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9


《월간 말 12호 - 6월 항쟁》

 송건호·정상모 엮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1987.8.1.



  국민학교 3학년이 될 즈음까지는 잘 몰랐지만, 4학년이 되는 1985년에는 인천 시내, 그러니까 ‘동인천’이나 ‘주안’을 다니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길마다 최루탄이 춤추었고, 짱돌이 뒹굴었어요. 형이랑 어머니 심부름으로 집(신흥동3가)에서 동인천(인현동·내동·신포동)으로 걸어가서 이것저것 사서 다시 걸어서 돌아오려는데, 길에 자동차·버스가 하나도 없곤 했어요. 고요했습니다. 큰 짐차가 안 다녀서 좋았고, 건널목을 그냥 건널 수 있었지요. 그런데 큰우물길하고 갈리는 싸리재 언덕마루에 한여름에도 두꺼운 솜옷 같은 시커먼 차림새에 방패에 싸움탈을 쓴, 게다가 길다란 몽둥이까지 바짝 세운 이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아무도 못 지나가게 해요. 오금이 저렸지만 심부름을 해야 했기에 귀퉁이에 선 이한테 “저기, 여기를 지나가야 집에 가는데요?” 하고 물으니 “얼른 지나가!” 하면서 틈을 내주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무렵 인천신문에는 안 나왔고 학교나 마을에서도 쉬쉬했어요. 이때부터 1987년 사이에 있던 일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 가서야 헌책집에서 《월간 말 12호 - 6월 항쟁》을 찾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사슬나라를 갈아엎으려는 귀퉁이를 살아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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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8


《카아드 도안 백과》

 편집부 엮음

 한국능력개발사

 1982.11.30.



  1982년에 국민학교를 들어가서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둘레 어른은 ‘일본놈 나쁜놈 죽일놈’이란 말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더러 ‘잊지 말자 식민지’를 읊도록 시켰어요. 그즈음에는 ‘일제강점기’란 말보다 ‘식민지 시절’이런 말을 널리 썼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여러 나라는 모두 못미덥다면서 무찔러야 할 몹쓸 녀석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쳤어요. 그러나 어른들은 ‘우’가 아닌 일본 우체국 무늬를 으레 썼고 ‘사루비아·빵꾸·구루마·오라이’ 같은 일본말도 아무렇지 않게 썼으며 과자·대중노래이며 구석구석에서 일본 것을 몰래 훔쳐서 장삿판을 벌이기 일쑤였습니다.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능력개발’이란 데에서 펴낸 ‘미니컬러백과’를 팔았는데, 어린이 버스표 20자락을 모아야 비로소 하나를 살 만한 돈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책을 사려고 늘 걸어다니며 살림돈을 모았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만, 《카아드 도안 백과》를 비롯한 ‘미니컬러백과’는 모조리 일본 책을 훔쳤습니다. 이 나라 어른들은 ‘미워하라는 나쁜놈 나라 것’을 수두룩히 베끼고 훔쳐서 ‘코 묻은 돈’을 벌어들인 셈이에요. 이제 우리는 안 훔치나요? 지난 훔침질을 뉘우친 어른이 있나요? 우린 무엇을 짓는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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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7


《Photograms of the year 32th(1926)》

 F.J.Mortimer 엮음

 Iliffe & Sons LTD

 1927



  1927년에 나온 《Photograms of the year 32th(1926)》은 ‘Photograms of the year’이란 이름을 붙여 서른둘째로 나옵니다. ‘렌즈가 없이 빛을 담는 종이에 바로 대고서 그림자 같은 결을 얻을’ 적에 ‘포토그램’이라 합니다. 어떠한 손길로 얻는 모습이든 다 ‘사진’이에요. 값진 기계를 쓰든 값싼 기계를 쓰든 모두 사진이요, 필름이건 디지털이건 사진이지요. 곰곰이 보면 ‘유리판’이 ‘필름’으로 바뀌면서, 필름이 ‘대형·중형·소형’을 거치면서, ‘35밀리 필름’이 퍼지면서, 또 디지털로 또 손전화로 나아가면서, ‘저렇게 찍어도 사진이냐?’ 하는 말이 늘 불거졌어요. 사진은 사진일까요 예술일까요? 사진은 그저 사진으로 있으면서 사람살이에 이야기꽃을 들려주기에 어느새 예술도 되고 문화도 되며 사랑도 되지 않을까요? 1800년대 끝자락부터 태어난 《Photograms of the year》 가운데 1927년치를 2000년대로 넘어선 어느 날 서울 홍제동에 있던 헌책집에서 만났습니다. 1927년은 우리한테 어떤 해였을까요. 그무렵에 사진을 살피면서 이 땅에 이바지하자고 생각한 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 돈이 엄청나게 들기에 엄두조차 못 낸 사람이 많았을 수 있어요. 이제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는 오늘 우리한테 사진은 뭘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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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6


《가우디의 바다》

 다지마 신지 글

 최시림 옮김

 정신세계사

 1991.10.1.



  1980년대가 저물 무렵뿐 아니라 1990년대가 저물 무렵에도 이 나라에서 푸른길을 헤아리는 목소리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씨나락 까먹는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겼습니다. 2020년을 가로지르는 요즈음은 푸른길을 바라는 푸른삶이 얼마나 힘을 받을 만할까요. 온누리를 뒤덮는 돌림앓이가 퍼지지 않더라도 푸른눈이 되고, 매캐한 먼지구름이 하늘을 덮지 않더라도 푸른빛을 꿈꾸고, 갖가지 환경병이 불거지지 않아도 푸른숲을 가꾸는 숨결이 되기란, 그렇게도 어렵거나 까다롭거나 힘들는지 아리송합니다. 소설책이라기보다 동화책이요 이야기책인 《가우디의 바다》는 1991년에 처음 나왔는데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사라지면서도 석 판쯤 출판사를 옮겨 단출하게 다시 나왔습니다. 1990년에 정신세계사에서 새로 낸 《빠빠라기》가 읽힌 결을 생각한다면 아쉽구나 싶지만, 《빠빠라기》도 1980년에 둥지출판사에서 처음 한국말로 낼 적에는 거의 안 읽히다시피 했습니다. 이제라도 푸른글이 읽힐 수 있다면, 이제라도 푸른별을 바라보는 눈길이 퍼질 수 있다면, 이제라도 푸른살림을 가꾸려는 푸른벗을 만날 수 있으면 오늘 이곳이 참 아름다울 텐데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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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54


《여자의 참모습》

 분도출판사 편집부 글

 분도출판사

 1975.10.25.



  ‘성숙기의 젊은 여성들이 알아야 할 일’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여자의 참모습》은 1975년에 가을에 나왔습니다. 천주교에서 젊은 아가씨나 푸름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썼지 싶은 103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이 책하고 맞물려 ‘남자의 참모습’ 같은 책을 천주교회에서 펴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 없지 싶습니다. 곰곰이 본다면 가시내하고 사내를 가르기보다는 ‘참다운 사람길’을 가르치고 배우도록 열린마당을 짤 노릇이지 싶어요. 제가 태어난 해에 나온 《여자의 참모습》을 전주에 있는 헌책집에서 만났고 샅샅이 읽었는데 끝내 “결국 모든 처녀가 바라는 것은 ‘행복한 결혼’을 하는 데 있다. 정상적인 처녀라면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토록 결합하여 그의 아기를 갖게 되기를 원한다 … 독자적인 ‘자유’를 누리려고 꿈꾸는 일부 처녀들은 틀림없이 어떤 점에서는 손해를 본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아직 내면생활에서는 미숙한 상황에 있거나 ……(29쪽).”를 밝히려 했네 싶어요. 가시내를 억누르는 두동진 삶터를 얼핏 짚는다 싶었지만, 모든 짐을 가시내 스스로 지라 하면서 ‘짝짓기’로 가는 길에 머물고 말더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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