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이마를 짚고는



  어젯밤 큰아이가 잠들며 자꾸 “더워. 더워.” 하기에 이마를 짚으니 뜨겁다. 그냥 더워서 뜨거운가, 아니면 아파서 뜨거운가. 어제는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낮잠을 1초조차 안 자고 꽤 늦게까지 뒹굴며 놀았다. 몸이 버티지 못한 셈이지 싶다. 큰아이한테 속삭인다. “네 몸이 쉬어 주기를 바라는데, 네가 쉬어 주지 않고 더 버티면서 놀려고 하니까 몸이 힘들어서 그래. 몸이 쉬어 달라는 뜻이야.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면 몸이 안 힘들지. 그렇지만 괜찮아. 다 괜찮아. 잘 자고 일어나면 돼. 우리는 오늘 즐겁게 놀았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새로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면서 즐겁게 놀는지 그리면서 자면 돼.”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허리를 펴다가 큰아이 이마를 다시 짚는데 아무래도 뜨거운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이불을 가슴 아래쪽으로 더 내린 뒤, 아이 소매를 걷어 준다. 손닦개를 찬물로 적셔서 이마에 맺힌 땀하고 머리카락에 스민 땀을 훔친다. 한동안 손닦개를 뒤집으면서 이마에 대어 준다. 손등하고 손바닥과 팔뚝도 손닦개로 땀을 훔친다.


  얼마쯤 이렇게 했을까, 이제 비로소 큰아이 몸에서 땀이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진다. 한숨을 돌렸네. 참말 네 몸은 튼튼하고 씩씩하구나. 그래, 잘 자면 돼. 푹 자면 새로운 몸으로 깨어날 수 있지. 꿈나라에서 무지개랑 바람을 타면서 구름한테 웃음을 지어 주렴. 네 곁에서 함께 날며 지켜볼게.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샘터에서 물 마시고 손 씻고



  마을 어귀에 샘터가 있어서 아이들은 들마실을 하기 앞서, 또 들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번씩 들러서 물도 마시고 손이랑 낯도 씻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서툰 손짓으로 손을 씻고 낯을 씻지만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이제 두 아이는 스스로 알아서 샘터에서 물을 마시고 손을 씻는다. 하루가 다르게 싱그럽게 자라면서 노는 아이들이란 얼마나 멋진 숨결인가. 4348.1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래기 냄새



  아침에 시래기를 엮어서 넌다. 한참 시래기를 엮다 보니 후박나무 그늘에서 이 일을 한 탓인지 손이 시리다. 볕이 나는 쪽으로 옮겨서 시래기를 마저 엮는다. 오늘은 바람이 조금 분다. 이제 곧 겨울이니 조금 부는 바람에도 몸이 시리다. 옛날에는 모든 일을 언제나 손으로 했으니 겨울을 앞두고 무척 부산했을 테고, 누구나 온몸에 온갖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랑 시래기 냄새가 짙게 배었으리라.


  이럭저럭 시래기를 엮어서 너는데, 아주 낯익고 구수하며 오래된 그림이 떠오른다. 서른 몇 해 앞서 어머니 시골집에서 지내던 그림이다. 그무렵 맡은 시래기 냄새가 떠오르고, 흙집 냄새가 떠오르며, 우물 냄새에다가 여물 냄새랑 짚 냄새가 하나씩 떠오른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비닐끈으로 시래기를 엮는데, 그무렵에는 실로 시래기를 엮었다. 그무렵 그 실은 어떤 실이었을까. 읍내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실이었을까, 아니면 어머니 시골집에서 시골 어른들이 손수 자은 실이었을까. 얼핏 실 냄새가 떠오를 듯 말 듯하다. 그무렵에는 어느 시골집에서든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없었고, 언제나 모든 살림을 알뜰히 건사했다. 이와 달리 오늘 내가 이곳에서 쓰는 비닐끈은 비나 바람이나 햇볕에 삭으면 쓰레기가 된다. 땅에 묻기도 불에 태우기도 거석한 쓰레기이고 만다.


  흙에서 얻은 실로 흙에서 거둔 시래기를 엮어서 흙으로 지은 집에서 퍼지던 냄새를 오늘 이곳에서 몇 사람이나 맡을 수 있을까. 오늘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냄새를 맡으면서 자라는가. 흙으로 빚은 사람 몸뚱이를 흙으로 돌보는 냄새는 이 땅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는가. 4348.11.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밥을 먹다가 잠든 아이



  작은아이가 밥을 먹다가 잠이 든다. 낮잠을 건너뛰는 날이면 으레 밥상맡에서 깊게 잠이 든다. 놀이가 아무리 좋아도 낮잠은 한숨 자면서 놀지. 그래야 밥을 한결 맛나게 먹을 텐데.


  곯아떨어져서 꿈나라로 휙 날아간 아이를 무릎에 누여서 살며시 쉬도록 한다. 이렇게 한동안 있은 뒤 이부자리로 옮긴다. 아무쪼록 몸에 새 기운이 돌 때까지 푹 쉬렴. 이 밤을 지새우고 나서 새벽이나 아침에 일어나도 돼. 고단함은 말끔히 털어야지. 네 몫 밥은 고이 건사할 테니까 그저 느긋하게 꿈나라에서 실컷 놀기를 빌어.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기



  내가 우리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수 있는 까닭은 내가 학교를 다녀 보았기 때문이고, 내가 학교를 그만두어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겪었기에 굳이 아이를 학교에서 시달리도록 할 마음이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면, 거의 모든 사람은 그 결대로 잘 하면 된다. 모든 어버이가 모든 아이를 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는 어버이는 저마다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요, 아이하고 누리면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 어떠한 기쁨인지 알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아주 많지만, ‘우리 집에도 없어요’ 하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 이웃이 더러 있다. 한국에서 텔레비전 안 보는 집도 제법 있다. 1퍼센트가 될는지 1퍼센트도 안 될는지 모르나, 텔레비전을 집에 안 두는 집이 제법 있듯이, 아이와 도란도란 조용히 삶을 짓는 꿈을 키우는 사람도 제법 있따.


  내 마음은 늘 하나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자라서 아름다운 꿈을 스스로 짓기를 바란다. 나도 아이들 못지않게 내 즐거움을 찾아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오직 도시바라기 입시교육 직업교육만 하는 제도권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 뜻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참말 아이들 스스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란다.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lou:Do 2015-10-31 08:14   좋아요 0 | URL
아!!
아이들을 학교에 안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니면 대안학교로 보내고 싶다던가!! 하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부모들이 그만큼 사회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부모가 먼저 자유로울 수 있어야 아이들도 자유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숲노래 2015-10-31 09: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매기에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아이를 안 보내면 안 된다는 듯이
길들어요.

그리고, 예방주사도 반드시 안 맞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스스로 자유롭게 삶을 짓고
스스로 집짓기와 옷짓기와 밥짓기를 배우며
스스로 몸을 다스리는 길을 배우는 모든 길을
가로막으면서 자유가 사라지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