야기가 매우 아리송하기까지 합니다. “염소로 무엇 만들지?” 같은 말은 너무 아리송합니다. 산 짐승을 놓고 ‘만들다’라는 낱말을 쓰니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염소로 무엇 하지?”처럼 써야지요. 그리고 가죽은 한국말로 ‘뭇다’를 빌어서 나타냅니다. ‘만들다’는 “북을 만들다” 같은 자리에 비로소 쓸 수 있습니다.



솜으로 무엇 만들지? 솜으로 실 만들지.

실로 무엇 만들지? 실로 천 만들지

→ 솜으로 무엇 하지? 솜으로 실 꾸리지.

→ 실로 무엇 하지? 실로 천 짜지.


천으로 무엇 만들지? 천으로 옷 만들지.

옷으로 무엇 만들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 천으로 무엇 하지? 천으로 옷 짓지.

→ 옷으로 무엇 하지? 옷으로 허수아비 만들지.



  솜만 얻으려고 한다면 “솜을 틀다”라 합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솜으로 무엇 하지?” 하고 물은 뒤에 “실 꾸리지”로 대꾸한 뒤, 실로는 “천 짜지”처럼 대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옷은 ‘만들다’가 아닌 ‘짓다’로 나타냅니다. 허수아비를 세운다고 할 적에 비로소 “허수아비 만들지”처럼 쓸 수 있어요.




바위로 무엇 만들지? 바위로 쇠 만들지.

쇠로 무엇 만들지? 쇠로 가위 만들지.

→ 바위로 무엇 하지? 바위로 쇠 녹이지.

→ 쇠로 무엇 하지? 쇠로 가위 두들기지.


가위로 무엇 만들지? 가위로 종이 사자 만들지.

종이 사자로 무엇 만들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만들지.

→ 가위로 무엇 하지? 가위로 종이 사자 오리지.

→ 종이 사자로 무엇 하지? 종이 사자로 그림책 엮지.



  죽 이어지는 다른 자리에서도 “물은 무엇 만들지? 물은 강 만들지.”는 “물은 무엇 하지? 물은 냇물 이루지.”로 손질할 만하고, “강으로 무엇 만들지? 강으로 댐 만들지.”는 “냇물로 무엇 하지? 냇물로 댐 세우지.”로 손질할 만합니다.


  “해님은 무엇 만들지? 해님은 채소 만들지.”라든지 “채소로 무엇 만들지? 채소로 샐러드 만들지.”도 영 안 어울립니다. 한국말로는 이렇게 ‘만들다’를 아무 데나 넣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영 엉터리로 보여줄까 걱정스럽습니다. “해님은 무엇 하지? 해님은 남새 키우지. 남새로 무엇 하지? 남새로 샐러드 버무리지.”처럼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샐러드는 무엇 만들지? 샐러드는 몸 만들지.

몸으로 무엇 만들지? 몸으로 기록 만들지.

→ 샐러드는 무엇 하지? 샐로드는 몸 가꾸지.

→ 몸으로 무엇 하지? 몸으로 기록 세우지.



  이야기가 더 흘러 “모닥불로 무엇 만들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만들지.”가 나오는데, 이 대목도 “모닥불로 무엇 하지? 모닥불로 군고구마 굽지.”로 손질해야 하고, 뒤따르는 “군고구마는 무엇 만들지? 군고구마는 방귀 만들지.”는 “군고구마는 무엇 하지? 군고구마는 방귀 뀌지.”로 손질해야 합니다.


  이밖에 다리는 ‘놓는다’고 하고, 통나무는 ‘깎는다’고 합니다. 길은 ‘낸다’고 하고, 닭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닭은 무엇 만들지? 닭은 달걀 만들지.” 같은 이야기는 아주 엉터리입니다. 닭은 달걀을 ‘만들지’ 않아요. “닭은 무엇 하지? 닭은 달걀 낳지.”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일본말에서 ‘츠쿠루’가 “아이 낳다”를 뜻하기도 한다기에 일본 그림책에서는 ‘츠쿠루’를 빌어 “알 낳기”를 나타냈지만, 한국말 ‘만들다’는 아기나 알을 낳는 일을 안 가리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만들다’가 어울리는 이야기가 그림책 끝자락에서 흐릅니다.




사람으로 무엇 만들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군인으로 무엇 만들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군대는 무엇 만들지? 군대는 전쟁 만들지.

전쟁은 무엇 만들지? …….

→ 사람으로 무엇 하지? 사람으로 군인 만들지.

→ 군인으로 무엇 하지? 군인으로 군대 만들지.

→ 군대는 무엇 하지? 군대는 전쟁 일으키지.

→ 전쟁은 무엇 하지? …….



  군대는 ‘만들다’보다 ‘세우다’ 같은 낱말이 잘 어울릴 만하지만, 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군인·군대·전쟁’은 “억지로 만들어 낸 슬픔과 아픔”을 넌지시 빗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만큼은 ‘만들다’가 어울립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군대를 ‘만드는’ 권력자와 정치인”은 바로 이 지구별에 “아픔을 만드는 바보”이거든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권력자와 정치인은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거나 “꿈을 짓”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우리는 참말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무엇을 할까요? 전쟁무기로는 무엇을 할까요? 군대로 무엇을 할까요? 군인은 무엇을 할까요? 왜 제주섬 같은 곳에까지 해군기지를 세워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남녘과 북녘 젊은이가 비무장지대에 ‘잔뜩 무장한 몸’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군대와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핑계는 이제 몽땅 내려놓고, 평화를 이루려면 오직 평화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제대로 깨닫고 평화로운 길로 삶을 ‘새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그림책 《つくる(作る)》는 ‘평화 짓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츠쿠루(作る)’라는 낱말을 일부러 썼구나 싶습니다. 이러한 뜻하고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이 일본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만들다》가 아닌 《한다》나 《짓는다》나 《무엇을 하며 지을까》로 새로 옮겨서, ‘평화를 사랑한다’나 ‘평화를 짓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하고 함께 나아갈 길은 오직 ‘사랑하기’하고 ‘평화짓기’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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