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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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9


꿈꾸는 사람한테는 오늘이 가장 젊은 때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류승경 옮김
 수오서재, 2017.12.16.


어느 봄날엔 우리 둘이 잔디밭에 앉아서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아서가 “천국만큼 아름답다!”라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천국 가면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싶어”라고 덧붙였고, 나는 “맛있는 건 없어도 되지만 꽃은 많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지요. (25쪽)


  ‘모지스 할머니’는 무척 늙은 나이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림을 그려서 팔았고, 백 살이 넘어 숨을 거둘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해요. 이분이 손수 글을 써서 남긴 이야기인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수오서재, 2017)를 읽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여럿이었구나 싶어요.

  첫째, 딸아들이며 집식구가 늘어 집안일에서 살짝 손을 덜 나이가 되었습니다. 둘째, 집식구 모두 이분이 그린 그림을 좋아했고 즐거이 그리도록 북돋았습니다. 셋째, 유럽에서 건너와 미국에 터를 잡은 첫무렵에 사람들이 마을을 어떻게 가꾸고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또렷이 떠올리면서 낱낱이 그렸어요. 넷째, 문명이 발돋움하며 옛자취를 잊거나 잃은 현대 미국사람한테 모지스 할머니 그림은 아련하면서 포근했던, 고되기도 하고 복닥거리는 살림이 흐르던 지난날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엌문까지 썰매를 몰고 오면 우리는 볏짚과 이불을 잔뜩 챙겨 우르르 썰매에 올라타고는 쌩쌩 달려서 큰길에 이르렀고 그다음엔 숲을 가로질렀지요. 썰매를 타고 눈을 맞으며 숲을 누비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어요. 참 행복한 시절이었지요. (56쪽)

기차가 지나갈 때면 블루리지 산맥을 배경으로 증기가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도 있었지요. 그때 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흰색과 회색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131쪽)


  어릴 적부터 늘 심부름을 했고, 집안일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사내나 가시내 모두 심부름이며 집안일을 다 합니다. 함께 일하고서 함께 먹습니다. 함께 일하고서 함께 쉽니다. 함께 일하고서 함께 배우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춤춥니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틀이란 없습니다.

  기계에 기대어 살림을 짓던 때가 아니니,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밥을 먹으려면 누구나 땅을 부쳐야 하고, 하늘하고 바람하고 흙을 알아야 합니다. 물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를 누구나 알아야 하며, 집을 어떻게 짓고 건사하는가까지 누구나 알아야 하지요.

  모지스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늘 하던 대로 ‘일을 솜씨 있게 할 줄 아는 어른’인 셈입니다. 모든 일을 눈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삶을 걸어왔기에, 쉰 해나 일흔 해가 지난 옛일까지 마치 사진으로 찍어서 옮기기라도 하듯이 그림으로 술술 풀어낼 수 있었지 싶어요.


월요일엔 빨래를 했고, 화요일엔 다림질과 수선을 했고, 수요일은 빵을 굽고 청소를 했고, 목요일엔 바느질을 했고, 금요일엔 바느질과 더불어 정원이나 화단 가꾸기 같은 잡다한 일들을 했어요. (189쪽)


  그림 할머니는 언제나 ‘즐거움’을 그림에 담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힙니다. 아무리 고되게 일하던 옛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더라도 싱그러운 바람을 쐬며 좋았고, 다 같이 일하며 노래(일노래)를 부르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옛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제는 (죽어서) 없는 그리운 이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으며, 그림을 그리는 오늘날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파랗거나 눈부신 하늘을 다시 헤아릴 수 있어서 좋다고 해요.

  요일마다 더 힘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을 밝히는 대목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하는 일이 있었을 테고, 요일에 맞추어 온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 있었을 텐데, 집이 마치 학교와 같았다고 할까요. 집에서 밥(빵)을 짓는 살림이란 삶을 이루는 바탕을 배우는 셈입니다. 집에서 요일마다 달리 짓는 살림이란 삶을 한결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배우는 셈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느 초·중·고등학교에서 요일마다 ‘텃밭짓기·옷짓기·집짓기·살림짓기·아이돌보기’를 배워 본다면, 이러면서 날마다 ‘밥짓기’를 스스로 해 볼 수 있다면 매우 멋지리라 느껴요. 이 모두는 학생 때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날마다 누구나 늘 마주하는 살림이거든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지만 길어올 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꾀를 부리지 않으면 열한 시가 되기 전에 눈처럼 하얗게 빨아서 널은 빨래가 바람에 팔락거렸지요. (223쪽)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256쪽)


  일흔이 넘어 그림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백 살이 넘도록 살면, 서른 해 즈음 그림살림을 가꾸는 셈입니다. 그림살림을 쉰 해나 일흔 해쯤 걸어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서른 해쯤만(?) 걸어도 훌륭해요. 스무 해나 열 해만(?) 걸어도 아름답고요.

  꿈꾸는 사람한테는 늦을 때란 없이 언제나 처음 하기에 딱 좋은 때만 있다지요. 이와 맞물려 생각한다면, 젊기에 더 이른 때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더 어리거나 더 젊기에 모든 일을 다 해 볼 만한 나이라고는 여기기 어려워요. 아직 겪거나 누린 삶이 없다면 ‘그림을 그리는 살림’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그림으로 담아야 할는지 모를 수 있거든요.

  일흔 해라는 나날을 조용히 집살림을 짓는 길을 걸었기에, 이 일흔 해치 살림길을 그림으로 1600점이 넘는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었지 싶습니다. 글살림이나 사진살림이나 노래살림에서도 이와 같을 만해요. 늦깎이란 없어요.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이어야 뛰어드는 새길이 아니라,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또는 일흔이든 여든이든 아흔이든, 그리고 백이든 이백이든,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될 노릇이라고 봅니다.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러모로 지금보다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더 즐겼고 더 행복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2쪽)


  즐거우려고 한 걸음을 내딛어요. 아장걸음을 내딛는 아기도, 일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붓을 손에 쥔 할머니도,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즐겁기에 활짝 웃습니다. 꿈을 품기에 일흔다섯 살도 젊습니다. 꿈을 품지 못하기에 스물다섯 살도 늙습니다. 꿈을 떠올리기에 여든다섯 살도 싱그럽습니다. 꿈을 떠올리지 못하기에 서른다섯 살도 주름집니다.

  바로 오늘을 첫날로 여겨 한 걸음을 떼어 봐요. 무엇이든 좋아요. 붓을 쥐든 연필을 쥐든, 외국말 한 가지를 배우든 자전거를 타든, 새로 배우며 새로 걷는 길이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2018.2.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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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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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7


백제 옛자취를 살려내려는 길목에서
― 내가 사랑한 백제
 이병호
 다산초당, 2017.11.29.


고란사의 벽화는 불과 30여 년 전인 1983년에 그려졌다. 기암괴석 위에 자리한 백화정은 192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만든 부여고적보존회라는 어용 단체에서 건립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7쪽)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낙안과 벌교를 오가는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오가던 흙먼지 길이 갑자기 아스팔트가 깔린 신작로로 바뀐 것이다. 포장 공사가 끝난 도로 양 옆에는 각종 유실수가 심어졌다. (29쪽)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지기로 일하는 이병호 님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 2017)라는 책을 쓰면서 이 땅에 있던 백제라는 나라하고 얽힌 옛이야기를 풀어낸 길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책은 백제 유물이나 역사 이야기만 다루지 않습니다. 전시관장이나 글쓴이가 전남 순천 낙안마을에서 보낸 어린 날 이야기를 비롯해서, 학문길을 걸은 나날, 학예사 일을 하며 새롭게 배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발자취를 살피니 ‘낙안민속마을’은 나라에서 1983년에 문화재 마을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해에 이르기 앞서까지는 그저 깊은 시골자락이었고 마냥 조용한 곳이었다지요. 나라에서 왜 그곳을 민속마을로 삼았는지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만, 1986·1988년에 두 가지 큰 운동경기를 치를 셈으로 미리 관광마을로 삼으려고도 했을 텐데요, 흙길이 아스팔트길로 갑작스레 바뀐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앞으로 전시관장이 될 어린 시골아이’ 마음에 어떤 싹이 하나 텄구나 싶어요.

  문화란, 삶이란, 역사란, 사람이란, 여기에 마을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이 생겼으리라 봅니다.


백제 유물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보통 세련되고 귀족적이며 우아하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백제 유물들을 전시했을 때 그러한 평가를 할 마한 것은 오직 사비기밖에 없다. 서울 풍납토성이나 석촌동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나 금속공예품, 공주 무령왕릉을 제외한 웅진기의 유물들은 그러한 미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73쪽)

하나의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지만 미술사학계에서는 불상이나 도자기에만 관심을 갖고, 고고학계에서는 토기나 기와에만 관심을 기울였으며, 건축사학계에서는 기단 등 건물터만 분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133쪽)


  글쓴이는 우리 옛 발자취를 더듬는 길을 걸으면서 백제하고 얽힌 유물이나 자료나 책은 거의 없다시피 한 모습을 낱낱이 느낍니다. 아마 백제만 이러하지 않겠지요. 고구려도 가야도 이와 같을 테고, 발해나 부여도 이와 같지 싶어요. 더 앞선 발자취를 놓고는 더 아무런 실마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절터 한 곳에서 나온 유물을 놓고 학계는 저마다 한 가지만 바라보거나 살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싶기도 합니다. 학계는 저마다 전문으로 삼는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들려 하는 터라, 바로 옆 갈래 학문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을 수 있어요. 학계뿐 아니라 사회 곳곳이 갈래갈래 떨어진 채 좀처럼 못 어우러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라면 미술사학이나 고고학이나 건축사학 한 가지만 다룰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지자체에서도 한 갈래만 다룰 수 없지요. 깊이 살필 한 가지를 두더라도 우리 삶터를 둘러싼 모든 실마리를 함께 바라보거나 마주할 적에 비로소 깊은 한 갈래를 더 잘 살필 만하다고 봅니다.


박물관의 수준은 진귀한 소장품이나 웅장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는 큐레이터의 실력에 달려 있다. (175쪽)

기존에 공개되지 않은 목간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목간 연구자들은 목간 한 점을 보기 위해 천 리 길도 마다 않고 달려가는데 박물관 수장고에는 이미 발굴됐음에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판독조차 하지 않은 목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0쪽)


  《내가 사랑한 백제》는 여러 옛 발자취 가운데 백제 하나를 붙잡으려 하면서, 백제를 둘러싼 숱한 사람과 삶을 함께 살필 적에 비로소 백제를 백제답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 싶습니다. 백제하고 맞물린 일본 옛 발자취를 살핍니다. 백제하고 이웃한 여러 나라를 살핍니다. 백제에 앞서 있던 나라를, 백제를 이은 나라를,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백제 터에서 살아온 사람을 모두 살핍니다.

  역사란, 점 하나가 아니라 점을 하나하나 모아서 이은 줄 하나일 테니까요. 백제라는 점 하나 앞뒤로 사람이 있고, 이 숱한 사람은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유물이란, 권력이나 돈이 있던 사람이 남긴 물건에 그치지 않겠지요. 어느 한때 사람들 마음을 고이 담아서 아끼던 숨결이 흐르는 이야기꾸러미이지 싶습니다. 작은 기왓조각 하나로, 지나온 살림을 읽습니다. 작은 그릇조각 하나로, 지난날 알뜰살뜰 가꾸던 살림살이를 헤아립니다.


이미 누군가 손을 댔다는 얘기다. 아마 (1910년대) 야쓰이 팀의 소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쓰이가 그것을 발굴했을 때 어떤 유물들이 나왔고, 어떤 자료를 남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백제의 고이왕이나 근초고왕의 무덤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252쪽)


  《내가 사랑한 백제》는 너무 터무니없다 싶도록 한국에 없는 백제 발자취를 살피는 길에 지난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망가뜨리거나 가로채거나 숨긴 유물이나 유적지 이야기도 함께 들려줍니다. 처음부터 이를 알 수는 없었을 테지만, 작은 조각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살피는 길에 비로소 얄궂은 꿍꿍이하고 손길을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잊혀진 역사나 유물일 수 있지만,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역사나 유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너무 바쁘거나 힘든 탓에 무엇을 잊거나 잃거나 빼앗겼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자료 정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누군가 새로운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내가 생각하는 박물관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다. (277쪽)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고적 조사 사업은 철저하게 일본인이 기획하고, 일본인만 참여한 일본인을 위한 학술 활동이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식민지의 고고학자들은 고고학이라는 서양의 근대적 학문을 동원하여 조선총독부의 식민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들은 운 좋게 한반도의 고적 조사에 참여하여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누렸다. 그 때문에 1945년 패전 후에도 일본의 학계나 국가기관의 요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288쪽)


  백제 옛자취를 살피면서 오늘 이 나라 모습을 돌아봅니다. 백제사람이 살아온 나날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 나라가 앞으로 뒷사람한테 물려줄 살림살이를 생각합니다. 임금이나 절이나 빗돌에 얽힌 이름을 좇는 역사 연구를 넘어서, 이 땅에서 마을을 이루고 고을을 가꾸며 서로 오순도순 어우러지던 너른 삶터를 되짚는 손길을 헤아립니다.

  제국주의 군홧발은 이 나라에서 백제 옛자취를 엉성하게 흔들어 놓으려 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오늘 우리 발자국을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르거나 슬기롭게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오늘자취’를 참다이 갈고닦을 줄 알아야겠다고 여기면서 책을 덮습니다. 2018.2.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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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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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0


“총을 버리고 책을 읽자”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글
 달 펴냄, 2017.3.31. 14000원


그날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아이들에게 제법 비장하게 말해 두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 달라고. 죽어서라도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의자가 따뜻할 것 같다고. (39쪽)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읊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자.’ 어버이로서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이 안 곱구나 싶습니다. 어버이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지 않는다면 으레 힘들거나 고단하지 싶어요.

   입으로만 좋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입바른 말은 아이들한테 하나도 마음밥이 안 된다고 느낍니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몸으로 즐거운 기운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하나씩 받아먹거나 받아들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외딴 갈대숲에서 추위를 견디며 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욱이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낯선 나라에 와서 두루미를 연구하는 외국인 여성의 모습에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새 한 마리가 하나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186쪽)


  나희덕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참으로 수수합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없고, 대수로운 줄거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이처럼 수수한 이야기가 모여서 태어나지 싶습니다. 우리 살림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손을 하나하나 여미면서 피어나지 싶고요.

  어쩌면 우리는 문학을 너무 거룩하거나 높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문학상을 타야 문학이 아닌걸요. 이름을 드날려야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닌걸요. 삶을 짓는 노래를 나눌 수 있으면 되고, 날마다 곁님이나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되는걸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되나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 달이 멀다 하고 문설주 옆에 아이의 키를 표시하며 “와, 이만큼 컸네.” 기뻐하곤 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자라지 말아라. 자라지 말아라.” 중얼거렸다. (65쪽)

연주를 들으며 나는 피아노가 흰건반과 검은건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흰건반 52개, 검은건반 36개, 총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141쪽)


  한 걸음씩 걸어서 그곳에 닿는다고 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한 걸음이 모여 백 걸음이 되고 천 걸음이 됩니다.  옛말에 있듯이 천 리를 가는 길도 언제나 한 걸음부터입니다. 배고픈 이웃을 돕는 손길은 밥 한 술입니다. 열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들어요. 백 사람이 밥 한 술을 거든다면 열 사람하고 밥 한 그릇을 나눌 수 있어요.

  한 사람이 따로 밥 한 그릇을 챙겨서 이웃 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더라도 한 덩이씩 덜어서 한 그릇을 이룰 수 있어요. 아이들이 조그마한 과자조각이나 빵조각을 덜어서 나누는 손짓처럼 말이지요.

  날마다 꾸준히 피아노를 치다 보니 어느새 제법 피아노를 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준히 도마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썩 도마질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니 어느새 어버이로서 퍽 티가 날 만큼 부드러우면서 너그러운 품이 됩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 내전을 겪은 뒤에 군대를 폐지하고 주변국들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래 비무장 중립국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국방비로 쓸 돈을 교육과 복지에 투자해 중남미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다. “트랙터는 전차보다 쓸모 있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 “소총을 버리고 책을 갖자.” 이런 모토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아리아스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군대와 공장 없이도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나라. (143쪽)


  ‘세계 시잔치(국제시페스티벌)’를 여는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큰돈을 모을 만한 자리는 아닐 터이나, 큰기쁨이나 큰보람이나 큰웃음이나 큰얘기를 길어올리는 자리가 될 만하지 싶어요. 온누리 시인을 부르는 시잔치라면, 굳이 큰 경기장이나 호텔을 지을 일이 없을 테지만, 다 같이 골골샅샅 누비면서 새삼스레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우리도 총을 버리고 책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탱크나 미사일을 버리고 호미나 낫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리고 군부대를 박물관이나 도서관으로 바꿀 수 있다면, 갖은 첨단무기라든지 레이더라든지 군시설을 학교나 너른마당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아늑할까요?

  군대하고 공장이 없이도 넉넉한 숲을 누리며서 즐거운 살림을 꾸릴 수 있다면, 바로 이곳에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해요. 군인이 없고 정치인 숫자가 적어도 아기자기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림을 지피는 숨결이 흐른다면, 참으로 이곳은 민주하고 평등이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천 걸음을 내딛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에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날마다 소총하고 총알을 하나씩 녹이고, 이레마다 탱크하고 미사일도 하나씩 녹이다 보면, 남북녘이 이렇게 어깨를 맞대면서 사이좋게 나아갈 수 있다면, 이러한 길을 이제부터 걸을 수 있다면, 이러한 나라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지 싶어요. 수수한 이웃님 같은 분이 쓴 글줄을 읽으면서 꿈에 젖습니다. 2018.1.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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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20세기 세계 전쟁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3
피에르 발로 지음, 남윤지 옮김 / 책과함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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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335



싸움질을 멈추려면

― 아틀라스 20세기 세계 전쟁사

 피에르 발로/남윤지 옮김

 책과함께, 2010.6.4.



20세기 내내 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든 하루도 총성이 울리지 않은 날은 없었다 … 무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언제나 숭고하고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 그런 거라고 자신했다 … 스스로가 폭력을 남용하고 있음을 의식한 사람들은 각종 이데올로기를 유용한 알리바이로 삼았다. (4쪽)



  《아틀라스 20세기 세계 전쟁사》(책과함께, 2010)는 190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도록 이 지구별 곳곳에서 어떤 크고작은 싸움질이 있었는가를 그림으로 잘 보여줍니다. 크게 무리를 지은 나라는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갖추느라 애썼고, 이들 나라는 저마다 땅을 넓히면서 이웃나라한테서 온갖 것을 빼앗으려고 힘썼습니다.


  마음도 힘도 돈도 언제나 전쟁무기하고 군대에 썼지요. 이러면서 여느 사람들은 몹시 고달픕니다. 정치 우두머리하고 군대 우두머리는 고달플 일이 없습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앞세워 사람들을 억누르거든요. 사람들은 전쟁무기하고 군대 앞에서 꼼짝을 못합니다. 게다가 사람들 스스로 군대에 들어가기까지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군수공장에 들어가고요.


  2000년대가 무르익는 오늘날에는 싸움질을 끝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제 싸움질 아닌 사랑살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크고 작은 싸움질을 갈무리하거나 이야기하는 일도 끝내고,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기쁨을 노래하는 하루를 갈무리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2018.1.1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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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1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325



수수께끼를 풀려고 찾아나선 길

― 메이즈 MAZE

 온다 리쿠 글/박정임 옮김

 너머, 2017.9.8. 13000원



  아이들이 묻습니다. 뭔가 어렵구나 싶어서 묻습니다. 때로는 낯설구나 싶어서 묻고, 때로는 모른다며 묻습니다. 때로는 두근거리면서 묻고, 때로는 스스로 풀 길이 없다면서 묻습니다.

  온다 리쿠 님이 빚은 문학책 《메이즈 MAZE》(너머, 2017)를 읽으면서 저는 저한테 묻습니다. 무엇보다 ‘메이즈’란 뭔가 싶어 묻습니다. 이 말부터 풀지 못하면 이 문학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종잡지 못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영어 ‘maze’는 “1. 미로 2.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한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자말 ‘미로(迷路)’는 “1.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을 가리킨다고 해요. 두 낱말을 어림하다가 이 두 낱말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기는 어렵네 싶어서 생각을 하다 보니 한국말 ‘수수께끼’가 떠올라요. 옳지, 그렇구나.


  ‘수수께끼’는 “1. 어떤 사물에 대하여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빗대어 말하여 알아맞히는 놀이 2.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복잡하고 이상하게 얽혀 그 내막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알 수 없거나 종잡을 수 없을 적에 ‘수수께끼·미로·메이즈(maze)’인 셈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떼를 쓰듯 물었다.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있어? 왜 그런 이상한 이름을 붙인 거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 주변에는 그곳에 가 본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13쪽)



  《메이즈 MAZE》는 사람들이 빨려들어가면서 사라진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숨은 땅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꽤 옛날부터 퍽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어떤 곳에 들어갔다가 아무 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해요.


  사라진 사람을 찾으러 떠난 사람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주검이 남지도 않았답니다. 통째로 사라졌다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라진 사람을 찾으러 다녀왔’어도 멀쩡히 돌아옵니다.


  왜 누구는 사라지고 누구는 안 사라질까요? 왜 누구는 실오라기 하나 찾을 길이 없는데, 다른 누구는 ‘사라지는 숨은 곳’에서 아무런 일이 없을까요?



“나는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실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공기를 마시고 있고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 (104쪽)


“모습을 바꾸는 것입니다. 안에 들어간 사람에 따라.” 셀림은 다시 한 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미쓰루가 묻자 셀림은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모릅니다. 신의 뜻이겠죠.” (121쪽)



  《메이즈 MAZE》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내는 ‘수수께끼 길’로 이끌립니다. 그 수수께끼 길이란 어떤 곳인지 풀어내 달라는 말을 듣고서 제법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일을 하기로 합니다. 수수께끼 길이 어떠한지 하늘에서 위성사진이나 항공사진을 찍으면 다 풀리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사내를 둘러싼 사람들(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군인이었다지요)은 수수께끼 길 위쪽으로 헬리콥터를 띄워서 사진을 찍든 위성사진을 찍든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찍히지 않는 더욱 수수께끼인 길을, 게다가 때때로 꿈틀꿈틀하면서 생김새가 달라지기도 하는 수수께끼인 길을,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 보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죽이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니고, 성인 남자에게 한순간 백 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한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 느낄까요. 우리에게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을 그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그 사람 역시도 한순간으로 느낄 뿐 다음 순간에는 의식도 육체도 소멸하는 걸까요. 아니면 인간의 생명시계 그대로 백 년을 체감하고 있을까요.” (200쪽)



  ‘수수께끼 길’에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조사하는 사람’도 사라질 수 있다기에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항공사진이든 위성사진이든 찍을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둘레에 퍼진 몇 조각 이야기만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사내는 머리를 쥐어짜지만 어떤 실마리도 얻기 어렵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부터 조금씩 깨닫는 대목이 있어요. 사내가 맡기로 한 ‘수수께끼 길에 얽힌 참모습을 푸는 일’보다 사내를 둘러싼 사람들(군인)이 의뭉스레 보여주는 모습이 더욱 수수께끼 같다고 느끼지요. 다들 뭔가 감추면서 가장 깊은 곳 이야기는 안 들려주니 애가 타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그 수수께끼 길’에 몰래 뛰어들자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많은 돈과 무수한 인권이 동원되었다. 엄청난 인해전술로 만들어낸 장대한 거짓말.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잠시뿐인 하찮은 정의감 따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메구미도, 스콧도 결코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충분히 도덕적인 그들도 많은 것을 참아가며 이 일을 하는 것이다. (272∼273쪽)



  문학책 《메이즈 MAZE》는 문학으로 ‘수수께끼란 참말 수수께끼가 맞을까?’ 하고 우리한테 묻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인 길과 사람들(군인)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 수수께끼가 참으로 수수께끼인지, 어쩌면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속이려는 거짓말은 아닌지?’ 하고 묻습니다.


  지구별에는 도무지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하는 “세계 몇 대 불가사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나 일이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나 일’인지, 어쩌면 누가(또는 어느 권력이나 나라나 무리가) 무엇을 어디엔가 잔뜩 뒤집어씌워서 우리 눈이나 머리나 마음이나 생각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흔들어 놓은 셈은 아닐까 하고 묻기도 하는 《메이즈 MAZE》입니다. 알 길이 없대서 수수께끼로 삼기보다는, 알 길이 없도록 온통 가로막히거나 범벅이 되어서, 알아낼 길이 모조리 사라진 노릇은 아닌가 하고도 묻습니다.


  아주 하찮다 싶은 것을 꽁꽁 감추어 수수께끼로 삼았을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데에 사람들 눈길이 쏠리도록 거짓스러운 수수께끼를 지어냈을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 참이란 무엇이고 거짓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참으로 여기고 거짓이라 느낄까요. 감춰진 길 하나를 찾으려고 하는 작은 한 사람 발자국을 좇으면서 우리 곁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2018.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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