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4


《그림에 부치는 시》

 김환기 글·그림

 지식산업사

 1977.12.1.



  책을 빌려줄 적에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더군요. 책을 빌린 사람이 하도 책을 안 돌려주는 터라, 잃은 책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얘기하나 싶기도 합니다. 2007년에 서재도서관을 연 뒤로 책을 제법 잃었습니다. 값진 책이기에 훔친 사람이 있고, 꼭 돌려주겠노라 하고서 끝까지 안 돌려주거나 자취를 감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에 부치는 시》는 제 손을 떠난 지 열 몇 해가 지나도록 안 돌아옵니다. 김환기 님하고 피붙이 사이라는 젊은 분이 꼭 읽고 싶다면서 찾아왔고,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했지요. 그이는 손전화 번호까지 남겼는데요, 여러 달 지나고서 쪽글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도 아무 대꾸가 없었어요. 헌책집을 샅샅이 돌며 잃은 책을 다시 살 수도 있습니다만, 그 젊은이가 너무 늦지 않게 돌려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뭔가 까닭이 있겠지요. 저는 《그림에 부치는 시》를 읽으며 김환기 님이 노래하며 그림을 그리셨네 하고 느꼈어요. 이녁 그림이며 글이란 오롯이 노래더군요. 이 별을 사랑하는 노래, 이 땅을 아끼는 노래, 뭇숨결을 그리는 노래, 그리고 책 한 자락을 어루만지는 노래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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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3


《제3세계의 관광공해》

 론 오그라디 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옮김

 민중사

 1985.12.16.



  제가 나고 자란 인천은 오늘날처럼 공항이나 발전소나 갖가지 공장이 들어서기 앞서는 서울에서 바다를 보러 놀러오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1973년에 나온 “관광기념우표 2차”에 ‘인천 팔미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송도’란 곳도 있는데, 부산에 똑같이 송도가 있는 줄 나중에 알았어요. 그런데 ‘인천 송도’는 일본 군함 이름에서 비롯했다지요. 지난날 그 고을은 ‘먼오금’이란 이름이었다고 해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학교에서는 ‘관광은 공해가 없는 훌륭한 산업’이라고 가르쳤습니다만, 인천에 몇 군데 있는 관광지에 놀러온 사람은 하나같이 쓰레기를 마구 버렸습니다. 관광지에 간다며 자가용을 달리면 매캐했습니다. 참말로 관광은 공해 없는 산업일까요? 《제3세계의 관광공해》를 읽으며 나들이나 마실이 아닌 관광이란 이름이거나 관광산업으로 이름이 늘어지면 한결같이 공해로 이어지는 얼거리를 찬찬히 볼 수 있었어요. 관광지에 세우는 갖가지 시설이나 큰 길손집은 고을사람하고는 동떨어져요. 넓은 찻길도 고을사람한테 이바지하지 않아요. 이웃을 만나서 사이좋은 길로 나아가려 한다면 돈벌이 관광을 북돋울 수 없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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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2


《포장마차》

 이상무

 자유시대사

 1988.3.1.



  포장마차에서 곁밥도 없이 소주 한 잔 마시는 살림이면서 골프를 하며 느긋하게 노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있을 수 있겠지요. 만화를 그린 이상무 님은 전두환 군사독재가 춤추던 무렵 잡지 〈만화광장〉에 싣던 토막만화를 그러모아서 1988년에 《포장마차》란 이름으로 내놓습니다. 이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골프 만화를 선보였고, 2011년에는 조갑제란 이가 쓴 글을 바탕으로 《만화 박정희》를 그렸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상무 님 스스로 그린 《포장마차》에 나오는 ‘투사’를 등치려던 일제강점기 앞잡이라든지, 투사인 할아버지를 속인 손녀라든지, ‘복서’가 앞뒤 다른 말이랑 몸짓으로 포장마차 일꾼 마음에 칼을 꽂은 일이라든지, 얼마든지 ‘돈·이름·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얼빠진 끄나풀이 되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포장마차》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끄나불’입니다. 스스로 오롯이 서지 않으면 앞잡이가 되고 말아요. 스스로 수수한 이웃하고 어울리지 않으니 ‘박정희 끄나풀’이 되어 삶하고 동떨어지고, 어느덧 만화님 스스로 꽃길을 어지럽히는 걸음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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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1


《한글농업용어집》

 허성득 엮음

 한글학회 감수

 농촌진흥청

 1971.1.20.



  오늘 우리는 ‘농업·농사’라는 한자말을 씁니다만, 이런 한자말을 쓰면서 땅을 부친 사람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벼슬아치나 먹물은 ‘농가월령가’란 이름을 붙이며 글을 썼으나, 흙지기는 흙을 만지는 흙말로 ‘노래’를 불렀어요. 굳이 ‘흙노래·숲노래·땅노래·들노래·철노래·일노래’라 하지 않았습니다. 노래일 뿐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일본 한자말이 나라 곳곳에 퍼졌어요. 흙짓기를 하는 살림자리에도 일본 한자말이 마구 퍼졌지요. ‘농협’이란 곳에서 쓰는 말씨는 거의 다 일본 한자말이요 ‘일본 농업용어’입니다. 막상 시골 흙지기가 안 쓰는 ‘일본 농업용어’는 1945년에 해방이 되고도 도무지 바뀔 낌새가 없었는데요, 농협 벼슬아치가 되는 이들은 흙을 안 만지고 논밭을 안 일군 채 대학생이 되어 공무원으로 뽑혀서 일하니, 흙말도 숲말도 들말도 시골말도 몰랐어요. 1971년에 이르러서야 농촌진흥청에서 《한글농업용어집》을 펴냅니다. 한글학회가 이바지해서 3000 낱말을 그러모은 꾸러미인데, 여태 바로잡지 않고서 그냥 쓰는 일본 한자말이 매우 많습니다. ‘친환경·유기농·자연농·무농약·관행논’도 다 일본 말씨이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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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0


《活動하는 얼굴》

 최민식

 삼성출판사

 1973.1.22.



  저는 최민식 님이 찍은 사진을 썩 안 좋아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둘레에서는 “우리 사회 서민과 가난한 사람과 밑바닥 사람을 사진으로 담은 훌륭한 어른 아니냐?” 하고 따집니다만, 최민식 님은 ‘서민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밑바닥 사람을 찍은 사진가’라기보다 ‘사람 얼굴을 찍은 사진가’라 느낍니다. 이 가운데 ‘돈·이름·힘 있는 사람 얼굴을 멋스러이 찍은 사진가’이기도 해요. 《活動하는 얼굴》이 이런 자취를 잘 보여줘요. 그렇다고 최민식 님 사진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저는 이런 사진을 안 좋아할 뿐이고, 이런 사진을 안 찍을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라면 ‘스스로 선 삶자리에서 이웃을 사랑으로 찍는 사진’일 뿐입니다. 누구는 가멸찬 집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골목집에서 태어나겠지요. 가멸찬 집에서 내려다보듯 골목사람을 찍는다면? 골목집에서 태어나 가멸찬 집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거나 미워하며 찍는다면? 둘 모두 싫어요. 어느 집에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든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사랑하는 따사로운 손길로 다가서서 환한 눈빛으로 담으면 될 노릇이지 싶어요. 최민식 님은 ‘살림하는 손길·눈빛’은 아니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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