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의 조건 - 유럽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손에 넣었는가
필립 T. 호프먼 지음, 이재만 옮김, 김영세 감수 / 책과함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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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86



전쟁은 늘 ‘새로운 전쟁’을 바랐고 끌어들였다

― 정복의 조건, 유럽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손에 넣었는가

 필립 T.호프먼 글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10.31. 18000원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를 지나는 동안 지구 사회에서 미국이 가장 힘이 센 나라로 보입니다. 어쩌면 2020년대에도 미국이 가장 힘이 센 나라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앞으로 중국이나 인도가 미국 힘에 맞설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미국은 지구 사회를 주무르는 나라로 우뚝 서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오늘날 지구에서 미국은 ‘전쟁무기를 가장 많이 갖춘 나라’이거든요. 엄청난 전쟁무기와 어마어마한 군대를 거느린 미국인 터라, 수많은 나라가 미국 앞에서 꼼짝을 못한다고 할 만합니다.



유럽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은 서로 거듭하여 격돌하여,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 엄혹한 경쟁에 참가한 통치자들은 재정적 이득, 영토 팽창, 신앙 수호, 승리의 영광 등을 상으로 얻었다. 그런 상을 잡아채고자 그들은 세금을 인상하고 육군과 해군에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24쪽)


전쟁은 근대 초기 서유럽 국가들이 추구하던 그야말로 유일한 목표였다 … 정부 예산의 40∼80퍼센트는 바로 군대에, 다시 말해 거의 끊이지 않고 싸운 육군과 해군의 비용을 부담하는 데 쓰였다. (32쪽)



  《정복의 조건, 유럽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손에 넣었는가》(책과함께,2016)라는 책은 ‘세계 패권 정복’을 이루려는 나라는 무엇을 했는가를 찬찬히 짚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고 할 만한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유럽에서 건너간 이들이 세운 나라예요. 큰 틀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은 한덩어리로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고 할 만합니다.


  《정복의 조건》을 읽어 보면 이른바 ‘신세계 발견’이라고 하는 무렵부터 서양 여러 나라가 북미·중미·남미로 어떻게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거나 자원을 빼앗았는가를 밝힙니다. 아시아·아프리카로도 어떻게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거나 자원을 빼앗았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밝혀요. 전쟁무기를 앞세운 ‘유럽 제국 정복 역사’라고 할까요.



문화적 진화는 서민층에도 영향을 끼쳤다. 중국을 통일한 제국은 오랜 전쟁을 멈추고 백성들에게 안보라는 귀한 선물을 제공했다. 그러고 나자 통일 유지가 국가 관념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었으며, 이 생각은 중국이 반란과 내전으로 어지러울 때조차 변하지 않았다. (170쪽)



  중세와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동안, 서양에서는 적어도 40퍼센트부터 많게는 80퍼센트까지 나라살림을 전쟁에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하지요. 오늘날 서양은 나라살림을 전쟁이 이처럼 쏟아붓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서양은 나라살림을 거의 다 ‘제 나라 문화와 복지’에 쏟아부어요. 어느 나라는 전쟁무기나 군대에는 거의 돈을 안 쓰고 오직 ‘제 나라 문화와 복지’에만 쓰고요.


  서양은 꽤 오랫동안 그저 싸우고 죽이고 빼앗고 쳐들어가는 길에 거의 모든 돈을 쏟아붓는 얼거리였다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제 것을 스스로 살리거나 키우지 않던 나날이 참으로 길었다는 대목을 생각해 봅니다. 이웃나라 것을 어떻게 하면 몽땅 가로챌 수 있을까를 살폈던 모습을 곰곰이 짚어 봅니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 전쟁무기와 군대에 30퍼센트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고 2017년에는 10퍼센트를 차지한답니다. 그런데 2017년 10퍼센트는 40조 원이에요. 교육 예산이 56조 원이라는데 전쟁무기와 군대 예산이 40조 원입니다.



다른 유라시아인들은 서유럽인들이 품었던 망상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갈망하는 비단과 향신료를 비롯한 사치품을 생산하거나 거래하고 있었다. 따라서 알려진 세계의 다른 지역이 더 부유하다고 믿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199쪽)


유럽이 그런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었다. 유럽은 지출을 더 많이 했고, 화약 기술을 중점적으로 사용했으며, 전쟁을 일으킬 의지를 꺾는 패권자가 없었다. (262쪽)



  한국은 왜 40조 원에 이르는 돈을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쳐야 할까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자원을 빼앗거나 사람을 죽이려는 뜻일까요? 이웃나라가 한국으로 쳐들어올까 두렵기 때문에 이만 한 돈을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쳐야 할까요?


  한국은 한국 스스로 튼튼하게 서는 데에 나라살림을 쓸 생각을 내기 어려울까요? 전쟁무기와 군대로 지키려는 나라가 아닌, 참다운 자급자족을 이루어 스스로 튼튼하게 서는 길에 나라살림을 들일 생각을 하기는 힘들까요?


  《정복의 조건》을 읽어 보면, 중세·근대·현대에 이르는 동안 유럽 여러 나라가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치면서 ‘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에서 빼앗거나 가로챈 자원을 ‘다시 군대로’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기껏 빼앗거나 가로챈 자원은 유럽을 살찌우는 길에 아닌 ‘군대를 더 키우는’ 데에 쓰였다고 해요.


  왕족이나 귀족은 ‘엄청난 군대가 다른 나라에서 빼앗아 가져온 자원’을 마음껏 누렸을는지 모르지요. 여느 사람들은 더 힘들거나 고단한 살림일 수밖에 없는데다가 군인으로 불려 가야 했어요. 여느 사람들은 군인이 입을 옷을 짓거나 전쟁무기를 만드는 일에 끌려 가야 했다고 해요.



그 모든 전쟁은 막대한 비용도 수반했다. 함선을 무장하면서 수송비용이 대폭 늘었고, 지상전을 치르려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혹한 세금이 부과되었을 뿐 아니라 전염병이 돌았고, 기강이 잡히지 않은 병사들이 폭력을 휘둘렀으며, 심한 경우 농촌을 유린하여 한 세대 동안 농업생산성을 25퍼센트 떨어뜨리기도 했다. (242쪽)



  ‘정복’이란 무엇이고 ‘세계 패권’이란 무엇일까요? 정치 지도자하고 권력자와 재벌이 아닌 여느 사람들한테는 ‘정복·세계 패권’이 어떤 뜻일까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40조 원에 이르는 돈을 2017년에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쳐야 하는데, 이 엄청난 돈은 무슨 구실을 할 만할까요?


  역사책에는 유럽 어느 나라가 중남이 어느 나라에서 자원을 얼마만큼 빼앗았다든지, 유럽하고 미국이 어떻게 사이가 틀어져서 전쟁을 벌였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역사책에는 ‘정치 지도자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동안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안 적힙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흔히 배우는 세계사는 ‘정복과 침략과 수탈을 다룬’ 이야기이지 싶어요. 세계사에 ‘정복하는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고단한가’ 같은 이야기가 빠져요. 세계사에 ‘침략을 받은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운가’ 같은 이야기가 빠져요.



근대 초기까지 1000년간 계속된 전쟁과 뒤이은 문화적 진화는 서유럽을 서로 적대시하는 작은 국가들로 갈라놓았다. 각국의 통치자들과 엘리트는 영광을 비롯해 전투에 걸린 상들을 차지하고자 싸움에 몰두했다. (177쪽)



  《정복의 역사》는 유럽을 이룬 수많은 나라가 지난 1000년이 넘는 나날을 서로 치고박으면서 전쟁무기를 차츰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전쟁무기를 더욱 눈부시게 키우며 유럽 바깥에서 서로 치고박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이 ‘치고박는 역사’는 언제나 ‘치고박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키우는 길’로만 이어졌다는 얼거리를 보여주어요.


  그러면 우리는 뭔가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지 싶어요. 전쟁은 전쟁을 끌어들이고, 전쟁무기는 새로운 전쟁무기를 바라며, 군대는 더 큰 군대로 나아간다면, 이제 전쟁무기도 군대도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에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전쟁무기와 군대를 줄이고, 슬기로운 평화와 민주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말이지요. 2017.1.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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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 망설이지 않고, 기죽지 않고, 지지 않는 불량 페미니스트의 대화 기술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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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84



“장롱에 가두었다가 퇴근해서 꺼내줄 겁니다”

―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니콜 슈타우딩거 글

 장혜경 옮김

 갈매나무 펴냄, 2016.12.20. 14000원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럭저럭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썩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말을 잘한다는 사람이라면 굳이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갈매나무,2016) 같은 책을 안 읽어도 되지 싶어요. 이 책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 서툰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부터는 그만 참고, 말을 좀 해 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이제 마음은 그만 다치고, 뾰족한 말도 그만 듣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말을 잘하는 사람’이여, 괜히 이 책을 집지 말기를 바랍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한테는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든지 ‘훗. 대수롭지도 않구만!’ 할 만할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바로 그 ‘아무것이 아닌 것’ 때문에 마음이 걸려서 말을 못해요. 바로 그 ‘대수롭지 않은 금’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쩔쩔매고요.



아니카를 가만히 살펴보자. 그녀는 과연 자신을 사랑할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으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을까? … 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역할 모델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야 ‘옳다’고 생각한다. (14, 15쪽)


여성 여러분, 들었는가? 이 현실의 불평등을 제거할 책임은 우리에게도, 아니 그 누구보다 바로 우리에게 있다. (35쪽)



  어느 모로 본다면 ‘말을 잘하는 사람’도 이 책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그대’가 말을 너무 잘하는 나머지 그만 그대 둘레에 있는 다른 사람은 ‘말을 못할’ 수 있거든요. ‘말을 잘하는 그대’가 바로 이웃이나 동무가 ‘말을 못하게’ 꽁꽁 틀어막는 ‘바로 그 사람’일 수 있어요. 게다가 ‘말을 너무나 잘하는 그대’는 그대 둘레에 있는 사람들 마음에 못을 박는 말을 너무 손쉽게 내뱉을 수 있을 테고요.


  우리는 이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돌아가신 전우익 님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말씀을 남겼는데요, ‘혼자만 잘 말하면 무슨 재민겨’로 살짝 돌려 볼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말을 잘하는 그대’는 부디 그 잘하는 말을 좀 줄이거나 멈추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못하는 우리’가 부디 말을 할 틈을 내도록 멈추어 줄 수 있어야지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머뭇거리느라 1분이든 5분이든 10분이든 쩔쩔매더라도 부디 ‘10분이고 20분이고 입을 다물고 기다릴’ 수 있어 주기를 바라요.



방패를 들어 날아온 공격을 튕겨내라. ‘튕겨낸다.’ 말은 쉽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면 온갖 불쾌한 말들이 거침없이 날아와 우리의 머리에 박힌다. 그럼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렇다. 생각을 할 수가 없다. (62쪽)


노래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하며, 그의 그런 생각이 그의 몸짓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77쪽)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를 쓴 독일사람 니콜 슈타우딩거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한테 ‘내가 나를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말문을 씩씩하게 튼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성을 내거나 부아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말고, 이제부터 한 가지씩 ‘우리 마음을 스스로 바꾸는 길’에 온힘을 쏟자고 힘주어 말해요.


  회사에서 웃사람이나 동료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런 모습에 휘둘리지 말자고 얘기합니다. 시어머니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더라도, 덫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얘기합니다. 옛날부터 나를 괴롭히는 이웃이나 동무가 있다면 그들이 나를 또 괴롭히려 하더라도 ‘튕겨내기’나 ‘받아치기’를 하자고 얘기해요.


  아마 이쯤에서 으레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말이 쉽지? 그걸 누가 몰라? 다 알지만 막상 말이 안 나오는걸?’ 네, 그렇습니다. 참말로 말이 쉬워요. 게다가 그 자리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창피하거나 짜증이 샘솟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아차, 그때 이렇게 대꾸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어요.



아이들은 깨끗한 집안이나 완벽하게 단장한 엄마를 기억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함께 책을 읽고 놀이를 하거나 산에 오른 시간, 바로 그 경험이다. (88쪽)


페트라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시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어머니의 행동에 화를 내거나 아니면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뿐이다. 시어머니는 여전할 것이다. 다만 페트라가 스스로 변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115쪽)



  그런데 말입니다, 왜 ‘뾰족한 말’로 공격을 받을 적마다 그 자리에서 곧장 대꾸를 못했나 하고 돌아보면요, 나 스스로 차분하거나 느긋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싶어요. 어떤 뾰족한 말을 듣더라도 스스로 차분하다면 즐겁게 맞받아치거나 가볍게 튕겨 주었을 텐데, ‘저 녀석이 또 뾰족한 말로 나를 괴롭히네?’ 하는 생각에 빠지면서 성이나 부아나 짜증을 먼저 지피는 탓에, 어떤 말을 해야 할는지 까맣게 잊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를 쓴 분이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내내 되풀이하는 마음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입니다. 차분해야지요. 이러면서 느긋해야지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지요.


  이 책에도 나옵니다만, 늘 뾰족한 말을 내뱉는 이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이 집은 청소도 안 하나? 뭐 이렇게 지저분해?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따위로 말한다면, 이 말에 발끈하거나 욱하기보다는 딴 말을 꺼낼 수 있어요. 또는 ‘그런데 놀랍지요? 사람 사는 곳 같지도 않은 지저분한 곳에서 아이들이 병치레 없이 얼마나 튼튼하게 뛰놀며 신나게 웃는지 몰라요.’ 하고 대꾸할 수 있어요. 뾰족한 말을 들었대서 곧장 ‘나 말야 쟤 말 때문에 마음이 아파’ 하고 여기지 말고, 뾰족한 말은 이 뾰족한 말을 꺼낸 이한테 고스란히 돌려주면 되는구나 싶어요.



용기는 당신 혼자서 끌어내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어 선을 긋는다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큰 용기를 내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211쪽)



  글쓴이는 이 책에서 익살스러운 보기말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둔 아주머니가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하는데 면접관이 ‘출근하면 애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고 물으면 “(아이는) 장롱에 가두었다가 퇴근해서 꺼내줄 겁니다.” 하고 대꾸해 줄 수 있대요. 면접관한테 이렇게 대꾸하면 면접에서 떨어질 수 있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아이를 돌보아 주는 시설이 없거나 아이를 헤아리는 복지가 없는 곳에 그냥 들어간다면 누구보다 바로 우리가 힘들 테지요. 회사는 ‘아이가 장롱게 갇히지 않도’록 육아시설 갖추거나 육아수당을 제대로 줄 수 있어야 옳을 테고요.


  글쓴이는 재택근무를 하는 아이 어머니인 여성을 못마땅해 하거나 싫어하는 동료들이 ‘집에 가서 쇼파에 누워 빈둥거릴 테지?’ 하고 빈정거릴 적에 “맞아. 일등으로 (집에) 가서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 보면서 빈둥거릴 거야. 생각만 해도 신나네. 다들 한번 해 봐.” 하고 대꾸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빈정거리는 회사 동료한테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더 빈정거리거나 괴롭힐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바보스레 내뱉는 뾰족한 말은 우리 마음에 담지 말고 바로 그들한테 돌려주어야지 싶어요.


  용기를 내자는 말, 스스로 기운을 내자는 말, 스스로 씩씩하게 살자는 말, 내가 나를 지키고 내가 나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2017.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번역이 살짝 아쉬워 9점을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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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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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틀을 지으려 하지요. 이러면서 사람들이 독재정권을 우러르도록 교과서를 바꾸려 해요.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독재자 섬기기’로 갈아치우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독재가 아닌 민주라고 하지만, 정치 우두머리는 역사 교과서를 그들 멋대로 주무르려고 합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노래로 문화와 예술을 밝히려고 하는 이들까지 멋대로 휘두르려고 해요. 이른바 ‘국정 역사교과서’나 ‘문단 블랙리스트’는 독재정권이 보여주는 숱한 몸짓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박정희는 “모든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일사봉공 박정희(一死奉公 朴正熙)”라고 반지(半紙)에 혈서를 써서 동봉한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를 만주국 치안군 군정사 정모과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서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을 피력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충성을 다할 각오”를 표명했다. (121쪽)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2012)는 강상중·현무암 두 분이 글을 써서 지은 책입니다. 일본 사회를 제국주의와 반민주와 반평화로 이끄는 데에 앞장선 ‘만주국 권력자’라는 기시 노부스케하고, 전쟁과 쿠테타로 독재를 누리면서 사회를 윽박지른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서로 맞대면서 역사라는 흐름에서 두 ‘독재자’가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일을 꾀했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을 앞둔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버지라고 하지요. 두 사람과 두 사람, 모두 네 사람은 서로 어떻게 닮았을까요.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를 어떻게 주무르려는 마음일까요.



여순봉기로 숙군의 태풍이 몰아치며 극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궁지에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백선엽과 정일권이라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의 ‘선배’들이었다. 그 후 군부 내에서 진급이나 군사쿠테타 계획에서도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숨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189쪽)



  ‘만주군 장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붙어서 살아남는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이 된 곳에서는 갈 곳이 없을 뿐더러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집니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은 ‘만주군 장교’를 키웠고, 이이는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서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이승만 독재를 사람들이 드디어 갈아엎었는데, 갈아엎기는 했어도 정권을 잡은 정치인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어요. 이 틈에 ‘만주군 장교’는 옛 ‘만주군 선배’와 하나가 되어 군사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이러고서 스무 해 가까이 이 나라에 군사독재를 속속들이 심어 놓습니다.



소련 혹은 북한과 대치하는 방공(防共) 국가, 집권적인 군부독재, 반공적인 국민통합 이념, 국방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화, 관료 주도에 의한 계획경제적인 자본주의산업의 구축 등 만주국과 박정희의 한국 사이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유사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18쪽)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에 ‘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였다.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개최된 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에 가 닿는다. (270쪽)



  군사독재로 사회가 억눌리던 때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무렵 이루었다는 경제발전은 재벌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어요. 수많은 어린 노동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마디소리를 남기고 몸을 불사른 젊은 넋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더 무서운 유신독재로 억누르려고 했어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이러한 사회 흐름을 ‘만주국’에서 뿌리를 찾으려 합니다. ‘만주군 장교’로 친일부역을 했던 독재자는 만주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에서 독재를 펼쳤고, 만주국에서 함께 친일부역을 하던 선배를 비롯해서 ‘만주국 소속 조선인 친일 관리’가 바로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버티는 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주의 친일조선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만주국 소속 조선인 관리들이다. 만주국에서 근무한 조선인 관료는 대략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 만주국 최대의 친일조적인 협화회에는 만주국의 조선인 관리나 유력자들이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 최대의 어용학자였던 이선근이 협화회 간부 출신이었다 … (정일권은) 1960년대에 박정희가 한일회담을 진행할 때는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는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만주군 장교 출신이니,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회담)가 과연 정상으로 되었겠는가. (304, 305, 306쪽)



  한국이 ‘민주’ 나라이거나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참말로 민주스럽고 독립한 나라다운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독재자를 추켜세우는 국정교과서는 하루빨리 걷어치워야 할 테고,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 넋을 달래려는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 얼마든지 세울 수 있어야지요. 아니, 일본 총리실 앞에도 소녀상을 세운다거나 도쿄 한복판에도 소녀상을 세워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난날 저지른 일을 되새기면서 돌아보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나라라 한다면 어용학자가 발을 붙일 수 없어야 해요. 이 나라가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는 이제 멈추고 남북녘이 평화로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거듭날 수 있어야겠지요.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에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 중위 즉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이 발언을 (1961년 11월 11일 일본 수상 관저) 오찬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19쪽)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역사에서 이 ‘만주군 장교’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식민지가 키우고 전쟁이 먹여살리고 쿠테타로 총칼을 거머쥐고 독재로 평화·민주를 짓밟은 ‘만주군 장교’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이제부터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와 평화여야 할 테지요. 아직도 군사독재 얼거리가 단단한 터라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판치고 말 테지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은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만주군 장교’ 뿌리를 잘라내고 몸통도 잘라내면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밝히지 싶습니다. 대통령 탄핵부터 비롯해서 모든 썩은 몸통을 내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2017.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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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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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모두 시인, 우리는 모두 작가

―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

 안성진 글

 가나북스 펴냄, 2016.11.25. 13000원



  2015년에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써낸 안성진 님은 여느 회사원입니다. 이러면서 여느 아버지예요. 그렇지만 안성진 님은 다른 여느 회사원이나 아버지하고 살짝 달라요. 무엇이 다른가 하면 “글을 씁”니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글을 쓴다고 할 만해요. 안성진 님은 다른 여느 회사원이나 아버지하고 대면 그저 수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안성진 님은 글을 써서 책을 냈어요.


  더 헤아리면 요새 ‘책을 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안성진 님은 다른 여느 ‘글쓴이(작가)’하고 어슷비슷하다고 여길 만해요. 그런데 안성진 님은 책 한 권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다음 책을 새롭게 쓰려고 마음을 품어요.



나는 글쓰기가 바로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쓰기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으면 세상의 번잡함은 딴 세상일인 것처럼 고요함을 맛볼 수 있다. (11쪽)


작가만 글을 쓰는 게 아닌 시대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다. (25쪽)



  회사원 아버지인 안성진 님이 두 권째 선보인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가나북스,2016)를 읽었습니다. 안성진 님은 아침 일찍 일터로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어 글을 쓴다고 해요. ‘마음 다스리기(명상)’를 하듯이 글을 쓴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차분하게 글을 쓰는 동안 ‘회사도 도시도 아닌 다른 나라’에 있는 듯한 맛을 느낀다고 해요.


  저는 으레 깊은 밤이나 새벽에 글을 씁니다. 하루 일을 마무리짓고 아이들을 새근새근 재우고 나서 기지개를 켜고 글을 쓰지요. 밤 열두 시라든지 새벽 두어 시나 서너 시 무렵 글을 쓰는데, 이때에 글을 쓰면 아주 고요하면서 차분해요. 저는 시골에서 살기에 철마다 밤소리하고 새벽소리를 다 다르게 듣기도 합니다. 철마다 밤노래를 베푸는 숨결이 달라요. 때로는 새가, 때로는 풀벌레가, 때로는 개구리가, 때로는 바람이 고즈넉하면서 멋진 노래를 베풀어 주어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만큼 성공하고 행복해진다고들 한다.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가능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데 덜컥 성공의 문턱에 들어서는 행운은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69쪽)


나의 기분이 그대로 글에 녹아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일기나 자기 자신만의 단상을 글로 옮길 때를 제외하고 책을 쓰는 작가는 기분이 좋은 상태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는 과정도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 (155쪽)



  회사원 아버지인 안성진 님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으로 ‘기쁨(행복)’을 꼽습니다. 남이 쓰는 글을 읽어도 즐겁지만, 스스로 글을 쓰면 한결 기쁘다고 해요. 남이 지은 이야기를 읽어도 반갑고, 스스로 지은 이야기를 이웃한테 들려줄 수 있으면 신난다고 해요.


  이처럼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동안 마음속에 ‘새로운 꿈’을 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솜씨를 멋지게 가다듬거나 글자랑을 크게 하려는 뜻이 아닌,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나아가는 길에서 글 한 줄을 쓴다고 해요. 이웃들 글을 즐겁게 쓰고, 내 글을 기쁘게 마무리하면서, 다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나를 성찰하지 않으면 변화와 성장을 꿈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12쪽)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부터 그 열정이 다르다. 그리고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일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209쪽)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는 글쓰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거나, 글을 쓰기는 하되 책을 낼 생각까지 못 하는 이웃들한테 길동무가 되려고 하는 책입니다. ‘어차피 쓰는 글이라면’이 아니라 ‘처음부터 더 곱고 사랑스러운 꿈을 품으면’서 글을 쓰자고 북돋아요.


  책 한 권으로 여밀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북돋웁니다. 책 한 권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글을 우리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북돋웁니다. 서로서로 멋진 글쓴이(작가)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자고 북돋웁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우리가 저마다 마음에 생각을 지어서 씨앗으로 품으면’ 어떤 꿈이든 씩씩하고 기쁘게 이룰 수 있다고 몸소 보여주면서 북돋웁니다.


  회사원으로서 글을 쓰고 책을 내면 함께 일하는 이웃한테뿐 아니라 나 스스로한테 선물이 됩니다. 아버지로서 글을 쓰고 책을 내면 함께 사는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바로 나한테 먼저 선물이 되고요. 지난날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하고 말씀했어요. 회사원 아버지 안성진 님이 쓴 책을 읽어 보면 “우리는 모두 작가이다” 하고 말할 만하지 싶습니다. 참말 우리는 모두 ‘새롭게 짓는 사람(작가 = 짓다(作) + 사람(家)’이에요. 2016.1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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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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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82



영국에서 과학자 한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글

 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 2016.12.2. 19500원



  여기 과학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녁은 심부름꾼을 여럿 거느린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공무원’인 아버지하고 함께 살다가 영국으로 건너와서 학교를 다닙니다. 이녁 아버지는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인 곳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어느 날 문득 ‘꽤 큰 재산’을 물려받아요. 이런 큰 재산이 없어도 넉넉한 살림이었다는데, 이녁 아버지하고 어버이는 꽤 큰 재산(땅과 집)을 물려받은 뒤 ‘식민지 공무원’ 살림을 접기로 하고, 꽤 높은 연금도 안 받기로 합니다. 이러면서 영국에서 꽤 일찌감치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살림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어린 도킨스는 어버이 곁에서 낡은 기계로 들일을 할 적마다 으레 거들었다고 합니다.


  정규 수업에 예배가 있는 학교를 다니던 이녁은 어느 날 버틀란드 러셀이 쓴 책을 한 권 읽었대요. 이 책을 발판으로 삼아서 ‘하느님(신)’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슴에 품습니다. 이 생각은 앞으로도 무럭무럭 자랍니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이니 어쩌면 먼지처럼 사라질 만한 생각일 수 있으나, 이녁은 차근차근 과학자라는 길을 마음에 담습니다. 천천히 과학자라는 길을 가면서 ‘하느님은 없다’랑 ‘종교는 모두 거짓이다’는 생각을 과학 논증으로 풀어내는 다윈 진화론을 퍼뜨리는 몫을 맡습니다. 이러면서 이녁이 써낸 책이 《이기적 유전자》하고 《만들어진 신》입니다.



마콰팔라에 살 때 (네 살이던) 내가 오후에 혼자 놀면서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 부모님은 옆에서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분다 / 바람이 분다 / 비가 온다 / 추위가 온다 / 비가 온다 / 매일 비가 온다 / 왜냐하면 나무 때문에 / 나무의 비니까.” (72쪽)



  《이기적 유전자》하고 《만들어진 신》이라는 대중과학서를 쓴 이는 리처드 도킨스 님입니다. 1941년에 태어났으니 어느덧 일흔 고개를 넘었습니다. 바야흐로 이녁 삶자국을 돌아보는 책을 손수 쓰기로 했으며, 영어로는 2015년에 이 책이 나왔다고 해요. 두 권으로 나온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김영사,2016)은 ‘다윈 진화론을 바탕으로 무신론을 과학으로 입증하는 과학자’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배웠고 어떤 생각을 키운 끝에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과학 연구를 할 수 있었는가를 차분하게 풀어냅니다.



우리가 과거의 아이와 현재의 성인이 같은 ‘인간’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기는 하다. 아이의 몸을 물리적으로 구성했던 분자들 중에서 수십 년 뒤까지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아도, 어쨌든 우리 기억은 오늘에서 내일로, 나아가 지난 10년에서 다음 10년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137쪽)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첫째 권을 보면, 리처드 도킨스를 낳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어떤 어린 날하고 젊은 날을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가 꽤 꼼꼼히 나옵니다. 리처드 도킨스 님으로서는 이녁 어버이 어린 날을 ‘알 수 없’지만, 두 분이 알뜰히 적어 놓은 글하고 책이 있고, 또 두 분이 살뜰히 건사한 숱한 기록이 있어서 두 분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다고 해요. 또 이녁 어머니는 너덧 살밖에 안 된 어린 리처드 도킨스가 재미난 말을 노래처럼 읊을 적마다 이 말을 꼼꼼히 적어서 모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 님은 ‘알 수 없’고 ‘떠오르지 않는’ 지난날이라 하더라도, 두 분이 남겨 준 멋진 글하고 책을 바탕으로 이녁 자서전 첫머리를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의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 그 목적이라면 책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도 있다. 강의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해야 한다. 훌륭한 강사가 내 눈앞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어떤 생각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가끔은 난데없이 나타나 멋진 생각을 잡아내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이다. (209쪽)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은 자서전인 만큼 앞선 대중과학서처럼 과학 이론이나 논증은 거의 안 펼칩니다. 그래도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되짚으면서 몇 가지 과학 이론이나 논증을 살며시 곁들여요. 이를테면,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는 동안 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모진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나 체벌을 놓고, 어떻게 그때에 그런 바보짓을 일삼을 수 있었고 눈감을 수 있었을까 하고 뉘우치는데요, 오늘날 도킨스 님으로서는 그런 바보짓은 더 안 한다지만 어릴 적에는 이녁뿐 아니라 영국 사회가 통틀어서 그 같은 바보 문화가 널리 있었다고 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유전자 얘기를 붙이지요. “아이의 몸을 물리적으로 구성했던 분자들 중에서 수십 년 뒤까지 살아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137쪽)”을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이 글을 쓰는 제 몸을 이루는 분자구조 가운데 열 해나 스무 해쯤 앞선 때 내 몸을 이루는 분자구조는 하나도 없다고 할 만해요. 열 해나 스무 해뿐 아니라 서너 해 앞선 때 내 몸을 이루던 분자구조는 오늘 나한테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고, 고작 한두 달 앞서라든지 서너 주 앞선 때 분자구조조차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하고 오늘 나는 틀림없이 ‘같은 나’라고 여깁니다. 다섯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을 살던 나하고 마흔 살을 사는 나는 ‘다른 나’라고 여기지 않아요. 아니 몽땅 ‘똑같은 나’이지는 않을 테지만 틀림없이 ‘나’인 대목이 있되, ‘다른 나’로 거듭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는 정확한 복사본의 형태로 불멸을 누릴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와 성공적이지 못한 유전자의 차이가 정말로 중요하다. 그 차이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에 유능한 유전자들,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남는 유전자들로 채워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개체가 번식할 때까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춘 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른 유전자들과 협동하는 유전자다. 몸이야말로 유전자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이자 유전자를 후대로 넘겨줄 운반체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는 생물 개체를 ‘생존 기계’라고 불렀다. (341쪽)



  도킨스 님은 이녁 자서전 첫째 권 뒤쪽으로 갈수록 과학 이야기를 더 다룹니다. 아무래도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과학자로 일할 무렵 이야기를 적으니, 유전자 이야기를 안 쓸 수 없을 테지요. 그리고 우리가 도킨스 님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바로 이 유전자 이야기를 헤아리려는 마음일 테고요.


  ‘유전자’로서는 ‘우리 몸’을 그저 ‘유전자가 담기는 그릇’으로 여긴다고 해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몸이 아니라 유전자를 물려주며, 무엇보다도 ‘유전자가 새롭게 진화하도록’ 마음을 기울일 때에 사람도 사회도 참말로 ‘진화를 이룬다’고 해요. 이 같은 이야기를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에서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가 도킨스 님 자서전을 읽는다면, 이 자서전에 깃든 이녁 발자취를 ‘지식으로 알거나 외우려는’ 뜻은 아니지 싶어요. 과학자 한 사람이 어떻게 ‘다윈 진화론’을 과학 이론에 맞추어 논증하는가를 살피려는 뜻으로도 이녁 책을 읽을 테고, 참말로 유전자란 무엇이고 우리 몸(생체)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이루는 삶하고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녁 책을 읽지 싶습니다.


  한국말로는 “이기적 유전자”로 옮겼는데, 유전자로서 본다면 ‘나 혼자만 아는’ 유전자라기보다 ‘나를 사랑해서 아이한테 이 사랑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인 유전자이지는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나밖에 모른다’고 할 만한 ‘이기적’ 유전자라기보다는 ‘나를 참다이 사랑하면서 아낄 줄 아는 숨결을 새로운 아이들한테 이어주고 싶은 마음’이 깃드는 유전자일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할아버지에게 클로드 섀넌과 정보이론에 관해 말씀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꿀벌, 새, 심지어 뇌의 뉴런이 사용하는 소통 원리가 다 같다는 사실을 알려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9쪽)



  도킨스 님은 이녁이 파고드는 과학 연구와 이녁이 쓰는 과학대중서가 이렇게 많이 팔리며 읽힐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녁이 외치고 싶던 ‘다윈 진화론’이 널리 알려지려면 이녁 책이 데즈먼드 모리스 님 책처럼 많이 팔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대요. 그리고 참말 그처럼 도킨스 님 책은 많이 팔리고 널리 읽힙니다.


  도킨스 님 두 어버이는 도킨스 님이 어린 날 ‘예배 거부’를 하든 어떤 모험을 하든 서글서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모두 다 어린 도킨스한테는 기쁘며 새로운 ‘배움’이 될 만하다고 여겼다고 해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도킨스 님 어버이처럼 아이들이 새롭고 기쁜 ‘배움’을 몸소 겪거나 치르면서 홀가분하고 너른 숨결을 과학으로도 인문으로도 정치로도 문학으로도 펼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답겠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자가 쓴 자서전 한 권은 우리한테 바로 이 대목을 건드려 줄 수 있지 싶어요. 자유로운 터전에서 자유로운 생각이 싹트고, 평화로운 보금자리에서 평화로운 생각이 움트며,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사랑스러운 생각이 자란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2016.12.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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