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6.28.

숨은책 830


《조선말 배우는 책 (로어)》

 공인현 글

 외국문도서출판사

 1989.5.25.



  우리는 글(책)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삶으로 배웁니다. 하루하루 배운 삶은 저마다 마음에 담는데, 날마다 배운 삶을 담은 마음을 서로 나누려고 말이라는 소리를 터뜨리고, 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이야기’가 깨어나서 오래도록 잇는 삶빛이 흐릅니다. 글은 말을 담는데, 말은 마음을 옮겼고, 마음은 배운 하루를 나타내며, 배운 하루란 삶입니다. 이 얼거리를 읽는다면 글(책)이란 하나도 모르거나 안 읽더라도 스스로 눈뜨고 깨어나고 날개돋이를 하는 ‘한사람’으로 설 만해요. 《조선말 배우는 책 (로어)》은 북녘에서 펴냈는데, 북녘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남녘 헌책집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두고서 혼자 삶빛이며 말빛을 익히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배움책숲(학교도서관)에서 ‘배움일꾼(근로장학생)’으로 여섯 달 동안 지내며 “뭐야? 고작 여섯 달 만에 읽을 책이 더 없네?” 하고 느꼈어요. ‘책숲에 없는 책’을 챙겨 읽으려고, 또 책숲마다 책이 얼마 없고 낡았기에, 온나라 헌책집을 찾아다니면서 열린배움터에서 다 다르게 쓰는 책을 살피고 읽을 뿐 아니라, 배움터에서 안 가르치는 숱한 책을 만났습니다. 1994년 겨울부터 ‘대학졸업장 없이 살자’고 마음먹고 책집마실을 다녔기에 비로소 우리말을 삶으로 바라볼 수 있었구나 하고 돌아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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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6.28.

숨은책 825


《最新農業講座 18 農藥學》

 이성환·이진균 글

 부민문화사

 1962.9.15.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풀죽음물’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이 땅에서 흙살림을 이은 사람들은 거름이랑 재랑 가랑잎이랑 짚은 주되, 다른 것은 뿌리지도 놓지도 덮지도 않았어요. 우리한테는 호미랑 낫이 있어요. 호미로 살살 호고, 낫으로 슥슥 긋습니다. 서두르지 않은 흙일이고, 바빠야 할 까닭이 없는 흙짓기예요. 생각해 봐요. 여름볕을 듬뿍 머금어야 논마다 나락이 익습니다. 겨울눈을 듬뿍 받아야 보리밭이 영글어요. 다 다른 철에 맞게 다 다르게 깨어나는 잎망울에 꽃망울입니다. 그런데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이 나라를 밟고 갈아엎으면서 ‘농약’까지 스며듭니다. 《最新農業講座 18 農藥學》을 읽으면, 이 꾸러미를 펴낸 사람이 적은 글을 살피면, 하나같이 ‘우리말 아닌 일본 한자말’이라 여길 만합니다. ‘여름지이’라는 옛말을 버리고, ‘흙일·흙짓기·흙살림’라는 새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농업(農業)’이라는 일본스러운 한자말에 얽매일 적에는 ‘풀죽임물’일 뿐인 ‘농약(農藥)’이 마치 ‘살림물’인 줄 잘못 알게 마련입니다. 풀을 말려죽이는 물은 흙도 말려죽이고 사람에 새에 개구리도 말려죽입니다.


再建隊列에서 富民文化社는 荒無地에 괭이를 든 開拓者의 精神과 勇力으로 實質的인 書籍을 刊行하여 農民들에게 널리 普及함으로서 生産增强과 生活의 科學化에 이바지함을 使命으로 한다. (富民文化社의 使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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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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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817


《韓國美術文化史論叢》

 고유섭 글

 통문관

 1966.7.15.



  어느덧 ‘고유섭’이라는 이름은 ‘인천을 빛낸 얼굴’로 기리지만, 1992년에 ‘문화부 이달의 문화인물’하고 ‘첫 새얼문화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열여덟 살이던 저는 “선생님, 고유섭이 인천사람이라면서요? 그런데 뭐 하던 사람인가요?” 하고 여쭙니다. 배움터에 있는 길잡이도 그때 고유섭이란 이름을 모르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 푸름이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낯설거나 모르는 이야기는 물어보나 마나로구나. 스스로 찾아보고 알아봐야겠어! 그런데 서울 인사동 ‘통문관’에서는 이녁 글을 추슬러 꾸준히 선보였고 《餞別의 甁》나 《韓國美術史及美學論攷》에 《고유섭전집》까지 펴내며 ‘우리 스스로 우리 그림을 바라보는 눈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만 보면, 인천시는 ‘서울에 있는 책집 한 곳’에서 고유섭 글자락을 오래도록 책으로 묶는 동안 쳐다본 일조차 없던 셈입니다. 《韓國美術文化史論叢》은 1966년에 나왔는데, “定價金六百원”에 “정가금八00원”으로 바꾸는 ‘고무도장’을 씌웠습니다. 안쪽에 “1972.11.28. 中央圖書展示館 姜錫禎. 1780원 영수증“이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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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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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27


《제빵사 곰》

 피브 워딩턴·셀비 워딩턴 글·그림

 김세희 옮김

 비룡소

 2002.1.28.



  ‘일’이라는 낱말은 ‘(물결이) 일다’에서 비롯합니다. ‘일어나다·일으키다’는 ‘일’이 밑말입니다. ‘잇다·이루다·이다·있다’ 같은 낱말도 ‘일’이 밑말이에요. 모든 일은 만나서 이루고 이어갑니다. 혼자 짓고 여미고 꾸리더라도, 우리가 지은 일은 이웃한테 잇습니다. 둘레에 이야기를 일으키고, 일 하나를 이루면서 살림이 새로 일어납니다. 《제빵사 곰》은 1979년 그림책입니다. 모두 손으로 짓고, 손으로 나누고, 손으로 추스르고, 손으로 마주하던 무렵, ‘빵굽기’라는 일을 하면서 이웃을 만나는 일꾼을 곰(테디 베어)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글 한 줄을 쓰더라도 이웃한테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밭에서 지은 열매도 이웃한테 이바지합니다. 뚝딱뚝딱 일군 살림도 뭇사람 손을 거쳐 온나라에 고루 나아갑니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이웃이 일합니다. 낯도 이름도 모르는 숱한 사람들이 일합니다. 말을 섞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여러 사람을 길에서 집에서 만나고, 종이로 붓으로 만납니다. 수줍거나 쭈뼛한다면 살그마니 숨을 만합니다. 말없이 건네어도 되고, 쪽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동무가 말을 더듬으면 기다리고, 내 수다가 길지 않은지 되새깁니다. 밤에 별빛이 지켜봅니다. 낮에 해바람과 풀꽃나무가 둘러봅니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봅니다. 같이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조용히 듣습니다.


#TeddybearBaker #PhoebeWorthington #SelbyWorthington 1979


《석탄집 곰 Teddy bear Coalman》(1948)

《빵굽는 곰 Teddy bear Baker》(1979)

《우체부 곰 Teddy Bear Postman》(1981)

《훍살림 곰 Teddy Bear Farmer》 (1985)

《밭지기 곰 Teddy Bear Gardener》(1986)

《나루꾼 곰 Teddy Bear Boatman》 (1990)

《불끄는 곰 Teddy Bear Fireman》(199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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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26


《취중진담 1》

 송채성 글·그림

 서울문화사

 2001.3.5.



  열아홉 살이던 1994년에 인천하고 서울을 날마다 오가며 ‘사람밭’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서울로 가까울수록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만 많’아, 먼저 타도 나중 타도 납작납작 짓눌리는 눈물바다였어요. 그무렵은 바람날개(선풍기)조차 없기 일쑤였습니다. “서울사람은 불수레(지옥철)를 모르겠지?” 즈믄(1000)이 넘는 사람을 작은 칸에 욱여넣는 죽음길에 넋을 잃기 싫어 머리 위로 책을 들고서 읽었습니다. 1998년에 서울 기스락 신문사지국에 짐을 풀어 나름이(신문배달부)로 먹고살며 불수레하고 헤어집니다. “나는 불수레에서 나왔지만, 동무와 이웃은 오늘도 불수레에서 뭉개지겠구나!” 《취중진담 1∼3》은 2001∼02년에 낱책으로 나옵니다. 송채성(1974∼2004) 님은 이 그림꽃으로 둘레에 이름을 알렸으나 《쉘 위 댄스》하고 《미스터 레인보우》까지 그리고서 이슬이 되었습니다. 숨조차 못 쉴 수레에 갇힌 사람은 서로 ‘짐짝’이었습니다. 밟히고 구르니 악에 받히기도 하지만, 외려 이웃을 더 헤아리는 마음이 싹트기도 합니다. 맨마음과 맨몸으로 어울리는 곳에서도, 지치거나 슬픈 빛이 만나는 곳에서도, 들꽃이 핍니다. 불수레 미닫이(창문)로 이따금 나비가 들어왔어요. 작은이는 작기에 밑바닥을 구르지만, 이 밑바닥에는 바닥꽃이 피고, 나비가 날면서 햇볕을 나눕니다. 작은 틈새에 씨앗이 깃들어 푸른빛이 퍼지듯, 사람 사이가 좀더 넉넉하고 아늑하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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