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3


《뒷골목 고양이》

 어니스트 톰슨 시튼

 장석봉 옮김

 지호

 2003.7.30.



  2003년 9월 30일부터 충주 무너미마을을 이레마다 사흘씩 머물며 이오덕 어른 글이며 책을 갈무리했는데, 이때 시튼 님이 쓴 책 가운데 하나인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하고 《회색곰 왑의 삶》이 남달리 눈에 띄었습니다. 2002년 12월에 처음 나오고서 이듬해에 고침판이 나오는데요, 이오덕 어른도 이 책을 눈여겨보셨구나 싶어요. 그때까지 아무렇게나 나오던 시튼 이야기를 제대로 살펴 한국말로 옮기려 했기에 곁에 두셨구나 싶은데, 이 책은 그리 오래지 않아 새책집에서 사라집니다. 새책집에서 사라지기 앞서 《뒷골목 고양이》를 장만하며 속으로 ‘앞으로 다시 나오기 어려울는지 모르니, 먼 뒷날 아이들을 헤아려서 이 책을 고이 건사하자’고 생각했어요. 이러다 2016년에 출판사를 옮겨 다시 태어나지요. 2002∼2004년에 한국말로 못 나온 책까지 함께 나왔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제 손을 타고 아이들 손을 타면서 겉종이가 닳은 시튼 이야기를 펴면, 삶을 숲에서 새로 읽고서 사랑을 숲에서 새로 짓는 길을 찾으려던 숨결을 읽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앞으로 얼마나 품을 만할까요. 우리 마음에는 숲바람이 얼마나 불거나 흐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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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2


《線을 넘어서》

 루이제 린저 글

 홍경호 옮김

 범우사

 1975.10.1.



  인천을 떠나 서울 한켠에 깃들어 달삯살림을 지내는 동안 날마다 두서너 곳에 이르는 헌책집을 쏘다녔습니다. 날마다 두서너 곳에 이르는 헌책집에서 사들인 책은 적어도 스무 자락이었고, 많으면 백스무 자락쯤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두 다리로 책집마실을 다니니까, 백 자락이 넘는 책도 등짐에 담고 두 손으로 들어서 집으로 옮겼습니다. 1999년에 들어간 출판사를 2000년에 그만두면서 벌이가 사라지자 달삯을 낼 길이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름책을 헌책집에 되팔았습니다. 석 달 동안 책 판 값으로 버티었습니다. 제 품을 떠나는 책마다 한숨을 가늘게 쉬면서 “너도 우리를 떠나보내는구나?” 하고 웁니다. “할 말이 없네. 내가 그때 막말에 멱살잡이를 하던 출판사 사장하고 안 싸웠으면, 그냥 굽신굽신했으면 너희 곁에 새로운 동무를 맞아들였을 텐데.” 《線을 넘어서》를 비롯한 ‘루이제 린저 전집’은 10자락을 꾸러미로 1975년에 태어났습니다. 어쩜 제가 태어난 그해에 이런 아름책이 태어났을까요. 2000년 가을에 떠나보낸 열 자락 꾸러미는 아직 제 품에 못 돌아오지만, 그 가운데 한 자락을 스무 해가 지나고서야 다시 만나서 품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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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0


《노아 씨의 정원》

 캉탱 드빌·피에르-앙드레 마냉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김진실 옮김

 따님

 1996.11.20.



  어버이가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끼는 아이는 “아, 사랑스럽구나.” 하고 생각하기에 바로 낫습니다. 아이는 돌부리가 있기에 걸리기도 하지만 판판한 맨바닥에서 문득 자빠지거나 엎어지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아이를 핀잔할 수 있고 나무랄 수 있으며 걱정할 수 있어요. 우리가 아이 곁에서 보이는 몸짓을 고스란히 받아먹지요. 넘어진 아이를 일으키는 손길을 물려줄 수 있고,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가볍게 털고 일어나서 다시 뛰놀도록 북돋우는 살림말을 물려줄 수 있어요. 《노아 씨의 정원》은 이 나라에서 너무 일찍 나왔을까요. 마침 나올 만한 때에 태어났을까요. ‘따님’이라는 출판사는 이 나라로서는 너무 앞선 길을 걸었을까요. 때마침 아름다이 태어나서 씩씩하게 삶길을 밝히는 책을 선보였을까요. 예부터 어디에서나 흙지기는 땅을 섣불리 갈지 않았습니다. 겉보기로는 흙만 있는 땅이 아니니까요. 숱한 숨결이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땅인 터라 논밭을 삼는다고 마구 파헤치지 않았어요. 고이 비손을 했어요. “우리, 함께살자.” 하고 노래하면서 가만히 어루만졌어요. 손길·눈길·마음길이 이웃길·동무길·숲길에 닿아야 빛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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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1


《Minamata》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사진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글

 Holt, Rinehart & Winston

 1972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영국에서는 먼지구름으로 숱한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때에는 거의 공장하고 큰고장 살림집뿐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어마어마하다 싶은 자동차에 지하상가에 쇼핑센터에 아파트에 갖가지 첨단문화시설에 군부대에 …… 하늘이며 땅을 더럽히는 것들이 철철 넘칩니다. 왜 돌림앓이가 퍼질까요? 우리 스스로 하늘땅을 망가뜨린 탓입니다. 우리 손으로 허물고 만 하늘땅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또 하늘땅을 정갈하게 되돌릴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이 별은 와르르 무너지는 길로 가겠지요. 사진책 《Minamata》는 아름터하고 죽음터 사이를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차분하게 사진으로 선보이고, 낱낱이 글로 드러냅니다. 두 스미스 님은 미나마타란 작은 바닷마을에 들어선 공장 하나 때문에 그토록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아프지 않다는 대목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작은마을 작은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아름터를 다시 가꿀 만한가를 넌지시 드러내지요. 바닷마을이라면 바다를, 시골마을이라면 들숲을, 큰고장이라면 골목골목을, 오롯이 풀꽃나무가 춤추면서 벌나비랑 새가 노래하는 터전으로 가꿀 적에, 자동차부터 버릴 적에, 하나씩 거듭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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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9


《A Tiny Family》

 Norman Bridwell

 scholastic

 1968



  이제는 영어를 가르치고 배울 적에 미국·영국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쓰지만, 예전에는 딱딱한 교과서 하나가 끝이었어요. 교과서는 재미도 없을 뿐더러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으레 쓰는 말, 이른바 삶말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미국·영국 동화책’을 찾고 싶었고, 헌책집을 다니며 살피니 주한미군을 비롯해 외국인학교하고 외국대사관에서 알차고 아름다운 나라밖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꽤 많이 흘러나왔더군요. 아이들이 자라거나 한국에서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은 책짐이 무거워 으레 내놓았고, 이 책은 고스란히 헌책집에 들어왔어요. 아직 한국말로 한 자락도 안 나온 ‘노만 브리드웰’ 님 그림책 가운데 《A Tiny Family》도 헌책집에서 만났어요. 처음 만날 적부터 퍽 닳았지만 으레 넘기고 자꾸 되읽으면서 더욱 닳습니다. 그렇지만 책이 닳고 낡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새록새록 되새기고 싶은걸요. 손때가 묻으면서 한결 애틋하고, 손길을 타면서 새롭게 빛나는 헌책입니다. 작은 숨결을 담아낸 이야기란, 아이를 사랑하는 숨빛이란, 모두하고 동무가 되는 그림책이란, 얼마나 눈부신지 모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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