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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 산하어린이 145
박남정 지음, 이루다 그림 / 산하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46

 


딱새 지켜보기
― 곰 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
 박남정 글
 이루다 그림
 산하 펴냄, 2005.11.21.

 


  박남정 님이 글을 쓰고 이루다 님이 그림을 넣은 《곰 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산하,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처음 나온 지 여덟 해나 지나고서야 비로소 읽습니다. 어쩐지 그리 내키지 않아 그동안 이 책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딱새 육아일기’라니, 딱새알을 받아서 새끼가 되도록 품었다가, 새끼가 깨어났을 적에 먹이를 찾아다 주면서 길렀다는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아니에요. 자동차 한쪽에 둥지를 튼 딱새가 있어, 둥지에 낳은 알을 딱새 어미가 다 돌보고 떠날 때까지 물끄러미 지켜보기로 한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육아일기 아닌 ‘관찰일기’인데, ‘육아’라는 이름을 쓴 대목부터 걸립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는 넋하고 누군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넋은 달라요. 무엇보다, ‘딱새 육아일기’라고는 하지만, 정작 ‘딱새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품으며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모습을 곁에서 차근차근 지켜보는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옵니다. 그나마 ‘관찰일기’ 구실도 그리 해내지 못해요.


  이 책에 붙일 만한 이름이라면 “곰 아저씨가 딱새와 함께”쯤이라고 할까요. 육아도 아니고 관찰도 못 되지만, 틀림없이 딱새 둥지를 아끼는 눈길인 만큼, 책이름부터 제대로 돌아보아야겠다고 느낍니다.


.. 새들이 “아저씨, 집 짓게 트럭 좀 빌려 줘요.” 하고 미리 물어 보지 않은 게 얄밉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남의 집을 함부로 부술 수는 없잖아 ..  (19쪽)


  딱새가 얄미워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사람들 저희만 살려고 길을 닦고 집을 짓고 마을을 키우며 공장을 짓습니다. 딱새가 느긋하게 집을 지으며 살 터가 사라졌어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새한테 “우리 여기에 공장 지을 테니까 다른 데로 떠나 줘.” 하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벌레와 개구리와 뱀한테 “우리 여기에 고속도로 낼 테니까 다른 데로 떠나라.” 하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들짐승과 숲짐승한테 “우리 여기에 송전탑 박을 테니까 다른 데로 가라.” 하고도 말하지 않았어요.


  경상도 밀양땅에서 벌어지는 송전탑 말썽을 보셔요. 사람은 같은 사람한테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고 알리지 않아요. 게다가, 사람은 같은 사람한테마저 마구잡이로 굴어요. 사람은 이웃사람한테 폭력을 휘두르고 공권력을 밀어붙여요.


  먼먼 옛날부터, 딱새이든 박새이든, 또 제비이든 메추리이든, 사람들 살림집 곁에 보금자리를 틀었어요. 먼먼 옛날부터 시골집이란 도시 아닌 시골이요, 시골집이나 시골마을이라 하더라도 그예 숲이며 들이고 멧골이었어요. 숲이나 들이나 멧골에 덩그러니 풀집 한두 채 있을 뿐이었어요. 그러니, 이런 데를 멧새나 들새로서는 여느 숲 가운데 하나로 여겨 보금자리를 지었습니다.


.. 전화를 건 사람은 오랫동안 아저씨와 함께 일을 한 분이었어. 내일부터 사흘 정도 일하면 백만 원을 준다는 곳이 있는데, 일할 수 있냐고 묻는 전화였지. “새한테 트럭을 뺏겨서 갈 수가 없어요.” “뭐, 새 둥지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이런 얼빠진 사람 봤나. 새 둥지야 덜어 내버리면 되지, 벌어 놓은 돈도 없는 사람이 일거리를 마다 하면 되나. 그것도 그깟 새 때문에.” ..  (40쪽)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에 깃든 우리 시골집 처마에는 제비집이 둘 있어요. 제비는 팔월 끝무렵에 바다 건너 따스한 나라로 돌아가요. 구월부터는 처마 밑 제비집이 텅 비어요.  올 시월 끝무렵,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가 찾아왔어요. 딱새는 저희 둥지를 새로 짓지 않고, 제비집에 살그마니 들어와서 살아요.


  아침에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면, 제비집에서 쉬던 딱새가 포르르 날아 마당 한켠에 선 후박나무로 숨어요. 그래 봤자 마당 언저리인데, 마당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후박나무에 깃들어 이것저것 쪼던 박새가 다시 처마 밑 제비집으로 들어갑니다.


  딱새는 제비가 한창 처마 밑에서 노닐 적에도 곧잘 우리 집을 들락거렸어요. 우리 집에는 새들 먹이가 제법 많거든요. 이런저런 나무열매 있고, 이런저런 나무에 깃드는 풀벌레와 나비 애벌레를 그대로 두었어요. 우리 식구가 새한테 따로 모이나 곡식을 내밀지 않더라도, 새들은 우리 집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 어느 방송사에서 촬영을 왔을 때야. “차가 좀 지저분하니까, 딱새를 위해 곰 아저씨가 세차를 하는 장면을 좀 찍었으면 좋겠는데요.” 연출자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그래서 나는 대답했어. “내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집을 지었으니까 청소도 자기네들이 알아서 해야죠.” ..  (77쪽)


  농약을 친다든지, 사람만 먹겠다고 아득바득 한다면, 시골집에서도 멧새가 깃들 자리란 없어요. 우리 스스로 돌아보기로도, 우리 텃밭이나 꽃밭이나 풀밭에 농약을 치면, 우리 밭자락에서 돋는 풀을 뜯거나 캘 수 없어요. 농약 뿌려 풀을 죽인 땅에서 돋을 냉이를 어떻게 먹겠어요. 농약 뿌려 온갖 풀 죽인 땅에서 돋는 유채나 민들레를 어떻게 먹나요.


  농약을 쳐서 좋을 일은 없어요. 농약을 친다 한들 풀은 씩씩하게 새로 돋아요. 풀매기가 귀찮거나 성가시다면 풀이 돋는 흙땅을 모조리 시멘트로 덮어야겠지요. 밭에서도 씨앗 심은 데를 빼고는 모조리 시멘트로 덮어야지요. 그러면 김매기 안 해도 돼요. 사람만 혼자 살겠다면 흙으로 이루어진 땅에 농약 듬뿍 뿌리고, 풀을 죽이고 새를 죽이며 벌레와 개구리 몽땅 죽이면 돼요.


  이렇게 하면, 시골에서 흙일 하며 풀에 안 치인다 할 텐데, 지난날처럼 들일을 소한테 맡겨 소한테 풀을 먹이는 집이 사라지니까, 김매기를 하느라 애먹어요. 이제 시골에서 소한테 일을 맡기지 않고 기계로만 하니까, 김매기를 한다며 더 골치를 썩여요. 그렇지요. 소가 있고 토끼가 있으며 염소가 있으면 무슨 풀 걱정을 하나요. 풀 걱정 아니라, 사람이 먹을 풀이 모자랄까 근심할 법하지요.


  요새 시골에서 노루나 고라니나 멧돼지가 밭을 파헤친다고 말이 많지만, 노루나 고라니나 멧돼지가 숲에서 먹을 풀과 열매와 나무뿌리가 온통 사라지니까, 사람들 있는 마을로 와서 밭을 파헤칠밖에 없어요. 오로지 사람만 생각하니, 숲짐승도 숲에서 뜯을 풀과 열매가 없고, 이러면서 사람들은 사냥을 해서 그나마 몇 안 남은 숲짐승을 잡아 죽이려 하고, 다시 이러면서 숲에서 돋는 풀이나 들에서 나는 풀을 어찌 달래지 못하니 농약만 뿌려서 김매기를 합니다.


.. 엄마 딱새는 여느 때처럼 주변을 살피더니 범퍼 속으로 쏙 들어갔어. 그러더니 “어이쿠!” 하듯이 금세 땅바닥으로 떨어졌어. 그러고는 얼른 다시 일어나 둥지로 들어가고 ..  (152쪽)


  어버이는 아이를 보살피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분이라면 모두 잘 느끼고 잘 알리라 생각해요. 어버이로 살아가지 않을 적에는 알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대목이 있어요. 어버이는 이불을 걷어차고 자더라도 아이가 이불을 걷어차며 자면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이불깃 새로 여밉니다. 어버이는 밤새 오줌을 참으며 자더라도, 아이가 밤오줌 누도록 달래며 보듬고, 갓난쟁이가 기저귀에 쉬를 누면 밤새 잠을 쫓으며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합니다. 나는 두 아이와 여섯 해째 살아오면서 밤새 잠을 느긋하게 잔 적 아직 없어요. 이 아이들이 열 살쯤 넘는다면, 그무렵에는 비로소 밤새 느긋하게 잠을 잘는지 모르지만, 밤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이야기 들려주고 가르치고 하는 나날 보내면서, 내 눈을 아이 곁에서 뗄 수 없어요.


  그러니까, ‘딱새 육아일기’는 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딱새 관찰일기’조차 못 되는 《곰 아저씨의 딱새 육아일기》를 읽으면서 답답했어요. 책이름은 ‘딱새 육아일기’인데 정작 딱새 이야기는 얼마 없으니까요. 딱새를 돌보는 이야기도 이 책에는 없지만, 딱새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이야기도 얼마 없어요. 딱새가 깃든 시골자락 멧골에서 누리는 빛과 바람과 햇살을 들려주는 이야기도 거의 없어요.


  ‘육아일기’도 좋고 ‘관찰일기’도 좋아요. 참말 이 어린 새끼 딱새를 지켜보거나 사랑하려는 넋이었다면, 자동차만 그곳에 그대로 둘 일이 아니라, 어미 딱새가 먹이를 찾으러 아주 살짝 둥지를 비울 적에는 언제나 둥지 곁에서 새끼 딱새를 지켜보면서 보살폈어야지 싶어요. 둥지를 튼 자동차를 옮기지 않는대서 딱새를 지키거나 돌보는 일이 되지 않아요. 새끼 딱새가 사라진 일을 탓하려는 말이 아니에요. 곰 아저씨가 ‘육아일기’라는 말을 쓰려 한다면, 또 ‘관찰일기’라도 되도록 하려 한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 삶을 누릴 때에 곱게 빛나는가를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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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2-07 18:14   좋아요 0 | URL
멧돼지에 대해선 정말 우리가 미안해 해야 돼요.
사람들 사는 곳에 내려오는 이유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니까요.
인간만 생각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수정해야 되겠지요.

마지막 문단을 저자가 보았으면 좋겠군요.
리뷰대회 응모작인가 보군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3-12-07 18:41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무슨무슨 대회에 따로 응모를 하는 일은 없어요.
다만, 알라딘에서 무슨무슨 리뷰응모를 한다는 알림글이
글을 써서 등록할 때마다 늘 뜨기에
그렇게 응모를 시키라고 하니
그저 응모를 시켰을 뿐이랍니다 ^^;;;

아무튼~
'육아'를 하지 않는 분들이 '육아'라는 이름으로 '육아'를 한다고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일이 요즈음 들어 너무 잦기도 해서
여러모로... 좀 재미없구나 싶기도 해요...

참말 진짜 '육아'가 얼마나 재미있고 사랑스러운데요.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쓰고 그린 나무 관찰 기록 52편
허예섭.허두영 지음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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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2

 


사랑하면 노래를 불러야지요
―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허예섭·허두영 씀
 궁리 펴냄, 2012.2.10. 15000원

 


  사랑하면 나무가 보입니다. 사랑하면 풀이 보입니다. 사랑하면 하늘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며 들이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풀이 보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하늘도 바다도 들도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할 적에 사람을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일 적에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숨결인가 슬그머니 깨달으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짝을 만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삶을 일구기에 내 보금자리와 마을에 눈부신 햇살 드리웁니다.


  허예섭, 허두영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궁리,2012)라는 책을 만납니다. 책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냉큼 장만합니다. 참말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과 사진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온갖 나무를 만나고 이야기를 엮었구나 싶습니다.


..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천마도처럼 내 책도 오랫동안 썩지 않으면 좋겠다. 또 자일리톨 덕에 향긋한 냄새가 나 사람들이 내 책에 더 끌릴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종이가 없었을 때 생각을 표현하려고 자작나무 껍질에 얼마나 힘들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와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20쪽)


  나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무마음이 됩니다. 나무를 사진으로 담고 글로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나무내음이 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넋이 되고 어떤 내음이 될까요. 쥐똥나무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똥내음이 거석하다고 느끼면, 나는 쥐똥과 같은 넋이나 내음이 되겠지요. 그런데, 쥐똥나무는 참말 쥐똥하고 맞물려 쥐똥일까요? 쥐똥하고 맞물리는 쥐똥나무라 하더라도 쥐똥을 거석하게 여겨야 할까요?


.. 자작나무는 사람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  (23쪽)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물원에 갇힌 짐승은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사람들한테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은 몹시 슬프고 아프며 고단합니다. 사람들이 비싼 돈 들여 먹을거리 챙겨 준다 하더라도, 동물원에서 흙바닥 아닌 시멘트바닥만 밟고, 고작 몇 미터 안 되는 좁은 울타리만 맴돌아야 하는데, 이 짐승들이 누는 똥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날밖에 없습니다.


  곧, 동물원에 갇힌 짐승들 모두 ‘처음에는 숲에서 마음껏 뛰고 놀며 살던 아름다운 넋’인 줄 깨닫고 사랑할 수 있다면, 동물원 코끼리가 눈 똥을 달리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동물원 코끼리 아닌, 너른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달리는 코끼리가 누는 똥 곁에서 냄새를 다시 맡아 보아요. 같은 냄새가 안 나겠지요. 너른 들판 코끼리가 누는 똥에서는 너른 들판 풀내음이 피어나겠지요.


.. 여러 동물을 구경하는데 우연히 코끼리가 커다란 똥을 싸는 걸 봤다. 냄새도 심해 시각과 후각이 충격을 받아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짜증이 솟구쳤다. 다른 동물을 둘러보다가 울타리에 있는 나무 푯말을 봤는데 그 나무의 이름은 ‘쥐똥나무’였다. 주위에 쥐똥이 있는 것 같아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  (173쪽)


  이야기책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는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우러져 글과 사진을 엮은 대목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나무 하나를 놓고 나무도감에 실린 자료나 시집에서 읽은 글월을 지나치게 많이 옮겨서 아쉽습니다. 두 분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적었으면, 두 사람이 ‘나무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느낀 푸른 숨결’을 더 밝혔으면, 그리고 수목원 나무 말고, 들판과 숲과 마을에서 씩씩하고 싱그러이 살아가는 나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살며시 껴안으면서 사진을 찍었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운 책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나무 사진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묻어나는 사진으로 다시 엮을 수 있으면, 또 나무를 제대로 알아볼 만한 사진으로 다시 찍어서 엮을 수 있으면, 또 ‘학술’이나 ‘학문’으로 알아보려는 나무가 아니라, 먼먼 옛날부터 사람과 짐승과 벌레와 새하고 함께 살아온 이웃인 나무인 줄 깨달으며 사랑한다면, 사뭇 다른 이야기로 우리들한테 나무노래 들려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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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찌의 육아일기 - 대한민국에서 할아버지로 사는 즐거움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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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1

 


육아관찰 푸념일기
―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글
 터치아트 펴냄, 2013.5.20. 13000원

 


  이레 즈음 목과 코가 몹시 아팠습니다. 콧물이 멈추지 않고,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그렇지만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과 마실을 다닙니다. 밤에 아이들 자리에 눕혀 자장노래 부르려 하는데, 코와 목이 아프면서 콧물이 안 그치고 또 코로 숨을 쉬기 어렵다 보니, 겨우 몸을 추슬러 노래 한 가락 부른 뒤 밖으로 나와 코를 풀고 목을 추스르고는, 다시 들어와서 노래 한 가락 부른 뒤 밖으로 나와 코를 풀고 목을 추스릅니다.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몸을 느낄까요. 느낄 테지요.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아버지처럼 코로 제대로 숨을 못 쉬어서 날이면 날마다 코로 소금물 넣으며 뚫어 주었어요. 이제 큰아이는 아버지처럼 코로 숨을 못 쉬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맺히도록 뛰노니, 아이들은 코도 목도 몸도 천천히 튼튼해지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저녁에 코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던 며칠 앞서, 깊은 밤에 마당으로 나와 별바라기를 하며 코를 풀다가 별똥을 보았어요. 이듬날 밤에도 또 코가 막혀 괴롭게 재채기를 하다가 별똥을 보았어요. 별똥이 사라지기 앞서 마음속으로 꿈을 하나 빌라 했지만, 그럴 겨를은 없어, 별꼬리 가늘게 사라지는 모습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부디 이 코로 맑은 숨 걱정없이 쉬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노래부를 수 있는 삶 찾게 해 주소서, 하고 생각합니다. 밤하늘 그득 채운 별을 바라보면서 기지개를 켜고, 너희 아버지 새로 기운을 차려 밥도 한결 맛나게 차리고, 노래도 더 신나게 부르마 하고 다짐합니다.


  엊저녁 드디어 코가 조금 뚫립니다. 코가 뚫리니 코로 숨을 쉴 수 있고,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목떨림 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보드랍고 차분하게 부르는 아버지 노래를 듣는 두 아이는 한두 가락 같이 따라 부르는가 싶더니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이불깃 여미고 토닥토닥하면서 노래를 몇 가락 더 부르고는 나도 눈을 감습니다.


[2012.1.25.] 딸아이의 출산휴가 1년이 마침내 끝났다. 덕분에 요즘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천사를 영접하게 되었다.
[2012.3.5.] 재영이가 밥을 삼키지 않고 입에 물고만 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내고 오더니 나쁜 버릇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고 아내는 걱정했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면 생기는 버릇이란다.
[2012.3.10.] 운동화가 낡아 예쁜 걸로 한 켤레 사고 싶다며 백화점에 갔던 아내가 자기 운동화는 안 사고 외손자 운동화와 원숭이 인형만 달랑 사들고 돌아와서는 자기 물건 산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들풀 뜯어 날푸성귀로 먹기 즐기면, 아이들도 날푸성귀를 즐깁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함께 풀을 뜯습니다. 어버이가 밭에서 돌을 고르고 일구어 씨앗을 심어 돌보면, 아이들도 밭둑에 나란히 쪼그려앉아서 돌을 고르다가는 씨앗도 심고 풀도 뜯습니다. 어버이가 자전거를 타며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면, 아이들도 자전거를 얼른 타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저희끼리 놀 적에도 콧노래 흥얼흥얼 즐겁습니다.


  크레파스를 사고 크레용을 사며 색연필을 삽니다. 종이를 넉넉히 장만합니다. 따로 아이들을 불러서 그림을 함께 그리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스스로 그림을 즐깁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꿈이나 사랑을 이야기 한 타래로 엮어 갈무리하고 싶을 적에 스스럼없이 크레파스나 크레용이나 색연필을 꺼내고 종이를 펼칩니다.


  이렇게 어버이 스스로 그림그리기를 즐기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버이 곁에 엎드립니다. “나도, 나도, 나도 그림 그릴래!” 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이윽고 어버이가 마음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다 그립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많이 어려 다른 놀이로 갈아타지만, 큰아이는 어느새 그림놀이에 푹 빠집니다.


  아이들이 못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일’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몸을 써서 움직이는 모든 삶을 반깁니다. 아이들은 ‘심부름’이라고도 여기지 않습니다. 몸이 쑥쑥 자라니 즐겁고, 팔과 다리에 힘이 차츰 붙으니 신납니다.


  우리 어른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도 처음부터 익숙하게 해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 쉰이나 예순이나 일흔부터 새롭게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처음에만 낯설 뿐, 이내 익숙하게 해요. 나이 예순이나 일흔부터 자전거를 타더라도, 차츰 새 힘살이 붙어요. 나이 일흔이나 여든부터 책을 읽더라도 차츰 머리에 새 빛이 감돕니다.


  아이만 배우지 않아요. 어른도 배웁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동안’ 배워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과 숨결(짐승과 푸나무와 벌레들도 함께)은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죽으려 하는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2012.3.22.] 돌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영이가 이 노래를 알아듣거나 따라 부를 수는 없지만,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일인가.
[2012.3.24.] 오늘 아침도 녀석과의 실랑이로 신경이 바짝 곤두선 아내가 나한테 화풀이하듯 나물들을 몇 가지 무쳐 놓았으니 밥은 알아서 좀 먹으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울화통을 터트리며 밥상을 번쩍 들어 마당으로 내던져버렸을 텐데, 요즘은 던질 밥상도 없고 마당도 없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외손자 때문에 마음고생이 너무 심한데다 지금 내 처지가 4순위라는 것.
[2012.4.11.] 지금까지 여당이 해온 짓거리가 하나도 마음에 안 들었고 여당 후보자로 나온 인물은 더욱 혐오스럽지만 눈물을 삼키고 새누리당과 그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여당보다는 야당들이 하는 짓거리가 더 마음에 안 들고 더 혐오스럽기 때문이었다.


  번역 일을 하는 이창식 님이 이녁 딸아이가 시집가서 낳은 아이를 옆지기(외할머니)와 함께 돌보는 이야기를 갈무리한 《하찌의 육아일기》(터치아트,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창식 님은 ‘육아일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늦깎이에 어린 아이하고 삶을 함께 보내니, 이 이야기를 일기로 남기면서 어느새 ‘육아일기’가 되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하찌의 육아일기》를 읽다 보면, 할아버지(하찌) 이창식 님이 외손자를 돌보거나 보살피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종이기저귀 갈아 주고 밑을 씻기는 일, 플라스틱 자동차에 태워 몇 바퀴 돌리다가 자장노래 불러 주는 일, 가끔 놀이터로 데려가 한 시간 즈음 지켜보는 일, 이 세 가지를 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외손자하고 놀이터도 자주 다니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아이(외손자)한테 밥을 먹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밥을 차릴 줄 모릅니다. 아마 설거지도 못 할 테지요. 설거지 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글로 안 썼으니, 설거지를 모른다고 해야 옳다고 느껴요. 《하찌의 육아일기》를 보면, ‘마누라 밥상 차리는 꼴이 못마땅해서 밥상을 뒤엎고 싶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적습니다. 아마 이녁이 젊을 적에는 참말 밥상을 뒤엎으며 거친 말을 내뱉았으리라 봅니다. 나이가 들어 이렇게 못 할 뿐이라는 푸념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2012.5.8.] 아내가 나더러 요리 학원엘 다니란다. 자기는 외손자 녀석 먹거리 장만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진이 빠져 남편 먹을 것까지 챙겨 줄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자기가 날 먹여 살렸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요리를 배워 자기를 좀 먹여 살려 주면 얼마나 고마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듣기에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막상 생각해 보니 좀 한심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와서 드시라고 해도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면 사양하고 안 갈 판인데,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요리 학원을 다니라고? 차라리 사먹고 말자고 했더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쩜 그렇게도 없느냐고 타박했다. 기가 찼다.
[2012.5.10.] 젓가락으로 인절미를 떼어내어 콩고물에 찍어 입안에 넣자 목구멍이 갑자기 콱 막히며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만년에 이런 푸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져 식탁을 확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2012.5.26.] 저녁에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쉬는 날에 혼자서 재영이를 돌보며 집안 청소와 소소한 일들을 하느라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집사람이 듣고 있다가 “네 새끼 내가 키워 주고, 김치랑 반찬이랑 국이랑 다 제공하고, 재영이 먹을 것까지 다 챙겨 주는데도 힘들다고 푸념하냐?”며 타박했다.


  《하찌의 육아일기》는 참말 ‘할아버지 육아일기’가 맞을까요? 육아일기 아닌 ‘육아관찰일기’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한 걸음 나아가, 육아관찰일기조차 아닌 ‘육아관찰 푸념일기’라고 해야 꼭 들어맞지 않을까요?


  이 책 《하찌의 육아일기》는 할아버지 이창식 님이 이녁 모습과 생각을 거의 안 숨기고 잘 드러냅니다. 이 대목은 훌륭합니다. 밥상을 뒤엎고 싶다는 생각, 또 마누라한테 큰소리를 내며 부부싸움을 한 모습, 예순 넘어서 요리학원 다니라는 말에 성을 벌컥 낸 모습, 이런 이야기와 저런 모습을 감추지 않았기에, 오늘날 남자 지식인과 남자 어른(할아버지) 생각과 삶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왜 ‘여자가 차려 주는 밥’만 먹으려 할까요. 여자(할머니)가 이녁보다 먼저 숨을 거두거나 그만 허리가 다쳐 일어서지 못할 적에는 어떻게 할 생각일까요. 집안에 있는 여자가 몸이 아프거나 다쳐서 꼼짝을 못하면 집안에 있는 여자를 내팽개칠 생각일까요. 스스로 밥도 못 하고 죽도 못 끓인다면, 스스로 살림을 돌보지 않고 여자한테만 도맡긴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가만히 보면, 이창식 님 딸아이는 이런 ‘아버지 모습’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이창식 님 사위도 이와 같은 ‘아버지 모습’으로 아이를 마주할는지 모릅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내고 오더니 나쁜 버릇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고 아내는 걱정했다(3월 5일 일기)” 같은 말을 읽으며 헤아립니다. 외손자는 정작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받는다기보다 외롭게 크는구나 싶기까지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와서 자꾸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지요. 제대로 사랑을 받고 싶어 외손자가 자꾸 앙탈을 부리고 밥을 뱉고 법석을 떨지요.


  다 까닭이 있어요. 아이는 이렇게 드러낼밖에 없어요. 두 돌도 안 된 갓난쟁이와 같은 아기가 어떻게 제 마음을 밝히겠어요. 어른과 같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이 어린 아기가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제 마음을 보여주겠어요. 도리질을 치고 울고 밥 안 먹고 심통을 부리는 모습으로 말을 합니다. 아이들 말은 ‘어른처럼 입으로 읊는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말’이고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아이 눈높이에 맞출 뿐 아니라 아이 마음결과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 말을 아이 눈높이로 알아채고, 아이 마음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느껴야 합니다.


[2012.12.26.] 무언가 표현은 하고 싶은데 말이 되지 않으니까 외계인 언어를 마구 지껄여대는데, 거의 소움 수준이다. 오늘도 하도 잘난 척 때때거리기에 내가 “오냐 그래, 니 똥 굵다!” 해 버렸더니, 녀석이 그 다음부터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굴따! 굴따! 굴따!” 하며 깔깔거렸다. 듣고 있던 아내가 이제 말 배우기 시작하는 외손자한테 잘 가르친다 하며, “재영아, 하찌랑 같이 놀지 마.”라고 말했다. 녀석이 ‘굵다’는 말의 뜻을 벌써 알아차렸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명색 문학을 한다는 외할아버지가 외손자한테 그런 식의 언어 교육을 한다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야말로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가 아닌가.


  아이가 하는 말은 ‘외계인 말’이 아닙니다. 아이 마음을 드러내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할아버지가 ‘소음’으로 여긴다면, 아이는 너무 가엾습니다. 아이 마음에 할아버지는 무엇을 그려 넣는가요. 아이 마음에 할아버지뿐 아니라,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는 날마다 무엇을 그려 넣는가요.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가 ‘휴가를 즐기려’고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극장에 영화 보러 가려’고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며, ‘휴일에 집에서 느긋하게 쉬겠다’며 아이를 외할머니한테 맡기는 이야기가 《하찌의 육아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창식 님 사위와 딸아이한테 몹시 궁금합니다. 두 분은 아이를 왜 낳았을까요? 두 분은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려는 마음이 있기에 아이를 낳았는가요? 아이한테 모든 것을 바치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어느 만큼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기는 아름다운 삶을 어느 만큼 헤아리는지 궁금해요.


  할아버지 이창식 님은 《하찌의 육아일기》 첫머리에 “딸아이의 출산휴가 1년이 마침내 끝났다. 덕분에 요즘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천사를 영접하게 되었다(1월 25일 일기)” 하고 적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녁 외손자를 ‘천사’가 아닌 ‘(할머니) 남편 사랑을 빼앗는 적’으로 여길 뿐 아니라 ‘떼쟁이’와 ‘괘씸이’로 삼다가는, 마지막에 이르러 ‘외계인’으로 바라봅니다.


  이창식 님한테 한 가지 바라고 싶습니다. 이녁 외손자와 함께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알프스 멧자락에서 혼자 살아가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갑작스레 외손자를 떠맡아야 했을 때에 어떻게 스스로 삶을 바꾸었는지를 만화영화로, 또 원작소설로 읽어내시기를 바랍니다.


  밥하기와 빨래하기와 청소하기와 살림하기와 아이돌보기는 ‘여자(어머니·며느리·할머니)’가 도맡아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밥과 빨래와 청소와 살림과 아이는 모두 ‘삶’입니다. 이녁 딸아이도 사위도 스스로 즐겁게 맡아서 함께 할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삶입니다. 진수성찬 받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진수성찬을 차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외손자한테서 사랑받기를 바란다면 참으로 외손자한테 따스하며 너른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이창식 님이 옆지기한테서 고운 사랑을 받고 싶다면, 먼저 이창식 님 스스로 이녁 옆지기를 곱게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마땅합니다.


  밥상을 뒤엎는 짓은 자랑이 아닙니다. 밥상을 뒤엎는 짓이란 바보도 안 하는 짓입니다. 외손자 앞에서 밥상을 엎어 보셔요. 얼마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요. 외손자 앞에서 할머니를 마구 꾸짖거나 거친 말을 뱉어 보셔요. 얼마나 재미난 일이 생길까요. 쓸쓸합니다.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읽기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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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뉘앙스 사전 -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박영수 지음 / 북로드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0

 


시사용어는 한국말인가?
―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우리말 뉘앙스 사전
 박영수 글
 북로드 펴냄, 2007.8.21. 15000원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우리말 뉘앙스 사전》(북로드,2007)이라는 책을 내놓은 박영수 님은 책머리에, “많은 사람들이 단어를 고를 때 헷갈려 하곤 한다. 순수 우리말에서부터 최근 외래어에 이르기까지 워낙 많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글 흐름상 어떤 단어가 어울리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그렇다(10쪽).” 하고 밝힙니다. 곧, 이 책 《우리말 뉘앙스 사전》은 ‘우리말’만 다루는 책이 아닌 ‘외래어’까지 다루는 책입니다. 그러나, 책이름에는 ‘우리말’이라고만 적습니다.


  차례를 살펴도, ‘가십·하마평·회자’, ‘딜레마·진퇴양난·난국’, ‘레지스탕스·게릴라·빨치산’, ‘아포리즘·잠언·묵시록’처럼 우리말 아닌 외래어를 아주 많이 퍽 자주 다룹니다. 글쓴이 박영수 님으로서는,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우리말과 외래어 사이에 어떤 틈이 있는가’를 제대로 모르는 채 쓴다고 느끼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말’과 ‘외래어’를 죽 들고는 뜻풀이와 쓰임새를 살핍니다.


  너무 마땅하지만, ‘가십’도 ‘하마평’도 ‘회자’도 우리말,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말밥’이나 ‘입방아’입니다. ‘대강·대충·적당히’ 같은 낱말을 함께 다루기도 하는데, 세 낱말 모두 한국말은 아닙니다. 한자말일 뿐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아무렇게나, 얼렁뚱땅, 얼추, 알맞게’ 같은 낱말을 찬찬히 살펴야겠지요.


..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라는 본뜻을 지니고 있다. ‘내 가치관에 부합된다’는 건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여기에서 ‘마음에 들다’ → ‘보기에 좋다’라는 뜻으로 나아갔다 … 이에 비해 ‘예쁘다’는 ‘생긴 모양이나 하는 짓이 아름다워서 보기에 귀엽다’라는 뜻이다 ..  (285∼286쪽)


  ‘가엾다·불쌍하다·안타깝다’나 ‘가랑비·보슬비’ 같은 낱말은 잘 다루는구나 싶으면서도, ‘아름답다·예쁘다’ 같은 낱말은 제대로 못 살핍니다. 오히려 엉뚱한 풀이를 합니다. “아름답다 = 나답다”라 하는데, ‘예쁘다’ 풀이를 “…… 아름다워서 보기에 귀엽다”처럼 적습니다. 그러면, ‘예쁘다’도 ‘아름답다’인 셈이에요. 국어사전에서 흔히 저지르는 돌림풀이 잘못을 박영수 님도 《우리말 뉘앙스 사전》에서 똑같이 저지릅니다.


  그리고, ‘나답다’는 박영수 님 풀이말처럼 “내 가치관에 부합된다”로 풀이하기에는 알맞지 않습니다. ‘나답다’는 말그대로 “나답다”이지, 내 가치관(뜻이나 넋)에 들어맞는 모습이 아닙니다.


  꽃이 ‘꽃답다’고 할 적에, 무지개가 ‘무지개답다’고 할 적에, 시냇물이 ‘시냇물답다’고 할 적에 어떤 모습과 느낌일는지 헤아려 보셔요. ‘나답다’란 “내가 바로 내 모습이요 내 넋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뒤쫓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시샘하거나 부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 스스로 꿋꿋하고 씩씩할 때에 ‘나답다’입니다. 곧, “아름답다 = 나답다”란, 다른 사람 말이나 겉모습이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내 삶을 즐겁게 일구는 모습이고, 이렇게 스스로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이요 ‘보기에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얼굴이 예쁘장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삶은 돈이 많거나 겉보기로 대단하지 않아요. 아름다움은 언제나 즐거움과 나란히 있습니다.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맑은 웃음과 밝은 노래가 감돕니다. 《우리말 뉘앙스 사전》이 참답게 ‘우리말 느낌을 풀이하면서 헤아리는 책’이 되자면, 말빛과 말삶부터 찬찬히 짚고 살펴야지 싶어요.


.. ‘조금’이 변화 차이가 비교적 적은 상태를 나타낸다면, ‘약간(若干)‘은 뭔가에 비교해서 달라진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  (350쪽)


  《우리말 뉘앙스 사전》에서는 ‘조금·약간’을 나란히 다루기도 하는데, 정작 ‘우리말’인 ‘살짝·살며시·살그머니’는 다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변화 차이가 비교적 적은 상태”와 같은 말풀이를 한국말(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이 책에서는 ‘어처구니없다’와 ‘황당무계’를 함께 묶어서 다루는데, ‘어처구니없다’하고는 ‘어이없다’와 ‘터무니없다’를 묶어서, 이 낱말을 어떻게 달리 쓰는가를 밝혀야 아름답습니다. ‘흐지부지’와 ‘유야무야 ·용두사미’를 다룰 일이 아니라, ‘흐지부지’하고는 ‘흐리멍덩·어영부영’을 다루어야 아름답지요. ‘아프다’하고 ‘편찮다’를 견주는 느낌말 풀이를 할 노릇이 아니라, ‘아프다·앓다·결리다·쑤시다·지끈거리다’를 견줄 수 있는 느낌말 풀이가 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한국말(우리말)을 옳고 바르게 쓰면서 알맞고 즐겁게 쓰는 길을 여는 길잡이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방가르드·퍼포먼스’가 ‘우리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우리말 뉘앙스 사전”이 아닌 “시사용어 뉘앙스 사전”으로 이름을 고쳐야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책이름부터 말느낌을 잘못 짚었습니다.

  한국사람이 시사용어를 이럭저럭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사용어로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이나 책에 적히는 낱말이라 해서 한국말(우리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회에서 널리 쓰는 말이니 ‘시사용어’일 뿐입니다.


  시사용어 가운데에는 한국말로 천천히 녹아드는 낱말이 더러 있겠지만, 모든 시사용어는 처음부터 외국말입니다. 아니, 한국사람이 사회에서 두루 쓴다고 하는 시사용어치고 ‘한국말로 알맞고 슬기롭게 지은 낱말’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영수 님이 외국말을 한국말과 견주어 풀이하려는 이 책은, 뜻이 없지는 않은데, 외국말을 한국말로 알맞게 번역하고 슬기롭게 고치거나 바로잡거나 손질하는 길을 밝힐 때에, 그야말로 아름답고 보기에 좋습니다. 책이름부터 바로잡고, 다루는 낱말을 알뜰히 추스르며, 줄거리를 찬찬히 손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10.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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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는 잣나무 아나스타시아 2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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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사람이 알아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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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2-15 08:35   좋아요 0 | URL
소셜북스토어라는 게 생겼대서 거기에 적었더니 내서재에 뜨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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