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은 그만 - 할머니 손에 자란 배우의 맨주먹 정신
가자마 도루 지음, 문방울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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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3


배고파 풀꽃을 뜯어먹으며 하늘만 보던 아이
― 엄살은 그만
 가자마 도루/문방울 그림
 마음산책, 2017.7.20. 12000원


저녁이 되고 여기저기서 음식 냄새가 풍기면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조금만 더 놀자”라고 졸라도 “엄마가 저녁 준비하고 기다린대” “엄마한테 혼나”라면서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24쪽)


  넘어져서 아픈데, 부딪혀서 다쳤는데, 맞아서 부었는데, 자빠져서 골이 띵한데,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같은 소리를 들으면 얼떨떨합니다. 얼떨떨하다가 부아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 “엄살 부리지 마!” 같은 소리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지는 않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예전에는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아이를 때리는 짓이 참 흔했어요. 아무래도 뒤숭숭한 나라 탓에 집이며 학교이며 마을이며 온통 뒤숭숭한 흐름이 그대로였구나 싶은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엄살’이라는 말은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원체 지나간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과거는 과거일 뿐, 중요한 건 오늘을 필사적으로 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40쪽)

야단을 맞아도 힘껏 달려 골목 모퉁이만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렸다.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다. 해와 바람에 이끌려 공원이나 자갈밭으로 가면 늘 새로운 발견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60쪽)


  가자마 도루라는 일본 배우가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배우(또는 모델이나 연기자)를 놓고서 한동안 ‘잘생겼다’라든지 ‘멋지다’라고만 여겼다는데, 나중에 이 배우가 이녁 어린 삶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을 적에 하나같이 눈물바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어린 날을 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옛일을 말할 수 있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지요.

  이야기책 《엄살은 그만》(마음산책, 2017)에 나오는 어린이(글쓴이가 어릴 적 모습)는 매우 어릴 적에 어머니가 집을 떠납니다. 얼마 뒤에 아버지도 집을 나갑니다. 아직 학교에 들지 않은 어린이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하고 아버지 모두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이 아이를 가여이 여긴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늙은 몸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돌보려고 합니다.


돈은 돌고 돈다. 하지만 진짜 돌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정이다. 사람을 정으로 대하면 그 정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77쪽)

정말 분했던 이유는 가난하다고 놀림을 당해서가 아니다. 열성으로 길러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정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96쪽)

화이트데이 때는 공원에서 주워 하얗게 색칠한 솔방울로 보답했다. 가방에 달 수 있게 실에 꿰어 목걸이로 선물했다. (100쪽)


  《엄살은 그만》에 나오는 어린이는 저녁에 밥을 지어서 기다리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뭘 잘못해도 꾸짖거나 나무랄 어버이가 없기에 더욱 집안이 쓸쓸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받는 연금으로 살기에는 턱없이 돈이 모자라니, 작아도 너무 작은 집에 있을 수도 없기에, 늘 냇가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학교에 들고 나서는 빈터나 옥상에 올라 하늘바라기만 했다고 해요. 도시락을 쌀 수 없고, 주전부리를 할 돈이 없으니 물로 배를 채우고,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메뚜기를 튀겨서 먹을 수 있다고 떠올라서, 사마귀를 잡아서 먹어 보기도 했다지요.

  가난한 살림집 어린이는 비록 가난하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새깁니다. 가난하면서도 꿋꿋하고, 가난하지만 이웃을 헤아릴 줄 아는 할머니 모습을 늘 가만히 지켜보고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어쩌면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서 못 배운 살림을 바로 할머니한테서 배운 셈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이를 어루만지는 사랑이 없이 저마다 배고픔을 털어내려고 집을 나갔다면, 그래도 끝까지 아이 곁에 남은 할머니가 아이한테 착하면서 참다운 마음을 씨앗으로 심어 준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직접 맛보자 공복감이 웬만큼 사라졌다. 그때부터 공원의 꽃이나 잡초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 특히 아침 이슬을 머금은 보랏빛 나팔꽃은 은은한 단맛이 났다. 튀겨 보면 어떨까 싶어 그렇게 해 봤더니 정말 맛있었다. (121쪽)

그 뒤로 매주 작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강둑에 가면 핫도그 가게 부부가 웃으면서 나를 맞아 주었다. “이야, 오늘도 와 줬구나.” 사실 양배추를 써는 일은 딱히 필요없었을 것이다. 내 사정을 눈치채고 그냥 베푸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아주머니 아저씨의 마음을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이웃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가끔 신을 만났다. 그렇게 느껴지곤 한다. (147∼148쪽)


  엄살을 부리고 싶어도 엄살을 부릴 만한 그늘이 없던 어린이는 참말로 곧게 자랍니다. 어쩌면 이 어린이는 툭하면, 아니 아침부터 밤까지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구름하고 벗삼고, 바람이랑 동무한 터라, 구름처럼 하얀 마음에다가 바람처럼 싱그러운 넋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뛸 듯이 기뻤다는 글쓴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등학생 나이부터는 드디어 ‘곁일(알바)’을 할 수 있었대요. 적은 돈이지만 살림에 보탤 수 있고, 글쓴이도 비로소 배고픈 나날을 조금은 털 수 있었답니다.

  돈이 없으니 대학교는 생각조차 안 한 채 곁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지내던 어느 날, 곁일을 하던 곳에서 ‘모델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서, 그러면 일삯을 얼마 받는지를 묻고는, 살림돈에 보탬이 되겠구나 싶어서 얼결에 모델을 했는데, 뜻밖에 몹시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글쓴이는 어릴 적부터 거의 못 먹고 자라서 비쩍 마른 몸이었다는데, 비쩍 마른 몸이되 언제나 들이나 냇가에서 하늘바라기를 했으니 얼굴이 매우 맑았으리라 봐요. 아마 이런 젊은이는 드물었겠지요. 모델이 되려는 공부나 훈련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삶에서 우러나온 고운 낯빛이나 몸매인 사람은 드물었겠지요. 억지로 몸매를 날씬하게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으나, 저절로 날씬한(?) 몸매인 사람은 참말 보기 힘들었겠지요.


그저 슬퍼서 눈물만 흘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나를 키우고 응원해 주던 할머니에게 해 드린 것도 없이 뭐 하고 살았나 싶어 회한의 눈물이 온몸을 덮쳤다. 그 이후로 내 사전에서 ‘언젠가’ ‘조만간’이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190쪽)


  《엄살은 그만》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글쓴이는 모델로 꽤 잘나가면서 돈을 넉넉히 벌어 이제 가난한 살림은 끝이로구나 하고 여겼대요. 그런데 모델로 꽤 잘나가다 보니 너무 일이 많아 바쁜 나머지 할머니를 보기 어려운 하루였답니다. 돈을 잘 버는 기쁨으로 ‘돈 쓸 틈마저 없었을’ 텐데, 한창 바쁘게 일하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서 ‘돈을 잘 버는 살림’이란 또 뭔가 하고 크게 뒷통수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돈을 아무리 번들 느긋하게 쓸 수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어요. 그토록 어렵게 어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저를 돌본 할머니하고 느긋하게 지내지 못했다면, 잔뜩 그러모은 돈이란 무슨 뜻이 있겠어요.

  책 하나에 흐르는 줄거리만 좇는데에도 찡하면서 애틋합니다. 글쓴이 어제하고 오늘을 맞대어 본다면,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았으면 오늘도 오늘 같지 않았구나 싶어요.

  어제 괴롭거나 슬펐더라도 오늘까지 괴롭거나 슬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까지 괴롭거나 슬프더라도 모레에는 다른 삶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엄살은 그만”이라는 말은, 우리 삶을 괴로움이나 슬픔에 허덕이도록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느낍니다. 어제를 지나 오늘을 걷는 하루를 더욱 씩씩하게 내딛으면서, 우리한테 다가올 모레에는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몸짓이지 싶어요.

  넘어졌어도 툭툭 털고서 일어나 방긋 웃는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저도 어른으로서 넘어지거나 부딪히거나 깨지거나 얻어맞거나 자빠지는 일을 치를 적에 “엄살은 그만”이라는, “다시 웃는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씩씩하게 살자고 생각을 추스릅니다. 2017.12.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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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생물 - 과학잡지 에피Epi 2호 과학잡지 에피 2
이음 편집부 지음 / 이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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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4


‘무기·장사’ 아닌 삶에 맞닿는 과학이 되기를
― 과학잡지 에피 2호
 이음, 2017.12.1. 12000원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과학은 우리 곁에 늘 있다고 대꾸해 줍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물을 적에도, 교육이나 사회나 정치나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이 물을 적에도 똑같이 대꾸합니다. 모두 우리 곁에 늘 있다고 대꾸해요.

  우리 곁에 없을 적에는 과학도 문학도 교육도 부질없다고 대꾸합니다. 우리 곁에 있기에 비로소 뜻이 있으면서 즐겁거나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어른들부터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말로 우리 곁에 없거나 저 멀리 떨어진 과학이라면, 우리 삶을 무너뜨리거나 괴롭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이른바 ‘첨단 전쟁무기를 새로 만드는 첨단과학’이 있어요. 정치하고 기업이 손을 맞잡고 사회 얼거리를 주름잡으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첨단과학’도 있지요.


‘만능’이라는 번역어 표현은 줄기세포의 세포 분화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분화를 제어해 원하는 말단 세포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말이다. 그러므로 ‘만능’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인 능력이라고 보아야 적절할 것이다. (20쪽)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뒤엎고 뜬금없이 핵발전소 공사 중단 여부를 시민에게 물었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선거로 권력을 위임 받은 지도자가 해야 할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34쪽)


  과학잡지 《에피》(이음 펴냄) 2호를 읽습니다. 과학을 둘러싼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밝히는 잡지입니다. 번쩍거리는 꾸밈새가 아닌 투박하거나 수수한 꾸밈새로 오직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도록 이끄는 잡지입니다.

  《에피》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꽤 많은 과학잡지는 눈부신 사진을 잔뜩 싣기 일쑤였구나 싶어요. 저 먼 우주라든지, 저 깊은 우리 몸 세포라든지,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넓거나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를 그야말로 눈부신 사진을 가득 담아서 보여주기 일쑤예요.

  투박하고 수수하게 꾸며서 글밥이 가득한 과학잡지를 읽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과학도 ‘말’을 바탕으로 하는군요. 아니 과학도 말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식이나 기호를 써서 풀이를 하더라도, 언제나 이 수식하고 기호를 말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수식이나 기호는 ‘말을 줄여서 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남북의 의료 실천은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북한에서는 초점이 전염병과 종종 탄광에서의 부상에 따른 신체적 외상에 맞춰져 있다. 의사들은 그 외의 다른 질병들에 대해 기초적인 사항만 배우는데, 그 이유는 전문 의약품과 장비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암에 대한 화학 요법 같은 것은 논외의 일이다. (57쪽)

DNA의 정보가 RNA를 거쳐 단백질로 표현(발현)된다는 분자생물학의 핵심 이론은 프랜시스 크릭이 처음 제안했던 표현인데, DNA 염기서열 정보(암호)를 단백질의 아미노산 정보로 전환하는 중간물질로 RNA 분자들, 즉 전령 RNA와 전달 RNA를 상정하고 …… (109쪽)


  《에피》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짐짓 과학 전문가나 즐김이한테만 재미있을 수 있으나, 찬찬히 읽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줄 느낄 만하지 싶습니다. 이 과학잡지는 조금 더 부드럽고 쉽게 풀어서 쓰려고 마음을 많이 썼다고 느껴요.

  그래도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말을 다 걷어내지는 못하지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전문가인 분들이 처음 전문 자리에 들어서는 길에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배운 말이 딱딱하고 어려우니, 이 틀에서 벗어나기는 만만하지 않을 만해요. 과학잡지 한 가지는 이러한 틀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길을 걸어가려 한다고 느낍니다.


2m 가까운 크기의 인간은 1mm 남짓한 예쁜꼬마선충과 매우 다르게 생겼지만 DNA와 RNA를 기반으로 한 동일한 유전 언어를 사용한다. (145쪽)

처음 만난 금화조와 십자매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체구에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실험동물이라기보다는 애완동물 같아 보였다. 랩헤드는 새들을 귀여워하던 필자에게 ‘귀여워하면 실험할 때 죄책감이 드니 실험동물로만 생각하라’는 충고를 해 줬다. (150쪽)


  《에피》 둘째 책을 한참 읽다가 ‘동물실험’하고 ‘인공생체 칩’에서 주춤합니다. 《에피》가 나아가려는 길을 고작 두 권만으로 어림할 수는 없겠으나, 《에피》 둘째 책에 나오는 ‘동물실험’하고 ‘인공생체 칩’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실험동물은 산 목숨이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는 대목에 이릅니다. “뇌에 전극을 삽입한 금화조” 사진이 나오는데요, 꼼꼼하면서 ‘실험자료’를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실험을 할 수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 실험도구를 써야 비로소 실험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금화조하고 실험자 자리를 바꾸어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제 과학을 새로 읽으려는 길이라 한다면, 이제부터 과학을 새로 말하려는 길이라 한다면, 그리고 과학이 우리 곁에서 삶을 북돋우는 한 가지로 제몫을 맡기를 바라는 길이라 한다면, ‘생체실험’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허동은 교수와 하버드대학교의 도널드 잉버드 교수의 인공폐 칩이 《사이언스》에 소개되면서, 인공생체 칩 분야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62쪽)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한 마디로 ‘인공생체 칩’을 다루어도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나라하고 대학하고 기업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인공생체 칩’ 연구를 하고 개발을 하고 널리 퍼뜨릴 만한가를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모든 첨단과학이 첨단무기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작 이 지구라는 별에서 과학이 걸어온 길은 으레 무기로 기울었습니다. 덧붙여 장사로 기울었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이 어떤 길을 걷는가를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생체 칩’을 만드는 일이란, 다치거나 아픈 사람을 돕는 자리에만 쓸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이나 삶을 슬기롭게 다스리는가를 헤아려 봐야지 싶습니다.

  과학만 첨단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과학잡지 하나가 모든 이야기를 다루거나 짚을 수 없을 테지만, 과학잡지가 ‘오직 과학만’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과학이 어디에 있으며, 과학이 어디 곁에 있을 적에 참으로 과학다운 과학이 될 수 있는가를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12.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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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국가 - 미국의 해외 군사 기지는 어떻게 미국과 세계에 해를 끼치는가
데이비드 바인 지음, 유강은 옮김 / 갈마바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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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 읽은 2017년 책 가운데 '올해 으뜸책'으로 삼고자 하는 <기지 국가>라는 책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차분히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2



미군 기지 옆에는 왜 성매매촌이 꼭 있을까?

― 기지 국가

 데이비드 바인/유강은 옮김

 갈마바람, 2017.10.20. 3만 원



  《기지 국가》(갈마바람, 2017)라고 하는 두꺼우면서 묵직한데다가 아픈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온갖 생각이 갈마들었어요. 책을 덮고 나서도 숱한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책을 살짝 잊고 제 어릴 적에 지켜본 몇 가지를 조각조각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면서 본 여러 가지를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하나하나 조각을 맞출 수 있었는데, 《기지 국가》를 읽는 사이에 어느덧 수수께끼 같은 흩어진 조각이 오롯이 모이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미국 땅에는 독립된 외국 기지가 하나도 없는 데 비해, 외국에는 현재 약 800개의 미군 기지가 있으며, 수십만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23쪽)


전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보유한 해외기지를 합하면 약 30개가 된다. (26쪽)


해외에 군인 한 명을 주둔시키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연평균 1만∼4만 달러에 달한다. (31쪽)



  제가 살던 집하고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시내버스로 두 정류장만큼 떨어졌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1학기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어요. 그때에는 집하고 학교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몰랐어요. 그저 아는 한 가지란 어머니 말씀. “종규야, 집하고 학교는 버스로 두 정류장이야. 알겠니? 버스가 한 번 서고 나서 다음에 설 적에 내리면 돼.”


  그런데 제 국민학교 무렵인 1982∼1987년은 학교마다 콩나물시루였어요. 그나마 제가 다닌 국민학교는 한 반에 고작 쉰다섯에서 예순이었고, 다른 학교는 웬만하면 일흔이나 여든을 넘겼고, 한 반에 백이 넘기도 했어요. 저는 3학년까지 아침반하고 낮반으로 나누어서 한 교실을 두 학급이 썼는데요, 이런 콩나물시루인 학교로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아이는 대단히 많았어요. 아침마다 버스에서 찜쪄 죽는 줄 알았지요.


  버스가 너무 괴롭고 숨조차 쉴 수 없기에 2학기부터는 걸었어요. 저는 6학년을 마칠 때까지 학교를 걸어다녔는데, 우리 마을에서 학교를 걸어다닌 동무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너무 위험해서 둘레 어른들은 그 길을 걸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국 정부의 지난 기록을 보면 비민주적 국가, 심지어 카타르나 바레인 같은 독재 국가에 기지를 두는 쪽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32쪽)


미국은 1944년 괌을 일본에게서 다시 빼앗은 뒤 수천 명을 강제 이주시키거나 주민들이 섬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았다 … 군은 결국 섬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했다. 군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중에 오키나와의 넓은 구획의 땅을 빼앗고, 주택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미국은 1년 만에 오키나와섬 경작지의 20퍼센트에 이르는 4만 에이커를 차지했다. 1950년대에 이르면, 군은 오키나와 경작지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서 결국 섬 주민의 약 절반인 25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114쪽)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 어린이는 왜 그 길을 걸으면 위험했을까요? 먼저 우리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고속도로가 있었어요. 경인고속도로인데, 인천항에서 내린 원자재를 엄청나게 큰 짐차가 싣고서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어귀가 바로 마을 앞이자 학교 앞입니다. 또는 원자재가 월미도 쪽 공단으로 달리는데, 우리 학교는 바로 그 길가였어요. 그러니 아이를 둔 어버이는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짐차가 무시무시한 짐을 잔뜩 싣고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학교 가는 짧은 길’에 되도록 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식품공장이 있었어요. 가공식품을 내놓는 커다란 공장인데 이곳에서 내뿜는 매연하고 폐수가 끔찍하도록 코를 찔렀어요. 학교 오가는 길에 늘 이 냄새를 맡아야 하니, 아이를 둔 어버이는 또 아이를 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도 식품공장 커다란 굴뚝이 보였고, 날마다 엄청나게 내뿜는 코를 찌르는 매연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군부대가 한 곳 있었어요. 여기에 연탄공장도 한 곳 있었지요. 연탄공장 옆을 지나갈 적마다 숨을 참으려 했지만 늘 매캐한 탄가루를 잔뜩 들이마셔야 했습니다. 여기에다가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시외버스역이 있어서 커다란 시외버스가 늘 끊이지 않고 지나다녀서 배기가스가 대단했어요. 커다란 버스도 아이들한테 위험했고요.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는 ‘옐로우하우스’가 있었어요. 이 ‘노란집’은 요즈음도 그곳에 그대로, 다만 크기는 줄어든 채 있어요. 어릴 적에는 노란집이 어떤 곳인지 까맣게 몰랐고, 노란집이 있는 그곳에 오락실이 있어서 학교를 마치거나 일요일이 되면 그 오락실에 가느라 바빴어요. 그러나 오락실은 저녁 대여섯 시가 가까우면 문을 닫고 아이들을 내쫓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일찍 내쫓는다며 툴툴거렸는데요, 오락실 아저씨가 우리를 내쫓은 까닭을 안 지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한참 뒤입니다.



강제 이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에서 미군은 서울 이남의 미군을 통폐합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점유하고 있던 2제곱마일의 캠프 험프리스를 확장하려고 했다. 미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 정부는 토지 수용권을 발동해 대추리와 평택시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농민들의 땅 2841에이커를 확보했다. 농민들이 저항하자 한국 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보내 퇴거를 집행했다. 전투경찰이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대추리에 진입해서는 시위대를 구타하고, 학교를 부수고, 농민들의 논과 관개수로를 망쳐 놓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계속 이주를 거부하자 한국 정부는 경찰, 군인, 철조망으로 마을을 에워쌌다. (120쪽)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사는 서울에 가끔 나들이를 가면 서울에서는 공장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릴 적에는 구로공단을 몰랐어요. 그저 인천은 어디를 가다 공장투성이인데 이 공장이 하나같이 서울로 물건을 보내는 곳이라고만 알았어요. 그리고 마을하고 학교 사이에 있던 ‘노란집’이 주한미군 사내한테 성매매를 하는 곳인 줄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을 어떤 터전에서 낳아 기르거나 돌보면서 가르친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마을이나 학교 바로 옆에 공장도 가득하고, 군부대도 있고, 연탄공장도 있고, 고속도로하고 기찻길이 있으며, 시외버스역에 주한미군 성매매촌까지 있습니다. 마을은 왜 이러한 얼거리가 되어야 했을까요. 제가 나고 자란 인천뿐 아니라 이 나라 구석구석에는 왜 미군 기지가 숱하게 많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 성매매촌은 골골샅샅 있을까요? 그리고 미군 기지 둘레뿐 아니라 ‘한국 군부대’ 둘레에도 왜 성매매촌이 있어야 할까요?



워낙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다 보니 미국 군대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스웨덴 전체의 소비량보다도 많다 … 석면, 납이 함유된 페인트, 기타 위험 물질 등 독성 물질을 강과 개천에 그냥 흘려보냈다. 또 툭하면 먼지를 막기 위해 비포장도로에 기름을 뿌렸다. 일부 기지에서는 핵무기, 생물무기, 화학무기와 관련된 위험 물질들을 바다에 버렸다. 육군의 한 대변인은 미국 11개 주의 수역에서 육군이 “비밀리에 신경가스와 머스터드가스 물질 6400만 파운드를 바다에 버렸고, 화학물질이 함유된 폭탄, 지뢰, 로켓탄 40만 개, 500톤이 넘는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거나 배의 짐칸에 넣어 통째로 가라앉혔다”고 인정했다. (194, 195쪽)



  두툼하고 묵직한 《기지 국가》는 미국사람이 미국을 걱정하면서 쓴 책입니다. 그런데 이 《기지 국가》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필리핀 이야기가 꽤 길게 나옵니다. 세 나라에는 미군 기지가 참으로 많거든요. 더욱이 세 나라는 사람들 앞에서는 안 밝히는 숨은 짓을 많이 했대요. 미군 기지 관리비를 엄청나게 몰래 댈 뿐 아니라, 온갖 뒷거래를 하고, 미군 PX에서 내보내는 물건으로 주둔지 공무원이나 군 관료를 사로잡는다고 하며, 갖은 범죄에 성매매를 일삼고, 끔찍한 독극물이나 화학무기나 폭탄조차 그냥 아무 땅에나 파묻는다고 합니다.



기지촌과 성매매는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던 한국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정부 문서를 보면, 남성 관리들이 휴가를 받은 미군 병사가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여성들에게 돈을 쓰도록 장려하는 전략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관리들은 기초 영어와 예절 수업을 제공해 여성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자기를 팔고 더 많은 돈을 벌도록 장려했다. (232쪽)


2002년 한 보고서에서 (미국) 국무부는 한국이 인신매매 피해 여성의 종착지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2007년, 3명의 연구자는 한국의 미군 기지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유라시아 출신의 여성들을 한국과 미국에 공급하는 초국가적인 여성 인신매매의 중심축”이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235쪽)



  다시 말하지만 《기지 국가》는 미국사람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필리핀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걱정하면서 쓴 책이 아닙니다. 미군 기지 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는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걱정하지 않아요. 이 책을 쓴 분은 바로 미국을 걱정합니다.


  지구별 거의 모든 나라에 군사 기지를 세운 미국을 걱정하는 책입니다. 엄청난 군사 기지하고 군인하고 전쟁무기 때문에 등허리가 휘는 미국사람을 걱정하는 책이지요. 미국은 미국 스스로 평화롭지도 아늑하지도 않은데, 이런 전쟁 소용돌이를 미국뿐 아니라 다른 거의 모든 나라에 잔뜩 심는 몸짓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해외에서 PX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미국) 군대만이 아니었다. 미 공군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바로 위에 제트기를 띄우고 있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스페인 고위 장교들에게 미군 PX와 장교클럽을 이용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334쪽)


미군 기지가 있는 곳이면 거의 어디서든 항상 인명 사고, 폭력 범죄, 현지인의 분노 등을 목격할 수 있다. (360쪽)



  사드 같은 미사일은 왜 한국에 있어야 할까요? 사드 같은 미사일이 참으로 평화를 지켜 줄까요? 대추리에서 일어난 끔찍한 주먹다짐은 누구를 돕는 몸짓이었을까요? 제주 강정마을에 때려짓는 해군 기지는 참으로 이 나라에 평화를 심는 몸짓일까요?


  《기지 국가》가 온갖 자료와 인터뷰로 낱낱이 밝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숱한 이야기 가운데에서 성매매촌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미군 부대이든 한국군 부대이든 군부대 옆에 나란히 달라붙는 성매매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군부대에서 엄청나게 쓰는 지구자원이란 무엇이며, 군부대마다 몰래 엄청나게 버리는 독극물이나 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한국도 미국도 다른 모든 나라도 군부대를 크게 두기 때문에 평화하고 자꾸 멀어지면서, 민주나 복지하고도 동떨어진 길을 가지 않나 하고 짚어야지 싶습니다.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준 1972년의 거래는 ‘반환’이라고 널리 알려졌지만, 일본은 오키나와 반환 협상의 일환으로 대미 섬유 수출 할당량을 준수하고, 6억 85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 … 현재 일본은 미군 병사 1인당 연간 15만 달러가량의 배려 예산을 미군에 지원한다. 2011년 한 해에만 일본 납세자들은 전체 기지 비용의 4분의 3 정도인 71억 달러를 제공했다. (368, 369쪽)



  《기지 국가》를 쓴 분은 미군 기지가 있는 모든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독일이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같은 나라에서 깜짝 놀랐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어림도 할 수 없는 대중교통이 매우 잘 뻗었을 뿐 아니라, 기본의료 혜택이 잘된 모습에 혀를 내둘렀대요.


  미국에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시피 한답니다. 미국에는 기본교육도 기본의료도 기본복지도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국사람은 무엇을 누릴까요? 엄청난 세금에 짓눌린 채 산다고 해요. 그리고 엄청난 세금에 눌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 ‘군인이 되는 길’을 간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군인이 되면 기본교육과 기본의료뿐 아니라 높은 교육과 의료와 복지에다가 집까지 거저로 얻을 수 있다고 해요. 미국에서 ‘군인이라는 일자리’는 더없이 훌륭하거나 멋진 ‘직업’이라고 합니다.



독일, 일본, 한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노르웨이, 벨기에 등과 달리 미국은 자국 시민 전부에게 의료보장을 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국민 의료보험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포기하자고 한다 … 나는 독일, 일본, 한국같이 미국 기지를 수용하는 몇몇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던 인상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미국의 기지 투자는 수십 년 동안 교통, 의료, 교육, 주거, 기반 시설, 기타 인간의 필수품을 무시하고 희생시켰다. 매년 전 세계 기지에 투입되는 700억 달러 이상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 보라. (434, 435쪽)



  《기지 국가》라는 묵직한 책이 밝히기로는 미국이 세계 곳곳에 끝없이 기지를 늘리면서 ‘리틀아메리카’를 심는다고 합니다. 마치 ‘차이나타운’처럼 ‘작은 미국’을 심는다는데, ‘리틀아메리카’는 이름하고 다르게 작은 미국마을은 아니라고 해요. 이 ‘리틀아메리카 미군 기지’는 새로운 도시하고 같으며, 극장에 야구장에 골프장에 대형마트에 놀이공원에 학교에 종합병원에 공항에 …… 갖은 편의시설을 다 갖춘 곳이라고 합니다.


  이 ‘작은 미국마을’에 군인으로 들어가서 일할 적에는 오직 이곳에만 있어도 남부러울 것 없이 느긋하게 ‘군인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성매매촌은 ‘작은 미국마을’ 바깥에 현지인이 현지 정부를 등에 업으면서 큼직하게 마련하고요.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최강의 군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국의 군사력과 핵 역량을 증강하는 게 타당하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이 붕괴해 한반도가 통일되면 이미 아시아 대륙 본토에 있는 수만 명의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므로, 북한을 지원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441쪽)


기지가 스스로 생명을 얻으면서 발생하는 위험은 돈과 국가 자원의 낭비를 훨씬 뛰어넘는다. 소방관과 달리, 해외기지가 할 일을 찾는 경우 그 결과는 잠재적 낭비와 비효율을 한층 뛰어넘는다. 여러 면에서 해외기지는 안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종종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447쪽)



  미군 기지가 있는 곳마다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독재자 감싸기, 마피아와 함께 지내기, 환경 더럽히기, 성매매, 군인 사이에 남성 폭력·남자 군인이 여자 군인 성폭행, 엄청난 예산 집행·횡령, 전쟁·내전 부추기기, 미국 복지·교육·의료·기반 시설에 등돌리기 따위라고 해요. 미국은 미국에 있는 군부대하고 전쟁무기를 건사하는 돈을 뺀, 미국 바깥에 있는 기지를 건사하는 데에만 해마다 700억 달러를 웃도는 돈을 쓴다고 합니다. 게다가 700억 달러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돈(비밀 집행 예산)이 대단히 많다고 합니다.


  《기지 국가》를 쓴 분은 참으로 미국을 걱정할 만합니다. 평화도 민주도 교육도 복지도 의료도 아닌 전쟁무기에, 이 가운데 ‘미국 바깥 기지’에만 해마다 (밝혀진 예산만) 700억 달러를 웃도는 돈을 펑펑 쓰는 미국을 걱정할 만합니다.


  미국이 외국 기지를 없앨 수 있다면, 또 미국이 ‘제 나라 전쟁무기와 군부대’를 줄일 수 있다면, 이뿐 아니라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남녘하고 북녘 두 나라도 전쟁무기하고 군부대를 줄일 수 있다면, 나아가 전쟁무기하고 군부대를 송두리째 없앨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달이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살림돈으로 받을 만할는지 모릅니다.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쟁무기에 돈을 안 쓸 적에는 모든 교육이나 공공시설을 ‘간접세’만으로도 넉넉히 댈 만할는지 모릅니다.


  쉽게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남녘에 사드라는 미사일을 놓으면 북녘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미국이 외국 기지를 자꾸 늘리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무기에 쏟아부으면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우리는 미군 기지 등쌀에 밀리면서 자꾸자꾸 평화나 민주나 평등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지는 않나요?


  부디 미국이 ‘기지 국가’도 ‘전쟁무기 넘치는 나라’도 벗어던질 수 있기를 빌어요. 평화로운 미국을 이루자면, 또 평화로운 지구별을 이루자면, 여기에 평화로운 남북녘을 이루자면, 우리가 걸어갈 길은 하나이지 싶어요. 이 땅에 ‘외국 기지’도 ‘모든 전쟁무기’도 몰아내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7.12.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붙인 그림은 책에 실린 자료이며, 갈마바람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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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철학 -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한 철학도의 물음
황광우 지음 / 풀빛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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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3


청소년이 촛불을 들자 나라가 바뀌다
― 촛불 철학
 황광우 글
 풀빛, 2017.6.30. 16000원


  ‘청소년헌장’을 정부에서 막 내놓을 즈음을 떠올립니다. 1990년이지 싶은데, 그때 중학교 3학년이던 저는 청소년헌장이 막 나온 일을 놓고 학교에 따졌습니다. 나라에서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왜 우리(청소년)한테 그 헌장 줄거리를 안 알려주느냐고 물었어요. 신문이나 방송에 청소년헌장을 내놓았다는 말만 있을 뿐 정작 줄거리가 무엇인지 적힌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학교에서는 중3이 고등학교 입시 공부를 안 한다며 꾸지람만 했습니다. 담임 교사도 다른 교사도 그저 제 머리통을 출석부로 때리거나 비아냥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서 한 달 가까이 청소년헌장 줄거리를 찾아서 알려 달라고 하니, 나중에 되어서야 딱 이레만 건물 문간에 종이로 옮겨적은 청소년헌장을 붙여놓았습니다. 이레 뒤에는 떼어서 없애더군요.


실업과 시험 사이에서 우리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다. 25만 명이 공무원 시험에 몰렸다. 경쟁률이 50대1이다. 한 명의 합격자를 위해 49명이 낙오되어야 하는 이것은 시험이 아니다. 죽음의 행진이다. (9쪽)

독재집단이 국민을 꼬신 당근, 그것은 성장이었다. 박정희는 성장이라는 전쟁의 맨 선두에 서서 이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 행세를 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박정희가 선택한 전략은 불귱형 성장전략이었고 … 박정희와 그의 군부집단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구실삼아 대한민국을 거대한 병영으로 바꾸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았고, 교사들은 독재자의 지침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독재의 충직한 하인이 되었다. (22, 23쪽)


  ‘애버트 인권상’을 받은 촛불잔치를 떠올립니다. 숱한 사람들이 골골샅샅 촛불을 들고 모인 자리는 촛불모임일 수 있고, 촛불집회일 수 있으며, 촛불혁명일 수 있습니다. 얼마 앞서 독일에서 애버트 인권상을 한국 촛불한테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속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촛불잔치를 했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총이나 칼이 아닌 촛불을 들었어요. 주먹다짐이나 발길질이 아닌 노래를 불렀습니다. 촛불 한 자루를 두 손으로 고이 쥐고서 노래 몇 마디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는 뜻을 빌었지요. 그래서 이러한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저마다 ‘잔치’를 했구나 싶어요. 즐거운 잔치라고 할까요. 어두컴컴하고 갑갑하며 고단한 나날에도 즐겁게 모여서 어깨동무를 한 잔치마당이었다고 느낍니다.


만일 전두환 정권이 농민의 정권이었다면, 우선적으로 농어민의 애간장을 녹이는 농가 부채를 탕감했을 것이다. 만일 전두환 정권이 노동자의 정권이었다면, 말로만 산업전사라 공치사할 게 아니라 최소한 산업재해로 불구가 된 노동자의 복지에 앞장섰을 것이다. (66쪽)

전두환 시절에도 그렇게 많은 전경들이 새까맣게 깔리지 않았는데,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밑에서 1750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고 전경이 공장을 점거하는 폭압이 자행되고 있었다. (174쪽)


  황광우 님이 쓴 《촛불 철학》(풀빛, 2017)이라는 책을 새삼스레 읽었습니다. 우리가 두 손 모아 뜻을 밝힌 촛불이란 무엇이었을까 하고 돌아본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우리가 촛불 한 자루를 들고서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짚고, 우리가 촛불 한 자루를 들고서 이 땅에 새롭게 심기를 바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를 다루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삼성이 벌여온 뇌물 공여의 테이프에 의거하여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다. 더욱 노회찬 의원은 법사위 소속 의원이 아니던가? 그런데 노 의원이 관련 인물을 공개하자, 검찰은 오히려 노 의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여 버렸다. 고소한 이는 고교 동창 황교안. 잡으라는 범인은 잡지 않고 잡으라고 신고한 의원만 족친 애꿎은 사건이었다. 결국 삼성 X파일에 담긴 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노회찬 의원은 대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MB 정권하에서 말이다. (155쪽)


  오랜 독재정권을 몰아낸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정치 지도자도 예전 독재자하고 엇비슷하게 전투경찰을 끌어모아서 노동자를 억눌렀습니다. 새롭게 나라를 가꾸겠다고 한 정치 지도자도 ‘삼성 장학금’을 받은 일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안타까우나 우리 민낯입니다.

  정치 우두머리를 바꾸었대서 나라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투표 하나만으로는 나라가 아름답게 설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나라를 바꾸려면 정치 우두머리 한두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줄 우리 스스로 뒤늦게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촛불이란, 나라를 바꾸려면 우리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은 몸부림이지 싶습니다. 마을과 집과 고을도 함께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은 몸짓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요.


알고 보니 베트남전쟁은 광기에 찬 미국인들의 침략전쟁이었고, 박정희는 달러 몇 푼을 받으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미국의 침략전쟁에 총알받이로 팔아먹은 것이었더구나. 그것이 자주 독립의 자세이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래시계 세대들은 기만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강자에게는 굽실대고 약자에게는 으르렁거리는 노예근성을 베트남 땅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262쪽)


  《촛불 철학》을 쓴 황광우 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터무니없다 싶은 일을 낱낱이 적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 저런 뜬금없는 일, 그런 바보스러운 일 들을 가만히 읽다 보니, 모두 하나로 맞물리는구나 싶어요.

  무엇인가 하면, 나라에서는 청소년을 입시에 가두거나 옥죄려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아이가 청소년 즈음 되면 이제 더는 책을 안 읽히고 입시학원이나 입시교재만 곁에 둡니다. 나라도 여느 사람들도 청소년이 생각을 새롭게 지펴서 삶을 새롭게 갈고닦는 길하고 등지도록 내모는 얼거리예요. 사회에 눈을 감고 입을 닫으며 귀를 막도록 내몬다고도 할 만해요.

  그런데 촛불잔치에 누가 모였을까요? 골골샅샅 촛불잔치에 어떤 사람이 잔뜩 모였을까요? 바로 청소년입니다. 입시공부가 아닌 삶짓기를 헤아린 청소년이 참으로 많이 모였어요. 서울에서뿐 아니라 전라도 고흥 같은 자그마한 시골에서까지 시골 청소년이 저희끼리 푼푼이 돈을 모아서 버스를 빌려 서울 광화문까지 달려가곤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희한한 나라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해마다 20조여 원을 투입하고 있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해마다 자식들 학비로 20조여 원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교육 문제 하나 제대로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답답한 현실이다. (305쪽)


  전남 고흥은 요즈막에 ‘경비행기 시험장’을 군 행정에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일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갯벌을 다시 바다로 돌리는 일에 마음이며 힘이며 돈을 쓰지만, 고흥에서는 갯벌을 메운 땅을 다시 바다로 돌리는 일에는 마음도 안 쓰는데다가, 이 자리에 ‘경비행기 시험장’을 끌어들이겠다며 벌써 100억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하며, 더욱 어마어마한 돈을 쓰려 한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시골 군인 고흥에서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서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나라뿐 아니라 작은 지자체도 아름답기를 바라기 때문에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돈에 휘둘리는 정책이 아닌, 즐겁고 아름다운 제살림을 찾기를 바라는 뜻에서 작은 두 손을 모아 촛불을 들거나 1인시위를 합니다.


지금 180만 명이 무엇 때문에 군사적 대결을 벌이고 있는가? 러시아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요, 일본의 북침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무언가? 그것은 같은 동포들끼리 서로의 목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그 추운 겨울밤 새벽 2시에 경계근무를 설 때, 왜 나는 이 무모한 대결의 노예로 서 있어야 하는지 치를 떤 적이 있다. (349쪽)


  우리 사회가 민주하고 평화를 바라보려면 어른도 어른대로 민주하고 평화를 생각해야 하지만, 어린이하고 청소년이 민주하고 평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입시하고 대학교만 바라보는 물결이 아니라, 제 삶을 바라보고 제 고장을 바라보며 제 꿈을 바라보는 물결이 일렁여야지 싶습니다.

  작은 지자체 시골 청소년이 굳이 서울로 나아가지 않아도 작은 시골자락에서 꿈을 지피며 펼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서울 청소년이 서울을 벗어나 작은 시골에 깃들어 새롭게 꿈을 키울 수도 있어야지 싶습니다. 끝없는 다툼질을 내려놓고,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이야기책 《촛불 철학》은 우리 어른들한테 한 가지를 묻습니다. 이 나라가 참말 민주나 평화가 맞는지 묻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보거나 헤아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소년한테 한 가지를 물어요. 청소년마다 꿈이 무엇이고 사랑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느냐고 물어요.

  촛불 한 자루를 든 모든 사람이 함께 받은 인권상이란, 민주도 평화도 꿈도 사랑도 늘 우리가 스스로 짓고 가꾸며 찾을 수 있다는 대목을 잘 밝혀 주리라 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자그마한 촛불잔치가 퍼지기를 빕니다.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기쁜 잔치가 퍼지기를 빕니다. 대학교에 가지 않고도,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치고도, 모든 젊고 푸른 벗님이 꿈하고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싱그러운 마을을 바랍니다. 2017.12.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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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 프랑스의 창조적 독서 치료
레진 드탕벨 지음, 문혜영 옮김 / 펄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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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0



책을 소리내어 읽으며 슬픔을 달랩니다

―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레진 드탕벨 글/문혜영 옮김

 펄북스, 2017.11.15. 14000원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잠시나마 자신의 걱정거리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고민들을 잊게 되는 것이다. (26쪽)



  마실을 다니면서 언제나 책을 몇 권쯤 가방에 챙깁니다. 제가 사는 시골집에서 읍내로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는 한 권을 챙기고, 고흥서 순천쯤 다녀올라치면 두어 권을 챙깁니다. 고흥서 서울로 다녀올 적에는 너덧 권을 넉넉히 챙겨요.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며 책을 폅니다. 아마 이렇게 시골살이를 하며 시골버스에서 책을 읽는 시골사람은 거의 보기 드물리라 봅니다. 좀 젊은 분들은 으레 자동차를 몰기에 책을 손에 쥘 수 없고, 군내버스를 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책을 챙기지 않아요. 시골에서 마주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딱히 책을 챙기면서 읽지는 않습니다.


  마실길에 책을 손에 쥐면 다른 소리나 모습은 제 마음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버스 일꾼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옆에서 누가 손전화로 싸우거나 수다를 떨어도 대단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쥐면서 새로운 곳으로 날아가는구나 하고 느껴요.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의 삶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41쪽)


그 치료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아마도 입으로 소리 내어 낭송하는 행위가 가진 마법 때문인 것 같다. (59쪽)


적극적인 독자가 되고 싶고, 정신적 노동을 발전시키고 싶고, 계속해서 그런 정신과 관계를 맺고 싶은 독자라면 별 내용이 없는 책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공허한 내용으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88쪽)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펄북스, 2017)을 시외버스에서 읽습니다. 고흥서 진주로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진주에서 장만했고, 진주서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다 읽습니다. 이 책은 독서치료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면서, 독서치료사라는 사람이 의사하고는 다르게 우리 마음을 고이 달래 주는 몫을 책을 사이에 놓고 풀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우리 괴로움을 알아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슬플 적에 슬픔을 달래 주는 책일 테지요. 우리 고단함이나 힘겨움을 알아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외롭거나 고단할 적에 지친 마음을 살며시 달래 주는 책일 테고요.



좋은 책은 읽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해서 가장 익숙한 사물들을 향해 마치 처음 본 것과 같이 새로운 시선을 던지게 해 준다. (164쪽)


만일 방금 한쪽 유방을 떼어낸 상태라면 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늙는 것이 두렵다면 어떤 책을 읽을까? 이것들은 생각해 볼 만한 훌륭한 질문이다. (179쪽)



  저는 아이들을 낳기 앞서부터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되도록 쉬운 말씨로 온갖 사람과 살림과 사회를 비추어 보여주어요. 길게 토를 달지 않지요. 부드러우면서 단출하고, 깔끔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비추어 보여주는 책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그림책 하나를 펴다가 때때로 눈물을 떨굽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줄거리하고 이야기가 감돌기에 눈물이 나요. 사랑스러운 그림책 하나를 펴다가 곧잘 깔깔 웃습니다.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이야기하고 줄거리가 어우러지면서 웃음이 나요.


  이원수라든지, 바바라 쿠니라든지, 윌리엄 스타이그라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든지, 권정생이라든지, 참으로 이쁜 어른들이 있습니다. 가브리엘 벵상은 또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치카와 사토미나 이와사키 치히로는 얼마나 따사롭던지요.


  이런 여러 그림책 작가나 동화책 작가는 우리를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아니,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으며 함께 울려는 마음을 이야기꽃으로 피우지 싶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같이 어깨동무를 하려는 뜻을 글이나 그림으로 싱그러이 엮어서 펼치는구나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딱딱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뜻밖에 놀라울 만큼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거나 급격한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할리우드식의 상투적인 모든 겉치레를 체계적으로 폭파할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88쪽)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을 쓴 분은 우리가 힘들 적에 책을 살며시 손에 쥐어 보자고 이끕니다. 더 많은 책이 아니어도 좋다고, 다문 한 권을 읽어도 좋다고, 어려운 인문책이 아니어도 좋다고, 시집을 읽거나 소설책을 읽어도 얼마든지 삶을 곱게 다스리는 새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요.


  그리고 책을 읽을 적에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더욱 느긋하게 읽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글쓴이가 이녁 삶을 길어올리면서 지은 이야기에 우리 마음결을 살포시 얹어서 읊어 보자고 하지요.


  어버이라면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돌본 나날이 있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어버이 곁에 앉거나 엎드려서 아이 스스로 무척 좋아하는 책을 신나는 말씨로 읽어 주고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 주고 책도 읽어 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 주고 책도 읽어 주어요. 자, 한번 느긋하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 봐요.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꿀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고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 봐요. 괴로움을 살살 달래거나 씻는 책 하나는 시나브로 즐거움을 슬슬 피워내는 책 하나로 거듭납니다. 2017.11.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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