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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2


《保科氏 大正國語讀本詳解 卷一(修正版)》

 東京辭書出版社 編輯所 엮음

 東京辭書出版社

 1918.1.15.



  예전에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는 ‘전과’란 말을 썼고, 중학교에 들어서니 ‘참고서’란 말을 썼어요. 왜 말이 달라지는지 몰랐지만 둘레에서 그렇게들 말해서 따라갔습니다. 이제 돌이키면 ‘전과·참고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 썼는데, 지난날 전과·참고서 또 문제집·자습서 같은 이름은 모두 일본스러운 한자말이었지 싶습니다. 교과서에 적은 줄거리를 알기 좋도록 풀이했다는 전과나 참고서인데, 이런 책은 ‘도움책’이나 ‘길잡이책’이라기보다는 오직 교과서랑 학교에 매이도록 붙드는 구실을 했구나 싶어요. 교과서는 교과서로 마치고, 삶이나 삶터를 읽는 길에는 교과서 아닌 이야기책을 만나야 할 텐데, 몽땅 가로막은 셈이랄까요. 《保科氏 大正國語讀本詳解 卷一(修正版)》은 일본에서 ‘大正 7’, 곧 1918년에 나온 참고서라 할 만합니다. 일본 어린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國語’ 교과서에 나오는 낱말을 풀이해 준 책이에요. 그런데 1918년 언저리 ‘국어’라면 조선 어린이도 배웠을 테니, 이 묵은 참고서가 이 땅에서도 읽혔겠네 싶어요. 어느덧 백 해가 흘러가는데, 오늘날 이 땅 푸름이는 교과서·참고서를 떠나 홀가분하게 스스로 삶을 읽는 눈길을 기르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길책·삶책·살림책을 얼마나 만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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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5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박세길 글

 돌베개

 1992.10.20.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에 ‘국사’란 갈래가 있고, 숫자랑 이름을 잔뜩 외워야 한다더군요. 책에 나오는 숫자랑 이름을 못 외우면 외울 때까지 얻어맞으면서 끝없이 깜종이를 써냈습니다. 벼슬아치가 쓴 글하고 나라지기가 편 길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워야 했는데 하나같이 한문이었어요. 역사는 숫자랑 이름이랑 네모칸에 넣은 통계일까요? ‘국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를 총칼로 누르면서 비로소 붙인 말이고, 한국·대만·중국에 일본사를 ‘국사’란 허울에 넣어 달달 외우도록 시키며 밀어붙인 말이더군요.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은 외움질·몽둥이질이 그치지 않는데, 갑갑해 하는 저를 본 동무가 문득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란 책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학교에서 안 가르친 이야기가 잔뜩 흘러 놀랐어요. 고등학교 2학년일 무렵 세걸음으로 마무리가 된 이 책을 알려준 동무는 “‘다현사’는 좀 수다스럽지?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 강만길이란 사람이 쓴 《한국근대사》하고 《한국현대사》가 있어.” 하고 더 귀띔했습니다. 동무한테는 누가 이런 책을 알려주었을까요. 학교에서 시험문제로 닦달하는 ‘국사’로는 사람내음이며 사람빛을 못 느꼈습니다. 우리가 걷는 오늘은 숫자도 이름도 힘도 아닌,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인걸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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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3


《朝鮮日報 社報》 112호

 편집부 엮음

 조선일보사

 1974.2.23.



  1920년에 처음 나왔으니 2020년이면 〈조선일보〉가 온돌(100돌)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찍어낸 글은 못 숨기니, 일제강점기·군사독재 무렵에 이 신문이 한 짓은 쉽게 나무랄 만합니다. 거침없이 쥐락펴락 할 듯하던 이 신문은 1998년하고 2003년에 고비가 찾아옵니다. 나라지기가 바뀌거든요. 그무렵 ‘ㅈㅈㄷ 몰아내기’가 너울치기도 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ㅈㅈㄷ이 가리는 참모습’을 캐내거나 밝힐 새 목소리를 바랐고, 이곳저곳에서 새 신문이 태어납니다. 제국주의·군사독재·재벌하고 어깨동무하는 신문이라면, 이 세 가지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스러지면 아찔하겠지요. 그런데 낡은 틀을 몰아내자던 너울이 군사커넥션하고 재벌이랑 손을 잡으면 어찌될까요. 애써 새 신문을 마련했어도 ‘새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저지르는 잘못’에 눈감거나 물타기를 하거나 팔짱을 낀다면 어찌되려나요. 시골에는 군수가 일삼는 잘못을 따지는 목소리가 없다시피 합니다. 유신독재로 피바람을 일으킨 군사독재가 하늘을 찌르던 1974∼75년에 나온 《朝鮮日報 社報》를 들추면 ‘보도 경쟁’하고 ‘다른 신문사보다 일삯을 더 준다’고 하는 사장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기자란 이름을 가슴에 달고 싶다면 목소리를 어떻게 낼 노릇일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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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4


《記者協會報》 342호

 김병익 엮음

 한국기자협회

 1974.12.27.



  2008년에 낳은 큰아이도, 2011년에 낳은 작은아이도, 졸업장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 둘 다음에 찾아왔다가 무화과나무하고 석류나무 곁으로 돌아간 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들이 몸을 입고 아이로 자랐어도 졸업장학교를 안 다니고 ‘우리숲놀이터’에서 하루를 지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졸업장학교에서는 일제강점기 발자취를 다루며 으레 ‘민족지’란 이름으로 그무렵 태어난 신문을 이야기하는데, 그때 나온 신문은 일본 우두머리를 깍듯이 섬기고 따르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 자취는 고스란히 있습니다. 이들은 해방 뒤에 군사독재를 다시 알뜰히 모시고 온나라를 사슬터로 가두었지요. 《記者協會報》는 ‘기자끼리 친목을 다지고 권익을 높이려는 뜻’으로 태어납니다. 나중에 ‘언론비평’이란 몫을 어느 만큼 맡는데요, ‘일본 제국주의 섬기기·군사독재 모시기’를 오랫동안 하던 기자하고, 이런 일을 터럭만큼도 안 한 기자는 왜 어느 만큼 ‘친목’을 다지고 서로 ‘권익’을 북돋워야 할까요? 그저 기자란 자리에 선 분한테 묻고 싶어요. 총칼이나 군홧발을 두려워하면서 달삯쟁이로 있는 붓이 기자일 턱이 없습니다. 총칼이나 군홧발이 가신 오늘날, 돈하고 벼슬자리를 거머쥐려고 달품쟁이로 있는 손이 기자일 까닭이 없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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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30


《이화서림 책싸개》

 이화서림 엮음

 이화서림 펴냄

 1960년 즈음



  지난날에는 책 하나를 고이 아꼈습니다. 요즈음에도 책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은 곱다시 어루만집니다. 지난날에는 책 하나를 건사해서 읽는 사람을 살뜰히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종이책을 손에 쥐어 찬찬히 마음밥으로 삼는 사람을 알뜰히 바라보겠지요. 지난날에는 책 하나를 대수로이 마주하면서 정갈하게 다루려 했고, 이러한 손길은 책싸개로 엿볼 만합니다. ‘이화서림’ 이름이 박힌 책싸개는 이화여자대학교에 깃든 책집에서 내놓았겠지요. 언제 적 책싸개인가 하고 갸웃하다가 겉에 적힌 ‘화비안 전혜린’이란 이름에서 실마리를 찾습니다. 전혜린 님이 옮긴 《화비안》이란 이름인 책은 1960년에 처음 나왔어요. 그즈음 전혜린 님 책이 제법 사랑받았기에 이렇게 ‘이화서림 책싸개’에 꾹꾹 넣었을 텐데요, 적어도 1960년, 또는 이듬해나 1960년대 첫무렵에 이 종이를 마련해서 책을 감쌌겠지요. 이 책싸개가 어느 책을 고이 감싸면서 기나긴 날을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무렵 숱한 책은 이화서림에서 이 책싸개로 겉을 여미면서 뭇손길을 받아서 읽히고 사랑받고 마음자리에 이야기로 스몄을 테지요. 손길이란 잇는 길이지 싶습니다. 그저 닿는 결을 넘어, 마음을 기울여 만나고 헤아리고 어울리는 결이로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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